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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판 노예”… 다단계 피해 어머니의 절규

    “현대판 노예”… 다단계 피해 어머니의 절규

    무려 8년간이었다.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재학 중인 아들이 ‘다단계’에 빠져 가족을 속여온 것도, 업체에서 나올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며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도. 어머니 한모(56)씨는 최근 그 사실을 알고 억장이 무너졌다. 아들을 망가뜨린 불법 다단계 업체를 수사해 달라며 지난 5월 경찰서를 찾았다. 내성적이고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아들 김모(31)씨가 변한 것은 제대한 지 사흘 만인 2003년의 어느 날. 군대 고참을 만난 뒤 “돈을 벌겠다.”며 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전에서 직장을 구했다며 방값으로 1000만원이 넘는 돈만 받아 갔다. 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엔 우수사원으로 뽑혀 영국으로 연수를 떠난다며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생활비를 부쳤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복학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등록금이 필요하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학비가 필요하다.’는 아들의 말만 믿고 부모는 8년간 5000만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올 초 졸업 뒤 호주에 갔다던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한씨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계좌와 인터넷 쇼핑 주소지 등을 확인한 끝에 아들이 그동안 서울 송파구 인근에서 머물렀던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내 한씨는 지난 5월 서울 오금동의 다단계 업체 반지하 합숙소에서 아들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이미 10여명의 남녀가 혼숙을 하며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들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며 부모를 거부했다. 한씨는 “아들이 업체 말에만 복종하는 ‘현대판 노예’가 됐다.”면서 “어리숙하고 정 많은 사회 초년병들을 세뇌시켜 바보로 만들었다.”며 울먹였다. 경찰도 청년층을 유혹하는 불법 다단계 범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송파경찰서는 거여동·마천동 일대 다단계 업체에서 5000명의 판매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보고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미 지난달 21일 무허가 다단계 판매업체 대표 A씨 등 피의자 25명을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경찰청은 1일부터 9월까지를 불법 다단계 특별단속 기간으로 정했다. 경찰이 파악한 이들 업체 수법 중 대표적인 것이 ‘8일 요법’이다. 조사 결과 다단계 업체들은 처음 1~3일간은 피해자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지인을 동원해 비위를 맞추고, 4일째엔 잠을 재우지 않거나 고소득을 미끼로 현혹해 가입 승낙을 얻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피해자가 가입 결정을 하면 5~8일째 되는 날 제2금융권 등을 통해 물품구입, 방값 명목으로 돈을 대출받게 만들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8일이 지난 뒤부터는 군대 동기나 선후배, 친구를 유인하거나 자사의 물건을 비싼값에 사들이게 하는 등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을 유인할 때마다 통상 150만원의 수당을 줬다. 송파서 관계자는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은 처벌이 강하지 않아 재발이 우려된다.”면서 “취업 재수생이나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대학생들은 불법 다단계 업체가 사실상 사기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김정은 대장동지에 충성”… 조총련 공식석상 첫 언급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해 가며 충성을 다짐하는 등 우상화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일본 내 단체인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에 따르면 허종만 조총련 책임부의장은 지난 9일 열린 ‘총련 중앙위원회 제22기 제2차 회의’에서 “김정은 대장을 섬기며, 대장 복(福)을 향수하는 백두의 전통을 만대에 빛내고 대장의 영도에 복종하자.”고 발언했다. 이어 참석자들이 잇따라 일어나 “김정은의 위대성 교양을 추진하자.”는 등 지지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RENK는 “배진구 조총련 부의장이 지난 6월 중순 방북했을 때 조선노동당으로부터 ‘김정은 사상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조총련이 내부 반발을 우려해 사상교육 대상을 중앙위원으로 한정하고, 허 부의장의 관련 발언을 기관지인 조선신보에 싣지 않는 등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병사간 명령·지시 엄중문책

    왜곡된 병영문화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분대장과 조장을 제외한 병사들 사이에 명령과 지시를 할 경우 엄중문책하라는 지시를 이번 주 중 전군에 내린다. 해병대 총기사건 등 최근 잇따른 군 내 사건·사고로 드러난 구타·가혹행위·집단 따돌림 등을 금지하는 병영생활 행동강령도 국방부 최고 행정규칙인 훈령으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 시행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19일 “국방부 장관 명의로 전군에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지시할 것”이라면서 “지시 형태의 공문은 유효기간이 2년으로 한시적이어서 앞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방부 훈령으로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의 지시에는 ▲병사 사이에 명령·지시를 한 경우 엄중 문책 ▲구타·가혹행위자는 엄중한 형사처벌과 징계 ▲집단 따돌림 등의 주모자와 적극 가담자 처벌 ▲병영생활 행동강령 위반 사실 인지시 신고 의무 ▲위반 신고자 비밀 보장과 피해자 보호조치 등의 위반자 처리지침을 포함하고 있다. 또 국방부가 준비 중인 행동강령에는 ▲지휘자(병 분대장, 조장 포함) 이외의 병(兵) 상호간은 명령·복종관계가 아니다 ▲병의 계급은 서열관계를 나타내며, 병 상호간에는 명령·지시를 할 수 없다 ▲구타, 가혹행위, 인격모독(폭언 모욕) 및 집단 따돌림, 성 군기 위반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금지한다는 등 세 가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행동강령이 2003년 만들어진 육군의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매우 비슷해 “군에 대한 안팎의 비난이 일자 급히 준비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육군 규정과 다른 점은 병 상호간은 명령 및 복종관계가 아니라는 내용 등을 새로 담아 병사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했다는 것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女종업원 시중드는 ‘하녀 카페’ 中서 인기

    최근 중국에 상륙한 이른바 ‘메이드 카페’가 성황이다. ‘메이드 카페’는 ‘하녀 카페’라고도 불리며 하녀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손님을 주인이나 왕처럼 떠 받드는 카페다. 상하이에 오픈한 한 메이드 카페는 최근 주말이면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북새통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메이드 카페 역시 여성 종업원이 일본에서 처럼 하녀복장에 리본을 하고 있으며 손님이 들어오면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응대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20세 전후의 여대생이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드로 일하는 한 여대생은 “메이드와 손님이 애니메이션 같은 공통된 화제가 있어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며 “이같은 편한 분위기가 인기 요인”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메이드 카페를 두고 현지 내 찬반 논란도 뜨겁다. 귀여운 외모와 하녀 복장을 한 젊은 아가씨의 ‘복종 서비스’ 가 ‘변태적’이라는 것이 주된 비판이다. 반대로 일부에서는 “소비자의 서비스 다양화에 대한 요구가 영업 형태로 나타났을 뿐 서비스 자체는 건전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나와 통일] (24)셰벤 前 통독 방위사령관

    [나와 통일] (24)셰벤 前 통독 방위사령관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한반도의 군대는 어떻게 될까. 이는 남북한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민감한 문제다. 21년 전 통일을 이룬 독일 역시 같은 고민에 빠졌었다.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되는 형태에서 동독 인민군은 서독연방군 ‘분데스베어’로 축소, 통합됐고 이 과정에서 정신적, 심리적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분데스베어’의 베르너 폰 셰벤 예비역 중장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독 군인들이 갖고 있었던 사상은 통일과정에서 ‘제2의 피부’처럼 벗겨 없어졌다.”면서 “한국에서의 상황이 독일처럼 전개될 경우 북한이 굴욕감이나 공감대 부족을 느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통일부와 베를린 자유대의 ‘독일의 통일·통합정책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셰벤과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동·서독 군대 통합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있었고, 7월 1일 동·서독의 경제·금융 통합을 위한 협의가 있었다. 군 통합까지는 동·서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4개 신탁국가 간의 2+4 협상이 있었다. 이 협상에서 서독 46만명, 동독 17만명을 통합해 독일연방군 ‘분데스베어’의 병력을 총 37만명으로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동독의 인민군은 서독의 군복을 입고 ‘분데스베어’의 지휘를 받게 됐다. 계속 군 복무를 할 것인지, 제대를 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개인의 결정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계획이나 청사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과정은 개별적 사안으로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졌다. 동독 인민군 해체 작업은 부대에 따라서 3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소요됐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의 날’을 기억하나. -‘통일의 날’ 이틀 전인 10월 1일 동독이 바르샤바 조약에서 탈퇴했고, 2일에는 동독 인민군이 해체됐다. ‘통일의 날’에는 동독군의 모든 주둔지와 병영에 독일 연방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됐다. 독일 전국에서 통일을 자축하는 축제가 열렸지만, 동·서독 군 통합 행사가 열렸던 슈트라우스베르크의 거리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동독) 군인들의 가슴 속에는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해 매우 심각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군 통합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가장 큰 걸림돌은 동독 군인들의 경직된 복종체계였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동독군들의 지휘체계에는 진취성이나 유연성이 부족했다. 5만명에 이르는 동독의 직업군인들은 4년 안에 동독 군의 남은 잔재를 없애는 임무에 충실히 협조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적으로 여겨 왔던 서독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독 군인들은 동독 장교들 사이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모욕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들은 “독일인으로서 독일인에게”라는 원칙을 갖고 동독군에 다가갔으며, 지휘부 접수는 우호적으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와 동맹군으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았다. →통일 후 ‘분데스베어’의 역할과 위상에 차이가 있다면. -냉전시대의 종식은 ‘분데스베어’의 역할과 임무를 10년 안에 바꿔 놓았다. ‘분데스베어’는 국토방어 임무와 함께 세계평화 유지군으로 변모했고 나토(NATO)군의 강력한 회원국으로 편입됐다. 만일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유럽이 어떻게 통합됐겠는가. 독일인들은 40년간 서로 떨어져 살았고, 서로 다른 두 군사문화가 한 영토에 존재했다. 구 서독에서는 서유럽과 북대서양의 정체성이 자라난 반면, 구 동독지역에서는 또 다른 정체성이 성장해 왔다. →한반도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독일에서 일어났던 과정과는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들이 오랜 분단 뒤에 하나가 되기 위한 굳은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관련국의 통일을 위한 정치적 행보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둘째, 관련 당사국들 간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당사국들은 상황이 ‘윈·윈’이라고 여겨질 때 정치적 합의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셋째, 군 핵심간부(엘리트)들은 정치적 합의를 따라야 한다. 이는 정치적 합의가 국가와 가족의 미래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판단될 때 이뤄질 것이다. →동·서독군의 ‘이념의 골’이 깊었을 텐데. -나는 동독 출신 군인들에게 주입된 사상이 마치 ‘제2의 피부’처럼 벗겨 없어지고, 책임감 있는 군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과정을 지켜봤다. 북한군에 주입된 사상은 동독의 경우보다 더 큰 작용을 하겠지만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적 포장’ 혹은 가면 뒤에 숨겨진 인격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향후 한국에서의 상황이 독일처럼 전개될 경우, 체제의 붕괴라는 어려움 외에 굴욕 혹은 공감대 부족이라는 추가적 어려움이 더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공격과 같이 일방적인 적대적인 행위는 평화협상을 지연시킨다. 이 문제는 남북한과 중국, 미국 정부 간의 협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북대서양에서 일어난 핵 충돌의 역사를 보면 강대국 간의 시행착오로 인해 발생한 충돌을 조용히 해결한 여러 예시를 찾을 수 있다. →남북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더욱 넓힐 수 있도록 인도돼야 하며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안내돼야 한다. 남한은 남북한 국민 모두가 한 국가의 일원이라는 인식과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셰벤 예비역 중장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동독 인민군의 일부를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동부연방군 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1991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동부지역 방위사령부 및 군단 사령관을 맡았다. 중장으로 예편한 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ADAC(독일자동차클럽) 부회장을 지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명예연구원을 지내기도 한 셰벤은 ‘독일 통일 과정과 한국에의 교훈’이라는 프로젝트의 자문위원회에도 참여했다.
  • 장기근무 형사 전출안 하루도 못넘기고 번복

    장기근무 형사 전출안 하루도 못넘기고 번복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찰이 앞으로는 검찰과 대등한 관계로 가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7년 이상 근무한 형사를 전출한다는 내용의 인적쇄신안은 발표한 지 채 하루도 안 돼 번복해 빈축을 사고 있다. 조 청장은 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진행한 본청 직원과의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형사소송법) 법률 발효와 동시에 검찰과의 관계도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면서 “기존의 명령·복종 관계에서 상호대등·상호협력 관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청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형소법은 경찰의 수사권을 법제화했다는 점에서 경찰 66년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라면서 “경찰은 이제 독립적인 수사주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앞으로 (검사 지휘 범위를 규정하는) 대통령령 제정 때 현장 경찰관이 수사주체로서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수사권 조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령 제정과정에서 검경 간의 수사권 충돌을 예고했다. 조 청장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라고 말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국민중심 경찰활동 ▲인사 정의 실현 ▲부정부패 척결 ▲인권보호 ▲수사공정성 확보 등 5가지를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최근 조 청장의 인사 교류안 발표 뒤 경찰을 범죄집단으로 매도한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자, 조 청장은 지난 7일 오후 늦게 전국 경찰을 대상으로 서한문을 보내 “오해가 있었다.”며 한발 물러섰다. 서울은 강남권 3개서로 한정하며, 지방청의 경우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대상자를 정한다는 것이다. 즉, ‘전출한다’에서 ‘전출할 수 있다’로 인사 범위 및 교류 강도를 상당 부분 완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은 “전국을 들쑤셔 놓고 이제 와서 실무착오라니 한심하다.”면서 “개혁도 좋지만, 현장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방안을 내야지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비웃음만 살 것”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데스크 시각] 김준규 사표 그 자체로 봐야/최용규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김준규 사표 그 자체로 봐야/최용규 사회부장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면서 “간이 녹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격정적인 수사로 사퇴의 변을 치장했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검문(檢門)을 나온 김준규는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문·방송 할 것 없이 저토록 비판하는데 환장할 일이지 않겠는가. 김준규가 사표를 내던 날 김황식 국무총리는 김준규를 ‘고약한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다. “도리가 아니다.”라고 점잖게 표현했지만 까놓고 말하면 대통령이 국가 대사를 위해 이역만리 남아공까지 날아가 애쓰고 있는데 이게 무슨 짓거리냐 하는 얘기나 다름없다. 공자가 살아있다면, 대통령과 검찰총장을 군신(君臣) 관계로 본다면 김황식의 판단과 관점은 당연히 옳다고 본다. 김황식의 골수 팬인 법조 후배 P를 계동 한 식당에서 만난 적이 있다. P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황식을 칭찬했다. 당시 그가 존경하는 김황식은 판사 김황식이었다. 정치인이 다 된 선배다. 지금도 같은 생각일까. 대통령이 말렸는데 사표를 낸 김준규. 패륜으로 규정할 만큼 잘못이 큰 건가. 나는 세간의 이 같은 평가와 잣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김준규를 변호할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 김준규는 이번 말고도 사표를 던질 상황이 몇 번 있었다. 법무부나 청와대에 대놓고 거칠게 항의할 수도 있었다. 검찰총장 취임 뒤 김준규는 ‘김준규식 인사’에 의욕적으로 도전한 일이 있다. 그러나 벽에 부딪혀 처절한 좌절을 맛봤다. 김준규는 “참 맛없는 인사”라고 일갈했다. 바꿔야 하는데 한 사람도 바꾸지 못한 자괴감의 표현이었다. 자기 인사가 깡그리 부정당했을 때 사표 던지는 것을 고민했어야 했다. 그때는 간이 녹을 정도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남기춘이 위기에 처했을 때 김준규는 나섰어야 했다. 남기춘이 물불 안 가리고 ‘죽어도 고’를 할 때 김준규는 남기춘의 수사 방식을 인정한 것이다. 남기춘은 외풍에 흔들렸고, 그 바람이 남기춘을 날렸다. 후일 남기춘과에 속하는 한 강력검사는 “총장의 역할은 외풍을 막아 주는 것”이라며 소주잔을 연방 비웠다. 침묵한 김준규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현이었다. 어찌 보면 던져야 할 때 던지지 못하고, 어정쩡할 때 사표를 던진 김준규, 그리고 김준규를 아주 기술적으로 때린 김황식 둘 다 과했다고 생각한다. 김준규가 대통령 부재중에 사표를 냈다고 그렇게 작살낼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과 검찰총장은 행정부 조직체계상 상하관계다. 그렇다고 검찰총장을 다른 공무원처럼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하는 참모나 부하로 봐서는 곤란하다. 가장 우선시할 기준은 검찰이 국가권력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이다. 대통령 부재 중에 사표를 낸 것을 싸가지 없는 행동으로 몰아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이 국내에 있건 없건 김준규의 사표는 그 자체로만 봐야 한다. ‘합의는 지켜져야 하고 내가 깬 것은 아니지만 깨졌다는 것 자체로도 책임을 지겠다!’ 사표를 던진 진짜 이유가 이것이라면 김준규의 판단은 잘못됐다. 검찰총장으로서의 자격도 의심받을 수 있다. 김준규의 사표는 사표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다름 아닌 ‘분립’(分立)의 문제다. ‘검찰 독립’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봐도 좋다. 검찰이 법원과 달리 사법부는 아니지만 준사법부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분권(分權)은 필수다. 검찰 고유의 권한이 일부라도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때 사표를 내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지시를 받고 내고 안 내고 할 문제가 아니다. 이번 일은 ‘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권한을 대통령이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가진단과 이를 통해 스스로의 결정을 할 수 있을 때 권력은 건강해진다. 모든 판단과 결정을 대통령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이다. 김준규가 과한 측면은 있지만 김황식대로라면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참모다. 그렇다면 길 가는 사람 막고 물어봐라. 대통령이 임명권자라고 해서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부하인가. ykchoi@seoul.co.kr
  • 조사권 강화 ‘한은법’ 표결 직전 상정 취소

    한국은행의 금융기관에 대한 조사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국은행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한편이 되고, 금융위원회와 국회 정무위원회가 한편이 돼 2년 동안 ‘밥그릇 싸움’을 벌인 끝에 본회의에 올랐지만, 의결 직전에 상정이 취소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0일 오전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을 불러 최종 타결을 유도했고,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한 공동조사를 요구할 경우 금융감독원은 의무적으로 1개월 안에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시행령에 규정하도록 한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국은행이 금감원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조사를 벌일 수 있는 ‘단독조사권’은 개정안에서 삭제했다. 이 개정안은 곧바로 본회의 51번째 안건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오후 들어 한나라당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 기류가 형성됐다. 허태열 정무위원장과 이성헌 간사 등은 통화정책과 물가안정 등 한국은행의 정체성을 규정한 한은법 제1조에 금융시장 안정을 포함시킨 개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시장 안정이 포함되면 한은에 단독 조사권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였다. 한나라당 정무위원들은 개정안이 상정되면 모두 나서 반대토론을 하기로 했다. 결국 여야 원내대표가 본회의 사회를 보던 홍재형 부의장에게 상정을 취소할 것을 요청했고, 홍 부의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편 본회의에서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외에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의결한 법원·검찰 개혁 관련 법안이 일괄 처리됐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법관의 임용자격을 ‘검사·변호사·법학교수 등 법조경력 10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검찰청법도 고쳐 법무장관이 검찰총장 후보를 제청할 때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한편 경찰의 복종의무 조항도 삭제했다. 기업의 무분별한 퇴직금 중간정산을 금지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한편 법사위는 법인·단체의 정치인 후원을 허용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전날 밤 기습 상정했지만 입법 로비 합법화라는 여론의 역풍을 고려해 6월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검사 수사지휘권 ‘대통령령’으로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8일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사위는 그러나 지난 20일 청와대의 중재로 이뤄진 검찰과 경찰의 합의안 가운데 검사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에 대해선 법무부령에 위임하기로 했던 것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수정 의결했다. 경찰의 ‘모든 수사’에 대해 검찰의 포괄적 수사지휘권을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은 검·경 합의안대로 유지했다. 법사위는 검사에 대한 경찰의 복종의무를 규정하고 있던 검찰청법 53조 역시 합의안대로 폐지하기로 했다. 법사위는 또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한나라당의 의견대로 오는 9월 1일부터 시행하고, 검찰인사위원회의 검사 자질 평정 기준을 보완해 성실성과 청렴성 등이 포함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경찰 수뇌부는 환영한 반면, 일선 경찰관들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대검찰청 역시 박용석 차장 주재 아래 비상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렵게 합의한 내용을 뒤집은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경찰청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이인기 위원장 등은 형소법 개정안 196조 1항과 관련,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미치는 범위를 ‘모든 수사’로 규정한 것에서 ‘모든’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수정안을 30일 본회의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 법사위에서 의결된 형소법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복종의무 폐지안을 담은 검찰청법 개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홍성규·김승훈기자 cool@seoul.co.kr
  • 경찰 요구 수용… ‘모든 수사’ 불씨 여전

    경찰 요구 수용… ‘모든 수사’ 불씨 여전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검찰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에 대한 규정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수정 의결함에 따라 경찰은 앞으로 검찰과의 협상테이블에서 형평성을 확보하게 됐다. 당초 청와대의 중재에 따른 검·경 합의안대로 ‘법무부령’에 위임할 경우 시행령 제정권을 가진 법무·검찰의 일방적인 요구를 거역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경찰의 우려였다. 같은 맥락에서 조현오 경찰청장도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검찰 일부에서 계속 (합의안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와 일선에서 (합의 정신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협의가 아닌 ‘합의’가 담보되는 방향으로 (입법을) 확실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경찰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셈이다. 그러나 논쟁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먼저 형소법 개정안 196조 1항에서 검찰의 포괄적 수사지휘권을 경찰의 ‘모든 수사’로 규정하고 있는 데 대한 수정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인기(한나라당)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만약 법사위에서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결론이 나오면 행안위는 본회의에서 수정안을 제출해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판단을 받겠다.”며 ‘모든’이라는 문구의 삭제와 ‘대통령령’으로의 수정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이 위원장은 법사위 의결 직후에도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비록 ‘대통령령’으로의 수정 요구가 받아들여졌지만, 1항에 ‘모든’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는 만큼 수정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개정안 의결 직전 “1항 ‘모든 수사’에 내사가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내사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부대 의견을 남기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한나라당과 법무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법률 공백 사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경찰의 복종 의무를 담은 검찰청법 제53조가 본회의 통과와 법률 공포 후 폐지되는 반면, 이를 보완할 형소법 개정안 196조는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내년 1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공백이 생긴다는 게 법무·검찰의 입장이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전체회의에서 “두 개정안 사이에 공백이 있는 만큼 검찰청법 개정안의 시행 시기를 늦춰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안에서 이미 합의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이 장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의결 직전까지 정회와 비공개 협상을 거듭했다. 당초 오전에 사개특위안들을 일괄 처리하려고 했지만 의원들 간, 검·경 간 합의 도출에 실패하며 29일 전체회의를 한 차례 더 소집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그러나 심사가 늦어질수록 검·경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오후 당별 비공개 회의와 교섭단체 간 협상을 거쳐 절충안으로 수정 의결하며 논쟁을 일단락지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부모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부모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회상기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떡을 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미숙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나를 다시 암자로 돌려보낼 때 어머니는 분명 피눈물을 흘리셨을 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석봉 한호(1543~1605)에게 그의 어머니 백씨 부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조선의 대유학자가 된 배경에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어머니 사임당 신씨(1504~1551)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에 천재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고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어머니와 ‘홈스쿨링’을 통해 창의력을 키웠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자기 업적보다 벚나무를 벤 실수를 고백하자 용서하고 격려한 아버지와의 일화(실제로는 꾸며낸 일이라는 설이 유력)로 더 유명하다. 부모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피겨여왕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교육법과 열정은 제2의 박지성·김연아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롤모델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여기 자녀들에게 재능만 물려줬을 뿐 사랑이나 진정한 교육은 주지 않았던 부모들이 있다.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삐뚤어진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행한 천재들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우울한 그들의 내면을 가상의 일기장을 통해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의 불행이 이들이 남긴 업적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과 성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모의 꿈, ‘완벽한 교육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프로이센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2세 “내 친구도 죽인 매정한 부왕 왕실생활이 동냥보다 비참” ●왕자 시절인 18세(17 32년) 때의 일기 왕가의 숙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다 결국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인 꼴이 됐구나. 궁궐 탈출을 끝까지 말렸던 한스(한스 헤르만 폰 카테 소위)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오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버지(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스를 황제의 직권으로 사형시킨 것은 결국 나를 겨냥한 것일 테지. 자식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8년은 나에게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날 프로이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조피 도로테아·하노버 왕조를 창시한 조지 1세의 딸)는 프랑스 왕족이 최고라고 하니 난 규율과 자유 어느 쪽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내 수업을 감시하는 대령을 뒀고, 내 스승은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쫓겨났다. 아버지는 플루트 연주도, 시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예술인데 말이다. 왕실에서 사느니 차라리 동냥을 해서 빌어먹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난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내를 아버지에게 드러내지 않을 테다.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테니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이중인격으로 ‘탈주사건’으로 친구 카테 소위가 처형당한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다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을 숨겼고,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모습만 보여 신임을 얻었다. 1740년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금욕적이고 냉철한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적·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폈고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력과 강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처단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어떤 왕보다 더 차가운 내면을 지닌 야누스적인 왕’으로 평가한다. ■美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불륜 즐기고 떳떳한 아버지 어엿한 보스턴상류층 일원” ●하버드대에 다니던 2 0세(1937년) 때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여자들과 즐길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아버지가 옳았던 것 같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충족시켜 주는 트로피에 불과하다. 위대한 남자라면 두 개의 삶 정도는 가져도 무방한 것 같다. 아버지는 출신(케네디 가문은 본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렸다)을 완벽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 보스턴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즈 케네디)는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뭐 내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예의범절과 자기규율은 엄하게 배울수록 좋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배우와 불륜을 즐기면서도 떳떳한 아버지처럼 행동했다간 분명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언제나 포장은 필요한 법이지. 나처럼 외견상으로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내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만끽하면 된다. 우리 부모님들조차 5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문은 존경받는 신흥 명문가이지 않은가. ●바람기는 대를 이었다.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는 영화계에 투자하면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고 케네디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추후 메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로 대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케네디와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생활 역시 남편의 바람과 아내의 낭비벽으로 점철됐다. 케네디는 아버지처럼 여성에 집착했고 수많은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재클린은 자기 시어머니처럼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격했던 어머니 로즈 때문에 케네디는 평생 압박감에 시달렸고, 각성제 암페타민과 진통제에 의존했다. ■佛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 “사창가서 자란 내 어린시절 어머니가 여덟명이나 생겨” ●집을 떠나던 15세(19 34년) 때 내 인생을 철저히 다시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서커스단의 난쟁이 곡예사와 사탕을 팔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까. 그래 차라리 빈민촌의 가로등 아래에 버려진 것으로 하자. 경찰관들이 나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면 더 극적이겠지.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락방에서 어린 내 음식에 술을 타던 외할머니. 쥐떼가 우글거려서 면역력을 키우려 그랬다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는 날 그곳에서 구한답시고 친할머니에게 버렸고, 난 사창가에서 자라야만 했다. 무려 여덟명의 어머니가 생긴 그 시절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내가 커온 사창가의 법칙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따귀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 내 부모는 나에게 목소리를 줬다. 그 덕분에 난 이제 집을 나가도 살 수 있을 테지. 언젠가 성공한다면 난 엄마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남편을 만날 것이다. 어쨌든 난 평범한 여자처럼 살고 싶다.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집을 나간 피아프는 독특한 목소리를 무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자란 피아프는 평생 남자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지배하거나 때리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사랑이란 커다란 소동이나 엄청난 거짓말, 번갈아가며 양쪽 뺨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따귀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에 오르는 일도 흔했다. 암흑 같은 과거의 그림자는 피아프를 평생 괴롭혔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어릴적부터 맘대로 하던 나 ‘최고’ 소리 안들으면 못참아” ●산 페르난도대 신입생 시절인 18세(1922년) 때 예술이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인종 같으니라고. 아버지(돈 살바도르)에게 굽히는 건 오로지 내가 학업을 이어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교사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난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 갈 것이고, 거기에서 돌아오면 난 천재가 되어 세상이 우러러볼 것이다. 입학식에 무슨 옷을 입을까. 망토? 금박 지팡이? 너무나 파격적인 내 옷차림에 교수들은 당황하겠지. 난 여섯살에는 요리사가, 일곱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내 야망은 뻗어갔다. 여동생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리든,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든 부모는 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 난 천재다. 1등이었던 형을 대신하는 2등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내 맘대로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꿈을 포기하라니 꼭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과보호 속에 커버린 최고의 이기주의자로 달리의 형을 잃은 부모는 어린 달리를 완벽한 독재자로 키웠다. 무한한 인내심과 자유방임이 유일한 교육철학이었다.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고 버릇없이 굴어도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형의 대신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달리는 오로지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달리는 그림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부터 1965년까지 달리의 이름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라디오, TV에 언급됐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 고 서 적 <<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강희진/ 미래의 창) ▲살바도르 달리(살바도르 달리·이은진/ 이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기쿠치 요시오·이경덕/ 다른세상) ▲죽기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이클 우드·박누리/ 마로니에북스) ▲에디트 피아프(실뱅 레네·신이현/ 이마고)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정초능/ 푸른숲) ▲케네디가의 형제들(에드워드 케네디·구계원/ 현암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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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행과 악행, 그가 25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이름 올린 이유…

    기행과 악행, 그가 25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이름 올린 이유…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떡을 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미숙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나를 다시 암자로 돌려보낼 때 어머니는 분명 피눈물을 흘리셨을 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석봉 한호(1543~1605)에게 그의 어머니 백씨 부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조선의 대유학자가 된 배경에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어머니 사임당 신씨(1504~1551)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에 천재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고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어머니와 ‘홈스쿨링’을 통해 창의력을 키웠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자기 업적보다 벚나무를 벤 실수를 고백하자 용서하고 격려한 아버지와의 일화(실제로는 꾸며낸 일이라는 설이 유력)로 더 유명하다. 부모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피겨여왕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교육법과 열정은 제2의 박지성·김연아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롤모델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여기 자녀들에게 재능만 물려줬을 뿐 사랑이나 진정한 교육은 주지 않았던 부모들이 있다.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의 주인공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삐뚤어진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행한 천재들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우울한 그들의 내면을 가상의 일기장을 통해 들여다봤다. 어린시절의 불행이 이들이 남긴 업적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과 성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모의 꿈, ‘완벽한 교육법’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프리드리히 2세 (1712~1786/ 프로이센의 계몽전제군주) 왕자 시절인 18세(1732년) 때의 일기 왕가의 숙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다 결국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인 꼴이 됐구나. 궁궐 탈출을 끝까지 말렸던 한스(한스 헤르만 폰 카테 소위)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오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버지(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스를 황제의 직권으로 사형시킨 것은 결국 나를 겨냥한 것일 테지. 자식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8년은 나에게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날 프로이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조피 도로테아·하노버 왕조를 창시한 조지 1세의 딸)는 프랑스 왕족이 최고라고 하니 난 규율과 자유 어느 쪽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내 수업을 감시하는 대령을 뒀고, 내 스승은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쫓겨났다. 아버지는 플룻 연주도, 시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예술인데 말이다. 왕실에서 사느니 차라리 동냥을 해서 빌어먹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난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내를 아버지에게 드러내지 않을 테다.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테니 그때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이중인격 왕을 낳았다 ‘탈주사건’으로 친구 카테 소위가 처형당한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다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을 숨겼고,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모습만 보여 신임을 얻었다. 1740년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금욕적이고 냉철한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적, 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폈고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는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력과 강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처단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어떤 왕보다 더 차가운 내면을 지닌 야누스적인 왕’으로 평가한다.   ●존 F. 케네디 (1917~163/ 미국의 35대 대통령) 하버드대에 다니던 20세(1937년) 때의 일기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여자들과 즐길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아버지가 옳았던 것 같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충족시켜 주는 트로피에 불과하다. 위대한 남자라면 두 개의 삶 정도는 가져도 무방한 것 같다. 아버지는 출신(케네디 가문은 본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려했다.)을 완벽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 보스턴 상류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로즈 케네디)는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뭐 내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예의범절과 자기규율은 엄하게 배울수록 좋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배우와 불륜을 즐기면서도 떳떳한 아버지처럼 했다간 분명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언제나 포장은 필요한 법이지. 나처럼 외양상으로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내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만끽하면 된다. 우리 부모님들조차 5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문은 존경받는 신흥 명문가이지 않은가. [그 후] 바람기는 대를 물렸다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은 영화계에 투자하면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고 케네디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추후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로 대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케네디와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생활 역시 남편의 바람과 아내의 낭비벽으로 점철됐다. 케네디는 아버지처럼 여성에 집착했고 수많은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재클린은 자기 시어머니처럼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격했던 어머니 로즈 때문에 케네디는 평생 압박감에 시달렸고, 각성제 암페타민과 진통제에 의존했다.   ●에디트 피아프(1915~1963/ 프랑스의 국민가수) 집을 떠나던 15세(1934년) 때의 일기 내 인생을 철저히 다시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서커스의 난쟁이 곡예사와 사탕을 팔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까. 그래 차라리 빈민촌의 가로등 아래에 버려진 것으로 하자. 경찰관들이 나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면 더 극적이겠지.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락방에서 어린 내 음식에 술을 타던 외할머니. 쥐떼가 우글거려서 면역력을 키우려 그랬다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는 날 그곳에서 구한답시고, 친할머니에게 버렸고, 난 사창가에서 자라야만 했다. 무려 여덟명의 어머니가 생긴 그 시절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내가 커온 사창가의 법칙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따귀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 내 부모는 나에게 목소리를 줬다. 그 덕분에 난 이제 집을 나가도 살 수 있을 테지. 언젠가 성공한다면 난 엄마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남편을 만날 것이다. 어쨌든 난 평범한 여자처럼 살고 싶다. [그 후]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집을 나간 피아프는 독특한 목소리를 무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다. 성공한 피아프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다시 찾아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자란 피아프는 평생 남자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지배하거나 때리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사랑이란 커다란 소동이나 엄청난 거짓말, 번갈아가며 양쪽 뺨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따귀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에 오르는 일도 흔했다. 암흑 같은 과거의 그림자는 피아프를 평생 괴롭혔고, 1933년 낳은 딸은 어린시절 피아프가 그랬듯 순회공연에 데리고 다녔다. 딸 마르셀은 2살도 되기전 뇌막염으로 숨졌다. ●살바도르 달리(1904~1989/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산 페르난도대 신입생 시절인 18세(1922년) 때의 일기 예술이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인종 같으니라고. 아버지(돈 살바도르)에게 굽히는 건 오로지 내가 학업을 이어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교사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난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 갈 것이고, 거기에서 돌아오면 난 천재가 되어 세상이 우러러볼 것이다. 입학식에 무슨 옷을 입을까. 망토? 금박 지팡이? 너무나 파격적인 내 옷차림에 교수들은 당황하겠지. 난 여섯살에는 요리사가, 일곱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내 야망은 뻗어갔다. 여동생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리든,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든 부모는 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 난 천재다. 1등이었던 형을 대신하는 2등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내 맘대로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꿈을 포기하라니 꼭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그 후] 과보호 속에 커버린 최고의 이기주의자가 되다 달리의 형을 잃은 부모는 어린 달리를 완벽한 독재자로 키웠다. 무한한 인내심과 자유방임이 유일한 교육철학었다.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고 버릇 없이 굴어도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형의 대신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달리는 오로지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달리는 그림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부터 1965년까지 달리의 이름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라디오, TV에 언급됐다. [참고문헌]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강희진/ 미래의 창)  살바도르 달리(살바도르 달리·이은진/ 이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기쿠치 요시오·이경덕/ 다른세상)  죽기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이클 우드·박누리/ 마로니에북스)  에디트 피아프(실뱅 레네·신이현/ 이마고)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정초능/ 푸른숲)  케네디가의 형제들(에드워드 케네디·구계원/ 현암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행복한 믿음, 그 다음은 뭘까?

    요즘 종교계에서는 ‘심층 종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맹목적인 믿음의 표피적 종교(표층 종교)가 아닌, 종교 본연의 영성적 체험과 속내를 제대로 보자는 인식의 변화들이다.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해야 할 종교가, 거꾸로 세상으로부터 교정받아야 할 대상이 됐다.”는 지탄과 한숨이 무성한 지금, 종교 바로보기를 겨눈 ‘심층 종교’에 대한 시선 집중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 현대 지성인의 사도라는 폴 틸리히가 남긴 이 말은 종교가 현재의 만족과 행복에 머무는 표층의 단계를 넘어선 공통의 지향점을 갖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깨달음을 통한 나와 남의 공존과 평화, 그리고 공동선을 향한 노력에 대한 눈뜸이다. 이는 빌어서 복을 구하는 기복이며 신과 나의 구분을 전제한 맹목의 믿음과 문자적 복종을 훌쩍 뛰어넘는 종교 심연의 천착이기도 하다. 모든 종교에는 표층과 심층의 속성이 맞물려 있으며 궁극적으로 그 심층의 종교로 닿기 위해 개인과 공동체의 깨달음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동서양의 많은 사상가며 철학자, 종교적 선지자들은 공교롭게도 그 심연의 종교를 중시한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다고 할 때 그 선지자며 선지식들의 사상과 흔적을 꿰뚫어본다면 요즘 종교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심층 종교’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가 최근 낸 ‘종교, 심층을 보다’(현암사 펴냄)는 그런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베스트셀러 ‘예수는 없다’로 국내외 종교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저자가 묶어낸 역작. 지난달, 같은 ‘신비주의’의 세계관을 가진 후배 종교학자 성해영과 나눈 대담집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북성재 펴냄)가 심층 종교라는 문제 제기의 서론서 역할을 했다면 이 책은 그 본론 격이다. 책은 지난 2년간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이라지만 단순한 평면의 ‘인물 보기’가 아닌 ‘심층 종교’ 차원에 초점을 맞춘 사상과 궤적의 돋보기라 할 수 있다. 등장 인물은 로마의 철학 사상가, 유대교의 지도자, 그리스도교의 선각자, 이슬람교의 성인, 동아시아의 사상가, 인도의 영성가, 불교의 선지자, 한국의 스승 등 60인. 자이나교의 ‘불살생’ 영향을 받아 생명경외의 실천적 삶을 살았던 슈바이처, 20세기 최고의 유대사상가이면서 도덕경·장자를 익혀 이른바 ‘관계 철학’을 탄생시킨 마르틴 부버, 범종교적 에규메니즘 신학자인 한스 큉, 해방신학의 아버지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그가 추려낸 “나와 신, 이웃,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지금의 나에서 해방돼 본래의 참 나로 다시 태어난” 심층 종교 선지자의 반열엔 한국의 다원주의 종교가인 류영모·함석헌도 들어 있다. 2만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수사권 조정 합의] 靑 중재에 극적 타결… 경찰 명분 얻고 검찰 실리 챙겼다

    [수사권 조정 합의] 靑 중재에 극적 타결… 경찰 명분 얻고 검찰 실리 챙겼다

    20일 합의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해 경찰은 명분을, 검찰은 실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견은 여전히 크다. 극적 타결을 이룬 모양새이지만, 6개월 뒤 만들어질 검사 지휘권에 대한 법무부령을 두고 양쪽이 ‘동상이몽’ 중이다. 이에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 사이의 ‘밥그릇 싸움’ 2라운드는 이미 예고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합의안은 우선 검찰 쪽의 입장을 반영해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보다 강조했다. 1항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고치고, 3항을 신설해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고 구체화했다. 또 사법경찰관이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없이 검사에게 송부하도록 한 4항을 신설했다. 동시에 2항은 경찰 쪽의 의견을 들어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는…수사를 개시·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해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을 명시했다. 또 3항에서 검사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는 대신 ‘사법경찰관리는 범죄수사와 관련해 소관 검사가 직무상 내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검찰청법 53조는 삭제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청와대가 막판에 직접 개입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서별관에서는 임태희 대통령 실장, 김효재 정무, 권재진 민정수석과 이귀남 법무, 맹형규 행안장관, 조현오 경찰청장, 임채민 국무총리 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1시간 40분간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임 실장은 총리실장과 청와대 참모들은 바깥 쪽에 앉히고 나머지 검·경 관계자들은 가운데에 앉혀 놓고 “오늘 이 자리에서 합의가 안 되면 아무도 이 방을 못 나간다.”면서 배수진을 치고 압박을 가했다. 또 여러 차례 정회를 하면서 임 실장이 다른 방에서 개별접촉을 하며 설득을 벌였다. 이미 지난 17일 이 대통령이 ‘밥그릇 싸움’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을 했는데도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는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이대로 국회에 이 문제를 넘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조정안과 관련, “일반의약품(OTC) 문제도 같은 것인데 한두 가지 품목이라도 먼저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면서 “검찰이나 경찰이나 양쪽에서 불만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첫 부분을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은 회의와 관련해 “오늘도 문구 조정이 많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황식 총리가 지난 17일 이 법무 장관과 조 청장을 불러 제시했던 중재안에는 경찰의 수사 개시권만 명시했지만, 이날 회의에서 경찰 주장대로 수사 진행권까지 명문화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196조 1항에 ‘모든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을 명시하는 데 경찰 쪽이 합의하면서 논의가 급진전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형사소송법 196조 3항에서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한 것이 여전히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도 있다. 검사 지휘권의 범위와 행사 방법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양쪽 사이에 첨예한 입장 대립이 재현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선거·공안 사건에 대해서만 검사가 지휘권을 행사하는 내용도 이번에 상당히 심도 깊게 논의된 안 가운데 하나였지만, 모두 6개월 뒤 법무부령에서 정하자고 사실상 유보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양쪽 다 법무부령을 정하면서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번에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법무부령 개정 과정이 상당히 치열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성수·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검·경 ‘수사개시권’ 수정 의견 접근

    경찰청은 6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논의 중인 경찰의 수사개시권 명문화와 관련,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196조1항을 검·경이 수사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검·경은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육동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주재로 수사권 조정 관련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핵심 쟁점인 196조1항의 ‘검사의 지휘를 받아’라는 문구를 현행 수사 현실에 적합한 다른 문구로 대체하는데 일단 뜻을 모았다. 그동안 검찰은 “경찰의 마구잡이 입건과 실적경쟁, 청탁수사 등을 막을 수 없다.”며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의 수정을 반대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조항을 수정하는) 그런 방향의 내용을 담아 검토를 하고 조직 의견을 수렴해서 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이 검찰 조직 전체의 의견으로 모아질지 주목된다. 검·경은 구체적인 새 조항 등에 대해 8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수사권 조정 관련) 법조항 수정에 부정적이었던 검찰이 간담회에서 한층 진일보한 자세를 보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간담회는 박종준 경찰청 차장과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 국무총리실 관계자 등 소수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앞서 지난 2일 열린 1차 간담회에서는 검·경이 기관별 입장과 상황만 표명, 팽팽한 입장차만 드러냈다. 두 번의 간담회에서 경찰은 ‘조속한 정부안 마련’을 촉구했다. 박 차장은 “이달 말 국회 사개특위의 활동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며 “이미 지난 4월 사개특위에서 합의된 사안(수사권 조정)을 검찰이 뒤늦게 반발해 번복하려는 것 아니냐. 정부에서 빨리 안을 내 달라.”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경찰 내부에서는 한나라당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정부의 의견을 듣고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갑자기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공’을 국무총리실로 넘겼기 때문이다. 여당은 ‘경찰의 수사개시권 명문화’와 ‘경찰의 복종의무 조항 완화’ 등에 대해 국무총리실이 검·경의 의견을 종합, 조문을 작성해 오면 사개특위에서 다시 논의해 최종 결론을 내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시간끌기용 작전이다. 2005년에도 검찰이 반발하자 이번처럼 정부 의견을 듣겠다고 하더니 결국 유야무야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시론] 호국의 달에 다시 생각해 보는 국방개혁/이문호 공군전우회 사무총장 예비역 준장

    [시론] 호국의 달에 다시 생각해 보는 국방개혁/이문호 공군전우회 사무총장 예비역 준장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앞두고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후진국형 군대문화다. 지휘관의 독선적인 의사결정, 소신 없는 지휘행태, 임기 내에 업적을 내려고 하는 공명심, 상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등이 그것이다. 최근 새삼스럽게 이런 점을 인식하게 된다.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폭 원인을 합동성 부족으로 진단하고 그 대안으로 상부 지휘구조를 현역 군인 한 사람에게 3군을 소속시키고 군령과 군정을 갖는 실질적인 통합군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정보 수집 및 판단 미흡, 위기의식 부족, 강력한 작전지휘권이 있는 합참의장의 타군에 대한 이해 부족, 상부 의존적 사고 등이다. 합참은 지상군 위주로 구성되었고 참모들이 타군 작전을 모르니 당연히 합동성이 있을 수가 없었다. 최근 국방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상부 지휘구조 안은 국방 개혁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서 만든 안과 다른 실질적인 통합군제 안이다. 진단과 처방이 뒤바뀐 것이다. 국가와 군의 안위가 달린 군 지휘구조 개편안을 군을 지휘해 보지 못한 몇 사람의 의견에 따라 작성하고 보고 때마다 수시로 바꾸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군의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잉 병력과 장군은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그러나 현역 1인에게 군정과 군령권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독선과 각 군의 균형 파괴, 전문성 경시, 문민통제의 원칙에 역행할 가능성 등의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 군의 의사결정 절차도 문제가 있다. 군 전문가들이 만든 안을 공식적인 합동참모회의와 군무회의를 거쳐 조율하고 효율적인 작전, 한·미 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문제점을 보완한 안을 보고해야 했다. 그러나 각 군의 의견은 실질적으로 하나도 수렴하지 않았다. 장군도 줄이고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슬림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307 국방개혁안은 누더기, 짜깁기 형태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합참의장이 각 군의 작전사령부를 직접 지휘하던 작전 형태는 합참의장- 합참 1차장- 각군 총장- 참모차장 체제로 바꾸기로 했는데 의사결정 구조를 비대하게 만들 것이다. 대장은 손대지도 못하고 준장만 줄인다는 것도 문제 있다. 한·미 관계와 지휘 폭을 고려해 각 군에 참모차장 2명을 두겠다고 한다. 그러면 지휘관이 작전하는 것이 아니라 참모가 군을 지휘하는 이상한 군대가 된다. 군의 상부 지휘구조는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2015년까지 현 체제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비도 없고 미군과 협조하지도 못했다. 군을 지휘한 경험이 있는 육·해·공군 원로들은 하나같이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진단은 정확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합동성을 강화하고, 한·미 관계, 미래전의 양상, 한미연합사 해체 후의 지휘관계 등을 고려하여 유사시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부 군지휘구조안을 만들어야 한다. 안보적 취약시기에 각 군의 공감대 없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문민 우위의 정책을 훼손할 수 있는 후진국형의 통합군제를 무리해서 추진하려는지 참뜻을 알 수가 없다. 군 원로들은 결코 국방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국방개혁 과제는 추진되어야 한다. 장군 수도 직무평가에 의해 지금보다 더 과감히 줄여야 한다. 그러나 군의 근간인 상부지휘 개편은 한·미 관계를 고려해야 함은 물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정착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지금은 안보적으로 매우 취약한 시기이므로 신중한 검토 하에 중장기 계획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예비역 장성들이 국방개혁을 가로막는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예비역 장군들은 막을 힘도 없고 권력에 관심도 없다. 단지 군과 국가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국방개혁안의 문제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 사개특위, 소리만 요란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검토했던 대법관 증원안과 대검 특별수사청 설치안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개특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 25일 이주영 정책위의장의 주도로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두 개혁안과 관련, ‘6월 임시국회에서 야당과 마지막 합의를 시도한 뒤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은 또 오는 6월 30일까지로 예정된 사개특위 활동 시한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야 모두 사법개혁의 핵심 쟁점으로 꼽았던 두 개혁안을 폐기 처분함에 따라 ‘용두사미 개혁’에 그쳤다는 비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두 개혁안을 폐기하는 대신 대법원에 상고심 심사를 담당하는 별도의 대법원 판사를 두는 방안과 특임검사제를 상설화하는 방안을 법원과 검찰 쪽에 최종 협상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원·검찰 모두 부정적 입장이 강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대법관 증원안과 특별수사청 설치는 여야 간 입장차가 워낙 크고 여론의 호응도 적어 원래 구상대로 관철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현재까지 여야 간 의견 조율이 이뤄진 쟁점들만 처리하는 수준에서 사개특위 활동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개특위는 다만 지금까지 여야 간 의견 접근을 이룬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기능 폐지안은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개시권 인정, 복종의무 삭제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6월 국회에서 통과가 예상된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수사권 조정, 자신의 직위 걸어라”

    “수사권 조정, 자신의 직위 걸어라”

    조현오 경찰청장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추진하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과 관련, 전국 경찰 지휘부에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최근 들어 사개특위의 조정안이 경찰의 바람대로 풀리지 않는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조 청장은 오전 전국 지방청장 화상회의를 열어 “모든 지방청장과 경찰서장은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자신의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임하라.”고 주문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사개특위의 검·경 수사권 조정의 주요 내용은 ▲경찰에 수사 개시권을 주는 쪽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하고 ▲검찰과 경찰을 명령·복종 관계로 규정한 검찰청법 조항을 폐지하는 것 등 두 가지다. 조 청장은 또 “총경 이상의 존재 이유가 뭐냐. 조직의 현안,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의무”라면서 “각 지역 국회의원이나 사개특위 위원 등에게 우리의 입장과 수사권 조정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사개특위 검찰소위는 지난달 20일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사법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식한 때에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로 고쳐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주기로 합의했다고 전체회의에서 보고했다. 하지만 최근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는 1항을 유지하면서 ‘사법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식한 때에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에 관한 수사를 개시해야 한다.’는 2항을 신설하는 쪽으로 개정안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협박’받는 사개특위 의원들

    ‘협박’받는 사개특위 의원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한 관계 기관들의 입법 로비가 도를 넘어섰다.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게시글 공세를 통한 청원이 협박 수준에 버금갈 정도다. 사개특위 검찰관계법소위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던 지난 19일 회의에서도 이런 무차별적인 협박성 로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검사장 출신인 한 의원은 협박에 시달린 나머지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했을 정도다. 회의 일정이 예고된 뒤부터 경찰 등 관계 기관 공무원들이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압력을 넣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강도는 다소 낮지만 수사권 조정에 대한 청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150만 경우(警友)와 현직 경찰, 다수의 국민들의 염원을 저버리지 말고 현명하게 판단하길 기대해 봅니다.” “수사 구조 개혁에 대해 그토록 편협한 견해를 가지고 의정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이 안타깝네요.” 등 100여 건을 훌쩍 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일부는 이 의원의 지역구 출신이라고 밝히며 19대 총선에서의 영향력 행사 의지를 은근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 의원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문자메시지 공세를 받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 역시 당시 회의에서 이런 협박성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회의에는 관계 기관에서 파견되어 온 전문 위원들과 보좌진들이 퇴장 명령을 받았고, 의원들과 속기사들만 참여했다. 박영선(민주당) 소위 위원장은 참석한 의원들에게도 논의 사안들이 확정될 때까지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개특위 소속 한 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상대로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실태나 이를 방치하는 기관들의 행태 모두 비정상적”이라면서 “공갈·협박에 몸을 사리는 의원들의 줏대 없는 언행이 이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소위는 전날 회의에서 당초 6인 소위가 합의안대로 경찰의 검찰에 대한 복종 의무 부분을 삭제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법경찰관의 수사권을 인정하는 대신 검사의 지휘가 있을 때에는 그에 따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검사의 수사 지휘권을 보장하는 조정안도 논의됐다. 소위는 각 당의 의견을 종합한 뒤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간디! 흔히 ‘인도 독립의 아버지’, ‘힌두의 성자’라고 불리는 ‘위인’. 그러나 청년 시절의 간디는 조혼이나 카스트 제도를 부끄럽게 여겼고, 육식을 금지하는 힌두교 전통을 낙후된 것이라 생각했던 식민지의 젊은 문명론자였다. 그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도의 대개혁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당연한 일. 이 촌뜨기 식민지 유학생은 식민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영국 신사’의 꿈을 꾸면서 새 옷을 맞추고, 실크 모자와 야외복과 고급 넥타이를 사고, 그것도 모자라 댄스와 프랑스어와 웅변술과 바이올린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빠진다. 물론 이런 부박한 충동은 금세 극복되었다. 그렇다고 ‘문명=개혁’에 대한 간디의 이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간디는 귀국 후 집안에서 자녀에게 체조 교육을 시키고, 음식을 개량하고 의복을 서구화했다. 그에게 영국은 문명과 이성의 대명사였고, 인도는 교화시키고 개혁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식민지 엘리트 청년은 스스로를 위대한 대영제국의 신민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샤 계급 출신으로 인도 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 ‘식료품상’이란 뜻의 ‘간디’란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변호사 자격을 따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개업하기가 어려웠다. 집안의 꿈이었던 정치 관료로 출세하기란 더 난감해 보였다. 간디는 스물넷에 ‘잘나가는 변호사’를 꿈꾸며 남아프리카로 떠난다. 안타깝게도 날선 바지에 영국식 양복을 입은 변호사도 그곳에선 ‘갈색 피부’에 불과했다. 1등석 차표를 지녔지만 “같이 못 타고 가겠다.”는 백인의 말 한마디에 강제로 끌려나와 낯선 기차역에 버려진다. 최초의 충격! 그랬다. 간디는 당시 남아프리카에 5만명가량 존재했던 이주노동자, ‘쿨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쿨리들의 구심점이 되어 버린 간디. 이제 스물여섯 살 청년 간디는 ‘쿨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결국 남아프리카의 나탈에서 인도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가, 혁명가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간디는 23년간 남아프리카에서 그리고 귀국 후 조국 인도에서 죽을 때까지 정치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에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대영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전국적인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해 왔던 것은 정치적 실험이 아니라 “정신적 실험”이며 ‘모크샤’(자기 구원)를 향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기억이 없다.”거나 도둑질을 했을 때 깊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속죄를 했다는 식의 자기 성찰은 진지하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모든 위인이나 성인의 특징이라고 말해버리면 간디는 그냥 ‘본투비(Born to be) 성인’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간디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매번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낯선 상황, 낯선 사건에 놓였고, 매번 그 현장에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영국에 협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부터 육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까지 간디에게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 그는 책을 통해서 진리의 길을 발견했다. 그가 자발적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유학 시절에 읽었던 책들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시절 이후 그가 생산해야 하는 진리의 길은 매번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투쟁의 한복판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놀라울 정도의 윤리적 감수성으로 매번 창조적인 ‘진리 실험’을 한다. 소위 ‘비폭력 불복종’이라고 불리는 ‘사티아그라하’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사티아그라하’는 단순한 정치적 불복종, 지문찍기를 강요하는 영국 지배에 대한 정치적 저항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 고결함을 파괴하며, 인간 관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폭력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그것은 영국을 향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이기도 했다. 나부터 한없이 고귀해지겠다는, 나부터 한없이 낮아지겠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 간디의 진리 실험이 더해질수록 그는 유명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은 점점 더 간결해졌다. 그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만큼만 입었으며(윈스턴 처칠은 그가 “반쯤 벌거벗은 몸으로 총독 궁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자 기절초풍하며 “경악스럽고 역겹다.”고 했다), 가장 비천한 불가촉천민이 하는 일, 청소나 똥 푸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간디의 아내는 때때로 절망하고 울부짖었으며,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났다. 맏아들은 마치 아버지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명하고 단호했다. 비록 때때로 좌절하고 비틀거렸지만 그는 단 한번도 ‘사티아그라하’, 모든 폭력과 지배에 대한 그 위대한 불복종을 멈춘 적이 없다. 간디의 물레! 그건 간디의 상징이고, 인도 독립의 상징이고, 나아가 모든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서 진부하기조차 한 물레! 그러나 간디의 물레, 그것은 단순한 ‘국산품 애용’ 운동이 아니다. 흔히 자치로 번역되는 ‘스와라지’ 역시, 단순한 정치 체제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건 사람들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 인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형제, 자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정신적 힘을 의미했다. 도대체 인도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물론 동인도회사의 지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 때문인가. 그 이면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들어온 영국 상인만큼 단숨에 돈을 벌고자 했던 인도인의 욕망과 협력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인도인의 마음에 뿌리박힌 영국 문명에 대한 동경, 물질과 화폐에 대한 욕망. 독립과 해방은 영국 통치가 끝나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영국적 삶의 방식 전체, 근대 문명 전체가 종식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물레’는 도구가 아니라 비전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힘으로 노동하고, 그 노동의 힘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그 자립하는 정신들이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이상적인 꿈. 그걸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나 대량생산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수공업들이 리바이벌되는 작은 마을들의 연합. 간디가 꿈꾼 인도의 미래였다. 마을 스와라지에 모든 사람이 환호와 갈채를 보냈을까. 아니다. 타고르는 ‘실을 잣고 천을 짜는 것’이 과연 한 민족의 구루가 전하는 메시지로 적절한가에 대해 간디에게 물었고, 간디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고칼레조차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어리석은 짓이라 비웃었다. 간디는 대답했다. “나는 원시적 방법 자체를 위해 원시적 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시적 방법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는 것은 이 방법 말고는 할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마을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 걸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네.” 절대적 빈곤 속에서 술과 아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존심과 고결함을 돌려주는 일. 상호 의존과 형제애를 일상에서 실감하는 일. 노동과 명상과 섬김이 함께하는 마을에서의 삶! 그건 어떤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간디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인도의 비전, 아니 인류의 비전이었다. 1947년 의회를 통과한 인도독립법령에 따라 8월 15일 영국의 인도 지배가 종식되었다. 어찌 보면 간디의 이상이 실현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의 날, 그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독립은 온갖 적대와 폭력 속에서 힌두와 이슬람이 결국 결별을 하는 분단 인도가 탄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평생 간디를 추종했고 간디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네루는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버렸다. 그는 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발전된 인도’를 열망했다. 간디의 머리에는 타고르의 시가 떠나지 않았다. “혼자 걸어가라!” 간디는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얼마 못가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투비 성인’으로 출발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영혼’으로 잠들었던 간디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간디의 출발점에 다시 서고 있는 게 아닐까. 혁명의 길과 구원의 길이 다른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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