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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탄핵 이후 대한민국을 생각하자

    제98주년 3·1절을 맞은 어제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일제의 모진 탄압 속에서도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일제에 분연히 맞선 1세기 전의 그날과 달리 대한민국은 국론 분열로 쪼개진 모습이다. 경사스러운 날을 맞고도 기뻐할 수 없는 이 불행한 현실은 어제 오후 비슷한 시간대에 탄핵을 촉구하는 진영과 탄핵을 반대하는 진영이 각각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가진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극심한 대립으로 나라를 휘청거리게 하는 것은 결코 순국선열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아닐 것이다. 이제 대통령 탄핵심판은 헌재 평의가 끝나는 열흘 전후로 선고가 내려지면 마무리 된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면 된다. 하지만 어제 두 집회에서 보았듯이 촛불, 태극기 세력 어느 쪽이든 원하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아 ‘불복’을 주장한다면 이 나라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같은 사안을 놓고도 다른 관점과 논리를 펼 수 있다. 그런 다양성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는 성장하고 사회는 발전해 왔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들을 인정하기는커녕 아예 상종하지 못할 인간 취급을 한다. 표현의 방식도 거칠고 위협적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과 이 대행의 집 주소와 단골 미용실 위치까지 인터넷에 올리며 신변 위협을 가할 정도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흔드는 위험하고도 과격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극심한 혼란과 대립, 갈등을 수습해야 할 1차적인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광장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주장과 정치적 요구들을 정치권에서 제대로 수렴하지 못해 지금 촛불, 태극기로 상징되는 두 민의가 광장에서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오히려 분열을 부추긴다. 어떤 대선 주자는 탄핵안 기각 때 ‘불복종 투쟁’을 벌이겠다고 했고, 어떤 대선 주자들은 어제도 광장에 나가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나라가 사분오열되더라도 집권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지금 정치권과 광장 민심을 보면 헌재의 탄핵 선고 이후가 더 우려된다.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한쪽은 분노를 표출하고자 광장으로 뛰쳐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여야 대선 주자들은 두 쪽으로 갈린 국민에게 헌재 판결 승복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제 정세균 국회의장이 담화문에서 “헌재의 결정을 무조건 승복하고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탄핵 이후 대한민국이 극단적 대립으로 분열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향해 통합의 길을 갈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국난 때마다 일치단결해 위기를 극복했던 선조의 지혜가 절실한 지금이다.
  • ‘아침마당’ 조혜련, 남편 잡고 살 것 같은 이미지?

    ‘아침마당’ 조혜련, 남편 잡고 살 것 같은 이미지?

    ‘아침마당’ 조혜련이 남편과 관계를 언급했다. 조혜련은 28일 방송된 KBS1 ‘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 배우 박해미와 함께 출연했다. 뮤지컬 ‘넌센스2’에 함께 출연 중인 박해미와 조혜련은 뮤지컬 관련 에피소드 등을 공개하며 유쾌한 입담을 펼쳤다. 이날 조혜련은 “남편을 꽉 잡고 산다던데”라는 편견에 관해 “저는 남편한테 완전 복종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다. 사랑 받으려면 남편한테 순종하라고 해서 ‘네 그렇게 하세요’ 했더니 진짜 좋아하더라”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아침마당’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태극기집회’ 김평우 “조선시대도 아닌데 헌재 결정 복종해야 하느냐”

    ‘태극기집회’ 김평우 “조선시대도 아닌데 헌재 결정 복종해야 하느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일원인 김평우(72·사법시험 8회) 변호사가 25일 열린 주말 탄핵반대 집회 현장에 나온 가운데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쳐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통령탄핵기각 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 ‘14차 태극기 집회’에서 “조선시대도 아닌데 헌재 결정에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탄핵 심판 절차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발언을 놓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재 심판에 참여한 대리인으로서 결정에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내비친 게 옳으냐는 것이다. 또 대리인단은 27일 최종변론을 앞두고 있고, 헌재가 요청한 종합 준비서면은 아직 내지 않아 임무에 집중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대리인단 소속 변호사의 한 명일 뿐이며 개인 자격으로 집회에 참가할 자유가 있다는 반대론도 있다. 변론 준비는 여러 변호사가 협업으로 진행해 영향이 없으며 발언은 사적인 견해이므로 대리인단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김 변호사는 이날 “(국회가) 탄핵 사유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여러 사유를 몽땅 섞어 (탄핵으로) 몰았다”며 “여러 개를 묶어서 탄핵사유가 된다는 것은 사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뇌물죄는 말도 안되고 강요죄는 조금 있을지 모르나 대통령을 탄핵할 사유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김 변호사는 대리인단의 서석구(73·사시 13회) 변호사 등과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주에도 집회에 참석했다. 김 변호사는 22일 열린 16차 변론에서도 강일원 주심 재판관을 향해 ‘국회의 수석대리인’ 등 막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갑질, 그 완장의 심리학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갑질, 그 완장의 심리학

    여자가 남자와 만났을 때 제일 지루해하고 듣기 싫어한다는 얘기로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맞다. 옛날 군대 얘기다. 작대기 네 개, 병장이 되면서 어깨에는 5분대기조 분대장을 의미하는 초록색 견장이 올라갔다. 분대장 견장이 붙으니 식당까지 이동할 때 줄 서서 군가를 부르며 가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제일 좋았던 점은 식당에 들어가면 취사반 선임이 식판에 밥을 담아 자리 앞에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밥 위에 노른자가 선명한 달걀 프라이까지 얹어 나오는, 이런저런 소소한 혜택들이 딸려 왔다. 여기에 소대장과 중대 선임하사의 태도까지 하대에서 존중으로 바뀌니 견장은 무소불위의 권위의식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휴가 나왔을 때 만난 여자 후배들이 “그래 봐야 수많은 군바리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 알량한 권위 의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1989년 탤런트 조형기씨가 완장 찬 동네 한량으로 나왔던 드라마로 더 잘 알려진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에는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라는 말이 나온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완장’은 마약이다. 그중 가장 강력한 약효를 보이고 사회를 좀먹는 것은 비뚤어진 권위 의식이란 완장이다. 이 완장은 본인보다 약해 보이거나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유독 힘을 발휘한다. 권위 의식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인의 성격인가, 사회 시스템 문제인가. 권위와 복종에 대한 행동실험 중 유명한 것은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수행한 ‘스탠퍼드 감옥실험’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청년들을 모집해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로 분류했다. 교도관이 된 피실험자들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공격적으로 변했고, 수감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수감자의 일부는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 2주로 예정됐던 실험은 엿새 만에 끝났다. 최근 캐나다 맥마스터대 신경과학과 연구진이 감옥실험을 변형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평상복을 입었을 때보다 경찰 제복을 입었을 때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사회심리학 및 행동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심리학의 최첨단’ 최신호에 실렸다. 짐바르도 교수와 맥마스터대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권위 의식과 맹목적 복종의 원인이 개인의 성격보다는 사회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갑질’이라는 신종 완장 문화가 만연해 있다. 갑질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아지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위에 있어야 한다’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갑질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사회 구조를 좀먹는 갑질이란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협업과 상호부조라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과학은 알려 주고 있다. edmondy@seoul.co.kr
  • 진도개 철마, 토종견 첫 인명구조 적합성 통과

    진도개 철마, 토종견 첫 인명구조 적합성 통과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가 국내 토종견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인명구조견 적합성 시험에 합격했다. 전남 진도군은 최근 대구에서 국제인명구조견협회(IRO) 주최로 열린 ‘국제인명구조견 인증시험’에서 군이 소유한 진돗개 ‘철마’가 적합성 시험에 합격했다고 20일 밝혔다. 철마는 복종과 장애물 극복 능력을 보는 종합전술,제한 시간 내 2명의 실종자를 찾는 산악수색 등 2개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하는 개는 중앙119 소속 30여 마리 등 총 40여 마리다. 철마는 앞서 지난해 11월 이번 시험 응시 자격시험인 동반견(BH)인증시험에서 국내 토종견 사상 처음으로 합격한 바 있다. 진도 철마산에서 이름을 따온 철마는 생후 13개월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헌재 결정 불복종 조짐… 탄핵심판 후유증 우려

    헌재 결정 불복종 조짐… 탄핵심판 후유증 우려

    “계엄 발동” vs “적폐 청산” 맞서… 어느 한쪽은 승복 안 할 태세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2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둘로 분열된 대한민국 광장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촛불집회 진영에선 ‘국민 혁명’을 언급하며 헌재의 탄핵 인용을 압박했고,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집회 측은 탄핵 인용을 전제로 ‘국민 저항’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헌재 탄핵심판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감지되면서 국론 분열의 파장과 후유증이 우려되는 형국이다.지난 18일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를 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국민저항본부를 발족한다”며 “죽음으로 맺은 약속을 바탕으로 결사 항전할 것을 천명한다.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단순히 평화적인 방법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될 경우 계엄령이 발동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촛불집회 진영에선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할 경우 헌재를 탄핵하는 한편 적폐 청산을 위한 혁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격앙된 분위기는 참석 인원 경쟁에서도 나타났다. 촛불집회 측은 이날 80여만명이 모여 올해 중 최대 규모가 모였다고 밝혔으며, 맞불집회 측도 250만명으로 올해 최대 규모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참석 인원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날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광화문광장에서 ‘탄핵 지연 어림없다! 박근혜·황교안 즉각 퇴진! 특검 연장! 공범자 구속을 위한 16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야권 대선주자들이 대거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풍자하는 문구나 퍼포먼스가 특히 많았다. 가수 김종서의 노래 ‘아름다운 구속’이 울려 퍼졌고 삼성 직업병 해결을 요구하는 단체 반올림은 ‘기념 떡’을 돌렸다. 김덕진 퇴진행동 대외협력팀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실세를 구속시킬 수 있었던 힘은 국민 여러분이었다. 다른 재벌들도 벌벌 떨고 있을 것”이라며 다른 대기업에 대한 특검 수사를 촉구했다. 집회에 나온 시민 김모(38)씨는 “헌재의 기각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비정상이 정상화될 때까지 촛불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 측은 오후 7시 30분쯤 본집회를 끝내고 청와대 방면 3개 경로, 헌재 방면 2개 경로, 대기업 사옥이 있는 종로까지 6개 경로로 행진했다. 이날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13차 맞불집회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크게 과격해졌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특검이) 고영태를 구속 수사하기는커녕 수사 자체를 안 하고 있다”며 “억지 수사를 하면서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이 부회장을 구속해 박 대통령을 옭아 넣으려는 더러운 야욕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탄핵 반대 단체들은 이날 국민저항본부를 발족했다. 이들 단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사태는 고영태 세력의 국가 반란이자 ‘남창(男娼) 게이트’로 입법·사법·행정부 모두 고영태 일당의 설계에 따라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탄기국 측은 이날 집회에 250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1부 집회를 마치고 약 1시간 30분간 남대문·한국은행·롯데호텔 앞 등을 지나는 4㎞ 코스를 따라 도로로 행진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박준금, 술 따르라는 감독에 뺨 때린 여배우 “어디다 대고..”

    박준금, 술 따르라는 감독에 뺨 때린 여배우 “어디다 대고..”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박준금의 과거 일화가 재조명됐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훈이 박준금에 관한 일화를 털어놓은 장면이 올라왔다. 감독이 술을 따르라는 치욕스런 요구를 하자 과감히 감독의 뺨을 때린 여배우가 박준금이라는 것. 이훈은 “박준금 누님을 ‘쭈꾸미’ 누나라고 불렀다”며 “누나가 쿨한 성격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후배들을 살갑게 챙겨주는 털털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옛날에는 감독님이 신인 배우들에게 ‘야! 이리 와봐’ 말을 놓았다”며 “그러면 박준금 누나가 ‘아니 감독님 어디다 대고 반말이세요?’라고 따졌다”고 일화를 전했다. 또 이훈은 “감독님이 하루는 ‘너 와서 술 따라’라고 말했더니 준금 누나가 그 자리에서 ‘어디다 대고 술을 따르래’라며 감독님 뺨을 때렸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그 이후 박준금 누나는 감독의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6개월간, 1년 씩 방송 정지를 당했다”고 부당한 대우도 받았음을 밝혔다. 한편 지난 2013년 방송된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박준금은 “예전에 이민정과 함께 연기할 때 따귀를 때리는 신이 있었다”라며 “NG 없이 하려고 풀스윙으로 세게 때렸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더라. 그래서 한 번에 끝났다”라고 말하며 미안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정남 아들이자 ‘적통’ 김한솔, 행방 묘연…가장 위태로운 처지

    김정남 아들이자 ‘적통’ 김한솔, 행방 묘연…가장 위태로운 처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피살됐다. 김정남이 피살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잠재적 위협으로 여길 또 다른 ‘백두혈통’은 누가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첫손에 꼽히는 인물은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22)이다. 김한솔은 프랑스 유학을 마친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김한솔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맏손자다. 김일성-김정일-김정남을 잇는 김씨 일가의 사실상 ‘장손’이자 ‘적통’이다. 아버지 김정남이 사망하면서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2002년 사망)쪽 후손 가운데 생존해있는 대표적 인물이 됐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이복 형제자매를 지칭하는 ‘곁가지’ 가운데서도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김한솔은 프랑스의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를 졸업하는 등 서구 교육을 받은 ‘신세대’다. 숙부인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거침없이 견해를 밝혀 왔다. 특히 2013년 핀란드 TV와의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이 어떻게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면서 “그(김정은)가 어떻게 독재자(dictator)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북한 체제에 대해 나름의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던 조카 김한솔도 이복형 김정남과 마찬가지로 김정은의 ‘눈엣가시’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김한솔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도 김정은 체제에 대해 예전처럼 자유롭게 발언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는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지난해 마카오 또는 중국 등지로 돌아간 뒤 소재가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국가정보원은 15일 김한솔이 마카오에 체류 중이라고 밝혔다. 신변이 위태로워진 그가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는 관측이 엇갈린다. 아버지처럼 사실상 중국 당국의 비호를 받으며 외국에서 잠행을 계속하거나, 북한으로 돌아가 삼촌 김정은에 철저히 복종하며 조용히 살아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김한솔을 북한땅에 들이는 것은 김정은에게 ‘턱밑의 칼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작다. 국내 대북 전문가 일각에서는 신변 보호를 위해 김한솔을 한국 등 안전한 곳으로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 후] 과 동기에게 복종 강요한 대학생 4년형

    ‘아버지 회사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같은 학과 남자 동기생을 1년간 폭행하고 성추행하면서 ‘심리적 복종’을 강요한 대학생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 황한식)는 강제추행치상, 상습특수상해, 강요 등 혐의로 기소된 전모(25)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1심의 징역 7년보다 형량은 다소 줄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과 신상정보 등록은 1심과 마찬가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심리적인 지배·복종 관계가 형성되자 피고인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했다”며 “범행의 경위와 내용, 수단과 방법, 피해의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전씨가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감형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2015년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대학 동기인 A(26)씨를 총 18차례 상습 폭행하고 6차례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씨는 A씨에게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으면 넉넉히 챙겨줄 수 있다”며 ‘심리적인 지배·복종관계’를 형성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상관이 부당한 명령을 내린다면…/조현석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상관이 부당한 명령을 내린다면…/조현석 정책뉴스부장

    ‘상관이 부당한 명령을 내린다면 어떻해야 할까.’ 1995년 개봉한 ‘크림슨 타이드’는 이 같은 화두를 던져 주는 영화다.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하는 함장과 이를 막아서는 부함장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러시아에서 구소련 강경파 군부 지도자가 군통수권 일부를 장악한 뒤 핵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위협하자 미국 핵잠수함이 출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핵잠수함은 러시아의 핵미사일 기지 근해로 접근하던 중 러시아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는다.이로 인해 통신 장비가 고장나고, 미국 국방부의 명령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함장은 직권으로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하지만 부함장은 “국방부의 명령 없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게 되면 전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리게 된다”며 막아선다. 함장을 따르는 세력과 부함장을 따르는 세력이 서로를 감금하면서 갈등은 극으로 치닫게 된다. 국방부의 명령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만일 러시아가 핵무기를 먼저 사용한다면 선제공격을 당하게 되는 것이고,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할 경우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갈등과 반전을 거듭한 끝에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이후 법원조차도 ‘둘 다 옳았고, 둘 다 옳지 않았다’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여파로 최근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발의됐다. 지난달 13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38명은 상관의 위법한 직무상 명령을 공무원의 의무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57조와 지방공무원법 제49조에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개정안에는 ‘직무상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을 거부해야 하고, 이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새로 포함됐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공무원들 때문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불러온 만큼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에 대해 공직사회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무원의 직무상 복종 의무가 약해지면 관료 사회가 제 기능을 못 하고, 공무원들의 업무 태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상사의 명령이 위법 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정작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상사에 대한 처벌 규정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승진을 좌우하는 ‘근무평가’를 하는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부당하고 불법적인 지시와 이에 순응한 공무원들로 인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불렀다는 것이 여론의 힘을 더 얻고 있다. 헌법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공무원은 그 어떤 것보다 국민과 국익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상관이 부당한 명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당연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 공무원은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복(公僕)이기 때문이다. hyun68@seoul.co.kr
  • “모든 결정은 시진핑… 무조건 따르라” 군사위 발표문 가득 채운 ‘충성 맹세’

    중국 인민해방군을 통솔하는 최고 기구인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에 대한 절대 복종과 절대 충성을 재차 다짐했다. 시 주석은 군사위 주석을 겸한다. 중앙군사위가 새해 첫 발표문에서 시 주석에게 충성을 다짐한 것은 군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시 주석의 강력한 군권 강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5일 일제히 6000자 분량의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발표문을 실었다. 군사위는 발표문에서 “시진핑 주석이 군의 모든 중대 사항을 결정하고, 시 주석이 모든 군사 공작에 책임을 지며, 시 주석의 지휘에 따라 모든 군사 행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군사위는 특히 “배의 조타수는 한 명뿐”이라면서 “핵심(시진핑)을 결연히 지키는 것이 우리의 정치적 임무”라고 밝혔다. 이어 “시진핑 주석은 마르크스주의 정치가의 지혜와 이론, 용기, 재능, 조정 능력을 지녔다”고 찬양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2월 7대 군구(軍區)를 5대 전구로 개편하고 제2포병을 미사일군으로 바꾸는 등 건국 이래 최대 군 개혁을 단행했다. 올 초까지 육·해·공 사령관을 모두 측근으로 배치하는 등 군대를 직할 체제로 바꾸고 있다. 특히 군 관련 주요 행사 때마다 한때 군사위 부주석 ‘동료’였던 궈보슝(郭伯雄)·쉬차이허우(徐才厚)의 비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집권 이후 자신이 직접 숙청한 두 ‘부패 몸통’을 본보기로 군대 내 반대 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로 해석돼 왔다. 군사위도 발표문을 통해 “부대에는 적폐가 쌓여 있다”면서 “군사위원회 ‘주석 책임제’에 좀더 높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군사위는 “시 주석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충성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군이 계속해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군에 반대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2015년 말 군사개혁 공작회의 도중 시 주석이 ‘개혁안에 반대하는 자는 모두 물러나라’고 소리쳤을 정도로 반발이 심했다”면서 “군이 주기적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시 주석이 반대 세력을 견제하는 것은 아직 시 주석의 군대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현직 검사, ‘황교안 대선 출마설’에 “더 추해지지 않기를”

    현직 검사, ‘황교안 대선 출마설’에 “더 추해지지 않기를”

    현직 검사가 최근 대선 출마설이 커지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의정부지검 소속 임은정(43·사법연수원 30기)검사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주자설’에 대해 “(법무부) 장관 혹은 총리로서 탄핵정국 초래한 주역”이라며 “한 때 검사였던 선배가 더 추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비판했다.임 검사는 ‘창원에서 근무할 때 일’이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점심시간 모 부장이 ‘황 장관님, 잘 하시잖아’라고 하길래 웃으며 ‘시키는 대로 잘 하죠’라고 맞장구를 쳤다”며 글을 시작했다. 이어 “대권 운운의 풍설을 저도 듣습니다만, 설마요”라며 “법무부장관 시절, 그 지휘를 받던 검찰이 얼마나 비판받았으며, 총리 시절엔 정부가 얼마나 무법천지였는지 드러나는 마당에…”라고 비판했다. 임 검사는 또 “제가 ‘없을 무(無)자 법무부냐’고 내부게시판에 항의한 때가 황 장관 시절이었다”며 “저의 징계취소 소송에서 법무부는 상급자의 명령이 중대하고 명백히 위법한 때에만 복종의무가 없고 명백히 위법한지는 원칙적으로 명령을 받은 자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할 당시 법무부의 장 역시 황 장관이었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장관 혹은 총리로 탄핵정국을 초래한 주역의 한 분이니 더한 과욕을 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맹자께서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 했으니, 한 때 검사였던 선배가 더 추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임 검사는 2012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해 검찰 상부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후 검찰 관련 이슈 때마다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관가 블로그] ‘공무원 영혼 이식법’ 통과될까

    [관가 블로그] ‘공무원 영혼 이식법’ 통과될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지시 무조건 이행서 비롯 “앞으로 회의 자료는 어떻게 메모해야 할지 고민이에요.”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공직사회에도 쓰나미와 같은 충격을 몰고왔다. 대통령의 지시를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던 고위공무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면서 공무원들 사이에 ‘수첩 금지령’까지 나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메모광으로 유명해 수첩에 꼼꼼하게 받아 적는 것을 강조했기에 100만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수첩에 기록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했다. 하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과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깨알같이 기록한 수첩은 박근혜 정부의 치명타로 돌아왔다. 비밀 유지가 필요한 회의는 녹취나 수첩 반입이 금지되고 달랑 포스트잇 몇 장에 간단히 메모하는 분위기였는데 이것도 최씨의 자필 포스트잇이 지난 24일 법원 증거물로 채택되면서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파이 영화 속 ‘007’처럼 5분 뒤에 폭발하는 문서로 지시사항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할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으면 오히려 눈총을 받는 상황에서 되려 “상사의 무리한 지시는 받아쓰기하듯 수첩에 남겨야겠다”고 말하는 공무원도 있다.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38명이 발의한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공무원 영혼이식법’으로 통한다. 최순실 사태가 상사의 지시에 ‘노’를 외치지 못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커졌다는 인식 때문에 나온 법률안이다.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현행법은 ‘복종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위법·부당한 명령에 대한 행동지침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말했듯 ‘나는 시키는 대로 실천한 하나의 관리였을 뿐입니다’란 공무원들의 자기 변명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법률 개정 이유를 밝혔다.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따르는 ‘영혼 없는 관료들의 무책임’이 국정농단 사태에 큰 역할을 했다며 국가공무원법 57조 복종의 의무에 ‘다만, 직무상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을 거부하여야 하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 처분도 받지 아니한다’란 단서를 신설했다. 의원입법이 실제 법률로 통과되는 비율은 20% 정도지만, 정치적 사태로 발의된 입법안이라 원안대로 법이 개정될지는 미지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In&Out]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와 상관의 지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In&Out]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와 상관의 지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플라톤의 ‘국가’는 여러 제목으로 번역된다. 그리스어 ‘Πολιτε?α’에 주목하는 사람은 ‘정체’(政體), 라틴어 ‘De Re Publica’에 충실한 번역가는 ‘공화국’으로 번역한다. 책의 내용에 충실하게 의역하고자 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가 제일 어울린다. 이 제목보다 책의 내용을 더 압축할 수 있는 어휘를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흥미로운 건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려 할 때 인간사회가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다. 권력자가 정의로우면 민중이 그렇지 못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법으로 처벌받고 교정되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지혜로운 통치자, 철인이 다스리기만 하면 이상향으로 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가 올바르지 못한 명령을 남발할 때 어려워진다. 부하와 민초들은 현명하게 대처해 살아남아야 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마주친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신음하는 한국에도 플라톤이 했던 고민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어차피 권력자에게 정의로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들과 통치자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르는 올바르지 못한 지시에 대해 부하 혹은 민초에 머물러야 하는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자세와 방법이 문제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한결같이 윗선의 지시를 탓했다. 속으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최순실과 결탁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부분은 상관의 지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논리다.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바르지 못할 때에는 명백히 본인의 책임이라는 공무원의 기본 수칙조차 이들은 망각한 듯하다.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명령을 따라 유대인 학살에 나섰던 수많은 공무원들이 ‘그것은 국가의 명령이자 상관의 지시였다’고 변명했으나, 예외 없이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상관의 명령은 도덕과 법에 부합할 때만 복종의 가치가 있다. 2015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권력이 줏대 없는 인간을 얼마나 한심한 꼭두각시로 만드는지 보여주었다. 대면 소통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은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며 뒤에 배석한 보좌진에게 물었다. 보좌진들은 일제히 아부성 웃음으로 대통령에게 맞장구를 쳤다. 한국이 민주화된 청렴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회에 지금 국가공무원법 57조를 보완하려는 법률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공무원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넣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법체계로도 위법한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되고, 처벌을 받는 게 원칙이다. 중요한 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명령들이 투명하게 드러날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모든 공무원이 개인의 이메일과 서신을 필요 시 제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고위 공직자에게 사적 이메일을 쓰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정책의 투명성과 반부패를 위해서다. 우병우 사건을 보며 느꼈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공무원을 불러 공직이나 비위에 관한 걸 조사할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에 관한 한 국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불러 정책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인적 비위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5년 임기도 벅찬 대통령들에게 중임을 허락하는 개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투명한 질서를 세우는 게 긴요하다.
  • [최만진의 도시탐구] 국회의사당 건물을 폭파하자

    [최만진의 도시탐구] 국회의사당 건물을 폭파하자

    ‘웨스트민스터’라고도 불리는 영국의 국회의사당은 그 나라 국민의 긍지와 자랑 그 자체다. 1860년쯤 화재로 소실된 웨스트민스터 궁전 자리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마치 하늘을 찌르는 것 같은 뾰족 지붕 형태를 가진 수려한 고딕 양식이다. 여기에는 빅벤으로 잘 알려진 시계탑과 빅토리아타워도 있어 더 눈길을 끌며 영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의회민주의의 탄생지이며, 토머스 모어나 찰스 1세의 사형 판결 등이 행해졌던 역사적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헝가리의 국회의사당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영감을 받아 1902년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혼합 양식으로 건립됐다. 이는 헝가리의 1000년 정주 역사를 기념하고 혼란스러웠던 과거를 청산하며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표출하고자 하는 혼과 염원이 담긴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건축 재료와 공사 기술 그리고 인력을 오로지 헝가리의 것에만 의존했다. 오늘날에도 시민의 사랑을 담고 역사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낭만과 추억의 다뉴브 여행 최고 목적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독일의 국회의사당은 최고의 건축적 화두를 던져 준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원래 1894년에 지어진 독일 제2제국의 의사당을 통일 후에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이 건물의 방점은 지붕 중앙에 설치한 유리 돔이다. 이는 바로 아래에 있는 본회의장으로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 속에는 둥근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시민들이 도시를 전망하면서 건축적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여기에는 민주적 소통, 투명성, 시민의 감시와 참여 등의 심오한 건축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해 히틀러가 계획했던 제3제국 의사당은 괴물처럼 끔찍한 것이었다. ‘인민의 궁전’이라 불리던 이 건물은 히틀러가 제1제국으로 지칭한 로마신성제국 시대의 양식을 빌려온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중앙에 무려 300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둥근 지붕을 가진 것이다. 또한 사면은 수직으로 길게 뻗은 열주가 이 돔을 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거대한 중앙 돔은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영원한 세계와 권력을 상징한다. 돔을 에워싸고 있는 기둥은 이에 복종하는 신민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나치 정권이 독일 인민과 함께 전 세계를 무력으로 지배해야 한다는 팍스로마나의 정신을 합리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계획은 2차 대전의 종전으로 다행히 말소됐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1970년대에 대한민국의 땅에서 국회의사당으로 버젓이 태어나게 됐다. 어린 시절 서울로 여행 갔던 필자는 여의도에 짓고 있던 이 거대한 건축물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우리 의사당 건축에서는 민주, 소통, 경외감, 민족 자긍심 등의 언어를 찾아볼 수 없다. 집은 주인의 양식과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국민을 신민으로 삼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히틀러의 정신을 무의식적으로 계승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은 나치를 영원히 추방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한 것은 나치 거점 도시였던 뉘른베르크의 전당대회장에 설치돼 있던 히틀러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단호하게 폭파한 것이다. 우리도 이제 어두운 독재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건축을 추방하고 없애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유리처럼 투명하며, 맑고, 시민에게 친근하며, 민족정신과 미래를 담아내는 21세기의 새집을 하나 지어 봄이 어떨까?
  • 여섯 인생선배가 들려주는 노년의 삶

    여섯 인생선배가 들려주는 노년의 삶

    선배 수업/김찬호·전호근·황현산·박경미·김융희·심보선 지음/서해문집/272쪽/1만 4500원 한국 사회의 가장 두꺼운 인구층인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들어가면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어떤 노년을 준비해야 할까. 청년 세대는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도움을 요청하는 절규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선배 시민을 키워드로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나이듦이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지난해 10월 안양문화예술재단에서 ‘선배가 돌아왔다’는 제목으로 개최된 세대 문화 대중 강좌에 나선 여섯 연사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선배란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부여되는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를 닦고 내적인 성장을 기하면서 형성해 가는 품성이다. 6명의 지식인들은 상처와 얼룩투성이의 생애도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자 선물이 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화인류학자 김찬호는 세대 단절 혹은 세대 갈등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는 “창조성의 방향이 아래 세대로 향하는 것이 생성성 또는 생산성의 핵심”이라면서 “내가 아래 세대를 보살핌으로써 나를 돌보는 것, 후대에 봉사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일방적인 헌신이나 양보, 희생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후배들의 통찰과 에너지를 빌려오는 것이니 함께 배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고전인문학자 전호근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며 성숙을 기하는 것이 선배의 소임이라면서 인생의 목표를 재점검하고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책읽는 노년을 무시하는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끊임없는 배움과 독서, 글쓰기를 권장한다. 문학비평가 황현산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경험만으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노년에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열린 마음과 겸손함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신학자 박경미는 불복종이라는 키워드로 노년의 저항을 이야기한다. 거대한 시스템이 우리를 어떻게 노예로 전락시키는지를 드러내 보여 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 자연스럽게 뿌리 내리고 인간 관계를 맺었던 전통 사회의 삶의 방식을 재사유하자고 제안한다. 이 밖에도 미학자 김융희는 고대의 다양한 예술 작품을 통해 고대 신화에서 계절의 순환이 지니는 상징을 인생에 연결시키면서 이제부터는 내면의 목소리와 직관에 귀 기울여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은 문화 생산 주체로서 노년의 다양한 삶의 결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공론장으로 이어져 사회 참여로 확장되는가를 탐색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인사]

    ■법무부 ◇보호직 <3급 전보>△보호관찰과장 박수환△대구보호관찰소장 이형재<4급 승진>△부산소년원 분류보호과장 박우춘<4급 전보>△법무부 양현규△소년과 이용호△보호법제과 황진규△부산소년원장 오연호△대구소년원장 권기한△전주소년원장 민근기△안양소년원장 김정식△춘천소년원장 황계연△대전소년원 대전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 윤용범△서울북부보호관찰소장 이형섭△수원보호관찰소장 장재영△청주보호관찰소장 윤태영△울산보호관찰소장 김행석△창원보호관찰소장 이성칠△제주보호관찰소장 염정훈△위치추적대전관제센터장 이하성△의정부보호관찰소 고양지소장 한상익△수원보호관찰소 성남지소장 이정민△부산보호관찰소 동부지소장 권을식△서울소년원 교무과장 김상록△광주소년원 교무과장 김양곤△광주소년원 분류보호과장 서진남△대구보호관찰소 행정지원과장 안병경△광주보호관찰소 관찰과장 송중일◇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3급 승진>△출입국기획과장 이동권△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장 안규석<4급 승진>△출입국기획과 이상달△출입국심사과 성재신△외국인정책과 반재열△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총무과장 심준섭△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관리과장 임병수<4급 전보>△출입국심사과장 김도균△이민조사과장 임진택△이민정보과장 이덕룡△외국인정책과장 길강묵△국적과장(주재관 귀임일부터) 김현채△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지원국장 이상랑△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이민특수조사대장 윤종석△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이민특수조사대장 이춘용△김해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장 김수남△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 양차순△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장 김태수△법무부(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주재관 부임일부터) 박상욱 ■국세청 ◇부이사관 승진 <본청>△창조정책담당관 김지훈△청렴세정담당관 이동태△법인세과장 윤영석<국세공무원교육원>△교육기획과장 이기열 ■경남도 ◇4급 전보△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이기언 안재규△공보관 노영식△경제통상국 국제통상과장 김신호△여성능력개발센터소장 김종순△인재개발원 인재양성과장 최진옥△행정국 인사과 송준필 손사현 박민규 백삼종 김태문 장태용 허상윤 최복식 정석원 홍득호 조웅제△농정국 농산물유통과장 김준간△농정국 농업정책과장 오용택△농정국 축산과장 양진윤△수산자원연구소장 김종부△복지보건국 식품의약과장 김점기△도시교통국 토지정보과장 허남윤△환경산림국 수질관리과장 신창기△재난안전건설본부 도로과장 구진권△농업기술원(과장요원) 이병정△양산시 박금석△거제시 김경열△미래산업본부 연구개발지원과장 직무대리 조현옥△서부권개발본부 서부청사운영과장 직무대리 문일△경남도립거창대학 사무국장 직무대리 강춘석△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직무대리 오문택△재난안전건설본부 재난대응과장 직무대리 신정민△여성가족정책관 최재영△행정국 세정과장 우명희△기획조정실 교육지원담당관 정준석△기획조정실 정보통계담당관 배태석△행정국 인사과 강임기△재난안전건설본부 안전정책과장 조종호△경제통상국 고용정책단장 강현출△경제통상국 기업지원단장 백유기△행정국 행정과장 김봉태△행정국 대민봉사과장 윤경석△행정국 회계과장 제해식△문화관광체육국 관광진흥과장 박정준△복지보건국 장애인복지과장 이인숙△서부권개발본부 서부대개발과장 박일동△서부권개발본부 한방항노화산업과장 백승섭△환경산림국 환경정책과장 정영진△의회사무처 입법정책담당관 이종근△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강호천△의회사무처 의사담당관 심복종△인재개발원 인재개발지원과장 구인모△경남도립남해대학 사무국장 서상진△환경교육원장 강차석△도로관리사업소장 박정규△농업자원관리원장 이정곤△해양수산국 항만정책과장 김양두△미래산업본부 투자유치과장 이종수△경제통상국 경제정책과장 김경원 ■전북도 ◇과장급△인권센터장 양천수△예산과장 곽승기△성과관리과장 윤석중△총무과장 윤여일△자치행정과장 이후천△세정과장 김상호△친환경유통과장 신달호△농식품산업과장 조호일△문화예술과장 구형보△관광총괄과장 육홍기△전국체전준비단장 고재현△자연생태과장 정토진△산림녹지과장 양정기△지역정책과장 안동환△교통물류도로과장 이희영△항만공항하천과장 김용두△토지정보과장 최종엽△기업지원과장 이조승△미래산업과장 전병순△탄소산업과장 임노욱△정무기획과장 이연상△새만금개발과장 송기항△의회사무처 행정자치전문위원 문병억△공무원교육원 교육운영1과장 이근상△공무원교육원 교육운영2과장 임차승△농식품인력개발원장 김윤섭△도립국악원장 신동원△동물위생시험소장 한재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전문위원 김세원 현창헌 ■경상일보 △편집국장 추성태△논설위원 이태철△광고사업국장 서찬수△사회부장 신형욱△정치부장 이재명△경제부장 김창식△문화부장 홍영진△디지털뉴스부장 배정환 ■대덕대 △교육부총장 겸 교무처장 박상우△입학처장 한영철△취업처장 이호근△행정처장 노재신△산학협력단장 김태규△생활관장 최병권 ■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 조정숙△약제부장 조윤숙 ■수협중앙회 ◇승진 <부장급>△감사실장 한철희△경남지역본부장 김현수△정책보험부장 어영일△IT관리실장 성낙근△총무부 우동근(교육)△총무부 오준영(교육)◇전보 <부장급>△준법감시실장 정지열△유통사업부장 이승룡△공제보험부장 이영준△노량진개발사업부장 박종근△판매사업부장 이종환△연수원 임정배◇교육 <부장급>△총무부(교육) 김재완 장기태△총무부(국방대학교 안보과정) 허영훈◇직무대행 <부장급>△준법감시인 직무대행 정지열 ■KB캐피탈 ◇신규 선임 <부사장>△위험관리책임자 강영호△여신운영본부장 오관기<상무>△디지털사업본부장 이재흥◇승진 및 보임 <전무>△영업채널본부 황수남<상무>△경인지역본부장 최승호△준법감시인 최재원 ■신한생명 ◇신규 선임 <상무>△준법감시인 장유희△정보보호본부 남기호◇승진 <본부장>△영남본부 김상기△고객지원본부 정봉현<팀장>CBM지원팀 김성진△경영기획팀 김순기△상품기획팀 이성원△언더라이팅팀 박기원△리스크관리팀 유민철<지점장>△서귀포지점 김도한△TOP ACE지점 송종우<센터장>△광주고객플라자 김은숙△인천고객플라자 김은숙△청주고객플라자 김미선 ■브레인자산운용 ◇전무△경영관리본부장 서영석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CS 총괄 상무 조기호 ■KBS시큐리티 △사장 은문기
  • 부패·파벌 도려낸 시진핑, 전인대 대표 108명 퇴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부패 혐의로 낙마한 지도자들을 ‘정치 음모가’로 규정했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새해를 맞아 시 주석의 지난해 10월 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 연설문을 공개했다. 이 연설에서 ‘정치적 음모가’로 규정된 이들은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 궈보슝(郭伯雄)·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공작부장 등이다. 시 주석은 “이들 5명은 단순히 금전적 탐욕과 부패 때문에 처벌받은 게 아니라 정치적 음모에 연루됐다”면서 “야심을 품은 이들은 은밀하게 파벌을 형성했다”고 비난했다. 시 주석은 또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반대만 일삼았다”면서 “이들의 ‘엄중한 정치적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들의 ‘정치적 음모’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당 이론지 치우스(求是)는 ‘정권 찬탈 음모’라고 규정했다. 이는 시 주석이 항간에 떠돌던 저우융캉 등의 정권 전복 기도설을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SCMP는 “시 주석이 저우융캉 등을 직접 겨냥해 정권 찬탈을 획책한 ‘음모가’로 규정한 것은 오는 가을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권력 강화 의지를 확실히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산당 중앙기율위원회와 선전부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과 공동으로 반부패 다큐멘터리 ‘철을 담금질하려면 자신이 더 단단해야 한다’를 제작해 3일부터 방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영원한 길 위에서’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기율위, 검찰, 공안 등 사정 기관에서 낙마한 고위 관료들의 부패 행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신화통신이 시 주석의 지난해 연설을 공개하고 CCTV가 반부패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것은 올해 시 주석의 사정 드라이브가 더 거세질 것을 시사한다. 시 주석 집권 이후 4년 동안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부패로 낙마한 대표만 108명에 이른다. 시 주석은 특히 당 기구인 중앙기율위가 당원이 아닌 관료를 감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국가 사정 통합기구인 ‘국가감찰위원회’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왕치산 기율위 서기가 주도하고 있는 이 기구는 국무원 산하 공안부와 사법부는 물론 검찰과 법원까지 관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현재 베이징, 산시, 저장에서 시범 가동 중인 국가감찰위원회가 2018년 3월 공식 출범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 - 김효숙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 - 김효숙

    인간의 몸이 고깃덩어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에 대한 전일적 관점을 위반하는 데서 시작한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도발적 상상력을 끌어와 보면 이러한 점은 더 명백해진다. 인간을 꿈틀거리는 생명덩어리, 즉 고기로 표현한 그의 이미지에 기대면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새로이 증명할 방법을 탐구한다. 이때 우리는, 완벽한 몸이라는 정형을 벗어나 감각과 존재를 해방하고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본능의 심연까지 가 닿으려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인간의 살과 고기의 살점을 저울에 달 때와 정용준의 관점은 다음 같은 문장에서 겹친다.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개들’,105쪽). 함량과 수치만을 기준으로 따지면 인간은 고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무게가 고기와 동급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하다. 베이컨의 고기-인간들은 2) 육체라는 전체성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정형과 규격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뇨·혈액·타액·정액 같은 체액들,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하거나 홀쭉해진 형체들을 그의 그림은 보여 준다. 여기에 정용준의 소설은 해부하고 해체한 육체의 일부분들과 조각들, 먹다 버린 음식물 찌꺼기처럼 넘치는 비만한 살들, 지문, 주민등록번호, 냄새 같은 기호들을 추가한다. 육체라는 전체로부터 일부분이 끊임없이 탈주하는 그곳에서 인간은 재정의된다. 흘러나온 육체의 일부분들이 스스로 의미를 발설하면서 전체성으로서 육체의 허위가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자가 이 지구 상에 있는 한 완결할 수 없는 질문, 그래서 우리는 반복하여 묻는다. 그 물음이 단지 존재의 물질성을 해명하려는 것이 아닌 한 실존 그 자체로서 무수한 질문을 품는다. 해부된 육체의 일그러지고 녹아내린 듯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누군가가 주문한다면 공포를 주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갈가리 찢어지거나 분해된 육체 3)의 성분들, 일부분이 지나치게 비대한 육체는 미학적이지 않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물질과 물질이 부딪쳐 상처 나고 찢어진 것을 원상태로 되돌리려 애쓴다. 완결된 육체, 곧 육체의 전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을 죽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형태를 갖춘 몸이 와해될 때 인간은 이른바 고기가 되고 말 테니까. 살점 일부와 한 컵의 피, 한 바가지의 오줌으로 존재가 정의된다면 그것은 과연 한 점 얼룩일 뿐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서 정용준의 소설로 들어가보면 우리는 거기서 육체의 질곡과 해방을 동시에 경험한다. 정용준의 소설은 세계를 이루는 존재자들을 되도록 부분적으로 보여 준다. 완전체로서 육체가 아니라 그것을 쪼갬으로써 개별성과 존재다움을 드러낸다. 쪼개진 그 조각에 장식이란 없으며 당연히 아름답지도 않다. 자연 상태 그대로 인간들은 거칠고 낯설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몸의 조직에 정신을 심으면서 정용준의 소설은 국부로 전체를 드러낸다. 그것은 전체성으로서보다 피 한 방울, 지문, 살점 일부분들에 압착되어 있다. 몸은 해체되면서 전체를 말하고, 부분은 전체로 나아간다. 정용준의 소설은 가족공동체로부터 발화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동시대 작가들과 구별된다. 그는 존재를 말하기 위해 우리 삶의 작은 조직들에 주목하고, 몸을 해체하듯 관계를 해체한다. 롤랑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러한 조직들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정용준은 ‘말한다’. 사진만이 인간의 육체를 죽임으로써 전체를 보여 준다는 바르트의 사유방식으로 말하면 정용준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 몸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일부분으로 접근한다. 미소한 부분으로부터 존재의미를 캐면서 가장 생생한 육감을 재현해 내려 한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까지도 정용준의 육감은 벋는다. 존재가 어느 한 부분의 신체조각으로 증명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존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이해방식을 얻게 된다. 보이지만 ‘없는’ 쁘리즈락 우리 몸은 ‘근대’라는 개념이 만들어 낸 하나의 물질이다. 시간은 몸의 물기를 쥐어짜면서 흐르고, 우리의 몸은 점점 건조해지고 단단해져 간다. 시간에 휩쓸려 가는 물질로서의 육체는 점점 추악해지고, 위선 속에서만 순결성을 띤다. 이 세계는 온통 ‘금지’ 구역이자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육체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육체를 무너뜨리고 분해하고서야 위선의 고리는 끊어진다. 개인을 넘어선 인류 전체의 육체에 대한 이야기가 그때 탄생한다. 그것은 어느 개인의 몸에 관한 담론이 아니며, 불멸하는 육체를 이미지화한 비개인적인 것이다. 금지에 결박된 덩어리로서 몸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을 그 몸의 일부로 자유롭게 구가하는 생명성이다. 사회의 습속을 배반하고서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몸, 자연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듯 거칠고 기이한 몸들은 그때 허위에서 해방된다. 자연의 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때 우리 몸은 사회라는 인위적이고 완강한 간섭보다 자연이라는 거칠고 전체적인 범주 안에서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이란 바로 그러한 지점에 구겨 박힌 육체를 불러내는 장르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세계가 우리에게 존재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온다면 위와 같은 단언만으로는 그 답이 불충분하다. 여기에 정용준 소설의 고민이 자리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필요 없는 사회적 기호를 우리는 두 개 갖고 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다. 전자가 개별 신체의 주소지라면 후자는 개인의 번지수다. 두 개 코드는 인간 개체에게 한편의 안정과 다른 편의 위험을 동시에 안겨 준다. 존재를 나타낸다는 것은 안전을 보호받는다는 의미와 그것이 위협당하는 현상을 동시에 내포한다. 인간의 나타남이 사회의 가시적 존재임을 증명해 준다면, 존재의 숨김에 대한 탐문은 비가시적 공간의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가시적이라는 분명한 현상 가운데서도 모든 타자는 불가사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비가시적 존재와 가시적 존재 간 차별성은 없다. 가시적인 존재자에 대한 탐문도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474번’에서 우리는 이런 존재를 만난다. “그의 지문은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실제로 그에게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었다.” 가시적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존재를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 ‘그’라는 3인칭만이, 열다섯 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오명만이 그를 말해 준다. 살인을 한 이유도 ‘그냥’이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무존재자가 그것이 있는 존재자를 살해했으므로 사건은 실종된다. 법이 작동하는 곳은 물리적 공간인데 그것을 적용할 존재가 없다. 죄를 물어야 하지만 죄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다며 종결지으면 될 일이 아닌가. 정용준은 여기서 ‘사건 있음’과 실존재의 부재라는 현상을 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던져 준다. ‘가해자 없음’과, 분명히 누군가가 죽어 없어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여기에 이 소설의 발화의지가 있다. 가해자 없음으로부터 정용준은 오히려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지문’ 부재현상으로부터 소설로 접근해 가자. 지문은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인간의 개별성을 나타내는 유일한 기호이므로. 정용준은 이 소설에서 지문 없는 존재 곧 몸이 없는 존재와, 살인자의 ‘의도’를 추적하기보다 살인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재의 ‘없음’에 대해 말한다. 살인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무심코” “거리낌 없이” 몹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러한 살인자에게 우리는 정신병력이 있는지,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금품이 필요했는지 등을 물을 수가 없다. 작가가 살인동기부터 이렇게 밝혀 놓고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살인동기의 자연스러움을 그 존재의 어떤 특성과 연계해야 하는가. 살인이란 타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절멸하는 것이기에 범죄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해자 없음’과 ‘무심코’라는 두 가지 단서를 얻었다. 이에 대한 단정은 잠시 유보하고 또 다른 단서를 위해 조금 더 앞으로 나가 보자. 그 살인현상에 대해 정용준은 이렇게 해명한다. “사자가 사슴의 숨통을 끊고서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 용서를 빌지 않”고 “자신의 용맹함을 자랑하며 포효하”듯 그가 살인을 했다고. 그는 “잔인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스스로도 정신이상에 대해 부정”한다고. 그는 죄책감이 없으며 살인을 해놓고도 용맹을 자랑하는 존재다. 이쯤에서 우리의 사고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 무성無性, 이렇게 존재를 확정하고서 정용준이 보여 준 살인자의 특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손에 잡혀 오는 것이 있다. 그의 본성의 그러함과,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부터 확보한 ‘그’라는 존재. 존재를 감추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는 탁월한 킬러다. 존재가 은닉하는 문제를 감추는 식으로 존재하는 자를 신으로 명명한 하이데거 방식대로라면 그는 최상의 존재자 4)다. 자연 이후 문명 이전의 존재자, 인간의 죄를 물으며 공격적으로 성장한 종교현상을 빗대는 존재다. 그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없으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성’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보면 생각의 가지는 다시 갈라진다. 정용준은 ‘그’로부터 신의 존재를 환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적 사고를 넘어서려 한다는 것을, 그의 소설은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열린 지층이라는 것을. 단정은 그의 소설의 지층을 단면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의 지층을 거기에 더 얹어 놓자. 그는 아버지와 누나 사이에 태어났지만 이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근친이다. 그래서 현실공간으로 부상할 수 없는 존재, 정용준의 표현대로 ‘쁘리즈락’이다. 가시적이므로 분명한 존재자이지만 사회의 법망에 등록할 수 없으므로 ‘없는 사람’이다. 법의 그물망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들과 달리, 정화할 수 없는 원죄의 피가 흐르는 몸, 주소지도 번지수도 없으므로 무성의 캐릭터다. 이 ‘없음’ 현상에 ‘신’이라는 비가시적 존재가 자꾸만 얹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가 자꾸 겹쳐지는데도 명징하지 않은 그 존재가. 도스토옙스키가 ‘백치’에서 미쉬낀 공작에게 신의 속성을 심어놓았듯 정용준은 ‘474번’의 그에게 신의 속성을 이식하지 않았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으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소재지에 신도 ‘그’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작가의 질문은 이어진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살해에 과연 의도가 있는가? 의도된 살해가 증오나 이해관계의 결과물이라면, 의도 없는 살해는 자연현상처럼 일상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살해 후의 정서와 애도 행위가 죽음과 나를 관계 맺게 하지만 이때 살해에는 아무런 정감도 없으므로 죽음에 대해 내가 떠안을 책무란 없다. 살해는 일상처럼 이뤄진다. 충동·쾌락·분노 같은 격동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괴로움도 없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자신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동화에서처럼, 존재의 사라짐과 비밀의 완전 봉인은 동시에 진행된다. 그런 점을 알게 된 아이가 악행에 빠지듯 그는 ‘순수’하게 살인을 한다. 지능 높은 어린이들을 훈련시켜 체제에 반대하는 양민을 죽이게 한 폴포트 정권도 이러한 순진무구함이 더 악랄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순수함과 죄책감 없음은 동류의 정서임을, 그러므로 순수하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것이며, ‘순수한 죄인’은 더 극악함을 일깨운다. 도깨비감투를 쓴 아이, 지능 높은 순수한 아이, ‘474번’의 그는 이때 최상의 존재자가 된다. 정용준의 소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 세계에 널린 ‘현상’들을 증명한다. 그의 소설의 두께는 그렇게 형성된다. 그러니 앞서 우리가 본 ‘그’가 ‘지문’ 곧 육체가 없는 존재임을 확인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설의 또 다른 문면으로 접근하기 위해 ‘그’의 주민등록번호 부재 현상을 보자. 번호가 부여되면서 존재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번호 부재는 곧 존재 부재를 일컫는다. 정용준은 이 존재를 쁘리즈락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이를 요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유령현상과는 구별하고 싶다. 번호가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 번호가 사실은 존재를 희미하게 지워 나가는 기호임을 우리는 ‘벽’의 염전 일꾼들에서 본 바 있다. 가혹한 구타, 죽음 같은 침묵의 공간, 감정은 일체 거세된 채 오직 복종하고, 죽음에 이르러 물질이 되어 가는 그들의 몸을 보면서 우리는 21, 23, 9 같은 숫자일 뿐인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어진다. 존재를 지워 존재를 드러내는 이러한 화법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은 다시 갈라진다. 그러면서, 번호는 우리의 육체를 알기 위해 매겨진 하나의 기호이며, 육체를 아는 것으로부터 모든 지식은 출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육체, 거울로서의 육체, 이 육체로부터 우리의 모든 ‘앎’은 출발한다. ‘그’의 몸이 없으므로 우리가 그를 알 수 없는 것은 그러므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건 수사관들이 ‘유령’이라며 고개를 젓고, 지문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어서 존재증명이 불가능한 그. 상대는 나를 볼 수 없으나 나는 상대를 꿰뚫어보는 일방향의 시선이 목적성을 가질 때 악의든 호의든 가장 완벽한 존재자가 되는 지점을 이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상처 충돌의 흔적-체액들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일에서부터 사유가 탄생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로의 회귀를 꿈꾼 셰익스피어가 ‘리어왕’(1막 4장)에서 물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맥락 안에서 인류가 존재를 증명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의는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되는 존재증명, 그것은 결국 인간의 ‘몸’이 ‘운동’할 때부터 물질로 전락하는 때까지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존재에 대한 탐색은 그 무엇보다 꾸준히 정치하게 진행되어 왔고, 정용준의 소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이른바 ‘겹치는’ 존재자들로부터 인식의 깊이를 수립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타자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우리는 언제나 바라보는 ‘시선’이었으며 동시에 ‘응시’당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이는 하이데거가 타자를 ‘함께 있음’ 즉 서로 관계하는 방식으로 본 것으로, 정용준 소설의 타자들 중에는 냉혈한의 정서로 관계망을 형성한 인물들이 제법 있다. 이를테면, 한 점 살이나 오줌 얼룩으로 존재를 말하고, 각기 다른 피들이 혼종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음습하게 그리면서 존재를 증명하는 ‘개들’, 혈액 투석으로 빠져나가는 단백질을 채워 넣는 일에 골몰하며 계란을 먹어치우는 아버지를 보여 주면서, 새 피를 보충하고 허약해진 ‘근육’을 회복하려는 남성의 고투를 그린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가 그러하다. 한 점 살과 피·눈물·오줌 같은 체액들로 그가 누군지를 말하기 위해 정용준은 미소한 부분을 응시한다. 피는 수치數値라는 정확성으로 우리를 근원의 비밀로 이끌지만 정용준의 소설은 이러한 과학적 접근을 위해 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수치’를 따지려드는 우리를 긴장시킨다. 이 소설에서 피는 부패의 습격을 막으려는 살에 대한 메타포가 아닐까. 살과 몸은 제 안에서 피를 단속할 때는 부패하지 않지만 피가 쏟아져 살만 남을 때 몸은 썩는 것.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살과 몸에는 피가 방부제다. 존재는 보여 준다, 인간의 체액 중 피가 가장 원초적인 진실이라는 것을. 존재의 근원을 은폐하는 것과,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깊은 속성에 관계된 것임을 작가는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 ‘피’라는 물질만이 개별자와 가족을 묶는 준거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 있다. 타자의 피와 내 피의 원소가 겹쳐 하나의 혈맥을 이루는 양태를 생물학적으로는 가족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도 정용준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개들’에서 ‘곰’은 동물세계의 지배자와 동격이다. ‘모란’은 그의 하인이자 아내·종업원·딸이다. 모란이 곰의 하인이자 종업원이라는 데에는 의미 부여가 달리 필요 없다. 그러나 아내이자 딸이라는 자격은 보편을 위반하는 강한 금지를 동반한다. 성생활과 혼인관계의 교차로가 가족이라면, 아내이자 딸이라는 모란의 자격은 근친상간이라는 강한 장치를 내포한다. 성생활의 특권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근친상간이 꽃피는 두려운 비밀의 세계, “불가결의 접합부로서 끊임없이 환기되고 거부” 5) 되면서 관계의 틀 안으로 수렴되는 욕망이 곰의 아내이자 딸인 모란에게서 발산된다. 그러나 모란이 손님들로부터 ‘연변아가씨’라고 불리는 데에 이르면 또 다른 소격현상에 우리의 의식이 밀린다. 모란이 곰과 혈연관계가 아니며, 원시공간 속 여성 대명사로서 문명 이전 세계에서 가족이 형성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아직 자연으로부터 미분화한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가 앞서 본 ‘474번’의 그가 실정법에 매이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과 같은 정서를 몰아온다. 곰과 모란을 이해하기 위해, 이 부부와 동거하는 고아인 ‘나’를 보자. ‘나’에게서 풍기는 다소 불쾌한 징후들, 이를테면 ‘나’는 곰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한 집에 살지만 곰의 아내인 모란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지금이야. 비가 오면 여자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거든. 모란의 방에 찾아가. 마음을 고백하고 결혼하자고 말해. 모란도 원하고 있을 거야. 병구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 “정말.”(‘개들’, 120쪽) ‘나’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발현에 충실하다. 노련한 ‘나’가 병구를 꼬드기지만 그것은 불가능을 주문하는 것이고, ‘나’도 그 점을 잘 알기에 모란을 두고 병구와 경쟁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경쟁 상대가 아니기에 사실은 어떤 주문도 가능할지 모른다. 지능이 모자란 병구가 사랑을 위해 고투하는 어수룩한 형태의 결말은 빤하고, 모란을 향한 병구 마음의 경사도와 실패 가능성 또한 비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니까 모란에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근육’을 단련하는 냉혈한이다. 이렇게, “이두박근, 승모근, 상박근, 하박근 등 근육”을 키우며 “내 근력은 곰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를 은밀하게 확인해 나간다. ‘곰’은 원시자연의 지배자이므로 나는 곰이라는 법을 뛰어넘기 위해, 즉 모란을 얻기 위해 근육을 단련한다. 곰의 근력에 근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화해 가야 할 욕망의 저장고, 그곳은 근육을 단련함으로써만 채워질 것이다. 어머니이자 누나인 모란의 육체와의 연속성과 경계 없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곰처럼 완력을 갖춰야 한다. 어머니-누나의 경계가 없는, 있다 할지라도 나와 비혈연인 모란과는 피차 내재적 질서가 없는 관계이므로, 우연과 외면성으로 정해진 관계이므로 ‘곰’과 ‘나’에게 모란은 혈연이라는 필연에 묶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두 인물은 이 세계에 유일한 하와, 곧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모란에게 똑같이 집중하는 것이다. ‘개들’의 인물 중 우리는 ‘병구’를 지나칠 수 없다. 곰과 ‘나’가 근육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명한다면, 병구는 근육들의 세계로부터 일찍이 소외된 자로서 또 다른 신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것도 죽음으로써. 모란의 방문이 열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곰”을 보았고, 그 뜻을 알았고, 아는 순간 세계가 열리는 그 지점으로부터 병구를 들여다 보자. 그리고 그 순간 침묵하는 병구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모호함이 순간적으로 벗겨지면서 충격을 가하는 인식세계, 병구는 곰의 건장한 몸을 보고 있었고, 성을 인식했고, 그 순간의 눈뜸은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는 입사식과 같다. 새로운 세계의 도래는 ‘앎’이라는 충격파가 이전세계의 인식을 부수는 것이다. 곰과 모란이 아프로디지아(aphrodisia, 어떤 형태의 쾌락을 제공해 주는 행위·몸짓·접촉 ; 푸코, 같은 책, 55쪽)를 누리고 있는 그때 수다쟁이인 그가 말이 없어지고, 울보가 울지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멍하니 어둠의 한 지점을 응시”하면서 “무엇인가 깨닫”는 그곳이 ‘앎’의 정곡이다. 그의 시각을 충격하는 것은 미학적인 감정이기보다 본능에 대한 자극이며, 지식에 대한 충동이 그 대상과 맞닥뜨린 순간이다. 병구가 본 곰은 나체였고, 곰의 몸 중 일부분이었으며, 그 조각만으로도 세계의 비밀은 누설되었을 터, 곰의 벗은 몸으로부터 흘러나온 비밀이 그를 충격한다. 일부분이 세계 전체의 환유일 때 그 조각은 본래 체적을 초과하여 팽창하는 게 아닐까. 좁은 문틈으로 바라볼 때도 바깥세계의 면적은 팽창하는 이치대로. 벌거벗은 ‘곰’처럼 ‘개들’은 고깃덩어리 같은 육질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어떤 덩어리가 툭, 이 세계를 흔드는 것을 감지한다. 병구가 곰의 나체를 응시하는 한 몸에 대한 의미생산은 이어진다. 남녀 상호 간 본능적으로 생산되는 몸의 기호들이 상대의 감각을 지배할 때 거기서 비밀이 탄생하고, 그것에 휘어잡히고, 사로잡힌 자는 몸이 부단하게 발설하는 비밀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비밀은 ‘복종’하지 않는다. 주인인 몸을 언제나 벗어난다. 탈주를 노릴 때만 비밀은 자신의 신분을 확정한다. 그러니 절대성을 갖는 비밀은 없다. 모란의 몸이 생산하는 기호들이 병구에게 와 닿자 세계의 비밀은 열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누설된 비밀 때문에 병구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죄인으로서 스스로 그 비밀이 선고한 사형수가 된 셈이다. 성에 대해 발설하는 순간 언어는 세속화라는 폭발력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은 수습 불가능한 자기 증식력을 동반한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노골적 담론화는 죽음으로 가는 직행통로다. 나타나는 순간 폭발하는 속성 때문에 성은 자신을 숨기는 대가로서만 유지된다. 병구의 죽음은 이렇게 그것의 나타남을 몸소 덮어버린 철저한 제의다. 성을 버리는 것, 그것은 죽음처럼 깊고 캄캄하지만 가장 분명한 가시성이다. “이십 년을 살다 죽은 병구의 사체는 십 개월을 산 도사견보다 작아 보였다”는 지점에는 세계의 비밀을 보게 된 자신을 폐기해 버린 왜소한 몸과, 삶의 마지막 기표인 “오줌으로 변색된 면바지가 까”맣게 남는다. 경련이 일고, 감각이 빠져나가고, 몸은 굳어간다. 이때 흘러나온 오줌은 산 자를 해체하는 마지막 운동의 징표다. 죽음 직전 감각이 마지막으로 운동한 흔적이며, 인간이 물질화되는 바로 직전 현상이다. 병구는 오줌 얼룩을 남기며 이 세계의 비밀로부터 도망쳤고, 그 얼룩은 성이라는 불경스럽고 속된 것으로부터 병구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 육체의 기호일 것이다. 욕망하면서도 수치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안타깝게도, 병구가 스무 살 성년의 문턱을 막 넘어서다 직면한 세계는 그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인식의 빛은 병구가 눈을 뜨는 순간 번쩍임과 사그라짐이 동시에 진행되고 만다. 병구는 발설되어서는 안 될 것을 싸안고 캄캄한 죽음 속으로 투신한다. 억압되었으므로 알 수 없었으나 억압을 통해서만 검토되는 성에 대해 허용된 그 시각, 병구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동시에 죽었다. “나를 죽여 주세요”라고 자신의 서투른 삶 같은 글씨를 써놓고서. 베이컨의 그림 한 컷처럼, 그의 가장 강렬한 경험과 인식, ‘지식애’(피터 브룩스)의 흔적은 오줌 얼룩으로 남는다. 그의 몸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액체인 오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어난 격렬한 경련의 징표다. 그가 죽음으로써 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염려도 무화되었다. 부재하고 비표명되도록 숨겨야만 성은 생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의 본성은 오래도록 은밀하게 유지되어 왔을까. 죽음처럼 절대적인 침묵은 없으므로 차라리 죽음으로써 입을 다물어 버린 병구, 자신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저 세계의 문을 죽음으로써 영원히 닫아 버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말해져서는 안 될 세계는 폐기되고, 병구의 목숨도 그 비밀처럼 폐기된다. 변하는 살 냄새에 존재 묻기 정용준 소설의 인물들에게서는 눅눅한 냄새가 난다. 이 또한 ‘존재’에 접근하기 위한 후각의 발현으로 보인다. 죽은 것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시각에 의존하는 문명인과 달리 정용준의 캐릭터들은 원시 인간처럼 퇴화하지 않은 후각으로 존재의 진실에 접근한다. 원시공간에서 막 생성된 존재가 바닷물로부터 비릿함을 감아올릴 때처럼 개 냄새, ‘모란’ 냄새, 곰팡이 냄새, 비린내, 게 냄새 등으로. 하층계급과 중간계급의 관심사에서 보이는 중요한 차이가 냄새에 대한 태도에 있다는 지적 6)대로라면, 정용준 소설에서는 소외계층의 냄새가 불유쾌한 조짐들을 몰고 온다. 하층민일수록 그들의 습관은 냄새에 더 잘 실려 있다. 이웃은 그들의 습속을 냄새로 타자에게 실어 나르고, 냄새는 이웃에게 번지면서 생명에서 비생명으로 진행한다. 이때 ‘썩음’이라는 현상을 동반하는데, 냄새를 맡는 일은 사멸할 것에 대한 불쾌한 감각의 마지막 쏠림이다. 부패 현상의 끝과 죽음은 같은 지점에 있으며, 죽음이 가까울수록 냄새도 강렬하다. ‘개들’에서의 냄새는 어디에서 오는가. 비와 오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된 곳은 개가 도륙당하는 도축장이다. 죽음 냄새가 음습하게 번지면서 불쾌함이 주조를 이룬다. 오래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기분을 바꾸려고 다른 데로 신경을 써도 여전히 붙들리는 냄새. 악취도 오래 맡다 보면 휘발되기 마련이나, 그렇지 않다면 어디선가 지속적으로 살이 썩고 있다는 증거다. 오래 씻지 않은 하층민의 삶처럼 눌어붙은 냄새, 고질화된 고통, 그것은 썩어가는 살의 증표다. 생명체는 예외 없이 부패하고, 부패선상에서의 피 흘림과 절규는 살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진행된다. 그때까지만 우리의 몸은 냄새를 풍긴다. 살 냄새, 즉 우리가 살아 있다는 냄새를. 비가 싫다. 마당은 오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되고 냄새는 진해진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개 냄새. 주변을 장악하고 오염시키는 우울한 기운들. 마르지 않은 오줌 위에 누워 철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노랗고 빨간 눈들. 플라스틱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 팔이 끊어지도록 들었다 놨다를 반복해도 불쾌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개들’, 100쪽) 우울하고 물기 마를 날 없고 갈망으로 충혈된 “노랗고 빨간 (개의) 눈들”. 개들처럼 인물들도 습도 높은 공간의 음습함에 지배당한다. 찌든 ‘개 냄새’가 어두운 기운에 섞인 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감, 그것은 곧 도축될 짐승의 살 냄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우울한 정서가 깔린 공간에 떠 있는 개들의 처절한 눈빛에서 예정된 죽음을 본다. 질척한 죽음의 세계를 눈에 핏발이 서도록 바라보는 개들. 전망 없이 하강하는 비, 그 빗금들을. 소설 읽기는 해석학의 유혹 7)을 동반한다. 표층 의미가 견인해 내는 숨은 의미를 찾아 들어갈 때 느끼는 쾌락이 없다면 독서행위를 지속하기란 어렵다. 비평은 독서행위의 연장인 만큼, 소설 읽는 즐거움의 다른 표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용준 소설의 존재들은 눅진한 그림자처럼 천천히 몸집을 불렸다가 작아지며 이렇게 소설 공간으로 편입된다. 어둠의 한쪽을 잠시 떼어낸 듯한 그 그림자들은 인간의 살이 흘러나온 것처럼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아래 예문의 ‘비린내’는 핍진한 생명의 냄새를 풍긴다. 나는 수도꼭지를 꽉 잠그고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있는 삶은 계란 두 개를 꺼내들었다. 열려 있는 창문에서 습한 바람이 들어왔고 어디에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났다. 나는 창문을 닫고 탁자에 걸터앉아 계란껍데기를 깠다.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고 현기증이 났다. 하얗고 부드러운 계란을 반으로 나누고 한쪽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65쪽)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 그것은 생명의 발원지로부터 확산하는 냄새다. 투석 환자인 아버지가 과도하게 식탐을 부려 다른 환자들보다 계란과 치즈를 더 많이 먹고, 다시 혈액에 독이 쌓여 삶과 죽음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생명의지는 죽음을 거부한다. 예문에서 보듯 이러한 생명의지가 ‘나’ 또한 존속게 한다. 인류가 출현하던 그때,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이 비린내를 몸에 내장하고 나온 후 우리들 세포에 그대로 삼투된 냄새, 체액을 품은 살이 비린내를 풍기고, 땀을 많이 쏟을수록 생명체는 냄새를 더 짙게 풍긴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의 살은 냄새의 진원지가 되는 것,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썩어가면서 살고 있고, 냄새를 풍기고 살면서 동시에 죽어간다. 살이 내장한 액체들이 다 마르기 전까지만 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정용준의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살 냄새와 피 냄새를 그리워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 또는 ‘사이’의 문학이다. 다시 ‘474번’으로 돌아가 누나가 사갖고 들어온 꽃게에서 풍기는 ‘진짜’ 냄새를 맡아 보자. 그 냄새는 이제까지 먹어 온 가짜 게맛살과 달리 생경하다. 지금까지 ‘나’는 게맛살이 가공식품이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고, 누나는 누나로서 존재했으므로. 그러나 누나가 꽃게를 사들고 와 ‘진짜’ 모성을 풍김으로써 비극이 불거진다. 몰라도 상관없을 세계를 ‘나’가 알아버린 것이다. “누나가 어머니라는 사실”처럼 가짜 냄새와 진짜 냄새가 겹치고, 이제 진짜가 출현함으로써 자아 탐문이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 ‘나’가 누구인지는 ‘가짜’가 규정해 왔지만 진짜를 아는 순간 나를 충격하는 세계, 끝까지 누나여야 할 존재가 ‘진짜’ 어머니가 된 이때부터 게는 썩은 냄새를 풍긴다. ‘나’가 누나의 존재를 아는 순간부터 진행되는 게의 부패현상, 이는 정용준이 ‘개들’에서 병구를 통해 보여 준 인식의 자국을 따라간다. 앎으로써 세계는 열리지만, 앎이 죽음을 몰고 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어머니/누나, 진짜 냄새/가짜 냄새로 나뉘는 세계, ‘나’의 존재는 진짜 꽃게 냄새와 게맛살 냄새처럼 섞인다. 어느 쪽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모를 겹침 현상이다. 꽃게는 점점 썩어가고, 냄새는 확산되고, 존재는 죽어간다. 죽음 뒤에는 냄새를 풍기지 않을 존재,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살아 있는 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를. 존재를 규정하는 데 완벽한 준거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정용준은, 육체의 일부분들을 열어놓고 그 조각들을 비개인적 욕망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풀어나간다. 피와 눈물과 오줌의 물기가 번들거리는 살은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으로도 존재는 증명되고 해방된다. 정용준 소설에서의 ‘부분’들은 비천함의 육체적 표지이기보다 욕망의 현실적 드러남이다. 근대의 합리와 원칙과 정형을 따르지 않고 결합·분해·해체하여 인류의 근원적 욕망을 그 조각에 실어낸 표식이며 현상이며 증상이다. 그곳에 근접해 보면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이 작은 조직들에 박힌 ‘존재’가 보인다.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살피” 8)는 화가의 역설적 심미안에 정용준의 소설은 다시 중첩된다. ‘나’가 ‘곰’을 죽인 후 “손목을 타고 피와 내장이 그리고 그의 생명이 바닥으로 쏟아지”(‘개들’, 128쪽)는 여기, ‘나’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모란을 포함하여 모든 부권을 계승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몸에서 빠져나온 몸의 일부분이 ‘개의 간식’으로 먹히는 현장에서 벌이는 아들의 저항과 투쟁이 보이는가. 과연 지금,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중량’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가 거부되거나 수용되는 경계에서 육체의 일부분들이 뭉치거나 녹아내리거나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장에 다다른 생명체들에서 오히려 인류의 영속적인 생명의지를 반어법으로 만나면서 ‘존재’를 재확인한다. 소설이 반드시 미의식을 표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정용준 소설 속 원시의 육체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의도 없는 듯 냉담한 그곳으로부터 낮게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남성들조차도 중성 코드를 띠는 곱다란 사회에서 정용준의 소설은 다소 거칠게 인간 육체의 일부를 들어낸다. 전체성에 대한 해체와 저항, 부분으로 해석되는 육체들은 그때도 욕망한다. 전체로부터 흘러나온 조각과 살 냄새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한다. 그래서 그 물질들의 전일적 주체인 인간은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재증명된다. 나.는.누.구.인.가. ■각주 1)정용준 창작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문학동네, 2015), ‘가나’(문학과지성사, 2012)를 참조하였다. 이 글은 이 작품집에 실린 ‘개들’, ‘474번’, ‘벽’,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대한 고찰이다. 2)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고독·공포·절규가 가득하며, 흘러넘치는 비가시적인 힘들이 잔뜩 뒤틀린 채 표현된다. 프랑크 모베르, 박선주 옮김, ‘인간의 피 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그린비, 2015, 117쪽. 3)노태훈은 “인간 근원의 존재론적 탐색을 지속하는 여러 작가들과 (정용준이) 변별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몸’이라는 실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용준 소설의 지향을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태훈, ‘문학성을 회복하는 방법-정용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문학의 오늘’, 2015, 겨울호, 216쪽. 4)엠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외 옮김,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그린비, 2013, 9쪽. 5)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 나남, 2015, 126쪽. 6)슬라보이 지제크, 이현우 외 옮김, ‘폭력이란 무엇인가’, 난장이, 2014, 232쪽. 지제크는 이웃을 “냄새 풍기는 자”로 정의한다 7)위의 책, 118쪽. 지제크는 이를 보다 깊은 의미나 숨겨진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8)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디자인하우스, 2016, 161쪽. 저자와 베이컨의 대담 부분.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누가 민중을 선동하는가/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누가 민중을 선동하는가/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정치학’(Politika)에서 시민이 공직에 참여하는 기준에 따라 민주정체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평등의 원칙에 따라 국정에 참여하는 유형, 둘째, 재산등급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는 유형, 셋째, 양친 모두 시민이면 누구나 공직에 참여하되 법이 지배하는 경우, 넷째, 시민이기만 하면 누구나 공직에 참여하되 법이 지배하는 유형, 마지막 유형은 다른 점에서는 같지만 법 아닌 대중(plethos)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경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 대신 민중의 결의(psephisma)가 최고 권력을 갖는 다섯 번째 정체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이런 왜곡된 민주정체는 민중선동가 탓에 생겨난다고 보았다. “법이 최고 권력을 갖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민중선동가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민중이 다수로 구성된 독재자(monarchos)가 되기 때문이다. 다수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최고 권력을 갖기에 하는 말이다.” 독재자가 된 민중은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까닭에 폭군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독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체는 무늬만 민주정체이지 실제는 독재정체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참주정체와 닮았기 때문이다. 민중선동가들은 법이 최고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하면서 더 훌륭한 시민들에게 폭군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중에게 아첨을 떠는 자들은 민중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 아닌 민중의 결의가 최고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은 민중선동가들의 책임이라고 규탄한다. 그들은 왜 민중을 선동할까. “민중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들이 민중의 의견(doxa)을 지배하면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민중이 그들에게 복종하니 말이다.” 민중선동가가 공직자를 비판하면서 “민중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하면 “민중은 기꺼이 그들의 청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 모든 공직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해서 민중선동가들은 민중의 권력을 빌려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 최고의 권력을 갖지 못하고 민중의 결의에 따라 결정되는 체제는 진정한 민주정체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민중의 결의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민중의 결의들이 넘친다. 촛불과 맞불에 참여하여 헌법기관들을 겁박하는 대중 모두 법 위에 군림하려는 “다수로 구성된 독재자”의 속성을 빼닮았다. 이들이 정파적 이해를 좇아 과장과 왜곡을 서슴지 않는 정치꾼들과 언론들,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민중선동가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2300년 전과 다른 점은 이들을 질타하는 현인이 드물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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