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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김송죽 소설 「번개치는 아침」(송화강 5천리:17)

    ◎북만일대 조선족 삶과 투쟁 생생히/비적의 약탈에 맞서 결성한 무장지위대/후일 공산군부대 편입… 국민당군 토벌나서/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반동으로 찍혀/중국 문혁시기 혹독한 핍박·고초겪어 흑룡강성 화천면 성화향 성화촌에 사는 김송죽 선생(59)은 퇴직교원이다.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하얼빈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가있다.그래서 두 내외가 넓은 한족식 집을 지켰다.그는 80년대 초에 처녀작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을 발표한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장편실화 「혈전」을 내놓았다.이미 문명을 얻은 그는 요즘 「관동의 밤」이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처녀작 「번개치는 아침」은 그의 부친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광복직후 조선족부대가 비적과 싸운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국민당군 별동대 성격의 비적은 광복직후 북만일대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공산당을 적으로 싸워야했던 당시 국민당에 북경에서 먼 북만은 사실상 통치지역 밖이었는지 모른다.그런 탓에 국민당을 돕는답시고 나선 별동대속에는 만주국시절 헌병이나 경찰관도끼여있었다는 것이다. ○피땀어린 농토 등지고 유랑 그리고 실제 국민당 비호를 받았다.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상장 사문동과 제1집단군 총사령 상장 이화당,국민당 동북 정진군 총지휘 중장 장우신이 별동대를 조종했다.당시 그들의 횡포를 고발한 노래말에 「사(사문동),이(이화당),장(장신우)은 불지르고 살인하니」라는 내용이 들어갈 정도였다.북만일대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공산당이 일찍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이 불타버리고 주검이 들판을 덮었다.더구나 조선족은 늘 사냥의 대상이 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그런 일로 해서 조선족들은 피땀으로 일군 땅을 버리고 다시금 유랑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이 무렵 조선족 선각자들이 일어났다.무장자위대를 만들어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그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산당 군부대에 속속 편입되었다. 그러한 무장자위대 가운데 맨 먼저 공산당 군부대에 편입한 조선독립대대는 1945년 11월25일 연안에서 주덕해와 손을 잡았다.조선의용군 제3지대로 개편한 조선독립대대는 다음해 4월28일 하얼빈에서 국민당군과 싸웠다.하얼빈이 국민당군 손에서 떨어져나오자 당기관과 발전소,송화강철교,비행장 경비를 담당했다가 국민당군 토벌에 나섰다.1946년 9월2일 하얼빈시 향방구 사리툰전투에서는 제3지대 소속 조선족 21명이 전사했다. 김송죽 선생의 부친이자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모델 김병념은 광복직후 동북민주연군에 참가했다.제1연대 조선족대대인 제2대대 5중대 1소대에 배속되었다.소대에서 3반장 직책을 맡은 그는 1946년 가을 대대를 따라 흑룡강성 화남현 발전소로 이동했다.그해 11월6일 주변정찰을 나갔다가 국민당군 병력과 교전이 붙었다.그 전투에서 김병념은 대대참모 김해정 등과 함께 전사했다.그리고 얼마뒤인 11월20일 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사문동이 붙잡혔다.사문동은 12월23일 벌리현에서 총살되었다. 김송죽 선생은 소년시절을 부대에서 보냈다.부친 김병념이 전사한 이후에도 모친이 부대 재봉대에서 군복을 짓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영내에서 살았다.그러다 부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친과 함께 벌리현에 남았다.할아버지 김석길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요,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다. ○소년시절 군부대서 생활 할아버지 김석길은 1884년 평남 수난 태생이었는데,1912년부터 계몽운동에 참여했다.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연고로 지명수배를 받자 제자 9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집안과 휘남을 거쳐 왕청에 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북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1925년 신민부에 들어갔다.1928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파견한 의란현에서 이도강 등에 4개의 학교를 세웠다. 김송죽 선생이 스무살 나던 해인 1958년에 할아버지 김석길은 흑룡강성 화남현에서 세상을 떴다.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민족의사들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항일운동을 했으면서도 공산당이 이끈 투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배제되었다.오늘날 흑룡강성 항일열사 가운데 민족독립운동가는 한 사람도 없다.물론 김석길 같은 분들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손들은 오히려 모진 핍박을 받았다.더구나 문화대혁명시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어야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송죽 선생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유로 반동민족주의자가 되었다.그의 죄목은 반동민족주의자 말고도 역사반혁명분자의 아들,반혁명집단의 두목,반당분자,반사회주의분자 등 10가지에 이르렀다.부친 김병념이 국민당군과 투쟁한 사실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부친이 광복전 강제로 끌려가 철도경호대에 있었다는 사실만 들추어 혁명열사가 계급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김송죽 선생 자신이 써놓았던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원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비적토벌을 내용으로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으나,김동철·김해정이 조직한 조선족부대를 문제로 삼았다.김동철과 김해정은 본래 항일연군 8군에서 일제와 싸웠다.그러다 1939년 군장 사문동이 일제에 투항하자 숨어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조선족부대를 창설했던 것이다.그 뒤에 동북민주연군 제1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던 조선족부대가 1949년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반동으로 몰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북한을 수정주의로 보았던 터라 조선족부대는 반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 틈틈이 습작 그는 옹골진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모진 매를 맞고 이른바 돌림투쟁을 숱하게 당했다.그래도 푸른 대나무처럼 곧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자신의 이름(송죽)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감옥생활 4년을 버티었다.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소설 「번개치는 아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1965년 탈고하고 하얼빈 조선족문화관에 원고를 보내놓은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문학수업은 어떤 의무감에서 이루어졌디요.청소년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리 독립운동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서 그걸 언젠가 정리한다는 생각을 했습네다.할아버지 유언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과 비적의 횡포를 역사로 기록하라는 것이었디요.할아버지한테 듣고,어렴풋하나마 어려서 실제 보아왔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설을썼던 것이외다.1957년 벌리중학을 나와 농사일 틈틈이 그런 꿈을 키우면서 실제 습작을 해왔디요.할아버지 유언과 내 꿈은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졌습네다』 김송죽의 「번개치는 아침」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원고를 탈고한지 꼭 18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그에게는 물론 가족사를 문학적으로 정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한 대서사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요즘 탈고한 장편소설 「관동의 밤」도 북만의 독립운동사를 형상화한 것이다.자그마치 75만자나 되는 작품을 출판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 “정리해고 요건 못갖춘 「대기발령자 면직」 무효”

    ◎서울고법 원고 승소판결 대기발령기간만료 때까지 복직되지 않으면 자연해고된다는 사규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했다 하더라도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6부(재판장 이종욱 부장판사)는 16일 성모씨(서울 동작구 흑석동)가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조합측의 항소를 기각,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사규정에 감원이 불가피한 경우에 3개월간 대기발령할 수 있으며,대기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복직되지 않은 근로자는 자연면직할 수 있도록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그러나 회사측이 정리해고를 하려면 해고를 하지 않으면 회사운영이 위태로울 정도로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어야 하는 등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다.
  • 법대로 하라(사설)

    새로운 노동관계법에 항의하는 근로자들의 파업이 전국으로 번지며 그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다.건국 이후 처음 벌어지는 전국적인 총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경제에도 큰 손실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번 파업은 사용자가 권한을 지닌 임금이나 후생 등 근로조건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원천적으로 불법이다.노동계도 불법임을 잘 알면서 파업을 강행했기 때문에 여론을 의식해 마음을 바꾸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따라서 정부와 사용자는 「법대로」 냉철하게 대응하는 길 밖에 없다고 본다.의도적으로 강경하게,또는 온정주의로 대해서는 안된다.불법에 철저히 대응하지 못하면 새로운 노동관계법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파업은,특히 대형사업장에서는 불법과 무법이 횡행한 반면 그에 대한 제재는 미미했다.어떤 명목으로든 임금은 다 받았고 설사 불법행위로 구속되거나 해고당해도 시일이 지나면 복직을 관철해 왔다.잃는 것이 전혀 없으니 노조로서는 파업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파업이 오래 가더라도 이번에는 법을 제대로 지켜 이런 폐습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과 이를 선동한 노조단체의 지도자들을 다같이 업무방해나 이의 교사범 또는 공동정범으로 다스려야 한다.지하철과 병원 등 공공부문의 파업으로 국민들이 겪게 될 불편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안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사용자들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철저히 적용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는 개정된 내용들이 지난 봄부터 자신들은 물론 경영계와 공익위원들이 참여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 무수한 토론을 거치며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걸러졌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파업때문에 옛날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 빨리 파업을 끝내야 한다.이번에 미흡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반영할 수 있는 「2차 노사개혁」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 이문옥씨 감사원 복직

    감사원은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결과를 양심선언으로 폭로,지난 91년 파면당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을 4일자로 복직시켰다. 이는 공무상 비밀누설행위로 구속기소됐던 이씨가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판결을 받은데 이어 지난달 감사원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도 대법원으로부터 파면무효확정 파결을 받은데 따른 것이다. 이씨는 파면당시 직급인 4급 감사관으로 복직,이날 출근했다.
  • 신한국/대선대비 조직정비 본격화

    ◎새달까지 2차지구당 조직정비 마치기로/당원교육·청년조직 지역별 창립대회 한창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의 조직정비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8∼9월 13개 지구당 개편대회에 이어 다음 달에는 10개 안팎의 사고·궐위지구당을 대상으로 2차 지구당 조직정비가 마무리된다. 충북 제천·단양(위원장 송광호)은 영입한 김영준 의원의 교체가 확정됐다.포항북은 윤해수 위원장이 사퇴서를 제출,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이병석 당부대변인이 내정단계에 있다. 구본태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맡고 있던 양천을지구당에는 최후 집전위원장과 박진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최한수 위원장의 교수 복직으로 공석이 된 송파병 지구당 위원장으로는 전국구인 윤원중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영등포을(최영한)에는 구청장 출마경력을 지닌 박영묵씨가 유력하고 충북 청주 흥덕(윤석민)은 윤경식 변호사와 민주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진태씨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충남 보령(최일영)은 당정책국장 출신의 김경두씨와 윤흥식 국회의장 공보비서관 등이,대구 수성을(윤영탁)은 박창달 경북도사무처장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최인기 위원장이 여수수산대 총장으로 임명된 전남 나주와 전남 함평·영광도 교체 대상지역구에 속한다. 지도부는 다음주 당무회의에서 신임조직책에 대한 최종 인선안을 보고할 계획이다. 지구당 정비와 함께 당원들의 정신교육도 한창이다.지난달 13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천안 중앙연수원에서의 당원교육은 오는 12월까지 모두 34기 2만여명을 상대로 실시할 예정이다.특히 대선을 앞두고 중앙상무위원들과 전국 지구당 주요당직자들의 각오를 다잡는다는 방침이다. 또 당 청년조직인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가 22일 전국대의원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6차 임시총회를 가진데 이어 다음달 20일까지 지역별 창립대회를 마칠 계획이다. 오는 27일에는 김형오 기조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대선참관단을 미국에 파견,효율적인 선거관리를 위한 자료수집을 벌인다.〈박찬구 기자〉
  • 명동성당 농성(외언내언)

    1892년 5월8일 서울 북달재언덕에서 당시 교황청 조선교구 교구장인 블랑주교(프랑스인)가 첫삽을 떴고 6년여의 대역사끝에 1898년 5월29일 장엄한 고딕양식의 종현성당이 축성됐다.이것이 오늘의 명동성당.종현이 해방과 함께 명동이란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최초의 성당은 1892년 축성된 서울 약현성당)은 아니지만 해방전 역대의 조선교구장이 미사를 집전했고 지금은 김수환 추기경이 몸담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본산(본산).사적 258호로 지정된 유서깊은 곳이다. 그런데 지난 87년 「6월항쟁」이후 일부 운동권학생과 근로자가 걸핏하면 이 성당으로 몰려들어 시위·농성장으로 삼는 바람에 살벌한 각종 구호가 난무하고 화염병과 최류탄이 날아들곤 했다. 성당은 「신앙의 성소」이기 때문에 공권력이 쉽게 투입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인데 이로 인해 명동성당뿐 아니라 그 주변의 상인도 막심한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견디다 못한 상인들이 90년6월 성당일대를 「평화의 거리」로 선포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그뿐 아니다.94년6월에는 명동성당 사목위원회가 「용서와 화해의 전당이 투쟁과 미움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성당내에서의 시위와 농성을 일체 허용치 않기로 선언했으나 이 선언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올 들어서도 전국해고자복직위원회회원의 농성을 비롯,10여건의 불법시위와 농성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고 성당주변에는 볼썽사나운 천막촌이 들어섰다.그러나 명동성당의 성직자와 신도들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지난 15일밤 성당주변의 농성용천막 5개를 모두 강제철거해버린 것.강제철거에 나선 한신도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성당을 방패막이로 삼는 행위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당연한 다짐이다.성당뿐만 아니라 교회·사찰 등 신앙성소의 권위는 종교인 스스로 세워야 한다.〈황석현 논설위원〉
  • 서울신문 오늘부터 전면 가로쓰기

    ◎정보화시대 부응… 읽기 쉬운 신문으로/독자층 84%가 가로쓰기 한글전용세대/산뜻한 지면구성으로 한층 높여/5세대 CTS 도입 앞두고 정보가공 쉽도록 서울신문이 1일부터 전면 가로쓰기를 시행한 것은 신문은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독자제일주의정신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당연한 결정이다.「왜 가로쓰기이어야 하는가」하는 당위논쟁은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광복직후부터 가로쓰기를 해온 각급 학교 교과서를 비롯,각종 잡지·단행본 등 출판물 전반에 걸쳐 가로쓰기는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뿐만 아니라 신문계에서도 3개의 스포츠신문과 일부 종합일간지에서는 가로쓰기체제를 택해 독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하지만 서울신문이 가로쓰기를 채택한 것은 이같은 단순한 대세론 때문만은 아니다.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근거에서 서울신문은 가로쓰기를 단행했다. 첫째 한글전용세대가 신문의 주요독자층으로 떠올랐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948년 「한글전용법」이 공포된 후 교육받은 한글세대의 비율은 전체인구의 58.3%로 신문 주독자층(15∼64세)의 84.1%를 차지한다(90년 기준 조사).구매력 있는 인구의 60%이상이 한글 가로쓰기세대로 주된 독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연세대 남기심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지난 60년대 가로쓰기·세로쓰기 논쟁끝에 가로쓰기 우세쪽으로 여론이 모아졌지만 일부 기성층의 반대로 신문에서의 가로쓰기가 실현되지 못했다』며 『서울신문의 가로쓰기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결단』이라고 말했다. 둘째 CTS제작과의 상호연관성 문제다. CTS방식의 경우 가로쓰기 중심으로 지면을 구성하면 단수를 줄이고 블록개념을 도입해 지면을 단순화할 수 있어 제작이 훨씬 효율적이다.특히 제5세대 CTS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서울신문으로서는 제작형태를 가로쓰기에 맞춰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셋째 가독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상인이 두 눈을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볼 수 있는 범위는 좌우 180도,상하 120도다.또 눈만 움직여 볼 수 있는 범위는 상하 75도,좌우 90도로 가로쓰기지면이세로쓰기지면에 비해 쉽고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신문의 가로쓰기는 국민의식차원에서도 검토되어야 한다.우리의 신문편집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쳐온 일본은 아직까지도 「독자의 오랜 열독습관존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세로쓰기체제를 고수하고 있다.『의식의 전환은 흔히 시대의 변화를 앞서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광복 반세기를 훨씬 넘긴 이 시점에서 일본식 신문제작관행은 하루빨리 청산돼야 한다.세로쓰기 신문에 길들여진 일부 장년층세대에서는 『가로쓰기는 눈에 익지 않고 가볍게 읽힌다』며 가로쓰기 반대론을 펴기도 한다.하지만 이것은 불편함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편한 데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요 편견일 뿐이다. 가로쓰기는 정보화사회의 흐름에도 한층 적응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정보화시대의 총아인 컴퓨터 자체가 가로쓰기체제를 택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적합하다.이 점에서 곧 제5세대 CTS제작시스템을 도입할 서울신문이 이번에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한 것은 정보화사회와 컴퓨터시대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대 이정춘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그동안 신문사들이 가로쓰기를 망설여온 것은 기존의 설비나 기술상의 문제 때문』이라며 『신문상품의 경쟁력확보차원에서도 앞으로 모든 신문이 가로쓰기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로쓰기지면제작에 대해 한글학계나 신문학계에서는 『가로쓰기신문이 독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독성 높은 다양한 글자꼴을 개발하고,편집스타일을 「젊은 신문」에 맞게 혁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초일류고급정론지를 지향하는 서울신문의 이번 가로쓰기 개혁은 독자와 신문의 거리를 단축,보다 알찬 기사를 독자가 쉽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이같은 변화가 단순한 외형상의 변화가 아닌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도록 서울신문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 “학교에 자율·책임 함께 부여”/유인종 신임 서울시 교육감

    ◎지연·학연 탈피 인사 쇄신 『각급 일선학교와 관할 지방교육청에 최대한의 자율과 자유를 부여하겠습니다.이에 대한 책임도 묻겠습니다』 제2대 서울시 민선교육감으로 당선된 유인종 교육위원(64·고려대 교수)은 7일 『열린 교육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일선학교와 교육행정이 조화를 이뤄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교육개혁 시대에 걸맞는 혁신적인 교육행정을 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동안 교육위원회와 교육청의 협조가 원활하지 못하는 등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전제,『교육감실을 개방,누구나 드나들며 허심탄회하게 교육행정을 토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혈연·지연·학연 등의 고질적인 틀을 깨고 능력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발탁해 인사행정의 쇄신을 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입시에서 고교 학력격차를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스럽게 생각지 않는다』며 『고교의 차별화보다는 학교에서의 수업방법과 내용을 다양화하는 게 더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민학교의 조기 영어교육에 대해서는 『창의롭게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할 어린이들에게 외국어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반대의사를 피력하고 『일선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보충수업도 본래의 의미를 되찾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감으로서는 일선학교 경험이 짧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원래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출발했으나 담임을 맡았던 반의 학생들이 교내 폭력으로 퇴학 당할 처지에 놓여 이들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동안 9년간의 교육위원생활 등을 통해 보통교육의 행정을 공부한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의 미복직교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중앙대 영문학과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을 졸업했다.중앙대 교수(교육학과)인 부인 이재우씨(59)와의 사이에 3남1녀.
  • 광주 대우캐리어/어제 재파업 돌입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 대우캐리어 노동조합이 7일 재파업에 돌입했다. 대우캐리어 노조는 7일 상오 광주시 북구 임동 광주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벌인 뒤 『해고자 전원복직과 15% 임금인상 등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 회사노조는 지난달 22일부터 6일간 1차 파업에 들어간 뒤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장하는 주 42시간 근무를 고집하며 부분파업 또는 태업을 벌여왔다.
  • 경영계 주장(노사관계 개혁 과제:하)

    ◎“변형근로제­정리해고제 도입해야”/“경쟁력 위해 퇴직예고제 실시 바람직”/노조대표에 단협 체결권 요구/노동계선 “밀실흥정 우려” 반대 지난달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경영계도 노동계 못지않게 자신들의 이해를 앞세운 주장을 적지 않게 개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동계일각에서는 경영계가 기업의 이익에만 집착한 나머지 근로자를 인격체가 아닌,생산원가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만 보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는 비난도 나온다.말로는 노사공생을 외치면서 사용자 일방통행식의 70년대 노사관계로 회귀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대표적인 예로 변형근로제와 정리해고제 도입주장을 든다. 경영계대표들은 노무비절감과 경영의 유연성확보를 위해 이들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경영계가 변형근로제의 도입으로 인건비를 6·4%정도 절감시킬 수 있다는 측면만 중시했을 뿐 급여삭감에 따른 보완책강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불만이다.노사개혁은 근로조건을지금보다 더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요구다. 정리해고제 역시 무작정해고요건의 완화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고용불안심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도입의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따라서 앞으로 세부적인 논의과정에서 정리해고제의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대신 사용자의 우월적 위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영계대표들은 2차 토론회에서 현행 대법원 판례에서 근로자의 지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는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자」는 물론 일단 해고되면 복직이 확정될 때까지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또 노조대표자에게 교섭권뿐 아니라 단체협약체결권도 부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용자로서는 전문노동운동가의 개입을 차단하고 단체교섭이 타결되더라도 노조 집행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켜 협상을 원점으로 돌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이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이해된다.그럼에도 지금까지의 노사관행으로 볼 때 사용자측의 해고권 남발이나 밀실흥정 가능성 등을 들어 노동계가 끝까지 반대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영계대표들은 또 단체교섭협상에 따른 비용절감을 위해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되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중에는 신협약의 체결이나 협약변경을 요구하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평화의무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노동계는 이에 대해 급속한 경제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변형근로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상충된다며 반대한다. 경영계는 이와 함께 3차 토론회에서 휴업수당이 통상임금을 초과하는 불합리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며 휴업수당의 지급기준을 평균임금의 70%에서 통상임금의 70%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노동계는 평균임금의 70%가 통상임금을 넘어설 만큼 현행 임금체계가 왜곡된 것은 그동안 사용자가 임금인상 때 초과수당 등 각종 수당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수당산정의 기초가 되는 기본급을 묶는 대신 상여금의 비중을 늘리는 편법을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반발한다.말하자면 최초 원인제공자가 사용차측이라는 것이다. 5차 토론회에서 시간제근로제를 도입하되 이에 대해서는 임금·해고·휴일·휴가·재해보상 등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의 적용을 배제,사용자가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노동계가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 같다. 이밖에 해고예고제와 마찬가지로 근로자도 퇴직 30일 전에 퇴직사실을 예고하도록 한 「퇴직예고제」 도입과 국민연금제도나 고용보험제도가 아직 정착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퇴직금제도를 강제사항에서 임의사항으로 바꾸자는 요구 등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상식선을 벗어난 요구를 남발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문제지만 노사개혁을 하려면 경영계가 「열린 경영」에 솔선수범하는 등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노개위의 일치된 목소리를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우득정 기자〉
  • 정리해고제 등 도입건의/전경련,3자개입·노조정치금지는 유지 촉구

    재계는 23일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변형근로시간제와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근로자파견법을 제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또 노조의 정치활동과 제3자 개입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말 것도 촉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하오 6시 30분 서울 롯데호텔 38층 메트로폴리탄 룸에서 30대 그룹 종합기획조정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임 노동부장관 초청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건의했다.전경련이 노사문제에 대해 공식 견해를 밝히기는 처음이다. 기조실장들은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는 유지돼야 하며 해고자 복직문제는 본질적으로 노사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법원이 판단·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권혁찬 기자〉
  • “노령수당 65세이상 지급 검토”/김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사회·문화 질문·답변 □질문 ­종생부 등 교육개혁안 부작용 대책은 ­특별세로 노인복지기금 마련할 뜻은 □답변 시화호 폐수방류 감사결과따라 조치 ○대정부 질문 ▲정희경 의원(국민회의)=권위주의적 하향지시에 따른 교육개혁안의 시행이 종합생활기록부,학교운영위원회,교내과외 부활등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대책은.구총독부 건물 철거가 과연 국립박물관의 원활한 운영에 우선해야 할 대역사인가.잇따른 문화재 위조 등 소홀한 문화재관리를 방지할 대책은 무엇인가.2002년 월드컵을 문화월드컵으로 만들 복안은. ▲정상천 의원(자민련)=대기오염이 이 상태로 간다면 2002년 월드컵 개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대책은.불요불급한 정치성 예산을 줄이고 환경예산을 과감하게 계상하라.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복수노조,제3자 개입금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외국인 근로자의 부당처우등에 대한 대책은. ▲김명섭 의원(신한국당)=환경관련업무는 자원이용 및 관리정책,경제정책,국토이용정책과 유기적으로 종합조정돼야 한다.연간 환경사고예방일지를 작성해 홍보·지도할 의향은.유류,청량음료,주류 등 국민 다소비 상품에 노인복지특별세를 부과,노인복지기금을 마련할 용의는. ▲김종학 의원(자민련)=환경오염이 극심한 여천공단내 주민들의 이주대책은.또 전국의 공단 주민을 환경오염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수입식품에 대해 통관이나 검역절차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문화재 지정 절차를 공개제로 바꾸고 지정예고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강희 의원(신한국당)=노사문제에 있어서 노조와 기업·정부 모두 불만과 피해의식이 함께 고조되어 심각한 문제다.군부대 주둔지를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부지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무노동무임금 원칙,해고자 복직문제,정리해고제,작업중지권,복수노조 허용 등에 대해 한국노총과 기업인,민노총 등의 의견이 다른데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신기남 의원(국민회의)=총리는 방송의 정치적 중립 문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가.지난 총선 기간중 일어난 북한의 DMZ 사건에 대한 언론의과잉보도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다.공보처에 방송 인·허가권을 주는 것은 위헌이다.군 수사기관이 중요인사 5천명의 개인적인 전화통신을 불법 도청하고 있다.무슨 목적으로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황성균 의원(신한국당)=복지행정과 관련한 정부조직기구를 개편해야 한다.각종 사회보험제도를 각 부처가 분산 주관하고 있어 국가차원의 통합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회복지 서비스 사업예산을 대폭 인상하라.교육개혁추진과 관련해 시·도 종합평가를 실시,그 결과에 따라 예산을 차등지원할 용의는. ○정부측 답변 ▲이수성 국무총리=정부시책에 대한 적극적 홍보를 위해 정부부처의 정례브리핑제를 적극 검토하겠다.조세형평을 고려,근로소득세 감면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신문사가 무가지를 포함한 부수를 바탕으로 광고료를 받는 것은 불공정거래의 소지가 많다.시화호 폐수방류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의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엄중 입법조치하겠다. ▲안우만 법무부 장관=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20억원 플러스α설」과 관련,신한국당 강삼재 의원의 명예훼손혐의에 대한 수사는 노태우씨의 비자금 전모가 드러나야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안병영 교육부 장관=오는 2005년까지 유치원수를 현재 1만9천2백여개에서 2만7천개로 늘려 3∼5세의 유치원 취원율을 90%까지 높이겠다. ▲정종택 환경부 장관=앞으로 울산,온산 등 대기와 수질오염이 심각한 지역에서 오염물질총량규제를 시험해 본 뒤 여건이 조성되면 전면 시행하겠다.시화호 자연정화계획은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계획에 쓰일 4천5백억원은 전액 한국수자원공사가 충당토록 하겠다. ▲김양배 보건복지부 장관=70세이상 지급되는 노령수당을 내년부터 65세이상으로 확대하고 지급액을 인상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다.오는 10월부터 제작회사 또는 판매회사가 자사제품의 원료와 완제품의 품질검사를 의무화하는 식품회수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진념 노동부 장관=근로자 파견근무제가 법제화되지는 못했으나 근로자 파견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제도개선등에 최대한 반영하겠다. ▲오인환 공보처 장관=위성방송사업에 재벌과 언론의 참여를 허용하되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종합방송의 복수소유제도 도입할 방침이다. ▲이경문 문화체육부 차관=문화재지정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자문기구인 문화재자문위를 심의기구로 전환하고 국보심의위원회를 설치하겠다.〈진경호·백문일 기자〉
  • 현대중 파업 결의

    【울산=이용호 기자】 현대중공업 노조는 10일 쟁의행위 돌입 여부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전체 조합원 2만1천5백82명 중 61.5%인 1만3천2백64명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쟁의행위대책위원회를 소집,앞으로의 쟁의일정을 결정키로 했다. 노조는 지난 4월 26일부터 회사측과 ▲주 40시간 근무 ▲월급제 시행 ▲해고자 복직 ▲작업중지권 등 64개항의 단체협상안에 대해 30여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
  • 현대자 노사잠정 합의안 도출/3년연속 무분규 타결기대

    ◎해고자 복직·생산성 향상 노력… 신뢰 쌓아/타사업장·현총련 쟁의일정에 파급력 클듯 국내 최대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울산 현대자동차의 올해 임금협상이 노사간 대화를 통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함으로써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 기대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이 안이 가결되면 임·단협 3년 연속 무분규 타결 기록과 함께 자율적 협상관행을 정착시켜 지난 93년까지 들어온 과격노사 분규를 주도하는 「초강성 노조」라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국내 제조업체 노조중 가장 많은 조합원을 무기로 지난 93년 7월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과 함께 「파업=공권력 투입」으로 이어지는 국내 과격 노사분규를 주도했다. 그러나 지난 93년 9월 출범한 노조집행부가 온건·실리노선을 추구하면서 현총련을 탈퇴,노사간 신뢰하는 기반을 닦은데 이어 지난해 출범한 현 정갑득위원장 집행부가 강성 이미지를 씻고 자율협상의 관행을 정착시켰다. 정위원장은 강·온간의 노·노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회사측과 대화를시작,지난해 11월 양봉수사건으로 해고된 이현우씨(30) 등 21명을 「재입사」형식으로 복직시키는데 전격 합의했다. 노조집행부는 과거 회사에 대해 무조건 요구만 하던 조합운영 행태에서 벗어나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조합원들을 직접 설득하는 등 근로의욕을 불어넣고 불량률을 줄이는 등 품질개선에도 앞장섰다. 이같은 노력은 노사간에 신뢰를 쌓게 돼 지난 5월14일 올해 임금협상이 시작되면서 무분규 타결을 미리부터 예상하는 징후를 보였다. 조합원 3만2천8백여명으로 민주노총과 현총련의 핵심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의 임금협상이 잠정합의 됨에 따라 국내 다른 사업장과 연대파업을 선언한 현총련의 올해 쟁의 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울산지역 경제계와 노동계는 최근의 어려운 국내 경제사정을 감안해 국내 자동차 업계를 이끌어 가는 현대자동차가 올해도 무분규로 협상을 타결,타사업장에 모범을 보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울산=이용호 기자〉
  • 단협 교섭­체결권 일원화 건의/경총,노개위에

    ◎조합원 투표 거치는 이중절차 개선/무노무임·해고자 복직 등 교섭금지 입법도 추진 재계는 현행 단체협약 교섭권과 협약체결권이 분리·운영되고 있는 노동계 관행이 노사분규를 장기화시킨다고 보고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에 노동관련법 개정때 교섭권과 체결권을 일원화시키도록 촉구하기로 했다. 또 노사간 쟁점이 되고 있는 무노동 무임금과 해고자복직 등은 교섭금지사항으로 법에 명시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이동찬)는 노동관련법 개정과 관련,재계입장을 정리한 이같은 내용의 건의안을 9일 열릴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에 제출키로 했다. 경총은 이 건의안에서 『현재 조합원으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조합대표가 교섭석상에서 사용자대표와 합의하더라도 조합원 총회나 찬반투표를 거쳐 통과돼야 단체협약이 체결되는 이중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조합대표가 사용자와 합의한 사항이 조합원투표에서 부결돼 재협상하는 부작용이 없도록 노동관행 개선차원에서 단체협약 교섭권과 체결권의 일원화가 절실하다』고 밝혔다.기아자동차의 경우 올 단체협상에서 조합대표와 사용자가 잠정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으며 사용자대표와 재협상을 통해 타결되는 곡절을 겪었다. 경총 관계자는 『현행 노동조합법에는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총회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노조대표가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산업현장에서 교섭권과 체결권이 이원화되는 현상이 있었다』며 『노사관계법과 제도·관행의 개혁차원에서 단체교섭권과 체결권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또 무노동 무임금은 근로계약의 본질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해고자복직도 노사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정리했다.단 해고의 절차나 기준은 조합원의 임금 및 복지와 마찬가지로 교섭대상의 범주에 넣기로 했다. 이밖에 노동계가 토요격주휴무와 같은 변형근로시간제 도입 등에 유연한 자세로 나올 경우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허용(하급단체 복수노조는 반대)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복안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권혁찬 기자〉
  • 정책혼선 없게 부처 조율 필요

    ◎노사개혁 등 현안싸고 부처 이기주의 노출/국제수지 전망 빗나가자 수정안 내놓기도 경제관련 부처들간에 주요 현안을 싸고 잦은 정책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굵직한 현안들을 놓고 관련부처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경제가 내리막길로 줄달음 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어 효율적인 정책추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수지 전망과 대책은 정책혼선을 빚게 한 대표적인 사례.재경원은 당초 올 경상수지가 50억∼60억달러의 적자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가 지난 6월에 수출증가율이 2%로 급락하자 뒤늦게 수정전망을 내놓았다.수정전망치는 1백10억∼1백20억달러로 당초 전망치의 두배나 돼 정부의 경제예측능력에 의문을 갖게 했다.특히 경제운영을 책임진 재경원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연간 적자규모를 1백억∼1백10억달러로 예상했다가 『수출 등 경제상황에 대한 배경설명을 한 것일 뿐』이라고 발뺌하기도. 라웅배 부총리는 최근 노사가 첨예하게 맞서있는 임금·단체협상 막바지에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근로자파견제 등 노사개혁 3대현안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민로총 등은 즉각 장기농성에 들어가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와도 마찰을 빚었다.노개위의 한 관계자는 『노·사 공익위원들이 아직 논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방침을 성급히 발표한 것은 시기상조이며 노개위의 중립성 보장이란 측면에서 유감』이라고 말했다.그는 완곡한 우회어법을 구사했지만 「부총리가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제철소 허용문제도 정책혼선의 또다른 사례.박재윤통상산업부 장관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현대가 사업계획서를 내면 공업발전심의회에서 심의할 계획이지만 그 결과에 관계 없이 자체판단에 따라 제철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언론이 박장관의 발언을 「허용 시사」로 보도하자 통산부는 이를 부인하는 공보관 공식논평을 내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이밖에도 공기업노조의 해고자 복직요구를 수용토록 한것은 청와대 개혁파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노동부의 기존 정책방향에 비추어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지적이다.〈염주영 기자〉
  • 노사 이해대립 12개쟁점/16일부터 공청회/노개위

    해고자 복직,무노동 무임금 등 노동관련 쟁점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재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위원장 현승종)가 오는 16일부터 이달 말까지 쟁점 12개 항목에 대한 공청회를 갖고 노사 당사자와 각계의 여론을 수렴한다.〈관련기사 22면〉 노사의 이해가 상반되는 쟁점 2개씩을 묶어 6회에 걸쳐 열리는 공청회는 쟁점을 부각시켜 국민의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법개정 방향에 대한 합의분위기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다. 공청회 일정 및 주제는 ▲16일 근로시간·휴일·휴가 및 복수노조 ▲18일 해고제도 및 노사협의제 ▲22일 임금·퇴직금 제도 및 노동조합의 활동 ▲23일 노동위원회 제도 및 쟁의행위 ▲29일 여성 및 비정규 근로,단체교섭과 단체협약 ▲31일 공공부문 노사관계,공익사업의 분쟁조정 등이다. 노사관계 개혁위는 이같은 쟁점에 대한 법률개정안을 오는 9월10일까지 마련,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우득정 기자〉
  • 퇴임 총장·학장/교수 자동복직/교육부 추진

    내년부터 국·공립대교수가 재직중인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으로 취임한 뒤 정년전에 임기가 만료되면 교수로 자동복귀한다. 교육부는 4일 교수가 총장에 재임하는 동안은 휴직처리해 총장임기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교육공무원법 등을 개정,97년에 임기를 시작하는 총장부터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교수가 총장에 선임되면 교수직이 의원면직처리돼 총장임기가 끝난 뒤 교수직에 복귀하려면 신규임용절차를 거쳐 특별채용형식으로 복귀해야 했다.〈한종태 기자〉
  • 재계 “무노무임 원칙 고수”/해고자 복직 등 공동대처

    ◎근로시간 단축도 시기상조 확인/30대그룹 노무담당 긴급 결의 재계는 노사간 쟁점으로 부각된 무노동 무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작업중지권,해고자복직 문제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 고수 등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 이같은 재계입장은 최근 노사협상에서 기업들이 노동계 요구를 대거 수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결정된 것이어서 앞으로 노사협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같다. 30대그룹 노무·인사담당 임원들은 2일 하오 서울 가든호텔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긴급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의했다. 재계는 회의에서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근로계약의 본질로 논란이 될 수 없다고 못박고 근로시간 단축도 임금인상이 생산성을 웃도는 현실에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확인했다.노조에 대한 작업중지권 부여와 관련,『이는 사용자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개별근로자의 긴급대피권은 법률에 의해 당연한 권리로 인정된다』고 밝혔다.또 해고자복직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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