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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어나는 복지 수요 감당하려면

    정부는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맞춰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인력을 지속적으로 늘려간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지자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복지 담당자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결국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탓이다. 충원된 인력이 복지서비스 확충에 고스란히 배치될지도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인식 변화와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들은 공무원 인건비를 묶어 놓은 ‘총액인건비제’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국민행복연금 도입, 기초생활보장 급여 확대 등 내년부터 업무가 급격히 늘어나는 데 대비해 필요 인력을 추가로 충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행정안전부로부터 내려받은 인건비 총액의 한도 안에서 정원을 관리하는 총액인건비제를 적용받고 있다. 인건비 총액이 정해져 있어 한 분야의 인력을 늘리면 그만큼 다른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2014년까지 충원되는 복지 공무원들은 정부가 인건비를 50~70%까지 부담하지만 이는 3년간 한시적 지원이다. 김이배 부산대 사회복지학 박사는 “총액인건비제에서 복지공무원은 예외로 하거나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인력 충원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경감시키면 지자체에서 부담감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업무를 중심에 둔 지자체의 인사 행정도 중요하다. 인력이 충원된다 해도 지자체가 복지 업무에 전진 배치하지 않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선수경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장은 “지자체들이 복지업무의 중요성과 전문성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인력 배치를 해야 한다”면서 “복지 인력 충원이 현장에서의 업무 경감 효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지자체의 몫”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에 대한 지자체장의 인식과 태도”라고 덧붙였다. 지자체의 인력 배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저 지자체의 자율에 맡긴 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혜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부와 행안부, 기획재정부 등 복지공무원과 관련된 부처들이 함께 지자체의 복지인력 배치 및 조직개편 방안을 마련하고 독려해야 지자체도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DNA 표본 있는 한…쥬라기 공원은 공상 아니다

    DNA 표본 있는 한…쥬라기 공원은 공상 아니다

    2000년 유럽 남서부 피레네 산맥에서 ‘세실리아’라는 이름의 피레네아이벡스(산양의 일종)가 숨을 거뒀다. 피레네아이벡스는 19세기만 해도 개체 수가 너무 많아 지역 농부들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가죽과 고기, 관상용 머리를 위해 사냥이 유행하면서 급속도로 사라져 갔다. 세실리아는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피레네아이벡스였다. 3년 뒤 유럽 과학자들은 다른 산양의 난자에 세실리아의 세포를 넣어 복제 피레네아이벡스를 탄생시켰다. 태어난 새끼가 7분 뒤 선청성 폐결핵으로 죽으면서 피레네아이벡스 복원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라진 동물’의 부활에 대한 과학자들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은 현실에서 가능한 얘기일까. 공상과학(SF)의 거장이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설정은 상당히 과학적이었다. 공룡의 피를 빨고 난 뒤 호박 속에 굳은 채로 보관된 모기에서 공룡의 유전자(DNA)를 추출해 양서류에 넣어 부활시키는 방식은 정연한 논리와 과학적 근거를 갖췄다. 이는 이 같은 과정이 크라이튼의 머릿속에서 꾸며진 얘기가 아니라 실제 복제 동물 실험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미국 워싱턴에 ‘쥬라기 공원’을 꿈꾸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주최한 대중강연 ‘TEDx멸종복원(de-extinction)’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멸종 동물 복원의 최고 권위자들이 차례로 연단에 등장했고 행사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뉴사우스웨일스대의 마이크 아처 교수는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번식했던 ‘위부화개구리’의 복원에 대해 소개했다. 위부화개구리 암컷은 위에다 알을 보관해 부화한 뒤 올챙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입 밖으로 뱉어낸다. 1973년 호주 퀸즐랜드의 오지에서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새끼가 위 속에서 소화되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했고 독특한 호르몬을 찾아내 위궤양 치료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을 탄 개구리는 빠르게 사라져 갔고 1983년 멸종됐다. 아처 교수는 “보관된 위부화개구리의 표본에서 DNA를 채취해 비슷한 유전 구조를 가진 호주 마시개구리의 난자에 집어넣어 수정란을 만들어 분화를 진행시키고 있다”면서 “위부화개구리의 지구 복귀를 환영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밝혔다. 공룡까지는 아니더라도 급속도로 발달한 동물 복제 기술은 이미 사라진 동물을 지구에 다시 돌려놓고 있다. 과학 전문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은 “러시아와 한국의 과학자들은 매머드를 지구 상에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서 “현대 코끼리의 조상인 매머드는 3000년~1만년 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전에 멸종됐고 시베리아 일대에는 매머드 복제에 필수적인 생체조직이 얼음 상태로 널리 보존돼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조직에서 DNA를 채취해 코끼리 난자에 넣어 매머드를 복원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구상”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언급된 한국 과학자는 2006년 네이처 논문 조작 파문으로 학계를 떠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와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다. 이들은 지난해 매머드 복원을 선언하고 실제 조직 채취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생물학계에서는 매머드의 DNA 복제가 가능한지 검증되지 않았고 코끼리의 임신 기간이 20개월 이상인 데다 현재 복제 동물의 성공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어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먼 훗날에도 매머드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일부 과학자들은 손상되거나 형태만 남아 있는 DNA를 이용해서도 복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하버드대 연구진은 나그네비둘기를 복원하면서 박물관의 박제 표본을 사용하고 있다. 1800년대 초반 북미 지역에 수십억 마리 서식했던 나그네비둘기는 개척자들이 서부로 몰려들면서 매년 수백만 마리씩 사냥됐고 1914년 멸종했다. 조지 처치 미 하버드대 교수는 “박물관의 나그네비둘기 박제들에서 DNA를 채취해 각각 손상된 부분들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맞춰진 DNA를 바위비둘기 난자에 넣어 복원하는 작업이 완료되면 완벽한 나그네비둘기를 복원하거나 최소한 똑같이 생긴 비둘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07년에는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박물관의 알코올병 속에 보관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1936년 멸종) 부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진행되는 멸종 동물의 부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자연에서 살아갈 능력이 부족해 도태되거나 천적에 취약한 동물을 부활시킨 이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스튜어트 핌 미 듀크대 교수는 “복원된 동물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피레네아이벡스를 복원한 다음 자연에 풀어놓으면 얼마 못 가 천적에게 잡아먹힐 것이고 그렇다면 그 천적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먹이를 먹은 셈이 된다는 것이다. 핌 교수는 “복원 동물을 동물원에 가둬 놓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또 일부 과학자들은 큰바다오리를 다시 살려내려고 하지만 날지 못해 도태된 짐승을 복원한다면 다시 멸종과 복원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로 인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학자들도 많다. 복원은 자연적이지 않고 인위적인 조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구 상에 없었거나 위험하고 불완전한 동물이 등장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복지예산 100조 시대… 복지공무원의 ‘그늘’] (상) 현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복지예산 100조 시대… 복지공무원의 ‘그늘’] (상) 현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달 경기 성남시의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업무 과중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상보육, 저소득 학생 교육비 지원 등 연초 생각지도 못하게 늘어난 업무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상황에서 내린 극단적 선택이었다. 복지제도와 복지서비스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담당할 공무원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 해 100조원을 넘어선 복지예산의 집행을 현장에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황과 대안을 2회에 나눠 싣는다. “언론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이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가 담당하는 동네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아 주민센터에 매여 있으니 주민들이 어디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네요.”(서울의 한 주민센터 복지 담당 공무원)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 도입돼 복지업무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됐지만 어려움에 처한 저소득층을 찾아내고 필요한 복지 지원을 연계하는 것은 복지 공무원의 몫이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하면 이런 복지 공무원의 역할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주민들의 복지 체감도는 떨어지고 지원이 필요한 곳에 손길이 닿지 않다 보니 복지 사각지대가 양산된다. 지난달 경기 양주시에서는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된 뒤 실직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월세가 7개월째 밀린 모녀가 동반 자살했다. 이처럼 생계를 비관한 자살이나 고독사 등 안타까운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이 정부나 민간의 복지 지원을 받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초수급자나 한부모가정 등 복지 지원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자격 기준에 부합하면 복지부의 긴급 복지 지원 제도를 통해 생계비나 의료비 등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대한적십자사 등 민간 단체에서 생계비나 식료품 등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좀체 ‘발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이 스스로 복지 지원 제도를 찾아 신청하거나 이웃들이 알려주지 않는 한 과다한 업무를 떠안은 복지 공무원이 직접 발굴해 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복지 지원 대상자들의 소득 조사 업무를 맡은 시·군·구청의 복지 공무원도 복지 사각지대를 관리할 여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구청 복지 공무원은 “200여개에 이르는 복지사업 지침과 자격 조사에 파묻혀 있다 보니 민간 단체를 찾아다니거나 개인 기부를 독려하는 등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례 관리 또한 지침 속에나 있는 말”이라고 했다. 복지 공무원들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복지 상담과 신청 접수, 소득 조사와 같은 업무는 공무원들 사이에 ‘3D’ 내지는 ‘기피 업무’로 여겨진다. 복지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김이배 부산대 박사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모두 바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복지업무는 맡으려 하지 않는다”면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급자에게도 복지업무는 복지직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깊게 자리 잡혀 있다”고 말했다. 복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직렬을 구분하고 복지직에 감당할 수 없는 업무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차라리 복지직과 일반행정직을 통합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가운데 주민들의 복지 체감도도 쉽게 높아지지 않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전모(45·여)씨는 “주민센터에 찾아가도 다들 바쁘니 눈치를 보며 한두 가지 물어보는 게 전부”라면서 “맘 편히 어려움을 털어놓고 싶어도 내가 무리한 걸 요구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주민센터를 방문했다가 제대로 된 상담을 받지 못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현/김수복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현/김수복

    현/김수복 석양이 밀려오면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마법에 걸린 몸이 되어 하늘처럼 사랑했던 사람도 껴안고 돌 수 없습니다 소리의 무지개가 되어 현(弦)을 켜며 허공에 감겨 있습니다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3) 통영 도다리쑥국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3) 통영 도다리쑥국

    파닥파닥. 경남 통영 앞바다에 내려앉은 금속성 볕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 근육을 푼 흙, 툭툭 터져 오르는 기운들. 남녘은 완연한 봄이다. 이즈막, 납작모자에 옷깃을 닭 벼슬처럼 세우고 통영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잠시 묻어놓았던 내면의 풍류와 객기를 끌어내는 것이며 가슴속에 낭만을 채우는 일이다. “도다리 쑥국 한 그릇 먹어야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봄은 통영 도다리쑥국에서부터 시작됐다. 된장 살큼 푼 말간 국물에 통영의 그 푸른 기운처럼 동동 뜬 쑥과 도다리의 흰 살점. 국에서 파란 바다냄새가 난다고 해두자. 딱 두 달이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애타는 봄 국. 그래서 통영의 봄은 가게마다 폼 잡고 양반글씨로 써 내려간 ‘입춘대길, 도다리쑥국’이 팔자걸음처럼 내걸리며 활기를 얻는다. 첫새벽. 시락국 집은 밤새 다찌에서 술을 마셨거나 서호시장 4시 경매를 끝낸 사람들이 아린 속을 움켜잡고 몰려드는 ‘해장 성지’다. 서성서성 포장마차에서 콩국과 빼대기로 허기를 때우는 모습도 흔히 만난다. 그 먹먹한 서민의 시간. 도다리쑥국과 멍게 비빔밥을 시켜놓고 객지의 아침을 맞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방 노란 냄비에서는 국물이 새벽잠처럼 끓고 토막 친 도다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국물 속으로 던져진다. 쑥을 넣고 한 소큼 끓여 익숙하게 퍼내는 손놀림이 재봉틀 실 땀처럼 빈틈없다. 앞자락에 김 모락모락 오르는 도다리쑥국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향긋한 해쑥 향이 멀미처럼 올라온다. 쑥을 수저로 지그시 누르고 국물부터 떠먹는다. 입 안 가득 향긋한 초록이 넘실댄다. 봄이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담박함이 온몸을 편안하게 다스려준다. 여린 쑥은 씹히는가 싶더니 목젖으로 넘어가고 수저로 편편하게 뜬 도다리 살점은 달다. 절로 시원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래서 통영 사내들은 복이 많다. 종일 술독을 끼고 살아도 속 다스려 줄 해장국이 넘쳐나니까. 두부와 무쳐낸 톳나물이며 통멸치 젓갈, 간이 센 남도 김치가 국에 밀려 그대로 남았다. 30년간 맑은 국을 끓여왔다는 사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음식을 추억하기에 바쁘다. “도다리쑥국은 말 그대로 도다리와 쑥만 들어가야 합니다. 콩나물이나 묵은지를 헹궈서 넣기도 하는데 재료의 향긋한 맛을 즐기는 것이 봄 밥상이잖아요? 쌀뜨물에 된장을 약간 풀기도 하지만 도다리가 비린 생선이 아닌데다 향긋한 쑥이 들어가니 맨 물에 끓여도 비리지 않아요. 바다와 육지의 오묘한 향이 어우러집니다.” 말마따나 통영 도다리쑥국은 바다를 건너온다. 봄이 이른 욕지도나 한산도, 소매물도 등 섬에서 해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격도 제법 나가서 한 그릇에 1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맛을 아는 토박이 미식가들은 “2월 쑥국은 이르다”고 말한다. 도다리 살이 얇기 때문이다. 먼 바다 살집 두터운 도다리로 끓여야 국물 맛이 깊은데 2월 도다리는 뼈째 썰어먹는 ‘세꼬시’용이다. 육지에서 늦은 쑥이 나오는 4월 초순 도다리가 더 뭉근한 맛이 나온다는 얘기다. “살갗이 거칠거칠한 옴도다리가 최고지요. 지금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하기 힘들어요. 바닥부터 싹 쓸어 올리는 고대구리 배로 조업할 때는 싸고 많았는데, 이 옴도다리로 끓인 쑥국의 깊은 맛은 궁중음식 부럽지 않습니다.” 4월로 가야 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멍게 때문이다. 이때가 돼야 멍게가 속이 차기 시작하니 도다리쑥국과 더불어 멍게 비빔밥을 맛봐야 통영이 시리게 다가올 테니까. 거개는 멍게 비빔밥이 생물인 줄 알지만 제법 알려진 주방에선 속과 향이 그렁그렁한 ‘그해 5월 것만’ 쓴다. 숙성해놓고 1년을 사용한다. 그러지 않으면 특유의 향이 적다. 갓 건져낸 멍게는 미끌미끌하여 밥과 겉돌아 비벼지지 않는다. 간을 하여 숙성시키면 참기름만 얹어 내도 그 향이 몇 시간 입안에 머문다. 멍게 비빔밥에 유곽을 넣는 곳도 있다. 유곽 얘기가 나오자 커피 집에서 만난 최진혁(62)씨의 눈빛이 촉촉해진다. 어머니 손맛이 떠올랐던가 보다. “유곽은 손이 많이 가서 예로부터 제법 사는 집이 아니면 해먹지 못하던 음식이에요. 개조개를 다져 된장에 물기 없게 볶아 내지만 본래는 개조개 외에도 돼지고기나 소고기, 게살을 함께 썰어 넣었어요. 여기에 방아이파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개조개 뚜껑에 담아 숯불에 구워 낸 것이 정통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해내는 집이 없어요.” 도다리쑥국 나오는 집은 어김없이 졸복국을 낸다. 졸복은 크기가 작아 독을 손질하려면 애통 터지는 생선이다. 한 입 크기다. 하지만 속 달래는 데 미나리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졸복국만한 것이 없지 싶다. 또 통영 대표음식 시락국은 장어머리를 푹 고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 건강식이다. 방아이파리나 부추를 듬뿍 얹어 먹는다. 500원에서 시작한 시장밥상이었으나 지금은 4000원이다. 밥 말아 뚝딱 비우게 되는데,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밥상이다. 서호시장의 시락국 전통은 반찬이 뷔페식이다. 찬 통에서 스스로 덜어 먹는데 가짓수가 10여개는 된다. 그 외에도 어부들의 점심이었던 충무김밥이며 우짜, 꿀빵 등 종일 입에 달고 다닐 만한 ‘한 끼형 간식’이 수두룩하다. 먹을 것 천국이다. 배를 꺼트리기 위해 산책을 나선 길은 곳곳이 ‘꽃 편지’다. 통영의 바람은 너무나 달아서, 동백꽃처럼 붉어서 사랑도 피우게 되었으니 먼저 간 풍류객들 동선을 따라 가는 것도 봄날의 애상이지 싶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을 듯’한 그녀 ‘경련’을 기다린 백석의 시가 핀 충렬사 계단이나 청마 유치환이 ‘정운’의 맘을 얻기 위해 5000여통의 시를 부쳤다는 중앙우체국에서 ‘행복’이라는 시비를 읽어보는 일은 애잔한 즐거움이다. 잠시 스쳐간 사랑의 상처로 동네사람들에게 미움을 사 끝내 명정동에 안기지 못한 박경리의 아리고 쓸쓸한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숨어있는 곳이 통영이고 보면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도 연정이 묻어난다고 우겨도 될 법하다. 해는 길어지고 도다리는 살찌고 있다. 글· 사진 손현주 음식평론가 marrian@naver.com
  • [중국통신] 음력 2월 2일은 이발하는 날?

    지난 13일 중국 이발소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음력 2월 2일, 이른바 ‘춘룽제’(春龍節)를 맞아 머리를 자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 첸장완바오(錢江晩報) 등 현지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13일 하루 동안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는 머리를 자른 사람들의 ‘인증샷’이 봇물을 이뤘다. 정월 초하루부터 기른 머리를 음력 2월 2일에 자르는 것은 예부터 전해져 온 풍습 때문이다. 항저우(杭州)에 사는 역사학자 딩윈촨(丁云川)은 “2월 2일은 ‘용이 머리를 드는 날’(龍擡頭)로, 북방지역에서 전해진 문화다.”며 “이 날은 하늘에서 구름과 비를 주관하는 용왕이 고개를 드는 날로, 이 날 이후 비 오는 날이 많아져 춘룽제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또한 춘룽제 전에 머리를 깎으면 한 해의 복이 날아가지만 춘룽제에 맞춰 머리를 자르면 액과 불운이 함께 떨어져나가 일년 동안 평안하다고 믿는다고 딩 선생은 소개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tha_hong@aol.com
  • [김문이 만난사람] 경복궁 야간 지킴이로 새 삶 사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방동규 씨

    [김문이 만난사람] 경복궁 야간 지킴이로 새 삶 사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방동규 씨

    “나를 주먹, 건달, 협객,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냥 뜨거운 내 인생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을 뿐이오.” 이 시대의 낭만 협객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라소니 이후에 최고의 주먹, 한번에 17명과 맞서 싸운 전설, 백기완, 황석영과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라고. 본명 방동규, 아니 ‘방 배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35년 개성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중·고교 시절,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54년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구중서(문학평론가) 등과 함께 나무를 심고 계몽운동을 펼쳤다. 30살에 독일에서의 광부생활, 4년 동안 파리에서의 유랑생활, 양장학교 수업, 중동 파견, 긴급조치와 ‘말지’사건으로 구속수감 등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었다. 2006년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있다가 잠시 그만둔 뒤 2011년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야간지킴이 일을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낭만 협객이 8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파수꾼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저녁 경복궁에서 방씨를 만나 사진 촬영을 한 다음 인근 막걸리 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등산복 점퍼에다 청바지 차림이었다. 백발이긴 한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말할 때는 “이봐, 이 사람” 등을 섞어가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자리에 앉으면서 “내가 2003년 서울시장배 보디빌딩 대회(장년부)에서 6등을 했거든, 나이 80 되는 내년에는 꼭 우승하려고 그래. 그런 각오로 하루 1시간씩 꼭 운동을 하고 있지. 허허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단단한 팔뚝 근육을 잠깐 보여준다. 요즘 근무하고 있는 경복궁 야간지킴이 활동에 대해 먼저 물었다. “말 그대로 야간에 경복궁을 지키고 경비하는 일이여. 물어볼 것도 없어. 경복궁에는 오랫동안 내려오는 정기 같은 것이 있잖아. 그런 정기를 받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무작정 담을 넘어오는 사람도 더러 있어. 참 내원. 거 머시기야. 남대문에 불을 지른 사람도 창경궁에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혔잖아. 당시 초범이고 노인이어서 풀어줬는데 결국 남대문에서 사고 쳤거든. 야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해.” 경복궁 주변에서 막무가내로 버티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해 주다가 정 안 되면 강제로라도 끌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 방씨는 아직은 괜찮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방씨는 오후 5시 30분에 출근해서 그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퇴근한다. 15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어떤 인연으로 경복궁에서 일하게 됐을까. “유홍준씨와 각별히 친하지. 긴급조치법 2호 때 독방에 있었어. 유홍준씨가 학생들과 데모하다가 감옥 옆방에 들어왔어. 통방이라고 하거든. 벽을 똑똑 두드리면 옆방에서 반응을 해. 귀에다 대고 말을 하면 서로 통화가 잘돼. 그때부터 형·동생으로 지내게 됐고 감옥에서 나와 같이 술 마시면서 아주 친해졌어. 또 이때 같이 수감된 이호철, 임헌영, 장준하, 백기완 등과 인연을 맺었어. 아주 각별하지.” 이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유홍준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 시 방씨에게 경북궁에서 일하도록 배려를 해 줬다. 이에 대해 방씨는 “아마 왕년의 주먹이자 몸짱 할아버지라는 이미지와 ‘경복궁 지킴이’의 역할이 썩 잘 어울렸는지 이곳저곳에서 인터뷰를 해 화제의 인물로 부각됐다”고 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사발통문을 날려 인사동에서 송년회를 겸해 ‘배추 취직 축하연’ 자리를 가졌다. 이때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시인 신경림, 정치인 김태홍과 이부영, 춤꾼 이애주, 불문학자 최권행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 또한 언론에 보도돼 또 한번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인연이 된 긴급조치법 2호와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큰딸 이름은 방그레, 둘째는 방시레이다. 웃는 행렬로 지었단다. 방씨가 강원 철원 노느메기밭에서 일할 때였다. 둘째 딸 출산을 위해 서울 어머니네 집에 들러 병원을 가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점퍼 차림의 두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권총을 들이대면서 철원에서 대구 경찰서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이유는 서울에 아는 사람이 많고 정치와 문화계통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취조를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심문 내용은 이런 것이었어. 뭐, 다짜고짜 김일성과 무전 친 암호를 대라고 했어. 나는 무전기도 만질 줄 모르고 집에 그런 것도 없다고 했지. 그때 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아는 사람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하나 줬어. 그걸로 트집을 잡는데 참 황당하더라고. 그렇게 6개월 동안 고문받으며 지내다가 나왔어.” 1986년 ‘말지’ 사건 때도 수감됐다. 김태홍 전 국회의원과 형·동생하면서 지냈다. 제5공화국 시절 언론 보도지침이 나왔을 때 김 전 의원이 수배 대상이 돼 고향인 광주로 피신해야 했다. 방씨는 그런 사정을 알고 김 전 의원과 함께 광주로 동행했다. 이런 이유가 나중에 밝혀져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서 고문을 받았던 것. “그때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를 만났어. 고문실에 들어가면 옆방이나 옆옆방 정도에서 비명 같은 것이 들려. 진짜 고문해서 나는 비명인지 하여간 그런 소리 들리면 맥이 쫙 풀려. 그런데 이근안씨는 때리지는 않고 아주 상당한 기술이 있더구먼(웃음).” 화제를 돌렸다. 왜 ‘배추’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6·25전쟁 혼란기 때였다. 방씨는 당시 경신·대광고와 정신여고 등 기독교 계열의 학교들이 합쳐진 전시 연합학교에 다녔다. 전쟁 혼란기라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평소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군복 등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걸쳐 입고 다녔다. 특히 방씨는 6·25 때 부산과 호남에서 장사하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여학생들은 이런 방씨의 모습을 보고 ‘쟤가 싸움 잘하는 배추장수’라고 했고, 결국 ‘배추’로 굳어졌다. ‘시라소니 이후의 최고의 주먹’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었을까. 방씨는 1950년대 학생 주먹으로 유명했다. 고등학생 때 대학가의 주먹들과 붙는 일이 자주 있었다. 1953년과 1954년에는 대학생 건달로 악명을 떨치던 ‘춘하’의 패거리들과 싸웠고 전국 씨름왕의 도전을 받아들여 이기기도 했다. 창경원에서 특수부대 군인 출신인 깡패들과 맞짱을 뜨면서 ‘양배추’의 이름이 장안에 알려졌다. 당시 신문기사 제목이 ‘군인 깡패, 학생에게 혼쭐나다’였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근원지는 소설가 황석영이었다. 그럴 것이 196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잊을 만하면 한두 번씩 ‘맞짱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국내뿐만 아니라 파리와 스페인 등 해외에서도 그랬다. 문단의 화제였고 술자리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특히 방씨는 재야 세력의 주먹으로 반독재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문화운동패의 문인, 화가, 그리고 지식인들과 두루 친했다. “내가 말야. 한창 주먹으로 이름을 날릴 무렵 이정재가 제3자를 보내 은근히 영입의사를 밝힌 적이 있어. 당시 이정재는 유지광을 전면에 내세워 동대문시장과 평화시장 일대를 주무대로 하는 ‘화랑동지회’라는 단체를 조직했거든. 이 조직의 후신인 반공청년단 등을 만들어 사회적 이권과 정치세계에까지 개입하고 있었지.” 그러나 방씨는 이정재의 제안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무협사’에 주가(朱家)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첫째, 가난하고 빈천한 사람부터 도왔다. 둘째, 의협을 행하면서도 남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굳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셋째, 가난하고 청빈하여 집에 재물이 없었다. 적어도 사나이라면 이러한 의기는 지녀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치깡패들과 한통속이 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방씨는 운동가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육상 등 각종 운동을 했고 막내 삼촌은 승마, 고모는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였다. 방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육상과 높이뛰기, 넓이뛰기, 수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수로 발탁됐다. 고등학교 때에는 역도와 합기도를 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중국, 중동 국가 등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어 지금도 6개 국어를 구사한다. ‘조선의 3대 구라’라는 말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지나온 세월을 반추한다. “돌이켜보면 가난하더라도 ‘마음 부자’에 ‘친구 부자’로 지냈어. 비록 별 볼 일 없이 살았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정말 복 받은 사람이지. 그 복을 보디빌딩 장년부 우승으로 갚아 주려고 해. 세상이 뭐라 하든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원칙이야.” 너털웃음과 함께 ‘배추의 호방함’이 향기롭다. 헤어지면서 “앞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좋은 친구가 되면 어떠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세상은 좋은 친구들이 많아야 해”라며 다시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방동규씨는 누구 1935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48년 월남 후 경신고와 대광고, 정신여고 등이 합쳐진 기독교 계통의 연합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유명했다. 1954년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백기완, 구중서, 김태선 등과 함께 나무를 심고 계몽운동을 펼쳤다. 30세에 독일에서 광부생활을 했고 4년여 동안 파리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서 양장점 ‘살롱드방’을 운영했고 1973년에는 강원도 철원의 ‘노느메기밭’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때 간첩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다. 1979년부터 2년 동안 중동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건설노동자로 근무했고 1986년 ‘말지’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1991년 서해화성 경영자(CEO)로 취임했고 3년 뒤에는 중국 공장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1년에는 헬스클럽 강사로 깜짝 변신했다. 2006년부터 경복궁 관람 안내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다 2008년 그만둔 뒤 2011년부터 경복궁 야간 지킴이로 근무하고 있다.
  • 부처에 임의예산 7% 감축 통보

    부처에 임의예산 7% 감축 통보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 재원이 당초 135조원에서 10조원 정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복지 재원 등이 적게 산정됐다는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감안, 기획재정부가 전체 재원을 다시 계산한 결과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최근 각 부처에 임의로 쓸 수 있는 사업 예산을 7% 정도씩 줄이라고 통보했다. 이어 다음달 말까지 전체 재원 및 연도별 주요 공약 사업을 확정할 계획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6일 “대통령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해 세출입 구조조정을 어떻게 진행하고,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추산하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약재원은 당초 예상됐던 135조원보다 10조원 정도 늘겠지만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복지공약 실행을 위한 재원이 새누리당 안보다 2~3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새누리당 안의 두 배인 27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가 예상한 재원 증가분은 이보다는 훨씬 적다.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 예산 편성과 세수 등 등 나라 살림살이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 공약재원 중 가장 덩치가 큰 부문은 71조원의 세출 구조조정이다. 이를 위해 재정부는 비공식적으로 각 부처에 ‘공약집 내용을 기초로 재량지출 부분에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보고하라’고 통보했다. 사실상 공약집에 제시된 재량지출 7% 삭감안이 기준이 된 셈이다. 재량지출은 정부 부처가 임의로 쓸 수 있는 사업 예산을 말한다.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의무지출과 반대 개념이다. 올해 전체 예산 342조원 중 53.2%인 182조원 정도가 재량지출에 해당한다.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재량지출 7%에 사회간접자본(SOC)과 산업지원 예산 7%, 교육·국방·연구개발 예산 2% 추가 삭감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내년에 16조 6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100조원 정도인 복지 지출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는 부처별 재정지출 감축 가이드라인은 7%이지만 조정 과정에서 상황에 맞춰 소폭의 조정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일부 부처의 경우 10% 가까운 재정지출 감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135조원의 구체안은 늦어도 4월 중 확정될 전망이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서울광장] 무엇이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여줄까/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무엇이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여줄까/함혜리 논설위원

    인간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행복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규모에 1인당 소득 2만 3000달러로 성장했지만 국민들의 행복감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경제 양극화, 높은 실업률, 불안한 노후, 각종 범죄, 높은 자살률, 후진적 정치행태 등이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인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부강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한 사람의 행복도 장담하기 어려운데 국민 모두의 행복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의 어깨는 참으로 무거울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대다수 국민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복지 선진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을 찾아 우리 시스템에 맞게 적용하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국민행복시대에 훨씬 빠르게 당도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높은 실업률과 경제 부진을 극복하고 성장과 수준 높은 복지를 구가하고 있는 스웨덴은 훌륭한 산 교과서다. 스웨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순위에서 노르웨이, 덴마크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나라다. 분배지수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세계 2위이며, 사회갈등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복지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게 상식이지만, 스웨덴은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진정으로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생애주기에 맞춰 촘촘하게 잘 짜여진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고, 위기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스웨덴의 경제발전이 복지제도와 함께 이뤄졌다는 점이다.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형평적 분배수단인 세금을 통해 균등하게 재분배하되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을 이끌어 내는 구조로, ‘생산적 복지’의 이상적 모델이다. 국민과 기업은 높은 세금을 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골고루 혜택이 돌아오기 때문에 기꺼이 부담한다. 형평성 있는 분배가 이뤄지면 개인, 지역, 계층 간 차이가 적고 따라서 반목, 위화감, 갈등도 줄어든다. 사회는 안정되고 사회적 관용도는 높아진다. ‘기회의 평등’도 중요한 개념이다. 수준 높은 무상교육을 받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가난의 대물림이 적다. 일시적 재난이나 좌절, 실직, 실패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국가의 보조금을 받으며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재기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성인교육, 자발적으로 하는 성인학습, 실업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직업훈련, 재직근로자 대상의 직업훈련 등 다양한 성인교육이 학교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성인교육 참여율이 61%로 세계 최고인 스웨덴에서는 인생 3모작까지도 가능하다. 스웨덴 쇠데르턴 대학의 최연혁 교수는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에서 “스웨덴 사회복지제도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주기 때문에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거나 극단의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혁신적 생각을 현실에 적용해 볼 수 있게 만든다”고 했다. 복지의 최전선에 있는 고위관료에게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국민들이 복지의 개념을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복지제도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필요한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당장엔 실현이 불가능하다. 수십년 앞을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행복은 구호를 외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수혜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정부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국민이 낸 세금을 잘 관리해 복지라는 이름으로 공평하게 되돌려 줄 때에 가능하다. lotus@seoul.co.kr
  • 200억 남아돈 저소득층 ‘긴급복지’

    호흡기 장애가 있는 A(40)씨는 몇 달 전 호흡이 가빠지고 열이 올라 응급실에 실려 갔다. 선택진료비와 각종 검사 등 비급여 탓에 진료비가 170만원이나 나왔지만 감당할 길이 없었다. A씨의 아내는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청에 찾아갔지만 “이번에 신청하면 같은 질병으로는 다시 신청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이 언제 또 쓰러질지 몰라 다음에 신청하기로 하고, 이웃들에게 손을 벌렸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소득층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생겼을 때 생계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해 주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지원 기준이 전면 개정된 뒤 생계와 주거지원 실적은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의료지원은 기준이 엄격해져 지원 실적이 대폭 줄었다. 정부는 지난해 전면 개정에 이어 올해도 생계와 주거지원 기준을 완화했으나 의료지원 기준은 그대로 둬 의료지원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급복지지원은 저소득 가정의 가장이 사망하거나 갑자기 수술 등의 사유로 생계에 위기가 왔을 때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생계비와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그동안 의료지원에 예산의 90% 정도가 편중됐다는 지적에 따라 생계와 주거지원 기준은 완화하고 의료지원 기준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난해 지침이 전면 개정됐다. 생계와 주거지원은 가장이 실직하거나 휴·폐업한 경우, 노숙인 등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주거지원의 금융재산 기준도 300만원 이하에서 500만원 이하로 완화됐다. 반면 의료지원은 같은 질병이나 부상으로는 1년에 한 번 신청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평생 한 번만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 번 지원받은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심사를 거쳐 한 번 더 지원받는 것은 가능하다.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지원됐던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생계지원은 2011년 5672건(27억 700만원)에서 지난해 9913건(47억 40만원), 주거지원은 489건(95억원)에서 1115건(231억원)으로 2배 정도 늘었다. 그러나 의료지원은 3만 3908건(426억원)에서 2만 4884건(292억원)으로 줄었다. 의료지원이 큰 폭으로 줄면서 연초 배정된 예산 589억원 중 200억원이 남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지원사업에 전용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지원을 줄인 대신 생계와 주거지원 기준을 완화해 지원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사업팀장은 “저소득층이 대체로 건강도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신청 횟수가 너무 제한적이고, 비급여 부담도 저소득층에 떠넘겼다”면서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괸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커버스토리] 전관예우 공화국

    [커버스토리] 전관예우 공화국

    인사청문회 때마다 전관예우 시비가 일고 있는 가운데 고위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들이 ‘얼굴 변호사’를 내세우거나 선임계를 내지 않고 사건을 맡은 뒤 의뢰인에게 수천만~수억원대의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받고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얌체짓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수의 변호사들은 1일 “고위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은 대체로 사건을 직접 수임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변호사를 대리로 내세우는 등 선임계를 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대학 입시 비리로 최근 구속된 A씨. 집행유예도 어려운 상황인데 벌금형을 선고받는 조건으로 담당 법원의 부장판사 출신 B변호사를 선임했다. B변호사는 착수금 2000만원에 성공보수 3000만원을 요구했다. B변호사는 자신이 아는 후배 변호사에게 300만~500만원을 받고 사건을 수임케 한 뒤 그를 얼굴 변호사로 내세웠다. B변호사는 후배 변호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되면 내가 한 줄 알면 된다”고 했다. 지방의 검찰에서 수사를 받던 C씨는 서울 지역 검사장 출신의 D변호사를 선임했다. 구속을 면하는 조건으로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5000만원을 지불했다. D변호사는 수사 담당 지역 검찰에게 입김이 통하지 않자 C씨 사건을 자신이 몸담았던 서울 지역 검찰로 이송시켰다. C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지방 사건이었는데 해당 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얼굴 변호사로 내 이름만 올려 달라고 했다”면서 “착수금·성공보수로 2억원을 받는데 1억원을 주겠다고 했다. 일은 자신이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세원 파악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은 “사건당 보통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받는데, 모두 탈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조사국 관계자는 “전관 출신 변호사 등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고 있진 않지만 제보나 첩보 등 혐의를 입증할 물증이 나온다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변호사법상 선임계 미제출은 영구제명, 제명, 3년 이하 정직, 3000만원 이하 과태료, 견책 등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선임계 미제출로 처벌받은 변호사들의 현황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면서 “변협회장이 징계위원회에 징계 개시를 청구하고 징계위는 처분 수위를 결정한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다시, 김구 선생과 만날 시간

    다시, 김구 선생과 만날 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1876~19 49) 선생이 서거한 장소인 경교장(京橋莊)이 복원돼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시는 28일 3·1절을 앞두고 3년여에 걸친 경교장(사적 465호)의 원형 복원을 마치고 2일부터 무료 개방한다고 밝혔다.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는 경교장은 1945년 11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4년여간 거주하며 국무위원회를 주관하고 통일운동을 하다가 1949년 6월 2층 집무실 복도 책상에서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장소다. 경교장은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이 지은 일본식 건물로 광복 후 김구 선생에게 거처로 제공됐다. 원래 죽첨장(竹添莊)이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 김구 선생이 근처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꿨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뒤 미군 주둔지와 주한 타이완 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사용됐다. 서울시는 삼성병원과 협의, 소유는 그대로 두고 복원하는 데 합의해 2010년 6월 30일 병원시설을 이전한 뒤 복원을 시작했다. 복원에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가 참여해 1938년 ‘조선과 건축’ 잡지에 수록된 경교장 도면과 미국 라이프(LIFE)지 사진을 근거로 당시 모습을 생생히 재현했다. 경교장은 총 면적 945㎡ 건물 1동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다. 지상 1층에는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 회의가 개최됐던 응접실과 대외 홍보관계를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 귀빈식당으로 구성됐다. 2층에는 김구 선생 집무실과 침실, 임정요인 숙소, 욕실,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집무실 복도에는 창문에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을 재현해 놓았다. 지하는 원래 보일러실과 부엌으로 썼으나 임시정부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전시실에는 ‘임시정부 국내 환국’을 보도한 서울신문 호외(1945년 11월 23일자)와 속옷에 빼곡히 쓴 밀서, 김구 선생 유품, 백범일지 초간본 등이 전시된다. 개방은 매주 화∼일요일(월요일 휴관) 오전 9시∼오후 6시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의정 포커스] 홍운철 동작구의회 의장

    [의정 포커스] 홍운철 동작구의회 의장

    “올해는 무엇보다 의회가 정파 간 진영 논리를 극복해 내고 구 발전을 위해 발벗고 뛸 수 있도록 앞장서 돕겠습니다.” 홍운철 동작구의회 의장은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해소’를 첫 번째 목표로 내세웠다. 홍 의장은 “지난해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깊은 골을 극복하지 못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부족한 의정 활동을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효율성과 실용성을 극대화하는 의정 활동을 펼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고 설명했다. 현재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뉴타운사업과 재개발에 대한 방향 설정을 꼽았다. 홍 의장은 “사업 추진 여부를 놓고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라지면서 집단 민원이 발생하고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기초의회의 권한과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해야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확대, 청년실업 해소를 통한 서민 생활 안정, 고령화와 출산율 하락에 따른 대책도 집행부와 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복지예산의 급증으로 인한 지방재정 악화 문제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원 배분 구조의 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동작구의 예산 가운데 46%가 복지예산일 정도로 재정압박이 큰 상황이다. 홍 의장은 “세법 개정을 통해 지방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우선은 복지비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부담 비율을 높임으로써 가난한 기초지자체의 재정난을 해소하는게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홍 의장은 주민들에게 “40만 주민이 선출해 준 지역의 심부름꾼인 구의원들을 최대한 활용해 의정에 많은 도움을 달라”고 당부했다. 홍 의장은 “중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의원 한 사람이 두 세 개 동을 지역구로 맡다 보니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하거나 찾아보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망설이지 말고 구의원들을 찾아주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복지공무원 손톱 밑 가시 빼줄 방안 찾을 때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경기도 성남시 여성 공무원이 그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재원 부담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맞서는 등 복지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빚어진 불상사다. ‘일하기 힘들고 어렵다’는 유서를 남겼다니 일단 업무 과중에 따른 부담을 못 이겨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가 도입된 이후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유로 복지공무원이 자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확한 진단을 거쳐야 하겠지만, 자살에 이를 정도로 업무가 과다하다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업무가 과중하면 복지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복지가 선택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전환되면서 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는 크게 늘어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부터 5년간 복지재정 정책은 45%, 복지제도 대상자는 157.6% 증가했으나 복지담당 공무원은 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결혼 3개월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성남시 공무원만 하더라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90명, 장애인 1020명, 보육료 양육수당 대상자 2659명, 기초노령연금 대상자 800명 등 20여 가지 사회복지 업무를 맡아왔다. 임용된 지 1년이 채 안된 9급 공무원으로선 수습직원 1명, 임시직 도우미 5명과 함께 4만 9000여 주민들의 복지업무를 담당하기에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특히 연초인 1, 2월에는 복지업무 수요가 일시적으로 늘어난다. 복지 공무원은 또 상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대민 접촉이 많은 궂은 업무인 데다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의 거친 항의와 반발에 수시로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새내기 공무원은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복지공무원을 올해 1800명 등 내년까지 7000명을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이 지난 2011년에 만들어진 만큼 적절한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 선거 등을 거치면서 복지업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정 부담으로 인력 확충이 어렵다면 업무 조정, 전환배치 등의 방법을 통해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 차제에 복지정책을 총점검해 중복된 업무를 통합하거나 복지전달체계를 개선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 고양시청사 복도 ‘시민갤러리 변신’

    고양시청사 복도 ‘시민갤러리 변신’

    전국에서 가장 노후한 편에 속했던 경기 고양시청사 복도가 리모델링되면서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시는 26일 3000억원을 들여 철거 후 신축할 예정이었던 시청사를 1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하면서 복도를 갤러리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시는 28일 오후 4시 광복회원, 주민자치위원 등 각계각층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양시청 갤러리 600’개관식을 갖는다. 복도를 활용한 고양시청 갤러리 600은 총 150여점의 그림과 사진 등을 동시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1층에는 ‘고양시 600년 미래를 찾다’라는 주제로 초·중·고 학생들의 작품을 게시했다. 2층에는 ‘경의선을 지나면’을 주제로 미술협회 작가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며, 3층에는 일제가 무단 반출해간 ‘육각장 반환과 위안부 어르신을 다시 생각하며’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4층에는 ‘600년의 꿈, 사진으로 피우다’를 주제로 고양지명 600년 기념 대표작가 5인의 사진을 전시한다. 1983년 1만 7000여㎡에 들어선 현 시청사는 2009년 안전진단에서 A~E 등급 가운데 보수보강이 필요한 C등급을 받았다. 특히 균열 및 침하 작용으로 안전상 문제가 있는 데다 내부가 좁아 시는 청사 주변 3개 건물을 매입하거나 임차해 외청으로 사용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시는 비좁고 낡은 청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까지 원당뉴타운 내 5만 2000여㎡에 복합행정타운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재정건전성 강화 정책의 하나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새 청사 신축보다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지난해 말 방침을 바꿨다. 시는 지난해 말 10억원의 예산을 추경에 편성, 옥상 및 외부 방수공사, 곳곳의 자투리 토지를 활용한 쉼터 조성, 실내 환경개선, 건물 내외부 리모델링 등의 공사를 마쳤다. 특히 종전에 폐쇄적이고 경직된 정문 및 담장을 헐어내고 개방화했으며 구내식당을 식사뿐만 아니라 각종 회의나 강연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용으로 바꿨다. 최성 시장은 “에너지 절감형 고효율의 청사는 물론, 청사 내부에 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작품을 무료 전시할 수 있어 시민 소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이렇게 풀자] 경제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이렇게 풀자] 경제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당장은 복지보다 성장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장과 복지를 같이 가져가자는 주장도 적지 않았지만 복지에 무게를 더 둬야 한다는 주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우선은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과 성장잠재력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주문이다. 기초연금 도입 등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얻어낸 뒤 증세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이 새 정부 출범 하루 전인 24일 국내 경제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국정과제 해법 등을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다. 새 경제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덥지 않은 만큼 출범 초기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나중에 대답하겠다”며 즉답을 피한 ‘성장과 복지’에 대해서는 10명이 ‘성장이 먼저’라고 응답했다. 7명은 ‘성장과 복지의 공평분배’를 꼽았다. ‘복지가 먼저’라는 응답은 4명에 그쳤다.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를 먼저 하려 해도 돈이 없다”며 “일자리가 생겨 가계가 돈을 벌면 (복지를 위한 증세의 거부감도 덜한 만큼) 성장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원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내외 경제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위기가 진행형”이라면서 “새 정부가 단기와 중기 과제를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장에 힘을 쏟되 지금까지의 수출 중심에서 벗어나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산·서민층에게 혜택이 내려가는 ‘트리클 다운’(낙수효과) 대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트리클 업’ 효과를 기대해야 할 상황”이라며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을 주문했다. 복지재원 조달을 위한 증세에 대해서는 80%(17명)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 (재원 마련을 위해) 전 국민을 세무조사해야 할 판”(김종석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인 데다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이기 때문이다. “복지나 경제민주화는 권력의지가 강한 출범 1년차에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데 이런 의지가 안 보인다”(전성인 홍익대 교수)거나 “경제 수장들이 성장론자로 채워지면서 서민생활이 피폐해진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익명을 요구한 교수)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열린세상] 복지정책의 불편한 진실/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복지정책의 불편한 진실/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 선거부터 시작해 이번 대통령 선거까지 복지는 모든 정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복지를 향한 경쟁이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결국 복지 어젠다를 성공적으로 선점한 박근혜 대통령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고, 오늘 새 정부가 출범한다. 이제 우리도 스웨덴·핀란드와 같은 북구 복지국가의 비전을 가져도 되는가?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 반세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듯 다음 반세기가 지나면 우리의 아이들은 복지국가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 그 초석을 놓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불편한 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정책의 불편한 진실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논객들이 새 정부의 복지공약에 대해 재원 마련 대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아껴서 그 엄청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착각한 것이고 아니면 국민을 속인 것이다. 새 정부가 복지정책을 예정대로 추진할 진정성이 있다면, 먼저 누가 얼마나 더 돈을 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다음 그것을 가지고 설득을 하든지 협상을 하든지 할 일이다. 이 문제는 언론에서 항상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원이 바닥나 복지정책이 중단된 경험도 있고 해서 그 심각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복지정책을 수행하는 부문, 즉 공공 영역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명성·책임성은 남의 돈을 운영하는 자로 하여금 그 돈을 함부로 써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사적 영역에서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공공 영역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의 회계감사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하더라도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불필요한 사업으로 예산을 낭비한 단체장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거의 없다. 중앙정부나 다른 공공 영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세금을 충분히 걷더라도, 공공 영역에서는 그 세금을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려는 인센티브가 낮아지게 된다. 대신 당장 성과가 나타나거나 모양이 그럴듯한 사업에 세금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복지정책은 중한 질병이나 실업과 같은 상황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거나, 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필요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정 금액을 나누어 주는 정책이 시행되곤 한다. 생색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돈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옳은 의사결정인지는 의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어떻게 보면 미래세대의 손해에 대해 현재의 의사결정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국민연금을 건드리겠다는 발상은 그 결정판이다. 우리 아이들을 강제로 다단계 피라미드에 편입시키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공공 영역의 문제는 비단 복지정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자체가 호화 청사를 건축하는 것도 같은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복지정책은 그 자체가 공익적 사업이라는, 즉 국민에게 효용 증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측면이 부각되면서 자원 배분의 적절성이 더 쉽게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복지정책도 장기간에 걸친 납세자의 희생이 전제가 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 돈을 ‘눈먼 돈’처럼 사용하는 것은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공공 영역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면 이런 정책결정 문제들도 100%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상당 수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 [박근헤 정부 국정목표 확정] 공약 수정은 도리 아니라더니… 사라진 ‘1번 공약’ 경제민주화

    [박근헤 정부 국정목표 확정] 공약 수정은 도리 아니라더니… 사라진 ‘1번 공약’ 경제민주화

    그동안 대선 공약의 수정과 폐기는 없다고 강조해 왔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약속과 달리 일부 공약의 경우 질적으로 후퇴하거나 용어 자체를 폐기했다. 재원 부족과 시장 상황 변화에 따른 이유로 여겨지지만 줄곧 “(공약 수정과 폐기는) 국민께 도리가 아니다”라고 해 온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 총·대선의 ‘간판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확립’으로 용어가 바뀌었다. 박 당선인이 18대 대선 당시 예비후보자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제출할 때만 해도 ‘1번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가 최종 대선 공약에선 ‘9번 공약’으로 후퇴한 데 이어 향후 5년간 ‘박근혜 정부’의 로드맵인 국정과제에서는 용어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경제민주화 내용도 후퇴했다. 박 당선인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관련해 배상 금액을 최고 10배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국정과제에서는 현행 하도급법과 외국 사례를 고려해 상한액을 3배로 규정했다. 현재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대해서는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고 있다. 또 대기업 총수의 불법 행위 근절을 위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형량 강화’, ‘대형 경제비리 사건에서 검찰 구형에 못 미치는 판결 선고 시 원칙적으로 항소’ 수준으로 후퇴했다. 류성걸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21일 이와 관련, “용어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약화된 것은 아니다”면서 “(경제민주화는) 공약한 대로 상당히 세부적으로 내용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독 경제민주화만 ‘5대 국정 목표’가 아니라 이를 세부적으로 뒷받침하는 ‘21대 전략’에 포함돼 있어 ‘경제민주화는 선거용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조원동 경제수석 내정자의 성향까지 감안하면 새 정부의 경제 기조는 경제민주화가 아닌 성장에 무게가 쏠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애초부터 재원 대책이 없었던 박 당선인의 106개 시·도 공약은 국정과제에서 아예 제외됐다.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비판이 쏟아질 수 있어 인수위는 이를 각 부처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일임했다. 강석훈 국가기획조정 인수위원은 “(국정과제에) 다리를 놓고 하는 것을 넣을 수 없지 않나”라고 반문하면서 “부처 장관 보고에서 (당선인의) 지역 공약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복지 분야에서는 재원 부족 등으로 공약의 후퇴가 두드러졌다. 한국납세자연맹이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할 정도로 논란이 됐던 기초연금 공약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배(20만원) 지급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눠 매월 4만~20만원을 지급하기로 수정했다. 140개 국정과제 중에는 ‘대통령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제 신설 내용이 포함됐지만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상설특검제’ 공약은 빠져 있다. 또 검·경 수사권 조정도 결론을 내지 못해 공약 후퇴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혜진 사회안전분과 간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각 부처 관계자를 만나는 등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논의했지만 양 부처의 견해차가 너무 컸다”며 “추후 국민이 참여해 다시 수사권 문제를 심층 논의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간호協 “간호면허 취득 문턱 낮추면 안돼”

    보건복지부가 간호조무사를 폐지하고 간호인력을 3단계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간호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4년제 간호대학을 졸업해야 취득할 수 있었던 간호사 면허를 지금의 간호조무사와 비슷한 간호실무인력도 취득할 수 있어서다. 복지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간호인력 개편방안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로 이원화돼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 간호인력을 간호사와 1·2급 간호실무인력으로 개편해 하나의 간호인력 체계로 묶는 것이다. 실무간호인력은 지금의 간호조무사처럼 간호보조업무를 하되 일정 경력을 쌓으면 국가시험에 응시해 상위의 직급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도 간호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했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의 방안에 따르면 간호사는 4년제 간호대학 졸업자로, 1·2급 간호실무인력은 2년제 간호대학이나 간호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관련 양성기관 교육 이수자로 자격이 규정돼 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의료인의 면허는 엄격한 교육과정과 면허시험을 거쳐 부여되는 것으로, 간호사가 되려면 간호대학에 입학해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간호실무인력 양성과정을 체계화하고 수준을 높여 양질의 인력을 배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하)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하)

    하나, 남과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살라. 사회 전체를 위해 살면 남이 나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잘되고 행복해진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위하려거든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둘, 고난과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누구에게나 고난과 실패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더 큰 배울 점이 있다. 그걸 부채로 만들지 말고 자산으로 만들면 더 큰 깨달음이 있다. 이를 얻어야 큰 사람이 된다 셋,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특별히 행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건설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박승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호는 푸른 벼를 뜻하는 청도(靑稻)다. 직접 지었다. 여기에는 고향에 대한 추억과 일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박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여름이면 논에서 일했다. 농부들이 논에서 호미로 김을 매면서 지나가면 모가 넘어졌다. 박 교수는 이 뒤를 따라가면서 모를 일으켜 세웠다. 그 뒤를 따라가다 보면 농부들의 땀 냄새, 그리고 모 냄새와 흙 냄새가 어우려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지금도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냄새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을 찾은 것이 푸른 벼, 청도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8년 2월 노태우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과는 그때 처음 만났다. 청와대에서의 활동에 대해 박 교수는 “내가 나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삶이 아니라 떠밀려서 사는 삶이었다”며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내게는 생소한 환경”이라고 회고했다.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박 교수는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경제 정책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팀이 하고, 수석실은 대통령과 경제팀의 중간에서 보고·조정하고 경제팀이 잘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한정한 것이다. “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은 대통령을 만나 진지하게 정책을 협의할 기회가 적어 경제수석이 하기에 따라 행정부를 무력화하고 지나치게 정책에 관여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주택 200만호 건설은 예외였다. “국민의 수요가 밥과 옷에서 집으로 옮겨 가는 시기라 집 부족 문제와 집값 폭등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수석실에서 일단 택지를 물색했다. 서울 시내에는 후보지가 없어 그린벨트를 넘어서 광화문 기점으로 25㎞ 지점, 지하철로는 약 1시간 거리가 신도시 후보였다. 경기 평촌·산본, 그리고 부천 중동이 나왔다. 당시 경기 분당은 유보됐다. 박 교수는 1988년 12월 건설부 장관이 됐다. 200만호 건설을 현장에서 책임지라는 대통령의 뜻이었다. 1989년 초 분당이 후보지로 확정됐고 여기에 박 교수는 경기 일산을 추가했다. 냉전 시대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고, 서울 강남·북의 균형발전을 꾀하자는 논리였다. 당연히 국방부 반대가 심했다. 현지 주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반대도 심했다. 주민들에 대한 설득과 가장 쾌적한 도시로 짓겠다는 약속에서 일산 신도시 개발이 확정됐다. 그래서 “일산은 박승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 교수는 “지금 5대 신도시를 보면 상전벽해라 감회가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9년 7월 18일 공직을 떠났다. 앞서 두달 전 신도시 개발계획은 확정됐지만 분양가 현실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미리 사의를 표명하기는 했다. 그날 아침 노 전 대통령과의 조찬을 통해 물러나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1년 5개월의 관직을 끝냈다. 박 교수는 “관직은 참 허무하더라”고 말했다. 분양가 현실화는 그해 11월 단행됐다. 정부에서 물러나 쉬다가 1990년 다시 강단에 섰다.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전처럼 주택공사 이사장, 자영업자 소득파악 위원 등 다양한 외부활동도 했다. 총 26년간의 대학교수를 마치고 2001년 정년 퇴임을 했다. 그가 가르친 제자로는 백용호 청와대 정책특보,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 있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으로 바쁜 외부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02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경제적 안정을 주고 박사학위를 얻어 교수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한은에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한은에 대한 애정이 강해 “직원 뒤꼭지만 봐도 예쁘다”고 해 아내의 시샘을 사기도 했다. 한은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항상 경제성장과 경기부양 쪽으로 기울어 입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지만 실제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도록 중앙은행에 간섭해 왔기 때문”이다. 2002년 재정경제부에서 일부 금융통화위원에게 금리 결정에 대해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박 교수는 당시 장관에게 항의 전화를 해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한은법 개정도 추진했다. 금융통화위원에 증권업협회의 추천을 없애고 한은 부총재를 당연직 위원으로 하며, 한은이 금융결제제도의 총괄감시권을 갖고,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한은 예산에 대한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의 승인권을 삭제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은 2003년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와 싸우기도 했지만 설득과 타협도 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려고 애썼다”고 회고했다. 박 교수는 한은 총재 내정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세 가지 화폐개혁을 구상했다. 첫째, 우리나라 지폐가 너무 크고 위조가 쉬우니 새 화폐로 바꾸는 것이다. 둘째, 수표 발행과 보관에 드는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5만원과 10만원권 등 고액권을 발행하는 일이다. 셋째,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져 10원짜리 동전은 거의 쓰지 않으니 화폐 액면 단위를 1000대1, 즉 천원을 일환으로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이다. 총재 취임 후 한은 내에 구성한 화폐제도 개혁 추진팀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첫째는 쉬웠지만 고액권 발행이나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당시 정부는 부정적이었다.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고 뇌물을 주기가 편해져 부패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박 교수는 총재 임기 동안 5000원권의 신권 발행만 보고 물러났다. 1000원권과 1만원 신권은 박 교수가 총재에서 물러난 뒤 발행됐다. 고액권 발행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5만원권 발행은 한참 뒤인 2009년에야 이뤄졌다.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 논란은 지금 다시 불거지고 있다. 화폐 단위 변경이 1962년 실행된 뒤 50여년이 지나 지폐 최고액이 500원권에서 5만원권으로 100배 커지는 등 경제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지금도 세 가지를 다 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4년의 한은 총재 임기를 마치고 2006년 3월 은퇴했다. 이 기간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과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은퇴사에서 “한은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은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직에서 떠난 뒤에도 박 교수는 강연이나 저술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박 교수의 조언을 찾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지난해 ‘쫄지마, 청춘!’, ‘다가오는 경제지진’에서 경제 원로로서 조언도 했다. 매일 맨손 체조를 하고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거르지 않으며 체력을 관리한 것이 깨어 있는 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박 교수는 지금 40대인 5남매 중 4남매의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렀다. 청첩장도 없고, 축의금은 받지 않았고 예단이나 함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사돈 측에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혼식 당일 사돈 쪽은 하례객이 많은데 박 교수 측은 한가한 상황도 나왔다.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건 하루면 될 일”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우리나라 혼례의 사회적 낭비가 너무 심하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보내면 세금처럼 느껴지고, 결혼식장에 와서는 돈 내고 얼굴도장 찍은 뒤 자리를 뜨는데 서울의 교통사정상 한나절이 걸리고, 함과 예단 등으로 인한 부모의 갈등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 그가 꼽은 이유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나는 친구들 자녀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면서 안 받겠다고 하니 친구들을 미안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라는 고민에 세 번째 자녀 결혼식 때 다른 사람들처럼 했다. 그런데 해보니 진짜 할 일이 아니었다. “청첩장 보낼 때부터 보낼까 말까 고민하지, 누가 왔는지 알아야지, 돈을 받았으니 정리하다가 얼마 냈는지를 보게 되지, 행여 많이 낸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걸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머리에 남지….” 그래서 네번째 결혼식부터 다시 원하던 대로 했다. 막내 결혼식에는 평소 입던 양복을 세탁해서 입었다. 자식 결혼식도 간소하게 치른 박 교수는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후 장기기증도 약속했다. 이 같은 생각을 30여년 전부터 자식들에게 이야기해 왔다. “자식은 교육시켜서 자립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외국에서는 교육을 시키면 나머지는 사회가 알아서 뒷받침하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부모 협조가 없이는 집 마련도, 자식 교육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집 마련이나 자식 교육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한은 총재 재임 시절에는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썼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그는 “공공재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오늘에는 나 혼자만 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잘사는 좋은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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