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본명
    2026-07-11
    검색기록 지우기
  • 시도
    2026-07-11
    검색기록 지우기
  • 의대
    2026-07-11
    검색기록 지우기
  • 신문
    2026-07-11
    검색기록 지우기
  • 서리
    2026-07-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832
  • 이외수 “이남이 죽음에 뼈가 저리다”

    이외수 “이남이 죽음에 뼈가 저리다”

    고(故) 이남이와 막역한 사이인 이외수 씨가 친구를 떠나보내는 심경을 토로했다. 이외수 씨는 3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담배까지 끊은 지독한 놈인데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어제(29일)는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전했다. 이어 “두 아들놈과 두 처남에게 제 대신 장례식장을 돌보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 뒤 “오늘은 일찍 장례식장으로 갈 예정으로 한잠도 못 잔 상태”라고 전해 고인의 안타까운 소식에 힘들어했음을 짐작케 했다. 마지막으로 이외수 씨는 “뼈가 저리지만 가급적이면 빨리 털고 일어나야겠다.”고 덧붙였다. 이외수 씨는 이날 오전 12시10분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지인들과 함께 고인과 함께 했던 추억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빈소를 지키고 있다. 한편 가수 이남이(본명 이창남)는 지난해 11월 말 폐암 선고를 받고 춘천성심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지난 29일 오후 2시 14분께 투병 2개월여 만에 별세했다. 사진 = tvN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고] ‘울고싶어라’ 이남이 폐암으로 숨져

    [부고] ‘울고싶어라’ 이남이 폐암으로 숨져

    1980년대를 풍미한 밴드 ‘사랑과 평화’ 출신으로 ‘울고 싶어라’를 불러 큰 사랑을 받았던 이남이(본명 이창남)씨가 29일 오후 2시14분 폐암으로 별세했다. 62세. 고인은 지난해 11월 말 폐암 선고를 받은 뒤 강원도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투병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1974년 그룹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베이스로 데뷔했으며, 1988년 사랑과 평화 재기 앨범이었던 3집에서 ‘울고 싶어라’를 직접 작사·작곡하고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중절모와 동그란 안경, 콧수염을 트레이드마크 삼아 솔로 활동을 펼쳤다. 1991년 솔로 3집까지 발표한 고인은 연예계에서 모습을 감췄다. 의형제를 맺은 중광 스님, 작가 이외수씨와의 인연으로 2000년 춘천에 자리를 잡았다. 군부대, 교도소, 노인복지회관 등 주로 지역무대에서 공연을 겸한 봉사 활동을 펼쳤다. 빈소는 춘천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희씨와 두 딸이 있다. 한편 유족과 지인 등에 따르면 고인은 투병생활 내내 병문안을 온 지인들에게 흡연의 중독성과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딸 단비씨는 “‘담배는 끊기가 어려우니 아예 배우지 말라.’고 한 말씀이 아직 귓전에 맴돈다.”고 밝혔다. 고인은 평소 하루에 2갑 이상의 담배를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담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고인의 생전행보는 이씨와 같은 나이로 작고한 코미디계의 황제 고 이주일씨를 연상케 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익뚜’를 통해 본 스포츠 카툰의 세계

    ‘익뚜’를 통해 본 스포츠 카툰의 세계

    ‘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 경기의 극적인 승부가 주는 감동을 드라마에 비유한 말이다. 스포츠는 다양한 캐릭터와 사연 많은 배경이 있다는 점에서도 드라마와 비슷하다. 이처럼 ‘드라마 같은’ 스포츠 경기 결과와 선수들을 소재로 하는 웹툰들이 인터넷에서 인기다. 실제 경기와 현재 활약하는 선수들을 다루고, 감동보다 웃음을 준다는 점에서 과거 스포츠 극만화들과는 전혀 다르다. 2010년 현재 야구와 축구 등 인기 종목을 다루는 카툰들이 각 포털 사이트 마다 별도로 마련된 섹션에서 연재된다. 이미 양과 인기에서 웹툰의 새로운 ‘주류’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많은 정보량과 실존 인물을 다루는 스포츠 카툰 작가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낼까. 그들은 정말 모든 경기를 다 보고 있을까. 유럽축구 카툰 ‘풋볼클럽스토리’(FC스토리)와 ‘스포츠 다이어리’를 네이트와 골닷컴에서 연재 중인 카투니스트 ‘익뚜’(본명 김익수)는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말로 이같은 질문에 답했다.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대중적인 재미에 더 무게를 둔다는 말이다. ● 주요 경기 중계방송만 시청…기사는 꼭 챙겨 익뚜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다. 스스로도 “현재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에게 밤에 유럽축구를 보는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전업 스포츠 카투니스트가 됐다.”고 말할 정도다. 프리랜서를 선언하기 전에는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 일을 했다. 그러나 유럽축구 만화를 그린다고 해서 경기를 다 보지는 않는다. 화제가 되는 경기만 꼬박꼬박 챙겨본다. “만화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만한 경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모든 경기를 다 볼 필요까지는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신 축구계 흐름이나 국내 팬들의 트렌드를 따라가려 스포츠 기사와 축구잡지,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편이다. 아이디어들은 그가 본 중계방송과 기사들에서 나온다. 익뚜는 “스포츠 카툰이 실제 인물과 팀을 소재로 하는 만큼 지켜야할 ‘선’이 많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마니아가 많다보니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여지없이 지적받기 때문이다. 특정 선수를 풍자한 죄로 험한 메일도 많이 받았다. 그는 “좋게 그리면 ‘빠’가 되고 나쁘게 그리면 ‘까’가 된다. 안좋은 상황에서 등장시키면 ‘차라리 그리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고 난처함을 털어놨다. ● “축구 몰라도 읽을 수 있어야” 스포츠 카툰은 분명 해당 종목을 많이 알수록 재밌다. 팬 입장에서는 캐릭터로 표현된 좋아하는 선수를 보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익뚜는 유럽축구 팬만 볼 수 있는 만화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회사에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카툰을 그리려고 한다. 축구 학습 만화는 아니니까.”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른 인기 웹툰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양에 시달린다. 별도로 의뢰받은 작업을 제외해도 정기 카툰만 매일 한편 이상 그린다. 네이트의 경우 한번에 서너 편을 보내야 한다. 그는 “좋아하는 일이지만 아이디어가 항상 반짝반짝 할 수는 없다. 하루에 한 편씩도 사실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스포츠 카툰 작가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 때문이다. 익뚜는 “월드컵엔 아무래도 사람들 관심도 많아지고 개인적으로도 더 바빠질 것”이라면서 “이름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도 된다.”고 ‘월드컵 시즌’을 내다봤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디바인, 알고 보니 마이클잭슨과 ‘음악 동문’

    디바인, 알고 보니 마이클잭슨과 ‘음악 동문’

    실력파 뮤지션 디바인(Deevine. 본명 라성진.25)이 해외 유명아티스트와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인 디바인은 일본 유학시절 마이클 잭슨을 가르친 세스릭스(Seth Riggs)의 수제자이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G.W로부터 보컬 테크닉을 익혔다. G.W는 올해 발매될 예정인 디바인의 새 앨범에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또 디바인은 음악선생님인 G.W와의 인연으로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 ‘뷰티 앤 더 비스트’(Beauty and the Beast)와 ‘알라딘’의 주제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를 부른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과도 인연을 맺었다. 디바인은 피보 브라이슨의 공연에도 초청을 받는 등 나이차와 국경을 넘는 우정을 쌓고 있다. 이외에도 디바인은 일본 3대 기타세션으로 꼽히는 야하기 히데야키(Yahagi Hideaki)로부터 기타를 배워 자신의 앨범에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직접 기타연주까지 도맡아 했다. 디바인은 최근 2PM과 샤이니의 곡을 락 버전으로 재편곡한 기타연주 UCC가 화제를 모으며 네티즌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디바인은 “나에게 가수의 꿈을 꾸게 만든 분들이자 음악적인 스승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들과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또 올해 G.W와 함께 작업하게 될 새 앨범도 기대해주시고 ‘눈을 감는다’도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디바인은 지난해 11월 미니앨범 ‘gRowing Vol.1’의 리패키지 앨범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눈을 감는다’로 활동 중이다. 사진 = 더제이스토리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담 후세인 사촌 교수형 집행

    사담 후세인 사촌 교수형 집행

    ‘머리엔 두건이,목에는 올가미가 씌워지고’  사담 후세인의 사촌이자 그의 심복인 케미컬 알리(본명 알리 하산 알-마지드)의 생의 마지막 순간 모습이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25일 “케미컬 알리가 이날 이라크에서 반인륜적인 학살죄로 65세의 나이에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보도했다. 1988년 쿠르드족 마을인 할 아브자에 독가스를 뿌려 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4번째 사형선고를 받은 8일만에 사형이 전격 집행됐다.  그는 당시 이라크 전투기들을 동원,할 아브자 시내에 5시간 동안 겨자가스를 포함한 치명적 화학가스를 뿌렸다. 이로 인해 수천명이 숨졌고, 그의 이같은 무자비한 작전으로 이라크인들은 케미컬 알리를 후세인보다 더 두려워했다. 이때 그에게 ‘케미컬 알리’란 별명이 붙여졌다.  케미컬 알리는 그외 3개의 죄명으로 각각 사형을 선고받았다.1988년 2월에서 8월까지 지속된 이라크 북쪽의 쿠르드 인종학살 군사작전 죄명으로 2007년 6월 사형을, 걸프전이 끝난 1991년 내무장관으로서 시아파 봉기를 진압하면서 양민을 학살한 혐의로 2008년 12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시아파 무슬림을 쫓아내고 살해한 사건에 개입한 죄명으로 2009년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8년 쿠르드 반군 소탕 군사작전때는 1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희생자 대분분은 시민들이었다. 케미컬 알리는 이 공격을 자신의 공적으로 자랑하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은 이란-아라크 전쟁때 이란 편을 든 비아랍 민족인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을 의심했었다.  케미컬 알리는 지난 2003년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킨 뒤 5개월만인 그해 8월 붙잡혔다.  그의 사형 집행은 최근 이라크의 바그다드 호텔 자살폭탄 테러때 실시됐다. 이 테러로 30명 이상이 사망하고 최소 70명이 부상했다.하지만 이 테러가 그의 교수형과 관련있는지는 불명확하다.   장상옥기자 007jang@seoul.co.kr
  • SES 슈·농구선수 임효성 결혼

    걸그룹 S.E.S 출신 슈(본명 유수영·29)와 동갑내기 프로농구 선수 임효성(인천 전자랜드)이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날짜는 일단 오는 4월11일로 잡혔다. 다만, 임효성의 소속팀 전자랜드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어 날짜가 조정될 수도 있다는 게 지인들의 얘기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천하무적야구단 왔다!” 사이판 들썩

    “천하무적야구단 왔다!” 사이판 들썩

    전지훈련 목적으로 사이판을 향한 KBS 2TV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 팀이 현지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관광청장까지 직접 나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지난 24일 아침(이하 현지시간) 사이판에 도착한 천하무적 야구단은 다음 날인 25일 오후 8시에 수수페에 있는 야구장에서 현지 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현지 일간지 ‘사이판트리뷴’은 이 경기 소식을 보도하면서 천하무적 야구단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신문은 “천하무적야구단(Invincible Baseball Team)은 한국의 가수, 패션모델, 배우, 코미디언 등 연예인들로 구성된 팀”이라고 설명했다. 페리 테노리오 북마리아나 제도 관광청장은 인터뷰에서 “천하무적 야구단의 방문은 우리 제도를 한국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기대했다. 이어 “많은 지역민들이 경기장에 함께 해 양팀 모두를 응원하도록 홍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이판트리뷴은 천하무적 야구단 선수들의 이름도 한 명씩 모두 열거했다. 정한림(마리오), 조현준(조빈), 마르코스 벤자민 리(마르코) 등 활동명이 아닌 본명으로 소개됐다. 이하늘(본명 이근배)만 이든배(Lee Deun Bae)로 잘못 보도됐다. 한편 천하무적 야구단과 현지 팀이 맞붙은 25일 경기에는 현지 원주민들과 교민들, 관광객들이 몰려 현지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사진=KBS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SBS ‘산부인과’ 수중 누드모델 포스터 공개

    SBS ‘산부인과’ 수중 누드모델 포스터 공개

    SBS 새수목 드라마 ‘산부인과’에 드라마사상 최초로 수중 속 누드모델이 열연한 포스터가 공개됐다. 이번 포스터는 ‘산부인과’라는 제목과 어울리게끔 산모의 뱃속 아기를 연상시킨다. 공개된 2종의 포스터중 하나는 산모의 뱃속에 아기가 담긴 형상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치 양수속에 아기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을 담았다. 여기에 각각 파란색과 금색 바탕을 활용해 신비감을 더했다. 이같은 상황은 조연출 이광영PD의 “포스터속에 세상 빛을 보기 전 어머니 뱃속의 아기를 담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고, 회의를 거듭해 실제 아기 대신 누드모델로 설정하기로 한 것. 포스터 촬영은 지난 12월 말 한 수중촬영장에서 진행됐다. 모델은 누드 전문모델인 이혜영씨, 그리고 사진은 국내 최초로 여성 수중촬영 다이버 라이센스 취득한 사진작가 Y.Zin(본명 김윤진)씨가 촬영했다. 당시 안전을 위해 모델과 사진작가에도 수중안전요원이 대기해 만발의 준비를 했다. 우선 이혜영씨는 수영복을 입고서 입수와 더불어 웅크리는 장면 등을 8시간에 걸쳐 리허설하며 물에 적응했고 이어 올 누드가 되어 2시간동안 촬영에 임했다. 물속을 비치는 조명이 신비감을 더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후속으로 오는 2월3일 밤 9시 55분 첫 방송되는 ‘산부인과’는 장서희와 고주원, 서지석, 정호빈, 이영은, 송중기 등이 출연해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그려간다. 사진=SBS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딸 커루즈야…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내 딸 커루즈야…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커루즈에게. 지진 때문에 네 상황을 알 수 없어 답답하구나.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 부디 아무 탈 없어야 할 텐데…. 너를 위해 기도할게. 커루즈, 제발 무사히 있어주렴.’(광주에서 후원자 이현옥)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아이티에 아들딸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랑하는 아이들을 사지에 둔 부모의 마음은 지진 피해를 직접 겪은 사람들 못지않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21일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이현옥(38·여·광주 서구)씨처럼 아이티 어린이들과 마음으로 이어진 부모들이 2000여명 있다. 컴패션을 통해 아이티 어린이들과 1대1 후원 결연한 사람들이다. 매달 3만 5000~4만 5000원씩 후원금을 내온 이들은 지진 이후 후원 자녀들의 생존을 확인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컴패션을 통해 아이티 어린이들을 3년째 후원 중인 손정은(28·여·서울 관악구)씨는 “계속해서 후원할 수 있게 그 아이들이 제발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연예계 기부천사 부부로 유명한 션(본명 노승환·38)-정혜영(37) 부부도 아이티에 메디첼(7·여), 아웬츠(5) 등 6명의 후원 자녀를 두고 있다. 이 부부는 지난 18일 아이티 구호를 위해 1억원을 기부하면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싶은데 지금껏 생사가 확인이 안 된다.”면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컴패션에 따르면 지진 이후 아이티로 보내는 후원자들의 편지가 평소의 10배인 150여통으로 불었다. 결연 신청도 급증했다. 김현순 한국컴패션 홍보팀 대리는 “후원 자녀들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문의전화가 하루 100여통씩 걸려온다.”며 “아이티 어린이와의 결연 문의도 최근 1주일 새 80여건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컴패션은 아이티돕기 긴급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위기대책반을 현지에 급파해 후원 어린이 찾기, 어린이센터 복구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스머프의 고향은 미국 아닌 벨기에

    스머프의 고향은 미국 아닌 벨기에

    ‘랄랄라랄랄라 랄라랄라라~’ 파란 몸에 하얀 모자를 쓰고 하얀 바지를 입은 숲 속 요정들. 국내에서는 개구쟁이 스머프로 널리 알려졌다. 1980년대 인기리에 방영됐던 TV애니메이션이 미국산(産)이기 때문에 흔히 미국을 스머프의 고향으로 알기 쉽지만, 이들의 고향은 벨기에다. 스머프는 고향에서 예술 대접을 받는다. 벨기에 등 프랑스어권 만화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미국, 일본 만화에 견줘 작가주의 색채가 짙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제9의 예술로 평가받는다. 만화를 통해 프랑스어권 문화 여행을 떠나보는 기회가 마련됐다. 경기 부천시 영상문화단지 안에 위치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산하 ‘뮤지엄 만화규장각’이 20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프랑스어권 만화 100년전(展)’을 연다. 전시는 무료이지만 규장각 입장료 5000원을 내야 한다. 1974년부터 세계 최고의 만화 축제를 열고 있는 프랑스 앙굴렘의 국제만화영상물센터가 소장한 7000여점 가운데 정수로 꼽히는 35점을 가져왔다. 르네 고시니(1926~1977)가 글을 쓰고, 알베르트 우데초(1927~)가 그린 ‘아스테릭스’를 비롯해 장 자크 상페(1932~)가 그린 ‘꼬마 니콜라’, 페요(본명 피에르 컬리포드·1928~1992)의 ‘개구쟁이 스머프’, 뫼비우스(본명 장 지로·1936~)의 ‘제리 코르넬리우스의 밀폐된 격납고’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원화를 복사한 뒤 원본 느낌을 최대한 살려 한국말로 번역했다. 타이완 출신 허 샤오셴 감독이 줄리엣 비노쉬를 주인공 삼아 찍은 영화 ‘빨간 풍선’ 등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프랑스 시네마 행사도 열린다. 프랑스 문화강좌도 마련돼 있다. 2월20일에는 프랑스 유학파 재즈 보컬리스트인 임미성과 피아니스트 허성우가 함께하는 공연이 펼쳐진다. (032)310-3021.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美 활동 팝페라 가수 이사벨 국내 데뷔

    美 활동 팝페라 가수 이사벨 국내 데뷔

    미국에서 활동 중인 팝페라 가수 이사벨(본명 조우정)이 국내에서 첫 앨범을 발표한다. 이사벨은 오는 28일 국내 데뷔앨범 ‘어나더 헤븐’(Another Heaven)을 발매하고 본격적인 국내 활동에 나선다. ‘어나더 헤븐’은 세계 최고 프로듀스들과 최정상급 아티스트가 참여한 가운데 노이즈 출신 홍종구가 프로듀스로 나서 국내 정서에 맞도록 해외 스태프들과 수차례 조정을 거쳐 완성된 앨범이다. 타이틀곡 ‘어나더 헤븐’은 토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한 스티븐 세이터가 작사하고 안드레아 보첼리, 조쉬 그로반의 프로듀스 레오 Z가 직접 작곡 및 프로듀싱 한 곡. 한국적 정서와도 잘 어울리며 밝고 희망적인 선율과 이사벨의 맑은 음색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사벨의 목소리를 모니터한 유명 작곡가들은 최고의 곡을 써 주겠다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는 이번 앨범에 이어 한국어 앨범을 기획하고 있는 이사벨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 마코앤메이저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지석 “이나영! 너 진짜 많이 컸다”

    김지석 “이나영! 너 진짜 많이 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이나영’ 바로 다음에 ‘김지석’이 있더라구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너 진짜 많이 컸구나.’” 김지석은 들뜬 목소리로 언론 시사회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영화 ‘국가대표’로 8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올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에서 이나영과 투톱으로 나선 배우가 너무 겸손한 것 아니냐고 묻자 김지석은 손사래를 쳤다. ◆ ‘국가대표’의 최대 수혜자 김지석 “크레딧에는 이나영-김지석-김희수 순서로 이름이 올랐지만, 저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이나영과 김희수 주연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 김지석은 비중이 꽤 큰 조연이죠.” 김지석의 말처럼 엄밀히 따지자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주인공은 부자 관계로 나오는 이나영과 아역배우 김희수다. 하지만 김지석은 극중 트렌스젠더로 분한 이나영이 과거를 숨기고 아빠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핵심 요인으로서 영화 전반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거의 데뷔 10년차가 됐지만 저는 아직 단독 주연이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를 선택한 겁니다. 이나영과 함께 한다는 부분이나, 이렇게 큰 비중의 역할은 처음이라서 욕심이 나기도 했구요.” ‘국가대표’의 청년 가장 칠구로서 주연을 연기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지석은 “‘국가대표’는 하정우와 4인방이 모두 함께 뛰면서 영화”라고 답했다. ‘국가대표’에서는 모두가 주연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서로를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 조연이었다는 대답이다. “물론 전 ‘국가대표’의 최대 수혜자에요. 자칫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칠구를 잘 잡아주신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가 대중들에게 김지석을 알린 시발점이었다면, ‘국가대표’는 절 배우로서 영화에 입문시켜준 작품이니까요.” 김지석은 ‘국가대표’ 덕분에 ‘여신’ 이나영과 함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며 웃었다. ◆ 차기작·군대·서른살…하지만 서두를 것 없다 올해 김지석은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와 드라마 ‘추노’를 통해 각각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작품 속의 김지석은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장난스럽고 유쾌한 청년이다. “사람들이 ‘김지석’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한정적일 겁니다. 장난기 있는 호감형 남자애 같은 거요. 하지만 배우 김지석이 아닌 인간 김보석(김지석의 본명)에게는 다른 모습이 꽤 많아요.” 이미지가 굳어지거나,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달아 맡는 것이 걱정이 되느냐는 질문에 김지석은 서두를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보다 주변에서 더 걱정을 해요. 캐릭터가 고정된다거나, 빨리 주연을 맡아야하는 게 아니냐구요. 하지만 저는 원래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게다가 아직 젊은데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엘리베이터로 빨리 올라가면 그만큼 빨리 내려오게 된다는 김지석은 계단으로 천천히 올라가서 내려올 때도 아주 천천히 내려오겠다고 했다. 올해 입대를 앞둔 군대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쉽죠. 막 숟가락을 뜨려니까 빨리 나오라고 성화부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선배인 장혁이 군대는 빨리 갈수록 좋다고 하시더군요. 어찌나 군대에 관한 조언을 많이 해주던지 마음속으로는 벌써 상병 달았습니다.”(웃음) 20대의 전부를 바쳐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위해 살았다는 김지석은 군대라는 쉼표를 통해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한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 배우들의 연기가 한층 깊어지는 것처럼, 김지석은 “나 역시 또 한 번의 변신을 앞두고 있는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회플러스] 아이비 주민번호 도용 수사

    서울 강남경찰서는 14일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에 유출된 아이비(본명 박은혜·28)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악용한 사례를 수집, 조사해 달라는 고소장을 접수함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 아이비는 최근 음악채널 엠넷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이비 백’ 촬영 중 번지점프에 성공했고, 동행한 매체가 지난 10일 번지점프 인증서 사진을 모자이크처리 하지 않고 내보내면서 인터넷에 주민등록번호가 공개됐다.
  • ‘주민번호 유출’ 아이비, 악용한 네티즌 고소

    ‘주민번호 유출’ 아이비, 악용한 네티즌 고소

    최근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에 유출된 아이비(본명 박은혜ㆍ28)가 최초 유출한 매체는 용서했지만 이를 악용하여 확대시킨 네티즌에겐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이비의 소속사인 디초콜릿이앤티에프는 14일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를 배포 악용하는 등 피해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며 “이를 확대시키고 있는 네티즌에 강력 대응하기 위해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아이비는 최근 케이블채널 엠넷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이비 백’ 촬영 중 번지점프에 성공했고 동행한 매체가 지난 10일 번지점프 인증서 사진을 모자이크처리 하지 않고 내보내면서 인터넷에 주민등록번호가 공개됐다. 아이비 측은 사고로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를 유출한 매체에 대해 용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매체가 ‘아이비 주민번호유출 유감’ 이라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전해왔고 고의적으로 유출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네티즌들은 의도적으로 아이비가 가입해놓은 일부 사이트 등의 비밀번호를 변경해 놓는가 하면 심지어 성인 사이트 등에 신규 아이디를 만들고 아이비의 개인 정보들을 캡처해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소속사 측은 더 이상의 유포를 방지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게 됐다. 디초콜릿이앤티에프 측은 “이번 사건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면서 아이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심적 고통과 상처를 받았다.”며 “아무런 죄 의식 없이 개인의 신상 정보를 악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조사해 법적인 처벌을 요구할 것이다.”고 밝혔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음주 뺑소니 ‘슈주’ 강인 벌금 800만원 약식기소

    음주 뺑소니 ‘슈주’ 강인 벌금 800만원 약식기소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이옥)는 13일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뒤 달아난 인기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강인(본명 김영운·25)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 혐의로 벌금 8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지난해 10월15일 새벽 3시쯤 술을 마시고 리스한 외제승용차를 운전하다 서울 논현동 차병원사거리에서 정차해 있던 택시를 들이받은 뒤, 차를 버리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는 같은 날 오전 9시쯤 강남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범행사실을 시인했다. 사고를 낸 지 6시간이 지나 측정한 강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치인 0.081%였다. 앞서 강씨는 지난해 9월에는 강남의 한 술집에서 싸운 혐의로 입건됐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지드래곤 팬들 “음란하지 않았다” 탄원서

    지드래곤 팬들 “음란하지 않았다” 탄원서

    가수 지드래곤의 콘서트를 관람한 팬 1000여명이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은 지난해 12월 가진 첫 단독 콘서트에서 침대를 배경으로 여성 댄서와 성행위를 하는 듯한 퍼포먼서를 선보여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공연음란죄에 대해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여기에 ‘쉬즈곤’(She’s Gone)과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의 경우, 11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고시됐음에도 콘서트에서 선보인 것에 대한 청소년보호법 위반여부도 수사대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지드래곤의 콘서트를 관람한 팬 1000여명은 검찰에 낸 탄원서를 통해 공연이 음란하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공연음란죄가 적용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람객들이 음란함을 느껴야 한다.”며 “우리들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다방면으로 검토 및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지드래곤 등 관계자 소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계적인 재벌 상속녀 의문의 사망…왜?

    세계적인 재벌 상속녀 의문의 사망…왜?

     다국적 기업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의 상속녀 케이시 존슨(30)이 4일(이하 현지시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00년 북미프로풋볼리그(NFL)의 뉴욕 제츠를 사들인 로버트 우디 존슨 회장의 딸이기도 한 케이시가 이날 오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이 전했다.이날 오전 11시51분쯤 경찰이 응급전화를 받고 도착했더니 케이시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고 LA경찰국의 새라 페이든은 케이시가 세상을 떠난 것을 확인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초동수사 결과 그녀는 자연사했으며 어떤 부정행위도 개입되지 않았다고 페이든은 밝혔다.이후 검시의가 독극물 검사 등을 실시할 예정인데 최종 결과는 6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케이시는 3주 전 MTV 리얼리티쇼 ‘바이섹슈얼 틸라(Shot at Love)’의 주인공 틸라 테킬라(27·본명 틸라 뉴엔)와 약혼했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테킬라는 이미 결별했으며 지난 해 12월29일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밝혔다.  이날 응급전화가 걸려오기 전 테킬라는 밤새 케이시의 죽음을 알리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었다고 연예 전문 TMZ 닷컴은 전했다.이에 따라 케이시가 숨을 거둔 것은 며칠 전 일이며 주검이 뒤늦게야 발견된 이유를 둘러싸고 온갖 억측이 난무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또 케이블 채널 E!의 리얼리티쇼 ‘멋진 인생’과 ‘트루 할리우드 스토리’에 등장하는 등 젊은 여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삶을 살아왔다.하지만 10대 시절부터 마약에 찌들어 최근까지 재활원에 입원해 있다가 의료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퇴원하는 등 곧잘 물의를 일으켰다.  가족 변호인인 제시 데리스는 “존슨 가문은 이 비극적인 손실을 애도하고 있으며 어려운 시기에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이메일 성명에서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MTV 모스트원티드 VJ 한별, 유쾌한 그를 만나다

    MTV 모스트원티드 VJ 한별, 유쾌한 그를 만나다

     처음 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순간 움찔하며 경계심을 품는데 아뿔싸 한 발 늦었다. 까불거리는 인상의 한 남자,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칭찬으로 ‘선빵’을 날린다. 잘 생겼다는 말에 잠시 어지러워하는 틈을 타, 급기야 기자에게 파고들어 말을 건다.순식간에 당했다.  어느 순간 기자는 길거리에서 처음 본 이 친구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사람보다 더 낯선 카메라가 모습을 찍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건 그와 한참 얘기를 나누고 나서다.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얘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는 케이블TV 음악 프로그램의 카메라다. 낯선 이와의 거리감을, 카메라에 대한 당혹감을 한방에 없애는 재주를 지닌 이 친구,그는 VJ 한별(본명 손한별·24)이다.  ●친근함이 무기  한별은 지난 2008년 7월부터 MTV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웃는 낯으로 누구에게나 살갑게 구는 이 친구를 최근 신사동 가로수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와하하’하는 웃음으로 시작해서 ‘낄낄’거리는 수다로 끝났다.  이 친구 한별, 외국물을 오래 먹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학을 전공할 정도로(현재 휴학중) 영어에 능통하다.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 등 영어권 스타들이 내한하면 인터뷰를 도맡아했다. 다른 리포터들에게 ‘까칠’하게 대하던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도 한별의 웃음 앞에선 유순해졌다. 결국 갤러거는 장난삼아 용돈까지 주며 그와의 인터뷰를 매우 유쾌해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아서 남들보다 개방적인 것 같아요. 해외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호주에 있었고, 홍콩에서도 몇 년 살았어요. 심각한 거 보다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냥 재미있게 살려고 하고, 그냥 즐거운 게 좋아요.”  ●오랜 외국 생활…‘빠다’ 냄새는?  방송에 대한 확고한 뜻이 있어서 VJ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어쩌다 보니 프로그램을 맡았고 그냥 놀 듯이 방송일을 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외국물 먹고 겉 멋 든 ‘빠다 냄새’ 나는 철없는 교포의 얘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친구, 제법 바르게 살아왔다. 군 생활을 제대로 마쳤다는 게 마음에 든다. 공군 모부대 통번역병으로 을지포커스훈련 등에서 막중한 임무를 소화해냈다. 대학교에서는 장학금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스스로 돈을 벌고 있지만 쓸데없는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멋쟁이 아이템인 ‘지포 라이터’도 없다. 횟집 상호가 새겨진 300원짜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가 되게 ‘짠’(검소한) 분이세요. 뭐든 스스로 해야 한다고 배우고 자라왔구요. 군대요? 아무리 외국생활을 했어도 팔다리 멀쩡한 한국 남자라면 안 갈 이유가 없잖아요.”  군대를 다녀온 뒤 그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모 교통방송 프로그램에서 VJ로 발탁된 것.이후 그 경력을 살려 MTV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 자리도 꿰찼다.면접장에서도 심사위원들과 친근하게 실컷 떠들고 웃고 나온 친숙함이 합격의 비결이다.  ●인터뷰의 달인  이 친구, 길에서 인터뷰를 할 때도 친구처럼 다가간다. 어디까지나 인터뷰 당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자신은 들러리라는 점을 늘 명심한단다. 한별은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대본도 없는 100% 리얼 프로그램이라 한별이 직접 시민들을 섭외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 20번 정도 시도해야 1~2팀 할까말까다. 그중 가장 힘빠지게 하는 곳은 압구정과 강남.  “압구정은 죽어도 안 돼요. 4시간동안 5명 하면 잘 풀리는 거예요.그래서 가기 싫어요. 괜히 도도하게 비싸게 구는 애들이 많잖아요. 또 강남은요, 유동인구는 되게 많은데 다들 지쳐있어요. 표정이…. 회사·학원 다녀와서 ‘오늘 하루 겨우 끝났구나.’ 이런 느낌이랄까. 우울한 거리에요.”  그 반대인 곳은 명동하고 홍대!  “거긴 다 ‘룰루랄라’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더 들뜨게 돼요.”  ●원래는 록밴드 보컬리스트  인터뷰하기 가장 편하다는 홍대앞은 한별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한동안 록밴드 ‘래빗 펀치’의 보컬로 활동하며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주는 멤버들을 찾기 힘들어 팀을 해체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멤버들에겐 ‘차라리 빠지는 게 낫겠다.’고 말을 해왔어요. 재능은 작은 부분이라 생각해요. 음악에선 특히 그렇죠. 나머진 노력으로 채울 수 밖에 없거든요.”  솔로가 된 한별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 친구 대단한 야심가다.  “팀 해체 후에 제가 먼저 기획사를 계속 알아보고 다녔어요. 보다 넓은 무대에 서려면 아무래도 회사에 소속된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전 원래 음악하는 사람이니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거든요.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그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거 같은 쾌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음악적 욕심이 대단한 이 친구는 훗날을 위해 하루에 1~2곡씩 꼬박꼬박 만들고 있다. 방송일과 병행하기 때문에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방송 활동을 위해 쏟는 시간이 아까울 법도 하다. 음악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에게 방송활동은 방해물이 아닐까. 하지만 음악적으로 더 크기 위한 ‘전략’이란다.   ”음악만으로 뜰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니까요. 아무리 음악이 좋다고 하더라도 특히 제가 추구하는 록으로는 성공문이 좁으니까요. 그래서 방송일도 하고 있는 거고, 인맥 쌓으려고 CF 같은 것도 찍고 있구요.”  먼저 다른 방면에서 이름을 알린 뒤 그 명성을 이용해 자신이 추구하는 장르에 도전한다는 한별의 방식. 너무 일찍 세상과 타협한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잘게 쪼개 사는 까닭은 돈벌이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는 것.이 친구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젊은 날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흥인동에 만담가 故장소팔씨 동상

    “그나저나 이건 알고 계슈? 내가 말이요~.” 1950~1970년대 재치 만점의 입담으로 구경꾼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만담가 고(故) 장소팔(본명 장세건)씨의 동상이 서울 흥인동에 들어섰다. 중구는 콤비 고춘자씨와 함께 만담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장씨의 동상을 생전 그의 자택이 있던 흥인동 성동공고 인근에 세우고 최근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고 30일 밝혔다. 장씨는 속사포 같은 수다와 유머감각을 앞세워 30여년 전 방송과 무대를 종횡무진 누볐다. 조선시대 내려온 재담과 방송의 코미디 장르를 교묘히 섞어 만담의 제2전성기를 구가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서민의 소박한 삶을 만담의 단골 소재로 삼아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의 차남인 광혁(57)씨는 ‘광팔’이라는 예명으로 만담가의 대를 잇고 있다. 중구는 이 같은 장씨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려 지난 28일 성동공고 후문에서 장씨의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조각가 어순영씨가 제작한 장씨의 청동 동상은 높이 1.5m, 폭 1.2m 크기로 3000만원이 들었다. 장씨가 정장 차림으로 왼발을 꼰 채 화강석 위에 앉은 모습이다. 중구가 장씨의 동상을 이곳에 건립한 것은 장씨가 유년시절부터 50대 중반까지 흥인동과 황학동, 신당동을 오가며 살았기 때문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