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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부유세 신설’ 논란

    10·3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의 노선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회복지 부유세(복지세)’가 고리가 됐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22일 자신이 제시한 ‘담대한 진보’의 핵심 정책으로 복지세 신설을 제안했다. 정 고문은 “복지국가를 말하면서 재원 대책이 없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면서 “소득 최상위 0.1%에 사회복지 부유세를 부과해 연간 10조원 이상의 세수를 확보, 노인연금 확대 등으로 활용하자.”고 말했다. 정 고문은 “역동적 복지국가 구현을 위해 학자들과 치열하게 토론한 끝에 부유세 도입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2000명으로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67%가 찬성했다.”고 덧붙였다. 부유세는 그동안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정책이다. 프랑스·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스위스 등에서 시행 중이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도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올렸다. 이에 정세균 전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부유세 반대라는 민주당의 당론이 바뀐 적이 없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를 원상 회복하는 게 우선이며, 한국은 누진 과세가 비교적 잘돼 있는 만큼 부유세 신설은 신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의 한 측근도 “참여정부 때 종부세 파동에서 보듯 부유세와 상관없는 서민·중산층도 ‘세금 폭탄’ 주장에 동조해 계급갈등만 깊어질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 고문 측은 “국민 67%와 상위 0.1%의 찬반을 계급투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보수·우파적 발상”이라면서 “이런 태도 때문에 민주당의 정체성이 비판받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복지, 진보만의 것? 기득권층의 책임 보수가 답할 차례다

    복지는 진보만의 어젠다(의제)인가. 홍준표(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보수 포퓰리즘’은 허구이고, 박근혜(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복지국가론’은 또 한번의 거짓말일 뿐인가. 보수가 내건 복지 구호에 대해 진보는 대개 냉소를 보낸다. 복지를 지난한 투쟁의 성과물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서구의 연구 결과다. 이런 관점은 최근 들어 국내에도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독일 비스마르크 복지제도의 형성을 다룬 박근갑 한림대 교수의 ‘복지국가 만들기-독일 사회민주주의의 기원’이나 영국 보수당 역사를 다룬 강원택 숭실대 교수의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같은 저작들은 복지제도 도입에는 진보의 투쟁 못지않게 국민통합이 절실했던 보수의 필요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와 그대로 겹친다. 그간 진보는 박정희 정권 이래 권위주의정권에서 도입된 의료보험,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등을 취약한 정치적 정통성을 보충하기 위한 포섭 전략 정도로만 파악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복지제도 연구란 이런 포섭작전에 말려드는 개량주의적 접근에 불과했다. 저출산 문제가 대표적 예다. 이른바 ‘출산 파업’에서 비롯된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는 자본가 입장에서도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보수 진영도 출산·육아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 발간되는 계간지 ‘창작과비평’ 가을호는 이 문제를 다룬 좌담 ‘복지국가는 진보의 대안인가’를 실었다. 보수, 진보가 묘하게 만나고 엇갈리는 복지국가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이태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정치학과 교수,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논의했다. ●“정밀한 정책 소홀땐 보수에 헤게모니 내줘” 우선 이들은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조금 더 정밀한 조준이 필요하다는 데 다같이 동의했다. 김 교수는 복지국가론이 진보만의 어젠다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친박 라인(박근혜 진영)은 친이 라인(이명박 대통령 진영)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보편적 복지 개념을 수용할 수도 있다.”며 “따라서 진보 진영도 어떤 유형의 복지를 할 것인지 정밀한 대안을 만들어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 쪽에 복지 헤게모니를 뺏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안 교수도 “진보 진영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한국의 리버럴(진보)들을 무능하다고 낙인 찍을 수 있는 박근혜 식의 보수 포퓰리즘”이라고 경계했다. 이 교수는 조금 다른 측면을 짚었다. 그는 “진보가 복지를 얘기하면 사회주의, 빨갱이, 친북 딱지가 붙을 위험이 있지만 보수가 얘기하면 국가 기능 강화, 사회 유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색깔 논란’에서 자유로운 만큼 보수의 복지 구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보수 정부가 차기 정권을 잡을 경우, 속도를 내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부풀려 놓은 재정적자 때문에 제약이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참된 복지는 국민동원 아닌 국민통합 이 지점에서 이 대표는 증세론을 꺼내들었다. “소득세만 해도 연간소득 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 8800만원 이상 계층 구간은 세율을 차등화하지 않은 채로 수십년을 지내온 만큼 부유층의 담세 능력은 엄청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물론, ‘세금 폭탄’으로 상징되는 종합부동산세 사례에서 보듯 기득권층의 반발과 여론몰이가 거셀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치밀한 전략과 여론 관리가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 재원을 ‘그냥 쏟아붓는’ 차원의 남미형으로 가지 않으려면 시장적 모델이 필요하다는 반론과,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 비중이 협소해 국가 역할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재반론도 꼬리를 물었다. 논쟁의 와중에도 끝까지 남은 근본 쟁점은 과연 우리나라의 보수가 ‘국민 동원’이 아닌 ‘국민 통합’을 진지하게 고민한 뒤 기득권층에게 공동체를 위해 좀더 많은 짐을 져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보수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대요구 못읽어 대선패배 담대한 진보의 길 걷겠다”

    “시대요구 못읽어 대선패배 담대한 진보의 길 걷겠다”

    “저는 10년 동안 국민이 키워주신 개혁과 진보의 힘을 빼앗긴 장본인입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홈페이지에 ‘공개 반성문’을 썼다. 2007년 대선 패배, 지난해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언급하며 “엎드려 사죄드린다.”고 했다. 동시에 ‘담대한 진보’의 길을 가겠다고도 했다. 결국 전대에서 경쟁자들이 끈질기게 물고늘어질 ‘약점’을 자진해서 밝혀 미리 차단막을 치고, 새로운 노선을 부각시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당 안팎에선 전대 ‘출사표’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 의원은 ‘저는 많이 부족한 대통령 후보였습니다.’라는 반성문에서 “대선 후보로서 시대의 요구를 꿰뚫어 보지 못했고, 치밀하게 준비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BBK로 상징되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에만 매몰됐다.”면서 “이제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고 실천함으로써 국민 앞에 반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특히 지난해 4월 탈당해 전주 덕진구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데 대해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나, 결과는 저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결국 출마를 강행했고, 당과 당원에게 큰 상처를 드렸다.”면서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말기 민심 이반에 대해 정 의원은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 앞에서 방향 전환을 주장하지 못했다.”면서 “대통령과의 갈등이 두려웠고, 차기 대선에 대한 욕망 때문에 몸을 사렸다.”고 고백했다. 정 의원은 “담대한 진보의 길을 뚜벅뚜벅 걷겠다.”고 진로를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 역정을 되새김질한 결과 찾아낸 결론”이라면서 “담대한 진보의 핵심은 부의 재분재를 넘어 적극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당원과 함께 민주당을 진보적으로 변화시켜 이 꿈을 실현하고 싶다.”며 당 대표에 도전할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사설] 소통과 화합으로 선진 한반도 시대 열자

    서울신문이 18일로 창간 106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연륜의 신문으로서 생일을 자축하는 한편 옷깃을 여미며 새출발의 다짐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일제가 국권 침탈의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한말인 1904년 구국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탄생했습니다. 애국지사 양기탁 선생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영국인 배설(裵說·Bethell) 등에 의해 창간된 항일 정론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내 최고(最古)의 민족정론지라는 뿌듯한 자긍심만 내세우려는 게 아니라 차제에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국권 상실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으로 제호가 바뀌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광복과 함께 서울신문으로 재탄생했지만, 1948년부터 정부 소유로 귀속되면서 역대 정권들이 때로 독재나 권위주의로 치달을 때 시비곡직을 가리는 데 주춤거려 독자들의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1998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꿨다가 사원이 1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면서 지난 2004년 서울신문이란 이름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난 세월의 공과에 대해 겸허히 자성하되 지나친 자기 비하에 빠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안녕을 수호하려 했던 창간 취지를 되살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이익을 맨 앞자리에 놓는, 공정한 보도로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100여년 영욕의 시간, 겸허히 자성 서울신문이 지켜본 지난 105년 간의 민족사도 국권상실과 광복,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 투쟁 등으로 영욕이 교차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현대사는 총체적으로는 성공 스토리였다는 게 우리의 견해입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옥수수 가루로 허기를 달래던 나라가 세계 15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지 않습니까. 더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최근 십수년간 선진국의 문턱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고지는 아직도 신기루인 양 멀어 보이기만 합니다. 미국발 금융 쓰나미에서 보듯이 세계는 지금 문명사적 전환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마저 이른바 ‘선진국의 함정’에 빠져 경제난을 겪고 있음을 보십시오. 보수·진보, 공론의 장으로 역할할 것 이처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내부적으로 갈가리 찢겨져 성장잠재력을 스스로 좀먹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도 서러운데 지역 및 세대간 갈등에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습니다. 올 들어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여야의 무한 대치는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축도일 뿐입니다. 누가 봐도 북한의 도발임이 뻔한 천안함 폭침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고도 정략과 소리에 휘둘려 서로 눈을 부라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소통과 화합의 결핍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를 수반한 정치적 격랑에 휩싸여서도 국가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통과 타협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다문화 사회의 초입에 들어선 만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생·협력하는 기풍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본지 창간 106주년을 맞아 각계 전문가 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각계 원로와 중진들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 최우선 과제로 사회통합을 꼽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신문은 무엇보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大同)을 추구하도록 공론의 장의 역할을 다하려고 합니다. 특히 여야와 각 지역 및 세대가 소속 집단의 이해를 넘어 국가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길에서 만나도록 건전한 비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소통이 중요하지만, 각계각층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 주겠다는 식의 인기영합주의로 흘러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신문은 머잖아 오고야 말 통일된 선진복지국가를 내다보며 공익을 앞세우는 보도자세를 꿋꿋이 지켜나갈 것임을 거듭 다짐합니다.
  • [서울광장] 세종시를 포퓰리즘의 바다에서 건져내야/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세종시를 포퓰리즘의 바다에서 건져내야/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마라도나 감독의 아르헨티나 호가 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서 좌초했다. 독일전에서 완패한 뒤 라커룸에서 흘리는 메시 선수의 통한의 눈물을 보며 뮤지컬 에비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란 애절한 노랫말과 함께. 남미 축구의 쌍벽 브라질도 8강전에서 동반 탈락했지만, 양국의 경제는 천양지차다. 좌파였던 룰라 대통령이 우파 정책을 대폭 수용하면서 브라질 경제는 몇 년째 욱일승천의 기세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수십년째 죽을 쑤고 있다. 한때 세계 4대 경제대국의 추락의 배후엔 에비타의 실제 주인공인 에바와 그녀의 남편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인기영합 정책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두 차례 권좌에 올랐던 페론은 북유럽 복지국가 뺨치는 사회보장제를 시행했다. 국민들은 1년 일하면 13개월치 임금을 주는 페론주의에 열광했으나, 그때 주저앉은 아르헨티나 경제는 여태껏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세종시 수정안이 얼마 전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그 역사적 순간 도시계획 분야의 석학 해리 리처드슨 미국 남가주대 교수의 견해가 생각났다. 그는 2003년 10월 신행정수도연구단 주최 세미나에서 “충청권으로의 수도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 주최 측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서울에서 너무 가까워 인구 분산효과가 없고 교통체증만 유발할 것이란 논거였다. 한때 도시계획학도였던 기자는 당시 그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를 좀봤다.”고 실토했을 땐 아차 싶었다. 다수 언론이 그의 언급에서 포퓰리즘의 악취를 들춰내기 시작하면서다. 하지만 수도권 과밀해소나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아주 없기야 하겠나 싶었다. 대개 사회·경제 정책은 혜택이 기대되는 측은 환호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쪽은 크게 반발하지 않는 속성을 갖는다. 수혜는 직접적이지만, 예산을 마구 쏟아붓더라도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 탓이다. 세종시 문제가 그렇다. 6·2지방선거에서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야권이 대전·충청권을 석권했다. 전국적으론 수정안 지지가 높았지만 표로 결집되진 않았다. 물론 모든 정책은 수혜 예상 집단에도 결과적인 피해를 입힐 때 포퓰리즘으로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게 된다. 페론주의가 결국 아르헨티나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박탈했듯이 말이다. 세종시 원안 반대론자의 예상대로 자족기능이 없어 밤이면 불이 꺼지는 유령도시가 될 때도 마찬가지일 게다. 세종시의 미래가 그럴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세종시가 자족 기능이 부실하다는 것은 원안 사수파도 인정하는 것 같다. 수정안 부결 이후 ‘원안+α’ 논쟁이 가열되고 있음을 보라. 야권은 원안인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을 고쳐 수정안에 있는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추가하거나 기업·대학 유치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 여타 지역의 역차별 주장이 불거지게 된다. 이제 서울과 세종시, 두 수도가 현실이 됐다. 문제는 총선·대선 등 선거 때마다 ‘+α 공약’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세종시를 포퓰리즘의 바다에서 건져내려면 비효율을 최소화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급선무다. 예컨대 부처 간 화상회의를 활성화해 공무원들이 양쪽을 오가는 낭비를 줄여야 한다. 국회가 열리면 관료들이 죄다 여의도에 진을 치는 행태도 바꿔야 한다. 아르헨티나인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탱고축구의 파산’으로 꽤나 상심했단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덫에 걸려 겪은 기나긴 고통에 비할 텐가.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 대권이나 금배지를 노리는 정치권 주자들이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신호탄이 된다면 정말 가공할 사태다. 50년간 페론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국가부도 사태까지 맞았던 ‘아르헨티나의 길’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kby7@seoul.co.kr
  •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 ‘역동적 복지국가론’ 비판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 ‘역동적 복지국가론’ 비판

    “신자유주의 반대는 공허한 구호입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격입니다. 용어를 정확히 써서 과녁을 정조준했으면 합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와 시장의 대척점에 ‘복지’를 두고 이를 띄우는 데 열성이다. ‘시장 vs 정부’ 구도 아래 정부가 더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 등이 주도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내놓은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북유럽식 적극적 복지정책 도입을 주장한다.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거는 주장이 나왔다.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 평가와 대안모델의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남기업(40)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을 지난 17일 성균관대 수선관에서 만났다. 남 소장은‘시장 vs 정부’ 구도 대신 ‘좋은 시장 vs 나쁜 시장’의 구도가 좀더 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좋다, 나쁘다의 기준은 제대로 된 경쟁을 보장하느냐에 달렸다. ●진보측 신자유주의 비판은 잘못 남 소장이 보기에 정부와 시장을 대립시킨 뒤 ‘신자유주의 반대’, ‘자본과의 대결’ 등을 내세우는 진보진영의 문제의식은 잘못됐다. “그런 주장은 ‘시장 과잉’이 문제라고 하는데, 정작 문제는 ‘건강한 시장의 부족’입니다. 제대로 된 경쟁, 즉 정정당당한 경쟁을 반칙과 특권이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대기업-중소기업의 먹이사슬, 강남 사교육과 다른 지역 공교육의 불균등 같은 문제들이 여기에 다 녹아 있다. 이렇게 보면, 가령 삼성은 재벌 해체 대상이 아니라 시장참가자의 일원이라는 격에 맞는 자리를 찾아줘야 하는 대상이다. 이런 주장엔 전략적 판단도 녹아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같은 구호는 너무 거창해서 공허한 데다,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시장과 자본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은 기업의 특권과 반칙에는 엄격하지만, 정규직 노동의 특권과 반칙은 어물쩍 넘어가는 단점이 있다. 노동시장도 제대로 된 경쟁, 좋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업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독일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임금을 20% 정도 더 받아요. 정규직은 안정적인 대신 낮은 임금을, 비정규직은 불안정한 대신 높은 임금을 받는 거지요. 이런 점을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지적할 수 있을까요.” 남 소장은 역동적 복지국가모델의 핵심인 가파른 수준의 누진적 소득세 도입과 같은 증세론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가파른 증세는 강한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올 뿐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이념적 덧칠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을 시행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증세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복지정책 재원을 충당할 수 있을 지도 묘연하다. 결정적으로 복지가 진보진영만의 의제라는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공약에도 복지정책은 들어가 있다. 나쁘게 말해 흉내내기, 좋게 말해 외연확대다. 이런 현상은 복지에 대한 유럽학계의 수정주의적 해석과 맥락이 통한다. 복지에 대한 기존 좌파적 해석이 ‘노동자가 단결투쟁해 쟁취한 것’이라면, 수정주의 해석은 그에 못지않게 ‘기득권층의 포섭능력’이나 ‘기득권층의 질서정연한 퇴각’을 강조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가 복지는 진보적 의제라는 통념을 가리켜 ‘착각’이라 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 소장은 보수진영이 따라올 수 없는 진짜 진보적 의제를 생산하자고 제안했다. 바로 토지보유세다. 종합부동산세 논쟁에서 보듯, 이 문제는 보수의 물질적·상징적 기반인 ‘강남 땅부자’와 직결된다. 따라서 보수진영은 이 의제만큼은 결코 선점 내지 추적할 수 없다는 논리다. 게다가 토지보유세 강화는 ‘증세+감세 패키지 정책’으로도 유용하다.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를 제안했을 때 법인세 인하 같은 감세안도 동시에 제시했다면 어땠을까요. 일부 땅부자와 집부자들에게는 세금을 더 받지만, 나라를 성장시킬 기업에는 세금을 덜 받겠다고 했다면 여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마련한 재원을 복지에 쓰면, 선순환의 고리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불로소득 전면환수’ 퍼뜨릴 것 이쯤이면 짐작할 수 있듯, 남 소장은 지대(地代)에서 얻는 불로소득의 전면 환수를 주장했던 헨리 조지(1839~1897)의 신봉자다. 헨리 조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하느님이 주신 땅을 잠시 쓸 뿐인 사람이 땅에서 나는 이득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기독교도였다. 토지+자유연구소 참가자 중에 목사가 눈에 띄는 이유도, 남 소장이 독실한 기독교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 소장의 꿈은 헨리 조지의 사상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여건이 좋은 건 아니다. 국내에 헨리 조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남 소장까지 포함해 딱 3명이다. 도식화된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주장 때문에 “족보가 어떻게 되느냐.”는 비아냥도 듣는다. 그러나 진보그룹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게 남 소장의 작은 소망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북유럽식 복지 만병통치 아니다

    북유럽식 복지 만병통치 아니다

    ‘스웨덴 모델’을 만든 군나르 뮈르달(1974년 노벨경제학상)과 알바 뮈르달(1982년 노벨평화상) 부부가 ‘사회 문제의 위기’라는 책을 낸 것은 1934년이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출산율 감소, 신세계로의 대량이주를 통한 인구격감의 문제가 스웨덴에서 심각하게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웃 노르웨이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마가레테 보네비가 ‘가족의 위기와 대응책’을 내놓은 것은 1935년이었다. 거창하게는 노동력 재생산의 실패, 단순하게는 ‘출산파업’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상황이 대입되지 않을 수 없다. 진보라는 가치를, 투쟁의 대오 앞줄에서 구호를 외치는 ‘아빠’에게 보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신경쓰는 ‘엄마’에게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떠오를 법도 하다. ●냉전체제서 공멸 막은 타협의 산물 이번에 출간된 ‘노르딕 모델-북유럽복지국가의 꿈과 현실’(메리 힐슨 지음, 주은선·김영미 옮김, 삼천리 펴냄)은 요즘 가장 많이 논의되는 북유럽 모델에 대한 개론서다. 한국 사회에서 북유럽 모델은 일종의 로망이다. 이들 국가는 건강, 기대수명, 사회평등 등의 각종 국제지표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낭만적이기도 하다. ‘교육천국 핀란드’, ‘복지천국 스웨덴’처럼 도식화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낭만적인 인식을 거부하는 데 치중한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을 ‘노르딕 모델’로 모은 뒤 역사, 문화, 정치·경제·복지 모델 등을 차분히 검토해 나간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가지. 하나는 노르딕 모델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르딕 모델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보충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때로는 우생학과 대량해고 등 극렬한 사회적 압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저 유명한 스웨덴의 1938년 살츠요바덴협약의 탄생이, 그들이 유달리 양보심과 타협심이 많아서도 아니고, 탁월한 선견지명이 있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출발은 냉전체제에서 공멸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 타협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북유럽모델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래를 말하다’에서 미국판 살츠요바덴 협약으로 ‘디트로이트 협약’을 제시했다. 국가적 차원의 사회안전망이 없다 보니, 개별 자동차회사가 사회안전망을 제공했다는 것. 최근 금융위기로 GM이 흔들릴 때 보수언론 등에서는 복지에 집착한 노조 탓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크루그먼의 시각에 따르면 그나마 개별 회사들이 복지를 제공하는 디트로이트 협약 덕분에 자동차산업의 고성장이 가능했다. ●박정희 독재가 추구한 복지국가의 길? 우리도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다. 1992년 포스코 공장과 사원주택 등을 둘러본 러시아 모스크바대 총장은 “이게 바로 레닌 동지의 이상향”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박근혜의 언급 등을 감안해 이를 ‘포항 협약’이라 부르면 어떨까. 아직은 위험스러워 보인다. 두 자릿수 성장률로 상징되는 박정희 신화에는 그가 전면 도입했던 의료보험과 연금제도가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정치적 독재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 보인다. 노르딕모델이 궁금하다면, ‘워밍업’ 차원에서 2004년작 영화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도 볼 만하다. 왕 노릇이 싫어 미국으로 도망간 덴마크 왕자 에드워드가 미국 농부의 딸 페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러나 에드워드를 통해 덴마크의 사회협약을 보여주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덴마크에선 임금협상 때 전국적 단위의 노조 대표와 경영자 대표가 고성 안 회의실에 갇힌다.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나갈 수 없다. 양측은 각종 통계자료와 수치를 가지고 적정 임금인상률 수준을 두고 격렬하게 논쟁한다. 왕실은 중재자다. 노르딕 모델의 맛보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무상급식 공방 대해부 (하)] 전국 이슈화 힘들 것 vs 선거내내 폭발력 커

    [무상급식 공방 대해부 (하)] 전국 이슈화 힘들 것 vs 선거내내 폭발력 커

    무상급식이 ‘6·2 지방선거’에서 결정적인 쟁점이 될까.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에서 제시한 수도이전(세종시) 공약이나 2007년 대선에서 제기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정치권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현장으로 전파된 경우였다. 이와 달리 무상급식 이슈는 직영급식 전환을 촉구해 온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부각됐다. 논란의 방향도 “급식의 유형이 학생의 심성에 영향을 미칠까.”라는 등 거시적 정책과 미시적인 영향을 포괄하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논의는 결국 ‘밥 먹는 문제’로 귀결돼 지방선거를 관통하는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무상급식 문제는 사안 자체가 간명하고, 누구나 입장을 가질 수 있어 선거 기간 내내 폭발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한다. 지방선거인 만큼 자녀들의 끼니와 관련된 급식문제가 오히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① 어떻게 쟁점화 됐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은 직접 관련된 초·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다. 그러나 직접 이해 당사자인 초·중·고교생은 6·2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 무상급식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첫 번째로 여야가 격돌하는 쟁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결성된 연합 시민단체인 ‘친환경무상급식연대’의 무상급식 서명운동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이의 금지를 통고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 찬성·반대 운동과 유사한 사례라는 것이다. 선관위의 결정에 급식연대가 반발하면서 이 문제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선거와 관련한 시민단체의 활동이 지금까지의 낙선운동 등 정치적 색깔이 분명한 운동에서, 무상급식 등 ‘생계형 운동’으로 변화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급식운동의 주축을 이루는 시민단체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2006년 수도권 지역 위탁급식 학교를 중심으로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집단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기점으로 학교급식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당시 위탁업체의 부실급식 논란이 일어나면서 직영급식 전환 요구가 봇물을 이뤘고 결국 관련 법이 마련됐다. 운동본부는 이후 올 1월19일까지가 기한이었던 직영 전환과 관련, 법정 기한에 따라 충실히 이행되는지를 감시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이런 활동의 영향으로 전국 1만 1225개 초·중·고교 가운데 직영급식으로 전환한 학교가 1만 596개로 94.4%에 달하게 됐다. 그러나 이중에서 서울 지역 직영급식 비율은 73.1%로 16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가장 낮다. 이처럼 서울지역의 직영급식 전환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수도 다르고, 학교가 폐교하거나 이전할 계획인 곳도 있다.”면서 “직영급식 전환을 앞으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고, 직영급식으로 전환하는 유예기간을 1년 더 주는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위탁급식을 직영급식으로 바꾸지 않은 학교장 40여명을 집단 고발한 뒤 나온 반응이다. 시민단체는 직영급식으로 전환하지 않은 배경과 관련, 이권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장이나 행정실장, 공무원이 급식비를 횡령하기도 했고 급식업체와 결탁해 돈을 받은 교장이 적발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전원 무상급식 전환과 관련, 친환경 급식 실현, 먹거리 질의 개선 등의 주장을 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영양사 등의 학교 내 노조 결성 가능성, 예산 부족에 따른 먹거리의 질적 문제 초래 등의 주장을 편다. 살펴보면 이런 반대측의 주장은 직영급식 전환을 반대할 때의 주장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② 선별급식 학생 노출 논란 정말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이 공개되면 학교생활에 영향을 받을까.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들의 공개 여부를 두고 여야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무상급식 학생이 알려질 수밖에 없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민주당 측 주장과 이런 주장이 허위이거나 과장됐다는 한나라당의 반박은 재정 문제와 맞물려 무상급식 논란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은 “선별적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학생들의 면면이 모두 노출돼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주장한다. ‘의무교육 중에는 당연히 식사도 함께 제공되는 것이 옳다.’는 주장과도 상통하는 논리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활용하면 무상급식 대상 학생들의 노출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학년이 시작될 때 통합전산망에서 무상급식 대상자를 추린 뒤 학교 행정실로 바로 통보하는 방식이다. 가정환경 조사를 통해 무상급식 학생을 선정할 때도 밀봉한 봉투를 학교에 내기 때문에 신분이 드러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게 교육과학기술부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학교 급식비가 ‘스쿨뱅킹’ 방식으로 학부모 통장에서 학교 계좌로 자동이체되기 때문에 충분히 비밀보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통합전산망을 완벽하게 구축한다고 해도 급우들끼리 누가 무상급식을 받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은 여야가 모두 인정하는 대목이다. 방과후학교 지원 등 다른 복지정책과 급식 문제가 겹칠 수 있고, 학생들끼리 생활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고, 급우들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감수성을 어른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같은 논리로 무상급식 문제를 사회 이슈화하는 게 오히려 일부 학생들의 수치심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일선 학교에서는 논란 자체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교사는 “선별적 무상급식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는 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대상에서 제외돼 무상으로 급식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면서 “무상급식 논의 자체가 기존에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이 아니라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느냐.”고 되물었다. 선별적 무상급식 방식을 적용할 경우 급식비와 관련된 경계지대의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어 이들에게 급식비를 내도록 교사가 독촉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런 점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가난하지만 무상급식을 받지 못하는 학생·부유하지만 급식비 독촉을 받는 학생과 이들을 보는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무상급식 논쟁이 자칫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해 왜곡되거나 뒤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③ 외국의 사례 다른 나라에서는 무상급식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나라마다 교육 제도가 다르듯 무상급식 제공률도 천차만별이다. 복지국가인 스웨덴과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100% 무상급식이 이뤄진다. 핀란드는 급식비뿐 아니라 학교에서 거리가 먼 학생들의 교통비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소득세율이 26~57%로 우리보다 10~15%포인트 정도 높은 스웨덴과 우리의 현실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무상급식 비율은 49.5%, 영국은 35.0% 수준이다. 교과부는 중국에서는 교직원에게만 무상급식이 제공될 뿐 학생들에게는 무상급식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OECD 회원 국가들의 통계 항목에는 무상급식에 관련된 통계가 잘 잡혀 있지 않다. 국가의 복지 척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중앙정부 몫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가적인 통계로 잡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주마다 무상급식 지원율이 다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교육의 중앙집권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급식비 지원은 지자체 단위로 이뤄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무상급식 논란 역시 교부금을 포함한 지자체 예산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이 전면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채택한 가운데 한나라당은 민주당 안에 반대하며 이의 당론 채택 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이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학생들의 학교 체류시간이 다르고, 수업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교실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점심을 함께 먹고, 저녁도 대부분 학교에서 먹는 체제인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한 급식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상급식과 관련된 각 당의 정책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어떤 표심으로 나타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곤 교육감 취임 이후 경기도에서 보듯 무상급식을 실시할지, 하지 않을지 열쇠를 쥐고 있는 게 시·도 의회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지금까지 3차례 경기도교육청이 제출한 추경 예산을 삭감했다. 정당 공천을 받는 시·도 의원들의 경우 중앙당 당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의 당락이 정당 공천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의 경우 무려 8차례나 기표를 해야 해, 인물이 누구인지보다 어느 정당 출신인지가 유권자의 표심을 흔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단계에서 정당별 이해득실을 따지기는 이르지만 무상급식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될 경우 정책 향방에 따라 표심이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단, 시·도 교육감은 원칙적으로 정당 공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영향은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한국판 건보개혁’ 무상급식 논란

    ‘한국판 건보개혁’ 무상급식 논란

    무상급식 문제가 이번 6·2 지방선거의 ‘메인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매개로 ‘단체장-교육감 후보’ 연대 움직임이 나타난다. 한나라당에서는 서울시장 후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원희룡 의원 등이 동조하고 있으나, 당 지도부가 “포퓰리즘적 정책”이라며 반대한다. 자녀들의 ‘밥’이 걸린 문제여서 학부모의 관심이 높다. 무상급식은 정치인들에게는 표(票)로 계산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복지 개념을 바꿀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그동안 한국의 복지는 미국식 선별주의(잔여주의)였다. 정부가 국민의 소득과 자산을 조사해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하고,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가진 사람들은 급식비를 내고, 그 돈으로 서민을 도와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논리가 바로 선별주의의 핵심이다.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김문수 경기지사 간 충돌도 복지 이념의 대립이다. 김 교육감은 지난해 말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해 650억원의 예산을 상정했지만,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가 전액 삭감했다. 경기도청과 의회는 대신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가정의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해 750억원 규모의 별도 예산을 통과시켰다. 선별주의와 대립되는 것은 북유럽식 보편주의 복지다. 복지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무상급식은 헌법이 정한 무상교육의 범주에 포함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기도의회는 선별적 복지를 위해 오히려 100억원을 증액했다. 재정이 넉넉한 서울에서는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학교가 없지만 농촌지역인 전북은 751개 초·중·고교 가운데 472개교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명문화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내놓은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21일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한 결과 연간 2조원이면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교에서 전면 무상급식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분담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무상급식은 미국의 보편적 복지 실험대인 의료보험 개혁과 마찬가지로 복지정책 방향 전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면서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호응하고, 지역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입법화가 추진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어젠다 ‘복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핀란드와 같은 복지국가가 살기 좋다는 사실을. 모두들 핀란드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돌아가는 현실은 반대다. 감세, 규제완화, 공공영역의 시장화 추진…. 어느덧 우리는 복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 모토가 되면서 일각에서는 복지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도 보인다. “서유럽을 보라. 복지를 추진하는 사민주의 정당들은 벌써부터 대중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하면서. 하지만 정말 그럴까. 복지는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린 것일까.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모임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펴낸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부탁해’(도서출판 밈 펴냄)는 복지국가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어젠다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이들은 “양극화의 모순과 민생 불안, 고용 없는 성장은 모두 이 신자유주의의 거품”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그들은 고전적인 복지는 전부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일부 극빈층을 복지의 수혜자로 삼는 선별적인 복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수혜를 받고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복지다. 그렇다고 경제 성장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시장주의 요소도 끌어온다. 이른바 ‘역동적 복지국가’다. 이 개념은 책의 69개 꼭지글을 관통하고 있다. “오직 신자유주의 논리에 기댄 경제성장은 단기간의 효과만 있을 뿐이다. 맞춤형 교육, 평생교육,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기본 축으로 복지의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 이게 길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일부 기득권 세력들은 복지를 위한 증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념 논쟁으로까지 몰고간다. 복지를 반(反) 시장주의의 일환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글쓴이들은 복지 국가의 목표가 결코 이념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복지가 단순히 좌파들의 정치적 어젠다가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먹고사는 문제라는 주장이다. 책은 정치, 경제, 노동, 의료, 조세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해결 방안을 알아본다. 과연 유럽의 복지제도가 한국에서도 가능한지, 어떻게 하면 이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줄기차게 그 해결 방안을 찾는다. 진보 대통합을 통해 정치구조의 기본 틀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1만 3900원.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교육·국가경쟁력·반부패지수 1위 ‘핀란드 따라잡기’

    교육·국가경쟁력·반부패지수 1위 ‘핀란드 따라잡기’

    지금, 여기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자유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책임지며 행복감을 느끼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21세기적 이상향’에 가깝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핀란드의 정치행정, 문화, 교육, 주택, 보건 등 여러 분야의 사례를 들여다본다. 더불어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 분야별 현안들과 추구해야 할 대안적 과제 등을 살펴본다. 역사와 문화 등 처지는 다르지만 배워야 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멀리 수백년 전 조선시대로도 거슬러 올라가 타산지석(他山之石)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를 총합해 본다. 영국 런던의 레가툼 연구소는 해마다 ‘레가툼 번영 지수’를 발표한다. 정치, 경제, 교육, 보건, 민주주의, 기업 등 여러 영역을 종합해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 이 나라는 지난해 여기서 1위를 차지했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조사한 교육 경쟁력 또한 1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도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부동의 1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뽑은 반부패지수 역시 1위다.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가 핀란드다. 2006년에는 유럽의회 의장국이 됐다. 인구 530만명의 조그마한 나라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핀란드가 말하는 핀란드 경쟁력 100’(일까 따이팔레 엮음, 조정주 옮김, 비아북 펴냄)은 많은 이들이 품었던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다. 전·현직 정치인과 학자, 연구소·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강소국’ 핀란드를 가능케 한 여러 제도, 문화, 생활상 등을 소개한다. 연립정부와 지방정부 등 국가 행정과 같은 크고 중요한 의제부터 자일리톨, 사우나, 노르딕 워킹 등과 같은 일상생활 속의 작은 부분들까지 아우르며 100개의 소재를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100가지 소재들을 꿰뚫고 있는 것은 모두 ‘사회적 창안(Social Innovation)’ 아이디어라는 점이다. ‘사회적 창안’은 특허화할 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사회적 화합과 사회 안전망 구축, 의회민주주의의 발전, 사회 복지의 증대 등을 위한 아이디어를 일컫는다. 그동안 교육 정책 중심으로 소개되는 데 그쳤던 핀란드 사회의 실체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정치와 경제, 교육, 복지, 노동 등이 서로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며 끌고 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정치 분야를 보면, 1907년 세계 최초로 여성 의원을 19명이나 일거에 배출했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1918년, 1920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또한 의회는 일반적으로 보유하는 입법권, 예산권 외에 ‘미래 비전 제시권’을 갖고 있다. 다른 특위가 임시위원회인 것과 달리 상임위원회로 운영되면서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인구정책과 테크놀로지 등 인류 사회의 장기적 과제를 연구하고 제안한다. 1968년 노·사·정 간에 임금정책협정을 체결한 이후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삼자주의와 투명한 행정, 의사결정 투명성, 언론 자유 등에 토대를 둔 부정부패 척결은 핀란드 발전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출산, 보육, 탁아 등에서 아이 낳기 좋은 ‘엄마들의 천국’ 핀란드, 대학 등록금, 하숙집 걱정 없는 ‘학생의 천국’ 핀란드 면모도 조목조목 소개한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2주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인 사람들이 있었다. 남부 엠마우스 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은 ‘핀란드의 개발도상국 개발원조 수준이 너무 낮다.’며 단식 투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1% 운동’이 생겨났다. ‘핀란드 국민들이 자신의 연간 총소득 중 최소 1%를 후진국 개발협력 자금으로 기부하는 운동이다. 자발적 참여와 공유 정신에 기반한 ‘리눅스’가 핀란드에서 개발된 이유가 족히 짐작된다. 교육 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핀란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마스다 유리야 지음, 최광렬 옮김, 시대의창 펴냄)다. 교사 양성과 관계 맺기, 교육 내용 등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OECD가 2000년 이후 3년마다 실시했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세 차례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핀란드의 교육을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 교사의 눈에 비친 모습을 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교육계는 ‘핀란드 참배’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까지 핀란드 교육 제도와 정책, 생생한 현장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핀란드를 방문했고, 자신들의 교육 정책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저자는 학업성취도 1위의 배경에는 질 높은 교사의 양성, 헌신적이면서도 평등한 교육을 추구하는 교사의 노력과 그 교사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교육당국 등이 있다고 분석한다. ‘핀란드 경쟁력’ 1만 6000원. ‘핀란드 교사’ 1만 35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丁 ‘뉴민주당 플랜’ 승부수 왜

    丁 ‘뉴민주당 플랜’ 승부수 왜

    “‘진보’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철저하게 민생을 챙기는 실사구시의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민주당 정세균 대표) 민주당이 민생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뉴민주당 플랜’을 25일 내놓았다.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뉴민주당 비전위원회’를 만든 지 1년 반만이다. 지난해 5월에는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한다는 ‘뉴민주당 선언’ 초안을 발표했다가 ‘한나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민생 정책 프로그램은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언론관련법, 4대강 예산, 세종시 수정 등 현안 대응에 밀려 속도를 내지 못했다. 민주당은 우선 6개 핵심 분야별 정책을 매주 차례로 내놓은 뒤 최종적인 ‘뉴민주당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뉴민주당 플랜’은 일자리 중심 정책, 사람에 대한 투자, 중소기업 중심 시장경제, 비정규직 해결, 사회투자형 복지국가, 지속가능한 발전 등으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첫 번째로 발표된 교육 정책에서 영·유아 공교육화, 학습 다양화, 일제고사 폐지, 학급당 25명 실현, 반값 등록금, 중등교육 무상화, 보편적 무상급식, 학벌사회 타파를 위한 대학개혁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비교적 진보적이고 선명한 정책 대안을 내놓은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여권이 친이-친박으로 갈려 세종시 논란에 여념이 없을 때 민생 이슈를 선점해 ‘대안 정당’ 및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포석이다. 지난해 민주당은 미디어법과 예산 투쟁에서 정부·여당에 완패했고, 세종시 국면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지방선거를 겨낭한 측면도 강하다. 6주에 걸쳐 발표되는 ‘뉴민주당 플랜’을 지방선거 공약의 근간으로 삼아 ‘민주당 후보라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정책을 구현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게 민주당의 계획이다. 민주당은 이날부터 지방선거기획단을 지방선거본부 체제로 바꾸고, 이미경 사무총장과 김민석 최고위원을 공동본부장으로 임명하는 등 선거 체제로 전환했다. 당내에선 정 대표의 구심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정 대표가 민생 정책을 앞세워 여당과 정책 대결을 벌이겠다는 마당에 비주류 쪽이 계속 정동영 의원 복당,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징계 등 복잡한 당내 문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창구 유지혜기자 window2@seoul.co.kr
  • [열린세상] 인식혁명 없이 정당개혁 없다/임성호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열린세상] 인식혁명 없이 정당개혁 없다/임성호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정치학 원론에 나오는 정당과 현실의 정당은 왜 이렇게 다를까. 원론 교과서엔 정당의 기능이 길게 나열돼 있다.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의 정치참여를 북돋고, 유권자에게 판단의 길잡이가 된다고 한다. 또 정치 지도자를 양성하고, 사회 이익을 집성해 정책결정을 촉진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정말 없어선 안 될 기능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원론적 기대라 해도 현실과 너무 다르다. 우리 현실에서 정당은 민주주의의 큰 걸림돌로 전락했다. 과장과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수동적 동원 대상으로 만들고, 유권자의 이성적 투표 판단을 방해한다. 또 정치적 이권이나 자리를 탐내는 무리를 만들고, 사회 갈등을 심화시켜 국정 거버넌스가 엉망진창이 되게 한다. 정당무용론, 심지어 정당폐지론이 공감을 살 만도 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제도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동안 수많은 선진제도를 도입, 시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 탓만 할 수도 없다. 과거에 비해 개별 정치인의 자질은 훨씬 향상되었지만 정당정치의 현실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퇴보했다. 물론 제도 개선과 정치인 자질 향상이 계속돼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정당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 더 큰 문제를 찾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정당은 통일성 있는 균질한 조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를 지배해 왔다. 균질한 정당이 명확한 기조를 세워 일관되게 추구하고 이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기존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하에 정당원은 당론을 따라야 하고 당론 불복은 해당행위로 제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정당화되곤 했다. 사실 균질적 조직으로서의 정당은 사회가 비교적 단순했던 과거 산업시대에는 원론적 기능을 나름대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중민주주의를 이끈 원동력이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상황이 바뀌었다. 기율 있게 움직이는 균질한 조직이 정책이슈를 다루며 전국적 공당(公黨)으로 기능하기에는 사회의 다양성, 복잡성, 가변성이 너무 커졌다. 당 내부 이견이 자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통일성, 균질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조직이라면 정당보다는 이익단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 무리해서 통일성을 기하려 해도 내분만 심화돼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점은 계파 내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 민주당이 실례(實例)로 보여 준다. 균질성을 고집할 경우 내부만 시끄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심각하게, 경쟁 정당과의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각기 똘똘 뭉친 거대조직들끼리의 관계는 집단주의적 논리에 의한 경직성을 벗기 힘들다. 4대강 예산, 세종시 등의 현안은 각 정당이 일치된 당론을 고수할 경우 상대와의 대화를 통한 타협, 조정은 매우 힘들어진다는 점을 예시해 준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게 정당에 대한 낡은 인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정당을 단단한 조직이 아니라 유연한 네트워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유기체적 연대로 봐야지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기계 덩어리로 봐선 곤란하다. 이익단체와 잘 구분되지 않는 군소정당은 차치하고, 전국정당을 자임하는 주요 정당이라면 더 이상 일사불란한 조직일 수 없다. 이렇게 정당이 획일적 집단주의에 빠지지 않은 존재로 인식될 때 오늘날 정당의 각종 병폐, 특히 집단적 대결에 따른 국정 황폐화를 피할 수 있다. 역사발전은 인식전환을 전제로 한다. 국가는 야경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인식전환 덕에 오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개인 권리의 보호뿐 아니라 시민적 의무와 덕성의 함양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인식전환에 따라 더욱 성숙해 왔다. 기업도 사적 이윤뿐 아니라 사회적 공헌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인식전환을 거치고 있다. 이제 정당이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인식전환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유권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수 있는 어렵지만 시급한 숙제다.
  • 경기도 - KT&G 796억원 담배소송 법정공방

    경기도 - KT&G 796억원 담배소송 법정공방

    경기도가 KT&G를 상대로 낸 ‘담뱃불 화재로 인한 재정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첫 변론이 소 제기 1년 만인 15일 오후 2시 수원지방법원 민사법정에서 이뤄졌다. 경기도와 KT&G 측 변호인은 화재안전담배를 제조하지 않은 책임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방 재정 피해 청구에 대한 공방을 벌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수원지법 민사6부(강승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 원고대표로 출석해 소송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형사사건도 아닌 자치단체 민사소송에 소송 당사자가 직접 의견을 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김 지사는 이날 10여분간 진행된 원고 대표자 진술에서 “경기도에서는 매년 1만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하고 그중 12~13% 정도가 담뱃불에 의한 화재”라면서 “KT&G가 화재안전담배를 국내에 유통시켰더라면 많은 도민의 피해가 방지됐을 것이며 소방 비용도 절감해 도민 복지 향상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KT&G가 외국에는 화재안전담배를 수출하면서도 국내에는 오히려 연소성을 높인 담배만을 제조·판매하는 이중적 행태를 취하고 있다.”면서 “내국인을 차별해 온 악덕 기업의 실상을 정확히 심판할 수 있도록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김 지사의 원고 대표자 진술은 경기도 측 주심 변호사인 배금자 해인법률사무소 대표 요청으로 성사됐다. 배 변호사는 이번 건이 공익소송임을 강조하면서 수임 때부터 김 지사에게 대표자 진술을 제안했고, 김 지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최근엔 소방재난본부·변호인단과 자주 접촉하며 소송 취지와 전략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T&G 측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화재 진압은 경기도의 당연한 책무이고 공공서비스에 수반되는 재정의 지출을 손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치·복지국가 관점에서 허용될 수 없다.”면서 각하를 주장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 KT&G를 상대로 담배 화재로 인한 재정 손해 796억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한편 서울시도 경기도가 이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같은 내용의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경기도가 담뱃불 소송에서 이길 경우 서울시도 똑같은 내용의 소송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경기도가 담배제조사인 KT&G를 상대로 한 소송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조언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친노세력 정치세력화 시동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 보폭을 조절하던 친노(親) 세력이 서서히 동선을 넓혀가고 있다. 1차적인 목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다. 참여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친노계 모임인 ‘시민주권’이 지난 16일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을 계승하는 정치·생활 복합체로서의 시민조직을 표방하는 ‘시민주권’은 공개적으로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언급하고 있다. ‘시민주권’의 대표를 맡은 이해찬 전 총리는 창립대회에서 “내년 지방선거 승리는 국가재정을 파탄시키고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나쁜 정부를 심판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제 정당과 시민사회에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연대기구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가칭 ‘승리 2010, 시민의 힘’이 그것이다. 이 전 총리는 “‘시민주권’은 주권자의 힘으로 ‘비전 2030’을 구현하는 운동으로, 선진복지국가의 미래를 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개혁·소비자주권 운동 등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예산이 교육·복지 예산 등으로 편성될 수 있도록 예산주권운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만수·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 백원우·서갑원·원혜영·이미경·이용섭 의원 등이 ‘시민주권’에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도 지난달 23일 출범 이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참여정부 일부 인사가 주축이 된 ‘국민참여정당(가칭)’이 발기인 대회를 갖고 현재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창립주비위원장을 맡고 천호선 전 대변인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임정 90주년 발자취 되밟다] (상) ‘독립정신 답사단’ 동행기

    [임정 90주년 발자취 되밟다] (상) ‘독립정신 답사단’ 동행기

    꼬박 90년이 흘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4월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은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차렸다. 1945년 충칭(重慶)에서 광복을 맞을 때까지 26년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의 시작이었다. 임시정부는 총 5000㎞를 이동하며 세계 피식민지 민중의 저항운동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활동을 펼쳤다. 좌·우 이념적 갈등을 아울러 가며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군대를 양성했고, 세계 양심세력들의 찬사를 받은 영웅적 투쟁을 펼치는 한편 외교적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현재 우리 헌법의 토대가 되는 법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마련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씩씩한 청년들 54명을 포함한 독립유공자 후손, 학자 등 70여명으로 꾸려진 ‘독립정신 답사단’이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중국 땅에서 선대의 발자취를 되밟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주관, 서울신문 후원 사업이다. 그들을 따라, 그들의 곁에서 목도했던, 90년의 세월과 중국과 한국의 공간을 뛰어넘는 의미를 두 차례에 걸쳐 되새겨 본다. │충칭(중국) 박록삼특파원│#장면 1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네가 만일 뼈가 있고 피가 있다면 조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식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스물다섯 살의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처연한 말이다. 그의 의거는 일본육군사령관, 일본 상하이거류민단장을 죽게 했고, 일본 열도를 경악시켰다. #장면 2 1945년 11월3일 충칭 임시정부 청사 계단 앞. 백범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앞서 태극기를 들고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눈매에도 웃음기는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피흘려 싸웠건만 돌아온 것은 ‘또 다른 제국’의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 군정은 임시정부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의 환국만을 허락했다. 이역만리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피를 흘렸던 임시정부의 투쟁과 꿈, 좌절을 상징하는 두 장면이다. 나라 빼앗긴 백성들 앞에 놓인 길의 갈래는 많지 않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개똥처럼 굴종의 삶을 살든지, 일본에 빌붙어 개인만의 영달을 꾀하든지, 아니면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한 목숨을 바치든지 말이다. ●90년전 임정이 꿈꾼 나라를 찾아나서다 지난 11일 오전 8시 무렵 인천국제공항. 전국 각지의 대학생 54명이 모였다. ‘독립정신 답사단’이다. 이들은 이미 ‘장강일기’와 ‘백범일지’를 읽고 임시정부의 수난과 고통, 절절한 바람을 익혔다. 답사단에 주어진 과제는 간명하면서도 묵직하다.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박제화된 교과서에서 우리네 현실의 문제로 끄집어내야 한다. 중국 상하이~난징(南京)~자싱(嘉興)~항저우(杭州)~창사(長沙)~구이린(桂林)~류저우(柳州)~치장~충칭(重慶)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이동하며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을 잡아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한 비장함 따위는 청년들의 몫이 아니다. 재미난 여행을 앞둔 듯 끼리끼리 재잘거리기 바쁘다. 40도를 넘나드는 후덥지근한 7월의 상하이에 도착했고 곧바로 임시정부청사 옛터에 이어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루신공원(옛 훙커우 공원)을 찾았다. 이내 숙연해진다. 발대식부터 결연하다. 책으로 본 지식은 뇌에 남지만, 눈으로 본 감동은 심장에 남을 수밖에 없다. 모두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감동과 배움이 넘쳐나다 12일 뙤약볕 속에 난징 대학살기념관을 방문한다. 일제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남겨놓은 이곳에서 답사단은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관련 기록물들을 둘러본 뒤 다시 쳐다본 정문 맞은편 벽에 쓰여진 ‘300000’이라는 학살된 사람들의 숫자는 이제 더이상 역사 속의 지식, 정보가 아니었다. 후난성(湖南省) 창사 난무팅(楠木聽)에서 백범은 1938년 5월6일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우익 3당 대표들과 모여 3당 통합을 논의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운환이 쏜 총에 맞아 상아의원으로 긴급하게 후송된다. 답사단은 15일 창사 시내 낡은 골목길로 들어선 뒤 몇 차례 왼쪽, 오른쪽으로 꺾다가 어렵사리 난무팅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 17일 치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치장에는 이동녕 임정 주석 등이 머물던 옛집터(상승가 107호)와 임정청사 구지(임강가 43호) 등이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조차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김자동 임정기념사업회장의 “한국 정부에서 중국 시정부 등과 협조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설명에 함께 안타까워했다. 더이상 교과서 속의 역사가 아님을 심장이 먼저 느낀다. ●2009년,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 답사단은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고, 꼼꼼히 메모를 한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신명식 이사, 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 등 전문가의 강연을 듣고, 조별로 정한 과제를 발표한다. 그리고 1942년 제정한 건국강령에서 ▲대규모 생산기관 국유화 ▲노동자 의료비 면제 정책 ▲친일세력 귀속재산 몰수 ▲최저임금제 ▲노동조합 경영참여권 등을 명문화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또한 항일이라는 지상 과제를 앞두고 1938년 좌·우익 7당 통일회의를 여는 등 백범과 좌익의 약산 김원봉을 중심으로 좌우 갈등을 아우르고 통합하기 위해 기울였던 끈질긴 노력도 오늘의 상황과 맞물려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답사단 김태균(24·한양대 4학년)씨는 “현재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원형을 이미 임정에서 천명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면서 “이번 답사를 통해 젊은 세대가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역사를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youngtan@seoul.co.kr 임정기념사업회 주관 서울신문 후원
  • 지나치게 우편향된 한국사회 비판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이 화제다. 좌우 이념 대립에 휘말리지 않고 서민 경제회복에 전념해 대선때 자신을 지지한 중도 세력을 되찾아 오겠다는 얘긴데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보수는 현 정권의 이념적 좌표가 중도로 옮겨간 것 아니냐는 불만이고, 진보는 진정성없는 정치쇼라는 비난이다. 귀화한 한국학 학자인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보기에 이러한 중도 담론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극우 정권이 국민을 통치 시스템 안에 수렴하고 순치시키기 위한 구색맞추기용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가 워낙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진정한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더 급직전이고 과감하게 왼쪽으로 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한겨레출판 펴냄)에서 박 교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날카로운 성찰을 토대로 진보적 미래의 가능성을 점검한다. 그는 극우 보수 정권은 물론이고 이른바 자유주의적 온건개혁의 한계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한다. 지난 10년 간 국가보안법 등의 악법 폐지, 대자본에 대한 국가적 견제, 관료제의 합리적 개선 같은 개혁 과제에 실패한 점을 근거로 든다. 박 교수가 제시하는 진보적 사회는 ‘양육과 교육, 의료를 공동체가 책임지는 나라’, 즉 공공 복지국가다. 이를 위해선 진보 세력의 역량이 우선 강화돼야 한다. 진보 정당이 복지형 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현실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이를 대중들이 지지할 때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자본 예찬에 급급한 우파·무지한 좌파에 일침

    “우파는 부도덕하고, 좌파는 무능하다?” 도발적으로 들리는 이 질문에 발끈하는 사람들 많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먼저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조지프 히스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펴냄)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심기를 불편하게 한 문구는 바로 이 책의 부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조지프 히스 토론토대 교수의 전공은 철학. 하지만 경제학에 대해 과감히 메스를 들었다. 이유는 “지금 유지되고 있는 체제(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나은 대안을 우리 손으로 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시장과 자본을 예찬하기에 바쁜 우파와 대책없이 반대만 하는 좌파를 함께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우선 우파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완전경쟁에 가까울수록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말은 맞을까. 시장을 가능한 한 경쟁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이상에 근접하게 된다는 논리는 하와이 근처까지만 가는 항공권과 같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휴가의 목적지가 하와이인데 항공회사에서 하와이 근처까지만 데려다 준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자신들의 논리를 위해 경제학자들은 수많은 변수와 외부효과를 배제해 버리지만, 경제학에 무지한 좌파는 이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무료로 뭔가를 제공받으면 사람들은 그 서비스를 과도하게 이용하려 들까. 이런 논리 역시 우파의 흔한 주장이다. 저자는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한 공공부조 제도는 복지국가의 발명품이라기보다 수천년간 인간 사회를 존속시켜온 아주 보편적인 제도라고 말한다. 또 도덕적 해이를 핑계로 사회보장제도 축소를 외치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몇몇 경제학자들의 논리에도 반기를 든다. 인센티브가 인간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며 영향을 끼칠 때조차 지극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만큼이나 평판에 신경을 쓰는 등 인간의 복잡한 심리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좌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공정무역을 살펴보자. 공정무역은 소비를 통해 인도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좌파의 호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공정무역을 내세웠던 더보디숍이 과잉생산과 가격폭락으로 큰 손해를 입은 일화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상품이든 노동이든 가격을 직접 조절하려는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협동조합을 주식회사보다 더 윤리적이라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각종 협동조합을 자본주의의 첨병인 주식회사를 넘어서는 형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주식회사도 그저 특수한 형태의 협동조합에 불과하며 모든 협동조합은 소유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일깨워 주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더 자유롭게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에 고마워해야 할 이는 독자만은 아닐 성싶다. 아마도 속시원한 반박을 들어보지 못한 보수와 진보진영의 경제학자들이 돼야 하지 않을까. 1만 6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발언대] 글로벌 중소기업 강국 ‘덴마크’를 보며/정영태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장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지난달 발표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8단계 상승한 세계 29위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중소기업 현장의 어려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누비며 ‘전봇대 뽑기’ 등 노력의 결과가 일부 반영된 듯해 다행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덴마크가 1위를 차지해 주목을 끈다. 우리나라 경상남도만한 크기에 인구 545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세계에서 잘 살기로 손꼽히는 덴마크는 최근 IT 강국, 디자인 강국으로 부상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가 됐다. 낙농업과 북유럽의 유명한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던 덴마크는 기존 낙농업에서 의약, 생명공학뿐 아니라 IT 등의 새로운 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시설이 개도국으로 옮겨가면서 제조업의 비중이 감소하고 생산성 향상으로 고용이 감소하는 문제를 민간 분야, 특히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에서의 고용 창출로 유도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덴마크의 글로벌 중소기업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1~2위인 기업들이 특히 많다. 강한 중소기업을 보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수시장이 작아 창업 초기부터 세계를 상대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덴마크 정부는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창업과 기업가 정신 배양을 중요한 경제정책 기조로 유지한다. 대학에서는 창업과 관련된 모든 교육을 정규과정으로 실시한다. 창업 및 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비즈니스 서비스 센터와 창업보육센터, 기업 성장에 따른 자금지원 등 체계적으로 잘 정비돼 있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덴마크와 같이 기술력과 글로벌화로 무장한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들은 그 영향을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강한 글로벌 중소기업 육성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말해준다. 정영태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장
  • [강석진 칼럼] 의료 민영화 시기상조다

    [강석진 칼럼] 의료 민영화 시기상조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는다. 의료기관은 삶의 시작이고 끝이다. 보편적인 의료 혜택은 복지국가의 핵심이다. 최근 의료 민영화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민영화 의지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는 영리 병원 설립 허용,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보험 도입 등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윤 장관이 말하는 것은 영리 병원 설립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시민단체는 국민을 사지로 내몰 것이라면서 맹반대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전재희 장관은 “찬반 양측에서 과도한 기대와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당 내부에서는 전 장관에 대해 “사회주의자 같다.”며 소극적 자세를 질타하는 말도 들린다. 반대 주장부터 들어보자. 병원이 주식회사처럼 돈벌이를 추구하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것이다. 부당청구나 과잉 진료도 많아질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거나 민영보험이 도입될 것이라는 데 있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영리 병원들은 건강보험 체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치료비를 꽤 올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민영보험이 도입되면 고급 치료는 부자나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건강 양극화까지 우려된다는 게 반대론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의료 민영화를 하려 할까. 기재부의 한 고위관료는 “경쟁을 통해 의료비가 줄고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태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외국 환자를 불러들여 외화 수입도 올릴 수 있다. 의료산업에 자본이 투입되면 일자리도 창출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 효과를 질문하면 답은 모호하다. 기재부 실무 국장은 “얼마나 고용이 창출될지 알 수 없다.”고 답한다. 복지부 실무 국장은 “추계치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인은 얼마나 올까? 기재부쪽은 “태국이 연간 140만명을 유치하고 있다.”며 꽤 유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복지부쪽은 “이것도 추계가 없다.”고 말한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국민개보험 체제에 대해서는 두 부처 모두 반드시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허문다고 하면 얼마나 반발이 클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민간연구소는 이미 2007년 보고서에서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면 “수가 현실화, 민간보험 활성화, 당연지정제 폐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리병원의 문이 열리면 다음 디딜 걸음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일본인 르포 작가가 쓴 ‘빈곤대국 아메리카’(쓰쓰미 미카, 문학수첩)나 타임 3월16일자에는 의료 민영화 대국 미국에서 중산층이 단 한번의 질환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를 집중 조명한다. 반면 네덜란드나 일본은 영리병원을 도입하지 않고도 의료체제에 대한 평가가 꽤 높게 나타난다. 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로 한국 사회도 편할 날이 없다.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을 ‘하산층’으로 만들고 있다. ‘이 아픈 날 콩 밥 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의료 민영화가 도입되면 중산층과 빈곤층의 삶은 한결 고달파질 가능성이 크다. 의료 민영화는 한번 실시하면 되돌아 올 수 없는 ‘불가역적 과정’이다. 게다가 코스트(cost)에 대한 우려는 큰데 얻을 수 있는 이익(benefit)은 어림 추계조차 없지 않은가. 의료 민영화를 지금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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