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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돕기 금식행사 오늘 전국 26곳서

    ◎6개 종단­94개 단체 참여/36國 107개 도시도 동참 ‘북한돕기 국제 금식의 날’행사가 25일 낮 12시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을 주무대로 전국 26개 도시,전세계 36개국 107개 도시에서 열린다. 국내에서는 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유교·천도교 등 6개 종단과 94개 단체가 참여하며,외국에서도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와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종교단체,유엔아동기금(UNICEF)과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민간구호단체 등이 북한주민의 고통을 덜고 인류평화를 기원하자는 뜻에 함께 한다. 25일 행사는 한국시간으로 낮 12시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을 주무대로 하여 부산 KBS홀,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일본 도쿄의 정토종 梅窓院,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 침례교회 등 전국 각 도시와 세계 각지를 연결해 진행된다. 서울 펜싱경기장 행사는 3부로 나뉘어져 6시간 동안 계속된다.1부에서는 金鍾泌 총리서리 및 각당 총재의 격려사와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달라이라마,지미 카터 등의 영상 메시지가 소개되며 2부는 학생들의 통일백일장,탈북자들의 편지 낭송,3부에서는 테너 임웅균과 신승훈,변진섭 등 가수들이 공연을 펼친다.
  • 종교계 IMF 고통분담 나섰다

    ◎기독교­노숙자에 교회 개방·생계지원 운동/천주교­실직자 쉼터 개설·15곳서 숙식 제공/불교­광역시 기차역마다 잠잘곳 마련도 종교계가 실직자와 노숙자 보호에 발벗고 나섰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단체들은 생계비 지원,잠자리 제공,급식 등 IMF시대를 맞아 급증하고 있는 실직자 및 노숙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때 종교단체들이 앞장섰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金壽煥 추기경은 종교계의 이같은 움직임과 관련,“교회가 앞장서서 가난에 시달리고 실직과 경제파탄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당회장인 趙鏞基 목사는 “사회 각계의 구성원이 이기적인 자세를 버리고 희망의 정신을 자원 삼아 극난을 극복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宋月珠 조계종 총무원장도 “사랑과 자비로 총체적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목회자 정의실천협의회,한국교회여성연합 등 27개 기독교 관련 단체는 최근‘IMF 실업자와 사회보장을 위한 기독교 대책토론회’를 갖고 교회별로 ‘공간개방 운동’을 전개하는 등 실직자 및 노숙자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해 나가기로 결의했다.특히 지난 12일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모은 헌금 모두를 실직자 기금으로 사용키로 했다. 순복음교회는 실직자 및 노숙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해 전국 70만 신도를 대상으로 2만5천∼5만원씩 1인 1통장 갖기 운동을 펼치기로 방침을 정하고 세부 실천방안을 마련 중이다. 영락교회는 늘푸른선교회와 공동으로 서울 쁘렝땅백화점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350∼400명에게 매주 화·목·금·일요일 하오 8시30분부터 무료로 저녁을 주고 있다.또 을지로3가에 있는 영락사회복지재단 소유 건물에 잠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명동성당은 지난 13일부터 실직자들을 위한 쉼터인 ‘평화의 집’을 개설,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도 ‘프란치스꼬의 집’(동대문구 제기동) ‘베들레햄의 집’(용산구 신계동) ‘우리집 공동체’(성북구 정릉3동) ‘임마누엘의 집’(〃) 등15곳에서 무료 급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구세군은 지난 1월8일 서울 중구 정동에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이라는 쉼터를 개관한 데 이어 2월에는 부산과 인천 등 지방 8곳에도 쉼터를 만들었다. 불교 조계종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매일 3백여명에게 저녁을 나눠주고 있다.또 13일 서울 낙원동에 ‘보현의 집’이라는 무료 숙박시설의 문을 연 데 이어 앞으로 서부역 뒷편과 구로공단 근처에 노숙자들의 잠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지방에도 광역시별 기차역 근처에 한 곳씩 부지를 물색해 놓고 있다. 정부는 종교단체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2백억여원을 지원할 방침이지만 보건복지부∼지방자치단체∼대한적십자사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비로소 종교단체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쉼터 및 급식소를 제 때에 마련하거나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국난 극복 ‘진정한 부활’ 다짐/어제 전국서 부활절 예배

    ◎“영혼·빈민구제로 모든 분야 새 출발”/‘고난·희생 감수’ 남북화합 동시 미사/연합예배위 “헌금,실직자 기금으로 사용” 부활절인 12일 상오 5시30분부터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전국 121개 지역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일제히 열렸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당회장 趙鏞基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서울 장충체육관예배에는 1만3천여명의 신도가 참석해 위기에 처한 경제의 부활과 교회의 일치를 기원했다. 대회장 趙鏞基 목사는 이날 “국민 모두가 힘모아 나아갈때 부활의 승리와 풍요가 온 교회와 이 민족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해 현 위기상황 대처를 위한 범국민적인 노력을 거듭 강조했다. 천주교계도 이날 상오 11시 명동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성당에서 일제히 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특히 서울 명동성당과 북한 평양 장충성당에서는 남북한 화해와 이산가족 재회를 기원하는 미사가 동시에 열렸다.이날 평양 장충성당 미사는 미국 뉴욕의 朴昌得 오렌지 한인성당 주임신부가 직접미사를 집전해 96년 부활대축일 이후 첫 남북한 동시미사도 이루어졌다. 올해 부활절 행사의 의미는 예년에 비해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우선 개신교와 천주교계가 모두 국난 극복에 초점을 맞춰 연합예배와 미사를 진행했고 그 내용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제 분야의 새 출발과 그를 통한 부활의 의미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여기에 남북한 천주교계가 2년만에 동시미사를 올린 점도 이같은 어려운 경제상황 극복과 남북화합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장충체육관 연합예배에서 閔丙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과 池德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의 기도와 설교는 무엇보다도 이같은 기독교 정신의 영혼구제와 빈민구제사업 측면을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된다.이들은 “부활은 고난과 희생을 통해 다가오는 것”임을 모두 전제했고 “지금의 고난을 모두가 힘모아 헤쳐나갈때 결국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부활의 승리와 풍요가 온 교회와 이 민족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말해 신도들을 숙연하게 했다.조선기독교연맹 산하 북한 개신교 신자들도 “주님의 은총으로 한반도 대립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게 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부활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도록 하라”는 내용을 담은 남북한 공동기도문을 낭독해 우리측의 기원에 동참했다. 천주교계의 부활대축일 미사도 현 경제위기 극복과 남북화합에 초점을 맞춘채 이례적으로 남북한 동시 미사 집전으로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연합예배 행사를 주도한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위원회는 이날 모은 헌금을 실직자를 위한 기금으로 쓴다고 밝혀 기독교정신의 빈민구제사업을 다시한번 천명했다.
  • 논리적 설득력·뛰어난 영어연설 주효/투자조사단 유치 성사 뒷얘기

    ◎김 대통령,“3차 회의도 경제문제 논의하자” 전격 제의로 성사 【런던=梁承賢 기자】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유럽국가의 한국 투자촉진단 파견을 이끌어 낸 데는 金大中 대통령의 다른 정상을 압도한 논리적인 설득력과 뛰어난 영어연설이 주효했다. 의례적인 수사로 끝날 회의의 방향을 튼 것은 金대통령이 행한 경제·금융분야의 1차회의 마무리 강평.그는 마하티르 말레이지아 총리와 달리 외국 불건전 세력 해소와 아시아의 자구노력,그리고 한국의 구조조정 노력이라는 3대 원칙을 제시,분위기를 잡았다. 그러나 현지반응은 지난 96년 발족때와 달리 아시아지역이 금융위기로 어려운 상황인 만큼 유럽국가들이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기류였다.金대통령은 정치대화와 문화분야 2차회의때 한반도 문제를 설명한 뒤 영어로 의제와 다른 경제얘기를 다시 꺼냈다.“이대로 끝나면 2000년 3차회의를 준비중인 우리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며 “ASEM은 2차회의가 끝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차회의 뒤에 열린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주최의 비공식 만찬장.만찬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대화만이 만발했다.이때 유일하게 침묵을 지킨 정상은 金대통령과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였다고 한다.金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내일 3차회의때 다시 경제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하자,하시모토 총리가 재빨리 알아차리고 옆자리로 와 거들었다.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金대통령이 말이 맞다”며 지원사격을 계속했다. 급기야 분위기가 대반전을 이뤘고,투자촉진단 파견이 3차회의 주 논의안건이 됐다.金대통령은 말미에 문법이 탁월한 영어로 “이것은 우리에게 복음이다”고 연설했다.장내는 박수로 떠나갈 듯했고,金대통령도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 중국옷 입은 동양인 예수/중국 화단 새 유파 신선한 바람

    ◎농민화·티베트 벽화 기법 응용/전통문화­기독교 신앙 결합 시도 중국 전통 문화와 기독교 신앙을 결합시킨 새로운 화풍의 그림들이 중국 화단(畵壇)에서 새 유파를 형성하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이들 유파의 화가들은 중국 미술의 전통 기법으로 기독교 신앙을 표현,중국화(中國畵)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 화가들은 전통 중국화의 기법은 물론 농민화 및 티베트 벽화 등 티베트 미술의 전통 기법으로 과감하게 예수,성모 마리아,성경속의 사건과 사례 등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이들은 성모마리아를 흡사 관음보살처럼 표현하는가 하면 예수를 동양인처럼 그리기도 한다. 이들 유파 그림의 등장 인물들은 예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중국 고유의상을 입고 있고 주변 배경도 중국이어서 이채롭다.말구유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화사한 중국 고유 의상을 입고 있는 농민화풍의 그림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성경속의 이야기를 운남성 소수민족의 의상을 입은 등장인물들로 처리한 것도 있다.예수의산상보훈이나 기적을 행하는 모습들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의 색채와 구도역시 서양 화풍과는 다른 중국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등 근착 외지 등은 이같은 중국 화단의 기독교 신앙을 선도하는 그룹은 남경의 기독교 예술 센터 등이라고 보도했다.이들 그룹은 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발견되는 신앙심과 기독교 정신을 부각시키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이들 젊은 화가들은 “중국 문명과 기독교의 복음을 융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작품의 의도를 설명한다.이들은 특히 인물화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구체적인 사람들의 모습속에 녹아있는 예술의 보편성에 대한 표출’이 중요한 주제중 하나다. 지난 93년과 96년 두차례 홍콩서 회원 60명의 특별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은 이들은 오는 10월 세번째 홍콩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남경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인으론 비교종교 미술분야의 첫 박사가 된 흐어 치씨 등이 이 그룹의 핵심 회원들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미술 비평가들은 중국 화단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명나라때부터 시작된 서양 선교사들의 ‘전통 문화와 신앙의 조화 및 융합’ 작업이 종교 자유의 폭이 확대됨에 따라 그 싹을 틔우고 있다고 평가한다.외국의 선교단체나 교회와 연계 관계를 엄금하고 있는 중국적 상황에서 이같은 작품성향은 중국 정부의 ‘자립교회원칙’에 순응한 것이란 혹평도 있지만 중국의 미술 전통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 문학·종교·술·도박… 러시아문화 본격적 탐색

    ◎허승철 교수 등 노문학자 3명 공동집필/국민오락 ‘서커스’ 등 생활풍속 소개/개혁·개방이후 최신자료까지 담아 1990년 9월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국교를 수립하기 이전,국내대학의 노어노문학과는 6개에 불과했다.그러나 지금은 40여개의 대학이 이학과를 두고있을 만큼 그 비중이 커졌다.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은 이제 객관적인 학문적 대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하지만 학계의 연구성과를 대중화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던 게 우리 현실이다.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으로 나와있는 것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학·철학서적 몇 권,그것도 번역서가 대부분이다.‘상아탑주의’에 빠진 우리 학계의 자족적인 연구풍토를 반영한 것일까.최근 출간된 ‘러시아 문화의 이해’(대한교과서)는 이러한 지적상황에 대한 ‘부채의식’에서부터 출발한 본격적인 러시아 문화안내서다.고려대 허승철 교수를 비롯,이항재(단국대)·이득재 교수(가톨릭대) 등 3명의노문학자가 잇단 토론을 거쳐 함께 썼다. 러시아의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정신적 성과물인 문학과 예술,그리고 종교에 관해 알아야 한다.러시아 문학이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직·간접의 영향을 주었음은 주지의 사실.특히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진보적 성격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 지식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기도 했다.러시아 문학의 어떠한 특성이 우리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온 것일까.러시아 문학은 우선 어느 나라의 문학보다도 러시아 역사의 부침과 현실에 민감하게 대응해 온 점을 지적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문학은 당대 러시아 사회·정치사의 연대기로 읽힌다.한편 러시아의 사회·정치제도는 1861년에야 농노제가 폐지되고 전제왕정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비로소 끝장나는 등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이같은 현실에서 러시아 작가들은 작가 이상의 의미와 사명감을 가졌다.그들은 무명(무명)의 러시아에서 민중을 계도하는 민중의 교사이자 어둠의 왕국에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는 예언자로 간주됐다.요컨대 문학은 실낱같은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이 책에서는 러시아 문학을 기록문학 이전의 구비문학,고대문학(10∼17세기),18·19세기 문학,그리고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러시아 현대문학으로 나눠 다룬다. 자기 나라의 이름 앞에 ‘위대한’ 또는 ‘자랑스런’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나라는 많지만 ‘성스러운’이라는 말을 붙이는 나라는 러시아를 빼고는찾아보기 힘들다.러시아에서 ‘성스러운 러시아’ 혹은 ‘성스러운 땅’이라는 어구가 명시된 형태로 나타난 것은 16세기 모스크바 러시아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그러나 이 개념은 일찌기 988년 키예프 러시아 시대에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등장한 것이다.이 ‘성스러운’이라는 형용사야 말로 러시아의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라는 게 이 책의 설명.실제로 러시아에서는 교회와 수도원,성지 등을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신과 관련된 속담과 격언,성화상을 비롯한 종교예술이 러시아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을 만큼 종교적인 국가다. 이 책은 러시아의 독특한 생활풍속과 민속 등을 소개하는 데에도 많은 지면을 내준다.러시아에서 서커스는 러시아혁명 직후 민주적인 예술로 높이 평가됐다.이런 서커스가 오늘날 러시아에서 국민의 오락으로 만만찮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서커스를 연극과 스펙터클(구경거리)을 포괄하는 하나의 종합예술로 파악하기 때문이다.20세기 초 러시아의 연극이론가이자 전위연출가인 메이예르홀트는 연극에 서커스 예술을 도입한 바 있다.그가 말하는‘구경거리로서의 연극’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러시아인의 일상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샤흐마티’라고 불리는 장기.이 말은 페르시아어인 ‘샤흐’와 아랍어인 ‘마트’가 결합된 것으로 ‘왕이 죽었다’라는 뜻을 지닌다.특히 러시아 작가들 중에는 장기를 비롯한 일종의 놀음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러시아의 천재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쓴 소설의 대가로 받은 원고료를 도박에 퍼부었을 만큼 열광적이었다.그는 도박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무엇보다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다.러시아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이슬람교가 음주를 금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그들에게 술은 일종의 오락과 같은 것이다.이런전통 탓인지 알콜중독은 러시아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개혁·개방 이후의 러시아에 대한 최신 자료까지 활용해 러시아문화의 전체상을 보여준다.그런 점에서 ‘러시아 문화 소백과사전’으로 활용할 만하다.
  • 세계화의 두 얼굴/송일 외국어대 교수·경영학(시론)

    ○리스트의 ‘세계주의 경고’ 대공황의 전주가 시작된 1929년 10월24일 금요일은 뉴욕 월가에서 ‘암흑의 금요일’로 기억되고 있다.주가가 수직적으로 폭락하면서 미국 경제는 하루 아침에 다운된 컴퓨터처럼 주저앉고 말았다.실업률이 25%를넘어 1천3백만명이 실직했으며 공황의 파고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강타했다.시장경제와 세계주의가 조종을 울렸다. 지난 연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로 접어든 한국은 지금 전대미문의 경제 변란을 경험하고 있다.국내외의 전문가들은 IMF 위기의 본질을 국제수준의 규범과 세계화시대에 적합한 경쟁질서를 따라가지 못한 폐쇄된 구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곧바로 보호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요란한 경적처럼 금융,주식,M&A 시장에 남아있던 외국인 투자장벽이 남김없이 무너져 내렸다.세계주의로 회귀를 선언한 미국의 역습이다.E.H 카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하며 현재와 과거의 부단한 대화임을 실감한다. 역사학파의 선구자인 리스트의 사상체계는 최근 한치 앞을 예단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에 한번쯤 반추해 볼 가치가 있다.리스트는 19세기 말 독일 정부의 자유무역정책에 저항하며 고전학파가 복음처럼 신봉하는 시장원리의 초역사성과 세계주의를 비판했다.공업생산력과 무역이 타국을 압도하는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세계주의 원리가 국익에 부합되지만 독일과 같은 후진국에서는 자유무역정책이 민족적 실천과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며,후진국은 선진국의 가치와 공유할 수 없는 고유의 목적과 역사적 개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90년초 ‘정부’와 ‘시장’의 갈등적 관계가 첨예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을 서두를 즈음 엘리스 아담스의 ‘아시아의 다음 거인­한국과 후기산업화’가 국제경제학계에 뜨거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그는 이 책에서 산업혁명이나 기술혁신을 주도한 서구의 ‘전기산업화’와 구별하여 ‘후기산업화’란 ‘학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한 사업구조로 정의하면서 그 성공적 전형으로 한국을 지목했다.그리고 ‘후기산업화’가 ‘전기산업화’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인위적인 선택이 필수적이라고 해석했다. ○다국적 기업의 생존방식 그동안 눈부신 고도성장과 함께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역동성을 발휘하던 아시아 각국이 왜 줄줄이 IMF 구제금융의 수혈을 받는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는가.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이나 기술향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성장결과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증가에 단순 반응한 것이라는 폴 크루그만의 주장도 음미할 필요는 있다.한편 한국의 고비용­저효율 시스템에 이르면 더욱 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개방화와 강요된 세계화가 아시아 경제에 고도의 취약성을 제공하고 있다.아시아인에게 세계화란 희망과 재난을 동시에 안겨주는 패러독스일 뿐 결코 유토피아는 아니다.세계화는 열강의 논리이며 경쟁력을 확보한 초일류 다국적 기업의 생존방식이다.이들은 국가의 강약빈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보호주의의 타파가 세계 경제의 후생을 극대화시킨다는 자유경쟁원리의 이론적 옹호를 받으며 지구촌 전역을 공략한다.특히 ‘적자생존’ ‘정글의 법칙’ 등 세계화를 통념화하는 무차별 경쟁윤리 속에는 다윈의 ‘진화론’과 맬더스의 ‘인구론’에서 도출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계율을 정당화시키는 독소가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버드대 로렌스 교수는 오늘날 국제환경은 열강의 각축전이 극에 달했던 1차 세계대전의 전야를 연상케 한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세계주의(WTO)와 지역이기주의(EU,NAFTA)의 첨예한 갈등에 미국의 쌍무주의(슈퍼 301조)가 이중,삼중으로 난마처럼 얽혀 열강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음을볼 때 그의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실사구시의 노선 세우자 세계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대명제임에 더 이상의 이론이 없다.그러나 국제경제질서를 움직이는 힘의 실체와 방향은 분명히 간파해야 한다.이제 한국시장의 문은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다.개방화에 따른 ‘지킬’적 영향과 ‘하이드’적 영향을 분리해 실사구시의 세계화 노선을 자주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 변별력과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한국의 자본주의는 아직 완료형이 아니며 미래형이기 때문이다.
  • 교회­백화점서 각각 절도/그 언니에 그 동생(조약돌)

    ◎한 경찰서에 잡혀와 ‘조우’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일 윤미용씨(43·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에 대해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윤씨의 언니(46·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동생 윤씨는 1일 하오 4시25분쯤 서울 영등포 L백화점 5층 매장에서 쇼핑객 석모씨(44·주부)의 핸드백에서 53만원을 소매치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절도 전과 5범인 윤씨는 경찰 조사에서 언니의 이름과 주소를 대며 신분을 감추려다 지문감식으로 들통이 났다. 윤씨의 언니는 같은 날 낮 12시30분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신자 이모씨(36·여)의 손지갑에서 현금 3천원을 훔쳤다. 경찰은 “이들 자매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을 만큼 사이가 나빴다”고 말했다.
  •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연구/석영중 등 지음(화제의 책)

    ◎서술구조­주인공들의 특징 해부 ‘인간 영혼의 투시자’‘잔인한 천재’등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주요 소설들을 분석적으로 고찰.기호학,구조주의,성서신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이 제기하는 시학의 문제점들을 살핀다.러시아의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 이후 미국과 유럽,러시아의 도스또예프스끼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온 의사소통 시스템과 시공구조,텍스트의 위상 등에 초점을 맞춘다.아울러 순수하게 테마론적인 시각에서 도스또예프스끼 특유의 관념적 심연에 접근한다. 고려대 노문과 석영중 교수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독서광들과 해석자들­합리적 코드와 초월적 코드에 관한 개론적 고찰’이란 글에서 열광적인 독서가로서의 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의 주인공들을 살핀다.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의 인물들은 각종의 실제적·허구적 텍스트들을 읽고 인용하고 표절하고 분석한다. 한 예로 ‘죄와 벌’에서 뽀르피리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논문을 읽고 그가 노파살해범이라는 심증을 굳히며,라스꼴리니꼬프는소냐와 함께 요한복음을 읽은 뒤 비로소 도스또예프스키가 예비해 놓은 회개와 구원의 대장정에 참여 할 수 있게 된다.그러나 누구보다 몽상적인 독서광이라고 할만한 인물은 ‘지하생활자’이다. 그는 20여년 동안 ‘지하’에 살면서 하이네·고골·루소·네끄라소프 등을 탐독한다.이런 맥락에서 도스또예프스키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독서의 독서’‘해석의 해석’을 수반한다는 게 석교수의 설명이다. 이 책에는 ‘구원의 흐로노또프­『죄와 벌』의 에필로그에 관한 소론’‘『죽음의 집의 기록』에 나타난 극성연구’‘『백치』의 서술구조와 삽입 텍스트간의 상관성’‘『백치』의 므이쉬낀 공작과 크리스톨로지의 이중성’‘『악령』의 스쩨빤 베르호벤스키 연구’등 11편의 글이 실렸다.열린책들 9천500원.
  • 한국적 시장경제를 찾자/송일 외국어대 교수·경영학(시론)

    ○다층적 가치충돌의 시대 IMF시대는 이율배반과 가치충돌의 시대이다.실물과금융,미국적 가치와 한국적 가치,그리고 정부기능과 시장기능이 끝없이 격돌하고 있다.2년전 평성유신회라는 간판을 내건 오마에 겐이치(대전연일)가 필자에게 한 말이 최근들어 새롭기만 하다.“한국이나 일본은 변하지 않으면 곧 망합니다.일본과 한국은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빠진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이란 냄비 속에 개구리를 넣고 가열하면 몸이 익어 죽을 때까지 온도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개구리의 둔감함에 빗대 환경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기업이나 국가를 꼬집어 하는 말이다. 세계적인 경영전략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가 신용평가회사인 멕킨지일본지사장을 그만 두고 정치단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일본의 강대한 관리경제의 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중독된 일본의 개혁은 정부의 개혁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정치 투신의 변이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가 끝없는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자 미국의 언론은 유교자본주의의 붕괴,일본식 모델의 종언,또는 아시아 가치의 몰락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특히 한국의 발전모델은 반시장경제적인 자본주의의 기형,이단 또는 세계경제의 교란자로 낙인찍으려 하고 있다.분명한 것은 그동안 시장의 힘을 무력화시킨 정부의 과규제나 역기능은 ‘시장의 실패’라는 경제학적 개념의 틀을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의 실패’라는 적신호 앞에 멈추어 선 한국경제가 경계할 신호등은 ‘시장의 실패’이다.최근 ‘IMF’ 다음으로 수시로 등장하는 용어는 아마도 ‘시장경제’일 것이다.엄밀한 의미로 시장경제란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한 가격기능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정부의 간섭없이 자유방임적으로 형성되는 시장이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자본주의가 전대미문의 붕괴위기에 직면하면서 케인즈는 그의 저서 ‘자유방임의 종언’에서 시장의 자동조정기능은 검증되지 않은 인류의 염원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그후 실업대책,유효수요의 창출,산업의 육성과 성장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개입의 대소나 역할의 강약에 차이가 있을 뿐 정부가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혼합경제가 국가운영의 기본틀이 되었다. ○미국의 가치에 매몰 우려 IMF 관리체제로 접어든 한국에서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개념은 아담 스미스 이후 신고전학파가 복음처럼 신봉한 자유방임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그렇다고 케인즈학파를 비판한 프리드만류의 통화주의자의 언어도 아니다.사회주의 붕괴 이후 계획경제에 대립된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 개념의 상투성과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는 최근 이의과 반론을 봉쇄하면서 소위 신패러다임의 이념적 키워드로 신앙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자유방임적 시장원리가 보장될 때 시장경제라 부를 수 있는가.한마디로 그 한계는 자의적이며 대단히 단호한 미국의 판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프랑스의 포도농가에 지원된 보조금은 시장경제에 위배되지만 아칸소주의 쌀농사에 지원된 보조금은 시장경제에 합당하다.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한국의 자동차 과세는 공정무역에 위배되지만 슈퍼301조는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으면 일단 시장경제적이라는 아이러니가 이 개념에 존재한다.‘시장경제’를 앞세운 IMF의 개혁요구에는 한국의 이익 뿐아니라 미국의 이익이라는 복선과 배수의 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라는 미명 아래 미국적 가치와 충돌하는 한국적 가치가 몰락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미국식 시장경제의 모순성과 다중적 의미를 깊이 음미할 필요는 여기에 있다.예컨데 국민,정부,기업이 하나로 뭉쳐 철의 삼각동맹을 구축하고한강의 기적을 연출했던 한국적 공동체 정신은 비록 기업이 가진 지배구조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매도될 수 만은 없다. 거기에는 서구식의 차가운 손익개념을 초월하는 패자부활적인 도전과 집념의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드러커에 따르면 서구기업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기 위해서는 창업이후 3∼4기의 세대교체기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서구 잣대에 끌려가서야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제 유아기의 불과한다.예컨데 기업자금의 저수지가되어 자본시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증권시장은 이제 간신히 봉우리가 맺힌 정도다.한국기업이 증자보다 차입경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금융자본시장의 원시적 제약에 그 원인이 크게 있다.구조조정의 선후를 따진다면 차입경영의 차단에 앞서 간접금융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환경조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시장환경의 조성없이는 200년 역사의 서구자본주의의 잣대로 표시된 IMF이행조건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정부실패’에 버금가는 ‘시장실패’나 ‘IMF실패’를 야기할 위험성이 있다. IMF 체제하의 신패러다임은 우리 경제의 불합리한 단층을 깊숙히 들여다보면서 21세기 한국의 길을 뚜렷이 암시할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정부실패’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한국적 가치를 부활시킬 수 있는 우리 나름대로의 ‘시장경제’의 진지한 탐색작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 돌반지 아닌 거북이·황소가 나와야(박갑천 칼럼)

    임진왜란때 의병장 가운데 한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갑옷장수’라불린 곽재우이다. 그에 대해서는 유성용도 [징비록]에서 “적과 여러번 싸웠는데 적들이 두려워했다”면서 찬양한다. 의령에서 일어난 그는 우선 하인들부터 의병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군량미로 곳간을 털고 있는 재산은 전비로. 한데 그의 자형 허언심은 갑부면서도 을밋을밋 도와주려 하지않았다. 곽재우는 나라가 위급한 터에 자기재물만 아끼는 것은 ‘역적의 짓’이라면서 다그쳤으나 허사였다. 화가나서 나오던 곽장군은 마당에서 놀던 어린생질의 손을 끌고 나간다.놀라 쫓아나온 허언심이 왜그러느냐고 묻는다. 곽망우당왈­“먼저 역적의 자식부터 죽여 다른사람의 본보기로 삼고자 하오”. 이에놀란 허언심은 하인과 재물을 내놓았다([홍의장군곽망우당]). 4백년전의 허언심같은 사람은 어느시대 어느곳에고 있다. IMF한파속에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서도 그런사람들은 얼마든지 본다. 그들은 온겨레가 나서서 벌이는 달러모으기운동 아랑곳없이 뭉치달러를 장롱속에 더깊이 깊이묻는 ‘큰손’들이다. 금모으기도 그렇다.돌반지 열개 스무개가 송아지 거북이 하나를 어찌 당하겠는가. 한데 송아지 거북이는 가물에 콩나듯 성깃하다. 아니,내놓긴 커녕 이판에 한몫 챙기자면서 사잰다는것 아니던가. 이런 일부 가진자를 두고 예수께서도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태복음19­23·24)고 했던것일까. 이 어려움속에서도 가진자들은 오른 이자따라 앉아 이익보고 있음을 모두들 안다.그 러므로 그들의장롱속 금덩이라도 나오는걸 금이빨 가져나온 서민들은 보고싶어한다. [일사유사]에 쓰여있는 해학가 정수동의 일화하나. 여러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는데로 말머리가 미쳤다. 누구는 호랑이라 했고 누구는 양반이라 했다. 이에 정수동이 입을 연다. “그렇담 호랑이를 탄 양반이 가장 무섭겠군”. 여기서의 ‘양반’은 오늘의 권세가이면서 부자다. 욕심많고 부도덕한데다가 호랑이등까지 탔으니 그 무소불위의횡포가 어떠하겠는가. 예나 이제나 그런 부류의 이기주의는 분별력에서 어둡다. ‘오늘의 허언심’으로는 되지들 말자. 힘을 모으자. 힘을 합칠때 ‘1+1’은 3도 4도 되는법 아니던가.
  • 연극인 김시라(이세기의 인물탐구:158)

    ◎풍자극 ‘품바’ 탄생시킨 ‘각설이 마술사’/3,700회 최장기 공연… 한국기네스북에 등재/거리 시낭송­벽시운동도 펼치는 중견시인 생전의 함석헌 옹은 김시라의 ‘품바’를 보고‘이것이 바로 우리의 연극’이라고 했다. 그리고‘거지’를 극의 주인공으로 삼았을뿐 ‘품바가 무슨 연극이냐’고 했을때 ‘품바는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라고 두둔했다.‘아무 소리말고 몇년만 기다려보라’던 함옹의 예언대로 ‘품바’는 88년 뉴욕을 비롯한 전미순회에서 우리 연극의 해외공연사상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국대 황필호 교수는 ‘품바를 보지않고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고 94년 3천700회 최장기 공연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연극”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로 연극이 시작되면 누더기 차림에 찌그러진 깡통, 벙거지를 눌러쓴 걸인의 걸판진 놀이판에 객석은 온통 흥청거림으로 넘쳐난다. ‘일자나 한장 들고나 보니/일각이 여삼춘디 오십분단이 웬말이냐/두이 이자를 들고나 보니 이화도화는 만발한디 이산민족이 슬피운다’는 분단의 슬픔에 대한 울부짖음이며 ‘남인들은 북인치고 서인들은 동인치고 소론들은 노론치고’는 통렬한 정치풍자가 아닐수 없다. ‘품바’는 널리 알려진대로 ‘소외계층의 민주화운동’을 소재로한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매스컴들은 일찍이 ‘민족의 통곡’으로 특필한바 있다. 한때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일본초청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거지에게조차 저러한 여유와 풍자의 힘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중론이 지금까지도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김시라는 누구인가. 그는 실제로는 민족문학과 우리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중견시인이다. 그의 대표시인 ‘오­! 자네왔능가/이 무정한 사람아/청풍에 날려왔나/현학을 타고왔나/자넨 /묵이나 갈게/난 자우차 끓임세’는 그의 집안의 가훈이자 작가가 자라난 환경과 사람됨됨이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10남매중 6째로 태어났다. 현재 직계만도 42명, 한학자인 부친 김두성옹(84)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여 찾아오는 이웃을 마다하지 않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속에서도 어머니 채애임 여사(85)는 낯을 찡그리는법 없이 항상 손님접대하기를 즐겼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적이 없고 납부금을 내지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런중에도 집안에는 웃음과 노래가 그치지않아 부친은 논어와 한시를 가르치고 ‘재물과 명예’에 사로잡히지 말고 ‘청빈을 자랑하라’고 타일러왔다. 고교1학년때부터 목포로 통학을 하면서도 밤에는 동네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고교졸업후에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쌀가마를 등에 지거나 우마차에 실어 나르는 중노동으로 집안의 생계를 도왔다. 그런중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떠나지 않았다. 고향을 학문과 예술의 고장으로 만든다는 의지로 ‘인의 예술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5·18의거가 일어나자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그대로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죄없이 죽어간원혼’을 달래기 위해‘품바’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사회적 물리적 폭력에 대한 각설이 패들의 응어리진 한과 비애가 어떻게 태동했는가를 비범하면서도 강건한 시선으로 조명해 나갔다. 겉으로는 흥겨운 각설이 타령이지만 섬뜩하게 다가오는 사설과 날카로운 비판은 한순간도 현실의 모순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지난 86년 ‘한민족 방언연극제’를 제안하고 사분오열된 지역갈등을 내용으로 한 ‘남바’를 발표하려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인의 예술회’ 등 조직 81년 고향의 마을공회당에서 ‘품바’ 초연후 목포 광주를 거쳐 83년 서울로 진출했고 한달만 머물려던 계획이 86년까지 장기공연되면서 ‘민초의 시대사’란 찬사와 함께 그는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연극의 무대공연실황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가 1백만장이상이나 팔리는가하면 전용소극장인 ‘왕과 시’ ‘강강술래’를 갖게 되었고 나이 사십이 넘어 결혼한 부인 박정재씨와의 사이엔 2남1녀. 그가 살고있는 대학로 동숭동에는 아들을 등에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늦게둔 자식사랑’이 소문나 있다. 그는 여전히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지난해 미국 카네기홀공연 약속을 올해 중반에 실천해야하고 ‘품바’영화화를 위한 시나리오와 뮤지컬대본도 끝내야 한다. 연극을 하는 한편으로는 끈질기게 시운동을 펼친대로 한달에 한번씩 보리수 시낭송회, 거리 시낭송과 벽에다 시를 쓰는 ‘벽시’운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일에서 순풍에 돛단 듯한 유유자적은 없겠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남루에도 진솔한 심성을 변치않는 ‘순금같은 존재’다. 더구나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가 쓰고자 하는 시와 대사가 꿈속에서 물흐르듯이 계시되는 예감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시나리오 손질 시인 송수권이 ‘김시라의 삶은 신재효만큼 자리매김을 할수 있는 예술가’라는 말은 그의 예술정신과 끈질긴 탐구성을 두고 적절하다. 그리고 ‘나를 바르게 길러주신 부모님, 어려울때마다 돌파구를 열어주신 함석헌 스승님’과 친구를 좋아하며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하나같이 감싼다. 그래서 소설가 최일남은 ‘그러한 푸근한 인간성으로 인해 구수한 입담과 배꼽을 쥐는 관객의 모습은 삶의 역리가 맞닿아있고 웃음속의 눈물이 번뜩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품바’의 이론과 현장정립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연극속에는 속되고 악한 세태, 인정에 따라 변하는 얄팍한 인심을 꾸짖는 꾸지람이 범람하지만 욕설을 듣고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이 연극만의 ‘양심과 고뇌의 복음’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인류의 양심일 수도 있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그는 지금 세계무대로 나가려는 야심찬 계절에 감연히 서있다. □연보 ▲1945년 전남 무안출생 ▲1965년 목포고­한영신학대학­건국대 행정대학원­고려대 노동대학원수학 ▲1966년 시 ‘오 자네왔능가’발표 1976년 인의예술회 창립 회장 ▲1981년 연극 ‘품바’ 첫 공연 (전남 무안군 일로면 공회당) ▲1983년 ‘민족과 문학’지 시추천, ‘품바’ 서울 첫 공연 ▲1985년 극단 ‘가가’창단 ▲1986년 사회성극 ‘꽃관(막달라 마리아)’ 첫 공연 ▲1990년 MBC­TV ‘우리시대의 명인’및 ‘오! 자네왔능가’시낭송회 1988년 전용극장 품바예술극장개관 1988·91·92·96년 미국순회(30회공연) 및 일본 괌 호주공연 ▲1991년 ‘품바’공연 2천회 돌파 ▲1992년 전용극장 ‘왕과 시’·‘강강술래’ 개관 ▲1993년 ‘한민족방언시학회’창립 ▲1994년 국민시 생활운동 ‘벽시’동인회 및 상황문학회 창립회장 ▲1996년 ‘품바’ 한국연극사상최장기공연(3천700회) 한국기네스북수록, ‘한민족 방언연극제’ 조직위원회발족 ▲1997년 호주 시드니 일본 순회공연 ▲1998년 2월 ‘품바’ 4천회기념공연예정 소설 ‘품바시대’(상하권) 희곡집 ‘품바’ 방언시집 ‘오! 자네왔능가’ 상황시집 ‘어머니 대통령’ 시민시집 ‘형이중학’ ‘한민족 방언시학회’ ‘품바타령집’ 등 한국백상예술대상(88년) 한국기독교문화대상(97년)
  • 8명에 새삶 준‘12세 산타’/뇌사상태 정영주양 성탄절 장기기증

    ◎나이팅게일 꿈꾸던 소녀 큰 사랑 실천 【부산=이기철 기자】 인류에 큰 사랑을 주기 위해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 날,나이팅게일을 꿈꿨던 열두살 소녀가 짧은 삶을 마감하면서 장기를 기증,8명이 새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 25일 상오 5시 부산시 부산진구 개금 3동 인제대학부속 부산백병원 5층 중앙수술실에서는 악성 뇌종양으로 뇌사판정을 받은 울산 명정초등학교 5학년 정영주양(12 울산시 중구 태화동)의 장기적출 수술이 진행됐다. 심장과 폐 간 신장 각막 등이 정양의 몸을 떠나 건강한 삶을 고대하고 있는 8명의 환자들에게 옮겨지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아버지 정병호씨(34 회사원)와 어머니 이미연씨(34) 사이의 2녀중 첫째로 명랑 쾌활했던 영주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친 것은 지난 18일.동생 보람(11 초등4)이와 함께 학교에 다녀온 뒤 친구들과 뛰놀던 영주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끝내 회복되지 못한채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 정씨와 어머니 이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도 ‘나중에 간호사가 되어 병자를 돌보겠다’던 딸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다고 다짐했다. 정씨 부부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 딸의 장기를 기증키로 하고 ‘사랑의 장기기증 부산지역본부’에 이같은 의사를 전달,이날 숨진 영주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장기는 8명의 장기이식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게 됐다. 심장과 폐는 적출 즉시 인천 길병원으로 옮겨져 심장병과 폐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식됐고 간은 고신대복음병원에서 선천성 담도폐쇄증에 걸린 생후 14개월된 아기에게 이식됐다. 또 2개의 신장 중 1개는 고신대복음병원에서 만성신부전증으로 3년간 투병둥인 김모군(16)에게,나머지는 백병원에서 주모씨(41)에게 각각 이식됐다.각막은 30세 주부 등 2명에게 광명을 찾아 줬다.
  • 김 대통령 충현교회 성탄예배

    ◎개인신도자격 참석… 경호원수 최소한으로/설교도중 경제난 언급때마다 심각한 표정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취임전에 다니던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열린 성탄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예배의 주된 의제는 역시 경제위기 극복. 예배를 주재한 김필수 목사는 “우리 국민의 방탕과 사치가 경제위기로 이르게된 것을 용서해 달라”면서 “민족을 살리는 복음의 메시지가 울려퍼질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기도나 설교 도중 경제난과 관련한 언급이 있을 때 마다 침통한 표정을 짓는 듯 비쳐졌다. 청와대측은 이에 앞서 “김대통령이 개인신도 자격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싶다”는 뜻을 교회에 전달하고 경호원 수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지난해에는 김대통령이 연단에 나가 인사말도 했지만 올해는 이것도 생략했다. 김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안내방송도 따로 없었다. 김대통령은 예배를 마친뒤 본당 앞에서 신도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작년에는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으나 이번에는 차분한 분위기였다.김대통령과 함께 매년 성탄예배에 참석했던 현철씨는 인대수술때문에 병원에서 요양중이어서 예배에 참석치 않았다. 청와대에서는 김광일정치특보,김광석 경호실장,최양부 농림해양· 이해순의 전 수석 등이 같이 예배를 보았다.
  • 작가 츠바이크의 내면 자화상/‘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16세기 학자 에라스무스의 삶 조명/마르틴 루터와 극명한 대립 소개 히틀러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제국의 총리가 된지 1년이 지난 1934년,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로 꼽히는 오스트리아의 슈테판 츠바이크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한다.나치라는 광신자들에게 에라스무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사상적 입장과 신념을 밝힌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가 바로 그것이다.에라스무스는 폭력과 증오로 일그러진 종교전쟁의 혼돈속에서 가톨릭과 종교개혁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극단을 거부하며 자유와 중립을 지키려 했던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츠바이크는 이 작품에서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어 그 시대의 폭력과 혼란을 고발한다.그로 인해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자신의 작품이 금서로 묶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최근 도서출판 자작나무에서 펴낸‘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정민영 옮김)는 에라스무스 평전이자 전기소설이다.뿐만 아니라 작가 츠바이크 자신의 내면적 자화상이자 정신적 상흔의 기록이란 점에서 한층 주목된다. 에라스무스는 고대언어학자,문법학자,종교사상가,성서번역가,작가로서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나아가 그는 기독교 윤리와 철학을 바탕으로 모든 독단과 편협에 맞서 유럽문화의 정신적 통일을 추구한 이성의 대변자였다.이런 점은 그로 하여금 정신과 이념에서 승리를 거두게 했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과 자유와 중립을 지키려는 신념은 그를 현실의 패배자로 남게 했다.인간에 대한 믿음과 이성이 승리할 것이라는 그의 꿈은 몽테뉴 스피노자디드로 볼테르 칸트 톨스토이 등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현대의 의식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에라스무스는 사생아,그것도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신부의 자식이었다.아홉살 때부터 수도원 학교에서 지낸 그는 수도서원을 받고 신품성사도 받았지만 평생 신부복을 입지 않았다.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회의론자’ 에라스무스와 ‘열광의 아버지’ 루터의 대립상을 극명하게 보여줘 시선을 끈다.풍자집 ‘바보예찬’ 이후 새로운 복음교리의 대가로 떠오른에라스무스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가 등장한다.마르틴 루터다.그러나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허약한 육체대 건강한 육체,온건 대 광신,이성 대 격정,세계주의 대 민족주의,진화 대 혁명 등 너무나 대조적인 면모를 지닌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피했다. 면죄부 문제를 건드린 95개조의 반박문으로 파문 위기에 처한 루터는 에라스무스에게 중재의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 에라스무스는 루터를 파문의 위험에서 구해줄 기회를 놓친다.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으로 혼돈스런 독일을 뒤로 하고 조용한 도시 바젤로가지만 세상은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에라스무스는 어쩔 수 없이 루터를 반박하는 글을 쓰고,둘은 이내 결별한다. 인문주의는 본질적으로 혁명적이지 않다.숭고한 인문주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에라스무스는 온건한 개혁주의자였다. 에라스무스의 비극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가장 이성적인 그가 종교전쟁이라는 증오와 광신으로 얼룩진 혼돈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외국작가가 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쓴 일종의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대부분 현재시제를 사용해 16세기의 이야기를 오늘의 공간으로 끌어 들인다.이를 통해 먼 과거는 새롭게 되살아나 우리의 현실에 와닿는다.그런 만큼 이 작품은 우리에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공감을 더해 준다.
  • “죽음의 골짜기 지난다해도…”/이희호 여사의 삶

    ◎아내로 동지로 35년간 반려/일산자택 문패 나란히 걸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제15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새삼 김당선자와 함께 해온 지난 35년간인고의 세월이 가슴에 젖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정치하는 사람이라 일생에 굴곡이 있을 줄은 짐작했다”고 김당선자와 함께해온 인생행로에 대한 감회를 토로했다.그의 저서 ‘나의 사랑 나의 조국’에서였다.그리곤 “그렇게 많은 험난한 고개들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넘나들 줄은 몰랐다”며 회한의 일단을 내비쳤다.이여사는 김당선자에겐 인생의 반려자이기에 앞서 평생 동지이다.김당선자가 우리 정치사의 거목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충실한 조언자역에만 그치지 않았다.그가 투옥,연금,망명 등 가시밭길을 걸을 때도 언제나 함께걷는 투사요,든든한 동지였다.김당선자는 이를 ‘동역자’관계로 규정한 바 있다.옛 동교동집과 현재의 일산 자택 대문에 나라히 걸려 있는 ‘김대중’,‘이희호’ 두 문패가 이를 웅변한다. 이여사는 1922년 서울의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6남2녀중 장녀로 태어났다.이화여고와 이화여전 문과,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후 당시에는 드물게램버스대,스카렛대 등 미국유학까지 마친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는 스카렛대학에서 사회학석사를 취득한 뒤 한때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특히 YWCA총무로 여권시장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한,계명된 신여성이기도 하다. 이여사는 51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김당선자와 첫만남을 가졌다.스쳐 지나가는듯 했던 두사람의 인연은 마침내 62년 5월10일 운명적 만남으로 발전된다.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첫 부인과도 사별한 채 전세방을 전전하던 김당선자와 61년 우연히 재회,이듬해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두사람의 결혼에 대해 이여사 집안은 물론 주위의 반대도 대단했다고 한다.이여사는 “그는 앞길이 보장되지 않은 꿈많은 젊은이에 불과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결혼을 결심했다.김당선자의 신념과 관용,멋에 이끌려 “이사람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는 고백이었다. 카톨릭인김당선자와는 달리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김당선자와 인동초의 세월을 함께 헤쳐나오는 동안 구약성경 시편의 한구절은 언제나 작은 위안이었다.“죽음 그늘 드리운 깊은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없이 가리라”이라는 복음이었다.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상(미국의 대통령 문화:3)

    ◎휠체어 앉아 ‘미국’을 일으킨 영웅/맥빠진 국민에 “무엇이든 해보자”/노변정담 설득… 공황극복 견인/국민신뢰 대단… ‘대통령학’ 모델/정계입문 초기 잇따라 선거 패배/소아마비로 “정치생명 끝장” 중평/목발 짚고 민주 전대 웅변 감동적 “나는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또 나 스스로에게 맹세합니다.미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펼 것을 말입니다” 1932년 7월2일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대통령후보지명 수락연설에 나선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뉴욕주지사가 처음으로 ‘뉴딜’을 외쳤을때 아무도 그 한 단어가 미국을 절망에서 구출하고 세계최고의 번영으로 인도할‘키워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후 ‘뉴딜’은 ‘대공황’의 반대어로 자리매김했으며 미국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나타내고 승리를 대표하는 어휘가 됐다. 루즈벨트는 선거운동과정에서도 대공황 여파로 자신감을 상실한 채 무기력해져 있는 미국민들을 향해 외쳤다.“어떤 방법이든 택하여 그것을 해봅시다.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것을 해봅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입니다” 워싱턴 중심의 몰공원 남쪽 포토맥강가에 지난 여름 개장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공원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들까지 하루종일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미 역사상 훌륭한 대통령 빅3에 들면서도 수도 워싱턴에 이렇다할 기념관 하나 마련돼 있지 않아 워싱토니안(워싱턴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도 많은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던 참이어서인지 더욱 찾는 사람이 많다. 이 공원에는 그의 재임 4기를 시기별로 네개의 공간에 나누어 각종 상징적 조형물을 세우고 또한 대표적 어록을 벽에 새겨놓아 당시의 시대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업적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미시간주에서 관광온 테드 모간씨(74)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국민 설득을 위해 자주 사용했던 라디오연설을 들은 기억이 있다”면서 한 실업자가라디오 앞에서 대통령의 방송을 듣고 있는 상징물 앞을 떠날 줄 몰랐다.‘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시도됐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당시 절망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있는 복음이었다고 모간씨는 회상했다. 1차대전 이후 호황기의 절정에 다달았던 29년 말부터 갑자기 몰아닥친 대공황은 3년동안 5천개의 은행을 문닫게 했으며 그에 따른 기업과 공장들의 연쇄도산이 뒤를 이었다.근로자들이 땀흘려 저축한 돈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전체 노동력의 40∼50%에 달하는 3천4백만의 실업자가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이같은 암흑기를 지나면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진 미국민들에게 루즈벨트는 공황의 종식을 위한 ‘뉴딜’을 외치며 균형예산과 실업자 구조,금주법의 폐지 등을 공약으로 제시,무기력한 후버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특히 루즈벨트가 실의에 빠진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선거공약의 내용및 실현성 여부를 떠나 ‘의욕’이라는 심리적인 자극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그는 희망이 사라진 곳에 희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확신이 상실된 곳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결국 선거결과는 루즈벨트가 유효표의 57%를 득표,선거인단 472명을 확보함으로써 40% 득표에 선거인단 59명을 확보한 후버 현직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했다.이렇게 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한 4선 대통령 루즈벨트시대가 개막된 것이다.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불문율로 지켜져온 중임 전통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로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직을 부여받을 정도로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경제위기와 전쟁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미현대사에 있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모델로 기록되고 있다. 1882년 뉴욕주 업스테이트의 허드슨강변 동쪽 언덕에 위치한 하이드 파크에서 출생한 루즈벨트는 부유한 가정형편 덕분에 개인교습을 받고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어려서부터 유럽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그의 성장기에 대통령으로 명성을 날리던 테오도어 루즈벨트(26대)는 먼 친척 형(12촌)뻘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그의 부인이 된 일리노어 루즈벨트는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로 부친을 일찍 여의였기때문에 1905년 그들의 결혼식에는 현직 대통령이 신부를 데리고 입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바드 대학과 콜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191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정계입문한 루즈벨트는 각종 선거에서 여러차례 낙선을 경험하는 등 초기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우드로 윌슨 대통령(28대)에 의해 해군성 차관보로 임명돼 1차대전 당시 중요한 해군전략 수립에 관여했으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이같은 1차대전때의 그의 경험은 대통령으로 2차대전을 맞았을때 십분 활용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1920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제임스 콕스 대통령후보의 런닝메이트로 출마해 고배를 마시는등 중앙정치무대와는 인연이 없는듯 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시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정치를 떠나 있을때 그는 엄청난 개인적 불행을 당하게 된다. 이듬해 8월 캐나다 해안에서의 휴가중 찬물에 빠져 감기에 걸린 것이 척수성 소아마비로 발전,양다리를 못쓰게 됨은 물론 팔과 손에까지 부분 마비가오게 되었다.당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조지아주의 웜스프링스로 가서 3년동안 기적적인 투병으로 그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1924년 그가 휠체어를 타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나타났을때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그가 목발에 의지해 단상에 기대서서 연설할 때는 그의 인간승리 모습에 감동적인 환호를 보냈다.결국 그는 1928년 뉴욕주지사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루즈벨트 도서관 사서 레이몬드 타이크만/“항상 국민과 함께한 지도자”/4연임,전쟁 마무리 위한 국민의 선택 FDR(프랭클린 D.루즈벨트의 약자 애칭)학의 권위자인 뉴욕주 하이드파크 프랭클린 루즈벨트 도서관의 선임 사서레이몬드 타이크만 박사는 그가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 대통령이었다고 소개했다. -FDR이 미국민들로부터 빅3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공황으로 잃은 정부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그는 국민들과의 직접대화를 택했다.라디오 연설시간인 ‘노변정담’을 통해 그는 정부정책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이해를 구했다.국민들은 그가 국민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뉴딜정책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이유는. ▲후버 대통령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제퍼슨적인 자유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면 FDR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밀튼적인 보수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대공황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정부와 대통령의 적극적인 유도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불문율로 돼있던 중임 전통을 깨고 3연임에 도전하게된 이유는. ▲FDR도 처음에는 주저했다.그러나 대공황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가운데 2차대전이 발발했고 불과 수개월만에 프랑스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의연임은 국민적 합의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연임 역시 전쟁의 성공적 마무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 때문이었다. -FDR에게 4연임까지도 허용했던 미국민들이 1951년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제한하는 22차 헌법수정안을 서둘러 마련한 이유는. ▲국민들이 경제위기및 전쟁위기 상황하에 있을때는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을 원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정상상태로 회복된 후에는 큰 정부의 필요성도,집중된 권력의 필요성도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 이옹,이번 수능시험은 잘 치셨나요(박갑천 칼럼)

    세상에는 재사들이 있다.5세에 세종임금 앞에서 시를 지음으로써 어른들의 혀를 내두르게한 김시습같은.15세에 성균시 장원을 하는 고려조 이제현도 어디 보통사람인가. 그런 재사가 있는가하면 문리가 늦게 터지는 사람들도 있다.[대동기문]에 따르자면 김득신도 그런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듯하다.그가누구인가.임란공신 김시민의 손자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 아니던가.한데 워낙 아둔하여 백이전을 1억1만3천번(과장이겠지만)이나 읽어야만 했다.그런 연유로 자기 서실이름도 ‘억만재’라 지었다는것이고.물론 나중에 급제하였으며 시재 또한 뛰어난 것으로 전한다. 한데 사람의 성공은 재주와 반드시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김시습만해도 평생이 팽패로운 방랑길 아니던가.또 남달리 성공이 늦은 사람도 있다.가령 기원전 7세기 중원을 제패했던 진문공을 보자.42세에 망명하여 이리저리 쫓겨다니다가 고국에 돌아와 제후의 맹주가 된 때의 나이는 62세였다.그런걸 ‘운’이라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문총화]에 쓰여있는 영남선비 성여신·김태시·백현 용세사람의 경우도 그렇다.그들은 “나이가 70대인데도” 과거응시를 그만두지 않고 감시와 복시(회시)를 치르러 갔다는 것이다.과장에서 어떤 젊은이가 그들 앞을 지나다가 야살을 떨었다.“좌중에 한분이 빠지셨군요”.그 젊은이는 이른바 상산사호(중국진시황때 상산에 은둔했던 네사람.눈썹과 수염이 하얘진 노인들이었음)를 가리켰던 것.이에대한 성여신의 대답­”그 한사람은 곧 자네 할아버지였는데 몰랐었나?”.과장이 웃음바다로 되었다고 한다.성여신은 64세에 사마시합격,백현룡은 67세에 진사가 되었으나 김태시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다.대단한 집념들이었다고 하겠다.98학년도 수능시험에는 올해 73세의 이근복옹이 응시하여 주목을 끌었다.이번이 다섯번째의 도전.네번실패에 낙담도 하였으나 “죽기전에 못배운 한을 꼭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또 응시했다 한다.합격하면 농과대학에 가겠다는 뜻도 밝힌다.청승맞은 늙은이라고 흉하적할 일이 아니다.“구하라 주실것이요…”하는 마태복음(7―7)을 떠올리게 하잖은가.나이잊은 다잡이 집념은 본받아야할 대목 아닌가 한다.
  • 수도권에 미니대 8곳 신설/내년/건설교통부 확정

    ◎고려 멀티­가천의대 등… 총 정원 370명 내년에 소규모대학(입학정원 50명 이내) 8개가 신설되고 입학정원도 370명 늘어난다.쌍용자동차의 평택공장과 아남산업의 부천공장의 증설도 허용된다. 건설교통부는 18일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위원장 김건호 건교부 차관)를 열어 이같은 내용 등 5개 안건을 심의하고 수도권정비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의 의결을 거쳐 확정키로 했다. 실무위원회는 이날 심의에서 소수정예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경기도 용인에 순복음총신대(정원 50명,이하 괄호안은 대학위치 및 정원)를 신설하는 것을 비롯,고려멀티미디어대(양주,50) 예림예술대(김포,50) 기독총신대(포천,50) 가천의대(강화,40) 여주공대(여주,50) 계약신학대(광주,40) 동방불교대(용인,40) 등의 신설을 허용키로 했다.신설대학의 정원 370명에는 수도권의 주간대학 감축인원 155명이 포함돼 순수 입학정원은 215명이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시화공단내 한국산업기술대학 설립에 따른 개방대학 정원 400명도 허용하기로 했다. 또 농업기계화연구소(경기광주)의 증축,중앙119구조대 청사(경기 남양주)의 신축도 허용키로 했다.
  • 병원·약국 진료·약제비 부당청구 많다/의보련

    ◎278곳 적발… 31곳 의보지정 취소 작년에 이어 올해 8월말까지 병원과 약국 등 278개 요양기관이 의료비를 부당 청구해 최고 7백여일간 의료보험 지정이 취소되거나 경고등 처분을 받았다. 14일 의료보험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병·의원과 한의원,약국 등 237개 요양기관이 진료·약제비 등 12억9천5백만원을 부당 청구해 152곳의 의보지정이 취소되고 28곳은 경고를 받았으며 나머지는 시정조치 등을 받았다. 올들어 8월말까지는 101개 요양기관이 부당청구 혐의로 현지조사를 받아,현재 7천여만원의 부당청구금에 대한 환불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31개 기관에 대한 의보지정취소를 포함해 41개 기관에 대한 처리가 결정됐다. 이중 복음약국은 지난 2월 3천만원의 부당 청구혐의가 적발돼 780일간의 의보지정이,교보약국은 4백만원의 부당 청구로 400일간의 의보지정이 각각 취소됐다. 제일성심정형외과의원은 지난 4월초 정기실사를 통해 6백96만원의 진료비 부당청구로 의보지정이 640일 취소됐고 권영재신경정신과의원은 420일간 지정을 취소당했으며 한양대 구리병원과 서울성심병원 등은 지난 5월 정기조사후 처분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밖에 고려대부속병원중 한곳은 3천5백만원의 진료비 부당청구로 의보지정이 90일간 취소됐고 제일의료재단 제일병원은 1억7천9백만원의 진료비 부당청구로 150일간 지정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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