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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의 신봉자” 후세인,항복은 안한다/독 디벨트지,심리학적 분석

    ◎어려서부터 호전적… 전투가 삶의 일부/최악의 상황와도 자살 가능성은 없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그리고 그에게 화약이 남아 있는한 싸울 것이다. 또한 그는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순교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살아남는 능력을 타고 났으며 그에게는 끊임없는 전투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독일 디벨트지는 21일 사담 후세인을 심리학적으로 면밀히 분석한 전문가 그룹의 결론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10년 사이에 중동에서 전쟁을 두차례나 일어나게 한 올해 53살의 사담 후세인의 본성에 대한 열쇠는 그의 어린 시절에서 발견된다. 그는 평범한 농부의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엄청난 육체노동을 통해 그를 유산시키려 했음에도 그는 태어났다. 공격적이며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분노해 있는 그러한 성격은 그렇게 어머니로부터 사담에게 전해졌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숙부밑에서 자란 그는 사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인정을 받기 위해끊임없이 투쟁을 해야했고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의 소년시절은 외부에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때의 한 사건은 그의 감정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자신의 말이 죽었을때 오른팔에 10일간이나 발작적인 마비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감정적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불안과 함께 육체적·심리적 강인함과 살아남는 능력이 사담 후세인의 가장 대표적인 개성으로 나타난다. 그에게는 인간을 전혀 감정의 개입없이 본능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후세인에 대한 잠재적 암살자는 바로 그의 가족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사담은 모든 갈등의 해결에 있어서 힘의 원리를 신봉한다. 그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며 자신이 우세에 자신이 있는한 상대를 공격한다. 그에게는 계약이나 약속이 의미가 없다. 아무튼 그의 심리적 특성을 근거로 분석할때 걸프에서 그의 조기 항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공격을계속할 것이다. 사담 후세인은 전쟁으로 그의 국민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주요한 피해를 입힐 경우 이라크가 어떤 대가를 치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성공을 한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데 주저치 않을 것이다. 사담 후세인은 단지 이 전쟁이 자기 생명이나 자신의 권력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그리고 이라크의 군사적 힘이 완전히 전멸될 것이라고 평가될 경우에만 협상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것이며 체면을 고려치 않고 쿠웨이트에서 나오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획득한 것을 모두 포기하지만 권력은 그대로 보유한다는 협상으로 걸프전쟁이 끝난다면 그는 자신의 전략적 계획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그의 특성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 김좌진장군의 손자 할복/어제

    ◎일 총리 파고다공원 방문 때맞춰/50여 바늘 꿰매… 생명엔 지장없어 방한중인 일본 가이후총리가 파고다공원을 방문한 10일 상오11시48분쯤 파고다공원 맞은편 길에서 독립유공자유족회 상임이사 김경민씨(36)가 가이후총리의 방한에 항의하며 할복자살을 기도,중상을 입고 한국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독립투사 김좌진장군의 장손으로 알려진 김씨는 이날 상오10시쯤부터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원 1백여명과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및 3·1여성동지회원 등 3백여명과 함께 파고다공원 맞은편 인도에서 피켓 등을 들고 『가이후총리 방한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다 가이후총리가 탄 승용차가 파고다공원 정문에 도착하는 순간 『나가자』는 구호와 함께 도로로 뛰쳐 나가려다 전경들에게 제지당했다. 김씨는 갖고있던 16절지 4장 분량의 성명서를 뿌리면서 품속에서 20㎝쯤 되는 등산용칼을 꺼내 웃옷을 벗어 제치고는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면서 배를 가로로 두번 그어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옆에 있던 나라사랑 한마음운동협의회 청년부장 오해수씨(36) 등에 의해 이웃 한국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1시간 남짓동안 50∼60바늘을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은 뒤 317호실에 입원했다. 치료를 맡았던 담당의사는 『복부상처의 길이는 25㎝쯤이며 깊이는 1∼2㎝이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 「꼴망파」 대부 최태준은 누구인가

    ◎수십억 사채놀이… 인테리어 사업도/정치인ㆍ검찰 관계자등 비호설 파다 국회의원 등 인천지역 저명인사 6명이 구명운동을 벌인데다 전과(11범)누락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천지역의 최대 폭력조직 「꼴망파」 두목 최태준(38)은 지난87년 4월 자파 행동대원을 동원,「호남파」 조직원 5명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기 전까지만 해도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외형상으로 인천시 중구 신포동에 「준인테리어」를 경영하는 중소사업가였다. 그러나 「준인테리어」는 「꼴망파」의 거점이였으며 그곳에서 수십억원의 자금을 동원,사채놀이를 해 얻은 수익으로 그의 조직을 엄밀히 키워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는 특히 사교술에도 뛰어나 이 지역 정치인을 비롯,수사기관과도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져 지난해 9월 인천시경이 전격적으로 그를 검거하기 위해 전담반까지 편성하고 수배전단까지 배포했으나 정보가 사전에 유출,검거에 실패했었다. 특히 지난 2월 최가 검찰에 자수할때만 해도 고위 수사담당자와 사전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는 지난52년 9월13일 인천시 중구 내동에서 행상을 해온 홀어머니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 때문에 국민학교만을 졸업했고 13살때부터 소매치기를 시작,지난 80년까지 절도(특수절도 포함) 8회,폭력 및 상해 4범 등 12범으로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기에 바빴다. 더욱이 국내 조직폭력배 3대 패밀리의 하나인 서방파 두목 김태촌(수감중)이 인천진출을 2번씩이나 시도했으나 결국 최에 의해 모두 좌절될 정도로 막강한 인천지역 폭력조직을 장악했다.
  • UR협상과 「할복」(사설)

    제네바의 가트본부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한 한국농부 이경해씨의 심경을 우리는 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농어민후계자협의회가 밝혔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수출국들이 UR 농산물협상을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에 정부만으로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인식하고 할복이라는 극한적 방법으로 한국 농어민 1천만의 뜻을 나타낸 것』임을 우리도 이해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부만을 상대로 UR협상 타결을 지켜보며 그로써 예상되는 타결 이후의 생존문제를 속수무책인 채 받아들여야 하는 막막한 처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해보기 위해 그는 농민대표로 협상공간에까지 진출했던 한 사람이다. 그가 국제협상 무대의 대책없는 높이와 엄청난 파고에 절망을 느꼈으리란 것도 짐작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협상꾼들의 귀에까지 울리는 우리 농어민의 「소리」를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행동은 너무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것이었지만 농수산물 수입이 전면개방될 경우 죽음과 진배없는 파탄을 만난다는 생각에 한국의 1천만 농민이 사로잡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세계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최전선에 배치되어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며 그래도 어느 정도의 번영을 누리고 살도록 싸워온 극동아시아의 크지 않은 나라 한국에는 이런 농어민이 1천만이나 있다. 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한국정부가 파고높은 UR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이라는 현실을 거인나라 협상 상대자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보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은 국제협상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라와 나라까리 국제간에 통용되는 문법과 질서로 조정하고 결말을 내야 하는 일이다. 정서적 대응으로는 한치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는 냉혹한 이성의 겨룸자리인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교역과 경제교류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어느 나라도 문을 닫고 혼자서만 살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수출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다. 가트에 가입하고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적극 참가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나라다. 할복을 기도한 이씨도 우리가 처한 이런 형편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는가 하는 심경도 든다. 그러나 우리가 아닌 남들,특히 협상에 참가한 협상대표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착잡한 느낌도 든다. 어느 나라건 남다른 사정과 애로가 있기 마련인데,한국만 유독 극한 행동을 펴는 것은 국내문제의 수습미흡으로 빈축을 살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면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협상자리에 나가 있는 정부대표의 운신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면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다. 「UR협상」이라는 검은 그림자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이웃 일본도 겪고 있는 일이고 실제로 너무 많은 이견과 복잡한 사정들의 얽힘 때문에 협상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이경해씨에 의해 던져진 충격을 빨리 수습하고,이를 계기로 우리의 국론도 모으고,협상전략도 가다듬어 슬기롭게 대처하는 기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입상품이나 사치성 소비재에 탐닉하는 생각없는 소비자의 자성까지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
  • 한국 농민,가트본부서 할복/농어민 후계자협 이경해회장

    ◎“UR협상에 반대”/의장 면담뒤 복도서… 생명엔 지장 없어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과 관련,우리농촌의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중인 농어민후계자협의회장 이경해씨(43)가 5일 하오4시40분쯤(현지시각) GATT(관세 및 무역일반협정) 사무국 복도에서 할복자살을 기도,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자살기도로 복부에 4∼5㎝ 정도의 상처를 입고 제네바 주립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앞으로 10여일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바주재 한국대표부가 6일 농림수산부에 알려온바에 따르면 이씨 등 농민대표 5명은 5일하오 GATT 본부로 드주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 그룹의장을 방문,면담을 하고 나오면서 이씨가 갑자기 일행에게 『누가 같이 자살할 사람 없느냐』고 물은뒤 스위스제 등산용 칼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는 것이다. 이씨는 강춘성 전국농민단체협의회장 및 농협조합장 2명,축협조합장 1명 등과 함께 지난4일 출국,제네바의 GATT 본부를 방문한 다음 벨기에의 EC(유럽공동체) 본부 및 미국 워싱턴에 들러 우리농촌의 어려운 실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우리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로비활동을 벌이고 오는13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이씨는 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서울시립 농대를 졸업한뒤 82년 낙농부문 농어민 후계자로 지정돼 정부지원을 받아 장수군 장수읍에서 한우 30여마리를 기르고 고랭지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그는 지난88년 회원 4만5천여명인 농어민후계자협의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된 뒤 농어민 후계자들에 대한 정부지원의 감소로 협의회내에 불만이 높아진데다 지난 8월의 후계자대회가 서울이 아닌 충남 성환종축원에서 열리는 등 뜻대로 치러지지 못하자 당국에 이를 항의하기 위해 10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농어민 후계자로서 농업을 되살리는데 앞장선 공로로 88년10월 FAO(세계식량농업기구)로부터 「올해의 농부상」을 수상했다. ◎후계자협,지지 성명 한편 농어민후계자협의회는 이에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우리농업을 존폐의 위기로까지 몰고갈 이 협상의 반대를 재천명한다고 밝혔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7)

    ◎“번지는 퇴폐문화”… 10대 정서 좀먹는다/청소년 50%가 “음란비디오 봤다”/충동 못이겨 모방범죄 크게 늘어/“탈선온상”유흥가 단속ㆍ공연문화 개선 지속돼야 지난 88년초 서울 YMCA 청소년 상담실이 서울시내 남녀 중고생 6백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39.3%인 2백73명이 음란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고 대답해 충격을 던져 주었었다. 불과 2년뒤인 지난해 말 한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년전 보다 훨씬 높은 10대 청소년의 59.7%가 음란비디오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또 다른 조사에서는 국교생의 36%가 성인용비디오를 시청한 적이 있다고 응답해 음란물이 우리사회에 그것도 특히 청소년층에 급속히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조사에서 나타난 것 처럼 요즘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이 음란비디오를 본 경험이 있으며 나이어린 국민학생들까지 음란비디오에 물들어 가고 있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외국의 환락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음란ㆍ퇴폐쇼 등이 이제는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 강남과 이태원 등의 웬만한 유흥업소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고 더욱이 이들 업소에는 청소년들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드나들고 있다. 밤을 새워 영업을 하는 만화가게에서는 나이어린 학생들이 담배까지 피워대며 성인만화를 보는데 열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검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적발된 음란ㆍ퇴폐사범은 모두 1만2천7백12명으로 지난해 같은기간의 적발건수 보다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의 불법비디오 단속반이 지난달 말까지 적발한 불법음란비디오는 5천1백35건에 2백45만1백84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나 늘어났다. 우리사회의 음란ㆍ퇴폐행위는 이처럼 양적인 면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더욱 저질화되고 침투대상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남자 접대부를 고용,여자손님들에게 술시중을 들도록 하는 이른바 「호스트바」가 단속의 눈을 피해 번창하고 있고 음란비디오는 어른들의 손을 거쳐 안방에까지 들어가 어린자녀들이 부모 몰래 훔쳐보는 경우까지 흔하게 됐다. 두발과 교복자율화로 청소년들은 쉽게 유흥업소에 출입할 수 있게 됐으며 역주변 등 곳곳에 열린 비밀가게에서 음란도서를 자유로이 구입해 볼 수도 있다. 「노인대학」간판을 내건 어두컴컴한 비밀댄스교습소에서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유부남ㆍ유부녀들이 대낮에도 춤을 추고 있다. 수십억대를 넘는 음란ㆍ퇴폐물을 만들어 전국에 팔아온 혐의로 지난 2월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구속된 백윤강씨(47) 등 18명이 팔다 남은 압수물 가운데는 근친상간을 묘사한 만화와 수간이나 성도착행위 등의 내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등 정상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저질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크게 범람하고 있는 음란ㆍ퇴폐물은 청소년들의 성범죄를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강간을 저질러 붙잡힌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음란비디오를 본뒤 충동적으로 똑같은 행위를 흉내내고 싶어 범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음란비디오를 본 중학생이 국민학교 1학년 여학생을 방범초소로 끌고가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폭행한 사건까지 있었다. 전문가들은 음란ㆍ퇴폐사범을 추방하기 위해서는 단속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유흥업소나 잡지ㆍ도서ㆍ비디오제작업자들의 자체 정화와 사회적인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음란ㆍ퇴폐물에 대한 수요를 없애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어른들 스스로 퇴폐업소 출입을 삼가는 것과 아울러 학교와 가정에서 청소년들이 음란ㆍ퇴폐업소에 접근하지 않도록 선도해 나가야만 한다는 의견이다. 대검찰청 윤석정 형사과장은 『우리사회에서 음란ㆍ퇴폐사범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안마시술소ㆍ퇴폐이발소 등 퇴폐업소의 출입을 삼가는 등 범국민적인 퇴치운동을 벌여나가는 것과 함께 각종 사회ㆍ종교단체에서도 건전생활운동 및 도덕성회복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음화 제조ㆍ판매죄의 법정최고형이 징역 1년에 불과하며 음반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불법음란비디오 제작업자에 대한 처벌도 징역 2년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한편 음란ㆍ퇴폐사범에 대한 사회적 응징도 강해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들이다.
  • 권기진특파원/현지서 본 북한사회(총리회담 취재기:상)

    ◎“철저한 통제 속의 계산된 개방” 실감/우리 기자 만난 사람 요원들이 뒷조사/「밀입북자 석방」은 모든 대화의 “지정곡” 북한은 여전히 철저한 통제사회임을 실감한 방북 나흘간이었다. 지난 16일 상오 9시부터 19일 하오 1시28분까지.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북한에 체류한 약 76시간. 이 짧은 기간 동안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본 북녘땅은 숨막힐 듯한 통제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다. 휴전선의 남북방한계선에 설치된 굵은 철조망과 초병의 모습에서만 남북의 긴박한 대치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을 뿐 북쪽과 남쪽의 산천은 너무나 흡사해 마치 고향을 찾는 것 같았다. 이같이 남북의 겉모양이 같고 말씨가 같았지만 북쪽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이 크게 달라 생판 딴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녕 45년간 체제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꺼온 벽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방북이었다. 2차 고위급회담 첫날 회의가 열린 지난 17일 상오 10시30분쯤.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에서 30여m쯤 떨어진 보통문 가내공장을 찾은 일부 사진기자들이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기자들이 여자 원피스를 만드는 이 공장에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마침 작업중이던 여성노동자 30여명은 갑자기 『임수경은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한 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울음보를 터뜨렸던 것이었다. 물론 이날 기자들은 안내원에게 사전에 그 공장에 가보고 싶다는 뜻을 전한 다음 안내원이 먼저 그 공장에 다녀와서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주민접촉도 통제 속에 이뤄졌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것도 하나같이 밀입북자 석방,유엔 가입문제,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등 북측이 주장하는 선결조건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뿐이 아니고 만찬행사 참석자들도 한결같이 지정곡처럼 빼놓지 않고 화제를 삼았다. 이들은 대부분 으레 대화 첫머리에는 가족상황,평양과 서울얘기 등 부드러운 얘기를 하다가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무엇엔가 쫓기는 듯 「지정곡」을 불러댔다. 나중에 우리측 카메라맨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일부 만찬 참석자들이나 행인들이우리 기자들과 얘기하고 나면 요원들이 대화내용을 뒷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제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북경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2등을 했다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 우리 대표단이 이용한 특별열차의 한 여자열차원과 백화원초대소의 한 여자접대원은 분명히 북한이 2등,한국이 3등한 것으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 기자들이 그렇지 않고 한국이 2등,북한이 4등을 했다고 밝혀주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대표단이 지난 16일 낮 1시20분 특별열차 편으로 평양역에 도착했을 때 북측의 영접은 너무도 냉랭했었다. 역 앞 연도에는 환영인파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고작 일부 행인들이 손을 흔들 뿐이었다. 며칠 전에 이곳에 왔었던 축구대표단이나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자들에 대한 열렬한 환영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북측 안내원들의 얘기로는 우리 대표단이 평양에 오면서도 밀입북인사 석방 등의 「선물」을 가져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북측이 남북고위급회담과 축구 및음악인 교류 등 민간교류를 각기 다른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계산된 통제를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북측이 꾀하고 있는 남북접촉도 「통제 속의 개방」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동구권 변혁으로 체제변화 위기를 느낀 북한이 체제고수를 위해 배수진을 친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세습체제를 굳히며 통일의식 고취로 주민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체제결속을 다지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지난 89년 4월에 세워진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등 주요시설에는 김일성 부자의 교시가 나란히 걸리고 김정일화가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학생소년궁전의 수영장 입구에는 『우리나라는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커서 바다의 정복자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는 김일성 교시와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강하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수영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김정일 교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이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일성 동지」는 공식인사의 서두로 될 만큼 김일성 부자세습은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와 함께 통일의 열기는 이상할 정도로 달아오르고 있어 마치 북한주민들이 「통일 열병」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지난 18일 상오 9시40분쯤 2차 남북고위급회담 이틀째 비공개회의가 열린 인민문화궁전 2층 외신기자실에서 북한 우표를 팔고 있던 국제통신국의 한 여성 우표취급원은 기자에게 『통일을 위해 오셨으니 한겨레의 소원인 통일성취를 위해 노력해주십시오』라며 다음과 같이 목청을 높였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과 수령님의 위대한 후계자인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모시고 오늘과 같은 행복한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도 행복하게 무상으로 교육받고 치료받으며 걱정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남쪽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못하겠죠. 학비가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으며 먹고 입는 문제 때문에 살기가 힘든다고 생각합니다. 남쪽은 미국놈의 식민지사회여서 잘사는 사람은 끝없이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끝없이 못살지 않습니까』 15년간 우표취급원으로 일했다는 이 여자는 통일얘기가 나오자 신들린 듯 열변을 토하며 서둘러 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해달라는 부탁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은 어린이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에서도 남쪽의 콘크리트장벽 등을 연출하며 완전개방을 주장하는 등 통일무드를 고조시키고 있다. 마치 통일구호를 외치면 통일이 금방 이뤄지는 듯 열기에 들떠 있는 것을 보고 우리의 통일 열망과는 다른 이질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에 젖는다.
  •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멕시코시인 옥타비오 파스

    【스톡홀름 로이터 UPI 연합】 올해 노벨문학상은 멕시코의 시인겸 수필가인 옥타비오 파스(76)가 타게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11일 발표했다. 노벨문학상이 멕시코인에게 돌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림원의 스투레 알렌 사무총장은 문학상 수상자 발표에서 파스의 시와 에세이들이 멕시코와 멕시코인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미적 지성과 인류애적 일관성으로 특징지워지는 폭넓은 시각을 겸비한 감동적인 작품들』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파스의 작품중 큰 점수를 딴 것은 돌에 새겨진 아즈텍 문명의 대형 태양력 유물을 묘사한 57년작 시인 태양의 돌(SUN STONE)라고 밝히면서 그의 작품들이 『묘사가 곤란한 인류문화의 결실을 훌륭히 그려냈으며 콜룸부스 이전의 인디안문명과 스페인 정복자들,서구 모더니즘을 소재로 다뤄왔다』고 말했다. 지난 1914년 멕시코 시티의 스페인 가계에서 태어난 파스는 커다란 서재를 갖추고 있던 조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문학에 심취해 왔으며 25년간 외교관으로서 각국 대사관에서 일해왔다.
  • 모국방문 7순 사할린교포 할머니(조약돌)

    ◎50년만에 남동생ㆍ조카와 극적상봉 ○…사할린동포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온 강한갑씨(76)가 27일 하오2시 마포구청장실에서 50년만에 남동생 강평순씨(74ㆍ강서구 화곡본동 1130의20)와 극적으로 상봉. 강할머니는 지난25일 호적등본을 갖고 마포구청을 방문,딸과 동생을 찾으려 했으나 컴퓨터 조회에 실패,이날 장조카의 주민등록사항을 확인해 장조카 강성옥씨와 전화통화에 성공,동생과의 해후가 이뤄진 것. 그러나 강할머니가 찾고있던 남동생 2,여동생 2명중 큰동생인 강할아버지만 생존,다른 가족은 모두 사망했으며 딸 윤인섭씨(일명 강정자)는 출가한 것으로 밝혀져 현재 호적을 추적중. 강할머니는 40년 여름 유복자로 태어난 딸과 함께 서울 마포에서 살다가 딸이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돈을 벌어 자립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잡으면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혈혈단신으로 사할린으로 떠났었다. 강할머니는 그곳에서 재혼,2남3녀를 낳았지만 고향에 두고온 첫딸과 동생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의 세월을 보내다가 이날 꿈에서도 생각지 못하던 동생을 만나게된 것. 이날 상봉을 주선한 이원택 마포구청장은 강할머니 남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고 50년만에 해후를 한 이들과 이산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 여성교육에 평생바친 “큰 이화인”/타계한 김옥길 명예총장의 생애

    ◎80년대 문교장관때 학원자율화 앞장/지조의 70년… 도량 넓어 “여장부”별명/손수만든 평양식 냉면ㆍ빈대떡 대접은 유명 김옥길 이화여대 명예총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25일 서울 이대 후문앞 대신동 골목은 슬픔에 싸여 있었다. 애통해하는 동생 김동길교수와 정의숙전이대총장,윤후정신임총장 등이 지킨 빈소에는 많은 졸업생을 비롯,여성계ㆍ학계 등 사회 각계의 조문객들이 찾아와 자유ㆍ자율ㆍ책임을 강조하며,여성교육의 요람을 키워온 큰 거목을 잃은 슬픔에 할 말을 잊었다. 김옥길명예총장은 4ㆍ19로 상처를 입은 이화여대에서 1961년부터 79년까지 18년동안 총장직을 맡아 종합대학교로서의 반석을 굳혔다. 또한 세종대학 등 많은 사립대학들이 학내문제로 갈등을 겪는 일을 보고 가슴아파했고 병환중에도 자신의 장례준비를 하게했다. 최근 정의숙전총장이 임기를 1년이나 앞두고 사표를 내고 윤후정교수가 총장의 자리를 이어 받게한 것도 다 그의 사려깊음에서 이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이야기다. 1921년 평남 맹산에서 면장을 지낸 아버지 김병두씨와 어머니 방신근씨 사이에서 태어나 평양 숭의여고에 들어갔다가 신사참배 문제로 숭의고녀가 폐교되면서 서문고녀로 편입,졸업했다. 40년 서울에 올라와 이화여전 문과,미오하이오 웨슬리안대,미국 템플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52년부터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어렸을적 한때 『의사가 돼 가난하고 병든사람을 고쳐주겠다』고 생각했고 『여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상록수의 주인공처럼 살겠다』고 했던 꿈은 이루지 못한 대신 여성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친 것이다. 그는 61년 고 김활란박사의 뒤를이어 총장에 올라 79년 정년 퇴임을 7년 앞두고 『너무 한사람이 오래 해 학교발전에 장애가 된다』며 후배 정의숙총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또한 일단 새사람에게 맡겼으면 마음 편히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며 7년동안 이대 교정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충북 괴산군 연풍면 문경새재에서 촌로처럼 지내며 이대 1백주년인 86년5월 기념강연하기 위해 한차례,그리고 지난4월 고희때 다시한번 이대캠퍼스에 발을 들여 놓았을 정도로 남들에게는 따뜻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그는79년 12월15일∼80년 5월17일까지 5개월동안 문교부장관직을 맡아 외도를 했다. 학생소요로 하루도 편할날이 없었던 당시 당국의 강경책을 거부하고 학원자율화에 앞섰으며 획기적인 교복자율화 실시를 주장,사회에 자율화 바람을 일으켜 최규하내각의 「유일한 남성장관」이란 평까지 받았다. 그의 웅변은 유명하다. 73년9월 남북적십자 2월본회담때(서울) 이산가족대표로,또 76년2월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모국방문때 『과거는 울어서 눈물로 한강에 띄워버리고 내일은 하나가 되어 후손에게 영광스런 조국을 심어주자』며 굵직하고 윤기어린 낭랑한 목소리로 명연설을 하여 심금을 울렸다. 「감사하라」 「생각하라」 「수고하라」. 이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한 말. 평양식 냉면과 빈대떡으로 이웃을 대접하기 좋아했던 푸근했던 총장할머니. 그의 가르침과 사랑을 나눠준 생애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책임과 할 일을 일깨워준다.
  • 이라크,미 공격 대비 수백만 주민 소개훈련

    ◎쿠웨이트 저항군,대규모 시가전 돌입/이라크 “금수 계속되면 철군 중단”엄포/이란ㆍ시리아,중립적태도 바꿔 즉각 철수 촉구/닷새째 접어든 「페만위기」의 현장 ○당간부에 소총 지급 ○…이라크 정부는 6일 미국의 침략에 대비해 수도 바그다드와 몇개 지방도시에서 대규모 주민소개훈련을 실시했다. 최소한 24시간에서 48시간 계속된 이번 주민소개훈련에는 수백만명의 주민이 빠짐없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에 앞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의 침략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와 함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집권 바트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수만명에게 자동소총을 지급했다. ○…이라크 정부는 6일 국제사회가 이라크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하면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는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날 압둘 라자크 알 하시미 파리주재 이라크 대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경고하고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어떤 위협이 있으면 이라크군의 철수는 중단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총궐기등 호소 ○…자비르 알 아메드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은 쿠웨이트 국민들에게 이라크의 점령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고 쿠웨이트의 KUNA통신이 5일 보도했다. KUNA통신 파리지부는 이날 알 사바 국왕의 말을 인용,『침략자 이라크는 쿠웨이트 국민의 단결을 파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장관은 6일 이란과 시리아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더이상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양국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로부터 전면 철수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벨라야티 외무장관은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이번 사태에 관한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기전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유감스런 사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우리는 이번 침공결과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시리아의 형제들과 게속 협력하여 대처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자 철군현장 초청 ○…5일 국경을 넘어 본국으로 철수한 이라크군 장비는 73대의 장갑차 및 탱크 외에도 6대의 트럭에 실린 소련제 스쿠드 지대지미사일과 2대의 트럭에 실린 대공미사일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군 철수행렬이 북부 국경쪽으로 천천히 이동하자 상공에는 무장 헬리콥터들이 선회하기 시작했는데 이라크 문공부는 철군장면을 목격토록 하기 위해 바그다드주재 기자 10여명을 철수현장으로 데려오기도. ○…6일 수도 쿠웨이트시에서 쿠웨이트저항단체와 이라크침공군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고 중국의 신화사통신 특파원이 보도. 리 시싱특파원은 『쿠웨이트시내 번화가인 카이판지역에서 이라크군과 자체조직된 쿠웨이트저항군 사이에 시가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의 사실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보도는 저항단체들은 시내에서 반이라크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외에 확성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대이라크 항전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 진주군병력의 1단계 철수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라크군 탱크와 장갑차 및 미사일 발사대의 행렬이 5일 북쪽 국경을 넘어 본국으로 귀환했다. 섭씨 50도나 되는열파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이라크병사들은 트럭을 타고 국경을 넘어갔으며 2백여명의 환호하는 이라크인들에게 정복자처럼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 침공을 통해 군사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을는지 모르나 이에 따른 서방 세계의 원유 금수5치가 지속되면 이라크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군내부로부터의 쿠데타를 촉발시킬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정치분석가들이 6일 밝혔다.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의 송유관을 폐쇄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터키는 6일 브뤼셀에서 열린 긴급 나토회의에서 페르시아만사태에 대한 종전의 중립적 입장을 바꿔 이라크 송유관 폐쇄조치를 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일인 2백명 발묶여 ○…일본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한지 하루 뒤인 6일 현재 총 1백82명의 일본인들이 바그다드 시내의 호텔들에 발이 묶여 있다고 외무성의 한 관리가 이날 말했다. 관광객 1백40명을 포함한 이들 일본인 방문객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이루어진 지난 2일 이후부터 출국 항공기편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는 이라크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한 나라의 국민에 대해서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일본 외무성의 한 관리는 이들 단기 방문자 외에 3백7명의 일본인이 업무차,또는 다른 장기 목적으로 이라크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으며 다른 한 관리는 2백72명의 일본인이 쿠웨이트에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페루는 남미 북서부의 태평양연안에 위치한 잉카문명의 나라로 유명하다. 아마존강의 발원지이기도한 이곳을 무대로 번영을 누렸던 토착인디오들의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1533년 스페인의 백인 정복자들이었다. 약 3백년의 식민지시대를 거쳐 오늘의 페루로 독립한 것이 1824년의 일. 백인지배의 국가로 출발했던 것. ◆그 페루에 사상처음으로 비백인 대통령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해서 화제와 충격의 파문이 번지고 있다. 노벨상수상작가로 유명한 백인의 요사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한 후지모리씨는 몇달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계 이민 2세의 농업경제학자. 그의 승리의 배경으로는 여러가지가 지적되고 있으나 동양계이고 일본인이었다는 사실도 중요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퍽 인상적이다. ◆2천1백만 인구중 인디오가 절반에 가까운 47%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혼혈인 「메스티조」의 40%에 백인은 12%이며 동양계는 불과 1%. 일본계 이민은 8만명 정도. 그런데도 그가 당선된 것은 백인정복 이후 천대받아온 인디오들의 반란 덕분이라는 것. 피부색이나 생김새도 동양인이 백인보다는 그들에게 친근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해석. ◆일본계 대통령이 탄생하면 경제대국 일본의 지원을 받기가 유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작용했음직하다. 일본인 이민이 페루에 처음 도착한 것은 1899년으로 7백90명. 지금은 대부분이 2세. 부지런하고 정직하다는 이미지가 큰 재산이다. ◆페루의 일본인들도 강한 단결력이 특징. 「더러운 동양인 물러가라」는 등의 위협속에 일본계 페루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는 이 단결력도 한몫 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무력전쟁에 패한 일본인들은 경제전쟁에 이어 이민전쟁에도 착착 승리를 다져가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동양계 미국대통령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하기로는 마찬가지인 우리도 해외이민은 적극 권장ㆍ지원해 놓고 볼 일이다.
  • 할복자해 김국빈씨/보훈처,치료비 전담

    국가보훈처는 지난23일 일본왕의 공식사죄를 요구하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 자해를 했던 김국빈씨(33ㆍ비디오테이프 대여업)에 대해 김씨가 완치될 때까지 치료비전액을 부담키로 했다.
  • 독립투사 아들 할복,중태/어제 낮/일대사관앞서 “일왕사죄”요구자해

    23일 하오2시35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국빈씨(34ㆍ상업ㆍ강동구 신천동 시영 유공자아파트 124동 507호)가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일본국왕의 사죄를 요구하며 할복자살을 하려다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이날 서울 7루 5634호 코란도 승용차를 타고와 대사관이웃 주차장에 세워놓고 대사관앞으로 걸어가 『일왕은 무릎꿇고 사죄하라』고 외친뒤 준비해간 칼로 가슴과 배등 4군데를 그었다. 김씨는 배등에 각각 길이 5㎝ 깊이 2㎝정도의 상처를 입고 이웃 한국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있으나 출혈이 심해 중태다. 김씨는 병원에서 『최근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과 관련,각종 항의가 잇따르는등 한국민의 감정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일본은 국왕이 아닌 총리가 사과를 대신하겠다는 등 교만한 짓을 하고 있고 또 일본 우익단체들이 한국민의 반일감정이 계속될 경우 재일교포들을 상대로 테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뉴스를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이같은 일에 나섰다』고 말했다. 김씨가 할복을 기도할 당시 일본대사관 정문등에는 정복경찰 1명과 사복전경 10여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으나 김씨가 걸어오다 갑자기 품속에서 흉기를 꺼내 자신의 몸을 긋는 바람에 말리지 못했다. 김씨는 일제때 김구선생의 밀명을 받고 상해로 건너가 남의사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 김덕목씨(78ㆍ작고)의 4남1녀 가운데 넷째아들로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아파트단지에서 비디오 테이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민주화 몸살로 대만정정 혼미

    ◎국민당 40여년 집권에 국민불만 팽배/「의원 종신제」 폐지 요구등 시위 잇따라 세대교체를 통한 대만정치의 대만화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1천여명의 대만주민들은 지난 20일 입법원(의회) 앞에서 의회개혁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80여명의 부상자를 냈는가 하면 야당 입법위원들도 집권 국민당 원로 종신위원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의사진행을 방해,입법원장 선거를 1주일 뒤로 늦추게 했다. 19일에는 총통선출 기관인 국민대회 개막회의에서 야당 대표들이 역시 원로 종신대표들의 합법성에 이의를 제기,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같이 국민대회와 입법원의 원로들이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지난 47년 중국 본토에서 선출된 뒤 49년 대만으로 건너온 이래 40년이 넘도록 단 한차례의 경선도 치르지 않은채 종신직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숫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원로들로 인해 전체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대만토착인들에게 정계진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뿐 아니라 국민당 정권의 장기집권이 구조적으로 보장돼 있어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상당수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9년 고 장개석 정부가 본토에서 철수,대만으로 이동해 왔을 당시의 국민대회 대표와 입법위원수는 각각 1천5백76명과 4백70명으로 거의 전원이 국민당 소속이다. 아직까지도 본토를 포함한 전체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자처하고 있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을 중국의 일개성으로밖에 간주하지 않으며 본토를 회복할 때까지는 대륙에서 선출된 대표들의 자격을 유효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들에게 종신지위를 부여했다. 그후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해외로 이주하는 등 결원이 늘어나면서 지난 69년부터 부분적으로 보궐선거를 치렀고 지난 86년에는 사상 최초로 대규모 보궐선거를 실시했으나 종신원로의 절대다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종신원로들은 현재 국민회의의 7백19석중 88%인 6백35석,입법원의 2백82석(정부지명 해외교포 3년 임기 케이스 29석 포함)중 54%인 1백52석을 각각 점하고 있다. 모두가 70대이상의 고령인 이들 원로들은 잔여임기중의 세비를 미리 지급하는 일종의 명예퇴직제도인 종신위원 퇴직조례가 지난해 1월 제정됐음에도 불구,대부분 사퇴를 거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자손손 승계시키는 방안까지 연구하고 있다. 개선 대상의석인 6년 임기의 국민대회대표 84석과 3년 임기의 입법위원 1백1석 가운데 야당인 민주진보당은 11석과 21석을 각각 확보해 놓고 있을 뿐이다. 토착인들을 중심으로 한 야당과 많은 주민들은 종신원로의 전면퇴진과 자유총선실시를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총통 임명 및 헌법개정 권한을 지닌 최고국민주권 기관인 국민대회의 절대다수를 종신원로들이 지키고 있는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고 권위주의 통치체제의 종식과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총통의 직선제 및 통일 대신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47년 마련된 국민헌법은 총통의 임기를 6년 연임으로 제한해 놓았으나 60년 비상법령의 제정으로대륙수복때까지는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상태다. 대만 국민들의 이같은 민주화 움직임은 지난 40여년간 대륙회복을 위한 비상시기라는 명분아래 권위주의 통치체제의 억압에 시달려 왔고 특히 국민당 정부의 주요 요직을 본토출신들에게 빼앗긴데 대한 누적된 울분이 표출되면서 「대만정치의 대만화」 요구 형태로 나타났다. 이들 대만 토착인들에게는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온 정복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1인당 국민소득 6천달러 수준에 올라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김에 따라 경제성장에 걸맞는 민주화를 요구할 정도의 정치적인 자각이 싹텄고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통일에 더이상 집착할 수 없다는 공감도 욕구분출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당 정부도 이같은 국민들의 욕구분출을 사전에 무마하기 위해 지난 86년 3월 장경국 전총통 재임당시 민주화 추진을 선언한 이래 계엄령 해제(87년 7월)와 신문창간 및 정당 결성 허용등 일련의 점진적인 민주화 조치를 취했고 국민당 중앙위원의 대만출신 비율을 15%에서 42%로 높였으나 국민들의 욕구를 잠재우기 보다는 오히려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야당의 출현은 이같은 민주화 요구 움직임의 조직화를 초래했다. 지난 88년 13차 국민당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관례적인 기립표결에 의한 주석 선출방식에 대한 소장파의 반발 움직임이 있었고 지난 2월 국민당 중앙상무위의 총통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기립 및 거수에 의한 표결방식에 이의가 제기되는 등 당내 민주화 및 세대교체를 외치는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 88년 1월 장경국 총통 사망당시 부총통으로서 대만 토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잔여임기를 승계한 이등휘 총통은 이제 갈림길에 놓여있다. 이번 국민대회 기간인 오는 3월21일 총통 연임여부를 결정할 막강한 권한을 거머쥐고 있는 종신 원로들의 편에 서야할지 대다수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운 선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생활고가 민족분규 불댕겼다/영지가 분석한 오늘의 소 사태

    ◎에너지ㆍ생필품 태부족… 곳곳서 “빵달라” 항의 시위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 소련의 운명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소련 전문가 켄틴필의 이름으로 소련의 최근 정세를 다음과 같이 분석 보도했다. 소련 제국의 남쪽 변경인 아제르바이잔사태는 고르바초프로서는 최악의 시기에 들이닥친 것이다. 지금 소련 국민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생필품의 극심한 부족 때문에 혹독한 불만의 겨울을 맞고 있다. 우랄의 대공업도시인 스베르들로프스크시에서는 배급 쿠폰을 갖고도 식료품과 보드카를 살 수 없게 되자 성난 군중들이 항의 데모를 벌였으며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심장부인 체르니고프에서는 한 공산당 간부의 승용차에 소시지와 보드카가 실려 있는 것을 본 행인들이 거의 폭동에 가까운 사건을 빚기도 했다. 시베리아에서는 유전 기술자들이 타고갈 비행기의 연료가 떨어져 원유를 채굴하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 게다가 앞으로 두달후면 지방의회선거가 있어 고르바초프의 공산당은 흡사 불난 호떡집 같다. 사실 고르바초프는 연방내의 각 공화국들이 명실상부한 자치권을 갖는 순수한 연방공화국권을 갖고 일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수십년동안 누적된 회의론을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5년전 고르바초프가 집권할 당시만해도 소련의 민족주의란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암초였다. 브레즈네프나 흐루시초프와 같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그는 소련 연방의 중심부에서만 근무해왔기 때문에 변두리 사정을 잘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최근의 아제르바이잔사태에 비상조치를 취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에 그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냉정한 논리로 보면 자주독립을 원하는 공화국들은 그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누가 그 작은 발트국가들을 필요로 하겠는가.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는 리투아니아보다도 작은 나라다. 코카서스 산맥 너머의 민족들은 로마시대 이래 정복자들이 억누르기 어려운 골칫거리였으며 1백명 이상의 통역을 불러야 할 정도로 상통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탈출을 막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이 고르바초프의 머리를 스쳐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한번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입밖에 낸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때 공산당 중앙위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어느 곳도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용납치 않겠다고 선언했듯이 그 반대의 얘기만 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연방의 결속 뒤에는 공산당의 결속을 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하겠다. 그가 일부 연방탈퇴를 용인하려 할 경우 가장 불안한 것은 군부일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처한 문제는 단지 연방내 일부 공화국들의 민족주의 물결이 그가 설득해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쳤다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추구해온 페레스트로이카 개혁논리가 그러한 독립운동을 추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집권적 경제에서의 탈피와 독점적 통제체제의 폐기등 그가 추구해온 새 지표들은 사실상 각 공화국의 자주경제를 고무시켜 왔다. 발트해 국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양의 물자를 떼어놓은 다음 여분이 있으면 이를 팔지않고 물물교환방식으로 부족한 다른 물자를 확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작은 공화국들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과의 경제적 유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당이나 소련 국민들이 연방의 해체를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보수세력의 심각한 반동을 유발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가장 불만이 많은 일부 공화국의 이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 중고생비행 “교복착용과 무관”/83년 「자율화」 이후 오히려 줄어

    ◎“재착용”여론과 엇갈려 눈길/문교부 집계 일부에서 중ㆍ고교생들의 탈선 등을 염려해 다시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중ㆍ고교생들의 탈선은 교복의 착용여부와는 관계가 없다는 통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교복자율화가 실시된 지난83년을 기점으로 조사된 이 통계는 교복이 전면폐지된 첫해 잠시 증가현상을 보였던 중ㆍ고교생들의 비행이 그이후 계속 감소추세를 보여 최근에는 발생률에서 모두가 교복을 입던 82년보다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을 나타냈다. 18일 문교부집계에 따르면 지난88년 탈선ㆍ비행ㆍ범죄 등으로 퇴학 또는 자퇴한 중ㆍ고교생은 모두 7만7천4백89명으로 83학년도의 8만4천2백77명보다 6천7백88명이 줄어들었다. 이들 교복자율화조치 바로 전해인 82년과 비교해 보면 82년에는 중ㆍ고교 총학생수 4백52만5천6백54명가운데 7만6천3백46명이 학교를 그만둬 비행학생의 비율이 1.68%였으나 88년에는 총학생수 4백82만4천97명에 비할때 비행학생이 1.60%로 나타나 0.08%포인트가 낮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고교생만을 따로 보면 83년보다 총학생수가 28만7천5백36명이나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퇴학당한 학생수가 83년의 5만6천4백55명보다 4천8백14명이나 준 5만1천6백31명으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82년과 비교하면 82년엔 총학생수 1백92만2천2백21명 가운데 4만8천4백76명이 학교를 떠나 고교생 전체의 2.52%를 차지했으나 88년에 학교를 떠난 학생은 2백30만5백82명의 2.24%에 그쳐 0.28%포인트 낮아졌다. 이들 전체를 연도별로 보면 82년 퇴학률이 1.68%로 7만6천3백46명이 학교를 그만두었고 83년에는 일시적으로 크게 늘어 8만4천2백77명이 퇴학당해 1.79%를 기록했으나 그 뒤로는 84년 1.72%,86년 1.63%로 해마다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냈다. 고교생의 경우에도 82년 4만8천4백76명이 퇴학 등을 당해 비행학생이 2.52%였으나 83년만 2.80%로 증가를 보였을뿐 그 뒤로는 84년 1.72%,86년 1.63%로 점차 감소했다. 문교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88년 2학기부터 문제학생 한명에 교사 한명을 선임,생활지도를 하게하는 결연제도 등의 효과로 비행학생이 더욱 줄어 89년에는 88년보다도 1천여명이 줄어든 5만여명선에 그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교복자율화 첫해인 83년만 갑작스런 해방감으로 비행학생이 다소 늘었을 뿐 교복자율화가 점차 정착되어 가면서 제자리를 되찾고 있으므로 교복착용여부와 학생들의 탈선과는 거의 무관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교부에 따르면 전국의 4천1백22개 중ㆍ고교가운데 12.9%인 5백31개교가 현재 교복을 입히고 있으나 그중 90%는 사립중ㆍ고교이고 서울의 경우 교복착용 중ㆍ고교 96개교 가운데 공립은 중학교 1개교와 고교 6개교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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