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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공항길 유니폼 승무원

    [길섶에서] 공항길 유니폼 승무원

    며칠 전 출근길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깔끔한 승무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을 에는 듯한 날씨에 얇은 패딩을 걸치고 발등이 드러나는 구두를 신은 모습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항공사가 유니폼 차림의 출근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공항터미널에 공간의 제한으로 환복실이 제공되지 않아서 유니폼 차림으로 출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두꺼운 겨울 패딩과 사복, 방한용 부츠 차림으로 출근할 수도 있겠지만 공항 화장실에서 갈아입어야 하고 사복을 넣어 항공기에 실을 수 있는 가방 무게도 제한돼 있다고 한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 회사 홍보 등을 위해 승무원 복장 출근이 의무화된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차림으로 출근하며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회사 로고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버스, 지하철에 오르면 행동 하나에도 조심스러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니 피로감도 누적될 것이다. 한겨울만이라도 승무원들이 추위에 떨며 출근하지 않도록 근무여건이 개선되면 좋겠다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들었다.
  • 7305일을 함께한 반려동물과의 이별 [김유민의 노견일기]

    7305일을 함께한 반려동물과의 이별 [김유민의 노견일기]

    스무 해를 함께한 작은 존재의 숨소리가 서서히 약해져갔다. 이따금씩 서럽게 울어댔고, 다리의 모든 근육이 풀려서는 걷고 싶다고 허공을 휘저었다. 아직 걸을 수 있다고 발버둥쳤지만, 조금도 걷지 못했다. 안 그래도 작은 녀석이 그 좋아하던 밥을 먹지 않은 지 닷새가 됐고, 새가 되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품 안에 안고 있어도 곧 사라질 것만 같아 조금 더 끌어안고 싶어졌다. 노화와 죽음은 정해진 속도가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날은 어제와 같고 어느 날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길 반복한다. 온몸으로 거부하던 기저귀는 한 몸이 된 지 오래고, 먹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던 녀석은 어느날 갑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과 가까워진 생명을 지켜보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나 투명하게 느껴진다. 두 귀를 휘날리며 뛰어오던 때는 잔뜩 신난 모습으로 가족을 웃게 했고, 두 눈을 감고 누운 채 지내게 되면서는 편안한 표정으로 가족을 위로했다.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그 사랑 속에 기꺼이 늙어 가는 존재. 함께 있으면 나의 개가 더는 젊지 않다는 것도, 여기저기 아프고, 구석구석 못나졌다는 것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늙은 개와 함께하며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에 집중했다. 예쁘게 미용을 하고 옷을 입히기 바빴던 지난날보다 품에 안고 토닥토닥 바람을 쐬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다시 오지 않고, 내일 역시 알 수 없기에 그저 순간을 살아가라고, 늙은 개와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알려 주었다. 2001년 어린이날 선물처럼 만난 생명은 2021년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밤 아주 멀리 떠났다. 흐리고 먹먹한 하늘이 거짓말같이 개인 날이었다. 마지막 숨이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엄마를 기다리고 그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눈을 감았다. 잘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보드라운데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사람 나이로 백살이 된 개는 숨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을 전해주고, 떠나서는 그리움도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복실이가 떠난 지 240일이 지났다. 20년 가까이 부르던 이름이 하루가 다르게 멀어져간다. 이제는 마음 편히 약속도 잡을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더는 늙고 아픈 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때때로 허전하고 서운하다. 7305일을 함께한 반려동물의 죽음은 누군가의 부재가 곧 누군가의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방 한 구석은 참 휑하고, 항상 누워있던 그 자리는 참 슬프다. 갑자기 받아든 슬픔의 무게는 무척이나 무겁고 힘겨운 것이어서 그저 버티며 아주 조금씩 흘려보낼 뿐이다. 함께 걷던 길, 흙을 밟으며 그리움도 함께 꾹꾹 누른다. 슬프지 않아도 되는 삶을 부러워하기엔 지난 날이 너무 행복했다. 기꺼이 견뎌야 하는 내 몫의 슬픔일 것이다. 다시 만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잘못해서 떠나고 잘해서 남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어딘가, 어떤 날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한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어린이날 선물로 강아지를 사지 말아주세요

    어린이날 선물로 강아지를 사지 말아주세요

    강아지공장과 펫숍… 사지 않아야 사라집니다20년 행복한 반려 생활 위해 신중히 준비해야 [김유민의 노견일기] 19년 전 어린이날 복실이와 가족이 되었습니다. 푸들이나 시추, 말티즈 같은 작은 강아지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에 강아지가 생겼다는 게 기뻤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반려의 자세나 문화가 정착되기도 전에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생겨났고 몇 년 후에 그 강아지들의 안부를 물으면 시골로 보냈다느니, 다른 집에 줬다느니 하는 답변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이 늘었고 그 만큼 반려문화도 성숙해졌지만 아직도 “강아지나 한 마리 사줄까요?” 하는 질문이 많이 옵니다. “우리 집에도 어릴 적에 개가 있었는데 엄마가 털 날린다고 다른 집에다 보내버렸어요.” “애가 너무 활발해서 피곤해요. 좀 데리고 가세요.” “작은 줄 알고 샀는데 속았어요.” 생명을 물건처럼 샀다가 아무 죄책감도 없이 그 책임을 저버렸다고, 저버리게 될지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어린이날에 동물을 사주기로 약속하셨나요? 동물을 ‘사는’ 것이 얼마나 안 좋은지를 말하기에 앞서 아이들 성화에 일단 사주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동물을 구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동물을 예뻐할 순 있어도 제대로 돌볼 수 없습니다. 공원에서 어린 아이와 산책을 하는 개가 불편해보일 때가 많습니다. 개의 특성상 주변의 냄새를 충분히 맡게 해주고 보폭을 맞춰야 함에도 킥보드에 리드줄을 연결해 헐떡거리는 개를 질질 끌고 가거나, 누가 봐도 개를 올바르게 안지 않고 허리에 무리가 가게 들어 올려 가기도 합니다. 배설물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가서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개를, 한 생명을 어떻게 반려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충분한 준비 없이 반려동물을 입양했을 때의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에게 갑니다. 그 부담을 핑계로 키우던 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유기를 했을 때엔 자녀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동물은 키우다가 부담이 되면 버려도 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겨날지 모릅니다. 자녀가 동물과 함께하며 자신보다 약한 생명을 돌보고 그로 인해 더 큰 사랑을 주고받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하고 싶다면 부모가 20년 동안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아이에게 벌레를 밟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벌레를 위한 것만큼이나 그 아이를 위해서도 소중한 가르침이다. - 브래드리 밀러사지 말고 입양해야 하는 이유는 강아지 관련 카페에 들어가 보면 ‘가정 분양’이라는 제목으로 펫숍 판매자들의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펫숍 분양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신종 수법으로 동물을 사고파는 겁니다. 동물을 처음 키우는 가정에서는 속기 쉽습니다. 작을수록 가격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티컵 강아지’라며 세상에 없는 종류를 만들기도 합니다. 작은 강아지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겨냥해 업자들은 인위적으로 빨리 출산하게 하거나, 약하고 작은 개체끼리 교배를 시킵니다. 그렇게 태어난 강아지가 더 자랄 수 없게 아주 소량의 음식만을 먹입니다. 그렇게 나온 ‘티컵 강아지’는 각종 질병과 유전병에 노출돼 막대한 병원비가 들고 수명 역시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동물병원과 펫숍에 진열돼있는 작고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통 속에 출산했을 어미견과 그 어미견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야 함에도 상품성을 위해 적게 먹고 빨리 떨어진 새끼. 팔리지 못하고 좁은 진열장에서 몸이 자라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끔찍한 시스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판매를 위해 생산된 강아지는 어미 개와 이른 분리로 인해 문제 행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격성과 사회성 뿐 아니라 배변문제 역시 이로 인해 발생합니다. 문제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 큰 문제인 유기로 이어집니다. 동물행동학 전문가들 역시 어미 개와 이른 분리를 한 강아지의 경우 문제 행동 발생률이 최고 2배까지 상승한다고 말합니다. 어리고 귀여운 강아지의 처음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전체 유기동물의 40% 이상이 2세 미만의 어린 강아지이고, 대부분 배변훈련 등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가족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2년 전 입양한 유기견의 다친 다리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녀석은 사랑받은 만큼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과 뿌듯함을 느낍니다. 잠깐의 비난과 슬픔은 강아지공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지 않아야 사라집니다. 인식 개선 뿐 아니라 21대 국회에서 법으로도 만들어져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인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지 말고 입양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올바른 반려문화를 통해 행복한 반려동물, 반려가족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잠시 멈춤’이 준 반려동물과의 시간

    [김유민의 노견일기] ‘잠시 멈춤’이 준 반려동물과의 시간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잠시 멈춤’ 캠페인이 한창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모두가 접촉 반경을 최소화하며 애쓰고 있다. 기업들은 재택근무 기간을 연장했고 학교는 개학을 미뤘다. 재택근무로 인해 반려동물과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 끝났던 점심시간은 부모님과 밥을 먹고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하는 시간이 됐다. 강아지들이 코로나 사태의 뜻밖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일정 시간을 정해 놓고 반려동물의 부족한 활동량을 채워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시간이 좀 길긴 해도 “행복아”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는 강아지의 애교에 절로 힘이 난다. 반려견과 함께 출근하는 직원들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해소돼 업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직업 만족도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틀리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올해 열아홉 살이 된 복실이의 느리고 힘든 하루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사람 나이로 치면 90대인 복실이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린다. 지난해만 해도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서 있기도 힘들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보내는 녀석은 대소변이 마려울 때마다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 도움을 청한다. 유심히 지켜보다 일으켜 세워 볼일을 보게끔 하는데 다리 힘이 없어 손으로 받쳐 주지 않으면 철퍼덕 주저앉아 찝찝함에 운다. 이런 녀석을 두고 현관을 나설 때 불편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다. 하루 한 시간의 산책은 일 년으로 치면 고작 15일. 나머지 350일의 대부분은 개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거의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한다며 좋은 주인이라고 뿌듯해했지만 거의 매일 몇 시간을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개에 비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적인 위기가 닥친 줄도 모르고 그저 함께 있어 신이 난 반려동물을 보며 사회생활을 핑계로 가족이 전부인 녀석들에게 자주 무심했었음을 느낀다. 모두가 힘들지만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이겨냈을 때 달라질 풍경이 내심 기대가 된다. 개인 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손을 자주 씻고, 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기침 증상이 있을 땐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돼 있지 않을까.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무임에도 출근하는 게 마땅하다 여겼던 스스로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출퇴근 지옥철에 몸을 밀어 넣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편한 옷을 입고 편한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꽤나 효율적이라는 걸 느낀다. 앞으로는 출근의 형태도 보다 다양해지지 않을까. 아이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언젠가는 함께 출근해도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올 수 있을 것 같다. planet@seoul.co.kr
  • [동물이몽] 노견 가족이 말해요 “나보다 먼저 늙어버린 내 동생”

    [동물이몽] 노견 가족이 말해요 “나보다 먼저 늙어버린 내 동생”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보다 5~6배 빠르게 흘러간다고 합니다. 나보다 작고 어렸던 강아지는 눈 깜짝할 사이 나보다 늙어버리는데요. 또렷한 눈동자는 백내장으로 앞이 보이질 않고, 신나게 달렸던 산책길을 이제는 유모차에 타서 다녀야 합니다. 18살 복실이의 누나 김유민 씨와 14살 다롱이의 언니 이유림 씨는 복실이와 다롱이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개도 노견이 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복실이와 다롱이가 노견이 되면서,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반려견과의 일상은 180도 변했습니다. 아파하는 모습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가, 생기 넘치는 순간엔 안도하기도, 또 부쩍 다가온 이별의 순간에 슬퍼하는 감정이 반복됩니다. 늙은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복실이 누나와 다롱이 언니가 ‘사랑하는 나의 늙은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글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영상 김민지 문성호 sungho@seoul.co.kr [동물이몽] 시리즈는 입양하려는 동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시작하자는 취지로 기획됐습니다. 반려동물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 관련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반려인들이 직접 알려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 [김유민의 노견일기] 개 나이 열아홉, 고맙고 소중한 ‘오늘’

    [김유민의 노견일기] 개 나이 열아홉, 고맙고 소중한 ‘오늘’

    하루의 절반을 멍하니 보냅니다. 새벽에 수시로 깨어 빙글빙글 돌거나 구석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방향감각도 잃고, 인지기능 장애로 이유모를 행동들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내년이면 열아홉 살이 되는 뭉치의 이야기입니다. 치매가 걸린 노견은 사람 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떠나보낼 수 없는, 가장 충직하고 약한 존재. 20년 가까이 함께한 뭉치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2000년 친척의 개가 새끼를 낳았고, 그 때 만난 뭉치는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 그 후로 10년 넘는 직장 생활과 결혼, 몇 번의 이사와 2002년 한국 월드컵, 이번 올림픽까지 보게 되었네요.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랑스러운 뭉치는 많이 아프답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젠 약으로 연명하고 있어요. 신장, 간, 췌장에 생긴 염증 때문에 하루 먹어야 하는 약도 한 움큼이고, 신나게 뛰어다니던 서울숲도 잘 걷지 못해 품에 안겨 산책을 합니다. 어떤 날은 다리에 힘이 없어 소변을 보고 그 위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기도 해요. 화장실 문을 몸으로 열고 들어갈 정도로 배변을 잘 가리는 똑똑한 아이였는데 이젠 아무데나 소변을 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루하루 살아있음이 고맙고 소중합니다. 뭉치의 병간호가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마음의 준비도 하게 되고 유기견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보호소에 아프다고 버려진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아프고 늙은 개와 함께 하며 뿌연 눈이 어느 눈동자보다 귀엽고 예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친구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뿐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제겐 ‘오늘’이 참 소중합니다. 우리는 개에게 줄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을 주고 우리가 내어줄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주고 우리가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준다. 그 답례로, 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준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거래다. - 마저리 패클럼 - 뭉치엄마(@moongchi_thepom)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아홉 살의 첫 친구, 슈슈를 잃고

    [김유민의 노견일기] 아홉 살의 첫 친구, 슈슈를 잃고

    아홉살이던 2001년,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이 데려온 작고 하얀 친구, 슈슈. 8년을 살다간 녀석을 생각하면 그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17살이 되던 해 이사를 가게 되면서 집의 공사기간 때문에 한 달을 집 없이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되었고, 슈슈는 동물병원에 머물게 됐습니다. 아빠의 지인이 하는 동물병원에 맡기느라 집과는 거리가 멀었고, 고등학생인 저는 자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또한 일하느라 자주 가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나 새 집으로 데려오려고 동물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은 슈슈가 밥을 거의 먹지 않았고, 그게 주인이 너무 오래 두고 가서라고 하셨습니다. 한 달 동안 동물병원 작은 케이지 안에서 먹고, 싸고 너무 힘들었던 슈슈는 새 집에 와서도 일주일간 밥을 먹지 않고,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그냥 계속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되던 일요일 아침 슈슈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동안 새 공간이 낯설어서 안 먹었구나 싶었습니다. 혹여 잘못될까 싶어 데려간 병원에서는 하루 정도 지켜본 뒤에 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슈슈야, 검사 잘 받고 내일 데리러 올게.” 문을 나서려는데 ‘왈왈’ 두 번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드디어 힘을 내는 구나 싶어 안도했는데 다음날 의사선생님은 슈슈가 간이 안 좋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슈슈는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어 무섭고 외로웠을 텐데, 마지막으로 짖은 건 가지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때 우리가 이사를 안 갔더라면, 공사를 빨리 마쳤더라면, 먼 동물병원이 아닌 가까운 동물병원에 맡겼더라면... 많은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가족 모두 서툴러서, 처음이어서 슈슈의 마음을 몰라줬던 것 같습니다. 슈슈와 같은 말티즈 백군이를 키우는 지금, 그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이 미어집니다. 사춘기를 함께 보냈던, 첫 반려견이었고 친구였던 슈슈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너에게 미안함뿐이야. 너의 이름만 보아도, 쓰고, 듣기만 해도 아직도 울어 나는. 어린 내가 너를 잘 챙기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미안해. 이렇게 생각날 때마다 울면서 기억할게.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너는 좋은 짝꿍이었어. 그립고 또 그리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슈슈야. 고마워. 보고 싶다. 부모님도 아직 너를 그리워 해. 우리 다음에 또 만나면 그 땐 떨어지지 말자. 하늘에서는 아프지 마. - 슈슈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15살 짱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

    [김유민의 노견일기] 15살 짱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

    군대를 갔다 오니 집에는 새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던 어머니였지만 여동생이 데려온 작고 예쁜 녀석을 내칠 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습니다. 몸이 편찮으셨던 아버지가 산책 중에 목줄을 놓치면서 한 순간에 녀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온가족이 전단지를 돌리며 함께 있었던 공원과 그 주변을 찾아다녔지만 강아지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들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어머니는 강아지를 잃어버린 그 공원에 가서 한참을 울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 4남매는 상심이 큰 어머니를 위해 녀석과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그 때가 2003년, 짱아를 만난 해입니다. 어머니는 강아지를 잃은 아픔에 짱아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했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열었습니다. 워낙 강아지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짱아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우리 4남매는 바쁘다는 이유로 짱아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습니다. 짱아가 오고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 육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짱아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제가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짱아는 다른 강아지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고, 소심한 성격 탓에 어딘가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강아지였습니다. 항상 잘해주고 싶었지만 애정표현에는 서툴러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못해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13살이 된 짱아와 함께 독립을 하였습니다. ‘강아지 아무나 키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실감하며 대소변을 치우고 밥을 챙겼습니다. 퇴근 후 돌아오면 짱아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말티즈 특유의 도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짱아에게 따뜻한 인연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짱아를 돌봐주고, 산책해주고, 애정표현도 해주었습니다. 미용을 다녀오면 스트레스로 일주일간 밥을 안 먹는 짱아를 위해 직접 미용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는 짱아 배에 혹이 만져진다고 했습니다. 유선종양이었습니다. 병원마다 수술을 해야 한다, 14살엔 당연한 증상이다 등 말이 달라 선택이 쉽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나이가 많기에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병원을 수소문했고, 악성종양이 아니기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면서 지켜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짱아와의 이별이 현실로 와 닿는 순간이었습니다.별 탈 없이 지내던 짱아는 올해 초부터 조금씩 안 좋아졌습니다. 간식이나 사료에 흥미를 잃었지만 산책시간만큼은 활발해지기에 병원을 하루 미루고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떠난 바다. 15살 견생에 처음 본 바다에서 짱아는 실컷 뛰어다녔습니다. 기분이 좋았는지 산책 나온 강아지들하고도 어울려 놀았습니다. 바다에서 노는 짱아를 보고 우리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날 이후 시작된 짱아의 투병생활.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의 짱아는 자궁축농증 수술을 하고 한 달 사이에 많이 늙어버렸습니다. 회복은 잘 됐는데 이번엔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알게 됐습니다. 완치라는 게 없고, 먹으면 안 되는 게 많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유식을 만들어 주사기로 입에 넣어 먹이고, 황태물 을 만들어 먹이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히고... 늙고 아픈 강아지를 챙기며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비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원체 조그만 녀석이 투병생활을 하며 뼈만 남았습니다. 안으면 부서질 것 같은 체구로 먹는 것도 힘겨워하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조카가 어릴 때 아파서 병원을 다녔는데 그 때 여동생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병원에서는 한 시간 뒤에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녀석은 오랜만에 여자친구를 보자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15년.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짱아한테 인사를 했고, 짱아는 혼자 남은 어머니 방안에서 항상 어머니 옆을 지켜주었습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조카 옆에서 아장아장 함께 산책하던 모습. 여자친구와 바다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아련하게 저를 쳐다보던 모습. 가슴을 뾰족한 것으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마트에 갈 때 짱아 것을 더 이상 안사도 될 때, 음식을 배달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난리피던 녀석이 없어 조용할 때. 괜찮다가도 불쑥, 순간순간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제 더는 아프지 않을 테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그 순간들을 달래봅니다. 짱아야,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 만나서 고생 많았어. 꼭 아빠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애기때처럼 산책도 다니고 편안한 모습으로 지내길 바래. 언제까지나 기억할게. - 짱아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늙은 개와 세 번째 이별을 앞두고

    [김유민의 노견일기] 늙은 개와 세 번째 이별을 앞두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제일 먼저 기른 녀석은 몇 년도에 왔는지도 가물가물해졌습니다. 지금은 사십이 다 된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에게서 선물처럼 받아온 녀석이었습니다. 흰 바탕에 검고 누런 점이 박힌, 아주 똘똘해 똘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바둑이. 외출하면 담벼락 위에 올라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바람에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새끼도 낳고 그렇게 16년을 살다가 심정지로 몇 번 쓰러져 놀라게 하더니 먼 길을 떠났습니다. 늦은 밤, 침대를 오르지 못하고 마냥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다 아침에 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딸 아이 품에서 갔습니다. 군대 간 아들한테 제일 먼저 알리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흘렸습니다. 정을 떼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생명이지만 가족이었기에 우울한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피부병이 심해 몇 달이 지나도 입양을 가지 못했다는 슈나우저 한 마리를 안고 왔습니다. 꼬불꼬불 까만 털에 눈썹은 하얀 녀석은 사람을 보자마자 온 마음을 내어줍니다. 얼굴을 핥으며 난리를 피는데 웃음이 나옵니다. 까미는 얼마나 굶었던 건지 쓰레기통을 뒤지는 나쁜 버릇이 생겼습니다. 식탐이 심해 시아버지 제사상에 쓸 두부며 베란다에 내놓은 음식까지 입을 댔습니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휴지는 흩어져있고 쓰레기통은 쓰러져 있었고, 신발도 물어뜯었습니다. 혼자 있는 상태가 몹시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똘순이는 짖기 바빴었는데 까미는 침대 밑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얼뜨기였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산책을 했습니다. 함께 걷는 날들만큼 까미는 점점 의젓하고 침착해져 갔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과 인연을 이어가는 일. 똘순이를 잃은 슬픔을 서서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까미와 산책을 하는데 개 두 마리가 건축더미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습니다. 건축자재, 컨테이너박스, 쓰레기가 쌓인 곳에 요크셔테리어 두 마리가 보였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개들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밭을 일구던 사람이 주인이겠지 했는데 누군가 내다버린 녀석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차에 반려견을 데려와 공터에 유기했고, 두 녀석은 두 달이 넘게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유기견센터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녀석들은 손에 망을 든 직원을 보고 어딘가로 숨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한 마리가 슬금슬금 나와 제 앞에 배를 보이며 벌러덩 누웠습니다. 저한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믿는 녀석의 몸짓을 외면할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진드기 벌레약도 바르고, 눈을 덮어버린 털도 다듬어주고, 밥그릇도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까미가 텃세를 부리니 입을 삐죽거리며 언저리를 빙빙 돌았습니다. 남아있던 한 녀석도 우리 집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기에 녀석도 씻기고 다듬어 농사짓는 좋은 집으로 입양을 보냈습니다.까미와 예삐. 두 녀석의 틈바구니에 외손자도 함께 자랐습니다. 양쪽에 끈을 매 산책시키는 일도 버거웠지만 그렇게 삶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까미는 만으로 십년을 살다가 마지막 삼일을 제 옆에 꼭 붙어서 그렇게 떠났습니다. 잘 가렴. 나의 듬직한 보디가드 까미. 녀석의 까맣고 야드르르한 털이 삼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납니다. 두 번째 이별의 슬픔은 첫 번째 이별 덕에 많이 슬퍼하지 않고 순순히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유기견이었던 예삐와 세 번째 이별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게 온 지 13년, 성견으로 왔으니 얼마나 더 나이가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쓰러질 듯 겨우 목숨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뼈가 다 드러난 등에 다리는 절고 밥도 못 먹고 비척이며 걷는 모습이 안쓰러워 안고 다닙니다. 며칠 전엔 다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일어나 움직입니다. 아침마다 나가자고 보채서 그나마 운동하게 만들던 녀석, 지금의 건강이 저 녀석 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세 마리 다 암컷이었고, 녀석들을 키우며 개띠였던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암으로 육십도 못 되어 세상을 버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짐승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보살폈습니다. 하늘로 간 두 녀석이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주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작고 힘없는 생명과 사랑하며 사는 것, 그렇기에 만남도 이별도 모두 큰 의미입니다. - 똘순, 까미, 예삐 엄마 신현임씨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늙은 강아지 행국이와 함께 산다는 것

    [김유민의 노견일기] 늙은 강아지 행국이와 함께 산다는 것

    2003년 8월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된 요크셔테리어를 만났습니다. 피부병이 있는 녀석은 주인도 없이 병원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입양을 위해 멀리 청주까지 갔건만, 막상 녀석을 보니 망설여졌습니다. 지저분한 털 상태에 예쁘지 않은 얼굴. 그냥 돌아설까 하는 마음을 안 건지 애처로운 표정을 하고 쳐다보던 눈망울. ‘나를 버리지 마세요. 데려가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어 품에 안았습니다. 미용을 하니 꼬질꼬질한 모습은 사라지고 잘생긴 얼굴이 나오더라고요. 함께 행복하자고 ‘행복’이란 이름을 지었다가 조금 특별하게 바꿔주고 싶어서 한문을 찾아서 ‘행국’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행복할 ‘행’, 움켜잡을 ‘국’ 그렇게 15년을 행국이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행국이는, 별 것 아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볼일을 가리는 것부터 자율급식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있는 저의 걱정을 덜어주는 똑똑하고 애교 많은 강아지입니다. 감정은 또 어찌나 잘 읽는 지요. 속상한 일로 울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눈물을 핥아주고, 꼬리를 흔들면 애교를 부려줍니다. 크게 아픈 곳 없이 12년을 보냈습니다.행국이 덕분에 편하게 지냈는데도 이사 때마다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친구들처럼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간식을 던져줘도 반응이 없어 ‘늙어서 귀찮은 건가’ 싶었는데 실명이었습니다. 망막위축증에 백내장이 온 행국이의 양쪽 눈은 빛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화장실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다치는 행국이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고 막막했습니다. 울타리를 만들고 온 집안에 안전가드를 붙여놓았지만 화장실 안에서 또 부딪히고... 패드를 사서 교육을 시작했지만 평생 화장실에 볼일을 보던 행국이는 울기만 했습니다. 울타리 안에 패드를 가득 깔고, 행국이가 답답하지 않게 했습니다. 혼자 있을 녀석이 걱정돼 설치한 홈CCTV. 행국이는 제가 없는 동안 뱅글뱅글 돌고 치매가 온 듯 이상했습니다. 회사에서 10분 거리의 집이었기에 두 달 가까이 잠을 줄여가며, 일하다 달려오기도 여러 번. 동물병원에서는 안락사를 생각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약한 마음으로는 ‘이렇게 늙고 병든 강아지를 나만큼 사랑으로 키워줄 곳은 없는데 고통 없이 떠나보내는 것을 어떨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행국이가 힘든 게 아니라 행국이를 돌보는 내가 힘들어서 행국이를 보내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국이는 안락사를 고민했던 못난 제 마음을 아는 건지, 점점 안정을 찾았습니다. 아직은 함께하고 싶다고, 기운차려 보겠다고 하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행국이는 제 손이 닳도록 핥아줍니다. 그러면 저는 ‘행국아, 사랑해. 더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 매일 말해줍니다.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20대에 만난 행국이.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알려준 마음. 영원히 새끼강아지 같던 행국이는 늙었고, 그만큼 저는 성숙했습니다. 함께하는 사진을 남기고 싶어 스튜디오에 갔습니다. 갑자기 아플까봐 그렇게 영영 떠날까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의 이별을 걱정하기보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사랑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별 준비가 또 다른 가족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 행국이엄마 지원씨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가족 ‘가을’

    [김유민의 노견일기]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가족 ‘가을’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바람에 강아지가 있는 친구 집에 가면 화장실에 숨어서 나오지 못하던 어린 시절. 2001년 10월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검은색 소파에 갈색 강아지 한 마리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습니다. 주택가에서 미니핀과 치와와의 금지된 사랑으로 인해 태어난 7남매 중 하나였던 강아지는 믹스견이라는 이유로 4번의 파양을 당했고, 언니는 생명을 그냥 주고받을 수 없다며 친구에게 100원을 주고 데려왔어요. 16년 전 언니가 작은 동전에 새긴 책임감.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강아지가 무섭고 싫어서 언니에게 다시 돌려보내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하고, 녀석에게 싫은 내색을 했어요. 차갑기만 한 저를 작은 생명체는 맑은 눈동자로 따뜻하게 바라봐주었습니다. 그 온기에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9월에 태어나 선선한 10월에 우리 집으로 온 ‘가을이’. 집안에서는 배변을 보지 않는 바람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족들은 항상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휴지를 쥐고 하루에 3번 이상 나가야 했어요. 집에 가족이 없으면 사료 한 알, 물 한 모금조차 먹지 않고 잠만 자는 가을이 때문에 혹시 또 굶고 있지는 않을까, 볼일을 너무 참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에 가족들은 늘 집으로 일찍 귀가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오면 그제야 굶주렸던 배를 채우려 밥을 먹으면서 관심 좀 달라고, 왈왈! 거리며 보란 듯이 밥을 먹던 가을이. 그렇게 영원히 가족 곁에 머물 줄 알았는데 2016년 6월 급성폐렴으로 호흡이 잠시 멈추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우리 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려주곤 했어요. 그래도 아직은 아니라고 느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하고 애교를 부리던 녀석. 병원에서는 입원을 시켜 폐에 물을 빼내고 호흡기를 달 것을 권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가을이는 파양의 아픔이 깊었기 때문에 늙었다고, 아프다고 자신을 병원에 버리고 갔을 거라 생각할 것이었고,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면 떨어져 있기보다는 끝까지 함께 있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이 아닌 가족들 곁에서 가을이는 남은 시간을 보냈어요. 늘 3kg을 유지하던 녀석의 몸무게는 고작 2kg. 피골이 상접해질 정도로 야윈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가족 옆에서 녀석은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그 해 8월 28일 일요일 오전, 엄마와 제 곁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가족 중 아빠를 가장 좋아했는데... 하필 아빠가 벌초를 하러 가서 가을이의 마지막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가을이는 아빠에게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와 엄마가 함께 있어서 덜 외로웠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언니한테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러 온 건지 평소에는 들어오지도 않던 방 근처를 배회하다 제 곁에 누워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봄에는 산책하기 좋아서, 여름에는 가을이가 떠났던 계절이라서, 가을에는 가을이가 유난히 좋아했던 잘 익은 감 때문에, 겨울에는 예쁜 패딩 점퍼를 입었던 가을이 모습이 떠올라서 1년 365일 보고싶습니다.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일은 가족을 잃은 감정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작은 생명체에게서 생로병사를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짧은 생을 살다가는 생명에게 함께하는 가족들이 사랑을 많이 표현해줄 수 있기를, 그런 사회이기를 바랍니다. 녀석이 떠난 지금, 말 못하는 동물인데 동생이라는 생각에 속 썩이면 혼내지만 말고, 좀 더 사랑해 줄 걸, 실수해도 이해해줄 걸 하는 후회가 됩니다. 16년의 이야기를 한 글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가을이를 떠나보낸 후 충분히 아파했기에 이제는 이렇게 웃으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녀석이 떠나고 가족들은 주말마다 바쁘게 움직였고, 서로 위로하면서 그렇게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했습니다. 믹스견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고, 그래서 더 그리운 우리 강아지. 가을아. 똘망똘망 반짝이던 까맣고 큰 눈동자. 장난 칠 때면 으르렁거리던 모습이 예뻤던 코랑 입. 또각또각 네 발톱 소리가 나던 우리 집은 이제 고요해졌지만 나중에 우리 가족들 떠나면 가을이가 제일 먼저 뛰어올 거라고, 그렇게 다시 만날 거라고 믿어. 사랑해. - 가을이언니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작은 단짝이 건네준 커다란 마음

    [김유민의 노견일기] 작은 단짝이 건네준 커다란 마음

    깡마른 몸에 바짝 밀린 털.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버려진 강아지. 작고 안쓰러웠던 첫 만남을 기억합니다. ‘요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요키가 2~3살로 보인다고 했어요. 예방접종을 하고 진료도 받고 길이 아닌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버려진다는 것은 지워질 수 없는 상처였나 봅니다. 밖에 나가면 겁을 먹고 작은 몸에 힘을 잔뜩 주었습니다. 남자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 지금까지도 아빠 곁으로 가지 않으려 하고, 방문 앞에 볼일을 보기도 합니다. 십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열다섯 노견이 되어도 앙칼진 표정은 그대로인데 눈동자는 뿌옇게 변해갑니다. 이제는 냄새도 잘 맡지 못하고, 걸음걸이도 더디고 힘겨워졌습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자. 요키야.”그 좋아하던 산책을 귀찮아하고 누워만 있으려는 요키에게 매일같이 말을 걸어봅니다. 함께라서 지나온 시간들이 행복했는데, 녀석도 그랬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다 먼저 늙어버린 녀석에게 해줄 것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속상해집니다. 주변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라고 말합니다. 걱정에서 오는 말이겠지만 그 말이 참 아픕니다. 오늘 더, 조금만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잘 버텨주고 있는 요키가 대견해서,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이 소중해서 이렇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전해봅니다. 예쁘다고, 키워보고 싶다고 쉬운 마음으로 생명을 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요? 버려지고, 학대당한 기억에 평생을 힘들어하는 생명입니다. 돌아오겠다는 말 한 마디에 몇 년을 기다리는 눈망울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 요키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 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아버지의 빈자리…그 아픔을 위로해 준 ‘두리’

    [김유민의 노견일기] 아버지의 빈자리…그 아픔을 위로해 준 ‘두리’

    초등학교 5학년 철부지 소녀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정든 집을 떠나야 했고, 집안일만 하시던 어머니가 일터로 나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습니다. 가족은 웃음을 잃어갔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 슬픔이었고, 그래서 무척 외로웠습니다. 그렇게 하루, 석 달이 지난 2001년 여름 예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비가 무척이나 많이 오던 어느 날 동그랗고 커다란 눈, 까만 코, 바둑무늬의 털을 한 시추 ‘두리’를 만난 것입니다. 나란 존재를 아무 조건도 없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품이 수시로 그리웠던 초등학생 때 녀석이 온몸으로 반겨주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하던 수험생 때는 독서실 앞에 마중 나온 엄마와 두리의 모습이 하루를 다독여주는 행복이었습니다. 취업에 쓴맛을 봤을 때도, 입사 후 힘든 시간을 겪을 때도 변함없는 위로였습니다.그랬던 두리가, 눈 깜짝할 사이 노견이 되었습니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관절이 아파 걷기도 힘들어했습니다. 목에 생긴 종양은 녀석의 작은 몸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두리의 기억 속에서 가족들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아하던 육포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는 모습을 보며 가족 곁을 떠날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3월의 어느 날. 두리는 가족 곁을 떠나 하늘의 천사가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겨왔듯이 이번에도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고 믿었는데 더 이상은 힘들었나 봅니다. 두리는 가족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참고 견뎌주었던 것 같아요. 가족의 삶이 조금이라도 안정됐을 때 가려고…. 29년의 시간 중 17년을 함께 했습니다. 두부, 두레, 두부룽, 두레롱, 두지.., 애칭도 정말 많았습니다. 힘들 땐 두리 앞에서 펑펑 울고, 기쁠 땐 꼭 껴안고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그 시간들 안에서 우리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진짜 친구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유난히도 따뜻하고 포근했던 녀석을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던 막내 두리가 하늘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견뎌봅니다. 2001년 6월 29일. 선물처럼 두리가 우리 집에 왔던 날로부터 정확히 17년이 흐른 오늘. 매년 이 날을 온 가족이 축하하고 기념했는데, 올해는 두리가 곁에 없습니다. 슬프지만 함께한 날을 잊지 않고 싶어서, 우울해하는 가족에게 위로가 될까 싶어서 이렇게 두리의 이야기를 전해봅니다.“두리야, 늘 가족의 곁을 지켜주고 웃음을 줘서 고마워. 함께라서 정말 행복했어. 잊지 않을게. 너와 함께한 시간들. 사랑해.” - 두리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나보다 먼저 늙은 내 동생 복실이

    나보다 먼저 늙은 내 동생 복실이

    너의 시간이 다하더라도/김유민 지음/김소라 그림/쌤앤파커스/176쪽/1만 3000원‘늙고 몸이 아픈 강아지 복실이의 누나.’ 저자의 자기소개다. 늘 인형 같은 모습일 줄 알았던 반려견이 어느 순간 이별이 멀지 않은 노견이 됐음을 알았을 때, 주인은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17년을 함께한 반려견 ‘복실이’와의 일상을 서울신문 온라인에 연재하며 화제가 된 ‘노견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는 시대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강아지, 고양이의 앙증맞은 사진을 쉽게 볼 수 있고, 누구나 이런 사진을 보면 “우리 집도 애완동물 한 마리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강아지가 노견이 됐을 때를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 만난 복실이는 이제 사람으로 치면 여든이 넘은 나이가 돼 마지막 생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날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복실이가 밥도, 물도 먹지 않는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동물이 떠날 때가 그렇다는데….’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어 보지만, 그래도 혹여 준비할 시간조차 없이 복실이를 떠나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아지 복실이가 한 가정의 가족이 되는 모습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여느 가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을 통해 사랑과 책임감을 함께 느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삶의 또 다른 교육이다. 복실이의 노화를 보면서 저자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식사를 챙기고 돌보는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 저자의 ‘노견일기’는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풀어낸 에세이 이상의 의미도 있다. 지면이나 온라인으로 생산되는 무수한 콘텐츠가 단 1분의 생명력도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시대에 미디어가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지에 대한 대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어떤 콘텐츠나 팩트보다도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김유민의 노견일기] 마지막까지 예뻤던 나의 늙은 강아지

    [김유민의 노견일기] 마지막까지 예뻤던 나의 늙은 강아지

    유달리 큰 눈이 맑고 예뻤던 페키니즈. “유이야.” 이름을 불러도 듣는 둥 마는 둥 도도했던 녀석과 16년의 세월을 함께했습니다. 혼자 살게 되면서 외롭고 힘들던 때 녀석의 눈빛과 체온이 ‘괜찮아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괜찮았습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까맣고 깊던 눈동자는 백내장으로 하얗게 바랬고, 보드랍고 풍성하던 털은 듬성듬성 빠졌습니다. 누군가는 늙어서 볼품 없어졌다고 쉽게 말하지만, 앞이 안 보여도 등이 굽어도 제겐 처음과 같이 예뻤습니다. 갑자기 먹지도 않고 끝없이 게워내던 녀석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간 날,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얼 준비하라는 거지’, ‘그 준비라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거지.’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유이야, 지금은 가면 안 돼. 아직 널 보낼 준비가 안 되었어. 지금은 아니야. 제발...” 그 말을 들은 걸까요? 다시 사료를 먹고, 느릿느릿하지만 발을 떼고, 옆에서 코를 골며 잤습니다. 어렵게 돌아온 일상이 꿈만 같았습니다. 서서히 이별 준비를 해야 할 나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끝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떠날 때 떠나더라도 하루종일 옆에 있어줄 수 있는 토요일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이는 비틀비틀 힘들게 걷다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고서 제게 기대더니 마지막까지 참 예쁘게, 그렇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무서웠는지 자꾸만 소리를 내던 유이. 점점 차가워지고 굳어가는 녀석을 주무르고 만져주었습니다. 떠나는 순간조차 인정하기 힘들었던 우리의 이별. 좋아하던 닭 가슴살을 먹지 못하고 간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매일 아침 유이의 사진에 인사를 건넵니다. 유이 동생 뚱이(12)와 짱이(9)가 남아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보고 싶어지면 사진과 영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 그러다가 더이상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픔으로 차오릅니다. 길을 가다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만 봐도 눈물이 나오는 바보엄마지만, 그래도 유이가 바보엄마와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평생 사랑만 주고 간 생명이 늙고, 그래서 볼품 없어졌다고 버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부자 주인이든 가난한 주인이든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 세상 행복해하는 생명이니까요. 부디 주어진 생을 가족 곁에서 마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이야. 좋은 것 예쁜 것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 내게 와줘서, 함께 살아줘서 정말 고마웠어. 다음 생애에는 꼭 엄마 딸로 태어나줘. 그곳에서 널 예뻐해 준 증조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나중에 만나면 꼭 마중 나와 줘.” - 유이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오늘, 초롱이와 함께하는 생애 최고의 날

    [김유민의 노견일기] 오늘, 초롱이와 함께하는 생애 최고의 날

    초콜릿 같은 색을 하고,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던 초롱이.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고, 우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충분할 수 있었던, 젊은 날을 우리는 따로 또 같이 보냈습니다. 개의 나이 열일곱. 이렇게 빨리,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도, 감각도 없어질 거라는 생각을 그땐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평일엔 직장에 다니느라, 주말엔 여행 다닌다고, 엄마 몫으로 두었던 초롱이의 간호를 재작년부터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90대 할머니. 간 종양이 생겼고, 저혈당이 심해졌습니다. 간에 종양이 발견된 그 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초롱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초반에는 2주에 한번 병원에서 피검사와 초음파 진단을 했고,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내원해 하루 두 번 처방약과 하루 5번의 당, 6종류의 영양제를 시간에 맞춰 먹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겨울부터는 원을 그리고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평형감각이 계속 떨어진 탓이죠. 올해부터는 아예 혼자서는 걸을 수 없게 됐습니다. 집 안에서도 줄에 지탱해야 겨우 걸을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어요. 한번은 혼자 일어나 보겠다고 발버둥 치다 얼굴이 까지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 뒤로는 늘 초롱이를 보고, 안고 있습니다. 그러다 제 손목에는 염증이, 발목에는 멍이 들었죠.늙고 아픈 개를 보살피느라 마음 편히 외식도 못하고,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고, 나라면 그렇게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니까, 17년을 함께한 초롱이의 언니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털은 푸석푸석해지고, 몸무게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듭니다. 그래도 초롱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늘 우리가 함께 한다는 데 감사하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걱정을 가득 안고 병원에 갔다가 결과가 괜찮으면 콧노래가 나오고, 나쁘면 펑펑 울고... 초롱이를 1순위로 두고 살고 있는 요즘, 가족은 걱정을 많이 합니다. 저도 걱정이 됩니다. 초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면 어떻게 될까. 이겨낼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호칭만 언니지 가슴으로 키운 자식 같은 녀석이 떠날 날이 다가온다는 게 두렵고 서럽지만, 지금은 오늘, 어떻게 하면 초롱이가 행복해할지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늘 부족한 마음이지만 초롱이는 저의 전부입니다.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생명입니다. 고통이 심하지 않게 행복한 기억을 지니고 떠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누군가는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에 비유합니다. 그 정도로 큰 상실감이란 뜻이겠지요. 훗날 아이들이 떠나면 그 아픔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기를,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 초롱이언니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두리가 떠났다…눈부신 날이었다

    [김유민의 노견일기] 두리가 떠났다…눈부신 날이었다

    DOORI MY BOY. 은반지 안쪽에 새긴 문구 하나에 떠난 녀석과 계속 함께하는 기분이 듭니다. 멋진 녀석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창한 날에 후회 없이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무겁고 슬픈 건 덜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 품에서 ‘안녕’하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인화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 두리는 고통 속에 머리를 여기저기 찧었고 기력이 없어 누워만 있으면서 희미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남은 건 연명치료뿐이었습니다. 한 손 가득 약을 먹여야 겨우 두 시간 남짓 편안해졌습니다. 진통제와 영양제를 몸 안 가득 넣으면 생존은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보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 가족은 힘들지만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아파하는 두리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순간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아주 많이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울음을 그치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생각했습니다.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힘들고 슬프지만 이별준비를 했습니다.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운전해 줄 분을 알아보고, 플로리스트인 지인에게 꽃을 부탁했습니다.두리, 래브라도 리트리버, 2002.9.30. - 2018.1.23. 5:30am 우린 멋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깜깜한 그 시각 차 안은 진한 꽃향기로 가득했고 깜깜하던 하늘은 멋지게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전날 내려 쌓인 산의 눈도 아름다웠습니다. 화가 날 정도로. 그렇게 눈부신 날, 두리는 잠자듯이 떠났습니다. 제가 만든 뼈다귀 모양의 피넛버터 비스킷 5개, 가족사진 2장, 5개의 꽃다발들을 품에 안고서. 예쁜 오른쪽 얼굴을 보인 채 그렇게 들어간 두리는 믿을 수 없이 조그마한 상자에 담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리도, 가족도 편안합니다. 가끔 아니 자주 울컥하지만, 많이 아팠던 두리가 그 곳에서 먼저 편안히 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됩니다. 할머니 돼서 다시 만나면 두리가 알아볼까요? 하루에 하나씩 정리를 하고, 그렇게 아주 조금씩 나아질 것 같습니다.p.s 두리야, 누나 꿈엔 안 나와도 돼. 그래도 형아 꿈엔 이따금씩 등장해 주렴. 친구들은 만났어? 까까 좀 더 넉넉히 넣어줄걸 그랬다. 네가 없는 집은 참 허전해. 그래서 네 담요를 아직 버리지 못했어. 이제 아프지 않으니 좋은데 뛰어다니다가 나중에 너무 심심하면 꿈속에 찾아와. 누나가 놀아줄게.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고마웠어. - 두리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우리집 보디가드 풍이…고마워, 사랑해

    [김유민의 노견일기] 우리집 보디가드 풍이…고마워, 사랑해

    제주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점심을 먹자고 저를 깨웠고, 아빠는 어렵사리 풍이 얘기를 꺼냈습니다.“풍이가 찌나랑 썸머 만나러 갔어.” 잘 먹고 잘 자던 풍이가 전날 밤 갑자기 짖더니 엄마가 오자 숨이 멎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며칠을 아들 차돌이한테 유난히 차갑고 공격적으로 굴더니 정 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여행가기 전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 “누나 다녀올게” 말로만 하지 말고 좀 더 오래 인사하고 한 번 더 쓰다듬어줄 걸.. 후회가 됩니다. 늘 그 자리 그대로 우리 집을 씩씩하게 지키던 풍이가 더 이상 마당에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아요. 차돌이는 그 좋아하던 밥도 먹지 않고 그릇째 그대로 두고 있어요.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허겁지겁 달려와 비벼대던 녀석이 가까이 오지도 않았어요. 하늘나라로 간 풍이의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는 차돌이. 늘 함께였던 아빠를 떠나보낸 녀석이 안쓰러웠습니다. 다가가 안아주니 그때서야 폭하고 안깁니다. 소리 내어 울다가 차돌이 얼굴을 보니 녀석도 웁니다. “차돌아, 아빠 잘 보내줬어. 찌나랑 썸머 옆으로 갔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한참을 다독여주니 차돌이는 다시 사료를 먹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풍이 냄새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아빠 냄새 맡으라고 풍이 집으로 옮겨주니 곤히 잠들어있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습니다.지난 7월 15년을 살다간 찌나를 보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10년 넘게 함께한 풍이까지 가버리고 나니 따끔거리고 울컥합니다. 우리 집을 지키는 풍이가 얼마나 듬직했는지, 그 빈자리가 유난히 휑하네요. 사랑하는 풍아, 12년 동안 우리 집을 지켜줘서 고마웠어. 우리 풍이 때문에 마당이 얼마나 따뜻하고 환했는지 몰라. 풍아, 차돌이는 잘 보살펴줄게. 그러니 걱정 말고 편히 쉬어. 고생한 우리 풍이 한번만 더 안아주고 싶다. - 풍이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유민의 노견일기] 휠체어를 탄 개…살아있음에, 살아있으므로

    [김유민의 노견일기] 휠체어를 탄 개…살아있음에, 살아있으므로

    우리 집 강아지 복길이입니다. 사진을 보고 흠칫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아요. 감각이 사라져 좀처럼 꼬리를 흔들 수도 없죠. 다른 강아지들처럼 뛰어 놀지도, 걷지도 못해요. 대신 제 몸집만한 휠체어를 달고 겨우겨우 움직입니다.나이가 많거든요. 21년이 넘게 가족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복길이와의 추억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인 시절부터 시작됐어요. 그때 함께하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서울로 이사하면서 잃어버렸어요. 집안엔 눈물이 마르지 않았지요. 수소문을 오래도록 했는데 찾을 수 없었고 엄마는 솜뭉치 같은 새끼강아지 담비를 데려왔어요. 그 담비가 바로 복길이의 새끼 때 이름이에요. 조그마한 녀석이 꼬리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세차게 흔들었어요. 이불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뒹굴고 또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그러면 조용하던 집안 분위기가 그 녀석의 재롱에 환해지곤 했어요. 재수를 할 때, 그리고 대학생활을 할 때, 언니가 신림동 생활을 할 때, 그러다 첫 직장을 다니며 지쳐 쓰러져 잠들 때, 결혼을 하고 조카들이 태어날 때 그 모든 순간에 복길이가 있었답니다.복길인 얼마 전 태어난 아가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약간만 쌀쌀해도 덜덜 온몸을 떠는 게 영락없는 노견이지만 아가 같아요. 물론 고충도 크지요. 휠체어의 도움 없인 서있지도 못하고 싸지도 못해요. 그렇게 작은 휠체어에 의지하는 녀석의 똥오줌을 일일이 짜내줘야 합니다. 아기 때문에 빨리 뒤집어주지 못하면 그새 욕창이 생기고 오줌이 차 힘들어해요. 그래서 다른 노견의 사연을 볼 때면 복길이와의 하루가 떠올라 눈물이 났어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제가 좀 더 부지런히 챙겨서, 복길이와 함께 지금처럼 아가가 크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오늘’을 감사하며 지냅니다. 21년을 한결같이 함께한 소중한 복길이. 늙어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달그닥거리며 제 옆에 머물기 위해 애쓰는 녀석은 오늘도 존재 자체가 감동입니다. - 복길이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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