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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안기부사찰”” 논란 파행

    한나라당이 30일 안기부 요원의 국회 본청내 사무실 운영을 문제삼아 본회 의와 상임위 등 국회 활동을 전면 중단함으로써 세밑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 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문제가 된 본청 529호실 사무실 앞 복도에서 李鍾贊안 기부장의 파면,사무실 폐쇄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농성에는 의원 80여명과 보좌관 100여명 등 200여명이 참가했다.밤샘 농성을 한 뒤 31일 오전 8시 국회정보위원장실에서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 사태의 발단은 李信範의원이 오후 의총에서 “현 정권 들어 안기부가 국회 본청 정보위 사무실 옆 529호실에 요원을 상주시키면서 야당의원에 대해 도 청,감시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의원들은 의총을 즉각 중단 하고,529호실로 몰려가 사무실 공개를 요구했다. 朴實 국회사무총장이 급히 달려와 “정보위가 생긴 4년전 안기부의 요청으 로 만들어진 방이며 국가기밀 서류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될 뿐 요원이 상주하는 방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사태를 풀지 못했다.특수 잠금장치 로 된 사무실 문을 열고 정보위 소속인 한나라당 柳興洙 梁正圭 洪準杓의원 과 국민회의 林福鎭의원이 들어가 사무실을 둘러봤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사무실내 책상과 서류함 열쇠를 가진 안기부 요원이 고의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당장 책상과 서류함을 열라”고 요구했 다.이때 국민회의 韓和甲총무가 나타나 “수색 영장도 없이 무슨 깡패같은 행동이냐”고 따지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깡패라니…”라며 항의하는 등 험 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張永達수석부총무도 밤 9시20분쯤 농성장을 찾아와 의원들과 뼈있는 말을 나눴다. 李會昌총재는 하루동안 5층 정보위원장실에서 총재단회의를 2차례나 주재 했다.총재단회의에서는 529호실을 안기부 국회분실로 규정하고 철수를 요구 했다.동시에 안기부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또 야당파괴저지 투쟁위를 다시 가동시키기로 했다.그러나 31일 국회 본회의 참석여부는 안기부가 “31일 오 전 8시30분 열쇠를 가져와 서류함 등을 공개하겠다”고 제의해온 만큼 상황 을 봐가며 결정하기로 했다.?갯敏必? ckpark@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교원노조’ 통과 이모저모

    전교조가 지난 89년 창립된 지 10년만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29일 ‘교 원노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통과되자 회의장 밖 복도에서 표결 결과를 기다리던 전교조 간부 10여명은 일제히 박수를 치 며 환호했다.찬성표를 던진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전교조 합법화 ’의 의미를 되새겼다. 반면 ‘반대’당론을 고수한 한나라당은 “운영위가 교육위·환노위 합동 회의를 통해 소관 상임위를 결정토록 시간을 준데다 법안심사소위의 심사 절 차도 끝나지 않았다”며 “여당이 법안을 날치기로 기습 처리했다”고 절차 상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날 기립 표결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일사천리로 이뤄졌다.金範明위원장 (자민련)이 표결처리를 강행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하며 지연전 술을 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특히 상임위 표결을 30일로 예상했던 한나라당은 허를 찔린 듯 우왕좌왕했 다.환노위 소속인 朴熺太총무는 당사에 머무르다 표결강행 사실을 전해듣고 허겁지겁 회의장으로 달려왔다.徐勳·權哲賢의원은 당사 총재실에서 전교조 관계자들과 면담을 나누느라 아예 표결에 참석하지 못했다.朴총무가 표결 직 전 정회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으나 金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표결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의원 9명은 ‘전원 참석,전원 찬성 ’으로 똘똘 뭉쳤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 8명 가운데 徐·權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李壽仁의원이 소신대로 찬성표를 던지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 을 보였다.한나라당 朴熺太 金文洙 李富榮 李壽仁의원 등 4명은 의사진행에 이의를 제기하다 기권 처리됐고 유일하게 朴源弘의원만 기립 반대했다.무소 속 姜慶植의원도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 기권 처리됐다.李美卿의원은 “소신 대로 찬성의사를 표시하려고 반쯤 일어서려는데 기권처리됐다”며 항의했다. 한나라당 朴源弘의원은 표결직후 李壽仁의원에게 “당론을 따른 적이 있느 냐.전국구 배지를 왜 달고 있느냐”고 따졌다.이에 李의원은 “그건 자네의 천박한 생각”이라며 어깨를 다독이자 朴의원은 “자네라니…”라며 대드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겠澹必? ckpark@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소대장실­벙커 연결 쪽문 발견/특조단,2차 실험선 총성 확인

    ◎소대원 진술 정밀 재조사키로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재조사중인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23일 판문점 241GP 지하 3번 벙커에서 실시한 3발의 총성시험에서 38m 떨어진 소대장실 및 복도 등에서 ‘쾅’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사건발생 당시 아무도 총성을 듣지 못했다고 한 소대원들의 진술을 정밀 재조사하기로 했다. 특조단은 또 소대장실에서 3번 벙커로 통하는 쪽문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수사하기로 했다. 특조단은 이에 앞서 22일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金榮勳 중사의 알리바이 등 진술내용을 집중적으로 검증했으나 이상징후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조단 관계자는 “변호인이 입회한 가운데 전역자들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다시 실시한 결과 金중위 사망 추정시간이나 金중사의 알리바이 등 핵심 사안은 기존 수사결과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李會昌 총재 ‘마당발’ 됐다

    ◎의원들 모임·경조사 등 빠짐없이 챙겨/때·장소 안가리고 발로뛰며 집안단속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집안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을 내민다.발로 뛰는 지도자 상(像)을 부각시키려고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덕(德)이 없다는 얘기도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각오다. 李총재는 21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경남지역 의원 만찬모임에 참석,당의 단합을 강조하고 협조를 당부했다.權翊鉉 부총재가 주선한 이 모임에는 의원 18명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경남은 한나라당이 전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텃밭’이다. 이보다 앞서 李총재는 지난달 26일 전국위원회가 끝난 뒤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을 따로 만나 총재단 인선배경을 설명하고 같은 주문을 했다.당시 ‘허주’(金潤煥 전 부총재 아호)와의 관계 회복도 약속했다.그 뒤 당직을 ‘보이콧’하던 李相得 정책위원장과 金光元 사무부총장이 당무에 복귀,李총재의 노력에 화답했다. 소속 의원과 당직자의 애조경사(哀弔慶事)도 빠뜨리지 않고 챙긴다.지난 20일에는梁正圭 부총재,河舜鳳 비서실장과 함께 모친상을 당한 대구 白承弘 의원의 상가에 다녀왔다.당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이달 초 張光根 부대변인의 부인이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바로 전화를 걸어 위로한 뒤 당직자들과 함께 병원을 찾는 자상한 모습을 보여줬다.李총재의 병문안에는 辛卿植 사무총장,姜聲才 비서실차장,安澤秀 대변인 등이 수행했다. 당 소속 의원들의 후원회행사에 빠짐없이 참석,성의를 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李총재의 이같은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의문사 규명 특별위 만든다/金元吉 정책위의장

    ◎민주유공자 명예회복특별법도 추진 국민회의가 내년에 설치될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사권을 가진 특별위원회를 두고 의문사 진상규명에 나서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22일 오전 당사에서 裵恩心 회장 등 농성중이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관계자들을 만나 이런 뜻을 밝히고,민주유공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도 이번 회기내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유가협 관계자가 전했다. 유가협 회원 30여명은 지난 4일부터 국회 앞에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숙 농성을 벌여왔으며,21일 오후부터 국민회의의 적극적인 법안 제정 추진을 요구하며 당사안 복도에서 농성을 했다. 이들은 21일 金의장을 면담한 뒤 당사안 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인권위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는 그동안 이에 반대해 온 법무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이모저모

    ◎‘상팔담·천선대’ 첫 개방 관광 만끽/‘KBS기자 관광’ 보도 현대상선 부인/정주영씨 금강호로 귀선/신혼여행 신청 커플 첫 등장 ●금강산 관광 이틀째인 20일 기온은 영상 5도∼16도로 19일에 비해 6도 가량 높아졌으며 하늘도 쾌청해 관광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이 날은 특히 전날 눈발이 날리고 기온이 낮아 안전사고 우려로 개방되지 않았던 구룡폭포코스의 상팔담과 만물상코스의 천선대가 각각 개방돼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고 현대측은 밝혔다. 관광을 마치고 유람선으로 돌아온 관광객들은 저녁식사후 6층 공연장에서 방송인 宋海씨의 사회로 마련된 선상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하거나 공연 등을 관람했다.선착장에 마련된 기념품판매장은 20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새통.송화분(송화가루)과 인삼제품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관광에 나서기에 앞서 북한측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금강호에 직접 올라와 관광에 나설 승객들의 숫자와 명단을 파악.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목이나 손에 걸고 배낭에는 유람선에서 나눠준 보온도시락통만 지참하는등 여행수칙을 잘 지켜 출입국관리소를 지날 때 그냥 통과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 ●금강호 잔류자 20명 가운데 KBS기자 일부가 금강산관광을 했다는 KBS 9시 뉴스 보도와 관련,현대상선측은 이를 공식 부인.오후 10시쯤 이루어진 현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20명은 여전히 북측에서 입북을 거부하고 있어 금강산에 가지 못했으며 이 사실은 통일부,안기부,홍콩현지 사무소를 통해서도 확인됐다”고 단언. 그러나 현대 대북사업단측은 “KBS기자 11명가운데 4명을 제외한 7명이 이날 아침부터 관광을 했으며 잔류자는 조선일보 기자 5명,통일부직원 4명,KBS 4명 등 13명”이라고 설명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19일 하루종일 금강산 초대소에 머물렀던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들 鄭夢九 회장과 함께 해금강 코스를 관광한 뒤 초대소로 가지 않고 유람선으로 귀선.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19일에 이어 이날도 구룡폭포코스를 관광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 ●20일부터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장전항의 관광선에서 한국에 전화를 할때 종전 온세통신과교환원을 연결하던 수동방식과는 달리 자동통화방식으로 통화가 가능해 졌다. ●20일 출항하는 1만8천t급의 대형 유람선 봉래호의 순수 관광객 641명 가운데 현대그룹 계열사 직원이 30%에 달할 정도로 현대가족 일색. 봉래호에는 소설가 崔仁浩씨를 비롯 연예인 11명이 탑승했으며 조선일보 기자 4명(월간 필 1명,월간 산 1명,주간조선 2명)은 북한측의 입북금지 조치로 승선을 포기하기도. ●봉래호에는 네살짜리 꼬마 趙서연양이 최연소 탑승자 기록을 갱신.95년생인 趙양은 현대상선에 근무하는 아버지 趙泳勝 차장이 특별휴가를 얻어 금강산 관광에 나서게 됨에 따라 어머니 李선미씨와 함께 금강산을 직접 보는 기회를 잡은 것. ●신혼여행을 금강산에서 보내는 최초의 커플도 탄생.광주에 사는 趙양훈씨(29)와 宋지영(27)씨는 오는 30일 출발하는 금강호를 타고 금강산에서 신혼여행을 보내기로 합의하고 금강산 관광여행을 신청.이들은 9등급 객실을 신청했으나 현대 드림투어측은 최초의 신혼부부라는 점을 감안,趙씨 커플이 복도쪽 선실 대신에 바다가창밖으로 보이는 6∼7등급의 선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배려.
  • 공포에 휩싸인 韓銀 국제부/吳承鎬 기자(경제 프리즘)

    “발설자를 색출하라” 외채통계 작업의 실무를 맡고 있는 한국은행 국제부 직원들은 요즘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범인으로 내몰리면서 일손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런 기류는 지난 9일 밤부터 형성됐다. 대한매일이 외채통계 엉터리 관련기사를 단독 보도하자 발설자 색출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공식 발표하기 이전 한은에서 그 내용이 미리 새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보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며 언론에 흘린 사람을 밝혀내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다그치고 있다. 심지어는 일부 임원(부총재보)들마저 “라인 관리를 잘못했으니 책임지고 밀고자를 밝혀내라”는 지시를 받고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색출명령이 한은내부 또는 외부기관에서 나왔는 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沈勳 부총재가 재정경제부에 관련자료를 넘겨주기 이전인 지난 주말 쯤 국제부실무자로부터 외채통계 수정작업 결과를 결재하면서 “보안을 잘 유지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들릴 뿐이다. 며칠 안에 외채통계의 문제점과 수정작업 결과를 발표할 재경부도 한은 간부들에게 적지 않게 호통을 치고있는 것이 감지된다. 그러나 외채통계의 허점은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밀고자 색출작업에 혈안이 돼있는 당국의 모습은 어딘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고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도 더디게 하는 암적 요소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사장 裵說의 재판:2(대한매일 秘史:2)

    ◎日측 “대한매일이 의병봉기 선동” 주장/張仁煥 의사 의거 찬양 등 항일사설 3건 증거로 내놓아/“한국사태 왜 日서 문제삼나”/英 변호인 추궁에 원고 우물쭈물/초만원 방청객들 야유 폭소 재판은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 한국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민족지를 영국의 법정은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피고는 대한매일의 사장 배설이라는 영국인이지만 진정한 피고는 배설이 아니라 민족언론 대한매일신보였다. 배설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대한매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법정은 만원을 이루었다. 방청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와 재판정 바깥까지 모여서 재판을 지켜보았다. ○법정 복도·바깥서도 지켜봐 재판이 시작되자 일본 통감부와 변호인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근본 원인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검사 윌킨슨이 고소인 미우라를 먼저 신문하기 시작했다. 통감부의 제2인자로 이등박문을 대리하여 법정에 나온 미우라(三浦彌五郞)는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게 된 원인은 대한매일의 선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매일이 소요와 무질서를 조장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 적대감을 조장시키는 기사를 게재하였기 때문에 의병들이 궐기하여 전국의 치안이 불안하고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변호인 크로스는 의병의 봉기는 대한매일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의 성격을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부각시키려 했다.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은 독립국가다. 의병의 궐기는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미우라,당신은 일본 관리인가? 한국 관리인가? 일본 관리라면서 왜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문제삼아 일본 통감부의 대표로 나서서 영국인 배설을 고소하는가.” 미우라가 궁색한 논리로 대답을 얼버무리자 방성석에서는 야유하는 폭소가 터졌다. ○英·日 외교협상끝에 재판 열려 재판장은 변호사에게 정치상의 의견은 묻지 말고 사실에 관해서만 국한해서 물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영국과 일본 사이에밀고 당기는 길고도 끈질긴 외교협상 끝에 이루어진 재판이었으므로 재판장은 변호사가 재판을 정치적으로 끌고가는 것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통감부가 배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증거물로 제시한 대한매일의 논설은 3건이었다.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 암살을 찬양한 1908년 4월17일자 기사를 비롯하여 「일백 매특날(메테르니히)이가 능히 이태리를 압제치 못함」(1908.4.29)과 「학계의 꽃」(5.16)이라는 논설이었다. 통감부의 입장에서는 대한매일의 모든 지면이 항일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지만 구체적인 증거물로 3건을 제시한 것이다. ○美 교포신문에 처음 실려 문제가 된 4월17일자 대한매일의 기사는 친일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張仁煥)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다룬 내용이었다.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는 1904년 12월27일 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임명되었던 미국인이다. 그는 1882년부터 일본 정부를 위해 일했고 일본 정부의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친일적인 인물이었다. 일본은 그를 내세워 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외교상의 중요 사항을 일본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스티븐스는 한국의 외교고문이라는 직책으로 한국 정부가 주는 고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스티븐스의 암살 기사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발행인 鄭在寬) 3월25일자에 실린 것이었다. 공립신보는 교포들의 조직인 한인공동회(共同會)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공립신보는 ‘한국의 공적(公敵)’인 스티븐스를 쏘아 죽인 두 애국지사 장인환과 전명운을 찬양하면서 체포된 두 사람의 변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매일이 장,전 양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기사를 싣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주한 영국 공사 헨리 코번(Henry Cockburn)은 이때의 상황을 영국 외무성에 보고하면서 “한국인들은 집권세력도 그들에게 불명예스러운 발행물을 금지시키거나 저지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기사를 읽고 통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코번이 지적한 ‘집권세력’은 통감부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암살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이며,그들의 재판을 기회로 일본 침략하의 한국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은 두 애국지사의 재판을 기회로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만국에 널리 알리자고 역설했다. “오호라 한국 독립은 곧 오늘이요,한국의 자유는 오늘이니 우리의 큰 뜻을 이룰 날이라”면서 “이 재판은 우리의 독립재판이니 우리가 이 재판에 이겨야 우리 2천만의 독립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 하나·보람銀 합병 기원 告祀/金相淵(경제 프리즘)

    “돼지님,합병 잘 마무리해서 세계에서 제일 좋은 은행이 되게 해주십시오” 지난 9일 오후 5시쯤 서울 중구 을지로 1가 하나은행 본점 11층 복도.한쪽 벽면 고삿상에 차려진 돼지머리에 하얀 돈봉투를 끼워 넣던 보람은행 鄭成喆 노조위원장이 익살스럽게 소원을 빌자 일순간 폭소가 터졌다. 이날 행사는 지난 9월8일 합병을 선언한 하나은행과 보람은행의 부서 가운데 처음으로 두 은행 인사담당 부서가 통합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은행 복도에서 고사를 벌이는 일도 드문 광경이려니와 金勝猶 하나은행장 등 40여명의 임원과 직원들은 서로 다른 은행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표정이었다. 金행장으로부터 시작된 배례(拜禮)는 양사 노조위원장과 전무 과장 여직원 순으로 진행됐으며,둘씩 나란히 절할 때 마다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특히 꽃무니 유니폼을 입은 하나은행 여직원과 사복을 입은 보람은행 여직원(보람은행은 유니폼이 없다)이 함께 절을 하는 장면은 두 은행의 합방(合房)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경영진은두 은행 직원들이 일단 얼굴을 맞대고 부대껴야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특히 사실상 보람은행을 흡수합병한 하나은행 경영진이 통합부서의 장(長)으로 보람은행 인사부장을 내정한 부분은 직원들의 사기와 감정을 얼마나 세심히 배려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같은 자세가 비슷한 시기에 통합을 발표한 상업­한일,국민­장기신용은행은 물론,수 많은 통합의 회오리를 겪게 될 다른 기업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됐으면 싶다.
  • 의류대여점 액세서리까지 빌려줘

    ◎1년에 1∼2번 입을 옷 구입 부담 덜어준다 “입을 옷은 마땅찮고 사려니 부담되고…” 집안 대소사나 모임이 있을 때 여성들이라면 한두번씩 고민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없고 요즈음 처럼 어려운 때 1회용 행사를 위해 옷을 구입하는 것은 더 더욱 힘든 일.이럴 때 ‘의류대여점’을 이용하면 고민을 덜 수 있다. 최근 문을 연 클로드뱅크는 의류는 물론 핸드백 액세서리까지 빌려주는 토털대여점.회원제로 운영한다.연회비가 5만원이며 한번 이용료는 2만원.대여기간은 3박4일이다. 맞춤 전문점으로 연예인들 옷을 주로 만들어온 크로마는 회원제로 운영되며 남성복도 대여한다.연회비 20만원을 내면 1년동안 모두 24벌을 빌릴 수 있다.본인만 대여 가능하며 기간은 3박4일. 한복대여점들은 각종 행사 때 입을 수 있는 예복과 약혼복 관례복 녹의홍상 돌복 등을 갖춰놓고 있다. 대여료는 1일 기준 여자한복은 5만∼10만원,남자한복은 10만원선,아기옷은 5만원 안팎이다. □의류대여점 ▷양장◁ 업체명 전 화 특징 크로마 (02)313­6207 회원제,남성복도 대여 클로드 뱅크 (053)431­0365 핸드백·액세서리 무료대여 ▷한복◁ 업체명 전 화 특 징 동방아트 (02)518­5521 맞춤·대여 조선명주 (02)652­3000 수도권지역 방문대여 질경이우리옷 (02)774­5644 지갑·고무신 등 무료대여 황금비늘 (02)717­3131 대여전문점
  • 클렙토크라시(張潤煥 칼럼)

    세계은행(IBRD)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등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의 삶의 질이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유엔이나 그 산하 기구들은 뭔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세계은행의 이번 보고서는 사실 하나마나한 보고서다.8∼10%에 이르는 실직자들이 거리에 넘치는 마당에 삶의 질을 따지는 것은 너무나도 한가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일 나우만재단이 후원한 ‘아시아 자유·민주주의자 회의’가 지난 16일 방콕에서에 열렸다.한국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유·민주당 지도자들이 참석한 이 모임의 주제는 ‘아시아의 위기와 정치적 대응’.아시아에 몰아닥친 경제위기를 정치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강요받는 세계화 사흘동안 계속된 이 회의에서는 ‘신자유주의’‘투기자본’‘거품경제’‘부정부패’‘정경유착’‘정치개혁’‘개방’‘투명성’‘시장경제’‘경제발전’‘민주주의’등우리가 눈만 뜨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있는 용어들이 주조를 이루었다.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곤경은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들도 공통적으로 겪고 있었다.아시아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원인으로는 세계시장화,선진국(미국)기준의 일방적 강요,국제투기자본의 횡포등 외적 요인과 정치권·관료사회·경제계의 부패구조,저수준의 민주발전,거품경제,세계화에 대한 적응미숙등 내적 요인이 지적되었다.외적 요인의 극복과 관련해서는 별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어차피 전지구적 차원의 세계화가 강요되고 있는 마당이고,글로벌화된 환경속에 일종의 세계적 기준이 생성되고 있다.물론 이 기준은 서방 기준이다.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채 선진국들의 공통기준에 자신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이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패가 경제위기 불러 방콕회의는 경제위기를 불러온 내부 요인과 그 극복 방안을 논의하는 부분에서 열기가 높았다.각국 대표들은 자국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하나같이 거품과 부패,특히 정경유착을 강조했다.한 발제자는 정경유착을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로 표현했다.도둑이라는 뜻의 klepto와 지배 또는 통치라는 뜻의 cracy를 합성한 신조어(新造語)다.‘도둑의 지배’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정치인과 관료,경제인들이 도둑패거리가 되어 나라를 거덜내고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말이다.참석자들은 내부적 요인의 극복방안으로 부패의 척결을 강조했는데,그 첫걸음이 바로 정치개혁이었다.고비용의 정치체제로는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없고 정치가 개혁되지 않고는 경제회복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경제회복과 관련해서 민주화가 강조되었다.민주화가 경제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며,민주화 없이는 경제회복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경제회복과 민주화와 관련해서 金大中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발전의 동시 추구’정책이 자연스럽게 거론됐는데,참석자 대부분이 金대통령의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강요되는 세계화와 경제위기 속에 고통을 감내하며 부패척결을 위한 정치제도 개혁에 몸부림치고 있다.‘고통 없이 소득 없다’(no pain,no gain)는 필리핀 속담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 불황의 늪에 빠진 미술시장 살리자

    ◎‘98 화랑미술제’… 30일부터 예술의 전당 미술관/75개 회원화랑 213명 작품 출품/IMF 실직자 돕기 기증 작품전/라이브 드로잉코너도 매일 열려 ‘미술인들의 큰 잔치’인 서울아트페어 ’98 화랑미술제가 30일부터 11월5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린다. IMF로 문화계 전반,특히 미술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져있는 가운데 열리는 이번 미술제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는 한편 미술유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미술견본시장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화랑미술제에는 75개 회원 화랑과 11개의 미술관련 업체들이 참여한다.출품작은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국화와 서양화,조각 도예 공예 등 순수미술 작품,미술관련 출판물과 아트상품,각종 미술재료,판화 등. 참가작가는 20대 신예들로부터 70대 원로에 이르기까지 국내 작가 213명,외국작가 11명 등 모두 224명.이중 40∼50대의 작가가 119명으로 전체 참가자의 반이 넘는다. 전시기간중 특별이벤트도 열린다.‘IMF 실직자돕기 기증작품전’과 ‘라이브 드로잉 코너’가 그것.‘IMF 실직자돕기 기증작품전’은 화랑 및 참가작가들이 기증한 작품 100점과 사회저명인사 소장품 20점 등 모두 120점을 전시판매하는 행사.기증자의 동의를 얻어 시가보다 할인된 값에 판매하게 되는데 판매수익금은 전액 KBS에 기증돼 IMF이후 발생한 실직자들을 위해 쓰여진다. 전시기간중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미술관 3층 복도에 마련되는 ‘라이브 드로잉 코너’는 협회에서 선정한 성병태 이석조 신재남 김문희 박철환 황기선 등 6명의 전문 드로잉 작가가 직접 현장작업으로 관람객들과 만남의 장을 연출하는 행사. 한편 이번 잔치기간중 협회가입 20주년이 된 현대,선,노,진,미,예,이목,조선,원,공간,그로리치,동산방,맥향화랑 13개 화랑대표들에게는 94년 1회 수상자를 낸 후 중단된 한국화랑협회미술상이 수여된다.
  • 한나라 金在千 의원 ‘수뢰 百態’ 공개

    ◎수뢰공무원 72%가 국세청 직원/납부세액 흥정·부가세 결손처리 대가 돈받아/직위 이용해 3년간 무자료주류 유흥업소 공급/본청 휴게실·구내식당·복도·화장실 등서 받아 공무원들 가운데 뇌물수수 비리는 역시 세무 공무원이 가장 많았다. 이는 26일 국회 재정경제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金在千 의원이 감사원의 공무원범죄발생통보서를 분석해 내놓은 ‘국세청 뇌물수수비리 백태’에서 드러났다. 97년 1∼8월 중앙부처에서 적발돼 통보된 뇌물수수 범죄 270건 가운데 72.2%인 195건이 국세청 공무원과 관련됐다. 세무 공무원의 뇌물수수는 소득세 관련이 24건 1억1,380만원,법인세 관련 14건 1억1,070만원,증여·상속세 관련 5건 1,950만원,부가가치세 관련 39건 1억8,765만원 등이었다. 뇌물수수 장소도 국세청 본청 11층 휴게실,대전지방청 구내식당,전주세무서 구내식당,용산세무서 부가세과 앞 복도,성북세무서 화장실,북대구세무서 주차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뇌물이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뇌물수수 유형. △뇌물로 고가의차량을 받은 경우=나주세무서 8급 공무원 陳모씨는 96년 8월7일 납세자로부터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만원을 받은 뒤 97년 9월18일 납세자 부인 소유의 시가 2,500만원짜리 차량을 본인 친척 명의로 소유권 이전. △납세자와 세금흥정,횡령=동울산세무서 8급 朴모씨는 95년 1월 납세자에게 5,000만∼6,000만원의 세금을 2,500만원선에 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의한 뒤 450만원 수수. △부당 결손처리해 주고 뇌물수수=부산진세무서 8급 李모씨는 96년 3월초 관내업체로부터 95년 하반기 부가세 납입과 관련해 결손처리해주는 조건으로 500만원을 받음. △인허가와 관련된 뇌물수수=서울 삼성세무서 全모씨는 95년 11월15일 위장사업자로부터 현금 130만원을 받고 사업자등록증을 발부해주는 등 96년 3월까지 20개 업체에 대해 현장실사 없이 사업자등록증을 발부. △직위를 이용한 탈세영업=해운대세무서 6급 成모씨는 16년 동안 소비세업무를 담당해 오면서 세무공무원 직위를 이용해 95년부터 97년 2월까지 무자료 국산주류를 유흥업소에 공급. △집단 뇌물수수=부산청 3조사담당관실에 근무하던 6급 李모씨와 孫모씨,7급 李모씨,8급 周모씨의 경우 납세자로부터 집단으로 96년 3월부터 5월까지 개인당 100만원씩 수수하고 향응을 제공 받음. 이밖에 다른 세무 공무원에게 뇌물수수를 알선하거나 탈세정보를 수집한다며 관내를 돌며 뇌물을 수수하는 경우,납세자로부터 뇌물을 수수해 상급자에게 상납하는 경우 등이 작발됐다.
  • 地上 최고의 계급 대령:7·끝(공직 탐험)

    ◎구축함 함장은 해군대령 선망의 대상/작전시 입법·사법·행정권 보유/제독도 배의 진로는 간섭못해/매년 평균 6개월 바다서 근무 육군과 공군 대령은 영어로 ‘colonel’이다. 그러나 해군 대령은 ‘captain’이라 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우두머리,조장,선장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해군 대령은 함장이다. 구축함,호위함,잠수함 함장도 대령이고 항공모함 함장도 대령이다. 아무리 배가 커도 함장은 대령이다. 해상작전 때 전함 3∼5척이 모이면 단대,10여척이 되면 전대가 구성된다. 이럴 때 각대에는 사령관이 함께 배를 탄다. 물론 사령관은 함장보다 상위 계급자가 된다. 단대 전대사령관은 함장을 거친 고참 대령이고 24척 이상 지휘하는 전단사령관은 준장이다. 그러나 이때도 사령관이 탄 배의 ‘우두머리’는 어디까지나 함장이다. 제독(提督)인 사령관은 자기가 탄 배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 대령인 함장한테 간섭하지 못한다. ‘사공이 둘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군함이 영해를 벗어나 작전할 때는 독립된 ‘영토’로 대우받는다. 그래서 국기도 달고 치외법권지대가 된다. 작전시 함장은 입법,사법,행정권을 모두 갖는다. 사법권의 경우 상부에 보고해 처리하는게 관례지만 전시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막강한 권한 탓에 함장 대령은 그야말로 ‘바다의 최고 계급’이다. 한해 해군사관하교 졸업생의 대령진급율은 40%미만. 해사를 나와도 대령을 달면 성공했다고 간주된다. 육군 연대장같이 함장은 해군대령이 거치는 필수보직이다. 항공모함이 없는 우리 해군에서 군함의 꽃은 구축함. 3,000t급 한국형구축함은 함장들이 가장 타보고 싶어하는 ‘꽃중의 꽃’이다. 경쟁도 치열하고 구축함장을 거치면 장군 진급이 그만큼 유리하다. 해군장교들은 스스로를 ‘신사’라고 부른다. 해군창설일도 ‘士(사)’자를 분리해 나온 숫자 11에서 따 11월11일로 정했다고 한다. 정복도 넥타이 맨 신사복이고 계급장은 다른 군 장교복과 달리 어깨의 견장 대신 신사복 소매에 금줄을 넣어 표시한다. 이렇듯 겉으로 멋있어 보이는 함장이지만 이들의 생활 이야기를 듣고나면 ‘자식을 해군에 보낼 마음이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74년 임관해 함장근무를 마치고 합참에 근무하는 J대령의 이야기. “중위때 결혼 첫날밤 새벽 5시에 비상출동해 바다로 떠나 63일만에 돌아왔다. 솔직히 아내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더라. 이후 매년 평균 180일을 바다에서 보냈다. 235일 배를 탄 적도 있다. 오랫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애들이 조금씩 자라있더라. 내손으로 애들 키워본 기억이 없다. 한번 돌아오면 1개월 정도 있다 다시 떠나는 생활의 반복이다. 거기다 지금까지 전출다닌 게 17번…” J대령은 함장생활을 ‘움직이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2∼3평 남짓한 함장 방에 갇혀 온갖 결단을 시시각각 혼자 내려야하기 때문이다. J대령은 “우측 5도라고 함장이 명령을 내렸는데 대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장애물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함장으로서의 업무능력뿐아니라 대원들이 믿고 따르는 인품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해군대령은 1등 항해사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제대 후 대부분 민간선박의 선장으로 취직해 다시 배를 탄다. 현재 대령 정년은56세. 그래서 다른 군과 마찬가지로 제대 후 일거리 찾는게 해군 대령의 큰 고민중 하나다.
  • 地上 최고의 계급 대령:4(공직 탐험)

    ◎회의·보고·훈련… 훈련… “24시간이 짧다”/자신의 철학 지휘에 반영/병사 인성교육까지 담당/권한 큰만큼 책임도 막중 전방부대 연대장인 L대령은 아침 7시 사무실로 출근한다. 숙소는 영내에 있는 연대장 관사. 간부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사무실 주변을 한번 살펴보면 8시. 일직사령으로부터 밤사이 일어난 상황보고를 듣는 일로 일과가 시작된다. 야간경계 때 이상 징후가 없었는지,기상상황,헬기 비행에 필요한 시계,풍향 등이 빠짐없이 보고된다. 부대의 전방과 측후방의 동향,적진동향,사단에서 보내온 첩보사항도 포함된다. 이어 아침회의를 갖는다. 인사,정보,작전,군수 등 연대 참모들이 모두 참석한다. 오전 회의가 끝난 뒤 훈련중인 휘하 대대 한곳을 찾아가 훈련상황을 체크하고 다른 부대장들로부터 부대 상황을 보고받는다. 오후 2시에 오전에 종합한 연대 상황을 사단장에게 전화로 보고한다. 사단장 K소장은 고향선배다. 술자리에서는 ‘형님’ ‘아우’ 하는 사이지만 업무보고 때는 절대 그런 티를 못낸다. 사단장은 바로 자신의 1차 고과평가자이다. 일처리에 한치의 허점도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오후에 월동준비를 하고있는 부대 한 곳을 방문한 뒤 훈련중인 대대 한 곳을 더 참관한다. 요즈음 L대령이 휘하 대대의 훈련에 특히 관심을 쏟는 것은 RCT(Regiment Combating Training)가 몇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 육사 2년 선배기수가 이번에 장군 진급심사에 들어갔다. 자신의 연대장생활을 마무리하는 이번 RCT훈련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는 몇년 뒤에 있을 자신의 장군 진급심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아는 선배들 찾아 진급운동하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군인의 최고목표는 싸워이기는 것이다. RCT는 가상적을 상대로 실전과 똑같은 병력과 화기로 작전을 펴서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종합평가받는 자리다. 예를 들어 부대에 포탄 1만발이 있는데 1만5,000발이 소요되는 작전계획을 수립했다간 실격이다. 보통 5∼6개 연대가 참가해 순위가 매겨진다. RCT가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여기서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지휘방식과 철학을 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성격이 직선적인 L대령은 적진 돌파 때 우회보다는 정면돌파를 택한다. 그리고 포병보다는 보병에 더 의존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작전 스타일도 평가단에 의해 정밀분석돼 군기밀로 보관된다. 실병력이 많지 않은 후방의 동원사 연대장도 지휘관으로서의 중요성은 마찬가지. 서울 근교 동원사단의 Y대령은 자신의 생활철학을 부대운영에 100% 반영하는 지휘관이다. 소위 ‘갑종’ 간부후보 출신으로 임관 30년째를 맞은 그는 장군진급이 안될 경우 이번 연대장 보직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러면 사령부 연구원으로 옮겨 1년 남짓 있다 정년퇴직해야 한다. 정년퇴임이 가까워졌다고 지휘관 임무를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 그의 신조중 하나는 휘하 장병들을 제대 후 ‘자식 군에 보냈더니 사람됐다’는 소리듣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휴가자들이 돌아올 때 돈을 3만원 이상 못 갖고 오게 한다. 군에서 주는 1만5,000원 내외의 월급으로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트레이닝복도 군에서 지급하는 두벌 외에 병사들이 자기 돈으로는 못사입게 한다. 유명 메이커의 비싼 운동화를 신고 다니다 걸리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흡연구역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영창이다. 그는 “질서를 지키고 돈 아껴쓰도록 가르치는 것도 훈련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병사들의 자유를 너무 옭아매는 지침들 같지만 이도 연대장 마음이다. 계급사회니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는 “권한이 너무 커 함부로 쓰기가 두렵다”는 말도 한다. 이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대령이다.
  • 중국기행/폴 써로우 지음(화제의 책)

    11시가 지나자 승객들이 복도로 몰려 나왔다. 기차가 중국의 남과 북을 가르는 양쯔강을 횡단하기 때문이었다. 중국 북쪽 사람들은 오만하고 싸우기 좋아하며 냉담하고 정치적이다. 반면 남쪽 사람들은 말이 많고 친절하며 자기만족적이고 상업주의적이고 단정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중국을 기차로 돌아 다니려면 1년 남짓 걸린다. 미국의 세계적 기행작가인 폴 써로우가 기차를 타고 중국 곳곳을 다니며 누비벼 쓴 중국 기행문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뿐 아니라 티벳,신쟝의 위구르 자치구,랑시앙의 원시림 등 신변의 위험이 도사리는 오지에서도 며칠씩 머무르며 중국을 관찰했다. 서계순 옮김/푸른솔 1만8,000원
  • 구조적 공직 부패 뿌리 뽑는다(민원공무원 비리 실태)

    ◎도장 한번 찍을때마다 ‘검은돈’/수백억 공사 ‘기름칠’ 20억 들어 공직 사회에 사정태풍이 불고 있다.이대로 방치하면 선진사회로의 경제위기 극복도,개혁도 요원할 만큼 부태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이 사정당국의 판단이다.얼마 전에는 200억원대의 재산을 치부한 서울시 6급 주사의 비리가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상당수 공무원들이 ‘뇌물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탄식의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부패의 실태와 대책을 짚어본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격입니다.문을 닫지 않는 한 공무원으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합니다” 대형 유통업체인 A사의 K부장(45)은 업체와 공무원과의 부패고리 실태를 이렇게 빗대 설명했다.최근 점포를 완공,영업을 시작한 A사는 건축을 시작한 직후부터 공무원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다. K부장은 “거의 모든 단계에서 돈이 들었다”면서 “수백억의 총공사비 가운데 20억원 정도는 관공서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건축허가에서 착공,준공,영업허가까지 160여개의 도장을 받을 때마다 수수료나 급행료,사례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상납해야 했다.이른바 ‘기름칠’이었다.K씨는 이를 총괄 지휘하는 ‘대관(對官)업무’ 팀장. A사와 시공업체 등이 1년여의 건축기간동안 관청에서 받은 각종 인·허가수는 큰 항목만 30여개.구청,시청,소방서,경찰서를 비롯해 수도·전기·가스 관련 관청 등이 망라돼 있다.상납이 없이는 어느 하나도 인·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하청업체들을 통해 건네진 돈까지 포함,공사비의 3∼5%는 ‘기름값’이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상납은 건축허가 단계부터 시작됐다.경찰관과 구청담당과장 등 건축심의위원에 포함된 관청 인사 4명에게는 1인당 100만원씩 건넸다. 공사에 들어간 뒤에는 정기적인 상납을 했다.5∼6개 관련 부서별로 한달에 한번 꼴로 하는 중간검사에서 선물이나 10만∼30만원씩을 전달했다. 설계를 변경했을 때는 담당 공무원이 200만원이 넘는 최고급 골프채 5세트를 요구해 준 일도 있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상납은 ‘깨진 독에 물붙기 식’이었다.준공예정 1주일 전에는 허가가 나와야 하는데 주무부서는 “관련부서와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둘러대며 늑장을 피웠다.개장 일정을 맞춰야 하는 A사는 다급해졌다.결국 주무부서 담당에게는 500만원을,나머지 10여개 관련부서에는 200만∼300만원씩의 급행료를 주고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수십가지 영업 인허가가 기다리고 있었다.식당가만 해도 기타식품판매업,수입쇠고기 전문판매점 지정서,즉석판매 제조가공업 지정서,담배소매인 지정서,쓰레기봉투 판매지정서 등 헤아리기 어려웠다. 개장한 뒤에도 ‘산넘어 산’이었다.개장 첫날,“이벤트 행사가 불법이 아니냐”며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이 찾아왔다.심지어는 “간판을 확인하겠다”면서 동사무소 직원도 나왔다.행여 행사를 그르칠까봐 선물과 함께 10만∼20만원씩을 쥐어 돌려보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 대목,세일 때는 3∼4팀의 단속반들이 헤집고 다녔다.20만∼30만원과 선물을 줘야했다.지난 추석 식당코너에서는 한 농산물검사 담당 공무원이 원산지 검사를 핑계로 송이버섯 100만원어치를 가져간 일도 있었다.며칠 뒤 “우리나라 것이 맞더라”는 통보만 받았을 뿐 상품은 돌아오지 않았다.
  • 은행노조,行長들 귀가 실력 저지/9개銀 노사 철야협상 결렬

    ◎경찰 투입… 노조원 46명 연행/일부銀,인원감축 각서 제출 은행 노조원들이 노사간 철야협상을 벌이던 은행장들의 귀가를 실력으로 저지하는 등 20여시간 동안 사실상 감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협상을 벌이던 강원 상업 서울 외환 제일 조흥 충북 평화 한일 등 9개 은행 노조위원장과 秋園曙 금융노련위원장 등 은행노조원 46명이 해당 은행장들을 감금한 혐의로 15일 상오 11시30분경 중부 경찰서로 연행됐다. 노조원들은 지난 14일 하오 4시부터 은행연합회관에서 은행장들과 인원정리에 관한 철야협상을 벌이던 중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회의장소를 빠져나가려는 은행장들을 강제로 가로막았다. 은행장들은 상오 2시,상오 11시 등 수차례에 걸쳐 회의장을 빠져나오려고 시도했으나 복도를 가로막은 노조원들의 저지로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갔다. 중부경찰서는 은행요청으로 15일 상오 11시 경찰병력 2개 중대를 투입,회의장 안팎을 둘러싸고 있던 노조원들을 강제해산하고 전원 연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상 감금에 해당한다. 조사를 진행중이며 결과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강제해산 후 은행장들은 각 은행으로 돌아갔으며 은행노조원들은 금융감독위원회와 중부서에서 연행 노조원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 중 이미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상업과 한일은행 외 다른 은행 일부도 15일 노사협상과 상관없이 인원감축 계획과 이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행각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냈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이행각서 제출 마감시한(15일)에 의해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과 제일·서울은행 등 9개 은행이 공동 단체협상을 폈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일부 은행은 이와 상관없이 이날 밤 늦게 이행각서를 냈다”며 “은행 이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을사조약 國恥(秘錄 南柯夢:23)

    ◎열사 잇단 자결 애태운 고종 “살아서 나를 돕는 것이 충성”/“乙巳年 망국” 예언 적중/日 남산에 대포설치 위협/고종,끝내 조약날인 거부/맨 먼저 민영환 ‘자결순국’ 조병세·송병선 등 뒤따라/의병들 방방곡곡서 궐기 그들이 있었기에 광복이… 1905년 1월17일 덕수궁에서 ‘을사오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일본군이 남산에 대포를 설치해놓고 위협하는 가운데 체결된 이 조약에 고종은 끝내 국새찍기를 거절했다. 따라서 이 조약은 지금도 원천적으로 무효인 셈이다.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었다. 일찍이 나는 광무 6년 임인년(任寅年 1902)에 말씀 올리기를 광무 9년 을사년(乙巳年 1905) 11월 갑자일이 주역(周易)으로 따져 건괘(乾卦)의 초구(初九) 효(爻)가 발동하는 날이라 반드시 한시대가 끝난다고 예언했는데 염려했던대로 망국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정의 수구파 원로대신들은 모두 두문사객(杜門謝客)하였고 시정의 상민(商民)도 또한 철시해 가게문을 닫았다. 을사오조약을 강요한 원흉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이 자는 스스로 한국의통감(統監)이 돼 고종을 농간했는데 뻔뻔하고 교활한 언행은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때 이토가 돈덕전(敦德殿)에 와서 상감께 아뢰기를 “동양 3국이 연합해 동맹국가가 되어야 서양의 돌연한 기습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구구하게 설명했으며 또한 말하기를 “한일 두 나라가 더욱 사이좋게 지내 소의 두뿔이 적을 막듯 형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기하시거나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이토는 또 고종황제에게 “일본은 이미 영국과 동맹을 맺어 서로 가까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서양의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얕잡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차제에 폐하께서는 한번 일본을 유람하시기 바랍니다. 관광할 것이 많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상감께서는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가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이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듣고 있어 한번 가보기를 소원한지 오랬습니다. 그러나 귀국의 명치황제가 유신한지 40년이 됐으나 아직 한번도 서양을 유람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는 “옳은 말씀입니다” 하면서 대한제국 각료들에게 “광무황제는 총명하시고 영특하신데 좌우에서 보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총명을 가리고 있습니다. 손바닥도 한 쪽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의 정치지도자,특히 이토의 후예들인 자민당그룹은 공공연히 아시아의 공생 운운하며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데 모름지기 우리는 여기에 속아서는 않될 것이다. 고종황제가 속지 않고 일본관광을 거절한 것을 보면 그리 호락호락 이토에게 속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있다. 동양삼국 평화 운운한 이토는 바로 그가 죽음을 당한 뒤 우리 안중근의사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양삼국 평화론이 무엇인지 저승에서 듣게 된다. 아무튼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우국충신들이 목숨을 끓었다. 맨 먼저 민충정공이 순국하였는데 그의 선혈이 대나무로 되살아났다. 전 의정대신 민영환(閔泳煥)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보고 자기 목숨을 끊었으니 5백년 조국의 종사가 왜놈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단도로 자신의 몸을 찔러 죽었는데 피가 마루틈으로 흘러 들어가 한 그루의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 일본인과 서양인들이 문상차 들러보고 살펴보아도 과연 자생한 대나무이지 사람이 조작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차탄(嗟歎)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민영환의 처는 재취한 분인데 나이 30이 못된 여인이었고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이때 또한 조병세(趙秉世)가 독약을 먹고 죽었으며 송병선도 따랐다. 병정 하사(下士) 김봉학(金鳳學),용인의 전참판 모씨도 따라 죽었다. 용인의 전 참판 모씨란 홍영식의 형인 홍만식(洪萬植)이었다. 동생 홍영식이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나라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자책하여 늘 미사신(未死臣)이라 자처하던 홍만식이 끝내 자결한 것이다. 송병선에 대해서는 정환덕이 직접 입대를 주선한 일이 있어 자초지종을 따로 소상하게 쓰고 있다. 송산장(宋山丈:山林=송병선)이 경기도 가평에서 상경하였는데 그의 문인 정석채(鄭奭采)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송산장이 상경해 황제를 알현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떤 절차로 입대(入對)할 수 있을까요?” 하고 상의하였다. 그래서 즉시 입궐하여 상감께 말씀드렸더니 상감께서는 “이같이 창황한 때 절차를 따질 여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사례(私禮)로 들어와보는 것도 가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송병선이 입궐하여 상감을 뵈었으나 퇴궐한 뒤 가만히 생각하니 나라의 형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이 때에 차라리 한번 죽어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문인 제자들을 불러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하였다. 선생의 뜻은 바다같이 넓고 산과 같이 높다 하겠다. 상감 부자께서 이 비보를 들으시고 가슴 아파하며 감탄하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심상훈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자결 직전 고종의 부르심을 받고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이때 전판서 심상훈(沈相熏)도 역시 칼을 빼 목을 찌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상감의 부르심을 받게 돼 입궐했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어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살아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셔서 죽기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심상훈은 이듬해 을사오적 암살사건에 연루돼 경무청에 구금됐다. 살아서 애국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고 충신들이 목숨을 끊으니 고종으로서는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고종은 정환덕에게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내가 함녕전뒤 섬돌복도인 북쪽 반침(半寢) 위에 시립(侍立)하고 있었는데 상감께서는 근심을 잊으시기 위하여 자수(自手)로 난로의 재를 닦아내고 계셨다. 그러다 나를 돌아보시고 말씀하기를 “네가 늘 을사년 11월 갑자일이 어떠하다 하더니 말대로 되었구나. 운명은 모면하기 어려운 것인가. 민영환이 절의로 죽은 뒤에 원로대신들까지 차례로 따라 죽으니 마음이 괴롭구나”라고 하시었다. 이에 엎드려 아뢰기를 “이런 때를 당해 한 사람도 절사(節死)하는 사람이 없다면 도리어 상감께서 수치스러운 일이신데 어찌하여 괴롭다고 하십니까”라고 위로말씀을 드렸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야 그렇다하겠으나 나의 심신이 편안하지 않고 심정을 정돈하기가 어렵구나. 속담에도 ‘충신은 나라가 망할 때 많이 나오고 공신은 나라가 흥할 때 많이 나온다’(忠臣多出其國亡 功臣多出其國興)고 했는데,어찌하여 충신만 많이 나오는가. 이것도 운명인가” 하시었다. 엎드려 말씀드리기를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충신이 되기는 쉬우나 공신이 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로 말하면 살아도 국가에 유익하지 않고 죽어서도 공로가 없을 것이니 차라리 죽어 한번이라도 보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고 하였다. 을사조약은 사실상의 망국이었다. 그래서 많은 순국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고종이 이들 충신에게 감사하였으나 그보다 더 감사해야 할 신하는 의병들이었다. 무기를 들고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이야말로 바로 공신(功臣)이었고 이들이 있었기에 8·15광복과 건국이 있었던 것이다.
  • 벼랑선 클린턴­성추문 보고서 주요내용

    ◎르윈스키·클린턴 집무실 등서 10차례 성관계/95년 인턴때 집무실 밖 복도서 첫 관계/15차례 폰섹스… 클린턴이 전화걸어 주도 클린턴 대통령과 전 백악관 인턴직원 르윈스키양과의 성추문에 대한 스타 검사의 의회보고서가 인터넷으로 공개됐다. 총 445쪽에 달하는 보고서 내용은 즉각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 주소는 http://thomas,loc.gov/icreport,http://www.house.gov/icreport,http://www.access.gpo.gov/congress/icreport 등 3개다. 공개된 보고서는 지난 1월의 폴라 존스 성희롱사건 재판과 7월의 연방 대배심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증언을 반박하는 내용들이 주로 이루고 있다. 특히 르윈스키는 10차례의 ‘성 관계’를 가졌다며 적나라하게 증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고려해 적절치 못한 어휘는 다소 완화해서 주요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성관계◁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 ‘성적 관계’,‘성관계’를 가졌음을 부인했다. 또 자극과 만족을 목적으로 르윈스키의 가슴 등과 접촉했음을 부인했다. 반면 르윈스키는 대배심 증언에서 백악관 인턴직원으로 있으면서 22살인 95년 11월부터 실질적인 성적 행동을 비롯해 대통령과 10차례의 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했다. ①95년 11월15일=백악관 인턴직원이었고 대통령과 처음으로 성적 접촉을 가졌다. 오벌 오피스(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밖의 복도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대통령은 가슴을 만지고 키스도 했다. 성적으로 자극시키는 손동작도 있었다. ②95년 11월17일=오벌 오피스 밖의 개인 욕실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가슴을 손으로 애무하고 키스도 했다. ③95년 12월31일=스웨터를 벗기고 손으로 가슴을 애무했으며 키스도 했다. 오럴섹스를 했다. ④96년 1월7일=오럴섹스를 했다. 가슴을 손과 입으로 애무했다. 클린턴이 오럴섹스를 해주고 싶다고 제의했지만 신체적인 이유로 거절했다. ⑤96년 1월21일=가슴을 애무했다. 오럴섹스를 나눴다. ⑥96년 2월4일=대통령이 불렀다. 드레스와 브래지어를 부분적으로 들어 올리기도 했다. 성적으로 자극시키기 위해 깊숙한 성감대를 만졌으며 오럴섹스를 해주었다. ⑦96년 3월31일=대통령이 만남을 주선,그녀의 하의를 벗기고 직접 애무했다. ⑧96년 4월7일=가슴을 만졌으며 대통령에게 오럴 섹스를 해줬다. ⑨두번의 연속적인 만남=97년 8월16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만났다. 키스를 나눴으나 오럴섹스는 거부했다. 이날 만남에서 다른 성행위는 없었다. 대통령의 폴라 존스 재판증언을 3주 앞둔 97년 12월28일 오벌 오피스에서 또 만났다. ‘정열적인 키스’를 나눴으나 다른 성적 접촉은 없었다. ▷폰섹스◁ 르윈스키는 대통령과 대략 15번의 폰섹스를 나눴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이 르윈스키에게 매번 전화를 걸어 폰섹스를 주도했다. ▷물질적 증거◁ 르윈스키는 97년 2월28일 대통령과 만났을 때 입고 있었던 드레스를 특별 수사팀에 제출했다. 그녀는 이 옷에 대통령의 정액이 묻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 검사실의 요청에 따라 연방수사국(FBI)은 드레스의 흔적을 분석했다. 특별검사실은 대통령의 DNA샘플을 요청했다. 98년 8월3일 백악관의 한 의사가 특별검사실의 한 변호사와 FBI의 한 요원 앞에서 대통령의 혈액을 채취했다. 가장 민감한 DNA분석을 통해 FBI는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정액이 사실상 대통령의 것이라고 확실히 결론지었다. 대통령의 것이 아닐 가능성은 7조8,700만분의 1이다. ◎핵심 쟁점/성관계­스타:르윈스키 드레스서 정액 발견.클린턴:“부적절한 관계 가졌다” 시인/조사방해­스타:미국인·의회 기만 전략 구사.클린턴:돕기위해 공개적인 노력했다 ◇연방 대배심 등 ‘선서 증언’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거짓말. ▲스타=클린턴은 8월 17일 대배심 증언과 1월 17일 폴라 존스 성희롱 소송 증언에서 르위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함으로써 선서를 하고서도 거짓말을 했다. ▲클린턴=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았으며 이질문을 성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 ▲스타=연방수사국(FBI)시험은 르윈스키의 드레스에서 발견된 정액이 클린턴의 것 임을 논란의 여지없이 입증해주고 있다. ▲클린턴=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가졌음을 시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비하고 추한 주장들이 공개된 것은 대통령에게 굴욕감을 주고 사임을 강요하기 위한 의도이다. ◇클린턴이 스타의 조사를 방해하려 했는지 여부. ▲스타=대통령은 98년 1월 이후 미국민과 의회를 기만하는 전략을 추구했으며 7개월동안 형사적 조사를 지연,방해하고 8월에는 미국민과 의회를 속였다. ▲클린턴=증인 매수는 없었다. 백악관은 참모들이 변호인을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고 증인들과 대화를 나누어 조사결과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한 “공개적이고도 합법적인” 노력을 했다. ◇클린턴이 르윈스키나 개인비서 베티 커리에게 르윈스키로부터 받은 선물을 회수하도록 요구했는지 여부. ▲스타=클린턴은 선물회수 문제와 관련,소환에 불응하려는 한 증인을 도움으로써 사법권을 방해하려했다. ▲클린턴=르위스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고 시인했다. 선물들을 처분하도록 암시하지 않았고 더구나 커리에게 르윈스키에게 준 선물을 회수하도록 요구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클린턴이 르윈스키나 커리의 증언에 대해 영향을 미치려 했는지 여부. ▲스타=클린턴은 잠재적 증인으로 떠오른 커리에게 영향을 미칠 의도로 폴라 존스 재판에서 증언을 한 다음 날 커리를 집무실로 불러 들였다. ▲클린턴=증인 매수는 없었다. ◎보고서/性관련 어휘 5,000회 등장/법률용어 별로 없고 ‘탄핵’은 15번 나와 공개된 보고서에는 낯뜨거운 어휘들이 대거 등장해 인텃네에서는 ‘어른들만 열람’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컴퓨터로 분석 결과,보고서에서는 성 관련 어휘가 무려 5,000번이나 등장. ‘오럴섹스’,‘폰섹스’,‘성적 접촉’,‘성관계’,‘성욕’,‘성교’ 등 온통 성관련 용어로 뒤덮여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성적(sexual)’. 무려 406번이나 나온다. ‘섹스’라는 말도 164번에 이른다. ‘젖가슴’이 62번,‘시가’ 23번,‘정액’ 19번,‘질’ 5번,그리고 ‘성기’와 그 변형어가 64번 사용됐다. 연인이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는 의미의 ‘선물’이란 단어가 215번,‘사랑’도 18번 쓰였다. ‘성적으로’는 9번,‘섹시’와 ‘더욱 섹시’ 그리고‘성행위’ 등은 각각 1번씩 쓰였다. 법률 용어는 적었다. ‘사법’뒤에 붙은 ‘방해’라는 말은 11번,‘위증’ 40번,‘탄핵’ 15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성추문 보고서 일지 ▲98년 1월7일=르윈스키,클린턴 대통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내용의 선서 진술서에 서명. ▲1월12일=르윈스키의 친구이자 국방부 직원 린다 트립,르윈스키가 클린턴 대통령과의 성관계에 관해 얘기하는 대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한 테이프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에게 전달. ▲1월17일=클린턴,폴라 존스양 성추문 소송에서의 선서 증언을 통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 ▲7월17일=스타 검사,클린턴에게 대배심 출두를 요구하는 소환장 발부. ▲7월27일=르윈스키,처음으로 특별검사팀과 면담을 갖고 클린턴과의 성관계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짐. ▲7월29일=클린턴,8월17일 백악관에서 폐쇄회로 TV를 통해 연방 대배심 증언을 하겠다고 발표. ▲8월6일=르윈스키,연방 대배심 첫 증언. ▲8월17일=클린턴,연방대배심 증언후 대국민 연설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 시인. ▲9월4일=클린턴,더블린 방문시 처음으로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해 ‘죄송하다’는 표현 사용. ▲9월9일=스타 검사,의회에 보고서 제출. ▲9월10일=클린턴,민주당 상원 지도부와 회동해 르윈스키 스캔들 관련 사과. 하원법사위 스타 검사 보고서 공개 권고 의결. ▲9월11일=하원 전체 회의,스타 보고서 전문 공개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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