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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파장 미칠까” 긴장/지하철해고자 복직 검토

    ◎“법원 판결사항… 협상대상 아니다”/경총,오늘 30대그룹 회의서 논의 이해찬 서울 부시장이 서울 지하철 해고 노조와의 신뢰관계회복을 전제로 근로자 복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서울 지하철 해고 근로자들을 복직시키는 것은 이상에 치우친 것이고,다른 현장에 평지풍파를 불러올 수 있다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2일 롯데호텔에서 30대그룹의 인사 및 노무담당 임원회의를 열고,이 문제를 논의키로 한 것에서 이같은 재계의 입장과 긴장감이 잘 묻어난다. 경총의 한 임원은 『서울 지하철의 해고 근로자들이 복직된다면 다른 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그는 『이부시장이 좋은 뜻으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근로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고 말하고 『노사관계에 상당한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A그룹의 노사담당 임원은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해고된 게 명백하다면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며 『복직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그는 『명백한 잘못으로 해고된 직원들을 복식시키면 모든 원칙이 무너진다』며 『3년간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 조건이라는 것도 서울시장의 임기동안 편하기 위한 뜻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B그룹의 노무담당자는 『정치인을 비롯한 외부에서는 노사문제를 제대로 모른다』며 『법에 따라 해고된 근로자들을 복직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그는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도 있을 수는 있다』며 『그것이 부당한지 아닌지를 가리는 기준은 법원의 판결이지 행정의지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C그룹의 노무담당자는 『지난 93년 이인제 전 노동부장관(현 경기지사)이 해고 근로자 복직문제를 들고 나온것에 이은 제2의 이인제 사건』이라며 『현재 노동조합법에는 해고무효확인 소송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는 조합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기업에는 부담스런 일』이라고 덧붙였다.D그룹 관계자도 『질서를 어긴 사람을 해고한 것은 합의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법이나 질서,규칙 등을 지켜야 하는 데 타당한 논리를 갖추지 않고화합차원에서 복직시킨다는 것은 가치관의 혼란만 주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반대했다. 대기업들은 해고 근로자들의 원칙과 명분없는 복직에 반대하고 있다.이들은 서울시의 방침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은 기존의 기준을 그대로 지킬 것이지만 서울시가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이런 입장은 중소기업이라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하면 해고된 근로자의 문제는 없는 편이지만 근본적인 입장은 경총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이부시장은 여러가지 조건,이를테면 노조의 무파업 선언·서비스 확대등 조건이 달려 있기 때문에 잘 못된 인식이나 발언이 아니라는 입장이다.지하철 노조는 이부시장의 입장을 전적으로 환영하면서 3년간 무파업선언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옛 옷·장신구 잇단 전시회

    ◎인사동「예나르」,10일까지 12폭 치마등 선보여/이대 박물관선 6월한달간 복식의료 특별전 자연에서 얻어낸 염료로 물들인 때깔 고운 옛 옷가지들과 섬세하고 화사한 장신구들을 중심으로 우리 조상들의 솜씨와 높은 예술적 안목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인사동의 고미술품 전문점 예나르(739­4200)에서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고운 옛 옷과 치장들」이 그것.「자연에서 따낸 빛깔과 공들여 다듬은 손길」이란 부제처럼 이 전시회에는 쪽 열매에서 얻어낸 쪽빛 열두폭 치마,치자빛이 눈부신 노랑 저고리,색동 소매의 까치 저고리,기품 넘치는 관복,단아한 학창의 등 옛 복식문화를 다양하게 보여준다.더불어 홍댕기,아얌,도투락 댕기,노리개 등 이들 의복의 격을 한결 높여주던 장신구들을 곁들여 전시한다. 또 실패,골무,바늘꽂이,바늘집,반짓그릇 등 여인들의 정성 어린 손길이 스쳐간 바느질 용품과 한땀 한땀 수를 놓아 만든 수저집,열쇄 패,밥 벙거지,베갯모 등 생활소품과 규방의 여인네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가락지,뒤꽂이,은장도 등도 다채롭게 선보인다.6월10일까지. 이화여대 박물관에서도 기획전시실에서 「복식」을 주제로 이화여대 창립 1백9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30일∼6월30일)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에는 이대 가정대학에서 수집한 복식자료들이 전시되며 전시기간중인 6월9일에는 「우리나라의 저고리」를 주제로 한 특별강연도 마련된다.문의 360­3152.
  • 소득세 신고 대폭 간소화/내년부터 고소득자 제외 모든사업자 대상

    ◎복식장부 생략… 간이계산서로 처리/매년 국세청장이 대상 결정 내년부터 소득금액 신고가 대폭 간편해 진다. 국세청은 30일 내년 5월에 있을 올해 종합소득세 신고 때부터 일부 고소득자를 제외한 모든 사업자의 소득신고 절차를 간소화,간이소득 금액계산서로 만으로 소득금액을 신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세정개혁 조치로 올해부터 완전 자율신고로 바뀜에 따라 납세자가 스스로 세금계산서를 작성하는 어려움을 줄이고 실질 과세의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이다. 국세청은 간이소득 금액계산서의 양식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매출과 매입 만을 기재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상은 매년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국세청장이 정한다.우선 내년에는 부동산업은 연 수입이 3천만원 미만,창고업·보건업 등은 7천5백만원 미만,축산업·수렵업 등은 3억원 미만,쌀 과일·채소 도·소매업 등의 경우에는 최고 4억원 미만으로 정했다.소득세를 신고하는 1백5만여명 가운데 74%에 해당하는 77만1천여명에 이른다. 따라서 이들은 복식장부를 쓰지 않고수입·지출에 관한 간단한 장부를 작성하거나 매입 및 매출에 관한 세금계산서와 경비 지출에 관한 영수증만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토대로 간이소득 금액계산서를 작성,과세표준 확정신고서와 함께 내면 된다. 간이소득 금액계산서도 만들기 어려우면 업종별로 매년 정하는 표준소득률로 소득 금액 계산을 해도 무방하다.세무사의 도움도 필요 없게 된 셈이다. 그러나 그외 사업자들은 지금처럼 재무제표와 세무사가 작성해 주는 조정계산서에 의해 소득을 계산하고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합계잔액·시산표 등을 첨부해 신고를 해야 한다.
  • 부여 사비왕궁터 토기인물상(한국인의 얼굴:26)

    ◎관모쓰고 긴 수염… 점잖은 모습/둥근 얼굴에 눈·코·입·이마 돋을새김/백제인 복식 살펴볼 흔치않은 자료 선사시대부터 유적이나 유물에 사람의 모습이 곧잘 등장한다.이는 인간사회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동류의식의 표현일 것이다.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토기에도 인물상이 나타나고 있다.신라의 경우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흙인형을 토기에 붙였다.백제에서는 신라와 달리 도안화한 인물을 토기에 새겼는데 그 대표적 유물이 인물상 토기조각이다. 이 인물상 토기조각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 남쪽기슭의 사비시대의 백제왕궁터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발굴되었다.검은색 토기표면에 돋을 새김(양각)의 선각으로 얼굴을 표현했다.높이 22㎝의 토기조각에 같은 생김새로 도안화 한 얼굴을 연속으로 늘어뜨려 놓았다.본래는 얼굴이 더 많았을 법 하지만 토기가 깨진 바람에 5개만 들어있다.마치 얼굴을 엮어 매단 것처럼 보인다. 얼굴은 아주 점잖게 생겼다.수염을 길러 더욱 점잖고 의젓해 보인다.눈,코,입과 표현코자 의도한 다른 부분들을돋을새김의 선각으로 나타내기 위해 나머지 공간은 파냈다.그 파내는 과정에서 볼과 이마 등을 질감있게 처리했다.그래서 비록 도안화 한 얼굴이기는 하나 어느정도 입체적으로 다가온다.머리위를 뾰죽하게 처리한 것은 아마도 모자에 해당하는 관모를 그려내기 위함인 듯하다. 얼굴 전체의 윤곽은 얼핏 보기에 두 개의 선으로 처리되었다.그러나 바깥 선은 관모의 끈을 상징했을 것이다.관모는 이마부분이 올라갔고 좌우 양쪽은 관자노리부분까지 내려온 형태다.관모끈은 얼굴전체의 윤곽선 밖을 돌아갔다.그 돌아간 끈은 턱을 둥글게 만들어놓았다.백제불상에서처럼 얼굴이 원만하게 보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백제인이 토기에 각인한 백제인 자신들의 얼굴인 것이다. 이 인물상이 쓴 관모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백제인들의 복식을 후세 사람들이 돌아볼만한 자료가 흔치 않아서이다. 백제의 복식을 유일하게 보여주는 그림으로 중국 양의 기록화 「직공도」가 전해내려올 뿐이다.이 「직공도」에서 관모는 빛깔이 바래 뚜렷하지 않다.그래서 부여 부소산 기슭에서 나온 인물상 토기조각은 백제의 관모가 어떤 모양이었는가를 대강 알려준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삼국지위서 동이전을 보면 당시 한반도 사람들은 절풍이라는 모자를 썼다고 기록했다.절풍은 문자 그대로 바람을 가른다는 뜻인데 대안리1호분과 무용총 등 고구려 벽화무덤 그림에 나타난다.고구려 벽화무덤의 절풍 그림과 백제의 관모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겠지만 고구려와 백제 복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두 고대국가가 복식을 통해 보여준 유사성은 역시 중국의 사서 「양사」와 「위서」등 여러 기록에 나온다.백제는 복장 뿐 아니라 언어와 음식도 고구려와 같다고 기술했다.그렇다면 백제에서도 절풍을 머리에 썼을 것이다.또 다른 중국의 사서 「남사」는 절풍은 고깔과 같다고 했으니,부여 부소산 기슭 출토품 인물상 토기조각은 절풍을 쓴 백제인이 분명해진다.
  • 추동복 경향 미리 선뵌다/제8회 KFDA컬렉션 새달3일 하얏트호텔

    ◎복고풍­「미래형」함께 제시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회장 안지히)의 제8회 컬렉션이 5월 3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95·96년 가을·겨울 유행의상을 미리 선보이는 이날 행사에는 안지히씨와 이영선·오옥연·이윤혜씨등 4명의 디자이너가 참가한다. 「공존의 세계」를 주제로 한 70여점을 선보일 안지히씨는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를 혼합한 수공풍의 의상을 제시하며 이영선씨는 중세 및 50년대 복고스타일의 의상과 민속풍,인조피혁을 이용한 미래형의상 등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이밖에 오옥연씨는 여성의 우아한 멋을 강조한 의상 68점을 제시하고 흑과 백의 단순한 색을 주로 사용하는 이윤혜씨 역시 복고풍과 실험적인 미래형 디자인의 옷 61점을 무대에 올린다.
  • 광복 50돌/해외서 한복쇼 잇달아

    ◎이리자 발표회/LA서 생활한복 200여점 선보여/한국문화의 날/우크라이나에 전통·개량한복 소개 광복 50주년을 기념,우리 고유의상 한복의 멋을 알리는 패션 행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구 소련 우크라이나에서 잇따라 열린다. 한복연구가 이리자씨의 「광복50주년기념 이리자한국의상 발표회」(미국 로스앤젤레스)와 24일부터 30일까지 구 소련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리는 「한국문화의 날 행사」일환으로 열리는 한복쇼가 그것. 20일 하오 7시3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옴니호텔에서 행사를 갖는 이리자씨는 생활한복 2백여점을 선보인다.이씨는 『국내에서도 최근 한복이 다시 민족의상으로 제위치를 찾아가고 있다』면서 조국을 떠나 살고 있는 이들에게 한복의 멋과 아름다움을 통해 긍지를 느끼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키예프 오페라하우스(27일)와 야외공연장(29일)에서 2회 열리는 한복쇼에는 한국복식연구회 서영애회장과 이윤경 강영숙 문계옥 박순자 박선 원다혜 임소연등 8명의 한복디자이너가 참석,총 1백20여점의 한복의상을 소개한다. 화려한 궁중의상부터 기녀복 관복등의 전통 특수 의상과 개량한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선보인다.특히 이번 행사의 뜻을 살리기 위해 태극기와 우크라이나 국기 마크를 그린 한복 파티의상을 따로 제작해 패션쇼 피날레 의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복패션쇼와 함께 한국의 현대의상 수준을 소개하는 행사도 28일과 30일 열린다.국내 여성의류브랜드 모다 지오바니의 디자이너 정영혜씨가 봄·여름 유행 의상 1백여점을 제시한다.
  • 통일신라 채색 문무인상(한국인의 얼굴:20)

    ◎남자 입술에 붉은칠… 강렬한 인상/복식 통해 신분구분… 남자 머리엔 복두 씌워/시립자세 무인상·대련자세 택견 무인상도 신라 흙인형 인물상의 진수는 경북 경주시 용강동 돌방무덤 출토품이다.지난 1986년 문화재연구소 경주고적발굴단이 시행한 발굴조사에서 자그마치 28점이나 출토되었다.남자상 15점,여인상 13점으로 이루어진 일괄유물이다.이들 인물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신분계층이 잘 드러나 당시 사회상을 가늠하는 주요 유물로 평받고 있다.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나온 인물상들은 모두 색깔을 칠한 흔적이 보인다.백토에 색깔을 올린 이들 인물상은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복식을 통해 신분을 구분했다.몸 가짐새도 약간씩 달리 만들어 놓았다.남자상의 경우 머리에 모두 복두를 썼다.홀을 잡거나 윗사람을 모시고 서 있는 시립자세의 문인상,대련하는 자세의 택견 무인상 등 여러 모습을 나타냈다. 남자인물상 중에는 수염이 유난히 텁수룩한 문인상이 있다.체구가 장대한 인물인데 눈 가장자리가 움푹 패였다.그리고 눈도 무척 커보이고 콧날이 높다.입술에 붉은 칠을 했기때문에 강렬한 인상마저 안겨주는 이 남자인물상은 붉은색 조복을 입고 양손으로 상아홀을 감싸쥐었다.「삼국사기」기록대로라면 이러한 색깔의 조복과 홀은 6두품 관직에 해당하는 인물이 입고 지닐 수 있는 물건이다. 그래서 이들 흙인형 인물상이 나온 용강동 고분의 주인공은 6두품 보다 더 높은 진골이상의 신분일 것으로 추정했다.인물상에 나타나는 복식의 형태와 인물상과 함께 출토된 청동제 십이지상으로 미루어 유물의 연대를 7세기말에서 8세기초로 잡았다.용강동 고분 역시 이 시기에 유행한 널길(선도)이 달린 돌방무덤(석실분)이어서 연대 추정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무인상은 기장이 짧은 옷을 입었다.기껏해야 장단지까지 내려왔다.문인상 조복이 발등을 덮은 것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한 무인상은 시립한 자세로 다리를 약간 벌리고 있다.누가 달려들어도 옷소매 속에 한데 모은 두손 만 풀면 언제라도 공격에 나설 수 있는 태세다.얼굴에는 무인다운 풍모가 서렸다.눈을 질끈 감고 입을 꽉 다문이 무인상은 몸 전체가 다부지고 당당하다. 이들 남자인물상들이 입은 옷은 문인조복이나 무인복 모두가 오른쪽 옆트개로 되어있다.그리고 18점의 여인상 가운데 두 여인은 4두품 까지만 허용되었던 숄을 어깨에 걸쳤다. 수염이 많이 난 털보 문인상을 서역인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경주 황성동 고분에서 출토한 호모를 쓴 남자상(본지 3월10일자 13면)이나,시대는 좀 떨어지지만 8세기말 원성왕 무덤으로 보이는 경주군 외동읍 괘능의 무인석도 서역인이라는 것이 정설.그리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9세기 후반 설화속의 처용 역시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학설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경주는 요새말로 국제도시가 분명했을 것이다.
  • 원격 화상 수업 국내 첫선/강원 5개국교 22일 시범실시

    ◎98년부터 중고로 단계적 확대/섬·산골 교육여건 향상 기대 도서·벽지의 분교 등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의 학생들도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원격화상수업」방식을 통해 대도시와 비슷한 수준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교육부와 정보통신부는 오는 22일 하오 2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원격화상수업을 강원도 홍천군 내촌국교와 동창·대봉·항곡국교·와야분교 등 인근 4개교를 연결해 시범실시키로 했다. 이번 시범화상수업은 이홍구 국무총리와 김숙희 교육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내촌국교 4학년생 10명과 동창국교 등 4개국교 4학년생 20여명등 모두 30여명을 대상으로 20여분간에 걸쳐 진행된다. 「원격화상시스템」이란 텔레비전과 전화를 하나로 묶어 상대방과 마주 보듯이 회의·상담·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한 첨단설비로 그동안 각종 국제영상회의나 대학강의에서 사용돼 왔다. 화상수업을 위해 내촌국교에는 키스테이션인 원격교육실을,동창·대봉·항곡국교·와야분교 등 4개교에는 30인치 대형텔레비전이 설치됐다. 벽지학교로서는 교육여건이 비교적 좋은 내촌국교는 교사 11명이 전교생 1백11명을 한 학년에 한 학급씩 가르치고 있으나 나머지 4개교(교사 29명,학생 2백49명)는 한 학급에서 2개 학년을 20분씩 나눠 가르치는 복식수업을 해와 파행교육을 면치 못했다. 교육부는 오는 97년까지 내촌국교에서 시범운영한 뒤 빠르면 98년부터 화상수업방식을 전국 초·중·고교에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 통일신라 여인상 흙인형(한국인의 얼굴:19)

    ◎수즙은 눈매에 용모·매무새 단정/요조숙녀인양 옷소매로 살짝 입 가리고/정성들여 빗은 머리,가리마 뚜렷이 표현 우리 고대사에서 신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삼국이 정립했던 시대 개념에서 벗어나 통일신라는 자신들의 시대를 가졌기 때문이다.문화면에서도 신라가 전통성을 가장 오래 유지한 까닭도 여기있다.흙인형의 경우도 고신라에 비해 사실적 표현이 강조될 뿐 통일신라시대까지 이어진다. 그 대표적 유물이 경북 경주시 황성동과 용강동 출토품이다.이들 흙인형은 출토지가 확실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더구나 무리를 이루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이른바 일괄유물이어서 흙인형 마다의 성격규명은 물론 서로 관련된 연계성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우선 경주시 황성동에서 나온 인물상을 살피면 남녀인물상으로 구분되고 복식이 신분에 따라 다르다. 경주 황성동 고분 출토 흙인형 인물상 5점 가운데 2점은 목이 잘려 나갔다.그러니까 3점만이 완전한 상태로 출토되었다.이들 인물상은 1점만이 여인상이고,나머지 2점은 남자상이다.남자상은 복두와 호모를 각각 썼다.호모를 쓴 남자상은 분명한 서역인 모습이다.먼저 주목할 유물은 여인상이 아닌가 한다.이 여인상에는 신라의 다른 흙인형에 나타나지 않은 헤어스타일이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경주 황성동 고분에서 나온 여인상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높이가 15.4㎝에 불과하지만 표정은 요조숙녀인양 아주 조용하고 얌전하다.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이 여인상은 신라 흙인형 중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용모와 매무새가 단정하다는 느낌이 든다.머리를 정성들여 빗질한 탓일까,가리마가 선명하다.고개를 다소곳이 숙여 앞을 바라보는 눈매도 수줍다. 여인은 긴 옷소매로 입을 살짝 가렸다.떠나가는 님을 먼 발치에서 배웅하는 것 같기도 하고,모셨던 주인을 작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통일신라시대는 순장풍습이 사라진 뒤라 사람 대신에 흙인형을 무덤에 넣었다.그렇다면 여인상은 무덤의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여인은 왼손에 작은 병을 들었는데,저승길을가는 주인에게 술이라도 대접하려는 것이 아닐까….한마디로 부덕이 보인다. 이 여인상이 나온 황성동 고분은 지난 1986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발굴했다.돌을 가지고 널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다음 시신을 안치하는 돌방무덤(석실분).고구려 국내성과 대동강 유역에서 유행했던 이 무덤형태(묘제)는 한강유역을 거쳐 주로 백제와 가야에 전파되었다.경주지역에는 AD669년대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돌방무덤이 들어오지만 중기가 지나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황성동 고분에서 나온 여인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접어들어 만들어진 흙인형이라 할수 있다.이와 함께 출토된 서역인상은 당시 아랍인들이 신라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이기도 하다.
  • 한복패션/동양적 선·색살린「하이패션」창출(한국문화 세계화의길:6)

    ◎창조·기술·비즈니스 연결 공동작업 필요/전문 세일즈맨 양성… 디자인 판촉도 강화 「할아버지의 바지저고리와 목도리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재킷,가마니를 짠듯한 실크·울의 허리선이 높은 코트.색동색 무늬가 돋보이는 원피스」….93년 3월 세계패션의 메카 프랑스 파리. 장 폴 코르티에·이브 생 로랑·지아니 베르사체 등 세계 패션계를 이끌고 있는 기라성 같은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컬렉션에 집중되던 언론과 패션전문가들의 시선이 한국에서 온 생소한 이름의 디자이너 이신우와 이영희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직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특히 선과 색이 무척 아름답다』­프랑스 국영2TV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파리패션계를 노크하고 있다』고 호기심과 경계심 어린 반응을 보였다. ○이신우·이영희씨 진출 두 사람이 파리무대에서 첫선을 보인 옷의 기본은 색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적인 복식미의 선과 색을 살린 것. 20년간 한복의 현대화 작업을 해온 이영희씨는 파리로 입성하기 직전 양장디자이너로 변신,한복의 활용폭을넓혀 파리로 나온 것이다. 93년 10월에는 진태옥씨가 가세했다.그리고 지난해 봄에는 홍미화씨가 한국 특유의 정서인 해학을 느낄수 있는 옷들을,가을에는 안피가로 장광효등 남성 디자이너들까지 뛰어들었다. 컬렉션기간중 지면을 아껴온 파리의 패션전문지와 일간지들은 이영희씨의 의상을 한마디로 자연을 닮은 「바람의 옷」이라고 표현했다. 한국미 과시의 절정은 지난해 3월 이신우씨의 파리컬렉션에서 였다. 고구려 고분벽화 문양을 응용해 여성의 내재된 강한 힘을 표현한 이신우씨의 옷은 『고대아시아의 영광이 찬양한 아름다운 옷』이란 평을 받았으며 6백여벌의 주문을 받았다.이어 10월 진태옥씨는 우리 전통 혼례옷인 활옷을 서양의 진과 매치시켰다.실크 소재의 붉은색 바탕에 정교하게 십장생 수를 놓은 재킷 조끼등이 하이라이트였다. 일본의 원로 패션평론가 히로시 다나카는 진씨에게 편지를 보내 『한민족의 역사성에 대한 깊은 사색이 투명한 미의식에 의해 승화된 작품세계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범국가적 지원 따라야 한국의섬유산업은 지난 30년간 수출입국의 견인차 노릇을 해온 효자산업이다.그러나 근년들어 반도체·자동차등의 수출이 늘며 사양산업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푸대접을 받는 처지가 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세계 4대섬유수출국이다).이에 국내의 뜻있는 디자이너들은 한국복식의 선과 색을 살려 고부가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하이패션쪽으로 방향전환을 시도,과감히 파리 입성을 한것이다. 냉혹한 세계패션 무대에서 우리 디자이너들이 어느 정도 파리 패션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이후 급부상한 동양풍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지아니 베르사체등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이 너도 나도 중국이나 몽골의 대륙적인 분위기를 자신의 작품속에 응용했다.또한 자기민족 고유의 것이 세계화의 지름길이라는 「에스닉 이노베이션」의 분위기속에 그나마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파리 입성은 결코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되고 있다. 「기모노 볼레로」­.이 말은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세계무대에서 이미 「자포니즘」으로 확고히자리를 잡은 속에 앞으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더 치열해져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충격적인 단어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패션지 「마리클레르」가 한 한국디자이너의 한복저고리 응용작을 보고 「기모노 볼레로」로 잘못 소개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우리패션계에서는 세계패션시장의 스타로 떠오른 한국인 디자이너가 없고 국가적 지원도 전무한 상태에서 파리진출을 시도하는데 대해 「무모성」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품기획·마케팅 취약 상품기획이나 마케팅 분야가 취약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 디자이너 개인이 거대한 세계시장에 도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창조」와 「기술」 「비즈니스」­이세가지가 세계화 시대의 한국패션이 나가야할 길이라면 우리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면에서 너무 준비가 없이 홀로 뛰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패션관계자는 『우리 디자이너들은 현지 홍보자에게만 의지하는 실정이며 광고·홍보·마케팅 등 사전 조사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탓에 독창적인한국패션의 디자인은 인정받으면서 정작 외국여성들의 인체비례등 신체조건을 잘 파악치 못해 재고를 늘린다는 것. 국제 바이어들에게 수주전을 펴는 전문세일즈맨을 두는등의 실질적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디자이너들이 파리컬렉션에 참가하는 비용은 한번에 1억∼3억원정도. 돈만있으면 너도 나도 나갈수 있어 실속없이 외국인들의 주머니를 불린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겐조등이 유럽시장 진출에 성공한이후 지난 81년 일본 통산성은 11명의 디자이너를 선발, 미국 뉴욕 진출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을 썼다. 85년 프랑스에 유학, 세계적 패션업체인 파리의 기라로시사 여성복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미경씨(35)는 『실크등 고급스런 소재와 꼼꼼한 바느질,한복의 선등이 파리에서 주목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지나치게 한국적인 옷을 내세우기보다는 독특한 선과 색으로 우회적인 공략을 해야한다고 한국패션의 세계화 전략방안을 말한다. 패션평론가 김청씨는 『60년대 국제복장학원의 최경자씨가 아리랑드레스를 만들어 한국패션의 세계화를 시도했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보다 세계인의 정서를 수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나와야할 시기』라며 『한국적인 것을 구체화시키는 공동작업에 힘을 모을 것』을 강조한다. 국내디자이너들을 보면 디자이너 O씨는 모시나 삼베 실크등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날염하는데만 매달려 있다.또 디자이너 S씨는 도장찍듯 문양을 찍어나가는 작업만 하고 있다.그러나 이런 분산된 작업으로는 세계시장을 뚫을 수 없다. 작업내용들을 하나로 모으고 체계화시켜야한다. 패션은 문화산업이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치라는 인식에 머물고 있다.패션산업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동시에 한국의 정신과 이미지등 유형무형의 것을 수출하는 길임을 생각할때 국가적인 지원과 관심은 시급해진다. ◎파리 패션계 입지다지는 진태옥씨/“전통적 고전미 현지 정서에 접목”/활옷·십장생 문양 응용해 호평받아(인터뷰) 『한국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또 어떻게 국제적인 감각으로 이를 수용해 유럽인들의 미의식을 파고 드는가가 늘 숙제였습니다』 30년 이상을 양장 디자인에 몰두하면서 지난 93년 가을이래 파리라는 세계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제시,입지를 다지고 있는 진태옥씨.김영삼대통령의 유럽순방 수행경제인으로 선정돼 2일 장도에 오른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작업실에서 만나보았다.22일 열리는 「95가을·겨울 파리프레타포르테(기성복)컬렉션」마무리 준비가 겹쳐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패션은 고부가가치의 산업입니다.우리 문화의 세일즈작업을 패션디자이너들이 맡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 가을 조선시대 결혼예복인 활옷을 응용,특유의 붉은 색상을 재현하고 십장생등 문양을 손수 수놓은 작품을 일부 제시해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진씨는 『활옷을 응용한 재킷과 조끼상품에 십장생의 의미를 담은 설명서를 부착했는데 동양의 신선사상에 호기심을 갖는 상류층 유럽여성들에게 어필한것 같다』고 밝혔다.현지 미국 뉴욕의 도프굿맨 백화점 등에서 1천∼1천5백달러(재킷)의 고가에 팔린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진씨는 『「고전적」요소를 「아방가르드한」상품으로 재현한 활옷응용과 같은 작품으로 디자이너 「진태옥」의 정신세계와 한국문화의 정수를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시장에 어울리는 보편적인 옷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을때 진정한 「문화의 세계화」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 판사법복 바꾼다/한복형 디자인… 내년초 교체

    ◎현재는 66년 미국식 본뜬것 내년부터 우리 고유의 전통미를 살린 한복형 법복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민사지법은 7일 미국식 디자인을 본떠 30년동안 입어온 현재의 검은색 법복이 전통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일선판사들의 여론에 따라 새로운 법복마련을 대법원에 건의했다. 대법원은 이에따라 법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안에 복식전문가 등에게 새 법복디자인을 공모키로 했다. 새로 바뀔 법복은 한복의 유선미와 색깔를 살려 고유의 멋을 한껏 드러내도록 했다.조선조의 사헌부·사간원 관리들이 가슴과 등부분에 정의를 상징하는 전설상의 동물 「해태」를 그려넣은 관복을 입었다는 사실도 디자인의 주요소로 고려되고 있다. 해방후 법관들은 일제식의 법복을 벗어버리고 한동안 양복·한복·점퍼 등의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하다가 53년 처음으로 법복을 입게됐다. 지금은 사라진 법모 중앙과 법복의 가슴부분에 흰색(판사),노란색(검사),보라색(변호사)의 무궁화 문양이 들어가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이 법복은 66년 조진만 대법원장 시절미국법복의 디자인을 본떠 현재의 법복으로 바뀌었다.이때부터 법모착용도 사라졌다. 미국 법복은 존 케이 초대 대심원장이 대학때 입던 「학사복」을 재판소에서도 즐겨 입은 것이 기원. 법원은 이밖에 형사사건에 참여하는 변호사에게도 법복착용을 의무화하고 TV드라마의 법정에서나 볼 수 있는 법봉 사용도 추진중이다.
  • 캉자스먼쯔의 신산(서역 문화기행:6)

    ◎붉은 암벽에 모계사회 생식숭배 그림/기원전 2∼3세기 카자크족 원주민들이 새겨/무도회·인구번식회에 인물 2백명… 여성이 대부분 우고,그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생식의 필요는 절실하다. 수렵과 유목을 위해서는 심산유곡과 만경초원이 안성맞춤이다.우랄·알타이산맥 남쪽으로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을 등지고,팔카스호 동쪽으로 아라호·아이피호·이리강·카스강·마나스강등을 낀 신강의 서북지대가 바로 최적의 지대로 꼽힌다. 그 지대를 기원전 7세기부터 누빈 것은 오손(오손)·강거(강거)·엄채등 돌궐어족인데,그들은 모두 오늘날 하사크족의 원조민족이었다.지금도 중국 서역에는 백만명을 헤아리는 카자크족이 신강의 서북지역을 물 따라 풀 쫓아 유목하고 있다. 그 유목하는 곳엔 카자크족이 살고 카자크족이 사는 곳,그러니까 팔카스호 동쪽의 초원에는 암화(암화)가 많았다. 지금 독립연합국의 하나인 카자흐스탄을 비롯,신강의 이리강과 초하유역인 쿨자파스산상에는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로 추정되는 동물암화가 많다.다시 동쪽으로이동하면서 비록 연대는 기원전 3세기 이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리강유역의 훠청(휘성)현 베이간(북간)계곡을 비롯,니러커(이근극)현의 훙광목장등 하미(합밀)의 남산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50여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초원에 천마 노닐어 그중에 위민(유민)현 팔타쿨(파이달고이)과 후투비(호도벽)의 캉자스먼쯔(강가석문자)의 암화도 포함되었지만 여느 암화와 다른 모계사회의 생식숭배를 보였다 한다.특히 최근에 발견된 캉자쯔먼즈의 그것이 보다 사실적인 데다 화면이 또렷하다는 신강사범대학 중문과의 황천(황천)주임의 권고와 안내로 그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우루무치에서 캉자쯔먼즈까지 1백50㎞.위구르말로「도깨비 고을」이라는 후투비까지 70㎞는 시원한 아스팔트길이었지만,후투비에서 그 이름도 시골스런 추이얼거우(최예구)향에 있는 현장까지는 험한 산허리를 뚫고 천산산맥 서쪽의 어디쯤을 덜컹거릴 수 밖에 없었다. 깔딱 어느 고개를 넘어설 때,황주임은 별안간 차를 멈추게했다.일행이 내려서 멀리 산맥을 굽어 보았다.시뻘건 바위산맥이 서남쪽으로 꿈틀거리며 이어져 있는데 그 기상은 수십척의 함대가 파도를 가르며 행진하는 모습이었다.그 산맥은 적어도 20∼30㎞를 쪽빛 하늘밑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한복판에 활짝 열린 대문을 방불케 웅장한 바위가 보였다.그것이 바로 생식 숭배의 암화 현장이라했다.결코 소풍하는 산등성이가 아니라 출렁이는 산맥,어디를 보아도 기운이 넘치는 그러한 암맥들이었다. 후투비에서 거의 80㎞를 달려서 이윽고 골짜기의 초원에 도달했다.초원에는 낙타와 천마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신산의 어귀에 갔을 때,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청년이 길을 막았다.입장하는 표를 사라했다.아직은 알려지지 않아서 관객은 물론 관리자도 없을 줄 알았는데.그들의 재빠른 상혼이 놀랄만 했다. 문제의 암화가 있는 바위는 깎아 세운듯한 암벽이었다.그 암화는 비록 동서 14m,상하 9m의 크기,화면면적이 1백20㎡쯤되어 보이는 분사암에 그려졌지만,그 암화의 모체는 동서 1백50m쯤에 상하 50여m의 엄청난 바위였다. 필자는 마치 방을 보는 수험생처럼 고개를 들고,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훑었다.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족히 2백명은 넘었다.보이는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곳이 모계중심의 사회였음을 알게 했다.높은 모자를 눌러 쓰고 모자위에는 두개의 깃털을 꽂은 여성이었다.풍만한 가슴에다 둥실한 엉덩이,갸름한 얼굴에 높은 코,커다란 눈에 작은 입술,가느다란 목에 끊어질 듯한 허리,긴 다리에 섬섬옥수.첫눈에 모던한 서구의 처녀들을 연상케했다. 그 화면은 무질서하게 많은 군상이 여기저기 불거져 나왔는데 가만히 살피면 몇가지 화폭으로 분별할 수 있었다.약간 좌측엔 아홉명의 여인이 한결같이 오른팔은 올리고 왼팔을 내리면서 춤의 동작을 보였는데,어찌보면 벌거숭이요,어찌보면 오늘의 발레복처럼 성감적인 복장이었다. ○남자는 까까중머리 윗 그림을 「누드의 무도회」라 한다면 그 좌측으로 「혼무도(혼무도)」에 상당한 그림이 있었다.남녀 각각 10여명씩 춤을 추는데 여성은 위에서와 마찬가지지만 두팔을 모두 내렸고 남성은 모자도 깃털도 없이 까까중머리에다 홀쭉한 배에 뾰족한 그것을 기운 차게 달고 있었다.여기 저기 동체가 달아난 얼굴이 몇개 있는데 가필한 그림이거나 다른 상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보다 특기할 일은 남성의 가슴과 여성의 가슴에 각각 한 사람의 이성을 품고 있는가 하면 그러한 혼무의 마당을 향해 호랑이 두마리가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선명한 주제의 그림이 우측 가장자리에 보였다.한 사내가 발기된 길고 둔탁한 그것을 한손으로 들면서 계집의 하체에 조준하고 그 아래로 성숙한 여인 하나와 50명의 꼬마가 상하단으로 나뉘어 마치 기차놀이하듯이 이열 횡대로 서 있는 그림이었다.인구의 번식을 노골적으로 기구하는 강렬한 포스터같았다. 암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체로 갸름한 얼굴에 깊은 눈,높은 코,가는 목,긴 다리,그리고 높은 모자에 깃털,남자는 높은 코에 기다란 생식기,가냘픈 하체에 긴 다리,두건식의 모자에 동그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이러한 외모와 복식으로 미루어 한(한)족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카자크의 체모에 가장 근사할 뿐 아니라 그러한 암화가 아직도 카자크족의 집거 부락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금속도구 이용 음각 마지막 궁금한 것은 연대였다. 현지의 문화국이나 박물관에선 아직 뚜렷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게 없다지만 카자흐스탄 팔카스호 동쪽에서 발견되고 있는 카자크족의 암화,그 대부분이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사이,더구나 동점(동참)하였다는 사실 외에도 캉자스먼쯔의 암화가 금속도구에 의한 음각이란 방법으로 미루어볼 때 신석기시대의 말기에 시작해서 청동 및 철기시대였음을 단정할 수 있겠다.그렇다면 기원전 2,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는데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러한 암화를 작품시하는 데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첫째는 그 구성이 부호나 도안처럼 단순하지만 감성적이고 질박하다는 것이요,둘째는 그 표현이 비록 과장적이지만 주장이 선명하다는 것이요,셋째는 그 내용이 조잡하지만 당시의 생활을 생생하게 반영한 역사의 단편들이란 점이다. 필자는 돌아오는 길,캉자스먼쯔 바위에 생식 숭배를 그림으로 새긴 그 후손들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조금전 들어갈 때,인민폐 몇푼을 쥐어 준 그 청년을찾기 위해 돌아오는데 난데없이 「시집 가는 날」을 만났다.말 세필에 영감과 할멈이 혼수를 실은 행렬.어쩌면 선발대격인듯,영감은 앞에서 말을 끌고 할멈은 말을 타고 깡마른 언덕을 넘고 있었다. 그 청년은 서른여덟살의 마이무라치라고.형제가 다섯인데 모두 분가해서 한마을을 형성했다 한다.조심스럽게 재산정도를 묻자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염소 1백50마리에 낙타·말·황소를 합해서 50마리』라고. 그리고 염소 한마리의 값은 큰 것은 2백위안(한화 2만원상담). 짓궂게 통혼사정을 묻자 그 대답은 자못 단호했다. 위구르족이나 회족,시부족과 통혼할지언정 한족과의 통혼은 싫다고 했다.왜냐면 한족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란다. 주인은 우리 일행을 그들의 흙집에 안내했다.사방이 흙벽,마루나 침대가 따로 없다.물론 안방과 건넌방의 구별도 없이 밋밋한 헛간 비슷한 구조였다.
  • 조선 희귀복식·장신구 기증/김영숙씨/6백여점 강릉박물관에

    【강릉=조성호기자】 조선시대 복식에 관한 고증자 김영숙씨(64·문화재전문위원·서울 성동구 자양동 그린빌라 301호)가 30여년동안 모은 조선시대 복식및 장신구 등 희귀소장품 6백여점을 강릉시립박물관에 기증키로 했다. 21일 강릉시에 따르면 오는 24일 강릉시립박물관에서 「김영숙선생 기증유물 증정식」을 갖고 내년 10월 시립박물관 증축공사가 완공된후 특별전시관을 만들어 김씨의 기증품을 상설 전시키로 했다. 김씨가 이 박물관에 기증키로 한 희귀수집품은 의상 2백60점(30여종)과 장신구 1백40여점(1백40여종),서화류를 비롯한 기타 2백여점(80여종) 등 모두 6백여점(2백50여종)으로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여인들의 복식·장신구가 망라돼 있다. 소장품가운데 대삼작노리개의 경우 세가지 노리개를 하나로 바느질해 수술로 장식을 한 희귀품으로 조선 중기 부유층부녀자들의 애장품이었고 순식물성 염료로 만든 천연염색 누비저고리(조선 중기)도 국내 유일한 것으로 우리나라 복식문화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베제크리크 천불동/허세욱(서역 문화기행:4)

    ◎화염산기슭 석굴 83개… 6세기 불교유적/위구르족 왕가 사원… 당시 생활상 벽화로 남겨/서유기의 무대… 삼장법사­손오공 등 3제자의 조각상 곳곳에 투루판은 그 동서를 관통하는 국도 312번에 놓여있다.그것은 신강의 최서단인 이닝(이령)에서 황하와 황해가 만나는 최동단의 상하이(상해)까지 장장 5천㎞,어쩌면 미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80번 하이웨이에 상당하다. 투루판에서 312번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40㎞쯤 달렸을 때,갑자기 그 왼편으로 빨간 바위산을 만나는데 그 형상은 얼핏 한국전쟁당시 철의 삼각지,아이스크림고지를 방불케하는 타원형으로 마치 험상궂도록 쪼글쪼글한 노인의 얼굴 혹은,여름날 여인의 풍덩한 주름 치마같았다.한 포기의 폴도 없이 세로의 주름살은 차라리 빨간 폭포가 쏟아지는 형상이었다. 그것이 바로 화염산의 남쪽 기슭이었다.그 맹렬한 화염의 섭곡을 보자 놀랍고 반가웠다.그 명성을 들은지 너무 오래라서 그렇다.당나라의 고승 현장(602∼664)의 「대당서역기」를 비롯,당나라의 유명한 변새시인 잠참(715∼770)이 이곳에서 벼슬하는 동안 썼던 경화산」,「화산운가송별」등의 명작,그리고 중국4대기서로 꼽히는 오승은(1500?∼1582?)의 「서유기」등에서 익히 화염산,그 「팔백리에 걸친 불길」을 들어 왔었다. ○홍산에 풀한포기 안나 화염산은 「홍산」혹은 「화산」으로 불렸다.그보다 위구르말로는 「쿠즈로다고」즉 홍산이란 뜻이다.그것은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넓고 낮은 동서 1백20㎞,남북 60㎞의 투루판분지에 동서 98㎞의 길이에 남북 9㎞의 폭으로 가장 높은 곳이라야 8백32m,평균 높이는 고작 5백m다.하지만 해발 이하의 분지라서 그 높이는 상당했다.연간 강우량이 겨우 16㎜의 초건조지역에 평균 기온이 섭씨38도 최고 기온이 49도나 된다.그래서 암석표면의 온도는 무려 80도를 넘는다.거기다 지층에 매장된 무진장의 석탄과 석탄에서 배출되는 가스로부터 폭발 연소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서유기」에 묘사한 대로 「화두 불길이 천길의 높이」란 형용도 결코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니었다. 필자가 화염산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지금부터 1천2백45년전인 기원749년,이곳에 당도했던 잠참의 「화산을 지나며」란 시에 잘 나타났다. 「화산금시견, 돌올포창동. 적염소로운, 염기증색공. 불지음양탄, 하독연차중? 아래엄동시, 산하다염풍. 인마주한류, 열지조화공」 (처음 만난 화염산은, 포창 동녘에 우뚝하여라. 화염은 오랑캐의 구름을 불지르고, 증기는 변방의 하늘을 찜질한다. 음양의 숯이, 어찌 여기서만 훨훨 타오르는가? 엄동설한에도 산밑엔 삼복의 열풍이. 사람도 말도 땀을 뻘뻘 흘리거늘, 누가 알랴? 자연의 조화를) 화염산 섭곡이 끝나는 승금구에서 312번 국도를 작별하고 좌회전하자 이윽고 빨간협곡이 열리면서 차는 화염산 북록을 휘돌았다.그 협곡의 정면에 보이는 둥근 모자모양의 홍산이 피라미드의 형세로 성큼 다가섰다.그것이 화염산의 주봉이었는데 주봉은 충격적 이라기보다 다소곳한 곡선으로 다만 풀 한 포기 없을 뿐 여느 동리앞을 지키는 안산의 크기였다.거기서 삼장의 길이 막히고 손오공이 파초의 부채로 재주를 부렸다는 곳이다. ○아래쪽 설수도 흘러 그 주봉아래로 기원6세기 고창왕국씨때부터 9세기까지 3세기에 걸쳐 위구르족들 왕가의 사원으로 건설한 석굴의 촌락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있고 천불동아래로는 파란 설수가 콸콸 흐르는 목두구.그리고 천불동 입구 편편한 산기슭엔 최근 「서주천성원」이라는 작은 전시장을 개설 해 놓았다.그 안에는 「서유기」의 주연으로 삼장법사를 비롯,손오공·저팔계등을 조소한 외로도 「팔십일난」을 도해한 동굴,동굴밖 언덕위로는 잠참의 입상과 그의 대표작인 「화산운가송별」을 새긴 시비가 있었다.그 시비에 새겨진 첫 절은 이러했다. 「화산돌올적정구, 화산오월화운후. 수운만산응미개, 비조천리불감래」 화산이 우뚝 적정 어귀에 섰거늘, 오월이라 불꽃 구름 뭉게 뭉게. 불꽃 구름 엉긴 채 풀리지 않거늘, 천리길 나는 새도 얼씬할 수 없네) 필자가 찾은 때는 다행히 쾌청한 9월중순 이어서 인지 불꽃구름커녕 흰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 진하디 진한 쪽빛 하늘 뿐이었다.그 쪽빛에 적갈의 산빛,골짜기와 석굴,길가에 굴러가는 돌멩이조차 일색으로 빨갰다. 그런데 그토록 숨 막힌 빨간 모랫벌과협곡에도 서원의 의지는 굴을 파고 예술의 꽃을 피웠었다.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그것이다. 화염산 주봉 동쪽 기슭엔 광장이 닦여 있었다.그 왼편엔 「서유기」의 일사삼도의 조상을 세웠는데 초입의 서주천성원에서 보았던 그것보다 규모가 큰데다 훨씬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었다.그 바른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황갈색의 가파른 벼랑이 무르토크강(목두구))을 굽어 보고 있었다.과연 「베제크리크」란 지명이 「산 허리」라는 위구르말을 딸만했다. 기록상으로 석굴의 수는 83개라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50여개이며 그중 벽화를 소유했던 것이 40여개요 벽화의 총면적은 1천2백㎡라고.그것들은 열차의 창을 방불케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고,그 내부는 대체로 석굴의 길이 20m에 5m의 폭과 5m의 높이의 장방형,거기다 천장은 동그란 궁륭식이라 쿠차의 키질,돈황의 막고굴에 비해 훨씬 넓고 시원했다. ○일부 벽화 손실 아쉬워 기원6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금 위구르족의 조선인 고창왕국씨들의 왕가 사원을 비롯,당시 불가의 승려·신도들의 승방,고승을 기리는은굴,혹은 그들이 좌선하던 비가라굴로 쓰였었다.당대의 문헌인 「서주도경」에 고창지역 불교의 승지로 소개한 「영융굴사」가 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인 것이다. 여기 벽화는 비록 석가모니 전생의 사적을 선양하는 본생고사를 비롯,서원도·경변도·공양상·인연고사등 불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왕공 귀족과 공양 신도들의 복식·가옥·거마·기악등을 통해 당시 불교를 신앙하던 회골사람들의 생생한 생활과 문화를 볼수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했다. 특히 33호 석굴의 「왕자거애도」에 그려진 여러나라 왕자의 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은 마치 오늘날 정상들의 모임을 발불케했고,39호 석굴의 커다란 공양 보살의 풍윤한 얼굴과 굵직한 청화의 무늬,그리고 31호 석굴의 설법도에 그려진 보살의 성장과 복식등은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묻혀 있음을 직감케 했다. 그러나 20호 석굴과 27호 석굴에서 만난 복사물의 대체와 훼손된 잔화를 대하면서 허탈과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특히 20호 석굴의 서원도,회골국왕과 왕후의 형상은 10세기 당시 회골국 복식을 알수있는 증거임에도 절취된 채 지금 영인된 사진만 걸려 있음은 27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필자가 참관한 9호,37호등 석굴에서도 불상의 눈이 뭉개지거나 벽면을 도려낸 칼날의 선이 남아 여기 저기서 수난의 흔적은 완연했다. 베제크리크의 수난은 크게 두번 있었다.13세기말,몽골의 말굽 아래 처음 망가졌고,그를 전후해서 이슬람교가 흥성하면서 불교의 석굴은 쇠락을 거듭하였다.또 한번은 금세기초인 1902년,독일의 그륀베델과 로코크 등이 네차례나 답사를 빙자한 예술품의 절취가 있었다. 그 속에는 20호,27호 석굴의 것 말고도 회골귀족과 몽골인들의 복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공양도」와 회골문자가 들어 있는 「본생고사도」등이 절취당한 것은 통석할 일이다.더구나 그중 베를린 박물관으로 납치되었던 벽화 일부가 2차대전의 전화에 소실되었다니 서역의 찬란했던 회골문화의 운명도 꽤나 기구한 것이었다.
  • 경찰 제복 양복스타일로/내년 10월부터 교체방침

    ◎흑청색 상의에 넥타이… 「군복」 위압 “끝” 경찰관 근무복이 내년 10월부터 현재의 군복스타일에서 넥타이를 매는 양복스타일로 바뀐다. 경찰청은 6일 지난 1년간 27가지 견본을 놓고 경찰관·복식전문가·일반인들의 의견을 종합,흑청색 양복스타일의 상의에 청색셔츠를 받쳐입고 넥타이를 매는 방식으로 근무복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또 교통경찰관 복장은 지금의 하늘색 상의 대신 청남색 상의로 교체된다. 경찰이 이처럼 근무복을 바꾸기로 한 것은 현재의 근무복 색상이 지나치게 칙칙해 권위주의적이고 위압감을 줘 문민시대의 경찰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잇단 대형 패션행사 “눈길”/20일 까지 한국종합전시장

    ◎95서울 컬렉션/국제 섬유전시회/기성복 박람회/“외국과 경쟁” 폐션계에 새 활력 유도/내년 봄·여름엔 순결 강조한 스타일 유행할듯 국내 패션계를 움직이는 단체들의 대형 패션행사가 20일까지 서울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패션디자이너협의회가 최근 명칭을 서울 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회장 박항치)로 바꾼뒤 처음 갖는「95 봄·여름 서울컬렉션」과 한국패션협회(KOFA·회장 공석붕)의 제9회 서울국제기성복 박람회(SIFF),한국섬유산업연합회(회장 장치혁)주최의 국제섬유전시회(STOFF)가 그것. 이 행사들은 WTO(세계무역기구) 출범을 앞두고 외국브랜드와의 국내시장전쟁,해외시장 개척등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는 국내 패션계에 활력소를 넣기위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SFAA의 서울컬렉션은 파리와 밀라노 런던 뉴욕 도쿄에서 매년 두번씩 열리는 세계적인 정기컬렉션과 발맞추는 트렌드쇼로 내년봄 서울의 라인을 예상,발표하는 행사로 자리잡아왔다. 17일 지춘희 루비나 한혜자 이상봉씨가 첫 테이프를 끊은데 이어 18일에는 임태영 신장경 박항치 설윤형씨가 작품을 선보였고 19일에는 김철웅 이신우 장광효 정미경 배용씨,20일에는 김동순 오은환 진태옥 박윤수씨 등이 출품한다. 이번 컬렉션에서 디자이너들이 밝히는 경향은 대체로 순결한 이미지의 여성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스타일. 박항치씨는 면을 주소재로 해 인간은 태초로 돌아가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이상봉씨는「18세기 암울한 카페가있는 뒷골목」의 분위기를 연출했다.배용씨는 「잘익은 포도주향과 고색창연한 보석」의 이미지로 여성미를 표현할 계획이다.장광효씨는 옛 가야시대의 복식을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재구성한 남성복을,정미경씨는 겉옷과 속옷의 개념을 무시한 패션과 복고풍과 현대적 세련미를 조화시킨 의상을 제시한다.이신우씨는 파리컬렉션에서처럼 「글래머와 유머」를 주제로 「만화속의 공주」를 보여주며 김동순씨는 도쿄컬렉션(9일)에 출품한 「회전목마」주제의 작품을 다시 서울컬렉션에 내놓는다. 지난 87년부터 개최돼온 섬산연의 이번 국제섬유전시회에는 지난해 대비 30%가증가한 16개국의 92개업체가 참가해 국내의 신소재및 각국 섬유원자재,직물디자인과 의류부자재등이 대거 선보이고 있다. 섬산연 전시과 나재문과장은 『바이어에 의한 물품수주가 대부분 전시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외국인들의 국내상품 수주계약과 함께 국내업체들의 베트남등 해외진출상담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상공자원부와 한국섬산연 후원으로 열리는 한국패션협회의 국제 기성복박람회 역시 내년 봄·여름 기성복을 전시하는 바이어쇼.국내 14개업체를 비롯,홍콩 12개업체,중국 6개업체 등 모두 33개업체가 참가하고 있다.
  • 50년대 교복/100년전 사제복/조선시대 원삼/「서울 복식전」눈길

    ◎오늘부터 서초구청 강당서 열려/주민소장품 1백여점 선보여 「이제는 장년이된 아들의 국민학교 교복,60년전 시집올때 가져온 고쟁이,일제시대 남편이 입던 국민복…」.일반 시민들이 대대로 가정에서 소장해온 빛바랜 의상과 장신구를 전시하는 독특한 행사가 마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정도 6백돌을 기념,서울 서초구는 26·27일 이틀간 서초구청 대강당에서 「서초전통문화장터」를 열고 김치 맛 자랑 경진대회와 여성솜씨 작품 모음전,김장채소직거래 등의 행사와 함께 「서울복식전」을 마련했다. 「서울복식전」에는 조선시대이후 개화기,일제시대,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초구민들이 집안에 보관해둔 의상과 생활소품 1백여점이 전시됐다.서초구청측이 운현궁과 세종문화회관에서 빌려온 조선시대복장 1백여점과 나란히 자리한 구민들의 소장품중에는 1850년 사대부가 안주인이 의복짓는법과 음식 만드는 법을 한글로 직접 기록한 책 「규합총서」등의 희귀한 가보들이 눈에 띄었다.1890년 천주교 사제서품시 입었던 사제복과 일제시대 빌로드로 만든 신식웨딩드레스도 진귀한 볼거리다. 또 50·60년대 남대문국민학교와 경기중·고교의 교복은 자신의 아들이 성장해간 징표로 보관해온 한 어머니의 자식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의 복식모습과 함께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1910년 전후의 원삼(의식용 의복)이나 굴레(어린이용 방한모),두루마기,단속곳 등은 서초구 노인대학에 다니는 노인들이 간직해오다 내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이 행사를 준비해온 서초구청 가정복지과 심애영계장은 『많은 주민들이 이행사를 통해 그동안 보관해온 옷이나 장신구를 「가보」로 여기게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소박한 생활소품의 역사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가정의 뿌리를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한국,종합 2위 확정/아시안게임 오늘 폐막/금5개 추가… 63개

    【히로시마=특별취재단】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폐막을 하루 앞둔 15일 한국은 여자단식,여자복식,혼합복식 등 배드민턴에서만 금메달 3개를 따냈고 남자하키와 남자유도에서 금메달 1개씩을 보태 사실상 종합 2위를 확정지었다. 일본의 텃세에 밀려 2위 확보가 불안하던 한국은 금메달 62개로 일본에 6개 앞서 지난 86년 서울대회이후 3연속 종합2위를 지켰다.일본은 마지막 10개의 금메달이 걸린 16일 육상에서 기대대로 3개,남자배구에서 금메달을 건진다해도 한국에 1개 뒤진다. 42개국 7천2백여명의 선수단이 15일 동안 열전을 벌였던 이번대회는 16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셔틀콕의 여왕」 방수현은 단식결승에서 일본의 미즈이를 2­0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한국선수끼리 맞붙은 여자복식·혼합복식 결승에서는 심은정­장혜옥조와 유용성­정소영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방수현 정소영 심은정 장혜옥 등 여자선수들은 단체전 우승에 이어 모두 2관왕의 영예를 누렸다. 한국은 남자하키 결승에서도 강호 인도를 꺾고 남녀 동반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 예산편성에 원가개념 도입/절약 유공자에 인사·급여 혜택

    ◎부정방지위 건의 감사원장의 자문기구인 부정방지 대책위원회(위원장 이세중)는 15일 예산편성 및 집행과정에서의 부조리 가능성을 막기 위해 정부회계 및 예산편성에 「원가개념」을 도입할 것을 감사원장에게 건의했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장부상의 오류를 쉽게 검증할 수 있도록 현행 단식부기를 복식부기로,현금주의를 발생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위원회는 또 예산절감 유공자에게는 인사와 급여에서 해택을 주는 등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유도하고 특히 부조리 근절을 위해 감사인력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일부 기관에서 예비비를 지나치게 경상비로 전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에 대비하려면 예비비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한국,2위 굳히기/금9개 추가… 일본과 5개차

    【히로시마=특별취재단】 한국이 유도에서 무더기 금메달을 따내 종주국을 자부하던 일본의 콧대를 꺾으며 종합 2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한국은 14일 벌어진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3일째 유도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것을 비롯해 남자핸드볼과 여자하키가 아시안게임 3연패를 하는등 9개의 금메달을 보태 모두 57개로 이날 금메달 4개를 추가하는데 그친 일본을 5개차로 따돌려 아시안게임 3회 연속 종합 2위 달성을 눈앞에 뒀다. 한국은 유도에서 여자 52㎏급의 현숙희를 시작으로 56㎏급의 정선용,남자 71㎏급의 정훈이 결승전에서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종합 2위를 굳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남자핸드볼과 여자하키도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추가하며 아시안게임 3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여자 사격에서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금메달 2개가 나왔다.조은영은 여자 스탠더드 소총 복사 단체전에서 공현아 서민영과 함께 나서 중국을 제치고 우승을 이끌어 낸뒤 개인전에서도 일본의 오지마 노리코를 시리즈차로 꺾고 우승,2관왕에 등극했다. 사이클4㎞ 남자 단체추발에서도 예상을 엎고 강호 카자흐스탄을 제치고 금메달 1개를 보탰으며 한국선수끼리 맞붙은 연식정구 남자부 결승에서는 이명구·유영동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드민턴에서도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한국선수끼리 금·은메달을 다투게 돼 2개의 금메달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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