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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매」 아끼지 말자”/김 대통령 「엄한 가정 교육론」화제

    ◎성장과정 아이들에 좋은 습관 들여야/효의 중요성등 한국적 가정교육 강조 김영삼대통령이 아이들을 때려서 키우는게 좋다고 권해 화제다.어렸을 땐 매맞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컸고,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버릇 없음에 어이없어 하는 세대들이 박수를 칠만한 이야기다. 김대통령은 13일 청와대에서 행정쇄신유공자들과의 오찬석상에서 평소 생각하고 있던 「때리는 교육」의 유익성을 역설했다.김대통령은 이날 오찬 말미에 『요즘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민족의 저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국민의 저력을 키우려면 어렸을적부터 좋은 습관과 좋은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말문을 열었다.그는 이어 미국의 엄한 가정교육을 들어 『미국이 자유분방한 나라로 보이지만 엄격한 가정교육이 있다』면서 『60년대 대통령초청으로 미국에 갔을때 밥먹는 습관이나 어른들과의 자리에서 버릇없이 굴면 지하실 같은 곳에서 때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나도 어릴때 버릇없이 굴거나 어른들 말을 듣지 않으면 할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고 술회하고 『성장과정에서 그때의 매들이 긍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술회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이후 틈날 때마다 효도의 중요성을 역설해 온바 있다.가정에서 효도하는 사람은 나라와 사회에 봉사하게 된다고 연결시킨다.이런 논리에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도를 우리사회의 근본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통령이 아이교육에 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효를 숭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지난해 서편제 시사회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며 경쟁력이 있다』고 역설했던 김대통령은 가정교육에서도 한국적인 것의 우수성을 살려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성환선생/서울신문사 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

    ◎임정 무장단체 「광복진선」 결성/중국시찰 가쓰라 일본총리 암살기도/만주서 교포에 문맹퇴치운동도 펼쳐 청사 조성환선생(1875년7월9일∼1948년10월7일)은 일제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항일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25세때인 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해 군복을 입은 선생은 일부 선배군인들이 주요보직을 차지하기 위해 일제와 야합을 일삼는데 분개,숙군을 외치다 군을 떠나게 됐다. 선생은 『썩은 군대는 나라를 망친다』면서 부패군인의 제거를 주장,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복역 3년만에 특사로 풀려나온뒤 신민회에 가담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1907년 결성된 비밀결사 신민회에는 선생과 같은 무관출신,양기탁등 언론인,이회영등 교육자,민족자본가,안창호등 해외국권회복 운동가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동휘·노백린등 다른 무관학교 출신자 14명과 함께 신민회에 가입한 선생은 독립운동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북간도를 돌아보았으며 1910년 국권침탈을 맞아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믿기시작했다.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는 나철이 창시한 종교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내에서 만주 동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포교중이었다. 선생은 1912년 중국 동북지방을 시찰하는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사전에 붙잡혀 거제도에서 1년동안 유배생활을 지내기도 했다. 유배를 마친뒤 곧바로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동료 독립운동가들과 청소년교육에 몰두하던중 1918년 만주길림에서 「대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대한독립선언서의 서명자 가운데 1명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19년 국내에서 발발한 3·1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아 독립운동가 사이에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았다. 선생은 4월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군무부 총장 이동휘와 함께 군무부차장에 임명됐으며 4개월후 동만주에서 활동중인 중광단에 참가,무장독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이와 별도로 대종교도들을 규합,정의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선생은 이어 1920년 청산리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제관동군이 추격에 나서자 이를 피해 노령 이만으로 이동,이곳에서 이청천·홍범도·안무등과 함께 고려의용군을 결성하고 의용군을 모집해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선생은 일제의 꾐에 넘어간 소련이 독립군을 무장해제하기 위해 기습해오자 동료들과 다시 만주로 돌아오게 된다. 북만주로 돌아온 독립군단체들은 1923년 재통합에 나서 군정서·의군부·혈성단·독립단·광복단·국민회·신민단·대진단·의민단등 9개 단체로 각 단체의 통합을 위한 군사연합회 준비회의를 열었으며 선생은 이 과정에서 연락책을 맡았다. 선생은 이 모임이 진척을 보이지않자 김좌진을 중심으로 창설된 신민회에 참여,중앙집행위원회 외교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군정서를 모체로 하는 신민부는 백두산에서 흑룡강,장춘에서 구참까지를 활동무대로 정하고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한족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면서 민족반역자의 징계,일본기관 습격등을 주임무로 삼았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정의부·한국독립유일당촉성회 조직운동등을 통해 흩어져있는 독립운동단체를 통일시키기 위해 수년동안 힘을 쏟았으나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해 뚜렷한 진전을 얻지 못했다. 선생은 1938년에 이르러 비로소 뜻이 맞는 이동녕·차이석·엄항섭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외곽무장단체인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선생은 같은해 이청천등과 함께 독립군 군사학편찬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임명돼 군사관련 교재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1년뒤 1939년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선생은 1939년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3개년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광복군을 양성키로 한데 따라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서안에 파견돼 광복군설립의 기초를 닦았으며 1940년9월17일 마침내 광복군이 창설되자 최고원수부의 판공처장으로 임명됐다. 선생은 42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중국측의 광복군 무력화 움직임을 무산시켰으며 43년에는 국무위원에 올라 대일전쟁을 지도했다. 선생은 45년 들어 임시의정원 제4과 군무·교통위원으로 일하다 8·15해방을 맞아 같은해 12월 동료 임정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선생은 환국 이후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성균관 부총재등을 지내다 48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박태준씨 어제 귀국/19개월만에… 양산 모친 빈소로

    【양산=이도운기자】 지난해 3월10일 출국했던 박태준씨(전포항제철회장·전민자당최고위원)가 9일 하오 대한항공 753편 김해공항으로 귀국했다. 박씨는 귀국 즉시 지난 7일 별세한 모친 김소순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양산군 장안읍 임랑리 본가로 갔다. 박씨는 도착후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죄가 많은 사람이다.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걱정만 끼치고 임종도 못지킨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아무말도 할 수 없는 처지를 양해해 주기 바란다』고만 말했다. 박씨는 검찰이 기소중지한 뇌물수수및 횡령등 혐의의 조사와 관련,아직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 신부기근(외언내언)

    『인도여성들은 지참금없인 결혼 못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신부의 지참금이 적다해서 신랑이나 시부모가 합세해 신부를 살해하거나 학대에 못이겨 신부가 자살하는 일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발생하고 있다.물론 오래전에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이 악습은 쉽사리 근절되지 않은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돈을 주고 신부를 사오는 구매혼이 일반적 현상이었다.신부를 노동력을 지닌 재화로 여겼기 때문.우리나라에도 옛날 동옥저에서 구매혼이 성행했다.고구려시대에는 「데릴사위」가 유행했는데 그들이 낳은 아들이 장성해야만 본가에 돌아갈수 있었다.고려때에는 신랑이 일정한 기간동안 처가에서 노동으로 봉사한 후에야 돌아가게 했다.일종의 봉사혼인 셈이다. 이제 21세기에는 총각들이 장가들기가 갈수록 어려워 질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99년에는 신랑후보가 21.7%나 남아 돌아 6명중 한명은 제짝을 찾을수 없게 되리라는 전망이다.물론 단순 숫자개념이긴 하지만 신부기근이 도래하는 것은 틀림없다.이같은 남녀의 성비교란현상은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 때문.양수검사나 초음파검사로 태아의 성을 판별,인공중절수술을 함으로써 초래된 결과이다. 연평균 60만∼1백만건에 이르는 임의낙태중 3분의1정도가 남아출산을 위한 임신중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그 결과 유아(0∼4세)의 남아비율은 여아 1백명당 1백12.5명으로 세계최고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국민학교에서는 남녀학생의 짝궁을 맞춰주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남녀의 구성비가 거의 비슷한게 자연의 섭리인데 우리는 지금 이 조화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신부기근시대를 맞게되면 신랑이 지참금을 내놓는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 미 생명공학산업 “내리막길”(현장 세계경제)

    ◎「황금알 낳는 거위」 명성이 기운다/신약 부작용 많고 효능 미진/소기업 난립… 막대한 투자비 엄두못내/“대형 제약회사와 협력해 활로 찾을때” 한때 미국에서 최첨단산업으로 각광받던 바이오테크(생명공학)산업이 추락위기를 맞고 있다.바이오테크는 암에서부터 불치병으로 알려진 유전자질환 치료 가능성을 제기,수많은 투자가들로 하여금 91∼92년 단 2년동안에 80억달러를 쏟아붓게해 이른바 바이오붐을 일으켰고 「지니」(유전자),「셀」(세포)등의 용어를 유행시켰다. 그 결과 이 분야는 70년대 탄생한이후 불과 20년만에 업체가 1천여개로 늘어나는 외적 성장을 달성하면서 그럴듯한 제품으로 투자가들을 더욱 많이 모으는데 성공했다. 바이오테크 기업들은 간염백신과 암치료제인 알파 인터페론등 특정분야에서 효능이 뛰어난 신약을 생산해 의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알파인터페론이 셰링 플라우사에 연5억달러의 수입을 가져다 줘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기도 하다.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24개의 약중에서 4개가 생명공학에서 비롯됐을 만큼 바이오테크 산업은 곧바로 「황금」과 직결돼 있어 투자가치는 그만큼 높다고 하겠다. ○1천여 업체 설립 빈혈치료약 EPO(암젠사),간염백신 B및 진단기술(바이오젠사),항암제 인터류킨(시론사),성장호르몬및 심장마비약(제네테크)등의 신약들은 효능에서나 매출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들이다. 더욱이 일부기업은 심장마비나 갑상선암·백일해등 주요 질환에 효능이 뛰어난 치료제나 치료기술을 개발,미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등 의학·의약분야에서 마치 르네상스가 예술에 그랬던 것처럼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20년동안의 급격한 외적성장은 개별기업의 왜소화와 난립을 초래했다.미국에서만 84년 불과 30여개이던 주식시장 상장기업이 10년만에 2백40여개로 늘어났다.그러나 이중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내 5백대기업에는 셰링 플라우(1백17위)와 암젠(3백4위) 둘밖에 없을만큼 그간의 명성은 실적을 쌓지 못했다. 이는 기업들의 대부분이 한가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이를 전문화했기 때문이다.이같은 전문성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신제품(약)을 출시하는데는 7∼12년에 1억∼1억5천만달러가 소요되는게 보통이다.그러나 단일기업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은 물론 신약개발에 필수적인 생물학·약리학·생리학등의 연구재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바이오테크 약중 10%만 임상실험에 들어가고 최종 통과한 50%만이 승인을 받는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뿐만 아니라 제약업계가 연간 2백50억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하는 반면 바이오테크 업계는 고작 15억달러밖에 투자할 수없어 신제품 개발기간과 성공확률은 더길어지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개발기간 7∼12년 전문 회계회사들이 바이오테크기업중 약 절반만이 향후 2년을 버틸 것으로 관측하듯 월가에서는 바이오테크 산업은 「중병」선고를 받은지 오래다.바이오테크의 아멕스 주가지수는 92년 절정에 도달한뒤 이미 50%나 하락했다.기업들은 바이오붐 동안에도 3년정도 버틸 자금을 축적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신제품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인슐린등 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지극히 「인상적인」신약은 일부이고 나머지는 부작용이나 약효가 없어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미국에서 매년 발병자 60여만명에 사망자 10만명을 유발하는 패혈증 치료제 개발 실패담은 단적인 예다.소마·코르테크·센토코르·시론등 선두기업들은 각각 수백만달러를 투자했으나 효능있는 치료제는 개발하지 못했다.에이즈도 같은 경우다.바이오젠·제네테크·임뮨 리스폰스등은 AIDS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혔으나 확실한 물건은 만들지 못했다. 이같은 실패는 가급적 빨리 신제품을 만들어 투자자들로부터 더 많은 R&D 자금을 얻어내야한다는 압력에 시달리는 경영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센토코르·코르테크·마가이닌등 10여 기업은 개발한 신약들이 효능미달과 부작용으로 주가는 폭락을 면치 못하게됐다. ○주식값 폭락 사태 이같은 산업전반의 위기에는 신규진출을 재촉한 모험자본가와 달콤한 수수료 때문에 가망없는 기업들의 상장을 막지 않은 투자은행 그리고 특허수입을 노려 자체 과학자들에게 기업설립을 부추긴 대학도 한몫을 했다. 앞으로 바이오산업은 파산과 합병을 통해 적자생존을 거듭할 것이다.기업을 살릴 수있는 길은 신기술의 개발과 대형제약사와의 협력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자체 합병과 유통망 정비에 여념이 없는 제약회사가 과연 바이오기업과 손을 잡겠느냐는 것이다.
  • 「여씨춘추」 제2권 「팔람」 출간

    ◎중국 전국시대 진 재상 여불위 편찬/도가·유가사상 등 망라된 고전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사상을 망라한 「여씨춘추」의 완역본가운데 두째권인 「팔람」이 최근 출간됐다(민음사 간). 「팔람」은 「십이기」「육론」과 함께「여씨춘추」를 구성하는 3부분의 하나로 서기전 3세기 당시 중국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위에 「여씨춘추」를 편찬케 한 여불위의 사상을 가미한 것이다. 제왕에게 전횡을 자제하고 「백성들의 부모(위민부모)」가 되라고 가르치는 이 내용은 한나라이후 중국 통치철학의 근간이 돼 왔다. 또 중국 역사의 시작인 삼대로부터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는 각시기의 역사와 설화를 곳곳에 인용한 문장은 중국 고전가운데서도 백미로 꼽힌다. 「여씨춘추」중 총론격인 「십이기」부분은 지난해 이미 출간됐으며 셋째권인 「육론」은 내년말이나 96년초쯤 나올 예정이다. 「여씨춘추」는 중국 진시황의 실부로 알려진 전국시대 진의 재상 여불위가 자신이 거느리던 식객 3천여명이 써낸 글을 편찬한 것. 도가사상을 비롯해 유가·병가·농가·혁명가등의 제사상을 두루 담으면서도 여불위 특유의 해석을 내려 잡가 또는 신도가라는 별도의 사상체계로 구분되며 중국 정치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6편,20여만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국내에서 「여씨춘추」를 완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계명대 중문과 김근교수가 역주를 맡았다.
  • 이수윤교수의 「서양철학사」를 읽고/신극범(서평)

    ◎한국사회 발전방향의 틀 제시 역사의 대전환기에는 항상 두방향의 개혁요구가 있어 왔다.그 하나는 경제적 부를 충분히 축적한 대상공업자들을 위한 개혁이다.다른 하나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서민대중들을 위한 개혁이다.역사의 격동기에 나타나는 개혁의 두방향은 구시대를 극복하는데 있어서는 뜻을 같이 한다.구시대가 극복되고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면 두 개혁방향은 서로 대립·갈등한다.두 개혁방향의 갈등과 대립은 철학적·종교적·정치이데올로기적·정치이론적 대립등으로 표현된다.두 개혁방향의 대립은 고대희랍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합리론적 자연과학과 범신론적 자연철학의 대립,칼빈주의와 루터주의의 대립,부자들만의 자유만끽을 추구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조화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대립,사회적 진화론과 국민적 자유주의의 대립등으로 나타났다. 지금 우리사회도 역사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우리사회도 두방향의 개혁요구에 직면하고 있다.그중 하나의 개혁방향은 권위주의체제에서 잠재되어 있던 대산업자본가들의 경제적 자율에 대한 요구로 표현되고 있다.다른 하나의 개혁방향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서민대중들의 경제력 집중 해소를 통한 사회경제적 조화실현에 대한 요구로 표현된다.지금 우리사회가 분명하게 제기해야 할 절박한 문제의식은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개혁의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적 위기의 핵심원인은 엄청난 경제력집중으로 인한 신귀족주의의 대두로 국민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국가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있다.지금 국가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요구되는 것은 경제력집중의 해소다.경제력집중의 해소를 통한 사회경제적 조화가 실현되지 않을 때 우리사회에는 갈등과 대립과 분열이 가속화할 염려가 있다.힘있는 소수는 소리높여 자기주장을 계속하고 말없는 다수는 불평과 불만을 마음 속에 쌓아두게 된다.그 상황은 추상적 급진사상이 확산되고 과격세력이 활개치는 토대가 된다. 지금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경제력집중 해소를통한 사회경제적 조화실현이다.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정계·관계·언론계에서 단편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그 문제의식은 철학적·정치적 이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바로 그것이 급진사상·과격세력의 극복을 위한 가장 바른 길이다.사회경제적 조화구현은 또한 민족국가의 통일을 우리의 주도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오늘의 우리사회 대학들의 시대적 과제는 사회경제적 조화의 토대위에서 국민적 자유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철학적 이론을 정립하여 민족국가의 통일을 우리의 주도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수윤교수는 「사회사상사」「역사철학」을 이은 세번째 저서인 「서양철학사」를 통해 우리사회 대학들의 시대적 과제이면서 철학의 시대적 사명이기도 한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완벽하게 체계화했다.
  • 휘발유 등 경질유값 인하/가격구조개편·물가안정 돕게/중질유는 인상

    물가안정을 위해 석유제품의 가격구조를 개편,대중적인 제품의 값을 내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8일 상공자원부에 따르면 유가연동제에 따라 이 달에 석유제품 가격의 인상이 불가피해지자 원유 도입가와 환율변동으로 인한 가격변동 요인은 그대로 반영하되 제품별 기준가를 재조정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국제 시세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휘발유와 경유·등유 등 경질유의 기본가격은 내리고 벙커­C유 등 중질유 값은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따라서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많이 주는 휘발유는 유가연동제로 인상요인이 적용되더라도 기본가격이 내림으로써 소비자 값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거나 또는 떨어질 전망이다.이같은 방안은 물가부담을 줄이고,한편으론 유가 자유화에 앞서 과도기적으로 유종간 가격차를 줄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 금융전업 자본가제/7대 시은 내년부터 도입

    ◎조흥·상업·제일·한일·신탁·외환·신한은/재무부,은행소유 개선안 확정/전업자본가 지분 12%까지 확대/기존 대주주 4%로… 98년내 초과분 매각 내년부터 7대 시중은행에 금융전업기업가제도가 도입된다.따라서 금융업만 하는 개인은 이들 은행의 주식을 12%까지 가질 수 있다. 금융업과 비금융업을 함께 하거나 비금융업만 하는 사람도 비금융업종의 주식을 모두 팔면 금융업종의 지분을 12%까지 보유할 수 있다.전업기업가제도가 도입되는 7대 시중은행은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외환·신탁은행이다. 전업기업가가 아닌 기존 대주주의 은행주식소유지분한도는 현재 8%에서 4%로 줄어든다.그러나 10개 지방은행과 한미·하나·보람은행의 기존 대주주는 예외이다. 재무부는 2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의 소유구조개선방안」을 확정,은행법개정안에 반영해 올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이 방안은 향후 은행의 바람직한 경영권지배형태와 관련,2∼3명의 전업기업가가 연합해 30%정도의 지분율을 확보,과점적 체제로 경영을 이끌어가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러나 재벌(산업자본)을 빼고 금융업만 하는 개인가운데 자기자금(차입금제외)을 2천억원이상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현실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다.「은행의 소유구조개선방안」의 주요내용을 은행그룹별로 정리한다. ◇7대 시은=동일인소유지분한도를 8%에서 4%로 낮춘다.증시안정기금 등 경영권지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관투자가는 현행 8%를 유지한다.4%를 넘는 지분은 95년5월29일부터 의결권이 없어지고 이로부터 3년후인 98년5월28일까지 팔아야 한다. 그러나 전업기업가는 본인과 특수관계인 등을 포함,동일인소유지분한도가 12%로 늘어난다.이중 본인이 3분의2이상을 가져야 하고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3분의1을 넘지 않아야 한다.전업기업가는 본인 및 특수관계인의 비금융업종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그러나 경영권지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분산(포트폴리오)투자로서 지분율이 1∼2%이하인 경우는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한 은행의 전업기업가가 되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은행의 주식을 1%이상 가질 수 없다. 전업기업가의 은행주식매입자금은 자기자금이어야 하며 공정거래법상의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주나 그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야 한다.이밖에 전업기업가는 은행경영자로서의 도덕성·전문성등의 자질을 갖춰야 하며 은행감독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동화·평화·동남·대동·국민·주택·중소기업은행=전업기업가제도는 도입되지 않지만 기존 대주주의 동일인소유지분한도는 8%에서 4%로 준다.4%를 넘는 지분의 의결권은 7대 시은과 마찬가지로 95년5월29일부터 없어지지만 처분시한은 현재 비상장상태임을 감안,상장후 3년이내로 늦췄다. ◇10개 지방은행 및 한미·하나·보람은행=전업기업가제도가 도입되지 않으며 기존 대주주의 동일인소유지분한도를 4%로 축소하는 의무도 없다.즉 지금과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 ◇기타=오는 9일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에 올려 확정한뒤 10월 중순에 은행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현재 은행감독원장의 지침으로 돼있는 은행장추천위원회제도에 대한 위법시비를 없애기 위해 은행장추천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근거조항도 은행법에 마련한다.
  • 「한국사회의 이해」 박성수교수 등 5명의 비판

    ◎“한국 반대해야 올바른 현대사” 강변/“피착취계급 입장에 서야” 논리적 오류/가설을 「진리」로 규정… 언어의 테러 자행 고려대 한승조교수(정치외교학과)에 이어 박성수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를 비롯한 5명의 다른 학자들도 경상대 교수 10명이 공동으로 쓴 「한국사회의 이해」를 비판하고 나섰다.박교수등은 1일 「한국사회의 이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논문의 서론에서 『「한국사회의 이해」에 수록된 주장들은 지난 80년대 이래 자칭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공공연히 발표해온 논저에서 취한 것들로 그 중에는 당연히 북한 공산당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를 보는 틀◁ 피지배자 민중의 입장에서만이 올바르게 사회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서로 대립하는 착취와 피착취계급이 존재하며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보려면 피착취계급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다.또 「상식과 과학의 통일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연구에서 오직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만이 과학」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그리고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려 한다」는 기술은 제3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본다는 가치중립적 입장으로 해석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시공을 초월해 적용되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우리 사회는 1백40여년전 마르크스가 살았고 관찰의 대상이 됐던 프러시아 영국 프랑스등 서구 제국의 사회와 다르고 종속이론의 발상지인 남미 제국의 사회상과도 다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대대로 이어지는 절대 불변의 계급구조 속에서 자본가는 잉여가치의 착취에 의해 부를 더욱 증가시키고 가난한 사람은 그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이 기술하고 있다. ▷사회과학=사회운동,사회과학자=사회운동이론가?◁ 이 책에서 우리는 민중운동의 이론가와 사회과학자와 정치가간의 차이에 혼란을 일으킨다.대학 강단에 선 정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등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운동의 실천적 이론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돼야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 ▷근·현대사의 왜곡◁ 이 책은 1919년의 3·1운동이 노동자 농민의 계급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민족대표를 비롯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민중을 배신함으로써 3·1운동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김일성과 박헌영이 6·25 남침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책이 과연 객관적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지,아니면 객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근대사를 적화통일하려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북한정권의 시각에서 보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종속이론◁ 부정부패,소득분배의 불균형,수출위주 경제의 대외의존성 등을 이유로 종속이론에 입각해 우리 현실을 이해하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의식◁ 저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 계급사회로 규정하고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러한 주장들은 대부분 실증이 결여되고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한 구호적혹은 상투적 주장에 불과하다.저자들이 주장하는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계급의식은 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정체는◁ 저자들이 장황하게 기술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자체의 이상적인 내용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변혁 이후 구현될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구체적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았다.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체라는 주장 역시 자명한 명제인 것만은 아니다.사회혁명이나 변혁에 있어 노동자계급이 자신 위에 군림할 소수의 독재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가능한 방도는 아직까지도 인류 역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의 상대적 우월성◁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사회적인 문제란 노동자들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를 당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다.그러나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처음 단계에서는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면 효과적으로 대처되고 극복돼 갔던 것이 현실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사회의 이해」의저자들은 이른바 「과학화」의 개념적 도구들을 총동원해 우리 사회를 파악하려 든다.또 가설을 바로 진리로 확정해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온갖 언어적 테러를 자행할 뿐아니라 물리적 테러도 서슴지 않고 있다.이런 태도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종교신자의 태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한국사회의 이해」와 같은 선동적 책자가 우리 사회에서 유포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대학주사파 설득 교수가 나서라/최호중(시론)

    지난 8월초에 세계자유민주연맹의 연차 총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세계반공연맹의 후신인 이 민간단체가 공산주의 총본산이었던 옛 소련의 수도에서 대대적인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변한것을 절감케 되지만,러시아 정부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크렘린 내에 전대표단을 불러 환영 만찬을 베풀게 하는등 극진한 환대를 한 사실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총회에서는 러시아를 비롯,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원만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을 다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인류 보편의 기본가치인 자유와 인권과 행복을 확보함에 있어 공산주의와 통제경제를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가름이 난만큼,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제질서를 굳히는데 힘을 모아 나가자는 결의를 하필이면 바로 이 모스크바에서 공동 코뮈니케로 발표하게 됐는지 어리둥절하면서도 자못 진지했던 회의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총회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김에 제정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보고 또 그 유물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그러면서 느낀 것은 과연 왕정을 뒤엎고 혁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왕족이 그 영화를 누리려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으니 누구라도 더 참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그런데 노동자 농민들을 다 잘살게 해주겠다던 공산혁명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공산주의는 비록 목표하는 것 자체는 좋았다 하더라도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못됐고,더욱 잘못된 것은 공산혁명을 통해 집권한 세력이 지난날 왕족이 누린 것과 똑같은 영화를 누리기에 급급했을 뿐,인민을 잘 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었다.말하자면 다른 방편으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처지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인민을 속이고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비단 소련에서만 그런것은 아니었다.모택동 정권하의 중공도 마찬가지였다.외빈을 조어대에 초치해 놓고 만찬을 대접하면서 이 방은 옛날에 건륭황제가 자주 찾았던 곳이고이 술과 이 요리는 그가 즐겨 들었던 것이고,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식기와 탁자도 모두 그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면서 마치 황제자리에 앉기라도 한 양 우쭐해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주석궁이라는,대궐을 무색케하는 어머어마한 집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면서 노경에 접어든 김일성은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에 나와 밥을 질질 흘리면서도 손에는 늘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박힌 최고급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모든 인민에게 쌀밥에 고깃국,비단옷에 기와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공수표를 해마다 되풀이해 오면서 말이다. 옛 소련과 동구권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네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라는 억지뿐이었다.그 「우리식」이라는 것은 이미 손을 들고만 공산주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외에,안으로는 혹독한 억압을 강화하고 밖으로부터는 자유와 개방의 바람이 스며들지못하도록 막는 일이었다.그 결과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파탄,그리고 북한주민이 겪어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정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일각,특히 대학가에 주사파가 오늘도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시대착오적인 북한의 주의주창을 맹종하고 있는 그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든지,아니면 자생적이든지 간에 우리는 더 지체하지 말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어느 사회고 욕구와 현실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만계층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억울하고 막막하게 여기는 현실을 타파해 보려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그렇다고 어떠한 언동도 모두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가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대학가를 좀먹고 있는 주사파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맹종자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그 책임은 마땅히 우리 사회전체가 져야 하지만 아무래도 일차적 책임이 교수진에게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지금까지는 학원내 이상기류를 의식해서 일부교수들이 학생선도의 본분을 애써 기피하거나 외면하고 국내외 학술회의 참석,언론등에 대한 기고,혹은 정부 각 기관에 대한 자문역할등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어온 감이 없지 않지만,이제는 교수 모두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해야 한다.그래서 모스크바에서 버린 길을 뒤늦게 서울에서 쫓아가는 우를 범하려하는 것을 방임해서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나라와 겨레의 장래가 어지럽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 「반김정일세력」 조직화 될까/「전단 살포」로 궁금증 증폭

    ◎해외파 등 지식인층서 주도 가능성/북 자체분석도 “주민 27% 적대계층” 평양 외교단지에서 「김정일타도」전단이 대량살포됨으로써 북한내 반금정일세력 형성유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 김일성세습체제에 반대하는 기류는 과거에도 감지된 바 있다.귀순자들과 교포방북자들은 북한주민들이 아주 은밀히 전단과 벽보를 통해 산발적으로 김부자체제를 비방하는 사례들이 여러번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감을 주고 있어 간헐·우발적으로 터져나온 과거의 경우와는 양상이 다르다.그래서 조직화된 반금세력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손쉽게 상정할 수 있는 반금세력은 2천2백여만명의 북한주민 가운데 북한당국이 「적대계층」으로 분류,경계하고 있는 27%의 주민이나 「동요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는 45%의 주민 가운데 일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주·자본가출신이나 월남자가족 및 반혁명사건 연루자가족 등을 포함한 반기득권층이 아직 세력화하기에는 시기상조여서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관측된다.이들은 북한당국에 의해 이미 평양시 밖으로 강제이주되었거나 산간오지에 집단거주하고 있다. 반면 이번 사건이 당성이나 성분면에서 선택된 주민만 거주하는 평양에서,그것도 감시가 삼엄한 외교단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전단살포의 주역은 의외로 특권층내부에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당과 군에 포진하고 있는 「혁명1세대」등 핵심권력층이 개입했다는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또 이들이 김정일에게 있어서 잠재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인물들이긴 하나 김일성사후 단기간내에 저항세력으로 조직화됐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김이 20년간 후계수업과정에서 지난 76년 김동규부주석일파를 숙청한데 이어 83년 김병하국가보위부장을 제거하는 등 반금세력의 「싹」부터 철저히 잘라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부사조에 밝은 테크노크라트와 외국유학경험이 있는 인텔리계층이 이번 전단사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다수 북한전문가들의 관측이다.이들도 나름대로 기득권을 향유했으나 해외경험 등을 통해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개연성은 높아진다. 지난 91년 남북고위급회담에 나온 북측 수행원 가운데 김일성종합대 출신 인사가 우리측 관계자에게 자기의 전공과 경력을 알려주며 『북조선체제는 오래 못간다.통일이 되면 내가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나』라고 은밀히 타진해왔다는 비화가 이를 뒷바침해준다.실제로 이 인텔리층들이 비밀리에 10∼20명씩 모임을 갖고 김부자체제에 불만을 토로한다든가 낙서나 전단을 뿌리는 활동을 했다는 귀순자들의 증언도 있었다. 만일 이번 전단살포가 이 세력들에 의해 이뤄진 게 사실이라면 김정일체제가 당장 붕괴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서히 가라앉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조짐일 수도 있다 ◎평양의 「외교공관단지」는 어떤곳/개방바람 우려 한곳모아 특별관리 「김정일타도」 전단이 발견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평양의 외교공관단지는 평양의 남동쪽 변두리인 문수동에 자리잡고 있는 치외법권지역.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외국공관및 외교관들 숙소가 입주해 있다. 북한이 지난 70년대초 이곳에 외교공관단지를 조성한 것은 외교관들에 의한 개방바람의 확산을 우려해 이들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이곳의 면적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식당·극장·수영장·테니스장등 각종 편의및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각국 외교관들은 이들 시설을 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북한당국은 외국인 거주지역이란 특수성을 고려,이곳의 시설과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당초 이곳에 옛소련(현재는 러시아)과 중국대사관도 끌어넣으려 했으나 양국이 특별대우를 요청하며 거부하는 바람에 평양중심부에 따로 공관을 두게 하는 특혜를 주었다. 북한당국은 외교관들을 보호한다는 구실아래 이곳에 일반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고 기타 출입자들에 대해서도 검문검색을 매우 엄격하게 실시하고 있다.따라서 이곳에서 김정일타도 전단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받아들여지고 있다.
  • “일 대중문화 개방 대비 빠를수록 좋다”

    ◎「우리 대중문화의 현실…」 시민토론회서 서울대 김문환교수 주장/2000년이전 전면 개방 불가피/충격덜게 영화·가요전문가 키워야 일본의 영화와 가요·비디오등 대중문화의 개방시기는 언제쯤일까. 또 개방할 경우 개방에 따른 문화충격을 최소화하고 우리문화의 체질을 강화토록 유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 「우리 대중문화의 현실과 일본문화 개방」을 주제로 최근에 열린 시민토론회에서 김문환교수(서울대·미학)는 『우리의 경제규모나 한.일관계 등을 감안하면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을 아무리 늦춰도 2000년을 넘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못박고 『오는 98년이나 99년에 전면개방이 된다는 예상 아래 지금부터라도 개방에 대비한 대응 방법을 활발하게 토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한국의 국민의식이나 민족역량이 어느수준 이상이 되어야 일본문화 개방이 가능한가』라는 식의 접근법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면서 『일본문화와 우리문화가 비슷하다고 착각하는 데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교수는 일본영화의 수준은 우리영화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일본에서는 영화산업이 이미 사양산업이 되고 있는데 상업적인 이해관계만 따지는 흥행 업자들이 있다면 국내 영화시장은 자칫 일본영화의 오물 처리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 했다. 따라서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개방에 따른 문제점과 대비책을 공론화시켜 일본 대중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거르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영화가 개방되기전에 첫째 대기업의 영상산업투자가 성공하고 둘째 유선TV와 위성TV에서 우리 영화를 다양한 차원에서 수용하고 셋째 96년 영화 종합촬영소가 꼭 완공되어 영화제작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작품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일본 대중음악의 개방은 개방화라는 국제화 추세와 국내산업의 보호라는 측면과 개방을 통한 국제경쟁력강화라는 측면등 모순되는 조건속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와 중국 동유럽의 문화가 개방된상태이고 위성을 통해 일본의 가요가 안방까지 들어오고 있는 상태여서 일본의 문화를 개방하지 않는 것은 설득력과 대의 명분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국내 가요의 절반이상이 일본가요를 표절하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인 만큼 일본문화의 음성적인 유입보다는 양성화 하는 것이 국내가요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중가요 개방은 한.일가요의 동질적 특성때문에 일본의 레코드자본에 예속될 가능성이 커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하며 유통의 독점을 막을 방안과 대형 프로덕션의 설립을 권장하거나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대중음악의 개방에 앞서 한국레코드회사와 음악출판사의 일본진출을 권장하고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전문인력을 또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방송국과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등과 같은 극장조직에서 대중음악전문가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분야별 음악가를 배출한다면 그만큼 국제경쟁력도 강화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 42년만에 치른 소대장 영결식/연천 DMZ서 심창섭소위 유골 발견

    ◎6·25 백마고지전투서 산화… 현장에 묻혀/신분증 등 찾아내 신원확인… 훈장 추서 「군번 120728.이름 심창섭.소속 보병 제9사단 28연대 2대대 5중대.계급 소위」 6·25당시 임관 6개월도 못돼 격전의 백마고지전투에서 전사,전우들에 의해 포연이 자욱한 그 자리에 묻힌 심소위의 유골과 유품이 42년만에 발굴돼 17일 현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심소위의 유골은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전방 열쇠부대 수색대대 소대장 권오윤소위(25)등 수색대원 10명은 지난 6월15일 연천북부 비무장지대에서 진지보수작업을 위해 땅을 파내려가던중 흩어진 유골을 찾아냈다. 초여름의 더위속에서 땀을 흘리며 삽을 놀리던 대원 이상현상병(22)이 땅에 묻힌 유골과 가죽지갑,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빛바랜 신분증 1개등을 발견한 것. 수색대원들은 이 유골이 전투끝에 산화한 선배장병의 것으로 직감,헌병대에 보고하고 정밀조사에 들어가 유골일체와 「심창섭」이라고 새겨진 플라스틱도장,실탄 10발이 들어 있는 카빈소총을 추가로 찾아냈다. 열쇠부대는 이 유품들을 즉시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지문감식등을 의뢰하는 한편 육군본부 병적과의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의 위패봉안자명부등을 통한 신원확인작업에 나섰다. 지문감식에는 실패했지만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에서 전사·위패봉안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한달여만인 지난달 중순 신원이 최종확인됐다. 국군문서보관소는 심소위에 대해 「52년5월24일 소위임관,52년10월9일 강원 철원지구에서 두부파편창으로 전사,본가에 봉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마고지는 52년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동안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이 펼쳐진 격전지.양측 합해 1만3천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 바뀐 것으로 전사에 기록돼 있다. 육군은 당시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한 심소위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17일 상오 부대안에서 참전동지·유가족등이 참가한 가운데 영결식을 치르고 심소위에게 1계급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독자로 대가 끊긴 심소위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심재홍씨(47)는『항상 위패만 국립묘지에 봉안돼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고인도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서울 신사동 「전주식당 청국장집」(맛을찾아)

    ◎온돌서 콩 발효… 전통 청국장맛 그대로/콩나물·야채와 함께 비비면 군침 절로 토속적인 냄새와 독특한 맛으로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청국장.그 진한 토속의 맛을 잊지 못해 하는 이들에게 마치 고향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듯 미각을 전해주는 곳이 있다.서울 강남구 신사동 19의6 「전주식당 청국장집」(주인 김종필·48). 지난 80년 이 곳에서 식당을 개업한 뒤 한결 같은 청국장맛으로 10여년째 손님들의 미각을 돋우고 있다. 이집 청국장의 특징은 온돌방에서 콩을 띄우는 옛날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주인 김종필씨의 전주 본가에서 4일동안 적절히 온도를 맞춰 콩을 발효시켜 청국을 공급하는데 이때 온도를 잘 맞추는 것이 청국장의 맛을 지키는 비결이다.온도를 맞추지 못하면 시거나 떫어져버린다. 다시마를 끓여 우려낸 물에 청국장을 풀고 무와 두부등을 넣어 끓인다. 청국장과 함께하는 것이 비빔밥.비빔밥에는 김치와 콩나물을 기본으로 깻잎·상추·생채·쑥갓·배추무침·열무김치·버섯·도라지·고사리등 계절따라 5색야채와 나물이 매일 바뀌어 식탁에 오른다.야채와 나물은 전주에서 직접 길러 매일 고속버스 첫차로 올려진다. 청국장이 짭짤하기 때문에 야채는 되도록 싱겁게 양념해 고추장과 참기름을 함께 넣고 비벼먹을 때 적당히 간이 맞도록 한다. 이 식당은 30여평으로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일본과 부산등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청국장이 유명하다.지난 6일 실내단장을 끝내고 손님을 새롭게 맞고 있다.청국장은 1인분에 3천5백원.543­6263
  • 「은행 1인지배」문제점 많아 실현 불투명/소유구조개선안 의미·전망

    ◎재무부 중립표방 불구 내심 반대입장 금융재벌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안이 제시됐다.그러나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 경쟁력을 키우고,산업재벌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재무부가 5일 공청회에 제시한 금융전업 자본 도입안(제2안)은 금융전업 자본가에 대해서는 동일인 소유지분 한도를 풀고,산업자본가에 대해서는 더욱 졸라매 전업 자본가에 의한 「은행의 1인 지배」를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찬반은 크게 엇갈린다.찬성론의 골자는 은행도 기업인 이상 주인이 있어야 경영효율이 높아지고 그래야 경쟁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금융재벌을 키움으로써 비대해진 산업재벌을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전업자본 도입안이 채택된다 해도 실질적 지배력을 갖춘 대주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5대 시중은행 중 하나를 판다고 가정할 경우 가격은 약 2조원 정도로 추산된다.15%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3천억∼4천억원이 있어야 한다.규모가 작은 신설은행의 경영권 인수에도 최소 1천억∼2천억원이 필요하다.산업재벌 말고 금융업을 영위하는 개인으로,이 정도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때문에 찬성론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나 어설픈 기대감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반면 반대론은 선진국들의 금융산업 소유구조의 발전 과정에 근거를 둔 것이어서 과학적이고 설득력을 갖는다. 세계 1백대 은행들 가운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2∼3%를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이들 은행의 발전과정은 소유가 분산되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단계를 거쳤다.따라서 소유집중을 심화시키고 소유와 경영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는 세계적 조류에 역행하는 셈이다. 금융전업 자본 제도의 도입 여부는 이같은 이론적 다툼보다는 도입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집단의 이해 및 역학 관계에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정부에서 보면 청와대의 박재윤경제수석은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것을 학자적 소신으로 삼고 있다.반면 주무부처인 재무부는 전업자본을 도입하는 안과 도입하지 않는 안을 모두 제시해 중립을 표방했지만 내면은 「금융전업 자본 도입 불가」라는 입장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기보다는 현재의 과점 주주들로 느슨한 형태의 대주주 협의회(제1의 2안)를 구성해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반면 대신이나 교보 등 비은행 금융그룹들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 금융전업 기업군(제3안)의 육성에 보다 큰 관심을 보였다.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재계는 산업자본에 대한 「차별대우」에 분개하고 있다. 금융전업자본 도입 여부는 은행법 개정 사항이므로 최종적으로는 국회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산업재벌이든 금융재벌이든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의 법개정은 국회의 관문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국영 체제에서 민영 체제로 바뀐 지난 82년의 은행법 개정 때 소유지분 한도를 10%로 설정한 정부안이 국회에서 8%로 낮춰진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개선안 내용/1·A안/지분 4%·행장추천위 존속/1·B안/「대주주협」설치 경영진 견제/2안/전업기업가 지분 15% 허용/3안/인위적 도입문제 논의서 배제 재무부가 제시한 「금융기관(은행)의 소유구조 개선방안」을 요약한다. ▷제1안◁ 금융전업 자본을 도입하지 않는다.동일인 소유지분 한도를 현행 8%에서 4%로 낮춘다.상법이 보장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는 주주권을 회복시킨다. A안=향후 2∼3년간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은행장 추천위원회의 은행장 자율선임 관행이 정착되면 동일인 소유지분 한도를 낮춘다(4% 수준).경영권 창출 및 추천위원회의 존속 여부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B안=동일인 소유지분 한도를 4%로 낮춰 대주주협의회(가칭)를 설치·운영한다.대주주협의회는 이사회와 정례적인 연석회의를 열어 경영실적 및 정보공시 사항을 평가·감시·자문하며 주주총회에 의견을 개진한다.은행장 추천위원회 위원 9명 중 대주주 대표 2인을 추천한다. 대주주협의회는 지분 1% 이상인 대주주 5∼10명으로 구성한다.같은 계열인 기관투자가와 산업자본이 중복되지 않도록 한다. ▷제2안◁ 「금융전업 기업가」를 도입한다.소유지분 한도를 4%로 낮추되 전업 기업가(은행법상 동일인 개념으로 본인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함)에 대해서는 15%로 높인다.이 중 전업기업가 본인의 지분이 10%(특수관계인 지분은 5% 미만)를 넘어야 한다. 전업기업가의 자격은 ▲금융업만 영위하는 개인(산업자본과 법인은 제외)으로 ▲은행주식의 매입자금은 자기자금(고객으로부터의 수탁자금 이용 금지)이어야 하며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주의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야 한다.전업기업가는 지배주주로서의 주주권을 행사한다.전업기업가를 인위적으로 육성하지 않는다. ▷제3안◁ 「금융전업 기업군」을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으나 「금융전업 기업가」(B안)의 여타 금융업종 진출문제로 보고 이번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 지배주주 「틀」만든후 시장자율로/금융전업그룹 육성방안 윤곽

    ◎1인 지분율 15∼20%로 상향조정/정부,은행법 개정후엔 개입 안해/정 부총리·홍 재무·박 수석 조율… 일부선 비판 금융재벌이 탄생할 것인가.금융의 「정주영」「이건희」가 과연 나올 것인가.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금융전업 기업군」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은 지난 주말 경주에서 열린 금융학회 세미나에서 구상의 일단을 밝혔다.이에 앞서 정재석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오는 11월 민영화할 예정인 국민은행을 금융전업 기업에 팔겠다고 말했다.가장 소극적이던 홍재형재무장관도 최근 태도를 바꿨다.금융전업 기업군에 특혜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로 이달 중 세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경제팀의 핵심 멤버 3인 사이에 「입장 조율」이 끝난 셈이어서 「구상 단계」인 금융전업 기업군 육성은 이제 「추진 단계」로 접어들었다.문제는 어떻게 금융재벌을 만들어내느냐는 방법론이다.이달 말 재무부가 그 방법을 제시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세사람의 발언을 짜맞추면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요약하면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금융전업 자본가가 은행의 지배주주,즉 주인이 될 수 있는 「틀」을 만들되 그 이후는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현행 은행법은 동일인이 특정 은행의 지분을 8% 이상 갖지 못하게 돼 있다.이를 금융전업 자본에 대해서는 15∼20%까지 높이고 기존 주주들 가운데 산업자본의 지분은 4∼5%로 낮춘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구체적인 대상을 선정하고 세금감면,금융규제 완화 등의 특혜를 주며 금융재벌로 육성하는 과정을 예상해볼 수 있다.그러나 이 경우 특혜시비를 몰고 올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하다.그래서 정부는 은행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그치고 그 다음 과정에는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박수석의 「전업」 구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3월 서울대 강연이었다.개방과 자율화로 무한경쟁 시대를 맞은 은행의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주인을 찾아주자는 내용이었다.어떻게 주인을 찾아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박수석의 발언은 즉각 금융업계에 민감한 반향을 불러왔다.신한은행과 대신·교보·장기신용은행·제일은행 등이 앞다퉈 「금융전업 기업군」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이들은 전업 육성을 위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특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이들이 정말 1인 지배주주를 바라는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금융전업」 구상이 한편에서 무르익어가지만 반론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학계는 물론이고 홍장관의 지시로 세부 방안을 마련 중인 재무부에서조차 「거꾸로 가는 정책」「어설픈 자유주의적 발상」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세계적인 추세인데 금융전업 기업군 구상은 은행의 소유와 경영을 일치시키자는 것으로 시대 착오적인 발상』『세계 1백대 은행중 주인 있는 은행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재무부 관계자),『금융재벌로 낙점을 받으면 고객의 돈을 합법적으로 기업확장에 쓸 수 있게 돼 경제력 집중 면에서 현대의 정주영씨나 삼성의 이건희씨 차원을 능가할 것』(한국조세연구원 이인표박사),『금융재벌을 육성하기 위해 소유제한을 완화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산업재벌은 물론 개인인 금융자본가나 법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박상용 연세대교수)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무부가 구체 방안을 마련한다지만 이 구상이 실현될 지는 미지수이다.
  • 한은 독립 백지화/민자/총재·금통위 위원 임기중 신분보장

    ◎경쟁력특위 금융소위 결정 민자당은 8일 국제경쟁력특위 금융소위를 열어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한국은행의 독립방안을 논의,시기적으로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이를 백지화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소위는 대신 한국은행이 통화금융정책을 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운영방안을 개선하고 금융통화위윈회의 정책결정기능에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총재및 위원의 임기동안 신분을 보장하기로 했다. 소위는 신용금고의 운영과 관련,비영리 출자법인 형태로 중앙금고를 설립,자율규제나 거래자 보호기능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등 금융산업의 업무영역을 조정했다. 소위는 또 동일인의 은행주식 소유상한을 현재의 8%에서 4%로 낮추는 한편 금융전업자본가에 한해 은행주식의 15∼2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동일인의 주식소유 상한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신용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연합회의 합동운영에 의한 금전신탁을 취급할수 있도록 하고 지금까지 2∼3개 동에만 허용되던 공동유대를 3∼5개동으로 넓히기로 했다. 소위는 오는 20일쯤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제도개선방안보고서를 전체회의에 제출할 계획이다.
  • 신예 신이현 첫 장편/「숨어있기 좋은 방」

    ◎20대 유부녀의 파격적 삶 작품화/주변 인물과 타협없이 철저히 자기 침잠/숨어있기 좋은 방 「여관」을 도피처로 이용 문학 작품에서 만나는 「파격의 묘」는 일상에서 겪는 비범한 느낌보다 훨씬 진한 감동으로 다가 올 때가 많다.특히 그 묘미가 가식없는 투명함으로 우러나는 것일때 감동은 더욱 오래가며 사실에 가깝게 느끼기 마련이다. 신예작가 신이현(본명 신용숙·31)의 데뷔작 「숨어 있기 좋은 방」(살림 간)은 탄광의 깊은 갱속에서 막 파낸 원석과도 같은 「자연스러움」이 소설 전편에 살아있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얼개는 대학을 중퇴한 20대초반의 여성 윤이금이 어머니가 있는 집과 허름한 여관 그리고 남편이 있는 시집등 3군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파행을 줄거리로 전혀 평범하지 않은 「어떤 청춘」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는 흐름. 정처없이 떠도는 아버지와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는 불행한 본가,마음에 없이 결혼한 남편과 시부모,이 답답한 현실에서 도피처로 등장하는 「숨기좋은 방」인 여관.그리고 여기서 만난 자신의 분신격인 젊은 남자 태정이 돌아가며 부각되는 가운데 이들 모두가 주인공 이금에게는 한심한 인물들로 비쳐지고 그들에 대한 어떤 타협없이 자신에 철저하게 침잠하는 슬픔을 작품 바닥에 깔고 있다. 『누구나 젊었을 때에는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만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청춘가운데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초라하고 한심스런 청춘도 엄연히 있지요.그러면서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시달리는 못난 청춘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계명대 불문과 졸업후 출판사와 방송국에 잠시 몸 담았다가 지난 92년 가을부터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는 신이현은 이 소설에 대해 「언젠가는 꼭 한번 쓰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구상해서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두문불출 끝에 탈고해 문단의 관심을 받게된 이 작품은 주인공의 파격적인 성격과 끝까지 그 파격성을 잃지않는 일관됨이 눈길을 끈다. 『우리 소설에서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예를들면 의욕적으로 살아도 사회가 받아 들이지 않아 실패 할 수 밖에 없어 동정을 산다든가 과거에는 슬프고 가련해도 결국 성공함으로써 그 과거가 돋보인다는 이야기같은 것이지요.이 소설에서는 그런 것과는 달리 어떤 상징도 없이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사람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씨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정작 하고싶었던 창작의 길에서 멀어져가는 것만 같아 결국 2년전 퇴사했으며 현재는 작품쓰는데만 전념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첫 작품인 만큼 이번 작품에 하고 싶은 말을 강도높게 담았다』며 『다음 작품으로는 페미니즘 계열의 장편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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