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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文정부에 노골적 보이콧…‘남북 화해 상징’ 잿더미로 만들다

    北, 文정부에 노골적 보이콧…‘남북 화해 상징’ 잿더미로 만들다

    총참모부 도발 시사 9시간도 안 돼 실행 6·15 20주년 文기념사 하루 만에 빛 바래 “北 신냉전 체제 대결 구도로 가겠다는 것” 金, 판문점합의 파기해 불신 이미지 확산 북한이 16일 총참모부가 군사도발을 시사한 지 9시간도 안 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한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든 북한은 남북 관계를 단절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대남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 대응 조치는 물론 남북 관계 단절의 첫 단계로 예고한 것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처음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한 다음날 당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폐쇄가 ‘첫 순서’라고 언급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남한과 결별할 때가 됐다’며 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재확인했다. 공동연락사무소는 4·27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합의 사항이기에 북한이 이번 폭파를 통해 남북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엄포를 현실화한 것은 물론 판문점선언의 파기를 공식화한 것이기도 하다. 판문점선언은 물론 판문점선언의 후속 조치로 맺어진 9·19 군사합의에도 구애받지 않고 예정된 남북 관계 단절 조치, 특히 군사행동까지 진행하겠다는 메시지를 폭파라는 충격요법을 통해 대내외에 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이 예정된 수순대로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지만 폭파 시기를 문재인 대통령의 6·15 20주년 기념사 다음날로 잡은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남북 모두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화를 촉구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폭파는 예정했던 것이지만 폭파 시기는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결정했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남북 합의 이행을 강조하지 않고 ‘일단 대화하자’는 메시지만 보낸다고 판단해 불만스러워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북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실행에 옮긴 만큼 남북 간 갈등과 한반도 긴장은 계속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하에서 남북 관계를 복원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에 문재인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 관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를 진전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며 “대북 전단 살포 문제는 핑계고 한국과 신냉전 체제의 대결 구도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이 타국의 재산권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침해한 데 대해 한국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비난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해 북한을 설득할 공간이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군비 증강과 군사도발에 더욱 치중할 가능성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판문점선언의 중요한 합의 사항을 일방적으로 난폭하게 파기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합의를 언제든지 깨뜨릴 수 있는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전통 한지 ‘태지’ 베일벗어…전통기법으로 복원

    전통 한지 ‘태지’ 베일벗어…전통기법으로 복원

    제조법이 전수되지 않아 기록으로만 볼 수 있었던 전통 한지 ‘태지’(苔紙)의 비밀이 풀렸다.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15일 태지의 핵심 원료가 ‘해캄’임을 확인해 전통기법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닥나무 섬유에 녹색의 ‘수태’(水苔)를 넣어 만든 태지는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고급 한지였지만, 근대화를 거치며 값싼 화학펄프 종이가 대중화되면서 사라졌다. 백색 종이에 녹색 실무늬처럼 더해진 태의 아름다움으로 고문헌에 자주 등장하지만 제조법·원료 등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고 원료로 언급된 수태의 정제도 확인되지 않았다. 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협업을 통해 1700년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제작된 태지 실물을 수집하고 과학적 분석을 통해 수태가 민물에 서식하는 녹조식물인 해캄류임을 밝혀냈다. 또 경남과학기술대, 조현진한지연구소, 신현세전통한지와 공동으로 태지 복원을 시도해 전통 제조 방법으로 태지를 복원했다. 한지는 국내 고문헌에 284종이 등장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고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나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제조법이 전수되지 않은 데다 사용이 줄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국내 한지 전문가 및 전문기관은 한지종의 복원과 관련해 태지를 최우선 복원 대상으로 꼽았다. 손영모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장은 “이탈리아·프랑스 등이 자국의 문화재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면서 우수성이 증명됐다”면서 “태지 복원은 한지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자 관련 산업 활성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靑 ‘사면초가’

    靑 ‘사면초가’

    14일 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긴급 소집된 것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13일 밤 담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 화상회의가 열린 것은 김 부부장 발언이 나온 지 불과 3시간여 만이다. 청와대로선 진퇴양난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등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전향적 대북메시지를 발신해, 남북 관계 복원의 변곡점을 만든다는 구상이 난관에 부딪혔다. 관계부처의 남북 협력 복원 구상도 ‘올스톱’되는 모양새다. 통일부는 이달 중 예정됐던 판문점 견학 재개 사업부터 다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4일 김 부부장의 대북전단 첫 담화가 나온 직후만 해도 청와대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남측 고위당국자가 대북전단 살포에 유감을 표하되 남북의 법적·제도적 차이가 있는 만큼 서둘러 시정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대화의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일 통일부가 탈북단체 2곳을 수사 의뢰하고, 11일 NSC가 대북전단·물품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발표한 이후에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하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통일부는 이날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남북 합의 준수를, 국방부는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와 9·19 군사합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북측이 ‘마이웨이’를 선언한 터라 대응이 마땅치 않다. 북측이 군사 도발을 일으킨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징인 9·19 남북군사합의는 자연스럽게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비핵화 중재·촉진자 역할도 힘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 문 대통령을 겨냥한 평양 옥류관 주방장의 ‘막말’까지 나오면서 국내 여론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인내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는 비판을 보수 야권의 정치 공세로 폄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청와대에서는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재개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불통의 남북관계… 특사 파견·의료 협력으로 정면 돌파해야”

    “불통의 남북관계… 특사 파견·의료 협력으로 정면 돌파해야”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숨결을 불어넣던 20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연일 대남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데, 아예 작정한 듯 남쪽을 모욕하기까지 한다. 서울신문 평화연구소가 6·15 선언 20주년을 맞아 전문가 앙케트를 실시했는데 참여한 8명의 전문가 모두 내부 문제를 남쪽의 책임만으로 돌리는 북쪽의 어이없는 사태 인식에 개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우리 지도자와 정부당국의 비전과 용기가 부족했음을 아프게 지적했다. 특히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2018년 10월 한미워킹그룹이 출범한 이후 미국 눈치만 보는 우리의 한계를 절감하고 북한이 실망했는데 의지만 있으면 막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대북전단 문제에 그만 폭발한 것”이라며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 이치인데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해법만 좇다가 작금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안타까워했다. 20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 합의를 일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정부가 전단 살포를 못하게 막겠다고 약속해 놓고 실질적으로 막지 못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도 정부 차원에서 과감하게 풀지 못했다”고 동의했다. 그는 20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인데도 난국을 정면 돌파했으니 용기를 다시 내보자며 “인도적으로나 대북 제재가 엄존하는 현실로 볼 때 보건의료로 물꼬를 트는 것이 현실적”이라면서 특사 파견도 꼭 필요하다고 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지낸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남쪽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압박인데 그 방식이 거친 것은 북쪽 인사들이 익숙한 자기중심적 논리 때문이라며 전단 살포 처벌 의지를 확인하고, 남북합의 이행 원칙 등을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북측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남쪽이 대응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라고 못박았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대선에만 골몰하고 있어 북한을 돌아볼 여력이 없고, 남쪽은 여당의 총선 압승 이후에도 별달리 움직이지 않고 있어 한국이 제재를 뚫고 나와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유엔 제재와 상관없이 치고 나와야 약한 고리가 깨지면서 미국의 대북제재가 유야무야되는 승부수가 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정부가 전단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전달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4·27 판문점선언 이행 의지를 보여 주면 북한이 당장 연락 채널 복원과 같은 조치는 아니더라도 개성 연락사무소 폐쇄, 9·19 군사합의 파기 같은 다음 단계 조치를 취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다소 낙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남한의 실정을 오해해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많다. 남북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사 파견을 통해서라도 비공개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치밀한 전략과 이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아예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신범철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며 기다리는 것도 전략일 수 있다며 6·15 선언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핵문제를 둘러싸고 근본적인 해법이 없는 상황이기에 남북관계가 교착된 것이라며 북한이 단기간에 변하기 어렵다는 점을 정부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최근 북한과의 대화 단절을 너무 두려워하고 통신선이나 공동연락사무소와 같은 정부의 성과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켜 내겠다며 성급해하고 소급해서 전단 살포 책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이 뭔가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상호주의 원칙과 고정관념을 버릴 때가 됐다. 우리가 지킬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반응에 상관없이 선제적으로 하면 된다”며 기존 합의는 물론 해운합의 복원, 한미군사 훈련 지속 중단, 북한 정보에 대해 점진적으로 자유로운 유통 및 접근을 허용하고 안보의 관점에서 단기적인 리스크 회피나 차단이 아니라 평화의 관점에서 멀리 보고 일방적, 선제적 조치를 통한 리스크 관리를 해 나가자고 주문했다. 김기정 교수는 “남북미 선순환 삼각관계를 회복시키는 프로젝트를 포기해선 안 된다. 민족 내부의 자율적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의료방역 협력이 좋은 기제가 될 수 있다”며 한반도에 신냉전 구도가 만들어지면 남북한이 공히 그 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북한과 공유하는 것이 절실하며 국제정치의 여건을 충실히 살피는 지혜 못잖게 비전과 용기가 이 정부에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양무진 교수는 결국 남쪽을 때려서 북한 내부의 체제 결속을 이끌고, 동시에 미국을 압박하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며 일단 북한이 전단 문제를 걸어 왔기 때문에 정부는 전단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정리하고, 코로나 국면이 정리된 뒤에 특사 파견이나 연락사무소 재개를 통해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장관급 회담을 통해 구체화하고 그전에 북미관계를 견인하기 위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남성욱 원장은 북한이 평양종합병원을 10월 10일까지 건설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인도적 방안이라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의료 장비를 보낸다거나 코로나 방역 같은 것에 대해 미국과 협의해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지진 빈발, 흔들림에 대비하는 ‘면진’ 기술 부상

    지진 빈발, 흔들림에 대비하는 ‘면진’ 기술 부상

    건물과 지반 사이에 추가 구조물을 설치해 땅의 흔들림이 건물에 전달되는 것을 줄여주는 면진(免震) 기술 개발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 지진 이후 소규모 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전남 해남에서는 올해 4월 26일부터 한달간 75회나 관측됐다. 그동안 지진 방재기술로 내진 설계가 강조됐으나 유연한 대응이 요구되면서 면진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14일 특허청에 따르면 2005년 이후 면진 기술 관련 특허 출원은 291건으로 집계됐다. 대형 지진이 발생한 후 급증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해에 32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4년 10건으로 하락했다. 경주 지진 후 출원 증가세를 보이다 포항 지진 직후인 2018년 40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32건으로 소폭 하락했지만 2017년 이후 연간 30건 이상 출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첫 출원된 면진 기술은 1988년 일본 기업의 ‘주위 구속형의 면진장치‘로 90년대 이전까지 일본 등 외국 출원은 전체 37%를 차지했지만 2000년대부터 내국인 출원이 급증하면서 외국인 비중은 6%대로 낮아졌다. 내국인의 해외 출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단 1건에 그쳤지만 2000년대 6건, 2010년 이후 11건이 출원됐다. 분야별로는 지반과 건물을 분리하는 ‘면진받침’에 관한 출원이 87%를 차지했다. 세부적으로는 지진에 대한 복원력을 강화하는 기술과 고무 노화를 최소화해 유지보수 비용을 줄이는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해 지진 후 영구변위의 발생이 방지되는 ‘자동복원형 지반격리 면진장치’가 출원·등록됐고, 국내 중소기업은 품질관리를 요하는 받침용 고무부분을 최소화한 ‘조합형 지진격리장치‘를 개발했다. 여덕호 특허청 주거기반심사과장은 “경주·포항 지진과 비슷한 지진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면진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시공 노하우 축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69년만에 원주 옛 미군기지 캠프롱 한시적 개방된다

    69년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강원도 원주 옛 미군기지인 캠프롱이 한시적으로 개방 된다. 원주시는 오는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캠프롱 개방 행사인 ‘CAMP 2020’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정이삭 총감독 중심의 ‘CAMP 2020’과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및 제1차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기념하는 ‘문화도시 원주’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 ‘동시대 예술과 변이하는 계획들’을 주제로 한 CAMP 2020은 개막식과 초청 밴드 공연, 커미션 프로젝트, ‘현대(現代) 1차:어디에 기르는� � 전시 등이 진행된다. ‘문화도시 원주’는 19일 문화 포럼을 시작으로 시민 캠프 및 문화체험 등으로 구성됐다. 커미션 프로젝트는 정이삭 총감독을 비롯해 대중에게 뮤지션으로 잘 알려진 나얼(유나얼) 등 17명의 작가 작품들이 전시된다. ‘현대(現代) 1차:어디에 기르는� ?� 의무대와 컨벤션센터, 간부 숙소 일대에 11명의 작가가 참여한 작품을 전시한다. 캠프롱 활용 방안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 캠프와 캠프롱의 새로운 시작을 사람, 장소 그리고 원주의 문화와 동반 성장하는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 보는 시민문화도 바비큐장 마당과 소프트볼장에서 열린다. 19일 문화 포럼과 개막식 및 공연에 이어 20일에는 시민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시민 캠프가 준비된다. 21일부터는 전시와 놀이 체험 등을 자유롭게 관람하고 참여할 수 있다. 시는 코로나19에 대비해 입장 시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 출입자 신원 파악, 손 소독 약품 비치, 관람객 안전거리 유지 등을 철저히 할 방침이다. 태장동 일대 34만 4332㎡ 규모의 캠프롱은 1951년부터 미군이 주둔하다가 2010년 6월 평택으로 이전한 뒤 토양 오염 복원 주체를 놓고 미군과 환경부가 갈등을 빚으며 장기간 방치되다 지난해 12월에 원주 반환이 결정됐다. 시는 캠프롱을 시민휴식공간인 문화예술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숲속 신세계 … 야생화 천국

    숲속 신세계 … 야생화 천국

    예년보다 여름이 일찍 찾아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냉해 피해 운운하더니 난데없이 폭염이다. 더위를 피해 녹음이 짙은 숲으로 생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숲길을 따라 걸으며 숲속 들꽃들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 여행지 몇 곳을 추렸다. 대부분 야생화가 풍성하게 자생하고 있는 곳들이다.연풍새재 따라 수줍은 들풀 충북 괴산 조령산… 백두대간생태교육장 볼만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조령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데 문경 쪽 새재가 ‘문경새재’로 유명해지면서 괴산 쪽 고갯길은 자연스레 잊혀졌다. 예부터 괴산 사람들은 조령관을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소조령까지 8㎞를 ‘연풍새재’로 불렀다. 최근 괴산군이 조령산자연휴양림 입구부터 조령관까지 1.5㎞를 ‘연풍새재 옛길’로 복원했다. 옛길의 역사뿐만 아니라 숲과 야생화 등 자연이 어우러진 길로 거듭난 것이다. 복원된 옛길은 졸참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 다양한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 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 안에 자리잡은 조령산자연휴양림과 백두대간생태교육장은 자연을 탐구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공간이다. 이맘때면 하늘말나리, 노루오줌, 풀솜대, 참꽃마리 등의 들꽃들이 무시로 피어난다. 인근에 닥나무로 만든 신풍한지의 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는 괴산한지체험박물관, 아름다운 수옥폭포, 거대한 암반에 새긴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보개산 각연사 등 볼거리가 많다.유네스코 ‘천상의 화원’ 강원 인제 곰배령… 인터넷 예약 필수‘곰이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는 곰배령(1164m)은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야생화 천국이다. 점봉산(1424m) 정상에서 남쪽 아래 능선에 펼쳐져 있다. 점봉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라 입산할 수 없지만, 강선계곡부터 곰배령까지 약 5㎞ 지역에 생태 탐방 구간이 조성돼 귀하고 아름다운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곰배령 정상과 가까운 일부 구간은 다소 험하지만 대부분 완만해서 고운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장마가 오기 전까지는 괴불주머니, 물참대, 개별꽃, 줄딸기 등 초여름 꽃이 발길을 잡는다. 강선계곡의 기후 특성으로 다른 지역에서 봄, 가을에 피는 꽃들도 볼 수 있다. 신선이 내려와 놀고 간다는 강선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울창한 숲의 비경을 감상하는 시간도 특별하다. 반드시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 인근의 방태산자연휴양림과 물맛 좋은 방동약수터도 함께 들러 보자.발길마다 손짓하는 꽃잎들 경북 영천 보현산… 천문대 풍광은 덤보현산은 비교적 손쉽게 야생화 탐방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보현산천문대가 있어 도로가 잘 닦였고 해발 1000m까지 차로 올라가기 때문에 힘겹게 등산하지 않아도 야생화 탐방이 가능하다. 보현산에서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는 길은 두 개다. 천문대 정문을 마주 보고 오른쪽으로 작은 등산로가 있는데, 보현산 북사면을 따르는 이 길 옆에 덩굴개별꽃, 금강애기나리, 큰애기나리, 미나리냉이 등 다양한 야생화가 핀다. 반대편으로 보현산 정상 시루봉까지 약 1㎞ 정도 이어지는 ‘천수누림길’에서도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다. 우거진 풀섶을 들추면 감자난초며 광대수염, 꿩의다리아재비 등이 기다렸다는 듯 꽃잎을 흔들며 반긴다. 보현산에선 특히 1000m 이상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관찰하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반사망원경이 설치된 보현산천문대, 벽화가 아름다운 별빛마을, 초여름 풍광을 즐기기 좋은 옥간정, 포은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지은 임고서원,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고찰 은해사 등과 함께 여행 코스를 짜면 알찬 초여름 여행을 즐길 수 있다.삼인리 송악 웅장한 자태 전북 고창 선운산… 2시간 왕복 ‘비밀의 화원’선운사는 이른 봄의 동백꽃과 벚꽃, 가을 꽃무릇으로 이름난 절집이다. 반면 선운산 자락에 숨은 야생화는 오랜 기간 그 명성에 묻혀 있었다. 6월은 봄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선운산의 생태를 누리기에 적합한 시기다. 특히 짙푸른 숲길이 탐방객을 매혹한다. 탐방 구간은 선운산생태숲에서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숲길이 안성맞춤이다. 경사가 완만해 왕복 2시간 남짓이면 걸을 수 있다. 첫걸음은 선운산생태숲이다. 보라색 붓꽃과 노랑꽃창포, 노랑어리연꽃 등이 시선을 끈다. 7월에도 부처꽃, 마타리, 좀비비추, 어리연꽃 등이 다투어 핀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광대수염, 수정란풀, 사상자, 나도양지꽃, 참꽃마리, 미나리아재비 등 길가에 핀 야생화도 어렵잖게 만난다. 삼인리 송악(천연기념물 367호)도 진귀한 볼거리다. 뿌리가 바위에 붙어 자란다. 정확한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솔암 가는 길은 특정 종이 압도적으로 분포하지는 않는다. 그윽한 숲길을 산책하듯 거닐다가 꽃을 발견하는 기쁨이 각별하다. 선운사, 도솔암 등 오랜 암자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적막한 그늘 아래, 번민을 내려놓다

    적막한 그늘 아래, 번민을 내려놓다

    경북 안동에 들면 과장 좀 보태 한 집 건너 문화재다. 고택이며 정자 등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정신 문화의 수도를 자임하는 도시답다. 날이 더워지면 숲속 정자만큼 편한 쉼터가 없다. 한데 코로나19가 함정이다. ‘집합’, ‘밀집’ 등의 단어에 민감하다 보니 외려 유명한 곳을 기피하는 희한한 추세도 생겨났다. 그래서 찾아봤다. 이름은 덜 알려졌으되 문화재급의 단아한 자태를 가진 정자들 말이다.“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왔던 이 대사, 기억하시는지.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고애신(김태리 분)에게 건넨 말이다. 이 대사 뒤 둘은 악수를 나눴다. 이 유명한 대사와 장면이 촬영된 곳이 만휴정이다.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던 이 장면 때문에 만휴정이 깃들인 ‘조용한 계곡’ 묵계(默溪)가 난데없는 인파로 북적였다고 한다. 지금도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연인들이 꾸준히 찾고는 있지만 열기는 다소 수그러든 듯하다.●보물처럼 빛나는 연인의 명승지 ‘만휴정’… 명당의 풍경 ‘백운정’ 드라마에 등장한 다리는 통나무를 깔고 시멘트로 윗면을 마감한 형태다. 다리 자체는 그리 볼품이 없다. 한데 명승(제82호, 만휴정 원림)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주변 풍경 덕에 그마저도 곱게 느껴진다. 다리 위아래는 묵계계곡이다. 암반을 타고 내려온 계곡물이 다리를 지나 송암폭포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그동안 비가 적었던지 계곡수가 말랐다. 청량한 폭포 소리도 없다. 그래도 묵계(默溪) 아닌가. 소리 대신 적막이 흐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만휴정은 다리 건너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김계행(1431∼1517)이 지은 정자다. 한자로는 ‘晩休亭’이다. ‘늦은 나이에 쉼을 얻은 정자’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김계행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이름을 지은 사연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대과에 급제한 건 마흔아홉 늦은 나이였다. 실제 벼슬살이를 시작한 것도 쉰이 넘어서였고, 벼슬을 내려놓고 안동으로 낙향한 것도 일흔한 살 때였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을 맺었던 셈이다. 만년에야 겨우 쉼을 얻은 그가 정자 이름에 ‘늦을 만(晩)’과 ‘쉴 휴(休)’를 새겨넣은 건 아마 이 때문이지 싶다. 만휴정은 정자라기보다 여염집에 가까워 보인다. 집 전면에 누마루가 있고 양옆으로 구들방을 뒀다. 만휴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문화재’라는 이유로 엉덩이 한쪽 걸칠 수 없게 한 여느 정자들과 다르다. 누마루에 앉으면 주변 풍경이 내게로 수렴된다. 이른바 차경(借景)의 효과다. 주변 풍경을 잠깐이라도 빌려 쓸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풍경의 주인이 바로 나다. 만휴정에서 돌계단을 내려오면 너른 바위가 있다. 다소곳하게 앉은 아낙네의 한복 치마를 닮은 바위 위엔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란 글씨가 암각돼 있다. ‘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란 의미다. 어디 청백뿐일까. 후대의 눈엔 정자와 주변 풍경 모두가 보물로 보인다. 임하 보조댐 바로 위엔 백운정이 있다. 하늘빛 반변천 위에 터를 잡은 정자다. 정자에 앉으면 반변천과 강변의 솔숲, 그 너머의 내앞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중환이 ‘택리지’에 썼다는 ‘완사명월형국’(浣紗明月形局), 그러니까 ‘말간 비단 사이로 밝은 달이 비치는 형국’이라는 뜻의 명당 풍경이 바로 이 모습이다. 전서체의 현판도 독특하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모양새다.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의 라이벌이었던 미수 허목(1595~1682)이 말년인 90세 가까이에 쓴 글씨로 추정된다. 반변천 너머로는 초승달처럼 굽은 솔숲이 펼쳐져 있다. 내앞마을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비보림이다. 솔숲과 백운정 등은 명승(제26호)으로 지정돼 있다.체화정은 1761년 만포 이민적이 세운 정자다. 독특한 형태의 창호 등 18세기 조선 목조건축의 수준을 잘 드러내고 있고, 연못과 인공섬을 꾸미는 등 조경사적 가치도 높아 지난해 말 보물 제2051호로 지정됐다. 체화정 앞 연못은 사각형(방형)이다. 그 안에 원형 섬을 세 개 조성했다. 이는 옛 별서정원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선사상과 음양설, 천원지방설 등이 구현된 것으로 보인다. 8월쯤 정자 앞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피면 한결 빼어난 자태를 선사할 듯하다.●둘이 또 같이 ‘광풍정·제월대’… 독립의 결기 품은 ‘임청각’ 서후면 금계마을에는 광풍정이 있다. 정자 주변으로 농가들이 들어차 옛 풍경을 가늠할 수 없는 게 다소 아쉽다. 광풍정은 바로 뒤편의 암반에 지은 제월대와 ‘한 세트’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은 ‘비 온 뒤의 바람과 달’이란 뜻으로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일컫는다. 저 유명한 전남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제월당과 같은 공간 구성이다. 하지만 화려하게 느껴질 만큼 잘 보존된 소쇄원에 견줘 광풍정은 어딘가 안쓰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찾아가기도,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사람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집합’을 꺼리는 세태에 걸맞은 장소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겠다. 여정의 끝은 안동댐 초입의 임청각이다. 뙤약볕을 피할 공간은 부족하지만 선조들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동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에 무장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석주 이상룡(1858~1932)의 본가다. 이 집에서 항일 독립투사 9명이 배출됐다. 일제는 임청각의 정기를 꺾기 위해 집을 관통하는 철로를 놓았다. 이 탓에 임청각은 원형을 잃고 지금까지 반 토막 난 모습으로 서 있어야 했다. 안타까운 문화재는 또 있다. 임청각 옆의 법흥사칠층전탑(국보 제16호)이다. 통일신라 때 지어진 벽돌탑이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높은 전탑이지만 바로 옆으로 철도가 지나면서 계속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다. 임청각 복원 계획이 완료되는 시점까지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문화재 당국의 판단일 테지만 장삼이사의 눈엔 이러다 ‘피사의 사탑’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여기서 귀띔 하나. 임청각 인근에 비밀의 숲이 있다. 낙강물길공원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인증샷을 찍고 돌아서는 월영교에서 안동댐 방향으로 한참 더 들어가야 나온다. 그리 넓지는 않아도 메타세쿼이아와 연못, 작은 분수대 등이 어우러져 잘 조경된 정원을 보는 듯하다. 낙강물길공원은 안동 시민들의 숨겨진 쉼터다. 나무 사이로 평상을 놓아 누구나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게 했다.글 사진 안동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백운정은 임하 보조댐 위로 난 길을 건너야 갈 수 있다. 통행제한 구역이지만 관광객에 한해 문을 열어 준다. →한우물회비빔밥은 소고기 육회를 물회처럼 먹는 독특한 먹거리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해 여름에 먹기 좋다. 안동 시내 뭉치중앙점에서 맛볼 수 있다. 안동댐 인근엔 안동 명물인 간고등어, 헛제삿밥 등을 차려 내는 집들이 많다.
  • “나랏돈으로 생색”… 전국 ‘전두환 흔적’ 지우기

    “나랏돈으로 생색”… 전국 ‘전두환 흔적’ 지우기

    합천, 아호 딴 일해공원 명칭 변경 검토 대전현충원 현판도 안중근 글씨로 대체전두환 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도내 교육시설 600곳을 전수조사해 초·중·고 7개교에 남은 전두환 관련 건물 준공 표지석을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나랏돈으로 건립된 건물에 마치 개인 돈으로 지은 것처럼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표지석엔 ‘이 건물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하사금으로 건립한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앞서 도는 5·18민주화운동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시설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동상과 이름이 붙여진 산책로, 기록화가 철거 대상이다. 앞서 전날 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합천군도 ‘적폐 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의 요구에 따라 전 전 대통령 아호를 붙인 일해공원의 이름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단체는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가 변했음에도 일해공원 명칭을 유지하는 것은 합천 이미지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며 변경을 요청했다. 제주도는 지난달 도청 민원실 앞 정원에 설치돼 있던 전 전 대통령 기념식수 표지석을 제거했다. 1980년 11월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해 비자나무를 식재하며 설치한 것이다. 정부 기관도 동참하고 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지난 8일 대전현충원 현판과 헌시비를 안중근 글씨체로 바꾼다고 밝혔다. 대전현충원 현판과 헌시비는 1985년 준공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로 만들어진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지워도 ‘흔적’이 아직 많다. 합천에 있는 전 전 대통령 생가는 합천군이 1983년 본채와 곳간, 헛간 등 건물 4동을 복원해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초기 건립비와 관리비로 지금까지 수억원의 세금이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흥륜사 ‘정토원’ 현판, 전남 장성군 상무대 법당의 ‘전두환 범종’ 등도 있다. 일각에서는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동상의 경우 존치하고 과오를 함께 알려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2@seoul.co.kr
  • [사설] 정부는 전단 대책 내놓고 북한은 연락채널 복원해야

    북한이 어제 정오부터 청와대 핫라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군 통신선 등 남북 간 통신채널을 모두 차단하고 폐기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를 내고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분야합의 파기를 거론했다. 꼭 닷새가 지나 통신채널의 폐기를 강행해 2년 만에 남북 불통시대가 됐다. 남북연락사무소는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전후로 대화가 끊기긴 했지만 상시 남북 소통체제를 열었던 한반도 평화·협력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런 사무소의 연락채널 폐기는 사무소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남북 간 연락수단의 폐기는 ‘김여정 담화’가 엄포가 아닌 행동을 동반한다는 엄중한 사실을 확인해 줬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향후 대남 업무를 남측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적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시설 철거를 통보한 바 있다. 북한의 다음 조치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개성공단의 완전철거를 공표한 뒤, “적은 역시 적이다”라는 인식의 귀결로 ‘앞으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결의인 군사합의마저 파기할 가능성이 크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한국전쟁 70주년인 오는 25일을 전후해 탈북자 및 보수단체가 계획 중인 대북 전단 100만장 살포다. 통일부는 김여정 담화 직후 전단 살포 방지법 제정을 예고했다. 국회가 공전 중이고 야당이 전단살포를 막는 데 부정적이라 6월 25일 이전에 법이 제정돼 곧바로 시행될 수 없다. 북한은 남한의 민주적인 법 제정의 맹점을 알면서도 남한을 압박하고 있는데 조건이 되면 연락 채널을 신속히 복원해야 한다. 정부가 전단 살포에 대해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2014년 10월 연천 총격 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탈북자 단체가 연천에서 전단이 든 풍선을 날려 보내자 총격을 가하고 그 총알을 남측으로 넘기는 도발을 했다. 지금도 접경지 주민과 단체장들은 주민의 안전을 위해 살포를 막아 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경찰 등 행정력을 동원해 전단 살포를 저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단 살포를 막은 사례는 적지 않다. 북한이 보이는 일련의 언설과 조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는 ‘최고 존엄’ 모욕에 대한 “죗값 계산”을 넘어서 남북·북미 관계의 재구성을 위한 큰 그림의 행보일 수 있다. 정부는 크고 작은 도발에 대비한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에 ‘중대 제안’이라 할 수 있는 대북 메시지를 준비했으면 한다.
  • 예술가 손끝서 과학자 손길로… 아픈 곳 다듬는 수리수리 미술

    예술가 손끝서 과학자 손길로… 아픈 곳 다듬는 수리수리 미술

    미술 작품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태어나지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건 과학자의 손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충격에 의한 물리적 파손이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인 노화 현상이든 상처나 질병 없는 작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미술품 의사’의 존재 역시 필연적이다. 미술계 전문 용어로 ‘보존과학자’(콘서베이터)가 그들이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인사동 스캔들’ 등 대중 매체에서 보존과학자가 매력적인 직업으로 등장한 적은 있으나 미술 전공자나 관계자가 아닌 일반 관람객에게 여전히 보존과학은 흥미롭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공을 빛낸다는 점에서 무대로 치면 백스테이지에 해당하는 미술관 보존과학실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보존과학자 C의 하루’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보존과학의 내막을 속속들이 관객에게 펼쳐보인다는 측면에서 얼핏 연극무대와도 닮았다. 미술품 수장과 보존·복원에 특화된 청주관의 성격을 십분 살린 영리한 기획이다. 전시는 보존과학자 C의 일상과 고민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C는 콘서베이터(conservator), 청주(Cheongju), 3인칭 대명사 ‘씨’를 두루 아우르는 약칭이다. ‘C의 도구’는 보존과학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수백 종류의 안료와 현미경 등 광학기기, 분석자료를 다양하게 배치해 보존과학실의 풍경을 재현했다.전시장 한쪽 벽에 걸린 오지호 작가의 1927년 작품 ‘풍경’ 실물과 이 그림을 자외선, 적외선, X선으로 각각 촬영한 세 장의 사진은 마치 숨은 진실을 파헤치는 탐정 같은 보존과학의 묘미를 선사한다. 원본은 물론 자외선, 적외선 촬영에서 보이지 않던 여인 전신상 밑그림이 X선 촬영에선 마술처럼 뚜렷이 드러난다. ‘시간을 쌓는 C’에선 소장품 실물과 복원 과정을 담은 기록 영상을 함께 전시해 보존과학의 이해를 돕는다. 이갑경 작가의 ‘격자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1937)은 두 번의 대수술을 거쳤다. 캔버스 천이 찢어지고 물감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는 등 중병 상태가 확인돼 1989년 집중 치료가 이뤄졌다. 이후 2011년 보존처리에 사용된 재료가 들뜨거나 변색된 것이 관찰돼 2014년 재보존처리했다. 오랜 야외전시로 표면 변색이 심했던 니키 드생팔의 조각 ‘검은 나나(라라)’를 복원하기 위해 니키 드생팔 재단 측과 보존처리 방향을 협의하는 과정은 현대미술품 보존처리의 원본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미를 숙고하게 한다.어디까지가 작품의 원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일까. 보존과학자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과제다. ‘C의 고민’은 바로 이 어려운 질문 앞에 선 보존과학자의 실존적 고뇌를 우종덕 작가의 설치 영상 ‘The More the better’(다다익선)로 풀어낸다. 단종된 브라운관 TV 부품 문제로 가동을 중단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 보존처리에 관한 3가지 의견을 배우 한 명이 3개 채널에서 각기 다르게 개진하는 영상은 보존과학자의 치열한 내적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종덕 작가 외에 류한길, 김지수, 정정호, 주재범, 제로랩이 소리, 냄새, 도구 등을 주제로 보존과학의 다양한 면모를 해석한 신작을 출품해 자칫 실험실처럼 딱딱할 수 있는 전시가 한층 풍부해졌다.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다. 10월 4일까지. 청주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평화프로세스 상징→남북 단절 신호탄… ‘핫라인’이 최후 보루 될 듯

    평화프로세스 상징→남북 단절 신호탄… ‘핫라인’이 최후 보루 될 듯

    북한이 9일 폐기를 선언한 3개 남북 통신선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결실이자 남북 소통의 기본 토대였다. 이 통신선들의 단절은 향후 전개될 남북 관계 단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2018년 1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로 탄생한 공동연락사무소는 과거 개성공단 내 남북교류협력협의회 사무소로 사용하던 4층 건물에 마련됐다. 365일 대면으로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봄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비핵화 협상 결렬 직후 북측이 철수했다가 사흘 후 복귀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오전 공동연락사무소 통신 불통은 통신선 차단의 신호탄이었다. 남북 군사당국을 잇는 동·서해 군 통신선도 이날 끊겼다. 보수정권 시절 단절됐다가 정상화된 지 2년 만에 다시 불통 상태가 됐다. 군 통신선은 2018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복구됐다. 군 통신선 단절로 군사적 긴장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잇는 직통전화도 개통 2년 만에 끊어졌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2018년 4월 20일 개통 이후 실제로 통화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직통전화 존재 자제가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징이었다.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두 정상의 신뢰만큼은 변함없다는 점을 청와대가 강조했던 터라 단순한 통신선 단절을 넘어 정상 간 인간적 관계 단절을 상징한다. 다만 북한은 이날 국가정보원과 노동당 통일전선부 사이의 핫라인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아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연결된 이 핫라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단절됐다. 이후 2018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 파견을 계기로 복원됐다. 북한은 이 핫라인에도 호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연락채널 모두 끊어버린 北… 2년 평화 찢고 南을 적으로

    연락채널 모두 끊어버린 北… 2년 평화 찢고 南을 적으로

    청와대·노동당사 핫라인도 즉각 폐기 김여정 “대남 업무는 이제 대적 사업” 靑 당혹감… 통일부 “평화 위해 노력”2018년 4·27 판문점선언의 결실인 남북 정상 핫라인과 군 통신선, 남북연락사무소 통신선 등이 9일 일제히 끊기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대 기로에 섰다. 북측은 대남 업무를, 남측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적 사업’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비난한 담화문을 낸 지 단 5일 만에 사실상 남북 관계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은 낮 12시부터 연락사무소 통신선, 동·서해 군 통신선, 통신시험연락선(기계실 간 시험 통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핫라인을 완전 차단·폐기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전날 대남 사업 부서들이 참여하는 사업총화회의가 열렸으며 김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남 사업을 철저히 대적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을 심의했다고 전했다. 오전 9시 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 군 통신선을 통한 우리측 개시 통화에 북측의 응답은 없었다. 양측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핫라인) 전화와 판문점 연락 채널에도 응하지 않았다. 전날에는 공동연락사무소 정기 통화가 한때 불통이었지만, 군 통신선과 함정 간 통신은 정상적으로 가동됐었다. 청와대와 관계 부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했다. 공식 논평을 삼간 채 말을 아꼈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면서 “정부는 남북 합의를 준수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경색 국면의 첫 단계로 연락 기능 차단에 나섰다. 2016년 남측이 개성공단 운영을 중단하자 통신선 차단으로 대응했고, 2018년 1월에야 복원됐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 제재 발표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5·24 조치 발표 시기 등 여섯 차례 통신선이 차단됐다가 재개된 바 있다. 북한은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 공간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 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 행동”이라며 추가 행동을 시사해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앞서 김 제1부부장은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했다. 특히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의 획기적 조치였던 만큼 이 단계에 이른다면 남북 관계는 ‘한반도의 봄’ 이전으로 퇴행하게 된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남북통신 단절 속 유엔사-북한군 직통전화는 정상 가동

    남북통신 단절 속 유엔사-북한군 직통전화는 정상 가동

    북한이 9일 남북 당국 간 모든 통신 연락수단을 중단한 가운데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간 직통전화는 정상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사 등에 따르면 유엔사와 북한군은 판문점에 설치된 직통전화로 이날 일상적인 통신 점검 등을 마쳤다. 이 직통전화는 판문점 남측 유엔사 일직 장교 사무실과 북측 판문각에 각각 설치되어 유엔사와 북한군을 연결한다. 그러나 북한이 유엔사와의 직통전화를 앞으로 계속해서 정상적으로 가동할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유엔사 측에서도 하루 이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2013년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유엔사와의 직통전화를 일방적으로 단절한 바 있다. 이후 2018년 7월 남북 및 북미 간 긴장 완화 분위기 속에 약 5년 만에 복원됐다. 일각에서는 정전협정이 여전히 구속력을 갖고 있어 정전협정 유지 관리 차원에서 유엔사-북한군 간 직통전화는 유지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유엔사와 북한군 간의 직통전화는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옛날 전화기’ 형태다. 회색 버튼에 숫자가 1~0까지 있으며 숫자 위에는 알파벳이 적혀 있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이 전화기로 북한군과 일일 2차례 통신 점검 등의 통화를 한다. 유엔사는 직통전화 가동이 중단됐을 때 북한에 통지할 것이 있으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분계선(MDL) 앞에서 메가폰으로 알렸다. 한편 북한은 이날 오전과 오후 동·서해지구 남북 군 통신선의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양측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핫라인)의 일상적 점검 차원의 교신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2018년 군 통신선과 함정 간 핫라인 복구 이후 정기적인 전화에 북측이 응답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군사당국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이용해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4시 등 두 차례 정기적인 통화를 해 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창녕 비화가야 고분군, 발굴 53년만에 보고서 간행

    창녕 비화가야 고분군, 발굴 53년만에 보고서 간행

    비화가야 중심 고분군인 경남 ‘창녕 계성 고분군 5호분’ 발굴보고서가 발굴 53년만에 발간됐다. 경남도와 창녕군은 ‘창녕 계성 고분군 5호분’ 정식발굴보고서를 최근 간행했다고 9일 밝혔다.‘창녕 계성 고분군’은 비화가야 중심고분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2월 국가사적 제547호로 지정됐다. 1967년 발굴된 5호분은 해방이후 우리 손으로 발굴한 최초의 가야시대 고총고분(高塚古墳·높고 큰 봉분을 가진 대형 무덤)임에도 일부 유물만 학술논문에 소개됐을 뿐 정식 발굴보고서는 간행되지 않았다. 이때문에 전문연구자들 조차도 당시 발굴상황과 학술적 성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다. 발굴 이후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발굴 당시 야장기록, 도면, 사진 등 각종 발굴 자료와 출토유물은 국립 연구소와 박물관 등에 나누어 보관돼 있다. 경남도는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와 민선7기 경남도정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의 하나로 지난해부터 ‘가야유적 미발간 발굴보고서 간행사업’을 추진해 그 첫 결과물로 ‘창녕 계성 고분군 5호분 발굴보고서를 펴냈다. 발굴보고서 발간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맡았다.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는 이번 보고서 간행을 위해 관계기관 협조를 받아 13개월여 동안 발굴자료 수집·분석, 유물정리, 실측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작업을 거쳐 5호분 발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기록과 사진 등을 담은 2권 763쪽 분량의 발굴보고서를 간행했다. 발굴보고서 간행 책임자인 고민정 센터장은 “보고서에는 “금제귀걸이, 청동함을 비롯한 유물 250여 점에 대한 상세한 자료와 특별논고, 원색도판 등이 실려 있어 비화가야 문화 연구에 중요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는 과거 발굴된 중요한 가야유적 가운데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보고서가 간행되지 못한 채 사장돼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해당 유적 소재 지자체와 발굴기관이 협업으로 ‘가야유적 미발간 발굴보고서 간행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진회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장은 “‘가야유적 미발간 발굴보고서 간행사업’은 민선 7기 경남도정 가야사 연구복원의 대표적인 학술성과 가운데 하나로 적은 예산으로도 지역의 가야사를 규명하고 학술·보존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는 ‘창녕 계성 고분군’ 이외에도 ‘김해 양동리 고분군(1995년 발굴)’ 발굴보고서도 25년 만에 간행했다. ‘창원 도계동 고분군(1986년 발굴)과 김해 두곡유적(1997~1998년 발굴), 산청 옥산리 유적(1996~1997년 발굴), 함양 백천리 고분군(1980년 발굴)’ 등 경남지역 가야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발굴보고서 4건도 간행 작업을 하고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한반도 평화 이끌었던 남북 통신선…끝내 차단 위기 맞나

    한반도 평화 이끌었던 남북 통신선…끝내 차단 위기 맞나

    북한이 9일 남북을 연결하는 3개의 통신선을 모두 차단한다고 밝히면서 남북 간 소통 창구가 완전히 봉쇄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동안 통신선이 한반도 평화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악화된 남북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날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들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포함해 모든 남북 간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 및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8일부터 연락사무소 통화를 받지 않고 있다. 2018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로 탄생한 연락사무소는 과거 개성공단 내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로 쓰이던 4층 건물에 마련됐다. 남북 간 협상과 경제협력 등에 대해 365일 항시 대면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결렬되고, 그 영향으로 남북관계도 정체기를 겪으면서 연락사무소도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3월 22일에는 북측이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만 통보한 뒤 철수하고 사흘 뒤 복귀하기도 했다. 지난 1월 30일 코로나19 여파로 인력이 철수한 이후로는 매일 오전·오후 정기 통화로만 교신했다. 청와대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잇는 직통전화도 2년 만에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2018년 4월 20일 개통 이후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통화가 이뤄진 적이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럼에도 정상 간 직통전화의 존재 자제가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징이자 남북 경색국면에서도 두 정상의 신뢰만큼은 변함없다는 점을 청와대가 강조했던 터라 단순히 남북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마저 단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8년 6월 핫라인 설치 당시 청와대는 여민관 3층 문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 전화기가 놓여졌지만 관저와 본관 집무실 등 대통령의 업무공간에서 모두 연결되도록 조치됐다고 설명했다. 설치 완료 직후에는 송인배 당시 제1부속비서관과 북측 담당자가 4분 19초 동안 시험통화를 하기도 했다.남북 군사당국을 잇는 동·서해 군 통신선도 이날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장성급군사회담 합의로 복구됐다. 2018년 7월 서해지구를 비롯해 8월 동해지구까지 차례대로 정상화됐다. 동해지구의 경우 2010년 11월 산불로 완전히 소실된 이후 8년여만, 서해지구는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함께 단절된 이후 2년여만이었다. 그동안 군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헬기를 투입하기 전 통신선을 이용해 북한에 출입을 통보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이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군 통신선이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북한이 서해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발사하고, 지난 3월 남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하며 군사합의를 위반했을 당시 군은 통신선을 이용해 항의했지만 북한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남북 군 통신망이 완전히 끊어진다면 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날 북한이 차단 대상으로 언급한 연락선 중 국정원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사이의 핫라인은 없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연결된 핫라인은 노무현 정부까지 유지됐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강경 대북정책으로 단절됐다. 이후 2018년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파견하는 것을 계기로 복원됐다. 3개 통신선이 중단될 경우 핫라인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핫라인이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기능이 살아있어도 북한이 호응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요즘 과학 따라잡기] 미세먼지 좇는 라이다/백성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최근 인도의 어느 샛강에 홍학이 날아들고, 미국 금문교에는 코요테가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대기가 맑아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제한 조치와 경제활동 둔화로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줄어든 덕이라고 한다. 인류가 멈춘 사이 자연이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그 영향은 사라질 것이고, 인류는 다시 환경오염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한국은 종종 공공기관 차량 2부제를 실시할 만큼 미세먼지가 심하다. 그 미세먼지에는 국내에서 발생한 것뿐 아니라 중국이나 북한에서 넘어오는 것도 상당량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일상에서 접하는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대기 중 미세먼지 흐름을 상시 측정, 분석해야 한다. 높은 고도에 있는 대기 중 미세먼지는 라이다 장치로 측정할 수 있다. 라이다는 레이저 빛을 보내 멀리 떨어진 물질의 특성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세계기상기구(WMO)의 ‘글로벌 대기관측 라이다 네트워크’나 한국 기상청이 운영하고 있는 ‘한반도 에어로졸 라이다 관측 네트워크’ 등은 국지적인 라이다 측정 정보를 모아 넓은 영역에서 대기의 질과 흐름을 측정할 수 있다. 라이다 장치는 일상에서도 사용한다.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의 대기오염 스캐닝 라이다 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레이저라고 하면 광통신이나 무기, 의료기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은 환경 감시에서도 톡톡히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 신라의 랜드마크… 텅 빈 폐허, 꽉 찬 위용

    신라의 랜드마크… 텅 빈 폐허, 꽉 찬 위용

    삼국시대 국력이 가장 약했던 신라인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 황룡사 장육존상과 진평왕의 옥대 그리고 황룡사 9층탑이니, 두 가지나 가진 황룡사야말로 국보 중 국보였다. 경주의 황룡사는 진흥왕이 시작해 선덕여왕까지 90여년 동안 건설한 신라 최대의 국가적 사찰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세 나라가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전란의 시대였다.●황룡사의 정치사 “553년 월성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게 했는데 그곳에 황룡이 나타났다. (진흥)왕이 기이하게 여겨 계획을 바꾸어 절로 만들고 황룡사라 했다.” 사실만을 다루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후일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울 때도 용 9마리가 방해했다니 용은 과연 누구인가. 용의 출현을 기존 귀족들의 반발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귀족들의 연합체로 출발한 세 나라에서 왕권이 귀족권을 제압해 가는 과정이 바로 고대국가 형성 역사였다. 불교는 왕권 강화를 위한 강력한 문화적, 사상적 수단이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왕실은 4세기에 불교를 수입해 왕권 강화와 고대국가 성립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반면 신라는 150여년 늦은 527년 법흥왕 대에 불교를 공인했다. 여전히 귀족의 세력이 강했고 왕권 확립은 더뎠다. 법흥왕의 뒤를 이은 24대 진흥왕(534~576·재위 540~576)은 신라의 기틀을 다졌다. 543년 한강 유역에 진출하고 이듬해 국가의 운명을 건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동시에 대내적 왕권 강화를 위해 새 왕궁을 건설하려다, 여전히 유력한 귀족들의 반발에 국찰 건설로 방향을 틀었다. 574년 철 5만 7000근으로 황룡사 장육존상을 주조하고 금 3만푼으로 도금했다. 800여년 전 인도의 아소카 대왕이 이 재료들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라는 전설 같은 여론도 조성했다. 진흥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전륜성왕이 됐고 황룡사는 왕권에 신성함까지 더해주는 강력한 상징이 됐다.26대 진평왕은 아예 “왕이 곧 부처”라는 신앙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신은 석가의 부친이고 왕비는 생모인 마야부인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부처가 될 왕자가 없어 덕만공주를 후계로 삼았으니, 최초의 여왕인 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이다. 재위 16년간은 불안과 위기의 시간이었다. 여왕은 칠숙의 난 직후에 즉위해 상대등 비담의 난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 대야성 전투 때 백제에 패해 40여개 성을 잃었고 당나라 편을 들어 3만 대군을 고구려에 출병했으나 큰 손실로 민심을 잃었다. 당대 영웅인 고구려 연개소문이나 당 태종은 도움 요청을 “여자가 왕이라서…” 하며 국제적으로 무시했다. 흔들리는 왕권을 지켜준 것은 김춘추의 정치력과 김유신의 군사력, 그리고 자장율사의 종교적 힘이었다. 여왕과 사촌 간인 자장은 불사리를 봉안한 사탑 10여곳을 건설하고 승려 등록제를 시행해 교단을 장악했으며 중국식 관복을 도입해 관료 사회를 조직화했다. 643년 황룡사에 9층탑을 건설하면 주변국들이 여왕을 받들 것이라고 왕실을 설득했다. 그러나 후진국 신라에는 초고층 목조건축을 건설할 능력도 자원도 없었다. 적국인 백제에 비단과 보물을 싸들고 가 도움을 청했다. 그 직전 미륵사 목탑을 완공한 백제는 건축가 아비지와 200여명의 기술자를 파견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라 최고의 랜드마크인 황룡사 9층탑이 탄생했다. ●궁궐에서 사찰로, 폐허로 수십 년간 발굴 조사 결과 가람은 3단계에 걸쳐 발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창건가람 때부터 중금당 좌우로 동서금당을 나란히 세웠다. 3금당 사이에 남북 익랑을 설치해 3개의 마당을 구획했다. 장수왕이 건설한 고구려의 안학궁과 같이 확연한 궁궐 형식이었다. 거의 완공 단계였던 새 왕궁은 사찰로 용도를 바꾸면서 익랑을 철거해 큰 하나의 마당에 3개의 금당만이 나란하게 됐다. 선덕여왕이 9층 목탑을 세워 중건가람을 완성했다. 창건가람은 중금당에 봉안한 장육존상이 중심이었다면, 중건가람은 단연 거대한 9층탑이 중심이 됐다. 신라 말로 추정되는 최종가람은 경루와 종루를 설치하고 남행랑을 연장해 사역을 확대했다. 황룡사는 동서 288m, 남북 281m, 2만 5000여평의 거대한 대지 위에 자리했다. 외곽으로 담장을 두르고 중심 영역에는 회랑을 둘렀다. 남북 중심축 위에 남문, 중문, 9층탑, 중금당, 강당을 일렬로 세웠다. 중금당 좌우로 동서금당을 두었고 동서금당 앞쪽엔 경루와 종루를 세웠다. 회랑 바깥과 외곽 담장 사이에는 승방과 부속 생활시설의 터들이 남아 있다. 황룡사는 1238년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이 불태워 폐허로 남았다. 그러나 폐허의 규모만 봐도 대단했던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중금당은 9×4칸의 몸채에 사방으로 한 칸씩 처마 공간을 덧붙인 특이한 건물이었다. 내부 면적 420평, 2층 내지는 3층의 초대형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장육존상을 봉안했던 큰 대좌석들이 남아 있다. 불상 키가 1장 6척이었다니 5m에 가까웠고 실내 높이는 그 두 배로 추정한다. 동금당은 9×6칸, 서금당은 7×4칸으로 크기가 서로 다르다. 다른 시기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불상 대좌가 없어 확실한 기능도 추정하기 어렵다. 경루와 종루는 각각 5×5칸의 정사각형 건물로, 신라 사찰 특유의 유형이다. 종루에는 754년 제작한 대종이 걸려 있었다. 현존하는 성덕대왕신종의 4배 크기였다고 한다. 몽골군이 이 종을 탈취해 토함산 너머로 운반하다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대종천이라는 하천에서 때때로 종소리가 들린다고 한다.●9층탑, 정치적 상징에서 도시적 상징으로 황룡사 9층탑의 높이는 225자, 건립 당시의 고려 척으로 환산하면 80여m에 달한다. 보통 아파트 27층 높이다. 우리 역사상 존재했던 최고 높이의 목조 건물이었다. 현존하는 중국 잉셴의 불궁사 5층탑은 67m, 일본 최고인 토지 목탑도 55m, 한국 5층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은 23m에 불과하다. 아무리 큰 황룡사라 하지만 사찰 안에 품기에는 높아도 너무 높았다.촌락 연합체였던 사로국이 고대국가 신라로 성장하면서 기존 경주의 도시구조도 재편할 필요가 있었다. 이른바 방리제의 시행이었다. ‘방’이란 바둑판같이 구획한 도시 블록이고 ‘리’란 방 외곽의 자연부락이다. 법흥왕은 흥륜사를 1방의 크기로 창건했고 이를 기준으로 방들을 확대해 나갔다. 진흥왕은 4개의 방을 합쳐 황룡사 터를 조성했고 그 남쪽 변에 50m 폭의 동서간선로를 개설했다. 단순한 국찰의 조성이 아니라 왕권 강화, 불교 진흥, 도시 정비 등 다목적 포석이었다. 선덕여왕은 여기에 더해 9층탑을 세웠다. 자장은 탑을 세우면 9개 나라가 복속할 것이라 유혹했다. 일본, 중국, 오월, 탐라, 백제, 말갈, 거란, 여진, 고구려 등 모든 주변국이었다. 물론 취약한 왕권을 보완할 내부 통합용이자 대외 과시용이었다.9층탑 건립 이후로 신라는 삼한 통일을 이루었고 경주는 유수한 국제도시로 발전했다. 전성기였던 8~9세기에 경주는 17만 8936호, 인구 90만명에 육박했다. 1360방과 55리의 행정구역을 가진 초거대 도시였다. 9층탑은 경주를 에워싸는 4개의 산인 소금강산, 명활산, 남산, 선도산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위치로나 높이로나 명실상부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정치적 상징물로 탄생했지만 도시적 상징, 국가적 상징으로 성장한 것이다.신라인들은 또 하나의 9층탑을 경주 남산 탑골 바위에 새겨 두었다. 가운데 높은 심주, 지붕 꼭대기 상륜부, 각층 처마 끝에 달린 풍경까지 목탑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현재의 경주인들도 사라진 이 탑을 여전히 도시의 상징으로 여긴다. 황룡사가 사라진 지 800여년이 지난 지금, 복원 논쟁이 뜨거운 이유다. 세계 최고의 목탑을 복원한다면 국제적인 명소가 돼 관광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다. 반대 의견도 강하다. 지상 구조를 유추할 물증이 없어 복원 자체가 불가능하며 제자리 복원은 그나마 남은 유적을 파괴하는 행위다. 아직 결론은 없고 연구만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유사 9층탑들이 세워졌다. 기업연수원인 황룡원에 세운 중도타워는 강철제 9층탑이다. 경주엑스포공원의 경주타워는 강철구조물 안에 9층탑 실루엣을 음각으로 파낸 모습이다. 황룡사 9층탑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날 것이다.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강원 석회석광산 복구지역에 멸종위기 야생식물 심는다

    강원 석회석광산 복구지역에 멸종위기 야생식물 심는다

    강원도 강릉시 석회석 광산 복구지역의 생태복원을 위해 멸종위기 야생식물이 식재 된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 한라시멘트와 함께 강릉 석회석 광산 개발 복구지역 생태복원을 위해 인공 증식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개병풍과 날개하늘나리 개체를 분양 받아 심는다고 8일 밝혔다. 석회석 광산지역은 약알칼리성 토질이기 때문에 초본식물 식재는 빠른 활착으로 토사 유출을 막고, 자연 상태의 석회암 지대와 같은 안정적인 생태복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지방환경청은 내년까지 석회암 지대에 서식하는 분홍장구채 등 멸종위기야생식물을 포함한 다양한 식물의 시범 식재와 함께 현지 적응력과 활착 정도에 대한 연구도 할 계획이다. 자병산은 백두대간의 한 축으로, 석회석 광산 채굴로 정상 부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정도로 훼손이 심각한 곳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강원도 석회암 지대에 대한 식물현황을 조사한 결과 한반도 자생식물의 약 30%에 해당하는 1300여 종류의 관속식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강할미꽃과 복사앵도, 자병취 등 60종의 한반도 고유종과 개병풍, 구름병아리난초, 분홍장구채 등 14종의 멸종위기야생식물이 포함돼 있다. 이정석 자연환경과장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관리로 석회석 광산 복구지역이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금자리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프라하 올드타운 다시 굽어보는 성모 마리아, 4세기 굴곡진 역사

    프라하 올드타운 다시 굽어보는 성모 마리아, 4세기 굴곡진 역사

    체코 프라하의 올드타운 광장에 100년도 훨씬 전에 성난 군중들에 의해 파괴됐던 성모 마리아 상이 다시 지상으로부터 15m 높이의 기둥 위에 자리잡아 오가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17세기에 세워진 이 마리안 칼럼(기둥)은 30년 전쟁 막바지 포위 끝에 프라하를 해방시킨 기념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가톨릭의 지배를 상징해 미움을 사기도 했고, 프로테스탄트들의 보헤미아 봉기 실패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숱한 논란을 일으키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고 체코슬라바키아 독립국이 선포된 며칠 뒤 군중들이 넘어뜨렸다. 조각 학자이며 복원가이며 마리안 칼럼 복원재단 회원인 얀 브라드나는 4일(현지시간) 영국BBC 인터뷰를 통해 “이 조각을 원했던 것은 프라하 시민들이었다!”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페르디난드 3세에게 기둥을 세우자고 로비를 한 사람도 그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 도시 사람들은 스웨덴 군대를 불러들여 프라하 봉쇄를 풀어준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어 기둥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프라하 봉쇄는 1618년 보헤미아의 수도에서 시작돼 유럽 대부분을 망가뜨리고 유럽 인구 10명 중 한 명을 죽음으로 내몬 끔찍한 30년 전쟁의 막바지를 장식했다. 저유명한 베스트팔렌 조약이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전쟁 와중에 쫓겨났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빠르게 지배력을 복원하고 싶었는데 마리안 칼럼은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헤미아와 그 너머로 퍼져나갔다.당연히 합스부르크 왕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1918년 이 칼럼과 마리아 상은 몇세기 이어진 지긋지긋한 가톨릭의 지배와 합스부르크의 통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민족주의자들의 전복 대상이 됐다. 그 해 11월 3일 조각은 프란타 사우어가 이끄는 군중들에 의해 끌어내려져 파괴됐다. 사우어는 프라하 외곽 지즈코프의 노동계급들로부터 유명한 작가와 보헤미아 예술가로 대접받았던 인물이다. 사우어는 지즈코프의 펍(선술집)에서 조각에 채찍질을 한 뒤 올드타운 광장으로 질질 끌고 행진을 했다. 이번에 조각 복제품을 만든 페트르 바나는 “사우어는 일종의 가짜 뉴스를 퍼뜨린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 조각을 결코 미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90년 출범한 마리안 칼럼 복원재단은 숱한 걸림돌과 끝없는 법적 다툼 끝에 이날 조각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체코 공화국은 북한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무신론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원 반대 목소리는 무신론자와 프로테스탄트 교회 지도자 양쪽으로부터 나왔다.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광장에서 드잡이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 프라하 시위원회가 중재해 오랜 논쟁을 불식하고 무사히 복원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우어 스스로 죽기 직전에 임종 미사를 집전한 가톨릭 신부에게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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