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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지교사 징계회의록 공개 마땅

    서울 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尹炯漢부장판사)는 20일 ‘촌지리스트’ 파문으로 해임됐던 초등학교 여교사를 복직시킨 뒤 감봉처분으로 바꿔준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심사 회의록을 공개하라며 참여연대가 낸 정보비공개결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육현장에서 교사가 행한 비위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알권리 등 공익을 위해 필요한 만큼 피고가 지난해 7월 내린 징계심사회의록 비공개처분을 취소하라”고 밝혔다.姜忠植 chungsik@
  • ■반도체 포기 이면

    그토록 집착하던 LG반도체의 지분을 ‘깨끗이’ 포기한 LG 具本茂회장(얼굴)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具회장은 7일 긴급 사장단회의를 소집,반도체를 포기하게 된 배경과 각오를 밝혔다.具회장은 “착잡한 심정은 이를 데 없지만 대국적 견지에서 결단을내렸다”며 “반도체 양도로 마련될 재원은 화학·에너지,전자·통신,서비스,금융에 투자해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반도체 지분을 포기하는 대가로 주식시가 1조3,000억원에 향후 5년간의 통합 시너지효과 62억달러 중 31억달러(3조3,000억원),그리고 특허권을 비롯한 프리미엄 등 최소 5조원 이상의 현금을 현대로부터 받아내겠다는 심산이다. 과연 그럴까.빅딜을 지켜 본 사람들은 석연치않다며 머리를 젓는다. 알려진 것과 달리 현대 鄭夢憲회장과 具회장은 지난 4일 단 한차례 협상테이블에 앉았을 뿐이다.6일 金大中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빅딜을 결심했다는 LG측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가’를 얻어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대가로는 곧 민영화되는 공기업에대한 우선 인수권과 보상빅딜이 거론된다. LG측은 “보상빅딜설은 말그대로 설(說)”이라며 일축해 왔지만 최근 자세가 달라졌다.고위관계자는 “현대에는 탐나는 물건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면서도 “현대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니 현대가 제의해 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보상빅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데이콤을 비롯,온세통신 하나로통신 등 현대가 참여하고 있는 유선통신사업의 지분과 현대의 우호지분을 넘겨받는 것이 그것이다.데이콤은 LG가 공개한 지분 5% 외에 계열사와 우호지분을포함해 30% 이상 갖고 있는 상태.한국통신과 맞먹는 거대 통신그룹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LG의 승복직후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나서 “LG가 잘되도록 도와주라”고 한 발언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한편에선 현대가 5조원 이상의 현금동원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반도체 사업포기라는 ‘초강수’로 아예 통합협상을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있다.어쨌든 후속 빅딜과 반도체 실무협상에서 具회장의 노림수가 보다 가시화될 것같다.魯柱碩 joo@
  • 교원노조에 바란다

    쟁점법안의 하나로 진통을 거듭해 온‘교원노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안’이 국회환경노동위를 통과함으로써 교원노조 합법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아직 마무리 절차가 남아 있긴 하나 입법은 거의 기정사실화 된 셈이다.이 법이 확정되면 지난 10년동안 ‘법외단체’로 제약을 받아 온 전국교직원노 동조합(전교조)은 합법적인 활동공간을 갖게 된다.또한 교원노조의 합법화는 노사안정과 노동부문의 국제신인도 제고에 기여한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크 다. 내년 하반기중 이 법에 의한 교원노조가 설립되면 전교조의 합법화는 물론 제2,제3의 교원노조가 탄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이에 따라 교원노조는 앞 으로 평교사를 중심으로 단체교섭 및 협약을 체결하고 처우개선을 비롯한 사 회경제적 지위향상을 요구하는 등 학교운영면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교원노조의 설립과 관련하여 우려되는 대목도 없지 않다.현재 양대 교원조 직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교조간의 주도권 잡기와 세불리기 싸움으로 그동안 잠복돼온 교단의 반목과 갈등이 교육현장에서 표출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교원노조의 허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직 수그러든 것은 아니지만 교원노조의 출범에 대한 기대는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교원노조는 지난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와 비민주적 관료주의에 찌 든 교육현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획일적 지식중심의 입시교육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교육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교사촌지문제에서부터 학원과 교직의 부조리와 비리가 척결될 수 있는 교육기풍을 확립하고 낡은 교육관행도 청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교원은 분명 임금노동자이면서도 동시에 스승이라는 사실을 늘 유 념해야 할 것이다.교원노조법안이 파업이나 수업거부와 같은 일체의 쟁의행 위를 금지하는 등 단체행동권을 불허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처우개선이 나 특정 사안의 개선을 위한 투쟁의 방법으로 학교교육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교원노조 합법화로 그동안 교단에서 배제된 시국관련 교사 임용제외자와 사학민주화 관련 해직교사 등에게도 임용 및 복직의 환경이 유 리하게 조성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런 문제도 순리적으로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각 교원단체들이 이기주의에 얽매여 교단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켜서는 안될 것이며 교권을 스스로 확립하고 훈훈한 교실을 만드는데 앞장 서 주기를 바란다.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체벌 논란/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경찰의 체벌교사 연행 사건으로 체벌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학기부터 교사의 학생 체벌을 금지한 이후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에 빚어지고 있는 갈등양상이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교사가 문제학생을 훈계하거나 때리다가 학생들로부터 말로 망신 당하는 것은 약과이고 협박과 폭행을 당하는 경우까지 흔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너 잘못했지”하고 꾸짖는 교사에게 “나 잘못한 것 없어”하고 반말로 대꾸하는 학생,그런 친구의 언행을 오히려 재미있어 하며 웃음바다가 되는 교실 풍경은 무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심지어는 매를 든 교사를 향해 “때려보세요”라고 대들면서 “선생님 돈 많으세요? 나 때리면 선생님 목잘려요”하는 학생도 있고 체벌교사의 머리채를 휘어잡거나 쇠파이프로 보복폭행을 하는 학생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교사 폭행에 가세하는 학부모 까지 있다. 그래서 일선 교사들은 문제학생을 보고도 못본 척하며 아예 그들을 선도하기를 포기한 상태라는 것이다. 교육포기 상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이제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의 매’로 여져지던 체벌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뀐 탓이다. PC통신에 떠오른 신세대들의 글은 체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분풀이 하거나 심지어는 촌지를 안준다고 체벌을 가하기도 한다” “체벌을 즐기거나 자기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이용하는 선생님들도 있다”는 식이다. 따라서 이제는 체벌을 허용하느냐 마느냐는 논란보다는 변화된 세태에 따른 해법을 찾는 것이 현명할 듯 싶다. 그런점에서 10년 가까이 교단을 떠나 있다가 올해 교단에 복직한 어느 전교조 해직교사의 경험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단에 다시 서 보니 수업분위기가 매우 산만해졌더군요. 해직 전에는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면 떠들던 학생들도 조용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소란이 그치지 않아요. 수업방식을 토론형태로 바꾸어 보았더니 뜻밖에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더군요. 예전처럼 엄격한 규율로 제자들을 다스리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체벌금지가 실효를 거두려면 수업방식은 물론 학급당 학생수도 대폭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40명이 넘는 학생들을 체벌 없이 교사가 통제하기란 힘들다. 체벌을 둘러싼 갈등은 세태의 변화를 의식과 제도가 따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과도기적 현상이지만 그 부작용이 너무 심각하다.
  • 동료와의 관계(全敎組 교사 복직이후:下)

    ◎기대와 불신­호의와 경계 상존/주위 눈총에 어색한 행동/때론 심리적 동요 느껴/합리적 개혁비판·실천 교직사회 모범 거듭 다짐 기대와 불신,호의와 경계…. 복직한 전교조 교사들 대부분은 동료교사들로부터 받는 상반된 느낌이 당혹스럽다. 더 불편한 것은 ‘뭔가 다른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강박 속에서 일거수일투족이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이들 대부분이 보이는 현재의 신중한 행동거지는 9년여 동안 달라진 교직사회에 대한 조심스런 탐색의 의미도 갖는다. 이들이 2개월여의 짧은 복직기간 동안 동료 교사들에게서 받은 느낌 중에는 ‘은근한 기대감’도 있다. 서울 선린정보산업고에 복직한 李秀浩 교사(50·국어담당)는 전교조 출범을 주도한 핵심인물로,현직 수석부위원장인데다 서울시 교육위원까지 지냈다. 그는 경력의 덕(?)을 톡톡히 본다. 그는 “교장선생님이 따로 불러 학교운영에 대해 대화를 나눈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면서 “열악한 실업계 학교의 교육정상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경력 때문만이 아니라 교직사회에 형성된 전교조에 대한 기대감 때문으로 해석하고 싶어한다. 동료교사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은 이들이 호소하는 고통의 대종이다. 金孟圭 교사(41·서울 동마중·도덕 담당)는 “경계심 때문인지 말을 걸어오는 선생님들이 거의 없다”면서 “그렇다고 막 들어온 사람이 먼저 친해보려는 것도 어색한 일”이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그가 더 안타까워하는 것은 교사들간에 스스럼없었던 해직 전의 인간적인 분위기가 사라진 점이다. 金교사는 “교사들이 교육개혁의 와중에서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로 심리적인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방과 후 술자리를 통해 이야기꽃을 피우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입바른 말로 주위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있다. 서울 모여중에 복직한 L교사는 그새 몇차례 교장과 설전을 벌였다. 그는 “복직 직후 교장선생님이 직원회의를 통해 평교사들에게 교원정년단축의 부당성을 강변하는 것을 보고 회의방식의 관료적 경직성을 면전에서 지적하자 적지않게 당황하더라”면서 “이후 일부 교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宋春燮 교사(42·경일초)는 “교내 직원연수시간에 교원정년단축 문제에 대해 흥분하지만 말고 자성의 기회로 삼자는 발언을 한 것이 동료교사들 사이에 찬반논란을 일으켰었다”고 말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내년 7월 전교조가 합법화되는 만큼 복직교사들의 책임이 막중해졌다”면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실천자로서 교직사회의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申昌源 검거 실패 경찰관들/소청·行訴서 이겨 복직될듯

    탈옥수 申昌源(31)을 눈 앞에서 놓쳐 해임됐던 경찰관들이 소청심사와 행정소송에서 승소,잇따라 복직하게 됐다. 행정자치부 소청심사위원회는 지난 11일 서울 수서경찰서 소속 嚴鍾哲 경장(42)이 ‘해임조치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청을 받아들여 해임에서 정직 3개월로 징계수위를 낮추는 감경 결정을 내렸다. 소청심사위원회는 25일 수서경찰서에 보낸 결정문에서 “嚴경장은 당시 범인이 申昌源인 줄 몰랐고 나름대로 申을 검거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된다”며 징계 경감 사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嚴경장을 정직기간 만료 시점인 내년 2월 다른 경찰서로 전보조치,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嚴경장은 지난 7월16일 오전 4시쯤 서울 강남구 포이동 주택가에서 吳모 순경(29)과 함께 순찰근무를 하던중 도난차량에 타고 있던 申을 발견하고 검문했으나 申에게 폭행을 당하고 눈 앞에서 놓쳐 해임됐었다. 또 지난 1월과 지난해 12월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민간인과 함께 申을 검거하려다 놓쳐 해임된 경기 평택경찰서 元鍾烈 경장(36)과경기경찰청 형사기동대 金구현 경장(29)도 곧 복직될 전망이다. 元경장 등은 지난 4월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제기,기각됐으나 곧바로 해임취소처분 청구소송을 수원지법에 냈으며 지난 12일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들 경찰관의 복직을 놓고 경찰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의 한 고위간부는 “실수로 놓친 경찰관이야 정상참작이 되지만 개인의 공명심 때문에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은 경찰관까지 복직시켜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 열악한 봉급·불안한 지위(全敎組 교사 복직이후:中)

    ◎변두리·실업계 발령… 차별대우 불쾌/경력공백 보상 못받아/해직기간만큼 승진 족쇄/색안경낀 근무평가 우려 서울 B고에 복직한 전교조 L교사(52·국어 담당)는 지난달 복직 이후 첫 봉급명세서를 받고 난감해 했다. 명세서에 찍힌 수령액은 120여만원.해직기간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해직 전 15년간의 교직 경력만 반영한 액수였다. 그나마 해직 전 연금을 복직 뒤 합산토록 신청한 L교사는 해직 때 탄 연금마저 반납해야 한다. 게다가 파면을 당했던 L교사는 규정에 따라 일반 해직교사들이 받는 연금의 50%인 1,200만원만 받고 학교를 떠났지만 반납할 땐 정상연금인 2,400만원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해직기간 9년 동안의 이자까지 합쳐 L교사가 내야 할 돈은 모두 6,500만원. 4년동안 분할상환키로 했지만 매달 170여만원을 내야 한다. 월급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지난 9월 복직한 전교조 교사들은 70여명. 이들 가운데 교직기간이 3년 이하인 교사들은 신규채용방식으로,3년 이상인 교사들은 특별채용방식으로 복직했다. 이는 형식상의 차이일 뿐 해직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남은 교직기간 중에도 봉급과 승진 등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N중학에 복직한 S교사(44·국어담당)의 경우엔 지난달 월급으로 104만원을 받았다. 해직기간 동안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간 그로서는 연금 합산신청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S교사는 “일부 후배교사들은 물론 교장선생님조차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면서 “돈 때문에 전교조 활동을 한 게 아닌데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전교조 복직교사들의 불안한 지위는 돈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임지 배정,수업시간 배분 등에서도 기존 교사들과 차별대우를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해직 전 4년간 교단에 섰다가 S여중에 복직한 L교사(38)는 주당 24시간의 수업을 맡았다. 통상 초임교사들이 부담하는 수업량이어서 불쾌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복직교사들 대부분이 변두리 학교나 실업계 고교에 발령을 받았다”며 “차별대우를 받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마음 한구석에 있다”고 말했다. 공백기간으로 돼 있는 해직기간 9년이 승진에도 두고두고 족쇄가 될 판이다. L교사는 특히 능력중심으로 교원인사정책을 개혁하겠다는 교육부의 의지가 복직 교사들에겐 자칫 피해를 가중시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기준 없이 실적주의라는 미명 아래 직급을 세분화할 경우 경력상 공백이 있는 복직 교사들이 유리할 게 없다”면서 “특히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편견이 가시지 않은 교장들이 평가주체가 된다면 교사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해직기간을 인정받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금전이나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교조 활동의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너무 달라진 교단(全敎組 교사 복직이후:上)

    ◎‘실추 교권’에 놀라고 컴퓨터에 놀라고/학습도구·방식 딴세상/제자는 자유·방종 혼동/변하지 않은건 자신뿐/환경적응 힘겨운 나날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9년여만에 교단으로 돌아왔다. 복직의 길이 트인 150여명 중 지난 9월부터 교단으로 돌아온 이는 모두 70여명. 이들은 10년 가까운 세월 사이 사뭇 달라진 교육환경에 적응키 위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을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그전 학생들과는 판이한 사고방식과 정서,행동양식을 갖고 있는 새세대의 제자들. 그리고 교실마다 설치된 컴퓨터 등 멀티미디어 학습도구,초·중학교의 경우 줄어든 학생수와 달라진 교습방식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매섭게 요구하고 있다. 李忠起 교사(36·방산중학교 사회 담당)는 복직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어졌다고 토로한다.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수업분위기가 매우 산만해졌어요.해직 전에는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면 떠들던 학생들도 조용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소란이 그치지 않기 일쑤죠” 그는 얼마 전 참다못해 체벌을 한 일을 상기하며 씁쓸해 했다. 해직 전에는 한번도 체벌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왜 벌을 서야하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은 학생의 눈빛이 앙금으로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백초등학교에 복직한 魚湧 교사(36)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는다. 최근 체육시간에 떠드는 제자를 불러 꾸짖었더니 돌아서며 혼잣말로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너무 당황해 벌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넘어갔다. 실추돼버린 교권,자유와 방종을 혼동하는 제자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요즘 제자들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자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활달함에는 자신들도 적응해야 한다는 자성을 한다. S고에 복직,논리학을 담당하고 있는 李모교사(36·논리학)는 처음엔 예전 방식대로 일방통행식의 수업을 진행했다. 나름대로 참고서적 등을 뒤져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제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관심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수업방식을 토론형태로 바꿔보았더니 뜻밖에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뤄지더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아이들이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그들의 관심분야와 몰입하는 방식임을 알았다”면서 “변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내 자신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예전처럼 엄격한 규율로 제자들을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설득과 이해만이 이들을 제어하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싹트게 한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교육방식과 다양한 교육기자재 사용에 서툰 점도 고민거리다. 삼광초등학교 李相吉 교사(40·여)는 학급당 학생수가 해직 전보다 10여명이 줄어든 30여명에 불과한 것은 교사들에게 큰 변화라고 말한다. 6∼8명이 한조가 돼 서로 마주보도록 좌석배치가 돼 있고 이에 따라 수업형태도 대화식으로 변했다. 특히 교실마다 비치된 기자재가 너무도 다양해져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복직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中)

    ◎삼탑진의 ‘노병’들 숙연한 묵념/“외롭게 죽어간 김학규 장군” 눈시울 붉혀/의연하고 용감했던 그날의 동지들 추모/옛 서안 사령부 터엔 재개발 앞둔 건물만 광복 투쟁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독립유공자협회 일행들의 여정은 장쑤성(江蘇省)쉬저우(徐州)에서 안후이성(安徽省)푸양(阜陽)으로 이어졌다.베이징(北京)출발 4일째인 10월10일이었다.푸양까지는 400리 남짓.당시 푸양은 쉬저우에 주둔하던 일본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중국군의 최전방 거점.적진 깊숙이 뛰어들어 병력을 교란시키고 갖가지 정보를 모으는 일은 광복군의 몫이었다.산타쩐(三塔鎭) 샤오자오쭈앙(小棗庄)마을.제법 번화한 푸양시 도심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반세기전과 다름없는 중국 농촌 그대로였다.‘마지막 독립군’들의 지하공작 본부가 이곳에 있었다.노 광복군들의 눈시울은 금세 붉게 젖었다.누가 먼저랄 것 없이 숙연한 묵념이 이어졌다.“지하공작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살해된 韓聖洙 동지의 명복과 독립운동의 영웅이면서도 쓸쓸한 말로를 맞았던 광복군 제3지대 사령관金學奎 장군을 위해” “금방이라도 ‘이 사람들!’하고 외치며 나타날 것만 같은 옛 동지들…”.일본군에서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일본 專修大 졸업생 韓聖洙씨는 상하이에서 정보를 캐다 희생됐다.“韓동지는 체포된 뒤에도 일본말을 쓰지 않아 통역을 거쳐 심문받았다.난징(南京)형무소에서 목이 잘려 죽을 때까지 일본인들을 꾸짖으며 의연함을 잃지 않았답니다” 이곳서 주로 활약했던 광복군은 20여명.일행중엔 광복회 부회장을 지낸 金祐銓 회원,全履鎬 회원 등 학병 출신과 일본 점령지역을 탈출해 광복군에 가담했던 金國柱 부회장,金九 선생 비서로 일했던 鮮于鎭 선생 등이 끼어있었다. 43년부터 해방때까지 지하공작 활동을 벌였던 金國柱 부회장은 “산둥성(山東省)의 칭다오(靑島)와 지난(濟南) 등 일본 점령지역을 오가며 정보를 캐고 거주 한국인들을 광복군에 합류시키는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일본 헌병에게 불심검문 받고 유창한 중국어로 딴전 피웠던 기억,가까스로 마련한 군자금 등 이들의 기억은 끝없이 이어지는듯 했다. 일행은 당시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의 미국 첩보기구 전략사무국(OSS)을 오가며 광복군과의 군사협력 등 연락업무를 맡았던 金祐銓 회원의 무용담을 들으며 산시성(陝西省)의 시안(西安)으로 향했다. 시안은 광복군이라면 영영 잊을 수없는 대일 항전의 聖地.충칭에 이어 두번째로 광복군 총사령부가 터 잡았던 곳이다.사령부 건물은 시안시 중심부 난위엔먼(南院門) 부근에 있었다.지금은 ‘시안시 공산당 위원회’ 건물과 번화한 상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광복군 시안시대의 본거지였던 얼부지에 4호는 간이건물에 음식점들이 빽빽히 들어선채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안 역시 쉬저우나 푸양,린촨(臨泉)에서 처럼 광복군의 자취가 하나하나 사라져 가고 있었다.“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 다음 세대들에게 독립군의 투쟁 정신과 역사를 전할 수 있었으면…” 이 다음 누가 이곳을 찾아올 것이며 독립투쟁의 역사가 어린곳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시안을 뒤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직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충칭(重慶)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노 광복군들은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했다. ◎광복군 총사령부/1940년 重慶서 발족 두달만에 西安으로 옮겨 광복군 총사령부는 광복군들에겐 따스한 고향이요 용기의 원천이었다.총사령부의 운명은 조국의 처지만큼 순탄치 않았다.총사령부가 발족된 것은 40년 9월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에서 였다.나라 잃은 군대에게는 편안한 나날이 없었다. 태어난 지 두달여만인 그해 11월말에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옮긴다.시안은 중국군이 일본군의 공세를 막아내던 전략 거점지.본격적인 대일항쟁을 위해서였다.일본군 점령지역이 가까워 정보수집과 한국인 포섭 등이 가능했다. 총사령부라고 해야 시안시 난위엔먼 지역과 얼부지 부근의 허름한 주택이 고작이었다.그나마 42년 9월에는 비워 주어야 했다.일본군의 공세가 거세지고 중국이 광복군의 행동을 통제하려했기 때문이었다. 2년여의 시안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충칭으로 돌아가 광복을 맞았다.충칭시 쩌우룽로(鄒容路)에는 총사령부로 쓰였던 건물이 있다.의혈 남아들의 집결지였던 그 곳은 지금도 허름한 음식점으로 쓰이고 있다. ◎白波 金學奎 장군 광복군 제3지대장/일군 맞서 눈부신 전과울린 광복군 대부 광복군 제3지대장 白波 金學奎 장군은 총사령관 李靑天,참모장 李範奭과 함께 광복군의 대부였다. 李範奭 참모장이 지대장으로 지휘한 제2지대가 유격전을 주로 폈다면 金學奎 장군의 제3지대는 정면에서 맞서 싸웠던 광복군의 최정예 부대였다. 장군이 항일전선에 투신한 것은 1919년.19살의 나이로 만주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였다.32살이 되던 32년까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40년 광복군 총사령부가 발족하자 핵심 참모로 참여한다. 그러나 사령부에만 안주하지 않았다.중국군 인맥을 활용,일본군서 탈출한 젊은이들을 린촨(臨泉)의 중국 중앙군관학교로 모아 주도록 했다.그들을 모아 한국광복군 간부 훈련반에서 독립의 간성으로 양성했고 제3지대를 창설했다. 광복후 白波는 평생 몸바쳐 싸웠던 조국에 돌아 왔지만 李承晩 정권과 불화를 빚으며 옥고를치렀다.67년 돌보는 이도 없이 67세를 일기로 서울의 모래내 한켠 판자집에서 숨을 거뒀다. ◎광복군 OSS/미국식 훈련… 한반도 상륙 준비 정예부대 OSS는 한때 전략사무국이란 이름으로 운영됐던 미군의 최정예 첩보기구.적진 깊숙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첩보요원을 침투시켜 군사 정보를 탐지하고 적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군 OSS’는 미국식 OSS요원 훈련을 받은 40여명의 정예 광복군들.45년 3월부터 광복될 때까지 중국에 파견된 OSS의 지원을 받아 특수훈련을 받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미군 등 연합군은 한반도 상륙작전을 준비했고 한반도 사정에 밝은 광복군 OSS요원들을 침투시켜 교두보를 확보하게 할 계획이었다. 훈련장은 광복군 제2지대 사령부를 겸해 시안에서 남쪽으로 100여리 떨어진 뚜취쩐(杜曲鎭) 쓰포춘(寺坡村)에 있었다.일행들이 현장을 찾았을때 훈련장 터는 농촌마을을 이루고 있었다.이곳서 가까운 終南山 산기슭위에는 반갑게도 신라시대 당나라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원측법사의 사리탑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젊은날 ‘지옥 훈련’을 마다하지 않으며 조국 광복의 염원을 아로새기던 곳.“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훈련을 받았다”고 金柔吉 부회장과 광복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石根永 회원은 회고했다. 광복군 OSS 요원의 활약은 갑작스런 일본의 항복으로 실현되지 못했다.광복군들은 조국 광복을 감격과 함께 회한을 안고 맞았다.스스로의 힘으로 찾지못한 광복이었기에 자결권 제약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쓰포춘의 OSS 훈련장을 뒤로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일행들은 “광복군의 한반도 상륙이 성사됐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 軍 복무기간 호봉·승진에 반영 안한다/규제개혁위

    ◎성과급추세 역행·남녀 고용평등 위배/취업때 가산점 부여 등 전면 재검토 방침 규제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金鍾泌 국무총리·李鎭卨 안동대총장)는 19일 군복무기간을 기업체 근무자의 호봉과 승진에 확대 반영시키려던 방침을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병역법개정안에는 ‘군 복무로 인해 휴직 후 복직한 직원은 승진시에 의무복무기간을 실제근무기간으로 산정한다’는 현행 규정이 계속 유지된다. 이에 앞서 병무청이 제시한 개정안은 ‘복직자 및 신규채용자의 군 의무복무 기간을 실제근무 기간으로 인정해 호봉산정 및 승진시에 반영한다’고 군복무 적용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위반시에는 3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강행규정까지 포함됐었다. 규제개혁위는 “연공서열제가 무너지고 능력·성과급 제도가 확산되는 민간 기업의 추세에 역행되고,여성계가 남녀 고용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제시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개정안을 계속 추진할 경우 호봉승급 혜택을받는 인원이 130만명으로,그 비용이 연간 6,300억원에 달해 기업의 부담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그러나 “추후에 이 문제를 ▲취업시 제대군인에 대한 가산점 제도 ▲2000년까지 공직의 20%를 여성에 할당하기로 한 여성할당제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열사 열전:4/金相眞 서울농대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할복 자결… 反 유신의 魂으로 부활/학생운동사 목숨 던진 첫 인물/꺼져가던 투쟁의 불씨 되살려/암울한 시대 희망의 새싹 틔워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합법을 가장한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75년 4월11일 상오 11시. 서울대농대 4학년 金相眞은 수원에 있는 농대 캠퍼스에서 그렇게 ‘양심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격정의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차분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는 비장함에 묻혀 이내 사그라졌다. 선언문 낭독이 거의 끝나갈 즈음. “이 보잘것 없는 생명,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는 말이 나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간 그는 품속에서 과도를 빼 치켜들었다. 그리고 하복부를 깊게 찔러 위로 그어올렸다. 그는 친구들에게 들려 택시까지 가며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했다. 수원도립병원에서 1·2차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중이던 12일 상오 8시55분 그는 앰뷸런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죽어가며 “애국가 불러주오”金相眞 열사는 민주화투쟁 학생운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진 최초의 인물이다. 주변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죽음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했고,그 파장까지도 충분히 예측했던 것 같다. 75년 2월 朴正熙 정권은 유신체제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에서의 승리를 내세워 강경으로 선회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구속학생과 교수들의 복학·복직을 불허하고 극심한 언론탄압을 일삼는 등 유신체제가 오히려 폭악화되자 그는 어떤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미온적인 동료·후배들의 자세도 그를 피할 수 없는 ‘결단’으로 밀어댔다. 그는 ‘양심선언문’과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을 꼼꼼히 작성했다. 그리고 4월9일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8명이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사형당했다는 소식에 치를 떨며 과도를 구입했다. 인혁당사건은 10년 뒤인 95년 모방송사가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런 판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김상진기념사업회 安鍾健 회장(50·방송대 교수)은 “相眞이는 복학후 되도록 시위에서 빠지려고 했다. 그러나 74년말부터 급격히 암울해지는 시대상황에 매우 당혹스러워했고,무언가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회고했다. 安회장은 金相眞 열사와 고등학교 및 대학 같은 과 동기다. 그는 또 “相眞이가 할복 전날 밤 자신을 찾아와 칼을 보여주며 가족과 애인 걱정을 했다”고 전한다. “相眞형은 항상 ‘이래선 안되는데’라고 중얼거렸어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때다’‘내가 해야할 것 같다’고 결의를 나타내기도 했구요”후배 鄭鉉敦씨(축산·74학번)의 회고다. ○시위 확산에 긴급조치 9호 선포 朴正熙 정권은 金相眞의 죽음이 반유신의 상징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숨을 거둔 지 15시간만에 장례식도 없이 화장하게 했으며,서울대 농대를 사실상 폐쇄했다. 각 대학에도 휴교·휴강 조치를 내려 4월 중순까지 25개 대학이 전면 휴강에 들어갔으며,시위 주동자의 대량 연행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5월13일 체제에 관한 어떤형태의 반대의견이나 행동도 금지하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그러나 서울대생 1,000여명은 5월 22일 관악 캠퍼스에서 기어이 ‘金相眞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고 긴급조치 철폐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5·22사건’이다. 朴炯圭 목사는 95년 金相眞 20주기 행사때 “모든 사람들이 좌절할 때 꺼져가는 민주화운동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긴 이가 金相眞 열사”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튼 민주화와 정의의 물길을 우리가 제대로 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반문했다. 당시 5·22사건으로 수배됐던 金槿泰 의원(국민회의)은 “金相眞형과 그 사건은 아직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제의 폭압아래 똑같은 나이(27살)에 옥사한 尹東柱의 ‘서시’는 그의 이상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金相眞 열사는 尹東柱의 ‘서시’처럼 한점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민주화투쟁은 오늘의 민주주의로 승화됐고 밝은 미래의 희망으로 존재할 것이다. ◎어머니 朴載娟 여사의 통곡/“정부에 의한 명예회복 평생소원” “에미로서 자식 마음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혼자 고통을 겪다 가게 했어요…” 金相眞 열사의 어머니 朴載娟 여사(80)가 아직도 못내 아쉬워하는 점이다. ‘군대까지 다녀와서 데모에 끼겠느냐’며 항상 어머니를 안심시키던 아들. 그가 죽자 슬픔과 원망이 뼈에 사무쳤지만 朴여사는 차차 목숨을 던져야 했던 아들의 장한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相眞이는 유난히 정이 많고 심지가 깊었어요. 친구를 무던히도 좋아했지요. 친구들을 몰고와 내가 음식상을 내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어요” 어머니는 95년 20주기 행사때 손수 음식을 장만해 벽제 묘소로 가져가 100여명의 아들선·후배 동료들을 먹였다. 朴여사는 아들이 죽자 병원에서 “제발 화장하지 말고 묘를 쓰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포항에 있던 맏아들을 불러올려 억지로 설득해 화장을 강행했다고. 그녀는 “화장터로 쫓아가 ‘우리가 뿌릴 터이니 유골단지를 달라’고 해 중앙청 옆 법륜사에 감췄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후에 金相眞 열사는 벽제공원묘지에 묻힐 수 있었다. 朴여사는 현재 서울 갈현동 자그마한 한옥에 혼자 산다. 신경통과 위경련을 앓고 있지만 심하지는 않은 듯했다. 고려컨테이너 부사장인 맏아들 상운씨와 대한투신 원주지점장으로 있는 둘째아들 상근씨 등 8남매가 모두 건실하게 살고 있어 흐뭇하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 공식적으로 정부에 의해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죽기 전에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후배 鄭赫基씨의 맺힌 恨/“긴 겨울 몰아낸 ‘민주햇살’ 빛 봐야” 김상진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鄭赫基씨(42·산야농산 대표)는 “相眞이 형이 죽은 이후 학생들은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재야나 지식인들이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金相眞 할복사건이 유신독재정권이 내리막길을 걷는 시대적 분기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朴正熙 정권의 폭압이 절정에 달해 정권 말기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죠. 공권력으로는 도저히 국민의 항거를 막기 힘들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 당시 축산과 새내기였던 그는 金相眞 열사가 할복하는 순간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뒤에 있던 선배들은 그가 칼을 빼드는 순간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덮쳤지요. 그러나 정작 저는 ‘단순히 각오를 다지기 위해 빼들었겠지’했어요. 그런데 막상 할복하고 쓰러지자 정신이 멍하고 아찔했습니다” 그는 “그후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鄭씨는 지난 95년 기념사업회가 출간한 金相眞 열사 평전 “긴겨울 얼음뚫고’의 정리작업을 맡았었다. 3년이나 걸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죄책감에 대한 빚갚음의 의미도 있지만 相眞이 형의 진실이 진정한 역사로 기록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화가 후퇴하고 권력이 부패하면 언제라도 제2,제3의 金相眞이 나올수 있다”는 鄭씨. 그는 “全·盧 시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지금의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항상 경계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金相眞 열사 연보 ▲1949년 金東壽·朴載娟씨의 3남6녀중 여섯째로 서울에서 출생 ▲1962년 혜화국민학교 졸업 ▲1965년 보성중학교 졸업 ▲1968년 보성고등학교 졸업,서울대농대 축산학과 입학 ▲1971년 군입대.경기 포천의 공병대에서 근무 ▲1974년 2학기 복학 ▲1975년 4월11일 서울대 수원농대 교정에서 유신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낭독하고 할복 자결 ▲1975년 4월12일 상오 8시55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도중 사망
  • 국민회의 ‘국민의 정부 6개월’ 自評

    ◎금융·교육개혁 “성공적”… 정책혼선 “티”/햇볕정책 홍보부족·은행퇴출 준비 미흡 지적/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 통한 고용창출 강조 국민회의 정책위가 26일 발간한 ‘국민의 정부 출범 6개월 평가’ 책자에는 개혁의 성공을 위한 당의 입장이 총정리되어 있다. 우선 새정부 6개월의 실적과 문제점을 꼼꼼하게 지적했다. 나아가 개혁의 방향과 과제들을 제시했다. 평가집은 총괄평가와 정치·경제·사회부문별 세부적 정책추진 현황에 대한 성과와 문제점,대책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적 개혁과제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총제적 구조개혁 ▲정경유착의 단절과 재벌중심 경제구조 개혁 ▲민주적 시장경제체제의 발전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부패구조의 척결 ▲정치권의 개혁선행과 참여민주주의로의 전환 등을 꼽았다. 부문별 평가는 다음과 같다. ▲정치=한·미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부패방지법 제정 추진,병무행정쇄신 등을 성과로 평가. 반면 햇볕정책 홍보부족과 지방행정조직 개편,정부기능의 지방이양 미흡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 ▲경제=외환보유고 증가등 경제위기 극복,부실은행퇴출 등 금융개혁,공기업 민영화를 업적으로 평가. 반면 부실은행의 퇴출과정에서 사전준비 미흡,기업구조조정 추진시 정책혼선은 문제라고 지적. 그리고 부실기업의 정리를 통한 대외신인도 제고,음성·불로소득과 변칙 상속·증여에 대한 조세강화,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한 고용창출 필요를 강조. ▲사회=노동시장 유연성,실업의료보험 통합,전교조 해직교사 복직 추진,사교육비특별대책기구 발족 등 교육개혁을 업적으로 평가. 실업대책 재원과 방과후 교육활동예산 확보,국민연금법과 방송관련법 국회통과는 과제로 지적. ▲여성=6개부처에 여성정책 담당관실 신설 등은 성과로 내세웠지만 여성정치인 할당제 도입,여성특위의 권한부여 검토를 과제로 제시했다.
  • 삼성 임원 안식년제 도입/감원 일환… 1년간 기본급만 지급

    대대적인 인원감축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업계 처음으로 계열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안식년제를 도입키로 했다. 삼성그룹은 23일 “구조조정 차원에서 계열사 직원들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는 한편 임원들에 대해서는 1년간 유급휴직 형태의 안식년제를 도입키로 하고 일부 계열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삼성계열사 중 삼성중공업과 삼성물산이 안식년제 대상 임원들을 선정,통보했으며 삼성전자가 임원 300명 중 30%를 감축하면서 감축대상 임원 중 일부에 대해 안식년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그룹 관계자는 “감축대상으로 알려진 임원들 중 일부가 사업부서 독립(分社)형태로 나가게 되지만 일부는 안식년제 대상으로 1년간 유급휴직을,일부는 계열사 자문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식년제 대상 임원은 일단 1년 뒤 해당부서에 복직하는 것이 원칙이나 자문역은 1년 뒤 퇴사가 전제된 것”이라며 “안식년제를 시행함으로써 임원 1인당 인건비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게 되는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그룹은중공업 물산 전자 등 주요 계열사를 필두로 분사나 희망퇴직등을 통해 전체 임직원의 10%수준인 1만5,000여명의 인원감축을 추진 중이다.
  • 차관 등 專決 늘려/교육부 규정 개정

    교육부는 9일 장관 결재사항을 차관 및 실·국장급 이하 결재사항으로 권한을 하향·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육부 소속 기관 위임 및 내부위임 전결규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번 규정 개정으로 장관 결재업무가 35%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장관 결재사항에서 하향·조정된 업무는 ▲4급이상 공무원의 직무대리·휴직·복직 발령 ▲교육공무원 자격·승진제도 개선 등이다.
  • “충돌땐 공멸” 勞政 갈등 봉합/민노총 총파업 유보 배경

    ◎정부 ‘8개항 선물’ 노동계서 수용/現代自·韓通 구조조정 불씨 남아 정부와 민주노총이 23일 상당수 쟁점에 합의,민주노총이 파업을 유보키로 함으로써 노·정간의 대립은 일단 진정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핵심 쟁점에서 견해차를 못좁혀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이다. 특히 경총이 이날 하오 노·정 합의에 반발,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경총은 정부와 민주노총이 현대자동차 등 개별 기업의 노사문제까지 논의 대상으로 택한데 대해 몹시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금융·공공부문의 구조조정도 늦춰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정부가 사법처리하겠다고 발표한 민주노총 간부들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민주노총이 23일 하오 협상을 속개하려다가 24일로 미룬것도 경총의 반발 때문으로 보인다. 노·정은 10개 쟁점 가운데 8개 쟁점에는 합의했으나 한국통신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 및 임금삭감 문제와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등 두가지 현안을 놓고 평행선을달렸다.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는 비교적 타협의 여지가 많다. 노사간 평화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에 민주노총도 수긍하는 듯한 분위기가 짙다. 정부로서도 ‘최선의 노력’이상의 약속을 할 수 없는 사안인데다 민주노총도 궁극적으로는 노사정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통신 문제는 쉽게 풀 수 없는 난제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한국통신을 포함,현재 진행중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일단 중단하고 노사정위에서 처음부터 다시 협의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정부는 새로운 사안만 논의하자고 맞섰다. 정부는 한국통신이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민영화 계획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다. 민주노총은 노조원 수가 가장 많은 한국통신 노조가 파업투쟁을 주도해 온 점을 감안해 기존의 주장을 견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불완전하기는 했지만 이번 노·정간의 합의도 여론을 의식한 양측의 양보로 가능했다. 민주노총은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경제청문회 실시를 요구조건의 전면에 내세워 정부와의 협상여지를 넓혔다. 정부도 삼미특수강 직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등의 ‘선물’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은 이번 8개항 합의가 상당한 수확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모처럼 무르익은 협상분위기를 다시 깨고 파업이라는 극한 수단으로 쉽사리 돌아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지만 일단 노·정이 평화적 해결의 기류를 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전교조 교사 복직/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강산도 변한 10년 세월을 보내고서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으로 교단을 떠나야 했던 해직교사 문제가 해결됐다. 16일 교육부가 아직까지 교단에 돌아가지 못한 해직교사 148명을 오는 2학기부터 복직시키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상처가 이제 비로소 아무는 셈이다. 전교조는 지난 87년 6월항쟁의 열기속에서 결성된 전국교사협의회를 모태로 하여 89년 출범했다. 교사들의 노동조합은 당시로는 충격적인 행위로 받아 들여졌고 당국은 출범과 동시에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했다. 따라서 1백여명의 관련교사가 구속되고 1500여명이 강제 해직됐다. 그중 1342명이 지난 94년부터 단계적으로 복직했으나 끝까지 전교조 탈퇴를 거부한 148명이 이번에 복직되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들이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더라도 국가공무원법등 관련법 준수를 서약하면 복직시키기로 했다. 교육부의 이 조치는 지난 2월의 노사정위원회 결정에 따라 오는 99년 7월부터 전교조가 합법화되므로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교조 파동으로 우리 사회가 겪은 상처의 깊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관련당사들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10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해직교사들을 현직교사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감싸안아 주어야 할 것이다. 방식이 서로 달랐을 뿐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교육개혁 의지는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똑같이 지녔을 터이다. 전교조 활동으로 우리 교단이 엄청난 홍역을 치렀지만 그로인해 얻은 것도 없지 않다. 교단 및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교원처우개선,교육환경개선등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은 전교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직되는 해직교사들도 겸허한 마음으로 옛동료와 학생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바른 뜻에서 시작한 행동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민감한 나이의 학생들을 희생시킨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고 더이상 교단에 불신과 반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해직교사 복직과 전교조 합법화에 아직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교조에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일반의 시선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26개국중 교원에게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무엇보다 화해와 화합의 자세만이 전교조 파동으로 인한 상처를 아물게 해 줄것이다.
  • 노동계파업 지상토론/민노총 위원장·경총 회장 인터뷰

    공기업 민영화와 금융산업 개편 등 정부의 구조조정 일정과 노사정위원회 운영방안에 반발,민주노총이 지난 14일 시작한 시한부 총파업이 16일 끝났다.金昌星 경총 회장과 李甲用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총파업 사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이갑용 민노총 위원장/“파업때문에 경제 흔들린적 없어 정부 노사정출범때 약속 안지켜”/지금처럼 구조조정 추진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노동강도는 높아지고 임금 낮아져 1,300만 노동자만 희생당해 지난 14일부터 사흘째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李甲用 민주노총 위원장이 16일 농성장소인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李 위원장은 맨발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지난 5월의 총파업에 비해 파업의 열기가 훨씬 약한 것 같은데. ▲‘5·27파업’은 전면 파업이었던 반면 이번 파업은 금속연맹과 공공부문 등 일부 산별노조가 주도했다. ­국가신인도 하락과 외자유치 감소 등 막대한 타격이 우려되는데. ▲파업은 10년 전부터 해마다 해왔다.그렇다고 파업 때문에 경제가 흔들린적이있나. ­파업을 무한정 해도 된다는 말인가. ▲1년 내내 하면 결딴 나겠지만,한시적으로 하고 있지 않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지 한 달만에 뛰쳐나온 것은 성급한 것 아닌가. ▲아무런 논의도 없이 퇴출은행과 공기업 민영화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데 위원회가 무슨 의미가 있나. ­金元基 노사정위원장이 충분한 협의가 부족했다는 점과 위원회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다시 들어갈 의향은. ▲한번도 그런 사실을 정식으로 통보받은 적이 없다. ­정식으로 통보해 온다면. ▲퇴출기업 문제 등을 재논의하고 일방적 정리해고를 철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야 한다.지난 달 2기 노사정 위원회 출범 때 들어와서 얘기하자고 해놓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는 퇴출은행 선정 등은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인데. ▲노사정위원회 출범 때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한 약속은 무엇인가.우리를 들러리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부실은행은 퇴출시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명백한 기준을 제시하며 설득을 하면 될게 아닌가. ­정리해고는 1기 노사정위의 합의 사항인데 이제와서 반발하는 이유는. ▲한국노총은 몰라도 우리는 한번도 합의한 적 없다. ­金大中 대통령이 퇴출기업의 주주나 국민들도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며 이해를 촉구했는데. ▲1,300만 노동자가 사실상 소액주주이자 세금 내는 사람이다. ­미국도 80년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현재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될 뿐이다.노동강도는 높아지는 반면 임금은 낮아지게 된다. ­노조원을 의식해서 파업을 했다는 시각도 있는데. ▲노조원들이 희생을 당하는데 지도부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李 위원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정부에 대해 계속 불만을 표출하는 등 격한 감정을 내보였다. ◎김창성 경총회장 인터뷰/“파업은 경제회생 노력에 찬물 해고자 복직요구 초법적 행동”/노동계에선 IMF이후 모든 고통 혼자겪는 것처럼 인식/기업도 하루 수십개씩 도산/노사가 합심해야 위기극복 가능 “하루 빨리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해 위기극복에 동참해야 합니다.노동계가 자신들의 잣대로 탈법 기준을 만들어 사업주를 구속하라든지,해고자를 복직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초법적 행동입니다” 金昌星 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양 노총의 노사정위 불참과 파업돌입은 전국민의 경제회생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조기복귀를 촉구했다. ­노사관계가 아주 불안해졌습니다.경영계 입장은. ▲노동계의 행동은 외자유치나 대외신인도 제고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외국투자자와 신용평가기관들이 외자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로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투쟁적 태도를 지적해 오지 않았습니까? 노동계는 이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둬야 합니다. ­노동계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사전협의,정리해고 철폐 등을 노사정위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만. ▲구조조정의 중단이나 퇴출은행과 기업의 노동자 고용승계 보장,정리해고 중단 및 부당 노동행위 기업주 구속,해고노동자 복직,임금체불·일방삭감·단협개악 금지 등은 노사정위 참여나 총파업 철회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현행법이 엄연히 있고 부당노동행위나 정리해고의 탈법소지에 대한 법적 감시기구가 갖추어져 있습니다.고용승계 문제도 해당기업이나 은행이 자율적인 판단으로 해결하는 것이 온당합니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릴 경우 국가위기재연의 소지가 큰 편인데.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이 노력해 온 것들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벌써 국제시장에서 한국물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습니다.자칫하면 제2의 국가부도 위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습니다.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현재의 경제위기는 어느 일방의 책임이 아닙니다.따라서 모든 경제주체가 고통분담을 각오해야 합니다.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노사정위원회로 복귀할 때 만이 위기국면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가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성숙한 자세를 보인다면 경영계도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노동계나 정부에 당부하고싶은 말은. ▲구조조정은 노동계가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해 온 사항입니다.고용조정이 싫다고 구조조정에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집단행동으로 반발하게 되면 구조조정은 더 늦어지고 경제소생은 희박해 집니다. 노동계에서는 IMF 이후 모든 고통을 혼자 겪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으나 그렇치 않습니다. 기업도 대기업은 물론,중소기업까지 하루에도 수십개 씩 도산합니다.이러한 고충을 노동계가 이해해 줘야 합니다.정부도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노사관계의 준법질서를 확립해야 합니다.
  • 全敎組 교사 탈퇴안해도 복직/148명 2학기부터

    ◎준법 서약만 받기로 교육부는 16일 전교조 활동 관련 해직교사 148명을 그동안 복직허용 조건이었던 전교조 탈퇴서약서를 내지 않고도 오는 2학기부터 복직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추진중인 방안은 탈퇴서약 대신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법 준수서약만으로 복직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2월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99년 7월 전교조를 합법화하기로 합의한데다 생활고에 따른 해직교사들의 조기복직 요청이 쇄도해 현행 법테두리안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 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1,490명이 모두 교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94년 3월 1,294명이 교직에 복귀한 데 이어 지금까지 1,342명이 복직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도 이날 “올 정기국회때 ‘교육공무원 임용에 관한 법’을 개정,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복직근거를 마련하되 법통과전이라도 복직 뒤 교직에 전념하겠다는 내용의 준법서약을 받는 선에서 복직을 허용하는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 궁중의 숙청(秘錄 南柯夢:16)

    ◎“궁궐안 정씨 모두 해직” 어명/황제총애 받는 시종자리 이권·인사청탁 쇄도/오적 이지용 상중에도 여인보내 벼슬 부탁/“모든 정씨 국가에 유해” 상소에 “나가 기다려라”/시종 정환덕 궁내사건 예언시 적중하자 복직 1899년 8월에 선포된 대한국제(大韓國制)는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다.이 법에 따르면 황제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권을 장악한 전제군주였다.말하자면 서양의 절대왕권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셈인데 고종을 루이 14세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누구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당시의 세계 대세로 보아도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시종원 막강권부 부상 이처럼 모든 권력이 고종황제에게 집중되었으니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이 권력의 핵심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고종의 최측근인 시종원 시종들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의 역대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정환덕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모든 이권과 인사청탁이 그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었다.지방 군수나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대신 자리까지도 일개 시종에 지나지 않는 정환덕을 거쳐야만 성사되었다.군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였다. 전 군부대신 이지용은 평양의 명기 죽향(竹香)을 소실로 삼고 있었는데 광무 6년8월 생부가 죽어 상중에 있을 때 죽향을 우리(정환덕)집으로 보냈다.내외를 하느라 나는 발을 치고 죽향을 만나 보았는데 용건은 다름 아니라 “영감께서는 우리 대감(이지용)을 모르십니까? 대감께서는 방금 거상(居喪)중이시라 한번만 문상을 와주시면 천만번 다행이라 하옵니다”는 것이었다.이에 대답하기를 “이 몸이 국사(國事)에 바빠 밤낮없이 함녕전 대청에서 폐하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여가를 낼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예까지 부인을 보냈으니 한번 짬을 내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옛부터 부모의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요 바깥 출입까지 삼가하여야 했는데,감투욕에 불탄 이지용은 정한덕에게 미인계를 써서 기어이 기복(起復=상중에 벼슬을 하는 것)하려 했던것이다. 이지용은 이층 양옥집에 살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이지용에게 인사말을 건네기를 예전에 대감이 군부대신으로 계실 때 한번 찾아 뵌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손님이 집에 가득하고 마당에는 수레와 말이 벌려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문정(門庭)이 적막하고 포저(예물)가 뚝 끊기어 있으니 보기에 민망스럽습니다”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감투란 것은 쓰고 있을 때 즐거울 뿐 벗고나면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줄 알면서도 한자리 하려고 버둥거리고 그것이 역사의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흐르게 마련이다.이지용은 이름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요 탐관오리였다.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미인계를 써서 벼슬을 하여 집안의 불효자가 되었고 나라를 팔아 매국노가 되었다. 물론 정환덕은 이지용이 그런 인물이 될 줄은 모르고 그를 임금께 천거했던 것이지만 어느 해 추상같은 상소가 올라와 궁중 숙청이 단행되었다.전 동부승지(同副承旨) 홍병섭(洪丙燮)의 소장(疏章)이었는데 거기에는 무서운 말이 들어 있었다.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소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시었다. 아뢰기를 “궁궐안을 숙청하라는 내용입니다”하였다.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상소는 금후 궁내부에서 받아 물리쳐 버리고 짐에게는 보이지 말라”고 하시었다. 이때 문득 생각하기를 상감의 총애가 날로 융성하고 흡족해지고 있는데 나라일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 보필하는 신하로서 한자 한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 여겼다. 이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하는 것이라 자책하였다.그래서 대궐문 밖으로 나가 사모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고 상감께 사죄하니 상감께서는 “네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하시면서 만류하시었다. “소신은 본래 초야에 있어야 할 몸이온데 이처럼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밤낮으로 대전을 모시다가 이렇게 탄핵을 받게 되었으니 마땅히 소신에게 과실이 있사옵니다.그러하오니 소신을 초야에 돌아가 살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하였다.그러나 상감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본래 국가를 배반하지 않았고 임금에게숨긴 일이 없었다.너는 또 재주를 부려 남을 헐뜯거나 어진이를 투기하여 중상모략한 일도 없었다.너는 아래 사람에게 통통촉촉(洞洞燭燭)하였고 윗사람에게 주야로 성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너는 참으로 충신이라 할 것이다”하시면서 도리어 정삼품직을 하사하셨다. ○“초야로 돌아가겠다” 주청 그러나 시종원 시종 자리란 그렇게 늘 쉽사리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 뒤 얼마나 지났을까.난데없이 궁안에서 종사하는 모든 정씨(鄭氏)는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해직시킨다는 어명이 떨어졌다.청천병력과 같은 일이었다.아무 죄도 없이 정씨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궁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처구니 없는 처사였다.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날 궁중에 “鄭씨 姓을 가진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가에 유해하니 모조리 해직하여 쫑아내야 합니다”라는 상소가 올라왔다.내사해 본 결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상궁(尙宮)이 여섯 명이고 내시(內侍)가 열명이고 무감(武監)이 세명,주사(主事)가 세명이었는데 거기다 노비 28명을 합하면 궁중에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63명이나 되었다.이 사람들을 모두 해직시켜 일시에 궁안에서 내쫑아 버린다는 것인데 나(鄭煥悳) 역시 거기에 끼여 있었다. 상감 부자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너는 잠시 너의 본집에 가서 머물러 있다가 처분을 기다리라.너무 바깥 출입을 하지 말도록 하라”고 하시었다.그리고 “혹시 내가 너에게 문의할 일이 있으면 봉서(封書=임금의 私信)로 통지할 터이니 어느 놈이 우리 군신 사이를 이간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었다.이에 나는 “예식관 이용태(李容泰)를 통해 하명하시면 즉시 올라와 뵈옵도록 하겠습니다”하면서 절하고 물러났다. ○“군신 이간질 가당찮다” 상감 부자께서는 서운해 하실 뿐만 아니라 상궁과 시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없이 물러나는 나를 지켜 보았다.나도 또한 여러 해 동안 밤낮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다가 까닭없이 사퇴하게 되니 옛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杜工部)가 지은 시 “성상께서 늘 사랑하심이 있는데 조정을 물러나니 의지할곳이 없네”는 귀절이 가슴을 쳤다.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한번 앉았던 자리를 물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물러나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요 인생의 비애이기도 하다.하물며 무상의 권부를 물러나는 정환덕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대궐을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였다.이에 글 한줄 지었으니 “내일 모레 사이 서늘한 밤 자정 달이 서산에 숨을 때 동쪽 정원에 꽃 한송이 떨어질 것입니다(明再明間 凉夜三更 月隱西山之時 花落東園中). 이 글을 봉투에 넣어 이용태에게 주어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아니나 다를까 궁중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야밤중에 김상궁이 측간(厠間=변소)에 빠져 죽은 것이다.정환덕은 이 예언 때문에 다시 궁안에 들어와 복직되었다. 상감께서는 “과연 수(數)를 맞히기는 정환덕만한 사람이 없도다“하시면서 나를 칭찬하셨고 궁녀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 한번 수(數)보기를 바랐으나 상감이 엄히 금지하셨다.
  • 속 보인 지하철 파업/鄭基洪 전국팀 기자(오늘의 눈)

    서울지하철공사 노조의 파업이 돌입 반나절만에 싱겁게 끝났다.지난 달 12일부터 임금 및 단체협상을 벌인지 한달여만이다. 겉으로 드러난 노조의 이번 파업결정 배경은 후생복지 확대 및 해고자 복직 등으로 요약된다.저변에 깔려 있는 그동안의 노사간 불신도 파업결행의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조측의 이번 파업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분명한 문제점을 노출시켰다.집단행동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종래의 구태를 조금도 벗지 못했다는 점이다.지금 온국민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위기에 처한 경제를 하루빨리 살리는 길이다.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은 가뜩이나 정부의 국가신인도 제고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온다.따라서 향후 노조의 앞길을 스스로 옥죄는 자충수가 될 것이 뻔하다.이번 파업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민주노총도 경제위기 극복차원에서 총파업 방침을 철회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키로 한 마당에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할 파업이란 강공카드를 내세운 배경에 많은 시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사회 전반에 불어닥치고 있는 구조조정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이는 소아적인 발상이다.처음부터 인금인상,해고자 복직 등 공사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내놓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노조의 파업 공언에도 불구하고 공사측이나 언론들이 결행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분석한 것은 노조의 의도가 구조조정을 겨냥한 사전 ‘위협용’에서 비롯됐다. 협상에 임하던 노조의 자세도 짚어야할 대목이다.일단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채 파업에 돌입했다가 곧바로 재협상에 나서는 행태는 구시대적인 태도다.지하철공사에는 사장 위에 노조가 있다는 말을 깊이 새겨볼 필요성이 있다.다음 달이면 高建 시장 체제가 들어선다.어떤 형태로든 만성적 파업사태가 되풀이 되는 서울지하철 문제에 대한 특단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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