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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권력에 지배당하거나 공간을 지배하거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보자. 어떤 이에게는 ‘예술의 중심지로 보일 테고 어떤 이에게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건축물로 보일 것이다. 시인이자 건축가, 건축평론가인 함성호에게는 “궁궐 건축의 기둥 형태를 기괴한 스케일로 ‘뻥튀기’하여 육중한 돌로 포장”한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과거 양식 차용의 좋은 예”다. 그는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도 ‘한통속’으로 본다. 정치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한 건축물이다. 그는 건축에 대한 날카롭고 진지한 비판과 건축 예술에 대한 찬사를 담아 ‘반하는 건축’(문예중앙 펴냄)을 냈다. “우리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고 있는 건축이라는 공간 체험 예술이 어떤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들을 내재하고 있는지 밝혀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반하고 반하는 건축 이야기’라는 부제로 설명하자면 앞에 있는 ‘반(反)하는’은 건축의 본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고 뒤의 ‘반하는’은 가치가 살아 있고 감정적으로 끌리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두 성격으로 분리해 건축을 이야기한다. 그럼 ‘반(反)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한 건축물이 대표적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3공의 콤플렉스는 도덕성 결여, 정당성 부재였다. ‘우리에게 전통이 있어.’라고 강조하기 위해 구례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을 ‘짬뽕’한 것이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유신시대에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수직 열주들도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건물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해 치워 버리기도 한다. 1997년에 사라진 조선총독부가 비근한 예다. 저자는 아파트 주거 형식이 민족 생활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고 고부 갈등을 부추겼는지, 학교 구조가 어떻게 감시와 처벌의 공간으로 작용하는지, 종교 대자본가들이 선호하는 건축이 왜 체육관을 닮았는지 설명하면서 시대와 세태를 배반하는 건축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친다. 이어 모더니즘에서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건축 사상을 소개하고 매혹적인 건축의 방법과 공간 개념,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본령도 전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방식의 접근은 순전히 건축을 보는 내 자의적인 방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면서 “이 작업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가설이 될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고 했다. 그 개인적인 가설을 서울시 신청사에는 어떻게 대볼까 궁금증이 일어 저자에게 물었다. “슬쩍 지나가 보기만 했지 자세히 보지 않아서 어떤 분석을 할 수는 없지만 첫눈에 쓰나미(지진해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는 “우리나라 관공서가 늘 원하는 것이 전통미인데 그런 의도에서 신청사가 처마 모양을 땄다는 것은 대단한 비약이고 구색 맞추기”라고 말했다. 저자의 ‘가설’에 철학적 사유도 덧대고 의미 있는 그림을 넣어 건축을 보는 시선에 대한 깊이와 즐거움을 상승시킨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3대째 가업 내려온 설렁탕집, 108년만에 결국…

    3대째 가업 내려온 설렁탕집, 108년만에 결국…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한식당은 1904년 개업한 서울 공평동의 ‘이문설농탕’이다. 108년 동안 3대가 맛을 지켜왔다. 두번째는 1910년 개업해 나주곰탕의 명성을 지켜온 전남 나주 ‘하얀집’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은 50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 한식당 100곳을 소개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책자를 11일 발간했다. 책에 실리는 것을 거부한 한식당은 뺐다. 총 248쪽 분량으로 한식당을 시작한 동기, 개점연도, 창업주, 현 경영주, 업종, 대표메뉴, 음식특징 등이 실려 있다. 1929년 이전 개업한 식당으로는 이문설농탕과 하얀집을 비롯해 실향민의 설움을 달래 준 함흥냉면의 본가 부산 ‘내호냉면’, 4대를 이어 비빔밥을 만들어온 울산 ‘함양집’, 해남 떡갈비 90년의 자존심 ‘천일식당’ 등 10곳이 소개됐다. 대중가요의 대명사 ‘굳세어라 금순아’를 탄생시킨 대구 ‘강산면옥’ 등 근현대 문학과 음악의 산실 역할을 한 한식당도 여러 곳 수록됐다. 한식당 경영주들은 오랜 기간 사랑받은 비결로 각 지역의 대표 음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이용한 점과 후한 인심, 한결같은 서비스 등을 꼽았다. 이문설농탕 전성근 대표는 “방목해 키운 한우의 머리 고기, 양지머리, 도가니, 우설, 사골, 잡뼈 등을 넣고 정성껏 푹 끓여낸 깊은 맛”을 비법으로 제시했다. 내호냉면 이춘복 대표는 “정통 북한식 냉면 조리법을 고수한 것이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에게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일반인이 오래된 한식당 정보를 쉽게 접하도록 한식 세계화사이트(www.hansik.org)에서 전자책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어디인가 했더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어디인가 했더니…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한식당은 1904년 개업한 서울 공평동의 ‘이문설농탕’이다. 108년 동안 3대가 맛을 지켜왔다. 두번째는 1910년 개업해 나주곰탕의 명성을 지켜온 전남 나주 ‘하얀집’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은 50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 한식당 100곳을 소개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책자를 11일 발간했다. 책에 실리는 것을 거부한 한식당은 뺐다. 총 248쪽 분량으로 한식당을 시작한 동기, 개점연도, 창업주, 현 경영주, 업종, 대표메뉴, 음식특징 등이 실려 있다. 1929년 이전 개업한 식당으로는 이문설농탕과 하얀집을 비롯해 실향민의 설움을 달래 준 함흥냉면의 본가 부산 ‘내호냉면’, 4대를 이어 비빔밥을 만들어온 울산 ‘함양집’, 해남 떡갈비 90년의 자존심 ‘천일식당’ 등 10곳이 소개됐다. 대중가요의 대명사 ‘굳세어라 금순아’를 탄생시킨 대구 ‘강산면옥’ 등 근현대 문학과 음악의 산실 역할을 한 한식당도 여러 곳 수록됐다. 한식당 경영주들은 오랜 기간 사랑받은 비결로 각 지역의 대표 음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이용한 점과 후한 인심, 한결같은 서비스 등을 꼽았다. 이문설농탕 전성근 대표는 “방목해 키운 한우의 머리 고기, 양지머리, 도가니, 우설, 사골, 잡뼈 등을 넣고 정성껏 푹 끓여낸 깊은 맛”을 비법으로 제시했다. 내호냉면 이춘복 대표는 “정통 북한식 냉면 조리법을 고수한 것이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에게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일반인이 오래된 한식당 정보를 쉽게 접하도록 한식 세계화사이트(www.hansik.org)에서 전자책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작은 잊어라”…새 감독·배우 무장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UP&DOWN

    “전작은 잊어라”…새 감독·배우 무장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UP&DOWN

    미국 만화의 양대 산맥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일진’을 굳이 꼽는다면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쯤 될 터. 여름 극장가에 스파이더맨의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 앞 이야기를 다룬 속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8일 개봉)과 배트맨 시리즈의 부활을 이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3부작 중 최종편 ‘다크나이트 라이즈’(7월 개봉)가 맞붙는다는 건 자못 흥미롭다. 판권을 둘러싼 오랜 법정 공방 끝에 소니에 안착한 스파이더맨은 경이적인 성공을 거뒀다. 1~3편을 통틀어 5억 9700만 달러(약 6966억원)를 투입, 전 세계에서 24억 9633만 달러(약 2조 9132억원)를 쓸어담았다. 국내에선 1024만명이 관람했다. 판권을 넘긴 마블로선 땅을 치고 후회할 노릇이다. 5년 만에 돌아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와 여자친구 메리 제인 등 주요 캐릭터를 확 뜯어고친 ‘리부트’(reboot) 프로젝트다. 1~3편을 연출한 샘 레이미 감독이 제작사와 불화를 빚으면서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도 동반 하차했다. 대신 ‘500일의 썸머’로 주목받은 마크 웹 감독과 앤드루 가필드, 에마 스톤이 합류했다.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피터 파커의 부모님을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출발, 평범한 고교생이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UP] 스릴만점 3D 액션·탄탄 스토리 놀라워 스파이더맨 새 시리즈의 서막을 알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스토리와 볼거리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물량공세를 퍼붓는 데 집중했다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액션과 감성의 균형감을 잘 살려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섬세한 감각을 뽐냈던 마크 웹 감독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아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는 연출력을 선보였다. 부모의 실종 사건에 얽힌 과거의 비밀을 추적하던 주인공 피터 파커가 영웅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감성적이면서 드라마틱하게 풀어냈다. 뭐니뭐니 해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백미는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3D로 선보이는 고공 액션이다. 줄 하나에 의지해 고층 빌딩 사이를 누비는 일명 활공 액션은 다른 블록버스터 액션과 차별점을 준다. 특히 360도 회전하는 스파이더맨의 민첩하고 리드미컬한 액션은 관객들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1인칭 시점으로 촬영돼 3D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극중 피터 파커는 자신이 발명한 인공 거미줄 장치인 웹슈터를 통해 거미줄을 직접 발사하면서 액션의 역동성을 더욱 강조했다. 이처럼 기존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비해 더욱 밝고 경쾌해졌다. 이전 시리즈에서 답답하고 소심한 왕따였던 피터 파커가 똑똑한 과학 천재로 그려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악당인 리자드맨의 캐릭터도 매력적으로 나오고, 이전에 현실성 때문에 제거됐던 비밀병기 웹슈터가 등장해 원작의 스파이더맨과 더욱 가깝게 묘사된 것도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웹 감독은 간간이 유머러스한 연출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피터 파커 역의 앤드루 가필드도 할리우드의 신성답게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풋풋하고 진취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3편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토비 맥과이어에 친숙함을 느끼는 관객들에게도 큰 거부감 없이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마블 코믹스 영화에 빠지지 않는 깜짝 영상이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중간에 숨겨져 있으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DOWN] 용감무쌍 훈남 변신 주인공 왠지 낯설어 웹 감독과 각본가들(제임스 밴더빌트·알빈 사전트·스티브 클로비스)은 주인공 캐릭터를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만들었다. 173㎝의 아담한 체구에 소심하고 내성적이면서 때론 욱하던 20대 청년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183㎝의 훤칠한 훈남인 동시에 과학영재이면서 용감하고, 때론 충동적인 10대 고교생으로 바꿔 놓았다.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와 여자친구와의 관계 변화는 확연히 드러난다. 1~3편에서 레이미 감독이 창조한 파커는 자신 때문에 여자친구 MJ(커스틴 던스트)가 위험에 빠질까 봐 일부러 거리를 둔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한숨만 쉴 뿐이다. 그래서 MJ는 오해를 하고, 다른 남자와 약혼까지 한다. 하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파커는 다르다. 뉴욕경찰 수장이기도 한 그웬(MJ를 대신하는 동급생 여친)의 아버지가 “내 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파커는 며칠 고민하는 걸로 끝이다. 이내 그웬에게 “약속은 깨져야 제맛”이라며 능청스럽게 웃는다. 샘 레이미의 색깔을 지우려는 건 알겠다. ‘스파이더맨’이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10년 전과는 달라진 시대상, 혹은 10~20대 관객 기호에 맞게 ‘리부트’를 하려는 것도 알겠다. 그래도 정체성을 흔드는 건 곤란하다. 스파이더맨이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차별성을 갖는 건 그가 고민을 달고 살아가는 현실적인 캐릭터란 점 때문이다. 1~3편의 파커는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 직장 상사의 폭압, 가족과의 갈등, 여자친구와의 밀당(밀고당기기)에 힘겨워하는 건 물론 월세를 독촉하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숨죽여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관객은 초월적 힘을 가진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일상적 고민, 지리멸렬한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었다. 1980~90년대 저예산 공포영화 ‘이블데드’ 시리즈로 출발해 컬트영화의 거장 반열에 오른 레이미의 빈자리를 갓 두 편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웹 감독이 채우기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임일영·이은주기자 argus@seoul.co.kr
  • 플러그 안 뽑아서… 1년 4160억 낭비

    플러그 안 뽑아서… 1년 4160억 낭비

    가정에서 각종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플러그를 꽂아둬 낭비하는 전력이 한해 41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전기연구원은 14일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 의뢰로 지난해 전국 105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1년 전국 대기전력 실측’ 결과를 발표했다. 대기전력은 전원을 끈 상태에서 전기제품이 소비하는 전력이다. 가전기기가 작동하지 않아도 전기를 소모해 ‘전기 흡혈귀’라고도 부른다. ●가구당 한달요금 2000원 더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가구에서 1년에 낭비하는 대기전력은 평균 209㎾h로 나타났다. 한 가구 총 전기량(3400㎾h)의 6.1%에 해당한다. 전국 1660여만 가구(2009년 전력거래소 기준)에 적용하면 대기전력은 3470GWh, 금액으론 4160억원에 이른다. 가구당 한달 대기전력은 17.4㎾h로 매달 2000원의 전기료를 더 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대기전력은 사무실이나 생산 현장을 제외한 수치다. 공공기관, 기업체, 산업체의 대기전력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금액의 에너지가 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가정에서 대기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제품은 셋톱박스(12.3W)로 TV(1.3W)의 9.5배로 조사됐다. 이어 인터넷 모뎀(5.95W), 스탠드형 에어컨(5.81W), 보일러(5.81W), 오디오 스피커(5.6W), 홈시어터(5.1W), 비디오(4.93W), 오디오 컴포넌트(4.42W), 유무선 공유기(4.03W), DVD(3.72W), 전기밥솥(3.47W) 등 순으로 나타났다. 한 가구가 평균 23.9대의 가전기기를 쓰고 있고 이 가운데 대기전력을 소비하는 기기는 18.5대(77.4%)로 조사됐다. ●셋톱박스, TV보다 9.5배 소비 연구원 전력반도체연구센터 김남균 센터장은 “2003년에 처음 대기전력을 실측했을 때보다는 32%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대기전력에 따른 전기 낭비가 많아 전력난 시대를 맞아 가전기기 플러그 뽑기 생활화와 대기전력 차단 멀티탭 사용 등을 통해 대기전력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TV 셋톱박스, 반드시 전기선 뽑아야 하는 이유

    TV 셋톱박스, 반드시 전기선 뽑아야 하는 이유

    가정에서 각종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플러그를 꽂아둬 낭비하는 전력이 한해 41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전기연구원은 14일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 의뢰로 지난해 전국 105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1년 전국 대기전력 실측’ 결과를 발표했다. 대기전력은 전원을 끈 상태에서 전기제품이 소비하는 전력이다. 가전기기가 작동하지 않아도 전기를 소모해 ‘전기 흡혈귀’라고도 부른다. ●가구당 한달요금 2000원 더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가구에서 1년에 낭비하는 대기전력은 평균 209㎾h로 나타났다. 한 가구 총 전기량(3400㎾h)의 6.1%에 해당한다. 전국 1660여만 가구(2009년 전력거래소 기준)에 적용하면 대기전력은 3470GWh, 금액으론 4160억원에 이른다. 가구당 한달 대기전력은 17.4㎾h로 매달 2000원의 전기료를 더 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대기전력은 사무실이나 생산 현장을 제외한 수치다. 공공기관, 기업체, 산업체의 대기전력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금액의 에너지가 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가정에서 대기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제품은 셋톱박스(12.3W)로 TV(1.3W)의 9.5배로 조사됐다. 이어 인터넷 모뎀(5.95W), 스탠드형 에어컨(5.81W), 보일러(5.81W), 오디오 스피커(5.6W), 홈시어터(5.1W), 비디오(4.93W), 오디오 컴포넌트(4.42W), 유무선 공유기(4.03W), DVD(3.72W), 전기밥솥(3.47W) 등 순으로 나타났다. 한 가구가 평균 23.9대의 가전기기를 쓰고 있고 이 가운데 대기전력을 소비하는 기기는 18.5대(77.4%)로 조사됐다. ●셋톱박스, TV보다 9.5배 소비 연구원 전력반도체연구센터 김남균 센터장은 “2003년에 처음 대기전력을 실측했을 때보다는 32%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대기전력에 따른 전기 낭비가 많아 전력난 시대를 맞아 가전기기 플러그 뽑기 생활화와 대기전력 차단 멀티탭 사용 등을 통해 대기전력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왜곡한다. 종북세력들은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며, 이를 방해한 미국은 민족의 원수라고 규정한다. 누굴 위한 조국해방전쟁이었으며, 누굴 해방했단 말인가?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북한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 달 만에 남한의 92%를 적화했다.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북한군과 남한 내 좌익세력은 친미·친일·우익세력 등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당시 남한에는 세 부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12만 2000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이는 난징 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hetto)의 유대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다. 혁명의 주력군이라며 치켜세웠던 하층민도 마찬가지였다. 머슴은 악덕 지주의 앞잡이로, 노동자는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하급노동자는 지식계급의 주구(走狗)이자 무산 대중 착취에 앞장선 반동이라는 이유로 죽였다. 공산주의 원로인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으로, 서울시 인민위원장이자 김일성의 수족이었던 이승엽도 실정과 간첩 혐의로 숙청했다. 조국해방전쟁의 은총을 입은 자는 김일성을 민족의 영도자로, 어버이 수령으로 죽을 때까지 받들어 충성하는 자, 소위 ‘김일성 민족’뿐이었다. 적 치하에 놓인 수도 서울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 농지 분배의 대가로 시민들의 재산을 몰수했고, 젊은이는 의용군으로 끌고 갔다. 노인과 아녀자들은 전쟁지원사업으로, 저명인사는 체제선전용으로 북으로 끌고 갔다. 이때 피랍자가 12만명이라니 이산가족의 상처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대한민국 국민이 경상도의 좁은 모퉁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김일성은 “고양이 낯짝만 한 땅에 버티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하루빨리 남해에 쓸어 넣으라.”며 동족의 수장(水葬)을 다그쳤다. 당시 나이 어린 소년들까지 의용군으로 징집해 국군과 맞싸우게 했다. 형제가 마주 서서 총을 겨누게 한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잔인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인민을 해방하겠다며 저지른 조국해방전쟁의 실체다.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 중에는 북한군을 해방군이나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공산당 이념을 맹종해 자유대한민국을 침략한 적구(赤狗)이며, 같은 하늘에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북한군을 규정했다. 전쟁 발발 63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참화를 딛고 일어나 사상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10위권의 수출, 정보기술(IT)산업과 철강, 조선, 자동차는 세계 최고수준이며, 의학과 생명공학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러나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해야 할 식민지라고 호도하고, 종북주의자들은 앵무새처럼 이에 동조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전쟁을 ‘6·25 남침전쟁’으로 명명하고,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좌익세력들이 해방이란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상을 똑똑히 알리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 사회적 책임과 민주주의 한국 대기업은 가졌는가

    대기업은 아주 ‘기이한’ 존재다. 뭔 소린가 하겠지만, 이는 원래 체제수호를 목숨처럼 여기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자유시장의 조건은 다수의 공급자다.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경쟁해야지, 대기업 몇 개가 시장을 나눠 가져선 안 된다.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추종하고 싶다면 대기업 해체를 주장해야 한다. 실제로도 19세기 주식회사 제도 도입으로 거대 자본을 갖춘 대기업들이 출현하자, 가장 반발한 이들은 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대기업이 기업가정신을 말살해 결국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 주장했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2005)가 왜 ‘기업의 개념’(정은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써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에서야 거대한 대량생산 공장이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며, 우리의 대표적 제도이고, 우리의 꿈을 실현할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GM의 초거대 사업부들은 계획경제 부문과 대단히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닐 것이다. 기준가격 책정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주의적 경쟁’을 하는 러시아의 트러스트와 눈에 띄게 비슷하다.”고 말하는 뜻도 짐작할 수 있다.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대기업의 운영원리 그 자체에 이미 사회주의적 요소가 듬뿍 배어 있다는 말이다. 드러커의 특이점은 그럼에도 사회주의로 달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러커는 자유시장원리에 반하는 대기업이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보다 더 나은 점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책임은 필수이거니와 소련식 관료주의 적폐에 물들지 않은 기업 내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냥 기업은 이윤 내고 고용하고 세금 내면 그뿐이지만, ‘대’기업이라면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 대기업은 어떨까, 자연스레 비교된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텅텅 빈 장내… 장외선 ‘종북’ 입씨름

    텅텅 빈 장내… 장외선 ‘종북’ 입씨름

    종북 논란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치가 경건한 자세로 호국영령의 넋을 기려야 할 현충일 아침을 집어삼켰다.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둘러싼 ‘종북 의원 제명 논란’에 이어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에 대한 막말 논란’, 그리고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내정간섭이라는 민주통합당 이해찬 상임고문의 발언이 잇따르면서 정치권은 ‘국회의원으로서 사상의 자유의 한계’를 내세운 헌법적 가치 논란과 12월 대선 표심에 미칠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공학으로 뒤엉켰고, 19대 국회는 구태를 떨치지 못한 채 결국 그 출발을 뒤로 미뤘다. 법이 정한 국회 개원일인 5일 마땅히 열렸어야 할 19대 국회 첫 본회의는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 속에 무산됐다. 종북 논란의 핵심에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잠적 19일 만인 5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자신에 대한 제명 움직임을 겨냥, “유신의 부활을 보는 것 같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민주 인사를 사법살인했다.”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입법 살인하는 게 아니냐.”고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의 이해찬 의원도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박 전 위원장이 그들을 검증할 자격이 있나. 그렇게 오만한 분이 어떻게 대통령을 하느냐.”면서 “아주 악질적인 매카시즘”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전날 이해찬 의원이 북한인권법을 ‘내정간섭’이라고 한 데 대해 “세계인권선언과 헌법의 근본가치, 즉 인간의 기본적 가치는 국가 이전의 가치라는 대원칙에 대한 우리의 신념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탈북자에 대한 ‘막말 파문’ 논란을 일으킨 민주당 임수경 의원에 대해서도 “자유의 품으로 돌아온 형제 동포에게 변절자라고 하는 것은 가치의 중심과 기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고 질책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인권법과 관련, “미국이 미얀마 민주화법을 통과시킨 것이 효과를 발휘해 미얀마의 인권이 상당히 개선돼 가고 있고 그 결과 지금 미국과 미얀마가 사이가 좋아졌다.”면서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인권법을 잘 활용하면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박원호 교수는 “종북 논란이 국민감정과 관련, 폭발력이 있지만 사상 문제로 국회의원을 제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종북 논란을 통해서 (여당이) 상임위원장 하나를 (야당에) 덜 주기 위해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새누리당을 비난했다. 이지운·강주리기자 jj@seoul.co.kr
  • GM은 노조 때문에 망했다? 車~암 웃기는 소리!

    GM은 노조 때문에 망했다? 車~암 웃기는 소리!

    장하준의 각론 격이다. 장하준은 요란한 말로 치장한 IT강국론이니 금융허브론이니 하는 말들을 비판하면서 한 국가의 부를 생성하는 핵심은 결국 제조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 왔다. 저자도 딱 이 지점에 서 있다. 다른 어떤 그 무엇보다, 최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점수 따는 데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별 쓸모 없는 경제학의 비교우위론에 따라 제조업은 중국에 내주고 미국은 금융업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난 제조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전·현직 민주당 대통령들이 그토록 외쳐대는 제조업 중흥 구호에도 맞닿아 있다.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홍대운 옮김, 비즈니스북스 펴냄)를 쓴 밥 루츠(80)는 1963년 자동차업계에 투신한 뒤 GM, BMW, 포드, 크라이슬러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의 고위 임원을 두루 역임했다. 은퇴해서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던 2001년, 예순아홉의 나이로 GM의 구원투수로 다시 영입돼 부회장으로 맹활약했다. 그의 작품은 많지만 우리 귀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것을 꼽자면 BMW3 시리즈, PT크루저, 캐딜락CTS, 쉐보레 크루즈, 전기차 볼트 등이 있다. 그러니까 50년 세월을 자동차 공장에서 보낸, 우리 식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산증인’이고 미국식으로 ‘카 가이’(Car Guy)이자 ‘디트로이트 맨’(Detroit Man)이다. 책엔 2001년 이후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제목은 ‘콩알이나 세고 있는 사람’. 명문대 MBA를 배경으로 복잡한 통계수치를 정교한 그래픽으로 수놓은 현란한 파워포인트로 제시하는 데만 치중하는 이들을 비꼰 것이다. 엄청나게 세련되고 똑똑하지만 자동차라는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풍자다. 숱한 경험담들이 실려 있는데 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콩알이나 세는 사람들이 철옹성처럼 구축해 둔 GM 내부의 관료주의에 맞선 무용담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핵심 메시지는 그게 아니다. 저자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경제적 가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방법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1. 땅 속에서 뭔가 캐내는 것. 2. 땅 위에서 농작물과 나무를 키우는 것. 3. 그렇게 캐내고 키운 것들을 가지고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 이 세 가지 외에 다른 것들은 그저 이미 창출한 경제적 가치를 ‘거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딱 장하준의 목소리다. 그러니까 명문대 MBA 출신 천재들이 숫자 놀음으로 만들어 낸 최첨단 금융기법이니 마케팅 기법이니 하는 것들은, 견고한 제조업의 기반이 없으면 전부 무용지물이란 것이다. 그러면 견고한 제조업은 무엇인가. “일단 적정한 투자액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훌륭한 디자인과 성능은 필수다. 각 나라마다 정부 규제와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르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적절한 가격에 팔고 나서 남은 것은 재투자하면 된다.” 이리 간단한 것이 왜 그토록 복잡한 숫자놀음에 가려져 버렸을까. “경영학의 학문적 열등감”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물리학은 ‘신의 입자’를, 화학은 ‘물질의 복잡성’을 논하는데 경영학은 잘 만들어 팔아서 그 돈으로 재투자하라고만 말하려니 영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수학적 모델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거였다. 필요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과학적 학문을 하고 있어. 우리는 수학도 사용하지. 최적화 모델을 만들어 내서 컴퓨터까지 돌린다고!”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이를 “MBA 바이러스”, 혹은 직설적으로 “개똥싸기”라고 부른다. 자기 딴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그런 이들이 자리를 옮기고 나면 구석구석 싸질러 놓은 개똥만 눈에 띈다는 얘기다. 7장에 등장하는 GM 판금공정 기술자 조 스필먼의 얘기는 개똥에 치인 현장 노동자 사례다. 해서 저자는 노동자와 노조를 긍정한다. 미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 아니랄까봐 일본 토요타의 주장은 “지능적 언론 플레이”라고 부르고, 일제라면 환장하는 “좌파” 언론인과 지식인에 대해서는 미국 거대 자동차 메이커들에 대한 반감이 너무 뿌리깊다고 푸념하고, 특히 연비 나쁜 대형 SUV로 지구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환경론자들을 경멸하고, 시장논리 대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을 냉소한다. 몇몇 대목에서는 이 나이에, 이 경력에 내가 못할 소리가 뭐 있겠느냐는 투다. 이처럼 과감한데도 희한하게 노동자와 노조만큼은 긍정한다. 파업이나 일삼으면서 되도록이면 일 안하고 편하게 먹고 놀 궁리만 하는 무식한 노조 패거리 놈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회사를 마구잡이로 벗겨 먹다 보니 GM이 망했다고 한 줄만 써놨으면, ‘좌파’·‘환경단체’·‘정치인’ 씹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 환호작약하며 기립박수를 보낼 법도 한데 그런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저자는 딴소리를 한다. “국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게 되면 서비스도 나빠지고 의료의 질도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한 가지는 다른 나라에서는 건강보험비용을 사회 전체가 고르게 부담하는 데 비해 미국에서는 제조업체가 그 부담을 떠안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건강보험 부담이 없다는 것은 일본과 유럽 경쟁사들이 지닌 큰 강점이었다.” 그러니까 사회적 차원의 복지가 없으니 노동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회적 차원의 복지가 확충된다면 과도한 기업복지 요구가 사그라들면서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냉철하게 계산기를 두들길 줄 아는 자본가라면 복지국가를 두고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내치기보다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끌어안을 것이란 얘기다. 자동차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GM에 대한 이야기, 특히 1950~60년대 GM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디자이너 할리 얼, 빌 미첼 관련 에피소드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물론 현대·기아차, 그리고 지금은 GM으로 넘어간 대우차에 대한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가족 보는 앞에서 가장들 목숨 끊어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장과 부부싸움을 벌이던 가장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6일 오후 3시 25분쯤 부산 서구 서대신동 부산도시철도 1호선 서대신역에서 박모(30)씨가 철로에 뛰어들어 달리던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동갑내기 아내와 딸(5살)과 함께 본가에 다녀오던 중 아내에게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서대신역에서 같이 내려 이야기하다 열차가 들어오자 선로에 뛰어들었다. 경찰은 지난 2월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퀵서비스 일을 못하자 생활고에 시달리던 박씨가 사고 당일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본가에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다 처지를 비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날 오후 8시 30분쯤 경기 용인시 모 빌라에서 김모(42)씨가 부인(34)과 시댁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장모와 부인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자신의 가슴을 3차례 찔렀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시간여 만에 숨졌다. 김씨는 9년 전부터 부인과 별거하고 있었으며, 이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처가를 방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그러나 또다시 시댁 문제로 부인과 싸움을 하다가 “이혼할 거면 차라리 죽겠다.”고 말한 뒤 자해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부산 김정한·용인 장충식기자 jhkim@seoul.co.kr
  • “구의회 폐지는 헌법 위반”

    서울시 25개 자치구의회가 정부의 기초의회 폐지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구의회의장협의회는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2년 서울시 구의회 의원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구의회 폐지 지방자치제도 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의회는 지난달 13일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내놓은 서울시와 6개 광역시에 속한 69개 자치구와 5개 군 등 74곳의 지방의회 폐지안 등에 대한 철회를 촉구했다. 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자치구의회 폐지안과 자치구 변경안 등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무리하게 의결한 것은 국민적 합의도 없는 독선적 처사”라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를 말살하려는 반민주적 발상으로, 이는 지방자치의 정신과 기본가치를 훼손하는 몰염치한 만행”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정부의 개편안은 ‘지방자치단체에는 의회를 둔다’는 헌법 제118조를 위반한 것으로 헌정질서를 유린한 행위”라면서 “이는 지방자치법의 기본 이념을 묵살한 동시에 지방자치와 지방의회를 말살하고 과거 암울한 독재 시대로 회귀하는 것으로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이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임제(강동구의회 의장) 협의회장은 “기초의회 폐지에 대한 논의를 지방 대표와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은 채 결정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발전적 개편이 아닌 개악으로 지방자치의 정신과 본질을 훼손하는 정부의 개편안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지방의 균형적 발전과 선진지방자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25개 구의회 의장과 구의원, 시민 등 1200여명이 참석해 줄다리기, 협동 줄넘기, 배구, 승부차기, 100m 달리기, 400m계주 등 경기를 진행했다. 성 협의회장은 “당파를 떠나 한마음으로 지방의회 발전을 위해 풀어야 할 현안사항 등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의회별 정보를 교환하고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결혼뒤 분가 않고 부모곁에 ‘찰싹’ ‘스크럼 가족’ 는다

    결혼뒤 분가 않고 부모곁에 ‘찰싹’ ‘스크럼 가족’ 는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맞벌이 주부 안모(31)씨는 2010년 아이를 낳으면서 친정으로 들어갔다.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육아를 감당하기 힘든 데다 전셋값도 너무 올라 경제적인 필요에 따른 결정이다. “부모님이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틸 생각”이라는 게 안씨의 솔직한 속내다. 1~2인 가구 즉, 전자(電子·Electron)가족의 증가세가 뚜렷한 상황 속에서 취업난과 전·월세가의 급등세가 지속됨에 따라 결혼하고도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는데 눈칫밥이 대수냐.”는 태도다. 대가족제가 다소 변형돼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등장한 이른바 ‘스크럼(Scrum)가족’ 유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자료를 토대로 부모와 생활하는 기혼자 가구를 분석한 결과, 2000년 13만 8609가구에서 2001년 14만 2270가구, 2002년 14만 5411가구, 2003년 14만 8467가구, 2004년 15만 1804가구로 꾸준히 증가, 지난해의 경우, 16만 652가구에 달했다. 11년 만에 15.9%인 2만 2043가구가 늘어났다. 스크럼 가족의 확산은 경제적 이유가 크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조모(36)씨는 “전셋값 때문에 본가로 들어갈 작정”이라면서 “경제적인 문제 해결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며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부모가 고학력에다 재산이 많을수록 스크럼 가족의 구성이 비교적 활발했다. 지난해 60세 이상 인구 가운데 자녀와 함께 사는 비율은 ▲초졸 이하 45.9% ▲중졸 48.8% ▲고졸 49.7% ▲대졸 이상은 54.7%로 나타났다. 초졸 이하의 부모는 40.7%가 자녀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받았지만 대졸 이상은 11.0%만 도움을 받았다. ‘스크럼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가 아닌 이웃에 자녀를 두고 사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경제적 여유를 가진 부모들은 “가까운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입장인 반면 퇴직으로 소득이 준 부모들은 “상부상조라 좋다.”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자영업자 강모(63)씨는 “자녀라지만 며느리와 함께 살면 불편하다.”면서 “그냥 옆 동네에 사는 게 제일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충북 괴산에서 거주하는 정모(59·여)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되고 있다.”면서 “가족은 원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사회적 필요에 의한 동거인 만큼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과거 미풍양속에 따른 아름다운 가족 문화가 다시 꽃핀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김동현·배경헌기자 moses@seoul.co.kr [용어 클릭] ●스크럼 가족 가족 구성원들끼리 어깨동무하듯, 경제적으로 서로 돕는 새로운 가족의 유형. 직업도 갖지 않고 독신으로 부모에 얹혀 사는 ‘파라사이트(Parasite·기생)족’과 달리 경제적으로 부모와 공생관계를 이룬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다.
  • 아이비 “미움·수치심 다 끌어안고 제 이야기 진솔하게 불렀어요”

    아이비 “미움·수치심 다 끌어안고 제 이야기 진솔하게 불렀어요”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가수 아이비는 “있는 그대로 모습과 진솔한 음악으로 다가가고 싶다.”면서 카메라 앞에 섰다. 섹시 여가수의 대명사 아이비(30·본명 박은혜)가 돌아왔다. 2007년 2집 타이틀곡 ‘유혹의 소나타’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는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그 이후로도 1년여 동안 전 소속사와 소송을 겪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각종 사건을 뒤로 하고 새 앨범 ‘인터뷰’를 들고 2년 반만에 가요계에 돌아온 그녀를 만났다. →그동안 힘든 사건들을 연이어 겪었는데. -2007년 (스캔들) 사건이 있었을 때는 무조건 빨리 잊고 싶어서 잊었다면, 소송을 하게 되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된 것 같다. 그전에는 나만 상처를 받았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컸고, 내가 괴로우니까 대중이 원하는 속시원한 해명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연예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자질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백이 길었는데, 어떤 점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나. -열심히 하려고 하면 길이 막혀서 연예인으로서의 운은 안 따라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 안 된 것뿐인데, 내 삶이 실패한 것 같다는 좌절감이 있었다.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도 힘든 일이 계속 겹치니까 못되게 변하고 누군가 접근하면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부터 들었다. 무엇보다 연예인으로서 이미지가 한번 꺾이고 나니까 이후에 어떤 말을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들이 많았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악재들이 터진 것이 속상했을 것 같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됐나. -100% 벗어났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다. 인터넷 악플을 통해 여자로서 수치심을 겪었고, 아직도 공격하는 분들이 많다. 너무 개인적인 사생활이고 오래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나로 인해 힘든 분들께 상처를 줄 것 같아 조심스럽다. 물론 그런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승승장구 했을 테지만, 내 인생에 무슨 일이 닥쳐왔다면 이겨낼 수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미움도 받아들이고 인간적으로 겸손하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노래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댄스 음악이 아닌 발라드곡 ‘찢긴 가슴’을 타이틀곡으로 들고 나왔는데. -이번 앨범은 제대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신호탄이기도 하고, 음악적으로 힘을 빼고 한 템포 느리게 가고 싶었다. 진솔한 내 이야기를 해보자는 뜻에서 앨범 제목도 ‘인터뷰’라고 붙였다. 예전에는 내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크다 보니 차갑고 섹시한 모습이 부각되고, 안 좋은 사건까지 터지니까 뭘 해도 공감이 가거나 친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가수로서는 내가 겪은 어려움들이 내 인생의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내 또래 여성분들에게 공감대를 얻고 호감가는 여가수가 됐으면 좋겠다. →‘바본가봐’, ‘이럴거면’ 등 네글자 발라드 곡을 히트시켰다. 이번 노래가 기존의 곡과 다른 점이 있다면. -2, 3집에서 불렀던 기존의 발라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의외로 댄스곡을 잘 쓰는 작곡가에서 곡을 받았고, 듣자 마자 타이틀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음도 두 시간밖에 안 걸렸다. 창법은 바이브레이션을 자제하고 말하듯이 불렀다. 리듬이 있는 발라드라서 친구들은 2AM의 노래와 비슷하다고 했다. 자작곡도 많이 싣고. 내 입김이 많이 들어갔다.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해 엽기 표정 등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이미지 변신을 염두해 둔 것인가. -전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다. 원래 친구들과 엽기 사진 배틀을 할 정도로 털털하고 까불까불한 성격이다. 다만 예전의 나는 대형 기획사에서 관리를 잘한 연예인이었다. 내가 말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신비주의를 내세웠고 다른 가수들과 어울려 다닐까봐 차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던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내 자신을 많이 옭아맸지만, 이제는 새로운 소속사에서 둥지를 틀었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엽기 캐릭터로 비춰지는 것이 반감을 살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방송 활동을 재개한 소감은? 그동안 가요 시장도 많이 바뀌었는데. -첫 방송때 너무 떨려서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기가 다 빠져서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에서 잠이 들 정도였다. 올해로 데뷔 7년째이다. 공백으로 인해 활동 기간이 채 2년이 되지 않지만 내가 ‘유혹의 소나타’를 불렀을 때 데뷔한 소녀시대가 이젠 월드스타가 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많지만, 솔로라서 더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섹시 여가수의 계보를 잇는 ‘포스트 이효리’로 각광받았는데,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겠다는 욕심은 없나. -거기까지 가는 것 자체가 무리이고 욕심인 것 같다. 그때 이효리 선배님과 같이 활동해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가수로서 섹시하다는 것은 좋은 뜻인 것 같다. 연말에 4집에는 섹시 콘셉트의 댄스 음악을 준비하고 있다. 예전처럼 너무 거칠고 남자를 굴복시키는 것 보다는 은근한 섹시미를 한번은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화려한 퍼포먼스 못지 않게 가창력도 인정 받았는데, ’나는 가수다‘에 출연 제의가 온다면. -쉬면서 ’나는 가수다´를 즐겨 봤고, 가수가 매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부러웠다. 사실 지난해 ´나가수´ 의 출연 제의를 받고, 제작진과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전 아직 당당함이 부족한 것 같다. 같은 소속사 식구가 된 김범수씨는 자신은 하나도 안 떨린다고 하더라(웃음).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출연하고 싶다. 인순이처럼 오래 노래하는 가수를 꿈꿨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굴곡 속에서 하루하루 충실하게 됐다는 아이비. 그녀는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중심이 많이 잡힌 것이 가장 큰 컴백 준비라고 말했다. 다시 신인의 느낌으로 돌아가 고군분투하고 음악적 진심이 통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비상을 기대해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기고] 관광산업이 신(新)성장동력/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기고] 관광산업이 신(新)성장동력/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서울을 찾는 관광객의 약 70%가 중구를 방문한다. 남산, 명동,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명동 등 관광명소의 환경이나 편의성이 실상은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연간 서울 관광객 수가 880만명까지 늘어났지만, 호텔 등 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관광명소들이 도심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어 관광산업 효과가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기존의 관광명소를 대폭 정비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관광객이 편히 걷지 못할 정도로 밀집된 노점 등 장애물을 정리하고 무질서하게 난립한 간판을 조화롭게 개선하는 것이다. 아울러 명소마다 독특한 축제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야 한다. 한곳에 몰려 있던 관광지를 도심 전역으로 확장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수익이 지역 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명소 만들기 사업’이다. 곳곳에 있는 명소를 관광자원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는 것이다. 600년 역사를 지닌 고도 서울의 중심인 중구에는 알려지지 않은 명소들이 즐비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도 그중의 하나다. 대부분 사람들은 충무공 탄생지를 충남 아산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충무공은 1545년 지금의 중구 인현동 1가 31의 2번지 일대에서 태어나 20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85년 설치된 작은 표지석 하나가 명보극장 앞에서 외로이 이를 일러준다. 충무공 생가 기념공간을 꾸며 충무공의 나라 사랑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세계 3대 해전인 한산도 대첩 이야기를 전시하게 되면 훌륭한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국내 최대 순교성지인 서소문공원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조선시대 저잣거리로 19세기 한국의 성인 44분이 순교한 서소문공원은 공원 한쪽으로 지나는 경의선 철로 등으로 접근이 쉽지 않다. 성인 한 분만 태어나도 성인 이름으로 도시 전체를 기념하는 세인트루이스, 샌디에이고 등 외국 사례와 비교된다. 먼저 공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철도를 복개해 도심 지역과 연결하고, 독창적인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려고 한다. 현재 개발 중인 서울역 국제컨벤션센터와 연계하고 공원과 지하공간을 활용해 기념비적인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또한 인근에 있는 국내 최초의 성당인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성지, 절두산 성지까지 연계하면 세계적인 순례 관광코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양 서민들의 시신이 나가던 광희문 주변을 정비하고, 신당동 서울성곽 길을 문화예술거리로 조성하며, 을지로 주자소 터를 기념공간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가족들과 생활한 신당6동 본가를 중심으로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에도 역점을 두려고 한다. 이렇게 지역의 숨어 있는 명소를 개발함으로써 도심 전체를 외국 관광객들로 넘쳐나도록 만들려고 한다. 100년 앞을 내다볼 때 관광산업이야말로 우리 구의 신성장동력이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조광조(호 靜庵·정암, 시호 文正·문정)의 일생은 짧고 격절(激切)했다. 1519년(중종14) 겨울, 전라도 능주에서 사약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 젊은 선비가 남긴 일화들은 금세 신화가 되었고, 후세는 그를 성리학의 순교자로 기억하였다. ●절명시 전승되는 그의 최후 장면은 장엄한 서사다. 그때 조광조는 서울에서 내려온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정중히 맞이하고, “임금께서 죽음을 명하셨다면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이다.” 라며 죄명을 물었다. 그런데 가져온 명령서에는 죄명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을 대접하는 도리가 이렇게도 초라하단 말인가.” 라면서 “당장에 상소를 올려 바로잡아야 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관한 일이라 그만둔다”고 훈계했다. 사약을 마시기 전에 조광조는 시 한편을 읊었다. “나라님 사랑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소(愛君如愛父). 나라일 걱정 내 집안일처럼 걱정하였소(憂國如憂家). 밝은 해가 세상을 내리쬐시니(白日臨下土), 밝고 밝게 비추어 내 마음 아시리라(昭昭照丹衷).” 이 서사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그는 만고 충신이며, 지순(至純)한 도덕군자이고, 세사를 초탈한 영웅이란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조광조에 대한 집단기억으로 정착되어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끝없는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기묘사화와 후세의 평가 정치가 조광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쉬움으로 일관되었다. 학문이 완숙되기도 전에 정치에 뛰어들어 과격한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으니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이이(1536~1584, 호 栗谷·율곡)는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하기를, 시기가 성숙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라고 말했다. 조광조를 쓰러뜨린 것은 기묘사화(己卯士禍)였다. 그 시작은 1519년 11월 16일(음력) 아침이었다. 중종은 남곤, 심정 및 홍경주와 함께 정치적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사로이 붕당을 지은” 죄로 조광조와 김정, 김식 및 김구 등 4명을 주범으로 몰았다. 윤자임, 박세희, 박훈 및 기준 등도 부화뇌동한 혐의로 엮였다. 붕당의 몸통으로 거론된 이들 8명은 당년 20~30대로,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각지로 유배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문제가 된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조광조는 “나라의 병통이 이원(利源)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의 명맥을 영구히 새롭게 할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다시피 사적 ‘이익’의 추구는 성리학의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종반정 때 117명이나 되는 신하들이 마구잡이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봉된 것이 조광조 등의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가 있는 76명의 공신칭호를 박탈하였다. 공신세력은 이에 분노했고, 중종은 반색하였다. 조광조 등이 숙청의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이 가려져 있었다. 첫째, 사건의 총지휘자가 중종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훈구파의 우두머리라는 남곤이 실상은 공신이 아니고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셋째,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성격은 다양해, 기준과 권전 등의 급진파가 있었나 하면, 김안국·김정국 형제 등 소극적 지지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조광조의 노선이 실은 선배 박경(?~1507)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조광조는 박경의 후계자 1507년(중종2) 박경 등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조광조를 비롯해 그 동지 김식, 공서린 및 조광좌 등이 연루되었다. 주모자 박경은 사림파의 종장(宗匠) 김일손(1464~1498) 계열의 학자였다. 서얼이었던 박경은 정국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변란을 꾀했으나 실패하였다.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박경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중용’(中庸)‘대학’(大學)을 숙독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성리학의 근본가치를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향리 선거법’ 즉, 추천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관행에 구애되지 않고 인재를 발탁할 것, 특히 서얼과 종친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았다. 청년 조광조 등은 박경의 견해에 공감하였다. 서얼과 종친에 관한 부분을 뺀 나머지 사항들은 고스란히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중심축이 되었다. 한마디로 조광조 등은 박경의 뜻을 계승하여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조광조의 도학적 리더십 조광조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 데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우선 그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법 집행이 공정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지지가 컸다. 오죽했으면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자 한성부 향도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겠는가. 그때 1000명이 넘는 유생들도 대궐에 난입해 조광조의 구명을 요구했다. 조광조는 소통에 능하였고, 그래서 동지들의 신뢰가 대단했다. 특히 김정 및 한충 등과는 큰 이불과 긴 베개를 펴놓고 함께 잠을 잘 정도로 가까웠다. 그들의 우정은 죽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다. 또한 조광조는 정치적 명분이 뚜렷했고, 모든 일을 끝까지 정열적으로 밀고나가는 사람이었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 역시 격렬했다. “벼슬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중요한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어, 겉으로는 칭찬하나 속으로는 욕하였다.”고 할 정도였다. 조광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찬반 양편으로 갈라섰다. ●왕이 최고의 성리학자라야! 조광조는 요순시대의 재현을 확신했다. 1515년(중종15)의 증광문과시험 시권(답안지)에서 그는,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을 통해 황금시대를 복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펼친 이상(理想) 정치운동의 핵심은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있었다.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조광조는 이런 주장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왕을 만인의 스승, 즉 군사(君師) 또는 철인군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광조는 중종에게 ‘근독’과 ‘명도’를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상정치가 구현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훗날의 예를 보아도 ‘군사’를 자처한 당대 최고의 석학 정조 때에도 요순시대는 재현되지 않았다. 그야 어떻든 조광조는 이상정치의 구현을 위해 중종에게 대학과 중용 공부를 강조하였다. 특히 대학을 중시하였다. “비록 대학 한 권밖에 없다 해도 (왕은)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광조는 ‘소학’도 높이 평가했다. “세종 때는 오직 ‘소학’의 도(道)에 마음을 썼으므로, 그 책을 널리 반포하였습니다.”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희를 비롯한 송나라의 성리학자들도 이미 ‘소학’과 ‘대학’이 표리관계임을 말하였다. ‘소학’은 성리학적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교과서요, ‘대학’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중종 물론 조광조 등이 이념에만 매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실제로 공신세력을 약화시켰고,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약을 보급하는 등 몇 가지 개혁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기묘사화라는 역풍에 휩쓸려 좌초하였다. 조광조 등은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세를 뒤엎지 못하였다. 왕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종이었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왕은 누구든 불신하였다. 우선 자신을 추대한 반정공신들도 믿지 못했다. 사림파를 요직에 임명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림파라고 해서 중종이 끝까지 총애할 리가 없었다. 중종은 4년간의 정치적 밀월 끝에 결국 조광조를 배신하였다. 처음부터 중종에게는 이상정치의 구현이라는 바람이 없었다. “왕은 (경연에서) 몸이 피로하고 괴로워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고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용상(龍床)에서 퉁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조광조와 김식 등은 중종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종이 ‘소인’(小人)들에게 쏠리는 날이 올 것을 예측하였다. 특히 조광조는 자신들이 붕당(朋黨)을 만든 죄로 일망타진될 것을 내다보았다. 이러한 위험을 짐작하고서도 왕도정치의 길을 계속 걸어갔으니, 그들은 이상을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조광조의 유산 중종이 공신들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구체화한 것은 1512년(중종7년)쯤이었다. 부왕 성종이 사림파를 등용했던 것처럼 중종도 새 인물들을 찾았다. 그에 부응해 이조판서 안당이 조광조를 추천했다. 조광조는 동지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이성동 등 급진파는 삼정승까지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개혁을 외쳤다. 왕과 공신들은 그들을 혐오하였다. 1519년 겨울, 그들은 사화를 일으켜 이상주의자들을 내쫓았다. 그러자 낡은 정치가 재연되었다. 중종은 외척과 권신들을 들였다 내쳤다하며 세월을 허비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선비들은 ‘불나비’ 조광조를 잊지 못했다. 그들은 조광조의 뒤를 이어 성리학 지상주의의 깃발을 더욱 높이 세웠다. 마침내 백인걸 등의 노력으로 조광조는 문묘에 배향되어 조선 선비들의 영원한 아이콘이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여기저기서 굉장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 본영인 미국 경제가 벌써 몇 년째 신음소리를 낸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아예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사회의 현안인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문제 또한 신자유주의의 여파다. 그래서 지금은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고식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의미의 새로움이 요청된다. 우리가 조광조의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다. 21세기의 그 개혁사상가는 구체제의 귀결인 지배와 종속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공존공생의 평화공동체를 일으킬 것이다. 착취와 오염으로 병든 생태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그의 출현을 기다린다. 백승종(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 소리친다고 침묵한다고 민주주의가 옵니까 !

    소리친다고 침묵한다고 민주주의가 옵니까 !

    황제 법학자, 나치즘을 옹호한 극우 법학자라 불리는 카를 슈미트(1888~1985)를 ‘급진 정치사상가’로 되불러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몇 해 전 “예외상태에 대해 결정하는 사람이 주권자다”라는 명제로 상징되는 슈미트 결단주의 사상의 핵심 ‘정치신학’(그린비 펴냄)이 나온 데 이어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카를 슈미트 지음, 나종석 옮김, 길 펴냄)이 번역되어 나왔다. 원본은 1923년 출간됐다. 경제사에 대해 언급하는 많은 책들이 이 시기를 경이롭게 다룬다. 1차세계대전 패배 이후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독일이 신음하던 시기라서다. 물가가 어찌나 팍팍 오르는지 시장에서 빵 하나 사는데 수백억 마르크를 들고 가야 하고, 어찌나 잽싸게 오르는지 맥주집에 들어가 가격을 확인하고 맥주 한 잔 마시고 나오는데 이미 인상된 가격표가 새로 붙어 있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는 때다. 슈미트가 절망한 것은 어려운 상황 때문이 아니다. 이겨낼 수 있다는 전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독일 의회는 오직 공개적 토론에 의한 합의라는, 공허한 자유주의적 이상에 매달려 있어서다. 슈미트는 자유로운 토론을 아무런 결론으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영원한 대화”라 부르며 비웃는다. 의회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은 정치적 낭만주의, 무기력한 나르시시즘쯤으로 여긴다. 해서 슈미트는 책 초반부에서 당대 의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지금 읽어봐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모든 공적인 업무가 정당과 그 추종자의 강탈과 타협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정치는 엘리트가 하는 일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거리가 멀고 상당히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는 꽤 천한 일이 되었다는 상황을 의회주의가 이미 초래했다.” “오늘날 인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커다란 정치적 경제적 결정은 더 이상 공개 연설과 반대 연설을 통해 확보된 상이한 의견들의 균형의 결과도 아니고 의회에서의 토론의 결과도 아니다.” “정당이나 정당연합의 소위원회와 최소인원에 의한 위원회가 폐쇄된 방 뒤에서 은밀히 결정을 내리고, 대자본가 이익단체의 대표자들이 최소인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처리하는 것은 수백만명의 일상생활과 운명에 대해 아마 정치적 결정보다 훨씬 중요할 것이다.” “마침내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신문과 정당과 자본 사이의 결합을 인식하게 되었고, 정치는 단지 경제적 실제의 그림자로서만 취급하게 됐다.” 그렇다고 이 책 자체에서는 나중에 드러나게 될 나치즘에 대한 지지의 징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의회를 비판한 초반부에 이어 볼셰비즘과 파시즘을 차례로 검토하는데, 오히려 파시즘을 더 가혹하게 비판한다. 슈미트는 볼셰비즘이나 파시즘 같은 어처구니없는 대안들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둘 것이냐, 한가하게 토론이나 하자고 말할 때냐고 되묻는 쪽에 가깝다. 슈미트는 이후 영원한 대화에 빠져 있는 의회 대신 강력하고 권위적인 대통령제를 지지하게 된다. 그 대통령직을 총통으로 바꿔 낼름 차지한 것이 히틀러였다. 이는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기초작업에 참여한 막스 베버(1864~1920)와도 비교해 봄 직하다. 베버 역시 독일정치의 혼란상을 겪으면서 1919년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따르는 머신(강한 결속력을 가진 당파적 추종자들)을 대안으로 내걸었다. 만약 베버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히틀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슈미트와 같았을까, 달랐을까. 슈미트를 두고 “베버 전통을 계승한 사회철학자”라는 평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번 곱씹어 볼 문제다. 슈미트는 원래 보수주의의 대부로 꼽힌다. 나치즘에 복무한 이력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에 참여한 헌법학자 한태연·갈봉근이 슈미트주의자로 꼽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을 화두로 붙잡은 급진좌파 사상가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의회에 대한 그의 강력한 비판은 정기적으로 선거해서 지도자 뽑고 있으니 우리도 어쨌든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나르시시즘을 깨부수어 주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우리와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다. ‘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환멸’을 내세운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겪고 있어서다. 묘하게도 결과는 역설적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들이 정치에 거리두는 대통령을 뽑았음에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버렸다. 말 그대로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다. 2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홍상수 영화 관심…날 필요로 할까요”

    “홍상수 영화 관심…날 필요로 할까요”

    그가 세상에 얼굴을 내민 건 196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을 통해서다. 불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그는 프랑스영화 ‘슬로건’에 캐스팅되면서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 세르주 갱스부르를 만났다. 열아홉에 영화음악가 존 배리와 결혼을 했던 그가 갱스부르와 세기의 연애를 하면서 요즘으로 치면 ‘브랜절리나 커플’(브래드 피트와 앤절리나 졸리 부부)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갱스부르와 함께 불렀던 ‘주 템므… 므와 농 플뤼’(Je T’aime… Moi Non Plus)는 신음에 가까운 야릇한 목소리 탓에 방송금지를 당했다. 그래도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샹송이나 영화에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하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1~2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버킨백’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것. ●2004년 이후 8년만에 한국무대… 22일 악스코리아서 가수 겸 배우, 모델, 영화감독, 자선·구호운동가 제인 버킨(66)의 얘기다. 오는 22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란 제목으로 내한공연을 한다. 2004년 이후 8년 만이다. 버킨은 공연기획사와의 이메일인터뷰에서 “2004년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 친구들이 ‘한국인들은 지중해 연안 사람처럼 밝고 친절하고 유머감각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니,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면서 “당시 한국팬이 (불어로 된) 갱스부르의 곡들을 영어로 번역해 다른 관객들이 가사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줬는데 그건 영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일이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수 이전에 배우로 먼저 알려졌다. 최근까지 감독 겸 각본가,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궁금했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이사벨 위페르처럼) 한국 영화를 하고 싶지만 난 너무 늙었을 것이다. 다만 좋은 한국 영화라면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을 것도 같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 그런데 그가 날 필요로 할까.” ●감독·배우로 활동… “韓영화라면 리스크 짊어질 수 있어” 이번 공연 세션은 일본 최고 연주자들이 참여한다. 지난해 대지진 한 달 뒤쯤 도쿄를 방문했던 그가 자연스럽게 자선공연을 구상하면서 시작된 투어이기 때문. 동시에 갱스브루와 버킨이 함께한 기념비적 앨범 ‘이스토와 드 멜로디 넬슨’(Histoire de Melody Nelson)의 발매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 전석 11만원. (02)6339-123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러 대선D-4 모스크바는 지금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러 대선D-4 모스크바는 지금

    “푸틴이 만든 지금 러시아는 꼭 ‘포템킨 마을’ 같다.” 2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의 아르바트 거리. 서울 인사동과 닮은 전통 거리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세르게이(가명)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공과(功過)를 역사에 빗대 설명했다. 포템킨 마을. 러시아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가 1787년 새로 병합한 크림반도 시찰을 뱃길로 나서자 이 지역을 담당하던 그레고리 포템킨 장군이 빈곤한 마을 풍경을 감추려고 강변을 따라 잘 정돈된 ‘가짜 마을’을 꾸몄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얘기다. 대선을 닷새 앞둔 수도 모스크바는 차분해 보였다. 이틀 전 푸틴의 대통령 3선에 반대하는 야권 지지자 3만여명(경찰 추산 1만 1000명)이 시내 한복판에서 벌였던 ‘인간띠 시위’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위대가 서 있던 곳에는 겨울을 보내기 아쉬운 듯 진눈깨비가 내렸고 전통 털모자인 ‘샤프카’를 쓴 시민들만 걸음을 재촉했다. 기껏해야 집권 정의러시아당 후보인 푸틴 총리와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출신인 미하일 프로호로프의 지지를 호소하는 광고판만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상기해줄 뿐이다. 평일인 이유도 있을 테다. 싸늘한 듯 보이는 모스코비치(모스크바 시민)들의 표정. 그러나 그 뒤에는 대통령 복귀를 앞둔 ‘차르’(황제) 푸틴에 대한 희망과 분노의 이중주가 흐르고 있었다. ●“3선 반대” 시위대 자리엔 진눈깨비만 푸틴식 정치를 마뜩잖게 여기는 목소리는 분명히 감지됐다. 핵심세력은 모스크바 등 대도시의 ‘창조적 중산층’인데, 예술인·대학교수와 연구원·교사·의사·언론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물론 일부 사무직 근로자까지 반(反)크렘린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극동의 프리모르예 주의 푸틴 지지율이 20~30%대로 특히 저조하다. 때문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8일 그 책임을 물어 주지사를 전격 교체했다. 하지만 이들도 ‘푸티노믹스’(Putinomics·‘푸틴’과 ‘경제학’의 합성어) 덕에 러시아 경제가 부흥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푸틴이 언론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등 권위주의 통치를 한 탓에 민주주의의 근본가치가 훼손됐다고 비판한다. ‘러시아의 겉은 근사한데 속은 상했다.’는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어느새 일상이 돼 버린 수만명이 참가하는 주말 반푸틴 시위와 푸틴 반대 현수막 등에 대해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4~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여전히 ‘변화’보다 ‘안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 66%에 이르는 푸틴의 지지율(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첸트르가 24일 공개한 수치)에 러시아인의 속마음이 드러난다. 벌써 4~5번째 출마하는 야권 후보들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모스크바에서 사무직 직장에 다니는 빅토리아(여·29)는 “시대가 바뀌었는데 계속 출마하는 후보들은 공약이 한결같다. 또, 프로호로프는 국정을 사업가적 시각에서 봐 (만약 그가 집권하면) 어떤 상황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푸틴을 선호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 “재벌출신에 국정 맡기는 것도 불안” 푸틴 집권 이전인 1998년, 러시아는 국제투기자본의 유출 탓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었다. 2000년 이후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과 고유가 등이 맞물려 ‘집단적 수모’를 당했던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준 기억은 러시아인들의 뇌리에 뚜렷이 박혀 있다. 반발 속에서도 푸틴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받아들이는 러시아인의 태도를 역사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사방이 뚫린 대초원에 위치해 외세 침입이 잦았던 데다 추운 날씨 탓에 생존 자체가 급했다. 이 때문에 안팎의 위험으로부터 방어막이 돼줄 절대권력에 맞서기보다 받아들이는 삶을 택해 왔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말한다. 러시아 전문가인 기연수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수난과 단절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한곳으로 모아 끌고 가는 것이 역대 러시아 통치자들의 숙명적 과제”라고 평가했다. 푸틴에 대해 찬반을 달리하는 모스코비치들이지만 한 가지 동의하는 사실이 있다. 푸틴이 다시 크렘린궁(대통령 집무실)에 복귀해 향후 6년간 러시아를 이끌 것이 확실해졌다는 점이다. dynamic@seoul.co.kr
  • “與 부산지역 와일드카드… 어디서든 싸울 준비”

    “與 부산지역 와일드카드… 어디서든 싸울 준비”

    4월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낙동강 전선’에서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과 측근의 혈투가 벌어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22일 부산 북강서을 후보로 확정된 가운데 새누리당이 전략 공천을 통해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이곳에 내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 대표는 과거 문 목사의 측근으로, 1990년대 재야단체 ‘통일맞이’에서 정책연구원으로 함께 통일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당초 서울 관악을 출마를 선언했던 하 대표는 당 인재영입분과의 제의에 따라 지역구를 부산으로 돌려 지난 20일 비공개 면접심사를 끝냈다. ●통일운동… 열린북한방송 대표 하 대표는 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새누리당에서 전략 공천으로 영입하겠다는 제안이 와서 받아들였다.”면서 “제 삶의 의미가 부각되는 의미 있는 선거를 할 수 있는 지역이면 어디에서든 싸움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 내부에서 부산 지역 와일드카드로 검토하는 것 같지만 아직 특정 지역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문 최고위원에 대해선 “정치인으로서 국민과의 소통 능력 등 훌륭한 자질을 갖췄지만 한국 사회를 아직도 30년 전처럼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일운동 당시 문 최고위원은 영화에 매진해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고 밝혔다. 부산 북강서을 현역 의원으로 공천을 다투게 될지도 모를 친박(친박근혜)계 새누리당 허태열 의원에 대해서는 “3선을 지냈고 경륜과 노련미가 있다. 허 의원이 지역구 후보로 공천되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돕겠다.”고 밝혔다. ●“문성근, 30년 전 사고에 갇혀” 그는 새누리당의 위기에 대해 “국익이 아닌 사익을 앞세우다 보니 갖가지 비리가 터져서 당의 근본 정신 회복이 시급하다. 국민과의 소통에도 소홀했다. 당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통일운동에서 반북운동으로 전향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인권, 통일이라는 제 기본가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면서 “가장 관심을 두는 탈북자 문제는 당선되면 중국 내 인적 채널을 활용해 잘 해결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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