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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소문난 잔치 ‘프리즈’가 끝나고/최나욱 작가·건축가

    [문화마당] 소문난 잔치 ‘프리즈’가 끝나고/최나욱 작가·건축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프리즈 런던’이 개막한 이튿날 가디언에 실린 기사는 혹독했다. “취향 없는 1%를 위한 창의성의 무덤.” 기사를 쓴 미술비평가 조너선 존스는 행사장 한복판 거고지언 갤러리가 선보인 데이미언 허스트의 그림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러나 벽걸이용 회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인기 있는지를 묘사하며 조소했다. 대표적인 ‘미술행사’로 여겨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미술이 아닌 것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었다. 이어 존스는 같은 기간에 개막한 테이트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상찬하며 하나의 글에서 ‘진짜 미술’과 ‘가짜 미술’을 구분하려 했다. 이러한 이분법은 미술에서 꽤나 익숙한 관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익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전업 미술인과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미술을 사치품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뒤섞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같은 세계라고 하기에는 거의 모든 것이 같지 않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본가들은 식탁에서 예술 얘기를, 예술가들은 식탁에서 돈 얘기를 한다”는 아포리즘을 남겼다. 동일한 단어를 쓰더라도 서로 간 의미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소셜미디어(SNS)로 인해 동일한 장 속에서 전혀 다른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마주친다는데, ‘미술계’라는 다중적 세상에서는 일찍이 이러한 경험을 겪을 수 있었다. ‘미술은 고급문화’라는 인식과 ‘미술은 누구나 즐기는 것’이라는 모순되는 통념이 동시에 존재하고, 한쪽에서는 석박사까지 하는 전공 공부를 다른 쪽에서는 주부 교양교실 같은 취미 생활로 여긴다.미술이 가파르게 대중화하면서 이와 같은 다중성은 더욱 배가되고 있다. 일례로 컬렉팅은 이전까지 당연시되던 교육과 취향 대신 효과적인 자랑과 투자를 위해 한층 간편한 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따금 ‘가격 오를 만한 미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나 역시 진짜와 가짜를 운운했으나 전혀 다른 소비층이 늘어나면서 NFT 같은 가짜의 성공이 왕왕 일어나는 걸 보며 이런 다중적 세상에서는 방향 또한 다중적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아트페어는 흥미로운 행사가 됐다. 누가 작품을 보러 아트페어에 가냐고 하지만 저렴하지도 않은 입장권을 사서 ‘전시를 보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과 작품의 내적 논리에 관심이나 이해도가 없는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파티들의 규모는 작지 않다. 단지 진짜, 가짜 미술이라고 이들을 구분하기에는 살펴볼 필요가 있는 어떤 현상인 것이다. 2년 전 작고한 미술평론가 데이브 히키는 1960~70년대 미국 미술시장을 자동차 딜러 비즈니스에 유비하며 미술이 시대를 담는 예술로서 현재 사회·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다룬 바 있다. 유행이 빠른 서울에서 열린 ‘프리즈’는 더욱 특징적이다. 지난해 1회 때는 특정 집단으로 이뤄진 키아프에 익숙하던 국내 관객들에게 작지 않은 영향을 가했는데, 이어 많은 갤러리들이 잔뜩 준비한 올해 프리즈는 여느 럭셔리 브랜드의 연예인 위주 행사와 다르지 않게 됐고, 같은 기간 열린 뉴욕 아모리쇼에 뒤처지며 정작 VIP들은 주목하지 않는 행사가 됐다. 발 빠른 유행은 언제나 용두사미로 이어지는 것이 한국적 현상인 걸까? ‘소문난 잔치’ 이후 금세 썰렁해지는 분위기에는 기시감이 든다.
  • 송해나, 강동원 닮은꼴 신부에 “평생 연애 못 해”… 충격

    송해나, 강동원 닮은꼴 신부에 “평생 연애 못 해”… 충격

    ‘성지순례’ 송해나가 ‘강동원 닮은꼴’ 훈남 신부의 연애 금지에 놀랐다. 31일 오후 처음 방송된 MBC every1 새 예능 ‘성지순례’에서는 MZ 성직자 3인(정재규 신부, 이예준 목사, 자운 스님)이 ‘남녀의 성지’를 주제로 청춘들의 만남이 이뤄지는 한강 공원, 헌팅 포차, 타로 카페 등을 찾았다. 성직자 3인은 MC들에게 포교 활동을 해 웃음을 안겼고, 송해나는 “난 그냥 이분들을 흐트러트리고 싶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김이나는 “신성한 곳에 불경한 자가 등장했다”고 말했고, 자운 스님은 “불교에서 이런 분을 마구니라고 한다”고 정리해 주변을 폭소케했다. 송해나는 갑자기 자신의 본가를 알렸고, 풍자는 “언니 소개팅 나오셨냐?”며 정곡을 찔렀다. 이에 김이나도 “불경하네요. 정말”이라고 거들었다.
  •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❿ 1922.10.31 무솔리니, 39세에 총리 등극베니토 무솔리니(1883.7.29~1945.4.18·이탈리아)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독일), 도조 히데키(1884~1948·일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 3대 인물로 유명하다. 셋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3형제 중 맏아들 무솔리니는 아버지의 대장간에 나가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름도 멕시코의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1806~1872)를 따라 지었다. 집에선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았다. 1902년 무솔리니는 병역을 피해 스위스로 이민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머물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조르주 소렐(1847~1922),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사상을 깨우쳤다. 그곳에 망명해 있던 안젤리카 발라바노프(1878~1965),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같은 러시아 마르크시스트도 만났다. 1904년 스위스는 무솔리니를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무솔리니는 1905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1908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트렌토로 가서 노동당 서기에 올랐다. 정치 신문 ‘라보니레 델 라보라토레’(노동자의 미래) 편집진도 맡았다. 1910년엔 고향인 포를리로 돌아가 주간지 ‘로타 디 클라세’(계급 투쟁)의 편집진이 되었다. 이후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11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점령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탄했다가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석방된 뒤 무솔리니는 사회당에서 전쟁을 지지한 수정주의자와 정쟁에서 승리해 기관지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에 선임됐다. 무솔리니는 2만명이던 기관지 독자를 10만명으로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9개월 뒤 수류탄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1917년 8월 병상에서 전역한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죽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19년 3월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200여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파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이탈리아 투쟁 결사)를 창립했다. 모든 사회 계급의 구분과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이념에 국가 부흥을 염원하던 국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21년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창당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더욱 힘을 얻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은 1922년 10월 27일 로마 진군을 감행했다. 당내 준군사 조직인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로 루이지 팍타(1861~1930)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만 39세였다. 2014년 취임한 마테오 렌치(1975.1.11~현재) 전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했다. 7개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했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걸리적거리는 모든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8년엔 파시스트당을 뺀 정당 활동은 금지됐다. 같은 해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대신했다. 이탈리아 제국은 스스로를 신로마 제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팽창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파시즘은 결국 에티오피아를 침략한다. 또 반종교주의, 특히 반가톨릭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공군 전투비행단 선발대를 스페인으로 파견했다. 이탈리아군은 1939년까지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탈리와와 프랑스, 영국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즉각 참전하진 않았다. 1940년 들어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승전으로 곧 종전을 맞을 것으로 판단해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6월 무솔리니는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후 일본 제국이 진주만 사건을 일으키자 이번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전황은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대대적인 후퇴가 계속됐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 이탈리아는 패배를 눈앞에 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폭격으로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곡물 수급난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1943년 들어 무솔리니의 선전술은 더 이상 국민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그들은 바티칸 라디오나 라디오 런던을 들으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1925년 이래 최대의 파업이 벌어졌다. 또한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와 토리노는 공습을 피해 노동자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멈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로 인해 이를 묵인하는 무솔리니를 대놓고 반대했다. 일찍이 무솔리니는 아프리카 전선과 튀니지에서 패퇴하자 히틀러에게 서부 전선으로부터 공격해 오는 연합국과의 전쟁에 집중해달라고 간청했다. 아프리카와 튀니지를 얻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겨눌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본토이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며칠 후 무솔리니는 해외 군대의 회군을 지시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7월 19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무솔리니와 회동했다. 무솔리니는 더 이상 독일의 말만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솔리니는 이날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안에서마저 무솔리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회에서 19 대 7로 가결됐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869~1947)는 무솔리니를 왕궁으로 불러 해임을 통고했다. 무솔리니는 왕궁을 나오자마자 근위대에 의해 체포됐다. 호텔에 연금됐던 무솔리니는 9월 12일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72명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독일군은 왕가와 내각인사를 체포하고 무솔리니의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데려와 회동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국가를 재건하기를 바라면서 독일군이 밀라노, 제노바, 투리노 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동의한 무솔리니는 9월 23일 살로에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망명 정부의 수반에 오른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반한 파시스트 대의회의 요인들을 처형했다. 이 무렵 무솔리니는 1928년 출판한 자서전의 개정판 ‘나의 흥망’ 집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45년 4월 패전을 예감한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1912~1945)와 함께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탈출할 참이었다. 그런데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에게 체포됐다. 무솔리니는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 장교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튿날 발레리오(실명 왈테르 아우디시오) 대령은 두 사람을 총살했다. 시신은 29일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옮겨졌다.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들이 처형된 자리였다. 숱한 군중의 발길질에 짓밟힌 두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 “오늘 꼭 와야만 했어요”… 그날, 그 길에 추모와 연대가 모였다

    “오늘 꼭 와야만 했어요”… 그날, 그 길에 추모와 연대가 모였다

    “1년 전엔 참사 현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그동안 올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오늘만큼은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추모 공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만난 윤희주(26)씨는 “지하철 대신 버스를 선택해 살아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씨는 “지난 1년 동안 참사 관련 소식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오늘은 용기를 냈다”면서 한참을 추모 공간에 머물렀다. 이날 추모 공간엔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음료, 과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벽에 붙은 빼곡한 추모 메시지 위에 또 다른 메시지를 덧붙이는 손길도 이어졌다. ‘미안합니다, 다만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적던 현모(42)씨는 “너무 어이없는 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이태원 일부 상인들은 출입문에 ‘10·29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걸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오후 2시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주관으로 4대 종교 기도회가 진행돼 희생자 159명의 넋을 위로했다. 기도회를 마친 유족과 시민 4000여명(주최 측 추산)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을 거쳐 분향소가 마련된 시청역 5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대통령실 앞에서 잠시 행진을 멈추고 “이태원 참사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라”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행진을 마치고 서울광장에 도착한 유족과 시민들은 오후 5시부터 참사 1주기 추모 대회를 열었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까지 합류하면서 모두 1만명(주최 측 추산)이 광장을 빼곡히 채웠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잃어버린 우리 아이를 추모하는 이 시간은 결코 정치 집회가 아니다”라며 “진실이 밝혀져야 비로소 유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생존자 이주현씨는 “어떤 사람들은 내게 운이 좋다고 한다. 그러면 159명은 운이 나빠서 죽어야 했느냐”며 “생존자로 남아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계속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대책회의는 추모 대회에서 참사 유족과 희생자를 향한 2차 가해 방지,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추모 대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일본에서도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이 진행됐다. 일본인 희생자 2명 중 1명인 도미카와 메이(사고 당시 26세)의 1주기 추모식이 전날 본가가 있는 홋카이도 네무로시의 한 절에서 열렸다. 메이의 아버지인 아유무(61)는 “희생된 생명이 헛되지 않도록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삿포로시 전문학교 진학 후 도쿄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메이는 지난해 6월 한국에 온 뒤 한국어 공부를 하며 지냈다.
  • 이태원 일본인 희생자 父 “희생자 헛되지 않게 대책 마련돼야”

    이태원 일본인 희생자 父 “희생자 헛되지 않게 대책 마련돼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일본인 2명 중 한 명인 도미카와 메이(사고 당시 26세)의 1주기 추모식이 지난 28일 본가가 있는 홋카이도 네무로시의 한 절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가족과 친척 등 약 20명이 참석했다. 메이의 아버지인 아유무(61)는 지난 1년에 대해 “처음에는 너무 슬프고 슬퍼서 매일 울기만 했다”며 “주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많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희생된 생명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혼잡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추모식 끝에 “언제까지나 메이를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삿포로시 전문학교 진학 후 도쿄에서 웹디자인 등 일을 했던 메이는 지난 6월 한국에 와서 한국어 공부를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평소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소개할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다. 매일 라인 메신저를 통해 한국에서의 일상을 가족들에게 보냈던 메이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7시쯤 아버지에게 “인사동이라는 곳에서 먹은 비빔밥 맛있었어! 오늘은 같은 반 프랑스 친구와 만나”라고 메시지를 보낸 게 마지막 인사였다. 다음날 오전 메이의 아버지는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한 건 한국 경찰관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지만 딸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 김정은 1600만원 시계, 김여정 1000만원 가방…“사치품 수십억대”

    김정은 1600만원 시계, 김여정 1000만원 가방…“사치품 수십억대”

    정부는 만성적 식량난 속에서도 김정은 일가를 위한 사치품 수입이 연간 수억~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 브리핑에서 김정은 일가 관련 정보가 극비여서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탈북자 증언과 정보당국의 현지 정보를 바탕으로 추정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정은 일가를 위한 사치품 조달은 평양의 서기실 지휘 아래 통치자금 관리조직인 ‘당 39호실’ 등이 관여한다. 보석과 시계, 고가 브랜드 제품 등 사치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북한은 친북 성향 국가나 유럽에 파견된 공관원·상사원을 동원해 사치품을 구매하고 반입한다. 당국자는 “북한은 각국에서 수집·구매한 사치품을 중·북 접경지에 집하하고 육로·해상 또는 항공편으로 운송하는 방식을 쓴다”며 “경유지를 여러 단계 거치는 방식으로 최종 도착지를 숨겨 밀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에는 육로 반입이 어려워 화물선을 이용해 불·편법으로 사치품을 은밀하게 선적한 후 반입했다. 이후 봉쇄 완화로 신의주 쪽 육로가 열리며 화물 열차·차량을 이용하는 비중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김정은 위원장, ‘스위스 시계’ 사랑 변함없어 김정은 위원장도 스위스 명품 브랜드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스위스 명품 시계 IWC의 ‘포르토피노 오토매틱’을 착용했다. 김 위원장이 찬 1600만원짜리 시계는 2019년 7월 단거리 탄도미사일 참관, 2020년 수해지 시찰, 같은 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도 포착됐다. 여동생 김여정은 1000만원짜리 디올 가방을 들었다. 배우자 이설주와 딸 김주애도 공개석상에서 각각 스위스 브랜드 모바도 시계와 디올 외투를 착용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일반 주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치품 소비를 과시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은이 각별히 총애하거나 군사분야에서 특별한 성과를 거둔 간부들에게 고급차량을 하사한다”며 “김씨 일가 생일이나 당대회 등 계기에 행사선물로 오메가 같은 스위스제 시계나 최신 휴대용 전자제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북한의 명품 수요 급증…신흥 자본가와 일반인도 최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몇 년 전부터 북한의 명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엔 ‘백두혈통’이라고 부르는 로열 패밀리에 국한됐으나 최근 몇 년 전부터 신흥 자본가와 일반인 등으로 차츰 확대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북한 평양의 국영 상점들은 주민들에게서 미국 달러를 받고 북한 원화를 거슬러 주는 방식으로 명품 등 사치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이란 영화 뉴웨이브 이끈 거장 메흐르지, 부인과 함께 안타까운 죽음

    이란 영화 뉴웨이브 이끈 거장 메흐르지, 부인과 함께 안타까운 죽음

    이란이 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다리우스 메흐르지(84)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저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부 알보르즈주의 자택에서 부인 바히데흐 모함마디파르와 함께 흉기로 살해당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의 부인도 각본가 겸 의상 디자이너였다. 부부의 주검을 발견한 것은 딸이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호세인 파젤리 이란 법무장관에 따르면 메흐르지가 딸에게 카라지에 있는 집에 들러 저녁을 함께 먹자고 초대했는데 딸이 방문했을 때 부모의 주검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알보르즈 경찰청장은 “초동 수사 결과 메흐르지 부부는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려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네 명의 신원이 밝혀졌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는데 용의자인지 참고인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범행 동기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BBC는 전했다. 모함마디파르는 최근 협박을 받았으며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주위에 불평을 쏟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란 배우 겸 감독인 호우만 세예디는 소셜미디어에 “끔찍하고도 잔인한” 소식이라고 밝혔다. 메흐르지는 1939년 테헤란에서 출생,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5년 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1969년 ‘소’(The Cow)를 제작해 명성을 얻으며 이란 영화계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197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았다. 198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주로 활동하다 1990년대 이란으로 귀국해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이란 국내와 외국 영화제에서 모두 49차례 수상했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하문(1990), 레일라(1997), 산투리(2007), 오렌지 수트(2012) 등이 있다. 뉴웨이브 계열 감독들은 주로 리얼리즘을 추구했지만 고인은 문학작품에 영감을 얻어 작품활동을 해왔다. 다만 명성이 자자했던 그의 작품 대부분은 검열 때문에 이란의 많은 대중이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한국과도 인연이 있었다.
  • 아이유, 촬영 중 살해협박 받아 경찰 출동…“엄벌 촉구”

    아이유, 촬영 중 살해협박 받아 경찰 출동…“엄벌 촉구”

    가수 겸 배우 아이유(본명 이지은)가 최근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아이유 소속사 이담 엔터테인먼트는 6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아이유를 상대로 살해 협박 신고가 접수돼 사무실과 본가로 수사기관이 긴급 출동했다. 아이유를 향한 폭력적 행위 수위가 도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아이유는 촬영 중이었다. 수사기관이 보안 및 안전 상황을 모두 확인한 뒤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아이유 측은 최근 제기된 표절 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민형사상 후속 대응에 나섰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아이유가 ‘분홍신’과 ‘좋은날’, ‘삐삐’, ‘가여워’, ‘부’(Boo), ‘셀러브리티’ 등 6곡에서 다른 가수의 음원을 표절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경찰은 지난달 4일 고발 사실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아이유 측은 곧바로 서울중앙지법에 고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인격권침해·무고 등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발인을 상대로 형사상 절차도 진행 중이다. 이담 측은 올 2월 강남경찰서에 아이유 비방을 일삼는 불특정 다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표절 사건 고발인도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유 법률대리인은 고발인의 인적 사항을 확보하기 위한 신청 절차를 진행 중이다. 소속사는 “법원이 해당 신청을 채택했다. 관련 자료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며 “고발인의 인적 사항 확인이 되는 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온·오프라인에서 양산되는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무관용 원칙’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소속사 측은 “허위 신고 역시 처벌 대상에 해당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악성 누리꾼을) 끝까지 추적해 수사기관에 강력한 처벌을 촉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김보름의 콘텐츠로 보는 세상] 놀이 콘텐츠로서의 과시적 무소비/한성대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보름의 콘텐츠로 보는 세상] 놀이 콘텐츠로서의 과시적 무소비/한성대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생산적인 일인 노동은 최대한 멀리하고 비생산적인 여가활동에만 몰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근대 산업이 성장하고 금융자본주의가 형성되던 시기에 귀족과 대자본가들은 어떻게 하면 쓸데없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이처럼 일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부유한 사람들을 가리켜 유한계급(有閑階級ㆍThe leisure class)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당시 실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라틴어를 배우는 데 시간과 돈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지위를 드러냈다. 이러한 과시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모방 속에 이른바 ‘쫓기와 달아나기’(chase and flight)로 이어지며 유행을 만들어 낸다. 남들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끊임없이 쫓아가고 여기서 벗어나 또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추격과 모방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현대적 과시 행위는 베블런이 설명한 유한계급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며 만들어지는 에코백과 텀블러 사용은 현대적 과시 행위의 새로운 양상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를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에코백은 각종 기관과 행사 주체들에 의해 경쟁하듯 기념품으로 제공되면서 집안 곳곳에 쌓이고 있고, 힙하다는 브랜드에서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독특하게 만든 에코백은 환경 의식을 과시하는 장식물로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만든 굿즈 텀블러 역시 매 시즌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오픈런 속에 몇 시간 만에 완판되는 진풍경을 만들어 낸다. 에코백과 텀블러가 환경 보호라는 애초의 목적과는 다르게 과잉생산의 골칫거리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과시적 소비를 대하는 MZ세대의 방식은 사뭇 다르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된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소비를 하거나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거창한 이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비 자체를 하지 않는 무소비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하고 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얼마나 버티고 사는가에 도전하면서 이를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이른바 ‘무지출 챌린지’가 대표적인 예다. 절제를 서로 독려하며 불필요한 소비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충고하는 오픈채팅 ‘절약방’에서는 버블티 대신 컵에 버블 모양의 검정 스티커를 붙인 밈을 주고받는다. “저를 운반해 주신 어르신께 5600원을 드렸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럴싸한 설명하지 마시고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택시 타셨군요”라고 촌철살인으로 혼내거나 “비싼 커피 대신 물 700원에 구입”이라는 톡에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데 조금만 참지 그러셨어요”라고 위트 있는 조언을 한다. 이들은 익명 채팅방에서 잔소리 듣는 것을 하나의 놀이와 재미로 받아들이면서 지출 제로의 삶에 도전하는 챌린지 과정을 콘텐츠로 만들어 즐긴다. 베블런의 유한계급과는 다르게 무소비 일상을 과시적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이다.
  • 우유 ‘1ℓ=3000원’ 육박…빵·라테·아이스크림 다 오른다

    우유 ‘1ℓ=3000원’ 육박…빵·라테·아이스크림 다 오른다

    1일부터 우유와 유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른다. 올해 인상하기로 한 우유 원유(原乳) 가격이 이날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 아이스크림, 카페라테 등 유제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1일 우유업계에 따르면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이날 흰 우유 제품인 ‘나 100% 우유’(1ℓ)의 출고가를 대형할인점을 기준으로 3% 올렸다. 이에 따라 대형할인점에서 나 100% 우유 가격은 2900원대에 팔린다. 편의점 우유 가격은 3200원으로 4.9% 오른다. 업체별로 보면 매일유업은 자사 우유 제품 가격을 4~6% 올리고, 가공유 제품은 5~6%, 발효유와 치즈 제품 가격은 6~9% 상향 조정된다. 남양유업은 흰 우유 제품인 ‘맛있는 우유 GT’(900㎖) 출고가를 4.6% 인상하고, 다른 유제품 출고가도 평균 7% 올린다. 빙그레는 오는 6일부터 대형할인점을 시작으로 굿모닝우유(900㎖)와 바나나맛우유(240㎖) 가격을 5.9%씩 올린다. 이에 따라 바나나맛우유는 편의점 기준 1800원으로 100원 오르고, 요플레는 8.6%, 아이스크림 투게더는 8.9% 오른다. 우유업계가 일제히 제품 가격을 올린 것은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것이다. 앞서 낙농진흥회는 지난 8월 마시는 우유용 원유 기본가격을 ℓ당 88원(8.8%) 오른 1084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원유가격 인상은 지난해(49원)보다 가파른데다 인건비, 에너지비용, 부자재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흰 우유 가격이 세자릿수까지 오를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각 업체는 고물가 장기화에 따른 소비자 피로감과 정부의 압박 등을 고려해 올해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해 흰 우유 1ℓ 제품 가격을 대형할인점 기준 3000원 아래로 결정했다. 다만 크림, 치즈, 버터, 요구르트 등 유제품과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 커피, 아이스크림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 촉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해에도 원윳값 인상 여파로 유업체들이 우유 관련 제품가를 평균 10%씩 올리면서 빵은 6%대, 아이스크림 가격은 20%까지 급등했었다.
  • “부담되는 ‘부모님 용돈’…얼마 준비하고 계신가요?”

    “부담되는 ‘부모님 용돈’…얼마 준비하고 계신가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모(31)씨는 고향인 경상북도 경산시 대신 서울에서 연휴를 보내고 있다. 김씨는 “‘취직 언제 할 거니’ 잔소리가 너무 부담된다”며 “고향에 가려면 KTX 등 교통비도 만만치가 않다. 이번 추석은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회사원 박모(30)씨도 전라도 광주 본가에 내려가는 대신 자취방에 머문다. 박씨는 “안 그래도 자취하느라 돈 모으기가 어려운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부모님 등 어른들께 명절 용돈까지 드릴 엄두가 안 나더라”라며 “이번 추석만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나중에 찾아뵙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는 2030세대가 점차 늘고 있다.취업준비생이 꼽은 최악의 명절 잔소리는 변함없이 ‘취업’과 ‘연애·결혼’ 관련 내용인 것으로 집계됐다. 부모님, 조카 용돈 부담에 아예 추석 귀성을 포기한 청년들도 많았다. 29일 채용 플랫폼 캐치에 따르면 Z세대 취준생 2404명을 대상으로 가장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취업’ 관련 잔소리를 선택했다. ‘연애·결혼’ 잔소리는 17%였다. 또 응답자의 32%는 올해 추석에 고향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취업 준비로 바빠서’가 44%였고, 이어 ‘휴식을 하고 싶어서’가 21%, ‘여행, 개인 일정 등 다른 계획이 있어서’가 12%였다. 특히 고물가로 지출은 늘고 소득은 제자리 걸음인 상황에서 명절 선물, 부모님과 조카들의 용돈 등 나가는 돈이 부담된다고 청년들은 입을 모았다. “추석 경비 ‘부모님 용돈’ 가장 부담돼” 최근 유진기업이 임직원 1295명을 대상으로 추석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추석 경비 중 부담되는 항목으로 제일 먼저 부모님 용돈(39.6%)을 꼽았다. 명절선물 비용(20.4%), 조카 용돈(7.0%) 등이 그 뒤를 이었다.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응답자의 44.1%가 ‘명절이 즐겁지 않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은 비율은 54.7%에 달했다. “‘부모님 용돈’ 20대 17만원, 30대 21만원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모님 용돈’은 얼마가 적정할까. 추석 명절 부모님 용돈으로 평균 10만~30만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KB국민카드와 카카오페이가 추석 용돈 관련 설문을 조사한 결과,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으로 10만~30만원 미만이 응답자중 74%로 가장 많았다. 10만원 미만으로 응답한 고객은 7%, 30만~50만원 미만은 15%, 50만원 이상은 4%로 분석됐다. 이중 2030이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시세는 20대의 경우 약 17만원, 30대는 약 21만원으로 집계됐다. 내가 받고 싶은 용돈 금액은 10만~30만원이 6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0만원 미만 25%, 30만~50만원 미만 8%, 50만원 이상 4% 순으로 조사됐다.
  • 차례상으로 이래라 저래라 싸우지 마세요…성균관 “마음이 중요”

    차례상으로 이래라 저래라 싸우지 마세요…성균관 “마음이 중요”

    오랜 연애 끝에 올해 초 결혼한 김재영(39·가명)씨는 추석 연휴를 맞아 걱정이 크다. 아내와 함께 본가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집안 어른 간 싸움이 또 커질까 우려돼서다. 김씨 집안은 명절 때마다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데, 8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차례상 진설 방법을 놓고 매년 싸움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설에는 첫째 큰아버지와 싸우던 둘째 큰아버지가 화를 내고 돌아가 차례상을 따로 차리기도 했다. 김씨는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충격받을까 걱정이 앞선다. 김씨는 “평소에는 참 친절한 분들인데 차례상 문제만 나오면 말려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추석이나 설 때마다 차례상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스트레스부터 ‘어떤 음식을 어디에 올려야 한다’는 간섭과 의견 충돌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부산에서는 차례상 준비 문제로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60대 여성이 흉기를 휘둘러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차례상이 싸움까지 번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정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등 의례 전문가들은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9가지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9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발표한 추석 차례상 표준안을 보면, 차례상에 올라가야 할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4종류와 술까지 모두 9가지다. 육류와 생선, 떡을 놓을 수 있지만 선택 사안이다. 그간 차례상 진설법으로 여겨졌던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와 ‘조율이시’(대추·밤·배·감) 등은 옛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고 꼭 지켜야 할 예법이 아니라는 게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의 설명이다. 음식을 놓는 방법도 정해진 것은 없다. 조상이 좋아했던 과일 등을 순서와 상관없이 편하게 놓으면 된다. 또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올리지 않아도 된다. 조상의 이름을 쓴 ‘지방’ 대신 사진을 두고 제사를 지내고 괜찮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다”며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 [단독] 주민들 산책하고, 후손이 쉬어가는 장소로… 묘지의 본질 바꾸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단독] 주민들 산책하고, 후손이 쉬어가는 장소로… 묘지의 본질 바꾸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보수적인 장묘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분화하는 가족 구성원 속에서 전통적인 추모 방식을 이어 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가친척이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모여 살던 시절엔 몇 대에 걸쳐 산소를 돌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1인가구가 늘고 출생률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후대에게 ‘자식 된 도리’만을 강요할 수도 없다. 서울신문은 4회에 걸쳐 ‘파묘’라는 상징적인 사례를 통해 장묘문화가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점과 실태를 분석하고 방안을 모색했다. 전문가들은 묘가 상징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추모 패러다임으로 변화할 때라고 말한다. 이제는 혈연관계를 넘어 공동 추모의 장을 장례문화의 새 대안으로 고민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아이들 소풍 오는최씨네 자연장지 “산소 좋은 거 써서 뭐에 쓴답니까.” 추석을 앞둔 지난 10일 최우영(76)씨가 예초기를 챙겨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경북 영천에 있는 ‘인덕원’. 영천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쯤 가자 넓은 잔디공원이 펼쳐졌다. 605㎡ 규모의 이곳은 최씨 문중의 자연장지로, 그의 고조부대부터 그 아래로 26명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원 어디에도 봉분이나 묘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 아래 비석에 고인의 이름이 한데 새겨져 있는 게 다였다. 최씨는 산소의 벌초를 하는 대신 평평한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자연장 개념이 생소했던 2000년, 최씨 숙부가 문중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 파묘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봉분을 없앤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고 유골은 분골해 땅속에 묻자는 제안이었다. 그때만 해도 최씨는 펄쩍 뛰었다. 자신이 죽으면 묘에 술을 따라 달라던 할머니의 생전 부탁도 걸렸다.그러던 중 최씨는 산에 벌초하러 갔다가 어느 묘에 설치된 현수막을 봤다. ‘이 묘를 벌초한 사람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남의 묘를 정리한 것이었다. 최씨는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그는 “벌초를 같이 갔던 아들의 ‘나중엔 누가 산소를 찾겠냐’는 말에 조상 묘를 잘못 찾는 게 우리 집 얘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그날로 굴착기를 몰 줄 아는 친척 동생과 함께 산을 찾아다니며 흩어져 있던 산소 12기를 직접 파묘했다. 산속에 있던 묘지가 평지로 내려와 가족공원으로 탈바꿈하자 반대하던 친척들도 반겼다. 명절마다 벌초하러 이 산, 저 산을 다녀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지금은 공원 가운데 차례상을 차려 놓고 잔디에 술을 따르거나 기도를 올리는 등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한다. 최씨는 “한 달에 한 번 친척들이 모여 풀을 깎는데 자주 보니 우애도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묘는 기껏해야 몇십 년 가지만 이곳은 500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린공원으로 등록된 인덕원은 일반 시민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공원 한쪽에는 ‘쉬어가세요’라는 팻말과 함께 나무 의자와 정자, 작은 연못이 있다. 최씨는 “인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자주 와 공을 차며 뛰노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며 “마을 주민들도 오며 가며 쉬었다 간다”고 했다.한옥 기억공간 조성시댁 묘 바꾼 며느리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어떻게 후손들과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야지요.” 묘 관리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몫이었다. 묘를 짓거나 개장하는 일 모두 남성이 주로 결정해 왔다. 그러나 평산 신씨 종가의 며느리 정경숙(74)씨는 2012년 시댁 조상의 산소를 직접 주도해 정리하고 자연장지를 조성했다. 장손인 남편은 10여년 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더는 묘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무덤을 이대로 놔두면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고 국토도 황폐해질 테니 지금이라도 묘를 정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 뜻을 정씨가 이어받았다. 새로운 방식의 대안을 찾던 중 인덕원을 알게 됐다.정씨는 시댁 본가가 있는 경북 안동에 자연장지를 만들기로 하고 총 24기 무덤을 개장해 옮겨 왔다. 그는 “30년도 더 된 시할머니 묘에 물이 차 백발과 하얀 명주옷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속상했지만 그때라도 잘 모실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회상했다.2017년엔 자연장지가 있는 곳에 30평 크기의 한옥을 지었다. 한옥에는 시할머니가 시집올 때 신었던 가죽신, 할아버지가 만든 베개, 일제강점기에 쓰던 안경 등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동시에 무선 인터넷이나 TV 등 편의시설도 갖춰 후손들이 오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정씨는 형식에 치우친 장례문화가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고 사후에까지 빈부격차를 느끼게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건 ‘기억’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에서 작은 십자가 하나를 세워 놓고 여러 사람이 추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우리도 꼭 물리적인 뭔가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후손들이 각자 조상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지요.”자연장 비용 천차만별하고 싶어도 장소 부족 이처럼 자연친화적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동 추모의 장이 장례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 인식조사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지난해 국민 15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례문화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화장을 원했고, 화장 후에는 자연장을 하고 싶다는 비중이 41.6%로 가장 높았다. 봉안은 35.3%, 산분장(화장한 분골을 산이나 강, 바다 등에 뿌리는 것)은 23%였다. 그러나 실제 자연장(24.5%)이나 산분장(8.2%)을 택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덕원과 같은 자연장을 꿈꾸지만 막상 장지를 선택하려고 보면 선택지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연장을 조성하기엔 비용이 만만찮고 공설 자연장지는 전국 77곳에 불과하다. 유행처럼 수목장이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비용이 천차만별인 데다 시설도 국민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최재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자연장 홍보 책자를 보면 멋있는데 실제로 가 보면 생각보다 수준이 떨어져 실망하는 유족들이 많다”면서 “조경이라든지 주변의 편의시설 등 환경적인 부분에서 개선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우리 자연환경에 맞는 자연장지를 조성하고 산분장도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자연장지를 꼭 산이나 도시 외곽에 설치할 것이 아니라 도심에 산분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초빙교수는 “유럽에는 자연환경에 어울리면서 공동 추모할 수 있는 방식이 많이 개발돼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이런 것들을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찾아오는 숲스웨덴 민네스룬드 해외 사례를 보면 유독 도심 속 추모 공원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 민네스룬드(Minneslund)다. ‘기억(추모)의 숲’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민네스룬드는 전국 500여곳에 조성된 시민 공동 추모공간으로, 화장된 유골의 절반 이상이 민네스룬드에 뿌려진다고 한다.지난 19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시내에 있는 스탐펜 공동묘지. 4300㎡ 크기의 대형 묘지로 2500여기의 묘가 있다. 묘지 바로 옆으로 펼쳐진 자전거 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커다란 묘비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택가와 상권들은 위화감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모퉁이로 가자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푸른 잔디로 덮인 민네스룬드가 눈에 띄었다. 1982년부터 이곳에서는 고인의 유골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공동묘지는 큰 묘비들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 공간만큼은 묘지라는 표식이 전혀 없었다. 꽃과 나무가 잘 가꿔진 화단에 이따금 메시지가 적힌 돌멩이 등이 눈에 띌 뿐이었다.민네스룬드는 개인의 표시를 전혀 남기지 않는 게 특징이다. 직원이 유해를 뿌릴 때도 유족이나 지인이 입회하지 않고, 어느 곳에 뿌렸는지도 알려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공원의 조각상이나 개울, 분수, 잔디, 돌 등 다양한 공간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한다. 스웨덴 시민 누구나 생전 업적이나 지위, 가족 배경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이곳에 잠들어 있다. 고인은 그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민 대부분이 묻히길 희망한다는 민네스룬드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생활 속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요세핀 부니스(33)는 “묘지는 처음부터 우리 곁에 있어 온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이 근처에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네스룬드에는 시체도, 유골도 없다. 여기서 재를 뿌리기도 하지만 바다에서 바람에 날린 뒤 이곳에 와서 추모하기도 한다”면서 “따로 관리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추모하기에 더 좋다”고 덧붙였다.이처럼 자기 표시를 남기지 않고 합장하거나 공동으로 추모하는 방식의 장례문화는 유럽뿐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일본 도쿄도립 고다이라묘원의 ‘수림묘지’(수목장)에는 27곳에 땅을 파 혈연과 관계없이 400구의 유골을 합장한다.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운영하는 양밍산 공원묘지는 대만 사람들이 “죽고 나서라도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지역이다. 풍수지리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주변에 고급 리조트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묘원만큼은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열려 있으며, 유족은 원하는 구역을 선택해 유해 가루를 묻을 수 있다. 이철영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겸임교수는 “장례 의식은 추모에 방점이 찍혀야지 묘지나 장례 절차 같은 형식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며 “공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유럽 국가들처럼 공원 잔디에 뿌리는 잔디장이나, 혹은 온라인 추모 같은 방식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한지은 기자 QR 찍으면 유튜브로 서울신문의 ‘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 기사는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b2AsRnTwc<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시리즈 1회 - 버려진 무덤 2회 -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다 3회 - 파묘, 그 이후 4회 - 공동 추모의 시대 ▶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forefathers (링크를 복사한 뒤 인터넷 주소창에 붙여주세요)
  • [단독] 묘지 없애자 아이들이 놀러 왔다...종갓집 며느리의 결심 [2023 파묘 리포트④]

    [단독] 묘지 없애자 아이들이 놀러 왔다...종갓집 며느리의 결심 [2023 파묘 리포트④]

    직접 가족 자연장지 조성한 최우영·정경숙씨“관리·추모 더 편해…후손 위해 묘 정리 필요”묘도, 유해도 없는 스웨덴 민네스룬드“공간 집착 버리고 ‘기억’에 초점 맞춰야” 보수적인 장묘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분화하는 가족 구성원 속에서 전통적인 추모 방식을 이어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가친척이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모여 살던 시절엔 몇 대에 걸쳐 산소를 돌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1인가구가 늘고 출생률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후대에게 ‘자식된 도리’만을 강요 할 수도 없다. 서울신문은 4회에 걸쳐 ‘파묘’라는 상징적인 사례를 통해 장묘문화가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점과 실태를 분석하고 방안을 모색했다. 전문가들은 묘가 상징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추모 패러다임으로 변화할 때라고 말한다. 이제는 혈연관계를 넘어 공동 추모의 장을 장례문화의 새 대안으로 고민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우리나라 자연장 이끈 영천 인덕원 “산소 좋은 거 써서 뭐에 쓴답니까.” 추석을 앞둔 지난 10일 최우영(76)씨가 예초기를 챙겨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경북 영천에 있는 ‘인덕원’. 영천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쯤 가자 넓은 잔디공원이 펼쳐졌다. 605㎡ 규모의 이곳은 최씨 문중의 자연장지로, 그의 고조부대부터 그 아래로 26명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원 어디에도 봉분이나 묘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 아래 비석에 고인의 이름이 한 데 새겨져 있는 게 다였다. 최씨는 산소의 벌초를 하는 대신 평평한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자연장 개념이 생소했던 2000년, 최씨 숙부가 문중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 파묘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봉분을 없앤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고 유골은 분골해 땅속에 묻자는 제안이었다. 그때만 해도 최씨는 펄쩍 뛰었다. 자신이 죽으면 묘에 술을 따라 달라던 할머니의 생전 부탁도 눈에 밟혔다.그러던 중 최씨는 산에 벌초하러 갔다가 어느 묘에 설치된 현수막을 봤다. ‘이 묘를 벌초한 사람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남의 묘를 정리한 것이었다. 최씨는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그는 “벌초를 같이 갔던 아들이 ‘나중엔 누가 산소를 찾겠냐’고 말하는 걸 듣고는 조상 묘를 잘못 찾는 게 우리 집 얘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그날로 굴착기를 몰 줄 아는 친척 동생과 함께 산을 찾아다니며 흩어져 있던 산소 12기를 직접 파묘했다. 산속에 있던 묘지가 평지로 내려와 가족공원으로 탈바꿈하자 반대하던 친척들도 반겼다. 명절마다 벌초하러 이 산, 저 산을 다녀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지금은 공원 가운데 차례상을 차려 놓고 잔디에 술을 따르거나 기도를 올리는 등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한다. 최씨는 “한 달에 한 번 친척들이 모여 풀을 깎는데 자주 보니 우애도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묘는 기껏해야 몇십 년 가지만 이곳은 500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근린공원으로 등록된 인덕원은 일반 시민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공원 한쪽에는 ‘쉬어가세요’라는 팻말과 함께 나무 의자와 정자, 작은 연못이 있다. 최씨는 “인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자주 와 공을 차며 뛰노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며 “마을 주민들도 오며 가며 쉬었다 간다”고 설명했다. 시댁 묘 정리한 종갓집 며느리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어떻게 후손들과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야지요.” 묘 관리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몫이었다. 묘를 짓거나 개장하는 일 모두 남성이 주로 결정해 왔다. 그러나 평산 신씨 종가의 며느리 정경숙(74)씨는 2012년 시댁 조상의 산소를 그가 직접 주도해 정리하고 자연장지를 조성했다.장손인 남편은 10여년 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더는 묘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무덤을 이대로 놔두면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고 국토도 황폐해질 테니 지금이라도 묘를 정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 뜻을 정씨가 이어받았다. 새로운 방식의 대안을 찾던 중 인덕원을 알게 됐다. 정씨는 시댁 본가가 있는 경북 안동에 자연장지를 만들기로 하고, 총 24기 무덤을 개장해 옮겨 왔다. 그는 “30년도 더 된 시할머니 묘에 물이 차 백발과 하얀 명주옷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속상했지만, 그때라도 잘 모실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회상했다.2017년엔 자연장지가 있는 곳에 30평 크기의 한옥을 지었다. 한옥에는 시할머니가 시집올 때 신었던 가죽신, 할아버지가 만든 베개, 일제강점기에 쓰던 안경 등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동시에 무선 인터넷이나 TV 등 편의시설도 갖춰 후손들이 오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정씨는 형식에 치우친 장례 문화가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고 사후에까지 빈부격차를 느끼게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건 ‘기억’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에서 작은 십자가 하나를 세워 놓고 여러 사람이 추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우리도 꼭 물리적인 뭔가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후손들이 각자 조상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지요.”자연장 하고 싶지만 기대 수준 못미쳐 이처럼 자연친화적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동 추모의 장이 장례 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 인식조사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지난해 국민 15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례문화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화장을 원했고, 화장 후에는 자연장을 하고 싶다는 비중이 41.6%로 가장 높았다. 봉안은 35.3%, 산분장(화장한 분골을 산이나 강, 바다 등에 뿌리는 것)은 23%였다. 그러나 실제 자연장(24.5%)이나 산분장(8.2%)을 택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덕원과 같은 자연장을 꿈꾸지만, 막상 장지를 선택하려고 보면 선택지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연장을 조성하기엔 비용이 만만찮고, 공설 자연장지는 전국 77곳에 불과하다. 유행처럼 수목장이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비용이 천차만별인데다 시설도 국민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서울신문 9월 20일자 9면>최재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자연장 홍보 책자를 보면 멋있는데, 실제로 가 보면 생각보다 수준이 떨어져 실망하는 유족들이 많다”면서 “조경이라든지 주변의 편의시설 등 환경적인 부분에서 개선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우리 자연환경에 맞는 자연장지를 조성하고 산분장도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자연장지를 꼭 산이나 도시 외곽에 설치할 것이 아니라 도심에 산분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초빙교수는 “유럽에는 자연환경에 어울리면서 공동 추모할 수 있는 방식이 많이 개발돼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이런 것들을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속 추모 공간 스웨덴 민네스룬드 해외 사례를 보면, 유독 도심 속 추모 공원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 민네스룬드(Minneslund)다. ‘기억(추모)의 숲’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민네스룬드는 전국 500여곳에 조성된 시민 공동 추모공간으로, 화장된 유골의 절반 이상이 민네스룬드에 뿌려진다고 한다.지난 19일(현지시각) 스웨덴 예테보리 시내에 있는 스탐펜 공동묘지. 4300㎡ 크기의 대형 묘지로 2500여기의 묘가 있다. 묘지 바로 옆으로 펼쳐진 자전거 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커다란 묘비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택가와 상권들은 위화감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모퉁이로 가자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푸른 잔디로 덮인 민네스룬드가 눈에 띄었다. 1982년부터 이곳에서는 고인의 유골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공동묘지에는 큰 묘비들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 공간만큼은 묘지라는 표식이 전혀 없었다. 꽃과 나무가 잘 가꿔진 화단에 이따금 메시지가 적힌 돌멩이 등이 눈에 띌 뿐이었다.민네스룬드는 개인의 표식을 전혀 남기지 않는 게 특징이다. 직원이 유해를 뿌릴 때도 유족이나 지인이 입회하지 않고, 어느 곳에 뿌렸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공원의 조각상이나 개울, 분수, 잔디, 돌 등 다양한 공간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한다. 스웨덴 시민 누구나 생전 업적이나 지위, 가족 배경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이곳에 잠들어 있다. 고인은 그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민 대부분이 이곳에 묻히길 희망한다는 민네스룬드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생활 속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요세핀 부니스(33)는 “묘지는 처음부터 우리 곁에 있어 온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이 근처에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네스룬드에는 시체도, 유골도 없다. 여기서 재를 뿌리기도 하지만 바다에서 바람에 날린 뒤 이곳에 와서 추모하기도 한다”면서 “따로 관리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추모하기에 더 좋다”고 덧붙였다.이처럼 자기 표식을 남기지 않고 합장하거나 공동으로 추모하는 방식의 장례 문화는 유럽뿐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일본 도쿄도립 고다이라묘원의 ‘수림묘지’(수목장)에는 27곳에 땅을 파 혈연과 관계없이 400구에 유골을 합장한다.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운영하는 양밍산 공원묘지는 대만 사람들이 “죽고 나서라도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지역이다. 풍수지리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주변에 고급 리조트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묘원만큼은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열려 있으며, 유족은 원하는 구역을 선택해 유해 가루를 묻을 수 있다. 이철영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겸임교수는 “장례 의식은 추모에 방점이 찍혀야지 묘지나 장례 정차 같은 형식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며 “공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유럽 국가들처럼 공원 잔디에 뿌리는 잔디장이나, 혹은 온라인 추모 같은 방식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QR 찍으면 유튜브로 서울신문의 ‘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 기사는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b2AsRnTwc<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시리즈 1회 - 버려진 무덤 2회 -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다 3회 - 파묘, 그 이후 4회 - 공동 추모의 시대 ▶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forefathers (링크를 복사한 뒤 인터넷 주소창에 붙여주세요)
  • “‘혼전임신’에 부랴부랴 결혼…아내 폭력 못참겠습니다”

    “‘혼전임신’에 부랴부랴 결혼…아내 폭력 못참겠습니다”

    교제 중 혼전 임신으로 시작한 결혼생활 중 아내의 폭언과 폭력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남편의 사연이 전해졌다. 25일 YTN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결혼생활 3개월 만에 별거를 시작했다는 남성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는 2021년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고,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아내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서둘러 결혼을 결정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A씨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성급하게 결혼을 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내가 기분이 나쁠 때마다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욕설, 폭언을 했다”며 “또 폭력을 쓸 때도 있었다”고 호소했다. A씨는 참다 못해 자신의 아내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생겼다고 밝혔다. 이후 A씨와 아내의 다툼은 더 잦아졌고,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 것을 우려해 A씨는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별거를 결심하고 본가에 들어갔다. 이어 A씨는 아내와 원만하게 이혼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아내는 자신의 부모님이 준 예단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또 결혼식 비용과 혼수 구입비 등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재산분할 없이 원만하게 이혼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재산을 정리할 수 있느냐”며 “하루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저 아내와 직접 만나지 않고 이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며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했다.변호사 “짧은 시간내에 결혼 파탄 났더라도, 재산분할해야” 김규리 변호사는 “법원은 부부가 부부공동체로서 의미 있는 혼인생활을 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단기간에 혼인 생활이 파탄되거나 당초부터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결국 혼인의 파국을 초래하였다고 인정되는 등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신의칙 내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혼인 불성립에 준하여 지출한 결혼 비용 등에 대한 원상회복 또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동시에 대법원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제 아래에서 유효한 혼인의 합의가 이루어져 혼인신고를 마치고 법률상의 혼인이 성립되면 부부공동체로서의 동거·부양·협조 관계가 형성되고 그 혼인관계의 해소는 민법에서 정한 이혼 절차에 따라야 하므로 쉽게 그 실체를 부정하여 혼인 불성립에 준하여 법률관계를 처리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판시하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A씨의 경우, 혼인생활이 3~4개월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A씨와 아내분이 부부공동체로서 의미 있는 혼인생활을 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단기간에 파탄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부터 사연자분이 혼인을 유지할 의사가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겠다”며 “결국 사연자분과 아내분의 혼인 관계 해소에 따른 금전적인 문제는 재산분할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상대방과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원만하고 신속하게 법률상 혼인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이라며 “협의이혼이 되지 않을 경우 재판상 이혼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별도의 재산분할 없이 이혼할 수 없겠냐는 A씨의 질문에 김 변호사는 “상대방과 협의를 통해 별도의 재산분할 없이 현재 각자 자신의 명의대로 보유하고 있는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을 각자 명의대로 확정적으로 귀속하게 하는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변호사는 “쉽게 말해, 은행에 있는 각자의 예금 채권이나 부동산 등 플러스 재산도, 또 은행에 대한 대출금과 같은 마이너스 채무도 상호 분할 없이 그 명의대로 소유권을 가지고 변제책임도 지기로 하고 더는 정산할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혼 생활을 영위하던 부부가 이혼에 직면하게 되면 서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결정될 수 있도록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 온리-유가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대표 손동규)와 공동으로 지난달 전국의 (황혼)재혼 희망 돌싱남녀 518명(남녀 각 259명)을 대상으로 ‘전 배우자와 이혼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어떤 사항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다투었습니까?’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남성은 응답자의 41.3%가 ‘재산 기여도’라고 대답했다. 반면 여성은 ‘부당 행위’로 답한 비중이 39.0%로서 각각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것만 알면 더 맛있는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것만 알면 더 맛있는 추석

    이번 주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날만 같아라’라는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추석은 맛있는 냄새와 색깔, 다양한 음식으로 ‘천고마비’로 이끄는 때다. 먹을거리가 넘치는 명절을 앞두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음식 관련 인문학책들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눈길을 끈다.‘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글항아리)는 저자의 독특한 경력부터가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글로 먹고사는 미래가 불안한 저자는 서울 남대문 그릇 도매 상가에서 5년 동안 냉장고, 가스레인지, 쓰레기통, 신발 등 업소용 주방용품 전반을 취급하는 장사를 했다. 장사꾼 DNA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당시 경험과 지식에 많은 문헌 조사까지 더해 책을 펴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식사할 때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모두 차이가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멜라민 수지로 만든 중식 젓가락은 25㎝, 20g, 멜라민 일식 젓가락은 24.2㎝, 19g이다. 나무젓가락은 중식과 일식 모두 12~13g이지만 우리가 흔히 식당에서 만나는 스테인리스 젓가락은 22.8㎝, 43g이다. 이런 젓가락으로 생선이나 돼지등뼈 속 살을 발라내고 나면 손아귀에 쥐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요리용 칼날의 최적 각도, 도마의 종류에 따른 특징, 냄비의 비밀은 물론 한국인이 볶음밥을 먹기 시작한 때 등 기존 음식의 역사책 속에서도 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사람들은 ‘차 한 잔’은 이제 당연한 코스가 됐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국내 1호점이 문을 열고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서울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도시 중 가장 많은 스타벅스 매장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주당 12.3잔의 커피를 마시고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는 약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역사비평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사 교수인 저자는 인류가 커피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현재 한국의 커피 문화까지 한국인의 시각으로 분석한 커피의 역사다. 저자는 현재 알려진 커피의 기원도 ‘아라비안나이트’ 작가로 유명한 프랑스인 앙투앙 갈랑이 만들어 낸 가짜뉴스라고 지적한다. 커피나무, 특히 아라비카종 커피나무의 기원이 에티오피아이기 때문에 커피도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다. 커피 음료의 시작은 예멘의 이슬람 수피교도지만 갈랑은 ‘커피의 기원과 발전’이라는 논문에서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와 연결 짓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커피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공장노동자의 음료’가 됐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노동의 피로를 술로 달래는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술로 인한 산업재해가 줄어 자본가 이익은 늘어나게 됐다는 것이다.‘날이 좋아요, 차를 마셔요’(청림라이프)는 커피 대신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커피가 노동을 위한 음료라면 차는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게 만드는 ‘휴식을 위한 음료’다. 와인이나 위스키, 심지어 커피에 대해서는 보통의 전문가들이 많지만 차에 대해서는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은 저자가 차를 접하면서 느끼는 일상을 차분히 풀어내는 한편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어울리는 차를 알려주고 심지어 차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우려내는 시간까지 조언한다.
  • 서수상 제자리 찾아준 한 컷… 시린 역사 품은 유리건판의 미학

    서수상 제자리 찾아준 한 컷… 시린 역사 품은 유리건판의 미학

    지난달 29일 경복궁에선 100여년 만에 본가로 돌아온 광화문 월대 서수상(상서로운 동물상) 2점이 취재진에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 어도(임금이 다니는 길)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하던 서수상은 그간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있었는데 한 시민이 문화재청에 제보하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유족 측이 기증하기로 결정하면서 귀환하게 됐다. 다음달 공개될 서수상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던 데는 유리건판 사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간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호암미술관 서수상이 원본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는데 그 근거 자료가 바로 일제가 남긴 유리건판 사진이었다. 사진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번에 제대로 그 가치가 발휘된 셈이다. 디지털 사진이 대세이고 필름 사진이 감성 소품으로 과거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유리건판이 있었다. 유리건판은 1871년 영국인 리처드 리치 매덕스(1816~1902)가 발명한 것으로 20세기 초반 사진을 찍을 때 많이 사용됐다. 필름에 찍힌 장면이 유리판에 찍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유리건판은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이름 없는 사진사들이 남긴 유물이다. 찍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개는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찍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소장하던 것을 광복 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일괄 접수해 지금은 3만 8170건이 전용 수장고에서 지진에 깨질 위험을 대비해 모빌렉에 보관되고 있다. 유리건판 사진은 양면성을 지닌다. 광화문 월대 서수상을 찾게 한 사진처럼 근대와 현대 사이 단절된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전시를 준비한 이상미 학예연구사는 “유리건판 사진을 토대로 흩어진 상태의 토우 장식과 토기를 하나씩 맞춰 1926년 경주 황남동에서 출토된 토우 장식 토기 97점을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식민 지배를 위한 기초조사 자료였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리건판을 보존·관리하는 김영민 학예연구관은 “유리건판은 아무나 못 찍는 사진이었다. 일제의 의도, 시선을 의식하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미를 떠나 유리건판 사진은 사진 그 자체의 미학이 도드라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어떤 사진들은 작가가 예술혼을 불태워 찍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구도가 탁월하다. 광화문 월대 사진만 해도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좌우상하 균형을 맞춰 찍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다.유리건판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1987년부터 사진을 인화하기 시작했고, 1997년부터 목록집을 만들었다. 디지털 시대가 찾아오면서 2002년부터 디지털화 작업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 소장품으로 변경돼 보관 방식도 바뀌었다. 기술이 좋아지면서 2019년 다시 더 좋은 화질로 올렸고 지금은 유리건판 온라인 영상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 ‘남양주 모녀 살인’ 50대 동거남에 무기징역 구형

    ‘남양주 모녀 살인’ 50대 동거남에 무기징역 구형

    남양주에서 동거녀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귀금속을 챙겨 달아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50대 남성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은 19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부(박옥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살인, 절도, 미성년자 약취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김모(50)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자발찌 20년 부착 명령, 피해자 유족 접근 금지, 보호관찰 등도 요청했다. 검찰은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며 이같은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 7월 20일 오후 1시 30분쯤 남양주시 내 한 빌라에서 중국 출신 동거녀 A(33)씨와 어머니 B(60)씨를 흉기로 살해하고 30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챙겨 달아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직후 어린이집에 있던 A씨의 아이(4)를 자신의 본가가 있는 충남 서천으로 데려간 혐의도 공소사실에 포함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순간적인 화를 이기지 못하고 범행해 반성하고 있다”며 피해자 아들과 가족처럼 잘 지냈으며 도난을 우려해 재물을 갖고 나온 점 등을 형량에 참작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최후 변론에서 “죄송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도 동의해 변론을 종결했다. 김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11월 9일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 북한 최고위직 여성 패션 분석…‘현송월백’ 의외의 가격

    북한 최고위직 여성 패션 분석…‘현송월백’ 의외의 가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북한 고위직 여성들의 명품 사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 1만원짜리 중국산 가방을 든 현송월 부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디올, 구찌 등 고가 브랜드의 가방을 주로 들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18일(현지시간)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지난 16일 사진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든 가방이 이탈리아 고가 브랜드 구찌의 희귀 제품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최 외무상이 든 가방이 타조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지금은 단종됐지만 아이슬란드의 한 중고품 거래 웹사이트에서 1만 달러(약 132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이번 회담 와중에 프랑스 고가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검은색 ‘레이디 디올’ 핸드백을 든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해당 가방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크리스찬 디올 홈페이지에서 7000달러(약 925만원)에 팔리고 있다. 반면 수행단 중 현송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저렴한 중국제로 보이는 핸드백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가방은 중국 웹사이트에서 8달러(약 1만원)에 판매되고 있다고 NK뉴스는 설명했다. 북한은 수년 전부터 외국의 고가 브랜드 제품을 “자본주의 국가들이 북한을 파괴하기 위해 사용하려는 무기”라고 지목하고 강하게 단속해왔다. NK뉴스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북한 주민 가운데 1000만명 이상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는 유엔 보고서를 인용하며 북한 최고위층과 일반 주민들의 생활 수준에 극심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김정은 10살 딸도 ‘디올’ 입어 김 위원장의 10살 딸 김주애도 지난 3월 ‘화성-17형’ 시험발사 참관 당시 240만원 상당의 디올 제품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외투를 입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스위스 명품 브랜드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스위스 명품 시계 IWC의 ‘포르토피노 오토매틱’을 착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찬 1600만원짜리 시계는 2019년 7월 단거리 탄도미사일 참관, 2020년 수해지 시찰, 같은 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도 포착됐다. 청소년기를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하며 보낸 김 위원장은 스위스 시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다. 롤렉스 등을 고위 관료들의 선물용으로 종종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억원이 넘는 파텍필립을 비롯해 모바도, IWC 등을 즐겨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역에 호화 별장만 수 십곳에 달하고, 어려서부터 요트, 제트스키, 승마, 스키 등 호화 스포츠를 즐겼다. 대당 약 105억원 상당인 최고급 요트와 외제차, 이탈리아산 수제 양복 등 사치에 익숙한 편이다. 중국의 온라인매체 징데일리는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해외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리설주가 애용하는 시계는 스위스 브랜드 모바도로, 김 위원장과 커플 시계로 착용한 적도 있다. 샤넬과 디올, 프라다, 구찌 등의 핸드백 및 클러치를 즐겨 들며 액세서리는 티파니를 애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몇 년 전부터 북한의 명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엔 ‘백두혈통’이라고 부르는 로열 패밀리에 국한됐으나 최근 몇 년 전부터 신흥 자본가와 일반인 등으로 차츰 확대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북한 평양의 국영 상점들은 주민들에게서 미국 달러를 받고 북한 원화를 거슬러 주는 방식으로 명품 등 사치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는 사치품을 북한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로열 패밀리의 경우 명품 옷과 식품을 조달하는 조직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주민 굶는데…김정은 손목엔 ‘IWC’ 10살 딸·동생은 ‘디올’

    주민 굶는데…김정은 손목엔 ‘IWC’ 10살 딸·동생은 ‘디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러시아 비행기 공장 방문 당시 들었던 가방이 프랑스 고가품 브랜드의 제품으로 추정되면서 ‘백두혈통’ 일가의 명품 사랑이 재조명되고 있다. 1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과 함께 전투기 공장 방문 현장에 등장한 김 부부장의 손에는 검은색 가방이 들려 있다. 이를 두고 김 부부장이 ‘크리스찬 디올’ 라지 사이즈 제품을 들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 제품은 디올 공식 온라인몰에서 96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 속 가방의 퀼팅 문양은 온라인몰의 제품 사진과 미세하게 다른 느낌이지만 이는 현장 조명의 각도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브랜드를 표방하는 금속 참(고리에 매달린 장식물)은 동일한 모양이다. 김 위원장의 10살 딸 김주애도 지난 3월 ‘화성-17형’ 시험발사 참관 당시 240만원 상당의 디올 제품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외투를 입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김정은 위원장도 스위스 명품 브랜드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스위스 명품 시계 IWC의 ‘포르토피노 오토매틱’을 착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찬 1600만원짜리 시계는 2019년 7월 단거리 탄도미사일 참관, 2020년 수해지 시찰, 같은 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도 포착됐다. 청소년기를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하며 보낸 김 위원장은 스위스 시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다. 롤렉스 등을 고위 관료들의 선물용으로 종종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억원이 넘는 파텍필립을 비롯해 모바도, IWC 등을 즐겨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역에 호화 별장만 수 십곳에 달하고, 어려서부터 요트, 제트스키, 승마, 스키 등 호화 스포츠를 즐겼다. 대당 약 105억원 상당인 최고급 요트와 외제차, 이탈리아산 수제 양복 등 사치에 익숙한 편이다. 중국의 온라인매체 징데일리는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해외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리설주가 애용하는 시계는 스위스 브랜드 모바도로, 김 위원장과 커플 시계로 착용한 적도 있다. 샤넬과 디올, 프라다, 구찌 등의 핸드백 및 클러치를 즐겨 들며 액세서리는 티파니를 애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북한의 명품 수요 급증식량 부족에 ‘명품사랑’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몇 년 전부터 북한의 명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엔 ‘백두혈통’이라고 부르는 로열 패밀리에 국한됐으나 최근 몇 년 전부터 신흥 자본가와 일반인 등으로 차츰 확대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북한 평양의 국영 상점들은 주민들에게서 미국 달러를 받고 북한 원화를 거슬러 주는 방식으로 명품 등 사치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는 사치품을 북한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로열 패밀리의 경우 명품 옷과 식품을 조달하는 조직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일가의 명품 사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 BBC는 지난 6월 최근 북한에서 식량 부족으로 주민들이 굶어 죽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북한 현지 주민의 증언을 보도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5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의 식량난이 심화하면서 아사자 발생도 예년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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