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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룡 “눈물의 세월호 담화 다음날 ‘朴캠프 출신’ 자니윤, 낙하산으로”

    유진룡 “눈물의 세월호 담화 다음날 ‘朴캠프 출신’ 자니윤, 낙하산으로”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밝힌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전 내각과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전혀 상의하지 않았으며, 다음날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약했던 자니윤(본명 윤종승·80)씨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27일 방송 예정인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뒤 자신이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던 국무회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유 전 장관이 본인이 “대통령이 정부조직을 바꾸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걸 어떻게 내각의 국무위원들하고 한번 상의도 안 하고 혼자 결정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라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역정을 냈다는 것.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굉장히 화를 내시면서 ‘그러면 내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얘기를 다 들으라는 거냐’고 역정을 내셨다”고 했다. 특히 2014년 5월 ‘해경 해체’를 발표했던 박 대통령의 세월호 담화 바로 다음날 자니윤씨 임명 지시가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게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낙하산 인사를 없애겠다 그렇게 국민들한테 약속하고, 그 다음날 저한테는 자니윤 임명을 지시했다”는 게 유 전 장관의 말이다. 유 전 장관은 자니윤씨를 직접 만나 관광공사 상임감사가 아닌 관광공사 상임 홍보대사를 제안해 동의를 받았으나, 김 실장이 “왜 쓸데 없는 짓을 하느냐”며 그대로 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유 전 장관은 그 이후 사의를 표명했고, 유 전 장관은 공식적으로 그해 7월 면직됐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돼 자니윤씨는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돼 ‘보은 인사’ 논란이 일었다. 올해 6월 발표된 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자니윤씨는 ‘미흡’ 평가를 받았다. 그 즈음 그는 건강상 이유로 감사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래처럼 크리스마스날 떠난 英 팝스타 ‘조지 마이클’

    노래처럼 크리스마스날 떠난 英 팝스타 ‘조지 마이클’

    ‘Last Christmas’로 잘 알려진 영국 팝스타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향년 53)이 사망했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1980년대 그룹 왬!(Wham!)의 일원으로 활동한 조지 마이클이 집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조지 마이클의 대변인은 “그가 집에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면서 “크리스마스 날에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형제, 친구인 조지가 평화롭게 집에서 떠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밝혔다. 조지 마이클 측은 조지의 정확한 사인을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영국 경찰 측도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다”는 공식입장을 드러내 그의 사망과 관련해 여러 의혹들이 난무하는 것을 자제케 했다. 1980년대 그룹 왬!(Wham!)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조지 마이클은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 ‘케어리스 위스퍼’(Careless Whisper), ‘웨이크 미 업, 미포 유 고 고’(Wake Me Up Before You Go-Go)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조지 마이클의 본명은 게오르기오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투(Georgios Kyriacos Panayiotou)이며 고교 동창 앤드류 리즐리와 남성 듀오 왬!(Wham!)을 결성해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한편 조지 마이클은 지난 1998년 4월 8일 미국 비버리힐스의 한 공원 공중화장실에서 음란행위죄로 경찰에 걸려 며칠 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한 바 있다. 사진·영상= George Michael Facebook / WhamVEVO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조지 마이클, 크리스마스에 자택서 사망...향년 53세

    조지 마이클, 크리스마스에 자택서 사망...향년 53세

    영국 팝가수 조지 마이클이 2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향년 53세. 25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조지 마이클의 대변인은 “그가 집에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형제, 친구인 조지가 크리스마스에 평화롭게 집에서 떠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조지 마이클은 1980년대 그룹 왬(Wham)으로 활동하며 ‘라스트 크리스마스’, ‘클럽 트로피카나’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또한 1987년에는 솔로로 활동했다. 솔로 데뷔 앨범인 ‘Faith’는 전 세계에 2500만장 이상 판매됐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조지 마이클의 본명은 게오르기오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투로 그는 40년간 1억만장의 앨범을 판매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명사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명사들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많은 해외명사들이 숨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정치, 문학, 예술, 학술, 스포츠계에 길이 남을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생애를 돌아봤다. 1. 데이비드 보위(1947.1.8 ~ 2016.1.10)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1947년 영국 남부 브릭스톤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가수, 작곡가 겸 배우로 활동했다. 50년 넘게 혁신적 예술가로 추앙됐으며 70년대의 작품들로 특히 인정받았다. 특유의 독창적 음악세계와 무대연출은 세계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전에 1억 4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말년에 세간에 알리지 않은 채 간암으로 투병했으며 1월 10일 마지막 앨범인 ‘블랙스타’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2. 알란 릭먼(1946.2.21 ~ 2016.1.14) 영국의 배우. 활동 초기엔 왕립연극학교를 나와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고전극과 현대극을 연기했다. 영화 활동으로는 ‘다이 하드’(1988)의 악역 ‘한스 그루버’로 유명세에 올랐고, 노년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역으로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영화 ‘라스푸틴’에서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을 연기해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2015년 4월, 19세 때부터 50년간 교제해왔던 영국 노동당 당원인 리마 호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나 이듬해 1월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3. 위르켄 힌츠페터(1937.7.6 ~ 2016.1.25)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1963년 처음 공영방송 영상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1967년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당시 계엄 사태의 심각성을 취재, 광주의 비극을 외부 세계에 알리면서‘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다. 같은 해 9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판결에 항의하며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폭력으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면서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1월 25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 이후 생전 밝힌 뜻에 따라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4. 움베르토 에코 (1932.1.5 ~ 2016.2.19)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미학자이다. 1956년 논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문학비평계와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현대미학과 문학비평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학계 총아로 떠올랐다. 1968년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와 ‘기호학 이론’등 저서로 세계적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기호학·철학·미학·역사학 등 여러 학술 분야에 더불어 9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제임스 조이스 학회 명예 이사, 예일대 방문교수, 볼로냐 대학 교수, 이탈리아 인문학 연구소 소장 등 여러 직위를 역임했다. 또 케임브리지 하버드 등 세계 명문에서도 강의했다. 출판계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해 1980년 최초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이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 작품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올해 2월 19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5. 앨빈 토플러 (1928.10.3 ~ 2016.6.27)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을 예견한 미국의 미래학자겸 작가. 젊은 시절 생산직 노동자, 백악관 출입기자, 포춘지 노동관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경영·첨단기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사를 넓혀 관련 저술을 시작했다. 뉴욕대학교·마이애미대학교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IBM등 대형 기업들의 의뢰로 첨단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했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정부 및 비영리민간단체,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와 강연을 진행했다. 본인과 같이 작가 겸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결혼해 연구와 저술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월 27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6. 무하마드 알리 (1942.1.17.~2016.6.3.)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복싱계의 전설. 12세였던 1954년에 아마추어 복서 활동을 시작해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약 20년 간 활약하며 총 19회에 걸쳐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통산전적 55승 5패를 기록했다.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기소됐으나 오랜 법정싸움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때문에 3년 5개월의 경력 공백이 발생했지만 곧 재기에 성공, 1981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권투뿐만 아니라 흑인민권운동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노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6월 3일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7. 피델 카스트로 (1926.8.13 ~ 2016.11.25) 쿠바 해방을 이끈 혁명가인 동시에 쿠바를 장기간 지배한 독재자. 스페인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입당하며 사회주의자가 됐다. 195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에 저항,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수감되면서 혁명가로서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렸다. 2년 뒤 사면돼 멕시코로 망명해 체 게바라 등 중남미 해방운동가를 흡수한 뒤 1956년부터 쿠바에서 전쟁을 재개한 끝에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 내각 책임제의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으로 군부정권을 타도했으나 정작 본인도 쿠바를 장기간 독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1965년에는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 스스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으며 1976년에는 각료 회의 의장 및 국가평의회 의장, 쿠바군 최고 사령관 등을 겸직하며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2006년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권력을 이양하고 2011년 정계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지난달 25일에 사망이 공식 발표됐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복지정책을 실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소련 해체 이후 중남미의 사회주의 노선을 이끌면서 사회주의의 대부로 높이 평가 받은 바 있으나 강력한 언론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라는 비난 역시 면할 수 없었다.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주변의 세상과 인물들에 남긴 거대한 족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몫일 것”이라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 8. 조지 마이클 (1963.6.25 ~2016.12.25) ‘Last Christmas’로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그룹 왬!(Wham!)의 멤버 조지 마이클이 12월 25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 오후에 53년의 짧은 일기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조지 마이클은 왬!으로 활동하던 1970년대 ‘Last Christmas’이외에도 ‘Club Tropicana’ 등 히트곡을 냈으며 왬!활동 막바지부터 이후 솔로로 활동하며 ‘Careless Whisper’, ‘Outside’와 같은 곡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약 40년의 활동기간 동안 마이클이 판매한 음반은 1억장 이상에 이르며 지난 1990년 발표된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을 곧 재발매할 예정이었다.고인은 25일 오후 1시 42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죽음을 둘러싼 수상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 2011년에도 폐렴으로 위독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의 홍보담당자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유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돼선 안 될 것”이라며 “현재 단계에서는 추가로 발표할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원더걸스 유빈, 부친상 “지병으로 별세..큰 슬픔”

    원더걸스 유빈, 부친상 “지병으로 별세..큰 슬픔”

    원더걸스의 유빈이 부친상을 당했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유빈(28, 본명 김유빈)이 부친상을 당했다. 유빈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23일 “유빈의 부친이 지난 22일 오후 별세했다”고 전했다. 유빈의 부친은 지병을 앓고 있었으며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용인평온의숲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준수·검정치마 ‘케이크 러브’ 20일 공개...녹음 당시 모습 보니?

    김준수·검정치마 ‘케이크 러브’ 20일 공개...녹음 당시 모습 보니?

    가수 김준수가 검정치마와 함께 한 신곡을 깜짝 공개한다. 음반 기획, 제작 및 종합 매니지먼트 업체 하이그라운드 측은 12월 20일 0시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검정치마(본명 조휴일)와 김준수의 첫 콜라보레이션 신곡 ‘케이크 러브’(CAKE LOVE)를 공개한다고 전했다. ‘케이크 러브’는 검정치마가 80년대 LL Cool J 스타일의 비트를 만들다가 탄생한 곡이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직접 나서며 또 한 번 역량을 발휘한 곡이다. 여기에 김준수 특유의 호소력 짙은 보이스가 만나 특별한 시너지를 완성했다는 후문이다. 하이그라운드 측은 “검정치마와 XIA(준수)는 이번 신곡에서 그 동안 각자의 음악 스타일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아티스트의 첫 호흡에 팬들은 더욱 기대하고 있다. 사진제공=하이그라운드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3조원 경협 챙긴 푸틴… 북방영토 ‘빈손’ 아베

    3조원 경협 챙긴 푸틴… 북방영토 ‘빈손’ 아베

    아베 “안보리 결의 이행, 러 대응 필요” 푸틴 “6자 등 대화로 풀어야” 선 그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6일 일본 도쿄에서 속개된 이틀째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3000억엔(약 3조원)대 경제협력에 합의했다. 이들은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 ‘특별한 제도에 근거해 양국 주권을 해치지 않는 공동경제활동에 나선다’는 내용의 합의 문서를 발표했다. 북방영토 귀속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북방영토에서 공동경제활동 실현을 위한 실무협의 개시와 일본인의 북방영토 자유 왕래에 관한 절차 간소화 검토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북방영토 문제의 진전을 위한 실마리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한과 미사일 방어망 설치 문제 등에 대해 이견을 노출했다. 아베 총리는 전날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 정세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엄격하고 전면적인 이행이 필요하다”며 “러시아와 연계해 대응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6개국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북한을 제재로 함께 옥죄자는 아베 총리의 주문에 푸틴 대통령은 6자회담 복귀 등 대화로 실마리를 풀자고 답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북한 정세를 비롯한 아·태 지역 안보 환경의 어려움이 커진 가운데 양국의 솔직한 의견 교환이 중요하다”면서 일본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에 대해 “방어적이며 주변국과 지역에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사일방어 시스템 편입 우려를 표시했다. 두 정상은 이날 공동경제활동에 대해 ‘영토 문제를 포함한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지는 중요한 한 걸음’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또 러·일 평화조약 체결을 이번 세대에서 매듭짓는다는 의지도 밝혔다. 두 정상은 또 과거 북방영토 거주 주민이 고향을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별도 문서에도 합의했다. 예정보다 3시간 늦게 일본에 도착했던 푸틴 대통령은 이날도 숙박지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서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정상회담이 30분 늦게 시작됐다. 일·러 비즈니스 대화에 참가한 푸틴 대통령은 일본 유도의 본산인 고도칸을 방문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러·일 정상 1시간반 단독회담… 아베, 8개 경협으로 푸틴 녹였다

    쿠릴 4개섬 평화협정 체결 논의 오늘 도쿄로 이동해 두번째 회담 공동경제활동 합의문 발표 예정 일본과 러시아의 두 정상은 15일 야마구치현 나가토시(市)에서 통역만을 대동한 단독 회담을 1시간 35분간 가졌다. 이날 3시간 동안의 정상회담 가운데 절반 넘게 단독 회담을 한 셈이다. 나가토시의 한 온천 료칸(일본 전통식 숙소)에서 가진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의 귀속 및 평화협정 체결, 극동 러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투자 등 8개 경제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단된 양국 간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재개 필요성의 대해 인식을 함께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 “북방영토(쿠릴 남부 4개섬)에서 일·러 양국의 특별한 제도 아래에서의 공동 경제 활동, (북방영토의) 원주민들의 자유 방문, 평화 조약 문제 등을 중심으로 솔직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고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 측은 공동경제활동의 발표문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 내일 도쿄에서 열리는 후속 정상회담에서 공동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측은 공동경제활동은 러시아의 법률 아래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또 “매우 좋은 분위기에서 회담을 진행했다”면서 “단독 정상회담에서 양국 문제 및 국제적인 과제에 대해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의 중요성을 논의했으며, 일·러 양국의 협력을 통해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음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북방영토) 원주민들이 전해준 편지를 푸틴 대통령에게 건넸으며 러시아어로 적힌 편지에 대해서는 푸틴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읽어 줬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평균 연령이 81세로 이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내일 기자회견에서 보고하겠다”고 말해 북방영토를 고향으로 둔 일본인 원주민들의 자유 왕래가 상당히 해결됐음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일본의 대대적인 투자 등을 약속한 상황에서 푸틴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북방영토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 셈이다. 이날 두 정상은 저녁 9시 무렵 3시간 동안의 회담을 마친 뒤 9시 30분이 넘어서야 만찬을 하면서 논의를 이어나갔다고 NHK 등이 전했다. 단독 정상회담이 이례적으로 길어진 것은 개인적 친분을 앞세운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 탓이었다.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인 북방영토를 일본에 귀속시킬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푸틴을 설득하기 위해 아베가 공을 들이는 자리라는 성격이 강했다. 나가토는 아베 총리의 본적과 국회 지역구인 정신적, 정치적 고향으로 우호적 분위기를 강조하려는 정성과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푸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푸틴이 예정보다 3시간 가까이 늦은 오후 4시 50분쯤 전용기 편으로 야마구치 우베공항에 도착해 정상회담 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회담 기선을 잡으려고 일부러 늦은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지만 러시아 측은 시리아 문제가 복잡해져 이에 대한 협의를 하느라 늦었다고 해명했다. 아베 총리는 푸틴보다 4시간가량 이른 이날 오후 1시쯤 도착해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소에 성묘하는 등 회담을 준비했다. 두 정상은 이번이 16번째 정상회담일 정도로 오랫동안 현안을 둘러싸고 협의를 진행해 왔다. 그만큼 두 정상은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하다. 경협 성과를 먼저 보여 달라는 러시아에 일본은 에너지 개발, 극동지역의 산업 진흥 및 인프라 투자 등 8개항의 경협 방안을 상당히 제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릴 4개 섬 중 남단의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조기에 돌려받기 위한 선투자인 셈이다. 푸틴은 전통 료칸에서 일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두 정상은 16일 도쿄로 이동해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과 문서 교환식을 갖는다. 15일 논의된 경협 및 북방영토에서의 공동 경제활동 등에 관련한 협의를 마무리하고 관련 문서를 교환할 예정이다. 또 게이단렌 주최 일·러 비즈니스 대화에도 참석한다. 유도 유단자인 푸틴 대통령은 2000년에 이어 이번에도 유도의 발상지라는 도쿄 고도칸을 찾은 뒤 귀국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정상회담 앞둔 일·러 경협 수준 놓고 기싸움

    일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와 도쿄에서 15~16일 열리는 아베 신조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일·러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전후 일본의 바람이었던 ‘북방영토 문제’ 해결도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러시아는 일본에 경협 성과를 요구하면서 서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 대열에서 나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양측의 첨예한 입장 차에도 북방영토(일본명)의 공동경제활동 실현 등 두 나라의 전략적 협력을 향한 시도는 의미가 크다. 푸틴 역시 이번 방문에서 불가능하지만 일본의 극동지역에 대한 투자 등 경협 성과를 봐 가면서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의 반환도 가능하다며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4일 “무역 경제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협 활성화가 평화조약체결에 필요한 신뢰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 대해 “일본이 인용하는 공동선언 9조에는 2개섬(시코탄과 하보마이)의 양도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누구의 영유권으로 넘어간다는 것인지 등에 대한 언급은 없다”면서 “많은 작업(논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특파원 jun88@seoul.co.kr
  •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유수 매체들은 한 해를 결산하는 내용의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그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는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시작돼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타임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간 타임이 선정했던 올해의 인물 중 특기할 만한 주인공을 꼽아봤다. 첫 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타임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를 꼽았다. 린드버그는 그해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첫 미국인 아닌 올해의 인물 1930년 타임은 미국인이 아닌 첫번째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올해의 인물 표지에 올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첫 여성 올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상 네 번 째일 정도. 첫번째 주인공은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히틀러도 올해의 인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지난 193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는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영웅만 선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은 두차례(1939, 1942년)나 올해의 인물이 됐다.   올해의 인물왕 루즈벨트 한번도 선정되기 힘든 올해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극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32년을 시작으로 1934년, 1941년 각각 선정됐다. 사람이 아닌 올해의 인물 가끔씩 타임은 사람이 아닌 것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2년 선정한 컴퓨터로, 타임은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이름 붙였다. 또한 1988년에는 위기에 처한 지구를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올렸다.    특이한 올해의 인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만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타임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보노를, 2011년에는 '시위자들', 2014년에는 에볼라 전사들을 올해의 인물로 올렸다. 그리고 '당신'도 올해의 인물로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타임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타임지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유수 매체들은 한 해를 결산하는 내용의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그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는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시작돼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타임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간 타임이 선정했던 올해의 인물 중 특기할 만한 주인공을 꼽아봤다. 첫 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타임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를 꼽았다. 린드버그는 그해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첫 미국인 아닌 올해의 인물 1930년 타임은 미국인이 아닌 첫번째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올해의 인물 표지에 올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첫 여성 올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상 네 번 째일 정도. 첫번째 주인공은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히틀러도 올해의 인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지난 193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는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영웅만 선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은 두차례(1939, 1942년)나 올해의 인물이 됐다.   올해의 인물왕 루즈벨트 한번도 선정되기 힘든 올해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극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32년을 시작으로 1934년, 1941년 각각 선정됐다. 사람이 아닌 올해의 인물 가끔씩 타임은 사람이 아닌 것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2년 선정한 컴퓨터로, 타임은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이름 붙였다. 또한 1988년에는 위기에 처한 지구를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올렸다.    특이한 올해의 인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만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타임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보노를, 2011년에는 '시위자들', 2014년에는 에볼라 전사들을 올해의 인물로 올렸다. 그리고 '당신'도 올해의 인물로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타임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솔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표결에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

    솔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표결에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

    가수 솔비(본명 권지안)가 SNS 계정을 통해 시국 발언을 했다. 솔비는 9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우리의 삶은 평생 외로움을 동반한다. 외로움이 짙어지면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의 존재는 나로부터 또는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두려움은 불행이다”라고 적었다. 이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건 정의를 위해 당당히 맞설 수 있을 때이다. 최고의 권력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오늘은 정의를 위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이다”라고 덧붙였다. 솔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가결을 희망했다. 그는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가 필요하며, 정의를 위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라고 강조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투표,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가결했다.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면 박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기각 결정이 나오면 박 대통령은 권한을 다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솔비의 SNS 전문 우리의 삶은 평생 외로움을 동반한다. 외로움이 짙어지면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의 존재는 나로부터 또는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두려움은 불행이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건 정의를 위해 당당히 맞설 수 있을 때이다. 최고의 권력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오늘은 정의를 위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 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타임지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유수 매체들은 한 해를 결산하는 내용의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그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는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시작돼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타임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간 타임이 선정했던 올해의 인물 중 특기할 만한 주인공을 꼽아봤다. 첫 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타임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를 꼽았다. 린드버그는 그해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첫 미국인 아닌 올해의 인물 1930년 타임은 미국인이 아닌 첫번째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올해의 인물 표지에 올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첫 여성 올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상 네 번 째일 정도. 첫번째 주인공은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히틀러도 올해의 인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지난 193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는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영웅만 선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은 두차례(1939, 1942년)나 올해의 인물이 됐다.   올해의 인물왕 루즈벨트 한번도 선정되기 힘든 올해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극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32년을 시작으로 1934년, 1941년 각각 선정됐다. 사람이 아닌 올해의 인물 가끔씩 타임은 사람이 아닌 것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2년 선정한 컴퓨터로, 타임은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이름 붙였다. 또한 1988년에는 위기에 처한 지구를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올렸다.    특이한 올해의 인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만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타임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보노를, 2011년에는 '시위자들', 2014년에는 에볼라 전사들을 올해의 인물로 올렸다. 그리고 '당신'도 올해의 인물로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타임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해외 인사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해외 인사들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많은 해외명사들이 숨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정치, 문학, 예술, 학술, 스포츠계에 길이 남을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생애를 돌아봤다. 1. 데이비드 보위(1947.1.8 ~ 2016.1.10)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1947년 영국 남부 브릭스톤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가수, 작곡가 겸 배우로 활동했다. 50년 넘게 혁신적 예술가로 추앙됐으며 70년대의 작품들로 특히 인정받았다. 특유의 독창적 음악세계와 무대연출은 세계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전에 1억 4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말년에 세간에 알리지 않은 채 간암으로 투병했으며 1월 10일 마지막 앨범인 ‘블랙스타’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2. 알란 릭먼(1946.2.21 ~ 2016.1.14) 영국의 배우. 활동 초기엔 왕립연극학교를 나와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고전극과 현대극을 연기했다. 영화 활동으로는 ‘다이 하드’(1988)의 악역 ‘한스 그루버’로 유명세에 올랐고, 노년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역으로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영화 ‘라스푸틴’에서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을 연기해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2015년 4월, 19세 때부터 50년간 교제해왔던 영국 노동당 당원인 리마 호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나 이듬해 1월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3. 위르켄 힌츠페터(1937.7.6 ~ 2016.1.25)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1963년 처음 공영방송 영상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1967년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당시 계엄 사태의 심각성을 취재, 광주의 비극을 외부 세계에 알리면서‘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다. 같은 해 9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판결에 항의하며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폭력으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면서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1월 25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 이후 생전 밝힌 뜻에 따라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4. 움베르토 에코 (1932.1.5 ~ 2016.2.19)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미학자이다. 1956년 논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문학비평계와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현대미학과 문학비평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학계 총아로 떠올랐다. 1968년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와 ‘기호학 이론’등 저서로 세계적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기호학·철학·미학·역사학 등 여러 학술 분야에 더불어 9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제임스 조이스 학회 명예 이사, 예일대 방문교수, 볼로냐 대학 교수, 이탈리아 인문학 연구소 소장 등 여러 직위를 역임했다. 또 케임브리지 하버드 등 세계 명문에서도 강의했다. 출판계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해 1980년 최초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이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 작품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올해 2월 19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5. 앨빈 토플러 (1928.10.3 ~ 2016.6.27)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을 예견한 미국의 미래학자겸 작가. 젊은 시절 생산직 노동자, 백악관 출입기자, 포춘지 노동관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경영·첨단기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사를 넓혀 관련 저술을 시작했다. 뉴욕대학교·마이애미대학교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IBM등 대형 기업들의 의뢰로 첨단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했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정부 및 비영리민간단체,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와 강연을 진행했다. 본인과 같이 작가 겸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결혼해 연구와 저술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월 27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6. 무하마드 알리 (1942.1.17.~2016.6.3.)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복싱계의 전설. 12세였던 1954년에 아마추어 복서 활동을 시작해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약 20년 간 활약하며 총 19회에 걸쳐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통산전적 55승 5패를 기록했다.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기소됐으나 오랜 법정싸움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때문에 3년 5개월의 경력 공백이 발생했지만 곧 재기에 성공, 1981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권투뿐만 아니라 흑인민권운동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노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6월 3일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7. 피델 카스트로 (1926.8.13 ~ 2016.11.25) 쿠바 해방을 이끈 혁명가인 동시에 쿠바를 장기간 지배한 독재자. 스페인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입당하며 사회주의자가 됐다. 195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에 저항,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수감되면서 혁명가로서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렸다. 2년 뒤 사면돼 멕시코로 망명해 체 게바라 등 중남미 해방운동가를 흡수한 뒤 1956년부터 쿠바에서 전쟁을 재개한 끝에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 내각 책임제의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으로 군부정권을 타도했으나 정작 본인도 쿠바를 장기간 독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1965년에는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 스스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으며 1976년에는 각료 회의 의장 및 국가평의회 의장, 쿠바군 최고 사령관 등을 겸직하며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2006년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권력을 이양하고 2011년 정계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지난달 25일에 사망이 공식 발표됐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복지정책을 실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소련 해체 이후 중남미의 사회주의 노선을 이끌면서 사회주의의 대부로 높이 평가 받은 바 있으나 강력한 언론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라는 비난 역시 면할 수 없었다.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주변의 세상과 인물들에 남긴 거대한 족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몫일 것”이라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허참(67)은 얼마 전 경기 남양주에 있는 자기 농장을 일반에 오픈했다.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참스팜스’라는 간판을 세웠다. 2층은 일종의 기록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예능 4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 포스터, 앨범들을 여기에 모았다. 자기 그림 작품들도 여러 점 걸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 여의도 KBS 녹화홀에서 25년 동안 실제로 썼던 ‘가족오락관’ 네온사인이다.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냥 썩는다고, 방송국에서 선물로 주더군요. 그걸 여기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하니까 불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납디다. 그 오랜 시간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봐 줄게, 이렇게 다짐했어요.” ●1973년 여동생 결혼 밑천인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 -기차가 덜컹거리며 부산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 대책 없는 ‘무작정 상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군에서 막 제대한 1973년 어느 날이었다. 지갑 속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빠가 나중에 돈 벌면 몇 배로 갚아줄게.” 결혼 밑천 삼는다고 고이 모아 온 여동생의 돈이었다. -서울살이는 예상보다도 힘들었다. 집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으니 군대나 고향 친구들 집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자전거로 채소나 생선 같은 것들을 배달해 주며 공짜 숙식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코미디언이 됐든, MC가 됐든, DJ가 됐든 뭐라도 하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왔다. 그해 겨울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지나치게 됐다. 문앞에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유난히 코가 큰 사람이 서 있었는데, 쉘부르의 주인이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 겸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선생이었다) 무대에서는 이태원, 전언수씨로 구성된 통기타 듀오 ‘쉐그린’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마친 뒤 객석 손님들에게 경품을 주는 행운권 추첨을 시작했다. 내가 딱 걸렸다. “무대로 잠깐 올라오세요.”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몇 마디에 공연장은 폭소와 박수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웃던 이태원씨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게…기억이 안 나네요.”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 “앗,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종환 선생이 나를 불렀다. “여기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월급은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그걸로 족했다.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손님들 신청곡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짤막하게 MC를 볼 일이 생겼는데, 차츰 “쉘부르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입소문이 났다.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늘면서 몇 달 후에는 어니언스, 쉐그린, 김정호, 김세화, 권태수 같은 포크 스타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정식 MC로 승격이 됐다.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라는 코너도 만들어졌다. -MBC의 라디오 PD 겸 DJ였던 박원웅 선생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청춘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DJ 해볼 생각 없나.” 현기증이 났다. ‘얼마 전까지 자전거에 동태 궤짝이나 채소 꾸러미를 싣고 지날 때마다 그토록 높게 보였던 MBC 사옥. 그곳에 내가 입성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쉘부르의 객석에서 소파 몇 개 붙여놓고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다. 노래 ‘편지’의 성공으로 형편이 나아진 어니언스 임창제가 물려준 슬리핑백이었다. 방송 DJ를 시작하면서 동대문 근처에 방을 얻은 나는 임창제의 슬리핑백을 의기양양하게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쉘부르 시대를 마감했다. ●남다른 입담…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운명의 MC 제안 -우리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다. 나도 거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6·25 전쟁이 났고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을 했다. 어쩌다가 땅끝인 부산까지 와서 부민동에 터를 잡고, 법원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그 덕에 적당히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소고기 반찬을 싸 주면 나보다 못사는 아이가 배급받아온 옥수수빵과 바꿔 먹기도 했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미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면 남다른 끼와 말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소풍 가서 사회자는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선지 말이나 행동에 남다른 스타 의식이 강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교문에서부터 영화배우처럼 겉멋을 부리며 걸었다. 저 멀리 3층 교실 창문에서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웅변대회에도 단골로 나갔다. 주위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우 흉내였다. ‘삼국지’, ‘수호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외워 목소리 흉내를 내면 식구들,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국어 시간에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으로 시작하는 고전 ‘조침문’을 ‘전설 따라 삼천리’의 성우 유기현씨 목소리로 읽어주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공부는 못했다.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영남상고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아버지는 “네가 장남인데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재수를 시작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다. 공부 의욕도 떨어졌지만 집안 형편이 크게 기울어졌다. 안 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크다. -1972년 군 복무 중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박정희 정부는 전군에 ‘문화선전대 경연 행사’를 열어 유신의 필요성을 병사들에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단 웅변대회 선수로 뽑힌 나를 대대장이 불렀다. “이상용, 너는 오늘부터 웅변 대신에 문선대 경연 준비를 해라.” 유신헌법이 뭔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 몸에 맞는 옷이다’를 주제로 코미디를 구성해 연기했고, 사단에서 1등을 했다. 그때부터 MC 겸 코미디 담당으로 예하부대를 돌며 유신 홍보 공연을 다녔다. MC와 코미디언으로서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에는 사단 내 방송 DJ도 맡게 됐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고 ‘의사’를 ‘어사’라고 말하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문제가 됐다. 문선대 공연에서야 사투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아무래도 방송에선 아니었다. 교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매일 책과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또한 나중에 사회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수그려라’가 제 좌우명… 저를 방송인으로 남게 한 건 8할이 ‘노력’ -박원웅 선생의 스카우트로 MBC 라디오 데뷔를 한 이후 몇몇 프로그램이 나를 더 따라왔다. 사람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요계를 평정할 때였으니 1976년쯤인 듯한데, MBC 라디오의 간부 한 분이 나를 호출했다. “라디오 진행자를 전부 아나운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안하다.” 교통정보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에서 하차하라는 말이었다. 방 한 칸 신혼살림에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한 상태. 세간이라곤 쌀통 하나뿐이고, 찬장도 없어 사과상자로 대신하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저, 좀 더 잘하겠습니다. 이거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소용없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폭음을 하고 들어가 아내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방송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안 불러 주면 끝이다. ‘푸른 신호등’에서 졸지에 잘린 뒤 나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MBC 근처에 신발가게를 차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패션구두 같은 것을 떼어다 아내와 같이 팔았다. 조용필이나 이은하 같은 스타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망했다. 장사는 말주변만 갖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묘하게도 신발가게를 폐업하자 방송 요청이 연달아 들어왔다. 잠깐 동안의 실업자 생활과 신발가게 실패를 통해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간단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로 주가가 오르면서 TBC ‘7대 가수쇼’ MC로 TV 데뷔를 했다. 운현궁 공개홀에서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들과 인사를 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고려진씨와 짝을 이뤘는데 최초의 남녀 공동 MC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150명 정도의 여성 MC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얼마 후에는 MBC ‘토요일 밤에’와 함께 주말 저녁을 양분하고 있던 TBC ‘쇼쇼쇼’의 MC로 위키리(이한필)의 뒤를 이어 발탁됐다. 쇼쇼쇼에서 나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정소녀씨를 만났다. ‘허참’ 하면 ‘정소녀’, ‘정소녀’ 하면 ‘허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이 MC를 보던 정혜경씨는 내 이름에 이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서에서 돌연 ‘정소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기 드문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창 때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다. 수십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 고독감을 술로 달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한밤중 방송이 끝나면 심신이 허기져서 무교동 낙지골목 등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일에 술에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방송국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벚꽃이 한창일 때 처음 전파를 탔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1237회 녹화일이 2009년 4월 2일이었다. 하루도 어긋나지 않는 만 25년. 나의 청춘과 중장년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사반세기와 좀 더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참 아쉽다. 새로운 포맷의 참신한 가족오락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관두게 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BS는 가족오락관 후속으로 ‘가정오락관’이란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몇 번 내보내고는 시청자 반응이 안 좋다며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그려라’가 나의 좌우명이다. 남을 존중하고 경청하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 과하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대에 오른다. 후배들한테 말한다. 분위기 뜨고 흥겹다고 해서 객석에 마이크 들이대며 반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방송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끼’는 타고났을지 몰라도 나머지를 채운 것은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젊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유머집을 구입해 외우고 또 외웠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메모해 암기했다. 교수, 의사, 성악가, 요리사, 언론인 등 자기 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과의 얘기는 모두가 살아 있는 공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될 수 있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허참은 누구 본명은 이상용.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MC’ 중 한 명이다. TBC 동양방송,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에서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26년 동안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은 그의 이름과 동일시된다. 코미디언, 가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남상고, 동아대,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TV 프로그램 TBC ‘7대 가수쇼’ ‘쇼쇼쇼’ ‘전국 TOP10 가요쇼’, KBS ‘가족오락관’ ‘도전! 주부가요스타’ ‘왕건오락관’ ‘지구촌 노래자랑’, MBC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 SBS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MBN ‘엄지의 제왕’ ▲라디오 프로그램 MBC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청춘은 즐거워’, SBS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 ▲음반 ‘왜 몰라주나’(1976년) ‘추억의 여자·소낙비’(2007년) ▲제29회 한국방송대상(2002년) 제12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2005년) KBS 연예대상(2006년)
  • 아동 권리 지키는 도봉 ‘옴부즈퍼슨’

    전국 세 번째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가 된 서울 도봉구가 7일 인증기념식을 열었다. 아동친화도시란 유니세프에서 정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준수하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도시로 한마디로 누구나 살기 좋은 곳으로 국제기구인 유니세프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특히 도봉구 측은 조건 없는 완전한 인증은 전국 최초로 받았다고 덧붙였다. 아동친화도시 도봉구의 특징은 전국 최초로 옴부즈퍼슨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첫 옴부즈퍼슨은 학교 교사 출신으로 교육특보로 일하는 박동국 교육특별 보좌관이 맡았다. 또 도봉구 아동청소년 홍보대사는 가수인 아웃사이더(본명 신옥철)가 활약하게 된다. 아웃사이더는 그동안 청소년 지킴이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등 청소년 활동에 많이 참여해 도봉구의 홍보대사 적임자로 발탁됐다. 도봉구는 그동안 ‘아동친화도시 전담팀’을 구성해 해외도시를 방문하고, 조례를 제정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진정한 아동친화도시는 아동의 참여로 완성된다고 보고 구정 곳곳에 아동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아동·청소년 희망위원회를 운영해 아동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아동정책에 반영했다. 아동총회, 혁신교육지구 사업 청소년 토론회를 열었으며 방과후 마을학교, 청소년 축제 ‘도발’ 등을 운영하며 아동의 생각을 도봉구 곳곳에 반영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입학생이 줄던 도봉구의 혁신 초등학교는 전학생이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도봉구는 10가지의 유니세프 원칙을 모두 통과해 완전한 인증을 받은 아동친화도시”라며 “앞으로도 아동을 지역사회 주체로 여기고 아동이 행복한 도봉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라디오스타’ 문희준, 결혼 암시했다? 그가 내뱉은 은밀한 한 마디

    ‘라디오스타’ 문희준, 결혼 암시했다? 그가 내뱉은 은밀한 한 마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가수 문희준이 결혼 발표 전날 녹화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녹화 내용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진행된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 녹화에는 배우 서지혜, 가수 토니안, 문희준, 방송인 서유리, 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출연했다. 이날 서지혜와 서유리는 과거 H.O.T의 열렬한 팬이었다며 ‘토니 부인’과 ‘칠현(강타 본명) 부인’이었던 사실을 밝혔다. 이를 듣던 MC 규현은 “희준 부인은 없는 거죠?”라며 문희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문희준이 결혼을 암시하는 은밀한 한 마디를 내뱉은 것으로 전해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문희준은 그룹 크레용팝 멤버 소율과 내년 2월 쯤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기 때문에 녹화 현장에서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이날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MBC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마돈나 “클린턴 패배 이유?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 때문”

    마돈나 “클린턴 패배 이유?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 때문”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팝스타 마돈나(58·본명 마돈나 루이스 베로니카 치코네)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며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원인을 여성의 탓으로 돌렸다.  마돈나는 5일(현지시간) 발간된 대중문화 잡지 빌보드 최신호와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을 통해 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할때 느끼는 비통함과 배신감이 복합된 것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며 이같이 말했다.  마돈나는 이날 인터뷰에서 “여성들은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이기에는 ‘종족적으로 무능(tribal inability)’하고 여자를 증오하는 것은 여자 자신들”이라며 “여자는 본능적으로 다른 여성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척 슬픈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들은 보다 내성적이고 남성들은 외향적”이라며 “많은 여성들이 질투와 종족적 무능함과 같은 것들 때문에 자신과 같은 한 여성에게는 국가를 이끌도록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인터뷰는 마돈나가 빌보드지가 뽑은 ‘올해의 여성’에 선정된 것을 기념해 이뤄졌다.  마돈나는 클린턴을 위해 뉴욕 맨해튼에서 깜짝 콘서트까지 열었을 정도로 클린턴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원했다.  마돈나는 트럼프에 대해서는 “그는 매우 친근한 남자이자 카리스마를 뽐내는 마초”라며 “우두머리 수컷(alpha-male)과 같은 남자”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괜찮지만 절대 국가의 수장이 될 수는 없다”며 “나는 절대 그(트럼프)를 버락 오바마와 같은 문장이나 칸 혹은 직업 설명란에 넣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고]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8일까지

    ■마감 12월 8일 목요일 (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시조(3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보내실 곳 (우편번호 04520)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서울신문사 3층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7년 1월 1일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이름(반드시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는 A4 용지에 별도로 적어 원고 뒤에 첨부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5
  • ‘아는형님’ 진세연, “본명 아니다” 진시황+진드기+진상 무리수..

    ‘아는형님’ 진세연, “본명 아니다” 진시황+진드기+진상 무리수..

    ‘아는형님’ 진세연이 본명을 언급했다. 26일 진세연은 JTBC ‘아는형님’에서 전학생으로 등장해 귀엽고 애교만점인 매력을 드러냈다. 이날 입학신청서를 보던 이수근이 본명이냐고 묻자 “아니 본명 아니야”라고 답한 진세연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에 멤버들은 “본명 알고 싶다. 맞춰보자”라고 말했고, 진세연은 당당하게 “맞춰봐”라고 답했다. 멤버들은 진돗개, 진시황, 진드기, 진상, 진사오미, 진지충 등의 무리수 섞인 이름을 외쳤고, 진세연은 “진씨 아니라고. 김씨야”라고 밝혔다. 결국 진세연이 이름 힌트를 주자 멤버들은 “김윤정”이라고 정답을 맞힌 뒤 “세연이가 지금 더 잘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아는 형님’에서 진세연은 “남자친구가 없다”면서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잘 해주고 나만 바라보는 남자”라고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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