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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플러스]우리당 유선호 전의원 공천취소

    열린우리당은 23일 ‘경기 안산 단원을’ 후보로 공천했던 유선호 전 의원에 대해 후보자격을 취소하고 새로 후보를 정하기로 했다.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유 전 의원은 경기 군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데 반발해 탈당했다가 탄핵안 가결 직후 복당,안산 단원을 지역 공천을 받았다가 그 지역 예비후보자들의 반발을 샀다.˝
  • 여야 탄핵 내분 총선 전략 비상

    ‘탄핵소추 철회 설문조사 소동,비상지도부 구성 요구,공천 뒤집기 및 탈당·공천 반납‘.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후 야당측이 강력한 역풍(逆風)을 맞은 데 이어 각 정당에 2차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탄핵정국’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에서조차 공천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4·15총선이 채 한달도 남지 않았으나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각 당 모두 기본 총선전략을 전면 재수정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한나라당에서는 17일 소장파를 중심으로 ‘탄핵소추 철회 연판장’이 돌 조짐을 보이다가 지도부의 강력한 제재로 주춤해졌다.안상수(경기 과천·의왕) 의원은 이날 노 대통령 사과를 전제로 탄핵소추안 철회를 주장했다.그는 당 공천자들에게 탄핵 철회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설문지를 돌렸고 일부 공천자들은 이에 동조했다.그러나 영남권을 중심으로 당내 전반적인 기류는 냉담했고 결국 지도부 경고로 설문조사는 중단됐다.민주당은 강현욱 전북지사,박태영 전남지사 등 호남권 단체장들의 잇따른 탈당에다 조성준 의원과 이용범 춘천시 후보의 탈당 및 공천 반납 등으로 혼미한 상황이다.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압도적 총선승리를 목표로 한 열린우리당은 민생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그러나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 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심상치 않다. 인천 중·동·옹진군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됐던 한광원 후보가 다시 공천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안산 단원을의 경우,유선호 전 의원이 공천에 반발해 탈당하면서 제종길 후보로 선정됐는데,유 전 의원이 복당하면서 다시 유 후보로 정해졌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뉴스플러스] 우리당 정대철의원 장남 공천

    열린우리당은 15일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구속 중인 정대철 의원 아들인 호준씨를 서울 중구 후보로 정했다. 당 공천에 반발,탈당했다가 지난 13일 복당한 유선호 전 의원은 경기 안산단원을 후보로 결정됐다.이밖에 경기 광명을에 양기대 전 동아일보 기자,서울 성동갑에 최재천 변호사,경북 김천에 배태호 한국감정원 노조위원장을 각각 후보로 정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2)대원위대감의 생각 (上)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高宗,1852∼1919)의 아버지 이하응(李昰應)을 두고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렀다. 그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쇠락한 왕권을 강화해 프랑스,독일,미국,일본,청나라,러시아등 19세기 세계 열강의 침략에 맞설 힘을 기르며 조선을 중흥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오늘은 그 대원위대감이 왜 그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결과는 어떻게 끝났는지,파란만장한 그의 생애 이면에 감춰진,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의 한 증거를 찾아서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로 간다. 예산(禮山)은 유서깊은 고장이다.백제시대에는 오산현(五山縣)이라 불렀는데 신라에 정복당한 뒤 고산(高山)으로 바뀌었으며,예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고려 태조2년의 일이었다. 왕건은 견훤이 다스리던 후백제를 정복한 뒤 이곳을 다스리려 했으나 민중은 왕건의 통치에 순응하지 않았다.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신라에 정복당한 뒤 100년이 넘도록 신라의 강권통치에 대를 물려 저항해왔던 백제유민들이기 때문에 백제가 망한 지 2세기가 지난 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백제 유민들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왕건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자긍심과 백제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정신의 힘때문이었다. 이 정신은 곧 현대사회에서도 충청·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즉 겉은 부드럽지만 안은 강철처럼 단단하고,문학과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지향하는 삶으로 드러나고 있다. 왕건은 이곳 사람들의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정복자로서의 권위나 자신감이 아닌,존경과 화해의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선물하고자 했다.충절과 예의의 고장임을 기리기 위해 예산이란 새 이름을 정하고 민중의 뜻을 물었다.이곳 사람들도 더는 거부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된 고려왕조에 동의해주었다. 그 후 대흥(大興)과 덕산(德山)을 합쳐 지금의 예산군이 된 것은 1914년부터다.오늘의 여행 목적지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상가리(象伽里)에는 대원위대감의 야망과,권력 장악을 위한 고뇌와 갈등,정치의 권모술수와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와 문화적 논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 증거들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다.그리고 역사를 향하여 그 사실들을 부정할 것이다.한국의 정치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과 책임회피 증후군으로 볼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어쩌랴,누구도 자신의 죄를 제 손으로 지울 수는 없으니. ●‘명당’ 가야사 품은 옥양봉, 기도처로 이름나 덕산 들녘에서 서북 방향을 바라보면 예산군과 서산군 경계 쯤에 산맥이 걸쳐 있다.가야산(伽倻山)이다.들길을 지나 상가리 쪽으로 다가서면 맞은편에 잘 생긴 산 하나가 보이고,오른쪽으로도 얌전한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맞은편 산은 옥양(玉陽)산이고,오른쪽 산은 서원(書院)산이다.두 산 모두 가야산이 거느리고 있는 줄기다. 해인사가 깃들어 있는 산도 가야산이라 부르는데,경상도와 충청도에 있는 가야산은 모두 같은 뜻을 지녔다.즉 가야(伽倻,迦倻)라는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 gaya를 음역하여 표기한 것인데,흰코끼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을 부다가야(Budhagaya)라고 부르는 것과 맥이 통하는 상징어다.이 가야산에는 일찍이 6세기 후반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북쪽 자락 해발 200m 가량의 능선 암벽에 새겨져 있기도 해서 온 산이 불교신앙의 성지처럼 숭배되어 왔다. 가야산 남쪽 기슭이 되는 옥양봉 아래에 가야사(伽耶寺)라는 절이 있었다.이곳에는 금탑(金塔)으로 부르는 철첨석탑(鐵尖石塔)이 있었고 탑 사면에는 석감(石龕)이 있어 각각 석불이 봉안되었을 만큼 빼어난 작품이었는데 백제 불교 미술의 정교함과 깊은 신앙심이 깃든 걸작이었다고 한다. 또한 가야사에는 예부터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우 흥미있는 풍수설이 전해져 왔다.가야사 대웅전 터에서 왕손(王孫)이 생겨나리라는 풍수지리설이었다.세간에서는 절을 허물어내고 그 자리에 묘를 쓰면 반드시 왕손을 낳게 된다는 풍수설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는 못하고,대신 훌륭한 자식을 점지해달라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옥양봉에 이르는 계곡은 펀펀하면서도 깊다.그래서 그런지 옥양봉 계곡에는 한때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찰들로 꽉 차서 절골이라고도 불렀을 만큼 승려들의 목탁소리와 범종소리,향 내음과 독경 소리가 일년 사철 끊이질 않았다.상가리(象伽里)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여졌던 것이다. ●구걸로 어린시절 연명한 ‘권력의 화신’ 이하응 이같은 솔깃하고 엄청난 비밀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풍수설을 은밀하게 새기면서 가야사 주변을 여러 해 동안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이하응이란 청년이었다.올때마다 동행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난 지관(地官)이었다.그는 옥양봉,서원산,가야산 정상 어느 한곳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고 돌아다녔다.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전혀 얼굴이 알려진 자도 아니었거니와 행색도 남루했고 늘 빈털터리였다. 이하응은 유아기에 아버지를 여읜 뒤 사고무친의 왕손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후기의 왕족이다.이름은 구(球),사도세자의 서자로서 정조(正祖)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서 남연군(南延君)에 봉해졌다.1771년(영조 47년) 양부 은신군이 정적의 모함으로 작위를 삭탈당한 뒤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변사하자 남연군도 불우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1821년 수릉관(守陵官)이란 말단직을 지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이하응은 남연군이 죽던 해에 겨우 세 살짜리 어린 아이였었다. 이하응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지독하게 불우했다.이름뿐인 왕족으로서 구걸,비웃음과 온갖 능멸로 양식을 삼았다.수모,고뇌,방랑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암울하고 억울한 세월 속에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을 불태웠다.집념의 핵심은 목숨을 건 타협과 거래였다. 긴 방랑생활 중에 이하응은 가야사의 풍수설을 알게 되었다.딱히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심심풀이 삼아 가야사와 가야산 일대를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풍수설의 내용을 음미해보았다.왕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가야사를 불태워버리는 일쯤은 얼마든지 감행할 자신이 있었다.수차례에 걸친 답사와 계획 끝에 결심을 굳혔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840년(헌종 6년) 마침내 목숨을 건 모험에 돌입했다.부랑배들을 이용하여 가야사에 기거하는 승려들을 밖으로 유인해 낸 다음 절에다 불을 질렀다.목조 건물은 한밤 중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 무렵 조선사회는 이하응의 행동과 같은 짓거리들이 크게 유행했다. ●남연군묘 이장뒤 얻은 둘째 명복이 훗날 고종 전국 곳곳의 사찰이 불타고,불탄 자리에 무덤을 짓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대표적인 예는 신라 선문9산의 하나인 경남 창원 봉림사,경기도 양주 회암사,전라도 흥덕 연기사,경남 산청 단속사를 비롯해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자리로 알려진 사찰들이 유생들에 의하여 불탔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이하응도 그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사 법당터에다 이장했다.누구도 이를 비난하거나 저지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해인 1841년 그는 흥선정(興宣正),1843년에는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다.1846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어 벼슬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남연군의 묘를 옮겨 쓴지 12년만인 1852년 이하응은 둘째아들을 보았고,그로부터 다시 11년 뒤인 1863년 둘째아들 명복(命福)이 조선 제 26대 국왕인 고종(高宗)이 되고,이하응은 마침내 대원위대감이 되어 모험에 찬 정치도박이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2)대원위대감의 생각 (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2)대원위대감의 생각 (上)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高宗,1852∼1919)의 아버지 이하응(李昰應)을 두고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렀다. 그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쇠락한 왕권을 강화해 프랑스,독일,미국,일본,청나라,러시아등 19세기 세계 열강의 침략에 맞설 힘을 기르며 조선을 중흥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오늘은 그 대원위대감이 왜 그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결과는 어떻게 끝났는지,파란만장한 그의 생애 이면에 감춰진,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의 한 증거를 찾아서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로 간다. 예산(禮山)은 유서깊은 고장이다.백제시대에는 오산현(五山縣)이라 불렀는데 신라에 정복당한 뒤 고산(高山)으로 바뀌었으며,예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고려 태조2년의 일이었다. 왕건은 견훤이 다스리던 후백제를 정복한 뒤 이곳을 다스리려 했으나 민중은 왕건의 통치에 순응하지 않았다.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신라에 정복당한 뒤 100년이 넘도록 신라의 강권통치에 대를 물려 저항해왔던 백제유민들이기 때문에 백제가 망한 지 2세기가 지난 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백제 유민들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왕건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자긍심과 백제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정신의 힘때문이었다. 이 정신은 곧 현대사회에서도 충청·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즉 겉은 부드럽지만 안은 강철처럼 단단하고,문학과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지향하는 삶으로 드러나고 있다. 왕건은 이곳 사람들의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정복자로서의 권위나 자신감이 아닌,존경과 화해의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선물하고자 했다.충절과 예의의 고장임을 기리기 위해 예산이란 새 이름을 정하고 민중의 뜻을 물었다.이곳 사람들도 더는 거부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된 고려왕조에 동의해주었다. 그 후 대흥(大興)과 덕산(德山)을 합쳐 지금의 예산군이 된 것은 1914년부터다.오늘의 여행 목적지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상가리(象伽里)에는 대원위대감의 야망과,권력 장악을 위한 고뇌와 갈등,정치의 권모술수와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와 문화적 논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 증거들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다.그리고 역사를 향하여 그 사실들을 부정할 것이다.한국의 정치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과 책임회피 증후군으로 볼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어쩌랴,누구도 자신의 죄를 제 손으로 지울 수는 없으니. ●‘명당’ 가야사 품은 옥양봉, 기도처로 이름나 덕산 들녘에서 서북 방향을 바라보면 예산군과 서산군 경계 쯤에 산맥이 걸쳐 있다.가야산(伽倻山)이다.들길을 지나 상가리 쪽으로 다가서면 맞은편에 잘 생긴 산 하나가 보이고,오른쪽으로도 얌전한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맞은편 산은 옥양(玉陽)산이고,오른쪽 산은 서원(書院)산이다.두 산 모두 가야산이 거느리고 있는 줄기다. 해인사가 깃들어 있는 산도 가야산이라 부르는데,경상도와 충청도에 있는 가야산은 모두 같은 뜻을 지녔다.즉 가야(伽倻,迦倻)라는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 gaya를 음역하여 표기한 것인데,흰코끼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을 부다가야(Budhagaya)라고 부르는 것과 맥이 통하는 상징어다.이 가야산에는 일찍이 6세기 후반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북쪽 자락 해발 200m 가량의 능선 암벽에 새겨져 있기도 해서 온 산이 불교신앙의 성지처럼 숭배되어 왔다. 가야산 남쪽 기슭이 되는 옥양봉 아래에 가야사(伽耶寺)라는 절이 있었다.이곳에는 금탑(金塔)으로 부르는 철첨석탑(鐵尖石塔)이 있었고 탑 사면에는 석감(石龕)이 있어 각각 석불이 봉안되었을 만큼 빼어난 작품이었는데 백제 불교 미술의 정교함과 깊은 신앙심이 깃든 걸작이었다고 한다. 또한 가야사에는 예부터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우 흥미있는 풍수설이 전해져 왔다.가야사 대웅전 터에서 왕손(王孫)이 생겨나리라는 풍수지리설이었다.세간에서는 절을 허물어내고 그 자리에 묘를 쓰면 반드시 왕손을 낳게 된다는 풍수설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는 못하고,대신 훌륭한 자식을 점지해달라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옥양봉에 이르는 계곡은 펀펀하면서도 깊다.그래서 그런지 옥양봉 계곡에는 한때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찰들로 꽉 차서 절골이라고도 불렀을 만큼 승려들의 목탁소리와 범종소리,향 내음과 독경 소리가 일년 사철 끊이질 않았다.상가리(象伽里)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여졌던 것이다. ●구걸로 어린시절 연명한 ‘권력의 화신’ 이하응 이같은 솔깃하고 엄청난 비밀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는 풍수설을 은밀하게 새기면서 가야사 주변을 여러 해 동안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이하응이란 청년이었다.올때마다 동행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난 지관(地官)이었다.그는 옥양봉,서원산,가야산 정상 어느 한곳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고 돌아다녔다.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전혀 얼굴이 알려진 자도 아니었거니와 행색도 남루했고 늘 빈털터리였다. 이하응은 유아기에 아버지를 여읜 뒤 사고무친의 왕손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후기의 왕족이다.이름은 구(球),사도세자의 서자로서 정조(正祖)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서 남연군(南延君)에 봉해졌다.1771년(영조 47년) 양부 은신군이 정적의 모함으로 작위를 삭탈당한 뒤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변사하자 남연군도 불우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1821년 수릉관(守陵官)이란 말단직을 지내다가 쓸쓸하게 죽었다.이하응은 남연군이 죽던 해에 겨우 세 살짜리 어린 아이였었다. 이하응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지독하게 불우했다.이름뿐인 왕족으로서 구걸,비웃음과 온갖 능멸로 양식을 삼았다.수모,고뇌,방랑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암울하고 억울한 세월 속에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권력을 향한 무서운 집념을 불태웠다.집념의 핵심은 목숨을 건 타협과 거래였다. 긴 방랑생활 중에 이하응은 가야사의 풍수설을 알게 되었다.딱히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심심풀이 삼아 가야사와 가야산 일대를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풍수설의 내용을 음미해보았다.왕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가야사를 불태워버리는 일쯤은 얼마든지 감행할 자신이 있었다.수차례에 걸친 답사와 계획 끝에 결심을 굳혔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840년(헌종 6년) 마침내 목숨을 건 모험에 돌입했다.부랑배들을 이용하여 가야사에 기거하는 승려들을 밖으로 유인해 낸 다음 절에다 불을 질렀다.목조 건물은 한밤 중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 무렵 조선사회는 이하응의 행동과 같은 짓거리들이 크게 유행했다. ●남연군묘 이장뒤 얻은 둘째 명복이 훗날 고종 전국 곳곳의 사찰이 불타고,불탄 자리에 무덤을 짓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대표적인 예는 신라 선문9산의 하나인 경남 창원 봉림사,경기도 양주 회암사,전라도 흥덕 연기사,경남 산청 단속사를 비롯해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자리로 알려진 사찰들이 유생들에 의하여 불탔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이하응도 그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사 법당터에다 이장했다.누구도 이를 비난하거나 저지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해인 1841년 그는 흥선정(興宣正),1843년에는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다.1846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어 벼슬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남연군의 묘를 옮겨 쓴지 12년만인 1852년 이하응은 둘째아들을 보았고,그로부터 다시 11년 뒤인 1863년 둘째아들 명복(命福)이 조선 제 26대 국왕인 고종(高宗)이 되고,이하응은 마침내 대원위대감이 되어 모험에 찬 정치도박이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0)오뉘탑의 비밀

    계룡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오뉘탑(남매탑) 답사에는 김경준(수원 영덕초등학교 5년)군 가족과 김문환(수원 청명고 2년)군 가족,성열 스님이 동행했다. 경준군의 아버지 김우섭씨는 대학 시절 이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오뉘탑의 얘기가 애절하게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국어 교사가 말씀하시기를 사랑에 대하여 뭔가 느껴보고 싶은 가슴을 지닌 이라면 함박눈 내리는 겨울날 계룡산 삼불봉 기슭에 있는 오뉘탑을 꼭 한 번 가봐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과서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려 국어책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남녀의 종교적 고뇌가 주제였는데,그 글을 쓴 사람은 함박눈이 꽃잎처럼 흩날리는 어느 겨울날 눈을 맞으며 오뉘탑에 이르는 산길을 오르면서 인간이 꿈꾸는 사랑은 항상 꿈으로나 그려질 뿐일까 독백했다고 한다. 동학사 들목에서 오른쪽으로 난 돌자갈길로 2km쯤 오르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섰는데 가파른 돌길인 데다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워서 어린이들은 힘겨워했다.이제 네 살 난 태경이는 어른들이 교대로 업거나 목마를 태워서 산길을 올랐다. 삼불봉 기슭에는 계명정사가 있고,그 곁의 옛 청량사 터에 오뉘탑으로 불리는 5층과 7층 석탑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엊그제 내린 눈이 바닥에 덮여 있고,날씨는 쾌청하여 두 석탑은 물로 씻은 듯 깨끗했다.수많은 등산객들이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도시락을 먹거나 다른 목적지로 서둘러 이동해 갈 뿐,어느 누구도 안내판에 적힌 오뉘탑의 전설을 읽고 의문점을 토론하거나 탑의 생김새를 천천히 살펴보는 사람은 안보인다. 경준군이 안내문을 읽어내렸다. 전설에 따르면 오뉘탑 부근의 작은 토굴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혼자 살았다.그는 백제의 왕족이었는데 뜻하는 바가 있어 출가하여 고독한 수행자로 살았다.어느 해 겨울밤이었다.토굴 밖에서 애절하게 우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 나와 보니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절규하고 있었는데,호랑이 입속을 들여다보니 목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그대로 두면 호랑이는 죽고 말 것이 분명했다.스님은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 입속으로 손을 밀어넣어 비녀를 뽑아주었다.호랑이는 스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밤이었다.토굴 밖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스님이 나가봤더니 토굴 밖에는 웬 낯선 젊은 여자가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호랑이가 은혜 갚기 위해 여인 물어와 호랑이가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 보답으로 젊은 여자를 물어다 놓고 사라진 것이었다.스님은 일단 여자를 토굴 안으로 안아들여 놓고 따뜻한 물을 떠먹여서 살려냈다. 한참 뒤 여자가 깨어났다.스님은 사정을 물었다.여자는 경상도 상주가 고향인데,그날 낮에 혼례를 치르고 저녁에 신방에 들려 하는데 그만 호랑이가 나타나 물려왔다는 것이었다.스님은 일단 토굴에서 밤을 보낸 뒤 날이 밝는 대로 데려다 주려고 했다.그런데 그날 밤부터 폭설이 퍼붓기 시작했다.계룡산은 눈더미에 파묻혀 모든 길이 막혀버렸다.하는 수 없이 눈이 녹고 길이 드러나는 내년 봄까지는 함께 지내는 도리 밖에 없었다. 비좁은 토굴 속에서 함께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스님은 밤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염불과 참선으로 가라앉히면서 아무 일 없이 겨울을 났다. 이듬해 봄이 되자 스님은 자신과의 약속대로 그 여자를 경북 상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 그 여자가 스님 혼자 사는 토굴로 되돌아 왔다.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다.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의남매를 맺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훌륭한 승려생활을 마치고 입적했다. 그들의 제자들이 두 사람의 종교적 삶을 기려서 나란히 탑을 세웠으니 이를 오뉘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른다. 이날 우리의 답사기행은 이같은 전설 속에 감춰진 비밀을 밝혀 보기 위한 것이었다.먼저 이 전설에는 몇 가지 흥미있는 비밀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첫째,하필이면 왜 호랑이가 백제 왕족이 수행하는 토굴에 경북 상주가 고향인 여자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경북 상주는 신라 영토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하기 전 삼국시대였다면 호랑이가 신라 여자를 물어다 백제 땅인 계룡산에다 갖다 둘 수는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백제 사람이 신라 땅인 경북 상주로 넘나들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백제가 신라에 정복된 뒤인 통일신라시대의 일로 상정해 볼 수 있다.신라에 멸망당한 백제의 왕족은 더 이상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혼정책 선전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 그런데 호랑이가 신라 땅인 경북 상주 출신 여자를 물어다 백제 왕족 출신 승려에게 데려다 주었다는 것은 어딘가 정치적인 냄새가 난다. 정복당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끈질기게 저항한 백제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통일신라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을 썼다.백제의 왕족과 지배계층들에게 신라의 벼슬을 주거나 혼인정책으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진력했다. 그같은 통혼정책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는 5층과 7층 석탑의 구조와 탑을 세우는 관습이 백제 신라가 각각 다른 점을 들 수 있다.원칙적으로 백제는 외탑 가람의 구조였다.익산 미륵사의 쌍탑가람은 매우 드문 일이다.그렇게 볼 때 오뉘탑은 쌍탑구조인데 이를 백제시대의 탑이라고 보는 데는 석연치 않은,구체적인 증거가 매우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즉 5층석탑은 백제 것으로 보지만 7층 석탑은 훨씬 뒤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왔다. 백제 탑의 특징은 첫째로 작은 석재를 많이 사용하여 마치 목조건물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다.둘째는 신라 탑처럼 높은 이중 받침대가 없이 낮은 받침대 위에 바로 탑신이 선다. 셋째,옥개석이 펀펀하고 넓으며 네 귀가 가볍게 위로 치솟았고,넷째로는 이층째부터는 첫층에 견주어 탑 몸의 폭과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같은 백제 탑의 특징으로 볼 때 5층석탑은 명백하게 백제 탑임이 입증된다.그러나 7층석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5층석탑과 7층석탑은 전혀 다른 양식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옥개석의 생김새다.5층 석탑의 옥개석은 두 장의 돌을 잇대어 얹은 데다 지극히 펀펀하고 네 귀퉁이도 아주 조금만 쳐들렸는데 비해 7층 석탑의 옥개석은 두꺼운 돌 하나로 만들었다.위로 올라갈수록 옥개석의 넓이를 정교한 비례로 줄여감으로써 솟구쳐 오르는 힘을 느끼게 한다.이같은 힘은 옥개석 네 귀퉁이의 쳐들림을 강조하여 더욱 생동감을 주는 점도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작은 석재를 많이 이용한 5층석탑과 굵은 돌 하나 씩을 사용한 7층석탑을 같은 백제시대 탑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거나 고의적으로 짜맞추려 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결국 오뉘탑 전설은 끈질기게 저항하는 백제 유민들을 통혼 정책 등으로 회유하기 위해 통일신라 정부가 계획적으로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때 7층 석탑까지 곁들였지만 백제 탑에 담겨 있어야 할 백제인의 마음을 탑에 불어 넣지는 못했던 것이다. 필자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있던 김우섭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같은 답사기행을 자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김문환군은 폭넓은 역사 공부를 위해서 유익했다며 힘들게 산길을 올라 온 보람을 느낀다면서 웃었다.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많은 비밀을 지녔고,그 비밀을 풀어가다 보면 새로운 삶의 지혜와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을 발견하게 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0)오뉘탑의 비밀

    계룡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오뉘탑(남매탑) 답사에는 김경준(수원 영덕초등학교 5년)군 가족과 김문환(수원 청명고 2년)군 가족,성열 스님이 동행했다. 경준군의 아버지 김우섭씨는 대학 시절 이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오뉘탑의 얘기가 애절하게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국어 교사가 말씀하시기를 사랑에 대하여 뭔가 느껴보고 싶은 가슴을 지닌 이라면 함박눈 내리는 겨울날 계룡산 삼불봉 기슭에 있는 오뉘탑을 꼭 한 번 가봐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과서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려 국어책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남녀의 종교적 고뇌가 주제였는데,그 글을 쓴 사람은 함박눈이 꽃잎처럼 흩날리는 어느 겨울날 눈을 맞으며 오뉘탑에 이르는 산길을 오르면서 인간이 꿈꾸는 사랑은 항상 꿈으로나 그려질 뿐일까 독백했다고 한다. 동학사 들목에서 오른쪽으로 난 돌자갈길로 2km쯤 오르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섰는데 가파른 돌길인 데다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워서 어린이들은 힘겨워했다.이제 네 살 난 태경이는 어른들이 교대로 업거나 목마를 태워서 산길을 올랐다. 삼불봉 기슭에는 계명정사가 있고,그 곁의 옛 청량사 터에 오뉘탑으로 불리는 5층과 7층 석탑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엊그제 내린 눈이 바닥에 덮여 있고,날씨는 쾌청하여 두 석탑은 물로 씻은 듯 깨끗했다.수많은 등산객들이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도시락을 먹거나 다른 목적지로 서둘러 이동해 갈 뿐,어느 누구도 안내판에 적힌 오뉘탑의 전설을 읽고 의문점을 토론하거나 탑의 생김새를 천천히 살펴보는 사람은 안보인다. 경준군이 안내문을 읽어내렸다. 전설에 따르면 오뉘탑 부근의 작은 토굴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혼자 살았다.그는 백제의 왕족이었는데 뜻하는 바가 있어 출가하여 고독한 수행자로 살았다.어느 해 겨울밤이었다.토굴 밖에서 애절하게 우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 나와 보니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절규하고 있었는데,호랑이 입속을 들여다보니 목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그대로 두면 호랑이는 죽고 말 것이 분명했다.스님은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 입속으로 손을 밀어넣어 비녀를 뽑아주었다.호랑이는 스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밤이었다.토굴 밖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스님이 나가봤더니 토굴 밖에는 웬 낯선 젊은 여자가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호랑이가 은혜 갚기 위해 여인 물어와 호랑이가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 보답으로 젊은 여자를 물어다 놓고 사라진 것이었다.스님은 일단 여자를 토굴 안으로 안아들여 놓고 따뜻한 물을 떠먹여서 살려냈다. 한참 뒤 여자가 깨어났다.스님은 사정을 물었다.여자는 경상도 상주가 고향인데,그날 낮에 혼례를 치르고 저녁에 신방에 들려 하는데 그만 호랑이가 나타나 물려왔다는 것이었다.스님은 일단 토굴에서 밤을 보낸 뒤 날이 밝는 대로 데려다 주려고 했다.그런데 그날 밤부터 폭설이 퍼붓기 시작했다.계룡산은 눈더미에 파묻혀 모든 길이 막혀버렸다.하는 수 없이 눈이 녹고 길이 드러나는 내년 봄까지는 함께 지내는 도리 밖에 없었다. 비좁은 토굴 속에서 함께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스님은 밤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염불과 참선으로 가라앉히면서 아무 일 없이 겨울을 났다. 이듬해 봄이 되자 스님은 자신과의 약속대로 그 여자를 경북 상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 그 여자가 스님 혼자 사는 토굴로 되돌아 왔다.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다.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의남매를 맺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훌륭한 승려생활을 마치고 입적했다. 그들의 제자들이 두 사람의 종교적 삶을 기려서 나란히 탑을 세웠으니 이를 오뉘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른다. 이날 우리의 답사기행은 이같은 전설 속에 감춰진 비밀을 밝혀 보기 위한 것이었다.먼저 이 전설에는 몇 가지 흥미있는 비밀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첫째,하필이면 왜 호랑이가 백제 왕족이 수행하는 토굴에 경북 상주가 고향인 여자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경북 상주는 신라 영토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하기 전 삼국시대였다면 호랑이가 신라 여자를 물어다 백제 땅인 계룡산에다 갖다 둘 수는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백제 사람이 신라 땅인 경북 상주로 넘나들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백제가 신라에 정복된 뒤인 통일신라시대의 일로 상정해 볼 수 있다.신라에 멸망당한 백제의 왕족은 더 이상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혼정책 선전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 그런데 호랑이가 신라 땅인 경북 상주 출신 여자를 물어다 백제 왕족 출신 승려에게 데려다 주었다는 것은 어딘가 정치적인 냄새가 난다. 정복당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끈질기게 저항한 백제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통일신라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을 썼다.백제의 왕족과 지배계층들에게 신라의 벼슬을 주거나 혼인정책으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진력했다. 그같은 통혼정책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는 5층과 7층 석탑의 구조와 탑을 세우는 관습이 백제 신라가 각각 다른 점을 들 수 있다.원칙적으로 백제는 외탑 가람의 구조였다.익산 미륵사의 쌍탑가람은 매우 드문 일이다.그렇게 볼 때 오뉘탑은 쌍탑구조인데 이를 백제시대의 탑이라고 보는 데는 석연치 않은,구체적인 증거가 매우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즉 5층석탑은 백제 것으로 보지만 7층 석탑은 훨씬 뒤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왔다. 백제 탑의 특징은 첫째로 작은 석재를 많이 사용하여 마치 목조건물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다.둘째는 신라 탑처럼 높은 이중 받침대가 없이 낮은 받침대 위에 바로 탑신이 선다. 셋째,옥개석이 펀펀하고 넓으며 네 귀가 가볍게 위로 치솟았고,넷째로는 이층째부터는 첫층에 견주어 탑 몸의 폭과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같은 백제 탑의 특징으로 볼 때 5층석탑은 명백하게 백제 탑임이 입증된다.그러나 7층석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5층석탑과 7층석탑은 전혀 다른 양식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옥개석의 생김새다.5층 석탑의 옥개석은 두 장의 돌을 잇대어 얹은 데다 지극히 펀펀하고 네 귀퉁이도 아주 조금만 쳐들렸는데 비해 7층 석탑의 옥개석은 두꺼운 돌 하나로 만들었다.위로 올라갈수록 옥개석의 넓이를 정교한 비례로 줄여감으로써 솟구쳐 오르는 힘을 느끼게 한다.이같은 힘은 옥개석 네 귀퉁이의 쳐들림을 강조하여 더욱 생동감을 주는 점도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작은 석재를 많이 이용한 5층석탑과 굵은 돌 하나 씩을 사용한 7층석탑을 같은 백제시대 탑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거나 고의적으로 짜맞추려 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결국 오뉘탑 전설은 끈질기게 저항하는 백제 유민들을 통혼 정책 등으로 회유하기 위해 통일신라 정부가 계획적으로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때 7층 석탑까지 곁들였지만 백제 탑에 담겨 있어야 할 백제인의 마음을 탑에 불어 넣지는 못했던 것이다. 필자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있던 김우섭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같은 답사기행을 자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김문환군은 폭넓은 역사 공부를 위해서 유익했다며 힘들게 산길을 올라 온 보람을 느낀다면서 웃었다.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많은 비밀을 지녔고,그 비밀을 풀어가다 보면 새로운 삶의 지혜와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을 발견하게 된다.
  • 박근혜 대표경선 불출마 시사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7일 새 대표 경선 여부와 관련,“최근 당내에서 있지도 않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도는 등 경선전이 볼썽사나운 권력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불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 의원은 이날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만신창이가 된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진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대표도 뽑고 전당대회도 하는 것 아니냐.”며 “환골탈태를 위해 모두가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남을 헐뜯는 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환멸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새 대표를 뽑는다고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든다.”며 “2∼3일 더 고심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의 불출마 배경에는 당내 일각에서 “박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당 지도부로부터 거액의 ‘복당(復黨)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떠돈게 주요인으로 꼽힌다.박 의원측은 일부 중진들이 박 의원의 대표 당선을 막기 위해 근거도 없는 소문을 집요하게 흘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
  • 檢·한나라 시소게임? 野 전면전 엄포에 ‘출구조사’ 철회

    4·15총선을 40여일 남겨 두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야당과의 시소게임 속에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일선 지구당에 지급된 불법대선자금의 ‘출구조사’를 공언했던 검찰 방침이 야당의 반발 강도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인상이다.‘지나친 눈치보기’라는 지적과 함께 “검찰이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검찰은 지난 1일만 해도 중앙당에서 1억원 이상을 받은 지구당을 선별,서면조사 정도는 고려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대검 관계자는 “1억원 정도면 큰 돈인데 그 많은 불법자금을 어디에 썼는지 정도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소명방식은)한나라당 전용학 의원의 사례(해명서 제출)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기류는 오래가지 못했다.2일 오전 한나라당이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급선회했다. 최병렬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검찰이 출구조사 범위를 1억원으로 정한 것은 법의 정의를 포기한 것으로,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번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면서 “어떤 형태의 검찰 조사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며 국회를 소집,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홍사덕 총무는 3월 임시국회 소집 방침과 함께 송광수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 추진의 뜻도 내비쳤다.총선 자체를 보이콧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안대희 중수부장은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격앙된 모습을 보이던 오후 2시30분 돌연 브리핑을 갖고 “출구조사를 총선 뒤로 미룰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검찰 관계자는 “수사 유보일 뿐 종결은 아니며,불법사용도 조사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둘러댔다. 검찰은 민주당 한화갑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방침도 보류했다.서울지검 특수2부는 오후 5시쯤 브리핑을 통해 “한 의원에 대한 구속 방침을 보류하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에 대한 고발사건과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서울지검 관계자는 “지난 1월말 한 의원에 대한 영장이 청구된 뒤 경선자금과 관련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바 있고,정 의장 등도 경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고발돼 수사 중인 만큼 그 사건과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검찰이 한 의원을 구속하려 하자 편파수사를 주장하며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을 고발했다.민주당은 이날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문제삼아 노 대통령 탄핵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는 등 대여(對與) 공세의 강도를 한껏 높였다. 지난해 대선자금 수사 착수 이후 줄곧 성역없는 엄정수사를 표방해 온 검찰이 돌연 태도를 바꾼 데 대해 주변에서는 ▲정치권과의 충돌을 피하고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정쟁의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검찰 스스로도 “출구조사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에 휘말릴 수 있어 총선 뒤로 미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최근 행적을 되짚어보면 불필요한 정쟁을 피하겠다는 뜻 외에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수사의 방향과 완급을 조절하고 있는 듯하다.한나라당 입당 의원들이 중앙당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이적료’로 성격 규정하며 소환조사를 검토하다 뒤로 미룬 것이나 박근혜 의원이 받은 2억원을 복당(復黨) 대가인 것처럼 흘린 점 등이 검찰 수사의 정치색을 말해 준다는 지적이다.야당 일각에서는 검찰의 태도 변화를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경선자금 수사를 총선 뒤로 미루려는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박대출 구혜영기자 dcpark@˝
  • 삼성 이학수씨 26일 전격 귀국

    한달여 해외에 머물며 검찰 수사에 불응해 온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이 26일 전격 귀국한다.이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기업에 대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급진전할 전망이다.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安大熙)는 25일 “지난달 중순 미국으로 출국했던 삼성 이 부회장이 26일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면서 “조만간 소환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지난 대선때 삼성이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 대선자금 규모 및 이건희 삼성회장의 관여 여부 등을 집중조사할 방침이다.검찰은 또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 기업들로부터 받은 불법자금 중 410억원을 전국 시·도지부와 지구당에 지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민주당은 불법자금 20억원과 불법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자금 22억 5000만원 등 비공식자금 42억 5000만원을 시·도지부와 지구당에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대선 때 16개 시·도지부에 50억원,227개 지구당에는 360억원의 불법자금을 각각 지원했다.전국의 지구당을 열세·경합·전략 지구당으로 구분,광주·호남지역 등 열세지역에는 7000여만원을,수도권·충청·강원·경북 등 경합지역에는 1억 5000만원∼1억 8000만원을,부산·경남 등 전략지역에는 1억 8000만원∼2억원을 제공했다. 노무현 후보 캠프의 경우는 16개 시·도지부에 17억 6200만원이,227개 지구당에는 24억 9000만원이 각각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다음달 1일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원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하기로 했다.김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서해종건으로부터 1억 5000여만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한나라당 탈당후 한국미래연합 대표를 지낸 박근혜 의원도 대선 직전 한나라당과의 합당 형식으로 복당하면서 유세 활동비로 한나라당측으로부터 2억원대 자금을 수수한 단서가 포착됐다.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박 의원이 복당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소환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충식 구혜영기자 chungsik@ ˝
  • 민주, 한화갑등 14명 추가 공천

    민주당은 24일 경선자금 수사로 옥중 출마가 예상되는 한화갑 전 대표를 원래 지역구인 전남 무안·신안의 총선후보로 공천하는 등 14개 지역 후보를 추가로 확정했다.또 김경재 상임중앙위원을 조순형 대표의 대구 출마로 공석이 된 서울 강북을에,복당한 김민석 전 의원을 영등포갑에 공천했다.영등포을에는 박금자(비례대표) 의원을,강동갑에는 양관수 고려대 겸임교수가 단수후보로 선정됐다. 강운태 사무총장은 “한 전 대표가 수도권 출마를 결심했으나,검찰이 경선자금을 문제삼아 한 전 대표를 구속시키려 하는 등 탄압이 시작돼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출마는 맞지 않다고 보고 다시 무안·신안에서 유권자의 신임을 받도록 당에서 결정했고,한 전 대표가 수용했다.”고 설명했으나 약속번복 논란이 일고 있다. 이밖의 공천 확정자는 다음과 같다.▲인천 남동갑 백종길,서·강화을 김철하 ▲경기 의정부갑(분구예상) 홍남용,의정부을 김병갑,동두천·양주 이성수 ▲강원 강릉시 선복기 ▲충북 제천·단양 조두형 ▲경북 포항북 신원수,문경·예천 함대명˝
  • 이한동 자민련 복당

    ‘한나라당 탈당,자민련 입당,자민련 제명,하나로국민연합 창당,국민연합 해산,자민련 복당….’ 이한동 전 하나로국민연합 대표가 19일 자민련에 복당했다.2001년 9월 ‘제명’당한 지 2년 5개월여 만의 일이다.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자민련 당사 5층 총재실은 오래간만에 붐볐다.김종필(JP) 총재는 물론,이인제 의원,김학원 원내총무 등이 모여 복당을 환영했다. 이 의원은 복당 소감으로 “앞으로 총재님을 모시고 자민련이 추구하고 총재님이 추구해온 이념을 구현하는데 백의종군 노력하겠다.”면서 “제 불찰로 심려를 끼친 것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사임촉구로 촉발된 DJP 공조 와해과정에서 JP의 당 복귀 명령을 거부하고 복귀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던지 그는 이날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두 손을 모은 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이택석 전 의원도 자민련에 입당했다.이의원은 4월 총선에서 경기 연천·포천에,이 전 의원은 경기 고양 일산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앞서 이 의원은 16일 선관위에 하나로국민연합 해산신고서를 제출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목포와 이별한 김홍일

    민주당 김홍일 의원이 17일 전남 목포 불출마를 선언했다.그는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깊은 고민 끝에 지역구인 목포에서 불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이어 “지역구 후보 선정과정에 일절 간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구를 떠나지만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민주당과 목포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내 공천 물갈이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20일 전격 탈당했다가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12일 만에 복당했었다.그 뒤로 자신을 둘러싼 공천 논란이 잠잠해졌으나 최근 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자 호남 물갈이 차원에서 지역구 불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목포는 부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로 지난 40년간 DJ정치의 본산이 돼 왔다.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13,14대 총선에서 당선됐고,15,16대 국회에서는 김 의원이 대를 이어왔다.그의 불출마로 김 전 대통령 부자와의 연(緣)도 막을 거두게 된 셈이다. 김 의원은 최근 측근에게 “이제 목포시민들을 자유롭게 해 줄 때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영식 전 행자부차관과 김유배 전 복지노동수석,최기동 전 목포시의회의장,이광래 전 전남도의원,이상열 변호사,양지문씨,홍승태 민주당 미디어지원단장 민주당 예비후보 7명과 열린우리당의 김대중 전 시의회의장,한나라당 배종덕 지구당위원장 등이 김 의원의 빈 자리를 노리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
  • '공천반대’ 66명 발표 파문

    시민사회단체들이 16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4·15’총선 낙천 리스트를 발표,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28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04 총선시민연대’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6명의 1차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했다.이는 4년 전인 2000년 때와 같은 규모다.정치신인 등 비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한 2차 명단은 오는 10일 발표된다. 이날 발표된 명단에는 한나라당 김용갑·정형근,민주당 박상천·한화갑,우리당 정대철·이상수 의원 등 각당의 중진들이 대거 포함됐다.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32명으로 가장 많았고,민주당 20명,열린우리당 7명,자민련 3명 순이었다.선수별로는 초선과 재선의원이 각각 19명씩이었고 3·4선이 각각 16명과 6명,5선 이상은 6명이었다.공천반대 사유로는 부패비리 연루가 23건으로 가장 많았고,경선 불복도 19건이나 됐다. 각당 중진 가운데 김용갑·정형근 의원은 잦은 색깔론 제기와 반인권 전력 등이,이상수·정대철·한화갑 의원 등은 부패비리 연루 등이 문제가 됐다.정몽준·이인제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 등은 경선 불복이 주요 사유로 꼽혔다.총선연대는 전·현직 의원 307명 가운데 불출마나 은퇴를 선언한 의원과 사망과 질병,피선거권 제한 등으로 불출마가 예상되는 의원 등 49명은 검토대상에서 제외했다. 총선연대는 대상자 선정을 위해 ▲부패·비리행위 ▲헌정파괴·반인권 전력 ▲경선 불복종과 반복적 당적 변경 등 반의회·반유권자 행위 ▲당선무효형 이상의 선거법 위반행위 등을 4가지를 우선기준으로 삼고,▲개혁법안과 정책에 대한 태도 ▲도덕성 및 자질 등 2가지 기준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다음은 66명의 명단 1.강성구 (한나라당,경기도 오산시·화성시,16대) 의원 2002년 11월1일 새천년민주당 탈당,2002년 11월20일 한나라당 입당. 2.김기춘 (한나라당,경상남도 거제시,2선,15·16대) 의원, 유신 헌법 제정 당시 법무부 법무과장으로,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 등 유신헌법 핵심조항의 조문이 담긴 초안 작성. 1989년 서경원 밀입북사건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수사라인의 최종책임자인데 2001년 재수사시 환전표 등 일부 물증과 진술을 누락한 사실이 드러남. 92년 12월 14대 대통령 선거시 초원복집사건,부산지역기관장들의 비밀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이번에 안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법사위원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의 국내 금융거래거래계좌추적권 삭제,정치자금범죄의 선관위 통보조항 신설 등 돈세탁방지법 개악안에 찬성 표결. 3.김덕배 (열린우리당,경기도 고양시일산구을,16대) 의원 새천년민주당 탈당(02.11.4)했다가 복당(02.11.26) 4.김만제 (한나라당,대구 수성구갑,16대) 의원 포철회장 재직 당시 업무상 횡령으로 벌금 3000만원 선고. 국가보위 입법회의 경제제2위원회 위원. 2002년 1월,TK구심점론 역설.“당권 대권 분리를 약속하지 않으면 TK표를 줄 수 없다.” 2001년 7월27일 광주시국강연회에서 “DJ 가신 중 몇몇은 목포 앞바다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5.김명섭 (열린우리당,서울 영등포구갑,3선,,13·15·16대) 의원 1998년 5월4일 한나라당 탈당,98년 5월7일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소명 “오만에 빠진 제 1당의 정국운영 행태를 비판하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정국안정이 필요한 때 과감히 소신을 실천” 새천년민주당 탈당(02.11.1)했다가 복당(02.11.26). 6.김무성 (한나라당,부산 남구,15·16대)의원 96년 5월,㈜서울TRS 이인혁 회장으로부터 수도권지역사업자로 선정되게 이석채 정통부장관에게 청탁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해 7월 말 현금 2000만원을 받아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 판결. 2000년 2월29일 4·13 총선에서 경쟁후보인 새천년민주당 송정섭 후보에게 현금 500만원이 담긴 돈봉투를 건넨 혐의로 기소기부행위로 유죄가 인정돼 1심에서 벌금 80만원,항소기각 확정. 2002년 7월12일 장상 총리서리 지명 당시 “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게 될텐데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03.3.1 여성연합은 김 의원을 여성권익 걸림돌로 선정) 96년 국회재산등록시 불성실 신고(부친명의 토지 7필지 미신고)로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 및 시정조치. 7.김민석 (새천년민주당,서울 영등포구을,15·16대) 전 의원 2002년 10월17일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통합21에 입당.2004년 새천년민주당 복당. 8.김방림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6대) 의원 알선수재(특경가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 유죄. 9.김영일 (한나라당,경상남도 김해시,14·15·16대) 의원 불법대선자금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 법안 대표발의 0건.출석률 81.19%,무단결석율 15.35%(26위,202회 중 31회 결석) 10.김용갑 (한나라당,경상남도 밀양시 창녕군,15·16대) 의원 2002년 10월11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노무현 정권은 조선노동당 2중대 1소대 정권이 될 것”,노무현 민주당 후보에 대해 “반미친북 세력이어서 김정일 입맛에 꼭 맞는다”면서 “조선 노동당 후보인지 대한민국 여당의 후보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색깔론 발언(16대 국회 제234회 제10차 본회의 속기록 중),2001년 3월16일에는 새로 임명된 한완상 부총리에 대해 김용갑 의원이 대표로 있는 ‘바른통일과튼튼한안보를생각하는국회의원모임’에서 “‘창발성’이라는 북한 용어를 쓰는 것만 봐도 친북·좌파적 편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내용의 성명. 11.김용균 (한나라당,경상남도 산청군·합천군,16대) 의원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 법제사법분과 위원,국가보위 입법회의 법사위전문위원 2002년 6월24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의원의 선거법 위반 재판의 경우 1심은 호남출신,2심은 충청출신 법관들이 재판을 진행했다.”고 발언. 게리멘더링 법안 대표발의.돈세탁방지법 무력화. 12.김원길 (한나라당,서울 강북구갑,14·15·16대) 의원 2002년 4월 하이테크 하우징 박 회장으로부터 6억원을 수수하여 민주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 직전 한화갑 의원 캠프에 전달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2002년 11월4일 새천년민주당 탈당,2002년 11월26일 한나라당 입당. 13.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비례대표,9선,6·7·8·9·10·13·14·15·16대) 의원 5·16 군사쿠데타 주도.중앙정보부 창설,초대 중앙정보부장. 80년 당시 부정축재 혐의로 축재재산 총 213억 4998만원 헌납 몰수.공화당 창당을 위한 4대의혹사건(새나라 자동차사건,워커힐 사건,증권파동사건,빠찡코 사건) 주역. 2002년 1월15일 유성에서 열린 자민련 대선 출정식에서 “영남은 단결돼 지난 총선때 단 한석도 내주지 않았고 호남도 마찬가지였지만 충청도는 마음이 좋아 여기 조금,저기 조금 나눠주다 보니 분열됐다.”면서 “또 그럴거냐.”고 연설.자민련 지지세력에 대해 “그들은 준동하는 좌익세력을 타파할 중심세력임을 믿는다.”고 평가하는 등 연설에서 ‘좌익세력의 준동’을 세차례 언급. 법안발의 0건.출석률 54.46%,무단결석률 20.79%(6위,202회 중 42회 결석) 14.김택기 (열린우리당,강원도 태백시.정선군,16대) 의원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당시 한국자동차보험 사장으로 노동위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직접 지시,구속 기소돼 94년 4월19일 서울지법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위반및 뇌물공여 의사표시죄 등이 적용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15.김학원 (자유민주연합,충청남도 부여군,15·16대) 의원 97년 11월2일 신한국당 탈당해 97년 11월7일 국민신당 입당,이후 98년 9월1일 자민련 입당. 돈세탁방지법 무력화,법사위원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의 국내 금융거래거래계좌추적권 삭제,정치자금범죄의 선관위 통보조항 신설 등 돈세탁방지법 개악안에 찬성 표결. 16.김호일 (한나라당,경남 마산시 합포구,14·15·16대) 의원 16대 총선에서 배우자가 유권자들에게 수천만원(1700여만원)의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기소.1심 징역 1년.2심 징역 10월 선고,상고기각 확정(02.2.21),당선무효. 지역감정 조장발언,“한일합섬 공장이 목포나 광주에 있었으면 문을 닫았겠느냐.”면서 “삼성은 의령이 고향인 이병철씨가 엘지는 진주 구씨가 세운 기업”이라면서 “어떻게 골라도 이렇게 경남기업만 죽일 수 있느냐.”(99.1.24 한나라당 마산집회) 17.박명환 (한나라당,서울 마포구갑,14·15·16대) 의원 세무관련 청탁으로 금품수수,구속.2002년 10월25일,㈜창윤 대표이사로부터 탈세혐의 특별세무조사에 대해 국세청 담당공무원에 대한 청탁과 선처를 부탁받고,자신과 보좌관이 각각 청탁을 해 사례금으로 1000만원을 받고 위 회사에 대해 추징세액이 결정된 뒤 5000만원을 받는 등 총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18.박병윤 (새천년민주당,경기도 시흥시,16대) 의원 불법 대선자금 수수 ,2002년 대선과정에서 금호로부터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수수.본인은 이를 한화갑을 통해 이상수에게 전달했다고 주장.당시 금호는 법인 후원금 한도를 이미 초과. 회계책임자가 직무개시전에 선거운동자금 1억여원을 통장에 미리 입금한 혐의로 기소.1심에서 선고유예(벌금 70만원),항소심에서 확정(02.06.24). 19.박상규 (한나라당,인천 부평구갑,15·16대)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2002년 3∼4월 하이테크하우징에서 4000만원,2002년 9∼10월 대우건설에서 2억원 등 총 2억4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본인은 언론을 통해 영수증처리를 못해준 것은 총선 때 이미 한도금액을 다 썼기 때문,4000만원은 후단협 활동에 썼고 2억원은 당에 전달,대우건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시기는 2001년 9월이라고 주장. 경선불복,2002년 11월4일 새천년민주당 탈당,후보단일화 직후 2002년 11월26일 한나라당 입당. 20.박상천 (새천년민주당,전라남도 고흥군,13·14·15·16대) 의원 직위 이용한 월권행위 ,대전지검이 이원범 의원 등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 3∼4명의 공천헌금비리 및 개인비리로 98년 12월 자민련 대전시 지부를 압수수색 한 것에 대해 99년 1월7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대전지검 송인준 지검장에게 “왜 하필이면 민감한 시기에 사전협의도 없이 압수수색을 벌여 물의를 일으키느냐.공동여당의 공조에 금이 가지 않게 신경을 써달라.”고 직접 전화하는 등 월권행위. 특검제 도입 약속 번복,법무부 장관 재직시 야당 원내총무 시절 자신이 대표발의한 바 있는 특별검사제에 대한 입장을 번복,도리어 이 법안을 폐기하도록 여당에 요청하는 한편 부패방지법 등에서도 관련 조항을 삭제하도록 요구. 21.박상희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6대) 의원 산업연수생 관련 청탁,산업연수생 관련 청탁과 함께 호피 1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배임수재죄로 벌금 1000만원 선고(02.6.14 확정) 2002년 11월12일 제234회 15차 국회 본회의 법안 투표 과정에서 옆자리의 김희선 의원이 자리를 비우자,법안 3건을 대리투표 하다가 국회 사무처직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음. 22.박재욱 (한나라당,경상북도 경산시·청도군,11·16대) 의원 교비 빼돌려 개인용도로 사용,학장으로 재직하던 대학에서 비자금을 조성하여 이를 개인용도로 사용하거나,자신의 처 및 아들의 계좌로 송금하는 식으로 107억원을 횡령한 혐의.검찰로부터 3차례 소환 통보받았지만 신병을 이유로 응하지 않음. 16대 총선에서 2000년 3월 아들이 경산시내 미용실 20여곳을 방문,사전선거운동을 하고 미용실 원장 1명에게 금품(100만원)을 제공.2000년 9월16일 항소심벌금 500만원 확정. 23.박주선 (새천년민주당,전라남도 보성군,16대) 의원 옷로비 사건 관련 공용서류 은닉,99년 2월 옷로비 사건에서 김태정의 부인과 관련된 증거들을 빼돌려 숨겨둔 혐의로 공용서류은닉 및 증거은닉죄로 유죄판결(보고서 유출과 관련한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무죄). 정치개혁법안 개악 시도,국회 정치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이자 선거법 심사소위 민주당 간사로서 선관위 조사권 약화 등 선거법 개악시도. 24.박주천 (한나라당,서울 마포구을,14·15·16대) 의원 현대건설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2000년 9월 중순쯤 ㈜현대건설 사장 김윤규씨로부터 대북사업에 대한 협조와 2000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시 정몽헌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말아달라는 청탁을 받고 현금 5000만원 받은 혐의. 25.배기선 (열린우리당,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을,14·16대) 의원 2000년 12월30일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새천년민주당 탈당,자민련 입당,2001년 9월10일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 허위사실유포에 의해 재정신청 인용,1심에서 집행유예 2년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유죄 인정,03.10.31). 26.송영길 (열린우리당,인천 계양구,16대) 의원 대우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원 수수,99년 6·3 보궐선거 출마당시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전모씨를 통해 후원금으로 1억원 수수했으나 영수증 미처리,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0만원,추징 1억원. 본인이 금품제공(63만원 상당의 축구공,10여만원 상당의 식사 제공)한 혐의로 기소.1심 벌금 80만원 선고(01.10.26) 2심 일부 면소 벌금 80만원 선고,확정(02.6.24). 27.안동선 (새천년민주당,경기도 부천시 원미구갑,16·15·14·12대) 의원 철새정치행태,2002년 8월16일 민주당 탈당,이후 국민통합21 참여,2002년 12월3일 자민련 입당,2004년 1월14일 새천년민주당 입당. 법안대표발의 0건.출석률 77.72%,무단결석률 17.3%(13위,202회 중 35회 결석) 28.안택수 (한나라당,대구 북구을,16·15대) 95년 3월 신한국당 탈당,자민련 입당.97년 11월 한나라당 입당. 비하발언,2000년 4·13 총선과정에서 상대후보를 공격하면서 “제2국민역은 병신이나 다름없다.”고 발언. 29.오장섭 (무소속,충청남도 예산군,16·15·14대) 의원 철새정치행태,97년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대선 패배 후 98년 4월15일 한나라당 탈당 후 자민련 입당(98.4.16),2002년 11월14일 자민련탈당 후 한나라당에 입당하려 했으나 입당거부로 무소속으로 잔류. 공직자윤리법 위반,98년 2월 재산등록당시 본인과 부인이 갖고 있던 예산군 신례원리의 주유소 지분을 1억원씩 총 2억원에 팔았다고 신고,이후 2002년 재산등록에는 다시 이를 취득한 것으로 돼 있음.하지만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오 장관의 주유소 지분은 지분을 최초 취득한 87년 이래 이전된 적 없음. 30.원유철 (한나라당,경기도 평택시갑,16·15대) 의원 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2002년 11월8일 새천년민주당 탈당,2002년 11월11일 한나라당 입당. 31.유용태 (새천년민주당,서울 동작구을,16·15대) 의원 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98년 9월8일 한나라당 탈당 후 새정치국민회의입당.새천년민주당 탈당(02.11.9)했다가 복당(02.11.26). 32.유재규 (새천년민주당,강원도 홍천군·횡성군,16대) 의원 경선불복,새천년민주당 탈당(02.11.4)했다가 복당(02.11.26). 배우자가 면 부녀회장을 통해 읍부녀회장에게 100만원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1심 벌금 800만원 선고,확정(00.8.25). 33.유한열 (한나라당 비례대표,16·13·12·11·10대) 의원 국가보위 입법회의 외교국방위원회 위원 법안 대표발의 0건.출석률 76.56%,무단결석률 18.75%(10위,2002.12.11 의원직 승계,64회 중 12회 결석). 34.이경재 (한나라당,인천 서구·강화군을,16·15대) 의원 성희롱 발언,2003년 12월23일 정개특위에서 위원장석에 앉아있는 김희선의원에게 “다른 여자가 우리 안방에 누워있으면 주물러 달라는거지.” 발언(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 정치개혁관련법 개악시도,국회 정치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이자 선거법 심사소위 한나라당 간사로서 선관위 조사권 약화 등 선거법 개악시도,2003년 12월 5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기준시점별로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등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당리당략적 발언. 색깔론.2002년 12월30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주사파들이 인수위에 대거 참여했다.”,“일부 반미세력들이 순진한 젊은이들을 촛불시위에 동원…. 적화통일까지 이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노렸음직하다.”는 발언,2003년 7년30일 국방위에서 “NSC 직원 중 과거 수차례에 걸쳐 밀입북을 해서 사정기관으로부터 요주의인사로 분료된 사람들이 있다.” 발언. 35.이근진 (한나라당 경기도 고양시덕양구을,16대) 의원 경선불복.2002년 11월3일 새천년민주당 탈당,2002년 11월11일 한나라당 입당. 36.이만섭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6·15·14·12·11·10·7·6대 )의원 경선불복.97년 10월 신한국당 탈당,97년 11월 국민신당 입당,이후 98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37.이상배 (한나라당,경상북도 상주시,16,15대) 의원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 내무분과위원회 위원 96년 15대 총선 당시 부인이 주민 20명에게 현금 3만원씩을 돌리고,선거사무장 박씨 등 2명은 주민 20명에게 음식 등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검찰에 의해 기소유예 처분,자민련측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에 회부.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로 부인(300만원),선거사무장(100만원),선거사무원(70만원) 벌금 선고(97.7.4). 방일외교 “등신외교”발언.2003년 6월9일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에 대해 “등신외교”라고 비하.파문이 일자 “노 대통령을 모욕할 의도는 없었고,오해가 있었다면 유감”이라고 해명. 대리투표.2002년 11월12일 제234회 15차 국회 본회의 법안 투표 과정에서 이상배 의원은 옆자리에 앉아있던 같은 당 임인배 의원을 대신해 투표를 함. 38.이상수 (열린우리당,서울 중랑구갑,3선,16·15·13대) 의원 불법대선자금수수.한화와 금호,현대차,SK 등 4개 기업으로부터 32억 6000만원을 불법 모금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금호로부터 받은 6억원,한화로부터 받은 10억원 영수증 처리하지 않은 것 시인,편법 영수증 처리 모두 시인.돈세탁방지법 무력화.법사위원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의 국내 금융거래거래계좌추적권 삭제,정치자금범죄의 선관위 통보조항 신설 등 돈세탁방지법 개악안에 찬성 표결. 39.이상희 (무소속,한나라당 비례대,11·12·13·15·16대)전 의원 텔슨전자로부터 2000달러 뇌물수수.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11월27일 텔슨전자 오모 상무로부터 2000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1심 수수사실을 인정하는 2000달러에 대해서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돼 유죄(선고유예 추징 238만원). 40.이양희 (한나라당,대전 동구,15·16대)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2001년 6월 대양상호신용금고 대표 유모씨와 이로부터 부정대출 받은 장모씨로부터 정치자금 500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기소 1심,정치자금법 위반 유죄(벌금 500만원,추징금 500만원 선고). 철새정치행태.대선 직전 자민련 탈당(02.11.14),한나라당 입당(02.11.15). 41.이완구 (한나라당,충청남도 청양군·홍성군,16·15대) 철새정치행태.98년 5월2일 한나라당 탈당,98년 5월4일 자민련 입당.2002년 10월14일 자민련 탈당,한나라당 입당. 42.이용삼 (새천년민주당,강원도 화천·철원·양구,16·15·14대) 경선불복.97년 11월2일 신한국당 탈당,97년 11월7일 국민신당 입당,98년 9월17일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43.이원창 (한나라당 비례대표,16대) 색깔발언.2002년 4월10일 대정부질문에서 “이적단체인 한총련 일부와 6·25당시 장기복역을 했던 불순세력이 노무현 고문 지원세력에 포함돼 있다는 제보가 있다.”며 “이들이 선거운동을 가장해 사회주의 노선을 전파하고 있다.”고 주장. 폭력행사.2000년 9월 청와대 사직동팀을 항의방문하면서 경비중인 전경 폭행. 44.이윤수 (새천년민주당,성남시 수정구,16·15·14대) 경선불복.새천년민주당 탈당(02.11.4)했다가 복당(02.11.26). 전북무주농민 16명에게 2개월 안에 일본에 있는 후지물산공업주식회사 공원으로 보내주겠다며 1인당 10∼30만원 등 모두 269만5000원을 편취한 것.(75.7.26,징역2년·집유3년 선고,확정). 16대 총선에서 회계책임자가 선거비용 초과지출로 기소.1심 벌금 80만원 선고,항소기각 확정(01.04.03) 45.이인제 (자유민주연합,충청남도 논산시 금산군,16·14·13대) 경선불복.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경선 후 탈당(02.12.1)해 자민련 입당(02.12.3).97년 신한국당 대선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 패배하자 탈당(97.11.13)해 국민신당 창당 후 대선후보 출마. 46.이한동 (하나로국민연합,경기도 연천군·포천군,16·15·14·13·12·11대) 의원 “80년 광주,민주화운동 규정 잘못” 발언,민정당 원내총무로 있던 89년 11월 정호용 의원 사퇴와 관련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이 지경에 이르렀다.”,“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민화위의 결론부터가 잘못됐다.”고 발언. 색깔론 발언.오익제 편지 파문과 관련 “왜 유독 김대중후보 주변에만 북한관련 사건들이 끊이지 않느냐.”고 발언,2000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일부 정당들이 사상적 성향도 검증되지 않은 운동권 의식화 세력을 경쟁적으로 영입하고 있으며,이념적 혼란과 갈등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시킬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지역주의 조장 발언.2000년 3월20일 자민련 대전 대덕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대전과 충남북에 JP와 자민련이 있어 충청인의 자존심과 긍지 명예와 권익을 지키고 있다,JP가 없었으면 충청도는 개밥의 도토리다.”철새정치행태,99.12 한나라당 탈당,2000년 1월 자민련입당,01.9.12 자민련 제명,02.11.하나로국민연합창당. 47.이해구 (한나라당,경기도 안성시,16·15·14·13대) 수지 김 사건 수사종결 지시.87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국내파트 1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윤태식이 납치자작극을 벌였다는 수사결과를 보고 받고도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다는 명목 하에 장세동과 함께 이 사건의 수사종결을 지시. 48.이훈평 (새천년민주당,서울 관악구갑,16·15대) 현대비자금 사건 관련 구속,현대건설에 요청해 후배가 사장으로 있는 건설회사가 115억원에 현대건설의 하도급 공사를 수주받도록 함으로써 제3자에게 수주에 따른 이익 상당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음주운전.2003년 4월9일 음주단속(혈중 알코올 농도 0.086%)에 적발돼 면허정지 100일 처분과 벌금부과. 49.이희규 (새천년민주당,경기도 이천시,16대) 경선불복,2002년 11월4일 새천년민주당 탈당 후 2002년 12월27일 복당. 선거홍보물에 학력을 허위기재하고(기재가 금지된 비정규학력 기재),기부행위금지기간에 지역구민에게 김밥 등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1심 벌금 150만원 선고 2심 벌금 80만원 선고(제공한 다과류의 금액이 소액이라는 점)확정(01.12.11). 50.장성민 (새천년민주당,서울 금천구,16대) 전 의원 선거사무장이 선거운동원들에게 3000만원의 불법수당을 지출한 혐의로 기소 1심 벌금 1500만원 선고.2심 원심파기,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선고(01.7.3) 상고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선고,당선무효됨(02.1.22). 51.장재식 (새천년민주당,서울 서대문구을,16·15·14대) 의원 2001년 1월10일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하여 새천년민주당 탈당,자민련 입당,2001년 9월10일 민주당으로 복당. 의정활동 법안 대표발의 0건.출석율 70.79%,무단결석율 15,84%(22위,202회 중 32회 결석). 52.전용학 (한나라당,충청남도 천안시갑,16대) 의원 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 2002년 새천년민주당 탈당하고 한나라당 입당(02.10.14). 회계책임자가 지구당 관계자들에게 식사비와 조직활동비 명목으로 64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기소.1심 벌금 700만원 선고 받고 항소기각으로 확정(01.4.27). 53.정대철 (열린우리당,서울 중구,16·14·13·10·9대) 의원 굿모닝시티 뇌물 등 2002년 3월 ㈜굿모닝시티 대표이사 윤창열에게 5억원을 요구해 윤창열로부터 건축허가를 위한 조건으로 신속히 받을 수 있도록 중구청장에게 청탁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승낙한 후 자신의 집에서 현금 2억 5000만원 받음.2002.12 같은 방법으로 2억원을 요구해 현금 1억 5000만원을 받아 합계 4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대우건설 불법 정치자금 수수 2002년 12월 새천년민주당사에서 누보코리아대표이사 장신호로부터 선거자금명목으로 1억원을 건너받았음에도 5000만원만 영수증 처리.경성사건에서 알선수재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97년 2월쯤 제주 여미지 식물원을 수의계약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경성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98.9.3). 54.정몽준 (국민통합21 울산 동구,16·15·14·13대) 의원 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단일화 후 선거하루 전(02.12.18) 단일화 합의 번복. 55.정재문 (한나라당,부산 진구갑,16·15·14·13·12대) 전 의 선거사무장이 동책과 선거운동원 등에게 수차례에 걸쳐 2500만원을 지급한 혐의로 기소.1심 벌금 1500만원(2001.6.29),2심 징역 1년,집행유예 2년(2001.11.7),3심 상고기각 확정(2002.6.28) 당선인이 선거법위반으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1심 벌금 70만원(01.6.29),항소기각으로 확정. 북풍관련 남북교류협력에관한 법률 위반으로 유죄 98년 5월16일 통일원장관의 허가 없이 북측인사를 접촉해 남북교류협력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1심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2000.3.17),2심 벌금 1000만원 선고(2001.11.9) 3심 상고기각,확정(2003.12.30). 56.정형근 (한나라당,부산 북구·강서구갑,16·15대) 의원 검찰수사에 의해 고문행위가 드러난 서경원 밀입북사건의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87.1). 색깔론.99년 11월 자신이 안기부에 근무할 때 서경원 사건,문익환 목사 밀입북 사건,이선실 사건 등을 조사했다며 “김 대통령이 1만달러를 서경원으로부터 받고 이 사실을 덮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싹싹 빌었다.이게 지리산 빨치산 수법이다.”고 발언. 수사 및 재판 출두 불응.국정원 도청문건 폭로와 관련 공판정 증인신문에 불응해 과태료 50만원 처분 받음.이후 과태료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정당하다는 결정을 내림.2002년 3월,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녹화사업 조사와 관련해 당시 공안기관에 근무하던 정형근 의원(당시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등 관계자들의 출두를 요구했으나 출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출두 요구 불응. 57.최돈웅 (한나라당,강원도 강릉시,16·14·8대) 의원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구속.2002년 대선 당시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에게 현금 100억원 지원을 요구,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현금 1억원씩이 든 대형 쇼핑백 20개 합계 현금 20억원을 받아 이를 한나라당에 제공하는 등 5회에 걸쳐 현금 100억원을 SK그룹으로부터 영수증처리를 않은 채 기부받아 대선자금으로 사용.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구속(04.1.12). 회계책임자가 선거법위반혐의로 기소.1심 징역 10월,집행유예2년 선고 항소기각(01.7.3.),상고심에서 기각(01.12.14)됐었으나 당선무효 선고 전 사직(01.9.3),보궐선거에서 재당선. 58.최명헌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6·12·11대) 의원 경선불복.2002년 11월4일 기자회견에서 비례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민주당에 제명 요구하였다가 이후 철회. 59.최병국 (한나라당,울산 남구,16대) 의원 대전법조비리.99년 대전 이종기 변호사 사건과 관련,93년 9월부터 94년 9월까지 대전고검차장 재직 당시 명절 떡값과 전별금 등 4회에 걸쳐 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표 제출. 부림사건 수사지휘검사.81년 대표적 시국사건인 부림사건 주임검사,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주장이 제기됨. 돈세탁방지법 무력화.법사위원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의 국내 금융거래거래계좌추적권 삭제,정치자금범죄의 선관위 통보조항 신설 등 돈세탁방지법 개악안에 찬성 표결. 60.최선영 (새천년민주당,경기도 부천시 오정구,16·15대) 의원 경선불복.2002년 새천년민주당 탈당했다가 복당(02.11.26) 61.최재승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6·15·14대) 의원 석탄비리.뇌물(특가법)위반으로 불구속 기소(03.6.13),98년 9월 손세일 전 의원을 통해 구모씨의 한전 석탄납품 청탁과 관련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특가법상 뇌물죄가 인정돼 1심 징역 2년6월,집행유예 4년,추징금 3000만원 선고(04.2.3). 62.하순봉 (한나라당,경상남도 진주시,16·15·14·11대) 의원 회계책임자가 모두 520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인정돼 기소.1심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선고(01.5.18) 항소심 벌금 800만원 선고 확정(01.12.26).배우자와 회계책임자가 선거법위반으로 기소.1심 벌금 100만원 선고.항소심벌금 50만원 선고 확정(01.12.26). 지역감정 조장발언.2001년 말 재경 경남향우회에서 “지난 대선 때 경남이 분열,정권을 빼앗긴 만큼 똘똘 뭉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 2002년 6월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이회창 후보가 가진 통찰력과 리더십이 강조돼야 한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명문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발언,명문학교,가문 출신 대통령론 주장. 63.한화갑 (새천년민주당,전남 무안군 신안군,16·15·14대) 의원 정치자금법위반.2002년 2월 SK그룹 손길승 회장에게 8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2억원과 1억원을,이후 당 대표시절 1억원 등 3차례에 걸쳐 경선자금 및 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처남 정모씨를 통해 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 발부.검찰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영수증 미처리 사실 시인. 64.함석재 (한나라당,충청남도 천안시을,16·15·14대) 의원 철새정치행태.14대 국회 당시 민자당 소속이던 함 의원은 민자당을 탈당한 김종필 총재가 95년 자민련 창당하자 그해 10월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김(95.10.24).02.5.16 자민련 탈당,2주 후(02.5.31) 한나라당 입당. 65.홍문종 (한나라당,경기도 의정부시,16·15대) 의원 철새정치행태.98년 8월25일 한나라당 탈당 후 98년 11월25일 새정치국민회의 입당.2000년 3월7일 새천년민주당을 탈당,무소속으로 출마.2003년 4월24일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당선됨. 66.홍준표 (한나라당,서울 동대문구을,16대) 의원 법정선거비용 초과(15대 총선 당시 동협의회 총무 오모씨에게 2400여만원의 선거운동비를 주고 허위 지출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로 기소돼 당선 무효.1심 벌금 500만원 선고(98.1.26). ■ 시민연대 낙천대상자 포함된 인사들의 해명.(한:한나라당,민:민주당,우:열린우리당,자:자민련,무:무소속) ▲강성구(姜成求·한) 의원측 = 한나라당 선택을 문제삼는다면 열린우리당의 경우 민주당을 탈당하지 않았느냐.정치적 선택을 갖고 문제삼는 것은 아전인수적 해석이다. ▲김기춘(金淇春·한)의원 = 96년,2000년도 심판받았다.거제 유권자들과 시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유신헌법 작성 문제는 당시 법무부 검사들은다 실무작업을 했고,서경원 사건의 경우는 자유민주를 수호하는 검사로서는 당연한일을 한 것이다.초원복집 사건의 경우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만제(金滿堤·한) 의원측 = 포철회장 기밀비는 김대중 정권 출범후 대표적인 표적수사였다.국보위 입법회의 참여 문제는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으로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연직으로 참가할 수 밖에 없었다.‘사회주의 정책’ 발언은 시장경제주의자로서 당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것을 풀기 위한 방안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 시각의 차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김영일(金榮馹·한) 의원 = 구속중.공천신청 안한 상태. ▲김용갑(金容甲·한) 의원 = 애들 장난도 아니고 국회 발언을 갖고 포함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이것은 소위 낙천.낙선운동 전개 단체들이 스스로 친북좌파임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 ▲김용균(金容鈞·한) 의원 = 국보위 참여 문제는 당시 법무관 재직중이라서 파견받아 갔을 뿐이다.이후 공직자와 국회의원을 여러차례 하는 등 국민과 공직사회에서 수십차례 걸쳐 심판이 이뤄진 사안이다.선거법 개정안은 현재 심의중이며,돈세탁방지법 문제는 법사위의 정당한 심사행위다. ▲김종필(金鍾泌·자) 의원측 = 한마디로 논평할 가치도 없다. ▲박명환(朴明煥·한) 의원 = 현재 구속중.공천신청 안한 상태. ▲박재욱(朴在旭·한) 의원 = 현재 구속중.공천신청 안한 상태. ▲이완구(李完九·한) 의원측 = 잣대를 공평하게 댄 것 같지는 않다.당적 변경이우리만 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다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인제(李仁濟·자) 의원측 = 스스로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을 철새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경선불복이라는 것은 정치인의 개인적 소신의 문제다.여당에서 야당으로 옭겨간 이를 철새라고 하면 안된다.소신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이해구(李海龜·한) 의원 = 납득할 수 없다.수지김 사건에는 내가 관여하지않았다.나는 당시 국내파트 담당이었는데 해외에서 발생,조작돼서 해외에서 발표까지 해서 들어오지 않았느냐.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진행하는 것을 보고 법적 대응도 검토할 것이다. ▲한화갑(韓和甲·민) 의원 = 당내 경선자금을 문제삼겠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원부터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유용태(劉容泰·민) 의원측 = 지난 선거때도 낙천운동을 했는데 유권자들이 더많은 표를 줬다.또다시 같은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비리에 연루됐다면 모르겠지만 누가 그런 기준을 정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희규(李熙圭·민) 의원측 = 종합적인 고려가 부족한 것 같다.의정활동에 있어 상당히 개혁적이었는 데 거기에 대한 평가가 없다.돌 하나 던져보고 파장보자는 것 같다. ▲이만섭(李萬燮·민) 의원측 = 한나라당 상임고문이었지만 국민앞에 송구스러워서 의원직 사퇴하고 탈당했다.그런 것까지도 당적이탈이고 철새로 몬다면 어이가없다.김원기 의장도 당적 이탈 많이 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안들어가지 않았나. ▲박상천(朴相千·민) 의원측 = 역주행이라고 주장하지만,2000년 추석 연휴 당시 민주당 재해대책본부장으로서 태풍 북상에 따른 회의 주재를 위해 급히 상경하면서 왕복 2차선에서 추월을 한 것이다. ▲이용삼(李龍三·민) 의원측 = 어떤 기준에 의해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열린우리당 간 사람들은 분당을 해서 뺐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분당이 아니라 탈당계 냈다.우리가 열린우리당 갔으면 이렇게 했겠나 ▲김민석(金民錫·민) 전의원 = 당적변경이 이유라면 열린우리당 의원 전체가 낙천·낙선 대상이다.친노 편향이고 친 열린우리당적인 불공정 잣대일 뿐이다. ▲박병윤(朴炳潤·민) 의원측 = 적법하게 받아서 적법하게 전달했는데 당에서 영수증 안 끊어준 것이다.이 문제는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중인데 사법부 판단에 앞서시민단체가 판단할 수 있는가. ▲최선영(崔善榮·민) 의원측 = 탈당하게 된 배경과 복당사유에 대해 몇 번씩이나 언론에 나왔던 이야기다.새삼스럽게 나온게 이해되지 않는다.대응방법을 논의중이다. ▲박상희(朴相熙·민) 의원 = 대리투표는 무의식적으로 한 것이다.1000만원 벌금은 검찰의 표적 사정이다.그런 것 가지고 무슨 낙선이냐. ▲이윤수(李允洙·민) 의원 = 후보단일화운동 때문에 낙천·낙선 대상이 될 수 없다.후단협 식구들이 다 포함됐는데 개인적으로도 대응하겠지만 후단협 식구들이 모여서 의논해보겠다. ▲장성민(張誠珉·민) 전 의원 = 시민단체가 지금 이순간 반개혁단체,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유신정권때 박정희를 대변했던 자유총연맹을 연상케 한다.차라리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라.열린우리당과 내부자 거래를 하는 것은 세상이 다안다. ▲최명헌(崔明憲·민) 의원 = 관심없다.자기네들하고 코드 안맞는다고 집어넣은 것이다.코드 안맞는 것은 사실이다. ▲김덕배(金德培·우) 의원 =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후단협 활동은 후보단 일화를 이루기 위한 정치적 희생이었다.이것을 뭉뚱그려서 철새정치인으로 낙인찍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김명섭(金明燮·우) 의원 = 탈당·복당은 정치적 의미다.낙천대상이 될 수 없다.지난 2002년 대선후보 단일화과정에서 탈당한 것은 과거 민주당의 대선승리를 위한 길이었다. ▲김택기(金宅起·우) 의원 = 10년전 일이고 의정활동과 관련 없는 일이다.김영삼 정권시절에 기업경영자도 구속시킬 수 있다는 시범케이스로 걸린 일이다.곧바로 사면받은 일을 가지고 소명받을 기회를 주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송영길(宋永吉·우) 의원 = 정치입문시절 대학총동창회장인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 준 돈을 영수증 처리하지 못했다.국민과 유권자들이 그동안 내 의정활동을평가해줄 것으로 믿는다. ▲배기선(裵基善.우) 의원 = 좀더 반성하라는 것으로 본다.그러나 총선시민연대가 사안을 너무 피상적으로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공천문제는 당에서 알아서판단하지 않겠느냐. ▲이상수(李相洙·우) 의원측 =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이유로 낙천대상에 포함됐는데 우리만 억울하다고 말하기 어렵다.앞으로 여론의 판단을 받아보겠다. ▲정대철(鄭大哲·우) 의원측 = 총선시민연대의 뜻을 존중한다.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뜻이 있다. ▲정몽준(鄭夢準·국민통합 21) 의원 = 2002년 지지철회는 상호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후보단일화 정신이 일방적으로 파기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이를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것은 다수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의 발상으로 참으로 비열한 행위다.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는 역사상 없었던일로써 조사 발표 직후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의혹이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승복해 사퇴했다. ▲이한동(李漢東·하나로 국민연합) 의원측 = 현재 의원과 연결이 안되고 있기 때문에 측근입장에선 언급할 말이 없다. ▲이상희(李祥羲·무) 의원 = 국회 상임위원장 재직당시 2000달러를 받은 것은 뇌물이 아니라 현지 미국벤처기업 동행자들의 식사값이다.사법적판단을 받겠다. ▲오장섭(吳長燮·무) 의원측 = 정당을 옮겼다고 낙천대상자로 선정하면 현역의원들 중 안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김무성(金武星·한) 의원 = 대응하고 싶지 않다. ▲김원길(金元吉·한) 의원 = 당적변경은 내가 옳았다고 본다.야당으로 간 것은문제가 되고 열린우리당으로 간 것은 괜찮으냐.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을 담당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민주당을 떠났던 것이다.경선자금 문제의 경우 나는 돈을 만진 적도 본적도 건드린 적도 없다.개인비리는 하나도 없다.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박상규(朴尙奎·한) 의원 = 불법정치자금 수수는 검찰주장이 터무니 없어 영장발부도 기각됐고 한나라당 입당은 소신에 따른 것이다.지역 주민들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당을 옮긴 것은 미안하지만 이런 이유로 공천반대를 하는 것은 또다른 정치적 압력이다. ▲박주천(朴柱千·한) 의원측 = 헌법이 정한 기본권리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느냐.총선연대의 이번 결정은 사법부 심판 마저 대신하려는 시민을 가장한독재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사유 자체가 사실관계도 다르다.정몽헌씨를 증인에서 제외해달라고 부탁 받은 사실도 없다. ▲안택수(安澤秀·한) 의원 = 탈당문제의 경우 신한국당 당적 가진 적 없다.자민련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DJP연합에 반대해 소신탈당을 한 사실은 있다.또제2국민역 발언은 실수한 대목으로 상대방 후보하고 원만하게 이해가 돼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원유철(元裕哲·한) 의원 = 같은 당적 변경이라도 노 대통령을 따라가는 사람은 해당이 안되고 따라가지 않은 사람은 해당되느냐.열린우리당으로 당적변경한 사람은 하나도 안 넣은 점에서 편파성이 눈에 보인다. ▲유한열(柳漢烈·한) 의원 = 다른 당에서 우리당으로 입당한 사람은 철새가 아니냐.그야말로 권력의 양지를 쫓는 경우가 아니냐.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대통령이 됐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냐.왜 그런데 그런 사람들 이름은 하나도 없냐. ▲이경재(李敬在·한) 의원 = 국회에서 한 발언을 가지고 문제삼은 것은 의회주의에 대한 정면거부다.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고 당내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어 제일 먼저 공천유력 후보로 선정됐다.각종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열린우리당소속 의원들에 대해서는 경고조치 하나 없다.열린우리당을 정치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의도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원창(李元昌·한) 의원 = 장기 복역자라고 다 불순세력이라고 볼 수없지만검증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다.주사파 발언은 대통령직 인수위에 어떤이들이 포진해 있는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전경폭행) 폭행이 아니었다.경비전경이 넥타이를 먼저 거머쥐어 뿌리치는 장면이 때리는 것 처럼TV 카메라에 비친 것이다. ▲홍문종(洪文鐘·한) 의원측 = 있는 사실 그대로 한 것이니까,그것 자체는 문제삼지 않는데 15대 때 있었던 일 가지고,17대 출마에 소급 적용하는게 일사부재원칙에도 어긋난다.유권자 심판 받았다.중앙당 차원에서의 대응도 중요하고 지켜보겠다. ▲이근진(李根鎭·한) 의원 = 경제인으로 반기업 정서와 급진세력에 둘러싸여서는 국부창출에 도움이 안된다는 소신에 따라 경선시절부터 노대통령을 반대했다.당적 이전으로 음지로 온 나는 지목이 되고 양지쪽을 택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한명도 없는데 총선시민연대가 제2의 노사모냐.나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의 몫이다. ▲이상배(李相培·한) 의원 = 지난 총선때도 이와 똑같은 사유로 낙선운동을 했다.이번에는 두가지 사유를 더해서 하는 것 같은데,낙선운동은 대법원에서 위법판정이 났다.객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 ▲이양희(李良熙·한) 의원 =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대양상호신용금고에서 4000만원 받은 사실이 없어 재판에서 무혐의 처리받았다. ▲전용학(田溶鶴·한) 의원 = 별 의미를 두지 않겠다.당적변경이 낙천대상이 된다면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특히 한나라당에서 대선후에 승자의 품에 안긴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김영춘 등 5명이 앞자리에 서야 한다. ▲정형근(鄭亨根·한) 의원 = 한마디로 논평할 가치도 없다. ▲최돈웅(崔燉雄·한) 의원 = 구속중.공천신청 안함. ▲홍준표(洪準杓·한) 의원 = 15대때 이미 심판을 받았고 16대 때도 국민의 신뢰로 국회에 입성했는데 계속 과거의 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 억울하고 부당하다.더이상 재탕.삼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석재(咸錫宰·한) 의원 =대선당시 자민련은 후보를 내지 못했고 끝까지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저는 국회의원으로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보다 바람직한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고 믿었기에 당적을 변경하였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김방림(金芳林·민) 의원 = 공천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출마의사도 묻지 않고일방적으로 명단에 포함시켜 공개한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항소심에서 무죄를자신하고 있다.법적 대응책을 강구하겠다. ▲안동선(安東善·민) 의원 = 총선시민연대 주최측을 모두 고발하겠다.노무현후보가 2002년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탈당했다.철새라는 것은 권력을 따라가는 것이지만,나는 43년간 야당생활하면서 계속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 ▲최재승(崔在昇·민) 의원측 = 석탄사건 재판으로 지난 3일 집유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낙천대상에 포함시켰다.이 사건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항소심을 통해 적극 대응하면 무죄를 확신하고 있다.명단 기준을 이해하기 어렵다. ▲장재식(張在植·민) 의원 = DJP공조를 위한 살신성인의 조치로 당의 지시에 따라 자민련에 갔다.권력을 쫓아가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당을 살리기 위해 간 것이다.정치인은 명예를 먹고 사는데 시민단체가 아무런 검토도 하지 않고 발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최병국(崔炳國·한) 의원 = 호주제 폐지 문제의 경우 반대라는 소신에 따라 지적한 것이다.일방적 노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낙천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유감스럽다.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유권자의 정당한 심판을 바탕으로 소신있는 정치인의 길을 가겠다. ▲하순봉(河舜鳳·한) 의원측 = 해명할 생각 없다.˝
  • ‘총선정국’ 일대 회오리/‘한화갑 쇼크’ 민주 재결집

    ‘한화갑 쇼크’가 4·15총선 정국 기류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조짐이다.민주당이 강도 높은 대여(對與) 투쟁에 나섬으로써,그동안 형성돼온 3각 전선(戰線)이 청와대·열린우리당의 여권과 한나라당·민주당의 2야(野)간 전면대치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은 1일 “노무현당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다.”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그는 “한 전 대표가 불법적으로 받은 돈이 노 대통령 것의 10분의1을 넘는다면 당장 구속하라.한나라당이 리무진이고 노 대통령이 티코라면 한 전 대표는 세발 자전거도 안 된다.한 전 대표가 경선자금으로 구속된다면 노 대통령은 4년 뒤 당연히 구속된다.”고 노 대통령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추 의원은 지난해 7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도 지적했다.“당시 ‘도저히 합법적 틀 속에서 (경선을) 할 수 없었다.경선자금 관련자료를 무슨 자랑이라고 보관했겠느냐.다 파기했다.’고 스스로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증거까지 인멸했다고 말했다.”며 즉각적인 고해성사를 촉구했다.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에대해서도 “좀 더 정직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홍일 의원의 이날 복당은 민주당 총선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호남 물갈이를 통한 세 확대에서 호남민심 확보를 통한 제2당 사수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김 의원과 추미애 의원의 ‘화해’가 이를 말해 준다. 추 의원은 지난달 31일 김 의원의 자택을 찾아가 그의 복당에 뜻을 같이 했다. 김 의원 요청으로 자택을 찾은 추 의원은 복당의사를 적극 환영했고,이에 따라 김 의원의 복당이 이뤄졌다.추 의원은 “한 전 대표 소식에 김 의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노 정권에 맞서 남은 힘을 보태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당사를 찾은 김 의원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전날 아들인 김 의원의 결심을 듣고 탈당 때처럼 “네 일이니 네가 잘 알아서 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추 의원은 “김 전 대통령 뜻을 따랐던 대부분이 차가운 감방에 들어갔다.햇볕정책 전도사들까지 범법자가 됐다.이제 DJ 철학과 정책이 담긴 민주당마저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민주당의 대여투쟁에 엄호사격을 했다.홍사덕 총무는 “현 정권의 ‘호남 죽이기’와 야당 탄압에 모든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서청원 전 대표와 함께 한 의원 구명(救命)에 나설 뜻임을 밝혔다.그는 불법대선자금 청문회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춘채 총선에 임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민주당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청문회 대신 곧바로 특검을 추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열린우리당은 김홍일 의원이 전격 복당하자 호남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정동영 의장은 최근 김 의원 탈당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중립에 대한 확실한 조치”라고 말한 바 있어 난처해졌다.그러나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며칠 전 호남에 가보니 민심이 호락호락하지 않더라.호남 민심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
  • 김홍일 민주 복당/탈당 12일만에 “당 살리는데 밀알 되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1일 민주당에 복당함에 따라 호남 민심을 겨냥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간 ‘김심(金心)’ 논란이 다시 가열될 전망이다. ▶관련기사 3면 특히 열린우리당은 김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지 12일 만에 복당하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 안팎에서 호남 물갈이 논란이 일자 지난달 20일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던 김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당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양당 통합을 생각해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었으나 최근 상황에서 우선 민주당을 살리는 게 도리”라며 “창당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한 당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민주당 복당의 뜻을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복당 선언에 이어 여의도 민주당사를 방문,조순형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복당의사를 밝히고 농성 중인 한화갑 의원을 위로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정범구의원 민주 복당

    지난해 11월 ‘한·민 공조’ 특검에 반대하며 민주당을 나갔던 정범구 의원이 30일 당에 복귀하자 민주당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홍일 의원의 거취도 주목되고 있다.정 의원은 복당 회견에서 “현 정권의 부당한 민주당 죽이기에 당원 동지와 함께 맞서야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홍일 의원은 복당과 함께 비례대표 출마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김 의원측도 “당에서 요청하면 주변과 상의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박정경기자 olive@
  • 韓수사 민주 반응/“死卽生” 민주 對與투쟁 ‘올인’

    30일 민주당은 사즉생(死卽生)의 비장감에 휩싸였다.온종일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대여(對與) 강경투쟁을 외치는 소리들만 터져나왔다.‘민주당 죽이기’를 비난하는 한화갑 전 대표의 기자회견에 함성을 질렀고,정범구 의원의 복당(復黨) 회견에서는 머리 위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고건 총리 등에 항의방문 상임중앙위 회의와 기자회견,브리핑 등을 통해 여권을 맹비난한 조순형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오후 고건 총리를 찾아가 검찰수사에 대해 항의했다.조 대표는 “이번 수사는 전례가 없는 편파수사로,대통령이 장관에게 출마를 종용하고 심지어 한 전 대표에게 입당하라고 장관을 심부름시키니 민생이 되겠느냐.”며 “총리가 대통령과 담판을 지으라.”고 촉구했다.고 총리는 “한 전 대표 수사는 신문에 난 사실밖에 모른다.법무장관을 불러 경위를 물어보겠다.”고 피해갔다.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전투기·고속철도 시승과 관련,“정부가 (정 의장을) 집권당 총재처럼 예우하고 있다.이런 행위가 계속되면 야당 공동전선을 펴서 총선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항의했다. 유용태 원내대표의 항의를 받은 강금실 법무장관은 “처음부터 당 경선자금을 수사한 것이 아니고 대우를 추적하다 보니 일부가 한 전 대표에게 간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며 “SK를 포함,경선자금이 10억원이 넘었기 때문에 사법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 경선자금에 ‘메스’ 민주당은 폭로공세도 이어갔다.김경재 의원은 평화방송에 출연,“증권가의 B고 출신들이 K신용금고에 있는 1조원을 돌려 시세차익으로 2000억원을 조성,총선자금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검찰도 이 사실을 수사하다 말았고,내가 담당검사 이름까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의원은 “나와 노 대통령 둘 사이에 한 얘기가 더 있고,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둘 사이에만 아는 것 중 말할 것이 더 있다.”고 말해 추가 폭로 가능성을 시사했다.이어 “대선자금 관계를 말하면 여러 사람이 걸리기 때문에 극력 자제해왔고,내가 자제하고 있음을 대통령도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정오규 부산시지부장은 “지난 2001년 11월10일 전북 무주 리조트에서 1800명의 당원들이 모여 1박2일로 ‘노무현과 함께 하는 사람들’ 행사를 가졌는데 대여금만 3900만원이었다.”면서 “경선이 끝난 2002년 6월29일 명계남·문성근씨 등 650여명이 1박2일간 연수를 한 대여금이 2200만원이었다.”고 자금출처 공개를 촉구했다. 그는 정동영 의장의 2000년 8월 전당대회와 2002년 대선후보 경선,최근 치러진 열린우리당 경선도 문제삼았다.그는 “세 번의 경선을 부산에서 정 의장의 친구이자 특보인 장모씨가 도왔는데 지구당 위원장과 사무국장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거나 격려금을 준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8)연기스님 前상사리(중)

    스님.저는 스님을 제비 연()자 연기라고 보려 합니다.신화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분이지요.화엄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을 존중하려고 합니다.그 말에 따르면 연기스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인도에서 오셨다고 합니다.백제로 올 때는 배를 탄 것이 아니라 연()이라는 동물을 타고 왔다는군요.물론 어머님과 함께 타셨겠지요.이 동물은 육지에서도 살고 바다에서도 살 수 있는데 주로 남방에서 서식한다 합니다.거북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마에 외뿔이 달렸고 날개도 있어서 공중으로 날아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그 연을 타고 오셨다 해서 연기(起)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스님이 타고 오셨다는 그 연은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연곡사(谷寺)에 있는 연기조사탑(組師塔)의 귀부(龜趺)에 그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이 귀부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북과 유사하지만 거북과는 다른 모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연곡사는 스님과 함께 백제로 오셨던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스님께서 별도로 지으셨다는 얘기도 전해옵니다.일단 있는 그대로를 두고 저의견해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백제 - 화엄사상 관련없다” 잘못된 것일 수도 스님.이쯤에서 저는 화엄사상 또는 화엄경에 관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견해가 신라 중심으로만 정리되어 있어서 백제와 화엄사상은 그다지 깊은 관련이 없다는 기존 입장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점부터 지적하려 합니다.백제와 화엄경의 관계를 추정하기 위해 384년 백제 침류왕 1년에 전라도 법성포(法聖浦)를 통해 백제로 들어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전라도 영광 땅의 모악산 기슭에다 불갑사(佛甲寺)를 창건한 사실부터 얘기하겠습니다. 백제에 온 마라난타는 과연 백제인들과 어떤 언어를 이용하여 대화를 했을까요? 대화가 가능했으므로 백제인의 도움을 받아 사찰을 짓고 포교활동을 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도 불경을 최초로 한문으로 번역한 이는 파르티아(Parthia)인 안세고(安世高)였지요.148년 뤄양에서 한역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입니다.그 후 인도 출신 승려 불도징(佛圖澄·232~348)의 맨 첫 번째 중국 제자인 도안(道安·312~385),도안의 제자 혜원(慧遠·334~416)이 인도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불교의 중국화를 시작했지요. 도안과 혜원은 유교와 도가사상에 정통했던 승려로서 동진(東晋)시대 중국 불교를 주도하면서 세속적 정치권력에 대한 승가의 독립성을 주창하는 데까지 나아갔지요.그후 남북조시대(420~581)를 통해 왕실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국 불교가 번창했습니다.다시 수나라에 의한 중국의 통일(589),인도 유학에서 귀국한 정통 중국인 승려 현장법사(596~664)에 이르면서 불교는 중국의 문화적 풍토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갔습니다. 특히 모든 생명체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존재한다는 평등철학에 근거하여 마음을 닦는 점진적인 수행 전통이 자리잡게 되었는데,이 전통은 5세기 말엽 인도로부터 온 승려인 보리달마(Bodhidarma)에 의해서 들불처럼 번져나갔지요.이렇듯 5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부터 중국과 인도 승려들의 교류는 매우 활발해져서 웬만한 승려들은 중국어와 인도어 즉 한문과 산스크리트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지요. 여기서 저는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온연대가 384년 즉 4세기 말엽이며,그 시기는 중국의 도안,혜원이 인도 불교의 중국화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이미 4세기말쯤이면 한문을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인도 승려들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도 있게 합니다.따라서 마라난타 존자는 한문을 근간으로 하여 백제에 온 초기의 대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큰 모순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마라난타 존자는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며,그 분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의 인도 승려들이 백제로 와서 포교 활동을 했을 것입니다. ●선불교 불성사상, 화엄사상과 일맥상통 이와 같은 전제 위에서 연을 타고 왔다는 연기스님의 백제 입국이 544년경이라고 본다면 보리달마가 중국에서 선불교(禪佛敎)를 본격적으로 확산시킨 시기와 엇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선불교의 불성사상(佛性思想) 즉 모든 생명체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존재한다는 평등철학은,모든 존재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는 화엄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화엄사상을 일컫는 화엄경은 중국에서 세 가지로 번역되었지요.동진 때인 420년에 60권으로 번역한 진본(晉本),당나라 때인 699년 80권으로 번역된 주본(周本),당나라 정원(貞元) 연간인 798년에 40권으로 번역된 정원본(貞元本)입니다. 화엄경은 불교의 중심 경전이어서 불교사상의 전파에는 무엇보다 중요했지요.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올 무렵에는 아직 중국에 화엄경이 번역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어서 혹 마라난타 존자가 화엄경을 갖고 들어왔다면 어떤 방법으로 백제 승려들에게 전파했을 것인지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연기스님이 백제에 온 544년에는 이미 진본 60화엄경이 중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었습니다.따라서 연기스님이 화엄경을 가지고 들어와서 백제 승려들에게 가르치는데는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백제 땅으로 온 인도 승려들에 의하여 보급되기 시작한 화엄경이지만 신라에서는 그렇지 못했지요.고구려와 백제를 경유하지 않고는 해외의 고급 문화가 신라에 전해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 점이 신라로 하여금 백제를 자주 침공하게 만든원인이지요.백제를 넘어 직접 중국과 교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인도 승려들이 백제에 화엄경 보급 실제로 화엄사상을 최초로 신라에 소개한 인물은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인데,그는 636년에야 당나라에 가서 7년 동안 머물다가 643년에 귀국하면서 화엄경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귀국한 2년 뒤 645년에는 신라가 처해있는 백제와의 갈등에서 백제를 꺾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황룡사에다 9층탑을 세웠는데 정작 그는 신라가 백제를 정복하기 두 해 전에 죽었습니다.그런 자장율사가 백제 영토인 전라도 구례 땅의 화엄사와 어떤 관련이 있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더구나 600년 이후부터는 백제와 신라 관계가 극도로 나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국경을 넘어 백제로 들어와 종교활동을 하기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합니다. 백제 불교의 우수성에 대한 신라의 열등의식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백제가 국가적인 열망으로 정립했던 미륵신앙을 배워가서 화랑제도를 강화시킨 점이나 백제 정복 후 백제의 화엄사상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은 점이 그렇습니다. 신라는 깊은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몹시 잔혹해질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3∼4세기 가야국과의 관계에서 보듯이 가야의 우수한 도자기 문명과 남방불교가 지닌 평등관에 대하여 신라의 열등의식은 매우 컸겠지요.가야의 그릇 문명을 모방한 초기 신라의 토기류와 생활들에서 충분히 그런 점을 유추해볼 수 있고,가야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준 집단학살이나 가야 문명의 씨를 말리기 위한 철저하고도 집요한 유린,가야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가야 지배층의 귀화정책은 신라의 열등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봅니다. ●신라, 백제 불교에 열등감 컸을 듯 가야의 그릇 문화에는 인도 문명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했습니다만 신라가 백제문화에 대해 가졌던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가야를 멸망시킬 때 보여준 그 잔혹함이 더욱 더 명료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무튼 신라의 화엄사상은 자장율사에 뒤이어 의상(義湘·625~702)이 본격화시켰지요.의상은 661년에야 중국으로 갈 수 있었는데 671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유학을 했습니다.의상이 신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백제가 신라에게 정복당한 뒤였습니다.의상이 중국에서 배운 화엄경은 진본 60화엄이었는데,귀국하여 원효를 만났을 때 원효는 이미 그 화엄경을 알고 있었으며 화엄사상의 요체인 무애(無碍)를 실천하고 있었지요. 스님.원효가 어떻게 그토록 화엄경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혹시 백제의 인도 승려와 교류하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럴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의상과 원효가 화엄사상을 펼치는 방법에서도 원효는 민중 중심이었는데 반해 의상은 귀족 중심이었지요.그렇게 볼 때 의상이 화엄사와 어떤 관련을 가졌을 수는 있으나 백제 유민들의 슬픔을 치유시키기 위한 화엄사상의 실천자로서 화엄사를 중창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따라서 의상을 연기(緣起)라고 보는 견해는 자칫 백제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바꿔버린 정복자 중심 사관일지도 모릅니다.스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 본지, 3당 공천신청 분석/총선 ‘40대·전문가’ 몰린다

    18일 주요 정당들이 공천을 마감한 결과,30∼40대 젊은 정당인 및 전문가 출신들이 대거 공천을 신청,최근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절반이 30·40대 서울신문이 한나라·민주·열린우리당의 4월 총선 공천신청자를 분석한 결과,각 당 모두 40대가 제일 많았다.열린우리당은 40대가 52%에 달했고,민주당 39%,한나라당 36.2% 순이었다.16대 총선에서는 50대가 가장 많았다.30대를 합치면 당별로 42∼63%다. 직업별로는 정치권 출신 인사가 제일 많았으며 대부분 40대 젊은층이었다.현역의원 보좌진,당료,원외지구당위원장 등 젊은 정당인들이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높은 현역의원 물갈이 여론을 등에 업고 새로운 정치개혁 주도세력으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시민단체 출신인사들의 공천신청도 많았다.정치권 인사와 행정관료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직업군이다. 지역구 공천 희망자 가운데 여성비율은 한나라당 10%,민주당 5%,열린우리당 3%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최다 신청 지역 한나라당에서 경쟁률이 제일 높은 지역구는 서울송파 을로 10명이나 몰렸다.민주당은 광주 서구에 8명,전주 완산에 7명이 몰려 1,2위를 기록했다.열린우리당은 전북 익산에 가장 많은 9명이 신청했다.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와 울산이 각각 8명으로 뒤를 이었다. 한나라당은 목포,순천 등 호남권 11곳에 지원자가 1명도 없었고,민주당은 대구 8곳,부산 6곳을 포함,영남지역 27개 지역구에 신청자가 없었다.열린우리당은 대구 3곳과 경북 5곳 등 대구·경북 지역 8곳에서 신청자가 나오지 않았다. ●‘거물’ 피하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지역구인 전주 덕진에는 정 의장 외에 당내에서 1명도 신청자가 없었다.천정배(안산 단원)·신기남(서울 강서갑) 의원의 지역구에도 당내 도전자가 나서지 않아 신당 주역 3인방 ‘천·신·정’의 위상이 만만치 않음을 반영했다.김근태(서울 도봉갑) 원내대표에게도 도전자가 나서지 않았다. 민주당도 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의원의 지역구에 도전자가 없었다.특히 조순형 대표의 지역구에는 열린우리당에도 신청자가 없었다. 한나라당은 홍사덕 총무 지역구인 서울 강남을과 부산 북강서갑의 정형근 의원에게 도전자가 나서지 않았다. 반면 전국구 전환설이 있는 최병렬 대표의 지역구인 강남갑에는 도전자가 3명이나 나왔다.민주당도 전남 장흥·영암의 김옥두 의원에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며,나주의 배기운 의원에 최인기 전 행자장관,순천의 김경재 의원에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노관규 전 민주당 예결위원장이 대결을 선언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인 김홍일 의원(전남 목포)에 의외로 정영식 전 행자부 차관 등 3명이 도전장을 던지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옥중 출마 불사 각종 비리혐의로 구속된 현역 의원들도 공천 신청을 불사했다.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과 민주당 이훈평·박주선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반면 한나라당 최돈웅·박재욱·김영일 의원 등은 후보등록을 하지 않았다. 특히 불출마 선언자가 많은 한나라당의 경우 오세훈 의원 등 현역의원 26명이 공천신청을 하지 않았다. ●눈길 끄는 당내 대결 민주당의 경우 서울 영등포을에 박금자 의원과‘아폴로박사’로 알려진 조경철씨가 신청을 했다.여기에 김민석 전 의원의 복당이 확정될 경우 이 지역이 최대 관심지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전주 완산에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과 이무영 전 경찰청장의 격돌도 관심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와 법정공방까지 벌였던 이신범 전 의원이 서울 강서을에서 마포을로 지역을 옮겨 공천신청을 했다.부산 서구에 신청을 한 박찬종 전 의원의 부활 여부도 관심이다. ‘원조 보수’ 김용갑 의원의 지역구에는 조해진·박상웅 부대변인 등 신인들이 도전장을 던졌으며,강원 원주에는 방송인 출신 이계진씨가,춘천에는 KBS 스포츠앵커 출신인 최동철씨가 각각 신청했다.경남 거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김기춘 의원이 단독으로 공천신청을 하게 됐다. ●기자들도 출사표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최구식·이교관·조희천씨가 각각 경남 진주,강원 강릉,경기 고양덕양갑에 출사표를 던졌다.기자 출신 가운데 최연소(34세)인 조희천씨는 열린우리당 유시민의원과 정면충돌한다.민주당에도 정동영 의원 공보특보를 역임한 중앙일보 출신 김현종씨가 전북 전주 완산에 공천 신청을 했다.열린우리당에는 양기대 동아일보 사회부차장과 노웅래 MBC 사회부차장 등이 나섰다. 김상연 이지운 박정경기자 carlos@ ●공천 신청자 명단 seoul.co.kr 게재 18일 마감한 민주당 17대 총선 공모자 명단은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에 실려 있습니다.지난 16일 마감한 한나라당의 1·2차 공모자 및 14일 발표한 열린우리당의 1차 공모자 전체 명단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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