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복면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상봉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주재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벤츠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330
  • 대낮 2인조 강도/현금인출·성폭행

    【광주=박성수기자】 17일 상오11시쯤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유모씨(31·회사원)집에 복면을 한 20대 강도 2명이 들어와 유씨를 흉기로 위협,넥타이로 손발을 묶어 인질로 잡은뒤 부인 조모씨(29)를 데리고나가 1㎞ 떨어진 광주은행 장성출장소와 장성축협 등에서 모두 4백여만원의 예금을 인출해냈다. 범인은 이어 부인 조씨를 집으로 데려와 남편을 이불로 뒤집어 씌운뒤 집에 머물고 있던 다른 한명과 함께 조씨를 성폭행하고 집안에 있던 목걸이와 반지등 모두 5백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났다.
  • 광주시립미술관/새 문화명소로 각광

    ◎개관 6개월만에 관람객 4만명 돌파/고 허백련·오지호 유작 전시실 큰 인기/올부터 국립미술관과의 작품교류전도 추진 광주시립미술관(광주시 북구 운암동 산34의 1)이 예향 광주의 새 명소로 각광을 받고있다. 문을 연지 반년만에 관람객이 4만명을 넘어섰고 방학인 요즘에는 하루평균 5백여명이 찾고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이어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8월1일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은 지하3층 지상2층에 연건평 4천1백19평규모로 모두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지난해 11월2일 「광주시민의 날」을 맞아 문을 연 4백37평규모의 2층 상설전시실은 연일 관람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우리나라 동서양화단의 두 거목이었던 고 의재 허백련화백과 오지호화백의 유작을 관람하기 위해서이다. 한국화의 은은한 멋을 접할수 있는 허백련기념관에는 미망인 성연옥여사가 기증한 「매·란·국·죽」과 「미완성 산수도」등 고인의 작품 16점이 전시돼 있다. 호남화단을 대표하는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는 1891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서태어나 23세때부터 운림산방을 드나들며 남농 허건의 부친인 미산에게 사사하며 타고난 재능위에 필력을 다듬었다. 광주시 동구 운림동 춘설헌에서 여생을 보낸 그는 지난77년 작고했다. 또 의재기념관 바로 옆에 자리한 오지호기념관에는 미망인 지양순여사가 기증한 추경,항구,설경,자화상등 오화백의 대표작 5점과 두아들인 승우 승윤씨의 서양화4점등 모두 9점이 함께 전시돼 있다. 오화백은 1905년 전남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서 태어나 23세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모임인 「녹향회」를 조직하는등 서양화의 이론정립과 후진양성에도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 인물이다. 지난8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유작 1백50여점을 모아 회고전을 가진데 이어 이곳 광주시립미술관에 그의 작품 상설전시관이 마련돼 그의 예술세계를 아껴온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있다. 이들 허·오화백의 이같은 상설전시관의 탄생은 특히 이고장 출신 원로화백들이 두 대가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그동안 꾸준히 설립을 추진해온 결실로 더욱 값지게 평가된다. 미술관의 2층 상설전시실에는 두화백의 유작말고도 이고장 원로작가들의 서양화59점 한국화36점 서예19점 조각9점등 모두 1백48점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와함께 4백11평규모의 1층 기획전 제1전시실에서는 지난해 12월10일부터 전남대 신경호교수의 서양화전이 열린데 이어 새해에도 볼만한 기획전들이 개막을 기다리고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조광영전시계장은 『이곳 시립미술관의 개관으로 이 지역 미술애호가들의 욕구충족과 함께 예향 광주를 널리 알리는데 한몫을 하게 됐다』며 『올해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소장작품교류전을 추진하고 세미나개최,미술정보지발간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 오지호화백 추모사업 활발/10주기 맞아 생가에 기념관건립 추진

    ◎국어학자로서의 업적 기린 책도 출간/광주시 「오지호미술상」 운영… 각계서 적극 참여 남농 허건과 함께우리나라 남도화단에서 한국화와 서양화의 양대산맥을 이룬 고 오지호화백(1905∼1982)의 10주기를 맞아 기념미술관건립등 그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그가 타계한 24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16일 광주 무등온천장호텔에서 「10주기 추모및 출판기념회」가열렸다.유족과 화단의 동료·후배,제자및 국문학관계자,지역유지등 4백여명이참석,한국 서양화단에 우뚝선 고인의 업적과 국어학자로서의 한글사랑에 대한그의 정열을 기린 모임.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이번에 출간된 책은 「미와 회화의 과학」「지산동초가와 화실」등 2편이다. 「미와 회화의…」는 단지 화가로 머물지 않고 미의궁극적인 본질을 구명한고인의 미학이론을 한데 모은 저술.고인의 손자이자 원광대교수인 병욱씨(35·미학과)가 정리했다.「지산동초가…」는 유정기 김기창 유경채 천경자 이구열 고건 남광우 홍남순 문순태등 고인과 생전에 인연을 맺었던 각계각층의인사 85명이 쓴 회고문집이다.순수의빛을 찾아서,우리시대의 사표,국한자혼용교육의 부활,우리것 보존에 앞장서니,지산동의 춘풍화기등 전5부로 구성됐다. 오지호선생은 전남 화순군 동복면 탁상리에서 태어나 전주고보와 휘문고보를거쳐 일본의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한뒤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와 국전초대작가,국전심사위원,예술원회원,국전운영위원등을 지낸 한국서양화단의 개척자.그는 또 한자폐지운동에 앞장서 한국어문교육연구회를 창립했으며 국한자혼용 국교1,2학년 교과서를 자비로 출간하는등 국어학자로도 이름높았다. 이에따라 선생의 뜻을 기릴 미술관등을 세우자는 계획이 4∼5년전부터 발의돼 지난7월 개관된 광주시립미술관내에 50평규모의 「오지호기념관」을 설치,유작등 10점이 전시되고 있다.또광주시주관으로 「오지호미술상」을 제정,운영중이다.이와함께 지난해부터는 고인의 생가가 있는 동복면에 기념관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 사업은 고인의 뜻을 이어 형제화가로 활약하고 있는 고인의 두아들 승우화백(63)과 승윤화백(52)주도로 이뤄졌다. 유족측에서는 기념관부지와 경비 1억원을 내놓았으며 전라남도에서 2억원,문예진흥원이 1억,전남 화순군이 5천만원등 모두 4억5천만원을 들여 건평60평규모의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이 그것.기념관에는 평소 선생이 사용하던 화구등 고인의 손때가 묻은 유물과 장롱,문갑,서적등 유품,그림등이 전시될 예정이다.그러나 당초 내년봄에착공해 연말안에 개관한다는 목표가 전남도측의 예산지원이 늦어짐에 따라 벽에 부딪쳐 지역주민들과 이 지역 예술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나석주열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착취앞장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백범 지도받아 상해에서 군자금모집 활동/민족혼 일깨우려 단신으로 서울잠입,장거/“2천만 민중이여 분투하라” 일경과 총격전끝 장렬히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함께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나석주열사가 선정됐다.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나열사는 일제 착취의 간성인 동양탁식회사에 폭탄을 투척,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인물.나열사의 당시 의거는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될 때 발생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따라서 선생의 의거는 의열투쟁이라는 단순한 사건 차원을 넘어,당시 민족운동으로 승화된 농민·노동운동 차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정부는 지난 62년 3·1절에 열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는 말을 남기고 숨져간 나열사의 생을 되새긴다. 1890년.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 이곳은 당시 애국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가 설립한 양산학교가 있었다. 백범과 나열사의 운명적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아버지 나병헌과 어머니 김해금씨 사이의 외아들 석주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소년 석주는 양산학교를 거치며,몸과 마음이 굳센 독립투사로 다져진다. ○황해도 재령 출생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이 지방까지 번지면서부터 청년이 된 석주는 「고기가 물을 만난」듯,우리의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3월 하순,어느날.사리원 부호 최병항의 집에 6인조 권총강도단이 들었다.이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강도들은 답지않게 모두 최부자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최부자도 그제서야 좌정을 하고 냉정을 찾았다.그때 한 복면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일반강도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말뜻을 알아차린 최부자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오히려 6인조 강도들이 불안한 눈치를 보였다. 『너,석주로구나! 그 복면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그래,춘부장 어른께서도 편안하신가?』 깜짝놀란 석주는 복면을 벗고 최부자 앞에 조아렸다.나머지 다섯명도 얼굴을 드러냈다.김덕영 최호준 최세욱 박정손 이시태등이 그들이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유용하게 쓰도록 하게나!』 최부자가 「강도들」에게 내놓은 돈은 무려 6백30원이었다.이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6인조는 크게 감동,엎드려 큰 절을 드린 다음,인사를 올렸다. 『저희들이 떠나고나면 즉시 위경에 연락하여 권총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하십시오.왜경이 눈치 채면 봉변을 당하십니다』 ○6인조 강도 사건 6인조 강도단은 4월에도 다시 안악부호들인 김응석 원형락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등 그 활동이 신출귀몰하였다. 수사망이 좁혀들기 시작하자 나석주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1920년 11월 22일이었다.「6인조 연쇄강도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나석주는 상해에서 은사인 백범을 다시 만난다.당시 백범은 임시정부 경무국장. 이때부터 나석주는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계속하게 된다.임정 경무원·의정원 근무와 함께 한인애국단·의렬단 가입으로 폭파활동과 군자금 모집활동등이 전개되었다. 이동휘가 세운 무관학교등에선 전술전략을 연마했다. 1926년.나석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일이 닥쳐오기 시작했다.그것은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김창숙과의 만남이었다. 그해 5월 김창숙과 백범은 국내외 정세를 토론하며 독립운동의 방향을 함께 모색했다. 이들 두 거두는 「지금 무엇인가 횃불을 올리지 않으면 잠자고 있는 민족혼을 영원히 깨우쳐주지 못한다.이때에 위정기관과 친일부호를 박멸하여 국내동포의 잠자는 정신을 일깨워야한다」는 방략에 일치를 보았다. 이를 실행할 인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었다.김구가 먼저 제의를 했다. 『나와 친한 결사대원으로 나석주 이화익과 같은 용감한 청년이 지금 천진에 있다.또 그곳에는 의열단원도 많으니 무기를 구입,천진으로 가서 기회를 보는 것이 좋겠다』김창숙은 두명의 조선청년을 만났다.그리고 계획을 설명했다.둘은 거침없이 나섰다. 『우리들은 일찍이 한번 죽기로 결심했는데,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나석주로 결정이 되었다.이화익은 섭섭한 눈치를 숨기지 않았다.김창숙이 말했다. 『백범도 그대의 장도를 학수고대하고 있소.민족의 고혈을 빨고 있는 식산은행과 동양탁식회사가 그대의 손에 폭파되는 날 일제의 간담이 서늘할 것이며,잠자고 있는 조선의 민족혼이 불길처럼 다시 타오를 것이오.대의를 위한 무운을 비는 바이오』 「중국 산동성 출신.나이 35세.이름 마중덕」 1926년 12월 26일.인천항에 상륙한 이 중국인은 다름아닌 나석주였다.「마중덕」은 열차를 이용,진남포로 향했다. 고향을 떠날 때 한마디 이별의 말을 하지못한 부모님과 부인,그리고 아들·딸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귀향길에서 그는 「일제의 삼엄한 경계가 고향등지에 펼쳐져 있다」는 정보를 듣게된다. 나석주는 바로 발길을 서울로 돌렸다.피눈물이 흘렀다. 중국인 전용여관 「동춘전」.1926년 12월 28일.날씨는투명했으나,조국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나석주는 아침밥을 든든하게 들었다.그리고 낮이 될 때까지 거리를 배회했다.오가는 동포들의 표정이 어두웠고,슬프게 느껴졌다. ○들리지않는 폭음 하오 2시5분.나석주는 식산은행으로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이게 웬일인가! 뒷벽 기둥에 던져진 폭탄은 불발이었다.절망적인 생각이 찰나처럼 스쳐지나갔다.폭탄을 입수할 때 시험을 하지 못한 점,6개월간의 보관기간중 뇌관에 녹이 슬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회한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다행히 일인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나석주는 태연하게 정문을 나섰다. 『그렇다면,이젠 동탁이다!』 동탁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석주는 기민하게 움직였다.1층에서 왜인 1명을 권총으로 사격하고,2층으로 뛰어올라가 또다른 왜인에게 사격한뒤 놀라 도망가는 토지개량부 간부들을 거꾸러뜨렸다. 그리고 기술과장실에 나머지 폭탄 1개를 힘껏 던졌다.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내려오며 2명의 왜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거리로 나와 폭음을 기다렸다.그러나이게 또 웬일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시야가 노랗게 변해갔다.황금정(지금의 을지로1가)쪽에서 달려온 경찰을 쏘아 쓰러뜨릴 때까지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황금정2정목에 이르렀을 때에는 왜경들의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졌다.나석주는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2천만 민중아,분투하여 쉬지말라!』 나석주는 자신의 가슴에 나머지 3발을 쏘았다.그것은 해방의 날을 준비하기 위한 장렬한 불꽃이었다. ◎역사적 평가/일 경제수탈에 맞선 농민의 아들 「나는 고향을 떠난지 6년여에 공연히 동서로 분주하면서 아무런 성공없이 지내왔으니 제일은 민주에 대한 죄인이요,제이는 가주에 대한 죄인」이라고 고향 동지인 최호준에게 1925년5월의 편지로 몸부림치던 나석주의사,그는 끝내 민족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1926년 12월28일 백주에 을지로(당시 황금정)네거리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나석주의사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진초리에서 태어났는데 북률면은 재령강이 흐르는 나무리들(여물평)로서 원래는 조선왕실의 궁방전이 많았으나 일제가 점유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불하하여 9할의 면적을 동척회사가 차지하고 있었다.따라서 북률면민은 거의 동척회사의 소작농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나석주의사도 동척농장의 소작인 나병헌의 외아들로 자라났다. 그가 1926년12월28일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지금 을지로입구 외환은행 본점자리)와 식산은행(지금 롯데백화점자리)에 수류탄을 던지고 또 동척 관계자 6명을 살상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 경찰간부를 처단하고 자결 순국했는데 그때 나석주의사가 동척이나 식산은행을 표적했다는 것이 자기 가정의 처지로 봐서 우연이 아님을 알수 있다.그렇다고 가정 보복으로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1926년은 일제 식민통치가 경제수탈에 집중되어 민족운동이 사회경제운동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였다.당시 전국에 걸쳐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확산되던 가운데 특히 북률면 동척농장의 소작쟁의가 용천 불이농장의 소작쟁의를 부추기면서 사회운동이 권익운동과 더불어 일제 수탈기구에 대항한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그럴때 조선민족의 눈에 동척회사나 식산은행이 수탈 본산으로 잡혔던 것이다.그러므로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투쟁만의 논리를 넘어 농민운동·노동운동을 포괄한 민족운동 총체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26년의 의열단은 광주에 있는 황보군관학교에 입교하고 있었다.즉 1919년 창단 이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내용처럼 개인의 작탄활동(의열투쟁)을 전개하다가 이제 막 군사편대활동으로 방법을 바꾸고 있었다.그러니까 나석주의사의 의거는 의열단으로서 의열투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나석주의사는 의열단과 유림단의 소망을 안고 순국했으며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대변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개를 만천하에 과시하였다.그럼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는 철퇴를,세계에는 경종을 울렸고 우리 민족에게는 용기를 불러 일으킨 정의의 화신으로 청사에 빛나고 있다.
  • 국민 지구당에 복면강도/“일당액수 실토하라” 위협(조약돌)

    ○…6일 상오 9시15분쯤 서울 종로구 평창동 318 국민당 종로지구당연락사무소에 복면을 한 남자 2명이 들어와 당원 이복동씨(41·여)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일당 액수를 실토하라』며 위협하다 이씨가 반항하자 그대로 달아났다. 이씨에 따르면 이날 사무실에서 혼자 청소를 하는데 남자 2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흉기를 들이대면서 『기호 1번의 당선이 확실한데 왜 국민당을 위해 일하느냐』면서 『돈을 얼마나 받고 일하느냐』며 위협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근처 불량배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국민당 종로지구당측은 『국민당의 금권선거운동 사례를 적발하려는 민자당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
  • 요르단서안 바르타아촌/유태·팔인 대립의 상징(세계의 사회면)

    ◎친이스라엘인과 마을 동서로 양분/동화거부 주민 동쪽에 모여 항전 25년/양쪽 생활 상이… 두민족 반목상 웅변 수십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대립과 반목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한 작은 아랍인 마을이 있다.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요르단 서안지구북쪽끝에 위치한 바르타아마을.주민이라야 고작 5천여명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 점령지역에 살면서 이스라엘에 동화된 친이스라엘사람들과 이를 거부하고 끝끝내 항쟁하며 살아가는 친팔레스타인사람들과의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이 마을에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한 지난 67년부터.주민들은 이때부터 마을 한가운데를 가르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같이 양쪽으로 나뉘어 대립을 계속해오고 있다. 서안지구가 이스라엘에 점령되기전 이 마을은 계곡 서쪽은 이스라엘이,동쪽은 요르단이 각각 통치하고 있었다.이스라엘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마을은 하나로 합쳐졌고 주민들은 계곡 건너편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양쪽의 생활방식은 물론 정치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야 했다. 마을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마을 동쪽엔 팔레스타인기가 집집마다 펄럭이고 좁은 골목길 담벽엔 온통 이스라엘과의 항전을 독려하는 섬뜩한 낙서들이 가득 휘갈겨져 있다. 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반란군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집집마다 뒤지고 다닌다. 반면 반대쪽 마을엔 깃발이나 낙서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잘 정돈된 집들이 늘어서 있다. 또 주민들은 대부분 일제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 왕래속에서도 양쪽 주민들의 갈등과 충돌은 끊길줄 모른다. 동쪽주민 수십명이 몰려가 서쪽주민들에게 『함께 이스라엘과 싸워 팔레스타인 땅인 이곳을 되찾자』고 촉구하기도 한다. 마을서쪽의 10대 소년들이 계곡 건너에 놀러갔다가 복면을 한 청년들에게 『이스라엘을 돕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뭇매를 맞는 경우도 흔히 있다. 바르타아마을 촌장인 리야드 카브하씨는 『반이스라엘 투쟁에 동참하기 어려운 마을 서쪽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해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동쪽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서쪽주민들은 법을 지켜야 할 이스라엘 시민이면서 반이스라엘 투쟁을 도와야 할 팔레스타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카브하 촌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쪽에도 기울 수 없는 자신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한탄했다.
  • 포커판 흉기위협/돈뺏은 20대 영장

    서울경찰청은 14일 이태복씨(28·전과6범)를 강도상해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친구5명과 함께 지난8일 하오3시쯤 장모씨(35·상업·용산구 한남동)가 친구들과 서초구 서초3동 H오피스텔에 모여 포커판을 벌이는 것을 알고 복면을 한채 흉기와 가스총을 들고 들어가 장씨등을 위협,손발을 묶은뒤 1백만원짜리 자기앞수표와 현금등 2천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 주택가 2인조 강도/40여만원 털어 도주

    15일 0시15분쯤 서울 서초구 양재동332 김덕기씨(49)집에 복면을 한 20대청년 2명이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가 일가족4명을 흉기로 찔러 전치2주씩의 상처를 입힌뒤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등 40여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김씨는 『14일 저녁 놀러온 유영태씨(57·농업)와 함께 거실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20대후반의 청년 2명이 들어와 흉기를 들이대며 금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 가정집 흉기 강도/10대 4명에 영장

    【정주】 전북 정주경찰서는 14일 흉기를 들고 가정집에 들어가 금품을 빼앗은뒤 이 집 주인의 승용차를 빼앗아 타고 달아났던 조모군(18·정주 모고교 2년·정읍군 이평면 )등 10대 청소년 4명에 대해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상오 2시20분쯤 스타킹으로 복면하고 정읍군 신태인읍 우령리 정영수씨(40·사업)집에 들어가 정씨부부를 흉기로 위협,넥타이로 손발을 묶고 현금 39만원과 승용차 열쇠를 빼앗은뒤 집앞에 세워둔 정씨의 갤로퍼 승용차를 타고 달아난 혐의다.
  • 예산·서산 4인조 연쇄강도/승용차 탈취,24세 처녀 태운채 도주

    ◎민가 침입,돈 요구… 형제 흉기로 찌러 【예산=이천렬기자】 30일 하오10시15분쯤 충남 예산군 오가면 원천리앞 국도에서 봉고차를 탄 20대 청년 4명이 신례원에서 예산방면으로 가던 충남1로7828호 프라이드 승용차(운전자 최재설·27·예산군 예산읍 창소리496)를 가로막아 세운뒤 흉기로 위협,승용차를 빼앗고 함께 타고 있던 김모양(24·회사원)을 납치해 빼앗은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최씨에 따르면 이날 평소 알고 지내던 김양과 친구 최석현씨(24·덤프트럭운전사)등 2명과 함께 신례원에서 저녁을 먹고 프라이드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충남××2247호 봉고차가 갑자기 추월해 가로막은 뒤 흉기로 위협,예산읍 삽교역리까지 끌고가 자신과 최씨를 밖으로 끌어내고 김양을 승용차에 태운채 서산방면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범인들은 이어 2시간쯤 뒤인 31일 0시20분쯤 충남 서산군 인지면 차1리 740 박종찬군(19·회사원)집에 복면을 하고 침입해 올림픽중계방송을 보고 있던 박군등을 흉기로 위협,돈을 요구하다 이에 반항하는 박군과 동생 종휘군(16·부석고2년)에게 흉기를 휘둘러 각각 전치2∼3주의 상처를 입힌뒤 예산방면으로 달아났다.
  • 대학생 30여명이 경찰사무실 습격/경관 셋 중상

    【천안=이천렬기자】 20일 상오1시50분쯤 충남 천안시 신부동 천안경찰서 학원반 사무실에 「충남지구총학생회연합」소속대학생30여명이 복면을 하고 침입,천안경찰서 정보과 김형갑경장(38)등 3명을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2∼10주의 중상을 입힌뒤 정보관련서류를 빼앗아 달아났다.
  • 범행 들키자 살인 떼강도 4명 구속

    서울송파경찰서는 14일 전광수씨(25·공원·전남 담양군 대덕면 매산리 37)등 4명을 강도살인등 혐의로 구속했다. 섬유세탁공장종업원들인 이들은 지난달 25일 상오2시10분쯤 복면을 하고 송파구 석촌동 270의11 장귀찬씨(52·사업)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가 건넌방에서 잠자던 장씨의 큰딸(21)을 흉기로 위협,금품을 빼앗으려다 딸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장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있다.
  • 전대협,복면·쇠파이프 극력시위/「6기출범행진」

    ◎한밤까지 도심 곳곳서 충돌/전경 3백명 무장 해제… 진압장비 태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30일에 이어 31일에도 서울 한양대에서 이른바 「제6기 출범식」을 가진뒤 이날 하오4시쯤부터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주변등 시내 곳곳으로 진출,저녁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날 하오1시쯤 한양대에서 나와 왕십리와 동대문을 거쳐 대학로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려했으나 경찰이 이를 막자 삼삼오오 학교를 빠져나와 지하철등을 타고 도심으로 모여들었다. 학생들가운데 1만여명은 이날 하오4시30분쯤부터 복면에 쇠파이프등을 들고 신세계백화점앞길과 시청앞길등을 점거,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남대문앞에서 전경 3백여명을 무장해제시키고 헬멧·방패·진압봉 등을 불태웠다.이들은 한때 밀려나던 경찰이 전열을 정비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종용하자 청계천과 종로등지로 흩어져 다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한국은행앞길에 학생들이 몰려들자 가두방송을 통해 『시민여러분,학생들의 시위가 예상되니피해달라』고 안내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순간 학생들은 주변골목에서 『민자당타도』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제히 전경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에 나섰다. 학생들은 이날 시위에서 유인물등을 통해 『민자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민자당 대통령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운동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이에앞서 한양대에 모였던 5만여명의 학생들 가운데 1만여명의 학생들은 낮12시쯤 「출정식」을 가진뒤 가두행진에 나서려다 경찰이 사근동쪽 도로에 쓰레기적재함 15개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자 40여분동안 대치하다 학교로 다시 들어갔다. 경찰은 이날 전경 1만2천여명을 지하철역 주변과 주요 공공기관주변등에 배치,학생들의 시위에 대비했다. 한편 운동권학생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보여준 편향적이고 과격한 행태에 대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깊은 우려와 함께 「시대착오적 행동」이라는 비난도 일고있다. 시민들은 특히 과격한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열차를 강제로 세워 타는가하면 북한학생들과 국제전화로 편향적인 「회의」를 갖는등법질서를 파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대해 몹시 불안해했다. 또 걸핏하면 화염병등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점거농성을 일삼아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불안과 불편을 주는 일 등을 매우 짜증스러워 했다. 마포구 노고산동에 사는 가정주부 김종례씨(59)는 『대학생들이 달리는 열차를 멋대로 세우고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는 일요일까지 거리를 막는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나타내려면 공원이나 빈터에서 정정당당하게 주장하지 가뜩이나 붐비는 도로를 차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 대낮 새마을금고에 공기총 강도/스타킹복면 2인조/진주 대안동

    ◎현금 1천여만원 털어 도주 【진주=강원식기자】 7일 하오3시쯤 경남 진주시 대안동 17의1 대안동새마을금고(이사장 서일권·52)에 스타킹으로 복면을 하고 공기총을 든 강도 2명이 침입,직원 이영숙(26),안성희양(20)등을 위협해 금고속에 들어있던 현금 1천여만원을 털어 달아났다. 이양등 직원들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사무실에 고객이 없는 틈을 타 스타킹으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와 이들중 1명은 카운터에 올라서서 공기총으로 돈이 있는 곳을 대라고 위협,겁에 질린 이양등이 금고쪽을 가리키자 나머지 1명이 현금 1천여만원을 털어 달아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시내 개양·상평동등 도주로를 차단,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인근 불량배등 주변에 대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 담배공사 지점에/장난감권총 강도

    서울관악경찰서는 14일 신승모씨(55·경기도 과천시 광창마을 1050)를 강도상해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씨는 이날 낮12시10분쯤 서울 관악구 봉천본동 958의14 한국담배인삼공사 관악지점 2층 사무실에 복면을 하고 들어가 플라스틱장난감 권총을 들이대고 『엎드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한뒤 책상위에 있던 현금 2천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복지국 스웨덴서도 “외국인 배척바람”(특파원 코너)

    ◎“이민자들이 세금 축낸다” 불평 늘어/올들어 6명 피격… 사회문제로 비화/극우단체 소행 추정… 정부선 대책마련 고심 민주정치와 사회복지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이 혹심한 이민자 학대 국가로 전락했다.올해 들어서만 해도 제3세계 출신 이민자 6명이 총격을 받아 죽거나 다쳤다.지난해에도 5명이 총격을 당했다.이 「외래인 사냥」이라고 불릴 만한 일련의 사태로 스웨덴은 심한 충격에 빠져 있다. 총기 습격 피해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 이민온 사람들로서 외모상 북유럽인들과 뚜렷이 구별된다.최근의 피해자는 스톡홀름 교외 지하철역에서 복면 괴한의 총에 맞아 중태에 빠진 팔레스티나인 가게주인이다.이로 보아 일련의 사건들은 외래인을 혐오하는 극우분자들의 소행임이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범죄율이 가장 낮은축에 드는 평온한 나라 스웨덴에서 이처럼 피비린내나는 극한 폭력사태가 연달아 일어나자 언론계와 정계 인사들은 경악과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군 헬스비크 법무장관은 『이게 내 나라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카를 구스타프 국왕까지도 국내 쟁점에 대해 일체 개입하지 않는 전례를 깨고 『습격사건들은 경악스러운 것이며 민주주의에 이롭지 못한 것』이라고 이민자들에 대한 폭력사태를 비난했다. 스웨덴 정부는 총격사건에 관한 제보에 1백만 크로나(약17만2천달러)의 거액을 상금으로 걸고 범인 색출에 힘쓰고 있으나 한 명도 잡지 못했다.사건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일어났지만 한 집단의 일원들이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스웨덴 인구 8백60만 가운데 12%가 이민 또는 그 2세들이다.평화를 사랑하는 이 중립국은 제3세계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데 너그러운 편이었다.이 때문에 북유럽권외에서의 이민이 약 3만5천명에 이른다. 전통적으로 인종적 편견이 적으며 너그러운 스웨덴인들이 근래에는 외래이주민을 귀찮게 여기기 시작했다.스웨덴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완벽한 사회복지와 이를 위한 무거운 세금은 유명한 것이다.근년에 경기가 좋지 않게 되자,많은 세금으로 마련된 복지혜택을 늘어난 이민들이 거저 축내고 있다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이러한 변화가 극우분자들이 광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에 없던 인종 차별의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가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당국은 직장에서의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새로운 규제법령의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 불고 있는 극우배타주의 바람을 타고 각국에서 비유럽계 이민들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지만,최근 스웨덴의 총격 사태는 독일의 악명높은 「까까머리패」들의 짓보다 더 험악하다.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몰라,용모로 쉽게 구별되는 비백인 이민들이 집밖에 나가기를 꺼릴 정도로 이 나라 이민 사회는 공포에 떨고 있다.
  • 대낮 가정집 강도/복면 3인조/통장 뺏어 인출하다 잡혀

    25일 하오4시20분쯤 서울 중구 중림동 324의8 정우빌라 402호 장혜영씨(48)집에 3인조 복면강도가 들어와 혼자 집을 보고있던 장씨의 부인 박동례씨(49)를 흉기로 위협,장롱속에 있던 통장 2매를 빼앗아 은행에서 현금을 빼내려다 고영주씨(23·무직·서울 성동구 옥수동 551의5)는 붙잡히고 나머지 2명은 달아났다. 범인들은 이날 열린 현관문을 통해 침입,집안청소를 하고있던 박씨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고 『소리치면 죽인다』고 위협한뒤 장롱을 뒤져 현금 5백여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찾아낸뒤 고씨를 은행으로 보냈다. 범인들은 외출에서 돌아온 장씨의 외아들 인수군(18·인창고2년)이 집안으로 들어서다 강도가 든 낌새를 채고 도망치자 그대로 달아났으며 조흥은행 충정로지점에서 현금을 인출하려던 고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 지방의원 노름판에 강도/가스총 4인조 영장

    ◎한밤 복면침입 9백만원 털어 【안산=조덕현기자】 경기도 안산경찰서는 24일 복면에 가스총등을 들고 도박판에 침입,판돈 9백30여만원을 턴 정해웅(29·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813) 기용철(24·〃 안산시 본오동 716의1) 정용표(27·〃 〃 원곡동 주공아파트 16동509호) 정용일씨(24·〃)등 4명을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도박판을 벌인 안산시의회 의원 강성필(40·안산시 원곡동 835) 이무순씨(32·〃 고잔동 705의403)와 H신문 안산주재기자 최종기씨(37·공인중개사) 이판주씨(40·안산시 선부동 주공아파트 1009동101호)등 4명을 도박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등은 지난16일 상오1시10분쯤 안산시 성포동 199의5 신우빌라상가 분양사무실에 복면을 한채 가스총과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들어가 노름을 하고 있던 강의원등 4명을 위협,현금 20만원과 5백만원권 자기앞수표 1장,1백만원권 수표 2장,10만원권 21장 등 모두 9백30만원을 털어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팔」 무장괴한에 피격/「이」장교 1명 사망

    【예루살렘 로이터 AFP 연합】 이스라엘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의 제닌시에서 24일 복면을 쓴 한 무장 팔레스타인인의 총격으로 유조차량을 지키고 있던 이스라엘 보안장교 1명이 숨지고 다른 한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군 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제닌시의 한 주유소에서 급유차를 호위하고 있던 이스라엘군 장교1명이 이 괴한의 공격으로 가슴에 수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으며 이 차의 운전사도 중상을 입었다고 밝히고 괴한은 이스라엘장교가 지니고 있던 기관총을 탈취해 달아났다고 전했다. 이같은 공격은 워싱턴에서의 중동평화회담재개를 수시간 앞두고 발생한 것인데 이로써 올들어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피격사망한 이스라엘 군인은 3명으로 늘어났다.
  • 강도·살인 1백50회/“밤거리 무법자” 20대 5명 영장

    【대구=이동구기자】 대구 북부경찰서는 24일 강도살인 2차례를 포함,1백50여차례에 걸쳐 강도행각을 벌여온 태규식(24·무직·전과9범·동구 신암1동 603의151),정경수(21·무직·전과4범·〃),원영범(26·무직·전과5범·〃),김정기(25·무직·전과6범·〃),김한국씨(26·무직·전과1범·〃)등 5명을 강도살인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된 이들은 지난 2월21일 하오3시30분쯤 대구시 동구 율하동 957의3 최선인씨(25·여)집에 복면을 하고 침입,흉기로 최씨를 위협해 금목걸이등 1백50만원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을 비롯,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1백50여차례에 걸쳐 강도행각을 일삼아 왔다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