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복자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조비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57
  • 농협도 합병땐 세혜택/금융기관 구조개선 촉진대상에 포함/정부

    정부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을 촉진하기 위해 합병시 세제혜택이 주어지는 금융기관의 대상을 확대,농협도 포함시키기로 했다.이에 따라 단위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농협의 통합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강만수 재정경제원차관 주재로 열린 경제차관회의에서 오는 7월중 시행 예정인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과 관련,금융산업 구조개선 차원에서 금융기관간 합병시 세제지원 혜택이 있는 금융기관에 농협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농림부의 건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정부는 이에 따라 16일 열릴 경제장관회의에서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을 이같이 수정해 의결할 예정이다. 재경원은 당초 특수은행과 농협은 금융기관의 성격상 합병 등을 통한 금융산업 구조개선 대상에서 제외시켰었다.현행 규정에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기관간 합병으로 한 지역에 점포가 두개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중복자산이 생길 경우 이를 5년 안에 처분하면 특별부가세(양도세)를 50% 감면해주는 등의 세제혜택을 주게 돼 있다.
  • 이집트 피라미드:중(세계 문화유산 순례:30)

    ◎돌덩이 230만개 입체퍼즐 짜맞춘듯/직선과 각에만 의존하여 영원을 향해 쌓아올린 돌계단/그 완벽한 설계는 불가사의/파라오의 5천년 동행자 「공포의 아버지」 스핑크스는 현대 공해앞에 기력을 잃고… 쿠푸왕의 대피라미드가 안겨주는 불가사의함은 무덤의 내부로 들어가 돌들이 짜맞춰 쌓여진 구조를 보면서 점점 더 생생하게 실감하게 된다.대피라미드에는 북면에 단하나뿐인 입구가 나있다.출입구가 발견된 경위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으나 기원후 9세기 이슬람에 정복됐을 당시 마아문이라는 칼리프(왕)의 명령으로 찾아내 내부통로를 막은 돌들을 치웠다는게 정설이다.현재 이 출입구는 봉쇄돼있고 그밑에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임시출입구가 나있다. 내부에서 보면 피라미드를 쌓은 돌들이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은 다음 차곡차곡 쌓은게 아니라 돌의 크기가 제각각임을 알수 있다.서로 크기가 다른 돌들을 사방으로 이가 맞물리듯 짜맞추어서 구조물의 안정성을 크게 높였다.돌의 기울기도 바깥쪽을 안쪽보다 조금 높게 쌓아 바깥으로 무너짐을 막았다.그래서 전체적으로 돌을 쌓은 방식은 마치 입체 퍼즐을 짜맞추어 놓은 것같은 느낌을 준다.그렇다면 퍼즐조각을 준비하듯 애초에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는 말인가.피라미드와 관련된 여러 불가사의중 좀체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이다. 출입구부터 난 통로는 가운데 무덤방인 현실까지 이어진다.가로세로 1.2m쯤 되는 정사각형 통로를 한참 들어가면 통로 높이가 9m정도로 높아진 뒤 이어 「왕비의 방」이라 부르는 작은 방이 하나 나온다.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피라미드에는 현실을 포함해 모두 3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다.이 「왕비의 방」은 원래 파라오의 현실로 만들었는데 왕이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되자 피라미드를 확장하고 현실 위치도 더 높은 곳으로 옮기며 빈방으로 남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파라오의 시신이 안치됐던 현실은 지상에서 42m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묘실은 「왕비의 방」에서 긴 회랑을 통과해서 올라가게 돼있다.묘실의 천정은 총중량이 400t에 이르는 9개의 석재들이 수직으로 놓여져 있는데 이 엄청난 부하를분산시키기 위해 위쪽에 따로 떨어진 모두 5개 층의 격실을 만들어 놓았다.왕의 석관은 평편한 돌조각을 깐 바닥위에 놓여져 있다.원래 이 석관안에는 쿠푸왕의 미라가 안치됐다. 미라는 값진 목걸이와 보석 장신구들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황금가면을 썼다.주위에는 파라오가 저 세상에서 먹을 식량도 준비했고 가구까지 준비해 두었으나 지금은 모두 도굴당해 뚜껑도 없이 텅빈 석관만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석관이 놓인 위치는 바로 무덤의 모든 기가 한곳으로 모이는 자리라고 한다.종이 따위로 소형 피라미드 모형을 만든 다음 무딘 면도칼을 바로 이 위치에 놓으면 날이 날카롭게 선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증명된바 있다고 안내인은 말하나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장례의식이 끝나면 묘실입구는 커다란 바윗돌로 막았다.신관들은 수직 갱을 통해 밖으로 나왔으며 갱은 안쪽에 미리 마련해둔 커다란 바위돌로 차례차례 막아 외부에서는 다시 묘실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피라미드 내부의 미로같은 통로들을 오르내리다 보면 오줌 지린내같은 심한악취가 나는데 관광객들이 내뿜는 숨과 땀등이 돌벽에 부딪쳐서 일으키는 화학변화 탓이라고 한다.돌 표면에 붙은 이 화학물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개월에 한번씩 해주는데 이 작업기간중에는 관광객들의 피라미드 내부 출입을 막는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인간의 불멸에 대한 자신들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만든 돌 구조물이다.이 돌 구조물들은 단순함과 장엄함이 어우러져 흠잡을데 없이 완벽한 조화를 연출해내고있다.직선이 이처럼 완벽히 다스려져 표현된 건축물이 언제 또 있었던가.고대 이집트인들은 오직 직선과 각에만 의존해 차곡차곡 영원불멸을 향해 올라가는 돌 계단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3개의 거대 피라미드를 완성시킨뒤 이집트인들은 이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임을 알리고 싶어서였던듯 지상의 존재들을 형상화시킨 거대한 석상을 그 앞에 만들어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스핑크스」였다.가운데 피라미드의 주인공인 케프론왕의 얼굴과 용맹의 상징인 사자의 몸체를 가진 이 돌조각의 일차적인 임무는 피라미드의수호신이었을 것이다.이 수호신은 역사의 여명부터 지금까지 5천여년 동안 파라오의 동행자였고 한편으로는 신의 위치에 있었던 파라오 자신이었다. 스핑크스는 기자 모래언덕의 석회암 바위돌을 깍아 만든 것으로 표면을 장식한 돌 타일조각이 떨어져나가 몸통 곳곳에서 지층이 그대로 드러나있다.원래 무슨 이름으로 불렸는지 기록은 없지만 이곳에 들어온 아랍인들은 「아블 홀(공포의 아버지)」로 불렀고 스핑크스란 이름은 사람과 사자 「둘이 합쳐진 것」이란 뜻으로 그리스인들이 붙였다.지금은 코와 턱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입술도 절반이 짤려나간 흉한 모습이지만 높이 20m,머리에서 다리끝까지의 길이가 78m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수호신이다.얼굴 폭만 4m15㎝에 이른다. 스핑크스가 손상된 첫째 원인은 무엇보다도 서부사막에서 불어오는 세찬 모래바람이었다.이 모래바람에 덮여 한때 스핑크스는 몸체 전부가 땅속에 파묻여 있었는데 후세에 이를 발굴해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하게 된 것이다.역설적이지만 스핑크스를 5천년이 넘도록 지켜준 것도 바로이 사막의 모래바람이었다.주위에 쌓인 모래로 하중이 분산돼 무너져내림을 막았고 풍화에 의한 마모도 막아주었기 때문이다.모래를 치운뒤 외기에 노출되고 하중을 수직으로 받으면서 이 돌조각은 급속히 마모되고 곧곧에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아울러 인근 마을에서 쏟아내는 생활하수들이 지하암반으로 스며들고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자동차의 진동과 매연,그리고 서울 못지 않게 지독한 카이로의 대기 오염이 한번씩 비가 올때마다 내려않아 스핑크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고 한다. 파라오와 함께 5천년을 여행해온 존재.알렉산더,시저,나폴레옹등 기자의 모래언덕을 지나간 숱한 정복자들의 꿈이 낙엽처럼 사막에 나뒹굴 때도 기자 언덕을 지켜온 「공포의 아버지」가 현대의 공해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오늘도 밤이 되면 스핑크스는 화려한 인공조명과 음향속에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장엄하게 버티고 서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 페루 수도 리마(세계 문화유산 순례:28)

    ◎침략자 유적에 가려 잉카의 영화는 전설로/정복자에 유린된 찬란한 「황금의 도시」/태양의 제전에는 이방인유적 번듯이/산마르틴 광장에는 유럽·남미문명이 함께 호흡 중남미 광대한 대륙에는 마야문명 말고 또다른 신비의 잉카(Inca)문명이 있다.그 문명의 중심지 페루로 떠나기에 앞서,마야문명을 뒤로 한다는 아쉬움에서 선인장으로 만든 술 데킬라 몇잔을 마셨다.지도로 본 리마는 멕시코시티에서 그리 멀지않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멕시코시티를 떠나 페루의 수도이기도한 리마까지는 비행기로만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밤늦은 시각리마에 닿았다.경제사정이 어렵고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숙소로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그러나 리마라는 도시 자체는 날이 밝은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리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유적지구라서 그야말로 고색창연했다.그런만큼 많은 유적들을 간직했거니와,스페인 식민지시절(1532년∼1824년)만들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리마는 크게 산 마르틴(San Martin)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지와 20세기 들어 개발한 신시가지로 구분됐다.지금은 일종의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렸지만 구시가지는 한때 리마의 중심지였다.산 마르틴 광장 한가운데는 당당한 모습으로 말위에 올라앉은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와 스페인,오늘의 남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히론 데 라 우니온」(Jiron de la Union)이라 이름붙여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통했다.약 1㎞에 이르는 이 길 주변에는 각종 상가건물이 빼곡히 들어섰다.마치 서울 명동거리가 연상됐다.길이 끝나는 곳에는 대통령궁·시청 청사 등이 관아가를 이루었고,바실리아 대성당 등 주요 건물들도 함께 자리했다. 대통령궁은 식민지시대 건축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1532년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처했던 곳이기도 했다.대통령궁은 항상 걔방돼 관광객들이 늘 붐볐다. 입구를 지나 중앙통로를 따라 들어섰다.2층의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 양쪽으로 남미 해방의영웅 볼리바르 장군과 산 마르틴 장군의 흉상이 서있다.두 사람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독립운동을 일으켜 남미대륙 전체에 해방의 기쁨을 안긴 인물들이다.그리고 그 아래 로비 대리석 바닥에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 문양이 각인돼 있었다.300년에 걸친 속박의 사슬을 끊어냈던 해방 당시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왼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갔다.중간쯤에 170여년전 페루 최초의 대통령이 타던 프랑스제 마차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진열됐다.그리고 여러 개의 고급스러운 방이 주위를 빙둘러 이어졌다.1535년 스페인 특산물 타일로 장식한 화려한 벽화가 있는 접견대기실,남미 최고품인 니카라과산 나무 장식장 등으로 치장한 기자회견실도 그 주위에 있다.기자회견실에는 잉카제국 마지막 왕 망코의 둘째아들로 스페인에 맞서 최후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세 가브리엘 곤도르칸키 케초아의 대형초상화가 걸렸다.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장엄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몄다는 귀빈대기실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호화스러웠다. 대통령궁 앞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위병교대식은 흥미로운 것이었다.매일 상오 11시30분이면 푸른색과 흰색 위주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먼저 등장했다.어린이들이 전통민속춤을 추고나면 위병교대식이 진행됐다.그 의식은 근엄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페루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페루 역시 남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성당 건축물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대통령궁 왼쪽에 자리잡은 바실리아 성당도 그중 하나다.1535년에 시공돼 남미 최초·최대의 성당이기도한 바실리아 성당은 1586년과 1746년·1940년 등 세차례에 걸쳐 지진을 겪고서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리마 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이 성당에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채 유리관 안에 전시됐다.피사로는 1546년 자신의 심복의 손에 죽음을 맞았는데,미라 옆에는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한줌의 흙을 보관했다.정복자의 수구초심을 읽으면서 흥망성쇠를 안고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리를 듣는듯했다. 대통령궁에서 3블럭 정도 동쪽의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성당과 부속 수도원 역시 장관을 연출했다.1620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한 이 성당은,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성당 전면을 장식한 돌조각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들여온 것으로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지하무덤 카타콤(Catacombs)은 유명했다.1788년에 지하 4층 규모로 만든 카타콤에는 성당건립에 기여한 사람들이나 성직자 4만여명이 잠들어 있다. 식민지시대 유적들에 가려 잉카의 흔적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로 불렸다는 잉카제국.시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황금박물관」을 맨 먼저 들렀다.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어렴풋이나마 마음속에 들어왔다.태양이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이 흘린 눈물을 의미했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BC) 4세기에서 기원(AD)2세기까지 융성했던 비쿠스 문명에 뿌리를 두었다.그후 차빈·모체·나스카·와리·치무를 거쳐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더욱 활짝 피어났다.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반지·코걸이·귀걸이·옷핀 등 장신구와 왕관·악기 등이 모두 황금제품이다.심지어 우의까지 금으로 제작한 것을 보면 황금을 다룬 솜씨인 연금술은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모양이다.그러나 풍부한 황금은 유럽 정복자들을 유혹했고,그 문명을 정복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여행가이드◁ 페루의 화폐단위는 솔(Sol)로 미화 1달러당 2.2솔 정도다.시내에 크고작은 숙박시설이 많으나,안전을 고려해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좋다. 세비체·로모살타타·안티쿠초 등 페루 전통음식은 15달러로 조금 비싼 편.그러나 일반식당에서 당일 내놓는 메뉴를 주문하면 3달러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한국식당의 웬만한 음식은 15달러 이상.물론 음료수와 물은 별도 주문이다.팁은 음식값의 10%.리마는 사막위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지하철이 없고,출퇴근시간에는 교통난이 심한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30%정도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사실이다.대통령궁이나 성당 등에 들어갈 때는 4∼5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새로짓는 빌딩·빌라 이유있는 「멋 부리기」

    ◎“무표정한 「성냥갑 건물」 고객 외면”/패션 빌딩­양복 자켓·한복 치마선서 힌트/메종 리브르­팔각모양 트윈타워형 아파트/플라망스­휴대전화 형태… 아래는 유리성/현대 빌라­산속 계단식 배열… 외관도 독특/쌍용 빌라­정원식 발코니… 콘도처럼 셜계 건축물도 의복처럼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시대다.성냥갑 같이 네모반듯한 건물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십상이다. 도심의 대형 건축물로부터 불고 있는 디자인 바람은 이제 주택으로까지 거세게 번지고 있다.모양새가 좋고 보기에 아름다운 집은 튼튼함 못지 않게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최근에 설계된 건축물 가운데 외양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삼성건설이 서울 서초동에 짓고 있는 「패션빌딩」.오는 99년 말에 완공 예정인 이 건물은 39층 규모로 패션빌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옥탑부분을 특색있게 처리했다.몸체도 마치 옷을 입힌 것처럼 우아하게 설계됐다. 우선 건축물의 앞면을 보면 남자의 양복자켓선 모양을 본떴다.옆면 앞선은 한복의 치마선처럼 흘러내리도록 했다.패션 전시물매장으로 사용될 오른쪽 아랫부분은 통유리로 설계,소비자의 시선이 열리도록 구상됐다.또 아래 중앙부에 멀티비전이 설치되고 엘리베이터는 유리로 가려져 야간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꾸며진다. 대우건설이 서울 당산동에 신축중인 25층 규모의 주거용 원룸 아파트 「메종 리브르」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한다.서구식 팔각모양의 트윈타워로 건설되는 이 건물은 그동안 네모진 판상형에 익숙해져 온 소비자들에게 도심형 주거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특히 이같은 겉모양 외에 호텔식 현관로비와 비지니스센터를 갖춰 멋있는 집에 살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산그룹이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짓고 있는 상가 및 오피스텔빌딩 「플라망스 타워」도 눈에 띄는 디자인중의 하나다.휴대용 전화기 모양의 이 건물은 지상 5층까지를 유리벽으로 처리,신세대적 외관을 갖추고 있다. 또 건물 뒷쪽 상단에는 안테나 모양의 피뢰침을 설치했고 옥탑 부분을 아치형으로 처리,판에 박힌 건축물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있다. 도심내의 대형 오피스빌딩이나 원룸아파트 못지 않게 일반 주택들도 최근에는 부쩍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짓고 있는 고급빌라 「분당현대타운하우스」는 아름다운 외관으로 톡톡하게 덕을 본 케이스.빌라의 위치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원풍인 점도 고객을 끌었지만 계단형으로 3개동을 배치하고 마치 이국땅에서나 볼 수 있는 설계가 분양에 큰 몫을 했다. 예쁜 디자인 덕분에 가구당 10억원에 가까운 이 빌라는 분양 한달여만에 12가구중 10가구가 팔려 나갔다. 기존 주택 가운데는 쌍용건설이 지난 93년 2월에 완공한 서울 용산의 이태원빌라가 우수한 디자인으로 꼽힌다.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아담한 이 빌라는 발코니를 콘도미니엄 처럼 설계했다.발코니 안쪽은 내부 정원으로 꾸밀수 있을 정도로 넓어 도심속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외국의 주택건설사업에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 쌍용건설의 관계자는 『우리도 이제 외국처럼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집을 많이 지어야 한다』며 『우리 주택업체들이 설계나 시공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집을 예쁘게 지으려면 그만큼 건축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망서리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주택 보급율이 현재의 87%에서 멀지않아 90% 이상으로 높아지고 분양가가 점차 자율화되면 우리의 주택도 디자인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 파키스탄 탁티바이(세계 문화유산 순례:23)

    ◎가파른 바위산 벼랑끝 성채같은 가람이… 간다라(Gandhara)는 아주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아키메네스왕조때(BC559∼330년) 페르시아의 속주로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다.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현에 해당하는 지역이 옛 간다라 땅이다.역사속에 명멸한 정복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그칠날 없이 이어진 지역이기도 했다.그래도 간다라에서는 불교와 불교미술이 오랫동안 꽃피었다. ○대평원 한복판 우뚝/망망대해 등대인듯 그 간다라에는 불교유적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대표적 유적의 하나가 탁티바이(Takht-i-Bahi)다.가람유적인 탁티바이는 페샤와르현 마르단에 있다.페샤와르시에서 탁티바이까지는 꽤 멀었다.난마처럼 얽힌 카불강과 스와트강줄기를 몇차례 건너서 간다라 첫 수도 차르사다를 지나쳤다.논스톱으로 두시간을 좀 넘게 달렸을까,대평원 한복판에 우뚝한 산자락 하나가 불쑥 시야로 들어왔다. 탁티바이산이다.산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같았다.오랜 세월을 두고 탁발로 유랑한 당시 구도승들에게 산은 실제 등대 노릇을 했을것이다.풀 한포기도 눈에 띄지않는 바위너설의 악산인데,가람은 매달린듯 벼랑에 붙어있다.아래서 저만큼 올려다 본 가람 탁티바이는 성채 그것이었다.그많은 정복자들의 난리를 피해서 부러 가파른 바위산을 택했으리라.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가람 입구에 다다랐을때 기다리던 경비원이 거수경례로 맞아주었다.긴 치마자락처럼 정강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고유의상 카미즈 차림의 경비원은 허리에 넓은 가죽벨트를 맸다.벨트에 권총을 매달지 않았을 뿐,어떤 제복같은 느낌이 와닿았다.유적 경비원을 따라 여러개의 수투파(불탑)가 있는 뜰을 지나서,경내에 단 한그루 밖에 없는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우선 한숨을 돌렸다. 탁티바이 가람유적은 기원전(BC)100년쯤부터 터를 잡아나갔다.그리고 나서 기원후(AD)6세기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가람을 조성하는 동안도 파괴와 건설이 거듭되었다.탁티바이산은 산자체가 돌산이다.그래서 가람의 모든 건조물은 산에 널린 운모편암을 자재로 축조했다.가람은 층서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블럭을 가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간다라 불교유적지 성한불상 하나없어 유적의 단면은 대체로 요꼴을 이루었다.그런 단면을 기반으로 불교의 기본 건축물인 수투파와 불당,승원을 지었다.수투파는 네모꼴 기단위에 탑 몸체를 쌓아올리는 형식이었는데,애석하게도 기단만 남아있다.승원의 경우에는 가운데 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승방을 가지런히 배치했다.이같은 승원축조양식은 간다라지방에서 처음 나타나 인도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가람 입구를 들어서면 수투파 기단들이 늘어선 좁은 뜰이 나왔다.요꼴 단면에서 보이는 오목한 부분이 바로 뜰이다.그 뜰이 시작되는 오른쪽(북쪽)으로 불상을 봉안했던 닫집(감실)들이 바싹 다가왔다.모두 12개나 되는 닫집을 지나쳤지만,불상 한 두어 구가 겨우 눈에 띄었다.그나마 머리가 아니면 팔이 떨어져 나간 불상 뿐이다.가람 어디에서도 몸이 성한 불상을 만나지 못했다. 간다라 불교유적은 일찍 파괴되었다.당나라 승려 현장의 구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전반의 건태국,즉 간다라 이야기가 나온다.현장은 이책에다 「승가람은 1천여군데에 있으나,모두 부서진채 방치되었다」고 적었다.동서 1천리,남북 800리의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적었다는 현장의 기록에서 탁티바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식민제국 박트리아의 왕 맨안더(재위 BC155∼130년)의 후광을 업고,또 쿠산왕조의 카니쉬칸(재위 AD78∼128년)을 후원자로 전성기를 맞았던 탁티바이.겨우 600여년을 가람답게 지켰다.지금 탁티바이는 적막했다.탁티바이는 「바위속의 샘」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유적 경비원에게 청해서 얻어마신 양재기 물맛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복자 말발굽에 파괴­건설 600년 이 가람의 대탑 메인 수투파는 입구에서 곧바로 만난 뜰 왼쪽(남쪽)에 있었다.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다 여러 칸의 닫집을 ㄷ자꼴로 앉혔다.닫집의 지붕은 독특했다.네모꼴 지붕을 돌로 올리면서 모서리를 차츰 죄어가는 방식으로 둥글게 쌓았다.그리고 지붕 한가운데에 원심의 구조물을 도드라지게 덧쌓았다.역시 이들 닫집안에서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 승려들이 머물렀던 승원은 이 가람 북쪽 블럭에 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을 내려와 입구 뜰을 건너서 계단을 올랐다.마당 중간을 비워두고 ㅁ자형으로 빙 둘러지은 승방들이 촘촘히 박혀있다.경전을 외는 소리가 두런두런 했을 승방은 지붕조차 없다.지난 먼 옛날 불교를 그토록 보호했던 왕조 모두가 역사속에 묻혔으니,누가 중창을 하랴.지금 유네스코(UNESCO)가 나서 더 허물어지지 않게 보살피고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불교가 존재않는 불교의 유적지 구도승들의 고행현장은 정오가 가까운 한낮에 찾았다.가람 입구에서 시작한 뜰을 거쳐 서쪽 마당끝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을때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왔다.돌을 맞조려 쌓은 천정이 아치꼴을 이룬 터널은 꽤 길었다.터널 오른쪽으로 작은 방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인공의 토굴이었던 것이다. 토굴의 환경은 감방보다 열악했다.승려들이 고행과 명상으로 은둔했을 토굴에는 박쥐떼만 득시글거렸다.세월이 무상했다.생겨나고 없어지는 생멸에 집착하지 않은 탓일까,파키스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는 오래다.제대로 된 불상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탁티바이를 돌아서야 했던 까닭도 불교가 존재하지 않는 불교유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숙박은 페샤와르서/국내선 하루 2∼4편 운항 탁티바이는 페샤와르에서 80㎞ 거리다.페샤와르에서 택시를 타면 90∼100달러가 든다.페샤와르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은 페샤와르에서 하는 것이 좋다.숙박시설은 딘스호텔,펄콘티넨털호텔 등이 있다. 교통편은 라왈핀디나 라호르에서 오는 파키스탄 국내항공이 하루 2∼4편 정도 운항한다.그리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4시간이 걸린다.페샤와르는 실크로드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라서 아랍풍의 문물관광도 즐길수 있다.인더스 가이드(92­42­872975)같은 여행사 안내도 고려할만한 일이다.
  • 명절아닌 명절된 「2월14일」/공연계도 「밸런타인 특수」 설렘

    ◎뮤지컬·팝무대에 젊은연인끌기 선물공세까지 발렌타인 데이 바람이 공연계에까지 몰아닥쳤다. 어느새 젊은이들에게 명절이 돼버린 발렌타인 데이(2월14일).이날을 겨냥한 공연들이 무대에 오르고 공연기획사들은 젊은 연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물까지 주면서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베이비 베이비」 등 뮤지컬 두편이 14일에 맞춰 동시에 막을 올리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는 샹송가수 엘자가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 내한공연을 갖는 것. 발렌타인 데이를 기다리는 대표적인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얻은뒤 국내에서도 제작된 「베이비…」.「베이비…」의 제작을 맡은 판프로덕션과 극단 동랑연극앙상블은 첫회 공연을 찾는 모든 관객에게 패션다이어리를 제공할 예정이다.또 뮤지컬 내용홍보를 위해 임산부들을 위한 「베이비티켓」,50대이상 부부를 위한 「실버티켓」,가족단위 고객을 위한 「패밀리티켓」을 마련해 각각 입장료를 20%씩 할인해준다. 「베이비…」의 이야기는 20대,30대,40대 커플이 각각 임신진단을 받으면서시작한다.학생인 20대 연인은 아이로 인해 결혼을 강행해야될 것 같아 불안하고 40대 부부는 엉겁결에 아이를 갖게 돼 출산여부를 놓고 갈등한다.정작 임신을 원했던 30대부부는 간호사의 실수로 임신진단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아이로 인한 갈등과 기쁨을 경쾌하게 그리는 뮤지컬로 연출가 리처드 몰버 주니어,작곡가 데이빗 시어의 합작품.국내공연에서는 김효경이 연출하고 고인배,노현희,진복자,허준호 등이 출연한다.3월9일까지 서울 종로5가 연강홀. 국내 CF삽입곡에 자주 등장했던 솜사탕같은 목소리의 주인공 엘자도 연인들에게 사랑의 노래를 전한다.엘자는 차분하면서 포근한 프렌치 팝으로 구성된 4집 「매일매일의 긴 여행」의 수록곡들을 서울공연에서 부를 예정이다.14일 하오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최인호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겨울나그네」도 연인관객을 위한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인다.5백여만원어치의 초콜릿을 준비한 주최측은 개막일인 14일 공연장을 찾은 관객 모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고 공연장 로비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열 계획이며 관객중 연인 한쌍에게는 특별 패키지 상품을 선물한다.3월9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 베비라,유아복자체브랜드 라이선스 수출

    유아복 전문업체인 (주)베비라가 국내 유아동복업계로는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 라이선스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주)베비라는 최근 베비라­말련사와 12년간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판매될 베비라 및 미니비에 대한 상품기획과 생산 유통,프랜차이즈 시스템 운영전반에 걸친 노하우를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로열티는 전체 매출액의 5%로 결정됐다. 베비라의 추산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레이시아 유아복 시장규모는 1천억원으로 국내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급속한 시장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 민족문화 경제성 되찾자/김주영 작가(서울광장)

    정부는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하고,수십년동안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희생되었던 문화재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 대전환을 가져다줄 발굴과 보존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기로 만들겠다는 의욕이다.검증없이 도입된 저질의 외래문화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이 흐트러진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가치관의 전도,소비풍조의 무분별성,전통적 가족개념의 파괴,공동체의식의 우려할만한 훼손까지도 우리의 가치관이 정치와 경제논리에 무게중심이 얹혀있었으므로 겪게된 방황과 좌절이었다.견고한 문화유산의 보존이 경제발전의 기틀이 되며,지고한 목표라는 의식이 우리에겐 희박하다.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은,삭풍이 산야를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날,안방에 놓여진 질화로의 불씨와 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있다.경제발전을 위해선 문화유산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좋다는 단순논리는,경제발전을 이룩한 다음에 우리에게 남아있어야 할 민족적 자긍심과 미래에 대한 또다른 포부는 어디서 찾아내야 하는가라는치명적 의문을 낳게한다.그래서 문화재를 올바르게 보존하자는 일들이 과연 한가로운 일이며,몇몇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분별력있는 반성이 필요하다. ○문화유산 보존의식 희박 문화적 바탕이 없는 국가는 결코 올바로 설 수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13세기 동양의 한 위대한 정복자의 행적에서 읽고 있다.그가 바로 징기스칸이다.만주벌판에서 일어선 여진의 후예였던 그는 중국대륙을 질풍노도와 같이 가로질러 동유럽 정복에 착수하였다.당시 유럽인들은 밤마다,징기스칸의 군대가 다시 나타날까 전전긍긍하였다.그가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말타기에 능숙한 용맹스런 군대와 그 군대의 보급창 역할을 하였떤 양떼들이 항상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유목민들에겐 불행하게도 문화의 바탕이 없었으므로 정복한 땅을 지킬 수 없었던 불운을 맞았다.국가를 지탱하는 힘의 중심 논리가 어느 바탕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풍남토성 안에서 건축되고 있는 아파트 공사장의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귀중한 문화유적지에 치밀한 사전조사도 거치지 않고개발허가를 해준 행정당국이나,토기들이 출토되고 있다는데도 그런 일이 없다고 버티는 현장의 목소리는 우리를 흥분시킨다.경향각지에 흩어져 있는 개발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가당찮은 소문들을 우리는 끊임없이 듣고 있다..많은 작업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둘러 그 출토의 증거를 없애버린다는 것이다.그 사실이 언론에라도 보도될라치면 그로써 격게될 기업의 재정적 손실이 두렵기 때문이다.어디 그뿐인가.경부고속철도의 경주통과를 둘러싼 정부의 부처간,그리고 민간의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끝없는 갑론을박도 그동안 우리가 문화재를 얼마나 하찮게 보아왔는가를 보여준 부끄러운 사례였다. ○사전조사없이 개발 허가 한가지 사례가 또 있다.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시켜주는 작업의 일환으로,전국의 문화재 안내판을 중학생 수준으로써도 금방 이해할 수 있도록 고쳐나가는 일이 그것이었다.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보수를 차치하고 필자도 참여했었다.그 일에서 필자는 〈사지〉라는 어려운 한자말 대신〈절터〉로,〈석불〉을 〈돌부처〉로,〈일원〉을 〈둘레〉따위로 고쳐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었다.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담당직원의 대답은,무슨 위원인가 하는 분들이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사리와 분별,하고자하는 작업의 골자를 생각하기 전에 권위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피해의식이 앞섰던 결과다.이런 무분별하고 독선적인 문화규제가 곧 우리 국민의 문화적 긍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도 문화유산의 해인 이 시점에서 눈 똑바로 뜨고 극복해야 할 과제중의 한가지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전국민적 공감대가 설정됨으로써 그 추진력을 노릴 수 있다.그것이 문화의 향유권을 확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한국전 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법」 제정을/심재기(발언대)

    최근 강릉 앞바다로 침투한 무장공비사건은 우리의 안보의식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됐다. 6·25가 종전상태로 지속돼온지 46년.이 사건은 그동안 남북이 대치양상으로 치달아왔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잠수함 침투지역인 안인진리는 6·25때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하기 1시간전인 상오 3시에 북한 549부대가 최초로 남침을 감행한 지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그동안 북한은 아전인수식 통일의 미몽에서 우리의 안마당을 제집 드나들 듯 해왔으며 우리의 젊은이들은 편향된 좌경의 늪으로 빠져들고만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력의 우위가 사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현대전의 승패는 군의 화력등 물리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결집력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이는 월남·걸프전 등에서 증명됐었다. 우리는 6·25 당시 1백만명이란 민간인들이 조국을 수호하고자 귀중한 목숨을 잃은 비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혹자는 전화를 피해 짐을 꾸리기에 급급했고 혹자는 하루아침에 북한 완장을 차기도 했지만 1백만 민간인 희생자들은군번없는 용사로,학도병으로 적들과 싸우면서 산화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회」는 민간 희생자들의 유족을 중심으로 이들의 애국혼을 계승하고 국민에게는 호국정신을 선양해 오고 있다.선열들의 위패 하나 모실 곳 없고 유복자·미망인 등 유족은 해마다 현충일이면 울려퍼지는 「군·경·공무원만을 위한」 진혼나팔 소리가 가슴에 비수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호소하는 것은 이들 영혼과 유족에 대한 보상이나 국가차원의 수혜가 아니다.단 한가지 유족들이 한곳에서 영령을 진혼하고 국민에게는 이들의 희생이 살아있는 사표(사표)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가신님들의 참뜻을 구현하고자 이번 정기국회에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사회법안」을 상정,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법안의 내용은 ▲기념사업회의 법인화 ▲기념관,안보박물관 및 위령탑 건립 ▲민간항쟁 자료의 수집·보존·관리 ▲남침현장 일대의 안보교육장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의 중차대한 의미를 깊이 헤아려 우리의요구가 수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 클린턴·힐러리/미 대선승리 백악관 재입성 주인공들

    ◎클린턴/불우한 유년 딛고 최연소 주지사 당선 2차세계대전 직후인 46년 「베이비붐」시대의 첫세대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빌 클린턴이 미국의 재선대통령이 됐다.지난 92년 46세라는 젊은 나이로 제42대 미 대통령에 당선됐던 클린턴은 이번 재선으로 민주당 대통령으로는 4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처음 재선에 성공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그러나 그의 재임기간인 지난 4년은 자신과 부인 힐러리,그리고 백악관내 보좌관들이 연루된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시기였다.그래서 그는 역대 대통령중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8월 민주당전당대회때부터 줄곧 재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통령으로 꼽혀왔다. 「클린턴 미스터리」라고 불리기도 한 이 기현상의 일등공신은 바로 안정세를 회복한 경제.그의 재임 4년만에 미국에는 모두 1천1백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고 재정적자는 60% 줄어들었다.일자리,세금,인플레,외교문제 등 현직대통령을 괴롭힐 수 있는 이슈들이 모두 파괴력을 잃고 잠복했다.대신 마약,범죄,자녀교육,보건문제 등 그가 비교적 공을 많이 들인 소소한 이슈들이 유권자들의 관심사가 됐다.유권자들은 비록 인기는 없지만 살기는 괜찮게 해준 클린턴 대통령의 손을 다시 들어준 것이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나 의붓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면서도 대통령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기를 가져다준 사건은 바로 예일대 재학시절 미래의 부인이 될 힐러리 로드햄과의 만남.클린턴 못지않게 불같은 야심을 타고난 힐러리는 75년 클린턴과 결혼한 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남편보다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온 여성이었다.예일대법대를 졸업한 클린턴은 72년 민주당에 입당,30세의 나이로 고향인 아칸소주에서 사상 최연소 주립검찰총장에 임명되며 정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80년 아칸소주 주지사에 당선된 클린턴은 이후 82년부터 84년 사이를 제외하고는 92년 대통령이 되기까지 아칸소주 주지사 자리를 지켰다. 그는 92년 대선에서 현직대통령인 조지 부시 대통령과 맞붙어 주지사시절의 여자문제와 베트남전 반전경력 시비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마침내 미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20세기의 마지막 미국대통령으로서 그가 지난 4년의 인기없는 대통령과 달리 유권자들에게 약속한데로 진짜 「미래로 나가는 다리」를 놓는 대통령이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힐러리/변호사 출신… 각종 스캔들 연루 변신 주목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중 한명」,「자기 주장이 너무 심하고 권력욕과 돈욕심이 강해 각종 스캔들을 몰고다니는 여인」­.지난 4년간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생활을 해온 힐러리여사는 줄곧 이 두가지 상반된 평가로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운동기간중 클린턴진영은 철저하게 힐러리여사를 전면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지난 92년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 그녀는 미국 변호사 랭킹 100위 안에 두번이나 들어갔었으며 클린턴 대통령의 주지사 시절 법률사무소 운영으로 남편보다 3배나 많은 수입을 기록했고 아동보호기금 회장,교육개혁가로 명성을 떨쳤다. 지난 4년동안 백악관 안주인으로서 힐러리여사는 FBI파일 게이트,트래블 게이트,화이터워터 게이트 등 숱한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앞으로 4년동안 스캔들의 늪에서 벗어나 어떻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지 관심거리다.
  • “군인의 귀감” 전사자 조문 줄이어/빈소주변 이모저모

    ◎미 국방성 연락실장 유족위로 눈길/오 대령 장인도 6·25때 양구서 전사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고 오영안대령,서형원 대위,강민성 상병 등 세 전사자들의 빈소에는 5일에 이어 6일에도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김수한 국회의장과 이홍구 신한국당대표,김종필 자민련총재,권오기 통일원장관,안우만 법무부장관,김동진 국방부장관,조순 서울시장,장태완 대한재향군인회 회장,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등 300여명이 찾아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상오 10시쯤에는 미 국방성 지원단 연락실장인 제럴드 브레드나 한씨가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한데 이어 AFKN TV에서도 취재진을 보내 합동분향소 주변을 촬영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날 빈소에는 50여명의 유족들이 조문객을 맞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 주위 사람들을 안쓰럽게 했다. ○…고 오영안 대령은 장인 윤진섭씨와 나란히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히게 돼 눈길. 오대령의 장인 윤씨는 6·25전쟁중인 53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전사,현재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데 오대령도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7일의 영결식 후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묻히게 된 것. 윤씨가 전사한 뒤 유복자로 태어난 오대령의 부인 윤옥순씨(45)는 『현충일때마다 아버지의 묘소에서 참배하곤 했다』며 『이젠 남편과 아버지 두 묘소를 함께 찾게 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수중 고고학(외언내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점령하고 나일강 하구에 새 도시를 세우도록 명령했다.이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9년후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그의 신임을 받던 무장 프톨레마이오스 지배아래 들어간 이집트의 수도가 된다.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에서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헬레니즘 문명의 중심지가 되며 유클리드의 기하학,헤로필로스의 해부학도 이 도시에서 꽃핀다. 3백년간 계속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의 여왕이 7명이나 있었다.그 마지막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에 이어 지중해 세계의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떠 오른 로마의 정복자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가 안토니우스가 그의 정적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자 독사에 물려 자살했다는 전설을 남겼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을 주축으로 한 수중탐사반이 알렉산드리아 앞 바다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왕궁과 안토니우스의 저택 잔해·술항아리·포장도로등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유물들을 수천점 인양했다고 외신은 전한다.긴 방파제로 받쳐지고 있는아름다운 항구가 2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양호한 상태로 수중에 보존돼 있어 탐사반은 클레오파트라의 손이 닿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열주들을 만져보며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수중고고학에 의해 역사와 전설에 얽힌 고대 이집트도시 알렉산드리아가 2천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알렉산드리아 해저에서는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축조됐다가 13세기에 대지진으로 사라진 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온 파로스등대의 잔해가 올해초 인양된 바도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도 신안 해저유물 발굴(1976∼1984)이후 수중고고학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지나친 성급함이 가짜 「별황자총통」 사건만 불러 일으켰다.꾸준한 투자와 관심으로 수중고고학을 육성해 장보고 충무공의 찬란한 발자취를 비롯,우리의 해양역사도 되살려야 할 것이다.
  • “투항 4차례 거부에 연속사격”/2명 사살 장선용 상사 일문일답

    ◎소나무숲 웅크린 괴한 발견 “공비 직감”/수류탄 꺼내려는 나머지 1명 자동사격 5일 상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 3리 진부령 연화동 계곡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무장공비 2명은 한 특전사 상사의 직감과 침착한 대응앞에 힘없이 쓰러졌다. 이날 상오 10시30분쯤 무장공비 2명을 사살한 특전사 비호부대 장선용 상사(37)는 새벽2시 출동명령이 떨어지자 장기수색작전을 펼치던 오대산 진부에서 차량으로 이동,상오 9시5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곧바로 수색에 들어간 장상사는 30여분만에 2명을 모두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다음은 장상사와의 일문일답. ­발견 당시 상황은. ▲상오 9시50분쯤 현장인 용대 3리 4반에 투입돼 동료 12명과 함께 국도변을 따라 이어진 연화동 계곡을 건너 1부 능선을 타고 수색을 벌이던중 20여m앞 소나무숲에 포복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괴한 2명의 장발 뒷머리가 보였다.순간 무장공비임을 직감하고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사살 순간은. ▲무장공비 2명이 우리 일행을 등진 상태로 계곡 건너편 도로에 차단선을 치고 있는 아군을 향해 총을 쏘고 있어 우선 1명을 정조준해 사격,뒷머리를 관통시켜 사살했다.이어 나머지 1명에게 『투항하라』고 4차례에 걸쳐 외쳤으나 공비가 상의 안쪽에서 수류탄을 꺼내려는 몸짓을 해 소총을 자동에 놓고 연속사격을 가해 사살했다. ­공비 발견에서 사살까지의 소요시간은. ▲작전에 투입된지 30여분만인 상오 10시25분쯤 공비를 발견,2명을 사살하고 상황을 종료하기까지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당시 심정으로는 오랜시간이 걸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 멕시코 멕시코시티(세계 문화유산 순례:14)

    ◎3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거대한 「도시 박물관」/「소칼로」 대성당앞 광장에는 화려한 의상의 원주민들이 날마다 향냄새나는 껌질 태우며 멕시카제국의 영광 되찾아 줄 신을 부르는 의식을 올린다 멕시코는 전역에 걸친 유적지가 자그만치 4만여곳에 이르는 것을 보면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인 셈이다.이 가운데 멕시코시티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유적지다.올메카,테오티와칸,마야 등 고대문명의 흔적들은 물론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문화까지를 포함한 3천여년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 있다.멕시코 문명의 실상을 조감하자면 반드시 들러야 했다.1964년에 개관됐다.멕시코 전역에 흩어진 유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놓은 10개 전시실을 갖춘 1층에서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2층 민속학박물관으로 연결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맨 먼저 맞는 유물은 「올메카의 머리상」이다.멕시코만 인근 타바스코주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올메카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석상이기도 했다.입술이 두껍고 코가 낮았다.눈까지 작아 영락없는 동양인 모습을 한 이같은 큰 머리 석상은 멕시코에 많이 남아있다.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질감이 풍부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모태문명의 원시성이 짙게 우러났다. 올메카 문명은 발생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렸다.그 한줄기가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 문명(AD 200년경∼AD 650년경)·톨테카 문명(AD 700∼AD 1100년)·멕시카 문명(14세기∼16세기)이다.이와 더불어 멕시코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에서는 전·후기 마야문명(AD 200년경∼∼AD 1521년)이 발전을 거듭했다. 멕시코에 와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멕시코 문명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즈테카(Azteca)문명이 그것인데,이를 멕시카(Mexica)라는 용어로 쓴다는 점이었다.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전설과 연관시켰다. 전설은 1150년경까지 아지틀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즈텍족이 새로운 땅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던중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신을 만나는데서 시작됐다.이때 신이 하늘을 날고있던 독수리를 가리키며 『너희에게 번영과 안정을 줄테니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아즈텍족이 독수리를 쫓아 가보니 과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시티의 한 부분인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얘기다.그리고 신은 또 『너희는 아지틀란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적관람을 위한 동선은 박물관에서 과달루페 성당으로 이어졌다.중심가인 레 포르마 거리 북쪽끝에 위치한 이 성당은 멕시코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있는 성소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동안 전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성당은 1531년 12월12일 테페약 언덕을 지나던 한 농부앞에 발현한 성녀 과달루페의 계시에 따라 축성됐다고 한다.발현 당시 과달루페는 한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도있다.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3문화광장」이 있다.고대 문명·식민지 문명·현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상거래 지역으로 짐작되는 멕시카족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와 17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그리고 현 멕시코 외무부 건물이 모여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테노치티틀란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었던 틀라텔롤코는 당시 멕시코 계곡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3문화광장」에서 다시 20여분가량 시내로 차를 몰아 「소칼로 광장」에 닿았다.「소칼로 광장」은 본래 테노치티틀란이었다.그런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사방이 각각 240m나 되는 이 광장은 북쪽에 대성당,동쪽에 국립궁전,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었다. 「소칼로 광장」의 대성당은 2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대성당 자리는 본래 멕시카인들이 인신공양한 해골들을 모아두던 곳이었다.본 건물은 1548년 완공됐으나 17세기 들어 남쪽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북쪽부분이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확장돼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하모니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예수상은 유명한 성물이다.식민정복지에서 원주민을 끌어 안으려 노력한 선교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였다. 성당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흥미로운 의식이 벌어졌다.새의 깃털을 단 화려한 머리장식에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들이 향냄새 나는 코팔나무 껍질을 모닥불처럼 태웠다.그리고 원무(원무)를 추며 흥겹게 돌아갔다.또 하나같이 프라일레라는 나무껍질을 말려 엮은 장식을 발목에 달아 춤을 추며 돌아갈 때마다 「딱,딱」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코팔타는 냄새와 프라일레 소리로 지난날 멕시카제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신을 날마다 불러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원주민 무리속에서 다수의 백인들이 발견됐다.백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그렇다고원주민쪽에도 끼지 못하는 멕시코의 에트랑제들,이들을 「패스포트 퀘스천」(Passport Question)이라고 불렀다.멕시카 후예들에게 동화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역사의 아이러니 바로 그것이었다.
  • 독 작가 C.W.세람 「발굴하는 발굴의 역사」

    ◎고고학은 영원한 「진행형의 학문」/그리스·로마문명­바빌론과 설형문자 등 탐구/주요발굴사례 통해 본 인류문명의 궤적 밝혀 고고학사에 큰 획을 긋는 주요 발굴사례들을 통해 인류문명의 궤적을 밝힌 역사교양서 「발굴하는 발굴의 역사」(도서출판 차림)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은이는 고고학 분야의 저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독일작가 C W 세람.그의 또다른 저서 「낭만적인 고고학산책」 「히타이트의 비밀」과 함께 「세람의 3부작」으로 꼽히는 이 책의 특징은 무엇보다 326컷에 이르는 진귀한 사진과 삽화를 실은 일종의 화보집으로 고고학 「발굴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16세기 초엽,기원전 1세기경의 작품인 라오콘 군상과 리비아 거상 등 서구문명사에 기록될 만한 발굴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고고학.그 발굴의 역사는 1738년 1천700년이상 매몰돼 있던 불운한 도시 폼페이가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에 의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면서 절정을 이룬다.그러나 고고학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단연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이다.독일의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68년 사업가의 길을 포기하고 트로이 발굴에 착수,마침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상상속의 이야기가 아닌 사실의 기록이라는 파천황의 발견에 이른다.역사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고학,그것은 바로 슐리만으로 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서구문명의 뿌리를 찾기 위한 그리스·로마문명 탐구 ▲스핑크스를 낳은 이집트문명 해부 ▲바벨탑의 전설을 간직한 바빌론문명과 설형문자 해독 ▲인류사의 영원한 비밀을 간직한 중앙 아메리카문명 탐험 ▲현대고고학의 발전경로와 최근경향 소개 등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세람은 이집트의 신비를 스핑크스,피라미드,미라라는 세가지 물상으로 압축한다.사막의 황색모래를 뚫고 솟아 있는 반인반수의 스핑크스는 과연 여성일까 남성일까.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악마 에키드나의 딸로 여성,이집트 가자지역의 스핑크스는 남성이며,17∼18세기 유럽에서는 양성의스핑크스가 바로크식 정원의 장식물로 이용되곤 했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또 피라미드는 건축의 목적과 쓰임새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파라오의 석관이 놓여져 있는 조그만 방위에 세워진 거대한 요새,곧 무덤이라는 주장도 편다. 바빌로니아 문명의 본거지였던 페르시아제국의 옛도시 페르세폴리스 유적에서 나온 생소한 설형문자는 서구인들의 동양문명에 대한 접근을 막은 커다란 장애물이었다.이 설형문자의 텍스트를 해독하는 데는 그로테펜트라는 독일의 한 교사가 제기한 가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로제타 스톤의 상형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은 「이집트학의 창시자」로 공인받고 있는 반면 그로테펜트의 업적은 무시되다시피 하고 있다.세람은 이같은 아이러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변덕』이라고 일갈한다. 그리스·로마문명에 결코 뒤지지 않았지만 서구 황금만능주의자들의 탐욕에 의해 짓밟힌 중앙아메리카 문명은 또 어떠한가.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자 코르테스 일행은 아즈텍 원주민들의 후의를 피비린내나는 살육으로 응답,이 지역의 유산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드물다.이 책에서는 정글속 사원도시 팔렌크의 유적을 비롯해 특이한 건축구조의 「태양사원」(일명 「트로피 사원」),전형적인 올멕 스타일의 제의용 도끼 등 기묘하고 화려하며 괴기스런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상징들이 소개된다.너무나 짧은 기간에 몰락했기에 비감한 정서마저 끓어오르게 하는 이 중앙아메리카의 문명을 지은이는 수메르·바빌로니아·앗시리아·크레타·그리스·로마·이집트문명과의 총체적인 맥락속에서 살핀다. 지은이는 끝으로 『고고학의 개척시대는 지나갔다.하지만 지난날의 뛰어난 업적만으로
  • 멕시코 테오티와칸:하(세계 문화유산 순례:13)

    ◎「페허의 성도」엔 문명의 수수께끼만…/“「사자의 길」 양면 계단 딸린 고대는 무덤인가 피라미드인가” 해와 달을 섬겼던 사람들이 남긴 유적지 테오티와칸의 대통로 「사자의 길」은 무척 넓었다.「달의 피라미드」를 내려오면 남쪽으로 3.2㎞에 걸쳐 뻗친 이 길과 바로 연결됐다.폭이 좁게는 43m,넓게는 145m나 되는 길 양쪽으로 계단이 딸린 고대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길을 걷는 느낌 보다는 웅장한 석조궁전 뜰 한가운데 서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돌을 높게 쌓아 올리고 계단까지 내놓은 고대의 존재는 무엇일까.어떤 이는 무덤으로 여기기도 했다.또 흑요석과 같은 물건들을 거래한 장시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그러나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고대에 관한 이 두가지 추측 말고도 미니 피라미드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미니 피라미드가 오히려 더 설득력을 지녀 그럴듯해 보였다.「태양의 피라미드」나 「달의 피라미드」를 축소한 일종의 미니어처로,단위에 작은 신전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견해다.그러고 보면 테오티와칸은 피라미드의 도시인지도 모른다. 「사자의 길」은 「달의 피라미드」꼭대기 제단에 올릴 제물용 인간들이 길게 줄지어 대기했던 길이었다고 한다.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과 함께 테오티와칸에 왔던 선교사 디에고 두란은 제물로 사라질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수㎞씩 줄지어 서있었다고 기록했다.제사장은 이들의 가슴에서 칼로 도려낸 심장을 제단에 바쳤다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달력(월역)개념으로는 1년을 18개월 혹은 20개월로 계산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평균 18일이나 20일마다 한번씩 제사를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그만큼 제물의 수요도 많아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을 것이다. 최근의 고고학 발굴자료에 의하면 「사자의 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남쪽으로 3.2㎞ 정도가 더 이어졌고 동서로 뻗은 또 다른 큰 길이 존재했다.그리고 이 도시를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누어 구획한 흔적도 찾아낸 것으로 보고됐다. 이 고대도시의 너무나도 광대한 규모에 그만 기가 질렸다.사라진 문명을 증거하려는 고대인의 외침이 당장이라도 들릴 것 같아 현기증마저 느껴졌다.그러는 사이,「사자의 길」왼쪽으로 640㎡에 달하는 「시우다데이라」(성채)앞에 다가섰다.성채 중앙에는 「깃털달린 뱀의 피라미드」가 우뚝했다.그것은 피라미드라기 보다는 걸작의 조각품이었다. 테오티와칸 사람들은 뱀을 풍요를 상징하는 영물로 보았다.또 뱀은 하늘과 땅속·인간세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신과 인간을 연결해 준다고 생각했다.메소 아메리카 문명권의 대부분 유적지에서 뱀의 모습을 새긴 조각이나 벽화가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기원(AD)250년쯤 건축된 「깃털달린 뱀의 피라미드」는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 남아있는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이다.사방 모서리가 많이 허물어지기는 했으나 외부장식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풍요의 상징으로 외벽을 둘러친 뱀의 형상과 그 사이사이 조각된 조개와 물고기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듯 생동감이 넘쳤다. 테오티와칸은 단지 신들을 위한 도시만은 아니었다.이는 「사자의 길」양쪽 평지에 넓게 분포돼 있는 제사장과 민간인들의 거주지를 보면 확실했다.주거유적들은 이 고대도시가 실용성도 갖추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크고 작은 집터마다 우물·상하수도·증기목욕탕 시설 등 오늘날의 가옥구조에서나 볼 수 있는 편의시설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융성했던 문명은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한때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서 위세등등하게 문화적 영향력을 떨쳤던 성도가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그 이유의 하나가 외침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리고 어떤 전문가들은 사회체제 붕괴에서 멸망의 근거를 찾고 있다.새로운 귀족계급의 등장은 신관계급과의 대립을 가져와 결국은 신정일치체제 몰락을 부추기고 말았다는 것이다.하지만 테오티와칸 문명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학설과 주장만 무성할 뿐 아직까지 명확한 해석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듯 테오티와칸은 문명의 수수께끼를 깊숙히 간직했다.이 때문에 고대 멕시코의 순수한 문명의 원천이기도 한 테오티와칸은 고고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테오티와칸 문명의 주인공들은 어디서 온 누구였으며,또 어디로 갔을까.그 궁금증을 풀지 못한채 돌아 서야 했다. ◎여행가이드/입장료 1,800원… 유적지 주변 숙박시설 없어 테오티와칸 유적은 하루면 둘러볼 수 있다.유적지 주변에는 별다른 숙박시설이 없어 멕시코시티내에 숙박을 정할 수밖에 없다.유적지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하고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유적지까지는 40여분 정도.입장료는 16페소(한화 1천800원)이며 유적지 내에 있는 박물관 등에 들어갈때는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박물관 입장료는 10페소(한화 1천200원)내외.유적지 주변 천연동굴을 이용한 음식점에서 멕시코 전통음식으로 색다른 식사를 즐길 수 있다.음식값은 70∼80페소(한화 7천∼8천원)정도면 충분하다.단 물·음료수와 팁은 별도 계산해야 한다.
  • 파키스탄 탁실라:하(세계 문화유산 순례:11)

    ◎거대한 수투파엔 혜초의 숨결이… 그 넓은 고원지대 탁실라의 옛 이름은 탁사실라(Taksasila)다.탁사는 석기를 만들 때 쓰는 돌이고,실라는 도시를 의미했다.굳이 의역하면 「돌의 도시」라고나 할까.탁사실라라는 고유명사는 1918년에 발굴한 은판,새김글씨(명문)에서 확인되었다.은판에는 다르마르지카(Dharmarjika)라는 새김글씨도 함께 나와 탁실라 근본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었다. 탁실라의 유명한 수투파(불탑)유적 가운데 하나인 다르마르지카는 은판 새김글씨에 나오는 고유명사 그대로다.은판은 오늘날 다르마지카로 부르는 수투파 유적에서 실제 출토되었다.유적은 탁실라박물관 동쪽 냇물 건너에 있다.수투파 다르마르지카는 아주 거대했다.두 층의 원형돌기단위에 쌓아올린 수투파는 우리나라 경주 천마총만큼 크고 높아서 야산처럼 보였다. 그 수투파 가장자리 공간을 좀 비워두고 자리잡았던 예불당들이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수투파 원둘레 바깥을 따라 빙 돌아간 예불당 건물터들은 정연했다.그 잔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수투파 뒤뜰에는 승려들이 살았던 돌담벽 승방들이 벌집마냥 들어앉았다.촘촘한 승방들을 몇차례나 손가락을 펴고접어 헤아리다 그만두었다.그까짓 폐허를 헤아려 무엇하랴.불교가 융성했던 시절,독경소리가 요란했을 다르마르지카에는 정적이 흘렀다. 다르마르지카는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시대 유적으로 보고 있다.그의 치세기(BC 269∼232년)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수투파 1만8천기를 쌓았다고 한다.물론 전설적 기록이기는 하나,다르마르지카에서 아쇼카왕의 불심을 보았다.다르마르지카를 문자대로 해석하면 「왕의 사원」이다.과연 왕의 사원다운 다르마르지카는 탁실라의 또다른 수투파유적 쿠나라스 등과 더불어 그 위용을 자랑했다. 탁실라고원의 불교역사는 퍽 오래되었다.이는 자울리안산 높은 언덕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어온 사원유적 자울리안(Jaulian)역사를 들추어 보면 알 수 있다.간다라지방을 먼저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대왕 알렉산더가 그토록 깊고넓은 인더스강을 기어이 건너 자울리안을 공략하지 않았던가.서력기원이 아직 멀기만 했던 BC 325년쯤의 일이다.아쇼카왕 이전에 벌써 불교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그러고 나서 만난 돌계단을 다시 올라 자울리안에 다달았다.절집 승가람마가 분명한데,여기 사람들은 자울리안대학이라 부르면서 인도 나란다에 비유했다.불교교리나 경전은 물론 다른 여러 학문을 가르친 교육기관이 자울리안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정복자 알렉산더는 점성술,수학,의학 따위의 학문적 지식과 심지어는 병법까지 자울리안에서 빼내갔다. 자울리안은 돌을 쌓아 만든 석조건축물 가람이다.가람 자리가 산등성이라서 그런지,앞뜰은 옹색했다.몇 걸음을 걸어서 뜰을 비켜서자 수투파를 봉안한 불당이 나왔다.메인 수투파를 중심으로 키 작은 수투파들이 옹기종기 들러리를 섰다.진흙반죽에다 작은 불상들이 들어갈 감을 조각하여 말린 뒤 대개 세층으로 쌓아올린 수투파는 걸작의 예술품들이었다. 불당에서 승방을 향한 골목 한쪽으로 작은 방들이 따라 붙었다.석굴이 연상되는 방에 불상이 띄엄띄엄 좌정했다.홀로 앉은 이들 불상은 단독불상이 출현한 1세기말 이후 작품일 것이다.그러나 온전한 불상이 거의 없다.어떤 테라코타 불상 하나는 머리가 달아났는데,배꼽이 뚫려있다.성치 않은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깨끗이 낫는다는 속설때문에 배꼽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비록 목이 달아난 부처일지라도 이타행만큼은 실천하는 모양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승려 혜초(AD704∼787년)도 그 옛날 자울리안을 다녀갔다.이 책에 기록한 탁사국은 탁사실라일 것이다.그는 책에 쓰기를,「탁사국에 가면 절도 많고,승려도 많다」고 했다.구도여행에 지쳤던 혜초가 하룻밤 발을 뻗고 누웠을 승방도 자울리안 어디인가에 있을 것이다. 해거름에 탁실라박물관 근처 레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저녁식사 카레라이스에 앞서 요구르트와 쌀가루를 섞어만든 죽 키르가 식탁에 올랐다.고타마 싯달다가 고행에서 나오자,한 처녀가 그에게 바쳤다는 유미죽이 연상되었다.「대장엄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릴리프로 표현한 탁실라 출토품 불전도가 탁실라박물관에 있다. ◎여행 가이드/이슬라마바드서 약 40㎞/승용차 하루 전세 한화 3만원 고대유적이 광범위한 지역에 널린 탁실라는 파키스탄 라발핀디현에 속한다.수도 이슬라마바드로부터 40㎞,현소재지 라발핀디에서는 35㎞가 떨어져 있다. 고대의 불교유적과 도시유적 말고도 국립탁실라박물관이 있기 때문에 하루일정으로 돌아보기가 어렵다.그래서 탁실라에서 숙박을 하든가,아니면 이슬라마바드를 거점으로 유적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탁실라박물관 바로 앞에 레스트 하우스가 있으나 소규모다. 이런 현지사정을 고려해서 이슬라마바드에 묵는 사람이 많다.이슬라마바드에서 탁실라를 왕복하는데 드는 승용차대절비는 기름값을 포함,하루 40달러(한화 3만원정도).이슬라마바드에는 국제체인의 관광호텔과 국영호텔 등 숙박시설이 많다.문의는 인더스 가이드(전화 92­42­872975).
  • 전주서 자매 연쇄 피살/경찰,동일범 추정

    ◎10시간사이 가정집·호텔서 【전주=조승진 기자】 이틀 사이에 20,30대 자매가 호텔객실과 아파트에서 차례로 살해됐다. 24일 상오 3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코아호텔 1107호에서 김혜영씨(28·여·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코오롱아파트)가 옷이 벗겨진채 흉기에 가슴등을 마구 찔려 숨졌다. 숨진 김씨를 처음 발견한 호텔종업원 김모씨(25)는 경찰에서 『호텔 복도바닥에 1107호 방문 열쇠가 떨어져 있어 이를 돌려주기 위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손과 발이 철사줄로 묶인채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3일 낮 12시30분쯤 한때 동거했던 박모씨(38·무직·전북 익산시)와 함께 투숙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에앞서 지난 23일 하오 4시쯤 숨진 혜영씨와 함께 살고 있는 언니 김복자씨(38·상업))가 평화동 코오롱아파트 안방에서 속옷차림으로 손과 발이 침대 네귀퉁이에 묶인채 온몸이 흉기로 난자당해 숨져 있는 것을 남편 송모씨(42·상업)가 발견했다.
  • 사랑한다는 일/이경자 작가(굄돌)

    사랑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사랑,그 본질에 다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물론 사랑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어쩌면 50억 인구만큼 그리고 그 50억이 이렇게 저렇게 얼키고 설키는 엄청난 양만큼 많을 것이다. 그 사랑이 차마 흉내낼 수도 없이 커서 신의 경지로 받들어지는 성인과 영웅,혁명가들의 사랑도 있다. 자식을 부끄러움없이 충분히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 것이며 자식이 그 부모에 대해 형제자매끼리 연인끼리 부부끼리… 서로 충분히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요새 중국에서 제작한 「양귀비」와 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보며 다시 사랑한다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나라 때 그 찬란한 문화를 세계에 떨치도록 했던 영웅 현종이 자신의 며느리로 들어온 양귀비에 사로잡히는 것.우리가 제도화된 의식으로 현종을 바라본다면 그는 직무를 유기하고 풍속을 문란케 한 그리고 색정에 탐닉한 실패한 영웅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소설가의 가슴으로 그들의 사랑에 닿아보면 해석이 전혀달라진다. 현종은 용기있는 남자였으므로 그 굳건한 제도를 뚫을 수 있었던 것이다. 「브레이브 하트」에서,스코틀랜드의 민족해방전사였던 그 전설같은 남자 윌리엄 웨레스도 사랑에 닿는다. 그는 어린날 정복자의 칼날에 자신의 사랑을 다 잃는다.부모와 형제와 이웃들을 살육으로 빼앗기는 것이다.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또한 그렇게 잃었을 때,그는 사랑의 적인 모든 폭력과 거짓에 대항한다. 사형장에서 그가 야만적인 집단 히스테리를 뚫고 외친말,그것은 사랑의 다른 언어인 「자유!」였다. 자유를 즐길 수 있고 자기 삶의 주체적 주인일 수 있는 진정한 생명­그런 사람만이 용기를 가지고 사랑도 할 수 있으리.
  • 돌은 누구/최장수 원내총무·6선 상원의원 “화려”

    ◎61년 정계입문… 당선땐 최고령 미 대통령 기록/80·88년 이어 세번째 도전… “지번 부족” 지적도 올 7월로 73세가 되는 돌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 역사상 가장 늙은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그러나 엄청난 육체적 역경을 이겨낸 20대때 돌의 입지전적 의지는 지금도 그의 최대자산이다.2차대전 당시 육군소위로 참전했던 그는 종전을 한달 앞두고 평생을 반신불수의 불구자로 보낼 치명적 부상을 당했으나 39개월간의 철인적 재활노력끝에 다시 일어섰다.오른손을 완전히 못써 악수는 커녕 노트필기,넥타이매기,나이프로 음식을 써는 것조차 못했으나 84년부터 공화당 상원 최고지도자(원내총무)로 연속 뽑혀 최장기록을 세웠고 80,88년에 이어 공화당 대선지명전에 나섰다. 돌은 누구보다 의정경험이 풍부하지만 대국적 비전이 부족한 노정객일 뿐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61년 연방하원에 처음 진출했고 69년부터 상원의원이 됐다.상원 초선이면서도 당시 닉슨 대통령에게 잘 보여 당요직인 공화당전국위원회 위원장에 올랐으나 「다행히」 워터게이트사건 이전에 닉슨이 거리를 두었다.76년 카터·먼데일 민주당팀에 진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다.80년 레이건 후보에게 공화당지명전에서 참패했고 88년 부시 후보에게 역시 참패했다. 23세 아래인 클린턴 대통령과는 부자뻘인 「참전세대」와 「베이비붐세대」의 차이가 읽혀진다.돌 후보가 부상당한 1년 후인 46년 클린턴은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고향 캔자스주 러셀의 지방검사였던 돌이 하원에 진출한 2년 후인 63년 고등학생인 클린턴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돌이 첫 상원선거에 당선된 68년 클린턴은 베트남 파병을 피해 영국유학길에 올랐다.80년 클린턴은 주지사 재선에서 떨어졌고 돌은 첫 대선지명전에서 도중하차했다.88년 돌은 두번째 지명전에 나섰고 6년 전부터 다시 주지사에 올라있던 클린턴은 「뉴민주당」의 스타로 부상했다.그리고 92년 클린턴은 대통령에,돌은 6선의 상원의원에 각각 당선됐다. 돌 후보는 본래 의사를 지망했고 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갈 만큼 운동에 뛰어났었다.간호원 출신의 첫 부인과 헤어진 뒤 하버드대 변호사인 현 엘리자베스 여사와 75년 재혼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