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복원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277
  • 권수정 서울시의원 “한강통합선착장 추경예산 전액삭감 환영”

    권수정 서울시의원 “한강통합선착장 추경예산 전액삭감 환영”

    지난 9월 6일 오전,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는 한강통합선착장 추경예산 60억원을 전액 삭감하였다.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과 서울시당은 서울시의회 임시회 개원일인 지난 8월 31일 서울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들과 한강통합선착장 추경예산 전액삭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이후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해왔다.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의에서 한강여의테라스(여의마루) 조성사업, 한강 복합문화시설(아리문화센터) 조성사업, 한강 피어테크(여의정) 조성사업 등을 모두 삭제하였다. 위 3개 사업은 한강통합선착장과 함께 2015년부터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추진하려 한 한강협력계획 4대 핵심사업이다. 박원순 시장은 선거 때마다 한강 재자연화를 약속하였으나 취임 이후 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복원사업과 자연성회복에 역행하여 대형유람선을 띄우기 위한 한강통합선착장 사업 등 개발사업에 몰두해왔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된 여의도, 용산 마스터플랜 발표로 서울지역 부동산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한강 난개발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추경예산 삭감과 공유재산관리계획 삭제로 한강개발에 제동은 걸었으나, 여전히 사업의 불씨는 살아있다. 한강을 시민들의 품으로, 자연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박원순 시장은 지켜야 한다. 실패한 경인운하와 연결해 대형유람선을 띄우겠다는 계획을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신곡수중보를 조속히 철거하여 한강을 자연의 모습 그대로 흐르게 복원해야 한다. 정의당 권수정 의원은 “정의당과 더불어 한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대법원장·서울시장 공관이던 혜화동전시센터 ‘성곽 지킴이’

    [미래유산 톡톡] 대법원장·서울시장 공관이던 혜화동전시센터 ‘성곽 지킴이’

    지난 8일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팀이 찾은 성북동에는 무려 8개의 서울미래유산이 몰려 있다. 유형유산으로는 한양도성 혜화동전시센터, 성북동 국시집, 북정마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 복자사랑 피정의 집, 쌍다리식당 등 6곳이다. 또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선잠단의 ‘선잠제향’이 무형유산으로 선정돼 있다.2016년 7월부터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로 개방된 건물은 1941년 일본인이 지은 적산가옥으로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이 거주했던 집이다. 1959년부터 20년간 대법원장 공관, 1981년부터 2013년까지 33년간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됐다. 성북동 국시집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다. 혜화칼국수, 양재동 안동국시 소호정과 함께 서울의 3대 칼국숫집으로 꼽힌다. 북정마을은 한양도성의 품에 안긴 마을이다. 도성 아래 1960~70년대 골목길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흔히 달동네, 산동네라 불리던 이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성곽마을. 한양도성을 배경으로 서울의 역사문화경관이 남아 있는 마을을 말한다. 김광섭 시인이 1969년 출간한 네 번째 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시인이 병상에서 썼던 35편을 정리해 엮은 것이며, 그의 대표 시집이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건물은 1955년에 준공된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 붉은 벽돌 건축물이다. 수도사들이 여행가방을 만들어 팔아 구입한 벽돌로 직접 지었다. 이 건물은 방유룡 신부가 아이디어를 내고 이봉협이 설계를 맡았다. 1966년에 보수공사를 했으며 2006년 건물 외부를 복원하고 숙소를 리모델링했다. 구 본원 건물 외벽에는 당시 복자였던 김대건 신부, 정하상(바오로) 등 국내 최초로 한국 조각가들에 의해 조각된 12명의 순교자상이 설치됐다. 최초로 조각된 ‘한국 순교자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종교적 가치가 크다. 쌍다리식당은 성북동 기사식당의 대표주자이다. 1970년에 기사식당으로 출발한 연탄불구이 돼지불백 전문점으로 창업자의 대를 이어 자녀가 2대째 운영 중이다. 쌍다리라는 이름처럼 식당 주변에 두 개의 다리가 있었다. 서울미래유산팀
  • 내년 ‘판문점 선언’ 이행에 2986억 추가···세부 산출근거는?

    내년 ‘판문점 선언’ 이행에 2986억 추가···세부 산출근거는?

    통일부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내년도에 2986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해 산출 근거가 될 세부 설명이 누락돼 있다고 노컷뉴스가 보도했다. 통일부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산정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내년에 철도·도로 협력과 산림협력 등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 2986억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철도·도로 협력 사업의 경우 예상되는 공사 구간이나 규모, 현대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지 등 구체적인 예산 산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이 매체가 설명했다. 내년에 남북협력기금에서 판문점 선언 이행과 관련해 편성된 예산이 총 4712억원인데, 올해 관련사업에 편성됐던 예산 규모(1726억원)를 빼면 내년에 추가로 필요한 비용이 나온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철도·도로 북측구간 개보수 비용은 차관형식으로 지원하고, 산림협력 비용은 한반도 생태계 복원 등의 의미가 있어 무상 지원할 방침이다.한편에선 철도·도로 현대화를 완료하는 데만 최소 수조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판문점선언 비준을 위한 비용추계서에 내년 예상비용만 담은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도 있다. 앞서 통일부가 2008년 국회에 제출한 ‘2007년 10·4 선언 합의사항 소요재원 추계’ 자료에 따르면, 개성~신의주 철도·도로 개보수 등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지원에 8조 6700억원이 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 2019년도 사업추진에 필요한 재정소요만 산정했다”면서 “연도별 세부적인 재원소요는 북한 현지조사, 분야별 남북간 회담·실무접촉 등을 통해 사업규모, 사업기간 등이 확정된 이후에 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내년 20돌 문화재청… 문화재 안전·보존·활용에 초점”

    “내년 20돌 문화재청… 문화재 안전·보존·활용에 초점”

    화재 대비 점검·CCTV 교체 진행 중 세계에 자랑할 유물의 콘텐츠화 노력 평양 고구려 고분 발굴 등 교류 계획“1999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승격한 문화재청이 내년이면 20돌을 맞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선입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자 정신을 지닌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이 원하는 것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직 언론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화재 행정을 지휘하게 된 정재숙(57) 문화재청장이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포부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땅속에서 매장된 유물을 찾는 작업은 사실 바로 효과가 나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문화재청이 ‘성년’이 되는 만큼 새로운 각오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이날 향후 문화재청 운영 방향을 설명하며 안전, 보존, 활용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내세웠다. 정 청장은 “숭례문, 브라질국립박물관 화재에서 보듯 문화재는 한 번 망가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얼”이라면서 “브라질국립박물관 사건 이후 화재에 취약한 국내 문화재 점검 및 정비를 시행했고, 화질이 떨어지는 문화재 관련 폐쇄회로(CC)TV를 200만 화소로 교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은 1987년 평화신문을 시작으로 서울경제신문, 한겨레신문, 중앙일보에서 30여년간 문화재와 미술 등 문화 전반에 대해 취재해 왔다. 그는 기자로 활동했을 당시 아쉬웠던 점을 청장 재임 기간 동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아울러 “죽은 목숨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한 유물”을 강조하며 문화재 활용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재 안내판 정비가 상징하듯 모든 유물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겠다”면서 “유물 발굴 현장이나 복원 작업장에 투명 유리를 설치해 시민들이 그 과정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께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부를 창덕궁으로 초청했던 것처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유물의 콘텐츠화에 애쓰겠다”고 덧붙였다. 남북 문화재 교류와 관련해서는 “평양 고구려 고분의 남북 공동 발굴, 3·1 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 유적 조사, DMZ 태봉국 철원성(철원 궁예도성) 발굴 조사 등을 북측과 협의해서 추진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청장은 또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과 감수에 참여한 문화재 위원은 양심에 따라 다음 행동을 하길 바란다”며 날선 발언도 쏟아냈다. 이는 박근혜 정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3명의 문화재 위원에 대해 사실상 사퇴를 종용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살 찌워 4급… ‘현역기피 족보’ 공유한 성악과

    77㎏현역 대상자, 재검 땐 106.5㎏ 증량2010년 이후 개연성 있는 200명도 조사 현역병 판정을 피하고자 고의로 체중을 늘린 서울 소재 A대학의 성악 전공자 12명이 병무청에 적발됐다. 병무청은 11일 고의로 체중을 늘려 병역을 회피한 서울 소재 대학 성악 전공자 김모(22)씨 등 12명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병무청은 다만 개인정보 침해와 명예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이들의 대학 명칭과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은 단백질 보충제를 복용하고 병역판정검사 당일 알로에 음료를 1~2㎏ 마시는 등의 수법으로 체중을 늘려 4급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알로에 음료는 알갱이가 있어 체내 흡수가 느린 점을 악용해 체중 중량에 이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병무청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로 복원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는 “지금 101㎏야”, “난 한 달에 15㎏ 쪘는데”, “하루에 5끼 먹으면 돼”, “알로에 주문 많이 해야겠다” 등 집단으로 몸무게 늘리기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 적발된 성악 전공자 B(24)씨는 2013년 최초 신체검사에서 키 175㎝, 몸무게 77㎏으로 현역 판정 대상이었으나 2016년 재검사 때 몸무게가 106.5㎏으로 늘어 4급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같은 대학 성악과 동기 및 선후배로서 체중을 늘려 4급 판정을 받은 후 2명은 이미 복무를 마쳤고, 4명은 현재 복무 중이며 나머지 6명은 소집대기 중에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제보를 받고 체중 증량에 의한 병역 면탈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집단으로 현역병 판정을 피한 사례를 적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이들이 현역으로 복무하면 성악 경력이 중단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시 퇴근 후 자유롭게 성악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려 현역병 복무를 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병무청은 동일한 개연성이 있는 2010년 이후 체중을 이유로 4급 처분을 받은 성악 전공자 200여 명의 신체검사 결과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태화 병무청 차장은 “적발된 사람 중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마친 사람도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형사처벌과 함께 다시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체중 늘리는 수법으로 병역 회피한 대학 선후배들 적발

    체중 늘리는 수법으로 병역 회피한 대학 선후배들 적발

    고의로 체중을 늘려 현역병 판정을 피한 대학 성악과 선후배들이 적발됐다. 병무청은 11일 편법으로 시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서울 소재 A대학의 성악 전공자 12명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평소 단백질 보충제 등으로 체중을 늘린 뒤 신체검사 직전 알로에 음료를 다량 섭취해 몸무게를 1~2㎏ 더 늘렸다. 같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이들은 현역으로 복무할 경우 성악 경력이 중단될 것을 우려해 이 같은 방법을 고안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간에 체중을 늘리는 방법은 성악과 학년별 카톡방에서 공유됐다. 병무청이 디지털포렌식으로 복원한 카톡방 대화 내용 중엔 “난 한 달에 15㎏ 쪘는데”, “하루에 5끼 먹으면 돼”, “알로에 주문 많이 해야겠다” 등 현역병 회피를 위해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이들 중 2명은 이미 복무를 마쳤으며 4명은 현재 복무 중이고 나머지 6명은 소집 대기 중이다. 현재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마쳤더라도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형사처벌과 함께 다시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병무청은 2010년 이후 성악 전공자 중 체중 과다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대상자가 200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검토하기로 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소록도를 등록문화재로/손원천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소록도를 등록문화재로/손원천 문화부장

    얼마 전 문화재청이 전남 목포와 전북 군산, 경북 영주 등의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철저하게 점(點) 단위로 이뤄졌던 종전의 문화재 등록 범위를 선(線)이나 면(面) 단위로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적용된 첫 사례다. 앞으로도 급속한 도시화로 고유의 모습을 잃어 가는 마을이나 거리, 염전 등을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문화재청의 이번 조치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던 곳은 전남 고흥의 소록도였다. 나라 안 어느 곳보다 보전 조치가 시급한 곳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소록도 상황 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그는 많은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그리 걱정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상당수 건축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니 말이다. 한데 정작 중요한 게 빠졌다. 한센인들이 실제 거주하던 집, 병사(病舍)다. 서울신문 보도(9월 6일자 9면)에 따르면 소록도의 병사 112개 동 가운데 64개 동이 방치돼 있다. 병사의 건물로서 ‘법적 지위’는 등록 말소된 폐가다. 이는 감금실, 식량창고 등의 등록문화재들과 달리 보호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보건복지부 산하 소록도병원의 많지 않은 관리 예산으로 겨우겨우 허물어지는 것만 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진 것들도 적지 않다. 한센인들이 ‘저주받은 땅’이라 불렀다는 벽돌공장 터, 간장공장 등은 이미 종교시설, 기념물 등으로 대체돼 사라졌다. 위로로 포장된 값싼 자본의 그림자도 쉴 새 없이 기웃거린다. 가장 극적인 곳은 한센인 치료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자혜의원이다. ‘복원’했다는 자혜의원 안쪽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혀 탄식만 나온다. 소록도의 역사나 다름없는 곳을 시골의 버스대합실보다도 못하게 ‘복원’해 놓는 만용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는 역사에 대한 경시이고 만행이다. 건물 몇몇을 활용하자거나 리모델링하자는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곳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아네 스퇴거와 마르가레트 피사레크가 1962년부터 머물던 집이다. 평생을 검박하게 살았던 두 ‘소록도 할매’들의 멀쩡한 거처를 왜, 어떻게 리모델링하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만약 독일이 아우슈비츠를, 일본이 군함도의 건물들을 흉물이라며 헐고 기념관 등을 지어 올리려 했다면 두 나라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소 과장된 비교이기는 하나 처절한 삶의 기억이 쌓인 곳이란 점에서 보면 소록도 한센인 마을과 이 유적들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소록도를 단순히 ‘보건 복지’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때는 지났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시각까지 덧붙여 봐야 한다. 소록도 전체를, 혹은 일부 지역만이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자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야 ‘고유의 모습을 잃어 가는 한센인 마을들을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듯해서다.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집은 기억’이라고 했다. 집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소록도가 소록도일 수 있는 건 100년에 걸친 한센인들의 삶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그 기억은 여태 이어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지금, 허물어져 내리는 기억의 집들을 온전히 지켜 내야 하는 건 역사가 우리에게 지워 준 책무다. angler@seoul.co.kr
  • 법원 영장 3번 기각한 사이… ‘재판거래 키맨’은 대법 기밀 없앴다

    법원 영장 3번 기각한 사이… ‘재판거래 키맨’은 대법 기밀 없앴다

    “유 前연구관이 문서 파쇄” 궁색한 변명 “증거인멸 방조 넘어 수사 방해” 비판 고조 윤석열 중앙지검장 “책임 묻겠다” 격앙사법농단 수사 초기부터 일부 문건만 검찰에 전달하는 등 비협조로 일관하던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번번이 기각한 데 이어 사실상 증거 인멸까지 방조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대법원 기밀자료를 유출한 의혹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고발이나 자료 회수 조치를 하지 않았고,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거푸 기각되는 사이 유 전 연구관은 관련 자료를 파쇄한 것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10일 저녁 8시 30분쯤 “유 전 연구관에게 자료 제출을 문의했는데 ‘영장이 기각된 후 출력물은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분해해 버렸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이후 검찰은 유 전 연구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세 차례나 청구했고, 통합진보당 소송 관련 문건을 제외하고는 번번이 기각됐다. 법원은 이런 사실을 세 번째 영장이 기각된 지 한 시간 조금 지나서 공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대법원 입장에서 재판 자료 반출이 부적절한 행위지만 죄가 되지 않고, 수사기관이 해당 자료를 갖게 되면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고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법원으로부터 자료가 인멸됐다는 통보를 받은 검찰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본인 사건과 관련된 증거인멸은 형사처벌받지 않는다. 검찰 관계자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증거 인멸 혐의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그에게 자료를 건넨 것으로 보이는 현직 대법원 판사에 대한 증거 인멸이 될 수 있고, 이를 방조한 행정처도 수사 대상”이라며 “유 전 연구관과 변호인은 자료를 보존하겠다는 서약서까지 검찰에 제출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법원의 잇단 영장 기각에 대해서도 검찰은 비판 수위를 높였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위반, 절도, 공무상기밀누설 등 여러 혐의가 얽힌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가려야 하는 데 죄가 안 된다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자료를 갖게 되면 재판 침해이고, 민간 변호사(유 전 연구관)가 취득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냐”며 “최종 본안 판단을 영장전담판사가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 개업 뒤에도 대법원 내부 자료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 “퇴직할 때 직접 들고 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퇴직 뒤에도 대법원 현직 관계자들에게 관련 서류를 지속적으로 전달받았을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수사 방해’ 수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6월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문건 410개만 제공하고 업무추진비, 관용 차량 이용 내역 등의 제공을 거부했다. 이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에 대한 하드디스크 제출 요구도 디가우징(복원이 불가능하게 파기하는 것)됐다며 거부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극장 지하에 수백만 달러 금화가

    극장 지하에 수백만 달러 금화가

    로마 시대 금화가 이탈리아 로마의 극장 철거 현장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수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CNN 등은 9일(현지시간) 고고학자들이 이탈리아 북부 코모의 극장 터에 파묻힌 채 발견한 로마 시대의 동전 수백개를 연구소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금화는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베르토 보니솔리 이탈리아 문화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이번 발견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면서도 “이 금화 나온 지역 자체가 우리 고고학의 진정한 보물이다.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 금화는 5세기에 주조한 것으로 보인다. 금화는 현재 밀라노의 한 연구소에 보관 중이다. 학자들이 금화를 면밀히 조사하고 필요에 따라 복원 작업을 병행할 방침이다. 보니솔리 장관은 금화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AFP통신은 이탈리아 언론을 인용해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달러 규모”라고 보도했다. 1870년에 개관한 이 극장은 1997년 문을 닫았다. 고급 주택 건설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철거 과정에서 금화가 발견돼 작업이 일시 중단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경기서해안권시장협 “서해안권 5개시 해양경제·관광중심지로 성장해야”

    경기서해안권시장협 “서해안권 5개시 해양경제·관광중심지로 성장해야”

    경기 김포시 등 경기서해안권 시장협의회가 6일 민선7기 제1차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일터와 쉼터가 함께 하는 수도권 관광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먼저 정하영 김포시장은 “3차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에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면서 “경협 준비뿐만 아니라 통일로 가기 위한 서해안권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용역 중간보고서에는 협의회 회원인 5개시 역할분담과 특화발전전략 수립, 중복과 낭비 없는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별 연계발전 전략이 담겼다. 또 서해안권 5개시는 경기만의 역사문화적 가치 재조명과 교류협력을 통한 아시아 해양경제의 중심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환경 생태도시 기반을 구축해 수도권 관광중심지로 성장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서해안권 5개시는 동아시아 해양생태관광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업안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포시 사업안으로 ▲한강뱃길 복원(김포 아라마리나 → 안산 방아머리마리나 → 평택 국제여객터미널) ▲뱃길 연계 육로관광 개발(김포 아라마리나 → 전류리 포구 → 태산 패밀리파크 → 매화미르마을 → 문수산 → 대명 함상공원 → 약암온천) ▲해양레저산업 육성(김포시와 화성시가 연계한 세계요트대회 개최) ▲김포 평화관광코스 활성화(평화문화특구 지정 추진, 평화의 섬 유도를 평화테마공간으로 조성, 문수산성 트레킹, 덕포진 등 역사관광코스 개발) ▲김포 영상아카데미 운영(김포대학과 연계, 한류콘텐츠 개발 및 교육생 모집) ▲김포 골드밸리 등 산업클러스터별 산업관광 활성화(산업전시관 조성, 입주 기업 제품 체험 및 비교체험 공간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경기서해안권 시장협의회는 김포·안산·평택·시흥·화성시 등 경기 서해안 연안지역 5개 지방자치단체 단체장들의 협력모임이다. 2009년 10월 만들어졌다. 시장협의회 정기회의는 민선7기 신임 회장단에 이어 ‘서해안권 공동발전계획 수립용역’ 추진 배경과 세부사업안에 대한 보고, 현안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회장단 선출에서 신임 회장에는 윤화섭 안산시장이, 부회장에는 임병택 시흥시장이 선출됐다. 서해안권 공동발전계획’은 다음달 기업과 시민이 참여하는 연구회의와 2차 공무원 의견수렴, 시민공청회, 12월 초 최종보고회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시진핑 일대일로 5년… 1123조원 쓴 中·참여한 80개국 ‘파열음’

    시진핑 일대일로 5년… 1123조원 쓴 中·참여한 80개국 ‘파열음’

    참여국은 부채 폭탄·中내정간섭 내몰려 5년전 “현대판 실크로드” 장담한 시진핑 “가난한 나라 머리 되고 싶나”비난 직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영토 확장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가 7일 5주년을 맞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 4일 베이징에서 끝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에서 시 주석은 매일 10명 이상 53개국의 아프리카 정상들을 만나 일대일로를 통한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중국은 그동안 1조 달러(약 1123조원)를 일대일로에 쏟아부었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투자 회수가 의문스러운 ‘독극물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대일로란 고대 실크로드를 확대 복원해서 중국의 자본과 기술·인력 등으로 각국의 도로, 철도, 항만, 발전소 등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시 주석은 5년 전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에서 2000여년 전 고대 실크로드가 동과 서를 연결했다면서 앞으로 20년 안에 일대일로가 중국, 아시아, 유럽을 이으며 큰 발전을 낳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문제는 일대일로 사업이 참여국들에는 ‘부채 폭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대부분 사업에서 중국이 차관 형태로 자본을 제공하고, 이 자본은 시공사인 중국 업체에 대금으로 지급된다. 사업이 성공해도 참여국들은 중국에 사업비를 빚지게 되는 구조다. 현재 일대일로에 참여 중인 80여개 국가에서는 공사 지연, 부채 증대, 중국의 내정간섭 우려 등의 문제점이 드러난 상태다. 대표 사업으로 꼽히는 중국 파키스탄 경제회랑의 항구도시 과다르에서도 630억 달러 규모의 중국 부채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페르시아만의 원유 수송거리를 수천㎞ 줄일 수 있는 데다 병목현상이 심한 말라카 해협을 대체할 수 있는 과다르를 일대일로 사업으로 개발했다. 파키스탄 경제회랑 건설을 통해 발전소, 항구, 공항, 고속철 등이 건립되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대중국 무역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늘고 있어 부채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하면 스리랑카가 함반토타 항구 99년 조차권을 중국에 내줬듯 눈뜨고 영토를 뺏길 수 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와 600억 달러(약 67조원) 규모의 아프리카 투자를 통한 중국의 내정간섭 우려에 대해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에 어떤 정치적 조건을 달지 않는 동시에 모종의 정치적 이득도 취하지 않는다”며 “아프리카 국민과 한마음으로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의 본보기가 되길 원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내세우는 인류 운명공동체란 미국이 대표하는 서구 자본주의 진영과 맞서는 국제 공산주의 진영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은 “시 주석은 과거 마오쩌둥처럼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를 돈으로 사서 ‘가난한 나라의 머리’가 되고 싶어 한다”며 “국회 역할을 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실질적인 예산 결정권이 보장돼야만 시 주석의 독극물 같은 예산 낭비 정책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부산 도시열섬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장 단기 폭염대책 마련

    부산시가 여름 폭염에 대비해 장 단기 폭염 대책을 마련한다. 부산시는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열섬의 특성을 파악하고 통합관리를 위해 도시열섬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 하는 등 장 단기 폭염 대책을 마련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부산시는 도시열섬 통합 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지난 7월 시내 주요지점의 기상관측 네트워크 확충 사업을 완료했으며,보건환경연구원의 실시간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시스템을 11월까지 개발해 내년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또 하수처리수(5억7747만6000t/년) 재이용률도 2016년 25.9%에서 2020년에는 30%까지 늘린다. 하수처리수를 도로 먼지 제거용,소방용,비산먼지사업장 살수용,수목 식재용,조경 용수 등으로 활용하고 민간 사업장에도 무상으로 공급해 도시 열섬을 완화하고,폭염을 식혀주는 도심 수변공간,녹지공간 등도 확충한다. 부전천,초량천 등 주요 하천의 물길을 복원하고 사하구 일대에 2027년까지 100억원을 들여 22만5000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수림대를 조성한다. 금정구 도시철도 1호선 구서역 일대에는 ‘쿨 페이브먼트’ 사업을 추진한다. ‘쿨 페이브먼트’는 검은색 아스팔트 대신 햇빛을 반사해 열을 발산하는 회색의 특수 도료를 칠하는 사업이다. 부산시는 환경부의 기후변화 적응 선도 시범사업 대상지에 선정돼 확보한 3억원을 들여 특수 도료를 칠할 예정이다. 취약시설과 무더위 쉼터 등의 옥상에 시공하는 ‘쿨 루프’ 사업도 매년 확대한다. ‘쿨 루프’는 태양열 반사효과가 높은 차열 페인트를 칠해 건물의 실내온도를 평균 3∼4도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 부산발전연구원 등 연구기관과 함께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폭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최근 5년간 발생한 폭염과 열대야에 따른 피해현황을 지역별로 분석해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폭염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 종묘(宗廟)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 종묘(宗廟)

    “왜적 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宗廟)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경동(驚動)하여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었다.” <선조실록 26권, 국편영인본 21책 486면> 1592년 음력 4월30일 새벽, 선조는 서울을 급히 빠져 나간다. 4월 14일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과 열흘 만에 한성이 함락될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에 임금은 백성의 원성은 뒤로 한 채 급히 몸을 개성으로 옮긴다. 이 때 임금보다도 먼저 서울을 빠져나간 것이 바로 종묘와 사직에 있던 신주와 위판이었다. 조선에서 임금이라는 자리는 말 그대로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상징이자 유교의 심장인 종묘(宗廟)다. 종묘(宗廟)를 둘러보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덕수궁 등지를 휘적휘적 카메라 셔터 누르며 지나치는 발걸음과는 사뭇 다른 곳이 종묘다. 종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마음인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인 백(魄)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를 ‘신혼체백(神魂體魄)’이라 하는데, 신혼은 사당으로 모시고 체백은 능이나 묘로 모셔진다. 여기서 조상의 마음, 즉 몸을 떠난 혼령이 머무는 장소가 바로 사당에 있는 나무로 만든 신주(神主)다. 흔히들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종묘는 바로 조선의 왕과 왕비들의 혼령, 즉 신주가 모셔진 사당이다. 지금의 종묘(宗廟)는 1395년 9월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현재 종묘에서 가장 중심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으로, 예전에는 지금의 정전을 종묘라 하였으나 현재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 종묘라 부른다. 정전은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는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현재 정전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지만,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숙종 때 명예를 회복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원래 종묘는 풍수지리에 의거하여 응봉자락을 따라 흐르는 산줄기의 지맥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거쳐 흘러 들어온 길지(吉地)에 자리 잡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는 도로가 동서 방향으로 나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때 광화문에서 이화동으로 통하는 도로(현재의 율곡로)를 내어 종묘로 들어오는 지맥을 끊었다고 한다. 현재 다행스럽게도 율곡로를 덮고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복원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한, 별스러운 장소인 종묘(宗廟). 우리는 이곳에서 낡아버린 조선 왕실의 옛 시간을 느낄 수가 있지 않을까? <종묘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장소야? -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가볼만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3. 위치는? -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11번 출구, (3호선)8번 출구, (5호선)8번 출구 도보 5분 4. 꼭 봐야하는 곳은? - 정전, 영녕전, 신로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지만 의외로 관람객들은 많지 않은 편. 6. 여행의 의미는? - 역사서에 늘 나오는 ‘종묘와 사직을’에서 진짜 종묘를 만날 수 있다. 7. 주의할 점은? - 종묘에 대한 공부를 먼저 하고 가기를. 혹은 반드시 해설사와 함께 투어를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jm.cha.go.kr/agapp/main/index.do?siteCd=J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세운상가, 창경궁, 창덕궁, 인사동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서울 시내 역사적인 장소로서는 으뜸인 의미가 있다. 조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인 종묘 방문은 적극 추천! 토요일 자유관람. 화요일 휴무, 나머지날은 시간제 관람이어서 종묘 홈페이지를 참조.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영화 ‘오즈의 마법사’ 루비 신발 미국서 도난 13년 만에 집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 루비 신발 미국서 도난 13년 만에 집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 역을 맡았던 명배우 주디 갈런드의 ‘루비 슬리퍼’가 미국 미네소타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지 13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미 연방수사국(FBI)은 4일(현지시간) 미네소타 브루클린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05년 박물관 전시 중 사라진 ‘루비 슬리퍼’ 신발 한 짝을 되찾았다고 발표하고 완벽하게 복원한 신발의 모습을 공개했다. 루비색 구두 형태인 이 슬리퍼에는 안쪽에 주디 갈런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수집가인 마이클 쇼가 소장했던 이 신발은 당시 주디 갈런드의 고향에 있는 박물관에 대여된 상태였다. 이 슬리퍼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소품 중 하나로 꼽힌다. 1990년대 세계 최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에 출품돼 이미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슬리퍼의 현재 가치는 100만 달러(약 11억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한 남성이 이 신발의 보험회사에 물건을 되찾게 해 줄 수 있다며 접근했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흰 칠한 석불·‘원조 강남’… 동작의 역사 산책

    [흥미진진 견문기] 흰 칠한 석불·‘원조 강남’… 동작의 역사 산책

    잘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는 길가의 두 장승 앞에서, 편한 차림의 참가자들을 만났다. 효자였던 정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옥녀의 호령에 장승을 뽑아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는 변강쇠와 이를 막을 대책을 논의하는 장승들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해설자가 단톡방에 보내준 장승제 사진을 보며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재현할 때 갑자기 이어폰에서 풍악이 울렸다. “노들강변~ 봄버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정아 서울미래유산지도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오르락내리락 몇 굽이를 돌아 간판도 없는 절에 들어섰다. 신라 말기의 돌부처를 보기 위해서이다. 선유봉이 육지였던 시절 꼭대기 절집에 있었던 석불은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해 극락암에 왔다고 한다. 두 손을 배 위에 모은 특이한 모양의 돌부처의 겉에 흰 칠을 해 백불(白佛)로 만든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부처님의 본모습을 복원하여 잘 모시겠다”는 주지스님의 말씀이 꼭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가옥은 보통사람의 집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50년 세월이 묻어 있는 소파와 칠이 벗겨진 나무 바닥이 친밀감을 줬다. 김 전 대통령이 이웃들과 배드민턴을 매일 하셨던 고구동산 길과 숲이 제법 깊은 서달산 길을 힘들지 않고 산책하듯 즐길 수 있었다. 강남초등학교와 강남상가 등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이 ‘원조 강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종착지인 한국기독교박물관을 향했다. 홍보 동영상과 책자만으로 한국에서 기독교가 싹트고 자라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행을 위해 담당 학예사가 박물관 안내를 해주셨다. 동작의 역사를 알아본 즐거운 산책이었다. 3년 후 탈바꿈을 예고하는 극락정사와 바로 앞 건물의 매매로 또 어떤 변화가 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김영삼 가옥을 보러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
  • [미래유산 톡톡] 공동체 신앙의 대상 장승… 민주주의 현장 YS 사저

    [미래유산 톡톡] 공동체 신앙의 대상 장승… 민주주의 현장 YS 사저

    지난 1일 투어단이 찾은 동작구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장승배기 장승제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 등 2곳이었다. 장승제는 2015년 “공동체적 풍습과 전통의 맥을 잇는 고유의 미풍양속”으로 인정돼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됐다. 지역주민들이 1991년 이후 매년 10월 24일 동작구 장승배기 장승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28회째 열고 있다. 일제강점기 미신 타파 명목으로 장승을 없애고 아까시나무 몇 그루를 심은 것을 주민들이 복원해 오늘에 이르렀다. 정조가 장승을 세우도록 한 이후 장승은 마을 공동체 신앙의 대상이었다. 전라도 및 경상도 해안에서는 법수·법시·당산할아버지, 충청도에서는 수살막이·수살이, 경기도에서는 장승,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돌미륵,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 등의 명칭으로 불리거나 불렸다.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는 1969년 초산테러, 1980년 가택 연금, 1983년 23일간의 단식 투쟁,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만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2011년 김 전 대통령이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 김영삼 기념도서관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공사 지연 및 공사비 미납 등으로 압류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유족인 장손 김성민씨가 압류에 처한 가옥을 재매입했다. 유품 및 유물을 비롯해 사진, 영상 등 귀중한 사료가 그대로 남아 있다. 김영삼민주센터는 김영삼 기념도서관을 지난 8월 22일 동작구에 기부채납했다. 기념도서관을 주민개방형 시설로 만들고자 하는 구와 김 전 대통령의 재산 사회환원 뜻이 맞닿아 이뤄졌다. 도서관은 전체 면적 6237㎡로 지하 4층, 지상 8층의 규모이다. 국고와 민간 모금으로 마련한 200억원이 넘는 공사비를 투입해 2015년 준공됐으나 건축대금, 세금 미납으로 아직 문을 열지 못한 상태이다. 기념도서관은 내년 5월 공공도서관으로 개관될 예정이다. 동작구는 1개 층을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공간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반달가슴곰 ‘오삼이’ 수도산에 이어 가야산 탐색 중

    지난달 27일 최초로 지리산이 아닌 경북 김천 수도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 ‘오삼이(KM 53)’가 서식지를 탐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4일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오삼이가 지난 2일 방사 장소에서 직선거리로 12㎞ 정도 떨어진 경남 합천 가야산 일대로 이동했다가 3일 수도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리산에 방사됐던 오삼이는 지난해 두 차례 수도산으로 이동했다 포획된 후 지리산에서 동면까지 했지만 지난 5월 수도산으로 향하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앞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달 건강을 회복한 오삼이 몸에 발신기를 부착한 뒤 수도산에 방사했다. 오삼이는 8월 29일부터 수도산 동쪽 산줄기를 따라 하루 3~5㎞를 이동하며 수도산과 가야산 일대의 서식지를 탐색했는데 이는 안정적인 서식지를 찾기 위한 방사 초기 행동으로 추정됐다. 잡식성인 반달가슴곰은 단단한 과일이나 열매, 특히 도토리를 좋아하는데 수도산 일대는 참나무가 풍부하다. 환경부와 공단은 오삼이의 이동 범위에 김천·거창외에 경북 성주와 경남 합천을 포함시켜 안전을 위한 지역주민 설명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송동주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장은 “반달가슴곰은 사람을 인지하고 피하는 습성이 있다”며 “안전한 공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이해와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12월부터 동면에 들어가 이듬해 4~5월부터 활동하는데 오삼이도 비슷한 시기에 동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그러나 사랑이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시)의열단장 김원봉은 고국이 해방되자 이역에서 숨진 아내 박차정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김원봉은 피 묻은 박차정의 속적삼을 친정 식구들에게 전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인 경남 밀양 부북면 제대리 뒷산에 유골을 묻었다. 1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지만 중국 땅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중국서 만난 김원봉과 13년간 항일독립운동 제대리에서 내려 농가를 지나 야산으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띄엄띄엄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묘지였다는데 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100m쯤 올라가니 박차정의 묘소가 나타났다. 마른 솔잎이 봉분을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라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는 너무 초라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란 비문만이 묘주(墓主)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묘소에서 멀리 너른 들녘이 보이고 밀양강이 굽이쳐 흐른다. 밀양강 바로 북쪽, 해천 옆에 남편 김원봉의 생가가 있었다. 그 위쪽 부북면 신작로에는 해방 후 귀국해 고향을 방문한 김원봉을 환영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찼었다.‘빨갱이’로 낙인찍힌 김원봉의 배우자란 딱지는 박차정의 공훈을 인정받는 데도 오랫동안 장애물이 됐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차정의 생가는 부산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담벼락 옆 동네 안쪽에 있다. 지금은 옛날 모습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드문드문한 관람객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충절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어릴 때부터 반일 감정이 남다른 소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김원봉은 대한광복회의 암살 활동에 충격을 받고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약산은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터진 3·1운동의 비폭력에 실망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암살·파괴활동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혈 운동가들은 민중 속에 잠재한 폭력의 위력을 끌어내는 뇌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19년 11월 9일 중국 지린성 반 아무개 농부의 집에 우국 청년 10명이 모였다. 밤샘 토론 끝에 김원봉을 의백(義伯·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이 결성됐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을 ‘칠가살’(七可殺)로 규정, 처단의 목표로 삼았다. 단원들은 거사에 서로 가겠다고 싸울 정도로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첫 거사 모의는 그만 악명 높은 조선인 경찰 김태석에게 발각돼 윤세주 등 6명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장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기도,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습격 등 잇단 의거를 감행했다. 헝가리인 마자알의 고성능 폭탄 제조법 전수와 의열단 정신을 명문화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의 기세는 더욱 높아져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열단원 김지섭은 화물선 석탄창고 속에서 열이틀을 지낸 끝에 일본에 도착해 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의열단원들의 잇단 항거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에게는 김구 선생보다 많은 100만원(현재 가치 약 320억원)이란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다. 김원봉은 잠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원판을 회수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일경을 따돌렸다. 신출귀몰이었다. ●신출귀몰 약산,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 더 붙어 5~6년 동안 수백건의 투쟁을 했지만 자금이 바닥나자 의열단의 활동도 주춤해졌다.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약산은 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 학생들을 가입시키면서 의열단 재건에 나섰다. 김원봉이 박차정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다. “천궁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의 반월이/ 고요히 대지 위에 비칠 때(…)/ 옛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이 18세 때 모교(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교지에 발표한 시 ‘개구리 소리’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박차정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된 집안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비분강개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박차정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1930년 1월에 서울 여학생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바로 ‘근우회 사건’이다. 두 번의 구금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해 몸은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박차정을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였다. 박차정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3~4월쯤이었다.●독립투쟁·문학 공통관심… 사랑으로 발전 박차정은 등단을 권유받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김원봉도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독립투쟁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관심사는 사랑으로 승화됐다. 두 사람은 1931년 3월 결혼했다. 김원봉은 난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설해 투사들을 양성했다. 이육사는 이 학교 1기 졸업생이었다. 박차정은 교관으로 힘을 보탰다. 김원봉은 일본의 침략이 격화되자 혁명세력의 통합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박차정은 그 산하에 난징조선부녀회를 만들어 당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을 규합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약산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8년 10월 10일 항일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약산은 의용대장이 됐고 박차정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다. 의용대는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활동을 했고 총을 들고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1939년 2월 박차정은 장시성 쿤륜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화베이지방으로 북상해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김원봉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 임정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군무부장 취임 직후인 1944년 5월 27일 부상의 후유증이 깊어져 아내 박차정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김원봉은 광복을 맞아 근 30년 만에 귀국했으나 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익 인사 김원봉에게 반대파의 백색테러와 암살 위협이 지속됐다. 미군정에 체포됐을 때 고문을 하고 수모를 준 경찰이 친일 앞잡이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풀려난 뒤 너무나 분해서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검열상과 노동상이란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1958년 숙청당하고 말았다.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좌우를 넘나들며 독립을 염원한 민족주의자였다.●약산 생가터엔 의열기념관… 서훈은 거부 당해 밀양 내이동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의열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흐르는 해천변에는 항일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준설 학예연구사는 “김원봉뿐만 아니라 박제혁, 최수봉, 강우규 의사 등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면서 “의열단에 최초로 참여한 사람은 알려진 대로 13명이 아니라 10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약산 집안의 9남2녀 중 4형제는 6·25 때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막내 김학봉(86)씨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다. 김원봉에 대한 유족과 밀양시민들의 서훈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가을 달빛 머금은 고궁의 속살

    가을 달빛 머금은 고궁의 속살

    산책의 계절이 돌아왔다. 서울 도심에서 여유를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고궁은 어떨까. 따사로운 햇빛 혹은 은은한 달빛 아래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가을까지만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궁궐 내 특별한 장소를 엿보는 즐거움도 누려 보자.조선시대 대부분의 관청은 궁 밖에 있었지만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업무를 하던 관원들의 업무 공간은 특별히 궁궐 안에 세워졌다. ‘궁궐 안 관아’라는 뜻의 창덕궁 궐내각사가 바로 그곳이다. 홍문관, 약방, 규장각 등 조선시대 각 관청의 역할과 기능,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궐내각사를 둘러보는 특별관람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궐내각사는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훼손됐다. 이번 프로그램은 2004년 복원된 인정전 서쪽의 궐내각사 권역이 대상이다. 오는 10월 말까지 당일 현장에서 1회당 2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창덕궁의 정전(正殿)이자 국보 제225호인 인정전의 내부를 관람할 수도 있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높은 천장을 받들고 있는 중층 목조 구조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 중앙에 두 마리의 봉황 목조각을 달아 으뜸 공간으로서의 권위를 한껏 살렸다. 해설사의 인솔 아래 그동안 밖에서만 볼 수 있었던 내부 시설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10월까지 매주 목~토요일 1일 4회 운영한다. 조선 후기 국왕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창덕궁 희정당은 오는 11월부터 두 달간 개방할 예정이다.경복궁의 백미로 꼽히는 경회루의 건축 미학을 가까이에서 느껴 보는 것도 좋겠다. 연못 안에 조성된 2층 목조건물인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 행사에 사용하던 건물이다. 10월까지 특별관람 형식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1회당 최대 관람 인원은 70명으로 제한된다. 2016년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일반에 개방한 집옥재는 오는 10월 31일까지 개방한다. 고종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청나라풍이 가미돼 경복궁 건물 중에서도 이국적인 건물로 꼽힌다.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 중 다과를 만들던 생물방에서는 약차 및 병과 시식을 유료로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된다. 오는 11월 30일까지 오전 10시~오후 5시에 운영된다. 선선한 가을밤 고궁에서 특별한 추억을 쌓고 싶다면 경복궁과 창경궁 야간 특별관람을 권한다. 오는 16~29일, 10월 21일~11월 3일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이용할 수 있다. 경복궁 수정전에서는 오후 8시에 전통 가락을 담은 국악 실내악 공연이 진행된다. 9월 야간 관람 예매는 오는 7일 오후 2시, 10월 야간 관람 예매는 오는 10월 12일 오후 2시부터 옥션티켓(ticket.auction.co.kr)과 인터파크티켓(ticket.interpark.com)에서 할 수 있다. 두 궁의 야간 특별관람 예매를 하지 못했다면 상시 야간 관람이 가능한 덕수궁을 이용하면 된다. 오후 8시까지 입장해서 오후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위도 파시 복원해 어업문화 재조명 해야

    우리나라 3대 파시(波市) 중의 하나였던 전북 부안군 위도 파시를 복원해 해양관광과 남북협력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북연구원은 2일 ‘바다의 황금시대, 위도 파시의 재현 의미와 추진방향’이라는 이슈브리핑을 통해 위도 파시의 재현과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인 관심을 주문했다. 위도파시는 황금어장인 칠산어장에서 잡아올리는 조기등 각종 수산물이 거래되는 중심지로 활황을 누렸다. 조선 전기부터 1970년대 초까지 형성됐다. 실제로 위도 파시는 탁지지(度支志)에 언급될 정도로 매우 큰 조기 시장이 형성됐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위도진이 설치된 기록도 있다. 그러나 어장이 쇠락하면서 인구가 크게 줄고 어획량도 급감했다. 1960년대 최고 5000여명에 이르던 인구는 1200여명으로 줄었다. 위도 파시의 중심지인 파장금마을은 현재 소수만이 거주하고 있다. 건물도 대부분 역사의 흔적만 간직한 채 방치된 상태다. 전북연구원은 이같은 위도 파시의 쇠락은 역사적 가치의 복원·재현, 어업문화의 재조명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파시로 형성된 위도 고유의 섬 문화와 얽힌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도는 전북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변산반도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져 있는 섬으로 5개의 유인도와 10여개의 무인도로 구성돼있다. 애초 전남 영광군에 속해 있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1963년 부안군에 편입됐다. 이동기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도를 중심으로 한 ‘서해 파시 해양문화권’을 설정해 서해안 해양관광 루트를 조성하고 남북한 수산협력을 위한 ‘서해 남북 해상 파시’ 추진도 고려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파시는 해상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으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돼 있다. 위도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국내 3대 파시로 유명하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