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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올림픽 식수대란 오나

    2018평창동계올림픽 필수 시설인 대관령 식수전용 저수지 건설이 동계특별법 시행령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올림픽 식수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원도는 지난해 5월부터 대관령 식수전용 저수지 건설을 위한 실시설계에 착수했지만 최근 공포된 동계올림픽특별법 시행령의 국비 지원 대상에서 이 사업이 제외되자 실시설계를 중단했다. 식수전용 저수지는 국비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사업으로 국비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는 올 연말까지 실시설계를 모두 끝내고 저수지의 본공사 기간을 2013~2016년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올 연말 국회를 통과할 정부의 2013년도 당초예산안에서도 국비 지원 여부 및 방안이 확정되지 않으면 2016년 말 완공은 불투명하다. 이렇게 되면 2017년 2월 열리는 프레대회부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환경부는 기획재정부에 내년 사업비 10억원 반영을 요구했지만 재정부는 ‘식수전용 저수지는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사무’라며 국비 지원 불가능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102년 만에 되찾는다 원형 남은 유일한 대한제국 공관

    102년 만에 되찾는다 원형 남은 유일한 대한제국 공관

    대한제국이 주미공사관으로 1891년부터 1905년까지 사용했던 미국 워싱턴 소재 건물을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되사들였다고 21일 밝혔다. 대한제국 외국 공관 중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있는 건물로 일제 강점기 과정에서 강제 매각된 소유권을 102년 만에 되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재미교포들이 2003년부터 이민 1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여러 차례 매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건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매입은 큰 의미를 지닌다. 1877년 건립된 이 건물은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로간서클 역사지구(Logan Circle Historic District)에 소재하고, 지하 1층·지상 3층의 빅토리아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1891년 11월 당시 거금 2만 5000달러에 매입했고, 을사늑약 이전인 1905년 11월까지 주미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공사관은 ‘대조선주차 미국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이라 불렀다. 주차는 ‘주재’를 의미하고, 화성돈은 워싱턴의 한자 표기다. 그러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으로 관리권이 일제로 넘어갔고,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을 2개월 앞둔 1910년 6월 단돈 5달러에 건물의 소유권이 주미 일본공사 우치다에게 넘어갔다. 3개월 뒤인 9월 1일 미국인에게 10달러에 재매각됐다. 현 소유주가 매입한 것은 1977년 9월이다. 문화재청은 “우리 정부와 재미교포 단체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해결됐다.”면서 “재미교포 사회는 1997년 이후 모금 운동을 전개했고, 2003년, 2005년, 2007년 등 매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2010년 매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올 2월 문화재 긴급매입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매입을 결정하고 민간에 이를 위탁했다. 이 건물의 가격은 한때 600만 달러(약 68억원)까지 치솟고 건물주가 매각을 거부해 협상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CBRE코리아 부동산 에이전트가 맹활약해 결국 성사됐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매입가격은 350만 달러(약 39억 5600만원)로 많이 깎았고, 계약금 35만 달러를 걸어놓아 앞으로 법적인 절차를 잘 밟아나가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19세기 후반 세계는 해양과 철도로 연결되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이 조선을 변화시켰다. 정치적·군사적 외압을 바탕으로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상호 연대와 대립을 반복하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조선 측의 대응도 있었다. 외압에 대응해 조선 역시 열강과 외교라는 수단을 통해 국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일본과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자 조선과 국경을 맞댄 나라였다. 조선은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일본, 청국은 자국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전략으로 공러(恐)의식을 조작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원군과 명성황후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대원군, 러 견제위해 佛신부와 접촉도 1863년 12월 철종(哲宗)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에 봉작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섭정 초기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최고의 권력기구로서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반이 되었던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다. 그리고 의정부와 동일한 위상을 갖는 최고의 군사기관으로 삼군부를 설치하였다. 을미사변의 주역인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는 “흥선대원군이 국제 정세만 정확히 파악하면 동양의 뛰어난 외교가로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1860~1870년대 서구열강과의 접촉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직접 경험했고, 러시아 또는 미국 등 서구열강 일국에 편중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그 배경에는 흥선대원군이 외교관계의 미묘한 변화와 흐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1860년 북경조약(北京條約)으로 연해주(沿海州)를 획득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과 새로 국경을 접한 러시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은 조선에 잠입해 있던 프랑스 신부들과 접촉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신부들과의 접촉은 프랑스 및 영국과의 제휴도 염두에 둔 파격적인 시도였다.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적 도발은 흥선대원군의 강렬한 척화정책을 북돋았다. 거기에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E. J. Oppert, 吳拜)가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南延君)묘를 도굴한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서양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시켰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외세를 물리쳤다는 강한 자부심을 얻었으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접근성은 정권 초기보다도 경직되었다.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으면서 흥선대원군정권은 강력한 군사력 편성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에 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포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에서는 청나라와, 갑오개혁 때는 일본과 각각 대립했다. 흥선대원군은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고종으로부터 사태수습을 위한 전권을 위임받고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톈진(天津)으로 납치되었고 1885년 겨우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대의 ‘경복궁침입사건’ 당시 흥선대원군은 주한 일본공사 오토리(大鳥圭介)와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다가 주한 일본공사 이노우에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했다. ●1895년 개국기원절 日인사 초청 놓고 반일친러 분위기 형성 명성황후는 외교 분야의 현안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록(行錄)을 살펴보면 “짐이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 주었다.”, “심지어 교섭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는 나를 권해서 먼 곳을 안정시키도록 했다.” 등이 기록되었다. 1895년 9월 4일 왕실은 조선왕조 504년 건국 기념일인 ‘개국기원절’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행사의 준비위원회에서는 외국인 중 궁내부 고문관(宮內府 顧問官) 러젠드르 장군,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부인의 자매이자 궁내부에 소속된 손탁 여사, 그리고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친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러젠드르 장군은 사무장(事務長)이라는 명예위원으로 외국인들을 접대하였고, 손탁 여사는 음식과 식탁 준비를 담당했으며, 사바친은 식장의 장식 부분을 총괄했다. 당시 러시아공사 베베르는 조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손탁을 궁내부에 고용하도록 추천했다. 독일 엘자스(Elsass) 출신인 손탁은 궁궐에서 유럽식 향연을 준비하면서 명성황후를 자주 만나 2~3시간씩 연속으로 황후와 대화했다. 이날 회의에서 행사와 관련된 한 명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식탁 시중을 위해서 일본 급사를 초청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인들의 이름이 나오자, 손탁 여사는 얼굴을 찡그렸고, 일본인들 전체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침까지 내뱉었다. 그러자 러젠드르 장군은 마치 귀부인에게 시중드는 유명한 기사처럼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손탁 여사는 왕실로부터 자신의 개인 집을 짓기 위해 약 1만 달러를 받았고, 그녀의 지도 아래 조선 여인들이 다양한 수공예를 배울 수 있는 학교 설립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사바친은 일본공사관의 외교관 및 일본과 연대하고 있는 조선 관료들의 명성황후를 향한 적개심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때 사바친은 “이것이 언뜻 보기에는 별일 아닌 작은 사건 같지만, 이와 비슷한 작은 사건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어떤 음모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손탁과의 관계 속에서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지원을 예상하고 평소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반일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명성황후는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둘러싸고 일본이 외교적으로 패배하자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명성황후 주변의 미국인도 자국의 이권과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의 영향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만일 황후가 유럽인들로부터 보호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는 유럽인들의 약속을 받았고, 유럽인들이 궁궐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신뢰했다. 신은 조심하는 자를 보살필 뿐이었다. ●명성황후, 왕실 日세력 제거… 日 ‘친러’ 비판하며 을미사변 개국기원절 행사 이후 왕실은 1895년 9월 재정, 법률, 내각, 군대 등에 대한 조직 개편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주한 일본공사관과 연대하는 정치 세력을 점차 제거했다. 주한 일본 공사관의 서기관 스기무라도 공사 이노우에 공사가 9월 17일 귀국길에 오르자 왕실이 갑오개혁 이후 설치된 “신제도와 신군대의 파괴에 착수했다.”고 분노했다. 왕실은 1895년 9월 20일 기존 법률과 칙령 번호를 무시하고 새롭게 칙령 1호를 발표했다. 왕실은 궁내부의 핵심인물인 이범진을 농상공부 대신으로 임명하면서, 반대세력인 농상공부 대신 김가진을 파면하고 내무협판 유길준을 의주관찰사로 전출시켰다. 무엇보다도 왕실은 일본 장교에 의해 교육받은 훈련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는 홍계훈을 훈련대의 연대장으로 임명했다. 명성황후는 훈련대를 해산, 김홍집 내각을 약화시켜 갑오개혁 이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우라 공사는 히로시마재판소에서 1895년 9월 1일 주한 일본공사로 부임한 이후 “궁중에 온전한 권세가 날로 심하여, 망령되게 나라 정사를 간섭했다.”며 왕실의 권력 장악을 비난했다. 그는 “훈련대를 흩어지게 하며 그 사관을 내치고자 하는 무리가 일본을 박대했다.”며 궁중의 일본 ‘박대론’을 주장했다. 그는 “독립의 실상을 실행하는 내각 관원들을 내치고, 혹 살육하여 정권을 궁중에 거두고자 하는 계교가 있었다.”며 궁중이 김홍집 내각을 제거하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해를 받음이 적지 아니하니, 일본의 위엄과 믿음을 보존할 것을 생각했다.”며 일본의 ‘국익’을 위한 정변 실행을 결심했다. 그는 ‘박대’와 ‘계교’라는 용어를 쓰면서 궁중을 비난하고 일본의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강변했다. 미우라 공사는 황후의 ‘친러정책’에서 일본의 ‘국익 보존’으로 을미사변 원인에 관한 초점을 옮겼다. 일본은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을 언급하면서 명성황후 암살을 변명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일본의 국익 보존이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국제세력에 맞서 왕실 보호를 위해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상층부 두 인물의 핵심 세력은 각각 전주 이씨와 여흥 민씨로 갈렸다. 하지만 들판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는 법이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익산 국가식품 클러스터 추진 시기놓고 ‘동상이몽’

    농림수산식품부가 ‘국가식품클러스터 종합계획’을 확정 발표했으나 사업 추진 시기를 놓고 관련 기관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전북도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지난 27일 익산시에 조성할 국가식품 클러스터 청사진을 확정 발표했다. 이 사업은 식품 관련 기업(150개)과 연구소(10개) 등을 한데 모아 시너지효과를 높여 세계식품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핵심 프로젝트다. 2015년까지 익산시 왕궁면 일대 232만㎡에 5500억원을 투입해 식품전문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인접지역에는 126만㎡의 배후도시를 만들어 식품산업 문화도시로 육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업의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와 사업 추진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행정지원을 하는 전북도 등이 사업추진 시기를 놓고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전북도는 2007년 사업계획 확정 이후 지연돼 온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올 연말 이전에 보상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공사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도는 조속한 시일 내에 사업지구 내 물건조사를 마치고 오는 9월 보상계획공고를 한 뒤 10~11월 감정평가를 거쳐 12월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전체 보상 비용 799억원 가운데 100억원을 이미 확보하고 있어 이를 연말 이전에 집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행정절차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도가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을 서두르는 것은 올 12월 대선이 끝나 내년 2월 새정부가 출범하면 정부 방침이 바뀌거나 사업이 축소 또는 지연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내년 3월쯤에나 보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종합계획이 확정됐고 국가산단 조성 사업 승인도 난 만큼 구태여 사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LH 역시 사업 추진에 전북도와 다른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경영난으로 신규 사업 참여에 신중한 입장인 LH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전국의 많은 사업대상지 가운데 하나로 보고 경영투자심의를 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LH가 사업추진을 확정하고 토지보상에 들어가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강릉 경포호수 일대 ‘저탄소 녹색도시’ 첫삽

    강릉 경포호수 일대 ‘저탄소 녹색도시’ 첫삽

    전국에서 처음으로 강원 강릉시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 시범도시’(조감도)본공사 기공식이 17일 열린다. 환경부와 국토해양부, 강릉시는 오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경포호수 일대에 강릉 저탄소 녹색시범도시 통합컨벤션센터와 체험형 연수시설 등 랜드마크를 비롯한 각종 에너지 절약형 녹색 건축들이 이날 첫 삽을 뜬다고 16일 밝혔다. 경포동 경포호수 일대 9만 7984㎡에 조성되는 녹색시범도시 건설에는 국비 245억원을 비롯해 모두 35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다. 우선 1차로 연말까지 6만 243㎡에 랜드마크 시설들을 모두 완공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이달까지 40억원을 들여 기반조성 공사를 모두 마쳤다. 이후 2단계로 나머지 3만 7741㎡에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녹색시범도시를 조성하는 등 2020년까지 녹색 교통과 에너지 효율화, 자연생태, 녹색관광 및 생활, 물 자원 순환 등 다양한 녹색사업을 펼치게 된다. 이곳에 건설되는 시설들은 냉난방 100%를 비롯한 전체 에너지의 55% 이상을 태양광·열, 지열 등 화석에너지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로 해결하게 된다. 서울 유진상·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전북 식품클러스터 조성 다시 속도

    전북의 숙원인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올해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3일 전북도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익산시 왕궁면 일대에 조성될 국가식품클러스터의 핵심 인프라인 식품전문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말 산단 승인 신청서를 국토해양부에 제출했다. LH는 경영 사정을 이유로 식품산단 조성사업 참여를 보류해오다 최근 사업 추진 방침을 결정해 그동안 제자리걸음을 걷던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의 전체 공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식품전문산단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총사업비 2720억원을 투입해 익산시 왕궁면 흥암리 일대에 231만 8000㎡ 규모로 조성된다. 이를 위해 4일부터 18일까지 14일간 산단 계획 및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한 주민 열람공고가 이뤄진다. 12일에는 왕궁면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가 개최된다. 또 이달부터 산단 승인을 위한 관계 부처 협의에 들어간다. 이르면 오는 6월 이전에 국토부 승인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산단 승인을 받으면 물건 조사 및 보상 절차를 거쳐 2013년 본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식품품질안전센터, 식품기능성평가센터, 식품패키징센터, 임대형 공장, 파일럿 플랜트 등 핵심 시설에 대해서도 올해 안에 실시 설계를 마무리하고 2013년 착공할 계획이다. 식품전문산단에는 국내외 150여개 유명 식품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해 식품산업 메카로 집중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한편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은 2007년 12월 말 농림수산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2008년 12월 정부가 기본 구상을 확정했다. 2009년 11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고 2010년 1월에는 식품산업진흥법에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지원과 육성에 관한 법률적 근거를 명시해 사업 추진 토대를 마련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유골의 반은 일본에, 반은 한국에 묻고 싶어”

    “유골의 반은 일본에, 반은 한국에 묻고 싶어”

    “50년 넘게 지켜봤는데 이제야 서울시민이 됐구나, 그동안 고생한 걸 알아줬구나 싶습니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반세기 만에 명예 서울시민으로 선정된 마치다 미쓰구(76) 전 주한일본공사는 9일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60년 처음 한국에 왔다. 서울 곳곳에 아직 전흔이 남아 있던 때다. 그는 “경복궁, 남대문에도 총알이 박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대사관 공보문화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서울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30여년간 머물렀다. 각 대학을 돌면서 한·일 관계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등 두 나라 상호 이해 증진에 힘썼다. 마치다 전 공사는 “아직 독도 문제가 남아 있긴 있지만, 지금의 한·일 관계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모습이다. 한국의 반일 감정도, 일본이 가졌던 한국에 대한 멸시감도 이젠 상당히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이기에 한류 역시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든을 바라보는 그는 죽음에서마저도 한·일 어느 쪽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는 일본에서 죽겠지만 유골의 반은 일본에, 반은 한국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마치다 전 공사를 비롯해 서울 발전에 공헌한 외국인 16명을 이날 ‘2011 명예시민’으로 선정했다. 고조부부터 5대째 한국과 인연을 맺은 미국인 변호사 데이비드 린턴(40), 45년간 한국의 소외된 이웃을 돌본 독일인 수녀 마리아 메흐틸드 하르트만(73) 등이 포함됐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반도건설 두바이 유보라타워 준공

    반도건설 두바이 유보라타워 준공

    중견 건설사인 반도건설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크기의 2배인 ‘유보라타워’를 준공했다고 9일 밝혔다. 반도건설이 토지 매입부터 시행·시공까지 전 과정을 책임져 국내 건설사가 중동에서 시행·개발사로 이뤄낸 첫 사업으로 기록됐다. 유보라타워는 60층짜리 오피스빌딩과 16층짜리 주상복합건물 등 2개동으로 이뤄졌다. 타워의 연면적은 22만 8519㎡, 높이는 오피스빌딩(266m)이 서울 여의도 63시티(249m)보다 17m가량 높다. 총 사업비는 5억 달러 규모다. 국내 부동산펀드인 ‘마이다스에셋 펀드’는 유보라타워 지분의 70%가량을 사업 초기에 매입했다. 반도건설은 2006년 4월 두바이 정부로부터 땅을 사들여 이듬해 5월 본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8개월가량 공기가 늦어져 3년 8개월 만에 준공했다.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은 “한국 건설사가 직접 땅을 사서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자금 조달과 시공, 분양까지 하는 중동 최초의 개발사업”이라며 “3개 블록을 한꺼번에 매입해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으로 개발하겠다는 역제안으로 두바이 정부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건물에는 조망권 확보를 위해 평균 5.75도가 기울어진 나선형 설계가 적용됐다. 20층 이하 저층부의 면적보다 상층부의 면적이 넓어진다. 회사 관계자는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는 4월 이후 실입주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주상복합건물은 지상 16층 225실 규모로 2007년 선분양 당시 60%의 분양률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후분양이 이어진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안산~서울역 37분만에 씽~

    안산~서울역 37분만에 씽~

    서울역과 금천구, 경기 광명시·안산시를 잇는 신안산선 복선전철이 2013년 착공된다. 개통은 2022년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는 신안산선 복선전철 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15일 밝혔다. 신안산선은 서울지하철 4호선 안산선과 별개의 노선으로 운영된다. 현재 공사 중인 신분당선과 함께 수도권을 ‘X’자로 관통하는 광역 전철망이다. 국토부는 앞으로 2년간 설계와 인·허가를 거쳐 2013년 초 본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2003년 예비타당성조사를 시작해 지난해 기본계획안을 마련했다. 관계부처 간 협의도 마무리한 상태다. 정거장은 안산 중앙역, 독산역, 시흥사거리역, 석수역, 광명역, 여의도역, 서울역 등 17곳이 새로 건설된다. 총 연장은 46.9㎞로 예상 사업비는 4조 981억원이다. 1단계인 안산 중앙~여의도 구간과 시흥시청~광명역 구간은 2018년, 2단계 여의도~서울역 구간은 2022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신안산선 차량기지 인근인 유니버셜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USKR)~원시 구간도 1단계 구간 개통시기에 맞춰 완공된다. 추후 개별 철도인 소사~원시 노선이 연결되면 USKR~시흥시청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신안산선이 개통되면 안산 중앙~서울역 구간은 37분, 시흥시청~서울역 구간은 35분 소요된다. 1단계 개통 초기에는 하루 38만여명, 2단계 개통 때는 44만여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향후 서해선과 연결하고 KTX 광명역과 환승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라며 “광명역, 문산역, 안산역, 평택역, 서산역, 군산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서해축이 구축돼 교통난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망국의 치욕 감내했던 흥복헌… 슬픈 역사만 오롯이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망국의 치욕 감내했던 흥복헌… 슬픈 역사만 오롯이

    2010년 8월20일, 여름의 한복판. 창덕궁의 하늘은 한없이 파랬다. 대조전(大造殿) 흥복헌은 말 그대로 구중심처, 깊숙하기만 했다. 돈화문으로 들어선 뒤 몇 개의 문을 지나 선정전, 희정당을 거치며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줄곧 훔쳐내고서야 대조전 흥복헌에 이를 수 있다. 왕비가 거처했던 공간인 대조전은 연못과 정자, 넓은 숲 등이 아름답게 갖춰진 후원 바로 앞쪽에 있다. 흥복헌은 대조전 왼쪽에 있는 작은 방. 그러나 100년 전 망국의 치욕을 묵묵히 감내했던 이곳은 그때의 흥복헌이 아니다. 1917년 큰 화재로 불탄 뒤 1920년 중건된 곳이다. 흥복헌의 문은 굳게 닫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저 창덕궁 직원 임동수씨의 몇몇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1910년 8월22일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리던 날 병풍 뒤쪽에 앉아 있던 순정효황후가 강제 합병을 슬퍼하며 국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는 이야기, 1910년 그날 이후 1917년 불이 나기 전까지 왕실의 이발소로 사용했다는 이야기, 1926년 4월26일 순종이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 등을 심상히 듣기에는 100년 전의 슬픈 역사도, 무더운 날씨도, 내밀했을 이 공간도 모두 심상하지 않다. 그날 오후 4시에 채 못 미쳤을 시간, 어전회의를 박차고 나섰을 이완용의 걸음을 좇았다. ‘일한합방조약’에 대한 전권 위임장을 손에 쥐고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과 함께 마차에 오른 이완용은 한시라도 바삐 ‘기쁜 소식’을 전하고픈 마음에 마부를 재촉했다.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있는 관저까지는 4~5㎞ 되는 거리이니 내처 달리면 20분 남짓이면 도착했을 것이다. 오후 4시께 도착해서 불과 1시간 만에 일본에 나라를 넘기는 형식적 절차를 마친 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을 것이다. 지금은 서울 예장동 2의1번지, 서울유스호스텔이 들어선 곳 어귀 즈음 오른쪽에 벤치 네다섯 개가 덜렁 놓여있는 작은 잔디밭 공원이 있다. 통감 관저가 있었던 곳이다. 기념할 만한 어떤 표지도 없다. 도로의 가장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다. 그저 옛날 사진 속과 마찬가지로 진입로 왼쪽 편에 어른 세 명이 팔을 둘러도 닿지 않을 만큼 굵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만 여전히 남아 일제강점기 조선 백성들의 수탈과 핍박의 총지휘관이 살았던 곳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은행나무 옆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돌로 된 벤치 같은 것이 놓여 있다. 통감부 설치 이전, 일제 강점의 기초작업을 한 공을 기려 1936년 세워진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의 동상 좌대 판석이다. 다행히 서울시는 오는 10월 이곳에 연혁과 함께 한·일 강제병합조약 체결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안 등을 담아 ‘녹천정 터’라는 표지석을 설치할 예정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치욕의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계언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국가식품클러스터 연내 착공 무산

    전북 익산에 조성될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의 연내 착공이 무산됐다. 10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 시행자로 선정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까지 개발계획 용역을 발주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애초 올해 말로 예정된 본공사 착공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내년 착공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개발계획 용역이 확정되려면 6~8개월, 사업승인, 토지보상 등 행정절차를 밟는 데 또다시 4~6개월 등 1년여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는 농식품부도 이 같은 상황을 기정사실화하고 착공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늦췄다. LH는 “국가식품클러스터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추진해야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연내 착공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내년에도 언제 착공할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북도는 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지연되면 이곳에 입주할 연구소 설립, 투자유치 등 후속 조치가 늦어져 전체적인 지역 숙원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식품클러스터는 전체 사업비 8100억원 가운데 73%가 민자로 구성돼 있어 개발계획 수립이 지연되고 착공이 늦어지면 사업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게 전북도와 익산시의 주장이다. LH가 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을 미루는 것은 통합공사 출범 이후 재무구조가 악화돼 신규사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책 읽는 밤(KBS1 오후 11시50분) 청나라가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중국 대륙을 제패하던 시절, 소현 세자가 볼모 생활을 마치고 환국하던 1644년 전후를 담고 있는 김인숙의 소설 ‘소현’. 교보문고 명예 북 마스터 클럽의 28명과 함께 철학자 탁석산, 역사학자 신주백, 문학 평론가 이명원, 소설가 이홍, 영화감독 이숙경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꼬꼬마 꿈동산(KBS2 오후 4시10분) 어느 날 퐁퐁 가족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식탁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지나가던 치키포키에 올라탄 퐁퐁 가족은 치키포키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치키포키가 출발하자 덜컹 덜컹 흔들리고, 식탁 위의 음식들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자리를 바꾼다. 퐁퐁 가족은 무사히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동이(MBC 오후 9시45분) 동이는 결국 감찰부 정기 시재에서 불통이 되어 쫓겨날 신세에 처하지만 인현왕후의 도움으로 사흘 후에 다시 시재를 치르게 된다. 숙종은 옥정을 후궁으로 책봉하고, 대비를 비롯한 서인세력은 긴장한다. 한편 영달은 천수가 수상하다며 황주식과 함께 천수의 봇짐을 뒤진다. 이 때 봇짐에서 검계 표식이 떨어진다. ●제중원(SBS 오후 9시55분) 고종을 진찰한 황정은 일본군이 순종에게 양위를 하라고 채근하자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일본공사로부터 의료선진화를 앞당기라는 주문을 받은 와타나베는 조선인을 대상으로한 생체실험을 계획한다. 한편 위생검사라는 미명하에 조선여성들을 농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석란은 분개한다. ●한국기행(EBS 오후 9시30분) 담양 봄나들이의 가장 좋은 벗은 대나무다. 성인산 자락의 오래된 대숲에는 죽녹원이 있다. 8개의 산책로가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그곳에서 웅장하고 훤칠한 대나무와 댓잎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무릉도원이 이곳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평화로움을 노래하는 대숲과 죽향 가득한 담양을 만나본다. ●경찰 25시(OBS 오후 11시) 청주 일대의 중·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이른바 ‘발바리’가 검거됐다. 범행은 늦은 시각 학교나 학원에서 귀가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어졌고, 신고된 건수만 해도 16건.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다. 경찰은 50대의 한 남자를 추적해 상습 성추행범으로 체포했다. 자신의 범행을 시인한 범인은 극히 말을 아끼는데….
  • 건설업계 해외수주 다변화 총력

    건설업계 해외수주 다변화 총력

    ‘중동만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현장을 찾아 점차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해외건설 수주 실적은 올해 500억달러 이상으로 역대 최대를 기대하고 있지만, 수주 실적이 지나치게 중동에만 치우치면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16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수주액 총 491억 4786억원 가운데 72.7%에 해당하는 357억 4603억원이 중동에서 수주한 것이다. 그러나 중동에서의 발주 상황은 유가 변동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1980년대까지 중동에서 매년 100억달러 이상을 수주해 오다가 걸프전이 일어난 이듬해인 1992년에는 5억 6787만달러 수주로 애를 먹었다. 공사대금도 받지 못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은 건설사들도 있었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는 시장 여건이 좋을 때 신시장을 개척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전략”을 펴야 한다는 ‘대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건설사들이 중동을 제외하고 유망 지역으로 꼽는 곳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 중남미는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을 한국이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모두 지사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사회간접자본(SOC)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토목·건축 공사 발주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남미에는 사업다운 사업을 펼치고 있는 회사가 포스코건설과 SK건설 정도로 진출 현황이 미미한 상황. 포스코건설은 2006년 칠레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통해 처음 진출해 현재 칠레와 페루에 지사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7억달러 규모의 ‘산타마리아 발전소’를 수주했다. SK건설은 최근 에콰도르에서 ‘마나비 정유공장’의 기본설계 계약에 성공해 125억달러 본공사의 수주 가능성을 높였다. ‘마지막 블루오션’이라는 아프리카 역시 개발 가능성에 비해 진출한 업체가 적다. 나이지리아에 대우건설이 1980년대에 일찌감치 진출해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시장을 꽉 잡고 있고, 지난해 말 STX그룹이 가나에서 100억달러 규모의 국민주택 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GS건설이 최근 북아프리카의 영업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이집트 지사를 신설하기도 했다. 구 소련 독립국가연합(CIS)이나 중앙아시아도 주택이나 토목사업이 유망한 곳으로 꼽힌다. 현대건설은 최근 알제리와 카자흐스탄에 지사를 내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도 뉴델리 등에 대한 시장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다변화도 좋지만 무리하게 시장개척에 나섰다가 쓴맛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지 사정에 익숙하지 않고, 시설 조달이나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다가 도리어 손해를 보고 시장에서 철수한 경우도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신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는 거래선이 확보되지 않은 탓에 저가 입찰에 나서지만 곧 경쟁력이 떨어지고 만다.”면서 “공사 수주가 예상되는 곳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실패 없이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길음뉴타운에 첫 순환용 임대주택

    성북구 길음뉴타운에 저소득 세입자들이 재개발사업 완공 때까지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순환용 임대주택’이 처음으로 들어선다. 서울시는 길음뉴타운 제5재정비촉진구역에 순환개발방식의 순환용 임대주택 114가구를 건립하는 재정비촉진계획을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순환개발방식은 재개발구역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짓는 게 아니라 인근에 순환용 임대주택을 먼저 건립해 세입자나 원주민을 임시로 이주시킨 뒤 본공사를 하고서 새 아파트에 입주시키는 것이다. 이 방식이 민간 재개발사업에 도입되기는 처음이다. 길음동 175 길음5구역 3만 5388㎡에 들어서는 22~28층 아파트 7개동 571가구 가운데 순환용 임대주택은 SH공사가 어린이공원 이전부지에 짓는 1개동 114가구다. 시는 길음5구역의 순환용 임대주택이 총 건립가구의 20% 정도로 임대아파트 의무 건립비율(17%)을 초과함에 따라 조합 측에 8.2%의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순환용 임대주택은 월평균 가계소득이 도시근로자 평균의 70% 이하이면서 길음뉴타운 지역에 2년 이상 거주한 저소득 세입자에게 우선 공급된다. 또 이들이 재개발사업 후에도 계속 거주를 희망하면 자격을 유지한 경우 허용한다. 시는 길음5구역에 이어 기존 임대주택을 활용하거나 신규 물량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순환용 임대주택을 2015년까지 최대 5000가구 공급할 예정이다. 황영도 뉴타운사업3담당관은 “순환용 임대주택이 원주민 재정착률 향상과 이주문제 해소뿐 아니라 주변 전·월세난 완화에도 도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SK건설 에콰도르 정유공장설계 땄다

    SK건설 에콰도르 정유공장설계 땄다

    SK건설이 에콰도르에서 125억달러 규모의 정유공장을 짓기 위한 기본설계를 따내면서 중남미 건설 시장 확대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SK건설은 지난 6일(현지시간) 에콰도르 대통령궁에서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마나비 정유공장 신설 프로젝트’의 기본설계를 단독 계약했다고 8일 밝혔다. 기본설계의 계약금액은 2억 6000만달러(한화 약 3200억원)이며, SK건설은 기본설계 이후 125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본공사도 수주하게 될 예정이어서 한국 정유공장 건설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가 더욱 가시화됐다. 발주처는 에콰도르 국영석유회사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의 합작법인인 RDP사다. 이 공사를 통해 에콰도르는 일일 생산량을 현재 2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 수준으로 높이게 된다. SK건설에 따르면 코레아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에콰도르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신했다. 이번 계약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공정의 기초가 되는 기본 설계 분야를 따냈기 때문이다. 기본설계는 그동안 미국, 유럽 등 선진업체가 거의 독점해왔다. SK건설은 이에 따라 그동안 중동 중심의 플랜트 시장에서 벗어나 중남미에서도 한국 건설사들이 대규모 플랜트를 수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건설 관계자는 “하루 생산량 30만 배럴 규모의 대형 정유공장의 기본설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경험을 갖춘 회사는 세계 건설시장에서도 손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SK건설 플랜트 미주 총괄인 주양규 전무는 “이번 기본설계 수주는 설계 기술 및 대형 공사 기획·관리능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
  • [15일 TV 하이라이트]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트로트 사대천왕(四大天王)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트로트 4인방 하춘화, 주현미, 현숙, 장윤정의 무대를 만나 본다. 고향 땅에서 설날을 맞이하는 동포들을 위해서는 이자연의 흥겨운 무대가 이어지고, 민족의 정서를 노래에 담아 전하는 ‘국보 민요 가수’ 김세레나는 권철호, 김인수 콤비와 함께 추억의 극장쇼를 재연한다. ●마당놀이 이춘풍전(KBS2 오전 9시50분) 경제적으로 무능하면서 주색잡기 등 온갖 방탕한 생활만 일삼는 이춘풍이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몽땅 탕진한 뒤 지혜롭고 당찬 부인의 기지로 가정을 되살린다는 내용의 ‘이춘풍전’. ‘마당놀이 인간문화재’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이 명실상부한 마당놀이 스타로서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행복을 배우는 작은 학교들(MBC 오전 7시20분) 지난해 9월 ‘PD수첩’을 통해 방송돼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행복을 배우는 작은 학교들’이 더욱 깊고 다양해진 감수성으로 소개된다. 학교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면서도 공부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 가는 남한산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 공교육의 나아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 ●제중원(SBS 오후 9시55분) 도양은 의생들과 함께 마마에 걸린 환자를 옮기려 하지만 박수무당이 앞길을 가로막자 환자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자들을 치도곤으로 다스리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일본공사로부터 제중원에서 마마치료용으로 쓰고 있는 농포가루를 탈취하라는 명령을 받은 김돈은 농포가루를 옮기던 유희서 일행을 습격한다. ●다큐 10+(EBS 오후 11시10분) 어미 품을 떠나 이제 막 독립한 어린 북극곰. 녀석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홀로 사냥하는 법은 물론, 상황이 좋지 않을 땐 사체를 찾아 배를 채우는 법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두렵기만 한 어린 북극곰이 과연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당당한 성체로 성장해 북극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본 지구2(OBS 오후 10시) 위기에 처한 세계 각지의 숲들을 찾았다. 자연의 신비 제왕나비들은 겨울잠을 잘 멕시코의 숲을 잃어 가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수많은 고유종 동물들을 자랑하는 마다가스카르 역시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이곳에 사는 여우원숭이들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작가 베르트랑이 사라져 가는 숲을 하늘에서 바라본다.
  • 4대강 사업 본격 착공… 금강 금남보 현장 르포

    4대강 사업 본격 착공… 금강 금남보 현장 르포

    사전환경영향평가 졸속 논란 속에서 10일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 시작됐다. 이날 금강 금남보, 낙동강 달성보, 영산강 승촌보를 비롯해 4개 보의 공사가 시작된 데 이어 17일 공식 착공식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 공사가 본격화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정부가 2011년까지 총 22조원을 들여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정비해 담수량을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해 친환경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새달부터 보 건설 본격 착수 충남 연기 금남면 금남보 건설현장. 오전부터 덤프트럭과 포클레인 20여대가 쉴새없이 흙을 파내 실어날랐다. 강 북쪽으로는 세종시 시범마을 택지지구 공사현장이 보였다. 가물막이 공사는 현재 ‘ㄷ’자 형태의 1차 가물막이 가운데 ‘ㄱ’자 정도까지 진행된 상태다. 11월 중 1단계 작업이 완성되면 12월부터는 터파기를 시작으로 보 건설 공사에 들어간다. 보가 절반가량 건설되면 1단계 가물막이를 제거한 뒤 다시 반대편에 2단계 가물막이를 만들어 나머지 보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금남보는 2011년 3월 완공될 예정으로 4대강의 16개 보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연다. 4대강 사업 가운데 선도사업구간으로 지정돼 지난달 26일 본공사를 시작한 곳이다. 금남보는 폭 360m, 높이 최고 4m로 16개 보 가운데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가장 먼저 공사를 시작해 나머지 15개 보의 모습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고정식과 가동식 보가 60m 씩 번갈아 설치된다. 가동보는 유량에 따라 각도를 달리해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고정보 바닥에 토사가 쌓이는 것을 방지해 준다. 보의 높이는 2.8~4m로 현재 이 구간의 수위는 0.5~4m지만 보가 설치되면 1.5~4m(해발 11.8m)로 수위가 높아져 수량이 풍부해진다. 이렇게 되면 현재 자연 상태에서 100년빈도의 홍수량에서 200년빈도 홍수량으로 치수 능력이 커진다는 게 현장 공사 책임자의 설명이다. 대우건설 박태균 현장소장은 “금남보 설치를 계기로 하루 435만t의 물을 추가로 가둘 수 있다. 1일 450만t이 소수력 발전소를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1일 수량이 거의 교체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보 3개·저수지 30개 건설 보 설치로 인해 우려되는 수질 오염에 대해서는 가물막이 공사 전에 오탁방지막을 설치했다. 또 준설시 흙탕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강 바깥쪽부터 흙을 파는 공사 기법을 사용하고, 공사 구간에 침사지를 만들어 흙탕물을 가라앉혀 수질 오염을 방지할 계획이다. 강 왼편에는 금강에 서식하는 어류들이 오갈 수 있도록 ‘어도’가 마련된다. 문정식 대전지방국토관리청 하천국장은 “치수안전도를 높이는 동시에 하천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금강에는 금남보 등 보 3개를 비롯해 농업용 저수지 30개, 교량 5개가 건설되며 5000만㎥가 준설된다. 강줄기를 따라 노후제방 71㎞가 보강되며, 생태하천 124㎞, 자전거 도로 248㎞가 들어선다. 연기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4대강 본공사 10일부터 착공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최종 관문인 환경영향평가를 사실상 통과함에 따라 이번 주부터 공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가 수질악화와 생태계 피해를 막을 수 없는 ‘반쪽 보고서’라고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환경부는 지난 6일 국토해양부 산하 각 국토관리청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이뤄지는 61개 공구 634㎞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마쳤다고 8일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완료됨에 따라 10일부터 1차 턴키공사인 15개 보의 착공에 들어간다고 이날 공식 발표했다. 4대강 사업은 당초 지난달 중순부터 본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지연되면서 착공도 늦어졌다. 환경부는 지난 6~7월 사전환경성 검토 협의가 완료된 이후 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공람과 설명회, 관계기관 의견수렴, 12차례 환경평가단 자문회의 등 법적 절차를 충분히 거쳤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최종협의 의견에 따르면 국립환경과학원이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의 의뢰로 수행한 수질예측 결과, 4대강 사업이 끝나는 2012년에는 2006년보다 전반적으로 수질개선이 이뤄지는 것으로 평가했다. 환경부는 특히 4대강 공사가 취수장에 미치는 탁수(흐린 물) 영향을 예측했을 때 저감 방안을 세워 시행한다면 취수장 인근의 최고 가중농도(갈수기 기준)가 10㎎/ℓ 이하로, 일부에서 우려하는 식수 공급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준설 공사를 하면서 최소 2㎞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는 등 공구별 공정 현황을 통합관리하고 착공 때부터 수질 자동측정센서를 통해 수질 변화를 실시간으로 점검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사업구간에 분포하는 100곳의 습지 중 54곳의 습지가 4대강 사업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평가되므로 보전가치가 높은 습지는 그대로 두거나 사업에 따른 영향 면적을 최소화하고, 84곳의 대체 또는 신규 습지도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환경부의 평가 결과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운하백지화국민행동은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금강유역에서 공사하면서 진공흡입 준설, 오탁방지막 설치 등을 통해 90%까지 탁수 저감이 가능한 것으로 밝혔지만 진공흡입 준설선은 국내에 몇 대 되지 않고 운영비가 많이 들어 현실성이 부족하다.”면서 “오탁방지막 등의 효율도 30% 내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서울광장] 여수엑스포의 정치학/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여수엑스포의 정치학/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최근 여수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준비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엑스포 유치 당시 여수의 감격적인 분위기. 앞서 실사단이 방문했을 때 전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많은 시민들이 빗자루를 들고 여수시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 실사단을 감동시킨 이야기. 그런 보도를 접한 기억이 생생해 큰 기대를 안고 여수를 찾았다. 한려수도와 어우러진 오동도의 빼어난 풍광, 충민사와 진남관 등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 배어 있는 유적. 여수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웠고, 애국심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여수엑스포 홍보관을 통해 세계박람회조직위와 여수시의 노력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남는 찜찜함. 박람회장 본공사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고급 숙박시설 건립계획이 미덥지 않았다. 참가국이 늘어나는 속도 역시 늦어 보였다. 민자유치가 만만치 않다는 설명에는 가슴이 답답했다. SOC예산 부족으로 기간도로망이 획기적으로 확충되지 못한다면…. 국토의 외진 곳에 있는 여수. 오는 길이 불편하면 관람객수가 줄고, 엑스포의 성공을 보장받기 어렵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한 탓에 자꾸 정치적인 쪽으로 머리가 돌아갔다. 여수 현지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홀대론’. 수도권이나 영남에서 엑스포가 열렸더라도 중앙의 관심이 이랬을까.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3대 국제축제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여수를 방문한 자리에서 “현 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 유치한 행사가 아니라서 소홀히 하지 않느냐는 걱정이 있지만 이는 기우”라고 말했다. “여수엑스포가 성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성공 못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홀대론’ 불식을 다짐하자 여수 시민들은 ‘희망세박(희망 세계박람회) 대통령’을 연호하며 반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앙정부의 예산·정책 지원은 여수 현지의 바람에 못 미치고 있다. 며칠 전 한 시사잡지가 실시한 호남지역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여수에서 32.2%의 지지를 얻는 ‘깜짝 결과’가 나왔다. 스스로 노력보다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덕이라는 분석이다. 정 회장이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을 한 후광이 아직 남은 것이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 지도부가 중앙정치에 매몰되어 있을 때 진짜 표가 되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한나라당에 호남 득표율을 높일 기회의 장이고, 민주당은 지켜야 할 표밭인 셈이다. 여수엑스포가 열리는 기간은 2012년 5월12일에서 8월12일. 그해 말에는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여수엑스포의 예상 방문객 숫자는 800만명. 낮게 잡아도 수백만명은 다녀간다고 봐야 한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못지않게 대선 국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꿈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여수엑스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여름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과 김병일 여수엑스포조직위 사무총장 간 지상논쟁이 있었다. 여수엑스포의 비전이 환경인가, 과학인가를 둘러싼 논전이었다. 지금은 이런 고급스러운 논쟁을 통해 여수엑스포를 지구촌에 알려야 할 때다. 세계박람회를 힘들게 유치해 놓고 국내의 관심부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국가적인 수치다. 내년 상하이엑스포를 국가발전과 관광유치의 획기적인 계기로 만들려는 중국을 자극제로 삼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물론 국회 여수엑스포지원특위 재구성조차 미루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각성이 있기 바란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명배우 명무대] 신구의

    [명배우 명무대] 신구의

    한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지가(地價)를 자랑하던 명동에 연극전용극장이 복원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1934)에 메이지자(明治座)라는 이름의 영화관이 있던 자리로 건축사무소를 경영하던 이시바시 료스케(石橋良介)가 이 영화관의 주인이었다. 그는 5년 후 1939년에는 단성사를 인수하여 대륙극장으로 개명, 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함으로써 당시 경성(게이죠) 극장가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 명례방(明禮坊)이라고 불렸는데, 장악원이 있었던지라 넓은 의미에서 예술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쵸(明治町)로 바뀌고, 그 이름을 따서 메이지자가 들어선 것이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일본공사관을 중심으로 일대가 근대식 상가지역으로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권을 발전 시켜왔다. 지금은 대체로 중저가 상품이 대종을 이루지만, 아직 일본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번화했던 거리인지라 자연히 예술가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이 건물은 1945년 광복 이후 1961년까지 시공관으로 사용되다가, 1962년 국립극장으로 개·보수되면서 좌석이 1,178석에서 820석으로 축소되었는데, 이번 복원 공사를 거치면서 552석으로 조정되었다. 1973년에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신축, 이전되면서 문화공보부가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임대하여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 아래 극장으로서 계속 활용하였다. 이후 1976년에 신축 비용을 이유로 대한투자금융, 대한투자신탁에 매각되어 사무실로 용도 변경, 1994년 11월, 대한종합금융이 이 건물을 10층 신사옥으로 건립하려는 계획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연극인들을 비롯하여 문화계가 ‘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였고, 명동상가번영회는 정부가 이 건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계속하여 경매 유찰을 유도함으로써 결국 2003년 12월에 정부가 매입하면서 5년 공사과정을 거쳐 2009년 5월에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극장에서는 최초의 오페라 공연,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그리고 신협과 민극이 통합된 최초의 국립극단 공연이 연이었다. 그런가 하면 국립오페라단, 국립국극단(현 국립창극단), 그리고 국립무용단이 1962년에 설치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예술 수준을 자임했는가 하면, 최고의 인기 대중가수 현인이나 신예 윤복희 등이 그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나아가 1960년대 이후 한국연극계를 지탱해온 대학극 출신의 동인극단들의 활약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명동백작’을 자임했던 작가 이봉구가 “우리나라 문화가 다 들어가 있다”고 했다던가?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명동예술극장의 재개관은 단순히 또 하나의 극장 개관과는 다른 특별한 의의를 지니게 되었고, 바로 그 개관 공연이 신구가 주인공을 맡은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 이병훈 연출)이다. <맹진사댁 경사>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일본어 시나리오로 《국민문학》에 발표된 이래, 같은 해 작가에 의해 희곡으로 개작,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1956년에 <시집가는 날>, 1961년에 <맹진사댁 경사>로 영화화 되기도 하고, 1974년 11월에서는 국립가무단이 뮤지컬로 공연했는가 하면,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1988년에는 메노티에 의해 오페라로도 작곡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홍현택이 쓴 오페라도 있다. 연극으로는 ‘신협’(1951)과 ‘실험극장’(1969, 1972)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에 의해 무대에 올렸는데, 그 중 실험극장 공연이 단연 오랫동안 수작으로 손꼽혀 왔다. 돈으로 진사 신분을 사들인 맹진사는 외동딸 갑분을 지체 높은 김판서 아들 미언과 결혼시켜 더 높은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러나 김판서와 같은 마을에 산다는 손님을 통해 사윗감이 절름발이라는 말을 듣고 딸의 몸종인 입분을 딸로 둔갑시켜 혼례를 치르고자 한다. 당일 도착한 일행 중 신랑이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맹진사는 친척집으로 보낸 갑분을 급히 불러들이나 신랑과 노망기가 있는 부친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입분과의 혼례를 치른다. 첫날 밤, 입분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만, 신랑은 이 모든 사단을 자신이 꾸몄음을 실토하며, 참된 마음을 지닌 사람, 곧 입분이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신방의 불이 꺼지자, 맹진사댁 가족들은 망연자실한다. 신구는 1962년에 유치진 선생의 문하생으로서 연극 <소>로 데뷔한 후, 그로부터 본명 신순기 대신 신구라는 예명으로 받아 지금껏 쓰고 있다. 오랠 ‘구’(久)자의 효험인지 그는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47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데뷔 이래 대체로 진지한 역할 내지 순박한 역할을 맡아오고 있지만, 그의 연기에는 희극적인 계기를 잘 살려내는 묘미가 섞여 있다. 그가 이번에 맡은 맹진사 역은 한편으로는 탐욕적이지만, 바로 그로 인해 희극적인 면모를 드러내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주역으로 발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방송에서 히트한 것에서 보듯이 그의 희극성은 과장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유치진의 후원으로 탈춤을 소개하기 위해 하와이동서문화센터에서 1년간 있으면서 현대무용을 익힌 경력도 작용해서인지 그의 연기는 유연성이 높다. 나는 아직도 그가 유치진의 마지막 연출 공연에서 보여준 유연한 몸동작을 어제인 양 기억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는 연출가 김아라나 한태숙과도 무리 없이 호흡을 맞춰낸다. 또한 그는 서울 태생답게 표준어를 훌륭하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점에서 그는 같은 서울 태생인 오현경과 맞먹는다. 그가 비록 2지망이지만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고 한때 아나운서를 지망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드라마센터 연극으로부터 출발하여 국립극단의 배우를 거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토마토>라는 영화에서 연기생활 45년 만에 처음으로 주역을 맡았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연극을 고향으로 삼고 있고, 언제고 무대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그와의 인터뷰들에서는 의례히 그가 명문 경기고 출신이란 점을 들어 다른 직업을 택했을 가능성이 질문되기도 하지만, 그로서는 관객과의 교감에서 진정한 희열과 기쁨을 느낄 만큼 연극, 아니 연기만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신념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가 <하나를 위한 이중주>로 근 10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서서 윤석화와 호흡을 맞출 때에나 <숨은 물>에서 노영화 등 비교적 젊은 배우후배들과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룬 것도 연기를 천직으로 삼고자 하는 후배들의 각오를 귀히 여기고 이를 격려하는 심성과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무리 없이 배어 나온다. 신구세대가 함께 작업해야 하는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중심추로서의 무게감이 공연의 성공에 알게 모르게 작용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가 경기고교 출신들이 만든 화동연우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온 것도 단순히 선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넉넉한 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글_ 김문환 서울대교수,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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