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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野 국회 긴급현안질의 무게 중심 이동

    與·野 국회 긴급현안질의 무게 중심 이동

    18일 실시된 미국산 쇠고기 협상 및 경찰 진압에 대한 국회 본회의 2차 긴급현안질의에서는 쇠고기 협상보다는 촛불 시위가 여야 공방의 중심이었다. 한나라당은 “촛불시위는 대선 불복종 운동”이라며 비판한 반면, 야당은 “신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대선 불복종 운동” vs “살인의 미필적 고의”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은 경찰의 진보연대와 광우병대책회의 사무실 압수수색 결과 발견된 문건을 근거로 “사전에 학계, 노동계, 종교계, 유모차 등 각계가 참여하는 집회를 계획했다.”면서 “이같은 과격 진보세력의 대선 불복종 계획은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우리 시위 진압 매뉴얼(지침서)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더욱 강력한 진압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면 민주당 조배숙 의원은 쇠뭉치를 들어보이며 “경찰이 (시위현장에서) 던진 것”이라면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본다. 상부 지시 내지는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 아니냐.”고 경찰의 강경 진압을 따졌다. 이어 조 의원은 “경찰청장의 책임을 물어 파면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은 촛불 시위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질의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안 의원은 경찰의 소화기와 물대포 사용이 합법적인가를 따진 뒤 “꿈을 꾸는 듯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언론 장악 음모’ 공방 MBC PD수첩과 YTN 구본홍 사장 선임 문제도 이날 긴급현안질의에서 다뤄졌다. 한승수 총리가 미국산 쇠고기 사태와 관련,“초기에 이런 사안이 벌어진 것은 MBC PD수첩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하자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구본홍씨를 YTN 사장에 임명한 것은 언론 장악 의도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한 총리와 한나라당 의원들은 MBC PD수첩의 보도에 대한 지적을 반복했다.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PD수첩은 왜곡 과장 보도를 서슴지 않았다.”고 했고, 한 총리는 “PD수첩은 정정당당하게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률 의원 “이 대통령 하야” 발언 논란 이날 현안 질의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를 의미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대통령 지지율이 20% 이하에 머물고 있는데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게 민주주의 요소에 부합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정치인의 인기는 항상 고정된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답했지만 본회의장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고성으로 항의하는 등 반발했다. 나길회 구동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열린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삭발하고 지리산에 머문 지 석 달째다. 세상 최고의 예술작품도 자연 만큼 아름답지도, 역동적이지도 못하다고 새록새록 느끼는 하루하루다. 새 소리에 잠을 깨면 솔숲 새로 어느덧 동살이 희붐하다. 눈부시게 청초한 산목련과 새뜻한 으아리, 소담스레 꽃들을 단 까치수염 곁으로 여름 햇살이 스며들면, 꽃잎에 연 이슬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발을 옮기면, 솔향기를 함빡 담고 와 볼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은 그지없이 청량(淸凉)하고,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에 나무들이 제 생긴 대로 화답하여 내는 교향곡은 더 없이 청염(淸艶)하다. 몸을 낮추어 가까이 들여다보면 손톱보다 작은 참꽃마리 하늘색 꽃잎이 그지없이 아리땁고, 서서 멀리 바라보면 첩첩이 이어진 지리산의 품이 마냥 너그럽고 웅대하다. 자연은 읽을수록 의미가 샘솟고, 늘 감동해도 다함이 없는 무진장의 텍스트다. 이리 자연을 벗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일은 고운 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IMF 이후 서울은 급속도로 타락했다. 대화의 소재는 돈 버는 것과 감각에 즐거운 것 일색이다. 이 판에서 올바른 삶에 대해 말을 꺼내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십상이었는데, 여기 오니 그 반대다. 서울에선 타인의 것을 취해 내 것으로 삼는 길에 대해 고민하는데, 여기는 타자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방편에 대해 성찰한다. 세속의 탐욕과 부패가 싫어, 출가한 사람, 귀농한 사람, 활동가로 뛰는 사람, 대안교육을 하러 온 사람들이 실상사, 인드라망공동체, 생명평화결사, 귀농학교, 작은 학교를 매개로 공동체를 이룬 탓이다.‘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한국 버전이다. 여기 사람들은 다른 전원마을이나 생태마을처럼 나 혼자 자연 속에서 잘 살고자 하지 않는다. 스님, 농민, 학생이 한 데 어울려 버스를 빌려 대운하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 순례를 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채의식에 시달리던 필자도 신나서 그들과 함께 하였고 따로 광화문에도 갔다. 그날 강경진압이 예고되었는 데도 수많은 시민들이 태평로에 운집하여 강렬한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촛불이 맺힌 사람들의 눈동자는 야생화보다 아름다웠다. 그를 보며 “자연보다,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좀 더 어여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자들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밉살스러운 것에 대하여 저항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두울 때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이들의 저항이 있었고, 이것이 모여 세상을 바꾸었다. 극우파 사람들도 지금 한국 사회에 부조리와 부패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금이 있어 바다가 썩지 않듯, 이 저항하는 주체가 있었기에 세상은 그나마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게다. 세상 이치가 이럴진대, 군대만 갔다 오면 공손해져서 돌아오는 복학생들, 자유로운 지성의 광장이어야 할 대학에서마저 폭력을 행하거나 이를 수용하는 학생들, 아무 비판도, 질문도 없이 대학생활을 소일하거나 새내기부터 취업공부에만 매달리는 예스맨들이 오늘의 한국 대학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정, 교육, 사회, 국가의 시스템이 모두 억압에 길들여지도록 강요하고 내면화하는 복종의 문화인 탓이다. 이를 깨고,‘발칙한’10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구속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실명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고 있다. 그들에게서 ‘추한 것에 저항하는 주체’의 싹을 본다. 그 싹들을 밟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우는 행위다. 먼저 싹을 틔운 이들은 그 싹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싹들이 오롯이 자라 서로 의지하며 숲을 이루고 꽃들로 흐드러져 세상 곳곳으로 향기를 날릴 때, 사람들은 말하리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숲이 저기 대한민국에 있다고.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 [美쇠고기 고시 이후] 확산되는 고시 반발

    정부의 장관 고시 관보 게재와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촛불집회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26일 전국 곳곳에서 고시 강행을 규탄하거나 미국산 쇠고기 냉동창고 반출을 막으려는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26일 저녁 7시 5만여명(경찰 추산 3500여명)의 시민들이 태평로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50번째 촛불문화제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시위대가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로 향하면서 저녁 9시부터 광화문 사거리 및 근처 골목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시민 수명이 피를 흘리면서 후송되기도 했다. 경찰은 곧바로 물대포와 소화기를 시민들에게 난사하며 행진을 막았다. 시민들은 세종로를 막은 경찰버스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버스 위로 올라가 ‘고시 철회’를 외쳤다. 청계천 광장에서는 시민들에 의해 대열에서 끌려나온 전경 한 명이 다쳤고, 수백명의 시민들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정문으로 다가가 계란과 쓰레기를 던졌다. 시민들이 던진 벽돌에 동아일보 유리벽에 금이 가기도 했다. 신수민(43·서울 강남구)씨는 “조용히 촛불만 들다가 결국 이렇게 됐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소리쳤다. 최유식(45·서울 강서구)씨는 “고시 강행은 무효다. 불도저 대통령을 엎어버리는 뚝심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국민들이 정권퇴진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국민적 거부·불복종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회의는 28∼29일 ‘이명박 정부 심판’을 위한 1박2일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7월5일에는 ‘100만 촛불대행진’을 열 계획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은 오후 5시 서울광장에서 ‘국민 건강권 쟁취를 위한 총파업 출정식’을 가진 뒤 촛불집회에 가세했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3000여명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민주택시본부 조합원 2000여명도 합류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450여명은 경기지역 12곳을 비롯, 전국 14개 냉동창고에서 미국산 쇠고기 운송 및 출하 저지 투쟁을 벌였다. 부산지역 노조 대표 150여명은 감만부두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며 냉동차량들의 반출입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당직자 20여명은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강기갑 의원은 청와대 정문 30m 앞까지 달려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환경운동연합과 여성민우회 등 여성환경단체 회원 9명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행진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수정안 고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민변은 “정부는 불안해하지 않을 때까지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저버렸다.”면서 “입법예고 절차 없이 고시를 강행한 것은 행정절차법과 법제업무운용규정 등을 위반한 것으로, 검역주권과 국민건강권을 포기한 데 이어 법치주의의 원칙마저 무시했다.”고 강조했다. 김승훈 황비웅 김정은기자 hunnam@seoul.co.kr
  • [월드이슈-中 쓰촨 대지진 한 달] ‘고통’의 대륙… 溫은 ‘소통’ 胡는 ‘불통’

    12일로 쓰촨(四川) 대지진이 발생한지 한 달째를 맞는다. 공식 사망자 6만 9142명, 실종자 1만 7551명에 피해를 입은 사람만도 37만여명이나 되는 대참사의 상처를 딛고 중국은 오는 8월 베이징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지진이 사회·정치적으로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경제적인 영향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쓰촨(四川) 대지진은 숱한 영웅을 만들어냈지만, 가장 빛나는 영웅의 하나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꼽을 수 있다. 지진 발생 당일 현장 도착은 국가 지도자로서는 사실 무모하기까지 했던 일. 그러나 당일 임시 천막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구호활동을 지시하며 이재민을 위로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환호했다.‘제1선’에 선 지도자 상에 국민적 지지가 몰리는 순간, 원 총리에게는 정치적인 ‘기사회생’의 기회가 터졌다. 중국 정치에서 서구식 대중 정치의 맹아,‘대중 정치인의 출현’ 가능성이 확인되는 때이기도 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인플레이션과 함께 원자바오 총리의 입지는 좁아져 갔다. 걷잡을 수 없는 물가 상승에 경제 정책은 긴축에 긴축이 이어지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2007년 가을 17차 당대회를 전후해서는 홍콩 언론을 통해 “원로들이 원 총리를 못마땅해한다.”는 보도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에게 직접적으로 질타를 받았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올 초 남방에 닥친 100년만의 폭설은 그를 최악의 위기로 몰아갔다. 곳곳을 다니며 민심 수습에 나선 그를 보며 적지않은 이들이 위로를 받기보다는 “또, 또…”라며 혀를 찼다.2006년 초 ‘낡은 운동화’와 ‘낡은 점퍼’로 쌓아올린 서민 총리의 이미지도 거의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진 와중에 그는 역전했다. 그는 늘 해오던 대로였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나는 원자바오 할아버지다.”,“곧 구해줄테니 조금만 더 참아라.”,“반드시 구출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중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주저앉은 지붕 밑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에게는 직접 물을 먹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다른 지도자들은 그와 뚜렷이 구별되며 비교되기 시작했다. 당 서열 1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제1선’에 섰지만 감동의 깊이와 정도가 달랐다. 자식을 잃고 넋을 잃은 부모에게 “지금 10만명의 인민해방군이 구조활동에 투입됐다.”는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 채 정치 선전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에는 대중이 원하는 표정이 부족했다.‘방송 언어’와 ‘감성적 표현’을 구사하고,‘TV형 표정’을 보여주는 원자바오 총리와는 시시각각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어떤 중국 정치인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다. 후 주석과 달리 원자바오 총리는 이를 통해 새롭게 ‘힘’을 가졌다.“지진 초기 원 총리의 명령에 불복종한 군 수뇌부에 대해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렇다할 계파도, 내부 지지세력도 없던 그의 처지를 고려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설이다. 국민적 지지가 당내 권력 투쟁에 주요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일이다. 쓰촨 대지진은 중국 정치 지형에 보이지 않는 변형을 가져왔다. 중국 국민들의 눈에는 이미 감동을 줄 줄 아는 ‘대중 정치인’의 형상이 투영되고 말았다. 선전·선동형 지도자보다는 교감할 수 있는 정치인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번 지진은 당장 4년 뒤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무 부총리간의 차세대 1인자 경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치사에 싹을 틔운 서구식 대중 정치의 맹아는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jj@seoul.co.kr
  • ‘삐비꽃’ 필 무렵 소금꽃이 활짝

    ‘삐비꽃’ 필 무렵 소금꽃이 활짝

    지난 3월28일 염(鹽)관리법 개정안이 발효되기 전까지 45년 동안 천일염(天日鹽)은 ‘식품’이 아닌 ‘광물’이었다. 천일염에 함유된 칼슘·마그네슘 등 염화나트륨 이외의 미네랄 성분들이 광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대로 식탁에 오르지 못하는 등 변변찮은 대접을 받아 온 게 사실. 이제 각종 미네랄을 듬뿍 머금고 있는 천일염은 참살이 ‘식품’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천일염은 유월에 만든 것이 으뜸. 한창 소금이 익어가는 마을, 전남 신안군 증도를 다녀왔다. #여의도 두 배 면적 염전에 60여 소금창고 장관 증도 선착장에 내려 긴 방파제를 지나자 시간이 멈춰선 듯한 아련한 풍경에 시선이 고정된다. 끝간 데 없이 길게 펼쳐진 소금창고 행렬이다. 숯검댕이를 바른 듯 검은빛 일색의 건물들이 약 3㎞에 걸쳐 60여채가 도열해 있다. 위성사진에도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건물마다 전신주를 하나씩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여간 장관이 아니다. 소금창고 좌우로는 태평염전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약 463만㎡(140만평)로 여의도의 두 배 크기다. 태평염전은 1953년 한국전쟁 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조성됐다.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형성된 까닭에 증도를 하나의 섬으로 이어주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석조 소금창고를 개조한 소금박물관과 더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는 염전에 색채감을 더해주는 것이 ‘삐비꽃’(삘기의 사투리)이다. 이맘때면 허름한 소금창고 주변에 무시로 피어나는 꽃. 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꽃송이들이 갯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닮았다. 삐비꽃이 만개할 무렵 염전에서는 소금꽃이 활짝 핀다. 염도가 오른 물이 증발하면서 물 위에 하얀 소금 결정을 피워 올리는데, 염부(鹽夫)들은 이를 소금꽃이라 부른다. 흔히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 생산된 소금이 맛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지에서는 6월에 생산된 것을 최고로 친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소금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과 햇볕이다. 태평염전 정구술 과장은 “오뉴월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휘날릴 정도의 미풍이 염전 옆자락을 스치고 지나갈 때 가장 맛있게 소금이 익는다.”고 설명했다. # 바람과 햇볕, 그리고 바닷물…25일간의 사랑 소금은 저수지와 증발지, 결정지 등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 진다. 소요기간은 25일 정도. 먼저 염전 아래쪽 저수지에 바닷물을 받는다. 저수지에서 이물질이 걸러진 바닷물은 염도를 높이기 위해 증발지로 옮겨진다.1차 증발지를 ‘난치’,2차 증발지를 ‘누테’라고도 한다. 염도가 1∼2도 정도였던 바닷물은 증발지를 거치며 하루에 1도가량 수치를 높여가다 결정지에 공급될 때쯤 27도 언저리까지 치솟는다. 이렇게 염도는 올리고 수분은 증발시키는 과정을 염부들은 “물을 깎는다.”고 표현한다. 물을 깎아 소금이란 조각작품을 탄생시킨다는 뜻일 게다. 증발지에서 한껏 염도를 높인 소금물은 ‘자고’라 불리는 물길을 따라 ‘소금밭’, 즉 결정지로 이동한다. 아침 6시쯤 소금물이 결정지로 공급되고 난 후 3∼4시간 뒤면 소금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얀 소금꽃들이 ‘깡지게’ 엉켜 ‘살을 찌운’ 후에야 비로소 소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은 소금창고로 옮겨져 1년 가까이 간수를 뺀 다음 출하된다. # 땀 한 바가지에 소금 한 바가지 요즘엔 소금물을 이동시킬 때 수차 대신 모터를 이용한다. 소금을 옮기던 대바구니 자리도 배터리를 이용한 전동 수레가 차지했다. 예전보다 수월해졌다고는 하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소금을 만드는 작업은 여전히 힘들고 고되다.‘염부의 땀 한 됫박에 소금 한 됫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게다. 염부들의 애면글면한 수고 덕에 천일염은 칼슘, 마그네슘 등 바다에 녹아 있는 미네랄을 균형 있게 품었다. 그 숫자가 무려 88종에 달한다.‘소금은 바람과 햇볕으로 잉태한 보석’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천일염은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제대로 식탁에 오를 수 없었다. 용도도 배추를 절이거나 생선을 보존하는 등으로 제한됐다. 밥상에는 순수 소금에 가깝게 만든 정제염이 주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제 식용으로 쓰이는 데 장애가 없어졌다. 소금박물관의 박미선 학예연구사는 “자연이 선물한 천일염에 비해 그 많은 미네랄들을 모두 잃어버린 채 인공적으로 나트륨과 염소만을 분리·합성시킨 염화나트륨 덩어리가 정제염”이라고 설명했다. 소금의 질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그것이 식생활 안전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천일염 시장규모는 1000억원 정도. 소금산업 관계자들은 5년 뒤에는 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때쯤이면 염부들의 옷자락에 달라붙은 ‘소금꽃’이 비로소 ‘웃음꽃’으로 변하게 될까. # 소금은 왕도 만들었다 박 연구사의 설명을 듣자니 소금의 용도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음식으로서는 물론 도자기에 광택을 내거나 의류를 염색하는 데도 곧잘 쓰였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장경각의 지반을 조성할 때는 해충을 막고 물빠짐을 돕기 위해 숯과 함께 넣기도 했고, 신기전(神機箭) 등 무기에 장착된 폭약 제조에도 필수적으로 이용됐다. 소금은 왕도 만들었다. 박 연구사에 따르면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은 한나라의 소금통제로 부여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지자 소금을 구하러 떠난다. 많은 양의 소금을 구해온 주몽은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됐고 이는 훗날 고구려 건국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 또 최초의 소금장수로 전해지는 고구려 왕자 을불은 왕권다툼을 피해 소금을 지고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민심도 헤아리고 경제력도 얻게 되니, 그가 바로 고구려 15대 미천왕이다. 멀리는 인도의 간디가 소금세를 신설하려는 영국 정부에 맞서 360㎞ 소금행진을 벌여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불을 지폈다.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것도 민중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염세(소금에 부과된 세금)였다. 소금에서 파생된 단어들도 있다.‘샐러리맨’에게 지급되는 ‘샐러리’(salary)는 로마시대 병사들에게 소금으로 지급됐던 급료를 이르는 말이고,‘솔저’(soldier)는 그 급료를 받는 병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태평염전에서는 대파질로 소금 긁어 모으기, 수차로 소금물 돌리기 등 다양한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다. 체험료 3000원. 이틀 전 홈페이지(www.sumdleche.com)에서 예약해야 한다. 소금박물관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화요일 오후, 수요일은 휴관. 소금박물관 뒤쪽 산자락에 태평염전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061)275-0829. 글 사진 신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0) 홍타이지,황제가 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70) 홍타이지,황제가 되다

    평소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조선이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는 데 동참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후금의 힘이 이미 명마저 넘어선 상황에서 조선의 선택은 국가의 존망까지 걸어야 하는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신중하고 주도면밀한 대응이 필요했다. 하지만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인조의 유시문(諭示文)을 조선 영토 안에서 용골대 일행에게 빼앗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국가 운영 체계에 나사가 풀려 있다는 방증이었다. 반면 조선의 ‘본심’을 간파한 홍타이지는 느긋하게 조선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1636년 홍타이지,帝位에 오르다 인조가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耉)에게 보낸 유시문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정묘년에 부득이 하여 강화를 맺은 것도 부끄러운데 지금 그들이 황제를 칭하려 하니 존망을 돌보지 않고 절교(絶交)할 수밖에 없다. 팔도의 관찰사들은 이 소식을 들으면 죽기를 맹서하고 싸워 원수를 갚을지어다. 각처의 백성들에게도 알려 용사들을 격려시키고 서로 도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용골대가 가져온 인조의 유시문을 보았을 때 후금의 여러 버일러들은 당장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섬멸하자며 흥분했다. 홍타이지는 차분했다. 그는 버일러들을 만류하며 먼저 조선에 사람을 보내 속내를 떠보라고 지시했다. 이윽고 1636년 4월11일 여명, 홍타이지는 백관들을 이끌고 심양성의 천단(天壇)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제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천지에 고하기 위해서였다. 홍타이지는 대신들과 함께 제단에 삼궤구고두례(三九叩頭禮)를 행했다.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었다. 홍타이지가 북쪽을 향해 꿇어 앉은 상태에서 제관이 축문을 읽었다. ‘유세차 병자년 4월11일, 만주국 황제 신(臣) 홍타이지는 황천후토신(皇天后土臣)에게 고하나이다…. 제가 대위(大位)를 이은 지 10년, 하늘의 도움으로 조부의 기업(基業)을 어깨에 메고 조선을 정복하고 몽골을 통일하여 다시 옥새를 얻었습니다…. 이제 내외 신민의 추대를 받아 천자(天子) 자리에 올라 나라 이름을 대청(大淸), 연호를 고쳐 숭덕(崇德) 원년으로 삼았음을 삼가 아뢰옵니다.’ 연호를 천총(天聰)에서 숭덕으로 고치고 대청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만 ‘조선을 정복’ 운운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직 병자호란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조선은 명분상 분명 형제국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을 정복’했다고 한 것은 당시 조선이 이미 자신들의 수중에 있다고 여기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또 자신들에게 도무지 고개를 숙이려 들지 않는 조선에 대해 그만큼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사신, 황제즉위식서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다 천지에 고하는 의식을 마친 뒤 천단 동편에 즉위 식장이 꾸려졌다. 홍타이지는 단상에 놓인 금 의자로 올라가 앉았고 여러 버일러들과 대신들은 좌우로 줄을 지어 늘어섰다. 이윽고 찬례관(贊禮官)의 외침에 따라 만몽한(滿蒙漢) 출신의 신료들은 일제히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행한 뒤 꿇어 앉았다. 곧이어 만주, 몽골, 한인들을 대표하는 신료들이 각각 만주어, 몽골어, 한문으로 된 표문(表文,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받들고 단(壇)의 동쪽에 섰다. 여러 무리들을 향해 표문의 내용이 낭독되었다.‘우리 황상께서는 하늘의 뜻과 백성의 여망을 따르고, 덕을 닦아 조선을 복종시키고 몽골을 통일하여 다시 옥새를 얻으셨다…. 큰 이름과 업적이 천하에 드날리니 한마음으로 추대하여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라는 존호를 올린다.’ 낭독이 끝나자 신료들은 다시 삼궤구고두례를 행한 뒤 기립했다. 여기서도 ‘조선을 정복’했다는 내용이 반복되었다.‘관대하고 따뜻하며 어질고 성스러운’ 황제의 조선 출병이 머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당시 식장에는 조선에서 온 춘신사(春信使) 나덕헌(羅德憲)과 이확(李廓)도 있었다. 두 사람은 즉위식이 진행되는 내내 홍타이지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 조선은 아직 형제국이지 청에 신속(臣屬)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주와 몽골인들은 물론, 조선이 상국으로 섬기는 명 출신 신료들까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던 식장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두 사람의 행동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 ●홍타이지 “째째하게 사신죽이지 않겠다” 같이 도열해 있던 청의 신료들이 발끈했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두 사람을 죽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만류했다. 그는 ‘이 일은 조선 국왕이 양국 사이에 틈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꾸민 것이다. 내가 만일 사신들을 죽이면 조선 국왕은 내가 맹약을 어겼다고 할 것이다. 나는 한 때의 하찮은 분노 때문에 사신을 죽이지 않겠다.’고 신료들을 다독였다.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은 나덕헌과 이확의 용기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조선에 먼저 절교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지 않으려 했던 홍타이지의 외교적 안목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두 사신이 귀국할 때 인조에게 선사하는 초피(貂皮)를 비롯하여 은과 인삼 등을 들려 보냈다. 의외였다. 군사를 일으키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예의를 차리려는 수순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확과 나덕헌에게 들려준 국서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 용골대 일행이 서울에 갔을 때, 조선이 몽골 출신 버일러들을 만나 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에게 허락을 받고 들어갔던 사람들을 만나 주지 않은 것은 두 나라 사이에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두 나라 사이에는 본래 원한이 없었는데 1619년 조선이 명을 도와 후금을 공격하는 군대를 파견했던 것, 이후 명나라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식량을 준 것 때문에 정묘호란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또 정묘호란 당시 가짜 왕제(王弟)를 진짜인 것처럼 속여 볼모로 보낸 것, 자신이 강홍립과 함께 돌려 보낸 한인들을 명으로 압송해 버린 것, 맹약을 맺은 이후에는 명나라 사람들을 조선 영토로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것을 어긴 것 등등. 홍타이지의 불만은 이어졌다. ●“인조 자제 볼모로 안 보내면 공격하겠다” 홍타이지가 특히 맹렬히 비난한 것은 공유덕, 경중명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그들이 귀순해 올 때 조선이 명을 도와 그들을 차단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전쟁의 단초를 여는 행위였다고 규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 신료들을 비난하고 조롱한 점이었다. 그는 인조의 신료들을 가리켜 ‘책을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虛言)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라고 매도했다.‘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들 서생(書生)들이 10년 간 이어져온 화의를 폐기하고 전쟁의 단서를 열었다고 비난했다. 작심한 듯한 홍타이지의 발언은 이어졌다.‘왕은 지금 덕과 의리를 닦지 않고 해도(海島)의 험준함만 믿고 있으며 서생들의 말을 듣고 형제의 화호를 깨뜨리고 있다.’ 홍타이지는 훈계를 늘어 놓았다.‘몽골의 차하르(察哈爾) 한도 덕을 닦지 않고 간신들의 말에 따라 내게 전쟁을 걸었다가 쫓기는 몸이 되고, 끝내는 신료들에게 배신당했다.’고. 이어 조선이 ‘후금을 원수’라고 한 이상 자신은 전쟁을 통해 강약과 승부를 겨룰 뿐 사신들을 죽이는 쩨쩨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스스로 죄를 깨우쳤다면 자제를 볼모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 가겠다고 협박했다. 홍타이지는 자신이 군대를 움직이는 날짜까지 명시했다. 사실상의 최후 통첩이었다. 조선이 홍타이지의 요구대로 볼모를 보내지 않는 이상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전쟁이 터지면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말고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던 조선, 그나마 그 계획조차 이미 청에 읽혀 버린 조선의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옛주인이 그리워 자살한 견공 ‘짱아오’

    중국에서 값비싼 견공으로 대접받는 티베탄 마스티프(Tibetan Mastiff) 한 마리가 ‘자살’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짱아오(藏獒)라고도 불리는 이 개는 부의 상징으로 자주 소개되는 값비싼 개로,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매우 영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일 오후 2시경 산시(陝西)성의 한 10층 건물에서 검은색 짱아오가 돌연 뛰어내려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를 목격한 류(劉)씨는 “짱아오 한 마리가 혼자 베란다를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창밖으로 뛰어내렸다.”면서 “(짱아오의)주인집 창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짱아오 주인의 진술에 따르면 이 개는 지난 3일 새벽 전 주인의 집을 떠나 새 집으로 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는 등 우울한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새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자살’함으로써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 짱아오 전문가는 “짱아오가 종종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옛 주인을 잊지 못하거나 헤어지는 것에 상처를 입고 충동적인 자살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몸집이 큰 짱아오는 넓은 곳에 풀어놓고 키우는데, 갑자기 환경이 변하거니 좁은 공간에 갇히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살할 줄 아는 개’로 알려진 짱아오는 예로부터 전염병에 걸리면 스스로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거나 끼니를 거른 채 굶어죽는 사례가 종종 발견됐다. 또 낯선 사람과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며 자신을 돌봐주고 키워주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복종심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전문가는 “아마도 이 짱아오는 전 주인을 그리워하다 자살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짱아오는 다른 종의 개들에 비해 주인과의 유대감을 매우 중시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9) 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69) 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용골대와 마부대 일행은 다목적 사절이었다.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하는 사절이자, 인열왕후의 죽음에 문상하기 위한 조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선의 동참을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홍타이지 명의의 국서말고도 후금의 여덟 버일러(貝勒, 만주 팔기의 우두머리)들과 몽골 출신 마흔 아홉 버일러들이 작성한 서신을 각각 1통씩 소지하고 있었다. 서신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용골대 일행 명버리고 후금 선택 강요 후금의 버일러들이 보낸 서신은 먼저 몽골 각부의 버일러들이 심양에 모두 모여 홍타이지에게 복종을 다짐하고 존호(尊號)를 올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후금군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것은 이미 천의(天意)와 민심이 후금으로 돌아갔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우인 조선국왕도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자제들을 보내 홍타이지를 추대하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했다.‘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동참하라?’ 그것은 한마디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행동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몽골 버일러들의 편지가 좀더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우리가 지금 200여년 동안 사귀었던 명과 결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명의 관리들은 우리를 속였고, 나라에는 뇌물이 성행하고 간신들이 총명을 가려도 황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인심이 이미 해체되고, 장졸들은 유약하여 싸울 때마다 무너지고 있으니 명의 운명은 이미 다한 듯하다.’.‘하지만 우리 만주 황제는 은혜와 위엄을 아울러 갖추셨고, 법도와 기강이 엄숙하며 장졸들은 강하여 가는 곳마다 무적이다. 민심이 사모하니 천명(天命)이 장차 돌아가려 한다.’ 몽골 버일러들은 아예 ‘우리 황제’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당시를 명이 망하고 후금이 떠오르는 혁명(革命)의 시기로 규정했다.‘지는 해인 명을 버리고 떠오르는 해인 후금을 선택하라.’ 몽골 버일러들이 조선에 보낸 편지는 대충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2월22일 용골대 일행이 입경하여 문제의 서신들을 내밀었을 때 조선 신료들은 접수를 거부했다. 후금의 버일러나 몽골의 버일러를 막론하고 신하된 자가 다른 나라의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용골대와 몽골 버일러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용골대는 ‘우리 한(汗)의 공업(功業)이 높아 안팎의 모든 신료들이 황제가 되기를 원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몽골 버일러들은 ‘조선이 형제국이라 금한(金汗)이 황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기뻐할 것으로 여겼는데 거절하는 까닭이 무엇이냐?’며 따졌다. 조선 신료들이 군신의 대의를 내세워 계속 거부하자 용골대는 바로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후금의 서신 거부 용골대 일행 쫓겨나 그럼에도 조선 신료들은 몽골 버일러들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용골대 등의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몽골 버일러들을 조선에 데려올 때는 조선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 주어 자신들의 낯을 세워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신료들이 ‘명을 배신한 서달(西 )’ 운운하며 그들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자 용골대 일행의 낭패감은 컸다. 조정에서 회답하는 여부를 논의하려 할 때 삼사의 신료들이 들고일어났다. 대사간 정온(鄭蘊)은 서달은 부모 나라의 원수이니 사절단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지금 우물쭈물하는 자세를 보이면 조선도 홍타이지를 추대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균관 유생들도 빨리 용골대 등의 목을 베고 서신을 소각하라고 촉구했다. 안팎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최명길(崔鳴吉)이 진화에 나섰다. 그는 후금과 몽골 버일러들의 서신 내용이 문제지 홍타이지의 글에는 별 문제될 내용이 없다며 분리해서 대응하자고 했다. 버일러들의 서신에는 엄정히 대처하되, 그들을 박대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의와 원칙에 따라 용골대 일행을 대하되 임시 방편으로 화를 늦출 계획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26일 용골대는 자신이 가져온 버일러들의 서신을 받아주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궁궐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조정은 파장을 우려하여 역관 박난영(朴蘭英)을 모화관(慕華館)까지 보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허사였다. 한편 마부대는 같은 날 10시 무렵, 종자들을 이끌고 인열왕후의 빈소에 조문했다.‘승정원일기’에는 이들이 명정전(明政殿)에서 조문했다고 되어 있으나 ‘병자록(丙子錄)’의 기록은 좀 다르다. 조선 조정이 전각(殿閣)이 좁다는 이유로 금천교(禁川橋) 위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 조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막 조문하려는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 장막이 걷혀버렸다. 마부대 일행은 조선의 푸대접에 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훈련도감 포수들이 궁궐로 모여들었고, 인조를 숙위하는 금군(禁軍)들도 무기를 소지한 채 장막 근처에 있었다. 장막이 걷힐 때 마부대 일행은 무기를 든 병사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자신들을 해치기 위해 잠복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부대 일행도 놀라 허겁지겁 달아났다. 후금 사신들이 도성을 빠져나갈 때 구경꾼들이 길을 메웠다. 아이들은 일행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기와 조각과 돌을 던지기도 했다. 청나라 기록에는 당시 용골대 일행이 너무 급한 나머지 민가에서 말을 빼앗아 타고 돌아왔다고 적었다. 그것은 사실상 조선과 후금의 관계가 끝장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몽골 버일러들의 편지까지 들이밀며 조선을 협박하려 했던 후금의 오만도 문제였지만, 조선의 대응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조문할 장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 고의였는지 분명치 않지만 조문 장소 부근에 병력을 배치하여 의심을 산 것 등은 분명 실책이었다. 더욱이 ‘호차(胡差)들을 참수하라.’는 주장까지 난무하는 상황에서 용골대 일행의 의구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평안행 전령, 용골대에 잡혀 방어대책 들켜 용골대 일행이 도주한 뒤 오히려 조선 조정이 공포에 휩싸였다.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긴장과 불안감이 엄습했다.2월29일, 인조는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윤방(尹昉)은, 오랑캐 사신이 성을 내고 갔으니 침략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미리 강화도로 들어가 방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도승지 김경징(金慶徵)이 말을 끊었다.‘지금 마련해야 할 것은 방어 대책이지 피란 대책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정은 방어 대책을 마련한다며 부산해졌다. 김류(金 )는 포수(砲手)가 아니면 오랑캐를 막을 수 없다며 어영군과 훈련도감의 포수를 뽑아 안주(安州)로 보내자고 했다. 화약을 증산할 대책이 제시되는가 하면 서쪽으로 방수(防戍)하러 간 병사들의 신역(身役)을 감해주라는 명령이 내렸다. 인조는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희성(文希聖)을 안주 조방장(助防將)으로 임명했다. 일찍이 1619년 심하 전역에 참가했다가 후금군에게 항복했던 전력이 있는 장수였다. 인조는 반대하는 신료들에게 ‘지금은 장수로서 재주가 중요하지 과거 전력을 문제삼을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급박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3월1일, 인조는 팔도의 백성들에게 유시문(諭示文)을 내렸다.‘정묘호란 때는 부득이하여 임시로 화친을 허락했다. 하지만 오랑캐의 욕구는 날로 커져 이제 우리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협박하고 있다. 이에 강약(强弱)과 존망(存亡)을 돌아보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니 모든 사서(士庶)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나가자.’는 호소였다. 대의명분을 위해 국가의 존망까지도 걸 수 있다는 의지는 결연했다. 하지만 3월7일, 오랑캐와 단교한다는 사실과 방어 태세를 확고히 하라는 인조의 명령서를 갖고 평안감사에게 가던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방어 대책을 마련한다며 부산을 떠는 와중에 서울에서 변방으로 이어지는 통신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조선은 속마음을 온전히 들키고 말았다.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들개의 역습, 그 피해 현장속으로

    공포의 무법자인가 생태 조절자인가.2008년 봄, 천혜의 땅 제주도에 비상이 걸렸다. 들개들이 제주의 대표적인 야생동물인 노루와 가축들을 무차별적으로 물어 죽이고 있는 것.30일 오후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환경스페셜-현장 추적, 들개의 역습’에서는 날로 늘어가는 들개에 의한 피해현장을 밀착 취재, 그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해발 200m가 넘는 제주 산간 지역에 공포의 무법자 들개가 나타났다. 들개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침입해 노루를 비롯해 양, 염소, 송아지, 망아지 등 가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 뒤 바람처럼 사라진다. 주민들이 축사에 철망과 철문을 두르고 제주시가 야생동물 구제단과 함께 대대적인 포획작업을 벌였지만 모두 허사였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제주섬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는 들개.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며 어떤 형태로 사냥감을 공격하는 것일까. 목격자들에 따르면 들개는 한반도에서 멸종된 늑대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둘 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우두머리가 존재하고 그 밑에 무리들은 우두머리의 명령에 복종하는 집단생활을 한다. 또한 들개는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사냥하는 기질이 늑대와 다르다. 그런 만큼 노루의 멸종뿐 아니라 생태계 전반의 파괴에 대한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 심각한 환경오염지역에서 청정수역으로 변모한 시화호에서도 ‘들개 비상’이 걸렸다.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을 앞두고 갈대가 제거되면서 환경단체의 보호를 받던 고라니가 들개의 공격에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이에 환경단체가 올무와 마취총 등을 이용한 포획에 나섰지만 갈대숲 일대가 너무 광활해 사실상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러나 총기 사용 또한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동물보호법상 개는 학대하거나 죽일 수 없다. 또한 야생화된 동물은 관리동물로 지정해 포획할 수 있지만 개는 야생화된 동물로도 볼 수 없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들개문제의 해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SF속 상상이 현실로

    SF속 상상이 현실로

    ‘블레이드 러너,A.I., 스페이스 오디세이, 바이센테니얼 맨, 쥐라기 공원’ 세계적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다. 또 이 작품들은 모두 원작소설을 가진 공상과학(SF) 영화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흔히 ‘발명의 어머니’로 ‘필요’가 거론되지만,‘상상’이야말로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끌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원동력이다. 실제로 발표 당시에 ‘허황된 얘기’라는 평을 들었던 SF소설 속의 수많은 가정과 미래상은 상당부분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들의 상상력은 얼마나 큰 힘을 가졌을까. ●SF, 과학기술의 진보 이끌어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며 인간이 다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로봇은 1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1,2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영화 ‘A.I.’와 ‘아이, 로봇’에는 공통적으로 ‘로봇 3원칙’이 등장한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낸 원칙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로봇 3원칙은 1942년 미국의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아시모프는 당시 실체가 없었던 로봇이 언젠가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로봇 3원칙을 만들어냈다. 아시모프의 3원칙은 급속도로 발전해온 로봇산업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불문율처럼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기술표준원도 2006년 로봇의 KS표준을 만들면서 이 원칙을 사용했다.‘로봇’의 어원 역시 희곡에서 시작됐다. 체코어로 ‘일한다(robota)’는 뜻으로, 차페크의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비롯됐다. 역시 미국의 SF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1957년 작품 ‘여름으로 가는 문’에는 ‘냉동인간’의 개념이 들어 있다. 냉동수면을 통해 시간을 건너뛸 수 있다는 하인라인의 개념은 이후 수많은 만화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최근 몇년 사이 미국에서는 실현 단계의 냉동인간이 선보이고 있다. 하인라인은 또 다른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를 통해서는 우주시대의 개막과 행성간 전쟁, 레이저 등을 이용한 무기의 새로운 개념 등을 펼쳐놓기도 했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영국의 아서 C 클라크는 SF작가 이외에 ‘미래학’으로도 이름을 떨쳤다.‘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라마와의 랑데부’ 등의 명작을 남긴 그는 특히 우주과학과 통신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클라크가 1945년 ‘와이어리스 월드’에 발표한 논문 ‘행성 밖에서 중계를 하는 방송’은 지구 밖에 정지한 상태로 국가간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위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었다. 모두들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었다. 그렇지만 20여년이 지난 후 정지궤도 위성은 실제로 클라크가 예상한 역할을 정확히 수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정지궤도를 ‘클라크 궤도’라고 이름 붙이는 것으로 그에게 경의를 나타냈다. 이밖에도 클라크는 새로운 우주 운송수단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1978년작 ‘낙원의 샘’에서 처음 등장시켰다. 우주 엘리베이터는 지구와 인공위성, 또는 우주정거장을 고정적인 거대한 통로로 연결해 화물이나 사람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그야말로 ‘꿈’의 영역이다. 과학자들은 탄소나노튜브 등 신소재의 등장으로 머지않아 클라크의 예언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타임머신, 쥐라기공원 연구도 진행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SF는 미래의 사회학”이라고 말했다.SF소설이 활발하게 쓰여지고, 읽혀지는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클라크, 아시모프의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워 왔다. 또 이들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영역에 도전해 실제로 상상 속의 허구를 현실화시킨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00년 전 ‘해저2만리’에서 등장시킨 잠수함 노틸러스는 미 해군의 첫 번째 핵잠수함 ‘노틸러스’의 모형이 됐고,‘달나라 여행’을 읽은 과학자들은 ‘아폴로 프로젝트’를 기획해 달나라에 깃발을 꽂았다. 또 이같은 SF소설의 도전은 언젠가 H G 웰스의 ‘타임머신’이나 마이클 클라이튼의 ‘쥐라기 공원’을 현실에 등장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매머드를 부활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과거의 눈으로 미래를 가늠한다면 미래는 현재와 다를 바 없다. 상상하고, 꿈꾸는 것이 결코 무용하지 않은 이유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폭력 없는 미래/마이클 네이글러 지음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명예교수이자 세계적 평화학자 마이클 네이글러의 책 ‘폭력 없는 미래’(이창희 옮김, 두레 펴냄)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폭력은 강하다. 비폭력은 폭력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 아니라, 폭력을 이기는 ‘적극적 전략’이다. 비폭력은 가끔 효과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항상 효과가 있다. 폭력은 가끔 효과가 있지만, 궁극적으론 전혀 효과가 없다. ‘비폭력만이 살길’임을 역설하는 책은 많다. 비폭력의 역사적 근원을 추적하고 철학적 가치 체계를 탐구하며 종종 비폭력 운동가의 숭고한 삶을 예로 제시한다. 언어는 매우 차분하다. 네이글러가 비폭력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는 비폭력을 이론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 매우 강력한 신념으로 비폭력의 당위성을 소리 높여 주창한다. 언어는 차분하다기보다 간혹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선동하되 폭력이 아닌 비폭력을 선동한다.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 수많은 사례를 소개하고, 비폭력적 삶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네이글러에게 비폭력은 수동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아니다. 비폭력은 ‘적극적 행동’이자 ‘역사적 필연’이다. 그는 역사상 비폭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는지 역설한다. 서기 39년,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자신의 상을 세우겠다는 로마 칼리굴라 황제의 계획을 중단시킨 것은 예루살렘에 모여든 맨손의 유대인들이었다.1930년, 인도 구자라트주 소금공장에서 몽둥이세례를 받으며 소금세 폐지를 주장했던 마하트마 간디와 그 동료들의 ‘사티아그라하’(‘진실에의 헌신’을 뜻하는 인도어) 행진은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지칭하는 관용어가 됐다.1943년, 나치 치하 베를린에서 게슈타포가 비유대인들과 결혼한 유대인 남성들을 로젠슈트라세 수용소로 끌고 갔을 때 이들을 석방시킨 것은 6000여명의 아내와 어머니들의 집단 항의였다. 네이글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남의 권리를 무시하고 오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국가가 행복해진 적은 없다.”면서 “일단 폭력을 선택하면 안전과는 결별해야 한다.”고 말한다.9·11 사태 직후 취해진 미국의 폭력적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사상 유례 없는 군국주의화” “매카시와 밀로셰비치 시절 수준의 인권제한” 등 분노에 가까운 비판을 퍼붓는다. 네이글러는 냉소적인 사람은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비폭력도 훈련과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안한 실천전략 ‘우리 자신의 비폭력적 미래를 위한 다섯 단계’는 ‘생각의 진정함’→‘자신의 마음 돌보기’→‘관계맺기 속의 진실’→‘비폭력적 소양 쌓기’ 과정을 거쳐야 ‘평화를 위한 행동’에 가 닿는다. 사회와 세계의 평화는 자신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에 뿌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폭력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미디어와의 절연도 제안한다.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폭력을 거부하는 자세가 폭력을 이기는 필수요건이란 얘기다. 미국의 주요 고등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채택됐고,2002년에는 전미국도서상을 받았다.2만 2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인간과 자연/ 조지 마시 지음

    거스를 수 없는 진실은 시간이 지나 오히려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한 세기도 더 지난 주장이 한치 오차없이 현재적 가치를 띤 채 유효하다면, 그 주장을 담은 책은 다시 읽혀 마땅하다. 미국 환경보존운동의 선구자 조지 마시의 ‘인간과 자연’(홍금수 옮김, 한길사 펴냄)은 150년이 지난 오늘도 독자들을 설득시킬 힘을 간직하고 있다. 150여년 전 책을 쓸 당시 저자의 메시지는 환경계에선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인간이란 자연의 가공할 위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당대의 시각을 반박하고 나섰다. 환경파괴의 현장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자연이 인간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인간이 마음대로 지표공간을 농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자연을 가꾸고 돌보려는 인간의 ‘호의’조차도 결과론적으론 자연파괴를 불러온다고 역설했다. 이는 인간이 신에게 위탁받은 관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환경파괴를 불렀다는 당시의 보편적 인식과는 배치되는 개념이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저자의 선구적 시각이 드러나 있는 부분은 두번째 장이다. 동·식물, 어류, 곤충, 미생물 등 지구 생물들을 두루 고찰하며 인간의 ‘개입’이 초래한 결과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저자에 따르면 깃털장식을 얻기 위해 조류를 남획하는 것과 같이 문명인이 자행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특정 동식물들은 멸종위기에 처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새로울 게 없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당연시됐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식된 가축이 삼림을 파괴하는 실상을 고발하는 데 주력한다. 인간이 불을 사용해 경지를 개간하고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수용한 이후 삼림파괴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 인구증가와 도시화를 배경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속도가 빨라졌을 뿐 임야의 약 90%는 이미 한참 전에 소실되거나 변형됐다는 얘기다. 한 세기가 훨씬 넘은 저자의 신랄한 은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몸을 덥히고 수프를 끓일 연료를 구하기 위해 방바닥, 벽, 문, 창틀을 모조리 뜯어내고 있다.” 2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한국의 토종](3) 삽살개·진돗개·동경이

    [한국의 토종](3) 삽살개·진돗개·동경이

    “개야 개야 삽살개야, 너에게 밥을 줄 때 먹기 싫어 너를 줬냐. 윗집 총각 오시거든 짖지 마라 너를 줬지.” 연인들의 은밀한 사랑놀음이 개 짖는 소리에 들통 날까 조바심을 내는 내용의 전래민요의 한 소절이다. 삽살개를 비롯해 진돗개, 동경이 등 토종개 이야기는 옛 민요나 시조·민화 등에 종종 등장한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충견(忠犬)이던 삽살개가 군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일본 사찰의 수호신 동물석상인 ‘고마이누´(高麗개)도 이 땅에서 건너간 ‘삽살개´가 뿌리라고 한다. 온몸에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 눈과 귀를 덮은 긴 털이 야성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이며 ‘살(煞)´은 액운을 의미하니, 삽살개란 액운을 물리치는 개라는 뜻이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삽살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는 게 한국일(41) 한국삽살개보존협회 육종연구소장의 말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총독부 산하에 ‘조선원피주식회사´를 세우고 군용 모피로 견피(犬皮)를 연간 10만장에서 많게는 50만장까지 수집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전국의 개가 몰살하다시피 했다는 것. 한 소장은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1992년부터 삽살개의 체계적인 혈통관리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오랜기간 우리 풍토에 적응해온 삽살개는 우리와 정서적으로 매우 잘 통하며 질병에도 강하고, 주의력이 깊고 복종심이 뛰어나다. 최근 애완견을 이용한 정서장애 치료법이 유행인데 삽살개가 좋은 치료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애완견치고는 다소 몸집이 큰 게 흠이어서 삽살개를 작게 만드는 육종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한 소장의 주장이다. 삽살개와 자웅을 겨루는, 또 하나의 명견인 진돗개. 진돗개는 섬이라는 ‘진도´의 특수성 때문에 순수 혈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 평야와 산야지대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진도. 그곳에서 노루, 토끼, 너구리 등을 사냥하며 승부근성 및 민첩성을 발달시켜온 대표적인 토종견이다. 진돗개축산사업소는 진돗개를 세계적인 명견으로 우뚝 서게 하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우수 혈통을 얻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남 진도군이 진돗개 혈통 보존과 보호육성을 위해 설립한 이곳에서 현재 18명의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윤한성(50) 소장은 “주인에게는 한없이 순하지만, 위험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을 갖췄다.”며 특히 멀리 대전까지 팔려 갔다가 진도의 주인에게로 돌아온 ‘백구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경이적인 귀소본능까지 갖췄다고 칭찬했다. 냄새가 거의 없는 청결한 개이기도 하다. 진도군은 2005년 세계 최고 권위의 개 등록기관인 영국의 케넬클럽(KC)에 진돗개를 등록시켰다. 한국에도 고유 품종의 국견(國犬)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동경이(東京犬)는 숨겨진 토종견이다. 조선 순종 때 발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동경(경주를 말함)에 꼬리가 없거나 이상한 개가 많았다. 그래서 이들을 동경견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한때는 꼬리가 잘린 개거나 돌연변이로 취급 받았다. 그러던 동경이가 최석규(51) 서라벌대학 동경이보전연구소 소장에 의해 천연기념물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최 소장은 “동경이가 토종개 가운데 문헌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개”라면서 “주인과 함께 있으면 낯선 사람에게 절대 짖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고 칭찬했다. 이어 “우리의 중요한 생물자원인 동경이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와 육종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근본도 알 수 없는 수입견들이 국내 애완견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견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개량한 작출견(作出犬)인 데 비해, 우리의 토종개는 우리의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산 그대로다. 최근 멸종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토종개들이 DNA 지문법이나 혈청분석법, 역사적인 고찰 등을 통해 복원, 육성되고 있다. 우수 토종견을 보급하는 일은 새로운 국가산업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잃어버린 고향의 마음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사진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결혼이주 여성 한국귀화 기간 단축해야

    결혼이주 여성 한국귀화 기간 단축해야

    “한국국적 취득이 늦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가 3번 유산을 했습니다. 아내는 국적을 얻지 못해 추방될까봐 잠을 못 자는 등 걱정을 태산같이 합니다.” ●근년 들어 신청 급증… 추방 걱정에 유산까지 지난 2004년 5월 황의구(41·회사원·경북 구미시 상모동)씨와 결혼한 진향란(36·중국인)씨는 오랫동안 이같은 불안속에서 살고 있다. 진씨는 2006년 4월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에 한국국적 취득신청을 했지만 2년 가까이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3년 전 김진만(39·회사원·경북 구미시 황상동)씨와 결혼한 장옥미(32·중국인)씨도 장기간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비슷한 처지에 있다. 이 부부는 2004년 12월 결혼해 이듬해 8월 아이를 출산했다. 장씨는 지난해 3월 국적 취득을 신청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여성의 국적 취득 민원처리 기간이 최장 2년(국내 의무 거주 2년을 포함하면 4년)까지 걸리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다국적 시대를 맞아 국적 취득 기간을 단축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관련 부서 인력 충원도 절실하다. 16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결혼해 국내로 이주한 해외여성 등의 최근 3년간(2005∼2007년) 국적 취득 민원 신청 건수는 3만 5000건이다. 우리 사회가 다국적 사회로 바뀌면서 급증 추세다. 연도별로는 2005년 7826명,2006년 1만 2581명,2007년 1만 3908명 등이다. ●8명뿐인 법무부 전담인원 확충·절차 간소화 시급 그러나 이들의 민원 업무를 전담하는 법무부의 인력이 8명에 불과한 데다 국적 취득 요건·절차도 까다로워 민원 처리가 늦어지면서 유산 등 파생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들은 별도로 접수된 4만 197건의 귀화 및 국적 회복 민원도 함께 처리하고 있어 사실상 업무 마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법상 혼인귀화(간이귀화) 후 국내로 이주하면 ▲국내에 2년 이상 주소를 두거나 ▲혼인 후 3년 경과 또는 혼인 상태로 국내에 1년 이상 계속 주소를 두거나 ▲출생한 미성년자를 양육 중이거나 또는 양육해야 하는 등의 요건을 갖춰야 국적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귀화자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자녀유무 점검 등 1개월∼1년)의 서류, 현장 조사와 법무부 국적난민과(8∼10개월)의 검토·심사 기간 등을 합치면 국적 취득에 1년2개월∼2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재조사가 필요하면 3∼4개월이 더 걸린다. 결국 유자녀인 경우 1년2개월, 무자녀는 2년 정도 소요된다.‘국내 거주기간’ 등을 감안하면 최장 4년 걸리는 경우도 나온다. 중국 조선족 여성이 국제결혼으로 들어왔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는 인원이 많지 않아 국적 취득까지 6개월∼1년 정도 걸렸다. 이 때문에 해외이주 결혼여성들은 국적 취득 때까지 매년 ‘외국인 등록증’을 갱신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 남편들이 불복종 등을 이유로 등록증 갱신에 필요한 신원보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배우자가 신원보증 거부하면 추방 당해 구미시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 장흔성(35) 센터장은 “상당수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등록증 갱신시 필요한 신원 보증을 무기로 외국인 아내들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실정”이라면서 “심한 구박과 폭력 등 심각한 인권 유린마저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한국인 남편들이 국적 취득 신청 이후 등록증 갱신때 신원보증을 서 주지 않아 도중에 국외로 추방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신분으로 상당기간 취업을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데다 참정권이 없어 주권 행사도 못하는 등 각종 문제도 도출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국적난민과 관계자는 “혼인 귀화자들의 국적 취득 문의와 신청이 쇄도하고 있으나 일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민원처리 지연으로 민원이 또 다른 민원까지 낳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자체 및 다국적 가정 관련단체 관계자들은 “우리 사회가 다국적 사회로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관련 민원처리 기간을 6개월 정도로 대폭 단축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결혼이주 여성 한국귀화 기간 단축해야

    결혼이주 여성 한국귀화 기간 단축해야

    “한국국적 취득이 늦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가 3번 유산을 했습니다. 아내는 국적을 얻지 못해 추방될까봐 잠을 못 자는 등 걱정을 태산같이 합니다.” ●근년 들어 신청 급증… 추방 걱정에 유산까지 지난 2004년 5월 황의구(41·회사원·경북 구미시 상모동)씨와 결혼한 진향란(36·중국인)씨는 오랫동안 이같은 불안속에서 살고 있다. 진씨는 2006년 4월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에 한국국적 취득신청을 했지만 2년 가까이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3년 전 김진만(39·회사원·경북 구미시 황상동)씨와 결혼한 장옥미(32·중국인)씨도 장기간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비슷한 처지에 있다. 이 부부는 2004년 12월 결혼해 이듬해 8월 아이를 출산했다. 장씨는 지난해 3월 국적 취득을 신청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여성의 국적 취득 민원처리 기간이 최장 2년(국내 의무 거주 2년을 포함하면 4년)까지 걸리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다국적 시대를 맞아 국적 취득 기간을 단축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관련 부서 인력 충원도 절실하다. 16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결혼해 국내로 이주한 해외여성 등의 최근 3년간(2005∼2007년) 국적 취득 민원 신청 건수는 3만 5000건이다. 우리 사회가 다국적 사회로 바뀌면서 급증 추세다. 연도별로는 2005년 7826명,2006년 1만 2581명,2007년 1만 3908명 등이다. ●8명뿐인 법무부 전담인원 확충·절차 간소화 시급 그러나 이들의 민원 업무를 전담하는 법무부의 인력이 8명에 불과한 데다 국적 취득 요건·절차도 까다로워 민원 처리가 늦어지면서 유산 등 파생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들은 별도로 접수된 4만 197건의 귀화 및 국적 회복 민원도 함께 처리하고 있어 사실상 업무 마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법에 혼인귀화(간이귀화) 후 국내로 이주하면 ▲국내에 2년 이상 주소를 두거나 ▲혼인 후 3년 경과 또는 혼인 상태로 국내에 1년 이상 계속 주소를 두거나 ▲출생한 미성년자를 양육 중이거나 또는 양육해야 하는 등의 요건을 갖춰야 국적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귀화자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자녀유무 점검 등 1개월∼1년)의 서류, 현장 조사와 법무부 국적난민과(8∼10개월)의 검토·심사 기간 등을 합치면 국적 취득에 1년2개월∼2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재조사가 필요하면 3∼4개월이 더 걸린다. 결국 유자녀인 경우 1년2개월, 무자녀는 2년 정도 걸린다.‘국내 거주기간’ 등을 감안하면 최장 4년 걸리는 경우도 나온다. 중국 조선족 여성이 국제결혼으로 들어왔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는 인원이 많지 않아 국적 취득까지 6개월∼1년 정도 걸렸다. 이 때문에 해외이주 결혼여성들은 국적 취득 때까지 매년 ‘외국인 등록증’을 갱신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 남편들이 불복종 등을 이유로 등록증 갱신에 필요한 신원보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배우자가 신원보증 거부하면 추방 당해 구미시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 장흔성(35) 센터장은 “상당수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등록증 갱신시 필요한 신원 보증을 무기로 외국인 아내들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실정”이라면서 “심한 구박과 폭력 등 심각한 인권 유린마저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한국인 남편들이 국적 취득 신청 이후 등록증 갱신때 신원보증을 서 주지 않아 도중에 국외로 추방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신분으로 상당기간 취업을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데다 참정권이 없어 주권 행사도 못하는 등 각종 문제도 도출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국적난민과 관계자는 “혼인 귀화자들의 국적 취득 문의와 신청이 쇄도하고 있으나 일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민원처리 지연으로 민원이 또 다른 민원까지 낳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자체 및 다국적·문화가정 관련단체 관계자들은 “우리 사회가 다국적 사회로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관련 민원처리 기간을 6개월 정도로 대폭 단축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20&30]사내 왕따·은따들의 이야기

    [20&30]사내 왕따·은따들의 이야기

    ■그들이 ‘왕따’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왕따 자처한 ‘처세의 달인´들 한 시중은행에 다니는 정모(29·여)씨는 40대 중반의 영업팀장만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직장 동료들은 그를 ‘왕미남´이라고 부른다.‘왕에 미친 남자´의 줄임말이다. 골프장에서 상사가 그날따라 골프공이 잘 맞지 않자 “그게 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라고 했다는 팀장의 일화는 전설이다. 횡단보도에서 상사와 차 사이에 서서 손으로 막으면서 행여나 상사가 다칠까봐 신경쓰는 모습이 부하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결국 그 영업팀장은 우리에겐 수치스러운 존재로 낙인 찍혀 스스로 왕따가 됐습니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30)씨의 소속 부장도 비슷한 케이스로 왕따가 됐다. 박씨의 부장은 ‘처세의 달인´으로 통한다. 윗선에서 입김을 불면 마치 태풍이 분 듯 행동한다. 부하 직원들의 얘기보단 윗선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 더 유리할지부터 머리를 굴려 판단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부하 직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때문에 부하 직원들은 부장과의 식사 자리는 웬만하면 피한다.“점심 시간이 되면 사내 메신저로 대충 약속을 정한 뒤 마치 각자 약속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흩어지죠. 부장도 그걸 알까 모르겠네요.” 김모(29·여)씨가 다니는 한 외국계 회사의 만년 40대 과장은 정반대의 이유로 왕따가 됐다. 그는 외국계 회사 근무의 필수인 영어 능력이 모자란다. 게다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필수적인 친화력과 유머도 없다. 때문에 직원들은 과장과 밥도 먹으려 하지 않고 근무와 관련된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슬픈 건 그 과장 역시 그 사실을 안다는 것.“한 번은 ‘나도 왕따 당하고 능력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이들 등록금 때문에 회사 끈질기게 다녀야 한다.´고 하더군요. 동정심이 일었는데 막상 또 같이 있으면 짜증이 샘솟아요.” 회사원 류모(27·여)씨는 한 살 많은 여선배가 ‘은따(은근히 따돌림)´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 선배는 상사들에게는 예의 바르고 늘 상냥해 능력에 걸맞지 않은 큰 일을 따내는 유형이다. 하지만 능력이 모자라다 보니 위에서 압박을 받은 만큼 아래로 토해낸다.“후배들을 압박한 뒤 기대대로 못해 오면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고 후배의 후배가 있는 자리에서도 짜증을 내곤 해서 다들 몸서리를 쳤죠. 결국 저희 동기 10여명이 모두 선배를 메신저에서 삭제했고 선배의 전화가 와도 다 통화 상태가 좋지 않은 척하며 전화를 잘 받지 않아요.” ●종교에 심취해 회사업무 나몰라라 공기업에 다니는 윤모(31)씨의 부서 차장은 종교 때문에 왕따를 당한 경우다. 한 소수 종교에 심취한 차장은 가끔 지하 복도에서 이유없이 어슬렁거리고 혼자 중얼거리며 논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해 어떤 동료들은 “변태 같다.”며 피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내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려 하지 않아 완전히 눈 밖에 났다. 업무 능력도 뛰어나지 않다 보니 결국 차장의 자리는 자연스레 ‘섬´이 됐다.“다들 다른 부서로 갔으면 하고 바라는데, 다른 부서에서도 서로 받지 않겠다고 해요. 그냥 어쩔 수 없이 왕따시키는 거죠.”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0)씨 회사의 한 과장은 학력과 경력 콤플렉스 때문에 결국 왕따로 발목 잡힌 경우다. 유명대 출신이 즐비한 대기업에서 과장은 예체능 계열 대학을 나왔다는 점에서 일단 소외됐다. 게다가 회사에서 추진하던 신규 사업이 애매모호하게 사라지고 그 사업을 위해 채용됐던 사람들이 고용승계되면서 한 자리를 겨우 차지하게 됐다. 회의를 해도 업무 파악이 느린 점이 학력 탓이 됐다. 대리급 직원들이 깔보고 대들기도 했고 시킨 일을 태업하면서 상사에게 야단맞게 만들기까지 했다.“과장은 상사에게 야단맞으면서도 그저 ‘예, 예.´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29)씨 부서의 전 과장도 왕따를 당하다 지난해 초 결국 지방으로 인사이동 조치됐다. 그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으며 동료들의 기념일이나 행사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늘 미묘한 분위기에서 눈치 없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바람에 결국 눈 밖에 났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어깨를 툭툭 치고 다니며 친한 척하는 바람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났고, 일찍 결혼한 상사를 두곤 “사고 쳐서 일찍 했대.”라며 민감한 소문을 스스로 퍼뜨리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직원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게 됐고 윗선에도 보고가 되는 바람에 전출 조치를 당하고 말았다. ●여성들의 잔인한 복수, 은따 여성들이 많은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있다. 간호사 박모(27·여)씨가 다니는 대학병원은 살벌하다. 잘난 척하는 동료 간호사 한 명을 철저하게 왕따시켰다. 그 간호사는 늘 누구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때문에 어떤 동료는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나한텐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모두가 그 간호사에게 등돌리고 서서 “저리 가라.”고 떠밀어도 그 간호사는 “저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거죠.”라며 투정을 부려 도리어 화를 돋우고 만다. 결국 지역 병원으로 이동하게 됐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모두 몸서리를 치고 있다.“응급의학과에서 초동 처리를 할 때 빠른 속도가 필요한데 그 간호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뭐라고 하면 오히려 어른이 아이를 달래는 듯 대꾸하는 거예요. 일을 못하면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라도 하든지, 원.” 외국인 직원이기 때문에 왕따당한 경우도 있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모(27·여)씨는 동료들과 함께 중국인 신입사원 주모(29)씨를 따돌림시켰다. 한국말이 서툰 주씨는 입사하자마자 선배들에게 반말을 하며 상사처럼 ‘명령 하달´을 해 “싸가지가 없다.”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정서도 맞지 않는 데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한 주씨는 결국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하지만 주씨는 ‘보복´을 잊지 않았다.“회사를 그만두면서 사장에게 그동안 괴롭혔던 사람들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낱낱이 폭로하고 나가 한동안 회사 사람들이 곤욕을 치렀죠.” ●“내가 설마 왕따일 줄은…” 직장인 김모(26)씨는 왕따가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랜 준비 끝에 원하던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째.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무조건 열심히 했다. 상사 말에는 절대 복종하고, 시키지 않는 야근도 자청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일까, 상사는 그런 그를 예쁘게 봐주지 않았다. 입사 동기와 자신을 비교하며 “일을 그렇게밖에 못하나.”라고 핀잔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상사가 입사 동기를 편애하는 것이려니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퇴근을 하려는데 상사가 뒤에다 대고 “OO씨는 술 잘 안 마시지. 그럼 우리끼리 회식간다.”고 선언했던 것. 상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료들은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는 자신만 빼고 부서 사람들이 회식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제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성격이 밝고 싹싹해서 어디서나 예쁨을 받았거든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이재훈 황비웅기자 nomad@seoul.co.kr ■“잘 어울리지 못해서 따돌림 당한적 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3명은 사내에서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20∼30대 직장인 953명에게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30.7%가 ‘있다.’고 답했다. 왕따를 당한 이유로는 23.5%가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서’를 꼽았다. 다음으로 ‘이유를 모르겠다.’(14.0%),‘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편이라서’(12.3%),‘업무상 실수를 많이 해서’(10.2%),‘이상한 소문이 퍼져서’(9.9%) 순이었다. 왕따를 당한 방법(복수응답)으로는 ‘대화 거부’가 45.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업무 비협조’(37.9%),‘인사·말 등 무시’(31.1%),‘모욕적인 언행’(21.5%),‘허위소문 유포’(20.8%),‘혼자 식사’(19.8%) 등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왕따를 당할까. 왕따를 당하는 직원의 유형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2.2%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31.9%),‘독단적인 사람’(31.6%),‘잘난 척하는 사람’ (26.1%),‘책임회피를 잘하는 사람’ (25.0%) 등이 있었다. ‘왕따를 당한 뒤 어떤 점이 달라졌나.’(복수응답)라는 물음에는 41.6%가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게 됐다.’고 답했다. 또 35.5%가 ‘애사심이 떨어졌다.’,32.8%가 ‘소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라고 답했으며,‘우울증을 겪었다.’고 답한 사람도 32.4%나 됐다. ‘왕따를 당한 뒤 어떻게 대응했나.’라는 질문에 43.4%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22.2%는 ‘고치려고 노력했다.’고 답한 반면 13%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고 ‘그 자리에서 반발했다.’고 답한 비율은 4.1%에 그쳤다. 이재훈 황비웅기자 nomad@seoul.co.kr
  • 광기의 해석 / 마크 에드문슨 지음

    광기의 해석 / 마크 에드문슨 지음

    1909년.53세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세상에 내놓으며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정신분석학자로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빈털터리 청년인 20세의 아돌프 히틀러(큰 사진)는 국립미술학교에 두 번 낙방한 후 외로움과 혼란에 빠져 빈 거리를 헤맸다.1938년.1월과 2월 연이은 암 수술로 피폐해진 82세의 늙은 프로이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빈을 버리고 런던으로 망명했고,4년 전 총통에 등극한 49세의 히틀러는 ‘하나의 게르만’을 외치며 빈을 침공했다. ●프로이트·히틀러 서로 인정하며 증오 ‘광기의 해석-프로이트 최후의 2년’(마크 에드문슨 지음, 송정은 옮김, 추수밭 펴냄)은 1909년과 1938년 빈이란 무대에서 기이하게 조우했던 두 사람의 인생을 되짚는다. 책은 프로이트의 전기다. 삶 전체가 아닌 프로이트 최후의 2년에만 초점을 맞췄다. 당시는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나치즘의 발흥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기로, 책은 일면 히틀러 전기의 성격도 띤다. 프로이트와 히틀러는 당대의 핵심 인물로 서로를 인정했고 또 증오했다. 프로이트는 히틀러를 가부장적 독재자라며 위험시했고, 히틀러는 프로이트의 학문사상이 나치즘을 위협한다며 위험시했다. 미국 버지니아대 영문과 교수인 저자는 프로이트가 나치 통치 하 빈에서 탈출해 런던에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2년의 과정을 횡축으로 놓고, 나날이 흉폭해지는 히틀러의 통치전략을 종축으로 세운다. 종횡으로 교차하는 두 사람의 삶을 통해 저자가 부각시키는 것은 ‘총통 히틀러’를 존재케 한 대중 심리의 정체와 이를 분석하는 프로이트의 문제의식이다. 히틀러의 정치 이력이 막 시작될 무렵인 1921년, 프로이트는 특정 지도자에게 열광하는 군중 행동을 연구한 책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을 내놨다. 이들 두고 저자는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는 대중의 성향에 프로이트가 일찌감치 주목해 왔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책에서 “지도자의 지적인 행동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강력하고 독립적”이라면서 “그의 의지는 타인에 의해 보강될 필요가 없다.”고 썼다. 저자는 “다른 이들이 의심하며 흔들릴 때도 지도자는 항상 자신의 비전이 단 하나의 진실한 비전이란 사실을 확신한다.”며 프로이트가 향후 히틀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행태를 예견했다고 평가한다. 타협을 모르는 강력한 지도자에게 복종하고 싶어 하는 군중 심리가 ‘괴물 히틀러’를 필연적으로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 기다린 군중 권력자의 가학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이나 지배받고 복종하기를 원하는 대중의 심리는 인간성의 양면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파괴적 권력에 중독되기 쉽고, 겉으로 보기엔 가장 문명화된 사람들이 속으로는 폭력과 강간, 약탈에 대한 환상을 키워 왔다고 봤다. ‘군중이 협력 혹은 주도한 파시즘’ 개념은 독일을 텍스트로 한 해석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도 ‘우리 안의 파시즘’‘합의독재’‘대중독재’ 등의 용어를 빌려 대중을 독재의 피해자가 아닌 조력자로 위치시키는 학문적 시도가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로이트의 주장을 충실하게 따르는 저자 또한 국제적 대립과 전쟁위기의 격화, 대량적 실업과 공황, 기존 정치 세력의 무능과 부패 등 파시즘을 대두케 하는 외적 요인들은 언급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인간 심성의 산물이기에 앞서 정치·사회·경제적 산물이다.1만 3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여성&남성]‘양성성’에 대한 단상

    [여성&남성]‘양성성’에 대한 단상

    “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선머슴 같아?”, “남자가 계집애처럼 굴어서 되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들은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허무는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성(性)의 경계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양성성(兩性性)이 유행을 타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도 꽤나 부드러워졌다. 심지어 양성성을 ‘미덕´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동성들이 바라보는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의 생각은 어떨까. 이들에 대한 여와 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숭없는 그녀’ 멋진Girl ● “남성적인 여자 보면 지레 반감” 대학생 김모(23·여)씨는 일명 ‘여고-여대 라인´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성 공동체에 길들여지면서 온갖 유형의 여성들을 다 만나봤다. 여성성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친구부터 역으로 남자 같은 여자들까지 못본 사람들이 없다. 이 가운데 김씨는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짧은 커트머리에 굵은 목소리, 행동에 터프함이 묻어나는 여자 아이들을 볼 때 왠지 어색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남자같이 행동하는 아이들은 대개 레즈비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남성적인 여자 아이들을 보면 지레 반감이 들더군요. 왜 자신의 여성성을 굳이 죽여 가며 남자인 양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괜히 멋있는 척 구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김씨는 최근 드라마에서 멋있게 비춰지는 ‘양성형 인간´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실제는 이와 크게 다르다고 말한다. “남자 같은 여자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나온 은찬이(윤은혜 역)와 같다면 또 모르죠. 하지만 은찬이는 드라마 속 미화된 캐릭터일 뿐입니다. 전 정말 남자같이 행동하는 여자들이 이해가 안 돼요. 반감이 드는 게 사실이고요.” ● “여성성 무시하는 태도 이해 못해” 직장인 최모(25·여)씨도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최씨는 이들이 여성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씨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생겨났다. “회사에 남자 같은 여자 동료가 있는데 앙숙이에요. 그 동료는 저를 ‘과도하게 여성스러운 말투를 쓴다. ´며 비꼬는 투로 대합니다. 치마를 입고 온 날은 치마를 입었다고 비꼬고, 화장을 좀 진하게 한 날은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장 더 보라고 충고해요.” 이럴 때마다 최씨는 어이가 없다. 이 때문에 회사 내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왜 사사건건 제게 시비를 걸까요. 자신과 다르다고 매사 지적하는 그 동료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편견일는지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남성적인 여자들은 본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스러운 여자들은 생각이 없다든지 우습다든지 약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해요. 저도 그런 여자 동기를 볼 때마다 괜히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상대하기도 싫어요.” 대학원생 박모(24·여)씨도 남성스러운 여성을 볼 때마다 ‘억지스럽다. ´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엔 남자 같은 여자를 보면 쿨(Cool)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씨는 대학생이 된 뒤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같은 과 친구 중 유난히 남자같이 구는 여자 친구의 행동 때문이었다. 가끔 도를 넘는 행동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렸다는 박씨의 친구. 친구의 억지스러운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많았다. “1학년 때 대성리로 MT를 갔었어요. 장을 봐온 짐을 옮기는데 좀 무겁더라고요. 20명 정도 간 MT이니 얼마나 먹을 것이 많았겠어요. 약간 힘든 척을 했더니 대놓고 제게 욕을 하더라고요. 어이가 없었죠. 그러면서 보란 듯이 무리하게 많은 짐을 들고 몇 걸음 걸어가더군요. 제게 힘을 과시한 거죠. 몇분 뒤 힘이 부쳤는지 들고 있던 짐을 모두 땅에 내동댕이쳤어요. 죄 없는 계란만 다 깨뜨렸지 뭐예요.” ● “내숭女보다 터프女가 더 멋져요.” 직장인 노모(25·여)씨는 남자 같은 여자를 보면 개성 있어 보여 한편으로는 부럽다. 또 그런 그녀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노씨의 경우 보통 여자라고 하면 다소곳하고 머리가 긴 고정관념의 여성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반면 남성성을 지닌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활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미도 있어 보이고 남과 다른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남자 같은 여자들이 건강해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활발해 보이고 성격도 화끈해 보여요. 이런 점에서 이들이 무척 긍정적으로 보여요. 모든 여성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긴 생머리에 다소곳한 성격을 지녔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남자 같은 여자. 뭔가 개성 있어 보이고 독특하지 않나요?” 대학생 이모(22·여)씨는 자칭 ‘남성미 넘치는 여성´이다. 남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 말하든 개의치 않는다.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의 내숭이 너무 싫었다. 별거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떨고 힘이 넘치면서도 약한 척하는 여성들의 내숭이 싫었다. 무거운 짐도 일부러 더 들고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사실 남자 같은 제 자신에 대해 불만은 없어요. 주위 친구들도 많이 이해해 줘요. 여고를 나왔는데 학교 다닐 때 가끔 좋아한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외모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이씨는 여성보단 남성 쪽에 가깝다.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스타일이 어떠하냐에 따라 몸가짐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급적 치마보다는 바지, 긴 머리보다는 짧은 컷 머리를 선호한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데 과 특성상 남자들이 많아요. 자연스레 어울려서 지내죠. 선배들에게 형이라고도 부르고요. 전 여성스러운 건 체질적으로 싫어해요. 그냥 털털하고 활발한 게 좋아요.” 직장인 강모(23·여)씨는 남자 같은 여자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미가 나는 여성은 괜히 당당해 보이고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왜소한 몸에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자신과 대비돼 그저 부러울 뿐이다. 남성미 넘치는 여성들은 리더십도 있어 보인다. “왠지 그녀들의 남성성이 멋지지 않나요? 요즘은 양성성이 대세잖아요. 여성적인 측면과 남성적인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면 분명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제 주변에도 남성적인 친구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요. 남성적인 여자에 대해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옳지 않죠.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인가요?”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섬세한 감수성’ 男부럽군 ● “심리적 거부감 어쩔 수 없어” “여자 같은 남자들 보고 있으면 내가 다 민망해요. 아무리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해도 심리적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대학생 김모(26)씨는 여자 같은 남자들을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가 어렵다. 경북 경주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김씨는 이런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비록 대학에서 여성학 수업도 들어보고 ‘오픈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도 해 봤지만 아직은 쉽게 다가오지가 않는다. “아직 남자는 남자다워야 보기 좋아요. 남자가 여자처럼 굴면 왠지 뭔가 비정상적인 것 같고 그래서 멀리하게 돼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사실 그런 친구들 있으면 많이 놀려대기도 하잖아요.” 직장인 김모(27)씨도 마찬가지. 김씨도 여성스런 말투와 표정을 쓰고 슬픈 영화에 찔끔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을 보면 ‘쟤 왜 저래.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제 아무리 남녀의 역할이 불분명해지고 있다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어머´, ‘웬일이니?´ 같은 여성적인 표현을 쓰는 남자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사회가 변하고는 있지만 상대에게 거부감을 준다면 본인도 노력해 고쳐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특히 남성들이 많이 모인 집단에서는 ‘여자 같은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강하다. 남중(男中)과 남고(男高) 출신에 현역으로 군복무까지 마친 이모(26)씨는 ‘남자들의 소굴´을 경험하며 이들에 대한 적대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여자 같은 남자애가 한 명 있었는데 모두 그 아이 흉내를 내기도 하고 놀림도 심했어요. ‘게이´라는 소문도 파다했고요. 나중에 그 아이와 진지하게 얘기를 해봤는데 상처를 꽤나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여자처럼 행동하는 구성원에 대한 언어 폭력은 정말 대단했다고 말한다. ‘이딴 녀석이 어떻게 군대를 들어왔냐. ´는 말부터 심한 욕설, 심지어 성희롱까지 벌어졌다. “군대란 조직이 원래 ‘남성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여자 같은 행동과 감수성을 지닌 남자들이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 양성형 남성이 여자에게 인기가 좋다? 그러나 모든 남성들이 이들을 혐오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갖추지 못한 ‘여성적 섬세함´이나 ‘부드러움´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학원생 권모(27)씨에게는 친한 친구 가운데 ‘여자 같은 남자´가 있다. ‘어머!´라는 말투를 연발해 가끔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말투와 섬세한 감수성이 부럽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더라고요. 물론 여자들도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그 친구의 여성적인 말투와 행동, 그리고 부드러운 감수성을 좋게 보는 여자들이 많아요. 왠지 터프가이가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요즘엔 이런 ‘양성형 인간´의 인기가 부쩍 치솟고 있는 느낌입니다.” 평소 무뚝뚝한 말투로 스스로를 ‘여자에게 인기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권씨는 이런 이유로 이 친구의 ‘여성스러움´을 흉내내고 있다. 보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고 해맑은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자칭 ‘양성성 찬양론자´인 대학원생 김모(27)씨는 ‘남자다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남자답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외적으로는 근육질 몸매에 큰 키, 내적으로는 통 크고 결단력도 있으며 여자를 휘어잡는 약간의 권위를 가진 사람, 또 윗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줄 알는 ‘시원스러움´과 ‘넉살´, 이런 것들로 종합되더군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과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일까요.” 김씨는 사람들이 좋게 보고 있는 ‘남성성´에 대해 불만이 많다. ‘남자답다. ´라는 개념이 ‘멋있다. ´라는 말과 등식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멋있지 않은´ 인간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 사람 정말 남자야. ´라고 말할 때 어떤 사람인지를 관심있게 보면 비민주적이고 가부장적인 인간형인 경우가 많아요. 과거부터 남성스러움에 환호를 보냈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온 듯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권하는 ‘민주적 인간형´과는 충분한 차이가 있습니다. 양성성은 이러한 개념의 한계를 극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 양성성은 남녀평등의 ‘밑거름´ 본인 스스로 ‘여자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직장인 김모(27)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별명이 ‘여자´였다. 놀림도 많이 받았고 이 때문에 상처도 컸다. 김씨는 이때 ‘안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민감한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어졌기 때문이다.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태권도도 배웠고 욕설도 해대며 서서히 ‘남자다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춘기가 지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시대도 많이 변했죠.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양성성´이란 말은 없었으니까요.” 김씨는 과거 왜곡된 남성성에 매몰된 채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 노력했던 점이 후회스럽다. 남성과 여성의 장점을 고루 갖춘 사람으로 거듭날 기회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이 양성화되고 있습니다. 성역할도 많이 깨지고 있고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을 규정하는 제약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죠. 그러나 아직도 그 잔재는 남아 있어요. 특히 남성이 많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여성적인 남성´은 아직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군대가 대표적이죠. 특히 전통적으로 남성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여성성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고요. 따라서 양성성은 남녀평등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열린세상] 대통령 옆방엔 총리,장관임기는 5년으로/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열린세상] 대통령 옆방엔 총리,장관임기는 5년으로/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는 온전하게 성공한 이가 없다. 제일 괜찮다고 하는 이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정도다. 특히 희한한 것은 꽤 괜찮다고 생각되던 이들도 ‘그 놈의 청와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일단 이상해지더라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여기에서는 두 가지만 짚어 보겠다. 첫째는 대통령의 업무가 초인적으로 과중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으로서 그 권한이 입법권과 사법권을 제외한 모든 국정에 미친다. 연방대통령제 국가인 미국과 비교하면 연방대통령과 50개 주지사의 역할을 모두 떠맡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 모든 일을 챙길려면 몸뚱아리 하나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살 길은 무엇인가. 그 업무를 분산시키는 것이다.‘통반장’ 다 하려고 하다가 ‘죽’을 쑬 것이 아니라 요인들이 일을 적정수준으로 나누어 떠맡는 것이다. 둘째로는 대통령집무처 안에 언로가 뚫린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경호상 안전은 지켜져야 하지만 ‘인의 장벽’이 쳐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실제는 어떠했는가. 그곳에 상근하는 이들을 보면 대체로 대통령과 사심없이 이야기할 만한 인물은 없고 죄다 ‘비서 나부랭이’들뿐이었다. 비서란 어떤 존재들인가. 우선 대통령과의 지위적 격차가 너무 커서 무조건 복종적일 가능성이 큰 인물들이다. 다음에 더 큰 자리 하나 얻어 나가기 위해 잘 보이려 비위 맞추고 충성 경쟁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다른 것이 없다. 청와대 안에 비서 아닌 경륜있고 사심없는 인물도 몇몇 포진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이 소리, 저 소리를 거리낌없이 듣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두 가지만 제안하겠다. 첫째, 청와대 대통령 옆방에 국무총리를 들여 앉히라는 것이다. 총리는 어떤 직책인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에 관한 한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자리다(헌법 86조 2항). 총리의 가장 큰 임무는 대통령의 보좌업무인 것이다. 또 뒷부분에 나오는 행정 각부 통할업무도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명을 받아 하는 것이지 따로 떨어져 나와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착안점이 있다. 국가의 대소사를 논함에 있어서 맨먼저 논의해야 할 상대가 누구인가.‘비서 나부랭이’들인가. 총리인가. 총리쯤 되어야 허심탄회하게 쓴 소리, 단 소리를 모두 다 터놓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 한가지. 국무총리는 대통령 유고시 그 권한을 대행하게 되어 있다(헌법 71조). 따라서 그 승계예정자는 마땅히 인근에 위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 백악관에 대통령과 부통령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둘째, 행정 각부의 일은 장관들에게 몽땅 맡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에는 장관 위에 비서가 있고, 그 ‘비서 나부랭이’들이 장관들을 쥐고 흔들었다. 그래선 안된다. 행정은 어디까지나 장관 책임 아래 완전히 맡길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통반장’‘원맨쇼’를 면하고 그 분야의 ‘대통령 같은 장관’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장관은 5년짜리여야 한다. 도대체 이 나라는 장관들이 조금 알 만하면 파리 목숨처럼 갈아치우곤 했다. 장관, 그 까짓게 무엇이라고 장관하려고 줄을 서곤 했다.‘섀도 캐비닛’처럼 준비된 장관들, 매니페스토정책공약을 지켜낼 수 있는 장관들,5년짜리 대통령 같은 장관들을 임명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기를 권한다. 대통령은 총리와 장관을 잘 쓰고 가까이 해야 성공한다. 대통령은 어떤 존재인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존재다. 지휘자는 직접 연주를 하지 않는다. 대신 전체가 연주를 잘 할 수 있도록 실력을 기르게 하고 격려하고 통솔하는 일을 한다. 대통령 자리는 그런 자리다.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 탈레반 前사령관 만수르 체포

    지난해 7월19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23명의 납치사건 주모자인 만수르 다둘라 탈레반 전 최고사령관이 파키스탄에서 마침내 체포됐다. 이에 따라 한국인 인질 2명의 목숨을 빼앗고 남은 21명을 44일 동안 억류했던 희대의 인질극 전모가 밝혀질지 주목된다. 파키스탄 보안 당국은 11일 만수르 다둘라가 최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퀘타시의 그왈 이스마일카이 마을에서 보안군과의 총격전 끝에 다른 반군 5명과 함께 붙잡혔다고 밝혔다고 AP,AFP,BBC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만수르는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AP는 한때 만수르가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며 이후 부상이 심각해 위독하다고 전했다. 발루치스탄주의 경찰서장 사우드 고하르는 이날 AFP에 “만수르가 마을의 한 가옥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이 가옥을 급습한 결과 만수르와 함께 다른 5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미군의 공습 당시 숨진 탈레반 사령관 물라 다둘라의 동생인 만수르는 아프간 정부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레반에 의해 납치됐던 이탈리아 기자와 맞교환돼 지난해 5월 풀려났다. 그후 형에 이어 총사령관직에 오른 그는 아프간 정부와 나토군의 공격이 가장 극심한 헬만드주와 칸다하르주 등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탈레반의 강경 투쟁을 주도해왔다. 특히 만수르는 아프간 정부의 감옥에 수감돼 있는 탈레반 조직원들과 맞교환을 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외국인들은 무차별적으로 납치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한국인 납치극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는 당시 아프간과 한국정부는 물론 적신월사를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고 탈레반의 건재를 온 세상에 과시함으로써 탈레반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탈레반은 지난해 12월 만수르를 내쫓았다. 탈레반 최고지도자인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탈레반의 내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며 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만수르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불복 의사를 밝혀 탈레반 지도부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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