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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남성] 아내 월급봉투 보면 “음매~ 기죽어”

    [여성&남성] 아내 월급봉투 보면 “음매~ 기죽어”

    “남들은 부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의 두 배나 되는 아내의 월급명세서를 보는 게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죠.” 작은 건설회사에서 5년째 근무하는 회사원 서진모(35)씨의 월급은 186만원. 항공사에 다니며 400만원 정도를 벌어오는 아내와는 200만원 이상 차이 난다. 서씨는 월급으로 장기적금 하나를 붓고 남는 돈은 용돈으로 쓴다. 생활비나 주택부금, 집안 대소사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아내의 봉급에서 나온다. 서씨는 “주위에선 돈 잘 버는 부인을 둬 좋겠다고 말하지만 경제의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왠지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도 안다. 이런 생각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고에서 나온 것임을. 돈 잘 버는 아내를 둔 ‘복 받은 남자’들이 고민하고 있다. 남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보지만 정작 본인들은 가장으로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호소한다. 아내가 의류 도매업을 한다는 조모(39)씨는 “직장생활을 하는 나보다 아내가 훨씬 많이 번다는 생각에 묘한 자격지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아내의 수입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도 아내의 말만 듣는 것 같고, 다른 집들과 비교할 때 가장의 목소리도 자꾸 잦아드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최근 부부싸움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 실제 이런 문제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클리닉비 김정수(40) 정신과 전문의는 “부인의 경제적 우월함이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면서 “이런 남성들은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사소한 결정이라도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을 때 쉽게 좌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남성 스스로 돈 잘버는 여성 선호 이런 가운데 최근 젊은 남성들은 배우자를 찾는 기준으로 ‘직업’과 ‘경제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남녀 2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중복응답)에 따르면 남성들의 이상적인 배우자 요건으로 ‘직업과 경제력’(39.4%)이 3위를 차지했다.‘성격’(91.3%)과 ‘외모’(61.0%) 다음으로 돈버는 능력을 따진다는 얘기다.2002년과 2003년에 했던 같은 조사와 비교할 때 한 계단 상승했다. 당시 조사에서는 성격-외모-가정환경에 이어 4위였다. 이들이 원하는 여성의 연봉 수준은 평균 2350만원이었다. 듀오 홍보팀 오미정 대리는 “최근 경기불황 탓인지 고소득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비교적 왕성한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남성들 사이에 배우자감으로 ‘돈 많이 버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UCLA대 사회학과 메건 스위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백인 여성의 경우 연 소득이 1만달러 올라갈 때마다 그 해 결혼할 확률이 6.8%가 늘어났다. 흑인 여성들은 소득 1만달러당 결혼할 가능성이 8.2%씩 증가했다. 미국의 결혼정보업체 ‘매치닷컴’(Match.com)은 배우자 조건으로 ‘얼마 이상 벌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남성 비율이 2001년 37%에서 2004년에는 51%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또 데이트 알선업체인 ‘트루닷컴’(True.com)에 따르면 남성의 35%가 자기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여성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보다 소득이 적은 여성을 원한 남성은 20% 미만이었다. ●변화의 시기 과도기적 현상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2004년 배우자가 있는 가구 중 기혼여성의 평균 취업비율은 47.3%로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40.2%에 비해 7% 이상 상승했다.2004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맞벌이 부부 607쌍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남편의 수입은 평균 197만원인 반면 부인의 수입은 이보다 60만원 정도 적은 135만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체 맞벌이 가정 중 부인의 수입이 남편보다 많은 경우도 5분의1인 20%를 차지했다. 여성들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힘들고 노동력이 평가 절하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주부들의 대단한 선전이 아닐 수 없다. 여성단체들은 돈 잘 버는 부인을 둔 남편들의 스트레스를 ‘강한 남자 콤플렉스’라고 규정한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남성이 항상 우월하고 높은 경제력과 지위를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라는 얘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35) 정책부장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와 구조조정 등으로 이 사회가 점차 남성만의 독점적이고 우월한 경제권이 유지되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남성이 스스로 옥죄어 온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 그동안 혼자 지던 짐을 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부의 문제는 서로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이젠 남편들이 돈 잘 버는 부인을 기꺼이 받아 들일 때”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길섶에서] 벌 초/심재억 문화부 차장

    벼린 낫 몇자루 챙겨 지고, 송진내 자욱한 산길로 살 한바탕쯤 걸어 선산에 듭니다. 소싯적, 아버지 따라 벌초 나선 날. 낫질이야 손에 익어 어렵지 않지만 복숭아털 같은 가을볕 아래 증조, 고조 묘까지 죄다 벌초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한나절을 넘긴 낫질에 손에는 쥐가 나고, 낫날까지 무뎌져 벌초도 곱게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 쉬어가잔 듯 한마디 하십니다.“벌초도 정성인데, 네 자리는 꼭 처삼촌 묏등 벌초한 듯하구나.” 뜨악한 마음에 돌아보니 풀벤 자리가 마치 까치집처럼 들쑥날쑥합니다.“그러고도 복을 받겠느냐.”는 아버지 핀잔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되짚어 풀벤 자리를 다시 손보고서야 벌초를 마칩니다. 요새 벌초 대행이 유행이랍니다. 아무리 공을 들여봐야 죽은 조상이 흔한 복권 하나 당첨시켜주지 못한다는 걸 영악한 현대인들이 모를 리 없고, 그러니 애터지게 먼 길 찾아 나서 벌초를 할 리가 없지요. 문득 ‘조상은 정성으로 모신다.’는 아버지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 옵니다. 올해도 제 손으로 아버지 묘소를 벌초하지 못했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6)미륵부처의 환생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6)미륵부처의 환생과 ‘정감록’

    영조 19년(1743) 은진미륵불로 유명한 충남 은진의 관촉사에 세워진 사적비에 이런 구절이 있다.“은진미륵불은 국가가 태평하면 온몸에 광채가 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어린다. 그러나 국가의 운수가 흉하거나 난리가 일어나면 온몸에 땀이 흐르고 손에 든 꽃도 빛을 잃는다.” (‘조선금석문총람’ 하) 민중은 은진미륵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라의 운명을 점친다는 것이다. 도대체 미륵불이 누구이기에 한국 민중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것인가. 미륵신앙에 따르면, 장차 미륵불이 지상에 강림해 수많은 사람을 일시에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런 신앙은 석가모니부처 당대에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인데, 서기 100년쯤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서기 3세기에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미륵신앙은 북위 때 중국에 전파되어, 당나라 이후 보편 신앙이 됐다. 한국에는 불교가 처음 수용되던 4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많은 신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중은 미륵불을 통해 손쉽게 성불할 수 있고 현세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정감록’ 역시 지상낙원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미륵불과 ‘정감록’ 사이엔 흥미로운 접점이 있다. 역사상 스스로를 미륵부처의 환생이라고 주장한 이들은 늘 예언을 빙자했고, 직접 예언서를 조작하기도 했다. 환생 미륵불은 ‘정감록’에 예고된 진인의 원형이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런 견해는 ‘삼국사기’를 비롯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기록이 뒷받침해 준다.20세기에 창립된 여러 신종교의 교리를 조사해 봐도 결과는 역시 동일하다. 신종교 단체들은 자기네 교조를 미륵불로 간주한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미륵불은 바로 ‘정감록’이 말한 진인인 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의 교조는 자기 스스로를 천자 미륵이라고 했다. 미륵불인 동시에 세상을 직접 다스릴 최고의 통치권자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강증산은 제자들에게 “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대순전경(大巡經典)’ 초판 13장)고 직접 설파하기도 했다. ●고려후기 이금이 약속한 이상세계 신종교는 19세기 후반부터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한 것으로 다들 알고 있다. 엄밀한 의미로는 그렇지 않았다. 미륵신앙에서 갈라져 나온 신종교는 일찌감치 고려 후기에도 존재했다. 그때의 신종교도 예언과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고려 후기 신종교의 미륵불은 뒷날 ‘정감록’의 진인으로 변형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고려 우왕 때였다. 경상도 고성 출신으로 이금(伊金)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를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이금은 몇 가지 새로운 주장을 폈다. “무릇 귀신에게 빌거나 제사하는 사람, 말고기나 소고기를 먹는 사람, 돈과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금의 종교적 입장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민간신앙에 대한 선전포고다. 당시 불교는 토착신앙에 관대했고, 그 일부는 불교 신앙에 흡수됐다. 산신이나 칠성을 모시는 민간신앙이 사찰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금은 이런 민간신앙을 근원적으로 배격했다. 둘째, 육식을 철저히 금한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민간신앙의 제물로 고기가 바쳐진 것은 물론이고, 밀교의 승려들도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금은 고대 중국의 도교에서 기원한 채식주의를 강화시키려고 하였다. 셋째, 사회적인 구제활동을 신앙생활의 엄격한 규범으로 정했다. 이금의 신종교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강조했고, 그런 점에서 개혁적인 성격이 뚜렷했다. 빈농을 비롯한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기에 족한 신종교였다. “만일 내가 하려고만 하면 풀에는 파란 꽃이 피고, 나무에도 곡식이 열릴 것이다.” 이금이 말한 파란 꽃은 상상의 꽃이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전능한 미륵불이기 때문에 자연계의 법칙을 마음대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특히 가난한 민중을 배불리기 위해, 그는 “한 번 씨를 뿌려 두 번을 거둘 수도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금이 약속한 지상 낙원은 다분히 공상적이지만 ‘미륵하생경’에 묘사된 용화세계를 방불케 했다. 알다시피 미륵신앙은 상생(上生)신앙과 하생(下生)신앙으로 구분되는데, 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생전에 공덕을 쌓아, 죽은 뒤 미륵보살이 주재하는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상생신앙이다. 그에 비해 하생신앙은 현세에서 법을 깨치고 지상낙원에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장차 석가모니불이 입적한 지 56억 7000만년이 지난 다음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세 번의 법회를 열게 되는데 그때 성불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고려 후기의 신종교 지도자 이금이 약속한 이상세계는 20세기 초, 강증산이 말한 “조화선경”과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정감록’의 진인이 실현할 지상낙원이기도 하다. 강증산은 조화선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백 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르고”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천지개벽경’) 실은 강증산의 생각은 ‘미륵하생경’을 표현만 달리해 옮겨놓은 것이다. 이금은 한 발 더 나아가 왜구의 침략으로 지쳐 있던 민중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했다.“나는 산과 개울의 신을 동원해 왜적을 포획할 수도 있다.” 이 약속은 그가 사회정의와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중시했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정감록’에 진인이 나와 일본을 복속시킨다고 예언한 것과 흡사하다. 이금은 자기가 창건한 신종교를 효과적으로 전파시키려고 ‘폭력적인’ 경고도 남겼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계율을 어기면 목숨을 잃게 된다 했다. 뿐만 아니라,“만일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오는 삼월에 해와 달이 모두 빛을 잃고 컴컴해지리라.”고 했다. 이금의 가르침을 무시할 경우 세상은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이금의 신앙동지와 적들 이금의 예언은 섬뜩했고 효과도 컸다. 말세에 대한 ‘정감록’의 경고로 인해 수십만명의 정감록 신도가 탄생했듯, 수백·수천명이 이금의 가르침을 따랐다. 어떤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 말이나 소가 죽더라도 감히 고기를 먹을 생각조차 못했다. 잘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부자들 중에도 이금의 신도가 생겨,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쌀과 베, 금과 은을 이금이 이끄는 신종교에 바쳤고, 활동자금이 풍부해진 이금의 신종교는 삽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금의 신도 가운데서 이채를 띤 것은 남녀 무당들이었다. 그들은 유난히 이금을 공경하고 따랐다. 그동안 자기들이 섬겨온 성황당이며 사묘(祀廟) 등 민간신앙의 성전을 일시에 허물어 버리고, 이금을 살아 있는 미륵불처럼 정성껏 모셨다. 현세의 복과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이금에게 몰려 왔다. 이 신종교의 신도는 대부분 가난한 민중들이었지만, 부자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고급관리들 중에도 이금의 신도가 있었다. 정확한 수를 알 수는 없지만, 수천명이 이금의 제자가 됐다.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열광적으로 전도에 열심이었다. 사회 정의를 선포한 신종교라서 전파속도가 매우 빨랐고, 급속히 사회세력으로 대두됐다. 이금의 제자들은 전국의 여러 곳을 누볐으며,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고을 관아에서 융숭한 대접을 베풀어 주었다. 심지어 어떤 고을에서는 수령이 직접 마중을 나와 이금과 고위간부들을 관사로 초청할 정도였다. 물론 이금 일파의 등장을 경계하는 이들도 많았다. 고려 왕실과 일부 귀족들은 이금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사교(邪敎)로 선포해 탄압을 전개할 경우, 도리어 이금 쪽에서 집단적인 무력저항을 펼 가능성이 없지 않아 적극적으로 손을 쓰지는 못했다. 그만큼 이금의 신종교는 성장해 있었다. 이때 청주목사 권화는 은밀한 꾀를 써서 이금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청주는 큰 고을로 중부와 남부지방을 잇는 간선도로상에 위치한 관계로, 이금 일행이 가끔 지나가는 곳이었다. 권화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이금 일행이 다시 청주에 들르기를 기다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금은 고위 간부들을 대동해 청주에 들렀다. 청주목사 권화는 이금 일행에게 향응을 제공할 뜻을 보여 그들을 관아로 유인한 다음, 재빨리 체포해 버렸다. 그는 이 사실을 황급히 조정에 알렸다. 개경에선 매우 기뻐하며 각도에 공문을 보내 이금의 신종교에 가담한 인사들을 몽땅 잡아들여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그 바람에 고위관료 양원격 같은 이도 결국 목숨을 잃게 됐다. 과연 얼마나 많은 수의 신도들이 이때의 박해로 희생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륵불을 자처했던 이금의 신종교가 표면상으로는 완전히 박멸됐다는 점이다.(‘고려사’ 권 107) 이금에 대한 박해는 19세기 말에 있었던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을 연상시킨다. 비록 한때였지만 이금의 신종교가 맹위를 떨친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지도자로서 이금이 가졌던 카리스마, 부정부패한 고려의 사회 현실, 그리고 내우외환으로 민생이 피폐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당시 사회에는 미륵신앙과 각종 예언이 유행했다고 본다. 미륵신앙과 관련해 특히 향나무를 해변에 묻는 이른바 매향의 풍속이 대단했다. 장차 미륵부처가 세상에 출현하면 그에게 향을 바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매향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행사 후 그 사실을 바위에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향비를 남겼던 것이다. 강원도 고성의 삼일포를 비롯해 경상남도 사천, 전라남도 영암, 목포 및 충청남도 서산 등 전국의 여러 해안 지방에서는 매향비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삼일포매향비(三日浦埋香碑)다. 그 비문에 따르면, 강원도 각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 10여명이 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밖에 남녀노소 수천명이 동해안 9군데에 모두 1500다발이나 되는 향나무를 땅속 깊이 묻었다고 했다. 위에서 살핀 이금의 신종교는 아마 이런 매향집단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고 하겠다. 매향비가 만들어진 지방마다 일종의 신종교 집단이 존재했을 법하다. 다만 그들 집단의 활동은 미륵신앙이라는 종교행위에 그쳤을 뿐, 사회 또는 정치적 운동을 자제했기 때문에 역사기록에는 언급되지 않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에 비해 이금이 이끈 집단은 예언을 내세워 사회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에 조정의 탄압에 직면했던 것이다.‘정감록’을 믿은 신앙집단은 무수히 많았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공식적인 역사기록으로 남은 경우는 일부에 국한됐던 것과 마찬가지다. ●궁예도 미륵신앙 계통의 신종교 지도자 신종교란 관점에서 고대 한국의 역사를 좀더 바라보자. 미륵불을 자처한 교조가 국가를 직접 통치한 경우도 있었다. 태봉의 궁예 왕이다. 그는 신라 효공왕 5년(901)께 미륵불을 자칭했다. 엄청난 칭호에 걸맞게 왕은 외관을 특별한 모양으로 꾸몄다. 머리에는 금빛 모자를 쓰고 몸에는 승복을 걸쳤다. 왕은 궁성 밖으로 외출할 때마다 흰 말을 탔으며,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비단으로 말의 갈기와 꼬리를 장식하게 했다. 또한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들에게 일산을 받쳐 들게 하고, 향과 꽃을 가지고 앞에서 왕의 행렬을 인도하게 하였다. 그밖에 비구 200여명에게 명하여 부처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왕의 뒤를 따르게 하였다. 왕의 화려한 행렬은 ‘미륵하생경’에 예고된 용화세계가 이미 지상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상징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궁예 왕은 경문(經文) 20여권을 지었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신종교의 교리서이자 예언서였던 것 같은데, 불교의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대목이 매우 많았다. 이를 참다못해 석총(釋聰)이란 승려는 “이것은 모두 이단의 주장이며 괴이한 말이므로 가르쳐선 안 된다.”라고 반발하였다. 분노한 궁예 왕은 석총을 철퇴로 때려 죽였다고 한다.(‘삼국사기’ 권 50) 결국 미륵불의 화신을 자처한 궁예 왕은 실정을 거듭한 결과, 부하인 왕건 장군에게 밀려났다. 이와 더불어 그가 창립한 신종 미륵불교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한국의 역사에는 수많은 자칭 미륵불이 출현했고 그때마다 예언서가 큰 역할을 차지했다. ●조선후기의 자칭 미륵불 여환과 예언서 조선 후기에도 자칭 미륵불의 전통은 이어졌다. 숙종 14년(1688) 8월 승려 여환(呂還)이 관련된 변란사건이 주목된다. 그의 주된 활동무대는 경기도와 황해도의 몇몇 고을이었다. 여환은 양주목 청송면에 본거지를 두고 여러 곳을 오가며 신도를 포섭했다. 자기 자신을 “신령”(神靈)이라 일컫기도 하고,“수중 노인”(水中老人) 또는 “미륵 삼존”(彌勒三尊)이라고도 했다.“천불산 선인(仙人)”이라고도 하였다. 다양한 칭호에서 보듯, 여환의 신종교는 불교 특히 미륵불교에 기원을 두고 도교적인 측면도 가졌다. 본래 강원도 통천의 승려였던 여환은 “석가모니의 운수가 끝났으니 이제 미륵이 세상을 주관한다.”며 미륵세상을 선포했다. 그는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부린다고 했는데, 지관 황회, 평민 정원태 등을 동원해 많은 신도를 끌어 모았다. 여환은 “일찍이 칠성님이 강원도 김화(金化) 천불산(千佛山)에 강림하여 내게 3가지 국(麴·누룩)을 주었는데 국(麴)은 국(國)과 음(音)이 서로 같으니 짐작해 보라.”고 했다. 자기가 바로 새 왕조의 임금,‘정감록’에 기록된 진인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다만 그때는 아직 ‘정감록’이 출현하기 전이었으므로, 여환은 ‘진인’의 선구로 간주될 만하다. 자칭 미륵불인 여환은 직접 예언서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구절도 포함돼 있었다.“7월에 큰비가 퍼붓듯 쏟아지리라. 그러면 큰 산도 무너지고 서울도 재난을 입어 쑥대밭이 되리라. 그러면 그해 8월이나 10월에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 가라. 대궐 한가운데 보좌를 차지하리라.” 현재 남아 있는 ‘정감록’에 이같은 구절은 없다. 그러나 유사한 구절은 얼마든지 있다. 따지고 보면, 여환이 지은 예언서는 ‘정감록’의 가까운 조상이었다. 결정적인 해 무진년(1688) 7월15일 여환은 참모들을 비롯해 양주와 영평의 광신자들을 거느리고 서울에 잠입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큰비는 오지 않았고, 쿠데타는 불발했다. 여환을 비롯한 신도 50여명이 체포됐다. 당국의 엄한 취조를 받은 끝에 그 중 11명이 사형을 받았다.(실록·숙종 14년 8월1일 신축) 그 사건이 진압된 후에도 자칭 미륵불은 계속 등장했다. 민중과 미륵불 그리고 예언서는 여전히 불가분의 관계였다.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도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동불암의 미륵불 배꼽에서 비장의 예언서가 나왔다고 한다. 고려 때의 미륵불이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의 선구였다면, 뒷날에는 진인의 별명이 되다시피 했다. 미륵불은 새 세상을 약속하는 영원한 상징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복지부 ‘파격인사’

    복지부 ‘파격인사’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이 14일 1급 간부 명예퇴직에 따른 국·과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쯤 전면적인 팀제를 도입하면서 단행될 승진 및 전보인사에서는 이번보다 더 파격적인 발탁인사가 뒤따를 것으로 점쳐진다. 복지부 대외창구 역할을 하는 정책홍보관리관에 행정고시 30회 출신의 최희주 보험정책과장이 임명됐다.18개 중앙부처 최연소(40세) 정책홍보관리관이다. 빈부격차 등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주무부서인 사회복지정책실장(1급) 직무대리에는 이상석(행시 23회) 노동부 노동보험심의관이 기용됐다. 이 직무대리는 다음달 승진 인사때 1급으로 승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정책 분야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 보건정책국장으로는 노연홍(행시 27회) 정책홍보관리관이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00년 청와대 행정관 파견 당시 의약분쟁 사태를 해결한 경험이 있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평가다. 노동부 노동보험심의관(부처간 국장급 교류 직위)에는 장옥주(행시 25회) 장애인복지심의관이, 장애인복지심의관에는 청와대 ‘고령화 및 미래사회원회’에 파견됐다가 대기 중인 고경석(행시 24회) 부이사관이 기용됐다. 이와 함께 신설된 저출산고령화정책본부 정책총괄관에는 손건익(행시 26회) 감사관이, 감사관에는 질병관리본부 진행근 질병조사감시부장이, 질병조사감시부장에는 박찬형(행시 27) 연금정책과장이, 연금정책과장에는 조기원(행시 31회) 과장이 각각 자리를 옮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전보 인사는 종전의 연공서열식 인사의 틀을 깨는 충격적인 인사”라면서 “다음달 팀제 도입 때는 더욱 파격적인 인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관련인사 25면
  • [옴부즈맨 칼럼] 저출산문제를 보는 언론의 ‘눈’/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 4학년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등의 질문을 부쩍 많이 받는다. 반면 “결혼 안 할 건데요.”라고 말하는 내 용기는 부쩍 줄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부르짖는 순간, 국가 경제성장의 둔화를 불러오는 저출산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사회적 비난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젊은 여성으로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저출산 시대를 진단하는 기사를 읽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저출산 문제를 “한국 여성의 출산기피 풍조가 심화되었다.”고 단정지어 말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가족보다 일을 택하는 이기적인 젊은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실업이 50만명에 달하는 이 시대에 졸업 후 바로 취업하기도 힘들지만, 취직이 된다 해도 맞벌이를 얼마나 해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또 설령 정부의 8·31 부동산대책이 성공해 집값이 잡혀본들 아이 사교육비를 대려면 등골 휘는 것은 예약된 일이다. 마침 아이가 예체능에 두각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데다 아이 키우는 일이 여전히 엄마의 몫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이유는, 사실 신문을 조금만 살펴보면 다 나와 있다.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국가적인 재앙”이라고 저출산 고령사회의 심각성을 강조했던(8월26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신문은 출산·육아복지 등 ‘대책’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여러 차례 다루었다.“출산 기피풍조 심화” “출산 파업” 등의 표현으로 젊은 여성에게 이유 없는 죄책감을 안겨준 다른 신문에 비하면 분명 반가운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소개했는가 하면(8월27일자 8면 ‘전남 지자체 출산장려 팔 걷었다’) 여군·여경의 출산과 육아고민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내기도 했다(8월31일자 25면 “제복입은 여성들 ‘임신이 겁나요’”).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는, 호들갑스러울 정도의 강조에 비해 정작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거의 홀로 지다시피 하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특수 직종에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된 이 기사는 더욱 돋보였다. 같은 지면 인터뷰에서 여성장군 1호 양승숙 예비역 준장이 “여군의 임신과 출산, 육아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것으로 임신과 육아기간 동안 업무를 대신할 충분한 인력의 확충”을 꼽은 것은 정책 당국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여성이 자기 사정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정하면서도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규직 파트타임제’는 아일랜드의 여성 고용률을 높인 정책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복지가 저출산 문제의 유일한 해답일까.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양극화와 기업지배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이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며 저출산은 “이런 사회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여성들의 사회적 저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확한 분석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평생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리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이런 인생을 살도록 예정되어 있는 아이를 세상에 또 하나 내놓고 싶겠는가. 젊은 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지 미흡도 저출산문제의 한 원인이다. 하지만 복지 대책만으로 사상최저·세계최저 수준이라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저출산에 대한 우려나 탓을 하기에 앞서 젊은 부부, 젊은 여성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언론의 노력이 아쉽다. 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 4학년
  • [일요영화]

    [일요영화]

    ●사소한 이야기들(KBS1TV 오후11시30분) 광고감독 출신인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소린의 2003년작.‘광고’ 하면 연상되는 화려한 이미지는 없다. 외려 제목 그대로 보통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담고 있다. 출연진 모두 전문 배우가 아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세사람의 여행을 다룬 로드무비다. 첫번째 인물은 늙고 병든 돈 후스토. 그는 야채상점을 아들에게 맡기고 침침한 눈 때문에 히치하이킹으로 길을 떠난다. 그렇게라도 떠나는 이유는 사랑하는 개 ‘배드페이스’를 찾기 위해서다. 두번째 인물은 외판원 로베르토. 짝사랑하는 과부에게 잘 보이려고 그녀 아이의 생일선물로 케이크를 준비한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른다. 고심 끝에 케이크 장식을 축구에서 거북이로 바꾸는데…. 세번째 인물은 마리아. 그녀의 목표는 TV게임쇼의 상품으로 내걸린 만능믹서다. 예선전 등에 참가하기 위해 TV녹화장이 있는 도시로 아이를 안고 출발하는데….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아르헨티나 남부의 광대한 초원지역 파타고니아가 배경인데다 16㎜ 카메라를 스테디캠에 붙여 촬영한 덕분에 넓고 시원한 들판이 화면에 꽉 들어찬다. 2003년도 아르헨티나 영화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영화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고,2004년에는 스페인에서 최우수 스페인어 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독립영화제 때 첫선을 보였다.86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올리브나무 사이로(SBS 밤1시5분)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져버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94년작. 그의 영화답게 스토리는 지극히 간결하다. 영화 촬영팀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호세인에게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 감독이 남자배우를 교체하는데 호세인을 지명한 것. 남자배우의 상대역은 호세인이 남몰래 마음에 두고 있던 테헤레. 촬영기간 내내 구애에 청혼을 거듭하지만 테헤레는 여전히 차갑다. 그녀 식구들도 가난한 호세인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함께 지진이 잦은 이란 북부 코케르 지역을 배경으로 한 3부작이다. 이 영화에서 촬영 중인 것으로 설정된 영화가 바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고, 촬영 현장을 기웃거리는 이웃들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또 이들 영화는 ‘지그재그 3부작’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지그재그 길을 걸어가고, 뛰어가는 이들을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감독의 탁월함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103분.
  •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 첫 청문회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 첫 청문회

    국회는 8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인사청문회를 열어 이용훈 후보자의 직무수행 능력과 자질을 검증했다. 열린우리당은 이 후보자의 사법개혁 의지를 검증하는 데 질의시간을 할애했고, 한나라당은 ‘코드인사’를 거론하며 추궁했지만, 그는 정공법으로 도리어 청문위원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여야 의원의 매서운 추궁 한나라당은 이 후보자가 지난해 탄핵심판 때 노무현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활약했던 점을 부각시켰다. 주성영 의원은 “행정부 수장인 노 대통령의 변호인인 후보자는 사법부 수장으로서 견제능력이 없다.”고 꼬집었고, 주호영 의원은 “벌써부터 새 대법원장이 ‘코드인사’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풍문이 들리는데 후보자도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코드인사를 할 것이냐.”고 따졌다. 열린우리당은 ‘코드인사론’을 희석시키려는 듯 후보자의 사법개혁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정성호 의원은 “대법원장의 인사독점은 사법개혁의 가장 큰 장벽의 하나인데 법관 인사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문병호 의원은 “사법부의 자정노력을 평가하고 향후 대책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박상돈 의원은 “(5년 전)대법관을 그만둘 때 11억 3500만원이었던 재산이 현재는 35억 7000만원”이라며 재산 형성과정을 추궁하기도 했다.“유신 정권하에서 법관으로 임명받은 게 부끄럽지 않았나.”라는 질문도 나왔다. ●창과 방패의 한판승부 거친 질문이 쏟아지자 이 후보자는 독특한 화법으로 응수에 나섰다. 그는 특히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독설’과 맞붙어 녹록지 않은 입심을 과시했다. 주 의원이 “최근 5년 동안 정치자금 2900만원을 기부한 대상을 밝히라.”고 추궁하자 “친구에게 준 것이고, 몇푼 준 게 아니다.”며 목청을 높인 것이다. 이 후보자는 “1년에 정치자금 600만원이라면 엄청난 액수”라는 주 의원의 지적에 “(내가) 변호사해서 돈 많이 벌지 않았나.”라며 미소까지 지었다. 법조계의 병폐로 꼽히는 ‘전관예우’에 대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판·검사 킬러’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 등이 “(법관)퇴임 후 수임료 기준으로 60억원을 벌어들였고, 수임 사건의 70%가 대법원 사건인데 전형적인 전관예우의 사례가 아니냐.”고 캐묻자, 그는 “5년 동안 변호사를 했는데 오히려 ‘전관박대’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잘 안 되더라.”고 맞불을 놓았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서도 “집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죠.”라고 반문한 뒤 “평당 2000만원에 분양받았는데 값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답했다.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이 “아들이 강북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데 왜 강남에 또 전세를 얻었냐.”고 묻자,“맞다. 애들을 한 번도 강남에서 교육시키지 못해 손자들은 강남에서 키우려고 그랬다.”고 ‘화끈하게’ 답했다. 정계·법조계의 현안인 ‘X파일 테이프’ 공개 여부는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오면 판결을 통해 견해를 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압을 포함한 사법부의 과거사 처리는 취임 이후 적절한 생각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사법개혁과 관련해 “법관이 모든 사회 문제에 달통할 수 없으니 일반 전문가가 재판에 관여해 전문지식을 공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재야 법조인이나 대학교수 등이 법원행정처에 들어오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전광삼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Zoom in 서울] 청계천 산업지도 달라졌다

    [Zoom in 서울] 청계천 산업지도 달라졌다

    청계천 공사로 주변 상권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착공 이후 주변 사업체와 종사자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복원공사가 마무리되고 ‘청계천 시너지효과’가 본격화되면 주변 지역의 특수도 일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은 7일 2001∼2003년 시내 사업체 기초통계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도심산업의 동향과 전망’을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 도심(종로·중구)의 사업체수는 2001년 10만 6008개,2002년 10만 8015개, 지난해 2월 10만 9941개로 증가했다. 특히 청계천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주변지역(복원구간인 종로·동대문·성동·중구 38개동)에서는 2001년 4만 8448개에서 2002년 4만 9800개로, 지난해 2월엔 다시 5만 1526개로 늘어났다. 2003년 7월 복원공사에 들어가면 사업체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7개월간 사업체 수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증감률을 보면 2002년말부터 지난해 2월까지 시내 전체 사업체가 1.9%, 도심 사업체가 1.7% 늘어난 반면 청계천 주변지역에서는 3.5% 증가했다. 청계천 주변지역의 증가율은 복원사업 이전인 2001∼2002년 2.8%에 비해서도 높았다. 청계천 주변 사업체 종사자도 역시 증가세를 보였다.2002∼2003년 시내 전체에서 0.4%, 도심에서 2.6% 감소한 반면 청계천 주변 지역에서는 0.8% 늘어났다. 서울 도심의 사업체 종사자는 2001년 58만 7745명에서 2002년 61만 4274명 늘었다가 지난해 2월 59만 8225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청계천 주변지역에서는 2001년 17만 8565명,2002년 18만 9511명, 지난해 2월 19만 1023명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청계천 주변지역의 업종은 부동산 임대공급업(25.8%), 산업용 농축산물 도매업(21.3%), 도로화물운송업(20.1%) 등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반면 육상여객운송업(-42.4%), 음식료품·담배 도매업(-36.4%), 가공공작기계 제조업(-30.6%) 등은 감소세를 보여 청계천 주변 산업지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

      일과(日課)는 여성 접대. 돈도 벌 수 있고 잘하면 인기명사급으로「매스콤」의「스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호조건(好條件)의 남성직업이 어느 이웃나라 아닌 서울 명동의 요즘 화젯거리. 직업의 이름은「패션·디자이너」다. 자영살롱 없어도 월급 4~5만원, 선생님 경칭(敬稱) 들어가며 1월 중순 12명의 남성「디자이너」가 무더기로「데뷔」한 것이 얘기의 실마리. 30 전후의 실무출신(재단·가봉·「디자인」을 할 줄 아는)의 현직「디자이너」들인데 23명의 남녀「디자이너」가 결속한「코페드」(한국「패션·디자인」작가회의·회장 김태산)의 회원.「헬리콥터」기금모금 겸「데뷔·쇼」로 마련한 합동발표회(1월 14일 YMCA회관 강당)에서 탄생된 명사후보들이다. 이들 중 반 이상이 직영의「패션·살롱」을 가지고 있는데 양장점의 전속「디자이너」인 경우라도 월급 4만원~6만원.「선생님」의 경칭으로 불리며 독창적인「디자인」의 예술성을 간섭 받지 않는 칙사대우다. 직영의「살롱」인 경우 최소한 월 15만원의 인건비가 든다. 한 벌 1만원에서 5만원까지의 옷을 적어도 하루 두 벌 만들어 내니까 돈의 회전액이 아무리 적어도 15만원~30만원. 이것만으로 보아도 그리 작은 기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디자이너」라는 한격 높은 호칭으로 불리는「드레스·메이커」를 찾는 여자 손님들은 옷을 옷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옷이 좋아야 할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위광(威光)을 위해서 댈 수 있는「살롱」의 이름도 필요하다. 여자 손님은 여자 디자이너보다는 좋아해… 필수조건 - 유식해 보여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던가. 양장점마다 옥호(屋號)보다 더 중요한 전속「디자이너」를 고액(高額)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필요의 발명. 이를테면「디자이너」는 그 양장점의 간판 구실을 한다. 위광의 문제가 최대 관심사인 여성 고객을 끌어 모으는 데는 간판 구실「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특기가 있어야 한다. 「매스콤」의「스타」가 된다는 것이 그 하나, 대인관계에서 느낌이 좋을 것이 그 둘, 실제로 유식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셋, 바느질과「디자인」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 그 넷. 여성「디자이너」라고 이런 조건을 갖추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만 남성「디자이너」가 더욱 적격이다. 우선「매스콤」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초, 최선, 희소의 가치를 그들은 지니고 있는 셈이니까. 게다가 이성이라는 점에서 생기는 묘한 상상은 고객과의 대인관계를 무척 원활하게 한다. 그 쪽 분야에서 이미 대성했다고 자타공인하는 남성「디자이너」는「앙드레·김」씨. 개업 5년에「패션·쇼」도 10회를 넘겼고 얼마 전에는 미국에 3만 5천「달러」어치「디자인」수출을 했대서「매스콤」의「스타」다운 화제를 던졌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게 여성본능” 그러니 장사 잘될 수밖에 명성은「앙드레·김」씨만 못하지만「살롱」을 두 개나 갖고 기업으로 밀고 나가는「디자이너」가 이용렬(李勇烈)씨. 이밖에도 몇 명 있는 남성「디자이너」에게는 사실 구수한 구설(口舌)도 많았다.「시스터·보이」들이라느니 여성「패트론」이 뒤에 있다느니 하고. 사실이야 어떻든 그동안 이들 남성「디자이너」들이 이른바『해사한 여성적인 성격에 미목이 수려하고「살롱」안에는 현학적이거나「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다분히 외설스런 소문과는 상관없이 영업으로서의 남성「디자이너」소유「살롱」에는 위광을 사랑하는 상류사회의 고객들이 들끓고 있다. 최근 명동에「패션·살롱」을 연 B씨는 남성「디자이너·붐」을 꽤「아카데믹」하게 풀이한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란다면 남성「디자이너」의 영업이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아무래도 여성미(女性美)제작에는 남자가 더 낫지 않을까요. 여성미를 보는 남자의 직관, 대담성에 여성고객이 끌리는 겁니다』 어쨌든「패션·디자이너」라는 것도 어엿한 남성이 가져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직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복장(服裝)학원엔 남자수련생 수두룩, 거의 대학 나온 인텔리 앞서 든「코페드」회원 12명 밖에도 서울에는 명함에「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쓰는 현역 남성「디자이너」는 20여명. 각 복장학원에서「패션·디자이너」의 대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는 수련생까지 합치면 대단한 숫자가 된다. 국제(國際)복장학원(원장 최경자)만 해도 지금「디자이너」수련중인 남성이 60여명. 대학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전공과목도 다양해서 정외과 체육과 국문과 공과 생물학과 등. 공부하는 열의도 여학생보다 대단하다. 대성해야겠다는 결의가 아무래도 여성보다 굳기 때문인 것 같다는 최경자씨의 말. 지난번「코페드」의 자선「패션·쇼」의 기획진행도 남성회원들이 전담했다는 얘긴데 10여 년간 발표회 뒷얘기에 익은 서수연(徐壽延)씨(코페드자문위원)는 남성의 우수한 기획력을 알았다고 말한다. 원래 합동발표회란 것은 작품이 비교를 당하기 때문에 발표자들간에 잡음이 나게 마련이고 대개는 발표 후에「그룹」자체가 와해되는 것이 보통. 그런 것이 이번「코페드」만은 무사하게 발표도 끝내고「그룹」활동도 계속하겠다고 결의를 굳히고 있다는 상당히 희망적인 서씨의 논평이다. 68년 무역박람회「패션·콘테스트」특선 경력이 있는 손일광씨(「코페드」회원)도 그런 민완의「디자이너」. 『한국에도「피에르·카르당」만한 대가가 나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젊은「디자이너」들은 진짜 예술활동으로서의 작품을 만들고 있거든요』라고 기염이 대단하다. 이런 남성들의 움직임은 여성「디자이너」에게는 상당한 위협일 수도 있다.「패션」에 관한 한 여성전용(專用)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여성「디자이너」가 희소가치로서「매스콤」의 먹이가 되는 희극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조상땅 로또’ 충남서 펑펑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모(63)씨는 최근 충남도가 운영하는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냈다가 수십억원대의 조상땅을 찾는 횡재를 했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아산에 아버지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땅 8필지 1만 2553평을 찾았기 때문. 이 지역 땅값이 평당 30만원을 호가해 순식간에 30억원대의 재산을 벌었다. 서울에 사는 김모(59·여)씨도 최근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인 연기·공주와 부여 등 3개 지역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땅 99필지 6273평을 찾아 10억원대의 재산권을 회복했다. 이처럼 행정도시와 아산신도시 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땅값이 크게 오른 충남지역에 조상땅을 찾으려는 민원인이 잇따르는 가운데 실제 조상땅을 찾은 ‘복많은 후손’이 급증하고 있다. 5일 충남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도와 도내 16개 시·군이 시행 중인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에 신청서를 낸 민원인 2306명 가운데 31.5%인 727명이 3551필지 376만여평의 조상땅을 찾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07명이 조상땅 찾기를 신청,263명이 1635필지 200만평을 찾은 것에 비해 두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특히 지난해까지는 민원인이 연기·공주지역과 아산지역에 편중됐으나 올해에는 서산과 당진, 태안, 논산, 부여, 금산 등 도내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저출산·고령화’ 범정부 기구 뜬다

    ‘저출산·고령화’ 범정부 기구 뜬다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종합적으로 연구·검토할 범정부 차원의 기구가 다음달 초 발족돼 활동에 들어간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와 관련해 각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저출산·고령사회정책본부’를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키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또한 현재 대통령 자문기구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 개편됐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비상설 회의체로 중요 안건에 대한 의결권 등을 갖는다. 재경부·교육부·법무부·행자부 등 12개부처 장관은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복지부내의 정책본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무 작업을 맡게 된다. 정책본부는 정책총괄관과 노인정책관, 인구아동정책관 등으로 구성된다. 그 인력만도 100여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규모다. 정책본부장(1급)은 민간전문가로 충원돼 저출산·고령사회정책의 기획·조정역할을 맡게 된다. 정책총괄관 내에는 기획총괄팀과 저출산대책팀, 노후생활팀, 인력경제팀, 고령친화산업팀 등 5개 팀을 두게 된다. 복지부에서 13명을 차출하고, 재경부·교육부ㆍ노동부·건교부·여성부 등 각 부처에서 13명이 파견된다. 민간 전문가도 13명 포함되는 등 모두 39명이 참여하는 범정부적 민·관 기구로 정책본부의 핵심 기능을 맡게 된다. 노인정책관 소속으로 노인정책과와 노인지원과, 노인요양제도과, 노인요양운영과 등이, 인구아동정책관 내에는 인구정책기반조성과와 출산지원과, 아동안전권리과, 아동복지과 등이 포진된다. 이같은 대규모 정책본부 구성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사회 진입이 사상 유례없는 급가속 추세여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실제 정부 안팎에선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16명으로 집계되자 적잖은 충격으로 작용했다.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최소 2.1명은 돼야 하는데, 그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치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조한 출산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발표된 합계출산율은 가히 충격적이다.”면서 “정책본부가 무엇보다 먼저 인구정책 마련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복지부의 정책본부는 ▲유산·사산 휴가제 도입 ▲산전·산후 휴가 급여 전액 정부 부담 ▲다자녀 가구에 유리한 세제개편 및 주택 우선 공급 ▲보육료 지원 대폭 확대 ▲육아휴직급여 인상 ▲불임부부에 대한 불임 시술비 지원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 ▲출산친화적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특단의 대책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2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는 복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청계천 관광 명소로 띄운다

    오는 10월1일 복원과 함께 개방되는 청계천은 ‘아름다운 서울’의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역사유적지와 서울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관광상품이 개발되고 거리마다 특색있는 문화·예술공연이 펼쳐진다. 때를 맞춰 중랑천, 도림천, 안양천, 홍제천 등 시내 주요 하천에는 나무와 꽃길이 조성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제공된다. 서울시는 28일 오는 10월1일 복원 준공식을 갖는 청계천을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청계천 도보관광 코스’를 운영하는 등 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우선 광통교·수표교·오간수문·옥류천 등 복원된 역사유적지를 포함, 청계천의 8경(청계광장·광통교·수표교·패턴천변·빨래터·참여와 화합의 벽·하늘물터·버들습지)을 연계하는 청계천 도보관광 코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청계천 8경 가운데 ‘패턴(pattern·의류제작 때 사용되는 용어)천변’은 동대문의류쇼핑센터 근처 오간수교 옆 수변무대 주변을 말하며 주변 의류상가들과 협의해 지은 이름이다. 코스는 청계광장→광통교→삼일교→수표교→새벽다리→오간수교로 이어지는 1코스(2.9㎞)와 청계천 문화관→두물다리→맑은 내 다리→오간수교로 이어지는 2코스(2.6㎞) 등 ‘정식 코스’2개와 ‘단축 코스’4개다. ‘단축 코스’는 ▲제3코스(청계광장∼삼일교)▲제4코스(청계광장∼배오개다리)▲제5코스(배오개다리∼오간수교)▲제6코스(청계천문화관∼중랑천 합류부)로 구성돼 있다. ‘정식 코스’에는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별로 문화유산 해설사가 동행해 청계천 다리의 유래와 옛 풍속을 설명해준다.‘단축 코스’에는 청계천 자원봉사자들이 상시 대기하면서 관광객들을 안내할 예정이다. 복원 이후 청계천에서는 외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예술가(버스커·busker)들의 공연도 무료로 열린다.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비상업적인 거리예술가들은 역사·문화·자연 등 주제별로 나뉜 지정 구역에서 캐리커처·마임·통기타·행위예술·팬터마임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인다. 10월부터는 고궁 등 서울의 명소들을 운행하는 시티투어버스 노선에 청계천도 추가돼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버스를 이용해 청계광장→모전교→광통교→광교→삼일교를 둘러볼 수 있게 된다. 시는 또 대형 관광버스를 이용해 청계천을 관람하는 내·외국인들을 위해 최대 100대까지 주차가 가능하도록 청계천 주변에 주차장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시립역사박물관 주차장(10∼20대)·옛 경기여고 부지(30∼40대)·동대문운동장 주차장(20∼40대) 등을 활용한다. 한편 시는 청계천 복원을 기념한 청계천 축제 기간(10월 1∼3일)을 전후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10월1∼8일 동대문 패션 매장과 남대문·명동의 재래시장, 관광업소 등에서 10∼30%를 할인하는 ‘빅 세일’행사도 열기로 했다. 롯데·신라·동화면세점에서도 9월16일∼10월10일 10∼50%가량 할인행사를 열며, 서울프라자호텔 등 도심 주요 호텔에서는 숙박료를 50%까지 할인해준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부동산 투기 회개합시다”

    “부동산투기, 기독교인부터 반성하자.” 이달 말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를 앞두고 기독교인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 눈길을 끈다. 토지정의를 위해 17개 단체가 연대한 ‘토지정의시민연대’의 간사단체인 기독교인 모임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은 24일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토지정의를 위한 기독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하나님은 8·15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근거로 우리 민족, 특히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기독교인과 교회가 토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토지를 회복시켜 줘 모든 사람이 진정한 자유와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희년을 기대하셨다.”면서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 기독교인과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회복을 반대하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많은 중대형 교회들이 예배당과 수련관, 기도원, 교인묘지 건축을 빙자해 부동산투기를 하면서 교회를 성장시켜 왔다는 교회 안팎의 지적을 들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부동산투기를 자행하면서 번 돈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간주하고 그 일부를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드렸고, 목회자는 그것을 축복해 왔음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교회가 부동산투기에 관련해 강단에서 토지정의를 설교하지 못하고, 투기를 하지 말라는 권면도 못하고 있다.”면서 한쪽에서는 가난한 성도의 비탄이 사무치고, 반대쪽에서는 투기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은 부유한 성도의 감사기도와, 목회자의 축복이 흘러넘치는 비참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관련해 부동산투기를 자행한 교회와 기독인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부동산투기를 한 교회와 기독인들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토지불로소득을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면서 “기독인들이 앞장서서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부동산 보유세를 더 내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에 대해서도 통일을 준비하는 큰 틀에서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선언문은 “성경에서 말하는 토지정의를 구현하고, 통일시대의 토지제도를 준비하기 위해 정부는 헌법에 ‘토지불로소득 환수’조항을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生生인터뷰] 자신의 공연 제목 딴 책 ‘엔돌핀코드’ 펴낸 개그맨 김형곤

    [生生인터뷰] 자신의 공연 제목 딴 책 ‘엔돌핀코드’ 펴낸 개그맨 김형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 모르십니까? 얼굴 펴야 나라 살림도 펴집니다. 대통령 직속 유머특보 두고 회사에는 유머구역 설치하고 아이들한테 조기 유머교육으로 웃음을 강요합시다. 웃기만해도 문제의 80%가 해결된다는데 왜들 안웃습니까?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 특히 40대가 웃는 그날을 위해 ‘웃음 회사´도 차렸습니다. 제 활약은 이제부터입니다. “좀 웃으세요.‘벙그레’하고∼.” 깜짝 놀랐다. 인터뷰를 하려고 앉았는데 그의 첫마디가 이랬다. 시사·풍자 개그의 대부이자 ‘웃음 전도사’인 김형곤(46). 그가 7년째 대학로에서 공연해온 ‘스탠딩 코미디’의 최신작 ‘엔돌핀코드’를 최근 같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컴퓨터도 다룰 줄 모르는 그가 A4 용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내친 김에 같은 이름의 회사도 차렸다. 웃음이 넘치는 사회를 위해 탄생한 ㈜엔돌핀코드의 사장이 된것. 그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했다. 하지만 ‘뼈 있는’ 웃음이 이어졌다. 우리가 왜 웃어야 하는지, 특히 위기의 40∼50대에게 웃음이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성찰은, 대통령이나 의사가 해결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했다. ●“한국인, 좀 웃자고요.” “주변 사람들 얼굴 좀 보세요. 다들 화난 거 같아요. 양쪽 입꼬리를 올리는,‘범국민 미소운동’이 필요합니다. 암울했던 식민지·군사정권때도 ‘미소운동’,‘스마일운동’이 있었잖아요.” 자살이 급증하고 돈만 따지는 불행한 사회를 바꾸려면 웃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관광한국’으로 가는 지름길도 웃음이라고 강조한다.“한국에 오면 모두 화난 거 같으니 관광수지가 적자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 ‘유머특보’제 도입과,‘웃음의 날’·‘유머타임’ 제정, 회사내 ‘유머구역’ 만들기 등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조크’로 회의를 시작하고, 서로 재미있는 유머를 말하느라 안달인 사회를 꿈꾸는 것.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웃을 일이 많아요. 엔돌핀이 나오면 병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웃기만 해도 문제의 80%가 해결된다는데 왜 안 웃습니까?” ●“중년층이 웃어야 나라가 산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그.10대,20대가 웃을 수 있는 개그 프로그램은 많지만 정작 40∼50대 중년층이 즐길 만한 코미디가 없다고 꼬집는다.“저녁때 TV프로들 좀 보세요.‘추적60분’이니,‘PD수첩’이니 우울하고 뒤숭숭한 내용뿐입니다.TV가 우리 엔돌핀을 죽이고 있어요. 웃다가 잠들면 푹 자고 좋은 꿈도 꾸고 얼마나 좋아요.10시 이후에는 정책적으로라도 웃는 프로를 내보내야 합니다.” 그는 “‘사오정’ 등으로 불안한 중년층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는 시사·풍자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풍자가 없는 개그는 단명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인이나 검찰, 의사 등 권력집단을 조금이라도 풍자하려고 하면 난리가 나니까 좋은 개그가 나올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유로 TV 출연을 접고 스탠딩 코미디에 도전한 것일까? 부모가 웃으면 자녀들도 웃는 법. 아이들에게 조기 유머교육을 시키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내놓는다.“가정에 유머가 넘치면 절대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식탁에서 아이들과 유머를 주고받아 보세요. 소화도 잘 되고, 아이들 표현력도 좋아질 겁니다.” ●“엔돌핀 제조업에 매진” 지난 1998년 국내 최초의 스탠딩 코미디 ‘여부가 있겠습니까?’를 시작으로 대학로를 누비며 ‘문화혁명가’를 자청한 그의 활약은 지금부터다. 오는 12월 ‘엔돌핀코드’ 앙코르공연을 비롯, 불후의 연극 ‘병사와 수녀’를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그가 꿈꾸는 사업은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난다. 스탠딩 코미디의 계보를 이으면서, 우리 개그로 한류(韓流)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짜냈다. 개그에 재능이 있는 교포 2세들을 직접 발굴해 ‘글로벌 개그맨’으로 육성하는 것.“조만간 미국 LA·뉴욕 등을 돌며 교포들을 대상으로 개그 콘테스트를 열 예정입니다. 스탠딩 코미디는 아이디어와 마이크만 있으면 어느 나라에서도 할 수 있거든요.” 그는 자신이 펼칠 사업을 ‘행복사업’이라고 했다.“그동안 최고 인기를 누린 적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40대라고 주눅들지 말고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도 ‘제조일자’보다 ‘유통기간’이 중요합니다. 제가 살도 30㎏이나 빼고, 새로운 코미디 개발을 위해 땀흘리는 이유입니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5분 데이트 (14) - 김수경

    5분 데이트 (14) - 김수경

      전형적인「황해도」미인, 미스·수도여사대(首都女師大) 김수경(金秀敬)양 『태어나긴 황해도 사리원인데 6·25때 월남했으니까 고향의 기억은 없어요. 기억나는 건「트럭」에 실려 흔들리며 월남하던 것 뿐예요』 하는 이 아가씨는「미스」수도여사대(수도여자사범대학) 김수경양. 이제 22세니 월남할 땐 세살박이 귀염둥이였을 것. 워낙은 6남매였으나 황해도 재령에 있는 외할아버지댁에 피난해 있던 3남매는 미처 월남하지 못해 지금은 오빠 한 분과 남동생 하나뿐이라고. 같이 월남했던 아버지는 1·4 후퇴 후 납북(拉北)당했다는 남북분단의 비극을 아주 철저히 겪은 아가씨다. 그러나 김양은 아주 쾌활하다. 『어머니가 하도 잘해주셔서 아빠 생각이 안나요』하면서, 『지금 미국 가있는 오빠가 내년에 돌아오시면 오빠는 건축설계, 저는 실내장식으로 엄마 편케 해드려야죠』한다. 키 158cm에 몸무게 46kg. 덕성여고를 거쳐 수도여사대에서 생활미술을 전공, 이번에 조업한다. 여고시절의 별명은 예쁘다고『꽃경이』. 그런데 살이 쪄서 큰 고민이었다고. 한때 54kg까지 올라갔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는 게 많아지니까 살이 내리더라고. 한때는 1박 2식의 절식(節食)생활도 했고. 『결혼상대자는 제 전공, 특기를 이해하고 권장해줄 수 있는 분이어야겠죠. 수입요? 아껴서 쓰고 조금씩이나마 저축할 수 있다면 좋아요. 단 그 남자가 발전성만은 있어야죠』라면서 김양은 『전 어디가나 복이 많은 얼굴이래요. 그러니까 이번 호「선데이 서울」도 잘 팔릴 거에요』 재치있는 애교 일석(一席). 취미는 군것질. 특히 단 것을 좋아하며「초콜레트」앞에선「완전히 무력」해진다니 연서(戀書) 대신「초콜레트」선사를 부지런히 해야할 듯. 아직 애인은 없다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란다. 귀염성 있고 예쁘고 복스러운 얼굴이 전형적인 황해도 미인의「타입」그대로다. 그토록 민족의 수난을 겪은 아가씨이면서도 한 줄기의 어두운 그늘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대견스럽기도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우리 아빠가 보시면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시겠네』하는 김양에게 진심으로 복있는 내일이 있길. ※ 뽑히기까지 수도여사대 가정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모은「패션·쇼」에서 한복「모델」로 나왔던 것이 뽑히게 된 계기가 되었다.「모델」로 뽑힌 아가씨는 모두 20명. 그 중에서 한복「모델」이 12명인데 이중 심사를 맡았던 교수님들이 의견을 모아 추천해 주신 아가씨가 바로 김수경양. 정초「무드」를 살리기 위해 역시 한복을 입혔다. [ 선데이서울 69년 신년호 제2권 제1호 통권15호 ]
  • [녹색공간]어머니, 나 그리고 딸/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시골 개울에 콘크리트가 덮이고 미꾸라지가 사라져가는 오늘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내 글에 교육학을 전공한 딸애로 하여금 소감을 적어보게 한 적이 있다.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 번 나를 따라 시골 본가에 가본 적이 있는 딸이 제법 시골 풍경에 대한 공감을 늘어놓았다. “언젠가 내가 발을 빠뜨렸던 시골집 앞의 내에서 할머니는 대바구니로 미꾸라지를 잡으셨다. 할머니 다리에는 거머리가 붙곤 했는데 징그럽기도 하고 거머리쯤이야 하시는 대범한 할머니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미꾸라지를 충분히 잡고 나면 바구니에 미꾸라지를 넣고 소금을 넣고 호박잎으로 박박 문지르셨다. 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끓인 추어탕을 먹으면서 나는 미꾸라지가 참 안되었다고 생각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도 도랑물을 흐린다고 욕까지 먹으니. 잘 차려진 식탁에서 고스란히 준비되어 나오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고, 모든 음식에 추억을 담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꾸라지에 대한 동정이나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미꾸라지가 없는 도랑 때문에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는 추어탕을 맛볼 수 없는 것은 섭섭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섭섭하다. 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기껏 ‘추어탕을 맛볼 수 없는 것은 섭섭하다.’로 끝낼 수밖에 없는 딸애의 마음이 내게는 부족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섭섭한 마음은 내게서 비롯된 것이다. 내 다른 글에 달아준 대글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딸애의 정황을 읽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빠의 고향 시골은 서울과 멀어서 가기 힘들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텔레비전은 잘 나오지 않고, 그래서 심심하고, 화장실 가기 매우 귀찮은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빠의 글에서 나는 부대자루로 썰매 타던 잔디 언덕과 낡은 수레 끌고 사촌들과 내달리던 비탈길과 그곳에 있던 나의 어린 시절들이 기억났다. 여름에 아빠는 소꼬리 털을 대나무 끝에 묶어 만든 고리로 매미를 잡아주시기도 했고, 겨울에는 벼가 잘려나간 넓은 논에서 얼음 땡을 치며 뛰어놀기도 했다. 논 사이 도랑에서 할머니는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해주셨던 기억도 난다. 개구리가 폴짝 뛰는 바람에 깜짝 놀란 나는 도랑에 다리 한 쪽이 빠진 적도 있다. 언제부턴가 냇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내를 본 다음에는 애써 그 곳까지 나가지 않는다. 이번 겨울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아빠와 달리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10번을 훨씬 넘게 이사를 했다. 대체로 기억나지 않는 편이고 몇몇 장면이 기억난다 해도 어디가 어디였는지 잘 모른다.‘고향’은 그저 ‘태어난 곳’이 되어서 ‘부산’이라고 했다가 태어나자마자 갓 올라온 ‘서울’이라고 했다가 마음대로 바꾸며 별로 개의치 않아 하기도 한다. 많은 소설가와 시인의 작품에서 제목이 되는 ‘고향’. 고향은 대체로 마음을 의지할 만한 곳을 상징한다. 나뿐 아니라 많은 요즘 애들은 고향이 없거나 애매할 것이다. 그러나 옛날 사람이라 해도 도시도 아닌, 완전한 시골도 아닌 상태로 변해버린 고향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고향과 틈을 벌려갈수록 옛 소설과 시에 나타났던 정서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이 기술의 발전으로 정복 영역을 넓혀갈수록 차지하는 정서의 영역은 축소된다니 참 안된 일이기는 하다.” 내 어머니는 아들과 손녀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읽으실 기회조차 없고, 딸애는 아빠가 섭섭하다는 표현에 섭섭한지도 모른다. 설혹 들었다 해도 까닭을 이해하기에는 삶의 거리가 있다. 이런 거리를 줄여놓자면 어찌해야 할까? 이 사회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숙제의 한 모습이다. 오늘 녹색도랑을 허물고 회색 콘크리트를 깔려고 하는 이 누구인가?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가?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거리는 얼마인가? 지속가능한 사회는 그 거리를 줄이는 일을 차분히 찾아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 터인데 앞에 놓인 길이 멀기만 하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토요일 아침에]행복하게 부자로 사는 법/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모두 돈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백만장자를 꿈꾸며, 백만장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 있다고 믿는다. 로또복권이 그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집단최면 현상, 로또신드롬, 대박신드롬이 이래서 생겼다. 사실 로또복권의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1이다. 골프에서 홀인원 할 확률은 2만분의1,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3만분의1, 화재로 사망할 확률은 40만분의1, 벼락을 맞아 사망할 확률은 50만분의1이다. 로또복권 당첨이 벼락을 맞아 사망하기보다 16배나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박의 환상에 젖어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복권을 산다. 그러나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은 대부분 평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과정이 배제된 결과는 정상적인 삶의 코드를 망가뜨린다. 그 결과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걸린다. 어플루언스(affluence)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인 ‘어플루엔자 신드롬’은 주식, 부동산, 복권으로 갑작스레 큰돈을 번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갑자기 돈이 많아지니까 그동안 추구해 왔던 삶의 목적이 없어졌다. 당연히 일상생활이 무료해지고 이를 달래기 위해 쾌락을 추구한다.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새 아파트, 새 차를 구입하고, 명품으로 치장한다. 그런데도 별로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다. 1998년 봄, 미국의 한 평범한 자동차 수리공이 복권에 당첨됐다. 당첨금이 무려 2071만달러였다. 젊은이는 당첨금을 받자마자 자기가 일하던 자동차 판매 회사의 경영권을 샀다. 모든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만한 경영으로 1년도 못 돼 회사의 문을 닫았다.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갔다.69만달러를 주고 이혼했다. 남은 돈으로 쉽게 재혼했지만 위자료만 물고 또 갈라섰다. 새로 시작한 중고차 사업이 어려워지자 고리사채를 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급기야 파산 신고를 했다.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던 어촌 마을에 소송바람이 불었다. 대도시를 연결하는 대교가 건설되고 고속도로가 연장 개통된다는 소식에 폭등한 땅값 때문이다. 그렇게나 화목했던 마을이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으로 들끓고 있다. 명절을 맞아 외지에 나간 형제들이 모이면 다음날 장남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이 모두 법원을 찾는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한다. 70대 할머니가 한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60억대 재산을 가진 부자였지만 남편과 10여년 전부터 별거하며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서 가정부와 함께 지내왔다. 두 딸과 아들이 있지만 재산 상속 문제로 이들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살이가 재미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한평생 돈벌이에 세월을 흘렸지만 수십억원의 재산이 오히려 불화의 씨가 되었다.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믿었던 그 엄청난 재물이 결국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한 생명을 앗아간 셈이다. 역사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재물과 명성과 향락을 누렸던 솔로몬이 내린 인생의 결론은 ‘허무’와 ‘헛됨’이었다. 말년에 그가 깨달은 바는 사람이 최고의 부귀, 영화, 권세, 지혜를 가질지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진정한 부자로 사는 비결이요, 참된 복이라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이런 깨달음이 없기에 한평생 돈만 좇느라 피폐한 삶을 사는 오늘 우리에게 정말 행복하게 부자로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박은영의 DVD 레서피] 게걸스런 풍자 ‘色다른 맛’

    [박은영의 DVD 레서피] 게걸스런 풍자 ‘色다른 맛’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음식문화를 통해 권력과 탐욕,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보여준다. 거대한 스테이크와 바비큐, 트뤼플, 푸아그라 등 요란한 요리들이 가득 차려진 식탁에서 “더 맛있는 걸 줘.”라고 외치면서 게걸스러운 식탐을 자랑하는 도둑의 모습은 혐오스럽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폭력과 살인, 강간을 일삼던 그는 급기야 아내의 정부를 잔혹하게 살해하는데, 기막힌 반전은 이때부터다. 아내는 사랑하는 남자의 시체를 통째로 오븐에 구워 남편의 만찬에 내놓는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냉랭하게 “맛있게 드세요.” 한다. 복수와 살육의 카니발이라는 점에선 ‘혈의 누’도 그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피를 쏟아 붓는 난도질과 사지절단, 산 닭의 목을 쳐내는 시퀀스는 기존 한국영화의 어떤 공포보다 잔혹한 영상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천주학도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강 객주 일가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복수 이면에 자리한 샤머니즘과 집단주의가 더 소름끼친다. ‘연애의 목적’은 이상한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다. 강혜정도 강 객주 일가처럼 억울한 음모에 휘말려 대학을 그만두는데, 설상가상으로 전공을 바꿔 나간 교생 실습에서는 파렴치한 남교사를 만난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대사와 폭력과 애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웬만한 스릴러 못지않다. 강간과 희롱을 일삼는 남교사에 대한 응징과 애정이 공존하는 이상한 풍경이다. ●혈의 누 ‘요리사, 도둑’의 아내가 남편에게서 먹는 즐거움을 빼앗은 것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복수를 실행한다. 살인사건의 배후를 쫓는 수사과정은 꽤 과학적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각계 전문가들의 친절한 해설을 이 DVD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과 음악에 중점을 둔 2가지 버전의 코멘터리와 제작과정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력 있는 부가영상들이 풍성하다. 2.35:1의 와이드 화면으로 촬영된 영상은 명료하고 투명해서 한국영화로는 최고 수준의 화질이며,DTS를 지원하는 파워사운드 역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데 톡톡히 제 몫을 한다. ●연애의 목적 2시간의 러닝타임에도 싣지 못한 이야기가 삭제 장면에 수록되었다. 편집 중간에 삭제된 화면이 아니라, 최종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시간 때문에 잘려진 장면들이 대부분이라 완성도가 높고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영화와 연애에 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감독의 코멘터리가 없는 것이 의외다. 대신 삭제장면에 한해 감독과 박해일의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이병우의 부드럽고 세련된 현악 앙상블 연주와 특유의 감미로운 클래식 기타 연주 부록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한번은 영조 임금이 대신들에게 “도대체 남사고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살아생전 그는 미관말직에 종사한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후 200여년 뒤 조정에서 그 학식과 인품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인물이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선조 초기 천문 교수로 발탁됐다. 보통 천문을 비롯한 잡학(雜學)의 교수는 중인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남사고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유학자이면서도 당대 최고의 천문지리가로 평가를 받았다.‘정감록’의 핵심개념인 이른바 십승지설(十勝地·최고의 피란지에 관한 주장)도 그 한 뿌리가 남사고에 닿아 있다. 남사고는 예언서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지었다는 ‘남사고비결’이란 책이 18세기 이후 크게 유행했다. 구한말엔 ‘격암유록’이란 예언서도 추가로 발굴됐다. 남사고처럼 이름난 예언가는 역사에 드물다. 그런 비상한 재주에도 불구하고 실상 그는 늘 곤궁했고 박복했다. 몸에 병이 많아 늘 죽음과 직면할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고, 한겨울엔 몸에 걸칠 외출복이 없어 친구 집에 문상조차 못 갔다. 너무도 불우했던 남사고는 굽이굽이 용틀임하며 달려가는 산줄기를 그리워했고, 밤하늘 별자리를 바라보며 외로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남사고와 불영사 남사고는 경북 울진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자주 불영사(不影寺)를 찾아갔다. 이 절은 산자수명하여 부처를 비춘다는 불영계곡 안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소년 남사고는 절간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는 소년이 남다른 인물이 될 줄로 짐작해 3권의 비결을 내주었다. 천편(天編)은 별자리의 운행과 그 운세 등 천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항목별로 적어 놓았다. 지편(地編)은 산천의 지세와 명당 등 풍수를 자세히 논한 것이었다. 마지막 인편(人編)은 한번만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 그 명운(命運)을 알아맞히는 방법을 기록한 비밀스러운 책이었다. 노승은 이 책들을 건네주며 신신당부했다. 아무쪼록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뒤 어느 날 노승은 남사고의 공부를 점검하러 집으로 찾아갔다. 당연히 제1권인 천편부터 차례로 공부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남사고는 인편에 실린 각종 비술에 빠진 나머지 천편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노승은 남사고가 비결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쓸까 염려한 나머지 남사고의 집에 불을 질러 책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러고는 불영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사고의 지리 공부 졸지에 비결을 빼앗긴 남사고는 새 각오로 삼천리강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제야 지리 공부의 요체를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명당을 얻더라도 결국 덕을 많이 쌓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사고가 아버지 무덤을 아홉 차례나 이장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는 지리를 완전히 터득한 고수였던 지라 가장 좋은 자리를 택해 아버지의 묘를 썼다. 그런데 써놓고 보면 더 좋은 자리가 문득 눈에 띄곤 해 옮겨 쓰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비룡승천(飛龍昇天·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형의 명당을 얻어 다시 이장을 하였다. 그때 지나가던 한 술사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구천십장(九遷十葬·아홉 번 묘를 옮겨 열번 장사를 지냄) 남사고야, 비룡승천을 좋아 마라. 고사괘수(枯蛇掛樹·말라 죽은 뱀을 나뭇가지에 걸친 모양)가 아닌가?” 남사고는 깜짝 놀라 산세를 다시 살폈다. 죽은 용이 분명했다. 그 술사를 만나 한 수 배우려 했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다음이었다. 생각 끝에 남사고는 지각유주(地各有主)라, 명당도 저마다 임자가 따로 있어 인력으로 바꿀 도리가 없다는 깨침을 얻었다. 그는 별로 하자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묘 자리를 구해 아버지의 유해를 평안히 모셨다. 요컨대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눈이 멀어 명당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설사 요행히 명당을 차지하더라도 발복(發福·복이 나타남)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남사고의 실패를 약간 달리 해석한다. 조상이 지은 죄가 워낙 많아 남사고가 일껏 명당을 잡더라도 쓸모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른바 구천통곡(九遷痛哭·아홉 번 옮기고 통곡함)을 통해 남사고는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란 고승의 가르침을 확인했다 한다. 앞의 이야기는 한낱 설화에 불과하지만 지관 남사고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사고의 명예언 지리 공부를 마친 남사고는 서울에 놀러 갔다. 그는 권판서를 비롯해 당대의 석학들과 두루 사귀었다. 그는 이미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했기 때문에 서울 친구들에게 몇 가지 예언을 들려주었다. 첫째, 곧 조정에 당파가 생겨날 테니 조심하란 것이었다. 둘째, 왜적이 난리를 일으키는데 만일 용(辰) 해에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으나 뱀(巳) 해에 전란이 시작되면 나라는 영영 망하고 만다. 셋째, 지금 사직동을 둘러보니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거기서 임금이 나올 것이다. 넷째, 태릉이 들어설 곳을 가리키며 장차 태산에 봉해진다고 하였다. 첫째 예언은 선조 8년(1575)부터 동인과 서인의 분당이 일어나 사실로 입증됐다. 둘째 예언 역시 용 해인 임진년(선조 25)에 왜적이 쳐들어와 꼭 맞아떨어졌다. 셋째도 사직동에 살던 선조가 뜻밖에 대통을 이어 1567년 등극함으로써 적중했고, 넷째는 명종의 모후(母后)인 문정왕후가 죽은 뒤 태릉에 묻혀 기정사실이 됐다. 이처럼 남사고의 예언 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번은 그가 하늘 별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더니 자미성(紫微星·어진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이 빛을 잃어버리는 참이었다. 아마 자기가 죽을 날이 다 된 모양이라며 남사고는 서울을 떠나 귀향길을 서둘렀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남명 조식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자미성은 회복세에 있었다. 그제야 남사고는 자미성의 변화가 남명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수련을 쌓았고 그 결과 자신이 죽을 날을 알아 맞힐 정도가 됐다. 천문 교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하늘에는 태사성(太史星·천문 담당 벼슬을 상징하는 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 현상을 목격한 남사고의 상관은 자기가 세상 떠날 날이 되었다고 지레 짐작해, 동료들을 모아놓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러자 남사고는 크게 웃으며 “죽을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남사고는 태연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사고와 퇴계 이황의 만남 남사고는 도술에도 능했다 하는데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 그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퇴계 집안은 검약하기 그지없어 밥상에는 보리밥과 고추장밖에 다른 반찬이 없었다. 남사고는 도술을 부려 잉어회를 만들었다. 그러자 퇴계는 손사래를 치며 남의 잉어를 빼앗아 먹을 수 없다며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설화 속의 퇴계는 실상 남사고보다 예언과 도술에 능통하다. 귀신에게 홀린 제자를 구해 주기도 하고,9대 자손에게 닥칠 위기를 미리 예견한다. 퇴계는 일찍이 여우의 구슬을 삼킨 적이 있어 축지법도 쓸 줄 알았다고 한다. 설화의 세계에서 보는 퇴계는 만능인간, 초월적 존재다. 이는 물론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민중은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가 자기들의 편에 서서 따뜻한 보호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퇴계를 만능의 인간으로 형상화했다. 남사고가 밥상에 올린 잉어회를 퇴계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민중은 물론 남사고와 같은 예언가를 기꺼이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학덕이 높은 퇴계에게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남사고가 익힌 지리와 천문이 한낱 기술이라면, 퇴계의 학문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삶의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민중의 인식을 본다. ●십승지는 남사고의 작품인가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들은 남사고의 특별한 지식과 능력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정감록’의 중심개념인 십승지설이 ‘남사고산수십승보길지지(南師古山水十勝保吉之地)’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은 남사고 같은 예언가라면 당연히 훌륭한 피란지를 점지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남사고’는 ‘정감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여러 산들 중에서 소백산(小白山)이 으뜸이요, 지리산(智異山)이 다음이다.”라고 했듯, 길지는 주로 소백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큰 마디에 몰려 있다. 이를 지역별로 나눠 보면 경상도가 4개, 전라도 3개, 충청도 2개, 강원도 1개다. ‘남사고’의 이런 길지는 ‘정감록’외 다른 예언서에 나오는 한국 최고의 길지들과 대동소이하다.‘정감록’에 언급된 길지를 출현 빈도순으로 정리해보면, 경북 풍기, 충남 공주, 경남 가야산이 각 10회로 으뜸이다. 다음은 경북 안동으로 9회이며, 경북 예천과 전북 운봉은 각 7회, 태백산·소백산 및 충북 보은은 6회, 경북 개령·봉화, 강원 영월, 충청 단양, 전북 무주 및 부안이 각 5회로 각기 정상급 길지로 손꼽힐 만하다. 그밖에 충북 진천도 4회나 된다. 십승지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길지는 해안선이나 큰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 길지를 선정하게 된 이유가 전쟁, 전염병 및 흉년의 세 가지 피해(三災)를 벗어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해안지방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데다 조선후기엔 이양선의 출몰이 잦았고,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 때 외적은 큰길을 따라 진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로변과 해안은 길지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흉년이 들지 않는 장소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참 어려웠다. 그런데 최고의 길지 가운데는 전북 부안처럼 해안 고을도 있었다. 부안이 십승지로 부각된 것은 물론 다른 이유에서였다. 신라 말 민중적 미륵불교를 창시한 진표 스님이 미륵보살로부터 간자(簡子)를 받은 곳이 바로 부안이었다. 그때 이후 부안은 세상을 구할 진인이 출현할 땅으로 민중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됐다. 공주는 충청감영(忠淸監營)의 소재지로 조선시대엔 가장 큰 대로변에 위치했다. 그럼에도 계룡산이란 풍수상의 일대명산을 거느리고 있어, 길지 중의 길지로 손꼽혔다.‘정감록’은 계룡산 사상 즉 진인이 계룡산에 도읍해 새 세상을 연다는 예언이 핵심이다. 따라서 공주를 빼놓은 길지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길지들, 특히 그 대표가 되는 십승지는 과연 남사고가 창안했을까?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남사고가 전국을 유람하며 길지를 점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남사고는 전국의 지세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했다.‘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만주 땅을 할퀴는 형상이다.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경북 포항의 영일만 동쪽에 있는 호미곶은 우리나라의 동쪽 끝 땅이다. 우리 땅을 용맹스러운 호랑이로 보고 그 꼬리라는 뜻에서 호미(虎尾)라 부른 남사고였다. 그는 전국의 여러 명당 가운데서도 유독 소백산을 중시했다.“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活人山)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남사고’를 보면, 소백산 주변에 십승지의 상당수가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이런 점에서 십승지설은 남사고의 뜻을 상당부분 반영한 것으로 믿어도 좋겠다. 그런데 사실 조선시대의 지관(地官)들은 누구나 전국의 길지를 논했다. 그들에겐 공통된 의견도 있었다. 태백산 이남에 길지가 많다는 것인데, 특히 소백산, 작성상(황장산), 주흘산, 희양산, 청화산, 속리산, 황악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남쪽 구간에 명당이 많다 했다. 십승지를 비롯한 전국의 길지는 남사고 한 사람이 모두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남사고는 선배 지관들이 앞서 제기한 논의를 일단 종합했던 것이다. 이것이 다시 후배들에게 이어지면서 길지에 관한 논의는 더욱 풍부해졌다.‘남사고’는 한 사람의 단독 저술로 간주되기 곤란하다. 그것은 18∼19세기 조선의 지관들이 선배들의 다양한 의견을 참작해 만든 공동저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후배들은 전설적인 지관이며 명예언가인 남사고의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남사고비결’도 여러 번 다시 쓰였다 영조 9년(1733)에 적발된 ‘정감록’ 사건엔 ‘남사고비결’이 등장한다. 무신년에는 피가 흘러 내(川)를 이룬다는 등 흉흉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실록·영조 9년8월18일 병인). 마침 영조 4년(1728) 무신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남부지방을 휩쓸었던 터여서 조정은 이 ‘비결’의 등장에 경악했다. 이 ‘비결’과 제목이 똑같은 예언서는 현재도 남아 있다. 당연히 ‘정감록’에 포함돼 있다. 그러면 현존하는 ‘비결’은 영조 때 발각된 것과 같은 내용의 예언서일까? “무신·기유(戊申己酉)년: 제갈량(諸葛亮·제갈공명)이 이미 죽었으니 어느 성 한쪽 금성(錦城)이 피폐하도다. 경시(更始·개혁의 시작)는 자리를 긁고 범증(范增)은 등창이 나는구나.”라고 하였다. 책사(策士)로 유명한 제갈공명과 범증이 이미 죽거나 병들었다 했다. 나라에는 제대로 일을 도모할 만한 신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이라 개혁은 제자리를 맴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쟁 또는 반란을 예언했다는 영조 때의 ‘비결’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비록 예언서의 명칭은 ‘남사고비결’이라 했지만 알고 보니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세상은 날로 바뀌기 마련이다. 따라서 후배 술사들은 새로운 내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 예언서가 이미 알려진 예언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때로 새 술도 헌 부대에 넣으면 값비싼 명품으로 둔갑된다. 이것이 시장의 논리다. ●남사고의 ‘격암유록’과 신종교 남사고는 예언계 최고의 브랜드였고, 그래서 끊임없이 이용됐다.19세기 말엔 ‘격암유록’이란 낯선 예언서가 등장했다.‘정감록’을 상당부분 모방하고, 그 무렵에 태동하고 있던 신종교의 선교에 도움이 될 내용을 덧붙인 것이었다.‘격암유록’은 뒷날 증산교의 종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일부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는 남사고가 지었다는 ‘궁을가’를 기꺼이 인용한다. 이 역시 위작(僞作)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궁궁을을”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궁궁”도 십자가,“을을” 역시 십자가라는 것이다. 역사상 남사고는 궁핍한 예언가였다. 하지만 후세의 사람들 중엔 그 이름을 팔아 기름진 음식과 호사를 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민중이 남사고에게 걸었던 희망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월드이슈] 美 응급피임약 처방전 폐지 논란

    [월드이슈] 美 응급피임약 처방전 폐지 논란

    성관계 후 평균 72시간 내 복용하면 임신을 80∼95% 막을 수 있는 응급피임약. 실패율 높은 콘돔 대신에 효과적 피임법으로 상용화할 날이 올 것인가. 만 16세 이상에게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판매할 것인지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다음달 1일 최종 결정할 계획인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 ‘모닝 애프터 필’로 불리는 응급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 FDA, 무처방 판매가능 그러나 72시간 내 긴급히 복용해야 하는 점을 들어 처방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이미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등 7개 주가 처방전 없이 판매를 허용했다. 어린 청소년의 임신을 막기 위해 연령 제한도 없다. FDA도 이같은 추세를 반영해 사실상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고 약품 포장지에 넣을 막판 경고문구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스터 크로퍼드 신임 FDA 국장은 지난 3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과학적인 부분에 대한 검토는 대체로 끝났다.”면서 “플랜 B의 포장 디자인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플랜 B는 미국에서 시판되는 대표적 응급피임약이다. 의사들로 구성된 FDA 자문위원회는 지난 2003년에 이미 “240만명 이상의 미국인과 전세계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응급피임약을 별다른 부작용 없이 복용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응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판매할 경우 미국 내에선 ‘원치 않는 임신’을 현재의 연간 300만건에서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AP통신이 전문가들을 인용, 보도했다. 시민단체인 ‘성교육 자문회의’의 애드린 베릴리도 “‘사고’는 주로 의사가 근무하지 않는 밤이나 주말에 일어난다.”며 허용을 주장했다. ● “의사 처방은 마지막 보루” 그러나 보수단체들은 응급피임약이 착상 전에 (임신을) 막는다고 해도 “조기 낙태약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혈압 병력이 있는 여성에게 응급피임약이 위험할 수도 있는 등 부작용이 없지 않은데 의사의 처방전은 이를 최소화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이 응급피임약 복용을 강요당하고 피임 실패에 대한 비난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많아 흔히들 응급피임약이 여성 해방의 지름길이라고 보는 시각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성문란을 걱정한다. 보수주의 모임인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들’의 웬디 라이트는 “처방전 없이 팔면 사실상 연령 제한도 강제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2008년 대선 예비주자인 공화당 출신의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는 최근 주의회가 낸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 허용 확산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약사들은 처방전을 보여줘도 약품을 내주지 않을 정도로 응급피임약의 문제는 윤리와 신념의 차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로드 아일랜드주의 한 약사가 얼마전 응급피임약 판매를 거부한 데 대해 주 약국 이사회는 “약사가 직업윤리적 판단 아래 처방전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저런 이유로 FDA는 지난 2003년 자문위의 허용 권고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고 당초 지난 1월 결정하려던 것을 올 9월까지 미뤘다.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든간에 미국 사회가 당면한 또 하나의 윤리 논쟁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英·佛선 학교 양호실서 무료 제공 미국과 달리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응급피임약을 구입하는 데 있어 의사 처방전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긴급히 복용했을 때만 효과가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인정한 것이다. 현재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스웨덴·그리스 등 전세계 16개국이 응급피임약을 처방전이 불필요한 일반의약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 2002년부터 만 16세 이상이면 아무런 제한 없이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다. 인터넷에서 익명 구매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역시 지난 2000년 허용돼 현재 약사나 학교 간호사가 여학생 부모의 동의 없이도 응급피임약을 복용시킬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학교 양호실에 이 약을 상시 비치해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상담 후 무료로 얻어 간다. 독일은 지난해부터 자유 판매를 허용했다. 만 18세 이하 소녀의 낙태 건수가 1996년 4724명에서 2002년 7443명으로 늘어났다는 보건사회부 자문회의의 보고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이들 나라 종교단체와 일부 시민단체들도 거세게 반대했었다. 이탈리아는 응급피임약 시판에서부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프랑스가 개발한 노레보정을 허가한 지난 2000년 로마 교황청은 “화학적 낙태행위”라며 “엄격한 조건 아래 수술로만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 194조를 위반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낙태가 불법인 가톨릭 국가 페루는 보건부 장관이 가족계획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응급피임약을 배포했다가 보수적인 국회의원들로부터 기소당하기도 했다. 필라르 마세티 보건부 장관은 “응급피임약은 세계보건기구(WHO)에도 낙태약이 아니라고 돼 있다.”고 항의했었다. 반면 10대 임신율이 서유럽 최고인 영국은 이 약품 홍보에 정부가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결과는 신통찮은 것 같다. 일간 데일리 메일은 “토니 블레어 정권은 지난 7년 동안 콘돔과 응급피임약 홍보에 1380만파운드(약 2600억원)를 지출했지만 오히려 임신율이 증가했다.”면서 성관계를 전제로 한 피임 위주의 교육을 비판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만 16세 미만 임신율이 지난 2002년 1000명당 7.9명에서 2003년 8.0명으로 늘어났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한국 응급피임약 실태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노레보, 퍼스트렐, 세스콘 원앤원, 레보니아 등의 응급피임약을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살 수 있다. 응급피임약이 국내에서 시판된 것은 2002년부터로 2003년 24만정,2004년 29만정이 팔려 사용하는 여성의 숫자는 늘고 있다. 하지만 홍보를 할 수 없고, 처방전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판매량 증가는 미미하다는 제약사측의 설명이다. 사용과 구입의 편리성을 위해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사전피임제와 달리 사후피임제는 주성분이 여성호르몬인 레보노르게스트렐로 다소 고함량이 함유되어 있어 사용상 엄격한 주의를 요하는 의약품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복용법은 대부분의 약이 비슷하다. 성관계 이후 최대 72시간 내에 2정을 모두 복용한다.72시간 안에 1정을 먼저 먹은 뒤 12∼24시간 안에 1정을 더 먹는 약도 있다. 가격은 단 2정이란 것을 감안하면 비싼 편으로 보험과 의료보호는 적용되지 않는다. 처방전을 받는 데 1만∼2만원, 약을 구입하는 데는 1만∼1만 5000원이 든다. 구입하는 데 연령 제한은 없어, 청소년도 살 수 있다. 처방전없이 약국에 가면 약사들이 응급피임약이 아닌 매일 복용해야 하는 보통의 사전피임약을 다량으로 주는 경우가 있다. 용량을 맞추기 위해서 통상 일반의약품인 보통피임약을 4정 정도 먹은 뒤 12시간 뒤 4정을 더 먹으라고 한다. 이럴 경우 위장장애와 두통 등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은 훨씬 높고, 피임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응급피임약의 피임효과는 80∼95%정도로 추산된다. 한번의 생리주기 안에서 즉 한달에 한번만 사용 가능하다. 한번 응급피임약을 먹은 뒤 뒤이어 성관계를 할 때는 반드시 비호르몬적 국소피임법을 써야 한다. 약이 아니라 콘돔, 살정제, 자궁내 피임장치, 피임용 캡 등을 사용해야만 한다. 응급피임약을 먹은 뒤 가장 흔히 보이는 현상은 위장장애다. 구토, 복부 통증과 함께 피로, 두통, 현기증, 생리장애, 설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성관계 직후 빨리 복용할수록 피임 효과는 우수하다. 제약사는 24시간내 복용하면 95%,48시간내는 85%,72시간내는 58%의 피임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100% 피임이 보장되지는 않으므로 임신진단 시약 등으로 사후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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