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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길 “(박정희 때도) 이렇게 슬퍼 안해”

    김동길 “(박정희 때도) 이렇게 슬퍼 안해”

    지난달 1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자살을 하거나’라고 썼던 사실 때문에 비난이 집중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노무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라며 “이 비극의 책임은 노 씨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김 명예교수는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법부는 노 씨에 대한 모든 수사는 이것으로 종결한다고 하니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된 검찰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는 속셈인가.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인가.”라며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지적하면서도 “고종황제나 박정희 전 대통령 때도 이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이어 “그런데 모든 언론매체들이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인가.”며 “노 씨가 산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이냐.”고 되물었다.  앞서 김 명예교수는 ‘먹었으면 먹었다고 말을 해야죠’라는 글에서 “그(노 전 대통령)가 5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다음의 정권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논란에 김 명예교수는 “마치 내가 노 씨 자살의 방조자인 것처럼 죽이고 싶어 하는 ‘노사모님들’의 거센 항의의 글이 쇄도하여 나의 홈페이지는 한참 다운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다.”고 밝힌 뒤 “나는 내 글을 써서 매일 올리기만 하지 내 글에 대한 댓글이 천이건 만이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도 험하게들 나오니까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은 ‘테러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혼자서는 절대 집을 나가지 말고 밤에는 더욱이 외출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고 한 뒤 “어떤 위기에 처해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명예교수의 글 전문    제목 :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야의 모든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어떤 “은퇴” 정치인은 자신의 반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와대도 슬픔에 잠겼다고 들었습니다. 가게를 지키고 앉았던 사람들도, 길을 가던 사람들도 모두 슬픔을 금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라의 임금님이, 예컨대 고종황제께서 붕어하셨을 때에도, 그 시대에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백성이 이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장군이 현직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생각이 부족한 어느 한 측근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궁정동의 그 때 그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이기는 했지만 오늘과 같은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모든 언론매체가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입니까. 노무현 씨가 산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설마 국민에게 자살을 미화시키거나 권장하는 뜻은 아니겠지요. 내가 4월에 띠운 홈페이지 어느 칼럼에서 “노무현 씨는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하여 이 노인을 매도하며, 마치 내가 노 씨 자살의 방조자인 것처럼 죽이고 싶어 하는 “노사모님들”의 거센 항의의 글이 쇄도하여 나의 홈페이지는 한참 다운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나는 내 글을 써서 매일 올리기만 하지 내 글에 대한 댓글이 천이건 만이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하도 험하게들 나오니까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은 “테러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혼자서는 절대 집을 나가지 말고, 밤에는 더욱이 외출 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 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늙어서 반드시 요를 깔고 누워서 앓다가 죽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 테러 맞아 죽으면 영광이지.” 아직은 단 한 번도 테러를 맞은 일이 없지만 앞으로도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다가 폭도들의 손에 매 맞아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위기에 처해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이가 몇인데요. 여든 둘입니다.  사법부는 노 씨에 대한 모든 수사는 이것으로 종결한다고 하니 이건 또 어찌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된 검찰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는 속셈입니까. 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입니까. “검찰이 노무현을 잡았다.” - 이렇게 몰고 가고 싶은 자들이 있습니까. 천만의 말씀! 노무현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입니다. 이 비극의 책임은 노 씨 자신에게 있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전직 대통령 수난사

    역대 대통령의 비극적인 운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끊이지 않았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9명의 전직 대통령 대부분은 하야, 시해, 가족 구속, 검찰 수사 등 수난과 비운에 시달렸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는 이승만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 체제의 싹을 틔운 이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이어가다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하와이로 망명, 결국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4·19혁명 후 대통령직을 수행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군사쿠데타로 도중 하차했다. 윤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반유신 운동 등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사법처리돼 최초로 법정에 선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나 18년 장기집권 끝에 1979년 10월26일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절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근대화의 틀을 마련하고 경제발전을 견인했지만 그의 권력욕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현직 대통령 시해’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집권한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의 권력 탈취로 8개월 만에 하야했다. 그는 1989년 신군부의 쿠데타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다 국회 광주특위에서 국회모독죄로 기소됐고, 1996년 12·12쿠데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항소심 공판에 강제구인됐다. 군부를 업고 대통령직에 오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반란 및 내란 수괴죄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전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이자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노 전 대통령에 의해 백담사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민주화 시대를 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재임 중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고 2004년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2004년 안기부 예산의 선거전용 의혹 사건인 ‘안풍(安風) 사건’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아픔을 겪었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갑작스럽게 서거해 비운의 역사를 이어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강금원 서럽게 울어… 박연차 끼니 걸러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동지를 잃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교도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서럽게 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출신으로 부산에서 사업에 성공한 강 회장은 지역주의의 벽을 깨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 전 대통령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 스스로 찾아가 후원자가 된 인물이다. ‘박연차 게이트’의 주역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으며,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도 목놓아 울었다. 23일 오후 대전교도소에서 강 회장을 접견한 임정수 변호사는 “‘평생 동지로 함께 살기로 했는데 이렇게 힘들 때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접견 시간 20분 내내 서럽게 울었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강 회장이 ‘돈 욕심이 전혀 없던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냐. 이런 세상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이어 “강 회장이 빨리 문상을 가고 싶어한다. 최근 신청한 구속집행정지신청이 받아들여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2004년 이후 회사돈 305억원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됐는데 지병인 뇌종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은 수감 중인 강 회장의 건강을 매우 걱정했다. 박 전 회장도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식사도 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검 중수부 조사실에서 만난 노 전 대통령에게 “건강을 잘 지키십시오.”라는 말이 이승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됐다. 박 전 회장은 최근 디스크, 협심증 등 건강 이상을 호소해온 만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된 건평씨는 접견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듣고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중수부는 이날 건평씨가 동생의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석방해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은 건평씨의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했다. 건평씨는 세종증권 측에서 29억 6000만원을 받고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세종증권을 인수해 달라고 부탁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으로 지난해 12월 구속수감됐고, 이달 14일 1심에서 징역 4년에 추징금 5억 7000만원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조갑제·진중권 반응…김동길의 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이 전해진 23일,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들이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고 있다.특히 노 전대통령에게 자살하거나 감옥에 가야 한다 취지의 글을 남겼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40여일 전 “자살하거나” 글에 비난 집중  김동길 명예교수는 지난달 15일 ‘먹었으면 먹었다고 말을 해야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가 5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다음의 정권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김 명예교수의 글 내용이 알려지자 여러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 순위 상위에 김 명예교수의 이름이 올라갔다.  김 명예교수의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2시30분까지 다운돼 열리지 않고 있다.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접속이 가능했던 오전 10시30분쯤에는 “본인 묘나 찾아봐라.” “말이 씨가 됐다.”는 등 누리꾼들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김 명예교수는 아직까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대표적인 보수 논객 조갑제 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노무현의 자살,남상국의 자살’이란 제목의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지금 많은 국민들은 5년 전의 南 사장 자살을 떠올렸을 것이”이라며 “인간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고 한다.그 생명의 값에는 차별이 없다.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사장을 지낸 남상국씨의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마찬가지로 노무현씨 장인의 목숨과 그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11명의 양민들 목숨값도 같다.”고 또다시 처가쪽의 좌익 전력을 결부시켰다.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은 고 남상국 사장에 대하여 조문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다.남 전 사장의 가족이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종료된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서거는 자살로 고쳐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는데…”  진보진영의 대표 논객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 애도의 뜻을 밝히며 동시에 현 정권에 대한 쓴소리도 내뱉었다.진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이란 제목의 글에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한 뒤 “케네디가 TV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면,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노무현.그의 당선엔 역사적 의미까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별로 인기는 없지만,노무현 정권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바꿔야 한다.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삽질하던 시대의 권위주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계급장 떼고 토론하려 드는 대통령의 체통 없는 태도에는 평가해줄 만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진 교수는 이어 “한나라당이야 자기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나,10년 전에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분들이 버젓이 그런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그 얼굴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 싶은 엽기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라면서도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고 쿠데타로 헌정 파괴하고 수천억 검은 돈 챙긴 이들을,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기려주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 목숨을 버리는 이들은 낯이 덜 두꺼운 사람들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MB 실용적 대북정책 돕겠다 진보서 욕 먹을 각오 돼있어”

    │아스타나(카자흐스탄) 이종락특파원│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공식 수행하고 있는 진보성향의 소설가 황석영씨는 1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중도 실용주의를 꼭 하고 싶어 한다.”면서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에)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황씨는 또 “세계의 진보 세력이 변하는 것처럼 한국의 진보세력도 변화해야 한다.”면서 “성장을 우선시하는 보수세력의 일부 논리를 수용해 성장동력을 밑에서부터 만들어 내야 한다.”고도 말했다. 황씨와의 인터뷰는 이날 새벽(한국시간) 이 대통령을 비롯한 공식 수행단이 묵고 있는 아스타나의 리소스 호텔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황씨는 이날 오전 프레스센터를 찾아 공식 기자간담회도 가졌다. ●알타이 문화연합 8~9월 발족 그는 이번 순방길에 몽골과 남북한, 중앙아시아의 문화 공동체인 ‘알타이 문화연합’ 구상과 관련,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문화계 인사들을 만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이 대통령과 동행했다. 그는 “이번 순방을 통해 알타이 문화연합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며 오는 6월과 8월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몽골을 방문한 뒤 8~9월쯤 알타이 문화연합을 발족시켜 제주도에서 첫 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동북중앙아시아 연대→공동체→연합→연방 형태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와 오르한 파묵, 북한의 소설가 황석준이 공동 참여하는 유라시아 문화인 평화열차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황씨는 진보 인사로서 이번 중앙아시아 순방에 공식 수행원으로 동행한 데 대해 “세계 체계가 권역별로 재편되고 있다. 한반도의 고립적인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 분단이 고착화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순방길에 합류하는 것을 결심하면서 진보 진영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통일·문화·환경단체에 속한 진보 진영의 여러 사람들과 얘기를 많이 했다.”며 “그들은 내가 현 정권에 활용만 당할 것이라는 충고도 해 줬다.”고 전했다. ●“남북한 대립 막는 역할 하고파” 황씨는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의 단초를 열지 못하면 남북대립이 고착화된다는 점에서 이들도 누군가는 대화창구를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내 생애 마지막 사회봉사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이 대통령의 순방에) 참여했으며 (진보측으로부터) 욕먹을 각오가 돼 있다.”며 비장함마저 보였다. 그는 이 대통령과 특별한 개인적 친분관계도 소개했다. “지난 1993년과 1994년 공주교도소에 복역 중일 때 이 대통령이 두번이나 면회를 왔다.”며 “그런 인연으로 문화올림픽(WCO)을 만들 때 이 대통령도 창설 멤버로 참석하는 등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고 전했다. 황씨가 이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촛불정국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이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 청와대에서 독대하게 됐다. 황씨는 “이 대통령이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 “(이 대통령은) ‘중도 실용주의를 꼭 하고 싶은데 꼭지를 따줄 사람(돌파구를 열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MB, 대북 추가 경제지원 확신” 황씨는 대북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오히려 화끈하게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며 “이 대통령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 도와 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대로 북한영토를 거친 러시아 가스가 도입되면 매년 북한은 1억 5000만달러(약 1900억원)를 받을 수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통한 북한의 수입금보다 많은 액수다. 황씨는 “이 대통령은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jrlee@seoul.co.kr
  • 남아공 새 대통령에 제이콥 주마 ANC총재

    남아공 새 대통령에 제이콥 주마 ANC총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새 대통령에 제이콥 주마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총재가 공식 선출됐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남아공 의회는 6일 케이프타운 의사당에서 투표를 실시, 주마 총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오는 9일 취임식을 갖는다. 주마는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철폐 이래 4번째 흑인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주마 대통령 내정자는 277표를 얻어 47표에 그친 음부메 단달라 국민회의(COPE) 후보를 상대로 낙승을 거뒀다. 남아공은 의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주마는 남아공 최대 부족인 줄루족 출신으로 1942년 3월 콰줄루-나탈 주(州) 인칸들라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슬하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7세이던 1959년 ANC에 가입했다. 1963년에는 정부 전복 혐의로 체포,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던 로벤섬 교도소에서 10년을 복역했으며 1973년 출소한 뒤 스와질란드, 모잠비크, 잠비아 등지를 오가며 조직 구축 및 정보 활동을 이끌었다. 1990년 ANC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귀국, 1995년 ANC 사무차장과 1997년 부총재, 1999년 부통령을 거쳤다. 주마는 취임식 이튿날인 10일 내각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금은방 강도 2제]7년만에 잡았다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금은방과 부유층 집만을 골라 강도행각을 벌여온 일당 4명이 사건발생 7년 만에 검거됐다. 충북 괴산경찰서는 16일 이같은 수법으로 귀금속과 현금 등 24억원을 털었던 곽모(47)씨 등 4명을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02년과 2003년에 서울과 대구지역 금은방과 부유층 집에 침입, 흉기를 휘둘러 모두 24억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2003년 8월 서울 강남의 한 금은방에서 23억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는 등 지금까지 서울지역 금은방 3곳, 대구지역 가정집 1곳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주범 곽씨는 23억원 상당의 금품을 공범들 몰래 빼돌려 6년간 태국에서 도피생활을 한 뒤 지난 13일 여권을 위조해 입국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2003년 충북 증평에서 발생한 금은방 주인 피살사건과 지난 2월 괴산 금은방 강도사건의 관련 여부 등 여죄를 캐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1986년 청송교도소 수감생활도중 알게 돼 범행을 일삼았다.”며 “전과 15범에서 30범인 이들은 주인에게 손도끼 등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흉악범”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당 가운데 3명은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괴산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김태동 “‘미네르바 판사’, 과도한 판결 전력”

    김태동 “‘미네르바 판사’, 과도한 판결 전력”

     ”’미네르바’ 사건 담당 판사는 과거 귤 10개 훔친 노인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경력이 있다.”  자신이 증인으로 나선 피고인에 대한 애정이 지나쳤던 탓일까.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박대성(31)씨 재판에 피고인측 증인으로 출석했던 성균관대 경제학부 김태동 교수가 1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잘못된 사실을 적시했다.  김 교수가 지적한 판결은 미네르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유영현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의정부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지난 2005년 12월,건설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감귤을 훔친 혐의(야간주거침입절도)로 기소된 이모(당시 63) 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사건이었다.  당시 이씨는 절도죄 등으로 징역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보름 남짓 만에 또 범행을 저질렀다.재판부는 “이씨가 법정에서 웃는 등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어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징역 8개월을 8년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가 잘못된 사실을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 외에도 재판부의 독립성과 판결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나오고 있다.박씨의 선고 공판은 20일 열릴 예정이어서 채 일주일이 남지 않은 상황이다.담당 판사의 과거 판결을 갖고 현재의 사건 재판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전날 검찰이 박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한 데 대해 “공소를 기각하거나 무죄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재판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앞서 지난달 23일 열린 1차 공판에서 변호인측 증인으로 출석했었다.  김 교수는 이어 “검찰은 정부가 지난해 말에 실제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 달러 매수를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은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원래 체포할 때의 주장을 바꾸지 않고 과다한 형량을 구형했다.”며 “검찰이 의도를 가지고 편파적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고 검찰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또 “박 씨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적도 없고 공익을 해친 적도 없다.”고 주장한 뒤 “정부는 지난해 말 환율을 낮춰 외채(를 쓰는) 기업들의 환차손이 덜 나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무리한 방법을 사용했다.이는 재정부 문건에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박 씨가 ‘9월 위기설’ ‘12월 물가 위기설’ ‘IMF 재도래설’ 등을 주장하면서 불안감을 조장했다는 검찰측 주장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공소장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안 나와 있다.”고 밝힌 김 교수는 “공소장에는 지난해 12월 29일 ‘정부가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린다’는 글과 지난해 7월 말에 쓴 글을 가지고 트집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소장에 나온 내용도 박씨가 사실에 가까운 것을 이야기한 것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공익을 해쳤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박 씨는 지난해 리먼 브라더스 도산을 예상하면서 산업은행의 인수를 반대하기도 했다.오히려 그런 면에서 공익에 기여한 것이 더 큰데 그런 이야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씨의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와 관련 “60년 전에 만들어진 사문화된 법으로 사람을 공소하는 경우는 이번이 최초”라고 반박한 뒤 “검찰이 무리하게 공소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판 결과를 우려하면서 “박씨에게 혐의를 적용할 법이 없다.”고 주장했다.1차 공판에 출석한 뒤에도 유 판사가 자신의 발언을 수없이 제지했다며 “유 판사는 나를 개·돼지 취급, 또는 ‘포로로 잡힌 적의 졸개’ 취급했다.”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책꽂이]

    ●도착하지 않은 삶(최영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시인의 네 번째 신작시집이다. ‘돼지들에게’ 이후 4년 만이다. 중견 시인이 예민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상의 모습들이 볼 만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 데뷔 때부터 즐겨 그린 소재인 혁명과 사랑에 대한 노래는 다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여전히 시니컬한 듯 발랄한 비유들이 눈에 띈다. 60여편의 시와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7500원. ●피안에 지다(이한준 지음, 시우출판 펴냄) 서울대를 46년 만에 졸업해 화제가 됐던 지은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주인공 철준이 겪는 이산의 아픔과 월북자 가족의 고통을 그린다. 철준이 사형수로 복역하는 등 고난의 길을 걷다 결국 목회자로서 북한에서 순교한다는 내용이 주된 서사다. 분단의 질곡을 종교적 구원으로 풀어보고자 한 지은이의 의도가 돋보인다. 5부작, 전체 10권 완결. 각권 1만원. ●발차기(이상권 지음, 시공사 펴냄) 소설의 주인공인 고등학교 2학년 경희가 임신한 뒤 몇 달 동안 겪는 복잡한 심경의 변화와 그를 통해 한 뼘 더 성숙해지는 이야기다. 생태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주로 써온 이상권이 텃밭을 가꾸고 닭을 키우며 익힌 생명의 신비, 생명의 소중함을 때로는 가슴 졸이며, 때로는 당당하게 자신의 처지를 개척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통해 보여 준다. 8000원.
  • 인질극 벌인 강도에 징역 ‘998년’ 판결

    납치와 마약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멕시코에서 인질극을 벌인 강도단이 무려 징역 1000년에 달하는 초강력 처벌을 받게 됐다. 지난해 멕시코시티의 한 레스토랑에서 인질극을 벌인 5인조 강도단이 1인당 998년의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현지 언론은 “각종 납치사건이 성행하는 가운데 강력 처벌의 본을 보이기 위해 멕시코시티 법원이 1000년에 육박하는 징역형을 내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섯 명 강도에 내려진 판결을 보면 피해자의 자유를 구속한 혐의(인질)가 인정돼 언도된 징역이 무려 990년이다. 이어 강도혐의로 5년 1개월 3일, 미수혐의로 3년 4개월 15일이 언도됐다. 강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하는 기간은 정확하게 998년 5개월 18일이다. 법원은 이와 함께 강도 4명에게 벌금 9만 9400달러(약 1억4000만원), 나머지 1명에겐 27만 달러(약 3억7800만원)를 물게 했다. 강도들이 경찰에 덜미가 잡힌 건 지난해 10월 30일이다. 멕시코시티의 한 레스토랑에 일부는 손님을 가장해, 또 다른 일부는 무장한 채 들어가 금품을 빼앗으며 난동을 부리다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강도단 일부는 가짜 총기류를 들고 범행을 벌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범죄심리학자 뮐러가 밝히는 연쇄살인범의 세계

    끔찍하고 치밀한 범죄의 유력한 용의자를 가려내는 데 과학수사는 필수이다. 혈흔이나 지문 같은 결정적인 증거만큼, 범죄 행적과 특징 등을 분석해 범죄 유형을 파악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것이 범죄심리분석가인 ‘프로파일러’(profiler)의 일이다. ‘인간이라는 야수’(토마스 뮐러 지음, 김태희 옮김, 황소자리 펴냄)는 이런 프로파일러의 세계로 초대한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프로파일러인 뮐러가 1982년 경찰학교에 입학하게 된 때부터 무기징역형을 받아 독일 함부르크 풀스뷔텔 형무소에서 복역중인 루츠 라인슈트롬을 만난 2003년 10월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두 차례 살인·강도 미수·감금·유괴·협박이 뒤얽힌 범죄를 저지른 라인슈트롬과 가진 대화는 이야기의 큰 틀이다. 이 안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공부하던 시절, 범죄심리학의 창안자이자 영화 ‘양들의 침묵’에 모티브를 제공한 프로파일러 로버트 레슬러와 만남, 수십건의 연쇄살인 등의 이야기를 짤막짤막하게 녹여냈다. 라인슈트롬과 차를 마시며 면담을 진행하던 중 뮐러는 1992년 11명의 매춘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야크 운터베거를 만났을 때와 같은 불안감을 느끼며 사건을 회상한다. 무방비 상태로 빠져든 뮐러 앞에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라인슈트롬에게서 완벽한 독일어 문법을 구사하는 지적인 프란츠 푹스를 떠올리는 식이다. 푹스는 3년여 동안 오스트리아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한 폭탄테러 사건인 바이에른 해방군 사건의 범인이었다. 액자구성 속에 담긴 수많은 범죄자의 공통점은 그들의 이마에서 ‘카인의 징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어쩌면 선량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웃일 수 있다. 이들의 진정한 모습은 비로소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의 독특한 인성, 성향, 이력을 파악하고 행동의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프로파일러 역할의 핵심이다. 뮐러는 “인간의 잔혹함이 표출되는 계기나 과정은 대단하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커진 불안과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직전 세상에서 버려지는 순간 인간 속 야수의 본능이 깨어난다.”고 말한다. 결국 어떻게 사회와 ‘소통’하느냐가 키워드인 셈이다. 어려운 범죄심리학을 범죄심리소설처럼 재미있게 풀어낸 것이 책의 미덕이다. 1만 3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오바마, 영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1위

    오바마, 영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1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온라인 리처치전문 회사인 원폴닷컴(onepoll.com)은 영국의 성인 4000명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설문을 실시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해 감옥에서 27년간 복역했던 만델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3위는 말기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영국 리얼리스트 스타 제이드 구디가 선정됐다. 구디는 며칠 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TV 카메라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6위를 차지했고 세계 난민 구호에 앞장서고 있는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이보다 4계단 높은 12위에 올랐다. 설문조사를 실시한 원폴닷컴의 관계자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내지 못한 것에 도전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또 이례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한 구디가 선정된 데에 대해서 “죽음에 대처하는 구디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자아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해당 순위 1. Barack Obama 2. Nelson Mandela 3. Jade Goody 4. Sir Richard Branson 5. Sir Terry Wogan 6. J K Rowling OBE 7. Phillip Schofield 8. Sir Alan Sugar 9. Dame Judi Dench 10. Sir Michael Parkinson 11. Dame Helen Mirren 12. Jamie Oliver 13. Angelina Jolie 14. Sir Elton John 15. Cheryl Cole 16. The Queen 17. Kylie Minogue 18. Lady Thatcher 19. Lorraine Kelly 20. Stephen Fry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보에 길을 묻다 7] “분당으로 양당 모두에게 도움 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사상 처음 직선제로 뽑는다는데도 국민들은 아무도 이를 모르는 사실이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다.  맞다.규약대로라면 지금 단게에서 조합원들에게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알리는 일마저 소홀했다.직선제를 도입하는 규약 개정만 해놓고 초래할 상황들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하지 못했다.크게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투표권을 전조합원에게 줄 것인지,조합비를 낸 조합원에게만 줄 것인지가 있고 두번째는 투표소 설치 문제가 있다.첫 문제는 조합비를 내야 하는 질서가 무너질 수 있고 두 번째로는 투표소 설치와 감독을 엄밀히 할 것인지,모든 조합원 사업장에 설치할 것인지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창피한 얘기지만 경남본부,대전본부, KT노조 등 부정투표 논란 등의 문제가 현재도 불거지고 있는데 투개표에 대해 감독이 제대로 안되면 필히 부정선거 시비로 갈 거다.해답을 못 찾고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선거를 연기하자,아예 직선제를 없애버리자,직선제는 가되 경선 대신 통합지도부를 구성하자,민주노동당 식으로 임원 후보가 다 나가 1위가 위원장하자 다양한 얘기가 나오는데 지도부 보궐선거 뒤에 본격화될 것이다.보궐선거 지도부가 곧바로 해결해야할 난제 중의 하나다.  ●금속노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대기업 노조의 한계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금속노조인데.  민주노총과 같은 맥락에서 금속노조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그러나 그래도 금속노조가 민주노총에서는 가장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민주노총이 파업하라면 파업하고 비정규직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고 사회문제 실천에서 앞서있다.내부에서 논란이 있지만 정갑득 위원장 기자회견에 정부나 자본측에선 콧방귀도 안 뀌었지만 일자리 나누고 지키기에 협력하자는 메시지는 민주노총 바깥에 던진 메시지에 의미가 있다.  그나마 건강성이 확보되는 것은 역사성 때문이다.87년에 주축이었고 전노협 시대 큰 싸움을 어렵사리 계속 해내 노조를 지켜냈다.여기에 정파의 순기능 덕도 있다.서로 조합원 지지를 얻으려고 경쟁하다보면 조직이 발전하는 측면도 있다.  또 체계적으로 훈련되고 학습된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이유도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의 정파간 갈등을 풀려는 움직임은.  ‘다름’의 문제를 ‘틀림’의 문제로 대응하고 판단하는 한국적 풍토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향한 비판이 내부를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지난 98년 노사정 합의와 총사퇴 이후 정파갈등이 매우 심각해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고 유회되는 등의 일이 반복됐다.선거에서의 격렬한 갈등 때문에 민주노총 힘이 반감되는 상황에 이르는 점을 보고 어느 쪽이 집행부가 되더라도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인식이 싹텄다.  사실 성폭력 파문이 터지기 전인 지난 1월21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정파들의 비공개 간담회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은 정말 불가피했나.  분당 뒤에 친한 동지가 ‘같이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운동할 사람에게 종북파란 딱지를 붙였는데 평생 괴롭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을 때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평생 안고갈 부담이라 생각했다.  선도탈당파가 내세운 분당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첫째 종북주의 문제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이 나왔을 때 민주노동당 내의 격렬한 내부 논쟁이 있었다.다수파인 자주파는 미국에 맞선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 평등파는 모든 핵을 용인해선 안된다는 것이 진보란 이유로 반대했다.일심회 때도 자주파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평등파는 공당의 정보를 북한 정보원에 넘기는 건 해당행위란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었다.  둘째 패권주의 문제인데 다수파가 선거 때마다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비 대납, 대리투표, 위장전입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상황이 몇년 간 누적된 것이다.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이 왜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거나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 아니냐고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우리로선 맞서서 타락하든가 결별하든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보았다.난 개인적으로 패권주의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통합을 하든 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통합이 안된다고 본다.그 이유는 자주파가 패권주의적인 양태를 보여왔던 것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지난 1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를 보고 다수파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쪽에서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법한데.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2001년 용산 지구당을 만들자고 해서 사업을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인천에서 100여명이 당적을 용산으로 이동하면서 빼앗아갔는데 그들 중에 결혼하지 얼마 안 된 부부에 남성들이 몇명 얹혀 사는 것이 확인됐다.대리 투표 문제가 잦아 징계도 많이 줬는데 고쳐지지 않았다.조승수 전 의원이 당대표 경선 나갔을 때는 그가 당선되면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는,사실과 다른 문자메시지를 날린 것이 확인됐다.  종북파란 안 좋은 감정을 갖고 한 표현보다는 자주파가 적절한데 분당 과정에서 그쪽의 핵심 리더를 만나 ‘절망스럽다.한 당에 같이 하려면 룰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룰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상대에게 나가버려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따졌더니 ‘몰상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판단의 차이’라고 하더라.그 때 분당을 더욱 확고히 결심했다.  ●짧은 기간 분당을 밀어붙였다면 반대로 통합할 때도 빨리 할 수 있는 힘이 델텐데.  두 달 만에 (분당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밑바닥에서 용솟음쳐 올라온 힘이 당시까지도 분당은 안 된다는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 시도당 위원장 등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역으로 민주노동당이 혁신하고 이것이 확인되면 각종 선거나 실천에서 연대하고 연합하면 신뢰감이 회복되고 하면 통합하든 상시적인 선거연합을 하든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분당했기 때문에 두 당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당선자를 못 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는데 사실 분당 않더라도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본다.노회찬 심상정이 비록 낙선했지만 나름대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분당 과정에서의 역할을 보고 지지세력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분당으로 힘이 약화됐다면) 대선 때 권영길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분당되고 나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상대보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민주노동당도 민생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진보신당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뭔가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진보신당은) 밑으로부터의 자발성이 살아났다.민주노동당 같으면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하는데 이제는 자신 소신대로,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논의를 해볼 수 있고 진보신당은 편하게 노선과 흐름에 따라 가는 거다.  우리는 ‘촛불당원’이라 표현하는데 당원 1만 5000명 가운데 60%가 새로 들어온 당원이다.민주노동당 세대 당원은 40%밖에 안 된다.새로 들어온 당원들은 “예전 민주노동당은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뭔가 칙칙해 망설였다.”고 말한다.진보신당이 뜨면서 칼라TV 같은 거,과거 같으면 ‘어느쪽에서 하지.(다른 쪽에서 하는 거라는 말 듣고) 그럼 안 되지.’하는 식으로 바로 막혔는데 지금은 제안하고 실천하면 바로 사업이 돼버리는,창의성과 역동성이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  ●앞으로 3~4년 뒤 두 당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동시에 똑같은 문제를 놓고 공방과 고민이 있을 것이다.MB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기조를 계속하면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통괄하는 반MB 전선 구축이라는 난제에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민주노동당은 반MB 전선 구축에 찬동하는 이들의 숫자가 조금 더 많을 것이고 진보신당 안에선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고 당론으로는 꿈도 못 꿀 얘기인데 대신 강한 압박을 받을 것 같다.반MB 전선에서 왜 따로 나가느냐는 강한 압박을 받을 것 같다.  이미 일부에서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반대하는 이도 있고.진보신당이 왜 그렇게 어렵냐 하면 87년 민중의 당 시절,독자적인 세력화와 비판적 지지로 갈라졌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진보신당은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계속 매달려온 사람들이어서 그런 선택은 어려울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의 앞날을 예측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민족주의 정당으로,진보신당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자유주의 연합 정당으로 위치지을 수 있다.얼마 전 여론조사에서는 당내 여론의 가장 많은 이가 사민주의로,27% 정도가 사민주의로 가자는 의견이었다.  진보정당운동 재편의 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하나이고 사노련과 사회주의정당건설 준비모임 등을 아우른 사회주의 정당으로 갈 것이냐,진보정당으로 갈 것이냐가 두 번째다.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할 만큼 내용도 실력도 없기 때문에 우회로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물론 언젠가는 사회주의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민주당과의 반MB 전선에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뜻에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그 안에서 우리 쪽으로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됐지 않은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대통합을 외치는데.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오늘의 대한민국은 기층 민중의 축과 지배세력의 축이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민중들이 끌고 가려 했던 축에 대해 인정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친일파 지배세력이 끌고 가려 했던 대한민국마저 뭉뚱그려 인정하라고 하면 잘못된 얘기라 할 수 있다.근거가 잘못돼 있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운동의 길에 설명이 필요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외람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진보정당 실험은 실패했고 미국식 양당제로 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진보세력은 민주당과 손잡고 가자,이런 식으로 주장하는데 난 동의하지 못 하겠다. ●한석호가 걸어온 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용산고를 졸업한 뒤 1983년 서강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다.아버지가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같은 노동자들이 힘들게 살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87년 6월 항쟁 때 처음 구속돼 4개월을 복역했다.박종철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서빙고분실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했다.이듬해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22년째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다.인노협 선봉대로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90~95년 전노협 선봉대와 조직 쟁의를 담당했고 96년 민주금속연맹을 조직해 쟁의 담당으로 일했고 98년 금속연맹(민주금속연맹 자동차연맹 현총련) 등에서도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서울의 경찰서란 경찰서는 다 가봤다고 할 정도로 각종 집회와 시위 등을 기획하고 주도했다.스스로도 “수만명 앞에서 선동하는 것은 겁이 나지 않은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잔뜩 긴장한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  1999년 주 40시간 쟁취투쟁과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도 구속돼 ‘별’이 세 개인 그의 복역 기간은 2년1개월로 상대적으로 짧은 편.  2004년 노조운동 진영 안의 최대 정파로 불리는,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들의 연대 ‘전진’ 창립을 주도해 임시의장,조직위원장,집행위원장 등을 맡았다.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기획 문서 ‘진보신당을 창당하자’를 작성하고 기획자 및 조직자를 차처했다.지난해부터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운동 판에서 초유의 일로 보이는 ‘노동운동과 나’란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1월24일 이후 연재가 끊긴 것은 성폭력 파문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라고 하면서 조만간 다시 시작해 연말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분당 고민하면서부터 진보신당 창당까지 시간대별로 일지를 기록할 정도로 꼼꼼한 면모가 있다.  어딜 가나 무지개 사회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평등 자유 민주 생태 여성 소수자 양심적인 기업인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다른 사상과 이념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진달래 사회주의를 하고 싶다는 얘기도 곧잘 곁들이는데 진달래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사막에 홀로 떨어져도 운동의 씨앗을 뿌리자.”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 [사설] 흉악범에 절대적 종신형 검토할 만하다

    한나라당이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같은 흉악범에 대해 절대적 종신형을 선고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감형이나 가석방, 사면이 불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완전 격리해 국민을 보호하고 범죄 예방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사형제 존폐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범죄는 점점 흉포화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조치가 사회적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말 23명이 한꺼번에 사형에 처해진 이후 10년이 넘도록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가 됐지만 이번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뜨거워진 사형제 존폐 논란에서 보듯이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은 여전히 많다. 강호순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사형해야 마땅하다는 여론도 거세지만 11년만에 사형을 재개하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법에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흉악범에 대해 무기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면 수형자의 복역 태도에 따라 감형을 하도록 하고 있다. 범죄자들 모두가 죗값을 치르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친 뒤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에 복귀해 활동한다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재범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절대적 종신형이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 끔찍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는 22일 ‘80년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던 석달윤(75·18년 복역)씨와 박공심(70·여·1년6개월형)씨, 장제영(81·2년형)씨에게 29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석씨는 “한숨과 눈물 속에서 29년을 기다렸다.”며 감격했다. 그러나 같은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김정인(당시 41세)씨는 아직 ‘간첩 누명’을 벗지 못했다. 김씨의 부인 한화자(66)씨가 남편을 대신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첫 재판조차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80년 진도 간첩단 사건’은 진도 임해면 한 어촌 마을에 모여 살던 일가족이 6·25 때 월북한 친척 박모씨를 도와 10여년간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6월 김씨 등 4명이 간첩으로 조작됐다고 결정했다. 남편 김씨의 재심 재판을 기다리는 부인 한씨는 석씨가 먼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참 좋은 일”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이내 한씨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 “날 구하려고 남편이 허위 자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가 중앙정보부 조사실에서 물고문을 받아 까무러칠 때 남편은 “마누라는 죄가 없으니 나만 죽이시오.”라고 울부짖었다. “당신과 자식들만 살 수 있으면 나는 100번이라도 누명 쓸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큰아들이 열일곱, 막내딸이 세 살이었다. 그래서 한씨는 두 달간 고문을 받았지만, 허위 자백하지 않았다. 한씨는 ‘간첩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에 시어머니(지난해 사망·91세)와 5남매를 데리고 고향 땅을 떠났다. 목포에서 식모살이, 공장 야간작업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남편의 누명을 벗기려면 자식들을 가르쳐야 했다.”고 다짐했다. 남편 김씨는 1985년 10월31일 사형이 집행됐다. 눈을 기증한 남편은 붉은 피로 뒤덮인 채 누워 있었다. 새옷을 장만할 돈이 없어 그대로 묻었다. 남편이 품고 있던 가족사진에는 ‘하느님,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십시오.’라는 기도 글이 적혀 있었다. 지난해 12월12일 한씨는 석씨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가 고문하던 중정 수사관들을 맞닥뜨렸다. 살이 찌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그러나 그들은 “28년이나 지났는데 알 턱이 있나.” “그렇지.”라고 희희낙락했다. “남편은 생명을, 나는 인생을 잃었는데 그들은 죄책감이 전혀 없더라. 남편도 무죄를 받으면 그때 이 한을 다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나도 힘깨나 썼지만 요즘같은 폭력 국회는…”
  • 살인범이 감옥서 ‘홈피’를?…英서 논란

    살인혐의로 복역 중인 한 영국남성이 감옥에서 자신의 미니홈피를 개설해 관리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영국 전역이 충격에 빠뜨렸다. 영국 대중지 더 선에 따르면 10년 전 아들 토니 해링턴을 잃은 줄리 신필드는 최근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루턴 주 감옥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던 앤드류 맥바이커(25)가 버젓이 미국판 사이월드로 알려진 페이스북 상에 미니홈피를 개설하고 운영 중이었기 때문. 더욱이 맥바이커가 수감된 독방에서 촬영한 ‘셀카’(스스로 찍은 사진)로 추정되는 사진 여러 장을 미니홈피에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발견돼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잃은 신필드는 “10년이 지났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감옥에 있어야 할 살인범이 버젓이 인터넷상을 휘젓고 다녔다는 생각에 참을 수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맥바이커가 미니홈피를 운영한 것은 불법으로 가지고 들어온 휴대폰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며 해당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그는 증거를 인멸하고자 지난 주 해당 미니홈피를 자진 삭제했다. 이에 법무부는 “수감된 죄수들의 인터넷 접근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고 단언하고 맥바이커 역시 휴대폰을 반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의 네티즌들은 죄수를 허술하게 관리 감독한 해당 기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수감이란 신체적 구속만이 아닌 사이버 상에서의 격리도 해당된다.”며 “상처가 아물지 않은 피해자 가족들과 제 3의 범죄 모의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더 철저히 관리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맥바이커는 지난 1998년 19세였던 해링턴을 친구들과 폭행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과 전력 경비요원 활보 ‘무방비’

    전과 전력 경비요원 활보 ‘무방비’

    지난해 경호·경비 및 보안업체 직원들의 잇따른 범죄행각이 사회문제로 부각돼 경비업체 설립조건 등을 강화한 규정이 새로 마련됐지만 영세 시설경비업체들의 난립과 당국의 관리 소홀로 자격미달 요원들이 적지 않아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이들이 가스총, 전기충격기와 같은 무기도 소지할 수 있어 강력범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경비업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시설경비업체 등록을 위해선 자본금 1억원 이상, 등록직원 20명 이상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또 기준 경비인력을 동시에 교육할 수 있는 교육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준은 설립 인허가 신고 때만 갖추면 그만이다. 주무관청인 경찰은 일선 경찰서 단위로 1년에 2회 이상 관할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 기준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대상업체가 많고 단속인력은 부족해 업체들은 점검시에만 기준을 맞추기에 급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31일 현재 운영 중인 경비업체는 3043개, 경비원은 14만 2457명에 이른다. 경찰청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16일 “업체 수에 비해 단속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업주들의 준법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확인결과 업체들은 경비원 채용시 경비업법상 자격요건을 모르거나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인터넷에 채용광고를 낸 10개 경비업체 중 7개 업체는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는 뽑을 수 없다는 경비업법 조항을 무시했다. 10개 업체는 모두 요원 채용시 필수적 절차인 결격사유 여부에 대한 경찰조회를 요청하지 않고 있었다. 한 업체는 “폭력으로 6개월 복역했더라도 3년 전이면 상관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허술한 인력채용체계 때문에 이른바 ‘화려한 전력’의 요원이 건물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일 요금 시비로 택시기사를 폭행한 L빌딩 보안요원 A(39·폭행 등 9범)씨와 B(29·상해 등 7범)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또 서울 중부경찰서는 15일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며 건물 앞에 주차한 회사원을 폭행한 보안요원 C(30·폭력전과)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구로경찰서도 16일 자신이 경비를 맡은 사무실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훔친 보안업체 직원 D(2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비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가스총, 전기충격기 등 호신용 무기 관리도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기가 1개라도 여러 명이 교대로 사용하면 업체는 사용자 전부를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또 사용자가 바뀔 때마다 신고를 다시 해야 하지만 업체들이 이 규정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에서 자발적으로 사용자 변경 신고를 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다.”면서 “위반해도 10만원 정도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경비업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정부가 우수 업체를 지원하는 동시에 안전기준을 지키는지 철저히 감독하는 ‘채찍과 당근’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한 청장이 국세청 차장시절 선물로 준 것이라 전해 들어”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미정씨로부터 이 작품의 위탁판매를 요청받은 서울 평창동 가인화랑 홍가인 대표는 12일 “이씨가 이 작품의 입수 경위와 관련해 ‘한상률 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 시절에 선물로 집으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면서 “이씨가 ‘요즘 생활이 너무 어려워져 팔아 써야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은 수뢰 혐의로 지난해 12월 유죄가 확정돼 복역중이다. 다음은 홍씨와의 일문일답. →이미정씨는 미술품 수집가인가? -그림을 사모으는 컬렉터가 아니다. 그림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로부터 작품을 위탁받은 시기는? -이씨가 작품을 가져온 시점은 지난해 11월이고, 위임장을 써준 것은 12월8일이다. →이씨가 누구의 작품인지 알고 있었나? -그렇지 않다. 이씨는 작품을 가져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최욱경의 작품’이라고 알려줬다. 그러고는 이씨에게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봤다. 이씨는 ‘직접 구입한 것이 아니라 한상률 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 시절 선물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씨가 왜 작품 판매를 위탁했다고 보나? -요즘 생활이 너무 어려워져 팔아서 써야겠다고 했다. 비싸냐고 물어봐서 나도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최욱경의 작품은 현재 어느 정도의 가격에 거래되나? -2005년경 K갤러리에서 20주년 회고전을 가졌다. 당시의 가격을 참고하고 옥션 낙찰가 등을 확인해보니 5000만원 정도는 하겠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책정한 가격에서 10~20% 정도 할인하면 판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품 판매를 의뢰한 고객에 대해 언론에 먼저 이야기했나? -그렇지 않다. C일보에서 지난 12일 오후 위탁자의 이름까지 알고 와서 이것저것 물어봤기 때문에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사정당국에서도 연락이 왔었나? -연락 온 것이 없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주대환 그는 누구인가

    ‘네 차례 투옥에 세 차례 낙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에 따라다니는 이율배반이면서 서로 맥이 통하는 꼬리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지적 설계자’ 그리고 정당운동 이론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했다. 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네 차례 복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획했고 2004년 6월 정책위 의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분당 때 당적을 정리하고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좌파 진보의 새 활로 모색에 열심이다. 지하조직 경력과 달리 그는 부드럽다. 말할 때도 한참 생각한 뒤에 어렵게 한땀 한땀 내뱉는다. 지난해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가 참 오래 생각하는 좌파란 것을 감지할 것이다. 2시간 인터뷰 며칠 뒤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내 말하지 못했던 바를 부연했다. 그런 사람이다. 1982년 이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인이 생계비를 댔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활동했단다. 처남이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아들 둘은 모두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댔고 대학 교육은 ‘대한민국 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 왜 진보에 길을 묻나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15일자에 게재되는 2회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단과 전망,다음달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진 정부 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등에 대해 들어본다.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문일답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말이 없는 사람,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는데 선거에 몇번 나가는 바람에 많이 극복이 되신 건가요.  “아마도 지하조직 생활을 많이 해서,지하조직 생활이라는 게 항시 미행이라든지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조직원들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질 못하고 특히 저는 조직에서 중요한 핵심부에서 활동하니까 거의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생활을 오래 했지요.그래서 습관이 그렇다는 거고.선거를 세 번이나 출마하면서 대중화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산이 집이니까 마산에서 살고 제 아내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저는 말하자면 주부지요.남성주부.글쎄 오래된 것 같은데 전 전업주부라고 주장은 하는데 제 식구들이 전업주부로 인정 안해주고 반업주부로 인정하지요.”(웃음)  -책 같은 것도 사모님 버시는 걸로 사시는 건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처하고 저는 결혼생활 28년 됐는데 돈 만원도 서로 빌리면 반드시 갚습니다.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활동비는 한 푼도 제 아내한테서 받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들 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그때부터도 제 자신의 마음 속에 여성적인 면도 있지 않나,저 자신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그게 상당히 싫고 그렇더라구요.”  -책을 보신 분 가운데 안 좋은 반응이 있다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서.제가 조금 실망스러운 반응 같은 거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든지,너무 쉽다,피상적이다 하는,조금 더 깊은 연구를 바란다 이런 것이었습니다.저로선 결코 쉬운 얘기들이 아니다.저로선 굉장히 많은 용기를 내서 오래 생각을 해서 한 얘기인데 예를 들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오랫동안 생각하고 평생을 탐구하니깐,한 후에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결국 상식으로 돌아온다.이제 상식으로 돌아와서 하는 얘기를 그저 흘려 들으면 듣는 사람 몫이겠지요.”  -책을 쓴 동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저와 같이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도 먼저 가신 분들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뭔가 새롭다기 보다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또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잘못됐는가 이런 것들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갈 어떤 방향이라도 제가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유일한 관심사고 희망이지요.제가 말하자면 먼 훗날의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든지 한계라든지 반성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겠지요.”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이로선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얘기는 굉장히 길 수도,복잡할 수도 있는데요.우선은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국민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등을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국민 대중들은 어떻게 보면 얄밉도록 이기적인,대중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보는 거든요.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건국할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아니 뭐 어쩌면 절대적인 게 없다고 전제한다면 상대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만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 대중의 정서고 관점이고 느낌일 것 같습니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또 대중이 왜 그렇게 보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되겠지요.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부터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습니다.이 토지개혁이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는 한계가 있다,동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건 대단하지 않다.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자 이거지요.이런 일들은 수백년에 한번 일어날 만한,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세계사적으로도 볼 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필리핀 같은 데서는 토지개혁이 항시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제시됐지만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지요.기득권 저항도 거세고 하기 때문에.전 농민이,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나눠 가졌다는 엄청난 거지요.”  정리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주대환 누구인가  ‘네 차례 투옥에 세 차례 낙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에 따라다니는 이율배반이면서 서로 맥이 통하는 꼬리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지적 설계자’,그리고 정당운동 이론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했다.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네 차례 복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획했고 2004년 6월 정책위 의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분당때 당적을 정리하고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좌파 진보의 새 활로 모색에 열심이다.  지하조직 경력과 달리 그는 부드럽다. 말할 때도 한참 생각한 뒤에 어렵게 한땀 한땀 내뱉는다. 지난해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가 참 오래 생각하는 좌파란 것을 감지할 것이다. 2시간 인터뷰 며칠 뒤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내 말하지 못했던 바를 부연했다. 그런 사람이다.  1982년 이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인이 생계비를 댔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활동했단다. 처남이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아들 둘은 모두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댔고 대학 교육은 ‘대한민국 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 주대환의 못다한 얘기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며칠 뒤 주대환 대표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하고싶은 얘기를 다 못했다는 취지였다.해서 그의 못다한 얘기를 정리했다.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쓰면서 돌아보니 저희들 세대는 5.16의 밥을 먹고 4.19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습니다.5.16과 4.19를 다 취한 것이 현명한, 아니면 똑똑한,아니면 탐욕스런, 아니면 교활한 이 땅의 민중이었습니다.이 민중의, 백성의, 국민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지만 이 말에는 정치하는 사람이 받들어 모시고 따라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바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하여 알기 어렵다는 뜻도 있다는 것이 저의 독창적(?)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반성과 사색 끝에 “”상식“”으로 돌아가서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장석준(진보신당 정책실장)은 전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직”“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삼고 싶습니다.  저는 다만 정직하게 제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정치적 고려나 누구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혀를 꾸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마치 제가 좌파의 내부고발자라고 되는 듯이 비치고 오늘도 조선일보 논설위원 어느 분이 칼럼에 저를 거명했다던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유럽형 복지국가를 만들지 않고서는,선진국으로 갈 수 없는 현재의 한국에 꼭 필요한 이념입니다.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니 마니 하는 따위의 ”“공론(空論)”“이나 ”“허언(虛言)”“을 일삼는 좌파가 아니고 당장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몰두하는 좌파의 정치철학입니다.  그리고 오랜 역사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풍부한 정책을 가진,국민 대중 모두에게 공신력있는 정치 이념이고,더욱이 해석의 폭이 넓어서 다양한 좌파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철학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해오던 노동당을 포기한 저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나이도 이미 많은 제가 일체의 정치적 사심을 버리고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에게 이제 자기의 정체성으로 고백하자, 정체성으로 돌아가자,아무런 세속적이거나 정치적 고려없이 자기의 정체성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모여 보자 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안야당이 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바로 그런 힘이 형성되어야 좌파의 재구성도 이루어지고 대안야당의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어 일이 제대로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즉 뉴라이트의 <선진화재단>이나 <시대정신>이 보수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전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현실의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온갖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그런데 새삼 보니 “”평등“”이라는 유전자가 너무나 뚜렷하더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평등“‘이란 유전자는 한강의 기적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이니 우파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좌파는, 만약 민족주의에 포획된 엉터리 좌파가 아니라면 ”“평등”“”이라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대한민국 속에서 발견하고 또 그것이 가진 힘을 발견하니 매우 반가운 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현명하고 똑똑한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대한민국을 긍정하니,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긍정하는 대한민국을 좌파도 긍정하자는 것이고,그들이 긍정하는 이유로, 긍정하는 만큼만 긍정하자는 것입니다.“”인민과, 국민과 함께하는 좌파“”가 되자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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