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복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직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62
  • 생활고가 민족분규 불댕겼다/영지가 분석한 오늘의 소 사태

    ◎에너지ㆍ생필품 태부족… 곳곳서 “빵달라” 항의 시위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 소련의 운명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소련 전문가 켄틴필의 이름으로 소련의 최근 정세를 다음과 같이 분석 보도했다. 소련 제국의 남쪽 변경인 아제르바이잔사태는 고르바초프로서는 최악의 시기에 들이닥친 것이다. 지금 소련 국민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생필품의 극심한 부족 때문에 혹독한 불만의 겨울을 맞고 있다. 우랄의 대공업도시인 스베르들로프스크시에서는 배급 쿠폰을 갖고도 식료품과 보드카를 살 수 없게 되자 성난 군중들이 항의 데모를 벌였으며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심장부인 체르니고프에서는 한 공산당 간부의 승용차에 소시지와 보드카가 실려 있는 것을 본 행인들이 거의 폭동에 가까운 사건을 빚기도 했다. 시베리아에서는 유전 기술자들이 타고갈 비행기의 연료가 떨어져 원유를 채굴하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 게다가 앞으로 두달후면 지방의회선거가 있어 고르바초프의 공산당은 흡사 불난 호떡집 같다. 사실 고르바초프는 연방내의 각 공화국들이 명실상부한 자치권을 갖는 순수한 연방공화국권을 갖고 일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수십년동안 누적된 회의론을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5년전 고르바초프가 집권할 당시만해도 소련의 민족주의란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암초였다. 브레즈네프나 흐루시초프와 같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그는 소련 연방의 중심부에서만 근무해왔기 때문에 변두리 사정을 잘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최근의 아제르바이잔사태에 비상조치를 취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에 그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냉정한 논리로 보면 자주독립을 원하는 공화국들은 그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누가 그 작은 발트국가들을 필요로 하겠는가.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는 리투아니아보다도 작은 나라다. 코카서스 산맥 너머의 민족들은 로마시대 이래 정복자들이 억누르기 어려운 골칫거리였으며 1백명 이상의 통역을 불러야 할 정도로 상통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탈출을 막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이 고르바초프의 머리를 스쳐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한번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입밖에 낸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때 공산당 중앙위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어느 곳도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용납치 않겠다고 선언했듯이 그 반대의 얘기만 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연방의 결속 뒤에는 공산당의 결속을 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하겠다. 그가 일부 연방탈퇴를 용인하려 할 경우 가장 불안한 것은 군부일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처한 문제는 단지 연방내 일부 공화국들의 민족주의 물결이 그가 설득해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쳤다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추구해온 페레스트로이카 개혁논리가 그러한 독립운동을 추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집권적 경제에서의 탈피와 독점적 통제체제의 폐기등 그가 추구해온 새 지표들은 사실상 각 공화국의 자주경제를 고무시켜 왔다. 발트해 국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양의 물자를 떼어놓은 다음 여분이 있으면 이를 팔지않고 물물교환방식으로 부족한 다른 물자를 확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작은 공화국들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과의 경제적 유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당이나 소련 국민들이 연방의 해체를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보수세력의 심각한 반동을 유발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가장 불만이 많은 일부 공화국의 이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 중고생비행 “교복착용과 무관”/83년 「자율화」 이후 오히려 줄어

    ◎“재착용”여론과 엇갈려 눈길/문교부 집계 일부에서 중ㆍ고교생들의 탈선 등을 염려해 다시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중ㆍ고교생들의 탈선은 교복의 착용여부와는 관계가 없다는 통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교복자율화가 실시된 지난83년을 기점으로 조사된 이 통계는 교복이 전면폐지된 첫해 잠시 증가현상을 보였던 중ㆍ고교생들의 비행이 그이후 계속 감소추세를 보여 최근에는 발생률에서 모두가 교복을 입던 82년보다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을 나타냈다. 18일 문교부집계에 따르면 지난88년 탈선ㆍ비행ㆍ범죄 등으로 퇴학 또는 자퇴한 중ㆍ고교생은 모두 7만7천4백89명으로 83학년도의 8만4천2백77명보다 6천7백88명이 줄어들었다. 이들 교복자율화조치 바로 전해인 82년과 비교해 보면 82년에는 중ㆍ고교 총학생수 4백52만5천6백54명가운데 7만6천3백46명이 학교를 그만둬 비행학생의 비율이 1.68%였으나 88년에는 총학생수 4백82만4천97명에 비할때 비행학생이 1.60%로 나타나 0.08%포인트가 낮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고교생만을 따로 보면 83년보다 총학생수가 28만7천5백36명이나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퇴학당한 학생수가 83년의 5만6천4백55명보다 4천8백14명이나 준 5만1천6백31명으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82년과 비교하면 82년엔 총학생수 1백92만2천2백21명 가운데 4만8천4백76명이 학교를 떠나 고교생 전체의 2.52%를 차지했으나 88년에 학교를 떠난 학생은 2백30만5백82명의 2.24%에 그쳐 0.28%포인트 낮아졌다. 이들 전체를 연도별로 보면 82년 퇴학률이 1.68%로 7만6천3백46명이 학교를 그만두었고 83년에는 일시적으로 크게 늘어 8만4천2백77명이 퇴학당해 1.79%를 기록했으나 그 뒤로는 84년 1.72%,86년 1.63%로 해마다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냈다. 고교생의 경우에도 82년 4만8천4백76명이 퇴학 등을 당해 비행학생이 2.52%였으나 83년만 2.80%로 증가를 보였을뿐 그 뒤로는 84년 1.72%,86년 1.63%로 점차 감소했다. 문교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88년 2학기부터 문제학생 한명에 교사 한명을 선임,생활지도를 하게하는 결연제도 등의 효과로 비행학생이 더욱 줄어 89년에는 88년보다도 1천여명이 줄어든 5만여명선에 그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교복자율화 첫해인 83년만 갑작스런 해방감으로 비행학생이 다소 늘었을 뿐 교복자율화가 점차 정착되어 가면서 제자리를 되찾고 있으므로 교복착용여부와 학생들의 탈선과는 거의 무관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교부에 따르면 전국의 4천1백22개 중ㆍ고교가운데 12.9%인 5백31개교가 현재 교복을 입히고 있으나 그중 90%는 사립중ㆍ고교이고 서울의 경우 교복착용 중ㆍ고교 96개교 가운데 공립은 중학교 1개교와 고교 6개교에 그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