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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인연; 한 지붕 아래 작은 골목길…우연; 모래내 납작 건물의 손짓…필연; 어쩌면 50년 된 ‘첫’ 주상복합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인연; 한 지붕 아래 작은 골목길…우연; 모래내 납작 건물의 손짓…필연; 어쩌면 50년 된 ‘첫’ 주상복합

    4층짜리 넓고 깊은 독특한 평면 비례…1층 내부 복도는 가로·세로 3중으로 교차 세운·현대상가보다 건축 시기 앞서 주상복합 정의·추가 실증 연구 필요 # 하마터면 놓쳤을 ‘운명’의 좌원 아파트 답사를 다니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 원래 알고 있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았거나 하면 일단 대상 건물에 대해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고 네이버나 다음의 스트리트 뷰로 외관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여길 꼭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 건물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이 생각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꾀가 나는 것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된 지면에 가급적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다. 일단 가 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막상 실물을 대하면 어떤 충실한 자료로도 대체할 수 없는 구체성과 현실성이 밀려온다. ‘건물이 말을 거는 것 같다’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래내에 있는 좌원 아파트는 하마터면 만나지 않을 뻔했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 먹고 찾아간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홍제천이 모래내(沙川)라는 이야기는 이미 한 적이 있다. 유난히 모래가 많아서 그렇다는 것인데 실제로 홍제천을 따라 걸어 보니 옛말이 틀린 것이 없다. 서울 서북부 지역의 물이 모여 흘러서 만들어진 하천으로, 사실 그 모래 또한 북한산과 인왕산, 안산 등이 제 몸의 일부를 흘러내려 보낸 것이다. 한국 산들은 화강암 위주이기 때문에 하천도 그 화강암이 풍화, 마모된 모래와 자갈을 많이 품을 수밖에 없다. 서울뿐 아니라 인천에도 모래내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홍제천 전체가 이런 모래 하천, 즉 모래내인데, 유독 그중 한 지역을 특정해서 또 모래내라고 부르는 것이 재미있다. 모래내의 서쪽 일대는 인근 가좌역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좌(加佐)라고도 불린다. 가좌는 순 한국어로는 가재울이다. 모래내의 물이 맑아 가재가 많이 살아서 그렇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지금도 인근 주민들이 홍제천 여기저기에서 물놀이를 할 정도다. 사람뿐 아니라 오리, 백로, 잉어 등등이 흔해서 특별히 눈길이 가지도 않는다. 그 물길에 기둥을 박아서 내부순환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과 인공이 매우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하천이기도 하다. 가좌역은 용산역에서 시작된 경의~중앙선(혹은 용산선)과 서울역에서 시작된 같은 이름의 경의~중앙선이 합쳐지는 곳이다. 이 가좌역에서 수색로를 건너면 길가에 낮고 넓적한 오래된 건물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심지어 건물 입구가 길보다도 낮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좌원 아파트다.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 42번지가 그 주소다. # 폭 41m 전면부·후면부는 사다리꼴로 증축 좌원 아파트는 몇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우선 첫 번째로, 평면의 비례가 예사롭지 않다. 하늘에서 본 좌원 아파트는 크게 두 부분으로 돼 있다. 수색로에 면한 전면부는 폭 41m, 깊이 46m로 정방형에 가깝다. 지상 4층 건물이지만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 길보다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낙 전면이 넓어 더욱 그렇게 보인다. 나중에 증축한 후면부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이다. 건물의 평면이 이렇게 넓으면 특별한 설계상의 조치 없이 주거를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충정로 미동 아파트처럼 과감하게 양쪽에 복도가 있는, 외기에 면하지 않는 가구를 넣거나 (‘유람선형 평면’) 개방형, 혹은 천창형 중정이 있어야 한다. 좌원 아파트는 폭 대 깊이의 비가 각각 32m와 47m인 삼각지의 삼각 아파트보다도 더 넓은 평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삼각 아파트가 개방형 중정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좌원 아파트는 두 개의 천창을 넣어 환기와 채광을 해결했다. 주거로 사용 중인 3, 4층을 관통하는 2개 층 높이의 중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두 개의 천창은 현재 막혀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건물 내부의 환기와 채광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또 다른 점은 내부의 복도 및 통로 구성에 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건물 내부의 복도 구성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아주 다르다. 1층의 경우 편복도나 중복도, 이런 차원이 아니라 무려 3중 복도가 나 있다. 그것도 한 방향으로가 아니라 두 방향으로 직교하고 있다. 따라서 그 안에서는 수많은 공간의 분화가 일어난다. 4x4의 마방진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나머지 층들은 이보다는 복도 구성이 간단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넓은 평면에서 오는 고뇌와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층은 실제로 가서 보면 상당히 놀랍다. 우선 복도와 도로 사이에 문이 없이 그냥 외기에 열려 있다. 게다가 그 바닥재도 일반적으로 건물 실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도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보도블록이다. 즉 복도라기보다는 도로가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마치 이 자리에 원래 작은 건물과 골목길이 서로 얽혀 있었는데 그 위에 넓적한 건물을 올려놓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그 안이 워낙 복잡하고 황량하다. 건물 외곽에 있는 상가만 영업을 하고 있을 뿐 내부에서는 이렇다 할 상업 활동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다. 2008년 11월 28일 밤에 1층 상가에서 합선, 혹은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있었던 것이다. 좌원 아파트의 연혁 또한 주목할 만하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1966년 12월 23일 사용 승인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숫자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아파트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올해로 50년이 됐으니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다. 이 연재에 등장했던,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건물 중에 이보다 더 오래된 건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있다면 194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옥인동의 2층 한옥 상가나 1950년대 말에 지어진 서울역 앞 상가 주택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기록에 근거해 말하자면 좌원 아파트는 한국 주상복합 건축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세운상가보다도 오래됐다. 세운상가는 흔히 한 건물처럼 이야기하지만 엄연히 공사 주체와 건립 연도가 제각각인 무려 8개 건물의 집합체다. 그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은 이미 철거된 종로변 현대상가와 그 바로 뒤의 세운상가 가동이다. 현대상가는 이미 철거됐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세운상가 가동의 경우 1967년 11월 17일 사용 승인을 받았다. 좌원 아파트보다 약 1년이 늦은 것이다. 1967년 7월 27일 매일경제신문에 따르면 바로 그 전날인 1967년 7월 26일 육영수 여사와 김현옥 시장이 참석해 1, 2층 상가를 개장했고 그 위는 아직 공사 중이라는 구절이 있다. 5층부터 13층까지 아파트가 들어간다고 쓴 것으로 보아 현대상가를 의미하는 것 같다. 기사의 내용으로 보면 현대상가와 세운상가 가동(당시 아시아상가)은 비슷하게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즉 좌원 아파트가 세워지고 반년이 더 지난 후에도 세운상가를 구성하는 최초의 2개 동은 아직 공사 중이었던 것이다. 건축물 관리대장상 엄연히 건립 시기가 더 이른 좌원 아파트가 지금까지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건물의 지명도가 낮았거나, 혹은 주상복합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좌원 아파트도 연면적이 8677.24㎡의 대형 건물인 데다 총 4개 층 중에 절반인 1, 2층은 상가로, 3, 4층은 공동주거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간단히 무시할 대상이 아니다. 만약 주상복합의 정의에 상가주택도 들어간다면 그 연대는 1950년대 후반으로 훌쩍 올라간다. ‘최초’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감안할 때, 이 부분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좀더 진행될 필요가 있다. # 사용승인 4년 뒤 나온 ‘분양 광고 미스터리’ 좌원 아파트와 관련된 또 다른 흥미로운 정보는 분양 광고다. 그 당시 아파트의 분양 광고가 아직까지 전해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1971년 7월 21일, 그러니까 건축물 관리대장상의 사용 승인일로부터 무려 4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 나온 신문 광고가 아직 전해진다.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건축물 관리대장의 사용 승인일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그 시점까지도 분양이 채 끝나지 않았거나 등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7월 21일자 광고인데 ‘7월말 입주보장’이라고 쓴 것을 보면 어떤 다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좌원산업 주식회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사업 주체의 이름을 딴 아파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쪽방 현실 속 ‘생활의 근대화’의 모순 시점의 문제와는 별도로 분양 광고의 내용 자체가 눈길을 끈다. 일단 ‘독신 아파트 분양 및 임대’라는 구절과 ‘고급 맨숀 아파트’라는 구절이 위아래로 놓여 있다. 같은 건물 안에 서로 다른 성격의 공동주거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급형은 25평 이하고 독신 아파트는 8평이다. ‘동’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의문인데 개별 건물이 아니라 가구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코 잘 그렸다고 볼 수 없는 투시도는 허탈하리만큼 간단하다. 그러나 1층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복도와 출입구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좌원 아파트는 ‘생활의 근대화’를 주장하며 ‘독신 아파트’로 브랜딩을 했지만 실상은 어땠을까. 모래내 지역은 서울의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좌원 아파트가 들어서는 시점을 전후해 인구가 늘어나고 모래내 시장이 생겼지만 여전히 먹고사는 일이 어려운 곳이었다. 저 ‘독신 아파트’에 과연 독신자가 들어가서 ‘생활의 근대화’를 만끽하며 살았을까. 아직도 좌원 아파트와 관련된 자료에서 여전히 ‘쪽방’과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현실은 그와 사뭇 달랐던 것 같다. 1979년 6월 29일자 동아일보에 당시 소방법 위반으로 입건된 시장 및 상가 아파트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그 명단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세운상가, 낙원상가, 반포 1단지 등 이 연재에서 다루고 있는 건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좌원 아파트도 여기에 포함돼 있는데 마치 약 30년 후인 2008년 11월 28일의 화재를 예견하고 있는 것 같다. 상가 아파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화재에 대한 불안이었다. 좌원 아파트는 이처럼 풍상도 많이 겪고 낡을 대로 낡은 건물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본래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 주상복합 건축의 계보에서 가장 앞에 세워야 할 건물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 좌원 아파트의 공간 구성과 관련해 마침 이 건물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경희대 대학원 김일현 교수 연구실 이우석씨의 도움을 받았다.
  • 檢,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 패터슨에 20년 구형…“여전히 범행 부인”

    檢,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 패터슨에 20년 구형…“여전히 범행 부인”

    검찰이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7)에게 1심의 선고형과 동일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윤준) 심리로 29일 열린 패터슨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 회복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패터슨의 항소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패터슨은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1심 재판부는 “패터슨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기회를 한순간에 박탈당했다”며 법정 상한형을 선고했다. 패터슨은 최후 진술에서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지적하며 “이번 사건은 유무죄를 따지기보다 한국에서 이슈가 됐다는 이유로 누가 용의자이고 범인인지만 쫓고 있다. 살인범이 필요해서 나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것”이라며 “내가 진범이라는 증거가 없다.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패터슨은 항소심에서도 내내 당시 범행 현장에 함께 있던 에드워드 리가 진범이라고 주장했다. 패터슨은 “피해자 유족들도 고통을 보상받아야 하고 당연히 그들의 고통도 위로해줘야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내가 희생양이 돼서 살인범이 되는 건 옳지 않다”며 “정의의 이름으로 호소하니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패터슨의 변호인도 “진범 아닌 사람이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가슴에서 불덩이가 치민다”며 “30년, 50년이 지나도 아들 죽인 놈들은 용서하지 못한다. 양심도 없고 반성도 없는 진범을 밝혀서 엄벌에 처해달라”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는 다음 달 13일 오후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롯데 신동빈 회장 소식 듣고 말 잇지 못해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겁고 불안한 침묵….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롯데그룹 본사의 표정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출근 직후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을 접한 뒤 거의 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자살 소식을 보고받고 “안타까운 일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고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인 SDJ코퍼레이션이 전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호텔 34층 집무실 겸 거처에서 이혁재 비서실장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았고 이 자리에 신 전 부회장도 함께 있었다고 SDJ코퍼레이션은 덧붙였다. 롯데 임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룹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거나 이 부회장 관련 뉴스를 검색하면서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부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롯데그룹 본사에서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임이 무색하게 흡연구역이나 복도 등에서 무거운 표정의 직원들이 모여 이 부회장의 부고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롯데그룹은 장례식을 5일간 롯데그룹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조문은 27일 오전 9시부터 가능하며 신 회장은 이날 오전에 조문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등 임직원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심리적 타격이 매우 크다. 한 롯데그룹 직원은 “이 부회장은 총괄회장 때부터 그룹 경영의 전반을 총괄해 온 만큼 그룹의 역사를 같이한 분인 데다 일반 사원에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분이어서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다”며 “평소 골프도 치지 않고 업무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부정적 평판이 거의 없었던 분인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측은 “평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 이 부회장이 고인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을지로 외에도 송파구 잠실, 영등포구 양평동 등에 주요 계열사가 흩어져 있다. 한 롯데 계열사 관계자는 “불안해서 기사 모니터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온몸에 전율 흐르네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온몸에 전율 흐르네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예고하는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의 순간은 그리스도교가 정착한 5세기 이래 서구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날개 달린 천사가 한 여인에게 무언가 말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의 제목은 열이면 열, ‘수태고지’라고 보면 된다.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특히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걸출한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주제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까지 본 모든 수태고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서슴지 않고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1387~1455)의 ‘수태고지’라고 답하겠다.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 프라(Fra)는 수도사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으로 ‘형제’라는 뜻이고, 안젤리코는 ‘천사 같은’이라는 뜻이다. 본명이 구이도 디 피에트로인 그는 청년기에 채색 삽화가로 도제 수업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23세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그는 기도의 행위로서 그림을 그렸다. 채색 필사본과 제단화로 이름을 알리던 중 도미니크회가 1436년 인수한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의 장식화를 맡게 됐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본래 실바네스트리 수도회 소유였던 것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재건축이 이뤄졌다. 메디치궁을 지은 건축가 미켈레초가 1437년부터 재건축 공사를 시작해 16년 만인 1452년 지금의 수도원 건물이 완성됐다. 프라 안젤리코는 1436년부터 1445년까지 이곳에 머물며 벽화와 회랑의 프레스코화, 수도사들의 독방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 현재는 산마르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지만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도원은 광장 쪽으로 1층에 성당이 있고 그 왼쪽으로 들어가면 큰 정원과 아치가 이어지는 성안토니오 회랑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회랑을 따라 걷다가 2층으로 올라가면 첼라(Cella)라고 하는 수사들의 독방이 42개가 있다.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과 같은 당대의 기술과 수도사로서의 경건함과 신실함, 신학적 지식을 담아 수도원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2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면 맞은편 벽면에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생각보다 꽤 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고 섬세한 작품을 보는 순간 온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반문하고’ ‘순종하는’ 단계를 담고 있다.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리는 가브리엘의 자상한 표정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반문하다가 말씀을 따르겠다고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치는 가운데 천사와 마리아 모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의 이 그림 속에 프라 안젤리코는 원죄없이 잉태가 이뤄지는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프라 안젤리코는 2층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수도사들의 방에 각기 다른 성서의 이야기를 프레스코화로 남겼다. 각 방에는 번호가 적혀 있지만 프레스코화에 담긴 그림은 성서의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는 않다. 1번 방에는 부활한 예수를 처음 발견한 마리아가 손을 잡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잡지 마라”라고 말하는 장면, 2번 방에는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슬퍼하는 장면을 그린 ‘애도’, 3번 방에는 또 다른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중세 명작·유물 가득…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외에도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유명한 그림과 중세 수도원의 유물들이 많다. 수도원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를 위해 북쪽 회랑 끝에 마련한 특별 기도실(39번방)에는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동방박사는 피렌체에서 선택받은 가문, 존경받는 가문, 선지자적인 가문이고 싶었던 메디치 가문의 수호 성인이었다. 피렌체의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모였던 아래층 수도사들의 식당(레페르토리오)에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산마르코 수도원장으로 ‘허영심의 화형식’을 거행하고, 결국 자신도 화형당한 지롤라노 사보나롤라의 유품도 볼 수 있다. 수도원 2층 복도에는 아름다운 도서관도 있다. 아름답기만 할 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는 명예까지 안고 있는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직접 쓰고 그린 수백년 된 필사본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lotus@seoul.co.kr
  • 인간문화재 첫 관문 국가가 심사… “평소보다 더 떨리네요”

    인간문화재 첫 관문 국가가 심사… “평소보다 더 떨리네요”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은 난생처음이라 더 떨리네요.” 지난 2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심사가 진행된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소공연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덕용(30)씨는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응시자 대기실 복도를 오가며 초조함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앞사람 심사가 끝났다. 이씨는 심사장으로 향했다. 무대 중앙에 8폭 병풍을 배경으로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진행자가 네모난 통을 들고 다가왔다. 통엔 경기민요 12좌창 중 심사를 할 다섯 곡의 제목이 적힌 종이가 담겨 있었다. 통에서 두 곡을 뽑았다. 집장가와 소춘향가였다. 심사위원 5명을 앞에 두고 돗자리 위에 놓인 방석에 다소곳이 앉았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장구 가락에 맞춰 집장가부터 불렀다. 구성진 소리가 소극장에 울려 퍼졌다. 7분이 지나자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씨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음 곡을 이어 갔다. 노래 부르는 전 과정은 카메라 2대에 고스란히 담겼다. 공정성 시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공정성 시비 막자” 카메라로 전 과정 녹화도 심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이씨는 “시험을 앞두고 하루 5시간씩 꾸준히 연습했는데 연습한 만큼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며 “정확한 귀와 명석한 두뇌, 매의 눈을 갖고 있는 심사위원 분들 앞에서 평가를 받는 상황이라 많이 떨리고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날 응시자 14명 중 최연소였다. 정미덕(50)씨도 이씨와 같은 심정이었다. “무지 떨렸어요. 너무 긴장해서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게 아쉬워요. 쉬운 건데 긴장하니까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안타까움과 감동을 동시에 연출한 장면도 있었다. 나이 지긋한 한 응시자가 노래를 부르다 가사를 까먹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심사위원석에서 ‘춘향이가 이 도령 만나’부터 다시 시작하자며 한 소절 한 소절 선창하며 응시자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후에도 가사를 잊고 불안해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응시자가 낙담한 표정으로 무대 뒤로 퇴장하자 한 심사위원이 탄식했다. “안타깝다. 응시자 중 음색이 제일 뛰어나고 노래도 아주 맛깔나게 부르는데, 정말 안타까워.” 지난달 8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佛畵匠)을 필두로 국가에서 시행하는 인간문화재 이수자 심사가 시작됐다. 보유자나 보유단체의 이수자 심사와 이수증 발급 권한을 22년 만에 국가로 환원한 조치에 따른 것이다. 이수자 국가 심사는 이수자 심사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지난 3월 시행된 게 계기가 됐다.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1983년 이수자 심사와 이수증 발급을 시작했다. 1994년 심사 권한이 정부에서 보유자나 보유단체로 넘어갔다. 당시 일부 보유자들이 보유자가 가르치는 제자들의 이수자 심사는 보유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심사의 객관성·공정성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10년 전부터 국가에서 이수자 심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이춘희 경기민요 보유자는 “보유자들이 인정에 이끌려 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고, 심사위원을 모신다고 해도 보유자들과 친한 사람들을 모셔 공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수자·이수자·조교 거쳐야 인간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가 되려면 전수자, 이수자, 조교를 거쳐야 한다. 3년 이상 전수 교육을 받은 전수자는 누구나 인간문화재 지정 첫 단추인 이수자 심사에 응시할 수 있다. 응시자는 심사위원 5명 중 최고·최저 점수를 제외한 3명의 평균 점수가 70점 이상 돼야 합격할 수 있다. 심사를 통과하면 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이 주어지고, 조교 심의 대상이 된다. 정부의 전승지원금 혜택을 받는 조교와 보유자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정된다. 강경환 무형유산원장은 “그간 보유자나 보유단체에서 이수자 관리를 하지 않아 언제 이수증을 발급받았는지 등 기본적인 자료조차 구비돼 있지 않았다”며 “앞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이수자 심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이수자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다양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주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피렌체 산마르코 국립미술관: 프라 안젤리코의 프로스코화가 가득

    피렌체 산마르코 국립미술관: 프라 안젤리코의 프로스코화가 가득

     갈릴리 북쪽 산악지대에 있는 나사렛 마을에서 사는 마리아는 같은 지역에서 목수로 일하는 요셉과 곧 결혼하기로 돼 있었다. 어느 날 마리아가 조용히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 낯선 빛이 무릎 위에 내려 앉았다. 깜짝 놀라 올려다 보니 하나님의 사자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었다.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마리아,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너를 크게 축복하셨으니 두려워 마라. 너는 이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래 기다려 온 왕이고, 다윗 왕의 후손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예고하는 부분이다. ‘알리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아눈티아레(annuntiare)’에서 유래한 고유명사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의 순간은 그리스도교가 정착한 5세기 이래 서구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 졌다. 날개달린 천사가 한 여인에게 무언가 말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의 제목은 열이면 열, ‘수태고지’라고 보면 된다.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특히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걸출한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주제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까지 본 모든 수태고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1387~1455)의 ‘수태고지’라고 답하겠다.  프라(Fra)는 수도사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으로 ‘형제’라는 뜻이고, 안젤리코는 ‘천사같은’이라는 뜻이다. 본명이 구이도 디 피에트로인 그는 청년기에 채색 삽화가로 도제수업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23세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그는 기도의 행위로서 그림을 그렸다. 채색 필사본과 제단화로 이름을 알리던 중 도미니크회가 1436년 인수한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의 장식화를 맡게 됐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본래 실바네스트리 수도회 소유였던 것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재건축한 것이다. 메디치 궁을 지은 건축가 미켈레초가 1437년부터 재건축 공사를 시작해 16년만인 1452년 지금의 수도원 건물이 완성됐다. 프라 안젤리코는 1436년부터 1445년까지 이 곳에 머물며 벽화와 회랑의 프레스코화, 수도사들의 독방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 현재는 산마르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지만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도원은 광장 쪽으로 1층에 성당이 있고 그 왼쪽으로 들어가면 큰 정원과 아치가 이어지는 성안토니오 회랑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회랑을 따라 걷다가 2층으로 올라가면 첼라(Cella)라고 하는 수사들의 독방이 42개가 있다.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과 같은 당대의 기술과 수도사로서의 경건함과 신실함, 신학적 지식을 담아 수도원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2층으로 가기위해 계단을 오르면 맞은 편 벽면에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생각보다 꽤 크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고 섬세한 작품을 보는 순간 온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회화의 주제로서 수태고지 장면에서 마리아의 모습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5가지 미덕의 상태로 표현된다. 천사의 출현으로 경이로워 하는 당혹한 상태, 천사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심사숙고의 상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의 상태,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상태, 마지막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되는 공로의 상태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반문하고’ ‘순종하는’ 단계를 담고 있다.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리는 가브리엘의 자상한 표정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반문하다가 말씀을 따르겠다고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황금 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치는 가운데 천사와 마리아 모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의 이 그림 속에 프라 안젤리코는 원죄없이 잉태가 이뤄지는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그리스도교에서 수태고지는 예수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동시에 지닌 존재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또한 ‘신을 탄생하게 한 여자’로서의 마리아를 예고하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를 그림에 쓰거나 백합, 흰 수건 등으로 그려 넣어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프라 안젤리코는 그런 직접적인 상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서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있는 장소로 수도원의 로지아를 그렸다. 로지아의 아치는 마리아를 상징하는 ‘M’자형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런 기적이 수도원에서 일어났을 것이라 상상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2층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수도사들의 방에 각기 다른 성서의 이야기를 프레스코화로 남겼다. 각 방에는 번호가 적혀있지만 프레스코화에 담긴 그림은 성서의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는 않다. 1번 방에는 부활한 예수를 처음 발견한 마리아가 손을 잡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잡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 2번 방에는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슬퍼하는 장면을 그린 ‘애도’, 3번 방에는 또 다른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어두운 복도의 양쪽으로 무거운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창문 하나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두 평 남짓한 독방이다. 이곳에서 수도사들은 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과 도미니크회 순교자들의 모습을 그린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고요하게 신을 생각하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방마다 다른 일화를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는 2층은 수도원이 폐쇄된 19세기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공개됐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외에도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유명한 그림들과 중세 수도원의 유물들이 많다. 수도원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를 위해 북쪽 회랑 끝에 마련한 특별 기도실(39번방)에는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동방박사는 피렌체에서 선택받은 가문, 존경받는 가문, 선지자적인 가문이고 싶었던 메디치 가문의 수호성인이었다. ‘동방박사의 경배’ 속에는 피렌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아들 피에로, 손주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림에 등장한다. 피렌체의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모였던 아래층 수도사들의 식당(레페르토리오)에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수도원장이었던 지롤라노 사보나롤라의 유품도 볼 수 있다. 사보나롤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역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15세기 후반은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도시는 부유했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면서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예술과 종교도 세속적으로 흘러갔다. 이때 산마르코 수도원장이 되어 피렌체에 입성한 사보나롤라는 광기어린 설교로 “지금 당장 청빈한 삶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놀랍게도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하던 해에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했고 1494년 로렌초의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도시에서 추방됐다. 사보나롤라의 추종자들은 피렌체를 장악하고 신의 이름으로 독재정치를 펼쳤고 사보나롤라는 온갖 사치스러운 것들을 시뇨리아 광장에 모아놓고 ‘허영심의 화형식’을 거행하고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난하며 교황청의 개혁을 요구한다. 과격함이 극에 달하자 결국 교황청은 1497년 그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사보나롤라는 허영심의 화형식이 있었던 시뇨리아 광장에서 1498년 공개화형된다.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사보나롤라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프라 바르톨로메오가 1508년에 그린 사보나롤라의 초상화 2점이 남아있다. 아직 사보나롤라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죄악시되던 때라 바르톨로메오는 그림에 ‘순교자 베드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수도원 2층 복도에는 아름다운 도서관도 있다. 아름답기만 할 뿐 아니라 세계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는 명예까지 안고 있는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직접 쓰고 그린 수백년 된 필사본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산업용지 과도한 시세차익 근로자 지원시설에 재투자

     산업용지를 싸게 분양받은 기업들이 챙기던 과도한 시세차익을 산단 기업 및 근로자 지원시설에 재투자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촉진지구에도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입지 개발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23일 밝혔다. 개정안은 공공시행자가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조성한 산업단지를 기업들이 저렴하게 분양받아 과도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해 공공시행자의 이윤율(현행 5%)을 법에서 정한 상한선(15%)까지 올려 조성원가를 높이기로 했다. 기업이 챙길 과도한 이윤을 공공시행자가 가져가 산업단지 기업과 근로자 지원시설 등에 재투자할 수 있게한 조치다. 주변 시세 대비 땅값이 크게 낮아 기업들의 높은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판교창조밸리를 비롯, 지방 12개 산단에 적용할 방침이다.  뉴스테이 공급촉진지구에도 도시첨단산업단지의 중복 지정을 허용했다. 행복도시·혁신도시, 공공주택지구, 도청이전신도시, 친수구역, 일반 택지개발지구 등에는 도시첨단산단을 조성할 수 있었지만 뉴스테이 공급촉진지구는 제외됐었다. 산업단지 유치업종 변경 절차를 간소화 해 기존 산단에 지역전략산업도 쉽게 입주할 수 있게 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SSEN리뷰] ‘닥터스’ 너무 뻔해도 괜찮아 ‘김래원이니까’

    [SSEN리뷰] ‘닥터스’ 너무 뻔해도 괜찮아 ‘김래원이니까’

    드라마 ‘닥터스’가 다음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이는 건 분명 배우 김래원의 힘이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가 종영까지 1회 만을 남겨둔 가운데 예상 가능한 ‘해피엔딩’의 결말로 흘러가는 중이다. 유혜정(박신혜)은 진서우(이성경)의 진심어린 사과에 그의 아버지 진명훈 과장(엄효섭)을 용서하고 할머니의 복수를 멈춘다. 그러나 결국 진명훈 과장은 죄의 대가를 치른다. 종양이 발견된 것. 이제 결말은 홍지홍과(김래원)과 그의 어시스턴트 유혜정이 그의 수술을 맡아 원수를 은혜로 갚는 일만 남았다. ‘닥터스’는 착한 드라마기 때문이다. ‘닥터스’는 앞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훈훈함을 안겼다. 손떨림 증상을 겪는 양궁 선수(임지연)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내는가 하면 전신이 마비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환자(한혜진)를 스토커(조달환)로부터 구해내고, 두 아들의 수술비가 없는 아빠(남궁민)의 자살을 막으며, 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을 상황에 있는 남자(이상엽)를 위로했다. 언제나 예상 가능한 훈훈한 결말로 에피소드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닥터스’는 병원 에피소드보다 주인공 유혜정의 변화 과정과 로맨스에 더욱 초점을 맞춘 작품. 그의 성장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홍지홍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김래원은 선생에서 연인이 되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보는 이들이 불편하지 않게, 그만의 능글맞음과 자연스러움으로 박신혜와 ‘케미’를 만들었다. “결혼했니? 그럼 됐다”로 시작된 여심 저격 멘트는 병원 복도에서 툭 던진 “혜정아 결혼하자”라는 프러포즈로 정점을 찍었다. 김래원은 홍지홍이고, 홍지홍은 김래원이었다. 캐릭터와 배우가 하나가 된 자연스러운 연기에 ‘심쿵’ 대사가 더해져 시청자들을 매회 설레게 했다. 다소 “오글다린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달달한 로맨스일수록 ‘오글’을 피할 순 없다. 김래원표 로맨스를 각인시킨 ‘닥터스’는 23일 화요일 밤 10시 마지막회가 전파를 탄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진정한 ‘100세 인생’? 102세 호주 연구원 “재택근무 요청 섭섭”

    진정한 ‘100세 인생’? 102세 호주 연구원 “재택근무 요청 섭섭”

     진정한 ‘100세 인생’이 이런 것일까. 호주의 최고령 현역 과학자인 102세 연구원이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 학교 측이 연구실을 비우고 집에서 연구하도록 하자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호주 퍼스의 에디스 코완 대학 측은 산하 생태계관리센터의 명예연구원인 데이비드 윌리엄 굿올에게 90분이 걸리는 출근길이 더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집에서 일하도록 조치했다고 호주 언론들이 22일 보도했다.  저명한 생태학자인 굿올 명예연구원은 지금까지 버스를 두 차례, 기차도 한 번 타는 장거리 출근길을 거쳐 학교에 와 연구를 했다. 하지만 걷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1㎞ 이상을 걸으려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학 측의 스티브 채프먼 부총장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굿올 및 그의 가족과 협의를 거쳐 그쪽에서 선택한 곳에 재택 사무실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채프먼 부총장은 또 “그의 학교 방문을 언제든 환영하며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 지원할 것”이라며 “계약이 올해 말로 끝나더라도 그의 많은 업적을 인정해 3년 계약 갱신을 고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굿올 명예연구원 본인이나 가족은 학교 측이 만일 학내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소송에 걸릴까 걱정해 나온 조치라며 아쉽다는 반응이다.  굿올은 “연구실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을 알고 있고 때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라면서 “하지만 현재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과 거의 접촉이 없고 퍼스에 친구들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굿올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다며 집에서라도 지금 하던 방식으로 학교를 위해 계속 연구활동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딸인 카렌은 이번 결정이 아버지의 자립심과 정신 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최악의 결정으로 아버지가 더 사실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호주 ABC 방송에 말했다.  3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굿올은 70년 간 생태학 연구에 종사하면서 5개 대륙에서 일했고 130권 이상의 과학서적을 냈다. 올해에는 호주 정부로부터 민간인 대상 최고 훈장인 ‘호주 훈장’(Order of the Australia)도 받았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닥터스 김래원, 병원 복도서 기습 프러포즈 “결혼하자” 박신혜 표정보니

    닥터스 김래원, 병원 복도서 기습 프러포즈 “결혼하자” 박신혜 표정보니

    ‘닥터스’ 김래원이 박신혜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22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극본 하명희, 연출 오충환)에서 지홍(김래원 분)은 병원 복도에서 만난 혜정(박신혜 분)에게 대뜸 “혜정아 결혼하자”라고 말했다. 혜정이 깜짝 놀라자 지홍은 “싫으냐”고 물었다. 혜정은 “아니 너무 심한 것 아니냐.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무슨 말을 그렇게 툭 뱉냐”고 지적했다. 이에 지홍은 “이거 툭 뱉은 것 아니다. 계속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온 거다”고 설명했다. 이에 혜정은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잖냐. 낭만적이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홍이 “난 네가 그런 것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자 혜정은 “왜 싫어한다고 생각하요? 안 싫어한다”며 정색했다. 지홍은 “너 나한테 할말 있지 않냐”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길 기다렸고 혜정은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민망해했다. 혜정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지홍의 손을 잡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다음 행동은 병원이라서 참는 거다”고 말했고 지홍은 “또 훅 들어온다”며 웃었다. ‘닥터스’는 오늘(23일) 오후 10시 마지막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진=SBS ‘닥터스’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용산 ‘원효아파트’ ‘금성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용산 ‘원효아파트’ ‘금성아파트’

    한 지역으로서의 용산은 보통 남산에서 한강 사이를 말한다. 그 대부분이 미군 부대를 위시한 군사시설이거나 철거민의 비애를 뒤로한 채 고층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는 신개발지다. 넓은 벌판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그 안에 능선과 계곡이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지형으로서의 원래 용산은 어디에 있을까? 미군 부대 안이나 남산 자락, 혹은 이태원 어디쯤에서 그 단서를 찾으려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이다. 이보다 훨씬 서쪽으로 가야 한다. 삼각지에서 한강으로 나가는 길인 한강로를 지나, 심지어 경부선과 경의 중앙선 철도를 건너 용산구의 서쪽 경계까지 거의 다 가서야 원래의 용산을 찾을 수 있다. # 용산(龍山)은 어디에 있을까 서울역 서쪽에서 시작되는 만리재길을 따라 효창공원을 지나, 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성당을 거쳐, 마포대교 북단 어귀에서 한강과 만나는 총연장 3㎞ 남짓한 능선의 흐름이 바로 용산이다. 그 능선 꼭대기까지 아파트가 들어서서 더이상 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용처럼 구불거리며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해서 용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무로 덮인 그런 산은 더이상 아니다. 이처럼 원래의 용산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 까닭에 현재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용산은 정확히는 신용산이라고 불러야 옳다. 한강대로변 지하철 4호선 역의 이름이 신용산역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산이 있으면 물이 있고 그 물이 모여 흘러가는 골짜기 주변에는 사람이 모여 살게 마련이다. 용산의 남쪽 사면을 타고 내리는 물은 용산전자상가 아래의 욱천, 즉 만초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간다. 그 용산의 능선과 만초천 사이 지역이 현재의 원효로 일대다. 원효로는 일제강점기에 원정(元町·모토마치)으로 불리던 곳인데 해방 이후에 같은 ‘원’ 자가 들어가는 원효 대사의 법명을 따서 개칭했다. 남영역에서 갈라져 나온 별도의 전차 노선이 깔려 있던 길이기도 했다. 1981년 그 남단에 원효대교가 준공되면서 서울 구도심과 여의도를 이어 주는 중요한 지역이 됐다. 이처럼 구용산, 혹은 ‘오리지날’ 용산의 중심 가로라고 할 원효로를 따라 두 개의 흥미로운 가로형 상가 아파트가 있다. 원효로 2가 교차로에 있는 원효 아파트, 그리고 원효대교 초입인 원효로 3가의 금성 아파트가 바로 그것이다. 원효 아파트는 1970년 12월 24일에, 금성 아파트는 1971년 12월 18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으니 1년 간격으로 세상에 나왔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의 불과 몇 년 사이에 숨 가쁘게 전개된 한국 상가 아파트 역사의 절정기에 등장한 셈이다. # 원효 아파트, 코너 건물의 역할 원효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7층에 89가구가 있는 중간 규모의 상가 아파트다. 전체 8개 층 중에서 상가가 들어가 있는 것은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이다. 거리에 면한 1층은 색상이나 조형 등이 그 윗부분과 확연히 구별된다. 다만 2층은 같은 상가라도 수평으로 긴 창이 다를 뿐 나머지는 상층부의 주거와 별 다른 차이가 없이 처리된 점이 흥미롭다. 원효 아파트가 위치한 원효로 교차로는 인근의 용문 교차로와 더불어 이 지역의 중요한 거점이기 때문에 원효 아파트의 저층 상가는 그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전형적인 상업가로의 코너형 건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원효 아파트는 그 요구에 어떻게 부응하고 있을까? 오늘날 이런 건물을 설계하게 되면 아마도 이 코너 부분의 처리가 사뭇 달라질 것이다. 조경, 주차 등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면 공개 공지를 설치해야 하기도 한다. 도시설계에 해당하는 지구단위계획에서 별도의 조건을 달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만들어진 건물 중에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들이 있다. 특히 코너 부분을 녹지로 처리하거나 아예 개방해 버리는 경우 상업가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어질 뿐 아니라 도시 블록의 연속성이 완전히 와해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철거 전후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가로의 코너 부분은 녹지가 아니라 건물로 채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이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코너의 논리에 충실한 건물을 요즘 그리 잘 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효 아파트는 그런 점에서 좋은 연구 대상이다. 일단 코너 건물로서의 기본적 유형은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길과 만나는 부분의 디테일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정작 가장 중요한 코너 부분의 처리에 문제가 많다. 아예 이 면으로는 출입구 자체가 없다. 길과 건물이 서로 연결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허리 높이까지 벽이 서 있고 상가의 스케일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완전히 가로의 활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같은 부분의 2층도 창문을 완전히 막아 버려서 위치적인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내부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탁 트인 사거리의 풍경을 막아 버릴 만큼의 이유란 어떤 것일까? 정리하자면 코너 저층부에 대한 처리만 조금 바꿔도 이 건물의 매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이렇게 건물의 성격은 큰 몸짓 못지않게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결정된다. 원효 아파트는 전형적인 중복도형이다. 건물의 가장 두꺼운 부분이 18m인데 이 정도면 중정이 있기에는 좁고, 편복도형이나 계단실형으로 처리하기에는 넓다. 계단은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건물 동쪽의 새창로에, 또 다른 하나는 건물 북쪽의 원효로에 면하고 있다. 계단이 건물의 양쪽 끝이 아니라 복도 중간에 있다 보니 막다른 복도가 생기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막다른 복도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데 사실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공동 주거에서 피난과 관련된 이런 규정들은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20피트, 즉 6m가 넘는 막다른 복도는 건축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원효 아파트의 외관에서는 별다른 특징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거 층의 창문은 특별한 조형 의지 없이 그냥 실용적으로 배치한 듯하다. 6층은 아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문이 배열돼 있고 7층은 원래 연속된 발코니가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모두 막아 쓰고 있다. 이 발코니가 원형대로 있었다면 적어도 조형적으로는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옥상에 오르면 구용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용산구에 그 이름을 있게 한 용산의 흐름이 건물 북쪽에 병풍처럼 펼쳐진다. 눈을 서쪽으로 돌리면 원효대교 북단이 보인다. 그리고 그 어귀에 또 다른 상가 아파트가 있다. 바로 금성 아파트다. # 옥상 마당이 있는 금성 아파트 금성 아파트는 원효 아파트에서 원효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370m 간 지점에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면 원효대교 북단의 램프가 시작된다. 원효대교는 금성 아파트가 세워지고 나서 약 10년 후에 세워졌으니 금성 아파트가 완공되고 나서 한참 동안 이 일대는 막다른 길 지역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금성 아파트 주변은 어딘가 종점 다방 같은 것이 있음직한 분위기다. 금성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6층 총 53가구의 상가 아파트다. 이 정도면 상대적으로 소규모 아파트에 해당한다. 처음에 이 아파트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외관하며 공동 주거로서는 좀 생뚱맞은 위치 때문에 굳이 가 볼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애타게 찾고 있던 존재가 드디어 나타난 경우가 됐다. 바로 이 아파트의 옥상 마당 때문이다. 무지개떡 건축론에서는 옥상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도시를 위해 필요한 밀도와 복합이라는 주제를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본 욕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서 제안하는 것이 바로 옥상 마당이다. 굳이 그냥 옥상, 혹은 옥상 정원이라 하지 않고 옥상 마당이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당 그 자체는 물리적으로 외부 공간이지만 인접한 실내 공간의 존재를 암시한다. 같은 외부 공간이라도 이렇게 실내 공간과 바로 연계돼 있어야 활용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마련이다. 한옥의 마당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상가 아파트에서는 그런 예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옥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텃밭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안산 맨션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옥상 정원이지 옥상 마당은 아니었다. 그런데 원효대교 초입의 다소 어정쩡한 구용산 지역에서, 그것도 외형상 별다른 특징을 찾아보기 어려운 작은 상가 아파트가 그런 아쉬움을 단번에 해소해 주었다. 6층이 그 아래층보다 절반 이하로 작아지면서 전면에 상당히 여유 있는 옥외 공간이 조성돼 있었다. 건물 꼭대기라서 그렇지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경치가 일품이었다. 저 멀리 남산, 원효로 맞은편의 고층 건물들, 그리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한강까지. 뒤로는 서울역에서 만리재를 거쳐 효창원을 지나 새창고개를 넘어 달려온 용산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옥상 마당의 일부에 공공적인 기능, 즉 주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같은 시설을 넣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이 옥상 마당에는 진짜 마당처럼 집 지키는 개도 있었다. 그 개가 짖으며 달려드는 바람에 급하게 내려가야 했지만. 물론 현재의 주민들이 저 옥상 마당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나 그렇듯이 다소 무심한 측면이 있다. 옥상 마당의 가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그 공간을 활용하려는 의지는 적어도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도시에서 경관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지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좋아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정서를 만들어 낸다는 차원의 진정한 도시적 삶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금성 아파트의 옥상 마당은 우리 도시의 미래가 어떤 곳에서 시작될 것인지를 보여 주는 작지만 소중한 사례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1970년대 초기에 옥상 마당의 가치를 예견하고 그것을 상가 아파트 위에 구현한 이 건물의 설계자,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선배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원효로에서 가까운 효창동에 또 다른 상가 아파트인 효창 맨션아파트가 있다. 11층의 고층 아파트로서 1969년 7월 29일 완공돼 역사도 상당하지만 상가의 비중이 너무 낮아 이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 층간소음 특화설계-외부소음 차단... 아파트의 ‘조용한 진화’

    층간소음 특화설계-외부소음 차단... 아파트의 ‘조용한 진화’

    천안시 서북구의 신흥주거지로 주목받고 있는 두정지구에서 오는 8월 중소형 특화 아파트 ‘e편한세상 두정4차’가 견본주택을 개관하고 본격적인 분양일정에 돌입했다.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에 위치하는 두정지구는 제2종 일반 주거지역 지정으로 서북구를 대표하는 새로운 주거타운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e편한세상 두정4차’는 지하 2층~지상 23층, 6개 동, 전용면적 62, 72㎡, 총 456가구 규모다. 타입별 전용면적은 ▲62㎡A 150가구 ▲62㎡B 196가구 ▲72㎡ 110가구다. ‘e편한세상 두정4차’는 전 가구가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으로 구성된다. 특히 전용 62㎡, 72㎡의 틈새면적공급으로 금액과 면적의 절충안을 찾는 수요자들에게 인기가 높을 전망이다. 두정동은 지난 5년간 증가한 천안시 인구 중 약 40%의 인구가 유입된 지역으로 20대 후반~ 40대 초반 인구 비율이 전체의 43%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 도시’다. 이에 중소형 평형에 대한 수요도 높아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이외에도 단지 중앙으로는 대형 중앙광장이 마련되며 어린이놀이터, 주민운동시설은 물론 라운지카페, 피트니스 등을 갖춘 커뮤니티시설이 조성된다. 이 단지에서는 다양한 특화설계를 만나볼 수 있다. 전용 62㎡A 타입의 경우 복도 펜트리(확장시)를 제공해 넉넉한 수납공간을 갖췄으며 주부들의 가사동선을 고려한 ‘ㄷ’자형 주방, 자녀방 붙박이장 설치 등 효율적 공간활용이 가능하다. 전용 62㎡B 타입은 전가구 남향 배치로 일조권 및 개방감이 탁월하며 LDK구조가 적용돼 실내 개방감을 높였다. 전용 72㎡ 타입은 시원한 개방감과 넉넉한 수납공간을 가진 4Bay 판상형 구조로 설계되는 등 전가구가 넓은 공간활용이 가능한 중소형 틈새평형 아파트로 구성된다. 이외에도 e편한세상만의 특화설계인 단열 설계를 적용해 열 손실을 최소화하고 모든 창호에 소음차단과 냉난방 효율이 높은 이중창 시스템이 적용된다. 또한 거실과 주방에는 일반 아파트보다 2배 가량 두꺼운 60㎜ 바닥차음재를 설치해 층간소음을 저감하는 등 다양한 특화설계도 도입된다. ‘e편한세상 두정4차’는 두정역이 약 670m 거리에 위치한 역세권 아파트로 경부고속도로 천안IC, 1번 국도 등의 이용도 편리한 교통여건으로 인근 수요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하다. 천안고속버스터미널이 가까워 광역버스를 통한 시내·외 이동이 편리하며 KTX천안아산역을 이용하면 서울까지 30분대, 부산까지 2시간 가량이면 도착할 수 있다. 청약일정은 23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24일 1순위 접수, 25일 2순위 접수를 받는다. 이후 31일 당첨자 발표, 계약은 9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견본주택은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에 위치해 있으며, 입주는 2018년 10월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원고 ‘기억교실’ 옮겨도 잊지 않을게요

    단원고 ‘기억교실’ 옮겨도 잊지 않을게요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존치교실)이 20~21일 이틀에 걸쳐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이전했다. 기억교실의 책상과 추모 메모를 비롯한 기억 물품은 4·16 안전교육시설이 건립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보존·전시된다. 안산교육청 별관 1층에는 1~4반, 2층에는 5~10반과 교무실이 마련됐다. 이곳에 학생용 책상 358개와 학생용 의자 363개, 키 높이 책상 26개, 교무실 의자 11개, 교실 교탁 10개, 교무실 책상 12개 등이 단원고에 있던 그대로 옮겨졌다.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진 기억물품과 기억교실은 45일 일정으로 재현 작업이 진행된다. 재현된 기억교실은 오는 10월 중순 이후 일반인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진통을 거듭한 기억교실 이전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2년 4개월여, 참사 발생 858일째 되는 지난 20일 시작됐다. 작업은 애초 이날 오전 9시 30분 7대 종단 종교의례를 시작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416가족협의회가 “이전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고 해 2시간 이상 지연됐다. 기억교실을 임시로 이전하는 안산교육지원청 별관(1~2층)엔 책상과 의자, 유품, 칠판, TV 등 기억교실 내 물품은 둘 수 있지만, 교실문과 복도 창 등 교실 밖 집기까지 옮기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항의였다. 또 이전한 기억교실을 어떤 식으로 운영·관리할지 프로그램이 미흡하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 416가족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이날 오전 9시 20분쯤부터 2시간 가까이 협의한 끝에 희생자 가족들을 설득했다. 실무협의체를 꾸려 부족한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고 기억교실 운영·관리 프로그램 보완에 나서기로 했다.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이전 준비가 미흡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기로 했다”면서 “이 교육감이 약속한 대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단원고 ‘기억교실’, 안산교육청 별관으로 임시 이전

    단원고 ‘기억교실’, 안산교육청 별관으로 임시 이전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존치교실)’이 20~21일 이틀에 걸쳐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이전했다. 기억교실의 책상과 추모 메모를 비롯한 기억 물품은 4·16 안전교육시설이 건립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보존·전시된다. 안산교육청 별관 1층에는 1~4반, 2층은 5~10반과 교무실이 마련됐다. 이곳에 학생용 책상 358개와 학생용 의자 363개, 키 높이 책상 26개, 교무실 의자 11개, 교실교탁 10개, 교무실 책상 12개 등이 단원고에 있던 그대로 옮겨졌다.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진 기억물품과 기억교실은 45일 일정으로 재현작업이 진행된다. 재현된 기억교실은 오는 10월 중순 이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진통을 거듭한 기억교실 이전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2년 4개월여, 참사 발생 858 째 되는 지난 20일 시작됐다. 작업은 애초 이날 오전 9시30분 7대 종단 종교의례를 시작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416가족협의회가 “이전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고 해 2시간 이상 지연됐다. 기억교실을 임시로 이전하는 안산교육지원청 별관(1~2층)은 책상과 의자, 유품, 칠판, TV 등 기억교실 안 물품은 둘 수는 있지만, 교실문과 복도 창 등 교실 밖 집기까지 옮기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항의였다. 또 이전한 기억교실을 어떤 식으로 운영·관리할지 프로그램이 미흡하다는 문제 제기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 416가족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이날 오전 9시20분쯤부터 2시간 가까이 협의한 끝에 희생자 가족들을 설득했다. 실무협의체를 꾸려 부족한 공간을 추가 확보하고 기억교실 운영·관리 프로그램 보완에 나서기로 했다.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이전 준비가 미흡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기로 했다”면서 “이 교육감이 약속한 대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세월호 참사 858일째…단원고 기억교실, 안산교육청 별관으로 이전

    세월호 참사 858일째…단원고 기억교실, 안산교육청 별관으로 이전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경기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존치교실)’의 임시 이전 작업이 20일 오후 시작됐다. 이전 작업은 원래 이날 오전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416가족협의회가 기억교실의 운영관리 계획 수립과 유품 보존공간 마련이 미흡하다며 경기도교육감의 해결방안 약속을 요구, 오전 9시 2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이재정 교육감과 협의를 진행하느라 다소 늦춰졌다. 양측이 합의를 도출, 이전 절차를 진행하기로 함에 따라 낮 12시쯤부터 이전 작업에 들어갔다. 단원고 기억교실 이전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2년 4개월, 참사 발생 858일째되는 날 이뤄지게 됐다. 기억교실과 복도 등에 있던 책·걸상과 추모 메시지 등 기억물품을 1.3㎞ 떨어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옮기는 이전 작업은 21일까지 이틀에 걸쳐 이뤄진다. 유가족, 자원봉사자, 시민 등은 3층 1반 교실의 개인 유품을 시작으로 기억 물품 등을 단원고 1층 로비에 옮기고 나서 종교의례를 하며 교실 이전의 시작을 알렸다. 가장 먼저 교실 밖으로 옮겨진 3층 기억교실 6개(1∼6반)의 책상 위 유품을 담은 보존상자에는 상자마다 이름표를 달아 이전 과정에서 유품이 훼손되거나 섞이지 않도록 했다. 개인 유품상자가 교실 밖으로 나오면 희생된 학생들의 손때가 묻은 책·걸상 등이 포장된 상자가 1층으로 옮겨져 무진동 탑차 6대에 나눠 실린다. 이전대상 유품과 기억물품을 교실 밖으로 옮기고 차에 싣는 과정이 끝나면 운동장은 이송을 위한 사람과 차량으로 긴 대열을 이룬다. 개인 유품상자를 하나씩 든 유가족의 지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선두에 서고 유가족과 시민, 학생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이송 물품을 실은 차량은 가장 후미에 선다. 개인 유품상자 이송에 256명이 나선다. 이는 단원고 희생자 262명 가운데 미수습된 학생 4명과 교사 2명을 제외한 사망이 공식 확인된 희생자를 의미한다. 미수습된 희생자 물품은 단원고에 남겨졌다. 이들은 단원고를 출발해 안산교육청 별관까지 1.3㎞ 코스를 30분∼1시간에 걸쳐 걸어 이동한다. 안산교육청에 도착한 기억물품은 지정된 해당 교실 자리로 옮겨진다. 2층 기억교실 4개(7∼10반)와 교무실 1개의 기억물품도 같은 과정을 거쳐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진다. 이송 대상 물품은 학생용 책상 358개, 학생용 의자 363개, 키 높이 책상 26개, 교무실 의자 11개, 교실교탁 10개, 교무실 책상 12개 등이다. 첫날 개인 유품, 책상, 의자, 교탁 등이 옮겨지고 21일에는 칠판, 게시판, TV, 사물함 등 물품이 옮겨진다.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진 기억물품과 기억교실은 45일 일정으로 재현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재현된 기억교실은 오는 10월 중순 이후 일반에 공개될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주사드투쟁위 ‘제3후보지 검토’ 격론 계속…결국 결론 못내

    성주사드투쟁위 ‘제3후보지 검토’ 격론 계속…결국 결론 못내

    성주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가 20일 제3후보지 검토를 논의했지만 치열한 찬반 논쟁만 펼치고 결론은 내지 못했다. 투쟁위원회는 2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경북 성주군의회 4층 회의실에서 제3후보지 검토를 주요 안건으로 삼은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격론을 벌이는 데 그쳤다. 사드배치 철회 및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강경파와 제3후보지 검토를 주장하는 온건파의 치열한 논쟁으로 회의를 더는 진행하지 못했다. 대책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 시작 전에 회의장 입구에는 강경파 주민 20여명이 복도를 장악한 채 “투쟁위는 제3지역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투쟁위가 철회 또는 3후보지 검토를 놓고 투표를 강행하면 제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의장 입구 복도를 막아 기자, 공무원 등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주민 20여 명은 회의장에 들어와 “투쟁위가 제3후보지 검토를 투쟁방향으로 정하려면 차라리 해체하라”고 반발했다. 투쟁위 온건파와 강경파는 각각 군의회 2층 의원실과 3층 부의장실로 이동해 간단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강경파 주민들은 1층 대강당에 다시 모여 제3후보지 검토를 수용하려는 투쟁위를 성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행복한 후쿠이, 그곳엔 특별한 비밀이 있다

    행복한 후쿠이, 그곳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이토록 멋진 마을/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김범수 옮김/황소자리/288쪽/1만 5000원 한반도 동해에 면한 일본 중부 호쿠리쿠 지역에 있는 인구 79만명의 작은 지방자치단체 후쿠이현. 일본인들에게조차 생소했던 이곳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후쿠이현은 현재 일본 지자체 중에서 가장 많은 ‘1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행복도 1위, 초중생 학력평가 1위, 노동자세대 실수입 1위, 정규직 비율 1위, 맞벌이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서점 숫자(인구 10만명당) 1위,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제품 및 기술 14개, 아동·노인 빈곤율 최저, 실업률 최저…. 한국보다 20년 앞서 저성장과 고령화 늪에 빠진 일본의 지방 도시들은 퇴락해 가고 있다. 고령화는 저출산을 동반하며, 지역공동체는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쿠이는 특별하다. 일본 언론들도 지난해부터 후쿠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곳을 찾아 “창의력으로 새로운 활력을 이끌어 낸 이곳의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한 이후 ‘후쿠이 모델’ 배우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신간 ‘이토록 멋진 마을’은 일본 내 모든 지표가 1위로 지목하는 가장 핫한 마을인 이곳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를 탐구한다. ●비결1: 밑바닥까지 철저히 망한 후 역전극 세계 3대 안경 산지로 소문난 후쿠이현 중심 사바에시. 한때 일본 내 안경테 시장의 90%를 점유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1990년대 말부터 저가 중국산에 밀려 900여곳의 안경 회사가 500여곳으로 줄었다. 지역 경제 규모도 1100여억엔에서 500여억엔으로 반 토막 났다. 후쿠이현의 핵심 제조업이었던 섬유산업도 덩달아 추락했다. 거리에는 길고양이와 각종 전단지, 주정뱅이 실업자만 넘쳤다. 사바에시는 소재산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후쿠이 안경 장인들이 협력해 신소재 혁신에 나서 티타늄, 형상기억합금 안경테를 출시했고, 루이비통, 레이벤 등이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곳 안경테 제조 공정은 지금도 ‘일급비밀’이다. 사양산업이었던 섬유 회사인 핫타타테아미도 신축성·통기성이 뛰어난 ‘더블 라셸 메시’라는 신소재를 만들면서 부활했다. 이 소재로 만든 신발을 신은 여성 마라토너 다카하시 나오코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놀랍게도 혁신의 주인공들은 모두 중소기업이었고 더 강해졌다. ●비결2: 여러분 시장을 하지 않겠습니까 2006년 5월 사바에시 시장이 된 지 2년째인 마키노 하쿠오는 섬유, 안경에 이어 정보기술(IT)을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젊은 IT 기업인들은 그에게 “시장님 블로그부터 만드세요. 휴대전화 기종을 바꾸세요”라고 권했다. 마키노 시장이 개설한 블로그에 도쿄에 사는 다케베 미키가 접촉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한 콘테스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마키노 시장과 다케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차 일본을 짊어질 진정한 지도자로 성장하겠다면 일본이 안고 있는 난제인 지역 활성화에 도전해 보지 않겠습니까”라는 시장 공개 모집 광고를 냈다. 도쿄대, 교토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등 전국에서 청년들이 사바에시로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24명의 시장이 선발됐다. 대성공이었다. 사바에시와 전혀 인연이 없는 학생 시장들이 지역 발전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냈고 마키노 시장은 이를 정책으로 채택했다. ●비결3:후쿠이만의 자발 교육과 여성 인센티브 저자는 후쿠이현의 직장 환경은 육아에 맞춤형이라고 말한다. 가구당 월평균 수입은 63만 6000엔으로 도쿄를 제치고 전국 1위이며, 여성 1인당 1.61명을 낳고 있다. 나쁘지 않은 출산율이다. 이 모든 게 맞벌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후쿠이는 여성들이 사업을 하면 공공사업 입찰 우선권을 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이를 ‘호쿠리쿠 지역의 맞벌이를 통한 가치창조 모델’이라 부른다. 후쿠이현은 문부과학성이 해마다 실시하는 전국학력평가에서 1·2위를 다툰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 비율은 오히려 전국 평균보다 낮다. 후쿠이의 학교들은 ‘10년 앞을 내다본 수업’을 모토로 한다. 시험 점수가 아닌 사고 능력을 묻는 자체 학력시험을 치른다. 후쿠이의 학교들은 종합적 사고 능력을 중시한다. 저자는 “오랜 기간 빈곤과 실패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믿을 것은 사람밖에 없었던 마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지혜로워질 수밖에 없던 후쿠이는 지금 일본을 넘어 세계가 연구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 모델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힘겨웠던 경험은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며, 이 점에서 한국 사람들이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어떻게 이겨 낼지 응원하고 싶다”고 썼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지카, 성인 뇌에도 치명적… 학습·기억력 떨어뜨린다

    태아에게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바이러스가 성인의 뇌에도 치명적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스템셀’ 18일자에 지카바이러스는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는 뇌세포를 급속히 파괴하고 복구 속도를 늦춘다는 연구가 실렸다. 이 연구에는 미국 록펠러대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 라호야 알레르기·면역학 연구소, 샌퍼드버넘 의학연구소, UC샌디에이고 아동병원 유전자연구소의 연구진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태아에게서 소두증이 나타나고, 성인에게는 발열, 두통 같은 증상이나 급성 마비성 질환인 ‘길랭바레 증후군’ 정도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아에게 소두증이 나타나는 이유는 지카바이러스가 뇌 신경세포(뉴런)를 만드는 줄기세포의 일종인 신경계 전구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태아의 뇌는 신경계 전구세포들로 채워져 있어 지카바이러스의 영향이 치명적이다. 성인의 뇌는 거의 성장을 마쳐 신경계 전구세포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학습과 기억, 인지 기능에 관여하는 전뇌의 뇌실하영역과 해마의 과립하영역에 남아 있는 신경계 전구세포가 공격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이 인간 뇌 속 신경계 전구세포 분포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성인 쥐를 지카바이러스에 감염시킨 결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며칠 만에 전뇌와 해마에 있는 신경계 전구세포가 급속히 감소했다. 더불어 재생과 회복도 더뎠다. 연구진은 쥐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성인의 뇌세포 손상이 장기적인 신경계 손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에 착수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사설] 공직사회 ‘복지부동’ 풍조 경종 울려야

    정부 각 부처를 비롯한 공직사회에 ‘복지부동’ 풍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미세먼지, 전기료 누진제 등 정부가 내놓는 각종 대책마다 절박한 민심과는 겉도는 결과를 낳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게 그 징후다. 심지어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라는 유행어가 관료사회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라니 말이다. 어제자 본지 기획 보도에서 분석된 바처럼 정권 4년차부터 ‘3년 일하고 2년 쉰다’는 식의 공직사회의 잘못된 DNA(유전자)가 발현된 것이라면 문제는 사뭇 심각하다. 공직자들도 각성해야겠지만, 임기 말을 향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도 공직 기강을 다잡을 처방을 내놓을 때다. 4월 총선 이후 각 부처가 내놓은 정책 중 제대로 정곡을 찌르지 못하거나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수입 자동차 연비 조작과 미세먼지 대책, 가정용 전기 누진제 개선책 등이 그런 사례였다. 야당의 입김이 거센 해운·조선사업 구조조정 대책이 지지부진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여타 사안은 딱히 ‘여소야대’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특히 가정용 전기료 파문은 관료들의 무사안일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서민들은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에어컨을 하루 4시간만 켜면 된다”는 관료들의 한가한 소리가 가당키나 했겠나. 그러다 박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당일 허둥지둥 개선안을 내놨으니 믿을 만한 근본 대책이 나올 리도 만무했다. 정책 난맥상이 되풀이될 토양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면 더 큰 문제다. 가뜩이나 주요 부처의 세종시 이전으로 공무원과 민원인 간 소통이 단절되고 있는 형편이다. 공무원들이 민생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는 듣지 않고 청와대가 한마디 하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시늉만 한다면? 그런 ‘땜질 행정’의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임기가 1년 반 남은 지금 공직자들이 벌써 차기 정권의 향방에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면 안 될 말이다. 역대 정권의 임기 말이 그랬다고 해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당연시될 수 없다면 정책 추진력의 회복도 현 정부의 책임이다. 엄정한 직무 감찰과 신상필벌이 필요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성과를 낸 공무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해야겠지만, ‘설거지하다 접시를 깨는’ 식의 행정 과실을 함부로 징치해선 곤란하다. 공직자들이 소신을 갖고 ‘위민(爲民) 정책’을 생산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본다.
  • [세종로의 아침] ‘필부의 복수’와 ‘시정잡배의 복수’ /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필부의 복수’와 ‘시정잡배의 복수’ /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원나라 때 기군상(紀君祥)이 쓴 희곡 ‘조씨고아’(趙氏孤兒)는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스테디셀러다. ‘복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 희곡은 2013년 개봉된 영화 ‘천하영웅’과 TV 드라마 ‘조씨고아’, 지난해 국내 연극상을 휩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2500여년 전인 춘추시대 진(晋)나라 때 간신 도안고(屠岸賈)와 현신 조순(趙盾)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도안고는 권력을 오로지하기 위해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던 정적 조순을 모함해 그와 가문을 멸족했다. 이때 태어난 그의 손자 조무(趙武)의 존재를 알게 된 도안고는 그마저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조씨 집안의 식객 떠돌이 의원 정영(程?)이 친아들을 희생시키고 천신만고 끝에 조무를 구해 낸다. 다 자라 멸문의 진상을 알게 된 조무는 마침내 도안고를 죽여 집안의 원수를 갚는다.’ ‘좌전’ ‘국어’ ‘사기’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에 허구를 적당히 뒤섞어 사실인 양 버무려 놓은 작품이다. 중국처럼 복수가 일상화한 나라도 없다. 중국인을 사로잡고 있는 진융(金庸)의 ‘소오강호’와 ‘의천도룡기’, 하이옌(海宴)의 ‘랑야방’ 등 무협소설은 강호의 은원을 중심으로 복수의 혼을 불어넣는다. 이를 소재로 반복 리메이크해 드라마로 연일 쏟아내는 TV 채널은 복수의 칼을 벼리게 한다. ‘역사책의 전범’으로 불리는 사기마저 정당성 여부를 떠나 자신을 총애하는 사람을 위해,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남의 부탁으로 복수에 나서는 ‘필부의 의(義)’를 보여 주는 5명의 자객을 영웅으로 묘사해 복수의 길로 인도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 ‘도광양회’(韜光養晦), ‘굴묘편시’(掘墓鞭尸), ‘이혈세혈’(以血洗血), ‘칠신탄탄’(漆身?炭)의 고사성어는 복수를 지선(至善)으로 미혹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는 성어를 널리 전파한 사마천은 이를 통해 ‘군자는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리더라도 꼭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해 복수의 화신으로 이끈다. 현대 중국인들도 걸핏하면 복수의 칼을 뽑아 든다. 힘센 미국에 대해서는 비위가 상하더라도 으름장만 놓고 끝내지만 만만한 상대에게는 가차 없이 실력을 행사했다. 2000년 중국 마늘에 관세를 올린 데 대해 한국산 핸드폰을, 2010년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해에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한 데 대해 희토류를,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노르웨이에 대해 연어 수입을 금지해 항복을 받아 냈다. 사드 배치에는 관영 언론들을 앞세워 ‘한국 때리기’에 골몰하고 비관세 장벽을 동원해 무역 보복에 나서는 것도 모자라 한국 배우의 팬 사인회를 취소하고 구멍가게 오퍼상에게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괴롭히는 쪼잔한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래도 ‘의’를 앞세운 필부들의 복수라고 봐줄 만하지만, 오늘날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상부터 걷어차 버리는 시정잡배의 복수를 남발하는 탓에 눈 뜨고 보기가 역겨워진다. 중국이 이런 치졸한 행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 곧 중화민족의 부흥은 한낱 꿈일 뿐이다.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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