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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가 허용’ 단체장 처리/ 행자부, 제재수단 없어 고심

    행정자치부는 ‘연가(年暇)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울산시 동구와 북구,경남 창원시,경기 부천·과천시 등에서 공무원들이 합법적으로 연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자 경위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5곳의 기초자치단체장이 연가를 허용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행자부가 단체장에게 직접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국가와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면 자치단체장은 중앙행정기관의 징계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자부는 고작해야 다음 선거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단체장에게 ‘경고’조치를 할 수 있을 뿐이다.물론 정부보조금과 교부세,특별교부세 등의 삭감을 내세워 단체장을 압박할 수 있지만 전국적으로 동시에 벌어진 이번 공무원노조 사태의 경우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행자부는 연가 업무를 직접 집행한 지자체 총무과장-총무국장-부단체장들에 대해서는 징계조치를 취할 수 있다.이 경우 연가허가가 ‘기관장은 공무수행상 특별한 지장이 없는 한 연가를 허가해야 한다’는 지방공무원복무규정 19조 4항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정부는 연가투쟁이 공무수행에 극심한 지장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는 반면 노조측은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공무원이 내는 연가의 경우 기관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받아들여야 하나 이번 경우는 불법집회 참가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특별한 사유에 충분히 해당돼 연가를 불허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법 해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가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출근하지 않은 공무원의 경우 공무원법상 ‘직장이탈금지’ 규정 위반과 ‘명령 불복종’으로 보고,이들이 집회에 참가한 사실까지 확인되면 ‘단체행동금지’ 규정 위반으로 징계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행자부는 최근 일선 행정기관에 집회 참가 공무원에 대해 중징계방침을 시달한 바 있어 최소한 감봉 이상 정직,해임 등 중징계를 받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자치단체장들이 정작 소속 직원들에 대한 징계에 소극적일 것으로 보여 실제 징계 규모는 미지수다.지난해 전교조 조합원 4000여명의 집단 연가투쟁 당시 교육부가 전원 징계방침을 밝혔으나 결국 각급 학교장들이 징계에 난색을 표명,주의·경고에 그치는 등 유야무야된 일이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사설] 군 정보체계 쇄신하라

    최근 서해교전 때의 이상징후 포착 및 분석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 대한 군 특별조사단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군정보기구들의 한심스러운 모습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영상 및 인적 정보를 맡은 정보사령부와 통신감청을 담당한 5679부대 간에 40여일간 정보교환이 중단됐고,그나마 합참 정보본부가 조속한 정보교환을 지시했음에도 이 명령이 48시간이나 지나서야 이행됐다고 한다.이래서야 어떻게 ‘작지만 강한 군대’의 면모를 보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현대 군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래서 우리군은 많은 예산을 투입해 정보자산을 지속적으로 증강하고 있다.최근 몇년새 금강·백두사업을 벌였고,조기경보통제기(AWACS)를 도입할 계획도 짜놓고있다.또 정보사령부와 5679부대로 정보기구를 나누어 놓은 것도 상당히 잘된 편제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정보기구를 나누는 것은 정보기구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기구간 선의의 경쟁을 촉진하고,정확한 정보판단을 이끌기 위해서다.그러나 이 때의 전제는 각 기구간의‘명령 복종과 협력’이다.그런데 우리 군 정보기구에서는 명령복종이 어느 틈에 실종되고 기구간의 상호협력은 갈등 속에 매몰된 것이다.이런 문제점은 사실 예전에도 있었다.과거 김일성 사망설 때 기구간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정보를 오판했었다.당시에도 개인간 감정 대립이 상당히 고조됐었다.이번에 군정보기구는 이 교훈을 외면한 셈이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현재 군 정보체계의 문제점은 기구나 편제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바로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즉, 군기강이다.군의 특별조사가 끝나는 대로 결과에 따라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정보기구의 작동이 원상회복될 것이다.그리고 정보기구의 장 자리가 군생활을 끝내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인사시스템을 고치는 일도 해야 한다.어려운 여건 속에서 국토방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장병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군정보기구가 하루빨리 제 일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책/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지음-프랑스사회 ‘촌철살인’ 비판

    18세기 초 프랑스 사회는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루이 14세가 신의 대행자임을 자처한,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종교 또한 엄청난 권력체로서 만인 위에 군림했다.그런 삼엄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에 흩어진 지식을 집대성하려 한 ‘백과전서’의 정신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백과전서’의 집필을 주도적으로 이끈 백과전서파의 핵심사상은 계몽주의였고,몽테스키외는 바로 이 사상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당대뿐 아니라 후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몽테스키외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냥 넘겼을 리가 없다.1721년 출간된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지음,이수지 옮김,다른세상펴냄)는 한마디로 촌철살인의 프랑스 사회비판서다. 법·군주·종교·인권·자유·개인·덕·정의 등 책에 드러난 몽테스키외의 언어들을 좇다보면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었는지,국민이얼마나 권력자들의 우롱에 찬 행태에 휘둘리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은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하렘을 소유한 우스벡을 주축으로 그의 친구들,하렘에 있는 처첩들과 관리인들,그리고 종교인들이 주고받은 총 161통의 편지로 구성돼 있다.편지들을 읽어가다 보면 현재의 모든 제도적 장치나 이데올로기를 국민 스스로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무지한 채로 있다가는 어느 사이인가 자기도 모르게 당하고 만다는 것,정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는 몽테스키외의 외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간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적절치 않게 가혹한 형벌은 오히려 반란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나,부패한 절차로 임용된 관리는 본전을 뽑으려고 마치 점령자처럼 마을을 약탈하여 황폐화한다는 것 등은 읽는 이에게 사색에 잠기게 하는 그 무언가를 던져준다. “가장 완벽한 정부는 작은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정부인 것 같다.다시 말해 국민의 성향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방식을 빌려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완전한 거지.”“국민이 형벌이 좀 가혹하다고 해서 법에 더 복종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형벌이 가벼운 나라 국민은 형벌이 포악하고 끔찍한 나라 국민만큼이나 형벌을 두려워하는 법이거든.”“인간은 덕성을 지키기 위해 태어났으며 정의는 인간이 실존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네.” 비록 체계적으로 몽테스키외 자신의 의견을 저술한 사상서는 아니지만 오히려 명료한 사상서보다도 더 뚜렷하게 당시의 시대정신,즉 계몽의 모티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책에서 그린 인물상들과 권력자들의 행태는 여전히 우리 세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사회의 병든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1만4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2002 길섶에서] 낭떠러지 효과

    간혹 SF영화나 소설을 보면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프로그램된 슈퍼컴퓨터가 어느 순간 홱 미쳐 오히려 인간사냥에 나선다.인간은 자기가 만든 기계에 속절없이 당한다.과학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성능 컴퓨터일수록 미세한 요인에 의해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되기 쉽다고 한다.그래서 계산능력이 초당 1조회를 웃도는 슈퍼컴퓨터는 충격은 물론 온도 변화,먼지 등까지도 막아줘야 한다. 미래학에서는 컴퓨터가 쉽게 망가지는 이런 현상을 ‘낭떠러지 효과’라고 부른다.슈퍼컴퓨터는 입력된 명령이 아닌 비정상적인 지시를 받으면 ‘낭떠러지’에서 뚝 떨어지듯 기능이 곤두박질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미래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나아가,기계문명을 맹신할 경우 예기치 못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낭떠러지 효과는 인간사회에도 통용되는 것 같다.사회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에서 이해되지 않는 총기난사 사건이 걸핏하면 일어나고 있다.기계나 사회나 너무 정교하면 취약해지는 것일까. 박재범 논설위원
  • “이라크, 美 생화학공격 음모”부시, 아프간전쟁 1주년 연설서 경고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흉악한 폭군’이라고 부르면서 그가 생화학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작 1주년이 되는 이날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라크는 1년내 핵무기를 갖게 된다면서 “만일 그냥 놔둔다면 후세인은 그의 침략에 반대하는 누구도 협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대한 사실상의 최후통첩 성격을 가진 이날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은 언제라도 테러범들에게 생화학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사담 후세인은 스스로 무장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은 만일 후세인 대통령이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미국이 동맹국을 이끌고 그를 무장해제하겠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시점은 의회가 이라크 전쟁 결의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를 시작하는 날,그리고 미국 정국 향방을 결정하는 중간선거를 불과 4주 남겨놓은 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장군들에게도 후세인 대통령의 잔인하고 절망적인 조치에 복종해 미국의 공격에 반격을 한다면 ‘전쟁 범죄자’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테러그룹을 훈련해 왔다면서 “고위 알 카에다 지도자가 바그다드의 병원에서 올해 치료를 받았다.”고 말해 이라크와 알 카에다의 상호 관련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국의 정보에 따르면 이라크가 유인 및 무인 항공기를 건조하고 있다면서 그 항공기들은 미국을 생화학 무기들로 겨냥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은 위성 사진들을 보면 이라크는 과거 핵무기를 개발하던 장소들을 재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mip@
  • 신의주특구장관 양빈 발탁배경/ 北, 외국자본에 신뢰얻기

    북한이 ‘신의주 특별행정구’초대 장관에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인 양빈(楊斌) 어우야 그룹 회장을 내정한 것은 북한체제의 속성에 비춰 볼 때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이 외국인을 특구의 책임자로 등용한 것이 최종 확인된다면 그 자체로도 파격적인 일이다.더욱이 유일 주체사상을 강조해온 북한체제의 통치 관행에 비춰 볼 때는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할수 있는 일대 사건인 셈이다. 신의주 행정특구는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나 연형묵(延亨默) 국방위원회 위원 겸 자강도당 책임비서 등 김 위원장의 최측근 가운데 경제 전문관료가 발탁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어쩌면 ‘위험한 도박’으로 보일 수도 있는 ‘특구 초대장관 외국인 임명’의 배경으로는 나진·선봉 경제특구의 실패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우선적으로 꼽힌다.외국자본의 신뢰를 얻어보겠다는 것으로,중앙당의 개입과 간섭으로 많은 외국 자본이특구를 외면해온 점을 극복해 보겠다는 것이다.중앙당에 복종하는 북한사람을 특구 장관에 앉히고서는 대외적인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양빈 회장이 성공한 화교이고 북한과 경제협력에 우호적인 유럽연합(EU) 회원국 국적 사업가라는 점에서 향후 엄청난 화교 인맥·자본과 유럽 자본을 동시에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추천설도 이와 무관치 않다.중국사정에 밝은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김 위원장의 방중 때 장 주석이 양회장을 신의주 특구 책임자 등으로 중용할 것을 강력히 추천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양 회장의 재력과 경영능력 및 참신성,그리고 서구식의 합리적인 사고방식 등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이 중국의 쑤저우(蘇州) 개발 방식을 채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중국은 상하이 인근에 위치한 쑤저우의 일부를 싱가포르에 넘겨 ‘쑤저우공업원구’를 건설,경제적 도약을 이룩한 바 있다는 점이 그 근거다.양빈 회장은 2001년 7월북측과 남새(채소)와 화초 재배 계약을 맺고 대북한 투자에 나서면서 상당한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김위원장의 이같은 모험이 성공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극히 제한적인 개방으로는 북한경제의 활로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새달 3일 개봉 ‘트리플 X’/ 신세대 007은 스킨헤드?

    액션영화를 고를 때 보통 관객이 먼저 따지고 넘어가는 대목.주인공이 선굵은 액션을 보장해 줄 ‘익숙한’얼굴인지와,그를 움직인 감독의 ‘명성’이다.영화정보가 그리 빠르지 않은 관객에게 새달 3일 개봉하는 ‘트리플 X’(XXX)는 판단이 쉽지 않을 것 같다.롭 코언 감독과 액션배우 빈 디젤의 이름에 대번 무릎을 칠 이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무질러 귀띔하자면 ‘트리플X’는 액션영화 마니아를 흥분시킬 만하다.영화는 ‘007’시리즈의 외피를 군데군데서 전략적으로 뒤집어쓰면서 이를 조롱하듯 살짝살짝 비틀어 변주한 첩보물.지나친 형식실험은 거북살스러워하면서 스릴과 재미를 최고로 치는 관객을 정조준한 셈이다. 영화는 속도감 만점의 ‘롤러코스터 액션’을 첫 장면에서부터 질펀하게 풀어놓는다.들뜬 록음악을 깔고,훔친 스포츠카로 번지점프를 즐기는 주인공 젠더 케이지(빈 디젤)는 스킨헤드에 화려한 문신,피어싱으로 무장한 신세대.‘007’시리즈와는 딴판인 분위기를 감잡는 순간이다. 상원의원의 차를 훔쳐 꼼짝없이 감방신세를 지게 된 케이지가 미국 비밀첩보국 요원이 되는 과정은 꼭 장난같다.스파이로 뛰면 감옥행을 면케 해주겠다는 첩보국의 간부 기븐스(새뮤얼 잭슨)의 우격다짐에 못이겨 프라하로 간다.세계 무정부주의를 외치는 그림자 집단 ‘아나키 99’의 음모를 무산시키라는 특명을 받았다.‘트리플X’는 X게임(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인 케이지가 목에 새기고 다니는 문신. 턱시도 입은 낯익은 스타일의 스파이,란제리만 걸친 섹시한 본드걸이 나올리 없다.주인공의 ‘낯선’캐릭터를 음미하는 게 영화감상의 포인트.목숨이 걸린 위기상황에서 조차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듯 여유를 부리고,일방적인 복종을 드러내 놓고 거부하는 게 케이지의 캐릭터다. 이전 첩보물들과의 차별화를 선언했음에도 영화는 ‘007’시리즈의 익숙한 대목을 눈치껏 끌어다 썼다.케이지가 사용하는 특수무기들은 ‘007’시리즈가 즐겨 써온 아이디어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화는 고도(古都)프라하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주요 배경 삼아 신세대 주인공이 구사하는 ‘스포츠같은 액션’을 곳곳에 늘어놓는 걸로 승부수를 띄웠다.다리 위 스포츠카 번지점프 장면,눈사태를 짊어지고 케이지가 스키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마지막 장면 등은 영화의 압권.아찔할 만큼 카메라의 동선이 크고 컴퓨터그래픽 기술 또한 세련됐다. 그러나 서사적 틀을 따지자면 이내 영화는 초라해지고 만다.치밀한 지능게임을 즐길 만한 설정은 처음부터 없다.그런 맥락에서 사족 한마디.영화를 볼 때마다 기어이 빛나는 실험정신을 건져 올려야 하는 욕심많은 관객이라면? 글쎄,그 대목에서만큼은 ‘강추’가 망설여진다. 황수정기자 sjh@
  • 의문사委가 밝힌 인혁당 재건위 사건 조작 전모/ 유신 ‘공작살인’ 국가서 첫 인정

    의문사규명위원회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발표 내용을 수사부터 재판까지 부문별로 간추린다. ◆조직결성의 증거 유·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차 인혁당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결성과 관련한 증거가 없다.트랜지스터 라디오,공식 출판 서적,학생들 선언문,민주수호국민협의회 관련 자료 등이 있을 뿐 강령,규약,조직문서,감청 기록 등 지하당 결성과 관련된 물증이 없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가한 고문의 실상- 중정 수사관들과 중정에 파견된 경북도경 등의 경찰관들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구타,몽둥이(야전침대봉 등)찜질,통닭구이고문,물고문,전기고문 등의 고문을 자행했다고 당시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은 증언했다. 서울시경 소속 경찰 전○○는 국방색의 야전용 전화기로 피의자를 전기고문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경북도경 경찰 이○○은 물고문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며 지하 보일러실은 고문을 하는 장소라고 진술했다. ◆각본에 의한 수사-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중정에서 갑작스럽게 조사했다.당시에 중정간부가 1차 인혁당 관련 기록을 보고 있었으며 중정에서 짜놓은 각본에 맞춰 조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수사팀장인 윤○○이 수사관들에게 “물건(조직사건)을 만들라.”고 지시한 일도 있다고 진술했다. ◆고문을 통한 피의자 자백 강요- 수사관 이○○,신○○는 중정의 지시가 사실관계 및 상식과 어긋나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윤○○이 지시하면 무조건 조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피의자들이 처음에는 혐의사실을 부인하더라도 중정 수사팀이 고문을 한차례 하면 그 다음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시인조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관 조사 때 중정 수사관이 참여- 피의자들을 고문 당시 수사관들,검찰서기,피의자들은 검찰관 조사 과정에 중정의 수사관들이 수시로 입회하였으며 “혐의를 부인하면 6국 지하보일러실로 끌려나가 고문을 당하였고 검사가 물으면 예라고 답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서울시경 소속 경찰 나○○은 “대구팀이 중정에서 검찰관과 같이 조사를 한 것은 중정에 있었던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그 목적은 혐의사실을부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공판조서 허위 작성- 재판을 지켜본 변호사들 교도관들,피고인의 가족들은 공판기록에 나타난 허위기재 사실은 크게 두 가지라고 입을 모은다.첫째는 부인한 혐의 사실을 정반대로 기록하는 것이고 둘째는 불법적인 고문 수사에 항의하는 발언을 기록에서 누락시키는 것이다. ◆위법한 재판과정- 변호인들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증언자를 재판부에 신청을 해도 재판부에서 받아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더구나 피고인들이 고문당한 사실을 증언하면 재판부에서 막는 경우도 있었다.임구호 피고인의 경우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난 뒤 법정 밖으로 끌려나가 검찰관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기까지 했다.피고인 가족도 방청이 한 피고당 1인으로 제한됐으며 기자들도 방청이 제한되어 보도하지 못했다. ◆전격적인 사형집행-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들의 형 집행은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다음 날 법무부장관의 지시에 의해서 새벽에 전격적으로 집행됐다.일반적으로 사형수들은 최소한 몇개월,길면 2∼3년 지난뒤 집행된다. ◆유언의 허위작성- 사형수들은 사형장에서 최후진술을 할 수 있고 사형집행명령부 비고란에 기록된다.그런데 사형집행명령부에는 도예종이 “조국이 하루 속히 적화통일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고 8명의 비고란 가장 아래에는 모두 종교의식을 거부한다고 기록돼 있다.그러나 당시에 사형 장면을 목격했던 교도관 김○○은 도예종이 “통일을 못 보고 죽는 것이 억울하다.”는 단 한마디만 했다고 진술했다. ■조사과정 이모저모/ 18개월간 400명 진술받아 조작 관여자 “시키는 대로”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지난 75년 옥중에서 병을 얻어 사망한 장석구씨 사건을 직권 조사하기로 지난해 3월 결정한 뒤 1년6개월에 걸쳐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던 400여명의 진술을 들었다.이 가운데 120여명은 정식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규명위 관계자는 “대부분이 현직에서 퇴직한 상태였으며 치매로 조사가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인들은 고문과 사건 조작에 관여한 사실을 강력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규명위측이 유족과 관련자의 진술을 토대로 추궁을 하자 조금씩 사실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규명위 조사관들은 당시 중앙정보부에 파견돼 수사에 나섰던 경북도경 소속 경찰관들은 대체로 고문과 강압수사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중정 직원과 간부들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거나 “중정은 경찰 수사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파견 경찰관과 중정 직원간의 갈등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규명위 관계자는 “경찰관 중에는 ‘공은 중정이 가로채고 나중에 문제될 일은 경찰에 떠밀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한 사람도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심지어 중정 간부들이 헌병을 동원해 반발하는 경찰관을 감금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속하겠다.”고 협박한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검찰 관계자들도 책임을 부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규명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검찰 수사관들이 ‘우리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상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며 발뺌했다.”고 전했다. 일부는 “빨리 사건을 끝내주는 것이 피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사형 당할 수 있는 중대한 혐의사실도 너무 쉽게 시인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당시 재판부 판사들은 현재 해외에 체류중이거나 소재 파악이 안 돼 규명위로서도 접촉이 쉽지 않았다. 규명위 관계자는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진술을 요청해도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거나 ‘협조는 하겠으나 조서에는 남기지 말아달라.’며 답변을 회피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재심 어떻게 - 최초 판결 법원 다시 재판 시작 재심은 법원에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에서 사실 오인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이다.원심의 판결을 뒤집을 명백한 증거가 확보되거나 새로운 사유가 생겼을 때 구제받는 비상절차로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법 판단의 안정을 위해 그 요건을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재심청구 신청서가 제출되면 재심 사유가 있는 심급의 법원이 심리에 착수,사건 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검토하게 된다. 1974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이듬해 4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다음날 곧바로 사형이 집행된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8명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최초 판결을 내린 법원에서부터 다시 재판을 진행해야 하다. 당시 관련자들이 1심인 보통군사법원을 거쳐 2심인 고등군사법원과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통해 형이 집행된 만큼 재심 판단은 군사법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안동환기자 sunstory@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인혁당 조종받는 민청학련 정부전복기도””/사형선고 20시간만에 핵심8명 전격 형집행 유신시절인 1974년 정부가 발표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은 제2차 인혁당사건으로도 불린다. 도예종씨 등 23명이 인혁당 재건위를 결성한 뒤 북한의 지령을 받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배후 조종,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 내용이었다.당시 구속기소된 23명 가운데 75년 4월 대법원에서 8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20시간 만에 가족들도 모르게 형이 집행됐다.나머지 15명도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일부는 수사 도중 구속정지 등으로 풀려났으며,구속기소된 인사 가운데 현재 9명이 생존해 있다. 민청학련 사건은 73년 8월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을 계기로 반유신 체제운동이 가속화되자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당시 박 대통령은 “반체제운동을 조사한 결과,민청학련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는 확증을 포착했다.”고 발표하면서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집단행동을 일체 금지시켰고,위반자를 잡아들였다. 앞서 64년 8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이 사주한 대규모 지하조직에 의해 국가 전복기도가 있었다.”고 발표한 사건이 제1차 인혁당 사건이다.그러나 인권단체에 의해 고문사실이 알려지고 담당 검사들이 사퇴하는 등 홍역을 치르면서 13명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세영기자
  • 책/부족지-칭기즈 칸이 남긴 정복의 역사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설명하고 표현할 수 없게 넓도다.’ 칭기즈 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유라시아 대륙을 들불처럼 휩쓸어 사상 유래가 없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13세기의 한 이슬람 시인은 위대한 정복자 ‘칸’의 위력을 이렇게 찬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칭기즈 칸이 이룩한 전무후무한 정복사업과 대제국 건설의 역사는 대부분 잊혀지고 없다.유목민이었던 몽골인들이 그들의 위업에 대한 기록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전해지지 않으며,전해지지 않는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라는,냉정하고도 이성적인 역사의 원칙을 그들은 몰랐던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비록 그들이 역사를 기록하는데 소홀했지만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을 맹세한 수많은 종족들이 앞을 다퉈 칭기즈 칸의 위업을 문자로 기록해 남겼던 것.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제국은 물론인도,아랍,투르크,유태와 고려 등이 바로 칭기즈 칸의 위업을 그들의 문자로 기록해 남겼다. 이 가운데 지금의 이란 중부에 있는 하마단에서 태어나 몽골군주 칸의 궁정에 출사,문관으로는 최고직인 재상의 지위에까지 오른 라시드 앗 딘이 칸의 명령으로 집필한 ‘집사(集史)’는 그 정확성과 상세함에서 단연 돋보이는 ‘칸의 역사’였다.이 집사의 제1권이 ‘부족지’(김호동 역주,사계절 펴냄,2만원)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출간됐다.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러시아·미국에 이은 세번째 번역 출간. 집사는 모두 3부 4권 8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1부 1권인 부족지는 모두 4편으로,몽골·투르크족 등 4개 대부족권에 속한 각 종족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라시드 앗 딘이 집사를 기술한 것은 칭기즈 칸의 증손자인 가잔 칸의 통치관에서 비롯된다.그는 칭기즈 칸의 후예들이 제국건설후 불과 90여년만에 반목과 갈등으로 분열의 위기를 맞자 강력한 통치질서 확립을 위해 집사 기술을 명했다. 그러나 문자없는 몽골제국은 결국 그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귀족들간에 반목과 대립으로 필생의 포부였던 ‘세계제국 경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가장 위대한 역사를 가장 허무하게’ 접고말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집사를 통해 왕조의 계보와 왕실 비기(秘記)였던 금책(金冊)의 존재를 알렸을 뿐 아니라 베일속에 가려진 몽골제국의 생활상을 남겨 그나마 깡그리 잊혀지는 불행만은 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한·중 수교10돌] (下-1)성과와 전망.좌담

    지난 10년간 경제분야의 급성장을 이룩한 한·중 양국은 이같은 관계 진전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방안 모색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국제질서 속에서 한·중 관계의 정치·안보분야 자리매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대한매일은 외교통상부 박준우(朴晙雨) 아태국 심의관과 문흥호(文興鎬)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중국학과),윤동훈(尹東勳) 전자산업 진흥회연구소장을 초청,한·중 수교 10년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관계 발전 방안을 짚어보는 좌담을 가졌다. ◆문흥호 교수 = 수교 전에도 활발했던 경제교류가 정치관계 회복의 도화선이 됐다.지리·경제적 특성상으로 볼 때 한·중 수교는 늦은 감이 든다.오랜 단절 뒤에 맺은 수교여서인지 변화는 한꺼번에 찾아왔고 부작용도 뒤따랐다.성과 평가와 함께 향후 10년을 위한 준비,예측이 중요하다. 한·중 수교의 밑거름은 경제였지만 이제 우리는 정치적 선린관계에서 안보적 동반관계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중국이 남북한 사이에서 세력 균형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준우 심의관 = 한·중 수교는 냉전종식이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우리정부가 당시 추진한 북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시작된 양국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98년 10월 중국 방문으로 한·중 협력동반자 관계설정에 합의했고,이어 2000년 10월 중국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방한으로 정치외교·문화·군사 등을 포괄하는 전면적 협력 관계로 확대됐다.앞으로 군사안보 등 전면적 협력 관계로 양국 관계 발전을 추구중이다. ◆윤동훈 소장 = 한·중 수교 10년의 경제적 의의는 중국이 우리의 시장 경제에 편입됐고,우리 역시 중국의 시장 경제권에 편입됐다는 것이다.이로써 세계 4대 강대국 시장은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주무대가 됐다. 중국은 현재 세계 공산품 생산량의 5%를 점하고 있다.앞으로 10년 뒤에는 20%를 점해,미국 생산량을 추월할 것이라는 분석자료도 있다. 대(對)중국 교류에서 우리는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문화적인이점을 함께 갖고 있다.우리는 중국과 동양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디지털 시대 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전자·통신 분야다.중국 수출액 중 전자부문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92년도 전자부문 대 중국 수출액은전체 수출액중 2.5%였으나,지난해엔 22.5%였다.조만간 대 중국 수출량이 대미 수출량을 추월,중국이 교역 면에서 1등 경제 파트너로 등장할 것이 예상한다.앞으로 중국은 우리의 최대 경제시장이 될 것이다. ◆문 교수 = 중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조만간 중국시장에서 흑자를 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80년대 중국인들은 한국 대기업을 경제발전 모델로 삼았지만,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 발전모습을 표본이라 생각지 않는다.중국을 우리 ‘시장’으로만 보는 시각에는 한계가 있다.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박 심의관 = 중국과의 관계가 가까워짐에 따라 문제점도 생기게 마련이다.통계를 보면,지난해 홍콩을 포함한 대중 수출입에서 우리는131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이같은 흑자가 IMF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중국은 한국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큰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관련,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정부에 무역불균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마늘 문제 등 통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양국이 첨예하게 갈등을 겪고 있는 게 이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마늘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느냐.”며 정부를 비난하지만,가까운 나라일수록 작은 문제에서 마찰을 겪는다.원래 이웃나라와는 크고 작은 문제에서 이해관계가 걸려,싸움이 잦고 국민감정이 쉽게 촉발되곤 한다.미국과 캐나다도 우리가 모르는 조그만 분쟁들을 많이 겪었다.중국과의 통상현안이 발생할 때마다,너무 정부가 무능하다고 비난만 하지 말고,이웃나라와는 가깝기 때문에 문제도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 ◆문 교수 = 마늘 문제를 둘러싼 한·중간 갈등과 한국내 부처간 책임 공방을 볼때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정치 논리가 우선돼서는 곤란하다.앞으로 중국산 쌀 수입등 더 큰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그 때마다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해서는 안된다.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장기적인 차원에서 근본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윤 소장 = 한국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마찰이 많았다.중국의 외교 원칙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중국 주변 국가들은 중국에 상하관계로 복종하든지,아니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바야흐로 시작될 경제통상전쟁의 성격을 국민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미국의 어느 통상 책임자는 “외국과 경제 협상을 할 때보다 국민에게 비준을 받을 때 두 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우리 정부의 외교 담당자들은 외국 정부와 경제협상을 벌일 때 드는 노력의 두 배를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이제까지 그 투자가 미흡했다고 본다.이 때문에 외무담당자들은 적진에서 큰 공을 세우고도,국내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은 경우가 많았다. ◆박 심의관 = 문화 분야 교류도 크게 발전했는데,특히 대중문화 교류 차원에서 한류(韓流) 열풍이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 중국 13억 인구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서방 풍조에 익숙지 않은 일부 중국 청소년들이 한국 가수·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것이다.아마도 오랜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같아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다.한류의 도화선은 H·O·T 등 대중가수들과 연속극이다.‘사랑이 뭐길래’ 등 몇몇 인기 드라마는 중국에서 몇번씩 재방영이 되기도 했다.어느 중국 친구는 “중국의 연속극은 주로 상하이 등 잘 사는 지역을 배경으로 유복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뤄,나같은 서민의 삶과 유리된 것 같아 재밌지 않았다.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3세대,4세대가 한 집에 사는 등 리얼한 서민의 삶을 보여줘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높은 문화적 자존심이 있는 국가이다.한때의 한류로 문화적인 오만을 갖고 접근한다면,큰 잘못이다.한류가 너무 과대포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문 교수 = 한류 열풍은 젊은이들이 열풍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21세기 한·중관계의 청신호라 할 만하다.이제 문화교류는 대중문화에서 고급·전통 문화로 확산돼야 한다.문화관광부 주도 아래 다양한 문화행사를 체계적으로 기획할 필요가 있다.자칫 잘못하면 상업적으로 흐려지기 쉽기 때문에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관광 활성화도 중요한 과제다.중국인 가운데 해외여행이 가능한 사람이 우리나라 인구만큼이나 된다는 분석도 있다.한국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전문적인 여행 아이템 개발이 절실하다.한국관광은 일본이나 미국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싸구려관광’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학생교류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중국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현재 중국내 한국 유학생수는 2만 2000여명이고 한국내 중국 유학생은 2000년 1600명에서 2001년 3200명으로 늘어났다.양적 팽창에도 불구,교육의 질은 낮다. 중국인 교수들은 한국 유학생(학부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한국어로 떠들거나 술을 마시느라 수업을 빼먹기 일쑤라며 유학생들의 질을 문제삼고 있다.개선돼야 할 문제다. ■좌담자 ◆박준우 - 외교부 아태국 심의관 ◆문흥호 - 한양대 국제대학원교수 ◆윤동훈 - 전자산업 진흥회연구소장
  • 단체장 인사전횡 막는다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인사전횡을 막기 위해 각 지자체 인사위원회의 역할 강화와 5급 승진시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지방공무원법 시행령 등 관계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이는 최근 출범한 민선 3기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인사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는 데다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실인사부터 없애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행자부는 이같은 내용의 인사전횡 방지대책안을 확정,이달 말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9∼10월쯤 시행령 개정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인사전횡 방지대책안에 따르면 무엇보다 각 지자체의 ‘인사위원회’ 기능과 운영이 강화된다.그동안 부단체장을 위원장으로 최대 8명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 외부 인사의 참여 비율을 늘리고,직장협의회 위원 등의 참여를 적극 유도한다. 또 사실상 폐쇄된 인사교류 활성화를 위해 자치단체간 인사교류를 의무화하고,이를 지방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했다. 특히 인사 공정성과 객관성 강화를 위해 현재심사승진으로 거의 이뤄지는 5급 승진의 경우 일정 비율은 반드시 시험으로 뽑도록 하는 것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지난 2일 전북 순창군이 과장급과 읍·면장 23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4급 간부를 5급 자리에 배치하는 등 인사질서를 무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목포시도 총무·회계과장 등 5급 4명과 인사·용도 담당 등 6급 4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전임 시장의 손과 발을 자른 보복성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부산에서는 공무원노조가 구청장의 발탁 인사 등에 반발해 불복종 운동과 1인 시위에 들어가는 등 전국 곳곳에서 인사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권한을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인사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면서 “의견 수렴을 통해 필요하다면 지방자치단체법의 인사임용 규칙 등 관련법들도 함께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청소년 인터넷 ‘노예팅’ 기승

    방학을 맞은 청소년 사이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노예팅’이 성행하고있다. ‘노예팅’사이트에서 접촉한 뒤 실제로 만나 매매춘을 하거나 원조교제를 하는 사례도 많아 단속이 시급하다. 한때 대학가에 성행한 ‘노예팅’은 경매 형식으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차지해 돈을 지불하고 주인 노릇을 하는 미팅의 일종.하지만 ‘노예팅’사이트에서는 게시판과 메일을 통해 첫 거래가 이뤄진다. “노예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사람은 가장 적은 액수를 메일로 보낸 이성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준다.또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최고가 금액을 제시한 이성을 선택한다.낙찰 금액은 대개 10만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30일 D·F등 대형 종합검색 사이트에는 ‘노예팅’관련 커뮤니티·카페만 50여개가 개설돼 있었다. 미성년자도 마음대로 접속하고,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어 7월 들어 가입한 회원의 3분의1 이상이 청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트 게시판에는 이성의 눈길을 끌기 위한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음담패설이 판을 치고 있다.“나이는 18세,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드립니다.”라며 노골적으로 성매매를 자청하는 소녀들의 글도 많다. 우연히 ‘노예팅’ 사이트에 들어갔던 김모(17·고교1)양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회원으로 가입할 때 남긴 메일 주소로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만나서 노예가 돼 달라.’는 글이 쇄도했기 때문이다.심지어 한 네티즌은 ‘돈을 받고 일정기간 상대방의 요구에 군말없이 절대 복종한다.’고 쓰인 ‘노예계약서’까지 보냈다. ‘노예팅’을 경험했다는 이모(30·회사원)씨는 “온라인으로 접촉하면 적발될 위험이 적고 부담도 덜하다.”고 털어놨다.그는 “여학생을 실컷 ‘노예’로 부려먹다가 돈도 주지 않고 도망가 버리는 사기꾼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방학때 용돈을 벌려는 청소년들이 많아 ‘노예팅’ 사이트가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노골적이고 가학적인 내용의 일본 만화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도 “최근 온라인을 매개로 한 원조교제범죄가 부쩍 늘고 있다.”면서 “매매춘을 목적으로 온라인에서 청소년에게 돈을 지급하거나 실제로 만나 원조교제를 하면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워낙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져 물증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열린세상] 통치능력 상실한 아르헨티나

    지난 3월7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경제학자 루디거 돈부시와 리카르도 카바예로가 기고한 ‘믿을 수 없는 아르헨티나’란 글이 실렸다.두 사람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스스로 통치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제3국의 전문가집단이 관리하는 위원회의 통치를 적어도 5년간 받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 글에 따르면,아르헨티나는 자신의 통화·재정·규제·자산 관리의 주권을일정 기간 포기하여 경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는,불편부당한 소국인 영국·네덜란드·또는 아일랜드’ 출신 총독(commissioner-general)의 통치를 받는 게 좋단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통화정책을 경험이 많은 외국 중앙은행 금융인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민영화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팔아먹었기에,돈부시와 카바예로는 이제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항구와 세관을 민영화할 것을 제안한다.당연히 민영화와 탈규제 사업도 외국인 대리인들이 맡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아르헨티나 정치인들과 국민들에게 거의 모욕으로 여겨질 ‘주권 이양’ 주장은 단순히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소신에 그치지 않는다.돈부시는 7월 들어‘세계경제보고·미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위험으로서 주변부의 문제점’이란보고서를 의뢰한 ‘초국적 연구소’(Trans-National Research Corporation)에 제출한 모양이다. 이를 입수한 아르헨티나의 한 일간지에 따르면,보고서의 골자가 “권위주의가 탄생할 때까지 IMF 지원은 멈춰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마르틴 그라노프스키 기자의 요약을 살펴보자.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아르헨티나의 제도들은 “계속 붕괴하고 있어 어떤 군부독재가 들어설 때까지 외부지원을 이야기할 수도 없으리라.”고 진단한다.“아르헨티나에는 배제된 사람들의 계급투쟁이 확산되고 있고,제도들은 완전히 붕괴되고 있다.”는 것.그의 진단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제도들은 계속 붕괴하고 있다.둘째,제도의 붕괴는 군부독재로 귀결될 것이다.셋째,아르헨티나에 대한 경제지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세 문장을 연결된 분석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두 개의 조건문이 탄생한다.첫째,군부독재가 들어서면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둘째,군부독재가 들어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경제지원을 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경제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무부의 미주담당 차관보인 오토 라이시가 주도하는 강경노선이나 앤 크루거가 주도하는 IMF 근본주의 입장과는 양립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답은 간단하다.군부독재가 들어서서 시민들의 시위나 불복종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어야 경제지원의 효과가 발생하리라는 결론이 위 보고서의 핵심일 것이다. 투자은행이나 IMF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 경제학자의 보고서가 연초부터 아르헨티나 정가를 여러 차례 강타하고 있지만,정작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리더십이나 연대의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페론당 지도자들은 국난 극복은 뒷전이고 여전히 파벌의 손익계산에 맞춰 움직인다.정치인들의 구태에 식상한 시민들은 주방기기를 두들기며 연일 광장과 가도를 누빈다. 당연히 무력진압 과정에서 사상자가 나온다.민중과 정치인들 사이에 증오는 더욱 심해진다.지식인들도 암울한 현실에서 점차 무력감을 느끼고,급진화된 말만 내뱉는다.중도좌파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도가 늘어가지만,이들이 과연 국제금융권과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런 와중에 차라리 외국인 총독정치가 뭐가 나쁘냐는 반응도 만만찮다.수도권의 8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 주권 이양 의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비전이 없는 엘리트들은 주권을 방어할 능력을 상실했고,정치인들은 신뢰를 깡그리 잃어버렸다.국민들은 빈자와 부자로 양분화되어 서로에 대한 증오를 재생산한다.과학자들과 젊은이들은 나라를 등지고 먼 이국 땅에서 자신의 미래를 도모한다.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잠 못이루는 밤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이성형(세종硏 초빙연구위원.정치학)
  • 장갑차사건과 SOFA/현행협정 독소조항 분석/미군범죄 과거사례

    ■현행협정 독소조항 분석 - 재판권 美서 요청땐 포기해야 1967년 체결·발효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은 지난 91년과 지난해 두차례 일부 개정됐으나 여전히 한·미간의 불평등한 내용이 수두룩하다는 게 시민단체와 학계 주장이다.SOFA는 본 협정과 합의의사록,양해사항 등 3개 문서,31개 조항으로 구성된다.시민단체 등은 전세계 60여개국에서 미국과 주둔군지위협정을 맺었으나 우리가 가장 불평등한 입장이라고 강조한다.문제 조항을 일본,독일 등의 규정과 비교,분석한다. ◆보호 범위가 너무 넓다. = 본 협정 제22조 1항은 ‘군대의 구성원,군속 및 그들 가족에 대하여 합중국이 부여한 권리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여기서 가족이란 ‘배우자 및 21세 미만의 자녀 또는 ‘기타 친척’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기타 친척’이라는 부분이 상당히 애매하며,아울러 미군 당국과 사업상 계약관계에 있는 ‘초청계약자’도 여기에 포함시킨 단서 조항이 문제라는 지적이다.‘기타 친척’은 그러나 미군·군속이 자의적으로 판단,분류하는 것은 아니고 입국시 그 관계를 우리측에 통보해야 한다.또 의료보험 카드에 등재하는 한편 부양가족 면세 대상인지을 입증해야 한다. ‘나토 협정’은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와 부양받고 있는 자녀’에 국한했고 독일에서도 ‘부양 및 동거 여부’를 기준으로 했다.일본의 경우에는 ‘기타 친척’이 없으며,필리핀에서는 ‘군법에 복종하는 모든 자’로 제한한 것과 비교된다. ◆한국의 재판권 행사를 제한했다. = 협정에는 ▲미국의 재산이나 안전에 대한 범죄 ▲미군 등의 가족 내부에서 행해진 범죄 ▲공무집행중 범죄 등 3가지 범죄에 대해서만 미군이 1차 재판권을 지닌 것으로 규정했다.나머지 범죄는 한국이 재판권을 갖고 있으며 다만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재판권 이양을 ‘호의적으로 고려’한다고 정했다.하지만 본 협정의 후속문서인 합의의사록에는 ‘특히 중요한 경우가 아니면 미군의 요청에 따라 포기’하도록 규정했다 .지난 90년부터 98년까지 미군 범죄에 대한 한국의 재판권 행사율은 0.8∼5. 6%인 점이 이를 반영한다.특히 ‘미군의 한국 정부에 대한 간첩행위’등과 같이 반드시 우리가 재판을 해야 하는 ‘전속적 재판권’마저도 ‘미군의 요청에 따라 포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토협정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는 상대국의 요청에 대한 ‘호의적 고려’부분은 있으나 우리와 같은 ‘포기 규정’은 없다. ◆미군에 대한 구속수사가 불가능하다. = 우리가 재판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피의자의 신병 구금은 사실상 미군측이 하게 돼 있다. 미군의 요청이 있으면 ‘호의적 고려’에 따라 넘겨줘야 한다.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신병이 미군측에 있다보니 범죄와 관련된 물증이나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지금까지 한국 검찰이 기소하기 전 미군 피의자를 구속수사한 예가 없다.지난 92년 윤금이씨 살해사건 당시에도 피의자 케네스 마클을 수감한 것은 범죄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뒤였다 . 나토협정과 일본에서는 피의자의 신병이 미군에 있더라도 기소전까지만 가능하다.일본 정부 등이 구금인도를 요청하면 즉시 신병을 넘겨줘야 한다. ◆기타 문제조항들 = 합의의사록 제22조는 미국은 ‘(미군 등이) 구금될 시설을 시찰할 권리를 지녔으며 그 시설은 한·미 합동위원회에서 합의한 최소한도의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했다.이 최소한도의 시설이란 운동장이 있고 72평방 피트(약 2평) 이상의 독방,수세식 화장실,샤워 및 조리시설,침대 등을 이른다. 현실적으로 이 조건을 갖춘 곳은 천안소년교도소가 유일해 미군 범죄자들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진다.시민단체들은 “피의자 인권의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수감자와 형평성 문제도 있으며 아울러 ‘시찰’을 명시한 것은 국내 사법권에 대한 간섭”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 법원이 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재판정에 반드시 미국인 관리가 참석하도록 규정했다.합의의사록 제22조 9항에서는 미군은 참혹하거나 비정상적인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해 아무리 중한 범죄를 저질러도 극형을 피하도록 규정했다. 김경운기자 Kkwon@ ■미군범죄 과거사례 73년 11월19일.미군 페르트 제임스,만취상태에서 버스를 훔쳐 운전하다 권모씨를 치어 숨지게 한 뒤 뺑소니.96년 6월10일.미7공군 소속 윌리엄스,평택 에바다 농아원생 12살 김모군 등 세 명의 남자아이를 부대내 숙소로 불러 성폭행.97년 집행유예로 실형살지 않음. 97년 4월3일.미군속 아들과 재미교포,이태원에서 한국 대학생을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재미교포는 무죄,미군속 아들은 폭력혐의 인정 뒤 8·15특사 석방. 이는 주한미군 주둔 50년,SOFA 체결 35년 동안 저질러진 미군 범죄중의 일부분이다.이처럼 주한미군 범죄는 한국의 국민과 법을 비웃듯 안하무인적인 사례로 넘친다. 때문에 지난달 13일 신효순·심미선양이 미2사단 공병대 소속 장갑차에 치여 숨진 사건은 과거 사례를 감안할 때 단순히 ‘공무중’에 일어난 우발적 사건으로만 보기 어렵다. SOFA에 따르면 미군이 공무 수행 중에 저지른 범죄의 경우 재판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미군은 한국측에 처벌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악용해 한국의 수사권 요청을 거부,결국 한국측은 아무런 처벌도 할 수 없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공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이로 인해 미군당국이 자국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인 범죄,치명적 잘못조차도 ‘공무’라고 주장하는 빌미를 준다. 지난 2000년 2월 미 8군 용산기지에서 사체 부패를 막는 방부제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와 메탄올 혼합액 480병을 한강에 무단방류한 뒤 미군측은 ‘공무중’이었다고 발뺌했다. 이에 앞서 지난 94년 10월 김모(당시 59세)씨는 ‘미군물품 판매상’으로 몰려 미군들에게 강제로 수갑이 채워져 끌려간 뒤 몇 시간동안 온갖 모욕과 폭행을 당했다.김씨는 혐의없음이 드러나자 그제서야 풀려났다. 김씨는 다음날 고소장을 냈고 검찰은 미군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으나 미군당국은 ‘정당한 공무수행’이라며 끝끝내 소환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김종욱(金宗郁) 간사는 “미군들이 범죄를 저질러 한국 경찰에 붙잡혀도 마구 소란을 피우며 오만할 수 있는 것은 협정에 따라 한국의 사법기관이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미군은 여중생 두 명을 숨지게 한 뒤에도공무중이라는 이유로 재판관할권을 주지 않으려 하고 있다.”면서 “‘공무’의 명확한 범위를 정하는 등 독소 조항을 없애는 방향으로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다른 시각은 - “반미감정 자제… 합리적 해결을” 국방부와 주한미군측은 장갑차 사고가 반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은 미군측이 초기 사건처리를 너무 안일하게 한 데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군측은 ‘공무집행중 발생한 우발적 사고’이지만 1차 조사결과 발표 내용이 너무 부실해 유족은 물론 한국민들의 집단적인 반발에 직면했다고 판단 ,이를 감안한 2차 조사결과를 마련하는 한편 우리 정부에 입체적인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유족들의 비통한 심정은 이해하고,시민단체의 SOFA 개정요구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감정적인 반미 구호나 근거없는 루머를 양산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대학원의 한 교수는 “최근 대학생들로부터 미군 장갑차가 고의로 여중생들을 치어 여러 차례 밟고 지나갔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면서 “터무니없는 억측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방해할 뿐”이라고 우려했다.한 중견 언론인도 “SOFA 규정상 미군측이 지닌 공무중 사건의 형사재판권을 우리에게 넘기라는 검찰과 시민단체의 뜻은 이해하지만 만약 우리 해외파병 병사가 아랍권 국가에서 절도죄를 저질렀다고 그 나라 법원이 병사의 손목을 자르겠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외교부의 관계자도 “비록 SOFA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독일,일본과 비교할 때 중간정도 점수는 매길 수있다.”고 말한다.전속적 형사재판권의 경우, 나토와 독일 보충협정 19조는 “사형에 이를 수 있는 범죄를 제외하고,미측 요청이 있을 경우 독일이 재판권을 행사할 1차적 권리를 모두 포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한·미간 SOFA가 이보다 더 제약적이진 않다.”고 강조했다.아울러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하는 비율도 극히 낮다는 주장과 관련, 독일·일본 모두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재판권을 확보하는비율이 우리와 같이 평균 2∼3%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신병인도와 관련해서도 한국과 일본의 SOFA는 “미군은 ‘기소’때까지 피의자의 신병을 계속 보유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독일의 경우 “미측이 요청할 경우 미국에 피의자 신병을 인도하고,피의자 ‘선고집행’이 있을 때까지 미측이 구금권을 보유한다.”고 돼 있다.특히 우리는 신병을 확보한 피의자의 죄질이 살인·집단 강간 등 죄질이 나쁜 경우 신병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95년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미군 4명의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미·일 합동위원회를 통해 기소 전 신병인도 사례를 남겼다. 김수정 김경운기자 crystal@
  • 개인 매도공세… 주가 760선 붕괴

    종합주가지수가 이틀째 하락하며 760선이 무너졌다. 25일 거래소에서 지수는 전일보다 12포인트 떨어진 755.92로 마감됐다.코스 닥시장에서는 2.03포인트 떨어진 61.88을 기록해 전일에 이어 다시 연중 최저치를 나타냈다. 거래소에서 지수는 장초반 5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던 미국 증시의 반등에 힘입어 780선에 육박하기도 했으나,미 증시 상승이 기술적 반등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데다 개인의 순매도세가 늘면서 크게 떨어졌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업과 철강금속 운수창고가 소폭 오름세를 보였고,섬유의 복종이목재 증권 보험 은행 금융 등 대부분의 업종이 내렸다.종목별로는 삼성전자가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의 상승소식으로 34만원대를 회복했을 뿐,국민은행 SK텔레콤 등 시가총액상위 20위 종목 대부분이 보합권을 유지하거나 하락했다.전일 시가총액상위 10위로 올라서면서 눈길을 끌었던 우리금융지주 회사는 하룻만에 내림세로 돌아서 6280원으로 끝났다. 주병철기자 bcjoo@
  • [담론 2002월드컵] (2)무너진 금기·성역의 틀

    ***붉은응원 물결 ‘레드 터부' 옛말 월드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역’과 ‘금기’가 무너지고 있다.400여만명의 함성으로 가득찬 전국 곳곳의 ‘축구 해방구’에는 온통 붉은 물결이 넘쳐나고 있고엄숙의 상징이던 태극기는 응원도구가 됐다.순수 혈통주의를 중시하는 한민족이 벽안의 외국인 감독을 귀화시키자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자발적 참여’로 뭉쳐진 대중의 힘은 단단한 벽속에 갇혀 있던 터부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내고 있다. ◇붉은 악마에 무너진 레드 콤플렉스= ‘Be the Reds’.붉은 색은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의 색깔로 통했다.그러나 붉은악마의 등장으로 붉은 색에 대한 관념은 완전히 바뀌었다.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일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은 ‘빨갱이가 돼라.’는 구호를 서슴없이 외치고 있다.냉전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를 지배하던 ‘레드 콤플렉스’는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다.사람들은 거리마다 넘쳐나는 붉은물결을 보며 붉은 색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을 떨쳐냈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최원기 박사는 “붉은 색은더 이상 ‘공산당’이나 레드 콤플렉스와 연결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색깔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붉은 악마가 몰고 온 현상에 대한 과대 평가는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단지 축구에 대한 열정을 조직적이고 자발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지 사회의식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붉은 악마가 추구하는 ‘비정치·비사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붉은악마가 붉은 색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상당히 기여했지만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인 의미에서 레드 콤플렉스가 조금씩 극복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6·13지방선거에 진보정당이 정치적 터전을 잡았고 정치권에서도 색깔론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성은 스포츠의 마이너리티가 아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크게 부각된 것 중의하나가 여성들의 참여다. 그동안 그라운드 밖의 객체로 머물러 있던 여성들은 한국팀의 선전이 이어지는 동안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광장을 점령했다.붉은악마 회원 11만명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는다.‘코리아팀 파이팅’ 응원단 2300여명 가운데 40%가 여성이다.여성들은 한국대표팀 8강 신화에 일조하면서 더 이상 스포츠의 ‘마이너리티’가 아님을 선언했다. 동덕여대 정준영(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축구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고있다.”면서 “억압된 구조를 뚫는 분출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구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여성들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있으며 다만 제한된 영역에서 넓은 광장으로 나온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한신대 김종엽(사회학과)교수는 “농구장이나 콘서트에서도 환호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유독 축구장에서의 모습만 색다르게 본다는 것은 스포츠와 여성은맞지 않는다는 또 다른 남성 우월주의의 산물”이라고 했다. ◇‘무너진 엄숙' 태극기의 반란= 장롱 속에 파묻어 놓았다가 국경일에나 내걸었던태극기가경기장과 거리를 뒤덮고 있다.심지어 우리 응원단의 몸을 치장하거나 가리는 데도 쓰이는 응원도구 1호다.태극기를 이용한 치마와 티셔츠,스카프까지 등장했다.한 국기관련 단체 관계자는 “양말로만 쓰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극기는 이제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느껴지는 엄숙하고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태극기의 ‘엄숙’과 ‘권위’는 ‘친근’과 ‘사랑’으로 변화했다.길거리에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태극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동체’로 결속된다. 상지대 홍성태(사회학과)교수는 “예전에는 국기가 국가에 복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시민들의 애정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국기에서 존엄성을 찾는다는 것은 파시즘적인 구태의연한 사고라는 것을 태극기의 물결이 보여주고있다.”고 설명했다. ◇히딩크를 명예시민으로= 한국대표팀의 감독 거스 히딩크는 한국인의 ‘영웅’이요 ‘은인’이 됐다.국민들은 히딩크를 한국인으로 만들어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한다.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귀화시키자거나 명예국적을 주자는 다소 황당한 주장은 그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을 대변한다. 히딩크 감독의 귀화 논의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민족주의적 순혈성’과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를 무너뜨렸다. 그의 서구적 합리성과 직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우리 사회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기업 경영의 잘못된 틀까지 깨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히딩크 감독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는 민족이라는 배타적인 틀을 넘어 우리 시민을 세계 시민으로 한 단계 성숙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제3세계 국민들과 조선족 동포들에게 가해지는 귀화 관련 법률의 편협한 배타성도 월드컵을 계기로 극복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제 진정한 축제는 시작됐다= 사회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로운 축제문화’를 정립하는 것은 월드컵 이후 정부와 국민들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구경꾼이 아닌 축제 속의 주인공이다.월드컵이 누구나 한마음이 되는 잔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축제 같은 축제'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앞으로 온 국민이 동참하는 새로운 축제의 날을 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림대 한준(사회학과)교수는 월드컵 응원에 대해 “관제의 ‘억눌림’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된 ‘집단 움직임’”이라면서 “모든 금기나 터부,이익과 손해를 뛰어넘어 공동체 의식과 해방감,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축제 문화로 승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혜영 이영표 유영규기자 koohy@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기고] ‘전교조 민주화운동’ 공론화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최근 전교조 출신 해직교사 1139명 모두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위원회는 ‘관련 자료와 당시 시대상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전교조 가입 행위는 교사들의 노동 3권 신장보다는 교육의 민주화,인간화,정치적 중립성 등 교육기본권 신장에 궁극적 목적이 있어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결정은 위원회가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가아닌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만 비추어본다면 수긍할 만한 측면이 있다.당시에 많은 교사들이 사립학교재단의 전횡과 각종 비리 그리고 군사정부의 권위주의적이고,비인간적인 교육방침에 대하여 복종과 침묵만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전교조 교사들은 자신이 파면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 용감하게 항거했다.이로 인해 그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경제적으로,사회적으로,심리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게 됐다.이러한 그들의 용감한 행동은 오늘의 교육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좀 더 엄밀한 조사와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 옥석을 가려 교직 사회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기여한 훌륭한 교사들만을 선정했어야만 했다.단순히 당시에 전교조에 가입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자로 인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적 설득력이 미약하다. 또한 전교조에 가입했던 교사들을 ‘민주화 세력'이라고 한다면,당시에 나름의 교육적 소신과 정부의 방침에 따라 교사들을 전교조에 가입하지 말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던교육행정가들은 ‘반민주화 세력'이 되고 만다.이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전교조 가입 여부라는 하나의 기준과 편중된 사고방식에 의해 교육계를 편가르고 분열시키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전교조에 대한 위원회의 역사적 평가의 타당성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는 결코 단순한 객관적인 사실의 편찬만은 아니며,시대가 달라지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또한 이 에이치 카가 말한 것처럼 “사실은 결코 생선가게 목판에 놓인 생선과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도 명심해야만 한다. 사실은 광대한,때로는 접근할 수 없는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은 것이다.역사가가 무엇을 잡아낼 것인지는 어느 정도 우연에 달려있기도 하지만,주로 그가 바다의어느 지점에서 고기잡이를 하는가,어떤 고기잡이 도구를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역사는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의과정,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위원회는 먼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전교조의 활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과연 얼마만큼 충실하고 깊이 있게수집하고 분석했으며,이러한 사실들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했는가를 밝혀야만 한다.나아가 현재의 상황과 관점에서 당시 전교조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의 검증과정을 거쳐야만 한다.위원회의 재심과 공개적인 논의를 촉구한다. 정진곤 한양대교수·교육학
  • 에듀토피아/ 아이들 그림, 마음껏 그리게…

    ■아이들 미술지도 어떻게. “우리 애는 빨강색으로만 그려요.” “도화지 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그려요.” “크레파스는 싫다면서 물감만 고집해요.” 미술이 두뇌 발달과 창의성 개발에 좋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학창시절동안 ‘미술 콤플렉스’를 겪어온 탓에 겁을 먹거나 ‘우리 애만은 잘 그리게 해야지’하는 조급증을 내기 십상이다. 동그라미도 못 그리던 아이가 크레파스를 들고 뭔가 끄적대기 시작하면 뿌듯해하다가도 곧 ‘왜 그림이 그 모양이니?’‘이 색깔로 칠해봐’하며 간섭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훌륭한 그림은 기교보다는 내면의 감정이자연스레 묻어나는 그림”이라면서 “엄마는 일일이 참견하기 보다 꼭 필요할 때 도우미 역할을 하고 그림을 즐길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집에서도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아예 미술학원에 보내는 게 좋을지 등등 궁금증을 풀어본다. ◆못 그린 그림은 없다=어린이 미술은 원래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너무 일찍부터 아이들에게자꾸 잘 그리라고 강요하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표현보다는 기법에 매몰되고 만다.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는 분위기 탓에 요즘에는 벌써 유치원이나 1,2학년 아이들조차도 ‘난 미술 못해’하고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자기세계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노력하는 게먼저다.기법을 강요하기 전에 그리고 싶은 것이 많도록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 초등학교 미술교사인 이부영씨는 “어린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화가같이 잘 그린 그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면서 “기법이나 기능보다 ‘감성 기르기’에 더 열심인 미술학원이 오히려 어린이 미술을 더 망치는 주범이 될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화지는 클수록,색깔은 많을수록 좋다?=많은 엄마들이알고 있는 잘못된 상식이다.소극적이고 겁이 많은 애한테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것을 준다.활동적인 아이에게는 큰 도화지를 줘야 에너지 발산에 좋다. 초기에는 크레파스,사인펜 등 재료가 좋다.붓으로 쓱쓱칠하는 물감은 심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지만 통제력을 기를 수 없어 좀더 성장한 후에 주도록 한다.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아이에게는 싸인펜보다 물감과 붓을,덜렁대는 아이에게는 물감보다 찰흙과 점토를 주면 심성을 순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도화지도 네모 모양만 줄게 아니라 원,세모 등 변형된 종이를 준다.벽지,마분지,사포지는 물론 청바지에도 그림을그려보도록 한다. 유아에게 36색 등 너무 다양한 색깔을 주면 색채 관념에혼란이 와 좋지 않다.12색부터 시작해,7세까지는 24색을넘지 않도록 한다. ◆엄마는 도우미 역할만 하라=그림을 간섭하면 창조성이부족해지고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많다.눈높이에 맞춰 지켜보다가 그때그때 적당한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물감을 갖고 노는 아이에게는 중간중간 엄마가 붓으로 톡톡 물감을 뿌리는 모습을 보여주거나,손바닥 찍기를 시켜보는 등 변화를 유도한다. 공주,집 등 한가지만 그리는 아이에게는 ‘그 아이의 친구는 누구야?”“옆에 무엇을 그리면 좋을까”라는 질문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계절,상황 등 주제를 제시하고 ‘봄이 되면 뭐가 생각 나’등등의 질문도 던진다. “엄마,사슴은 어떻게 그려?”하고 아이가 물으면 직접그려주는 대신 “동물보감 한번 찾아볼까.”하고 대답할수 있는 참을성도 필수다.그래야 표현 감각을 키우면서 도식화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보이는 곳에 늘 도화지와 크레파스,빈 요구르트병 등을담은 바구니를 두거나 틈나는 대로 미술관 전시회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허윤주기자 rara@ ■미술심리치료사 오현숙씨 인터뷰. “색깔을 보면 아이들의 마음이 보여요.” 한서대 아동미술학과 겸임교수 겸 미술치료사 오현숙씨는“그림은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어린이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창”이라며 아픈 마음과 기억까지도 그대로 나타낸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자기를 발산하고 스트레스를풀기도 한다.”면서 주의가 산만한 아이가 그림을 열심히그리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감정조절 능력이 생기는 등 치료적 효과도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선의 굵기,도형의 크기 등도 중요하지만 어린이 심리를 읽는 기본은 색깔이다.색깔을 통한 심리 분석은 어린이의 색채 선호도와 색감이 형성되는 6세 이후라야 가능하다. 많은 부모들이 걱정하는 5∼6세 때의 반복적인 그림은 아동 발달단계에서 필수적인 것이라 과민할 필요는 없다는게 그녀의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별,숫자 등을 반복할 경우 자폐,지능 저하를 의심해봐야 한다. 예술의전당 미술교육 아카데미,지역 문화센터 등 어린이미술교실의 인기강사로도 유명한 오 교수는 “여러 아이들의 그림을 접하면서 이제는 그림을 보면 아이들의 상황이보여 ‘점쟁이’라는 얘기도 듣는다.”며 웃었다. “미술심리 치료는 그림을 통해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면서 “특이한 징후가 보이면 함부로 속단하기보다 전문가와 상의하라.”로 조언했다. 다음은 오교수가 소개하는 색깔별 심리 분석법이다. ▲빨강=가볍고 둥근 선은 어른,또래와 비교적 건전한 적응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굵은 가로선은 애정의 결핍,적대감,자기주장을 뜻한다. ▲파랑=총동적,감정적인 반응에서 억제된 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심리를 반영한다.‘제어된 불안’을 뜻하는 암청색은 외부적 규제를 싫어하면서도 복종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노랑=행복감을 느끼며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만 의존적이고 유아적 단계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경향이많다. ▲검정=공포와 불안에서 오는 압박감으로 자기감정을 강하게 억누르고 있다.겉으로 보기에는 잘 지내는 것 처럼 보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놀거나 공격적이다. ▲녹색=감정의 결여나 의식적인 회피를 뜻한다. ▲주황=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공상을 즐기는 어린이가 선호하는 색이다. ▲보라=어린이들이 잘 쓰지 않는 색으로 불행감과 연관이있다. 허윤주기자.
  • [분필과 칠판] “부모·스승이 먼저 모범을 보일 때”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그러나 요즘은 예의 범절을 모르는 청소년들이 양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자녀를 적게 낳아 자기 자식만 귀하게 여기고 잘못을 저질러도 크게 꾸중하지 않는다.학부모들은 야단치지 않는 것이 기(氣)를 죽이지 않는 것으로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를 살리는 게 아니라 자기 중심주의로치닫게 하는 것이다.식당,전철,버스 등 공공장소에서도 자신만 아는 한심한 청소년들을 많이 보게 된다.요즘 흔히얘기하는 ‘교실붕괴’도 그런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상하고 자녀 양육에 적극적이면 자녀성적도 좋다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서 보듯,부모와 교사가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잘성장하고 성적도 오를 수 있다. ‘나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아랫사람이행하지만,나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복종하지 않는다.’(子曰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는 논어에서 나오는 말처럼 부모나 스승이 먼저 모범을 보일 때 학생들은 올바른 길을 가게 된다. 몇년 전 우리반 학생 15명이 방과후 교실에 남아 자율학습을 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저녁 시간에 김밥을 사다가먹던 중 김밥 두개가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수시로교실 바닥을 닦았기 때문에 그냥 먹으라고 했지만 학생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결국 담임인 내가 그것을 먹었다. 그 소문은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졌다.학생들도 더 열심히 교실미화와 청소에 힘써 환경미화 심사와성적에서 항상 1등을 독차지했다.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하지 않았는가.학생들 앞에서 먼저 실천하고 사랑으로 감싸면 학생들은 바르게 자라는 법이다. 송나라 여형공은 사람은 안으로 부모 형제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고 밖으로는 엄한 스승과 친구의 교화와 지도를 받아야 성공한다고 했다.부모나 교사가 엄하면서도 사랑으로 가르치면 현명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교칙에 따라 벌을 주되,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과 같게 하면 사랑이 전달될 것이다.그러한 사랑에는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한다. 엄하되 사랑이있는 사도(師道)를 실천하면 교실 붕괴란말은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윤환출 전 서울 구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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