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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일 TV 하이라이트]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SBS 오후 11시5분) 권오중,임창정,박예진,김정현이 말하는 ‘내 남자가 유치한 애송이로 보일 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이밖에 ‘내 애인의 친구에게 솔직히 한 순간이라도 끌린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에 대해서 말한다.10대부터 40대까지 남녀 1만 2000명의 고백을 들어본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고,부모들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는 가족이 늘어날면서 심리적 압박을 받는 아이들 또한 늘어가고 있다.그런 아이들에게 놀이라는 도구는 좋은 치료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놀이치료가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간다.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명예의 전당-뒤돌아보지 마라(EBS 오전 11시40분) ‘다이렉트 시네마’의 기수로 16㎜ 동시녹음 카메라를 최초로 사용한 다큐의 거장인 D.A 페니베이커의 초기 걸작.1965년 밥 딜런이 콘서트를 위해 영국에서 보낸 3주간,카메라는 그를 공항에서부터 계속 따라간다. ●뮤직n조이(iTV 오후 6시50분) 8월의 마지막 주가 될 이번주 뮤직엔조이는,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한다.2003 그래미의 여왕으로 떠오른 노라 존스.감미로운 재즈보컬리스트 다이애나 크롤.한국을 대표하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그리고 세계 최고의 뉴에이지 뮤지션 야니등을 만나본다. ●왕꽃 선녀님(MBC 오후 8시20분) 무빈의 어머니를 보고 지난 날 과외 인터뷰 때의 인연을 기억한 초원은 놀라워한다.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하던중,초원은 몸이 점차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다.동하의 작업실로 찾아간 미영은 이제까지 동하를 만난 것은 연습이었다며 쇠꼬챙이를 들이대지 말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유혹(KBS2 오전 9시) 성필을 찾아간 세희는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해주겠다고 퍼붓는다.다급해진 성필은 금실을 찾아가 세희가 돈으로 증인을 매수하려한다고 말한다.주란은 집에 들어와 살아야겠다고 복만을 설득하고,화가 난 안동댁은 주란과 자신,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소리친다. ●금쪽같은 내새끼(KBS1 오후 8시25분) 덕배는 실어증으로 인해 언어 능력을 되찾을 확률은 반반이며 우울증을 갖고 있다는 진단을 듣는다.귀국한 영실은 영구와 은신처를 옮겨 진국 가족의 불행을 지켜볼 계획을 세운다.진국의 냉담한 반응에 더 화가 난 정애는 집을 팔아 빚을 갚아주고서라도 희수를 이혼시키겠다고 다짐한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7) 내파수도 ‘천연 방파제’ 자갈해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7) 내파수도 ‘천연 방파제’ 자갈해빈

    “자주 가보셨겠네요.” “자주요? 우리도 처음이에요.” 공무원들도 어쩌다 찾아들 뿐이란다.안면도 본섬에서 불과 9.7㎞ 떨어진 내파수도지만 마음의 거리는 머나멀다.내파수도의 천연방파제에 한번은 와보려 했지만 막상 오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연락선이 닿지 않는 무인도란 도대체가 아무리 가까워도 쉽게 오가기 어렵다.요행히 태안군청의 고종남 과장이 배편을 수소문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섬에 당도하니 언덕배기에 ‘파수도의 파수꾼 안종훈 선생 공적비’란 새 비석이 서있다.무인도에 웬 비석일까.뜻깊은 사연 한 토막.충남 도지정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된 일명 ‘구식(球式)방파제’를 지켜낸 안옹을 기리는 것이다.구식방파제는 전국적으로 유일무이하며 생태적으로도 각별하다.본디 내파수도에만 있던 것은 아니나 대개의 자갈밭이 업자들 손으로 넘어가면서 살아 남은 곳이 드물다.내파수도만큼은 지킴이들의 완강한 투쟁 덕분에 이렇듯 멀쩡하다. 미안스럽게,국가의 공헌도는 전무하다.당대의 천박한 환경인식 수준으로 이 작은 자갈밭의 가치를 알아차렸을 리 없기 때문.그렇다고 ‘탁상물림’ 환경이론가가 해낸 일도 아니다.두 노인이 초가삼간 짓고 살면서 방파제도 지켜냈다.얼마나 고마운 일인가.공적비의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고 안면도로 사람이 몰린다.그런데 안면도에서 지척인 내파수도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그야말로 작은 섬이고,‘별 볼 일 없는 섬’.그렇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해양환경을 가장 잘 간직한 ‘보물섬’이기도 하다. 대개의 섬에는 방파제가 있다.견고한 콘크리트 방파제가 수십∼수백억,심지어 수천억원을 들여서 건설되기도 한다.섬의 환경은 보통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지기 일쑤이며 단애에 어떠한 배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그러나 내파수도는 사각사각 밟히는 소리,해조음을 연주하는 조약돌들이 사뿐한 촉감으로 마중한다.길이 300여m,너비 20∼40m의 좁고 긴 자갈밭이 북으로 뻗어 있다.남북으로 향하던 조류가 들물에 빙빙 돌며 자갈을 움직인다.1000년을 두고 쌓인 듯하다.저만한 자갈언덕이라도 자연적으로 생기려면 100년 세월로도 도저히 불가하다. ●파도에 단련된 자갈엔 녹색의 파래 자연의 힘은 강한 듯하지만,좀체 서두르는 법이 없다.한쪽으로 자갈이 쏠리면 반대쪽에서 밀어붙여 허물어내린다.누적된 조류운동과 파도의 힘으로서 오늘의 자갈밭이 완성되었다.지금도 자갈밭은 들물에 잠기고 날물에야 모습을 드러낸다.‘숨쉬는 방파제’인 셈인데,실제로 파도에 단련된 자갈에는 해맑은 녹색의 파래가 번창하고 있다. 내파수도의 자갈밭은 학명으로 해빈(海濱·beach)이다.본디 해빈은 모래 같은 느슨한 입자들이 해변의 일부,혹은 전부를 덮고 있는 해변이다.해빈은 암괴로부터 큰자갈·잔자갈 등의 자갈류,극세립 모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조개껍데기나 부스러기,혹은 제주도 우도처럼 산호부스러기 해빈도 있고,심지어 인간이 버린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범벅이 된 해빈도 있다. 내파수도 같은 자갈해빈은 일반적으로 경사가 급하며,반면에 모래해빈은 마치 주차장처럼 편평하여 해수욕장으로 많이 이용된다.내파수도의 해빈도 외형적으로 볼 때는 평평하지만 상층부가 높고 물속으로 가파르게 경사각을 이룬다.내파수도의 자갈해빈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해양환경학습장이다. 자갈해빈의 존립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양과학적 기초지식을 요한다.고운 모래는 멀리서 이동해 오지만 자갈 같은 퇴적물은 비교적 근거리를 이동한다.굵은 자갈입자는 입자 사이의 틈새로 물이 잘 빠져서 자갈해빈을 치고 올라오는 물이 입자들 사이로 빠지고,다시 경사면을 내려가는 물은 거의 남아있질 않아서 바다로 되돌아가는 퇴적물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큰 파도에 의해서 올라온 굵은 입자들은 해빈의 위쪽에 쌓이고 경사를 급하게 하여 오늘의 숨쉬는 방파제를 만든다. ●전복·가래비 양식하며 해빈지킴이 대물림 “막상 사람이 손댔다 하면 이 정도 자갈밭이야 허무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걸요.” 동행한 태안군청 이현태 계장이 해빈을 살펴보며 말을 던졌다.안종훈옹과 선동규옹은 일주일이면 허물어질 해빈을 고집스러운 투쟁으로 지켜냈다.안옹은 작고하여 공적비를 남겼으며,선옹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그이들은 오랫동안 여기서 해삼과 전복 자연양식업을 했다.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종패를 사다가 뿌리면,좋은 환경조건에서 스스로 잘들 자랐다.무단채취를 방지하기 위하여 섬을 지켰던 셈인데,골재업자의 끊임없는 자갈해빈 허물기 시도도 동시에 지켜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도 대물림되었다.산자락에 몇채의 집이 있으니 양식업에 종사하는 지킴이들이 씨앗 뿌리듯이 전복과 가리비종패를 뿌리며 살고 있다.낚시꾼과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무인도인데 왜 못들어가게 하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인도라 하여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내파수도는 지금껏 외지인 출입금지다.생각해 보면,무인도를 그저 ‘임자 없는 섬’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얼마나 많은 무인도들을 망쳤던가. 전기는 태양열발전이다.식수는 빗물이 고인 산의 바위물을 받아서 호스로 내려서 탱크에 저장해서 해결한다.상주자가 1∼2명뿐이므로 쓸만 하다.내파수도 인근은 우럭,놀래미,광어,도다리,대하,꽃게,민어 등의 텃밭이었으나 예전 같질 못하단다.반면에 섬의 식생은 우수하다.산길을 오르면 동백나무숲이 있고,오래된 해송도 만난다.동백나무도 안옹이 기를 쓰고 싸운 결과로 일부나마 남았다.분재를 즐기는 탐욕이 도를 지나쳐 섬마다 고목등걸을 파낸 결과 섬의 고풍스러움이 상처 입었다.분재의 미학을 노래하기 전에 섬에서 무단 채취한 무수한 난초와 등걸의 아픔을 생각할 일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꽈리가 무성하다는 점이다.사람이 심었을 리는 없고,몇 알의 꽈리씨가 뿌려져서 야생으로 번창하는 중이다.천남성이 산재하는 것을 보니,저런 야생화도 사람 손을 타면 도대체 남을 것이 없어 보인다.대개의 무인도는 사람만 살고 있지 않을 뿐,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생명의 섬’으로 바꾸어 부를 일이다. 자갈해빈이 굽어보이는 산등성이를 넘어가니 좁고 길게 북고남저의 산자락이 엎드려 있다.풍광이 뛰어나다.양측의 해변에 형성된 만에도 자갈이 수북하다.의문이 풀린다.내파수도의 바다밑 지형은 모래와 펄이지만,일부 자갈밭이 존재하여 자갈이 파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자갈은 엉뚱한 곳이 아니라 섬 주변에서 흘러들었다.정답은 간단하다.섬 주변 자갈의 전체적 총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손대지 않았을 때만 천연방파제가 보장되리라. 지난해 여름,‘바다 같은 호수’,‘호수 같은 바다’인 바이칼의 작은 항구 리스트비양카에서 통나무 방파제를 보았다.시베리아답게 나무가 흔한 곳이라 콘크리트를 쓰지 않았겠지만 방파제 위에서 자작나무가 자라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살아 숨쉬는 방파제를 본 셈이다.내파수도의 자갈방파제도 자작나무만큼이나 살아숨쉬고 있으니 파도에 씻겨 빛을 발하는 윤기 나는 돌들이 그 생명력을 증거하고 있다. ●자연은 사라진 만큼 반드시 보복 그동안 우리는 해빈의 모래나 자갈,바위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참하게 파냈다.그러나 사라진 만큼 자연은 반드시 ‘보복’한다.방파제도 곳곳에 필요 이상으로 습관처럼 만들었다.세수증대를 위한 골재채취 허가,밀어붙이기식 방파제 건설 등의 여파 속에서 내파수도의 해빈 따위가 존재할 자리가 있었을까.그러한즉 이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자갈더미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옹기가 ‘숨쉬는 항아리’라면,내파수도의 가갈해빈은 방파제도 숨쉴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바다목장의 꿈이 실현된다면,내파수도 일원은 고기떼가 버글대는 어장으로 바뀐다.해양수산부가 국력을 기울여 추진하는 바다목장의 중심에 내파수도가 위치하기 때문이다.기존의 ‘가두리’만으로는 ‘기르는 어업’의 한계에 봉착한 지 오래다.얼마 전의 넙치양식 파동에서 보듯 양식어업의 일대전환이 모색되는 가운데 이 일대가 바다목장터로 선정되었다.내파수도의 생태적 방파제와 더불어 생태적 양식까지 성공한다면,그야말로 황금바다로 변할 것이다.인류문화사에서 수렵에서 목축으로의 변환은 결정적이었으니,바다어획에서 바다목장으로의 전환도 놀라운 변화다. 문제는 남는다.목축과 목장이 인류의 미래를 충분히 보장하는가에 있다.곡식을 먹여서 가축을 키우는 목축을 둘러싼 생태철학적 논쟁이 아직 덜 끝난 상태에서 어분(魚粉)으로 키우는 양식의 한계 논쟁도 해결되지 않은 근원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성호 이익은 성호전서에 ‘공부무사 촌항방안’(公府無事 邨巷方安)란 속담을 채집해 놓았다.‘관가에 일이 없으면 촌 동네가 조용하다.’는 뜻이니,관에서도 함부로 골재채취를 허락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다.만에 하나라도 관에서 내파수도의 자갈밭에까지 눈독을 들였다면,자갈 한톨 남아있을 리가 없었으리라.천만다행으로 지킴이도 있었고,관에서는 이에 상응하여 도기념물로까지 지정하여 생태를 보존하게 되었으니,관민의 손바닥이 모처럼 제대로 맞은 셈이다.돌아오는 뱃전에서 내내 그런 생각에 젖어 있었는데,어느덧 밀물이 밀려오면서 우리가 떠난 자갈밭은 기다란 몸통을 물밑으로 밀어넣고 있었다.다시금 조석운동의 거친 생명력이 무인도를 ‘생명의 섬’으로 재창조하는 순간이었다.
  • [주간 물가 동향]생닭값 내리고 삼겹살은 올라

    [주간 물가 동향]생닭값 내리고 삼겹살은 올라

    무와 배추값의 오름세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지난해에 비해 여전히 비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24일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 따르면 배추는 지난주보다 100원 오른 27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00원 비싸고,무는 지난주보다 110원 떨어져 2990원이지만 지난해에 비해 1600원 오른 가격이다.배추는 출하량이 서서히 늘고 있어 시세가 떨어질 전망이다. 물량이 많지 않은 애호박과 백오이도 높은 값에 거래되고 있다.애호박은 전주보다 110원 오른 630원,출하 대기물량이 적은 오이의 개당 가격은 전주와 같은 5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원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당도가 높고 싱싱해 인기가 좋은 복숭아와 포도값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복숭아는 4.5㎏에 2만 6500원에 거래되고 있으며,포도는 소비량이 많은 캠벨 품종 위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캠벨 품종 5㎏의 가격은 전주보다 2400원 오른 1만 6900원이다. 값이 내린 품목은 생닭.삼복이 지나 찾는 사람이 줄면서 생닭(851g) 1마리에 4590원에 거래되고 있다.이는 지난주보다 600원 내린 가격. 수요가 꾸준한 삼겹살은 지난주에 비해 약간 비싸졌다.삼겹살 100g당 가격은 전주보다 30원 오른 1630원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6) 서귀포 보목항의 자리잡이배 테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6) 서귀포 보목항의 자리잡이배 테우

    1985년 10월4일,제주도 화북의 해신당에서는 도항제(渡航祭)가 열렸다.‘고대 제주항로 테우 조사단’이 화북을 출발했다.원초적인 고기잡이 배 테우를 복원하여 옛 뱃길에 도전함으로써 ‘한반도~제주도’의 고대 항로를 규명해보려는 시도였다.탐라와 육지부의 교류경로,해로 변천사와 유배길 조사도 이루어졌으니,배이름도 격에 맞게 ‘물마루’로 명명되었다.노르웨이 탐험가 T 헤위에르달이 남미에서 폴리네시아군도를 향하여 전통배를 타고 떠난 콘티키(Kontiki)호의 대탐험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테우를 활용한 최초의 모험이리라.물마루호는 서귀포시 보목동에 남아 있던 여섯척 중에서 선발되었다. ●테우와 자리잡이의 원조, 보목동 8월 중순 제주도를 찾아,‘서귀포칠십리 바다사랑회’를 이끌면서 수중탐사와 환경보존에 애쓰는 이원석 회장에게 테우와 자리 조사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약속이나 한 듯 보목동으로 이끈다.보목동이야말로 테우와 자리잡이의 원조이기 때문.대부분의 제주도 포구에서 테우로 자리를 잡아왔겠지만 보목만큼 그 전통을 이어가려는 곳은 보지 못하였다. 보목에서는 매년 테우로 자리를 잡는 ‘자리돔큰잔치’를 열어왔다.보목의 자리돔큰잔치는 관광객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도 사라져간 테우가 그리워서라도 몰려든단다.청년들의 보존 움직임도 활발해서 ‘보목섶섬 수중환경보호지킴이’(회장 강대환)를 조직하여 테우도 복원하고 전통어법 재현에도 힘쓰고 있다.덕분에 보목동에 가면 언제든지 테우를 볼 수 있다.그러나 한라산의 귀한 구상나무로 만들던 테우는 사라졌고 일본산 삼나무 테우들로 대체되어 조금은 안타깝다. 몇년 전의 일.제주도민들이 감귤을 들고서 북한을 집단방문한 적이 있었다.일찍이 북에 정착하게 된 제주 출신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되어 말문을 트다가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무언가를 물었다고 한다.그런데 노인은 허다한 먹을거리를 제치고 ‘자리젓이 그립다.’고 하였다.초년의 입맛은 일생을 간다고 하였으니 자리젓의 아른한 향취가 50년 넘게 이어진 셈이다. 사실 ‘자리강회’,‘자리물회’,‘자리구이’ ‘자리젓갈’ 등 자리 없는 제주도 식단은 왠지 빈자리 같다.활기 넘치는 강진국 마을회장은 우리 일행에게 “자리를 좋아한다니 절반은 제주사람으로 인정해 줍세.”라고 너스레를 놓았다.자리를 모르고서 제주도 먹을거리를 논하지 말지어다! ●고향을 지키는 고기, 그래서 이름도 ‘자리’ 오키나와에서 한반도 남해안 일부에까지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아열대성 자리는 붙박이로 한군데서 일생을 마친다.서귀포 외돌개에서 보목 앞의 섶섬에 이르는 난류대를 특히 좋아한다.보목에서는 ‘겨울에 눈이 오면 개가 죽는다.’는 속담도 있다.모든 물고기가 자유롭게 먼바다를 나돌고,모든 새가 먼하늘을 나돌 것 같지만 그런 상상은 시나 노래에서나 가능하다.자리에게도 엄연히 따스한 집이 있고 그리운 고향이 있다.자리는 자신이 태어난 따스한 곳에서 가능한 한 떠나질 않는다.그래서 이름도 ‘자리’다. 보목에서는 앞의 섶섬 동쪽에 동군자리,서쪽에 서군자리,서쪽 해변에 리알자리,지귀섬의 자귀자리,쇠소각 냇물이 흘러나오는 쇠소각자리 등의 ‘자리밭’이 유명하다.어민들은 이들 자리밭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테우를 들이밀어 자리를 낚는다.경계없는 바다같지만 엄연히 바다밭이 경계를 가른다.섶섬 주변에서는 섬그늘에 모여든다면,민물이 흘러들어 기수대를 형성하는 쇠소각에서는 감미로운 민물을 마시려고 몰려든다.그래서 똑같은 바다이지만 매양 동일한 바다는 없다.문전옥답만 강조하는 육지중심 사고와 다르게 기름진 바다밭의 해양중심 사고로 바라본다면 바다마다 전혀 다른 색깔을 연출하며 다가올 수밖에 없다. 밭이 다르면 같은 배추종자도 맛이 다르기 마련.보목과 우도의 자리가 같을 수 없으며,고산의 자리는 성산의 자리와 다르다.같은 보목 내에서도 여(암초)의 상태에 따라 자리의 색감과 생김새,심지어 맛까지 다르다.절기에 따라서도 알이 찬 알찬자리,자잘한 쉬자리,산란하고 난 다음에 잡히는 거죽자리 등등 이름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조류가 센 곳에서 노는 가파도자리는 뼈가 굵어 물회용에는 어울리지 않아 구이용에 적합하다.뼈가 부드럽고 맛이 고소한 보목의 자리는 구이보다도 물회나 강회에 어울리니 같은 제주도 내에서도 제각각인 셈이다. ●더위 푸는 덴 물회, 술안주엔 구이 얼마전 경남 삼천포에서 자리구이를 맛보았다.횟집 주인 왈,“수온이 높아지니 여기까지 자리가 찾아드네요.”라고 했다.이제 자리는 차츰 북상을 하여 남해 해안가에서도 자신들의 자리를 마련한 것 같은데 남해안의 자리가 어떤 격식을 갖추고 있는가는 아직 감이 덜 잡힌다. 자리는 먹는 취향과 장소,시간에 따라서 맛도 다르다.복중의 더위풀이에는 시원한 자리물회가 그만인데 자리구이는 술안주로도 맞춤이다.자리젓국은 멸치젓과 더불어 제주민이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젓갈.그런데 제주도 바깥에서는 똑같은 자리물회라도 당최 제맛이 나지 않는다.독특한 향을 내는 제피잎을 잘게 썰어넣어야 국물이 한결 시원해지는데 싱싱한 제피잎을 구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독특한 맛을 내는 제피잎 없는 자리물회는 사실 정통식이 못된다. 한때 구두미포구,서래포구,큰개머리,배개포구 등 전통적인 포구에서 25척에 이르는 테우들이 국자같이 생긴 국자사둘로 자리를 잡았다.자리만으로도 충분히 생계가 유지되었다.1명이 수경으로 물밑을 감시하면 2명이 그물을 드리워 조류에 떠들어오는 자리를 낚았다.배를 타지 않고 갯바다밭의 ‘덕’에서 자리를 잡는 덕자리사둘,동그란 모양의 사둘을 도르래의 힘으로 드리우거나 올리며 낚아가는 가장 보편적인 어법이었던 동고락사둘도 행해졌다. ●자리잡이·해초 채취… 전천후 다목적 배 그러나 GPS로 바뀌면서 배도 발동선으로 바뀌었으니 전통 테우 자리잡이도 한폭의 사진으로만 남은 셈이다.‘자리 삽서(사세요).’라고 외치며 마을길을 나다니던 아낙들의 외침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전통어법은 사라졌으나 자리잡이의 경제적 이득은 여전히 높아서 지금도 보목의 살림살이를 살찌우게 한다. 테우는 자리잡이에만 쓰였던 배가 아니다.전천후,다목적이었으니 해초 채취에도 요긴했다.바다마을 사람들은 기름진 해초 없이는 푸석푸석한 화산토에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해초 채취에 테우가 더할나위 없이 요긴했으니 해초를 그득 싣고 돌아오는 풍경 역시 화학비료에 떠밀려서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테우는 물마루호의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제주민의 해상교통에 절대적인 수단이었다.탐라의 고대 대외교류도 테우에 의존하였다.삼국지동이전에 이르길,“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물건을 사고판다.”고 하였으니,테우를 이용한 교역이 일찍부터 이루어졌다.독일인 겐테(S.Genthe)는 ‘제주도탐험과 동해 중국에서의 표류’란 표류기에서,테우의 위력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어떤 파도에도 끄떡없는 이음새 영접하기 위해 보낸 배는 이상한 배였다.보트도 아니고,카누나 속을 파낸 통나무도 아니었다.뱃전이나 배의 구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거대한 뗏목이었다.거센 파도라는 어쩔 도리 없는 조건 때문에 적응법칙에 따라,예컨대 동인도의 마드라스 해안의 파도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것과 비슷하게,기상천외의 물건이 만들어졌음이 이내 밝혀졌다.거칠고 격렬하게 출렁이며 크고 육중하게 굴러오는 사나운 파도가 끊임없이 그 선박을 덮쳤다.막힌 보트라면 금방 물이 가득 차서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러나 튼튼한 이음매의 큼직한 틈새가 있어서 부딪치는 파도의 위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큼직한 통나무들로 엮어 만든 듬성듬성한 이 선대(船臺)는 어떤 경우에도 물이 차서 뒤집힐 리가 없었다. 제주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섬이다.중요 물자는 배로 움직였다.전통시대에 일주도로·관통도로가 없었음은 당연한 일.‘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도 광복 당시의 빈약한 교통로를 이렇게 말했다.“ 섬을 둘러싼 좁은 도로가 있었을 뿐이다.1940년대 당시 제주시에서 섬을 횡단하여 서귀포로 가는 도로는 부설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사정은 더욱 어려웠으리라. ●맥 잇는 마을 있어 그나마 위안 테우는 사라졌어도 테우를 복원해서 끝내 이어가겠다는 마을이 있음은 일말의 위안이 된다.신혼여행객도 태우고,문화관광특구도 만들어 당찬 마을로 가꾸겠다는 결의에 가득찬 것을 보니,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연한 길을 모색하는 듯하여 감개무량이다.비록 배는 낡고 덜 효율적이지만 전통을 살려서 미래의 바다로 가꾸어 나간다는 바다살림의 의지는 바로 문화적 종다원성을 지키려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해변가로 유별나게 솟구친 가파른 ‘제지기오름’에 오르니 보목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절대보호구역인 섶섬의 자연경관적 가치에 관해서는 무엇을 더 논하랴.관광객에게는 눈요기에 불과한 섶섬이지만 자리돔에게는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붙박이 자리’임을 애써 기록하고 돌아온다.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면서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에게 섶섬의 자리들은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을 가르치는 것만 같다.
  • VJ 닥터 노 인기 GO GO GO

    VJ 닥터 노 인기 GO GO GO

    “좋아!가는거야∼”. 이 말 한마디로 ‘아마추어 놀이 문화계’를 평정하고 케이블 접수에 나선 박사가 있다.바로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새로운 VJ 닥터 노. VJ 경험이 전혀 없는 ‘생초짜’인 그가 자신의 이름까지 내건 로드쇼 프로그램 ‘닥터 노의 즐길거리’(월∼금 오후 4시)를 턱 하니 맡았고,‘슈퍼 바이브 파티’(월∼금 오후 6시)에서도 배꼽이 훤히 보이는 수퍼맨 쫄티를 입고 천연덕스럽게 춤을 추며 분위기를 한없이 띄우는 보조 MC까지 꿰찼다.“좋아!가는거야∼”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분명 맞다. 본명 노홍철.올해 나이 25살.홍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신나게 놀다가 “m.net의 눈썰미 있는 작가 눈에 띄여 오디션을 보게 됐고” 담당 PD는 한 눈에 그가 ‘물건’임을 알아봤다고 한다.사실 그는 아마추어와 언더그라운드 세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으로 통할 정도로 자랑스런 이름을 떨쳤다. 다이내믹 듀오 등 가수들의 콘서트,가요제 등 각종 행사의 진행을 맡아 관객의 배꼽을 괴롭히며 분위기를 ‘업’시키는데 대단한 능력을 뽐내왔다.“군대 갔다와서 친구들이 과외해서 돈버는데 저는 공부를 안해서 머리에서 뺄 게 없더라구요.근데 사회를 보니까 40만원씩 주는 거예요.친구들 25만원씩 벌때.그 것도 놀면서.얼마나 좋아∼(웃음).” ‘놀면서 돈도 버는’,아무리 꿈꿔도 이루지 못할 꿈을 실현시킨 그의 좌우명은 “재미없는데 왜 해?”다.“솔직히 처음에 내가 VJ가 되겠냐 했죠.그냥 제 고객으로 만들어야지 하고 갔는데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연락받으니까 너무 기뻤죠.또 이름 걸고 하라니 너무 영광스럽고….그런데 한편으론 고민했어요 지금 대박 난 사업인데 이걸 당분간 접어야 한다니.” 사업?사업이라니? 노는 게 일이요 취미요 특기라는 닥터 노 아닌가.그러나 그는 분명 저가 중국여행전문회사 ‘홍철투어’의 대표이며 파티 용품을 수입,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 ‘꿈과 모험의 홍철동산’의 CEO다! 어릴 때부터 잘 놀아본 경험이 그에겐 ‘종자돈’이 된 셈.그는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라는 옛 말을 충실히 지켜온 성공한 최초의 인간이 아닐까 싶다.어울려 노는 게 좋아 공짜로도 행사 진행을 맡아주던 그는 한 사진 작가의 눈에 띄여 웨딩 모델로도 나섰다.게다가 여자친구와 함께.그의 여자친구는 슈퍼 엘리트 모델 출신이다!흠….이쯤되면 맘을 곱게 쓰며 복을 받는다는 말도 맞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트렌드 따라잡기가 취미인 그는 “현재 200% 만족”이란다.“이렇게 놀면서 하는데 돈까지 주니까 아유∼ 그냥 믿기지가 않아요.(웃음)” 그를 보면 또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그는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고,불운을 불운으로 생각하지 않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똘똘 뭉친 ‘낙천주의자’.신체 다른 곳은 불모지인데 오로지 턱에만 수북히 자라나는 수염을 곱게 길러 한 면도기 회사에서 주최한 엽기수염왕 선발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하고 성격 좋다는 말에 용감무쌍하게 ‘닥터 노의 성격 클리닉’을 차린 성격 개조 전문의(?)도 지냈다.“전봇대에다가 전단지를 붙였는데 전화가 오더라구요.박사가 별 건 가요.흰 가운 입으면 다 박사지.우리 부모님 소원도 풀어드리고 돈도 벌고(웃음).” 그의 방송이 전파를 탄지 한달 남짓.쉴 새 없이 눈을 깜빡이며 “아니!아니!”를 추임새처럼 내뱉는 약장수 말투는 이미 장안의 화제다.프라임타임대(오후 5시)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앞설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고 팬클럽 회원수가 하루가 다를 정도로 그의 인기도 수직 상승하고 있다.“아이들이 제 말투를 따라하고 사진 찍을 때 입을 벌리는 기현상이 생기고 있다니까요.걱정되고 (부모님한테)미안해 죽겠어요.(웃음)”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내 손으로 만든 맥주 시원하게…

    내 손으로 만든 맥주 시원하게…

    시원한 맥주 한컵 들이켜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바람 좀 선선히 불어와 주고,마음 맞는 친구 몇명 있어주면 더욱 좋겠다.시끌벅적한 맥줏집에서 들이켜는 맥주도 좋겠지만 손수 만든 맥주 한 잔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일에 지친 수애에게는 인삼맥주를,진한 삶의 향이 느껴지는 규철이에게는 커피맥주를,톡톡 튀는 경기에겐 생강맥주를,화끈한 진이에겐 고추맥주를….맥주를 나누고,우정을 나누는 기쁨.이런 맛에 맥주 한 잔 추가요∼. ■나만의 맥주 만들어볼까 언제나 그렇듯 강남역의 밤은 사람들로 붐빈다.뻗친 머리의 펑키 청년,탱크톱의 섹시한 여인,각기 다른 넥타이와 다른 양복을 입고 맥주 한잔 걸칠 곳을 찾는 직장인들.나름의 개성이 넘친다.나만의 멋을 추구하는 개성파들이 즐비한 강남역의 한 하우스맥줏집.이곳에서 또 다른 개성,‘나만의 맥주’를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의 모든 맥주를 향해 “업무차 독일에 출장갔을 때였어요.스모그비어라는 맥주를 마셨는데 마치 담배를 피운 듯한 느낌이 나는 거예요. 다른 맥주들도 하나같이 자기만의 맛을 가지고 있었죠.” 100여개가 넘는 맥주가 있다는데 우리는 비슷한 색상에 비슷한 맛만 내는 미국식 맥주를 맛보고 있다는 사실이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독일에서 만난 맥주에 반한 박영규(47·이나에버링 차장)씨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발효통과 원액캔을 사다가 나만의 맥주,‘홈비어(또는 홈브루)’를 만들기 시작했다.실수,실패를 거듭해오면서 지금까지 80여가지의 맥주를 만들었다.이제는 동호회에서도 유명한 ‘양조 전문가’로 손꼽힌다. 주현석(27·호서대 3년)씨가 홈비어를 만들게 된 계기는 살짝 닭살 돋는다.여자친구를 위해서라나.“멋진 와인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와인 만드는 법을 찾았죠.그런데 와인 대신 맥주가 걸려든 거예요.재미있겠다 싶어 만들어 보고는 특별한 매력에 완전히 빠졌어요.얼마전에도 부모님 드리라고 만들어줬죠.”쑥스러운지,맥주를 마신 탓인지 얼굴이 벌게진다. ●정성과 개성을 녹이다 누군가가 직접 만들어온 맥주를 따고 한잔씩 따라주기 시작했다. “오호∼.이거 정말 산뜻한데.뭘 넣은 거야?” “이건 온도를 잘못 맞춘건가? 약간 시큼하군.” 순식간에 분위기가 시음장,토론장으로 변한다. 처음 맛본 향신료인 코리앤더를 넣은 맥주는 ‘톡 쏘는 맛’이 없이 신선한 향이 퍼지면서 부드럽게 넘어간다.썩 차지 않은데도 시원한 느낌까지 든다.가을철 고추 말리는 곳을 지나가는 듯한 매운 향이 느껴지는 고추맥주,진한 맥주맛에 상큼한 계피향이 좋은 계피맥주…,연이어 맥주들이 나온다. 조금씩 맛보는 회원들의 맥주에서 홈비어의 매력이 명확히 와닿는다.색깔부터 거품,향,맛까지 독특하다.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개성이 녹아있다.그래서 개설한 지 2년된 다음 카페 ‘맥주만들기’(cafe.daum.net/icrobrewery)에 1만명 이상의 회원이 몰리고 있나 보다.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맥주원액을 끓여 효모를 넣고 맥아당(또는 설탕)을 첨가한다.찬물을 넣어 맥주원액의 온도가 20∼25℃로 낮아지면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다.4∼6일 정도의 1차 발효가 끝나면 압력병이나 탄산용 페트병에 옮겨 2∼3일동안 탄산가스를 만든다.이후 1주일간 선선한 곳에서 1주일간 숙성을 시키면 나만의 맥주가 완성된다.효모의 종류에 따라 ‘에일(Ale)’ ‘라거(Lager)’등으로,첨가물에 따라 다시 ‘드래프트(Draft)’ ‘복(Bock)’ ‘스타우트(Stout)’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계피,고추,생강,인삼 등을 넣으면 독특한 향의 맥주가 탄생된다.커피처럼 진하고 고소한 거품의 맥주도,초콜릿의 달콤함을 가진 맥주도 가능하다. ●기다림의 미학,나눔의 기쁨 조금 귀찮을 수도 있겠다.나만의 맥주 만들기에 폭 빠진 이들에겐 이것이 바로 맥주의 ‘맛’이다. “맥주는 아이같아요.아이를 키우듯 조심스럽게,어떻게 클까 설렘도 느끼면서 만들어내죠.빨리빨리 만든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기다려야 배신하지 않는 맛을 냅니다.기다림,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백종훈·39·하늘땅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 “같은 맥주라도 맛이 달라요.인생의 심오한 맛이라고나 할까.아직은 초보라서 ‘고수’들에게만 만든 맥주를 선보이고 평가받았지만 앞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면서 우정을 키워보려고요.”(장미·28·간호사) “누군가에게 술을 줍니다.백화점에서 산 비싼 술과 직접 만들어 건네는 술,어떤 게 더욱 값진 걸까요.맥주를 매개체로 나눔의 즐거움,정을 나누는 거죠.”(정영진·30·㈜뉴런 과장) 맥주를 만들고,인생을 나누며,사람 얘기에 취하고….‘나만의 맥주’는 삶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만들줄 몰라? 여기서 즐기면 되지 직접 맥주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 것.2002년 정부가 소규모 맥주제조장 운영을 법제화한 이후 곳곳에 하우스맥주 매장이 생겼기 때문이다.특히 강남역 근처에는 9곳의 하우스맥주 전문점이 들어서 있다.모두 ‘내가 최고!’라고 자부할 만큼 특별한 맛을 자랑한다.그 중에서도 보다 개성있는 곳,과연 어디일까. 대부분의 하우스맥주 전문점은 맥주의 나라인 독일의 제조 방식을 고집한다.아들러(591-2861)역시 독일식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독일인 브루마스터(Brewmaster)가 직접 제조한다.현지 브루마스터가 1년 안팎의 짧은 기간 동안 기술을 가르친 후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경력있는 현지 브루마스터가 만드는 맥주맛을 즐길 수 있다. 200브로이하우스(3481-9062)역시 독일식 맥주를 선보이고 있다.대개의 전문점들이 세가지 혹은 그 이상의 맥주를 판매하지만 이곳에서는 바이젠(밀맥주)과 둥클레스(흑맥주)만을 만들고 있다.독일식이긴 하지만 정통을 고집하기보다는 한국인 입맛에 맞게 현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흔히 맥주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사실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체코.‘버드와이저’의 원조가 체코산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체코 맥주의 명성을 알 수 있다.캐슬 프라하(535-9925)는 이런 체코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35년 경력의 체코인 브루마스터가 맛을 내는 이곳은 제조설비와 재료는 물론 매장내 소품까지 모두 체코산.내부 인테리어도 체코풍으로 꾸며 주한 체코대사도 즐겨 찾을 정도다.지난 2월부터는 안주로 체코 음식 3가지도 선보이고 있다. 독일,체코 맥주는 물론 영국,벨기에 등 보다 다양한 국가의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플래티넘(2052-0022)을 찾자.지난 2002년 압구정에 먼저 문을 열었고 지난해 7월 강남에도 그 맛을 선보이기 시작했다.7가지의 하우스맥주 중 벨기에 맥주인 ‘벨지안 화이트’는 여성들에게 인기.순하고 깔끔하면서 오렌지의 향과 맛이 난다.맥주 맛으로도 정평이 났지만 다양한 퓨전식 안주는 웬만한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손색없다.압구정점은 전화 540-0035. ■ 하우스맥주와 어울리는 안주 요리조리 안주를 빼놓고 술자리를 말할 수 없다.하지만 어떤 안주를 만들어야 할지 늘 고민이다.냉장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사계절 즐길 수 있는 안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지현씨가 소개하는 부담스럽지 않고 영양도 생각하면서 맛있는 안주,바로 이것이다. ●오징어 냉채 재료 오징어 2마리,오이1개,당근 ½개,오렌지(또는 레몬) 1개,고추장 양념(고추장,식초 3큰술,물 2큰술,꿀 1큰술,마늘즙 ½작은술,통조림 파인애플 ½개 간 것) 만드는 법 (1)손질한 오징어를 레몬 1쪽과 끓는 물에 데친 뒤 얼음물에 담가 식혀 적당한 크기로 썬다.(2)오이,당근은 껍질을 벗기고 4㎝ 길이로 채썰고 당근도 4㎝ 길이로 채를 썬다.(3)모든 재료를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다음 먹기 직전 고추장 양념과 버무려 먹는다. ●새우와 야채샐러드 재료 새우,치커리,양상추,청경채,무순,오리엔탈 드레싱(올리브 오일 2/3컵,설탕 1작은술,소금·후추 약간,발사믹 식초 ⅓컵,바질) 만드는 법 (1)야채는 깨끗이 씻고 한입 크기로 손으로 뜯어 얼음물에 담가 놓는다.(2)새우는 껍질 벗겨 데친다.(3)접시에 골고루 담고 드레싱을 뿌려 섞어 먹는다. ●닭가슴살 꼬치 재료 닭가슴살,새우,파프리카,홍피망(브로콜리,가지 등을 곁들여도 좋다),데리야키소스(양파,마늘,간장,청주) 만드는 법 (1)닭가슴살은 청주와 레몬즙을 넣은 물에 데친 뒤 3㎝ 크기로 잘라준다.(2)홍피망,파프리카,새우도 잘라 팬에 버터를 두르고 익힌다.(3)재료를 한개씩 꼬치에 끼고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프라이팬에서 앞뒤로 익혀 담아낸다.
  • 경제난 여파 아동학대 급증

    경제난이 깊어지면서 올 상반기까지 아동학대 신고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었다. 24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아동학대신고건수는 3255건으로 전년동기 2428건에 비해 34%나 증가했다.신고건수 중 아동학대로 판정된 것은 1591건이다. 공식통계가 잡힌 지난 2001년 4133건을 비롯,2002년 4111건,지난해 4983건 등 아동학대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올해는 이같은 추세라면 6500건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경제난에서 비롯된 방임형 아동학대가 545건(36%)으로 가장 많다는 점이 두드러진 현상이다.전년동기(445건)보다 100건이나 증가했다.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예방접종 등 병원치료를 안 해주고,밤늦게까지 밖에서 놀도록 방치하는 등 위험한 환경에 노출하는 행위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카드빚으로 인한 가계부채의 증가와 실직으로 자포자기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내팽개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 또 2002년 1월∼올 6월까지 아동학대 재신고건수는 227건으로 전년도(2002년 1월∼2003년 6월)의 78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나 아동학대에 대한 사후관리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한지숙 교육홍보팀장은 “경제난과 함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도 최근 아동학대신고건수가 늘어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현재 전국에 37곳의 아동학대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올 하반기까지 이 가운데 10곳을 아동보호종합센터로 만들어 학대아동의 일시보호·치료기능과 함께 부모상담 업무를 맡길 예정이다. /***/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압구정 종갓집(SBS 오후 9시25분) 서영은 자옥의 코치를 받아서 준규가 비상금을 숨긴 장소들을 척척 찾아낸다.새내기 주부인 서영의 눈엔 그런 자옥이 대단해 보이기만 한다.하지만 준규가 꼭꼭 숨겨둔 비상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준규와 서영은 비상금을 가져간 사람이 누굴까 생각을 하다가 자옥을 떠올린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2003년 1월 국내 인터넷망을 완전히 마비시켰던 인터넷 대란.그리고 그 이후 국내 공공연구소와 각급 기관들이 일제히 해킹을 당하는 문제가 생겼다.컴퓨터 백신프로그램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안철수 소장으로부터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함께 나타난 바이러스와 해킹의 문제를 살펴본다. ●일과 사람들(EBS 오후 8시20분) 미래 인류의 생활터전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리고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의 해양환경 전문가들을 만나본다.연구소에선 오염물질의 해양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것부터 어업자원개발 및 서해환경 관리와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생극장〈오 마이 갓〉(iTV 오후 10시50분) 천생연분으로 확신하며 시작한 행복한 결혼생활.그러나 믿었던 아내의 외도와 그로 인한 이혼.그리고 황폐했던 성재씨의 인생에 다시 한번 찾아온 새로운 사랑.성재씨에게 찾아 온 두 번째 행복은 이루어질까? 한 남자와 또 다른 그녀의 기구한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열정(MBC 오전 9시) 우식을 만나고 온 임여사는 인희에게 우식을 집으로 초대하라고 하고,인희는 기뻐한다.우식은 양복을 입고 인희의 집을 찾고,인희네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원재는 우울한 마음에 밥을 먹다 말고 강지의 집으로 간다.인희와 임여사는 원재가 없어졌음을 알고 준태네 집으로 향하는데…. ●아름다운 유혹(KBS2 오전 9시) 유언장이 조작됐다고 낚시점 여자가 말하자 민우는 충격을 받고,정희가 민우와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복만은 정희에게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주란의 카페로 재혁을 부른 기태는 낚시점 여자가 세희에게 연락했다는 말에 긴장하고,김실장은 기태가 낌새를 눈치 챈 것 같아 불안하다. ●그대는 별(KBS1 오전 8시5분) 아기는 건강하냐는 정여사의 물음에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다.인경과 보냈던 서울에서의 하루가 너무 행복했던 홍기는 동필을 만나 인경과 잘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화연이 서울로 올라간 이후로 조용하던 여인숙이 다시금 소란스러워진다.불룩한 배를 안고 화연이 내려온다.
  • [이진의 섹스&시티]노랑머리 남친

    얼마 전 마지막 더위를 이길 요량으로 여동생과 함께 삼계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우리 테이블 왼편에 한 백인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삼계탕을 복스럽게 먹고 있었죠.외국인이 몸보신을 하는 것이 왠지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그 쪽을 쳐다봤어요. 그때 그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담한 체격의 한국인 여자친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 국제 커플들이 예전보다 자주 보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실제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태원이나 홍대 앞,압구정동 등을 지나다 보면 외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 커플을 심심찮게 볼 수 있죠.심지어는 지방 소도시나 서울 변두리에서도 피부색 다른 연인들이 손을 꼭 잡고 다니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그러고 보면 이젠 국제 교제가 더 이상 신기하거나 별난 일도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여자가 외국인과 다니면 색안경을 쓰고 본다며 호주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미영이가 얘기하더군요.미영이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서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때 남자친구 마이클을 만났죠.그녀는 계속 이메일과 전화로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마이클을 한국으로 초대했는데 그와 함께 길을 걷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고 했습니다.“마이클이랑 시내 관광을 하는데 남자 고등학생들이 나를 ‘양공주’라고 부르는 거 있지.” 미영이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영문을 모르는 남자친구에게 그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었기에 그냥 걸음을 재촉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르포 기사가 생각나더군요.‘홍대 근처의 힙합 클럽에서는 흑인과 일부러 하룻밤을 즐기러 오는 여자가 많다,그들은 섹스 테크닉이 뛰어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그 기사의 핵심이었죠.그저 맥주 한잔과 춤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클럽을 찾는 대부분의 여성들을 외국인과 자고 싶어서 클럽을 찾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무척 거슬렸던 기억이 납니다.언론조차 외국남자와 한국여자의 관계를 선정적으로 다루고 국지적인 사실이 전체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셈이죠.이런 상황에서 그 고등학생들이 전근대적인 사고를 답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화가 납니다.‘외국인과 사귀는 여자는 헤픈 여자다.’‘한국 남자에게 만족을 못해 외국인을 만난다.’‘섹스 테크닉에 반했을 것이다.’‘남자도 외국산을 선호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화가 나다 못해 안타깝습니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알고 있어요.사랑만 한다면 그 상대가 한국사람 혹은 동양인이 아니면 어떻습니까?아직도 이런 교과서적인 주장을 해야하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사랑만 한다면 상대의 피부색이 노랗든 빨갛든 칠흑같이 검든 얼룩무늬이든,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 아닐까요?
  •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 ‘후아유’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 ‘후아유’

    왕자는 궁중의 생활이 따분해 궁중 밖을 나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한다.반면에 거지는 자기의 맘이 내키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배고픔이 지긋지긋해 한번만이라도 왕자가 돼보고 싶어한다.왕자와 거지의 소망을 뒤바꾸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라는 이야기의 구조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이 어떤 곳에 처해 있든 한번쯤은 다른 삶을 꿈꾼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누구나 한번쯤은 다른 삶을 살아 보고 싶어한다. 부모님께서야 복에 겨워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한번쯤 고아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반대로 사고뭉치인 고아는 따스한 부모님의 품이 절절하게 그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비용이 허락된다면 용모는 어떻게 해서든 바꾸어 보겠지만 용모가 바뀐다고 해서 나의 삶이 그렇게 쉽게 바뀌어지지는 않는다. 가죽 점퍼에 찢어진 청바지와 같은 반항적인 옷차림을 하면 나의 삶이 바뀔까.호화로운 의상을 걸치고 돈을 물 쓰듯 쓰면 나의 삶이 고양되는 것일까. 그러나 최신 기종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소위 ‘럭셔리’한 명품 시계를 찼다고 해서 나의 삶이 품위 있어지는 것도 아니다.어떤 소비도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주지는 않는다. 연예 기획사는 한 가수 지망생의 실상을 감추고 이미지를 조작해서 그를 스타로 만들려는 야심을 가진다.우리가 소위 저항적이라고 알고 있는 가수도 실상은 성격이 고분고분하고 얌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획사는 그에게 저항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가죽옷을 입히고,가급적이면 웃는 표정보다는 심각한 표정과 거칠고 투박한 어투를 요구한다.결국 우리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그 가수의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획사에 의해서 가수 지망생에게 요구된 몸짓과 말투와 의상을 보게 된다. TV와 라디오와 같은 미디어는 이렇게 실체를 실체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스타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이미지도 얼마든 조작할 수 있는 것이 미디어의 힘이다.TV의 광고만 하더라도 상품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어떤 상품의 광고는 현란한 이미지만 있을 뿐,무엇을 위한 광고인지도 알기 어렵다. 영화 ‘후아유’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아바타와 아이디 속에 자신을 감출 수는 있다.가상의 공간에서 현실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한번 만들어 볼 수 있다.그러나 가상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것은 실체의 내가 아니라 ‘꾸며진 나’에 불과하다.근사한 아바타를 만들고,채팅에서 현학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까.영화 ‘후아유’는 존재의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서울 배문고 교사 desert44@hitel.net
  • 총리실, 정책상황실등 3개기구 신설

    내치(內治)를 책임진 이해찬 국무총리를 보좌하기 위한 국무조정실 조직개편이 윤곽을 드러냈다. 총리실은 15일 국조실에 있는 수질개선기획단을 폐지하고 복권위원회를 축소하는 대신 정책상황실과 인적자원개발·R&D(연구개발)기획단,규제개혁기획단 등 3개 기구를 신설키로 했다고 밝혔다.총리실은 ‘조직개편 특별팀’에서 만든 이같은 내용의 ‘국무조정실 직제개정안’을 오는 19일 열리는 차관회의에 상정할 방침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책상황실은 이 총리를 보좌할 핵심기구로 청와대 정책상황실이나 국정상황실과의 협조체제 구축을 통해 현안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총리 주재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와 고위당정회의에서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 인적자원개발·R&D추진단은 참여정부 간판 시책인 인적자원 개발과 연구개발 지원 등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규제개혁기획단은 7800개에 이르는 현행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2년 한시조직으로 신설된다.기획단장은 규제개혁조정관(1급)이 겸임하고,각 부처에서 파견되는 정부측 인력과 민간 부분을 합해 50여명으로 구성된다. 반면 폐지되는 수질개선기획단 대신 환경심의관(2급)을 신설,수질 업무를 맡긴다. 복권위원회는 1급인 사무처장의 직급을 2급으로 낮추고 현재 5개과를 2∼3개로 줄인다. 이번 국조실 조직개편은 정무기능 강화를 중심으로 이달 초 인사가 마무리된 총리비서실과 양축을 이뤄 실무적으로 총리를 보좌하기 위한 것이다. 개정안이 오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대규모 인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3)물마루의 세계, 바다미륵의 세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3)물마루의 세계, 바다미륵의 세계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후끈 습한 열기가 숨을 막는다.무더위 속에 박제된 듯한 육지와 달리 선들거리는 해풍이 불긴 불었으나 여름이 제주도라고 피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덥다.그러나 제주의 신화 속에 발을 담그면 어느새 더위를 잊게 된다.우선 구전되는 신화에 귀를 열자. 오래 전,북제주 김녕에서의 일이다.이곳에 사는 어부 윤동지가 고기를 낚으려고 물 깊이 천근수를 내렸더니 커다란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이상하다싶어 돌을 내던지고 다시 그물을 내렸지만 똑같이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장소를 바꿔서 그물을 내려도 마찬가지였다.사흘째도 돌이 올라오더니 드디어 그날 밤 꿈에 현몽하였다.“나를 곱게 모셔주면 자식 귀한 사람들이 자식을 얻도록 해주겠다.” 윤동지는 ‘조상이 내게 오셨구나.’싶어 그 돌을 가져다 미륵으로 모셨다.그러나 애기가 울어대고,강아지가 짖어대는 바람에 미륵을 편히 모실 수가 없게 되자 지금의 미륵당으로 옮겨 따로 모셨다고 한다.말하자면 ‘바다에서 온 미륵’인 셈이다. 이렇듯 ‘바다 미륵’에 관한 전설은 북제주군 곳곳에 남아있다.김녕의 미륵당은 서문 하르방당,윤동지 하르방,미륵보살 하르방으로도 불린다.옛날 김녕에 동·서문이 따로 있었는데,서문 밖으로 미륵당을 옮기면서 서문하르방당이 되었다.윤씨하르방이란 윤씨가 바다에서 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 ●북제주군 곳곳에 하르방 남아 있어 김녕미륵은 일주도로변 아름다운 해변에 좌정하고 있다.바닷가로 흘러내린 용암과 백색의 모래사장이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파란 바닷물과 조화를 이룬 곳.바람막이 돌담을 거느린 미륵이 바다를 향해 정좌해 있고,작은 나무 두어 그루가 해풍을 막아서 있다.제주도에는 널린 용암 자연석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를 굳게 미륵이라고 믿고 신봉한다.이 서문하르방은 기자와 미륵신앙이 하나로 결부된 산육신(産育神)인 셈이다. 북제주 삼양에도 비슷한 전설이 남아 있다.김첨지라는 이가 어느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화들짝 잠을 깼다.미륵먹돌이 선몽한 꿈을 꾼 것.이상하다고 여긴 그는 서둘러 꿈에 보인 곳을 찾아가 낚싯줄을 던지니 먹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김첨지는 먹돌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 알가름의 팽나무 아래에다 미륵으로 모시고 서물날(음력 11일과 26일)마다 제를 올렸다. 그 후 첨지 집안은 우환이 사라지고 복이 넘쳤는데,이를 전해들은 동민들도 그를 따라 미륵먹돌을 모셨다.서물날 이 미륵돌을 건져 서물당이 되었으며,이 때문에 서물 물때에 맞춰 제례를 올렸다.지금도 나무가 우거진 돌담 안에는 제단이 놓여져 있고,미륵먹돌은 제단 밑에 묻혀 있다. 북제주 화북의 미륵 역시 바다에서 태어났으나 약간 다른 점이 있다.바다에서 건져 ‘나에게 태인 조상’이라고 믿고 조상신으로 모셨더니 동지벼슬도 얻고 부자가 된 것까지는 같다.그러나 마을 청년들이 소용없는 짓이라며 미륵을 당 밖에 내버리고 불을 지르려고 했다.그러자 돌미륵이 제 발로 걸어 나왔으며,이 와중에 미륵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났다.이 상처는 동민들에게 피부병으로 나타나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뛰늦게 이를 깨달은 동민들이 다시 미륵을 정중하게 모시자 피부병이 씻은 듯 나았다고 전한다.피부병을 다스리는 미륵불인 셈이다. 필자는 10여년 전,작은 책 한권을 준비하면서 민중의 삶에 유전되는 미륵을 ‘마을미륵’으로,특히 제주도 마을미륵을 ‘바다미륵’으로 규정했었다.바다미륵의 출현은 확실히 ‘제주도적’이어서,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육지미륵의 원조는 역시 백제 무왕이 건설한 익산 미륵사.미륵사 미륵은 삼존불이 솟구치면서 현현하였다.이렇듯 육지의 미륵은 거개가 땅에서 솟구쳤다.미륵출현의 기이(奇異)는 대단히 비의(秘儀)적이라 꿈에 현몽하여 당신의 존재를 알린다.그런데 제주 미륵은 땅이 아닌 바다에서 올라왔다. 알다시피 미륵은 ‘미래불’이다.석가모니 불타가 2500년 전에 중생을 제도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도솔천 용화수 아래에서 중생제도를 행할 삼회를 기다리는 ‘마스터 플랜’이 그것이다.불교가 개창된 이래 미륵신앙은 하나의 운동,즉 미래불을 향한 기다림이었다.그 미륵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래불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이 땅의 민중이 미륵신앙을 대하는 모습은 포괄적이었다.목잘린 불상,목만 남은 불상,내력도 모른 채 밭을 갈다가 얻은 불상,더 나아가 단순한 돌덩이일 뿐인 바위,그것을 민중은 미륵이라고 믿어 왔다.미륵불의 현신이 이처럼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제주도 미륵은 이 다양성에다 ‘바다’를 보탰다. 땅과 달리 바다에서 미륵이 출현하는 방식은 해양문화사나 불교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녀 가히 ‘물마루의 세계관’이라 이름할 만하다.물마루는 수평선을 뜻한다.수평과 수직의 세계관은 다르다.한국문화의 기본 신앙 격인 산신신앙의 산은 수직적이다.단군 할아버지가 신단수로 ‘내려온다.’고 했을 때,당수나무에 빌면서 ‘설설이 내리소서.’ 했을 때도 수직적 강신은 금방 확인된다.제주도에도 한라산에 오르면 이런 산신이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제주미륵 신화 그러나 바닷가는 다르다.바다의 민중은 물마루를 보며 산다.물마루는 희망이자 절망이다.외지 물화를 가득 실은 배도 물마루에 오를 때는 돛대 끝자락부터 모습을 드러낸다.벌떼처럼 들이닥치는 왜구의 선단이 이 물마루에 돛대를 들이밀면 이곳 사람들은 서둘러 산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느낀 점이지만,바다 위에 뜬 섬은 물마루에 홀연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 이내 망망대해로 변하곤 한다.거기에 섬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이처럼 제주도의 바다미륵에는 평생동안 물마루를 지켜보면서 일상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섬 사람들의 수평적 세계관이 층층이 잠복해 있다.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재미있는 점은 제주도의 바다미륵이 모두 북제주 쪽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생각컨대,이는 육지로부터 전래된 불교가 북쪽에 먼저 선을 보인 결과이리라.바닷가에 흔한 해수관음 신앙보다 바다미륵을 받아들임으로써 독자적인 민중적 신앙체계를 구축한 제주사람들의 면모가 새삼 돋보인다.당래하생(當來下生)을 서원했던 제주사람들의 꿈이 바다미륵으로 구현된 셈이다. 살펴 보면,제주 불교는 민간적 토속신앙과 결탁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절 가듯 당(堂)에 가고,당 가듯 절에 가는’ 식이었으니 가히 비승비속(非僧非俗)이요,무불융합(巫佛融合)의 전형인 것이다.수많은 불교신앙 중 미륵만이 유일무이하게 신당(神堂)과 결부돼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물마루의 수평적 질서는 우리나라만의 내림이 아니다.음력 7월14일,올해로 따져 8월29일 일본 오키나와의 하테루마지마(波照間島) 주민들도 어김없이 미륵제를 지낼 것이다.이들은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며 미륵보살을 앞세워 축제를 벌인다.미륵신앙이 멀리 바다를 건너 머나먼 섬까지 파급된 것이다.일본 본토의 이토(伊豆)반도 같은 해안가에도 미륵신앙이 전래돼 풍요와 다산의 주술을 담당한다.오키나와의 수많은 불교신앙 중 미륵이 차지하는 위상은 단연 돋보인다.그 미륵은 엄숙하게 사찰에 모셔지지 않고 마을민의 축제에 불려다니고 있는 중이다.이런 마당에 해상교류 강국이었던 옛 유구국 사람들의 물마루적 세계관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일본 오끼나와까지 파급된 제주 미륵신앙 이런 바다미륵을 말하자면 제주읍성의 동·서문 밖에 1기씩 남아 있는 미륵을 빼놓을 수 없다.바로 지금의 제주시 동편 건입동과 용담동 한두기(大甕浦口)가 그곳이다.마을에서는 이 미륵을 일러 미륵돌미륵,미륵부처,혹은 서자복미륵,동자복미륵 등으로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륜사(海輪寺)를 일명 서자복사,만수사(萬壽寺)를 일명 동자복사라고 부르고 있는데,여기에서 미륵명칭이 유래됐음직하다.지금은 민가에 둘러싸여 있지만 제주시 한두기포구와 제주항이 굽어보이는 건입동 쪽에 위치해 지금까지 거친 제주 바다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망망대해를 오가면서 배를 기다리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물마루에 모인다.물마루에 배가 떠올라야 그 지루한 기다림이 끝나기 때문이다.누구나 미술시간에 수직과 수평의 구도를 배웠으리라.바다에서는 물마루의 수평선 하나가 다른 모든 구도를 압도한다.그 수평은 평온한 것 같지만,태풍이라도 거느리면 노도로,해일로 거칠 게 없는 ‘파문’을 일구기도 한다. 이런 ‘물마루의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바다를 이해하는 첩경이다.세계의 수많은 모험가와 항해자들이 목을 매면서 지켜보았을 그 물마루를 바라보면서 제주민중은 바다미륵을 건지고 있었던 셈이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1)삼천포 원시어법 ‘죽방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1)삼천포 원시어법 ‘죽방렴’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은 경남 사천시 삼천포지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연전,모 방송프로에서 이 발언을 입에 올렸다가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자기 터전을 나쁜 뜻으로 빗대는 것을 누가 좋아라 하겠는가. 그런데 이 글에서만은 이 말을 꼭 써야겠다.단,‘삼천포로 빠져야 바다가 제대로 보인다.’로 고쳐 쓰겠다.진주나들목에서 동쪽으로 길을 잡으면 고성과 통영 방향이다.삼천포로 가자면 ‘역시나’ 밑으로 빠져야 한다.육로로는 막다른 길이다.그래서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나왔음 직한데 막상 삼천포로 빠지면 정말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같은 말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전혀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실감한다. 얼마전까지 남해 읍내로 가자면 반드시 남해대교를 건너야 했다.아니면 삼천포에서 철부선으로 늑도를 거쳐 창선교를 다시 건넜다.번잡하게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여유있을 때나 가는 코스였다.그런데 삼천포대교가 놓이면서 사정이 돌변했다.예전의 ‘하동~남해대교’ 길목 못지않게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삼천포~남해’로 곧장 들어가는 길목이 각광을 받는다. 삼천포는 사실 통영,여수 등과 더불어 남해안 유수의 어항이다.조선시대에도 번화한 포구였으며,일제 때는 일본인 이주어촌이 조성돼 어업침탈이 본격화했던 곳이기도 하다.삼천포 동금리(팔장포)의 에히메촌(愛媛村)이 바로 대표적인 일제 이주어촌.삼천포 어시장에 가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삼천포로 빠져야 바다가 보인다 더운 복중에 무슨 고기가 있을까 싶었는데,고등어 병어 삼치 새우 오징어 까치복 참복 상어 갈치 등이 지천이다.어판장의 활기가 퍼덕이는 멸치떼 같다.아주머니들은 고등어를 선별,얼음을 채워 포장하는 일에 여념이 없고,장정들은 갓잡은 상어를 끌어 내놓는다.리어카로 얼음과 고등어를 옮기는 짐꾼들도 대목 만난 듯 잰걸음들이다.삼천포수협의 차윤원(55) 지도과장은 ‘삼천포항을 모르고 어찌 남해안 수산업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실제로 수협 직영 횟집에서 함어 독가시고기 제도가리 같은 낯선 이름의 자연산 회를 먹어 보니 자원 고갈시대에 아직도 이런 자연산이 남아 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삼천포에 온 목적은 죽방렴(竹防廉)을 살피기 위해서다.삼천포는 죽방렴의 원조.어판장에서 벗어나 실안동에서 전마선을 탔다.문야성(45)씨가 운영하는 죽방렴으로 가는 길,싱싱한 멸치 냄새를 맡았는지 갈매기떼가 몰려들어 극성이다. 둥근 발통을 조심스럽게 오른다.양쪽 활가지로 갈라진 말목은 예전 통대나무에서 H빔이나 참나무 각목 따위로 교체되었다.발통 안의 통그물을 빙빙 돌아가면서 끌어올린다.그물에 붙은 멸치를 대나무로 툭툭 쳐가면서 떼내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멸치 못지않게 쓰레기도 많아 사둘로 연방 라면봉지나 스티로폼 폐물 등을 걷어내야 했다.통그물이 동그랗게 조여지면서 마침내 멸치떼가 하얗게 발광하며 모습을 드러낸다.문씨는 멸치떼를 능숙하게 거둬 저장박스로 옮겼다. 잡아온 멸치는 곧바로 가마솥에 삶은 뒤 그물을 펴고 노천에 펴말리면 하루만에 값비싼 ‘죽방렴 며루치’로 변신한다.사실,요새 죽방렴 멸치는 서민들이 넘볼 음식이 아니다.흔하던 죽방멸치의 생산량이 줄어 있는 사람들이나 먹는 ‘호사품’이 되고 말았다.2㎏짜리 특등품 한 상자에 30만원을 호가한다.최근 7월 말에는 36만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단다.경매가격이 그러니 실제 소비자 가격은 상상을 넘는다.물론 중품은 7만∼8만원,하품은 2만원까지 떨어지나,그 정도 가격이라도 싼 것은 아니다.죽방멸치가 점점 서민들의 식탁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위판된 죽방멸치는 서울의 유명 백화점 매장으로 직행한다. 죽방렴은 하루에 두 번 물을 보는데,당연히 사리물이 중요하다.조업은 여섯물부터 열물 사이에 집중되며,열두물부터 열다섯물,그리고 첫물과 둘째물 때는 거의 조업이 이뤄지지 않는다.조수간만때 조류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에 월간 노동시간이 길지는 않다.대부분 6∼9월 여름이 제철이며,겨울에는 소출이 적어 조업을 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 밥상에나 오르는 ‘죽방렴 며루치’ 죽방렴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목 좋은 죽방렴에서는 연간 기천만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은 천만원 언저리의 수입이 고작이다.한가하게 방렴으로 뛰어들 물고기가 줄어든 탓이다.죽방렴 멸치가 비싸다고 하지만 어민들의 수입은 “엔간한 직장생활보다 쪼메 낫다.”는 수준이다. 삼천포대교 공사 때,죽방의 철거보상비는 대략 2억5000만∼3억원 수준.대를 이어 고기를 잡아왔고,또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생계 수단임을 감안하면 턱없는 보상이지만,일견 죽방의 ‘자본주의적 가치’가 만만치 않음을 입증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죽방멸치는 싱싱한 은빛이 차라리 눈부시다.햇빛에 반사되는 그 은빛의 찬란함은 자연산 멸치의 자존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죽방렴에서 파닥거리는 멸치를 사둘로 건져내 차린 즉석 멸치회는 가히 일품이다.비린 멸치가 그렇게 맛있는 회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 입맛이 얼마나 심각하게 통조림문화에 길들여져 왔는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이런 단호한 선언도 가능하지 않겠는가.“죽방렴,남해안이 살아있다는 마지막 자존심!” 죽방렴은 말 그대로 대나무를 세워 만든 일종의 물고기함정이다.살,발이라고도 부르는데,모두 어살(漁箭)에 속한다.‘경상도 속찬지리지’(1469) 남해현조에 보면 ‘방전(防箭)에서 석수어 홍어 문어가 산출된다.’고 적었다.방전은 죽방렴의 다른 이름이다.이쯤에서 죽방의 어로 원리를 살피고 가자. 물살 빠르고 수심 낮은 곳에 V자로 물고기를 유인하는 양날개를 설치하고,가운데에 고기를 몰아넣는 둥근 임통을 설치한다.날개는 참나무 장목으로 촘촘히 박고,쪼갠 대나무발로 장막을 둘러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둥근 임통은 일종의 ‘연못’이다.고기들이 이곳에 들어와 노닐다가 포획된다.조류를 따라 흐르다 임통에 든 고기를 거둬들이는 원시적 어로방식. 남해안 죽방렴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이는 담정 김려(1716∼1821)였다.일찍이 인근 우해(진해)로 귀양와 자산어보와 쌍벽을 이루는 어보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남긴 김려의 눈길에 죽방렴이 빠질 수 없었다.자산어보(1814)보다 11년이나 빠른 1801년에 이 탐구서가 완성되었으니,한국 최초의 어보인 셈이다.자산어보가 서남해를 중심으로 해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면,우해이어보는 남해 중심의 또다른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양자의 결합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조선후기 어업 및 어류지의 복원에 한층 가깝게 다가설 수 있으리라.불우했던 그는 이 어보를 통해 민중의 삶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그가 본 죽방렴은 진해 인근의 것으로,당시에는 어뢰(魚牢)라고 불렀다.‘뢰’는 감옥이란 뜻이니,고기가 대나무발에 잡힌다는 의미이다.진해 바닷가에 수십개의 어뢰가 마치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다고 했으니,지금의 죽방렴 풍경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남중국·태국서도 성행 세계적 어법 김려가 본 죽방렴과 현존 죽방렴이 원리나 기능은 같을지 몰라도 형태의 변형이 있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일본식 죽방렴의 영향도 없지 않았겠지만,죽방렴이란 이름도 20세기에 만들어졌다.이 죽방렴이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멀리 남중국이나 태국처럼 대나무가 흔한 곳에서는 보편적으로 행해진 세계적 어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죽방렴이 가장 성행한 곳은 바로 삼천포와 사천교 인근 사천만,창선교 주변의 남해 지족해협 등 세 군데를 꼽을 수 있다.수심이 낮고 물살이 빠른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다.죽방은 조류를 타고 떠들어오는 멸치를 잡는 어법이어서 이 멸치를 노리는 갈치 숭어 전어 농어와 새우도 제법 잡혔다.삼천포항에서 경매되는 멸치 총량은 연간 260억원 규모로 무려 120만 관에 이른다.삼천포의 멸치는 정치망이나 죽방렴으로 잡기 때문에 선도가 으뜸이다. 그러나 아무도 삼천포 죽방렴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7∼8년 전부터 멸치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어서다.연륙교의 교각이 조류 흐름을 막아서 뜬물에 흘러다니는 멸치이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공사가 진행중인 사천대교의 홈통도 조류를 방해하기는 마찬가지다. ●교각이 조류흐름 막아 어획량 급감 삼천포에는 실안동 9개,늑도 2개,마도 5개,신수도 3개,대방동 2개 등 모두 21개의 죽방렴이 우리 전통어법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다행히 어항 삼천포의 자존심을 지킬 죽방렴이 다리 건너 남해군 지족해협에도 있다.남해와 창선도를 연결하는 창선교에서 물길을 바라보노라면 죽방렴 20여개가 한눈에 들어온다.그걸 바라보면서 제발 오래오래 지켜내 주기를 기대해본다. 죽방렴이 전통적인 어로의 현장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또한 그만인 구경거리다.삼천포 시내가 바라보이는 돗섬 앞에 설치된 돗섬발의 일몰은 풍광이 뛰어나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끈다.지족해협의 창선교에서 본 돗섬발 일몰도 이에 못지않다. 사람들은 그저 불탑이나 불상,향교나 금석문,그도 아니면 음풍농월이 질펀한 경관에만 관심을 쏟을 뿐,정작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어로현장에서 창조해 낸 생산문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귀족중심,사대부중심,육지중심 등의 일방적 편향이 가져온 후과이니,지금껏 문화를 바라보는 수준과 취향이 제한적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죽방렴,이 얼마나 유서깊은 어업문화사의 자취인가.
  • 여긴 몰랐지? 조용하게 休~할만한 곳

    여긴 몰랐지? 조용하게 休~할만한 곳

    ‘어휴,올핸 얼마나 막힐까.어디 쾌적한 피서지 없나?’휴가를 떠나기 전 항상 겪게 되는 고민이다.피서가 절정인 요즘 바다를 찾아 남·동·서해안으로 떠나는 피서행렬을 보면 기부터 질리게 마련.이번엔 아예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보면 어떨까.동북쪽에 있는 강원도 철원,화천 지역으로 눈을 돌려봄직하다.피서철임에도 사람 구경하기 어려울 만큼 한적한 청정지대가 많다.그중 화천의 만산동계곡과 철원의 복주산 휴양림을 안내한다. 철원·화천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화천-만산동계곡 정말 차다.온세상이 찜통이지만 이곳은 사방에 냉풍기를 틀어놓은 듯,그야말로 별천지다.푹 파인 협곡 모양의 계곡은 양 옆으로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터널을 이룬다. “아빠,나하고 누가 물에 오래 있나 시합해.내가 오빠는 이겼어.”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지은이는 파랗게 변한 입술을 떨면서도 아빠에게 도전장을 내민다.물 밖에 가만히 있어도 서늘한 판에,얼음처럼 찬 물에 들어가야 하다니.귀여운 딸의 도전을 뿌리치지 못해 발을 담그는 아빠의 표정은 벌써 얼었다. 물놀이와 함께 만산동계곡에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산천어를 잡기에 여념이 없다.8월15일까지 열리는 ‘물의 나라 화천 쪽배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섭씨 15도 이하의 수온에서만 산다는 산천어가 계곡에 득실거린다.자생은 아니고,화천군측에서 이번 행사를 위해 풀어놓은 것들이다.족대를 들고 뛰어 들었다.아이 팔뚝만한 산천어가 눈앞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지만 좀처럼 걸려들지 않는다. “맨손으로 잡는 게 더 나아요.족대는 여러명이 포위하지 않으면 잡기 어려워요.” 축제 실무책임자인 화천군문화원 정종선 사무국장이 보다못해 끼어들어 맨손으로 잡는 요령을 일러준다.그의 말대로 큰 돌 아래 구석구석으로 손을 넣으니 무언가 미끌미끌한 것이 손끝에 감지된다.산천어다.물고기는 돌 안쪽으로만 자꾸 기어들어간다.몸통을 꽉 잡았다 싶었는데 이내 미끄러져나가기를 서너번.먼저 눈을 가린 뒤 몸통을 잡아야 한다고 정씨가 가르쳐준다.그대로 하자 마치 고삐 잡힌 소가 따라오듯 물고기가 딸려나온다. 계곡은 산천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너댓군데를 그물로 막아놓았다.그중 맨 위쪽에선 가짜 미끼를 사용하는 루어 낚시로 산천어를 낚을 수 있다. 자신이 잡은 산천어는 굽거나 회로 먹을 수 있다.물가 옆으로 화덕과 숯,석쇠가 준비되어 있다.소금을 뿌려 구워 먹어보니 쫄깃하면서 구수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물놀이하던 아이들도 한기가 느껴지면 화덕 주위에 쪼르르 몰려들어 산천어 파티에 동참한다.회도 원하는 만큼 떠준다.산천어는 마음껏 잡고,잡은 것은 모두 먹을 수 있지만 갖고 나갈 수는 없다. 입장료는 어른 1만 5000원,어린이 1만원.식사(산채비빔밥)도 포함된 가격이다.또 계곡 한편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계속 찌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갖다 먹을 수 있다. 축제가 열리는 계곡 인근 붕어섬에도 가보자.춘천댐 건설로 생긴 붕어 모양의 이 섬에선 무료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카누와 쪽배 타기.누구나 약간의 강습만 받으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배를 타고 나가 즐길 수 있다.아이들이나 연인들이 특히 좋아한다.황토염색과 봉숭아 물들이기도 인기 코스. 섬은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줘 돗자리를 펴고 쉬기에 안성맞춤이다.군데군데 가족들이 먹을거리를 꺼내놓고 쉬는 모습이 평화롭다.자전거도 준비되어 있어 언제든지 빌려 섬을 돌아볼 수 있다. 매력적인 것은 붕어섬내의 모든 체험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점.군 관계자는 “화천 관광을 활성화하고,화천 알리기 차원에서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며 “화천에선 언제든지 쾌적하고 저렴한 피서가 보장된다.”고 자랑했다. ■철원-복주산 휴양림 일단 복주산이란 낯선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그래,여행기자인 내게 낯설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모르지 않겠는가.’ 한적한 피서지를 찾기 위해 찾아간 복주산 휴양림은 과연 피서철이 절정에 달했음에도 입구에서부터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1998년 개장한 복주산 휴양림은 인근에 대형 관광지가 없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 휴가를 즐기기에 딱 좋다.휴양림 입구에서 정상(1157m)까지는 아직 완전하게 등산로가 조성돼 있지 않다.그래서 능선 중간쯤에서 용탕골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돌아내려와야 한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이 오장육부를 씻어주는듯 시원하다.탐스럽게 익어가는 산딸기,함초롬히 피어있는 야생화들은 오랜만에 찾아든 손님에게 말을 거는듯 고개를 까딱거린다.올 장마엔 비가 많이 와선지 참나무숲 아래는 버섯 천지다.낙옆을 헤치고 봉곳이 머리를 내민 모습이 마냥 정겹다.1시간30분 소요.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싶으면 휴양림에서 용탕골계곡을 따라 난 산책로가 좋다.휴양림 입구부터 천천히 계곡을 돌아내려오는데 30분 쯤 걸린다. 계곡 입구엔 물놀이장이 있다.야트막한 폭포 아래 소를 이룬 천연 풀장.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를 둔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다.마침 휴가를 온 가족인듯 아빠와 아들,딸 셋이서 물장난을 치고 있다.납작한 돌을 잡아 물수제비 뜨기 시합을 하는 아빠와 아이들.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계곡의 천연풀장은 이날 이들의 독차지였다. 계곡에선 취사 금지.하지만 숙박용 산림휴양관 앞마당에 화덕과 석쇠가 마련돼 있어,숯과 고기만 사가면 바비큐를 해먹을 수도 있다.입장료 2000원,주차료 3000원. 시간이 나면 휴양림에서 신철원 방면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순담계곡과 고석정,직탕폭포에도 들러보자.특히 고석정은 거대한 암벽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 절경의 결정판으로 꼽히는 곳이다.낚시와 보트도 즐길 수 있다. ●가는 길 만산동계곡 경춘국도인 46번 도로를 타고 가평을 거쳐 의암교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해 403번 도로를 탄다.의암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계속 직진하면 춘천댐이 나오고 5번도로와 만난다.직진해 말고개터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붕어섬이 나오고,계속 직진하면 만산동계곡과 이어진다.서울 동북지역에서 2시간30분 소요. 복주산휴양림 43번 국도를 타고 포천을 거쳐가야 한다.일동,이동을 지나 서면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해 56번 도로를 타면 잠곡리에 이르러 휴양림 진입로가 나온다. ●묵을곳 만산동계곡의 경우 인근 화천읍내 민박이나 여관에 묵는 게 편하다.여관은 강원장여관(033-442-7030),녹원파크(442-6161),덕성파크(442-2204)·민박은 김상조(442-2660)이순일(442-3995)황만근(441-0035)씨 등이 있다. 붕어섬내 야영도 고려해볼 만하다.축제 주최측에서 야영용 천막을 여러개 설치해 놓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복주산휴양림엔 숙박용 산림휴양관(10실)이 있으나,8월 중순까지는 예약이 이미 끝난 상태.따라서 휴양림 인근 잠곡리의 매일민박(033-458-4494),누에마을(458-1206) 등을 이용하면 된다. ●먹을거리 화천 만산동계곡에선 직접 잡은 산천어만 먹어도 배부르다.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며 출출해지면 물가로 나와 직접 숯불 화덕에 굽거나,주최측이 떠준 회를 먹을 수 있다.인근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산천어회의 경우 1㎏에 3만원 정도 한다. 붕어섬에선 화천읍내 식당 주방장들이 차린 먹을거리장터를 이용하면 된다.주요메뉴는 콩국수와 막국수,산천어회덮밥.이중 산천어회덮밥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화천의 별미다.육질이 상당히 부드럽다.씹히는 맛이 적다는 평도 듣지만 그래도 가장 잘 나가는 인기메뉴다. 철원에선 갈말읍(신철원)에서 숯불 화로구이 맛을 보자.문혜사거리 농협 맞은편의 ‘돈대감숯불화로구이’(033-452-9295)가 유명하다.쇠고기,돼지고기를 재료로 몇가지 메뉴가 있는네,그중 고추장 양념을 삽겹살에 발라 굽는 ‘고추장 삽겹살 화로구이’가 먹을 만하다. 여행 관련 문의 화천군청 문화관광과(033-440-2561),축제안내(441-7575).복주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458-9426),철원군청 관광경제과(450-5365).
  • 79세노인 감기약 복용뒤 뇌졸중

    페닐프로판올아민(PPA) 성분이 함유된 감기약을 복용한 79세 노인이 뇌졸중을 일으켰으나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3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PPA가 25㎎ 함유된 콧물감기약을 먹은 박모(79·서울 거주)씨가 뇌졸중을 일으킨 사례가 지난 5월 말 보고됐다. 서울의 모병원 담당 의사와 이번 사건을 조사한 공중보건의는 약품복용 때문에 뇌졸중이 발생한 것인지 혹은 고령에 따른 고혈압으로 뇌졸중이 생긴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식약청은 설명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뇌졸중 발병 당시 콧물감기약 이외에 발병 전 1개월간 위염치료 약물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정확한 확인은 불가능해 과연 어떤 원인으로 뇌졸중이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식약청은 이와 함께 ‘소비자를 위한 설명자료’를 통해 “PPA 성분은 복용 후 몸에 축적되지 않고 바로 배설되기 때문에 과거에 수시로 복용했다 하더라도 5일 정도가 지나면 사실상 영향이 없다.”면서 “따라서 감기약을 복용할 당시 문제가 없었다면 현재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대부분의 제약업소에서 이미 4년 전부터 자체 판단에 따라 대체 성분을 이용한 코감기약을 제조·판매해 왔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인해 큰 혼란은 없다.”면서 “참고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국가에서는 아직도 PPA 성분을 감기약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PPA 함유 감기약 논란과 관련,식약청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식약청이 서울대 의대팀의 최종 연구보고서를 받은 후부터 언론에 발표할 때까지 과정에서 직원들의 과오나 실수가 없었는지를 조사할 것”이라면서 “특히 연구보고서가 제약업체에 사전 유출됐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식약청이 감기약 판매금지 발표를 대부분의 언론사가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에 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파장 축소를 위해)의도적으로 발표 시점을 조작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식약청은 감기약 판매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김근태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수기자 dragon@seoul.co.kr
  • 재경부 국장급 젊어졌다

    재정경제부 본부 국장들이 전원 ‘행정고시 20회 이하’로 세대교체됐다. 재경부는 1일 공보관에 행시 21회인 김경호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관세심의관에 김성배(21회) 본부국장,국고국장에 유재한(20회) 본부국장,공자위 사무국장에 김교식(23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준비기획단 국장을 각각 임명했다. 이철휘(17회) 국고국장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로,문창모(18회) 관세심의관은 본부대기로,김성진(19회) 공보관은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각각 자리를 옮긴다. 재경부측은 “일부 부처의 경우 20회 이하 기수에서 차관급 이상이 나오고,대부분 부처들이 20회 이하 국장들로 구성돼 있으나 재경부만 유독 10회대 기수들이 많이 남아있어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국장급 인사로 1급과 과장급에서도 대폭적인 후속인사가 잇따를 전망이다. 1급인 김성진 국장이 우리당으로 옮김에 따라 윤대희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이 2주일 정도 걸리는 행정절차를 거쳐 본부로 돌아오게 된다. 복귀후 직책은 1급 상당의 본부자리 또는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등이 될 전망이다. 과장급은 최규연(부이사관·24회) 국고과장이 세계은행(IBRD) 자문관으로 옮김에 따라 국고과장·공보과장·정책조정총괄과장·경협총괄과장·의사총괄과장·회수관리과장 등 6개 자리가 공석이어서 교육 및 외부기관 파견을 마치고 대기중인 과장급들이 대거 복귀하는등 연쇄이동이 예상된다.현재 정책조정총괄과장에는 이호철 산업경제과장, 경협총괄과장에는 이성한 국제경제과장등이 유력한 후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8)임자 타리도·재원도의 민어 복달임

    내일이 중복.‘복날 이름값 한다.’더니 엄청나게 덥다.더러는 개고기를 두고 논쟁도 없지 않으나 복날답게 곳곳의 개장국집은 문전성시다.그래도 ‘복날치레’는 빠뜨릴 수 없어 개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삼계탕집으로 몰려가는데,정작 민어를 먹겠다는 사람은 씻고 찾아봐도 없다.소문난 개장국집,삼계탕집을 꿰는 사람들이 복날 복달임의 민어풍속은 알지 못하니,이 무슨 망각병인가. 복달임 풍습을 살피자니 서글프고 허전하다.육고기 논쟁이 무성한 지금,선조들이 바닷고기로 즐겼던 복날의 내력이 고스란히 빠진 것 같아서다.복날 바다생선으로는 역시 민어가 으뜸이다.듬직한 민어는 스케일도 예사 고기와 달라 흡사 참치 한 마리에서 수백 개의 통조림이 나오는 격이다. 왜정 때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갓집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복날이면 민어와 여기에 필요한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해 숲 그늘 냇가로 나갔다.그곳에서 큼직한 민어를 회뜨고,매운탕을 끓이는 모습은 요새 개 한 마리를 여러 명이 추렴해 해치우는 모습에 비견된다.살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깔끔하게 손봐 끓여냈다. ●길이 1m·무게 20㎏ 대형 물고기 세종실록지리지(1432)나 여지도서(1771)에 골고루 민어가 등장하는 품세로 미뤄 민어 복달임이 서해안 전체에 고루 분포했던 듯싶다.반면에 동해나 경상도쪽 남해안에서는 민어가 잡히지 않아 이런 기록을 찾기 어렵다.민어는 민어(民魚) 뿐 아니라 민어(魚),면어( 魚),표어(魚)라고도 했다. 빛깔이 등쪽은 회청색,배쪽은 연한 흰빛으로 몸길이가 1m를 넘고 무게도 20㎏에 달하니 바닷고기 치고는 귀골이요,크기도 가히 팔척장신이라고 할 만하다.그러니 ‘민어 한 마리로 수십 명이 요족하게 복달임을 했다.’는 말이 과히 허언은 아닌 셈이다. 민어는 속살이 백색으로,살집이 탄력있어 횟감으로도 그만이다.고급 횟집에서 큼직하게 썰어주는 민어회(사실은 수입 민어겠지만),그 입안 가득 씹히는 맛과 육질은 다른 횟감과 비교하기 어렵다.그만큼 두드러진 격조를 갖춘 덕에 젯상이나 혼례상에도 빠짐없이 오른다.비늘이 두껍고 커서 의례상 차림에 맞춤인 까닭이다.또 말린 민어포는 굴비 못지않게 한국인이 좋아하는 건어물로,백중절 우란분(盂蘭盆)에 조기와 더불어 활용했다.물량이 많지 않아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내로라는 장안 건어물가게의 명색을 가꾸는 커다란 민어포를 상상해 보라. 민어찜의 담백한 풍미 또한 뛰어나 이런저런 찜과는 결코 한 줄에 세울 수 없다.서울에서는 예부터 민어찜을 도미찜보다 한 수 위로 쳤다.민어 살의 기름은 그 양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아 참조기의 그것과 함께 고급으로 쳤다.게다가 민어 머리의 붉은 껍질과 살이 또한 일미라,어두봉미(魚頭鳳尾)의 전통 식도락 기준에도 딱 들어맞는다. ●‘날껍질에 밥 싸먹는다’ 식담도 국을 끓여도 좋고 구워먹어도 좋다.붉은 껍질은 말려서 튀기거나 날로 밥을 싸먹기도 해 ‘날 껍질에 밥 싸먹는다.’는 식담(食談)까지 생겼다.이같이 민어는 머리부터 꽁지까지 버릴 것이 없다.민어 알젓에 저냐,구이,맑은장국과 회는 물론 포와 찌개,국,조림,아가미젓 등등 민어가 연출하는 식탁에서의 변신은 가짓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민어의 품격을 현장에서 제대로 보자면 역시나 전남 임자도에 딸린 태이도(일명 타리도)와 재원도로 내려갈 일이다.삼복 더위가 기승인 지금이 민어잡이의 절정기다.과거에는 민어의 주산지가 전남 고흥과 완도,무안,신안,영광,전북의 고군산열도,죽도,경기도의 연평열도,평안도의 신미도,대화도,압록강구 등지였으나 지금은 기록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爵·1827)에서,민어와 조기,반디,낙지,준치 등 서해에서 나는 고기를 ‘천한 어류’로 분류했다.그의 ‘천하다’는 촌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아마도 그만큼 ‘흔했다.’는 말이고,‘널리 퍼진 물고기’란 뜻이지,결코 ‘품격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리라.민어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흔한 물고기였으나 남획으로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민어복달임’ 운운하면 조금은 ‘호사스러운’ 말치레일 수도 있다.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게 결코 근거없는 호사만도 아니다.개 반 마리 값이면 요새도 민어복달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문제는 먼 남도로 길을 잡아야 해 발품이 든다는 것 뿐. ●오늘날엔 무안 해제반도가 유일한 집산지 전남 무안의 해제반도,그 잘룩한 개미허리를 벗어나면 이내 장암포구에 닿는다.그곳에서 철부선에 차를 실으면 곧장 임자도에 닿고 그곳에서 한참을 달리면 하우리포구가 나온다.하우리는 오늘날 유일하게 민어가 집산되는 곳.일제시대에 이곳은 민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소문난’ 유명세를 치렀다.일본의 나이든 노인들은 지금도 ‘전라도는 몰라도 타리도는 안다.’고 할 정도다. 하우리에서 조금 북쪽에 위치한 타리섬이 바로 민어잡이의 본산이다.섬타리(대태이도)는 타리섬의 큰 섬이며,뭍타리섬(육타리도,육태이도)은 섬타리 동쪽에 있다.섬타리에는 사람이 살고 있으나 육타리도는 무인도다. 오늘날의 타리도는 아무도 찾지 않는 무인절경(無人絶景)이다.모래밭이 드넓고,섬과 바닷물이 조화를 이뤄 많은 이들이 찾을 법도 한데,일제시대 파시 이후로 ‘막 내린 곳’이 되고 말았다.백사장을 거닐면서 그 옛날 한창 주가를 드높였던 민어파시를 떠올렸다.어디선가 술집 작부들의 젓가락 장단에 실린 신명과 애절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에는 여름철이면 알을 낳으려는 민어떼가 몰려들었다.민어떼가 몰려들면 민어 우는 소리로 온 바다가 시끌벅적했다.어부들도 민어를 따라서 전국 곳곳에서 몰려왔으니,민어와 사람이 이곳에서 들끓어 흥청거리는 민어파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파시란 직역하면 ‘바다의 시장’이니,조용하던 해변이 잠시나마 여름 한철 시장판으로 바뀌는 것이다.옛말에 ‘위도에서 벌어서 타리에 와서 탈탈 털어버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집이 번창하고 흥청거렸다.파시가 번성하던 시절에는 목포-타리도-낙월도-영광을 잇는 여객선과 화물선의 항로가 개설되기도 했다. ●음력 4월부터 7월까지 이어졌던 민어파시 파시는 보통 음력 4월에 시작해 7월말까지 이어졌다.모래 언덕에는 판잣집이나 가건물이 줄지어 들어서고,색주가가 형성되었다.민어 따라 돈이 몰리고,돈냄새를 맡은 여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한창 성할 때는 400여 호의 가겟집 중 7할이 논다니 기생집이었다.이곳에는 한국 기생은 물론 일본 기생까지 있었는데,재밌는 것은 이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장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파시는 타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하우리 바로 건너편 재원도도 파시로 흥청거렸다.교통이 불편해 하루에 2번 배편으로 길이 열릴 뿐이지만 돈있는 곳에 파시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재원도 포구에서 예미고개를 넘어가면 예미백사장이 나온다.천연의 사구에 아무도 없는 쓸쓸한 해변.고개를 넘는 숲이 너무 깊어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달려든다는 그런 오지다.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은 험한 길을 헤쳐 겨우겨우 달려가니 반갑게 예미가 길손을 맞는다. 인간의 발자취가 끊긴 이 아름다운 해변도 파시로 흥청거렸다.경기도 고양에서 이곳으로 귀양와 입도주(入島主)가 된 진유걸(陳有傑)의 9세손인 진재언(59·전 어촌계장)의 증언에 따르면,어렸을 때만 해도 제철이 되면 민어 우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예쁜 양산을 받쳐 든 아가씨들도 꽃잎처럼 나풀거리며 예미고개를 넘어 재원포구로 몰려왔다. 말하자면,임자도를 중심으로 이에 딸린 타리섬 일대와 건너편 재원도 일대가 모두 민어 밭이었고,민어파시가 형성되었던 유서깊은 해양문화사의 거점이었던 것. ●부레풀까지 요긴하게 사용… 버릴 데 없는 고기 일제시대에 전라도 민어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었고,경기도 민어는 서울 일원에서 소비되었다.타리 민어는 품질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방망이로 민어포를 두들기면 곧잘 바스러지는 다른 포와 달리 이곳 포는 육질이 솜처럼 부풀어올라 최고의 술안주로 대접받았다.무더운 복중에 시원한 맥주 한 컵,그리고 쪽쪽 찢어낸 민어포를 고추장에 찍어 곁들이는 맛이란! 이곳 파시는 한국전쟁 이후 명맥만 유지하다가 1960년대 초반부터는 민어 대신 부세나 병어잡이로 대신하고 있다.그래도 60∼70년대까지는 재원 파시가 열려 끝물의 노랫자락이 포구를 물안개처럼 떠돌았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해변만 남아 노랫가락을 타고 흥청이던 그 옛날 파시의 추억을 전할 뿐이다. 천만다행으로 민어잡이가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다.지금도 이 무렵이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몇 안되는 민어떼가 이곳으로 길을 잡아 민어파시의 유서깊은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벗들과 어울려 민어 한 마리를 장만해 우리의 복달임을 즐겨볼 일이다.그리고,아귀처럼 먹는 일에만 골몰하지 말고 주변도 돌아볼 한 번 일이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놓인 값비싼 고가구가 모두 민어의 부레풀로 만든 것들이다.어느덧 화학접착제에 밀려나고 말았지만 ‘이풀 저풀 다 둘러도 민애풀이 따로 없네.’란 노랫가사를 음미하며,천년을 간다는 민어풀의 생명력을 고마워 할 일이다.그래서 부레조차 버리지 않을 정도로 알뜰하게 추려 먹고,우려 먹었던 민어복달임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곁눈질이라도 해볼 일이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8)임자 타리도·재원도의 민어 복달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8)임자 타리도·재원도의 민어 복달임

    내일이 중복.‘복날 이름값 한다.’더니 엄청나게 덥다.더러는 개고기를 두고 논쟁도 없지 않으나 복날답게 곳곳의 개장국집은 문전성시다.그래도 ‘복날치레’는 빠뜨릴 수 없어 개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삼계탕집으로 몰려가는데,정작 민어를 먹겠다는 사람은 씻고 찾아봐도 없다.소문난 개장국집,삼계탕집을 꿰는 사람들이 복날 복달임의 민어풍속은 알지 못하니,이 무슨 망각병인가. 복달임 풍습을 살피자니 서글프고 허전하다.육고기 논쟁이 무성한 지금,선조들이 바닷고기로 즐겼던 복날의 내력이 고스란히 빠진 것 같아서다.복날 바다생선으로는 역시 민어가 으뜸이다.듬직한 민어는 스케일도 예사 고기와 달라 흡사 참치 한 마리에서 수백 개의 통조림이 나오는 격이다. 왜정 때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갓집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복날이면 민어와 여기에 필요한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해 숲 그늘 냇가로 나갔다.그곳에서 큼직한 민어를 회뜨고,매운탕을 끓이는 모습은 요새 개 한 마리를 여러 명이 추렴해 해치우는 모습에 비견된다.살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깔끔하게 손봐 끓여냈다. ●길이 1m·무게 20㎏ 대형 물고기 세종실록지리지(1432)나 여지도서(1771)에 골고루 민어가 등장하는 품세로 미뤄 민어 복달임이 서해안 전체에 고루 분포했던 듯싶다.반면에 동해나 경상도쪽 남해안에서는 민어가 잡히지 않아 이런 기록을 찾기 어렵다.민어는 민어(民魚) 뿐 아니라 민어(魚),면어( 魚),표어(魚)라고도 했다. 빛깔이 등쪽은 회청색,배쪽은 연한 흰빛으로 몸길이가 1m를 넘고 무게도 20㎏에 달하니 바닷고기 치고는 귀골이요,크기도 가히 팔척장신이라고 할 만하다.그러니 ‘민어 한 마리로 수십 명이 요족하게 복달임을 했다.’는 말이 과히 허언은 아닌 셈이다. 민어는 속살이 백색으로,살집이 탄력있어 횟감으로도 그만이다.고급 횟집에서 큼직하게 썰어주는 민어회(사실은 수입 민어겠지만),그 입안 가득 씹히는 맛과 육질은 다른 횟감과 비교하기 어렵다.그만큼 두드러진 격조를 갖춘 덕에 젯상이나 혼례상에도 빠짐없이 오른다.비늘이 두껍고 커서 의례상 차림에 맞춤인 까닭이다.또 말린 민어포는 굴비 못지않게 한국인이 좋아하는 건어물로,백중절 우란분(盂蘭盆)에 조기와 더불어 활용했다.물량이 많지 않아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내로라는 장안 건어물가게의 명색을 가꾸는 커다란 민어포를 상상해 보라. 민어찜의 담백한 풍미 또한 뛰어나 이런저런 찜과는 결코 한 줄에 세울 수 없다.서울에서는 예부터 민어찜을 도미찜보다 한 수 위로 쳤다.민어 살의 기름은 그 양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아 참조기의 그것과 함께 고급으로 쳤다.게다가 민어 머리의 붉은 껍질과 살이 또한 일미라,어두봉미(魚頭鳳尾)의 전통 식도락 기준에도 딱 들어맞는다. ●‘날껍질에 밥 싸먹는다’ 식담도 국을 끓여도 좋고 구워먹어도 좋다.붉은 껍질은 말려서 튀기거나 날로 밥을 싸먹기도 해 ‘날 껍질에 밥 싸먹는다.’는 식담(食談)까지 생겼다.이같이 민어는 머리부터 꽁지까지 버릴 것이 없다.민어 알젓에 저냐,구이,맑은장국과 회는 물론 포와 찌개,국,조림,아가미젓 등등 민어가 연출하는 식탁에서의 변신은 가짓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민어의 품격을 현장에서 제대로 보자면 역시나 전남 임자도에 딸린 태이도(일명 타리도)와 재원도로 내려갈 일이다.삼복 더위가 기승인 지금이 민어잡이의 절정기다.과거에는 민어의 주산지가 전남 고흥과 완도,무안,신안,영광,전북의 고군산열도,죽도,경기도의 연평열도,평안도의 신미도,대화도,압록강구 등지였으나 지금은 기록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爵·1827)에서,민어와 조기,반디,낙지,준치 등 서해에서 나는 고기를 ‘천한 어류’로 분류했다.그의 ‘천하다’는 촌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아마도 그만큼 ‘흔했다.’는 말이고,‘널리 퍼진 물고기’란 뜻이지,결코 ‘품격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리라.민어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흔한 물고기였으나 남획으로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민어복달임’ 운운하면 조금은 ‘호사스러운’ 말치레일 수도 있다.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게 결코 근거없는 호사만도 아니다.개 반 마리 값이면 요새도 민어복달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문제는 먼 남도로 길을 잡아야 해 발품이 든다는 것 뿐. ●오늘날엔 무안 해제반도가 유일한 집산지 전남 무안의 해제반도,그 잘룩한 개미허리를 벗어나면 이내 장암포구에 닿는다.그곳에서 철부선에 차를 실으면 곧장 임자도에 닿고 그곳에서 한참을 달리면 하우리포구가 나온다.하우리는 오늘날 유일하게 민어가 집산되는 곳.일제시대에 이곳은 민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소문난’ 유명세를 치렀다.일본의 나이든 노인들은 지금도 ‘전라도는 몰라도 타리도는 안다.’고 할 정도다. 하우리에서 조금 북쪽에 위치한 타리섬이 바로 민어잡이의 본산이다.섬타리(대태이도)는 타리섬의 큰 섬이며,뭍타리섬(육타리도,육태이도)은 섬타리 동쪽에 있다.섬타리에는 사람이 살고 있으나 육타리도는 무인도다. 오늘날의 타리도는 아무도 찾지 않는 무인절경(無人絶景)이다.모래밭이 드넓고,섬과 바닷물이 조화를 이뤄 많은 이들이 찾을 법도 한데,일제시대 파시 이후로 ‘막 내린 곳’이 되고 말았다.백사장을 거닐면서 그 옛날 한창 주가를 드높였던 민어파시를 떠올렸다.어디선가 술집 작부들의 젓가락 장단에 실린 신명과 애절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에는 여름철이면 알을 낳으려는 민어떼가 몰려들었다.민어떼가 몰려들면 민어 우는 소리로 온 바다가 시끌벅적했다.어부들도 민어를 따라서 전국 곳곳에서 몰려왔으니,민어와 사람이 이곳에서 들끓어 흥청거리는 민어파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파시란 직역하면 ‘바다의 시장’이니,조용하던 해변이 잠시나마 여름 한철 시장판으로 바뀌는 것이다.옛말에 ‘위도에서 벌어서 타리에 와서 탈탈 털어버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집이 번창하고 흥청거렸다.파시가 번성하던 시절에는 목포-타리도-낙월도-영광을 잇는 여객선과 화물선의 항로가 개설되기도 했다. ●음력 4월부터 7월까지 이어졌던 민어파시 파시는 보통 음력 4월에 시작해 7월말까지 이어졌다.모래 언덕에는 판잣집이나 가건물이 줄지어 들어서고,색주가가 형성되었다.민어 따라 돈이 몰리고,돈냄새를 맡은 여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한창 성할 때는 400여 호의 가겟집 중 7할이 논다니 기생집이었다.이곳에는 한국 기생은 물론 일본 기생까지 있었는데,재밌는 것은 이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장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파시는 타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하우리 바로 건너편 재원도도 파시로 흥청거렸다.교통이 불편해 하루에 2번 배편으로 길이 열릴 뿐이지만 돈있는 곳에 파시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재원도 포구에서 예미고개를 넘어가면 예미백사장이 나온다.천연의 사구에 아무도 없는 쓸쓸한 해변.고개를 넘는 숲이 너무 깊어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달려든다는 그런 오지다.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은 험한 길을 헤쳐 겨우겨우 달려가니 반갑게 예미가 길손을 맞는다. 인간의 발자취가 끊긴 이 아름다운 해변도 파시로 흥청거렸다.경기도 고양에서 이곳으로 귀양와 입도주(入島主)가 된 진유걸(陳有傑)의 9세손인 진재언(59·전 어촌계장)의 증언에 따르면,어렸을 때만 해도 제철이 되면 민어 우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예쁜 양산을 받쳐 든 아가씨들도 꽃잎처럼 나풀거리며 예미고개를 넘어 재원포구로 몰려왔다. 말하자면,임자도를 중심으로 이에 딸린 타리섬 일대와 건너편 재원도 일대가 모두 민어 밭이었고,민어파시가 형성되었던 유서깊은 해양문화사의 거점이었던 것. ●부레풀까지 요긴하게 사용… 버릴 데 없는 고기 일제시대에 전라도 민어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었고,경기도 민어는 서울 일원에서 소비되었다.타리 민어는 품질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방망이로 민어포를 두들기면 곧잘 바스러지는 다른 포와 달리 이곳 포는 육질이 솜처럼 부풀어올라 최고의 술안주로 대접받았다.무더운 복중에 시원한 맥주 한 컵,그리고 쪽쪽 찢어낸 민어포를 고추장에 찍어 곁들이는 맛이란! 이곳 파시는 한국전쟁 이후 명맥만 유지하다가 1960년대 초반부터는 민어 대신 부세나 병어잡이로 대신하고 있다.그래도 60∼70년대까지는 재원 파시가 열려 끝물의 노랫자락이 포구를 물안개처럼 떠돌았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해변만 남아 노랫가락을 타고 흥청이던 그 옛날 파시의 추억을 전할 뿐이다. 천만다행으로 민어잡이가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다.지금도 이 무렵이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몇 안되는 민어떼가 이곳으로 길을 잡아 민어파시의 유서깊은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벗들과 어울려 민어 한 마리를 장만해 우리의 복달임을 즐겨볼 일이다.그리고,아귀처럼 먹는 일에만 골몰하지 말고 주변도 돌아볼 한 번 일이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놓인 값비싼 고가구가 모두 민어의 부레풀로 만든 것들이다.어느덧 화학접착제에 밀려나고 말았지만 ‘이풀 저풀 다 둘러도 민애풀이 따로 없네.’란 노랫가사를 음미하며,천년을 간다는 민어풀의 생명력을 고마워 할 일이다.그래서 부레조차 버리지 않을 정도로 알뜰하게 추려 먹고,우려 먹었던 민어복달임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곁눈질이라도 해볼 일이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6) 강원도 삼척 ‘해랑당’

    깊고 푸른 바다,동해.백두대간을 옆에 끼고 동해가 누워 있다.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동해를 향하여 향나무로 야무지게 깎은 남자의 성기가 열댓개씩 굴비 엮이듯 새끼줄에 엮여 걸린 게 아닌가.일년 내내 출렁이는 물결과 해풍을 따라 끄떡거리고 있을 남근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삼척의 신남리,일명 섶내미마을에 가면 언제나 남근(男根)을 볼 수 있다.아예 ‘해신당 성민속공원’이란 간판까지 내걸어 본격적으로 ‘남근’을 팔고 있다.그래서 웬만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지는 이미 오래이며,텔레비전에도 너무 자주 소개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그래서 삼척을 찾은 손님들 대부분이 ‘의무적’으로 찾아오곤 하는 곳이 됐다.해양수산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남근공원 옆에 들어선 어촌 민속전시관은 절반쯤을 세계성민속관으로 꾸며놓고 손님을 끌고 있어 이래저래 신남리만큼 ‘남근 볼거리’가 풍성한 마을도 없을 것이다. 얼마전만 해도 이곳은 한적한 어촌이었다.포구마을 산기슭에 ‘큰당’이라 불린 서낭당이 있고,바다로 혀를 내민 곶(串)부리에는 ‘작은당’이라 불리는 해랑당(海娘堂)이 있어 해마다 마을제를 올려왔다. ●처녀 죽은 뒤 풍랑 잇따라 옛날 옛적의 일이다.마을의 젊은 남녀들이 배를 타고서 마을 앞 아름다운 백섬,일명 애바위로 나갔다.섬에서 조개를 줍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었고,젊은이들은 서둘러 귀환했다.그러나 같이 간 처녀 한 명이 미처 배를 타지 못했고,급기야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그로부터 얼마 후,마을에서 하나 둘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바다에만 나가면 풍랑이 이는 이유는 뭡니까?” “ 처녀애를 서낭으로 모시고,남근을 바치도록 하시오.” “남근이라뇨?” “해마다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처녀의 혼령을 달래보시오.” 답답하다 못해 찾아간 무당의 입에서 처녀의 원귀를 달래주라는 공수가 내려졌다.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원귀를 처녀귀신이라 했던가.그로부터 마을의 당은 해랑당이 되었고,예쁜 처녀애를 그림으로 그려서 여서낭으로 봉안했다.해마다 남근을 깎아서 정성을 드리니 그후로는 탈이 없었다. ●남근 깎아 봉안하자 바다 잠잠 남근을 바친 뒤로는 고기도 잘 잡히고 해상 사고도 없다고 한다.해랑당의 남근은 향나무를 적절한 크기로 깎아서 흰색과 붉은 무늬가 조화를 이룬다.주먹에 꽉 찰 정도로 굵고 시원스럽게 깎았기 때문에 자신의 그것이 작은 남자라면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다.남근에는 붉은 황토를 칠해 실물과 비슷한 색깔을 내기도 한다. 이 동네의 웬만한 어른들은 수십년간 남근을 깎아온 터에 자귀 하나만 쥐면 나뭇밥을 일으키며 척척 깎아내는데,수십년간 남근 깎기에 이력이 난 솜씨가 가히 경탄스럽다.남근 깎기에 관한 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이런 전통이 문화관광상품으로까지 확대되어 아예 남근공원이 들어섰고,장승보다 큰 남근들이 전봇대처럼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근년에는 남근을 매단 열쇠고리까지 만들어 팔고 있으니,남근으로 수입을 올리는 유일한 마을이 아닌가 싶다.남근만을 강조하는 남근공원이 여성차별이라는 문제제기도 없지 않아 한동안 뜻있는 여성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니,이래저래 남근공원은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풍요 바라는 염원 담겨있어 그러면 이 해랑당의 남근신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해랑당의 죽은 처녀에게 남근을 바치는 의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인 죽음관에서 비롯된다.귀신 중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이 처녀귀신이다.속설에 처녀귀신은 손각시(孫閣氏),혹은 왕신이라고 하였다.처녀귀신은 원한이 깊어 혼령이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떠돈다고 믿는다.그리하여 ‘망자혼사(亡者婚事)굿’처럼 죽은 처녀 총각을 맺어주는 사후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이러한 의미에서 해랑당의 여서낭은 해마다 여러 개의 남근을 받고 있으니,죽어서나마 남자 복은 많은 셈이다. 해랑당 당신화(堂神化)에는 풍요주술을 희구하는 어민들의 염원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처녀귀신에서 남근을 봉헌함은 당연히 성적인 주술을 의미한다.처녀는 남근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원한을 풀어낸다.단순한 원한풀이를 뛰어넘어 처녀와 남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생산을 가져오며,덕분에 바다는 한결 풍요로워진다. 해랑당의 남근은 더 이상 인간의 남근이 아니며,영적인 힘을 부여받은 주술적인 남근이다.이들 주술은 왜 힘을 지니는가.이미 시대의 고전이 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서 프레이저(Frazer)는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고의 원리를 분석하면서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는다.’는 ‘유사(類似)의 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해랑당의 남근신앙도 ‘유사의 법칙’에 비교적 충실하다.처녀와 남근의 결합은 역으로 어업의 풍요와 다산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고성군 백도선 동굴에 남근 봉헌 동해안 남근에 관한 한 해랑당이 유일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른 곳에도 남근신앙이 존재한다.고성군 문암리 앞바다의 백도는 ‘망개’라 불린다.이곳의 해식동굴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바,나무로 깎은 남근을 곳곳에 꽂아 거룩한 신전으로 꾸몄다.지금은 사람들이 빼가거나 제물로 떨어져나가 몇 개만 남아 있으나,한때는 구멍마다 남근이 가득찼다. 매년 정월에 마을 앞산의 남성황신과 바닷가 여성황신에게 제를 올리는데,해랑당처럼 특별히 남근을 깎아 여성황에게 봉헌한다.남근은 제관 가운데 한 사람이 깎는데,자신이 남근을 깎는다고 말해서는 안되며,남근을 타인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아무리 나무 남근이지만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금기가 지켜진다. 남근은 길이 한 자,지름 5㎝ 정도의 크기.보기에도 막강하다.반드시 오리나무를 이용해 3개를 깎는데,이 남근을 여성황신이 있는 바위구멍에 꽂아 구멍이 한번에 맞으면 풍어가 온다고 믿는다.‘한번에 맞아야’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 데서 속궁합,혹은 성적 결합의 정확성을 엿볼 수 있다. 망개의 남근 봉헌에는 해랑당과 같은 처녀 원귀설화가 없다.여성황과 남성황의 남녀 결합을 제관이 깎은 남근을 바위구멍과 결합시키는 의례를 통해 성취하고 있을 뿐이다.해마다 성적 결합을 올리는 것으로 미뤄 결혼식은 아니고,그렇다고 임시 동거도 아닌,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망개의 해식동굴은 그 자체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기도 한다.폴란드 태생의 말리노프스키(B.K. Malinowski)가 뉴기니 북동쪽 트로브리안드 군도를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에서도 어김없이 동굴이 등장한다.이 경우에는 여성이 동굴에 음탕한 자세로 누워서 종유석의 물방울을 받아 후손을 잉태한다.망개의 해식동굴도 단순하게 동굴을 선택하여 구멍에 남근을 봉헌한다는 것 이상의 세계문화사적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다. ●남근봉헌, 해양민족에 넓게 퍼져있는 문화 남근봉헌(phallicism)은 비단 우리만 가진 것이 아니다.이웃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폴리네시아 같은 해양민족 사이에 드넓게 퍼져 있다.한반도에는 육지부에 남근신앙이 대단히 많지만 대개 아들낳기를 희구하는 기자신앙에 속해 보수적인 편이다.남근을 깎는 제의 연출행위가 거의 없으며,남근석을 세워 오로지 아들낳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에 해랑당이나 망개의 남근 봉헌은 제의 자체로도 드라마틱하다.해마다 남근을 깎는 행위 자체가 극적이다.남근 깎는 기술력의 전승이 오랜 세월을 이어져왔으니 문화전승의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남녀 결합의 장엄(莊嚴)을 통하여 바다에는 풍요가 찾아들고 해상 안전은 물론 고기잡이까지 만사형통이다. 동해 바다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사람들은 맞서 싸우기보다 차라리 남근 봉헌을 통해 신들을 달래기로 작정한 셈이다.여신들 입장에서야 험한 파도로 해코지를 일삼기보다는 해마다 남근을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을 편하게 살기로 작심했음직하다.험난한 자연과 인간의 대타협점이 신들의 성적 결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니,동해의 해풍을 받으며 끄떡거리는 남근 속에 이와 같은 오묘한 논리가 잠복되어 있는 것이다. 남근공원을 찾아가서 오로지 ‘야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거친 동해에 격이 맞게 내걸린 남근 봉헌의 속깊은 뜻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올 일이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6) 강원도 삼척 ‘해랑당’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6) 강원도 삼척 ‘해랑당’

    깊고 푸른 바다,동해.백두대간을 옆에 끼고 동해가 누워 있다.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동해를 향하여 향나무로 야무지게 깎은 남자의 성기가 열댓개씩 굴비 엮이듯 새끼줄에 엮여 걸린 게 아닌가.일년 내내 출렁이는 물결과 해풍을 따라 끄떡거리고 있을 남근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삼척의 신남리,일명 섶내미마을에 가면 언제나 남근(男根)을 볼 수 있다.아예 ‘해신당 성민속공원’이란 간판까지 내걸어 본격적으로 ‘남근’을 팔고 있다.그래서 웬만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지는 이미 오래이며,텔레비전에도 너무 자주 소개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그래서 삼척을 찾은 손님들 대부분이 ‘의무적’으로 찾아오곤 하는 곳이 됐다.해양수산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남근공원 옆에 들어선 어촌 민속전시관은 절반쯤을 세계성민속관으로 꾸며놓고 손님을 끌고 있어 이래저래 신남리만큼 ‘남근 볼거리’가 풍성한 마을도 없을 것이다. 얼마전만 해도 이곳은 한적한 어촌이었다.포구마을 산기슭에 ‘큰당’이라 불린 서낭당이 있고,바다로 혀를 내민 곶(串)부리에는 ‘작은당’이라 불리는 해랑당(海娘堂)이 있어 해마다 마을제를 올려왔다. ●처녀 죽은 뒤 풍랑 잇따라 옛날 옛적의 일이다.마을의 젊은 남녀들이 배를 타고서 마을 앞 아름다운 백섬,일명 애바위로 나갔다.섬에서 조개를 줍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었고,젊은이들은 서둘러 귀환했다.그러나 같이 간 처녀 한 명이 미처 배를 타지 못했고,급기야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그로부터 얼마 후,마을에서 하나 둘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바다에만 나가면 풍랑이 이는 이유는 뭡니까?” “ 처녀애를 서낭으로 모시고,남근을 바치도록 하시오.” “남근이라뇨?” “해마다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처녀의 혼령을 달래보시오.” 답답하다 못해 찾아간 무당의 입에서 처녀의 원귀를 달래주라는 공수가 내려졌다.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원귀를 처녀귀신이라 했던가.그로부터 마을의 당은 해랑당이 되었고,예쁜 처녀애를 그림으로 그려서 여서낭으로 봉안했다.해마다 남근을 깎아서 정성을 드리니 그후로는 탈이 없었다. ●남근 깎아 봉안하자 바다 잠잠 남근을 바친 뒤로는 고기도 잘 잡히고 해상 사고도 없다고 한다.해랑당의 남근은 향나무를 적절한 크기로 깎아서 흰색과 붉은 무늬가 조화를 이룬다.주먹에 꽉 찰 정도로 굵고 시원스럽게 깎았기 때문에 자신의 그것이 작은 남자라면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다.남근에는 붉은 황토를 칠해 실물과 비슷한 색깔을 내기도 한다. 이 동네의 웬만한 어른들은 수십년간 남근을 깎아온 터에 자귀 하나만 쥐면 나뭇밥을 일으키며 척척 깎아내는데,수십년간 남근 깎기에 이력이 난 솜씨가 가히 경탄스럽다.남근 깎기에 관한 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이런 전통이 문화관광상품으로까지 확대되어 아예 남근공원이 들어섰고,장승보다 큰 남근들이 전봇대처럼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근년에는 남근을 매단 열쇠고리까지 만들어 팔고 있으니,남근으로 수입을 올리는 유일한 마을이 아닌가 싶다.남근만을 강조하는 남근공원이 여성차별이라는 문제제기도 없지 않아 한동안 뜻있는 여성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니,이래저래 남근공원은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풍요 바라는 염원 담겨있어 그러면 이 해랑당의 남근신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해랑당의 죽은 처녀에게 남근을 바치는 의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인 죽음관에서 비롯된다.귀신 중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이 처녀귀신이다.속설에 처녀귀신은 손각시(孫閣氏),혹은 왕신이라고 하였다.처녀귀신은 원한이 깊어 혼령이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떠돈다고 믿는다.그리하여 ‘망자혼사(亡者婚事)굿’처럼 죽은 처녀 총각을 맺어주는 사후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이러한 의미에서 해랑당의 여서낭은 해마다 여러 개의 남근을 받고 있으니,죽어서나마 남자 복은 많은 셈이다. 해랑당 당신화(堂神化)에는 풍요주술을 희구하는 어민들의 염원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처녀귀신에서 남근을 봉헌함은 당연히 성적인 주술을 의미한다.처녀는 남근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원한을 풀어낸다.단순한 원한풀이를 뛰어넘어 처녀와 남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생산을 가져오며,덕분에 바다는 한결 풍요로워진다. 해랑당의 남근은 더 이상 인간의 남근이 아니며,영적인 힘을 부여받은 주술적인 남근이다.이들 주술은 왜 힘을 지니는가.이미 시대의 고전이 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서 프레이저(Frazer)는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고의 원리를 분석하면서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는다.’는 ‘유사(類似)의 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해랑당의 남근신앙도 ‘유사의 법칙’에 비교적 충실하다.처녀와 남근의 결합은 역으로 어업의 풍요와 다산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고성군 백도선 동굴에 남근 봉헌 동해안 남근에 관한 한 해랑당이 유일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른 곳에도 남근신앙이 존재한다.고성군 문암리 앞바다의 백도는 ‘망개’라 불린다.이곳의 해식동굴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바,나무로 깎은 남근을 곳곳에 꽂아 거룩한 신전으로 꾸몄다.지금은 사람들이 빼가거나 제물로 떨어져나가 몇 개만 남아 있으나,한때는 구멍마다 남근이 가득찼다. 매년 정월에 마을 앞산의 남성황신과 바닷가 여성황신에게 제를 올리는데,해랑당처럼 특별히 남근을 깎아 여성황에게 봉헌한다.남근은 제관 가운데 한 사람이 깎는데,자신이 남근을 깎는다고 말해서는 안되며,남근을 타인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아무리 나무 남근이지만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금기가 지켜진다. 남근은 길이 한 자,지름 5㎝ 정도의 크기.보기에도 막강하다.반드시 오리나무를 이용해 3개를 깎는데,이 남근을 여성황신이 있는 바위구멍에 꽂아 구멍이 한번에 맞으면 풍어가 온다고 믿는다.‘한번에 맞아야’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 데서 속궁합,혹은 성적 결합의 정확성을 엿볼 수 있다. 망개의 남근 봉헌에는 해랑당과 같은 처녀 원귀설화가 없다.여성황과 남성황의 남녀 결합을 제관이 깎은 남근을 바위구멍과 결합시키는 의례를 통해 성취하고 있을 뿐이다.해마다 성적 결합을 올리는 것으로 미뤄 결혼식은 아니고,그렇다고 임시 동거도 아닌,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망개의 해식동굴은 그 자체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기도 한다.폴란드 태생의 말리노프스키(B.K. Malinowski)가 뉴기니 북동쪽 트로브리안드 군도를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에서도 어김없이 동굴이 등장한다.이 경우에는 여성이 동굴에 음탕한 자세로 누워서 종유석의 물방울을 받아 후손을 잉태한다.망개의 해식동굴도 단순하게 동굴을 선택하여 구멍에 남근을 봉헌한다는 것 이상의 세계문화사적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다. ●남근봉헌, 해양민족에 넓게 퍼져있는 문화 남근봉헌(phallicism)은 비단 우리만 가진 것이 아니다.이웃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폴리네시아 같은 해양민족 사이에 드넓게 퍼져 있다.한반도에는 육지부에 남근신앙이 대단히 많지만 대개 아들낳기를 희구하는 기자신앙에 속해 보수적인 편이다.남근을 깎는 제의 연출행위가 거의 없으며,남근석을 세워 오로지 아들낳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에 해랑당이나 망개의 남근 봉헌은 제의 자체로도 드라마틱하다.해마다 남근을 깎는 행위 자체가 극적이다.남근 깎는 기술력의 전승이 오랜 세월을 이어져왔으니 문화전승의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남녀 결합의 장엄(莊嚴)을 통하여 바다에는 풍요가 찾아들고 해상 안전은 물론 고기잡이까지 만사형통이다. 동해 바다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사람들은 맞서 싸우기보다 차라리 남근 봉헌을 통해 신들을 달래기로 작정한 셈이다.여신들 입장에서야 험한 파도로 해코지를 일삼기보다는 해마다 남근을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을 편하게 살기로 작심했음직하다.험난한 자연과 인간의 대타협점이 신들의 성적 결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니,동해의 해풍을 받으며 끄떡거리는 남근 속에 이와 같은 오묘한 논리가 잠복되어 있는 것이다. 남근공원을 찾아가서 오로지 ‘야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거친 동해에 격이 맞게 내걸린 남근 봉헌의 속깊은 뜻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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