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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5)

    ◎매신의 수난과 저항/배설 상해투옥에도 항일필봉 건재/일제,영국과 손잡고 공작… 유죄 판결/양기택 등 민족언론투사들이 맥이어/정간 2회·압수 45회 맞서 고종퇴위 기도 등 폭로 일제의 탄압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신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민족지를 짓밟기 위한 술책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그것은 바로 대한제국으로 하여금 신문조례를 만들도록 하는 외교적 강압으로 나타났다.특히 을사보호조약 체결뒤의 언론탄압은 더욱 심한 양상을 띠었다.한반도 침략정책에 방해가되는 기사나 그 부당성을 비판하는 글을 결코 방관하지 않았다.그래서 신문을 압수하거나 정간시키는 동시에 편집인 문책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편집인 문책 일쑤 이 시기에 일제의 민족지에 대한 탄압은 황성신문의 정간및 주필 장지연의 구속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수 있다.그러나 민족언론탄압에 서슬 퍼런 칼을 갈았던 일제도 배설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해서는 손을 쓸수가 없었다.치외법권의 보호가 늘 걸리적 거렸던 것이다.따라서 일제의 사전검열없이 발행되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유일한 신문으로 남게 되었다.그 논조는 말할나위도 없이 반일로 일관된 예봉이기도 했다. 핍박과 강압을 외면한채 강경한 논조를 굽히지 않는 신보.그 존재는 마침내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의 대상이 되고만다.신보를 무력화 시키려는 일제의 탄압은 외교경로를 통한 배설의 추방공작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배설에 대한 추방공작은 이미 1905년 9월에 제기 되었으나 통감부가 본국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기는 이듬해 7월부터이다.이에따라 일제는 본국외무성을 통해 동경주재 영국대사에게 배설을 추방하거나 신보를 폐간토록 요구하고 나섰다. 일제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영국측은 1904년에 제정된 「청국및 한국에 대한 추밀원령」을 적용키로 했다.그러나 배설을 제재하기에는 그 근거가 미약했다.그래서 제5조를 개정하여 1907년 2월1일 이를 공포하기에 이른다.개정된 내용의 골자는 『영국국민과 본령시행구역내에 있는 영국과 친선국의 소요 혹은 그 국민과의 사이,그리고 청국정부와 그 국민 또는 한국정부와 그 국민 사이에 불화를 도발하려하는 사항은 본조에 규정하는 선동적인 사항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배설과 신보를 제재하려는 일제의 책동에 영국이 동조한 것이다.그러나 배설은 일제의 억압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일제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의 선언은 신보의 한글판 7월17일자 1면 머리에 『일본이 황제를 퇴위시키고 황제를 일본으로 건너가 사죄케 하려한다』는 폭로기사로 반영됐다. 이어서 이튿날짜 신보는 논설을 통해 『일본이 한국의 황실을 강핍하고 대신을 종으로 부리며 백성을 짐승으로 여기는 행동이 극도에 달했다』고 통렬히 비난하고 나섰다.날이 갈수록 강도 높은 논조로 맞서는 신보의 자세에 통감부는 급기야 1907년 10월 서울주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에게 배설의 처벌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외교적 탄압을 본격화 한다. 배설은 10월14일 서울주재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영사 재판정에 출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재판이 열린 다음날 코번은 배설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신보의 논설이 추밀원령 제83조 공안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항에 해당된다 하여 6개월간의 근신에 처한 것이다. 배설에 대한 일제의 책동은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나 사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특히 배설의 근신기간이 만료된 직후부터 신보는 더욱 강경한 논조로 돌아섰다.민족주의운동을 탄압했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를 이등박문에 비유한 「백매특날이 불족이압 일이태리」며 「정부당국자의 기량」등의 글로 일제를 규탄하고 통감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대한제국의 내각을 신랄히 비판했다. 이렇게 되자 통감부는 또 다른 탄압의 칼을 빼어들었다.1908년 4월29일 이완용내각으로 하여금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한국에서 발행되는 외국인의 신문까지도 발매·반포금지 또는 압수할수 있도록 한것이다.광무신문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신문지법(1907년 7월제정)은 신문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벌칙이 골자로서 민족지를 탄압하는데 적용된 악법이라 할수 있다.법이 처음 제정 공포된 때에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발행하는 신문과 해외에서 교포들이 발행하는신문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어 이를 새롭게 보완한 것이다. 신문지법을 이처럼 개정토록 한데에는 신보탄압이 근본목적이었으나 반일논조의 해외교포신문들이 국내에 유입되는것을 막자는 계략도 포함됐다. ○이완용내각 통박 통감부는 신문지법이 개정된 직후 곧바로 행동을 개시,신보를 압수하기 시작했다.5월1일자 논설 「불필랑경」을 비롯,5월13일자「한국내의 일본」,5월16일자「학계의화」가 통감부 기휘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신보는 잇따라 압수됐다.당시 일제가 집계한 신보압수건수를 보면 1908년 한해동안만도 국한문판 8회,국문판 7회에 이른다.일제는 이같은 신문압수방법외 신보의 구독을 방해하는 행적적 탄압도 병행했다. 뿐만 아니라 통감부 기관지 서울프레스를 동원하여 신보의 기사와 논설을 비난하는등 다각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신보의 논조는 좀체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일제는 배설에 대해 어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공작을 벌였다.그리고 영국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공세를 펴기 시작했다.이른바 양동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영국은 마침내 배설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키로 하고 배설을 재판에 회부한다는데 동의했다.이렇게 해서 배설의 2차재판은 1908년6월15일부터 3일동안 서울의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리게 됐다.재판을 진행하기위해 상해고등법원의 판사 본과 검사 윌킨슨이 서울에까지 왔다.이는 한·영·일 3국이 관련된 동양역사상 처음 있는 특이한 재판이었다. 이 재판에서 판사는 배설에게 3주일간의 금고형과 6개월간의 근신을 언도했다.유죄판결을 받은 배설은 잠시 한국을 떠나 상해에서 복역하게 됐다. 그러나 배설이 신보를 떠나 옥고를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이 신문의 항일논조는 변함없이 이어졌다.양기탁을 비롯한 민족언론 투사들이 본래부터 신보의 제작을 주도해온 때문이었다. 배설의 재판직후 통감부의 신보에 대한 감시와 탄압 또한 집요하게 지속됐다.7월2일자 논설 「확실한 언론」을 치안방해로 규정,이날자 신보를 발매금지 처분하는 한편 또 다른 탄압계획을 실행했다.신보사의 총무 양기탁을 국채보상의연금 횡령혐의로 전격 구속한 것이다. 신보의 제작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양기탁을 구속함으로써 신보의 제작에 타격을 가하는 동시에 전국 규모의 민족운동이던 국제보상운동의 중심기관을 와해시키려는 2중효과의 탄압책략이었다.궁국적으로는 신보를 중심으로한 항일민족세력에 대한 탄압이었다.일제의 신보에 대한 탄압은 이 신문이 한일합방 직후 통감부에 매수되기까지 줄곧 이어져 국한문판 24차례,국문판 21차례의 압수와 2차례의 정간처분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항일구국지 대한매일신보는 이처럼 끝없는 수난과 저항으로 점철된 역사를 살았다. 정진석저)
  • 타인이름 도용 복역자/치사혐의 수배 밝혀져

    서울마포경찰서는 18일 상해치사혐의로 수배받아오다 폭력주거침입·강제추행혐의로 붙잡히게 되자 동거녀의 전남편이름을 도용,교도소에 복역중인 김길주씨(47·전과13범·주거부정)를 상해치사혐의로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추가송치했다. 김씨는 87년 3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176의1 영흥목공소에서 사소한 말싸움끝에 고모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오다 90년 4월 마산경찰서에 붙잡히게 되자 동거하면서 알게된 고모씨(41)의 전남편 윤모씨(44)라고 속여 현재 윤씨의 이름으로 마산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윤씨가 지난 14대 대통령선거때 투표용지가 나오지 않아 동사무소에 알아본 결과 자신이 복역중인 자로 기록돼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다. 김씨는 윤씨이름을 도용한뒤 손가락을 시멘트바닥에 비벼 지문까지 없애 검찰과 경찰의 눈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90년 구속돼 징역4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 오는 2월 특별사면으로 출감될 예정이었다.
  • 대사면대상 분류착수/법무부·인수위·당정책팀

    ◎시국­정치­노동사범 등 광범위/문익환·임종석·김철호씨 포함/동의대·박종철사건 관련자도/6공출범때의 7천여명보다 많을듯 김영삼차기대통령 취임직후 단행될 「대사면」을 앞두고 민자당과 대통령직인수위 법무부는 새정부 출범에 맞춰 국민대화합을 위한 사면 대상자 분류초안을 마련했다. 대통령직인수위와 민자당정책팀은 오는 20일쯤 기본 윤곽을 담은 이 초안을 김차기대통령에게 보고,최종 결심을 받을 예정이다. 이에앞서 민자당정책팀과 법무부관계자는 16일 상오 서울 여의도 M호텔에서 회의를 갖고 기본초안 작성및 실무작업상의 준비사항등을 점검했다. 이 초안은 김차기대통령의 『지역·계층간 갈등을 해소하고 문민정부의 개막정신을 살릴수 있도록 과감한 사면을 단행하라』는 지시에 따라 시국사범을 포함,정치·경제·노동·학원사범등을 광범위하게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문익환목사,임종석전전대협의장,부산 동의대사건관련자,이대섭 김동주 전의원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포함됐다. 또 동해시 후보매수사건의민자당 서석재의원,범민족대회 개최사건의 민주당 이부영의원은 복권시켜 국민의 재심판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경제사범으로는 명성사건의 김철호씨가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밀입북사건의 서경원전의원과 박종철고문치사사건 관련,유일하게 수감중인 조한경전경위등에 대해서는 방침을 확정짓지 못하고 김차기대통령의 결심을 묻기로 했다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일반사면과 관련,『문민정신을 살려 단행해야 한다는 민자당측 입장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법무부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전하고 『이부분도 김차기대통령의 뜻을 따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지휘책임을 물어 재판에 계류중인 강민창전치안본부장과 박처원전치안본부5차장은 사면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중인 조경위에 대해서는 경찰친목모임인 경우회에서 「동의대사건 관련자와의 형평을 고려,사면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탄원서를 김차기대통령측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밖에 일반 형사범의 경우 흉악범과 큰 피해를 낸 방화·살인범을 제외한 ▲형기 5년미만의 복역자중 3분의 2이상 복역자중 초범 ▲3분의2이상복역자중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자 ▲교통사고 관련중 3분의1이상을 복역한자등도 가석방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민자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상자규모는 88년 6공 출범당시 7천2백34명을 훨씬 넘는 규모가 될 것』이라며 『본격적인 실무작업이 진행되면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새롭게 시작한다는 김차기대통령의 의지로 볼때 방침을 정하지 못했으나 서의원을 비롯,거론된 인사들은 모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청부살인 조창조씨 징역8년 원심확정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만호대법관)는 16일 관광호텔 오락실 상무를 살해토록 지시한 대구지역 폭력계 대부 조창조피고인(53·전세덕건설 회장)에 대한 살인교사등 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이유없다』며 조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조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조피고인은 90년 4월 초 경북 김천관광호텔 오락실 상무 고동훈씨(당시 51세)에게 오락실 보호명목으로 10%의 오락실 지분과 함께 오락실 영업부장직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같은달 11일 낮12시10분쯤 폭력배 정모씨(28·복역중)등 2명을 시켜 고씨를 살해케 한 혐의등으로 지난 1월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20년,2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었다.
  • 흉악범 9명 사형 집행

    법무부는 29일 양평 일가족 생매장사건의 주범 윤용필(33),중풍환자인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고 생모를 불태워 살해한 김영호(34)등 흉악범 9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날 사형은 상오10시부터 서울구치소와 대구교도소에서 각각 집행됐다. 이번 사형집행은 지난해 12월18일 흉악범 9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있은지 1년만의 일이며 6공들어서는 5번째다. 이로써 사형집행 대기자는 41명이 남게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에 사형이 집행된 9명은 사람의 탈을 쓰고 감히 상상하기 힘든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등 반인륜·반사회적 강력범들』이라며 『집행을 보류·연기할 이유가 없는 흉악범』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의 범죄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효상(65)=자신이 동거녀를 살해해 징역7년을 복역한 것을 고종형수(63)때문이라고 생각하고 84년 9월 잠자는 고종형수를 흉기로 살해한뒤 같은 마을 주민 2명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려 했다. ▲유충남(47)=강도상해등 전과7범으로 84년 9월 경남 부곡에서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공범들과 짜고 아내(42)를 교통사고를 가장해 살해했다. ▲권갑석(44)=폭력등 전과5범으로 84년 9월 부산 영도에서 내연의 아내와 짜고 내연의 아내의 남편(37)및 자신의 아내(41)를 살해했다. ▲전용운(40)=강간치상등 전과8범으로 87년 10월 서울 강동구 노상에서 밤에 혼자 걸어가는 소녀(13)를 강간하려다 반항하자 살해한 외에 4차례에 걸쳐 강도살인·강도상해등을 저질렀다. ▲김영호(34)=89년 10월 경기도 가평에서 중풍환자인 의붓아버지(78)를 대소변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살해한 외에도 생모(56)를 손발을 묶고 석유를 뿌려 불에 태워 살해했다. ▲심영구(32)=강도상해죄로 징역3년6월을 복역하고 89년 6월 서울 남현동 노상에서 부녀자(42)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금품을 턴 외에도 5차례에 걸쳐 강도살인을 했다. ▲김삼중(37)=특수강도죄로 징역5년을 복역하는등 전과3범으로 90년 6월 충북 진천에서 부녀자(60)에게 밥을 달라고 해 없다고 하자 흉기로 살해한 외에도 69차례 부녀자를 강간했다. ▲문경한(24)=90년 9월 수원에서 5세 어린이를약취·유인해 목졸라 부대에 넣어 방죽에 빠뜨려 살해한뒤 그 부모에게 3천만원을 요구했다. ▲윤용필(33)=상해등 폭력전과5범으로 90년 11월 양평국도상에서 일가족 4명을 칼로 위협,금품을 빼앗은뒤 산으로 끌고가 생매장
  • 전환기갈등 해소한 화합의 사면·복권(사설)

    정부는 24일 밀입북사건으로 복역중이던 임수경양,문규현신부등과 5공비리사건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 관련자 26명에 대해 특별사면,감형·복권조치를 취했다.국민화합을 위한 긍정적 조치로서 환영하는 바이다. 출감한 임양이 가족들과 부둥켜 안은채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세모의 마음을 한층 밝고 가볍게 만든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과거읠 갈등요인은 적극적으로 해소돼야 한다.그래야만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 화합할 수 있고 새정부가 들어서서도 부담없이 국정을 이끌어갈 수가 있다.국민화합조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폭이 클수록 좋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하는 바이다.그런 점에서 김영삼대통령 당선자가 선거때 약속한 대사면에 대해서도 우리는 특별한 기대를 걸고 있다. 밀입북사건 관련자 석방문제는 그동안 남북 대화의 진전에 걸림돌도 작용해 온게 사실이다.그러나 이번에 임양과 문신부가 풀려남으로써 새 정부의 대북관계 입지는 강화될 것이다.같은 밀입북사건으로 구속돼 복역중인 문익환목사도 특별 감형조처됐음을우리는 주목한다. 5공비리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복권은 6공에서 가장 껄끄러운 정치문제로 남아있던 5·6공간의 갈등을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해소한 조치라고 평가한다.우리는 이번 조치가 노태우대통령과 전두환전대통령간의 개인적 화해와 우의 복원의 계기가 될것으로 믿어마지않는다.지도층의 화합은 국민단합의 원동력이요 표상이다. 수서사건 관련자 사면조치에 대해선 일부에서 이런저런 시비가 있으나 우리는 대통령의 올바른 정치적 판단이요 정당한 사면권 행사라고 본다.이번에 사면조치의 대상이 된 사건들은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미묘한 사안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가령 5공비리사건과 수서사건 관련자에대한 사면조치를 새 정부에 떠넘길 경우 김영삼당선자의 개혁 이미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이번 조치가 새정부의 부담을 덜어줄 것은 분명하다.이번 사면은 그런 정치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그리고 이 사면은 되고 저 사면은 안된단느 발상은 대화합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지금 우리 앞엔 2건의 대 사면이 기다리고 있다.집권 마무리를 위한 노대통령의 임기말사면과 새정부 출범과 함께 나라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김당선자의 취임 대사면이 그것이다. 그 물꼬를 트고 흐름을 원활하게 하자는 뜻에서 무겁고 큰 돌부터 치운것이 이번 사면이라고 우리는 본다.
  • 5공·수서·의원비리/23명 특별사면·복권/김 당선자 건의 수용

    ◎정부,대화합차원 전격 단행/임수경·문규현씨 특별보석방/문익환씨에는 특별감형 조치/밀입북 관련/주요 사면복권자/5공비리관련/전경환 차규헌 김종호 이학봉 이창석 강보현 최열곤 전기환/의원·수서비리관련/이원배 이태섭 장병조 박재규 정부는 24일 밀입북 사건으로 복역중이던 임수경씨(24)와 문규현신부(43)를 특별가석방한 것을 비롯,5공비리관련자 및 수서비리사건 관련 국회의원 등 모두 26명에 대해 특별가석방 또는 특별사면·특별복권조치 등을 단행했다. 이번 대사면 조치는 6공들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법질서 확립과정에서 구속 등 사법처리됐던 이들 관련자들에 대해 대화합 차원에서 새출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정부방침에 따른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사면건의를 받아들여 이뤄진 것이다. 이날 하오 사면조치에 따라 석방된 사람은 임씨와 문신부를 비롯,수서비리사건 관련자인 이원배 전의원(60)과 장병조 전청와대비서관(54)등 4명이다. 또 지난 89년4월 밀입북해 김일성주석을 만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7년형을 확정받고 복역중인 문익환목사(74)도 징역5년으로 특별감형돼 잔여형기가 1년11개월로 줄어들었다. 임씨는 이날 하오5시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출감,상경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집으로 돌아왔다. 임씨는 89년8월 평양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대표자격으로 밀입북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그동안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장전비서관은 지난해 수서지구 택지특혜분양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징역4년을 선고받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89년 5월 새마을운동기금 착복등 5공비리 사건과 관련,구속기소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지난해 6월 가석방형식으로 풀려났다가 이날 남은 형기를 면제받는 한편 특별복권조치됐다. 이날 사면등 은전을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다. ◇5공비리관련자=차규헌(63)전경환(50)김종호(66)이학봉(54)김재명(61)이창석(41)유준석(45)염보현(60)최렬곤(62)전기환(63)황흥식(41)홍순두(51)전우환(59)이규승(73)김영도(56)김정로(64)정장희(51)유시정(63)황이모(48) ◇수서및 의원 비리사건 관련자=이원배(60)이대섭(53)장병조(54)박재규(46) ◇밀입북사건 관련자=임수경(24)문규현(43)문익환(74) ◎3당 환영 성명 민자·민주·국민등 3당은 24일 성명을 통해 문신부등에 대한 정부의 특별사면·복권을 환영했으며 민주·국민당은 모든 양심수의 추가석방을 촉구했다.
  • 7백억대 히로뽕 제조/3명 영장 1명 수배

    【부산=이기철기자】 국내 히로뽕 제조판매의 「대부」로 소문난 최재도씨(58·부산구치소 복역중)의 둘째아들 석운씨(36·부산시 서구 토성동 2가7) 일당 4명이 아버지 최씨가 지난 89년 구속되기전에 숨겨둔 히로뽕 원료를 이용해 7백억원에 가까운 히로뽕 완제품과 반제품 등을 만들어 갖고 있다가 적발됐다. 부산경찰청 특수강력수사대는 9일 최석운씨와 최씨의 애인 김향순(27·사하구 당리동 320),박종충씨(52·사하구 하단동 가락타운 205동 102호)등 3명에 대해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유권자 2천9백33만명/내무부 잠정집계/전체인구의 66.7%

    오는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인수는 지난 10월31일 현재 전체인구의 66·7%인 2천9백33만2천87명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1일 내무부집계에 따르면 주민등록상 지난달 31일 현재 만20세에 달해 투표권이 있는 선거인수는 서울 7백36만2천2백57명을 비롯,부산 2백56만9백34명 등으로 지난 14대 총선때보다 32만8천여명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지난72년 11월1일부터 12월19일까지의 출생자가 빠진데다 법적으로 투표권이 없는 복역자 등이 포함된 것이어서 다음달 11일 선거인명부가 최종 확정되면 실제선거권자는 6만∼7만명가량이 더 늘어 2천9백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내무부는 밝혔다.
  • 감식의 날 82돌 맞아 알아본 실태

    ◎잉크없이 지문 채취… 15분내 식별/금속·섬유·가죽엔 레이저 쏴 검출/유관순 등 4천2백만명분 보관 범죄수사에서 감식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한지 11일로 82돌을 맞는다. 우리나라 감식제도는 1910년 조선총독부 법무국 행형과에 지문계를 설치하고 형무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지문을 채취,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 그 효시이다.그해 11월11일 「투구상인율」위반(폭행치사)사건으로 2년 6개월동안 복역하다 출소한 전남 고창군 천봉면 사람 강갑득씨의 지문을 처음으로 채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부수립후에는 유관순열사와 이봉창의사,도산 안창호선생등 독립운동가와 순국열사의 지문과 사진카드등 2만5천여점의 자료가 보관돼 정부의 독립유공자기록정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일부는 국사편찬위원회로 넘겨져 중요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64년 국제감식협회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11월11일을 감식의 날로 정해 감식유공자들을 표창하는 행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 오랜 감식역사와 더불어 감식기법도 발전을 거듭해 각종 첨단과학장비들이 감식에 활용되고 있다. 현재 잉크를 묻히지 않고 지문을 자동채취하는 첨단지문채취기 4대와 가스를 이용해 범행현장에서 지문을 재생하는 지문현출기 3백4대를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또 지문형태를 전산입력해 기계로 지문을 분류,확인할 수 있는 지문자동분류검색시스템 30대를 설치,육안으로 30일이 걸리던 식별작업이 2∼15분대로 단축됐다. 어디서나 지문을 송·수신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지문전송기 30대와 금속,섬유,가죽 등에 레이저광선을 쏴 지문을 검출하는 획기적 방법도 도입돼 있으며 발자국채취기와 범행현장을 재생하는 입체사진기,몽타지합성기등 경찰이 보유한 첨단감식장비는 13종 5천8백38점에 이른다. 이밖에도 전국 어디로나 용의자의 모습을 전송해 목격자가 확인하거나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영상전산시스템 등의 설치예산 33억원이 확보됐고 앞으로도 7개년계획으로 2백20억원을 들여 14종 6백16종의 첨단과학장비도 들여올 계획이다. 현재 경찰청 감식과에는 전과자지문등 4천2백여만건의 감식자료가 있으며 이를 이용해 올해에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한 범법자 9백6명을 색출하고 살인 44건,강도·강간 68건등 2백83건의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무고사범 두달새 29명 구속/검찰,66명 적발

    ◎민주화 편승 허위고소 일삼아/국민 불신풍조 조장,화합 저해/악질적 명예훼손범 등 뿌리뽑기로 재산상의 이득을 노리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킬 목적으로 상습적으로 고소·고발을 일삼아온 무고사범 66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은 26일 지난 9월1일부터 본·지청합동으로 무고사범에 대한 일제단속을 실시,한국화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박노학씨(58·이학박사) 등 29명을 구속하고 박장용씨(73·동작구 상도1동) 등 37명을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최근 수년동안 우리사회의 민주화분위기에 편승해 허위고소를 일삼아 국민들 사이에 불신을 조장하고 화합을 깨뜨리는 무고사범이 늘고 있어 일제단속에 나섰다』면서 『앞으로도 악질적인 무고사범과 명예훼손사범은 지속적으로 단속,엄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 K대교수인 박씨는 87년 1월 재혼,동거해 오던 S대 이모교수와 헤어진뒤 재결합을 요구,거절당하자 이씨가 재혼전에 가지고 있던 자금으로 구입한 1억여원짜리 아파트 한채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냈다가 이길 가능성이 없자 지난 3월 『이씨가 아파트 매매계약서를 위조했다』는 내용의 허위고소장을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함께 구속된 동해특산대표 김상백씨(50)는 81년 유모씨에게 경북 울릉도에 있는 땅 3천6백여평을 판뒤 이전등기를 해주지 않아 유씨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자 유씨를 소송사기혐의로 고소,무혐의처분이 내려지자 헌법소원까지 내 기각당하고서도 지난해 10월 다시 유씨를 허위 고소했다는 것이다. 또 최홍승씨(70·용산구 서계동 230)도 자신이 인천 백병원에 기증했던 병원신축예정지 부근의 토지 반환문제를 놓고 백병원 직원 정모씨를 고소,무혐의처분이 내려지자 주임검사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허위고소,무고죄로 징역 8월을 복역하고서도 90년부터 담당검사 18명과 정씨를 상대로 재정신청과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고소를 계속해오다 적발됐다. 최씨는 특히 88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28명을 고소하고 1백여차례에 걸친 진정서를 관계기관에 냈던 것으로 검찰수사결과 밝혀졌다. 한편 검찰은 지난 한햇동안 접수된 각종고소사건 24만7백여건 가운데 30%가 넘는 7만9천여건이 무혐의 처리됐고 4백69건이 무고로 형사처벌받았으며 올 상반기에도 전체 12만6천여건 가운데 4만여건이 무혐의처리됐고 3백22건이 무고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 오늘 의거 83주년… 한·중·일 3국 입체취재

    ◎안중근의사/“동양평화 지켰다” 중국인이 더 추앙/이등 저격 하얼빈시선 해마다 확술대회/기념비 곧 건립… 여순감옥엔 유품 보존 우리는 해마다 10월이 저물어가면 의사 안중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19 09년 10월26일 하얼빈역두에 터뜨린 총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더 이상 침략책동자로 세워두지 않은 의거의 그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매도,끝내는 교수대에 세웠다.그러나 안의사는 지금 영원한 휴머니스트이자 또 평화론자로 추앙받고 있다. 1909년 10월26일 상오 10시가 막 지나는 시각.모두 6발의 총성이 중국 흑용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두에 울려 퍼졌다.의장대 사열을 끝내고 귀빈열차를 향해 몸을 돌리던 일본의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향한 안중근의사의 육혈포가 불을 뿜는 소리였다.그날의 총성이 사라진지 83돌을 맞은 하얼빈역은 신역사를 짓는 건설현장의 굉음과 종종걸음치며 플랫폼을 오가는 중국인들의 말소리만이 어울려 요란할 뿐이다. 이등박문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1번 플랫폼앞 현장에는 뜰이 조성돼 대형플라스틱에 담긴 화분이 몇개 놓여 있었다.피격지점에서 10m쯤 떨어진 러시아군 사열대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었던 안의사의 저격장소는 이곳에 새로 지어진 1등 대합실건물에 편입돼버렸다.이등이 쓰러진 곳은 몇년전만해도 피살지점을 표시하는 둥근 녹쇠판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안의사가 5개월에 걸친 수감생활끝에 1910년 3월26일 상오10시15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여순형무소.당시 악명 높았던 이「인간지옥」은 요령성 대연시 서쪽 40㎞지점에 「여순일아감옥구지」라는 현판아래 지난88년부터 중국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의사가 복역한 지하감방은 간수사무실부속창고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감동 복도벽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이라고 쓴 액자속에 안의사의 수감당시 사진과 함께 남아있다.이밖에 유화초상화·족자·유시「장부가」가 담긴 액자등이 걸렸다. 안의사에게 교수형이 행해졌던 교형실은 감옥 동북쪽 구석에 감춰진채 15평남짓의 좁은 공간으로 남아있다.교수대는 2층으로 꾸며져 있고 시체처리통까지도 보존됐다. 현재 6만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하얼빈시에는 2개의 안중근연구회가 있다.안의사추모사업은 지난89년 의거80주년을 맞아 한·중·일의 학자들이 하얼빈역에서 추모회를 가진 이래 학술대회를 잇따라 열어 왔다.또 안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대형오페라가 공연되는등 추모붐이 대단했다.최근에는 새로 발굴된 자료를 모은 안중근사료집발간을 준비중이며 안의사기념비를 피격현장에 세우기위해 중국정부와 교섭도 벌이고 있다.당초 하얼빈역 광장에 안의사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일본과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소극적 태도로 한걸음 물러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얼빈시내 동북열사박물관에 전시된 중국근대사소개부문에도 안의사의 영정과 기념자료등을 손문다음으로 다루는등 안의사에 대한 중국현지의 평가와 연구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국내/국내연구 활기­일선 “평화주의자” 새 시각/학계 동향/대중수교 계기 새 자료발굴 기대 우리나라에서의 안중근연구는 올해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계기를 맞고있다.그 이유는 중국이 「역사의 현장」인데다 그동안 우리측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한 접근도 가능해졌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에따라 그동안 한정된 자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학계의 상황도 크게 개선되어가고 있다.또 안의사의 의병활동기지였던 러시아측의 연구성과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길림성 조선연구소가 국내에서의 안중근연구를 희망해오는가 하면 러시아사회과학원 동방연구소에서도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와서 발표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에서는 안의사가 천주교신자였다는 점을 고려,프랑스측이 소장해오던 자료를 입수,연구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원장은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안중근연구에 숨통이 트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때일수록 연구자들은 일과성이 아닌 체계적 연구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새로 입수된 자료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해석이 나올 경우 안의사연구에 자칫 흠집을 남길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안중근의사에 대한 저술은 물론 연구결과를 집약한 논문 역시 나오지 않았다.기존의 학술자료로는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안에 수록된 공판기록문서와 주한일본공사관 기록등이 정리돼 있다.또 논문은 신용하교수(서울대)의 「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등이 꼽힌다.저술은 주로 전기류인데 안의사 의거 이후에 쓴 박은식의 「안중근전」이 있고 해방후에는 「의사 안중근」(만수사보존회·1964년)과 「안중근자서전」(안중근의사 숭모회·1970년)등이 나왔다. 그리고 안의사를 기리는 단체는 사단법인 안중근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안중근의사장학회등이 있을 뿐이다. ◎일본/올 전기 등 2권 출간… 사당건립도 안중근에 대한 가해자쪽인 일본에서 안의사 평가는 「암살자」와 「휴머니스트」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으로 나타났다.테러리스트 시각을 가진쪽은 안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정권담당자들이다.그리고 휴머니스트로 보는쪽은 안의사의 재판에 참여한 판사와 검찰관,여순감옥의 형리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 일본의 지식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안의사를 휴머니스트로 보는 시각도 두 갈래로 나뉜다.그 하나가 중천팔양교수(축파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이끌려지는데,여순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이 『한일관계의 원전으로 오늘날 더욱 빛나는 혜안이었다』고 극찬한다.동아시아의 제국이 우방과의 신의를 축으로 한 동맹관계를 수립,러시아에 대응방위를 해야한다는 안의사의 주장은 오늘날 일본에 좋은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형무소장과 변호사는 물론이려니와 검찰관·재판관들이 서 있다. 재판과 수형생활등의 과정에서 안의사의 높은 지적수준과 고결한 인품이 자신들을 매료시켰다고 회고한다.오늘날 남아있는 안의사의 유묵은 그들에 의해 고이 간직되어 온 것이 많을 정도다.또 이들의 후손들에 의해 안중근연구회가 조직되어 일본안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재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와카야나키의 대림사에 세워지고 있는 안의사의 기념사당도 그러한 경우다. 「테러리스트아닌 독립운동가」라는 시각에 따라 「안중근 무죄론」까지 제기되어 주목을 끌었다.특히 올들어 최근 일본에서는 안중근관계 저술이 2권이나 새로 출간됐다. 그 하나가 중야태낭교수(아세아대교수·국제관계학)의 「안중근」(아기화방간행).한국관계의 원상이라는 부제로 간행된 이 저술은 이토를 저격한 안의사를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생애와 사상/의병투쟁땐 일군포로 석방/「동양평화론」 저술한 선각자 안중근의사는 1879년9월9일 황해도 해주 한 향반의 집에서 태어났다.그리고 나서 31살을 일기로 1910년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 까지의 삶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 생애에서 안의사가 평화론자였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찾아진다.1907년 정미칠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고종 양위와 함께 군대가 해산됐을 때 독립전쟁을 주장하면서 의병활동에 뛰어든다.그는 의병전투기간에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석방,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그러나 이 사실은 오히려 의병활동을 일본에 대한 대한제국의 독립전쟁이라는 국제공법에 근거,포로를 인도적으로 처리한 사례로 평가 되고있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힌 뒤 쓴 미완성원고 「동양평화론」은 그의 이같은 사상적 배경을 구체화한 것이다.「독립한 청국 한국 일본이 일심 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그래서 개화의 역으로 진보,구주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할 때 동양평화가 실현되고 또 유지된다고 주창했다. 이토는 침략의 원흉이고 동양평화에도 역행했다는 것이 안의사의 주장이다.그의 자서전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이등의 15개조의 죄목」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결론적으로 안의사는 자신의 행동을 『한국의병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토를 공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 “수용소 참상 폭로하려 탈출”/안혁·강철환씨 일문일답

    ◎재소중 알게돼 함께 귀순키로 결심/남한방송 듣고 남·북의 실상 깨달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복역하다 남한에 귀순한 안혁·강철환씨는 『정치범들이 수용된 교화소안에는 죄를 지은 사람은 없었다』면서 『그 곳에는 구타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사람이 많으며 인간으로서는 정녕 살지 못할 곳』이라고 폭로했다. ­남한으로 탈출한 동기는 ▲안=출입국절차없이 중국을 나갔다 돌아왔다고해 간첩으로 몰려 매질등으로 혹독하게 취급당했다.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우리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으며 부모를 강제이혼시키고 친척들에게도 각종 압력을 가했다. 이 사실을 남한에 폭로하려고 탈출을 결심했다.강철환과 의논,목숨을 걸고 제3국을 통해 북한을 탈출했다. ­고향도 틀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나. ▲안=간첩혐의로 잡혀 독신자감옥에서 혹독하게 매를 맞고 굶주렸다.체중이 40㎏밖에 안되는 상태에서 죄질이 좀 덜한 사람이 수용된 인근 초대소에 수용됐다.그때 나를 돌봐준 사람이 강철환이었으며 그후 7개월을 같이 살면서 함께 탈출을 결심했다. ▲강=초대소에 수용되기전 남한 방송을 청취한 적이 있었다.남한 실정은 물론 북한 실상도 제대로 보도하는 것을 들어 남한으로의 탈출을 생각하게 됐다. ­북송교포가 5천명정도 수용 됐다고 하는데 다른 곳에도 수용돼있는지. ▲안=74년에 요덕수용소에 6백여명이 들어온 이래 많은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었다.승호리수용소라는 곳에 가장 많이 수용된 것같은데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모두 설레는 가슴으로 북한에 왔다가 『왜 이고생하러 왔나』며 한탄하고 있다. 내가 있을때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자가 14명 있었다.모두 인간이하의 생활에 적응이 안되고 폐렴에 걸리거나 해 단2명만 살아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용소 생활은. ▲여러분이 믿을 수없을 정도의 비참한 생활이다.먹을것이 없어 수용소내 쥐를 잡아먹고 있으며 겨울에는 손·발에 동상이 걸려 잘려나가거나 죽는 사람도 있다. 하루15시간이상 중노동하다 안전사고로 죽으면 겨우 땅에 묻히며 먹는 것은 고작 강냉이가루와 소금에 불과하다.마흔살 이상의 사람들은대부분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 아내·딸·장인·장모 살해/만기출소 40대,재결합 거부에 앙심

    ◎한밤 도끼 휘둘러 아들은 중상 별거중인 40대 가장이 아내가 재결합을 반대하자 새벽에 처갓집에 몰래 들어가 흉기로 아내와 딸·장인·장모등 4명을 살해하고 아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자신은 부모묘소에서 극약을 먹고 쓰러져 있다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12일 상오1시57분쯤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산53의1 한도주택 21동 201호 여영균씨(75)집에서 사위 최오림씨(49·은평구 불광3동 445의30)가 여씨와 장모 한천순씨(74),부인 여명자씨(50),딸(17·서울Y고1년)과 아들(15·G중2년)을 도끼로 내리쳐 여씨등 4명을 숨지게 하고 아들을 중태에 빠뜨렸다. 아들 최군은 『잠을 자다 머리가 아파 일어나 보니 아버지가 식구들을 도끼로 내리치고 있었으며 「살려달라」고 비는 나에게도 도끼를 휘둘러 다리에 상처를 입히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현장◁ 여씨 부부는 반항한 흔적이 없이 안방 이불위에 나란히 누워 숨져있었다. 부인과 딸은 건넌방에서 잠자다 변을 당했으며 아들은 2층 침대에 누워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최씨는 여씨 가족 앞으로 『너희들을 다 죽이지 못하고 일부만 죽이고 가니 한없이 원망스럽다.네 어머니는 철없는 너희들에게 내가 깡패고 전과자라는등 악담만을 했다.우리 아들과 딸의 시체는 우리 누님에게 돌려주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범인주변◁ 범인 최씨는 76년 3월 숨진 여명자씨와 결혼,1남1녀를 뒀으며 부인 여씨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23)도 호적에 입적시켰으나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최씨는 결혼직후 성동구 응봉동,도봉구 쌍문동 등에서 셋방살이를 했으며 폭력·특수절도등 전과 23범으로 결혼후에도 자주 부인과 심하게 다투는등 가정불화를 겪어왔다. 최씨는 또 88년 3월 평소 하던 자가용영업을 못하게 되자 부인과 처가 식구들이 자신을 푸대접하는데 격분,장모 한씨를 도끼로 내리쳐 살인미수혐의로 구속돼 실형 4년을 복역했다.
  • “수사기관 내사중 출굴금지조치 가능”/서울고법

    서울고법 특별8부(재판장 안문태부장판사)는 23일 89년7월 당국의 허가없이 입북했던 문규현신부(50·복역중)의 형 문정현신부(52·전북 익산군 금마 천주교회)가 『뚜렷한 범죄혐의가 있거나 수사대상이 아님에도 3년2개월동안이나 출국을 금지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출국금지처분 효력정지청구 가처분신청을 『이유없다』 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청인은 법무부가 재량권을 남용한다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고 출국금지 요건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수사기관이 내사중인 경우에도 법에따라 그 대상자의 출국을 금지시킬 수 있는 것으로 파악돼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 교도소 동기 3명 19차례 금품털어

    서울 서부경찰서는 20일 주로 대낮에 가정집에 침입,귀금속 등 1천5백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정민교씨(30·무직·특수절도 등 전과10범·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주공아파트 101동1005호) 등 3명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90년 안양교도소에서 함께 복역하면서 알게된 정씨등은 지난 5월23일 하오 3시쯤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김모씨(24·무직·여)의 빈집 부엌문을드라이버로 뜯고 들어가 방안에 있던 김씨의 루비반지 등 1백6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을 비롯 올 초부터 같은 수법으로 서울시내에서 모두 19차례에 걸쳐 1천5백40만원 상당의 금품을 털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 “진관이와 함께 옥살이 할래요”

    ◎의부살해 집유 김보은양 보석신청 포기/“혼자 나갈수 없어요” 애틋한 사랑 눈시울/3∼4개월 더 복역… 대법 판결뒤 결혼키로 자신을 12년동안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김보은피고인(21·D대 무용학과 2년)이 보석신청을 내지 않기로 해 석방을 포기한 것으로 밝혀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피고인은 이에따라 대법원의 상고심에서 형을 확정받게된 뒤인 3∼4개월후에야 풀려나게 된다. 김피고인의 변호인인 배금자변호사는 17일 『두 피고인과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보석신청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피고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도 보석신청을 포기,4개월까지도 될수 있는 감옥생활을 자청한 것은 항소심에서 징역5년을 선고받은 남자친구 김진관피고인(21·D대 사회체육학과 2년)과 아픔을 함께 하겠다는 김양의 고집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주위사람들을 더욱 가슴아프게 하고 있다. 김양은 항소심이 끝난뒤 면회를 간 가족들에게 『나때문에 살인자가 된진관씨가 감옥에 있는 이상 나 혼자 보석을 신청해 석방될 순 없다』며 보석신청포기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 이에앞서 지난 14일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양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순간 남자친구인 김군은 밝은 표정을 지었으나 김양은 자신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게된데 대한 죄책감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었다. 두 피고인의 변호인단은 16일 항소심결과에 불복,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으며 상고심은 4개월안에 확정된다. 두 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법적처리가 마무리되면 결혼할 뜻을 밝혔고 양가 가족들도 두사람의 혼인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구속 피의자의 경우 1·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곧바로 풀려나게 되나 김피고인은 구형량이 12년이어서 「구형량이 10년이상이면 보석신청을 거쳐 석방된다」는 형사소송법규정에 따라 풀려나려면 보석을 신청해야만 한다. 두 피고인은 김양의 의붓아버지 김영오씨(53·전청주지검 충주지청 사무과장)를 살해한 혐의로 지난 1월19일 구속돼 8개월째복역하고 있다. 배변호사등 변호사 21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과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박상희목사)는 상고이유서 등을 통해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상고심 결과에 대한 법조계에서는 검찰과 피고인측의 상고가 모두 기각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외국판례 등에 비추어 김진관피고인의 징역5년형이 파기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상고가 기각될 경우 김진관피고인은 4년정도 더 복역해야하나 김보은피고인은 판결이 확정되는 날 석방된다.
  • 평양지령 따라 반체제활동 주도/고정간첩들의 혐의 사실

    ◎55년 월북… 친북단체 건설 조종/김낙중/인민군서 귀순… “골수” 중간연락책/심금섭/2차례 입북·조총련과 수시 접촉/권두영 ▷김락중(57·전민중당 공동대표)◁ 서울대 사회학과를 중퇴한 이듬해인 지난55년 6월 임진강을 건너 단신 월북,북한의 초대소및 인민경제대학 특설반에 수용돼 1년남짓 공산주의 사상등 간첩교육을 받았다.월남한뒤에는 「김강천」이라는 가명으로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동조자를 입북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지난61년 8월 농부인 안행협씨를 포섭,북한파견 연락원으로 임진강을 통해 입북시켰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있던 지난 72년에는 이 연구소 간사인 노중선씨(52·구속)와 고려대학생으로 비밀지하조직 「N·H회」를 결성,국내운동권에 반정부투쟁 이념을 퍼뜨리는 활동을 해왔다. 김씨는 지난 88년과 90년 두차례에 걸쳐 중국 북경사회과학대학원 이상문교수와 만나 자신의 활동상황 등을 간접보고하는등 북한측과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으며 90년 2월말 남파된 북한사회문화부소속 공작원 최모씨(35)와 접선,「무두봉 11」이라는 암호명과 함께 난수표,단파라디오 등을 건네받았다. 경기도 파주출신인 김씨는 서울고를 나와 서울대사회학과 2년을 중퇴하고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뒤 4·19직후인 60년말 혁신정당인 「이주당」기관지 「정론」정경부장,67년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간사,86년 민족통일촉진회통일정책심의회의장,92년 민중당 총선대책본부장등을 거쳤다. 지난 57년 간첩죄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63년에 반공법위반으로 징역3년6월,지난 73년에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7년을 선고받고 80년 만기출소했다. ▷심금섭(63·청해실업대표)◁ 심씨는 90년 2월부터 회사 부회장으로 있는 김씨와 공작지도원 임모씨의 지시로 지난해 4월 태국 방콕에 있는 북한의 공작위장업체로부터 구명재킷 2천벌을 주문받고 방콕으로 건너가 북한 사회문화부 부부장 리원국과 북한에 거주하는 친형 심호섭(64·전북한정치보위부원)등을 만나 포섭됐다. ▷권두영(63·전민중당고문)◁ 지난 86년 중국방문때 만난 중국 공산당원 권상주(48)의 권유로 지난 90년11월 입북했고 지난 4월 두번째로 입북했다.두번째 입북에서 김일성주체사상과 사회주의우월성등에 대한 학습을 받고 남한의 정치상황과 14대 총선결과분석보고및 진보혁신정당건설의 지령과 공작금 2만달러를 받아 귀국했다.또 지난달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조총련계 무역회사의 대표인 양광우와 접촉,진보정당건설추진자금 10억엔의 확보방안등을 협의하기도 했다. 경북 예천출신으로 대구상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거쳐 51년 서울시경 미고문관실연락관과 문공부 비서실비서관등을 지냈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민사당서울성동지구당위원장,사민당위원장,민중당고문등 진보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해왔다. ▷노중선(52·평화통일 연구회사무총장)◁ 지난73년 김락중씨가 주도한 내란음모사건인 이른바 고려대「민우」지사건에 연루돼 김씨와 함께 복역한뒤 친형제처럼 지내오다 김씨에 포섭됐다.
  • 뺑소니로 몰려 9개월 복역 40대/항소심서 무죄선고

    ◎“증거없고 사고조작 확실” 【광주=최치봉기자】 광주고법 형사부(재판장 박재윤부장판사)는 5일 횡단보도상에서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뒤 달아난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두호피고인(41·전남 광양군 광양읍 철성리)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강피고인의 범죄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징역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제출된 증거를 종합해볼 때 강피고인이 사고를 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고 더욱이 사고가 조작됐음이 참고인들의 진술에서 드러났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강피고인은 지난해 12월3일 밤12시쯤 자신의 전남1다8969호 엘란트라승용차를 몰고 전북 군산시 해망동 해망굴앞을 지나던중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지나던 이 마을 곽동철씨(51)를 치어 숨지게 한뒤 도주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 5월8일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고 그동안 군산교도소와 광주교도소에서 9개월동안 옥살이를 해왔었다.
  • 25년형 복역중인 19회 강도강간범/「화성」 용의자 수사

    【화성=김학준기자】 경기도 화성경찰서는 28일 강도강간죄로 원주교도소에 복역중인 정모씨(26·무직·전남 강진군 군동면)가 화성사건 9번째 피해자 김미정양(14)피살사건의 용의자라는 제보를 받고 정씨의 혈액·모발등을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감식을 의뢰했다. 경찰이 정씨를 이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있는 것은 정씨가 지난 85년 중반 화성사건현장 부근인 화성군 태안읍 반정리 논둑에서 귀가중이던 이모씨(29·여)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적이 있고 김양이 피살됐던 지난 90년 11월15일 이후 3∼4일간 자신이 근무하던 태안읍 기산리 H산업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H산업 김모씨의 제보에 따른 것이다. 정씨는 지난 4월21일 수원시 권선구 인계동 임모씨(24)집에 침입,현금 2만원을 빼앗고 임신중이던 임씨를 성폭행하는등 수원시내 일대에서 19차례의 강도강간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기소돼 징역 25년이 선고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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