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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태와 문제점(방송 이대로는 안된다:1­2)

    ◎시청률 급급… ‘불륜·주먹질’ 여전/MBC 폭력성·SBS 선정성 가장 높아/“저질 판쳐 청소년에 악영향” 비판 거세 KBS­2TV의 시사프로 진행자인 정범구 박사는 최근 출간한 사회평론집(‘정범구의 세상읽기’­창작과비평사 펴냄)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보면 좀 다르다. 여전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그런 나라인 것 같다. 그저 면피용(?)으로 일부 시사 교양프로그램에서 실업자문제를 잠깐씩 다룰 뿐 드라마는 여전히 고급주택 안방에서 벌어지는 사랑 놀음,아니면 며느리­시어머니 갈등의 범위를 크게 못 벗어나고 있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이제 어떤 매체도 넘보지 못할 만큼 막강하다. 그러나 ‘공룡 미디어’가 그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각계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공익적 기능과 건전한 국민여론을 이끌어야 하는 소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상업 논리에 밀려 공영성은 아랑곳 않고 오락·연예인프로가 판을 치며 자극·폭력적인 장면이 난무한다는 지적이 많다. 뉴스도 보도보다 재미에 치중하고 있다고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일 金大中대 통령이 MBC 창사특집 생방송인터뷰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그런 TV가 아쉽다”는 말은 이런 문제를 집약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달 열린 한국방송개발원 주최 토론회에서 朴雄振 연구원은 ‘모니터링에 기초한 한국 방송프로그램 진단’을 주제로 한 발제문에서 지나친 시청률 경쟁으로 방송 3사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MBC가 폭력성이 가장 높고,SBS는 선정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공중파 3사는 앞다퉈 IMF관리체제를 맞아 10대 위주의 화려한 인기가요 순위프로를 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몇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인기가요 프로가 슬며시 부활하고 있다. 드라마 환경은 더 열악하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현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시청률 정상을 달리고 있는 MBC 프로들을 보자.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공허한 내용으로 ‘엿가락 편성’을 하거나(‘보고 또 보고’)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이복자매의 사랑다툼이나 계모 죽이기(‘사랑과 성공’)에 집착한다. 여기에 최근 월화드라마 ‘애드버킷’에서 성폭행 장면이나 유혈이 낭자한 복수장면의 지나친 묘사도 가세했다. 또 범죄 재연프로의 만연이나 귀신을 다룬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부추기는 프로의 과열은 어떤가. 연예인의 신변잡기만 늘어놓으며 세상은 어디로 가건 아랑곳 없다는 듯한 심야토크쇼는 차라리 공해에 가깝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曺정하 사무국장은 “범죄재연 프로그램이 청소년에게 범죄심리를 부추기는 것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방법까지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범죄의 학습’”이라면서 “특히 MBC드라마 ‘애드버킷’의 지나친 성폭행·싸움장면 묘사는 너무 적나라하고 모방심리를 조장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프로그램 저질화의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방송 현장에서는 입을 모아 ‘광고 경쟁’이라는 현실 탓으로 돌린다. 경제난으로 광고가 급감하자 방송사별로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자연히 광고주의 눈길을 끌어야 하고 그 잣대인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좀더 벗기고 좀더 찌르는 선정·폭력의 소재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회사의 수입이 걸려 있는 일이라 시청률을 의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좋은 프로보다는 같은 시간대의 다른 방송사 프로의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1%라도 뒤지게 되면 흥분하게 된다. 어느덧 시청률 만능주의가 당연한듯 자기 최면에 걸리게 된다”. 모 방송사 예능담당 PD의 자조적인 고백이다. 여성민우회 방송모니터팀 朴奉貞淑 간사는 “시청자의 소리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작진과 시청자가 꾸준히 언로를 열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해나가면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개혁위 활동 방향/내부 구조개선·프로그램 질향상에 무게/공영·민영방송 제도적 차별화 주안점 방송개혁위원회 출범은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언론계에선 평가한다. 방송개혁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姜元龍 목사(크리스챤 아카데미 이사장)를 비롯,다른 위원들의 면면을 봤을 때 일부에서 제기된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언론계 일각에서도 전문성과 개혁성이 있는 인사들이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姜목사도 “6공화국 때 방송위원장을 지내면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해 왔었다”고 주장,항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방송개혁위의 활동 방향은 아직 구체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주로 방송계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와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무게를 실을 것으로 알려졌다. 姜목사 역시 “방송개혁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합리적 대안의 준거틀이 필요하다”고 말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특히 편성의 다양성을 위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은 프로그램 편성의 방향을 제도적으로 차별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는 복안이다. 이 대목에 대해 姜목사는 사견임을 전제하고 “현재와 같은 방송구조로는 질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시청률만 좇는 시스템은 결코 국민을 위한 프로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회사가 많아야 방송사들이 좋은 프로를 선택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논리다. 결국 방송개혁위의 시행과제가 구조조정이나 방송산업에 치중되어 있지만 속내는 좋은 방송 프로를 만들자는 취지로 모아지게 돼 있다. 방송산업의 경쟁력 제고나 영상산업 육성 등도 구체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연대회의 金祥根 대표 인터뷰/“방송사 매너리즘 탈피 개혁프로 과감히 늘려야” 시청자연대회의 상임대표인 金祥根 목사는 누구 못지않게 개혁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공영,민영방송 모두 구체적 컨텐츠로 건전한 방송문화를 갖추는 것이 ‘시청자를 위한 방송’의 밑거름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는 안방극장으로서 역기능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심야시간대로 옮겨야 합니다. 대신 개혁적인 프로를 주요 시간대에 과감히 내보내는 결단을 내려야 상업성의 폐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개혁 프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고 지향점은 무언지 궁금하다. “방송사의 개혁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담겨야죠. 구체적으론 옴부즈맨 프로를 늘리고 시청자 참여 토론프로도 의무화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시청자와 함께 하는 토론프로가 있지만 대개 방송사 입맛에 맞는 사람 위주의 편중된 진행 아닙니까. 나아가 시청자가 제작에 참여하는 과감한 기획도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金목사는 좋은 본보기로 ‘정범구의 세상읽기’를 들었다. 사회의 뜨거운 현안을 둘러싸고 관련 인사들을 다양하게 불러 여과없이 현상을 진단한 미덕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는 특히 “‘그 나물에 그 밥’의 인물이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확산시키는 프로가 너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아울러 방송사 안의 자율심의기구가 현실적 제약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시청자단체의 모니터를 받아들이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사회에 대표를 참여시키고 시청자위원회의 법적 지위도 격상해야 한다는 대안을 金목사는 제시했다. 방송 개혁과 관련한 金목사의 아이디어는 샘솟는다.KBS 시청료거부운동으로 발을 들여놓은 이후 줄곧 이 분야에서 체험한 비합리적인 관행과 싸우면서 다져진 절실한 얘기들이다. “우리 방송사는 자체 내에서 제작부터 보급에 이르는 완결구조를 갖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공룡 매체’가 되는 요인입니다. 몸집을 줄이고 유휴 인력이 제작현장에 나가 독립제작사를 만들면서 경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방향있는 실업’은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金목사는 공영성 확보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이 민영방송과의 차별화작업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민영방송이 본받을 만한 공영성있는 프로가 드문 게 문제입니다 .이는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말인데 광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공영방송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KBS­2TV는 수신료 인상을 통해 광고를 폐지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으로 방송 개혁의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은 방송개혁의 의지를 어느 때보다 높일 때입니다. 우선 방송의 민주화,노사 협력,시청자 참여를 내적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참여민주주의,민족문화의 계승 발전에 기초한 국제화시대 주도,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제2의 건국정신과 병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방송사 내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구시대 인물과 잔재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제도 개선작업을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별취재반 洪性秋 행정뉴스팀 차장 崔光淑 정치팀 기자 李鍾壽 李順女 문화생활팀 기자
  • TV드라마 단골메뉴는‘부도덕’/방송사 제작‘가이드라인’있으나마나

    ◎현실과 거리먼 일그러진 소재/상식 벗어난 지나친 상황 설정/시청자 판단조차 흐리게 할 위험 한 유부남은 자신의 아기를 키우는 옛 연인 근처를 배회하고 그의 부인은 첫사랑 남자의 아이를 가진 채 결혼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남자는 친구와 살던 여인과 동거하고 배다른 자매는 한 남자를 놓고 사랑다툼을 벌인다. 요즘 방송사 드라마의 풍속도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소재들이 판친다. 선이 굵은 서사물보다는 일상 생활을 다룬 아기자기한 소품이 잘 먹힌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재가 너무 일그러진 관계에 몰려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SBS­TV의 아침드라마 ‘포옹’은 너무 얽히고설켜 있다. 인철(이영하)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 옛 연인인 소원(김미숙)을 우연히 만나 갈등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이혜숙)는 옛 남자(송영창)의 애를 임신한 채 시집왔다는 고민을 안고 산다. 이쯤되면 부도덕의 백과전서라 할 만하다. 이런 구도로 2달을 끌고 있다. 아침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주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보듯 뻔하다. 그리고 모처럼 아침드라마에 불기 시작한 건전한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 파급효과마저 우려된다. 한 시청자의 비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눈길을 끌려고 상황을 너무 과장해서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이런 드라마를 보다보면 극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한듯 착각하고 판단기준이 흐려져 ‘부도덕의 덫’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 드라마 왕국 MBC­TV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19일 끝난 ‘수줍은 연인’도 타락의 유혹과 멀지 않다. ‘홀로된 아버지의 재혼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기획의도는 어느 정도 살린 것 같다. 하지만 명일(감우성)이 친구 주환(장호일)과 동거하던 영선(심혜진)과 함께 사는,보통의 도덕적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여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창 뜨고 있는 주말극 ‘사랑과 성공’은 어떤가. 콩쥐팥쥐 아류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벗어날까 하는 궁금증과 맞물려 출발부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변호사 태우(박상원)를 둘러싼 이복자매 간의 갈등에 무게가 실리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에 관해 여성민우회 박봉정숙 TV모니터팀 간사는 “물론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시각 자체가 너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밀실에 갇혀 있는 것은 문제”라면서 “말초적 소재는 예전부터 입이 닳도록 제기한 문제이기에 이제는 방송사 자체에서 정화할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9월 KBS의 발표에 이어 SBS도 최근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취재·제작의 기본자세 항목에 이런 게 있다.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미칠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제1장 방송제작의 일반지침 중 취재 제작의 기본자세). 방송사들은 이런 제작지침을 외부 의식용이 아니라 제작과정에 실제로 녹아들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고양 중남미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1)

    ◎어! 한국속에 중남미 있었네/국내유일의 외국문화 전문관/잉카·마야 유물 등 1,500점 전시/각종 생활용품 라틴문화 한눈에/전통가면 우리탈 보는듯 친근감 가을에는 훌쩍 떠나고 싶다. 발길 가는 곳으로 가자.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다면…. 라틴 아메리카로 떠날까. 마음은 그래도 너무 멀어 라틴 아메리카로 가을여행을 떠나기란 버겁다. 그래,중남미 여행대신 ‘중남미박물관’으로 문화여행 떠나자. 침략자의 눈으로는 ‘발견한’ 땅. 그러나 BC 5,000년부터 이미 감자와 고추를 재배했고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을 꽃피운 현란한 문명의 땅이었다. 오늘날엔 천연자원의 보고이지만 늦어진 산업화로 가난에 파묻혔던 이 곳은 현재 ‘새로운 땅’으로 불린다. 베링해를 건너간 2만5,000년 전,선조들이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우리와 닮았다. 지구 반대편의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와 닮았음은 일종의 문화충격이다. 마야와 잉카문명,아즈텍으로 대표되는 중남미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위치한 중남미박물관은 외국문화 전문 박물관으론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곳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중남미 전문 박물관이다. 붉은 벽돌 스페인풍의 건축물,잘 가꿔진 정원에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조각가 빅또르 구띠에레스의 여인상을 비롯 곳곳에 놓여진 조각품들이 멋스럽다. 5,000평의 대지에 총 건평 1,600평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꾸며졌다. 우선 중남미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선 박물관 실내는 경쾌한 라틴 음악과 후엔 데쓰라 불리는 분수대,중남미의 상징인 태양신 아즈텍의 문양이 천장을 장식하고 있어 중남미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의 라틴 문화유산은 총 1,500여점. 아즈테카 잉카문명 등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각국의 찬란했던 문화유산과 역사 생활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잉카문명의 토기 석기 목기 등 고대유물은 이 박물관의 첫번째 자랑. 가면과 도자기,가구와 민속공예품과 그림,영상물,전문서적은 물론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중남미의 모든 것이 있다. 이 박물관은 전직 외교관 부부의 콜렉션에서 시작됐다. 전 멕시코대사를 지낸 이복형(李福衡) 박물관장은 “혼을 넣어 만든 곳”이라 자랑한다. 30년을 골동품 시장과 벼륙시장을 뒤져 모았고,전장이라도 유물만 있다면 달려갔다. 그리고 94년,퇴직금으로 박물관 건물을 지어 박물관을 개관했다. 중남미에서만 30년동안 외교관생활을 했기때문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도 있지만 ‘순수하고,따뜻하며 상대적 빈곤감도 느낄 줄 모르는 풍요로운’ 그곳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야말로 박물관 탄생의 첫번째 이유이다. 토기는 중남미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인디오 또또낙 족의 토우를 비롯 마야의 ‘고행하는 사제’,올 메까족의 ‘손가락을 빠는 토우’, 아즈텍시대의 ‘풍요의 신’도 있다. 또 8세기 엘살바도르의 요초아와 요호아상,3세기 따이노족의 토기 파편과 멕시코 꼴리마 지방의 ‘다산의 여신’도 자랑거리이다. 목기와 석기,구리로 생활소품을 많이 만든 멕시코 지방의 구리공예와 청색자기도 함께 볼거리이다. 이 박물관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인 곳은 가면의 방이다. 남미 전통의귀신탈과 우리의 천하대장군과 비슷한 멕시코 마추와 칸의 나무탈이 있고 나무와 종이,뿔과 돌,비취와 가죽,구슬 야자수 등 소재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두려움의 대상인 표범과 사슴 독수리 게의 탈도 있다. 죽음의 가면과 쌍가면 등,가면을 반으로 나눠 표정이 두가지 이상을 담고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수탈을 당해온 민족의 한과 정복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중남미 역사에서 식민지배를 빼놓을 수 없듯 이 박물관에서도 루이 15세가 사용하던 바로크 가구세트가 눈길을 끈다. 스페인 정복실에는 기독교와 무력,부에 대한 욕망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는 인디오가 그린 마리아와 스페인 종교화의 대가인 무리요의 화법을 흉내낸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성당 수사들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거칠게 만들어진 목각 예수상,18세기의 천사도 남미문화의 소박함을 엿보게 한다. 안데스 인디오의 대표적인 민속악기 삼뽀냐,케냐,땀볼과 아즈텍 시대의 목각 타악기까지 악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유물의 전시 뿐아니라 살아있는 문화의 현장.중남미의 대표적인 음식강습이 매일 열리는가 하면 중남미 의상전시회,음악회도 열린다. 지난해 개관한 미술관은 중남미 작가들에게 아시아 진출의 발판이 되고 있다. ◎한마디/李福衡 박물관장/라틴문화 ‘공유정신’도 함께 배우고 가길 기대/멕시코 등 4국서 대사/30여년 수집품 등 모두 문화원재단에 기증 중남미박물관에서는 중남미의 문화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李福衡(67) 洪甲杓(65) 전직 대사 내외의 중남미 문화에 대한 사랑과 집념,그리고 무소유의 인생관도 배울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아내의 집념과 초인간적인 열의로 이뤄졌어요”라고 李관장은 말한다. 그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도미니카 등 4개국 대사를 지낸 중남미 전문가. 李관장 내외의 공식명칭은 아내 洪씨가 중남미 문화원 이사장,李씨가 부설 박물관장. 격으로 보면 부인이 한수 위다. 남편 은퇴 후를 미리 준비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다. 박물관을 지은 터는 30년 전 평당 300원씩을 주고 산 땅이다. ‘은퇴후 살 곳’으로 사뒀던 곳이지만 테마박물관으로 뜻을 정한 후,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즐거움’을 실천하게 됐다. 8원씩 사서 심고 펌프물을 길러 키웠던 묘목들도 자식같아 이 곳에 박물관을 세웠다. 자신을 ‘유노동 무임금’성실한 정원사라 말하는 李관장의 손은 막일꾼의 손이다. 땅과 유물까지 ‘엄청난 재산’을 중남미 문화원재단에 기증했고,사후 장기기증까지 결정했다는 이들에게선 중남미의 화려한 문화 뿐아니라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도 배울 수 있다. “문화의 빈곤이 우리나라의 갖가지 위기를 갖고 왔어요. 있는 자들이 소유하려하지 않고 함께 공유하려는 생각을 해야 해요” “이 다음에 네 아들을 데리고 또 와다오. 그때 이 박물관 만든 할아버지·할머니 만났던 이야기를 아들에게도 해줘야 해” 엘살바도르 민속토기를 싸게 사기 위해 게릴라들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에 밤늦게 들어가기도 했던 용감한 콜렉터 洪이사장은 관람온 한 중학생에게 당부한다. ◎이렇게 가세요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302의 1번지 중남미 박물관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문산방면으로 가다 필리핀 참전기념비와 벽제읍을 지나 고양동파출소에서 좌회전해서 마을로 들어간다. ‘이 곳에 박물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파트가 들어선 마을길을 따라가면 박물관 안내판이 길을 가르쳐준다. 고양향교와 이웃하고 있다. 개관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년중무휴. 단 평일의 점심시간(12:00∼14:00)은 초등학생이하 어린이는 관람불가. 관람에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정도. 관람료는 어른이 2,500원,학생은 1,000원. 전화 (0344)962­9291·7171
  • 사민당 웃지만… 赤·綠 연정 산넘어 산/슈뢰더의 독일시대

    ◎지도부 시큰둥… 녹색당 정책과 마찰/기민·기사당과 大聯政은 “공약 위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사민당(SPD)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다.정권을 단독으로 인수할 수 있는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해법은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방안. 우선 떠오는 상대는 녹색당.사민당은 선거전에서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공언해왔다.더구나 녹색당은 선전하면서 사민당과 손을 잡으면 연방 하원에서 의석이 과반수를 넘는다. 그러나 막상 선거결과가 나오자 사민당 지도부는 녹색당과의 연정 구성에 시큰둥하다.한마디로 손을 잡는데 걸림돌이 있다는 얘기다. 녹색당은 특히 △휘발유값 3배 인상 △북대서양 조약기구 해체 △원자력발전소의 ‘즉각’ 폐쇄 △일부 마약의 합법화 등 사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정책들을 고집해 왔다.슈뢰더는 수차례에 걸쳐 녹색당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촉구했었다. 사민당이 택할 수있는 다른 카드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대(大)연정’을 구성하는 길.이같은 기미를 알아채기라도 한듯 기민당과 기사당 지도부는 ‘연정 협상의 문은 닫혀있지 않다’면서 ‘사민당이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라고 흘리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은 있다.유권자와의 약속 위반이라는 정치 도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사민당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대연정’을 구성하는 사태가 일어 나지 않도록 구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PDS)의 의회 진출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었다. 또 있다.기민당의 자매 정당인 기사당이 ‘대연정’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기민당이 사민당과 손을 잡기 위해서는 기사당과의 협력관계를 포기해야 하지만 2차 대전후 50년동안 운명을 함께 해온 터이고 보면 ‘대연정’의 길도 험난하기만 하다. ◎슈뢰더의 정책방향/복지·외교 등 ‘강한 독일 만들기’ 펼듯 게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대내적으로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진영과 동반자 관계수립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뭐니뭐니해도 400만명에이르는 실업자 군단을 감축하는 작업.기민당은 이미 선거전에서 10.3%의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법인세 인하와 임금 부대비용 삭감 등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여왔다.공급위주의 해결책이다. 반면 사민당의 슈뢰더는 일자리 공유를 해법으로 제시해 왔다.주당 35∼38시간의 근로시간을 30시간까지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눠갖자는 것이다.고용확대를 위해 노·사·정(勞社政) 3자 연대 가능성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富)와 사회정의의 조화를 강조해온 슈뢰더는 또 중·저소득층에 유리한 세제개혁을 단행할 것같다.소득세의 최고와 최저세율을 각각 4%포인트씩 낮추고 법인세율은 47%에서 단계적으로 35%로 내리겠다고 밝혔다. 저소득층의 복지를 염두에 두는 방안이다.선거기간 최저 및 최고 소득세율을 11.9∼14%포인트,법인세는 빠른 시일안에 35%로 내리자는 세제개혁안을 제시했었던 기민당의 정책과 쉽게 대비된다. 군사 및 외교 정책에서는 독일의 입지를 굳힐 게 확실시된다.유럽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는 ‘대서양주의’를 출발선으로 삼을 것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유럽과 미국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할 게 분명하다. 유럽내에서도 친 프랑스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영국과의 양자 연대나 영국 및 프랑스와의 3자연대를 모색해 제 색깔을 내려할 것이다.특히 내년은 독일이 유럽연합(EU) 의장국이 되는 해인 만큼 EU 고용창출협정 체결 등을 통해 외교역량을 한껏 과시하려 들 것으로 전망된다. ◎슈뢰더는 누구/‘독일의 블레어’… 상점견습생서 21세기 리더로 독일의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게하르트 슈뢰더(54)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독일 정계의 신세대 정치인으로 떠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1944년 나치병사였던 부친의 유복자로 태어나 편모 슬하에서 다른 4형제와 가난하게 자랐다.17세 때 상점 견습생이 되었으나 야간학교를 다니며 대입자격시험에 합격,명문 괴팅겐 대학 법과에 입학.76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야간학교 재학중이던 63년 사민당에 가입했고 정열적인 활동력과 정연한 논리,탁월한 언변으로 78년 사민당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유조스)의 의장에 선출됐다. 80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86년 니더작센 주의회 사민당 원내의장,90년 주총리 등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 들면서 편향된 이념에서 벗어나 사민당의 온건파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뛰어난 용모와 화술 등 탤런트적 이미지로‘신(新) 중도’‘제3의 길’을 역설해 변화를 원하는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성편력도 화려해 지난해 9월 세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20세 연하의 기자 출신 도리스 쾨프(33)와 네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녹색당의 피셔/세계 첫 환경정당… 거리투사서 정계스타로 사민당의 연정 첫번째 상대로 꼽히는 녹색당은 70년대에 결성된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83년 총선에서 27석을 얻어 연방 하원에 진출한 제3당.통일후에는 옛 동독의 민주화운동 시민그룹 ‘동맹 90’과 통합하면서 급속히 세력을 넓혔고 94년 선거에서는 49석을 얻었다. 지지기반을 넓히기위해 대중적 이미지를 심으려는 온건파들과 당초의 정강을 고수하는 강경파들간의 알력이 있다.올초만해도 12∼13%에 달했던 지지율이 북대서양조약기구 해체 등을 요구하면서 선거 직전에는 5∼7%까지 떨어졌다. 녹색당을 이끄는 인물은 요시카 피셔 녹색당 하원 원내의장(50).환경정당을 정치의 중심무대로 끌어 올린 3선 의원.학력은 고교 중퇴가 전부. 60·70년대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다가 70년대말 제도권으로 들어 왔다.극좌파가 나치만큼 비인간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자동차 공장 노동자,야간 택시기사 등으로 일하며 틈틈이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도강’했다.81년 녹색당에 입당했고 연방 의원과 헤센주 환경장관을 2차례 역임했다. ◎콜 16년 집권 마감/‘통독의 거인’ 역사속으로…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나게 될 헬무트 콜 총리(68)는 독일 통일 달성과 함께 유럽 통합을 이끈 ‘유럽 정치계의 거인’이었다. 1930년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15세때 2차대전 종전을 맞았다.프랑크푸르트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역사와 법률,정치학을 전공했으며 58년에는 문학박사가 됐다. 59년 라인란트 팔츠주(州)의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69년에는 주 총리,그리고 73년에는 기민당 총재로 선출됐다.82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붕괴되면서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사퇴하자 전격 뒤를 이었다. 통일후 계속된 높은 실업과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싫증이 16년만에 총리에서 물러나게 했다.가족들의 외부노출을 극도로 꺼려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 발레리나 金民嬉(이세기의 인물탐구:181)

    ◎마음의 향기 뿜어내는 ‘춤 전도사’/자기혁신 끝없는 시도 ‘20세기 파격’ 베자르 설립 벨지움무드라에서 수업/舊習에 갇힌 우리 무용계 안타까움을 작품에 溶解 “무대는 내영혼의 피난처”/윤동주 그린 ‘또다른 고향’ “번뜩이는 무용언어” 好評 추상회화 절제美 배운다 ‘베자르는 나에게 신(神)과 같은 존재’ 이는 발레리나 金民嬉의 신조다. 김민희는 대학교수이자 무용이론가이며 무용콩쿠르 심사위원, 국제세미나 질의자로서 탁월한 행정력을 지닌 지도자의 한사람이다. 그가 신처럼 여긴다는 20세기의 대표적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세계를 살펴보면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베자르는 지난 66년 도쿄 스포츠경기장에서 거대한 군중을 상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가부키’에서는 47인의 사무라이를 할복자살케 함으로써 섬뜩한 피날레로 세계를 경악시킨 장본인이다. 바로 김민희는 베자르가 설립한 국제예술원 벨지움무드라(MUDRA) 출신으로 한국 무용가로서는 베자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무용가이기도 하다. 형식과 틀에 머무르기 보다 자기속에서 끝없는 혁신을 시도하는 그의 안무는 마치 자신이 베자르인듯이 언제나 신선하고 이채로운 무대를 꾀한다. 공연장에 대한 개념도 개방적이다. 극장무대만을 고집하기보다 선상(船上)이나 해변, 야외 성당 등 공간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공연하여 그의 ‘춤의 창작성’이 어떤 제약이나 규격에서 탈피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런가하면 침묵속에서 춤추거나 혹은 북의 리듬만으로 춤추고 토슈와 맨발을 뒤섞어 놓거나 튀튀나 발레드레스가 아닌 종이옷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만년 현역으로 뛰는 다른 무용수들과는 달리 새털같은 가벼움과 냉엄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새파란 젊은이들을 무대에 세워 춤의 완성도를 향한 감연한 정열을 불태운다. 내가 만든 춤이 과연 어떤형태의 퍼포먼스로 관객의 심금을 울릴 것인가. 관객의 심장의 과녁에 확실한 메시지를 꽂아야만 비로소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아무리 창조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안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자세로 에너지가 분출하고 감동이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안무가도 무용수도 작곡가도 아니면서 발레 뤼스를 통해 미하일 포킨과 니진스키를 길러낸 디아길레프처럼 거대한 화면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 역시 무용을 총체적 예술로서 관장하는 위치다. 초기에 선보인 ‘나의 일기’와 ‘파우스트’‘파키타’가 전통발레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92년 춤의 해에 선보인 ‘헨델을 위한 무브먼트’는 모던발레의 힘찬 도약과 현란한 파드되의 직조가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시인 윤동주의 삶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또다른 고향’은 대서사시적 무용극으로 긴 침묵과 물방울 소리, 감옥의 창살 사이로 맹렬한 뜀뛰기와 휘어지는 도약, 교묘한 리프트를 실행하는 날아다니는 육체의 행렬로써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은 95년 서울국제무용제에서 대상·안무상·연기상·무대미술상을 휩쓸었고 평자들은 ‘번뜩이는 무용언어와 강한 캐릭터가 꿈틀거리는 수작중의 수작’으로 평한바 있다. 무용계에서는 널리 알려진대로 김민희는 묵화와 꽃꽂이연구가로 유명한 여류원로 田聖淑씨(83)의 2남4녀중 막내. 어머니의 ‘정성의 결정체’라 할만큼 아버지를 일찍 여읜 막내딸을 위해 어머니는 아직 6살이 채 못됐을 때부터 중구 회현동에 있던 동네 무용학원에 데리고 다녔고 금란여고를 거쳐 이대무용과에 입학할 때까지 간곡한 격려와 채찍으로 딸의 성장을 지켜왔다. 대학에 입학하던 67년부터 홍정희 육완순 교수의 작품에 출연,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면서 대학재학중이던 70년에 벨지움무드라에 유학하여 요가나 명상, 파드되 클래스에서 타악기 리듬을 집중적으로 몸에 익히는 가혹한 훈련을 받았다. 그때 그는 ‘발레란 육체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속과 마음속의 향기를 뿜어내는것’임을 깨달았고 베자르가 말한 ‘춤이란 댄스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에서 돌아오자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허탈감과 무기력증을 극복하지 못한채 한동안 무용계에서 잠적해버렸다. 만약 그때 무드라에서 배운대로 춤추었다면 당시의 한국의 발레풍토에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우려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춤에 미치고 싶다’는 욕망과 ‘너무 늦었다’는 압박감에 시달릴때도 어머니의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충고에 따라 긴 공백을 깨고 분연히 일어나 무용계에 컴백했다. 매끄럽고 반복적이며 소박하고 학구적인 춤의 본능이 몸속에서 다시 되살아나자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안무가로서의 자신의 방향을 정하고 우리의 발레가 지나치게 구태의연하고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자신의 작품에 용해시킬 수 있었다. 그가 클래식 발레에 바탕을 둔 창작발레를 고집하는 까닭은 춤을 댄스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며 제자들에게 ‘진실한 예술가의 자세’와 ‘왜 무용을 해야하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무가로서 세계적인 이르지 키리얀과 윌리엄 포사이드의 창작세계를 분석하면서 ‘무용을 통해서 지상에서 가장 최상의 아름다움과 만나게 되는것’에 충실하게 되었다. 프랑스 신세대의 명망있는 안무가인 마기 마렝이 벨지움무드라의 동기생이고 김복희 김화숙은 이대동창이다. 가족은 사업을 하는 부군 崔勝雄씨와의 사이에 아들만 형제, 성격은 윤동주의 시처럼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편이며 구상이 끝나면 한곳에 집착하지 않고 의외성이 분출될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대단하다. 무대는 ‘사람이 자기 영혼의 정확한 크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이세상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신념에 따라 그의 최근의 안무는 하나의 장르에 예속되기 보다 근육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이미지쪽에 치중하는 경향이다. 발레안무의 낡은 부대에 폭발적인 포도주를 쏟아붓기보다 흐르는 듯한 이미지와 태초의 빛,묵도(默禱)의 종착역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움직임은 추상회화의 생략과 절제처럼 여백의 미를 창출하는 시기다. □그의 길 ▲1967년 이화여대 무용과입학, 홍정희 발레공연출연 ▲1970­71년 국제예술원 벨지움무드라(MUDRA)장학생 수학 ▲1972년 이대졸업(발레전공) ▲1977·78년 독일 요한크랑코발레스쿨및 모나코 댄스아카데미연수 1981년 이화여대대학원 졸업 ▲1984년 하버드대 댄스센터연수 ▲1987년 창작발레 ‘나의 일기’ 공연 1988­현재 대한무용학회이사 ▲1989­현재 한양대 교수 ▲1989년 김민희발레공연 ▲1989­97년 한국발레협회이사 ▲1990년부터 해마다 ADF(아메리칸 댄스페스티발)연수 ▲1991년 한양대대학원(박사과정) ▲1991­현재 한국미래춤학회 상임이사, 전국발레콩쿠르 심사위원 ▲1993년부터 서울국제무용제참가 ▲1994­현재 한국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한국무용협회 이사. ▲1996년 전국무용제심사위원,한국발레협회공연및 한국발레연구회 정기공연외 한국발레협회부회장, 서울국제무용제운영위원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사람,사람들’‘숲에서’‘우리 안에는…’외 다수 서울국제무용제연기상(93년)·대상·안무상·연기상(95년) 역서 ‘클래식 발레(기초법과 용어)’(84년)‘세계발레작품 해설집’(87년)외
  • 親日의 군상:3/3·1문화상과 皇國예술인(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 짓밟고 해방후 민족상까지 받아 ‘3·1문화상’이라는 상이 있다.1960년에 제정돼 올해로 39회째 수상자를 냈다.3·1문화재단(이사장 文仁龜)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대한유화 창업자 李庭林(작고)씨가 제정한 것으로 시상분야는 학술·예술·기술 등 세 분야.재단측이 밝힌 이 상의 제정취지는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여……”다.상 이름에도 ‘3·1’이 들어가고 또 매년 3·1절 당일 시상식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상은 3·1정신을 길이 계승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상의 역대 수상자·심사위원 중에는 일제 당시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친일 작품을 남긴 예술가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예술분야 수상자중 13명,심사위원 중에는 20여명(일부 수상자와 중복됨)이 이에 해당된다.그들의 면면과 구체적인 일제시대 행적을 살펴보자. ◎상받은 예술인 13명의 친일행적은…/문인·화가 등 30여명 ‘위대한 3·1정신’ 왜곡/식민정책 전위대 역할… 청년 징병 내몰아 우선 예술분야 수상자가운데 문학가는 趙演鉉(13회)·安壽吉(14회)·白鐵(17회)·毛允淑(21회)·崔貞熙(24회)·李周洪(28회)등 6명,미술가는 李象範(4회)·金景承(5회)·金殷鎬(6회)·金仁承(9회)·朴泳善(10회)·金基昶(12회)등 6명,음악가는 金聖泰(22회) 1명이다. 문학 분야의 趙演鉉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동양에의 향수’(1942년 5월),‘아세아부흥론 서설’(42년 6월)등 친일성향의 평론을 썼다.이중 아세아부흥론 서설은 ‘동양지광’이 현상공모한 ‘지상(紙上)결전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입선한 작품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아시아부흥의 투사로 나설 것을 부추긴 내용이다.‘북간도’로 유명한 소설가 安壽吉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42년 2월)에 발표한 ‘원각촌’ 이외에도 ‘벼’,‘북향보’등의 친일성향의 작품을 쓴 바 있다. 평론가 白鐵은 작품보다는 친일단체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 李光洙) 상무간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를 지냈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시절 친일 미술가 沈亨求(해방후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됨)와 함께 조선미술가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으로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毛允淑,崔貞熙 두 사람이다.이들은 모두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41년 2월27일 부민관(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에서 개최된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李周洪 역시 상당수의 친일 작품을 남겼다.그는 친일 잡지인 ‘동양지광’에 수필 ‘청년과 도의’(43년 7월)를 비롯해 단편소설·시 등도 남겼다.그는 유일하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의 친일논쟁은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문화예술인의 최초 조직이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金殷鎬·金基昶·金景承·沈亨求·李象範·尹孝重 등을 친일 미술가로 규정,회원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이들의 대다수는 41년 2월21일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황민문화’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문인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예술단체와 더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단체로 활동하면서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기도 했다.43년 1월9일∼17일 정자옥(丁子屋·일제 당시 현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있던 백화점)에서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술가로서 첫 수상자인 李象範(4회)은 沈亨求와 더불어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냈으며,金景承·金仁承 형제는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특히 金仁承은 朴泳善과 함께 선일(鮮日)합작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단광회는 43년 3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회원 21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조선징병제 실시’(100호 규모)를 제작,제1회 단광회 유화전에 출품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은 조선군 애국부를 경유하여 군에 헌납되었다. 순종(純宗)의 초상화를 그린 金殷鎬 역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37년 중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여성들이 당시 용산 사단사령부 모 일본군 장성에게 금비녀·금반지 등을 바치는내용의 ‘금채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기도 했다.金基昶은 최근까지도 친일논쟁이 있었던 인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등의 친일성향의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음악가로는 金聖泰가 유일하다.그는 玄濟明 등과 함께 ‘가창지도대’,‘경성후생실내악단’등 친일 음악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 단체들은 ‘음악보국음악회’,‘비행기헌납 음악대연주회’등을 개최,황민음악을 보급하였다. ◎‘역사의 심사’받아야 할 심사위원은… 3·1문화상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도 20여 명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들이 포함돼 있다.이들중 申奭鎬와 李丙燾는 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의 鄭求忠과 尹日善도 학병권유 논설을 쓰고 시국강연회에 참석했다. 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제학자 高承濟는 ‘국민문학’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등에 수많은 친일 평론을 남겼다.언론인 高在旭은 경성배영(排英)동지회와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여류 교육가 高凰京은 金活蘭·毛允淑 등과 같이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인중에서는 金八峰·朴鍾和·兪鎭午·郭鍾元 등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논설·작품을 남겼고 극작가 柳致眞·徐恒錫,음악가 金元福(피아니스트) 등도 모두 친일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柳致眞의 경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고향 충무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95년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아니! 이럴수가…” 독립유공자 심사까지/‘식민학자’ 등 10여명 18년간 활동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포상은 지난 62년 군사정부가 6·25 전상자를 위한 ‘군사원호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정부는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독립유공자들의 공로를 후세에까지 전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광복절 등 역사적 기념일에 이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해 왔다. 현재까지 독립유공 공로로 포상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모두 8,514명(외국인 40명 포함)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역대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거나 ▲가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서훈자가 서로 뒤바뀐 경우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의 논란이 있어 왔다.또 이들중 일부 친일 경력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중에도 친일 단체나 기관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일부 포함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첫 포상이 실시된 62년도 이후 80년까지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는 10여명(일부 중복자 포함)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가 포함돼 있다. 1962년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의 위원 7명(위원장 포함)가운데 申奭鎬·李丙燾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申奭鎬는 1930년∼37년의 총독부수사관보(修史官補)를 거쳐 37년부터 수사관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으며,李丙燾는 1925년∼27년에 총독부 수사관보,이후는 촉탁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2명 중에는 4명의 친일인사가 들어 있다.高在旭·申奭鎬·柳光烈·李甲成 등이 그들이다.高在旭은 1937년 7월 12일 결성된 경성배영동지회와 같은 해 8월5일 결성된 전조선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다.柳光烈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국장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논설 및 친일 시국해설 다수를 발표한 언론인이다.李甲成은 상해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1명중 高在旭·白樂濬·申奭鎬·柳光烈·李丙燾·李瑄根·洪鍾仁·金聲均 등 8명의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들어 있다.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을,李瑄根은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洪鍾仁은 ‘매일신보’의 사회부장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지낸 사람이다.金聲均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언론·출판 검열담당)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 1977년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11명 가운데도 柳光烈·李殷相 등 2명이 포함돼 있는데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지 ‘만선일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포함된 친일 경력자 논란은 1980년까지 계속됐다.이 해 원호처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申奭鎬가 ‘끈질기게’ 포함돼 있다.그는 62년 첫 심사부터 63년,68년,80년도에 걸쳐 독립유공자 심사에 참여했었다. 친일파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林鍾國씨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논하는 자리나 대일(對日)외교 무대 등에는 친일파들이 나서서는 안될 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 민주열사 열전:1­1(정직한 역사 되찾기)

    ◎재조명의 의미/이제 ‘민족대통합의 빛’으로/60년대이후 319명 희생/진상규명·바른 평가 과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처절한 투쟁의 역사였다.질식할 듯한 독재체제의 폭압과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한 많은 사람들의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던 민주열사들이다. 그들은 거리에서,노동현장에서,학원에서 또는 감옥에서 민주화와 인권이 보장되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웠다.때로는 분신과 투신으로,단식투쟁으로, 시위로 독재정권과 악덕 기업주들에 항거했다.그들의 위대함은 독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이익이 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지던 사회풍토 속에서도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점이다. 민주열사들은 비겁의 사회에서 진정한 용기를,억압의 구조에서 영원한 자유를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김상진 열사는 “무릎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며 할복했다.대학생이던 그는 “숭고한 피를흩뿌려 이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젊은 생을 마감했다.‘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는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살지만 우리도 깨우쳐서 바보로 남지말자”며 노동운동에 나섰다.그리고 거대한 구조악 앞에 번민을 거듭하다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 이슬이 되기 위하여”란 말을 남기고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당겼다. 많은 목숨들이 이렇게 스러져 갔다.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숨졌는지 알 수없는 의문사와 고문사도 적지않았다.주위의 외면 속에 죽어간 ‘이름없는 민주열사’들도 많았다.그들은 비록 이름없이 죽어 갔지만 그들의 고귀한 희생은 오늘의 민주주의로 부활됐다. 전국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상임의장 李昌馥)가 집계한 60년대 이후의 민족민주열사는 319명.분신·투신·할복의 방법으로 목숨을 바치는가 하면 고문과 사건 조작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또 오랜 운동과정에서 병을 얻거나 고문 후유증,불의의 사고 등으로 숨진 열사들도 있다.노동운동 와중에 92명,학생운동 과정에 60명이 숨졌고,처형이나 옥중사망,출옥후 사망자도 103명에 이른다. 5·18 광주민중항쟁에서 희생된 열사들은 제외하고 그렇다. 그러나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는 여전히 미미하고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金三雄 친일문제연구회 회장(서울신문 주필)은 “민주열사들에 대한 법적·도덕적 예우와 진상규명이야말로 가장 먼저 서둘렀어야할 역사적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희생당한 열사와 유족들에게 정부가 그동안 무엇으로 보답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도 “민주열사 의문사에 대한 망각은 정의의 망각”이라며 반드시 진상규명 노력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그들은 이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민족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도 그들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는 진정한 화해란 없다”고 강조했다. ◎李富榮 의원 인터뷰/“전과기록 없애 명예회복부터”/피살자 진상조사위 구성… 특별검사 둬야/과거·현재·미래 묶어 민족정통성 확고히 여야 정치권의 개혁그룹과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인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이 추진되고 있다.그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李富榮 의원(한나라당)에게 특별법 추진의 의미와 전망을 들어 보았다. 李의원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차례 투옥당한 경험이 있는 대표적 재야출신 인사다.부인 孫守珦씨는 고(故) 張俊河 선생의 비서였다. ­민주열사 명예회복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치적으로 폭력,독재가 횡행했을 때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던 사람들의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일제시대 때 독립을 되찾고자 했던 선열들을 받드는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대한민국이 민족사의 유구한 전통을 잇고 통일된 조국의 주체가 되려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 확립,그리고 경제발전이라는 세가지 시대적가치를 고양시켜야 된다고 봅니다.그런 의미에서 민주열사에 대한 재평가와 명예회복은 이 시대에 당연히 논의되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명예회복의 구체적 방안으로 어떤 조치가 필요합니까. ▲전과기록을 우선 없애야 합니다.또 민주화에 공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훈포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더 중요한 것은 고문에 의했건,암살당했건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피살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진상을 밝히는 것입니다.특별법에 의한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특별검사가 임명되어야 합니다.심지어 10여년전에 의문사한 사람의 사인규명이 되지않아 가족들이 유골을 묻지 못하고 집에 보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가족들의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진 사례도 있는데 국가공권력이 외면하고 있습니다.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정부라면 당연히 진상규명에 나서야 합니다. ­특별법은 언제쯤 제정되리라 예상하십니까. ▲연내에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봅니다.올 정기국회에서는 특별법을 만들어야지요.이는 새 정부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이런 일부터 여야의 벽을 깨야 합니다.실제로 여야 의원들 사이에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여당에도,야당에도 이런 일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분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자는 의견도 있는데요. ▲우리 현대사는 아직도 독립운동 흐름과 친일파 흐름의 대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민족 정통성을 세우느냐,못세우느냐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물려줄 것이냐를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민주열사 명예회복이 지금의 세계화 추진과 맞부딪치는 것도 아닙니다.자기 정체성 확립없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과거와 현재,미래를 함께 묶어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기고/고난·희생은 위대한 유산/張琪杓 신문명정책硏 원장 한평생 민족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남의 나라 땅에서 옥사하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다.그래서 사필(史筆)이 강해야 민족이 강해진다”고 설파하셨다.훌륭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야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으며,자기 민족의 역사를 아는국민이라야 참된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민족정체성 확립 시급 지금 우리는 IMF사태라는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신적 빈곤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오늘의 이 시기는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윤리 등 사회의 전 부문에 걸친 총체적 위기이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경제성장 위주의 서구 근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8·15해방 후 민족반역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함으로써 민족정기를 세우지 못한 일은 두고두고 민족적 수치이자 민족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러나 우리는 해방후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한 일만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군사독재시절 민주화와 민족통일과 민중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온 살아 있는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 또한 크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더 없이 아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후 전세계 약소민족 해방투쟁의 선구자 역할을 한 3·1 운동을 비롯하여,4·19혁명,군사독재 반대투쟁,민주노동운동,부마항쟁,광주항쟁,6월 민주항쟁 등은 민족의 위대한 전통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민족적 전통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난이 담겨 있기에 우리는 이 전통을 더욱더 값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분신자결과 고문사가 특별히 많았다는 사실이다.1970년대 이후 분신자결한 사람이 69명이나 되며 할복자결, 투신자결,고문사 등을 합하면 무려 226명이나 된다.전세계 어떤나라의 민족해방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서도 이런 예를 찾을 수 없다.수십년간 1,000여명의 ‘양심수’가 계속되어온 나라도 유례를 찾을 수 없거니와,특히 이념 문제 때문에 43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한 나라도 없다.한없이 가슴아프고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그동안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고난에 찬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이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민족도약의 밑거름이 되게 하는가는 후세 사람의 몫이다. ○왜곡 현대사 논의 물꼬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E.H.카)라는 말이 있다.역사란 과거의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다 더 의미있게 하기 위해 과거를 재창조해 내는 인간의 합목적적인 행위이다.그러기에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이 어떠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역사서술자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역사적 소명감을 가져야 바른 역사를 쓸 수 있다.특히 민족정기가 훼손될 만큼 무시되고 왜곡되어온 한국현대사를 ‘역사의 장’에 올리는 일은 그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책임도 클 것이다.
  • 삼성생명/年 매출 20조… 生保社의 ‘대명사’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중 212위/3∼14세 대상 ‘꿈나무사랑보험’ 인기/안정적 확정금리 ‘더블찬스 연금’도 삼성생명은 연 매출 20조원에 생활설계사 7만여명을 거느리고 있다. 제조업도 끼기 힘든 미 포츈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12위에 올라있다. 국내 보험사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품은 알차다. 서비스도 삼성그룹의 효자답게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삼성생명의 대표 상품을 소개한다. ■꿈나무 사랑보험=삼성생명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개발한 종합보장보험으로 97년 상반기 최다판매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날로 늘어나는 어린이 안전사고와 각종 재해에 대비해 그동안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던 3∼14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틈새상품이다. 보험료는 월 2만원 정도. 암 진단시는 1,000만원,수술시 1회당 300만원,입원시 3일초과 1일당 10만원 등 각종 질병 및 재해로 인한 입원비와 수술비를 지급하고 예방접종비도 지급한다. 특히 재해 장해시 재활치료를 돕기 위해 최고 2억원의 특수교육비도 지급된다. ■퍼펙트 교통상해보험=자동차뿐만 아니라 비행기 선박 열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의한 사고를 모두 보장하는 상품. 97년 10월 판매된 뒤 10일만에 28만건,8개월동안 144만건 판매된 상품이다. 휴일사고시 최고 6억원까지 보장해 주며 뺑소니나 무보험 자동차에 의한 교통사고시에도 고액 보험금을 지급한다. 보험료는 월 3만∼4만원 정도. 가입연령은 5∼70세. 만기시 기납입 보험료 100%가 만기환급금으로 지급되는 기본형과 매 2년마다 계약해당일에 차량정비자금을 지급해주는 중도급부형 2가지가 있다. ■여성시대 건강보험=자칫 건강에 소홀하기 쉬운 여성들에게 발생하기 쉬운 질환과 성인성 질환을 종합적으로 보장하는 상품. 월 2만∼3만원대 보험료로 여성 질환에 대한 진단·수술·입원치료비는 물론 간병자금과 회복자금까지 지급한다. 31일 이상 입원후 퇴원할 경우는 100만원,121일 이상 입원후 퇴원할 경우는 200만원의 건강회복자금이 지급된다. 만기시에 낸 보험료를 전액 돌려받는 환급형과 보다 저렴한 보험료로 고액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순수형 두가지가있다. 25∼60세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재해로 인한 골절이나 교통사고로 입원한 경우에도 30만원의 응급치료비를 지급한다. ■꿈나무 저축보험=98년 5월부터 판매된 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저축보험. 계약자가 5만∼50만원의 기본보험료를 정하여 가입한 뒤 가입기간 중 경제적 형편에 따라 자유로이 보험료를 조절할 수 있고 중도인출도 자유롭다. 보험료의 추가 납입과 한시적 납입중지도 가능하다. 부모 사망이나 1급 장해시 자녀에게 생활자금이 지급되는 유자녀 생활자금 특약을 비롯해 자녀입원 특약등을 추가할 수 있다. ■더블찬스 연금보험=연금지급 개시 전에는 시중 실세금리를 반영하고 개시 후에는 안정적인 확정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으로 올 7월부터 판매됐다. 고금리가 당분간 지속되는 현실에서 고객의 손실을 보전하고 장기적으로 다가올 저금리 시대를 대비해 연금지급시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려는 목적이다. 15∼62세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고객이 원하면 4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 민주화 희생자 재조명 활발

    ◎고귀한 희생에도 300여명 아직 ‘범법자’ 낙인/추모단체 학술토론·대학 명예졸업장 추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민주열사’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분신이나 투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죽음을 당한 민주화 희생자는 300여명에 이른다.이들의 재조명 작업은 ‘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상임의장 李昌馥)와 80여개의 추모사업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희생자들이 아직도 범법자로 낙인 찍혀 있다”면서 “5·18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유공자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희생자 가운데는 노동운동 분야가 85명으로 가장 많고 학생운동 81명,재야·빈민·농민분야 및 일반시민 41명,사형·옥사하거나 출옥 뒤 사망한 장기수 등이 83명이다. 추모 단체들은 올초부터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서명운동을 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연대회의는 지난 4월 ‘민주열사 정신 계승을 위한 학술제’를 개최하고 한달동안 5만여명의 서명을받았다. 서울대 국민대 숭실대 전남대 등은 재학 중 희생된 학생들에게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하고 있다.서울대는 87년 6·10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됐던 朴鍾哲씨를 비롯,75년 유신반대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金相眞씨 등 재학중 숨진 10여명에게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 중이다.국민대도 학교를 중퇴하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 89년 노조탄압에 맞서 분신자살한 金윤기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줄 계획이다. 88년 5월 ‘군사독재타도’를 외치며 숭실대에서 분신 자살한 朴래전씨의 추모사업회는 지난 1일부터 1주일 동안 숭실대에서 10주기 추모제를 열고 그의 뜻을 기려 동화(冬花)문학상을 신설했다. 서울 평화시장의 노조 투쟁과정에서 분신자살한 全泰壹씨 추모사업회는 지난달 23일 고려대에서 민가협 및 민주노총 등이 참석한 가운데 ‘98 다시 만나는 全泰壹’행사를 열었다. 88년 ‘조국통일과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할복·투신자살한 趙城晩씨 추모사업회와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며 88년 분신자살한 崔덕수씨 추모사업회,91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姜慶大씨의 추모사업회 등도 명예회복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87년 8월 ‘노동자 대투쟁’ 당시 시위를 하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李錫圭씨 추모사업회를 결성했다.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며 80년 서울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자살한 서강대 金의기씨에 대해서는 학교민주동우회에서 추모 활동을 펴고 있다.
  • “왜곡된 가야史 복원” 강조/金 대통령,김수로왕릉 참배

    金大中 대통령이 30일 부산의 ‘98 세계 해양의 해’기념식에 참석한 뒤 귀경길에 경남 김해 가락시조대왕릉(김수로왕릉)을 참배했다.취임후 두번째 지방 나들이 길이었다.그는 김수로왕릉을 참배하는 행사에서 ‘왜곡된 가야사의 복원’을 유난히 강조했다. 행사를 준비한 청와대 李範觀 민정비서관은 “조상 묘에 들러 인사를 하는 행사일 뿐이니 대통령이 일개 문중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오해를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때 이 곳 종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금의환향(錦衣還鄕)의 뜻도 실린 것으로 보인다.현지에선 김해 金씨의 후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 시조왕릉을 찾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니냐는 분위기였다.실제 왕릉에는 종친 1,000여명이 모여 ‘1,500년만의 경사’에 감격해 하는 모습이었다. 金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우리집안의 1,500년의 꿈이 이뤄진 날’이라는 수사(修辭)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金대통령은 또 그의 뛰어난 역사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그는 “고구려와 백제는 기마민족의 정복자가 세운 정복왕조인 데 비해 신라와 가야는 하늘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 왕을 내려보내고 백성이 이를 왕으로 추대했다”며 선거로 뽑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여기에서 찾기도 했다.특히 “가야의 역사와 전통이 삼국사기에 의해 왜곡돼 통탄스럽다”고 표현,종친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 명동성당옆 중국음식점 주인 祝振財씨의 감회

    ◎민주화 중심서 화해의 가치 배워/현대사 바꾼 시위현장 빠짐없이 지켜봐/시위대 투신·할복 등 가슴아픈 기억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위와 농성이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해와 용서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서울 명동성당 옆에서 30년째 중국음식점 ‘성화장’을 운영하고 있는 축진재씨(51).29일로 축성 100주년을 맞는 명동성당을 바라보는 축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화교인 축씨는 김수환 추기경이 30년전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으로 명동성당에 부임하던 그 해 중국음식점을 열었었다.성당에서 10m도 채 안떨어진 건물 2층의 음식점에서 축씨는 70년대 명동성당 시국선언 사건부터 최근 민주노총의 집회까지 현대사를 바꾼 시위 현장들을 빠짐 없이 지켜보았다. 87년 6·10항쟁 때는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시위대 10여명이 프락치를 찾는다며 셔터를 뜯고 들어오는 바람에 5층까지 피신했다가 겨우 오해가 풀려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회고했다.돌이나 최루탄에 유리창이 깨지고 시위가 며칠이고 계속돼 임시휴업을 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그보다도 시위대의 투신이나 할복자살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28일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본 축씨는 “화해와 용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이 가르쳐 준 진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美 콜로라도州 메사 베르데(세계 문화유산 순례:67)

    ◎1,500년전 절벽위에 세운 ‘인디언 도시’/4,000개 공동주택·종교시설 23곳… 관개설비까지/전성기때 7,000명 거주… 암굴주거지 600곳 압권 【메사 베르데(美 콜로라도주)〓金在暎 특파원】 사막같은 황야에선 뭐니뭐니 해도 녹색이 가장 그리운 색이다.‘녹색의 대지(臺地)’란 뜻의 지명 ‘메사베르데’에는 불모의 땅에 지친 백인 개척자들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녹색 고원에 대고 지른 반가운 환호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백인들은 시적(詩的)인 땅이름만 남기고 금방 자리를 떠버렸다.반면 이곳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름 대신 800년의 손때가 절인 삶과 문명의 유산을 남겼다.백인들은 메사 베르데의 녹색을 눈에서 사막의 잔상을 씻어내는 청량제 쯤으로 여긴 셈이나 인디언들은 이 녹색 대지에다 사막의 살아있는 저쪽 피안(彼岸)을 세웠던 것이다. 미 콜로라도주 남서부 밑바닥에 소재한 메사 베르데 인디언 유적은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 등 4개주 접경지역에 펼쳐졌던 아나사지(Anasazi)문명에 속한다.미국의 인디언 문화는 크게 태평양 연안,대분지,대초원,남서부 사막,동부 수목지 등 5개로 대별하며 남서부 문화 가운데 아나사지 문명은 부족의 명맥이 끊겼음에도 특히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1888년 카우보이가 발견 반 불모지의 사막성 땅에 불쑥 솟아오른 암석대지인 ‘메사’는 몸체가 암석 절벽이고 위 봉우리는 평평한 고원으로 산 아닌 산이다.뉴멕시코,아리조나주에서 콜로라도주로 북상하는 도중에 많이 만나며 그중 뉴멕시코 북서쪽 끝 산 후안 분지에 많다.인디언 영화에 흔히 나오는 이 메사들은 특징은 막철분을 으깨 바른 것 같이 생생한 주황색 빛의 절벽인데 주변의 사막성 황무지와 어울려 위협적으로 보인다.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주를 움켜쥔 록키산맥의 끝자락으로 조금만 더 북상하면 4천m 고봉들이 곳곳에 솟아있다.메사 베르데란 이름은 1600년대 중·남아메리카에서 북상해온 스페인 정복자들이 선사했다.메사의 치렁치렁한 녹색 뒷머리를 보고 영탄조를 발한 이들도 막상 북쪽의 전면을 보고는 이 고원에 오르는 것을 단념했다.해발 2천m의 고지대지에서 그대로800m 단층애를 이룬 메사 전면이 너무 가파라서 그 안엔 탐험하더라도 어떤 유적이나 고대사회가 있을 성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무,전나무 등의 녹색 잎이 물결치고 있는 메사 베르데는 거대한 산악지형이다.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진 이 지형은 십여개의 가파른 협곡 사이 몇곳에 평평한 메사가 놓여 있다.면적은 서울 2배가 넘는다.1888년 12월,잃어버린 소를 찾아 메사를 헤매던 2명의 카우보이들에 의해 1300년 이후 600년동안 잠자고 있던 아나사지 인디언 유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드넓은 메사에서 인디언의 삶터는 아주 조그만 부분에 불과했다.입구에서 10㎞는 족히 들어간 다음에 첫 흔적이 있고 35㎞는 더 가야 샤핀 메사의 주 근거지가 나온다.푸에블로 인디안의 메사 베르데 유적은 서기 500년부터 80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진 것으로 석기,역사기록 전무의 선사적 특징은 변동이 없으되 주거지 유형의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잡혀진다.물을 담을 만큼 촘촘한 바구니를 유카 실로 엮었던 초기에는 지하에 방을 내고 나무잎과 흙으로 지붕을 인 움집에서살았다. 토기를 굽기 시작한 800년 무렵부터의 중기는 지상 가옥으로 변하면서 마을이 이뤄지고 집을 잇대어 짓는 단체구조로 발전했다.메사 베르데의 토기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특이한 배합으로 눈길을 끈다.1100년부터는 진흙으로 겉마감한 ‘아파트형’ 아도비 흙집에 단체로 거주하는데 크게는 50개의 방이 갖춰져 있다. ○사다리 타고 창문 통해 출입 메사 대지의 대대적인 개간과 관개시설,공동주택,종교적 공동시설 등은 메사 베르데 문화의 절정기를 말해준다.전성기 때는 인구가 7천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유적 측면에서는 단연 말기에 지어진 암굴(岩窟) 공동주택이 압권이다.메사 안에는 4천개소의 유적이 파악되고 있는데 그중 고원 밑 노천굴에 세워진 주거지만 600개에 달한다.굴의 벽을 천정,바닥 등으로 활용하는 암굴주거 시설은 대부분 방 수가 5개 이하지만 제일 큰 ‘클리프 팰리스(절벽궁전)’는 217개의 방에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던 원형의 반지하실인 ‘키바’(Kiva)가 23개나 있다.바닥을 몇개의 테라스로 층을 나눴으며방도 다층구조를 가졌다.인디언 풍습대로 방은 1평 남짓 작은 것으로 창문과 나무 사다리로 출입했다. 롱 하우스는 방이 150개,스푸르스 하우스는 114개에 달하며 가파른 소다 협곡을 마주하고 있는 35개 방의 발코니 하우스는 10미터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메사 베르데의 전체면적은 211㎢로 190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이 유적은 80년대 들어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적인 문화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여행 가이드/콜로라도 산맥 끝자락 4개주 교차점에 위치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주 등 콜로라도산맥 하단부 4개주가 직각으로 만나는 교차점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리조나주 북부 그랜드캐년에서 연방국도 160번을 타고 350㎞ 북동쪽에 있으며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는 300㎞,콜로라도 덴버에서는 550㎞ 떨어져 있다. 인근에 콜로라도주 남동부의 상당히 큰 도시인 코르테즈와 두랑고가 있다.
  • ‘아칸소 충격’ 美 총기문화에 경종

    ◎클린턴 재발방지 대책 촉구/언론 청소년폭력 집중 조명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5일 아칸소州에서 발생한 10대 소년들의 학교내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재닛 리노 법무장관에게 청소년총기사건을 철저히 연구해 대책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아프리카 순방중 “이번 사건은 최근 수개월동안 어린 소년들이 학교내에서 저지른 3번째 폭력사건”이라면서 청소년 총기사고의 공통점이 있는지를 연구,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과 관련,“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유가족들을 위로한 뒤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련의 청소년 총기사고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언론들은 이번 같은 어처구니 없으면서,몸서리치게 비인간적인 학생총기 폭력의 원인으로 대략 3가지를 꼽는다.첫째 학생들이 너무나 쉽게 총기를 접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사회 풍토.두째 미디어,가정,공동사회 등 미국 사회 전반의 폭력 문화 만연.세째 어렸을 적에 어른으로부터 육체적,성적 학대를 받은 경험 아동의 증가이다. 학교에 등교할 때 총기소지를 검색하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거치도록 하는 학교가 비일비재하지만 개인의 총기소유를 헌법적 권리로 여기는 미국에서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인 총기접근 용이 풍토가 금방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공화당이 의회에 제출했으나 지나치게 혹독하다는 평을 받아온 청소년 폭력경감 대책법이 이 사건을 계기로 통과될 수도 있다.◎총기난사 사망 女교사 라이트/살신성인의 ‘참스승’ 표상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미 아칸소 존스보로의 중학생 무차별 총기난사로 사망한 5명중 유일한 성인인 새넌 라이트 선생님(32)이 살인성인의 의로운 스승이자 영웅으로 기려지고 있다. 화재경보음을 듣고 제일 먼저 뛰어나온 학생들은 라이트 선생의 6학년 영어 학습반이다.이때 라이트 선생은 매복자가 엠마 피트먼이란 학생에게 정조준을 하고 있는 걸을 알아채자 즉시 몸을 날려 엠마를 가리다 총알을 대신 맞았다고 화를 피한 학생들이 증언하고 있다.엠마는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으나 라이트 선생은 가슴과 복부 총상으로 얼마후 병원에서 숨졌다. 그녀는 존스보로에 소재한 아칸소 주립대를 나온 뒤 평소 꿈꾸던 대로 자신의 옛날 학교들이 있는 지역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범인 중 13살로 큰 학생은 지난해 새넌 선생에게 배웠다.그녀는 2살난 아들을 남겨놓았다.
  • 봄무대 여는 ‘젊은 뮤지컬’ 두편

    ◎난타 98­사물놀이 리듬 기초한 순수 국산품/그리스­로큰롤 음악의 브로드웨이 성공작/‘퍼포먼스 형’·‘중형극장에 저가티켓’ 공통점 노·장년층을 겨냥한 악극류의 복고풍 무대가 강세를 띠고있는 가운데 젊은이들을 겨냥한 리듬 위주의 현란하고 스피디한 뮤지컬 두편이 봄무대를 나란히 장식한다.26일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을 시작하는 환퍼포먼스의 ‘난타 98’과 28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무대에 오르는 T&S씨어트리컬의 ‘그리스’가 그것. 둘은 여러 면에서 재미있게 비교 된다.스토리보다는 강렬한 폭발음과 열정적 몸동작이 중심을 이루는 퍼포먼스형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우선 닮았고 대공연장이 아닌 600석 안팎의 중극장을 택해 2만∼1만5천원,3만∼1만5천원의 저가티켓으로 동시경쟁을 벌이게 된 것도 흥미롭다.시차는 있지만 이전의 명성을 바탕으로 작품을 새롭게 구성,재공연으로 선을 보이는 점도 같다. 하지만 ‘난타 98’이 사물놀이의 리듬을 토대로 한 순수 국산품인데 반해 ‘그리스’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본고장 뮤지컬.자연스럽게 토종과 외래 뮤지컬간의 대결무대일 수 밖에 없게 됐다.흥미로운 것은 ‘난타 98’이 순수 국산품임에도 외국수출을 겨냥,해외판으로 다듬어진데 비해 ‘그리스’는 외국공연물이면서도 한국적 정서에 맞도록 각색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첫선을 보인 ‘난타’는 기발한 착상과 오락적 재미로 관객의 폭발적 호응을 얻으며 ‘스텀프’와 ‘탭덕스’가 세계 공연계에 몰고온 넌 버벌 퍼포먼스의 열기를 이땅에 전파시킨 주역.일상생활용기인 주방도구들로 재현해낸 사물놀이 가락과 신명나는 율동으로 객석을 재미와 감동으로 달구었던 작품이다. 새로운 버전으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오는 8월 홍콩과 싱가포르·대만등 동남아순회를 시작으로 유럽과 호주 등으로 이어질 전세계 투어에 대비한 출사무대로서의 의미를 띠고 있다.해외순회에 맞추어 작품의 구성과 음악,세트,출연진 등을 전면적으로 손질했다.초연때부터 무대에 섰던 김문수·서추자 외에 박종문·장석현·김원해·박소연·류승룡·이범찬·손주연·김연희 등이 새로 가세,전천후 출연팀을 구성했다.5월 3일까지.(문의 3673­4466) 로큰롤의 개화기인 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생활상을 그린 ‘그리스’는짐 야콥스(대본)와 워렌 케이시(음악) 콤비가 탄생시킨 가장 대중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하나.78년 올리비아 뉴튼 존과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춤영화의 대명사 ‘그리스’로 더 유명해진 작품이다.내용은 영화와 뮤지컬이 같다.블루진에 가죽재킷 차림,담배를 피워물고 로큰롤 리듬의 춤과 음악에 취한 자동차광의 젊은이들.제목 ‘그리스’는 이들 젊은이들이 머리에 발랐던 포마드기름을 지칭하는 말이다.고교 졸업반의 마지막 여름.댄스경연대회와 자동차 경주대회,로큰롤 파티가 연달아 펼쳐지며 청순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간애,갈등이 스피디하게 전개된다.유준상·이재영·최정원·진복자 등 뮤지컬 전문배우 24명이 등장한다.4월 19일까지.(문의 508­8555)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세계 문화유산 순례:66)

    ◎중앙아 실크로드에 핀 이슬람의 꽃/전성기땐 사원 360여개/도시전체가 거대한 성채로 우뚝솟은 50m 칼얀첨탑 압권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가 있어 항상 우리에게 미지와 낭만으로 다가온다.그러나 그 곳에도 찬연한 도시문화가 있었고,가장 수준높은 인류의 지혜가 번득이던 곳이다.황량한 스텝위에 개화한 문화이기에 더욱 눈부셨고,너무나 독특하고 당당하여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부하라가 바로 그런 곳이다.동서를 관통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에서 온갖 문물과 종교,사상과 신화를 머금은채 성숙해 갔고,급기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가장 중앙아시아적인 성곽도시 문명을 이룩해 내었다.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가 주관한 부하라 도시성립 2천5백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가 치러졌다.부하라 도시문화의 장구한 역사적 의미와 그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 칭기스칸에 정복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채를 이루고 있다.광활한 사막의 교역로에 터를 잡은 도시는 처음 4.2㎢의 면적이었으나,시대에 따라 부침을거듭하면서 크기는 수시로 변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따라서 고고학적 발굴을 해보면 20m의 문화지층이 다양하게 중첩돼 있다.가장 두터운 하층은 기원전 4세기에서 서기 4세기에 이르는 고대문화층이고 상층은 9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화려한 중세문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이곳에서 만난 우즈벡 학자들은 유네스코가 부하라의 역사를 2천5백년으로 잡는 것에 불만을 표하면서 성채 바깥의 고대 유적지를 근거로 3천년으로 올려잡고 있었다. 이미 당나라때 이곳을 방문한 구법승 현장은 그의 ‘대당서역기’에서 부하라를 그 크기가 1천7백리에 이르고 동서는 넓고 남북은 좁은 장엄한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역사상 부하라를 최초로 수도로 정한 나라는 9세기의 사만조였다.사만조를 이어 터키계 왕조인 카라한조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하라는 터키인의 도시문명으로 확연히 자리잡게 된다.이때 부하라는 상업과 수공업이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크게 발달하여 당시 세계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다.그러나 부하라는 1220년 봄 운명의 날을 맞았다.정복자 칭기즈칸에게 복종을 거부하며,끝까지 하레즘샤 제국의 자존을 지키려던 부하라는 침략자의 철저한 약탈과 파괴,대량살육이라는 가혹한 응징을 받았다.붉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대지위에 회생불능의 폐허만이 남았다.한 시대,한 문화의 종말은 이처럼 너무나 비극적이었다. 부하라가 제2의 운명을 개척한 것은 14세기 티무르시대였다.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티무르의 정열과 넘치는 신앙으로 부하라는 그 폐허의 잔해위에 다시 찬란한 이슬람의 도시로 새롭게 탄생하였다.거대한 성채와 성벽이 축조되고 동서남북으로 곧게 뚫린 도로를 중심으로 엄밀한 계획도시가 들어섰다.왕궁와 이슬람사원(모스크),학교,병원,도서관,공중목욕탕,주거지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 되어 되살아 났다.성채 바깥에도 시장과 대상들의 숙소인 캐러밴사라이,종교학교인 메드레세들이 군데군데 즐비하게 줄지어 서있다.전성기에는 360여개 모스크와 113개의 메드레세가 도시를 채웠다 한다.이것이 오늘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부하라 도시유적의 중심을 이루고있다. 도시 유적지는 쉐이크 잔달 출입문에서 시작된다.세계 각국 상인들과 외교관들이 세금을 내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 이 문을 들어서면 비로소 부하라 문화의 수련생이 된다.그러면 도시의 상징인 높이 50m의 칼얀 첨탑이 정중앙에서 이방인을 맞이한다.이 첨탑은 예배시각을 알리기 위해 꼭대기에서 코란구절을 육성으로 낭송하는 기능 이외에도 낮에는 높이로 밤에는 불빛으로 지평선에 지쳐있는 캐러밴의 등대 구실을 했다.칼얀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불로 구워낸 단순한 벽돌을 색과 모양을 달리하여 기하학적으로 처리하고,들죽날죽하게 배열해 놓았다.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데,벽돌을 쌓아 놓은 것이 한 치의 비뚤어짐도 없이 하나의 정교한 직선면을 이루고 있었다. ○종교학교도 113곳이나 선명한 쪽빛 하늘에 솟아있는 무작위의 벽돌건축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극치였다.칼얀 첨탑을 끼고 칼얀 모스크와 미리 아랍 메드레세 건물이 또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1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모스크는 당시 최대 종교건물이었으며,입구의 색색 벽돌모자이크 장식과 다층 돔식 건축양식은 부하라 건축학파라는 새로운 예술적 사조를 만들어 내었다. 성채 바깥의 시내를 돌아본다.어디를 가도 중세 분위기가 그득하다.골목마다 들어찬 집들은 모두 진흙을 햇볕에 구워만든 벽돌을 사용하였고,벽면은 다시 진흙으로 매끈하게 발랐다.똑같은 집의 모양과 사람들,걸친 옷가지와 음식들,군데군데 모이는 양담배와 코카콜라 병들만 없다면 우리는 분명 고대 부하라에 서있는 것이다.한 골목을 지나면 모스크가 나타나고 또 한 골목을 지나면 메드레세가 나타난다.아무렇게 지은 허술한 건물들이 아니다.혼과정성이 배어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더욱이 흙과 사막이 딩구는 침침한 분위기에 유적들은 하나같이 채색 모자이크와 벽화를 통해 선연한 색깔을 담았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나디르 디반베이 메드레세와 라비 카우즈 메드레세는 특히 인상적이었다.자그만 호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메드레세는 중세 중앙아시아 학문의 중심지였다.이슬람 세계 최고의 종교학자 이맘 부하리,유럽 의학의기초를 다진 이븐 시나(아비켄나),자신의 업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학문명칭이 되어 버린 연산법(algorism)의 개발자 알고르즈미 등과 같은 대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여행 가이드/타슈켄트서 항공편 40분/면제품·토기·공세공 인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아시아나와 우즈벡 항공이 직항로를 개설하여 여행이 편리해졌다.타슈켄트에서 국내선으로 부하라까지는 40분 소요. 자동차로는 타슈켄트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목화 밭을 따라 약 8시간을 달려야 한다.“부하라 투리스트”라는 관광회사(전화:3652­232276)가 가장 큰 부하라 전문여행업체이며,부하라 호텔이 최근 개관되어 관광객의 불편을 덜었다.세계적인 목화산지답게 면제품이 뛰어나며,토기,인형,동세공 제품도 인기가 있다.
  • 전인대·행정부 입장조율 과제로/이붕 상무위장의 역할

    ◎보수파 퇴조로 영향력 약화 불가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16일 리펑(이붕)총리를 국회의장격인 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함에 따라 그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최대 당면과제는 법치제도 정비에 따라 행정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전인대와 행정부사이의 입장 조정,민주화 요구에 대한 대응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상무위원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정계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계속할 수 있게됐다.그러나 권력기반인 보수세력의 전반적 퇴조로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다.이같은 세력약화로 장쩌민(강택민)등 주류파에 협조적이며 차오스(교석)을 밀어내는데도 동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0년동안 장쩌민,차오스와 함께 중국을 이끌어온 3두 마차로 알려져온 리펑은 국민당에 의해 처형된 ‘혁명열사’의 유복자다.초우언라이(주은래)등의 보호아래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49년부터 모스크바 동력대학에서 유학했으며 유학파 기술관료들의 핵심에 있었다.
  • 앤드류 잭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4)

    ◎미 영토 확장 크게 기여한 전쟁영웅/개척농민 유복자로 변호사·의원·대법판사도/귀족정치서 대중정치시대 연 첫 서민대통령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미국의 7대 대통령(1829­1837) 앤드류 잭슨은 미합중국 정치문화에 ‘대중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이른바 ‘잭소니안시대’을 전개시킨 대통령으로 전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6명의 전직 대통령이 버지니아,매사추세츠 등 동부 출신의 대농장주 후손으로 좋은 정규교육을 받은 ‘신흥귀족’ 출신이었던데 반해,그는 가난한 개척농민의 유복자로 통나무집(log cabin)에서 태어났으며 정규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본적이 없었다.그 때문에 첫 ‘서민대통령’으로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 대통령에 오른 잭슨은 대통령직 자체를 ‘최고의 지위’라기 보다는 ‘일할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으며 미국 정치사에서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시킨 대통령으로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강인함 또는 단단함의 상징인 히커리나무에 비유되어 ‘올드히커리’(Old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올드 히커리’ 애칭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67년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태어난 잭슨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의 병사로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됐다.성질이 급하고 거친 그는 싸움질을 일삼아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할 정도 였다. 장로교 목사로부터 가까스로 글을 깨친 그는 14세때 독립군 민병대에 가담,소년병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 참가했다. 잭슨은 용맹스럽게 싸웠으나 이듬해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그러나 적개심에 불타던 그는 구두를 닦으라는 영국군 장교의 명령에 불복,그로부터 칼로 머리를 맞아 깊은 상처를 얻게 됐다.그는 평생동안 그 상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다녔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온 그는 솔리스베리의 한 변호사 밑에서 법률공부를 시작,20세때인 1787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겨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96년에는 새로 주로 승격된 테네시주의 연방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이어 상원의원,테네시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의 호전적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1812년 미합중국의 선전포고로 영국과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였다.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병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잭슨은 인디안과의 전투에서 연승,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군 중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서남부 전체 미군의 지휘권을 얻게 됐다. 잭슨은 플로리다 펜사콜라 전투에서 승리,플로리다를 장악했으며 15년 겨울,뉴올리언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군과 미군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사령관을 포함한 2천600명의 사망자를 낸 반면,미군은 단지 8명의 사망자만 냈을 뿐이었다. ○영군과 전투서 대승 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방적 승리로 기록된 뉴올리언스의 승전은 영국민에게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그동안 군사력 열세에서 유럽 강대국들에 소극적 대응을 해오던 미국은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 국제사회에 독립국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됐던 것이다.지금도 뉴올리언스 시가지 한복판에는 포효하는 말에 탄 그의 동상이 높이 서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그를 자연스레 1824년 새로 태어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부상시켰다.잭슨은 1차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과반수에 미달했고,2차투표에서 정치적 흥정에 의해 존 퀸시 아담스에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그러나 잭슨은 4년후 다시 도전,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다. ○첫 암살대상자 기록도 잭슨은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하면 가까와질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율의 관세제도를 개혁,관세율을 낮추었으며 예산절감을 통해 연방예산의 잉여분을 주정부에 골고루 이월할 것을 제안했다.따라서 그는 연방정부가 공공복지사업이나 건설사업 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반대했다.정부의 지나친 부채는 국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까지 주장했다.이같은 국민편에 선 통치는 그의 재선을 무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잭슨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많은 시행착오도 일으켰다.친구들을 요직에 등용,‘주방내각’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특히 그는 이혼녀인 부인 레이첼을 따라다니는 악의적 소문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그 문제로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결투를 벌이곤 했다.그는 또 1935년 실패로 돌아갔지만 암살기도가 발생,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처음 암살대상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의 확장 ▲귀족정치에서 대중정치로의 전환 ▲연방정부의 부채청산으로 건전재정 확립 ▲부패한 연방은행의 규제제도 확립 등이 꼽히고 있다.대중정치의 확립은 라이딩스의 미대통령 랭킹에서 잭슨은 42명 가운데 비교적 높은 8위에 랭크되고 있다.그는 69세 대통령을 퇴임하여 자신의 농장인 내슈빌 교외의 허미티지에서 78세로 숨을 거둘때까지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잭슨 유적지 ‘허미티지’/평생 가꿔온 사저… 테네시주 내슈빌 위치/55만평에 정원·교회·농장·후손들의 집도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유적지로 지정된 ‘허미티지(Hermitage)’는 잭슨이 평생을 가꿔온 사저로 컨트리뮤직으로 유명한 테네시주의 주도,내슈빌에 위치해 있다. 외딴집이라는 의미의 허미티지는 55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잭슨과 그 가족이 기거하던 맨션을 중심으로 부인 레이첼을 위해 만든 정원과 교회,후손들의 집 등 각종 부속건물과 농장으로 돼있다.비지터센터 뒤에 위치한 맨션에는 잭슨 생존 당시의 실내장식과 함께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18세기말∼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당시 미국 상류사회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 터는 잭슨이 내슈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1804년부터 조금씩 구입해 모은 것으로 오늘날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대통령 재임중인 1833년 무렵이며 37년 대통령 퇴임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허미티지는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사저인 마운트버논과 함께 미국내 대통령문화 보존의 한 본보기로 유명하다.1889년 애미 잭슨에 의해 창립된 허미티지부인회에 의해 보존되고 운영되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이 부인회는 내년 2월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애미 잭슨은 자식이 없던 잭슨 대통령 양아들의 아들인 잭슨3세의 부인이다.그녀는 45년 잭슨 사망후,수십년 동안 역사적 장소가 일부는 팔려나가고 퇴락해가는데 안타까움을 느낀 끝에 허미티지부인회를 결성,유적지키기에 나섰던 것이다. 30년 앞서 결성된 마운트버논부인회와 함께 허미티지부인회는 남자들이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휩쓸려 있는 동안 부인들의 힘으로 문화유적을 지켜낸 훌륭한 본보기로 남아 있다.
  • 아일랜드 대기근/피터 그레이 지음(화제의 책)

    ◎19C 재앙과 아일랜드 역사 흐름 1845∼1851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극심했던 아일랜드 대기근을 중심으로 아일랜드의 역사를 고찰.아일랜드는 이미 12세기에 부분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이어 아일랜드에서는 전쟁과 반란,재산몰수가 잇따랐고 16∼17세기에는 영국의 지배지역이 확대되면서 아일랜드 공동체의 발전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아일랜드의 모든 지역은 파괴됐고 황무지로 변해 갔다.또 그 땅에는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이주·정착했다.한편으로는 가톨릭 지주들 대신 신교도 정복자들이 들어서면서 뿌리깊은 불신과 적대감이 쌓여갔다.식민정책은 근대식 농업수단과 감자를 비롯한 새로운 작물을 소개해 아일랜드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새로운 지주들이 일으킨 농업혁신은 환금성 작물과 수출용 가축의 생산 증가가 주목적이었던 만큼 종종 소작인들의 원망을 샀다.신교도의 지배에 맞서 일어난 1640년대의 반란은 가혹하게 진압됐다.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올리버크롬웰은 가톨릭 지주들에게 “지옥이냐 코노트(아일랜드 북서부 지역)냐”하는 양자택일을 제안하기도 했다.19세기 초 아일랜드는 ‘거지의 나라’라고 할만큼 가난했다.특히 두 차례의 감자마름병으로 인해 그들의 유일한 생계작물이었던 감자농사가 실패하면서 아일랜드에는 대기근이 초래됐다.이 재앙으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무수한 해외 이민자들이 생겼다.한편 이러한 대기근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는 아일랜드어였다.18세기에도 영어사용층이 꾸준히 늘어났지만 1845년까지 아일랜드어는 400만명이 사용했다.그런데 1851년에는 아일랜드어 사용자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죽거나 이민을 떠난 사람들이 주로 아일랜드어 사용층이었기 때문이다.장동현 옮김 시공사 6천원
  • 총리인준 파동의 교훈/김병국 교려대 교수·정치학(시론)

    ○절차 정당성 시비는 핑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때문일까.국난의 시기에 조차 한국정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준 거부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이간질시키고 공동 정부를 그 내부에서부터 마비시키려 한다.한편 신여권은 신여권대로 인준 파동에 맞서 이른바 ‘야당 길들이기’에 나설 모양이다. 나라를 망친 한나라당의 실체를 폭로할 경제청문회가 열릴계획이고 ‘북풍’까지 조작하면서 대권을 장악하려 들었던 구여권 일각에 대한 감찰이 진행중이다.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 국난의 시기에 여와 야는 바로 그 국난을 지렛대로 삼아 서로 상대방을 무책임한 정파로 몰아세우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와 야는 다같이 기싸움을 ‘절차’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정당한 대결로 치장한다.지난번 국회에서 이루어진 인준 투표가 무기명 비밀투표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가 아닌가 하는 고상한 절차의 문제로 서로 싸운다는 주장이다.그러나 그러한 변명에 설득당할 국민은 없다.여와 야는 애초부터 절차를 논할자격이 없기 때문이다.지난 병자년 겨울 노사개혁이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을 때 지금의 여권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여 논의를 원천 봉쇄하였고 지금의 야는 이른 새벽에 날치기로 자신의 안을 밀어 붙였던 당사자이다.절차는 당리당략에 따라 이리저리 왜곡 해석되는 목적 달성의 ‘수단’에 불과하지 지켜야 하는 원칙이 아니었다. 한편 신야권은 이렇게 절차의 문제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김종필 지명자의 개인적 자질을 쟁점화시켜 인준 거부의 명분을 강화하려 한다.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바로 그 신야권이 걸어온 역사에 의해 힘을 잃는다.한나라당은 김종필 지명자가 경오년에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세운 민자당의 후신으로서 그 내부 일각에는 당 지휘부가 그렇게 싫어한다는 김종필 지명자의‘보수성’이 배어 있고 ‘구태’가 남아있다. ○국민 설득 논리는 실종 그렇다고 신여권이 국민을 설득할 만한 새로운 논리의 개발에 성공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기회가 있을때 마다 여와 야 사이에 밀월의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마음은 여전하다.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밀월이 곧 야권의 침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기 이전에 이미 두달 남짓한 황금같은 밀월기간을 누렸다.당선의 영광을 안자마자 현직 대통령을 대신하여 국정을 살피고 개혁의 기본 틀을 구축하는 직무대행체제의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직무대행체제는 국회가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비상사태와 같았다.국난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비대위’가 다국적 투자기관과 담판을 벌이고 ‘정개위’가 정부조직의 개편에 나설 때 신야권은 낮은 포복자세로 일관하였다.심지어 ‘노사정위원회’가 언론의 각광을 받아가면서개혁의 큰 틀을 짜는 시점에 조차 한나라당은 침묵을 지켰다.나라를 망친 당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하는 국민여론의 질타 속에서 이루어진 한국식 밀월관계의 결과였다. ○본질은 생존위한 정쟁 인준 파동을 불러일으킨 근원을 찾아내려면 절차나 개인적 자질이나 밀월의 문제보다 ‘권력’의 은밀한 소리에 귀를기울이는 편이 낫다. 지금 한나라당은 설 땅이 없다.국난은 신여권이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내놓는 처방책 이외의 다른 대안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렇게 여권의 정책을 승인할 수밖에 없는 야권은 존재할 이유 자체가 모호해 진다. 인준 파동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다.당선자가 직무대행체제하에서 정치의 중앙무대를 독점하는 동안 신야권 내부에 쌓인 위기의식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에서 한나라당은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총리 인준의 문제를 쟁점화시킨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인준 거부는 즉각 기싸움을 낳아 본래의 문제와 아무런 상관없는 정책의 영역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국회가 마비되면 경제를 살릴 정책개혁의 기회는 실종되고 만다. ○공존의 정신만이 살길 그러나 국민이 정치권을 탓하고 기싸움을 비판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것 같지는 않다.생존의 문제가 보장되지 않는한 정쟁은 피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소수정부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야당 시절에끊임없이주창한 ‘거국내각론’의 기저에 깔린 공존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비대위와 정개위 및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마련한 개혁의 큰 틀에 만족하고 이제부터는 신야권을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의 중앙무대 한 편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그것만이 모두가 살 길이다.
  • 일본인과 자살/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일본의 대표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삼도유기부)의 단편 ‘우국’은 육군장교들의 반란사건과 관련하여 한 중위 부부가 자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할복한 남편이 내뿜은 검붉은 피가 부인의 백색 기모노를 적시고 피바다를 이룬 다다미 바닥을 새하얀 버선발로 밟고 다니는 이단적인 형식미가 눈부시다.이른바 ‘하리키리(복체)’란 헤이안(평안)시대 이후 투철한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는 자살방법이다.작가는 그의 소설처럼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촉구하면서 지난 70년 자위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할복자살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의 제자인 미시마가 자결한 뒤 가스자살했고 그 이전에 ‘나생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사이 오사무도 자살했다.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집착은 일본을 소개하는 서적에서 ‘죽음의 문화’가 민족적 특성으로 등장한다.또한 매주 집계되는 금주의 베스트 셀러 중에는 죽음과 관련된 ‘유서’‘임사체험’‘투명한 유서’ 등이 두세권씩 끼어 있고 ‘인간답게 죽는법’이란 책이 서점의 중앙에 장기 진열되기도 한다.그들의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반드시 치명적인 미학의 결정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책임에 대한 전력투구일 뿐이다.이번 일본 대장성 수뢰 스캔들도 마찬가지다.전현직 간부들의 잇단 체포,장차관의 인책경질에 이어 대장성 은행국 오쓰키 요이치(대월양일) 금융거래관리관이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76년 록히드 사건이나 89년 리크루트 사건때도 측근인 운전사와 자금담당 비서가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그들의 정신은 자신이 겪은 수치를 ‘깨끗이’ 자살로서 사죄하고 전력을 다해 책임을 지려는 최후의 수단이다.일본도를 사용하진 않았으나 현대적인 ‘셉부쿠(체복)’인 셈이다. 자살이 아름답다거나 장하다는 것은 아니다.문화가 다른만큼 모든 것이 우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그러나 만약 비슷한 사건때문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시간이 약’이라고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모든 사건을 잊어버리기나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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