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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나무 다리, 세상과 이어주는 영주 무섬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나무 다리, 세상과 이어주는 영주 무섬마을

    # 시인 조지훈의 흔적, 폭 25cm 외나무 다리 그대로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조지훈의 시, 별리(別離) 중에서> 영주의 무섬마을을 노래한 조지훈(1920-1968)의 시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로 시작되는 <승무(僧舞)>를 비롯하여 <고풍의상>, <봉황수> 등 우리 귀에 꽤나 익숙한 작품을 지은 조지훈은 혜화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에 다녔다.당시 동학(同學) 친구였던 김용진의 본가가 영주 무섬마을이어서 방학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 그리고 인연은 이어진다. 1939년 독립운동가였던 무섬마을의 선비 김성규의 장녀 김난희에게 장가를 든다. 스무 살 앳된 신랑은 사랑을 찾아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예나 지금이나 양반마을이 아니라 선비마을이라 불리는 영주의 무섬마을, 그리고 외나무 다리다.우선 경상북도 영주로 가는 길부터 만만치는 않다. 서울 시내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중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중앙고속도로로 길을 바꾼 뒤 영주IC로 빠지고도 한참이나 길을 가야 드디어 문수면 수도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곧이어 무섬마을로 안내하는 다리가 나온다. 오직 튼튼하게만 지은 듯한, 1983년에 들어선 총연장 180m, 폭 5.5m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橋)다. 무섬마을 안으로 이제야 접어든다.# 오지(奧地) 무섬마을,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물돌이 마을 무섬마을은 경상도에 위치한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마을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지형) 중의 하나다.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하여 예천의 회룡포 등이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들인데, 그 중에서도 무섬마을은 마을 깊이로는 첫 손에 꼽힐 만큼 내륙 중의 오지로 불렸다. 오죽하면 ‘물 위의 섬’이라 불러 ‘무섬’을 마을이름으로 지었을까? 낙동강에서 옆으로 뻗쳐 흐르는 내성천과 영주천이 무섬마을에서 합해져 인근의 태백산과 소백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가고, 마을 뒷면으로는 숲이 우거지고 앞으로는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하니 한 번이라도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온 사람이라면 고즈넉한 마을 풍광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무섬마을은 1666년 반남(潘南) 박씨인 ‘박수’가 마을에 터를 닦은 후 예안 김씨 가문이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입향조(入鄕祖)인 박수 어른이 만든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해우당 고택,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특히 폭 20~25cm, 높이 60cm로 만들어진 외나무다리는 수도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350년 동안이나 무섬마을과 세상을 이어주었다. 지금의 외나무다리는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무섬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여전히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무섬마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을 오전에 방문한 뒤에 천천히 오후 반나절을 쉬고 싶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특히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라면 3. 가는 방법은? -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 일반 버스 20, 무섬마을 행 4. 감탄하는 점은? - 좁디 좁은 외나무다리와 비껴 다리, 조선 중기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생각보다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것은? - 만죽재, 해우당, 각종 한옥들. 외나무 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영주 축협 한우프라자, 묵호문어집, 명동감자탕, 일월식당, 약선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musum.kr/home/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부석사, 소수서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무섬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그러하기에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생활의 공간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곳이다. 조용하고 평온한 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데스크 시각] LTE와 어벤져스 엔드게임/홍희경 산업부 차장

    [데스크 시각] LTE와 어벤져스 엔드게임/홍희경 산업부 차장

    ※이 칼럼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08~2019. 아이언맨 시리즈로 포문을 연 마블의 어벤져스가 게임을 마쳤다. 해리포터에 이어 생애 동안 두 이야기의 여정을 시작부터 완결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드디어 제임스 본드와 스타워즈를 지닌 세대가 부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컴퓨터그래픽(CG)이 다 하는 영화일수록 현실 반영이 중요하다. 해리포터를 보다 피할 수 없었던 성장통의 순간을 떠올렸을 때, 어벤져스에서 이해 간 다툼이나 명분 간 충돌 같은 현실이 겹칠 때 판타지 영화는 현실을 재생해 낸다. 22편으로 쌓아 올린 시리즈 동안 어벤져스들은 로키·타노스 같은 진짜 빌런(악당)뿐 아니라 정치·사회·여론이 만드는 빌런 같은 상황과 대면했다. 전투가 없을 때 어벤져스는 의회 청문회가 국제협약 회의장에 섰다. 이런 논쟁장에서 정의 대 악, 선인 대 악인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도 청문회나 유엔 회의장에서 모두를 납득시킬 결론은 기어코 나오지 않았다. 빌런 같은 상황은 어벤져스 간 반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성조기 의상을 입은 캡틴아메리카 대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슈트를 입은 아이언맨 간 갈등은 현실 투영의 절정을 이뤘다. 내셔널리즘의 상징인 캡틴아메리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상한 기술혁신 역량을 지닌 자본가 모습의 아이언맨, 둘은 새 제도를 만들 때마다 부딪쳤다. 어벤져스가 공공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진영을 나눠 전투하던 시빌워가 제작될 지경이었다. 특이점은 이들이 서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인식, 서로의 능력을 제어하는 쪽을 선택한 데 있다. 시빌워에서 아이언맨은 어벤져스의 활동에 통제가 필요하다고, 캡틴아메리카는 어벤져스를 통제하는 권력의 오용을 막을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자본가가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군인이 정치적 통제의 불온함을 고백하는 꼴이다. 이들의 철학적 대치는 시리즈 마지막 편까지 답을 구하지 못했지만 영화는 나름의 은유로 결론을 봉합했다. 내셔널리즘은 이미 많이 낡고 쇠약해졌음을, 자본주의 붕괴는 자본이 끌어들인 자원이 극대화된 순간에 닥친다는 금융위기의 교훈이 십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함이 엔드게임에서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다른 어벤져스의 은유도 중요하다. 애 셋을 둔 가장인 호크아이는 사회적·심리적 기반을 잃게 만든 세력을 대상으로 중산층이 얼마나 강하게 대항, 복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왕의 계승자로 낙점됐던 토르는 힘이나 권력 의지, 선대가 부여한 명분처럼 과거에서 비롯된 리더십을 여전히 갖췄음에도 시대의 변화를 이유로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에게 기꺼이 권한을 넘긴다. 마찬가지로 어벤져스의 후계자로 낙점받을 이들은 백인·남성 일색에 저마다의 신념을 정체성으로 삼았던 1세대와 다르게 흑인·여성·유연한 신념을 특징으로 갖추는 분위기다. 냉전의 상징 제임스 본드 이후에도 영화에선 영웅이 탄생했다. 금융위기 이후 현실은 여전히 방향을 상실한 채이지만 영화는 ‘복수’라고 이름 붙였던 영웅들을 퇴진시키며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시켰다. 새 세대 영웅의 탄생은 기약 없이 멀었으나 지금껏 방향을 찾으려 노력한 영웅들의 기꺼운 퇴진을 세대교체의 시작점으로 삼은 덕에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우아한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서 5G(세대 이동통신)가 변화시킬 시대는 LTE(4세대 이동통신)의 종언에서, 포용하는 경제는 약탈식 경제체제의 종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생산적 정치는 대결적 정치의 종언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지 뒤집어 생각해 봤다. saloo@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노동자 인문학’은 왜 없는가

    [황규관의 고동소리] ‘노동자 인문학’은 왜 없는가

    노동절의 발생 기원이기도 한 1886년 5월 1일의 미국 노동자 파업에는 역사적 맥락이 꽤나 길게 그리고 복잡하게 드리워져 있다. 가까이는 1877년의 공황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이 있었다.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파업 노동자와 주 방위군의 무력 충돌에 이어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랐다. 특히 피츠버그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 때는 필라델피아 군대까지 개입해 충돌이 벌어졌는데, 군대에 의해 사망한 노동자가 10여명이나 됐다. 그런데 대부분 철도 노동자가 아니라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이는 한층 더 격렬하고 규모가 큰 저항과 봉기를 야기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노동자당을 중심으로 총파업이 일어났다. 조선소 노동자 출신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인용한 데이비드 버뱅크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1877년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만큼 오늘날의 표현대로 하자면 노동자 소비에트의 통치에 근접했던 경우는 없다.” 마르크스도 미국 노동자 파업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패배’를 예감했지만, 결코 비참을 자신이 말한 패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워드 진은 1877년을 “19세기의 나머지 기간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고 적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경제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는데, 록펠러, J P 모건, 카네기 등등의 대자본가가 등장한 때가 대체로 이 시기와 맞물린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성장은 어디에서나 ‘핏빛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당시 미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도 사실은 노동자들의 철저한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카를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자본주의 국가와 거의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질서 유지라는 중립성을 가장하면서 부자들의 이해에 봉사했던 것이다”라고 하워드 진은 말했다(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국가의 국가권력을 ‘부르주아 위원회’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배경 위에서 1886년 5월 1일 미국노동연맹은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물론 5월 1일이 전 세계 노동자들의 날로 의미화된 것은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있었던 평화 집회에서 경찰을 겨냥한 의문의 폭탄 사건으로 인해 엉뚱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체포돼 사형당한 일 때문이다. 체포된 8명 중 4명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한 명은 입에 다이너마이트를 물고 자살했다. 1886년의 투쟁은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를 뉴욕시장 선거에서 급부상시키는 정치적 힘으로 연결됐지만, 결국 뇌물과 강요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한국 노동운동이 역동성을 잃은 지는 꽤 됐다. 일차적으로는 역사적 조건이 그것을 강제했다. 여러 사회적 지표는 노동자의 생활이 나아진 것을 나타내지만, 자본주의 초기에 강제됐던 노동자의 희생이 자본주의가 고도화됐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수탈과 착취가 멈추면 함께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도리어 그것을 은폐시키는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경제와 함께 발전시켰다.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은 그대로인데, 그것이 은폐되자 정신이 점점 황폐화되고 말았다. 은폐는 위장과 억압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무의식을 비틀어 영혼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경제적, 정신적 자유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한다면, 생존에 대한 불안이 불러들인 정신의 황폐화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그렇게 되면 자유란 것도 단지 소비할 자유에 지나지 않게 되며 민주주의는 우리를 ‘무리’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그것을 선거 때마다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경제적 차원의 ‘가치’ 문제든 아니면 철학적·생태적 차원의 ‘의미’ 문제든 우리에게 노동 문제는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 ‘어떤’ 노동자인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탐욕스러운 자본에 대한 저항과 자본이 노동자 사이에 쳐놓은 숱한 차별과 위계를 동시에 성찰하는 일은 그래서 시급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노동자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판에 박힌 노동절 ‘행사’는 그다음 다음 일이다. 오늘은 이미 그러고 난 이튿날이긴 하지만.
  • “ILO 핵심협약 비준을” 양대노총, 정부에 촉구

    129주년 노동절인 1일 양대 노총은 정부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시청광장을 비롯한 전국 13개 지역에서 ‘ILO 핵심협약 우선 비준과 노동기본권 확대’를 전면에 내걸고 노동절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약 2만 7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ILO 핵심협약(87호·98호)은 노동계 최대 이슈 중 하나다. 이 협약에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헌법상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ILO 핵심협약 내용인 공무원과 해직자의 단결권 보장은 노조법 및 공무원노조법과 충돌하고, 강제 노동 금지 조항은 의무 군 복무를 규정한 병역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ILO 설립 100주년인 올해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지만 지난 4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가 무산되면서 표류하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국의 자본가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 성급하다고 29년째 아우성치고 있다”면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며 노조 공격권마저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제 개악을 저지하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관철하고, 노조 파괴법을 전면 중단하기 위해 총파업 깃발 아래 100만의 단결투쟁을 보여 주자”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오전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조합원과 가족 등 1만여명이 참가한 ‘노동절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며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라며 “정부는 더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고 하루빨리 ‘선 비준, 후 입법’ 조치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존중사회를 국정 기조로 삼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며 “(정부는)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당장 폐기하고 최저임금위원회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보이즈 앤 후드’ 흑인 영화 개척자 사망

    ‘보이즈 앤 후드’ 흑인 영화 개척자 사망

    데뷔작 ‘보이즈 앤 후드’로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1991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영화감독 존 싱글턴이 29일(현지시간) 사망했다. 51세. 뉴욕타임스는 이날 유족의 성명을 인용해 고혈압을 앓던 싱글턴이 지난 17일 뇌졸중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시다스 시나이 병원에 입원했으나 결국 사망했다고 전했다. ‘보이즈 앤 후드’는 쿠바 구딩 주니어와 아이스 큐브, 로런스 피시번 등이 출연한 저예산 영화로, LA 남부 흑인 거주지역에서 갱단에 휩쓸려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사춘기 흑인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싱글턴은 이 영화로 64회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나 감독상은 ‘양들의 침묵’의 감독 조너선 드미, 각본상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델마와 루이스’의 각본가 캘리 쿠리에게 돌아갔다. 당시 23살이던 싱글턴은 최연소 감독상 후보였으며 그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TV서 다이어트 식품 광고한 日 유명 연예인, 알고보니…

    TV서 다이어트 식품 광고한 日 유명 연예인, 알고보니…

    유명인사의 사진과 영상을 조작하거나 도용해 인터넷 상거래 등에 악용하는 사례가 일본에서 잇따르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진짜같은 가짜광고’의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이를 알아차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동원한 동영상 조작도 확산되고 있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은 지난 2월 연예인이 출연한 TV프로그램 화상을 무단도용해 조작한 혐의로 한 다이어트 식품업체 직원들을 체포했다. 이들은 사이타마현의 홈쇼핑 상품 사이트에 한 탤런트가 TV에 나와 자사 상품을 복용하는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올렸다. 이들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화상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TV 프로그램에 자사 제품의 선전문구를 자막으로 입혀 화면을 조작했다. 자막의 글꼴까지 실제 TV 프로그램과 유사해 웬만해서는 가짜 화면임을 알아채기 힘든 수준이었다. TV프로그램 영상이나 SNS 등을 통해 배우, 가수 등 유명인사의 사진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된 가운데 소비자를 현혹시키기 위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했다. 광고 관련 단체인 일본가맹협의회는 지난해 TV 화면의 무단도용 등이 의심되는 약 130건의 사례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이 중 약 100건이 합성 또는 무단도용된 사진으로 나타났다. 오리지널 광고에서 모델이 들고 있는 특정 상품을 자사의 상품으로 바꿔끼우는 수법이 많이 동원되고 있다. 일본가맹협의회 관계자는 “화상편집 소프트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서 최근 이런 허위 합성 광고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 변조도 늘고 있다. 유명인사의 입 모양과 음성을 AI에 학습시킨 뒤 마치 그 사람이 발언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조작술이다. 이 기술은 AI에 의한 ‘딥러닝’(심층학습)과 ‘페이크’(가짜)를 합해 ‘딥 페이크’로 불린다. 딥 페이크는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바보다’라고 말한 것처럼 보이는 가짜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특히 주목받았다. 인터넷에는 동영상 조작을 전문으로 대행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가시와무라 다스쿠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에 “유명인사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악용돼 널리 퍼지면 그 피해는 막대하다”면서 “인터넷상의 허위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동으로 검출하는 시스템의 개발 등 혼선을 막을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주 72시간이 행복이라는 마윈…IT기업 ‘996룰’에 들끓는 中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주 72시간이 행복이라는 마윈…IT기업 ‘996룰’에 들끓는 中

    중국에서 ‘996룰’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전자상거래업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알리바바((阿里巴巴) 마윈(馬雲) 회장과 징둥(京東·JD)닷컴 류창둥(劉强東) 회장이 온라인에 996룰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며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마 회장이 지난 14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에서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진정한 996은 단순한 야근도 아니고 착취와도 관계없다. 996과 997을 하는 그룹이 있었기에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5·6호를 갖는 등 중국이 40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 그는 자신의 이 같은 시각에 ‘자본가의 이빨을 드러냈다’는 등 악성 댓글이 달렸다면서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런 얘기를 과감히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996룰 옹호론’을 굽히지 않았다. 마 회장은 앞서 11일 직원들과 교류한 내용을 12일 ‘996룰 옹호가 아니고 분투자(奮鬪者)에 대한 경의 표시’라는 제목의 글로 소개한 뒤 비판이 잇따르자 이틀 만에 다시 글을 올린 것이다. ‘996룰’은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한 주에 6일, 997은 한 주 내내 12시간씩 일하는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문화를 뜻한다. 마 회장은 12일에 올린 글에서 “여러분이 젊었을 때 996을 해 보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느냐. 평생 996을 해 보지 않은 인생을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나는 지금껏 매일 12시간 이상을 일해 왔지만 후회한 적이 없다”며 “996 문화가 오늘날 BAT 같은 중국 IT기업들을 있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BAT는 IT공룡으로 불리는 바이두(百度·Baidu), 알리바바(Alibaba), 텅쉰(騰訊·Tencent)을 일컫는다. 마 회장은 “어떤 회사도 996 근무를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만 행복은 분투를 통해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996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6년 중국의 생활정보 서비스업체 58퉁청(同城)이 야근비 없이 996을 실시한다고 통지하자 직원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불만을 터뜨리면서 논란의 불을 지폈다. 현재 996룰 시행업체 명단에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를 비롯해 알리바바, 핀테크업체 마이진푸(蟻今服·Antfinancial), 징둥닷컴, 스마트폰업체 샤오미(小米), 58퉁청, 전자상거래 업체 쑤닝이거우(蘇寧易購)·핀둬둬(多多), 드론 제조업체 다장창신(大疆創新·DJI) 등 중국 IT업계의 내로라하는 84개 업체가 포함돼 있다. 996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징둥은 995나 996이 강제 이행사항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직원들은 모든 열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27일 한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머들의 소스 코드공유 플랫폼 깃허브(GitHub)에 ‘996 ICU’라는 웹페이지를 올리면서 워라밸 논란이 급속히 확산됐다. 996 ICU는 996을 따라 일하다가는 병원 중환자실(ICU)에 실려 간다는 뜻이다. 마 회장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996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직장을 찾는 건 (결혼) 상대를 찾는 것과 같다”는 그는 “진짜 사랑하면 길다고 느끼지 않지만 부적합한 결혼은 하루가 1년 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분투자를 모두 욕망이나 이익이나 부를 좇는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피곤해서 사랑을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랑하면 피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마 회장은 “세상에는 996룰 심지어 007룰(자정에 출근, 자정에 퇴근, 한 주 내내 근무)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며 “기업가는 물론 대부분 성공하거나 (목표를) 추구하는 예술가, 과학자, 운동선수, 관리, 정치가는 기본적으로 모두 996 이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 회장은 “그들이 일반인을 뛰어넘는 기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자신이 선택한 사업을 매우 좋아하고 일반인을 넘어서는 분투와 노력이라는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성공’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편하게 일하고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지만 분투가 가져다주는 행복과 보상은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돈이 있고, 공부를 잘하기도 하는 불공평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 공평도 있다”며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어떤 인간이 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 회장도 12일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에 “995룰 또는 996룰을 영원히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럭저럭 날을 보내는 사람은 내 형제가 아니다. 진짜 형제는 강호에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책임과 압력을 분담해 성공의 성과를 함께 나눈다”고 썼다. 창업 초기 회사에서 4년간 잠을 자면서 24시간 서비스를 위해 2시간마다 알람시계를 맞춰 놓고 일어나 일했던 일화를 소개한 그는 지난 4~5년 하위 도태제를 시행하지 않아 그럭저럭 일하는 사람이 급증했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징둥은 희망이 없고 회사는 시장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창업 초기처럼 다시 목숨 걸고 일할 수는 없지만 8116+8(아침 8시 출근, 밤 11시 퇴근, 주 6일 근무, 일요일 8시간 근무)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결사적으로 일하는 쾌감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 회장은 “이상을 위해 함께 분투할 형제를 찾아 그들의 나날이 갈수록 좋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혀 마 회장을 전폭 지지했다. 반면 중국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당당망(當當網) 창업자 리궈칭(李國慶)은 996룰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다른 업종보다 프로그래머의 경우 8시간 동안 프로그램과 씨름하다 보면 집에 가서는 쓰러져 자기 일쑤다. 11시간 넘게 근무하는 것 자체가 살인적인 스케줄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리자들이 결재 보고시스템 및 효율을 높이는 것이 직원들이 야근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도 14일 논평을 통해 996룰 강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측면 지원했다. ‘분투를 지향하는 것은 996룰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알리바바, 징둥 책임자가 ‘996룰’ 관련 입장을 밝히면서 996룰이 중국 사회의 핫이슈가 됐다”며 “996룰 반대는 분투 반대, 노동 반대의 의미가 아니며 분투 지향, 노동 지향은 연장 근무 강요와 동일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논평은 또 “회사는 996룰 근무를 반대하는 직원들에게 ‘게으름뱅이’(混日子)라는 꼬리표를 붙여서는 안 되고 그들의 진실된 요구를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어 “중국의 경기 하방 압력으로 많은 기업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고 그런 조급한 마음에 직원들의 추가 근무, 996룰을 강요하고 있다”며 “그러나 996룰로는 기업의 난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직원들의 시간을 끄는 행보를 조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됨에 따라 아름다운 삶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국민들은 목숨을 건 돈벌이보다는 여가생활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찾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며 “이에 따라 996룰 강요보다 탄력근무제가 직원들의 열정을 더 많이 끌어낼 수 있고 더 많은 인력 자원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khkim@seoul.co.kr ■이 기사는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goo.gl/sdFgOq)의 전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광복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임정 자금 대고 발해농장 개척

    “광복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임정 자금 대고 발해농장 개척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니 유한(遺恨)이 없다. 동포의 고난을 네 고난으로 알고 살아가거라. 가사(家事)든 국사(國事)든 오직 자력(自力)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58세의 백산 안희제를 일제는 9개월 동안이나 악랄하게 고문했다. 피가 눌어붙은 죄수복을 입고 반송장이 돼 풀려난 백산은 장남 상록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몇 시간 후인 1943년 9월 12일 새벽 2시, 백산은 숨을 거두었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 두 해 전이었다.백산은 1885년 9월 12일 충절의 고장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마을(설뫼마을)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의 생가가 지척에 있는 곳이다. 백산의 선조 안기종은 왜병과 싸운 의병장이었다. 입산마을은 낙동강 지류인 유곡천이 마을 앞에 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백산의 집안은 700석 부자였다. 안향의 후손인 탐진 안씨가 조선 중기부터 이 마을에 정착했으며 선생의 생가인 ‘백산고가’(白山古家)가 남아 있었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백산의 장손자 안경하(80)씨를 만나 백산의 일생에 대해 들었다. 안씨의 어머니, 즉 백산의 며느리는 왕산 허위의 형인 방산 허훈 가(家)의 자손과 결혼했다고 한다. 안씨는 “할아버지는 가족이 무슨 일을 하는 줄도 모를 정도로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했다”고 말했다. “새는 한가하여 벽곡(僻谷)을 찾았는데 해는 싫어하여 중천에 떠 두루 비치도다.” 한학에도 뛰어났던 선생이 유년 시절 지은 시다. 백산은 20세에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이 밝은 날 밤 몰래 구국의 일념으로 상경했다.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 후 양정의숙으로 옮겼다. 백산의 조국독립 방략은 무력 저항보다는 실력 양성, 계몽운동이었다. ●발해농장, 실질적인 국외 독립운동기지 1909년 먼저 부산 구포에 구명학교를, 의령에 의신학교를, 입산마을에 창남학교를 세웠다. 그해 9월에는 남형우, 김동삼, 서상일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체인 대동청년단을 결성했다. 26세 때인 1911년부터 3년 동안은 러시아와 만주를 돌아보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국민을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우리가 가난해서는 어렵습니다. 부산을 일본인 손에 넘겨줘서야 되겠습니까.” 귀국한 백산은 부산으로 가서 이렇게 호소해 1914년 9월 백산상회를 창립했다. 고향 논 2000마지기(40만평, 132만㎡)를 팔아 자금으로 썼다. 백산상회는 곡물, 면포, 해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개인기업이었다. 3년 후 합자회사로 전환, 경남 양산의 대지주 윤현태와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 등 영남 자산가들로부터 거액의 협력을 받았다.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일 무렵인 1919년 초 백산상회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됐다. 주주들의 출자금 대부분은 임정 운영자금으로 보내졌다. 윤현태의 동생 윤현진은 아예 상해로 건너가 임정 재무차장을 맡았다. 백산상회는 국내외 20여 곳에 지점 및 연락사무소를 두었다. 겉만 기업이었지 독립운동 자금원이자 연락조직이었다. 김규식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할 때 백산은 경비를 제공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일제는 수색, 고문, 장부 검열을 계속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장부상 결손으로 꾸며 추적을 따돌렸다. 백산은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일본인 여관에 묵었으며 금테 안경을 쓰고 일본식 복장을 했는데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위장술이었다. 그러나 1921년부터 자금난이 심해졌고 주주들 간에 마찰이 생겼다. 경영 부실보다 독립운동 자금 탓이 컸다. 1928년 1월 백산상회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광복 후 백범 김구가 최준에게 독립운동 자금 장부를 보여주자 최준은 백산의 묘소를 향해 엎드려 통곡했다. 그가 준 돈이 한 푼도 어김없이 임정에 전달됐음을 보았기 때문이다.백산상회를 경영하는 한편으로 백산은 자산가들의 지원을 받아 후학 양성을 위한 기미육영회를 결성했다. 국회의원과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북한 조평통 위원장을 지낸 국어학자 이극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성모 등이 육영회 돈으로 독일, 영국에서 유학했다. 백산의 눈길은 언론으로 향했다. 이미 1920년 4월 동아일보 발기인으로 창간에 참여했었다. 1928년 6월 당시 3대 일간지의 하나로 필화사건을 겪던 중외일보를 인수, 사장으로 취임했다. 임원진 중에는 독립운동가 최윤동, 임유동도 있었다. 백산은 조석간 발행 등 지면 및 경영혁신을 꾀했다. 그러나 일제 통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다 1929년에 26회, 1930년에 31회 신문을 압수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다. 그러는 새 경영은 날로 어려워져 1931년 9월 중외일보는 결국 해산하고 말았다. 조국 땅을 지키며 민중과 더불어 합법적인 조직과 방법으로 독립을 꾀하겠다던 백산의 계획은 뜻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좌절밖에 없었다. 백산은 지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조국은 감옥이다. 자유 천지에 나가서 활개를 펴고 조국 광복을 기어코 달성하는 데 죽는 날까지 싸워보겠노라.” 백산이 선택한 또 다른 길은 만주였다. 만주 땅을 일궈 빈농의 자립을 돕고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다. 김태원이라는 경제적 협력자를 구했다. 그는 경북 봉화 금광에서 노다지를 캐내 일약 거부가 되어 백산과 가까이 지내던 인물이었다. 만주 목단강성 영안현에 토지를 매입했다. 발해국 고도인 동경성이 있었던 곳이다. 1932년부터 목단강 상류 일부를 석축으로 막고 수로를 내 황량한 땅을 개간했다. 백산은 발해농장으로 이름 짓고 조선에서 실농 300여호를 이주시켰다. 자작농창제(自作農創制)를 고안했다. 농민에게 분배한 토지에서 생산한 곡물의 절반을 받아 다른 농지를 개간하고 수도를 개설하며 토지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해 자작농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35년까지 농장 직경은 4㎞가 넘었고 수로는 16㎞에 이르렀다. 수차 증자받은 돈은 농장경영 자금 외에는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몰래 보냈다. 백산은 청년기에 귀의했던 대종교에 심취했다. 발해농장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대종교로 정신적 결집을 이루고자 했다. 대종교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겼다. 대종교 서적을 간행하고 단군전인 천진전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독립투쟁을 벌이고자 했다. 발해농장은 표면적으로는 농장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외 독립운동기지였다.●백산 장손자 “후손들 할아버지 이름 기억” 농장 규모가 커지고 교세가 나날이 확장되자 위협을 느낀 일제는 백산을 붙잡을 기회만 노렸다. ‘대륙 첩보의 귀신’ 난베가 그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다. 조선어사전편찬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백산을 체포할 빌미를 잡았다. 일제는 조선어학회 이극로가 대동교 교주 윤세복에게 보낸 ‘널리 펴는 말’을 ‘조선독립선언서’로, 글 가운데 ‘일어서라’를 ‘봉기하자’로 조작했다. 일경은 대종교 간부 21명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했다. 이른바 ‘임오교변’이다. 입산마을에서 치병 중이던 백산은 목단강성 경무청으로 포박되어 끌려갔다. 10명이 숨질 정도로 고문은 악랄했다. 사건 배후에는 밀고자가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숨을 거두기 전 그를 용서하라고 유언했다. 광복 후 후손들은 밀고자를 찾아냈지만, 유언을 따라 응징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안민석 의원과 발해농장에 다녀온 장손자 안씨는 “지금도 개척자의 4~5세가 농장에 살고 있고 후손들은 할아버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北 항구 중심의 관광산업 도시개발 한창”

    북한이 항구를 중심으로 관광산업을 염두에 둔 도시개발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송영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하고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한국부동산산업학회가 주관한 ‘한반도 시대의 부동산 패러다밈 모색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김정은 시대 이후 북한 산업정책은 공해산업을 지양하는 동시에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도시개발은 주로 항구도시에서 이뤄지며 대규모 항만시설 확장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도시개발은 우리나라의 국토계획처럼 중장기 비전을 세워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정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정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2018년까지 27개 특구·개발구를 발표했는데, 그중 13개 이상이 관광산업 관련 육성 발전전략을 담고 있다. 그는 “북한의 관광산업 육성전략이 단순히 해외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여행객도 염두에 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청진시는 중화학공업 중심에서 관광산업 중심 도시로 재개발하고 있다고 정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공해산업인 청진제강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규모 고급·고층 아파트와 호텔·리조트·콘퍼런스센터 등을 건설하고 있다. 또 김책제철소, 청진화학연합기업소도 공장부지를 줄이고 주택·시장 등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남포시는 남포제련소를 완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물류창고와 외화벌이 회사들이 신축되고 있어 수출중심 항구로 재개발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 도시 개발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국가뿐 아니라 북한의 신흥 자본가인 돈주(무역회사) 및 중국인과의 합작 투자회사”라며 “북한 개발의 경쟁 구조를 고려해 다자협력, 다자 경쟁구도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양, 신의주, 원산 갈마지구 등에 아파트, 호텔, 상점(마트, 백화점 포함) 건설 등에 이런 방식이 동원된 것으로 분석했다. 또 북·중 간 비공식 결제시스템이 존재하고, 북한이 각종 관광지 개발을 위해 중국에서 활발한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엑스맨: 다크 피닉스’, 얼티밋 다크 피닉스 영상 공개

    ‘엑스맨: 다크 피닉스’, 얼티밋 다크 피닉스 영상 공개

    ‘엑스맨’ 시리즈의 피날레를 알리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원제: X-MEN: DARK PHOENIX)가 오늘 6월 아이맥스 개봉을 확정하며 ‘얼티밋 다크 피닉스’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모든 이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압도적인 힘을 지닌 진 그레이(소피 터너)의 능력이 담겼다. 또한 폭주하는 진 그레이가 동료인 엑스맨을 공격하는 장면과 주변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키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특히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강력한 존재 ‘다크 피닉스’로 완전히 각성한 진 그레이가 매그니토를 손짓 한 번에 날려버리는 장면은 역대급 캐릭터 탄생을 예고한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19년 동안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엑스맨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엑스맨’, ‘데드풀’ 시리즈를 성공시킨 프로듀서이자 각본가인 사이먼 킨버그가 연출 및 각본을 맡았다. 여기에 ‘엑스맨’ 시리즈의 주역인 제임스 맥어보이부터 마이클 패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소피 터너, 니콜라스 홀트는 물론 제70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제시카 차스테인이 새롭게 합류해 초호화 캐스팅을 완성, 역대급 연기 앙상블을 예고한다. 이처럼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뭉쳐 완벽한 시너지를 뽐내며 더욱 진화된 이야기를 선보일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2019년 6월 개봉 예정이다.영상부 seoultv@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72시간 근무가 ‘행복’이라는 중국 IT기업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72시간 근무가 ‘행복’이라는 중국 IT기업들

    중국에서 ‘996룰’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전자상거래업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알리바바((阿里巴巴) 마윈(馬雲) 회장과 징둥(京東·JD)닷컴 류창둥(劉强東) 회장이 인터넷상에 996룰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며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마윈(馬雲) 회장은 14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계정에 올린 글에서 주장하는 요지는 대략 이렇다.“진정한 996은 단순한 야근이 아니고 착취와 관계없다. 996과 997을 하는 그룹이 있었기에 중국이 40년만에 괄목한 성취를 이루고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와 6호를 갖게 됐다.” 마 회장은 996에 대한 자신의 시각에 대해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자본가의 이빨을 드러냈다’는 폄훼하는 댓글이 있었다면서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런 얘기를 과감히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996룰 옹호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앞서 11일 직원들과 교류한 내용을 12일 웨이보에 ‘996룰 옹호가 아니고 분투자(奮鬪者)에 대한 경의 표시’라는 제목의 글로 소개한 뒤 비판이 잇따르자 이틀 만에 다시 글을 올린 것이다. ‘996룰’은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997은 일주일 내내 그렇게 일하는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문화를 뜻한다. 마 회장은 12일에 올린 글에서 “여러분이 젊었을 때 996을 해보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느냐. 평생 996을 해보지 않은 인생을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나는 지금껏 매일 12시간 이상을 일해왔지만 후회한 적이 없다”며 “996 문화가 오늘날 BAT 같은 중국 정보기술(IT)기업들을 있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BAT는 중국의 글로벌 IT공룡으로 불리는 바이두(百度·Baidu), 알리바바(Alibaba), 텅쉰(騰訊·Tencent)를 일컫는다. 마 회장은 “어떤 회사도 996 근무를 강요해서는 안되겠지만 행복은 분투를 통해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996룰 논란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중국의 생활정보 서비스업체 58퉁청(同城)이 야근비 없이 996을 실시한다고 통지하자 직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불만을 터뜨리면서 논란의 불을 지폈다. 현재 996룰 시행업체 명단에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를 비롯해 알리바바, 핀테크업체 마이진푸(螞蟻今服·Antfinancial), 징둥닷컴,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小米), 58퉁청, 전자상거래 업체 쑤닝이거우(蘇寧易購)·핀둬둬, 드론업체 다장창신(大疆創新·DJI) 등 중국의 IT업계의 내로라하는 84개 업체가 포함돼 있다. 996룰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지난달 중순 징둥닷컴은 995나 996이 강제 이행사항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직원들은 모든 열정을 투입해야한다고 은근히 ‘강요’했다. 더군다나 지난달 27일에는 프로그래머들의 소스 코드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GitHub)에 한 프로그래머가 ‘996 ICU’라는 웹페이지를 올리면서 워라밸 논란이 급속히 확산됐다. 996 ICU는 996을 따라 일하다가는 병원 중환자실(ICU)에 간다는 뜻이다. 마 회장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996룰이라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직장을 찾는 건 (결혼)상대를 찾는 것과 같다”는 그는 “진짜 사랑하면 길다고 느끼지 않지만 부적합한 결혼은 하루가 1년 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분투자를 모두 욕망이나 이익이나 부(富)를 쫓는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피곤해서 사랑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랑하면 피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마 회장은 “세상에는 많은 996룰 심지어 007룰(자정에 출근, 자정에 퇴근, 일주일 근무)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며 “기업가는 물론 대부분 성공하거나 (목표를)추구하는 예술가 과학자·운동선수·관리·정치가는 기본적으로 모두 996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마 회장은 “그들이 일반인을 뛰어넘는 기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자신이 선택한 사업을 매우 좋아하고 일반인을 뛰어넘는 분투와 노력이라는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성공’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편하게 일하고 일반인을 뛰어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게 비판받을 수 없지만 분투가 가져다주는 행복과 보상은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인생은 태어날때부터 돈이 있고, 공부를 잘하기도 하는 불공평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 공평도 있다”며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가 어떤 인간이 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 회장이 996룰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힌 12일 류창둥 회장도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에 올린 글에서 “995룰 또는 996룰을 영원히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럭저럭 날을 보내는 사람은 내 형제가 아니다. 진짜 형제는 강호에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책임과 압력을 분담해 성공의 성과를 함께 나눈다”고 썼다. 창업초기 회사에서 4년간 잠을 자면서 24시간 서비스를 위해 2시간마다 자명종을 맞춰놓고 일어나 일했던 일화를 소개한 류 회장은 지난 4~5년 하위 도태제를 시행하지 않아 그럭저럭 일하는 사람이 급증했고,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징둥은 희망이 없고 회사는 시장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류 회장은 창업 초기처럼 다시 목숨걸고 일할 수는 없지만 8116+8(아침 8시 출근, 밤 11시 퇴근, 주 6일 근무,일요일 8시간 근무)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결사적으로 일하는 쾌감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상을 위해 함께 분투할 형제를 찾아 그들의 나날이 갈수록 좋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혀 마 회장의 글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2017년 초 지도서비스업체 가오더(高德)가 내놓은 중국 주요도시 교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 직원의 평균 퇴근시간은 저녁 9시 57분으로 가장 늦었다. 다음은 텅쉰(9시 55분), 알리바바(9시 53분)로 각각 나타났다. 화웨이와 텅쉰 등이 있는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은 베이징 다음으로 야근 시간이 긴 도시에 선정됐다. 반면 중국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당당망(當當網) 창업자 리궈칭(李國慶)은 공개적으로 996룰을 반대했다. 그는 “다른 업종보다 프로그래머의 경우 8시간동안 프로그램과 씨름하다 보면 집에 가서는 쓰러져 자기 일쑤다. 11시간 넘게 근무하는 것 자체가 살인적인 스케줄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관리자들이 결제 보고 시스템 및 효율을 높이는 것이 직원들이 야근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도 거들었다. 인민일보는 14일 논평을 통해 996룰 강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분투를 지향하는 것은 996룰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알리바바, 징둥 책임자가 ‘996룰’ 관련 입장을 밝히면서 996룰은 중국 사회의 핫이슈가 됐다”며 “996룰 반대는 분투 반대, 노동 반대의 의미가 아니며 분투 지향, 노동지향은 연장 근무 강요와 동일시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논평은 또 “회사는 996룰 근무를 반대하는 직원들에게 ‘게으름뱅이’(混日子)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는 안되고 그들의 진실된 요구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의 경기 하방 압력으로 많은 기업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있고 그런 조급한 마음에 직원들의 추가 근무, 996룰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996룰 시행으로는 기업의 난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직원들의 시간을 끄는 행보를 조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되면서 중국인들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고 국민들은 목숨을 건 돈벌이보다는 여가생활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찾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며 “이에 따라 996 강요보다 탄력 근무제는 직원들의 더 많은 열정을 끌어낼 수 있고, 더 많은 인력 자원 잠재력을 키울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여주 뮤지컬 ‘임정의 불꽃, 조성환’ 개막

    여주 뮤지컬 ‘임정의 불꽃, 조성환’ 개막

    경기 여주시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뮤지컬 ‘임정의 불꽃, 조성환’이 세종국악당에서 막을 올렸다. ‘임정의 불꽃’은 여주 대신면 보통리에 있는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제126호 보통리 고택을 본가로 둔 조성환 선생의 3.1운동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활동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뮤지컬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4월 11일 첫 공연에는 700여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첫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뮤지컬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고 여주가 고향이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 같다.” “나는 조성환 선생님의 종친인데 우리 지역의 어르신이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등 다양한 관람소감을 전해 왔다. 이항진 시장은 “조성환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을 발굴하여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선생님의 정신을 후대에 남기는 것”이라며 “4월 13일까지 펼쳐질 공연에 많은 여주 시민분들이 관람하시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뮤지컬<임정의 불꽃>은 13일까지 세종국악당에서 공연한다. 무료 공연으로 진행되며 공연 1시간 전부터 입장티켓을 배부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언주 “조양호, 문재인 정권·좌파운동권이 죽인 것”

    이언주 “조양호, 문재인 정권·좌파운동권이 죽인 것”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와 관련 “사실상 문재인 정권과 계급혁명에 빠진 좌파운동권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더 나라가 망가지기 전에 문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길 충고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6·25 당시 인민군과 그에 부화뇌동한 국내 좌익들이 인민재판을 통해 지주들과 자본가들 심지어 회사원들까지 무참히 학살하고 재산을 몰수·국유화했던 비극이 떠오른다”며 “대한항공을 세계적으로 성장시킨 실적도 무시하고 주주행동 근본주의에 빠져 조 회장을 대표이사에서 몰아낸 좌파시민단체들, 어떤게 진정 노동자를 위한 것인지 망각한 채 경영권박탈에만 매몰된 민주노총은 이제 속이 시원한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한항공 일가를 둘러싼 인민재판과 마녀사냥은 분명 너무 지나쳤다”며 “조 회장은 비록 가족이 물의를 일으켰지만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운 전문경영인이자 한국스포츠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사회적 책임을 잘지키는 기업이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 등 가치가 높으므로 기왕이면 그런 기업에 투자해서 수익률을 높이자는 게 ‘사회적책임투자’”라며 “그런데 무식한 좌파 운동권이 사회적책임투자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계급혁명론에 물들어 기업을 협박하고 사실상 국유화하는데 악용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항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의원은 “이런 식으로 국민 노후자금으로 꼼수 써서 사영기업의 경영을 통제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반이 간접적이고 국민이 입은 피해도 비교적 제한적이라면 문 대통령의 헌법 위반은 매우 직접적이고 국민이 입은 피해는 광범위하다”고 덧붙였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곽병찬 칼럼] 인구절벽과 꼰대 넋두리

    [곽병찬 칼럼] 인구절벽과 꼰대 넋두리

    인구절벽 앞에서 베이비붐 세대(이하 베붐)는 좌불안석이다. 부양 인구는 줄어드는데 피부양 인구는 폭증해 나라 경제가 절단 날 지경이라는 눈총 때문이다. 지난해 신생아가 결국 사망자 숫자보다 적었다니 눈총으로 끝날 단계도 지났다. 나는 베붐이다. 현장을 떠난 지 2년째고, 7월부터 국민연금도 받는다. 피부양 대열에 끼게 됐다. 연금이야 그동안 내가 낸 돈 내가 받는 건데 무슨 ‘피부양’이고 ‘기생 인간’ 취급이냐, 인구절벽이 어디 베붐 탓인가, 속이 끓는다. 이꼴저꼴 보기 싫은 베붐들은 아예 생활비 저렴한 나라로 이주할 생각을 한다.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은 주말마다 태극기 휘날리며 광화문 주변에서 화풀이하기도 한다. 나는 3남1녀 가운데 셋째다. 큰형은 6·25전쟁 직후 태어났다. 어머니는 종전 2년 뒤부터 2년 터울로 3남매를 더 낳았다. 내가 아는 언론계의 한 임원은 전쟁이 끝나고 2년째 되던 해 12남매 가운데 열한 번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어머니들 눈엔 전쟁의 지옥도, 전후의 폐허도 보이지 않았다. 갓난 것은 업고 걸을 만한 것은 손잡고, 들일도 하고 행상도 하셨다. 애국심 때문? 웃기는 소리다.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 용돈은 물론 생활비까지 나라가 보태 주는 지금도 ‘애국’ 운운하면 ‘또라이’ 소리를 듣는데, 그 시절 국가는 참으로 더러웠다. 국민에게 하는 짓이란 들기름 짜듯 들들 볶고, 밟아 누르고, 쥐어짜는 게 고작이었다. 밤하늘에 별은 반짝였지만, 희망이란 낮달처럼 허황됐다. 그런데도 동생들은 태어났고, 뒤이어 조카들도 태어났다. 1970년대 ‘합계출산율 4.53명’은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전후 어머니들의 불가사의한 그 신념의 결과였고, 그 덕분에 이 나라도 이만큼 섰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었고, 이대로라면 50년쯤 뒤 대한민국 인구는 반토막 난다고 한다. 진보, 보수를 떠나 자본가와 그 부역자(학자ㆍ정치인ㆍ행정가)들은 그동안 머리를 싸매고 원인과 대책을 고민했다. 지난 14년간 양육, 보육, 교육, 주거 등 저출산 대책으로 무려 143조나 쏟아부었는데도 그렇다. 합계출산율 4.53명 시절 주택은 열 가구에 네다섯 채였지만 지금은 열 가구에 여덟아홉 채다. 열에 한둘이던 대학생은 지금 열에 여덟아홉이다. 가정에서 도맡던 보육, 양육, 교육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맡고 있다. 취업난을 비관하지만,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고민한 게 아니라 잠자다가 남의 다리만 긁은 셈이다. 베붐의 꼰대 같은 경험으로 보면 원인은 따로 있어 보인다. 그들은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의 감소를 걱정하면서 일자리는 자꾸 줄인다. 왕성한 소비자의 감소를 걱정하면서 소득원은 자꾸 줄이거나 없앤다. 중산층 소멸을 걱정하면서 양극화를 가속시킨다. 욕망과 공포를 자극해 빚 살림을 유도하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걱정한다. 한편에선 소비를 부추기면서 다른 한편에선 일자리와 소득원을 없앤다. 따라서 느는 건 빚이다. 그럼에도 어이없게도 생산가능연령인구의 감소를 걱정한다. 걱정된다면 기준을 15~70세로 넓히고 정년을 늘리면 된다. 그러면 생산인구 감소도, 피부양자 급증 문제도,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따위의 문제도 일거에 해결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싸고 말 잘 듣는 노동력만 찾지 않으면 된다. 이제 그 ‘소비자’도 알아차렸다. 왜 아이를 낳아 빚내서 교육특구로 이사 가고, 사교육시키고 그 빚에 묶여 노예처럼 일해야 하지? 일자리는 줄이면서 왜 아이는 낳으라고 재촉하지? 출산은 부모를 확실하게 빚으로 묶어 두는 인질 아닌가. 10대90의 사회에서 10%의 부와 권세를 떠받치는 노예가 되라는 것 아닌가. 그리스 신화에 우로보로스라는 뱀이 있다. 이 뱀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지만 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우로보로스는 물고만 있기에는 너무 탐욕스럽다. 꼬리를 삼키고 몸통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더 삼키면 어떻게 될까. 그럼에도 충고 하나 꼭 해야겠다. 노예를 거부하는 건 좋다. 그렇다고 행복까지 포기하진 말자. 지난달 15일 인천 숭인동 일명 옐로하우스의 한 접대부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미혼모의 아이였던 그는 동료들에게 따듯하고 정 많은 ‘언니’였다. 그는 평소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 시집 꼭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내가 냉장고를 사줄 게.” 아무래도 베붐은 꼰대를 포기할 수 없나 보다.
  •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나운규(1902~1937)라는 존재와 ‘아리랑’(1926)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아니 한국영화사 전체를 관통해서도 가장 무게 있는 영화인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개봉한 지 90년도 훨씬 지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저 여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리랑’은 왜 훌륭한 영화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원로 영화인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신화화된 결과가 아닐까.‘아리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민족 영화라는 평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관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애초 나운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조선영화도 미국영화처럼 한번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이상 활동사진에 신기해하는 초창기 관객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활극적 볼거리와 속도감에 열광하는 영화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조선인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25 전쟁 시기까지 수십 차례 반복 상영되며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연 ‘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일본 신파를 극복하다 먼저 1920년대 전반기 조선영화계를 살펴보자. 조선 극영화의 시작은 ‘월하의 맹서’(1923)를 만든 윤백남의 역할이었지만 이후 조선영화를 주도한 감독은 윤백남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경손(1905~1977)이었다. 그는 고대소설을 영화화한 ‘심청전’(1925)으로 감독 데뷔해 이광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개척자’(1925)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조선영화 제작은 초창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춘향전’(1923), ‘장화홍련전’(1924), ‘운영전’(1925) 등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즉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활동사진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손은 일본영화를 모델로 삼아 상업적인 노선을 모색하는데 일본 신파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장한몽’(1926), 일본 시대극 영화를 참조한 ‘산채왕’(1926)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당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하던 조중환과 이경손이 함께 설립한 계림영화협회가 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 문화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영화 역시 ‘나의 죄’(己が罪)가 원작인 ‘쌍옥루 전후편’(1925), ‘새장 속의 새’(籠の鳥)를 각색한 ‘농중조’(1926) 등 일본 신파의 조선적 번안이 대세였다. 이처럼 연애비극이나 가정비극을 다루는 신파 서사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기본적 설정으로 안착하게 된다.나운규의 ‘아리랑’이 특별한 점은 일본 신파영화의 화법을 받아들인 시기에 등장한 영화였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어떤 의도로 만든 영화인지는 나운규의 운명 전 해인 1936년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제1집)라는 글이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양화(洋畵)를 보면 수(數)로는 서부활극이 전성시대요 또 대작연발시대다. 그리피스의 ‘폭풍의 고아들’(1921)을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더글러스의 ‘로빈 후드’(1922)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나운규가 미국영화의 “대작연발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한 나운규는 ‘아리랑’을 만들기 직전 선배 감독 이경손에게 “화나는데 서양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고, 어떻게 하면 “하품 나는 조선영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조선영화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아리랑’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서구영화의 창조적 수용 연출의 기회를 잡은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고안해냈다. 대중적 화법인 신파 양식을 기반으로 비극과 활극을 직조한 동시에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가장 핵심은 ‘아리랑’이 나운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다. 당시 “전 조선영화를 통하여 가장 우수한 장면”(‘동아일보’ 1926년 10월 7일자)으로 기록된 사막 장면은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한 나그네(나운규)가 여자(신일선)를 취하려는 악마 같은 상인을 살해한 장면은 주인공 영진(나운규)이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지주의 하수인 기호를 환상 속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정확히 반복된다. 광인의 내면세계를 일그러진 세트로 시각화해 보여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등 동시기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 작품의 인물 구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지주도 그 하수인도 조선인이라는 설정이지만 돈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본가 계급의 폭압적 행태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민족영화가 되었고,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아리랑의 실제 감독은 누구일까 ‘아리랑’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은 쓰모리 슈이치(한국 이름 김창선)라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의 실제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 시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조선영화인의 협업으로 구축되었던 조선영화 제작현장을 감안해야 한다.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사는 일본인 흥행사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인데, 그의 조카 사위 쓰모리 슈이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현대 영화의 프로듀서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조선키네마의 첫 번째 영화 ‘농중조’와 ‘아리랑’ 개봉 당시 감독 크레디트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문헌들은 두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조선영화인 이규설과 나운규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제작 현장에서 일본인이 감독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각본을 쓰고, 무성영화이지만 동작 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우들의 조선어 대사 연기를 지도한 것은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무성영화의 논리상 그들의 입에서 발성되어야 할 대사는 변사의 음성에서 들리게 된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면 쓰모리가 설령 크레디트상의 감독직을 맡았더라도 각본을 쓰고 실질적인 연출을 진행한 나운규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나운규는 계속해서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통해 ‘풍운아’(1926), ‘야서(들쥐)’(1927), ‘금붕어’(1927)라는 활극멜로드라마를 그의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세워 ‘사랑을 찾아서’(1928) 등 자신의 감독 및 주연작을 이어 나간다. ●조선 무성영화 황금기 이끌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이 이후 조선 무성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언급해야 한다. 먼저 지주와 소작민,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계급구도에 기반한 서사와 활극이 더 선명하게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이후 조선영화의 상업적 기준이 된 점이다. 또 일제 치하의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의 관념을 싣는 수단, 즉 계급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진영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카프 진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설가 심훈의 감독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8)는 단연 ‘아리랑’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평신도들이 나섰다 부조리 개혁 외쳤다

    평신도들이 나섰다 부조리 개혁 외쳤다

    “지금 한반도의 제 종교는 예전 3·1독립운동에서 ‘민족이 의지할 곳은 오직 종교밖에 없다’는 신뢰의 자리로부터 오히려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스스로가 물신주의에 빠져서 시대의 염려거리가 됐다. 우리는 이런 모든 형국을 딛고서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의 ‘2019한반도독립선언서’ 중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평신도와 재가자들의 개혁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100년 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뭉쳤던 종교계와 달리 적폐의 대상으로 떨어진 종교를 다시 추슬러 사회 개혁의 중심으로 서자는 몸짓들이다. 특히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와 재가자들이 중심인 데다 여성 신도들까지 대거 동참해 눈길을 끈다. 최근의 개혁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유교 등 5개 종교 평신도들이 모인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종교개혁연대·공동대표 김항섭, 박광서, 이정배). 이들은 종교와 사회 개혁을 촉구하는 ‘2019한반도독립선언서’(한반도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데 이어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시민연대에 돌입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는 그 운동을 국민들에게 천명한 신호탄이다. 이들은 선언서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참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며 “종교인이라고 말로는 되뇌지만 자기 가족 이기주의와 폐쇄적인 국가주의와 인간중심적인 반생태적 삶을 살아왔다”고 못박고 있다. 이 선언서의 초안은 신학자인 이은선 세종대 명예교수가 썼다. 종교개혁연대는 2017년 원효 탄생 1400주년과 루터의 종교개혁 500년을 맞아 각 종교의 개혁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5개 종교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 지난해 8월부터 매달 종교별 2명씩 5번에 걸쳐 3·1운동 당시 종교인 활동의 한계와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한반도독립선언서 발표도 그 맥락의 결정이다. 개혁연대는 무엇보다 종교계의 신뢰 하락 원인이 된 성직자의 부패에 주목한다. 이들은 “성직은 그 자체로 절대적일 수 없고 직분의 의미로 이해돼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그런 뜻에서 “오늘 많은 종교 부패의 원인이 되는 성직의 타락과 오용은 지양돼야 하고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고 대안까지 제시해 놓고 있다. 두드러진 부분은 개혁운동이 종교계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혁연대는 “수많은 노동자의 몸이 피로에 절어 있으며 열악한 식사와 주거로 심각한 병에 노출돼 있고 성의 상품화로 크게 병들고 있다. 여성과 아동과 청년은 차별당하고 건강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잃고서 권력가와 자본가의 소모품처럼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개혁연대는 종교인 33인의 이름을 올린 선언서 발표를 시작으로 범국민 연대에 돌입했다. 3월 한 달 동안 선언서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본격적인 시민운동에 나설 태세다. 3·1운동 100주년과 한국종교개혁 시민강좌를 지속적으로 여는 한편 남북 판문점선언 1주년이 되는 4월 27일에 비무장지대(DMZ)로 평화의 소풍을 가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종교개혁연대 박광서 공동대표는 “100년 전 3·1운동은 국가적인 독립을 말했지만 지금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며 “3·1운동 100주년의 해에 우리 종교인들도 국민들에게 선언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살림남2’ 김승현 父, 형제 앞에서 눈물 ‘무슨 일?’

    ‘살림남2’ 김승현 父, 형제 앞에서 눈물 ‘무슨 일?’

    ‘살림남2’ 김승현 아버지가 아들들 앞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27일 방송되는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이하 ‘살림남2′)에서는 김승현의 아버지가 아들들의 집을 예고없이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김승현의 옥탑방을 불쑥 찾아온 아버지는 아들의 안쓰러운 생활상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했다. 그동안 폭풍성장한 반려견 ‘멍중이’와 비좁은 옥탑방에 함께 살면서 방 안은 엉망진창이었던 것. 여기에 보일러마저 고장 나 냉골인데다가 수도관이 얼어 물까지 나오지 않았다. 답이 없는 상황을 본 아버지는 실망 반, 안쓰러움 반의 심정으로 “김포 본가에 가서 지내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김승현은 촬영 스케줄 때문에 멀리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두 사람은 둘째 승환의 집을 찾아가게 됐다. 아버지는 그래도 김승환이 평소 꼼꼼한 성격이라서 형보다는 잘 해놓고 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아버지의 예상처럼 김승환의 집에는 스마트폰으로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최신식 조명부터 요즘 핫한 빈티지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집 안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아버지는 웬일인지 점차 표정이 굳어져 갔고 급기야 눈물까지 보여,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KBS2 ‘살림남2’는 27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재클린 동생·사교계의 꽃’ 래지윌 사망

    ‘재클린 동생·사교계의 꽃’ 래지윌 사망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처제로 미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리 래지윌이 숨을 거뒀다. 85세. 로이터통신 등은 16일(현지시간)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동생 래지윌이 뉴욕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전했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래지윌은 배우, 작가, TV 프로그램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미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 소설가 겸 영화 각본가인 트루먼 커포티, 러시아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 등과 친분이 깊었다.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다. 특히 폴란드 왕자 스타니슬라브 래지윌과의 두 번째 결혼이 화제를 모았다. 언니 재클린과 라이벌 관계였다는 세간의 평가도 있다. 로이터는 “래지윌의 세계는 여성 명사들과 부유하고 저명한 남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고 평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조달청 인사 적체 심각… “희망 없어 전출 늘어”

    조달청 인사 적체 심각… “희망 없어 전출 늘어”

    “만족도 꼴찌, 불만 최고” 대책 필요“조직에 대한 희망이 없다 보니 다른 부처로 전출하려는 직원들이 늘고 있습니다. 내년엔 고위공무원 교육 파견직도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조달청 내부게시판에 올린 ‘청장님 건의사항’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인사 ‘동맥경화’로 인한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조달청 공무원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공론화하지 못했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달청 국장급 간부 10명 중 2명은 기획재정부 출신이 관행적으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재부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유용한 방식이지만 외청으로서는 개선이 시급한 ‘적폐’ 사안입니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는 것입니다. 조달청장은 대부분 기재부 출신이 임명되는데 언제 돌아갈지 모를 본가에 ‘쓴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보니 방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무경 조달청장도 기재부 기획조정실장에서 승진 임명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상대적으로 젊은 고시 출신들이 40대 후반에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인사가 꽉 막히게 됐습니다. 중간간부 상황도 비슷합니다. 경력 채용과 5급 공채, 개방형 직위 등 외부 수혈이 늘면서 승진이 쉽지 않습니다. 2017년 사무관 승진 예정자 14명을 비롯해 29명이 발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사 적체에 7·9급 공채자 중 수습 후 정식 발령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사례도 있습니다. 건의문에는 기재부 전입 고위공무원의 축소, 비고시 출신 국장 확대, 4급 이상 관리자에 대한 다면평가제와 검증, 우수직원 발탁 인사 등이 담겨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 지원 확대와 남북관계 변화에 대비한 조직 확대의 필요성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성남 노조위원장은 “대전청사 이전 기관 중 유일하게 조직과 정원이 축소됐다”며 “만족도 최하위, 불만은 최고조에 달한 구성원들의 사기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난방 끊긴 서울대 도서관 두고 ‘파업권’vs‘학습권’ 논쟁

    난방 끊긴 서울대 도서관 두고 ‘파업권’vs‘학습권’ 논쟁

    점거 파업으로 도서관 등 시설 3곳 난방 중단총학, “파업권 존중하나 도서관은 빼달라”일각에선 “가장 중요한 곳 마비시키는 게 파업 전술”서울대 교내에서 기계·전기 설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도서관 난방 중단을 두고 논쟁이 불붙었다. 이 대학 총학생회가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공부하는 학생들의 불편을 이유로 “도서관은 난방 중단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구해서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조합원 200여명은 오세정 신임 총장 취임식이 열린 8일 오전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면 파업을 공식 선언했다. “지난해 정부의 정규직 전환 지침에 따라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됐지만, 학교 측이 여전히 2년 전 비정규직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게 파업 이유다. 노조원들은 하루 전인 7일 정오쯤 대학 본부와 행정관 등 3개 건물의 기계실에 들어가 난방 장치를 끄고 점거했다. 이 때문에 중앙난방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중앙도서관과 행정관 건물 일부의 난방이 중단됐다. 한파 속에 교직원들은 가지고 있던 개인용 난방기구와 털 실내화 등 보온용품에 의지해 정상근무했고,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두꺼운 옷차림으로 공부 하거나 다른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파업을 이끄는 이성호 일반노조 기계·전기 분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서관 난방이 중단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학생들이 우리 입장을 이해해주고 대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서울대 총학 측도 “노조의 파업은 존중한다”면서도 시험, 취업 등을 준비하는 학생을 위해 도서관은 난방 중단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총학은 이날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공지 글을 통해 “총학생회장단이 7일 오후 일반노조를 방문해 파업 대상에서 중앙도서관의 본관과 관정관은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8일에도 일반노조에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빼달라는 뜻을 재차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총학 측은 “근시일 내 예정된 시험, 취업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학 입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파업권을 침해하는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는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모아서 시장 집 앞에 버리는 운동을 벌인다”면서 “서울대 총학의 입장은 파업하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우리집 쓰레기만 치워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파업 때는 가장 중요한 곳을 마비시키는 것이 현명한 전술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따질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파업하게 만드는 자본가들에게 따지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고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다민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도서관 난방 중단과 관련해) 총학생회에 접수된 불만이 많았다”면서 “우리도 노조 파업을 존중하고 파업을 왜 하는지 공감한다”고 말했다. 총학 측은 2~3월 공인회계사 1차 시험 등 각종 국가 고시가 몰려있기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이 특히 많다고 설명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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