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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건축 이야기](31) 천도교 발상지 경주 ‘용담정’

    [종교건축 이야기](31) 천도교 발상지 경주 ‘용담정’

    경주시내에서 북동쪽으로 10㎞쯤 떨어진 구미산 자락에 앉은 용담정(경주시 현곡면 가정리).7평 남짓 크기의 아담한 단층 목조 건물이지만 천도교 1세 교조인 수운 최제우(1824∼1864) 대신사(大神師)가 득도해 동학 천도교를 일으킨 천도교의 발상지이자 최고 성지이다. 지금은 교적 교인 10만명에 불과한 군소 종단으로 쇠락했지만 1919년 3·1만세운동이 있었던 무렵엔 교인이 300만명이나 됐을 만큼 번창했던 민족종교 천도교. 그 대표 성지인 용담정엔 역사의 숨결과 민족혼을 느끼려 찾아드는 교인은 물론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은 물론 이 세상 만물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사람을 한울님같이 섬기자.’는 사인여천(事人如天).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동학 천도교는 바로 이 세 가지의 기본 교리를 근본으로 삼는다. 최제우 대신사는 득도 후 원래 ‘무극대도(無極大道)’란 이름으로 동학을 세웠지만 훗날 유림과 관가의 탄압을 피해 살던 중 “내가 동에서 태어나 동에서 도를 받았으니 도인즉 천도(天道)요, 학인즉 동학(東學)이라.”고 천명한 다음부터 동학이란 이름이 널리 통용됐다고 한다. 용담정은 바로 이 ‘무극대도’를 낳은 천도교의 발상지. 지금의 경북 경주 현곡면 가정리의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수운은 19살 때부터 10년간 전국을 떠도는 구도행각 끝에 처가가 있던 울산 유곡동에 은거, 수도에 들었다. 여우가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여시바윗골’이라 불렸던 외진 유곡동에 초가와 초당을 마련해 구도하던 중 을묘년인 1855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한 스님으로부터 기이한 책(天書)을 받고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도와 수련방식을 택한다. 이른바 천도교가 ‘을묘천서’라 부르는 큰 사건으로, 수운은 이때부터 “세상을 떠돌며 도(道)를 구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내 안에서 도를 얻을 것”이라며 구도의 방법을 바꾼 것이다. 국가 발간자료인 ‘비변사담록’과 ‘고종실록’에서 수운이 5∼6년간 울산에 기거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만 ‘을묘천서’와 관련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천서의 흔적 역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천도교단 초기 내부 자료인 ‘수운실록’(1865년)과 ‘도원서기’(1879년)에 내용이 전할 뿐이다.“을묘년 봄잠을 즐기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밖으로부터 주인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중략)…노승을 초당에 오르게 했더니 책을 한 권 내놓고 그 내용을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흘 뒤 선생이 ‘이 책의 내용을 알았다.’고 말하니 그 스님이 ‘부디 책의 내용대로 하옵소서.’라 말하며 떠났다.” 이 천서를 놓고 천주학서인 ‘천주실의’였을 것이란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됐지만 천도교는 10년간 세상을 주유했던 수운이 당시 그 유명한 ‘천주실의’를 보지 못했을 리가 없고 을묘천서를 받은 뒤 인근 내원암과 적멱굴에서 수도한 점을 들어 천주교와는 무관하다며 부인하고 있다. 아무튼 수운은 이 천서를 받고 4년 후 고향인 용담정으로 돌아와 6개월간 수도 끝에 한울님으로부터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심법과 천도교 상징인 영부(靈符), 주문(呪文)을 받아 ‘무극대도’ 즉, 동학을 세웠다. 용담정은 원래 복령이란 스님이 지은 작은 암자였는데 수운 대신사의 할아버지가 암자와 인근 땅 수백평을 사들여 아들, 즉 수운의 아버지인 근암공 최옥에게 학업을 닦게 했다고 한다.30여년의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었다가 최옥이 글공부를 하도록 서사(書社) 네칸을 만들어 용담서사란 이름을 지었다. 용담전 위쪽의 사각정에는 최옥의 문집인 근암집 목판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결국 수운은 울산을 떠나 처자와 함께 이곳에 정착,“도를 깨닫기 전에는 구미산 밖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리라. ”고 맹세한 지 꼭 6개월 만에 이곳에서 무극대도인 천도(天道)를 얻은 것이다. 수운은 1863년 관군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조정에 맞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좌도난정률(左道亂正律)’의 죄목으로 대구 장대에서 순도했는데 그 후 용담정 네칸과 살림집 다섯칸이 모두 헐렸다. 조정의 서슬이 무서워 아무도 용담정을 복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1914년에 가서야 재건작업을 벌여 용담정이란 현판을 붙였다고 한다. 그 후로도 40여년간 인적이 끊겼다가 1960년 천도교 부인회가 창도 백주년기념사업으로 중창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75년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동학에 깊이 관여했던 때문인지 박정희 전대통령은 이 용담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대한민국은 천도교에 큰 빚을 졌다.”는 말을 자주 했던 박 전대통령은 실제로 용담성지를 경주국립공원에 편입시키도록 지시했으며 용담정(龍潭亭)과 용담성지의 정문인 포덕문(布德門), 중문인 성화문(聖化門), 용담수도원의 편액 글을 직접 썼다. 정문 포덕문을 들어서 왼쪽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상을 바라보며 300m쯤 숲길을 관통하면 오른쪽에 수도원과 사무실이 나타난다. 바로 앞 중문 성화문을 넘어 다시 숲길을 오르면 돌다리 용담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오른쪽에 선경(仙境)이라 새겨진 바위틈에 석간수가 흐른다. 수운이 기도할 때 쓰는 청수(淸手)를 받던 곳으로 지금도 교인들이 아주 신성시한다.2005년 영남대 석좌교수에 임명돼 이곳을 찾은 김지하 시인은 “나처럼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감히 용담정에 오를 수 있겠느냐.”며 용담교에 무릎을 꿇은 채 절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용담정 정면에는 수운 영정이 모셔져 있고 양옆에 천도교 상징인 영부가 걸렸다. 수운이 득도할 때 눈에 나타났다는 그 영부이다. 왼쪽 벽면에는, 남아 있는 수운의 유일한 친필인 거북 ‘구(龜)’자가 걸려 있다. 수운은 생전에 후학들의 마음급함을 질타하며 조급해하지 말라는 뜻에서 ‘龜’자를 많이 써주었다고 한다. 이 ‘龜’자 밑 8폭병풍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不知明之所在 遠不求而修我’(밝음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겠거든 멀리서 구하지 말고 나를 닦아라). 한울님과 문답 끝에 득도의 경지에서 남긴 천도교 1세 교조의 일침이라지만 ‘남 아닌 나부터 제대로 보라.’는 수신(修身)의 보편적인 교훈이 아닐까. kimus@seoul.co.kr ■천도교의 발자취 몰락한 양반가에 태어난 수운이 구도행각에 나선 것은 기울어가는 가세와 조선말 불안정한 사회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유교의 폐습에 불만을 가졌고 10년간의 주유천하에 나서 인간과 우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시천주(侍天主)’를 세웠던 것이다. 이 시천주는 2세 교조 해월 최시형에 이르러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시천(人是天)으로 발전하며 3세 교조 의암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으로 이어져 천도교의 종지가 되었다.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센세이션을 몰고 왔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조정에서 결국 ‘서학(西學)’‘이단(異端)’이라 하여 탄압의 칼을 뽑았다.1세 교조 수운은 포교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대구 장대에서 참형으로 순도했고 도통을 이어받은 2세 교조 최시형도 지하포교에 나서 삼남지방에 형성된 교세에 힘입어 동학혁명을 주도하다 원주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최시형의 수제자였던 3세 교조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했는데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출감한 뒤 곧바로 사망했다. 결국 천도교의 1·2·3세 교조는 모두 순도한 셈이다. 천도교의 종교행위는 수행과 신앙을 겸하는데 그 방법으로 주문(呪文), 청수(淸水), 시일(侍日), 성미(誠米), 기도(祈禱) 등 오관(五款)을 택하고 있다. 주문은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로 수련할 때 반복해서 외우며 청수는 매일 오후 9시의 기도식을 비롯해 모든 의식에 쓰인다. 시일은 일요일 오전 11시에 봉행하는 집회를 말하며 성미는 매일 밥을 지을 때 식구마다 한 숟가락씩 정성으로 떠놓은 쌀을 모았다가 한달에 한번씩 교회에 헌납한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중앙총부를 중심으로 전국에 130여개의 교구와 전교실이 있으며 현재 김동환 교령이 교단을 이끌고 있다.
  • “돈되면 뭣이든”… 농어촌 담 큰 도둑 기승

    “돈되면 뭣이든”… 농어촌 담 큰 도둑 기승

    농·어촌 지역을 노리는 도둑이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의 ‘손’이 커지고, 대상도 다양해졌다. 집안에 나뒹구는 고물을 훔치던 ‘호구지책 절도’도 있지만 잘 먹고 잘 쓰자는 ‘기업형 절도’가 늘었다. 비닐하우스 파이프 등 농기자재는 기본이고 전봇대 구리전선 등 돈이 되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훔쳐가고 있다. 사회 흐름을 탄 절도도 증가 추세다. 맷돌, 돌절구 등 골동품이 정원용으로 인기를 끌자 이를 가져가는 도둑이 자주 잡힌다. 또 집 근처를 노리는 ‘토착형 절도’보다는 차량을 이용, 전국을 무대로 뛰는 ‘여행성 절도’도 많아졌다. 날로 지능화하고 대담해지는 수법에 경찰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국 무대 기업형 도둑 지난 4일 이모(35)씨 등 용감한 형제절도단 5인조가 붙잡혀 이목을 끌었다. 이씨는 교도소 복역 중 “전선만 잘 끊으면 돈이 된다.”는 귀동냥을 듣고 출소 후 실행에 옮겼다. 친동생과 사촌동생을 꼬드겨 시골 농로에 세워진 농업용 전신주만 골라냈다. 야음을 틈타 올라가 두꺼운 장갑을 끼고 대형 절단기로 전선을 잘라냈다. 이들이 전남·북, 경남 등 전국을 무대로 42차례에 걸쳐 잘라낸 구리전선만 25t. 시가로 10억원대이지만 고물상에 1억여원에 넘겼다. 하지만 지난 16일 이들을 흉내낸 경기 고양시의 박모(56)씨는 빗속에 전신주에 올라가 무리하게 전선을 끊으려다 감전돼 전치 8주의 3도 화상을 입고 철창 신세가 됐다. ●도로 표지판 소재마저 바꾼다 절도범들이 날뛰면서 다리와 터널 표지판이 청동에서 돌로 바뀌고 있다. 최근 전주도로관리사업소는 잇따라 육교와 터널 등에 설치된 동판 표지판이 분실되자 대리석으로 대체했다. 고물상인 임모(50·전주시 팔복동)씨는 익산시 왕궁면 쌍제리 왕궁교에서 교량 제원을 세긴 황동 재질 명판 2개를 훔쳤다. 명판 1개 무게는 7㎏(원가 4만원)이다. 이런 수법으로 지난달까지 200개의 다리와 육교, 터널에서 동판 350개(시가 3500만원)를 훔쳐 ㎏에 3500원 정도의 헐값에 고물상에 팔았다. 임씨는 미처 팔지 못한 동판 63개를 회수해 제자리에 다시 붙였다. 동판은 실리콘만으로 부착돼 있어 드라이버 1개만으로 쉽게 떼낼 수 있었다. ●정원 장식용 맷돌·돌절구도 타깃 지난달 21일 정모(58)씨 등 2명은 트럭을 타고 인천 강화군 일대를 돌면서 12차례에 걸쳐 맷돌, 돌절구, 항아리 등 골동품을 훔쳐냈다. 맷돌은 개당 2만원, 절구는 5만∼10만원을 받았다. 절구는 최근 정원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쇼핑몰에서 10만∼20만원에 거래된다. 이들의 범행은 고물상에 절구가 80여개나 있는 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에 들통났다. 지난 4일 김모(55·전남 여수시 소라면 하건마을)씨는 스테인리스로 된 밥그릇과 냄비 10여개, 수저와 젓가락 20여개, 국자 3개를 도둑맞았다. 또 지난달 12일 부산에서는 신모(55)씨가 빈 상가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상가 간판(시가 35만원)을 떼갔다. 제주도에 사는 박모(36)씨 부부는 트럭을 타고 밤늦게 폐휴지를 줍는 척하며 시내 소화전 방수구 뚜껑 30여개를 뜯어갔다. ●지능화와 경찰 순찰 한계 전남 해남경찰서 이광훈(40) 경장은 “절도범들이 고철이나 농·수·축산물 등을 훔친 뒤에도 이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은 넓은 농·어촌 관할구역 때문에 순찰에 한계가 있어 마을회관 홍보방송 정도만 할 뿐이다. 나주경찰서 관계자는 “나주로 드나드는 국도와 지방도 주요 길목에 폐쇄회로를 설치했으나 지능범들은 이면도로로만 다닌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사회플러스] 연쇄살인범 2명 사형 확정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15일 춘천·광주 등지에서 부녀자 3명을 살해하는 등 연쇄 살인과 강·절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모(40)씨와 조모(30)씨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사형 확정판결을 받아 복역 중인 사형수는 모두 65명으로 늘었다. 법무부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드디어 루비콘강을 건넜다. 오는 12월19일 대선으로 가는 샛길은 없다. 사활을 건 승부만 있을 뿐이다.’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11일 대선 경선 후보로 등록,70일간의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제 현행 선거법에 따라 후보로 등록하면 다른 정당의 후보로 나서거나 독자 출마가 불가능하다.8월19일 경선에서 명운을 건 외길 승부를 펼쳐야 한다. 원희룡·고진화 의원은 12일, 홍준표 의원은 마감일인 13일 후보 등록을 하고 경선레이스에 공식 가세한다. ■이명박 “지도자 못될만큼 살지 않아” 이 전 시장의 출마 선언문은 박 전 대표와 달랐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딸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자 부담인 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려고 접근한 반면 이 전 시장의 선언문에는 이렇다 할 인간적인 풍모나 체취를 담지 않았다. 이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당 안팎의 도덕적 시비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박하는 데 오히려 초점을 맞췄다.“저는 살면서 실수와 잘못도 있었겠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지 못할 만큼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거의 포기할 뻔했지만 야간인 포항 동지상고에 수석 합격, 돈 한푼 내지 않고 고교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대학 진학의 꿈을 잃지 않아 고려대 상대에 합격했다. 학생운동으로 복역한 전과 때문에 취직이 어렵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편지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건설에 입사해 29세에 이사, 35세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고 이후 최장수 CEO의 역사를 쓰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정치인 이명박’은 만만치 않았다.1995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해 이종찬씨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8년에 다시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 최병렬씨와 경쟁했지만 선거법 재판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2002년 삼수만에 서울시장으로 재기해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체제 개편으로 강력한, 추진력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굳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박근혜 “내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로 살아온 얘기로 출마 선언문을 풀어갔다. 먼저 “철들기 시작할 무렵, 밥상에서 가난한 국민의 모습을 보면서 목이 메어 밥을 넘기지 못하시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시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삶을 대신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10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터졌을 때,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제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면서 “이제 다 쓰러져가는 한나라당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 드렸던 그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소신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일평생 저의 삶을 견인해 온 것은 바로 ‘정직과 신뢰’였다.”면서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에게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자산이자 부담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1952년 군인이던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11살.1974년 피습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79년 10·26 때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 퍼스트 레이디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이때부터 가슴에는 조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들이 깊이 각인됐다고 한다. 지난해 피습을 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내공’을 쌓은 시절이다.“저에겐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다. 저에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고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李 국정운영 방향 “청계천 살렸듯이 경제 살릴것” “청계천을 살려냈듯이 대한민국 경제도 살려내겠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향후 5년간 국정운영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경제 성장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이 나서 국정을 바로 세우고 헌정 질서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는 모든 세력의 지지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선진화세력, 미래지향적 실용주의 세력이 모두 모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나라당뿐 아니라 뉴라이트와 중도·보수 시민세력,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대한민국 선진화 추진회의’(가칭)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계천을 살려냈듯 대한민국 경제도 살리겠다.”며 “‘대한민국747 비전’(7% 경제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주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이 후보는 “중도하차 가능성은 완벽하게 없다.”며 “수질을 좋게 하고 수량을 보존하는 운하를 계속 국내외 전문가와 협의,3만∼4만달러 경제적 효과의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朴 국정운영 방향 “나라 근본 세워서 선진국으로” “나라의 근본부터 바로 세워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을 만들겠습니다.” 박 전 대표는 ‘원칙을 통한 선진한국’을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목표로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께서 못다한 두가지를 꼭 하려 한다.”며 “하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이며, 또 하나는 그 시절 고통을 받았던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것만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철학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또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 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외교강국으로 만들어 치열한 경제경쟁, 국가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처리즘 공약’에 따른 복지예산 감축지적에 대해선 “대처리즘이 경제를 살리고 번영을 구가하는데 지금도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세금 감면과 규제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가 추구한 바와 같지만 제가 복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李 검증 역공 논리 “朴·범여권서 ‘李죽이기’ 대연정” 이 전 시장 측은 검증 공세에 대해 “박 전 대표와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대연정”이라고 역공을 펴고 나섰다. 박 전 대표측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이 ‘여권발(發)’이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다. 이 전 시장은 경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나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놓고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를 하면서 ‘없는 땅’ ‘없는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같은 식구가 할 수 있는 짓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박 전 대표 측에 직격탄을 날렸다. 진수희 캠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음해하려는 일련의 작업들을 여권에서 제조, 유통시키는 역할은 박근혜 캠프 핵심 의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며 “이적 행위를 해서라도 경선에 승리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식 원칙’인가.”라며 거들었다. 이 전 시장 측이 검증 공방에 대해 전에 없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각종 의혹 제기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한때 5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이다, 지난달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부터 지지율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 전 시장과 20% 이상 격차를 벌렸던 박 전 대표와의 격차가 10%대까지 좁혀졌고 일부 조사에서는 한 자릿수대로 바짝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박영선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대표해서 지지율 1위 후보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며 “최근 상황을 보면 범여권과 박 전 대표 진영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朴 검증 역공 논리 “국민 알권리 李측서 본질 호도” 박 전 대표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검증 공방과 관련,“자꾸 공방 정국으로 몰고가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전 시장 측에서 검증공세를 네거티브 전략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실체 없는 얘기를 하면 네거티브가 되겠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국민이 확실히 알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검증 문제는)캠프간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의구심에 대해 국민에게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측이 ‘여권과의 연계 의혹설’을 제기하며 역공을 가한 데 대해 이혜훈 공동대변인인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날 추가적인 의혹 제기는 하지 않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이슈화에 성공했고, 이날 경선 후보 등록을 신호로 여권에서도 파상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면서 일단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분위기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정책토론회와 검증을 통해 역전을 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여론조사에서 미묘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고, 철저한 검증이 이뤄진다면 이 전 시장의 ‘거품’도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측은 ‘6·7월 검증 총공세’를 통해 반전의 발판을 마련, 내달 열리는 후보 검증 청문회까지 승부를 걸겠다는 계획이다. 캠프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외부에서 계속 새로운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검증위가 새롭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李·朴, 경선 등록부터 ‘신경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접수를 둘러싼 이­박 진영의 장외 신경전도 뜨거웠다. 누가 먼저 경선 후보로 등록하느냐에 적잖은 관심이 쏠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한발 앞서 후보로 등록했다. 박 전 대표는 선거대책위 구성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이날 후보 등록 1호를 기록한 뒤 공식 출마 선언을 하는 등 세몰이를 가속화했다. 그러자 지난달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명박 전 시장도 후보 등록 후 기자회견을 갖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전 대표측 유정복 비서실장은 오전 9시에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후보 등록을 했다. 박 전 대표는 30여명의 국회의원과 캠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사 주변에는 아침 일찍부터 박사모 회원과 박 전 대표 지지자 등 2000여명이 모여 박 전 대표를 응원했다. 이 전 시장은 오전 11시에 백성운 캠프 종합행정실장을 통해 후보 등록을 하고 오후 2시에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홍문표·이윤성 의원 등 30여명의 국회의원과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이 전 시장은 ‘출마선언문’을 읽으며 결의를 다졌다.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은 12∼13일 각각 후보 등록을 한 뒤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朴 “아버지 시대 희생자에 죄송”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국민 선언문’에서 ‘과거와의 화해’ 의지를 천명했다. 먼저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은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 시절에 불행을 당한 분들께 사과를 드리는 것은 진심과 충정을 담은 말이다. 진실하게 다가갈 때 마음을 열고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사과했다.“산업화, 민주화 세력이 손을 잡아야 경제도 살리고 선진한국 건설도 이룰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합해서 하나가 되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도 댔다.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에도 사과의 뜻을 내비쳐 왔지만 공개적으로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시한 것은 선친의 부채를 짊어진 국민 대화합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시각에는 “정치하면서 단 한 번도 표를 의식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면서 “국민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일축했다. 열린우리당 유은혜 대변인은 “진심이라면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위선과 이율배반의 전형”이라고 깎아내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감옥서 많이 배우겠다” 재수감 패리스 힐튼 항소 포기

    음주 및 난폭운전 혐의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원으로부터 재수감 판결을 받은 힐튼호텔의 억만장자 상속녀이자 모델 패리스 힐튼이 “수감조치에 항소하지 않으며 언론들이 이라크전 등 다른 이슈로 관심을 돌리기 바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힐튼은 8일(현지시간) 마이클 소여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 판사가 “45일간의 가택연금 대신 교도소로 되돌아가 복역하라.”고 판결한 뒤 변호사를 통해 이처럼 밝혔다.AP통신은 그녀의 또 다른 변호사 스티브 레바인이 그녀의 이런 발언이 진짜라고 확인해 줬다고 10일 보도했다. 힐튼은 약물 및 정신감정을 받고 난 뒤 형기를 채울 감옥이 결정될 예정이다. 수감판결을 받고 시내 중심가의 쌍둥이타워 구치소로 이송될 때 힐튼은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에게 “이건 공정치 못한 판결이야.”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그녀는 “감옥생활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힘든 일”이라면서 “지난 며칠 동안 생각한 결과 감옥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힐튼은 또 “내가 저지른 일로 얼마나 오랫동안 감옥에서 보낼지에 대해 언론매체와 사람들이 쏟는 관심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언론들이 나 말고 다른 중요한 것들, 예컨대 이라크나 세계 다른 곳에서 미국을 위해 복무중인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안락사’ 의사 케보키안 가석방

    ‘죽음의 의사’로 불려온 잭 케보키안 박사가 8년여만에 복역을 마치고 지난 1일(현지시간) 출감했다.130여명의 시한부 환자의 안락사를 도운 혐의로 미국 미시간주 순회지방법원에서 10∼2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나온 터였다. 케보키안 박사는 출감 후 3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늘 출감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일들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나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가석방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이상 안락사를 돕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가석방 조건에는 안락사와 자살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제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패리스 힐튼 “감옥에 가지 않을 것” 생떼

    패리스 힐튼 “감옥에 가지 않을 것” 생떼

    ’악동’ 패리스 힐튼이 “감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힐튼은 45일 징역형이 선고된 후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의 일간지 ‘뉴욕 데일리 뉴스’에 따르면 판결 직후 자신의 저택에 도착한 힐튼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파파라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법정에서 진실을 말했다. 이같은 처사는 불공평하다. 이 판결은 매우 잔인하고 불공정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힐튼의 변호사 하워드 와이츠먼도 이 자리에서 “판결은 번복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힐튼의 어머니 케이시 힐튼 역시 ‘할리우드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 판결은 비참하고 역겹다. 완전히 넌센스다”라고 밝혔다. 이것은 판결 직후 법원을 나설때 모습과 상반돼 더욱 눈길을 끈다. 힐튼은 판결 직후 울먹이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었다. 한편 힐튼의 팬임을 자처한 조슈아 카포네라는 여성이 징역형을 취소해달라는 청원서를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에게 보내 눈길을 끌고 있다. 카포네는 청원서에 “힐튼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희망이다. 그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미모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썼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 청원서를 확인한 힐튼은 이례적으로 즉시 ”나는 조슈아의 그 사랑스러운 말들에 너무 감사한다. 신의 가호가 있길. 사랑하는 패리스가”라는 답글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한국 시간) LA고등법원 마이클 T. 소어 판사는 패리스 힐튼이 집행유예중 무면허 과속운전을 한 혐의로 45일 징역형을 선언했다. 이 판결로 힐튼은 내달 5일부터 LA의 센츄리 지역 교도소(Century Regional Detention Facility)에서 45일간 복역해야 한다. 스포츠서울닷컴 고재완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말썽녀’ 패리스 힐튼 감옥행

    ‘말썽녀’ 패리스 힐튼이 올 여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됐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5일 힐튼 호텔가의 상속녀에게 징역 45일형이 선고됐다고 보도했다. 힐튼은 지난해 9월 음주운전이 적발돼 집행유예 36개월,1500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2월 무면허 상태의 과속 운전이 적발돼 가중처벌을 받게 됐다.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 마이클 소어 판사는 앞서 4일 “힐튼의 수감기간 중 외출, 이감, 일시 귀가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힐튼은 오는 6월5일부터 캘리포니아주 린우드의 여성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그녀가 법정에서 “무면허인 줄 몰랐다.”고 주장하다 뒤늦게 “법을 잘 지키겠다.”고 읍소했지만 실형이 선고됐다고 전했다. 그녀는 “죄송하다.”를 반복하다 눈물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중국 할머니 청소부서 CEO로 변신 화제

    ‘공공화장실 청소부에서 CEO로’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불과 4년여만에 공중 화장실 청소부에서 거대한 과학영농 기업 CEO로 변신,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 기막힌 인생유전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우성밍(吳勝明·여·74)씨.그녀는 50대 초반 경제 범죄 혐의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다가 고희(古稀·70살)가 돼서야 출옥한 뒤 청소부의 밑바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변신했다.   ▲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우성밍씨.하남상보  우씨는 52살때 경제사범으로 복역중 남편은 떠나가고 딸이 자살하는 불행을 겪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중 화장실 청소부로부터 시작해 착실히 돈을 벌어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과수원 농장을 경영하는 CEO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반전이 반복되는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이다.우씨는 22년전인 1985년초까지만 해도 순탄한 생활을 했다.남편과 함께 꾸려가던 농기구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85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때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를 내고 말았다.이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를 복역했다.복역기간중 남편은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정신적 지주였던 16살난 딸도 자살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봤다. 70살이 되던 해인 2003년 출옥한 그녀는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했다.매달 월급은 400위안(약 4만 8000원).비록 수입을 적었지만 우씨는 알뜰살뜰 모았다.그 돈으로 20여년전 회사를 할 때 익힌 사업 수완을 발휘,재산을 늘려나갔다.이를 모두 포도밭에 투자했다. 여기에다 그녀의 인생유전 사연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열정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중국 대륙 전역에서 돈을 투자하기 위해 달려왔다.상하이(上海)에서 온 천(陳)모씨가 50만 위안(약 6000만원),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온 둥(董)모씨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조그마하던 포도밭의 규모는 지금 170무(畝·약 1만 7000㎡)로 급성장했다.이를 계기로 우씨는 양링훙양과웨(楊凌紅陽果業) 과기개발유한공사를 설립,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우씨는 “내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때문”이라며 “복역중 자살한 딸이 양노원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이를 따를 뿐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아동납치 전과 미리 알았더라면…

    실종된 지 40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양지승(9)양은 강제 성추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귀포경찰서는 25일 송모(49)씨에 대해 살인 및 미성년자약취유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송씨가 지난달 16일 학원에서 귀가하던 지승양에게 접근 ‘글을 써 달라.´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 성추행을 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송씨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지승양이 예뻐보여 순간적으로 성추행할 생각을 갖고 유인했다.”면서 “성추행 후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고 묻자 지승양이 ‘알고 있다.’고 대답해 범행이 탄로날 것을 우려 목을 눌러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지승양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경구압박 질식사로 나타났다. 경찰은 지승양의 속옷 등에서 발견된 체액 등을 수거,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송씨는 지승양을 살해 후 다음날 새벽 냄새가 나지 않도록 비닐포대에 이중으로 담아 자신이 살고 있던 가건물 옆 폐 가전제품 더미속에 숨겨놓은 채 경찰의 탐문수사에도 응하는 등 태연하게 생활해 왔다.”고 말했다. 범인 송씨는 동생 가족이 사는 집 한 구석에 가건물을 짓고 살면서 동생가족은 물론 이웃과의 왕래도 없이 혼자 은둔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3세 남아 납치 미수 등 23차례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는 상습사기 등으로 청송감호소에서 4년을 복역한 뒤 2004년 제주도에서 동생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웃 주민들은 송씨가 고물수집을 한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를 정도로 송씨는 이웃과 접촉을 피한 채 은둔생활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송씨의 집 건너편에 사는 박모(44·여)씨는 “가건물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면서 “어린이 납치 전과자가 동네에 살고 있는 줄 사전에 알았더라면 이번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현장검증에서 송씨는 태연하게 지승양을 성추행하고 목졸라 살해하는 범행을 재연, 이를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한 주민은 “길에서 한두번 마주치기도 했던 살인범과 한 동네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경찰의 엉터리 수색 등 부실한 수사에도 비난이 계속됐다. 경찰은 지승양의 시체가 비닐포대에 이중으로 묶인 채 담겨 있어 수색견이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으나 주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주민은 “폐가전제품 쓰레기 더미를 한번도 뒤져보지 않은 채 수색견에만 의존한 수색은 부실수사의 표본”이라며 “경찰 수사관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청소부→CEO’ 70대할머니 기막힌 인생유전!

    ‘청소부→CEO’ 70대할머니 기막힌 인생유전!

    ‘공공화장실 청소부에서 CEO로’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불과 4년여만에 공중 화장실 청소부에서 거대한 과학영농 기업 CEO로 변신,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 기막힌 인생유전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우성밍(吳勝明·여·74)씨.그녀는 50대 초반 경제 범죄 혐의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다가 고희(古稀·70살)가 돼서야 출옥한 뒤 청소부의 밑바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변신했다. 우씨는 52살때 경제사범으로 복역중 남편은 떠나가고 딸이 자살하는 불행을 겪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공중 화장실 청소부로부터 시작해 착실히 돈을 벌어 수만 위안(수억원) 규모의 과수원 농장을 경영하는 CEO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반전이 반복되는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이다.우씨는 22년전인 1985년초까지만 해도 순탄한 생활을 했다.남편과 함께 꾸려가던 농기구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85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제때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를 내고 말았다.이 때문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를 복역했다.복역기간중 남편은 떠나가고 마지막 남은 정신적 지주였던 16살난 딸도 자살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봤다. 70살이 되던 해인 2003년 출옥한 그녀는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했다.매달 월급은 400위안(약 4만 8000원).비록 수입을 적었지만 우씨는 알뜰살뜰 모았다.그 돈으로 20여년전 회사를 할 때 익힌 사업 수완을 발휘,재산을 늘려나갔다.이를 모두 포도밭에 투자했다. 여기에다 그녀의 인생유전 사연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열정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중국 대륙 전역에서 돈을 투자하기 위해 달려왔다.상하이(上海)에서 온 천(陳)모씨가 50만 위안(약 6000만원),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 온 둥(董)모씨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덕분에 조그마하던 포도밭의 규모는 지금 170무(畝·약 1만 7000㎡)로 급성장했다.이를 계기로 우씨는 양링훙양과웨(楊凌紅陽果業) 과기개발유한공사를 설립,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우씨는 “내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때문”이라며 “복역중 자살한 딸이 양노원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써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이를 따를 뿐이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日軍 위안소 설치 지시 네덜란드 판결문 발견”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뒤집는 증거가 네덜란드의 법원 판결문에서 발견됐다고 교도통신이 11일 베를린발로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자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일본인 아오치 와시오(사망)가 2차 세계대전 후 체포돼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증언한 판결문 내용이다. 아오치는 재판에서 점령지의 군정 당국인 군정감부(軍政監部)의 지시를 받고 민간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오치는 지난달 일본 국회도서관의 야스쿠니신사 자료 공개에서 지난 1967년 전사자들과 합사됐던 것으로 드러난 당사자다. 독일에 체류 중인 언론인 가지무라 다이치로가 입수한 전범재판소 판결문은 “아오치는 1943년 6월2일 군정감부로부터 매춘업소를 개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차 지시를 받은 뒤 수용했다.”고 기록, 군이 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했다. 또 아오치는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 중이던 1943년에 ‘사쿠라클럽’이란 위안소를 설치했다고 적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아오치의 애인인 네덜란드 여성은 “헌병을 부르겠다.”며 협박, 소녀를 포함해 네덜란드인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했다. 매춘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관헌에 체포돼 감금당하기도 했다. 아오치는 1946년 10월 네덜란드군이 개설한 임시 군법회의에서 강제 매춘죄로 금고 10년의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숨졌다.hkpark@seoul.co.kr
  • 日 정부가 전범 합사주도 ‘사실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을 포함, 전몰자들의 야스쿠니신사 합사 과정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또 전범의 합사와 관련,‘눈에 띄지 않게’ 보안 유지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지금껏 A급 전범의 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종교기관인 신사 쪽의 독자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군 위안부들을 관리·감독한 위안소 민간 운영자도 함께 둔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같은 사실은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이 전날 국회에 제출한 ‘신편 야스쿠니신사 문제 자료집’을 통해 드러났다. 자료집은 야스쿠니신사의 비공개 자료와 후생성·신사측의 협의 내용 등 모두 808건 1200쪽 분량이다. 자료집에는 일본 후생성과 야스쿠니신사측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긴밀한 협조 아래 이뤄진 합사 과정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지난 1956년 당시 후생성은 전몰자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와 관련,“3년간 완료하도록 협력해 달라.”는 내용의 지침을 만들었다. 이후 후생성 측은 신사를 방문해 협의, 합사 기준을 결정했다. 58년 4월 4차 협의 때에는 후생성이 신사 측에 “전몰자는 B·C급을 개별 심사해 지장이 없는 정도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합사하는 방안을 연구해 달라.”고 제안했다. 같은 해 9월 7차 협의에서 후생성은 전범에 대해 “직무상 희생된 자 또는 사실에 반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규정된 사람 등 합사에 부적격한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더욱이 후생성은 “우선 외지에서 사형을 당한 B급 전범을 눈에 띄지 않는 범위에서 허락해 주길 바란다.”는 등 자세한 기준도 제시했다. 후생성과 야스쿠니신사 측은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합사와 관련,69년 1월 협의한 것으로 기록됐다. 신사 측이 작성한 자료에는 “A급 전범(12명) 합사가 가능하다.”고 기재됐다. 신사 측 문서에는 “눈에 띄므로 외부 발표는 삼간다.”고 적어 일본 안팎의 반발에 대한 우려도 표시했다. 결국 A급 전범 합사는 78년 10월 이뤄졌지만 후생성이 9년 전인 69년부터 신사 측과 협의한 결과물인 것이다. 후생성이 1966년 2월 야스쿠니신사 측에 ‘합사를 보류하고 있던 전범 관계 사망자’라는 명목으로 A급 전범을 포함한 대상자의 이름을 보낸 사실은 알려졌지만 실제 A급 전범이 합사되는 과정은 확인되지 않았었다. 자료집에는 또 43년 9월부터 2년 동안 자카르타에서 군대 위안소를 운영하다 패전 뒤 네덜란드군에 의한 전범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 46년 11월 사망한 민간인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군대 위안소 경영자가 전쟁에 공헌했다는 점을 일본이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hkpark@seoul.co.kr
  • “교도소는 ‘밤의 세계’ 축소판”

    “교도관은 왕, 돈은 좌의정, 폭력은 우의정이다.”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12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출소한 강병한(45)씨가 고발하는 ‘대한민국 교도소´의 현주소다. 충남지역 폭력조직 S파의 일원이었던 강씨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교도소내 비리와 폭력조직의 실태 등을 고발하는 실화소설 ‘인간학교´(화남Br 펴냄)를 최근 출간했다.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씨는 “교도소에서 술과 담배는 물론 심지어 마약까지 거래된다.”면서 “직원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고발했다. 강씨는 또 “거물급 조폭 조모씨는 수감기간중 교도소내 테니스장을 혼자 사용하는 등 사실상 ‘교도소의 황제´로 군림했다.”면서 “조씨에게 모욕당한 한 재소자는 굴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펄펄 끓는 기름에 뛰어들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용은 2권으로 구성된 소설의 1권 ‘대한민국 교도소는 몇시인가´에 그대로 담겨 있다. 출판사측은 “교정행정의 변화를 각성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을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발송했다.”고 밝혔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사설] 4·25 재·보선 담합하자는 정치판

    4·25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취하는 행태는 우리 정치판의 추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통령선거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부도덕, 지역패권주의에 기대려는 후진성, 여론조사에서 세가 불리하면 아예 공천을 포기하겠다는 비민주성 등. 이는 단순히 재·보선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선의 해를 맞아 한국 정치의 앞날이 아직 암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어제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를 전략공천키로 했다. 앞서 홍업씨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는데 억지로 공천을 주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가진 영향력에 업혀보겠다는 고육책이었다. 홍업씨가 뒤늦게 민주당 공천을 수용키로 했다지만 모양이 볼썽사납다. 우리는 뇌물 수수로 복역해 부친을 욕보인 홍업씨가 보궐선거에 나서는 일은 옳지 않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이상열 의원 등 당내 인사들이 홍업씨 공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개리에 밝혔음에도 민주당이 이렇듯 홍업씨에게 매달린 정황이 구차해 보인다. 원내 2당인 열린우리당 역시 무안·신안 후보 공천을 주저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을 의식한 일종의 담합으로서, 한심한 일이다. 열린우리당은 여론조사 지지도가 신통치 않자 경기 화성, 대전 서을 등 나머지 재·보선도 독자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은 대전 서을에서 공천자를 내정했으면서 국민중심당과 연대를 노려 확정을 멈칫거리고 있다. 충청표에 도움이 된다면 연합공천이나 전략공천을 할 분위기다. 정당의 목표는 공직선거에서 올바른 후보를 내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스스로 존립이유를 부정하는 정당들이 정치 전면에 포진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지금이라도 반성하면 좋고, 아니면 연말 대선에서 표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 이용호씨 형집행정지 석방

    ‘이용호 게이트’의 주역인 이씨가 15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 최성준)는 19일 “이씨에 대한 유죄 증거가 된 증언 중 일부가 위증으로 확정돼 이 부분에 대한 재심을 진행 중이다. 이씨가 오랫동안 복역한 점을 감안해 형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양심적 병역거부자 11명 유엔에 진정키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1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1호인 오태양씨 등 병역을 거부했다가 복역한 11명이 ‘한국 정부의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 규약 18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에 위반한다.’”며 유엔에 진정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유엔 인권위원회의 ‘재발방지 대책 및 구제조치’ 권고를 받아낸 병역거부자 윤여범씨와 최모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경우다. 그러나 오씨 등 11명은 종교적 문제와 무관한 병역 거부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말 유엔 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이행 방법 등을 마련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권고 결정 이후 90일 안에 결과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구제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윤씨 등이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상태라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등 재발방지책과 관련해선 “대체복무제 개선연구회의 논의 결과가 이달 말쯤 나올 예정”이라면서 “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기초로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홍성규 이재훈기자 cool@seoul.co.kr
  • 해외복역 한국인 첫 국내 이감

    외국 교정시설에 수형된 해외 동포가 우리나라 교정시설에서 남은 형기를 마칠 수 있게 됐다. 법무부는 9일 미국에서 마약을 구입한 혐의로 금고 19년7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한국인 김모(43)씨의 신병을 넘겨 받아 우리 교정시설에서 잔여 형기를 집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국제 이송은 우리나라가 2003년 12월 국제수형자이송법을 제정하고 2005년 11월 미국·일본·호주 등 61개국이 가입한 유럽수형자이송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이다.김씨는 형 종료일인 2013년 4월까지 국내 교정시설에 수형되며 앞으로 사면이나 가석방 등은 우리나라 법에 따라 결정된다.법무부는 “국제수형자이송제도는 해외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이 한 순간의 잘못으로 외국 교정시설에서 겪게 되는 언어적 갈등이나 문화적 이질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외국기업 단속강화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은 국내기업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의 상업뇌물 제공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고 중국 언론이 리위푸(李玉賦) ‘중앙 상업뇌물 단속 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겸 감찰부 부부장의 말을 인용,16일 보도했다. 리 부부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일부 다국적기업은 사업상의 각종 편의를 받는 대가로 중국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최근 2년 동안 계속돼온 상업뇌물 단속은 주로 국내 기업들에 집중돼 왔다. 그는 이러한 뇌물제공 행위가 시장질서를 부패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중국 당국은 국내외 기업들의 불법적 관행을 철저하게 감시·감독해 “상업뇌물 수수 사실이 밝혀지면 중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엄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 칼끝이 외국기업에도 겨누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상업뇌물 단속 영도소조 측은 ‘상업뇌물과의 전쟁’이 선포된 지난 2005년 8월부터 작년 12월 말까지 전국에서 적발된 상업뇌물 수수사건이 모두 1만 7084건, 금액은 45억 6000만위안이었다고 밝히고 외국기업 관련 건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민주법제시보는 과거 10년 동안 중국에서 발생한 상업뇌물 수수사건의 절반가량은 외국기업이 관련돼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상업뇌물이란 일반적으로 특혜를 받는 기업이 그 대가로 정부 관리들에게 금품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신문은 당시 대출 편의를 봐주고 400만위안의 대가성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작년 11월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후 복역 중인 전 중국건설은행 이사장 장언자오(張恩照)의 낙마가 IBM과 관련이 있다고 전했었다. 또 21세기경제보도는 지난달 맥도널드, 매킨지 등이 포함된 7개 다국적기업의 일부 IT 담당 책임자들이 상하이에 있는 한 컴퓨터 네트워크 회사로부터 400만위안의 상업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공안부가 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jj@seoul.co.kr
  • 낮엔 전도사 밤엔 성폭행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차례에 걸쳐 여성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S교회 전도사 문모(32)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문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신길동 연립주택에 들어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뒤 잠을 자던 40대 여성을 과도로 위협, 성폭행하는 등 최근까지 서울 영등포구와 마포구, 경기 파주시 등에서 모두 9차례에 걸쳐 12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S교회 신학원 1학년 재학 중인 문씨는 교육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15년 복역한 뒤 2005년 출소해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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