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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단체에 공공복권 발행 허용/재정난 타개 돕게

    ◎이번 국회에 법개정안 상정키로/민간의 지방공기업 투자문호도 개방/내무부 내무부는 22일 지방자치단체가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공공복권을 발행하고 지방공기업에 민간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등을 골자로 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마련,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이번 국회에 상정키로 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복권종류는 광역자치단체가 발행,전국단위로 발매하는 전국자치복권과 기초자치단체가 지역내에서만 판매하는 개별자치복권등 2가지로 복권발행 때에는 반드시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또 복권발매수익금은 지역공영개발사업이나 국민후생복지 증진사업에 한해 투자하도록 했다.
  • 「현대」,영화 수입업에도 손댄다/업자등록 주내 완료

    ◎비디오 판권등 엄청난 수익 노린듯/촬영장 부지까지 물색… 땅투기 의혹도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인 현대전자산업(대표 정몽헌)이 최근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영화수입업자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고있어 그동안 과소비조장에 앞장선 재벌그룹이 이제 영화까지 수입하느냐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있다. 15일 문화부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전자산업은 지난달 중순 영화수입업등록과 영화제작업등록을 신청해 곧 등록절차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현행 영화법은 영화업자가 금치산자이거나 한정치산자,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자,집행유예기간중인자등을 제외하면 등록신청을 반려할수 없도록 되어있어 통상 신원조회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이번 주안에 등록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업계에서는 일단 현대그룹이 영화제작업에 나서는 것이라면 크게 비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대전자산업이라는 기업의 성격상 제작보다는 영화수입배급에 따른 엄청난 수익과 부수되는 비디오판권을 노린 것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또 종합유선방송법안이 최근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회심의절차만 남겨놓고 있어 대량의 프로그램 수요가 있는 케이블TV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서둘러 등록을 하는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있다. 현대그룹은 최근 영화업계 관계자들에게 접근해 『현대전자산업은 수입과 아울러 제작에도 힘을 기울여 대규모 촬영장을 만들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는등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무마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화부관계자들은 이에대해 『문화부가 추진중인 종합촬영장이 완성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데 개별적인 촬영장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영화인들은 촬영장에 대해서도 현대가 언제 완공될지도 모르는 촬영장을 빙자해 대규모의 땅을 사들여 투기에 나서기 위한 우회전술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 “한반도 비핵화선언 추진/경제 비상대책회의 구성해야”

    ◎이기택 민주대표 국회 연설 국회는 8일 정원식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고 민주당 이기택대표최고위원의 정당대표연설을 들었다. 국회는 9일에는 새해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정부측 시정연설을 청취한뒤 10일부터 15일까지 본회의 대정부질문을 벌인다. 이대표는 이날 TV로 중계된 연설을 통해 노태우대통령에게 ▲내년에 있을 4대선거관련 정치일정 제시 ▲수서사건등 「6공비리」청산 ▲돈 안드는 선거를 위한 제도적 방안강구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 ▲악법개폐등 5개항을 촉구했다. 이대표는 『평화공존의 관건인 한반도의 비핵화가 하루빨리 실현되어야 한다』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조속히 이루기 위해 핵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간 3자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이어 『자유로운 통일논의가 보장되어 국민합의에 따라 통일방안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전제,정부·정당·민간단체등이 참여하는 「민족통일 범국민협의회」(가칭)구성을 제의하고 ▲TV등 방송의 일방적 개방 ▲국가보안법 폐지 ▲군축협상 주도 ▲남북교류확대및 불가침선언의 동시적 추진을 주장했다. 이대표는 경제문제와 관련,『폭등하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재정금융 긴축정책을 펴면서 내년예산 증가율을 경상경제성장률인 15∼16%로 재조정하고 사회적·경제적 병리현상의 근원인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공개념을 보다 강화하라』고 정부·여당에 촉구했다. 이대표는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여야는 물론 정부와 소비자·기업·근로자·학계·언론계등이 참여하는 「경제비상대책회의」(가칭)의 구성도 제의했다.
  • 아이티 대통령 복귀/쿠데타 군부서 시사

    ◎미주 기구서도 압력 【포르토프랭스 AP 연합】 아이티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은 5일 군부가 「모종의 보장」을 받는다면 축출된 장 베르트란드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복권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드라 장군은 지난달 30일 아이티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축출된 뒤 일주일째 계속돼온 국내 위기사태가 조만간 해결될 수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 대사도 돕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세드라 장군의 이같은 발언과는 상치되는 성명이 군최고사령부 명의로 발표돼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AP 연합】 미주기구(OAS)외교관들은 5일 아이티의 군사쿠테타를 주도한 지도자들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에서 2일째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만일 군부지도자들이 장­베르트란드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직에 복귀시키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대아이티 보이콧사태에 직면하게 될것이며 쿠대타는 결과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 주택복권 미지급금/작년 이후 94억여원

    주택복권에 당첨됐으나 지급시한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은 미지급금이 지난해 이후 모두 94억1천5백만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건설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부터 지난 8월말까지의 주택복권 당첨금은 모두 9백83억8천6백만원에 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9.6%인 94억1천5백만원은 지급기한인 3개월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아 국민주택기금으로 편입됐다.
  • 솔제니친,17년만에 귀국길 열려

    ◎소 연방 검찰서 「반역죄」 공식 취하/74년 「수용소군도」 발표한뒤 추방 【모스크바 외신 종합】 소연방 검찰은 소련의 망명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72)에 대한 반역죄 기소를 17일 취하했다고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솔제니친은 지난 74년 그에 대해 취해졌던 국가반역혐의 기소가 취하된 것을 17일 환영하고 귀국의 열망을 강력히 나타냈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소련이 낳은 가장 주목할 만한 반체제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의 과거에 대해 침묵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지난 74년 국가반역의 혐의로 조국에서 강제추방당했다. 제2차대전중 육군대위로 독일국경전에 참전한후 암수술과 소련관료체제의 박해,그리고 자신을 강경노선 공산주의자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만든 추방생활을 극복한 그는 소련검찰이 17일 반역혐의에 대한 공소를 취하함으로써 17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수 있는 길이 법적으로 열렸다. 솔제니친의 작품과 용기는 전세계의 경의를 불러일으켰고 그로인해 그는 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62년 그의 수용소생활을 바탕으로 한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일약 명성을 획득했다. 45년 참전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것이 발각돼 8년의 수용소 억류생활 중 암수술을 받았던 그는 이어 「암병동」과 수용소 생활을 그린 「제일원」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서방에서의 그의 명성이 더욱 확고해지나 소련지도부의 그에 대한 박해는 점차 가중됐으며 70년 노벨문학상 수상이후는 더욱 박해를 받았다. 74년 그가 소련강제노동수용소의 기록 역사물 「수용소군도」를 발표하자 격분한 소련당국은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강제로 해외에 추방했다. 이로써 그의 지난 17년간의 망명생활이 시작돼 76년 그는 미국 버몬트주 커벤디시에 정착했다. 이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서 보내며 소련의 역사를 다룬 3부작 「붉은 수레바퀴」를 집필,80년대 후반에 차례로 발표했다. 지난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솔제니친에 대한 복권조치를 단행했으며 솔제니친은 그에 대한 반역죄기소의 취하를 요구했었다.현재 작품집필중인 솔제니친은 그러나 당장 귀국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고르비 복귀후 소 여객기 첫 도착/“모스크바는 축제분위기”

    ◎한소 항공기운항 완전 정상화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복권돼 소련사회가 정상을 되찾은 뒤 처음으로 소련국영 아에로플로트 599 정기편 여객기가 승객 1백2명을 태우고 23일 하오1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탑승객들은 우리나라 승객72명과 소련인 26명 등으로 대부분 국내외 상공인·관광객·유학생 등이다. 이들은 이날 공항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은 현재 행복감에 차있으며 몹시 기뻐하고 있다』고 그곳 표정을 전하면서 언제 커다란 사건이 있었냐는듯 활발하고 밝은 표정으로 서울 땅을 밟았다. 또 이날 하오2시쯤에는 서울에 온 아에로플로트 항공기가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의 우리나라 관광객등 1백30명을 태우고 모스크바로 떠나 한·소간의 항공편운항이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다.
  • “한·소 실질협력 증진”

    ◎대소 경협자금 예정대로 집행/이 외무,국회위무·통일위 답변 국회외무통일위는 23일 상오 이상옥외무부장관을 참석시킨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소련사태에 대한 정부측 보고를 들은뒤 이번 사태가 한소관계및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해 국회차원의 대책을 논의했다. 이장관은 답변을 통해 『이번 사태에 신중하게 대처한 정부의 태도는 현명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히고 『헌정중단을 기도한 쿠데타세력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즉각 표시하지 않았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으나 각국의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대응책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또 『앞으로 소련내 공산당의 보수강경세력은 크게 퇴조하고 신당창설움직임등 정치적 다원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와함께 소련의 정치권력도 각 공화국으로 더 한층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장관은 이어 『한소간 교역·경제과학기술협력·문화교류 등 각 분야의 실질협력을 증진하고 특히 대소경협자금은 소련국내사태추이를 보아가며 정상적으로 집행해 나갈 방침』이라고밝히고 『소·북한관계는 개혁세력의 복권으로 계속 불편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자유·민주의 위대한 승리”/소 쿠데타 실패 각국반응

    ▷미국◁ 미국은 소련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안도와 만족감에 휩싸였다. 부시대통령은 21일 아침 여름별장이 있는 케네벙크포트에서 기자들에게 옐친과의 통화내용을 소개하며 고르바초프의 모스크바 무사귀환 일정을 알렸다. 부시는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안도의 표정으로 『오늘은 매우 좋은날』이란 애기를 여러차례 되풀이했다. 그는 고르바초프가 미국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말을 전화통화에서 전해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쿠데타가 「준비부족」으로 실패했으며 8인위원회 멤버들의 「결단력 부족과 미숙」이 또다른 실패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 22일 파리의 조간신문들은 소련사태의 극적인 반전을 「고르바초프의 복귀」「자유,축복받다」「고맙소,옐친」「회복」등의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이날 아침은 출근길에 신문을 찾는 시민들이 다른날보다 많아 가판대앞에 줄을 서야만 했다. 파리에 관광 또는 친지방문 목적으로 왔다가 쿠데타로 정정이 불안하자 일시 귀국을 보류하고 관망하던많은 소련인들은 이날 기쁨에 찬 표정으로 파리 북역에서 북방행 열차에 올랐다. 프랑스에서는 보리스 옐친의 굳센 투쟁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동안 미테랑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야당쪽으로부터 집중적으로 퍼부어지고 있다. ▷독일◁ 독일정부는 22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귀환과 관련,『소련국민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위대한 승리』라고 환영했다. 루돌프 사이트러 총리실대변인은 『오늘은 소련에서 자유와 민권,민주주의가 큰 힘을 얻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하고 독일은 시민들이 구테타 기도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소련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할것이라고 말했다. 사이트러대변인은 『소련은 서방세계로부터 단호하고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것』이라고 밝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런던서방선진국 정상회담에서 지원을 약속받은 재정지원을 확실히 기대해도 될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일본정부도 다른 서방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권을 거듭 환영하는 한편 이번의 정변이 앞으로 일소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분석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의 쿠데타실패에 대해 외무성은 언론자유·민주화·서방과의 새로운 관계를 유지해온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과로 국민들이 더이상 그 이전체제로의 복귀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고 그것은 보수파가 군장악에 실패한데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이곳의 정치·경제·언론 등 각 분야에서는 쿠데타실패과정에서 능력을 발휘한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중국◁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은 22일 소련의 쿠데타 실패와 관련,『우리는 소련인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며,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귀로 중소양국간 선린우호관계가 89년과 91년에 발표한 공동성명 원칙에따라 계속 발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전외교부장은 이날 하오 솔로비에프주중소련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중국정부는 소련의 내정문제는 소련인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계속 옹호,유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22일 아침 신화통신이 내보낸 모스크바주둔군 철수내용만을 1단으로 간단히 보도했으며 다른 신문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했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서방국들 “경원중단”압력 본격화

    ◎부시,“고르비 복귀시켜라”/EC정상 23일 긴급회담/일서도 서방과 공동보조 취하기로 【워싱턴·런던·파리·도쿄 외신 종합】 미국및 유럽공동체(EC)등 서방국가들은 20일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한데 대한 보복으로 대소 경제·외교적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쿠데타 지도자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고르바초프를 대통령직에 복귀시키라고 촉구했다. 부시대통령은 또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고르바초프 복권움직임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의 전화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부시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유럽공동체도 고르바초프 축출에 대한 항의표시로 대소경제원조의 대부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허드 영국외무장관이 밝혔다. EC는 13억5천만달러의 대소원조를 승인해 놓은 상태다. EC외무장관들은 이에앞서 헤이그에서 회동,대소 경제지원과 소련상황등에 대해 논의했다.허드장관은 대소경제지원 중단에 대해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등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대소경제지원중단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허드장관은 또 소련상황과 향후 대소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EC정상회담이 23일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다.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외무장관들도 21일 브뤼셀에서 특별회의를 갖는다. EC는 대소경제제재와 함께 실각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날 장관급 대표단을 소련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프랑스정부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23일로 예정된 EC정상회담직후 EC대표단이 소련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대표단이 고르바초프와 만나기위해 새로운 지도자들과 접촉을 해야한다 하더라도 이같은 접촉이 새로운 정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이후(해부준수)일본총리도 『소련의 현재 상황은 헌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 소련의 새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이에따라 일본은 대소경제지원을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근로복지복권 나온다/수익금 근로자회관설립등에 사용

    ◎93년 만료 엑스포복권 뒤이어 발행 중소기업근로자복지기금 마련을 위한 「근로복지복권」이 발행된다. 노동부는 12일 근로자복지향상을 위한 「근로자복지대책 세부실천계획」을 확정하고 관계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중소기업근로자의 휴양소와 문화센터,복지매장을 설립하기위해 근로복지사업기금법을 제정하고 근로복지진흥기금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진흥기금의 재원을 근로복지복권(가칭)과 사업주단체지원금에서 마련키로 했으며 근로복지복권은 근로복지공사가 오는 93년 11월7일 종료되는 대전엑스포복권을 인수해 발행토록 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이와함께 장기근속 생산직근로자에게 택지를 우선 공급하기위해 92년 6월까지 경지나 산지에 근로자주택을 건설하고자 할경우 용도변경을 해주는 한편,공공개발택지분양시 일정비율을 근로자주택건설용으로 우선공급토록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또 현재 중고등학교에만 인정하고 있는 야간특별학급제도를 93년부터 전문대학까지 확대하고 92년부터 공업단지 인근 대학등 야간학과수요가 있는 4년제대학을 중심으로 야간학과 공학계열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 비운의 “삼성 황태자”/고 이창희회장의 일생

    ◎한비사건이후 고 이 회장 눈밖에/충주공장 화재후 지병악화 겹쳐 고 이창희회장은 한때 국내 최대재벌 삼성그룹의 「황태자」로 부각되기도 했고 사카린밀수로 큰 파문을 일으킨 한비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으며 부친인 고 이병철회장의 눈에 벗어나 삼성에서 축출됐었다. 미국유학후 귀국,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오디오및 비디오테이프사업에 뛰어들어 10여년만에 재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급성장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뜻하지 않은 화재로 충주공장이 한순간에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참담한 경험을 맛보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회장은 67년 한비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도 삼성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건설중이었던 한비의 부사장직을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73년 6월에 미국 MMC사와 합작으로 새한미디어 전신인 마그네틱 미디어 코리아사를 인천 주안공단에 설립한뒤 80년 1월 새한전자와 미디어를 합병,새한미디어를 설립했다.새한미디어는 그의 특출한 국제감각과 비디오시대를 맞아 고속성장을거듭,기업을 공개한 86년에는 자본금 1백12억원에 당기순이익 3백15억원을 기록함으로써 재계를 놀라게 했다.이같은 경영수완으로 10여년 동안 절연상태에 있었던 이병철회장도 노여움을 풀어 87년 운명하기 직전 삼성그룹 사장단회의에도 참석하게 했었다.이때문에 재계에서는 부친의 사면복권은 물론 삼성의 「황태자」자리에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한때 나돌았었다. 그러나 이병철회장이 죽고 88년 3월에는 충주공장마저 화재로 전소되면서 지병이 악화되기 시작,투병생활을 해오다 끝내 운명했다.
  • 남아공,20년만에 국제무대 복귀/미,경제제재 철회의 함축

    ◎인종차별 폐지노력 긍정평가/ANC선 “정치범 석방안해 시기상조” 반발 미국이 지난 5년간 계속돼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10일 해제함으로써 남아공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재가입에 이어 국제무대에 완전복귀하게 됐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남아공은 미의회가 지난 86년 대남아공 제재조치를 하면서 제시했던 해제에 필요한 5개항의 전제조건을 충족시켰다』고 밝히면서 『남아공이 인종차별 없는 민주주의를 향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데 클레르크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폐지를 향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현지 분석가들은 정치범석방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해제조치를 내린 것은 그동안의 제재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으며 때문에 미국은 더이상 「명분」에 시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실 지난달 남아공이 주민등록법을 폐지한 것과 때를 같이해 일본은 매년 20%이내의 범위에서 남아공과의 무역을 확대키로 했으며 이보다 앞서 EC(유럽공동체)는 지난 4월 남아공과 무기거래를 제외한 모든 상품의 교역을 허용한 바 있다. 미 의회는 지난 86년 6월 남아공정부가 소웨토흑인폭동 10주년을 앞두고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EC·유엔 등과 함께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취하면서 ▲인종차별법 폐지 ▲비상사태 해제 ▲야당등 정당의 합법화 ▲인종차별 없는 정부구성을 위한 흑인세력들과의 협상개시 ▲정치범석방 등 5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언제든지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남아공정부는 이 가운데 이미 4개를 충족시켰다. 인종차별법 폐지와 관련해서는 올해초 거주지역 분리법을 폐지한데 이어 지난 6월 주민등록법을 폐지시킴으로써 법적인 개선조치를 취했고 비상사태해제건은 지난해 6월 4년간 실시했던 비상사태령을 해제했었다. 때문에 이번 미국의 제재조치 해제는 비록 1백% 조건이 충족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조치로 평가되고있다. 남아공에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범석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아공 최대의 흑인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아직도 1천여명에 가까운 정치범이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제재조치가 남아공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며 흑인의 투표권을 포함한 추가개혁조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남아공정부에 대한 계속적인 압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내 민주당의원들을 포함한 진보주의 세력들도 남아공정부가 취한 5가지 조건의 「기술적인 수락」만을 보고 경제제재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천여명의 정치범이 석방됐으며 남아공의 개혁정책은 계속 진전될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는 부시대통령의 대남아공정책은 미국의 뒤를 이어 조만간 해제조치를 취하겠다는 일본·이스라엘 등의 동조행위와 함께 지난 20년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위기에 몰렸던 남아공을 국제무대에서 「복권」시킨 셈이다.
  • “남북교류 부진은 북의 선별초청 때문”/10일 본회의(의정중계)

    ◎「남북 유엔협력기금」 설치할 용의는/미군 핵과 북의 핵사찰은 별개문제 ◇김중위의원(민자)=유엔가입이후 북한의 외교전략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가.현재 정부가 구상중인 남북한 유엔대표부 협의체 산하에 「남북한유엔협력기금」을 설치,유엔이 결의하는 모든 국제적 부담금을 공동으로 부담토록 할 용의는 없는가.북한의 대일·대미관계개선노력에 우리정부는 어느정도,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밝혀라.남북한간의 민간교류를 강화키 위해 서울대학교와 평량금일성대학간의 자매결연과 대학생의 남북유학교류까지 추진할 의향은.전쟁억지력의 지렛대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미 조야에서 대두되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속에서 남북간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복안은. ◇유인학의원(신민)=대소경협의 대가는 무엇이며 소련과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한반도의 비핵화지대를 위해 우리나라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사정거리 5백㎞이하의 전술핵의 전면철수를 단행할 의향은 없는가.통일비용의 산출근거는 무엇이며 1∼2년내에 통일돼도 비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대일무역 역조의 시정책과 일본문화의 침투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일제 징용 미불임금을 환불받을 방안은 무엇인가. 중국이 수교를 미루는 이유가 무엇이며 대만과의 외교관계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상회의원(민자)=북한은 이미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를 전제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북한이 70년말부터 계속 주장해온 「한반도비핵지대화」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북한은 앞으로 2∼3년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에서 철수시키기만 하면 앞으로 핵개발을 완전포기할 것으로 보는가.주한미군의 연차적 감축과 핵무기철수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본노선에 입각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정부의 견해는.지난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양정상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는 연계할 수 없는 별개의 사항으로 규정짓고 북은 무조건 핵사찰을 수락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미군의 핵무기철수는 기정사실이 아닌가. ◇정 웅의원(신민)=남북한 유엔가입에 따라 대두되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포함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복안이 있는가.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유엔가입에 대한 절차를 북한측과 긴밀히 협조하여 동시신청,단일안건으로의 처리 등을 타결지어야 한다고 보는데 장관의 견해는.장관은 신민당의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의 내용을 검토한 바가 있는가.6공들어서 북한을 방문한 인사는 총3백23명인데 이중 순수한 민간인은 5명밖에 되지 않는다.이렇게 인적교류사업이 부진한 것은 정부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김제태의원(민자)=남북한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정부입장은 무엇인가.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베를린개최 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의 실체는.북한의 대일수교추진현황및 대미접근속도,미국의 태도 및 향후 전망을 말해달라.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중관계의 수교시기 및 수교이후의 전망은.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적정방위비와 이를 위한 확보대책은.소련및 중국의 대북군사원조현황과 우리정부의 대응책은. ◇정원식국무총리=정부는 국가안보·공공질서·남북관계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민간인들의 방북을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재야인사들의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북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체험,통일문제에 올바른 이해를 갖게될 것이다. 쌀·금융시장 개방문제는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있으며 구속자들은 지난 87년까지 모두 사면복권돼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고있지 않다.광주시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묘지공원화·위령탑건립및 관련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단체들과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천지무역과 금강산개발국제상사간에 남한의 쌀과 북한의 시멘트·석탄을 직교역하는 작업이 추진됐으나 북한이 시멘트·석탄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더러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며 연기를 요청했다.그렇다고 직교역길이 막혔다고 보진 않으며 그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일부 국내학술기관에서는 우리의 통일비용을 2천∼4천억원정도로 추정,통일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차원에서 검토된 적은 없다.독일도 통일이후 당초 예상보다 통일비용이 2∼3배 더 소요되는등 통일시점에 따라 그 비용규모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북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도 어렵다.정부는 앞으로 통일비용규모와 재원조달방안을 신중히 연구하겠다. 남북간 인적교류가 부진한 이유는 북한이 친북 성향의 재야인사나 단체를 선별 초청 했기 때문이다. ◇이상옥외무부장관=북한과의 유엔대표부협의체구성문제는 북한이 보다 현실적 시각에 따라 평화를 지향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지난 5월 정부는 유엔가입안을 동시제출하는 문제를 논의키 위해 유엔주재 남북대표부간 협의를 제안했으나 북측의 긍정적 호응이 없었다.북한이 이미 유엔가입안을 제출했고 우리는 이달말이나 8월초에 가입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과거 동서독의관례 등으로 미뤄볼 때 유엔총회나 안보리에서는 단일결의안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원폭피해자의 치료·요양이 이뤄지도록 일본 정부와 교섭한 결과 현재 일본측이 40억엔 지원을 약속하는 등 가능한 범위내에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상연내무부장관=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현재 내무부 소관업무 1백66종을 시도에 이관했고 시 도에서는 3백82종을 시 군 구에 이관해 자율성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지방재정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담배판매세 1조5천억원을 지방에 이관했고 내년에는 지방양여금을 1조원이상으로 확대해 재정자립에 기여토록 하겠다. ◇이종구국방부장관=1990년대 말까지는 국방연구비를 국방비 대비 5%로 확대해 첨단기술장비를 개발토록 하겠다.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NCND정책에 정부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북한의 핵사찰문제와 스커드미사일 전환배치문제를 연계해 주한미군의 핵정책을 다루는 것은 불합리하며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와 대북군사정책을 연계시킬 수 없다. 일본의 군사력증강문제는 지역내 균형유지,전쟁억제력강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미군의 타지역이전,소련의 정책과 마찰을 빚을 우려도 있다.한일간의 군사적 협력은 제한적인 교류협력에서 탈피해 외교적 측면에서 전향적인 협력으로 강화해 나가겠다.일본의 군사력증강에 대한 목적,군사력사용 용도 등에 유의하면서 대처하겠다.우리의 원자력 발전소는 순수한 민간목적이며 주기적으로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영변발전소는 송전선이 없고 재처리시설을 건설중이며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어 군사목적임이 분명하다.남북간 군비통제 협의는 북의 주장처럼 미군철수 등을 전제로 한다면 지루한 논쟁에 불과하다.군사정보교환·군인사교류·핫라인설치·대규모 군사훈련 상호참관 등 신뢰가 조성된 뒤 성과에 따라 군비통제 협상으로 진전돼 나가야 한다.
  • 「6·29」 4주년 평가와 과제

    ◎“지자제로 대미”… 민주화 정착단계 진입/제도·법령 꾸준한 정비,“탈권위” 큰 진전/“대화와 타협” 정치문화 쇄신이 숙제로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은 29일로 4주년을 맞는다. 6·29선언은 한마디로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체제에로의 이행을 약속한 것이라고 할 때 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4개월 동안 이를 착실히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금년 3월과 지난 20일 실시된 시군구 및 시도의회의원선거가 마무리됨으로써 6·29선언은 사실상 실천을 완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9선언 8개항을 살펴보면 ①조속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새 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부이양 ②대통령선거법개정과 공명정대한 선거관리 ③시국관련 사범의 대폭석방 및 사면·복권 ④인간존엄성의 존중과 기본권의 최대한 신장 ⑤언론기본법 폐지 등 언론자유의 창달 ⑥지방자치,대학자율화,교육자치 등 사회 모든 부문의 자치와 자율보장 ⑦정당활동의 보장과 대화·타협의 정치풍토 마련 ⑧과감한 비리척결로 밝고 맑은 사회건설 등이다. 이 가운데①②③항은 6공출범 전후로 모두 실천되었고 ④⑤⑥항은 대통령취임 후 관계법의 민주적 개폐와 실질적인 운영을 통해 보장되었으며 ⑦⑧항도 꾸준히 진전돼 왔다. 다만 교육자치,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부문은 실천과정에 있거나 아직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6·29선언을 항목별로 미시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4년을 넘기는 마당에서는 좀더 거시적으로 정치적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의 석학인 후안린츠 교수(미 예일대)의 「틀」을 잠시 원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페인,포르투갈,중남미,그리스의 사례를 비교연구해 온 그는 권위주의→민주화 전환단계를 자유화단계와 민주화단계로 나누고 민주화단계는 다시 ▲민주화의 개시 ▲민주화의 실현 ▲민주화의 공고화로 세분하고 있다. 자유화의 단계는 억압의 해제를 의미하며 여기에서는 법률제도의 개정,억압담당기관의 축소,반대인사의 공인이 이뤄진다. 여기에 우리의 경우를 대입해 보면 민주주의제도화와 관련한 법령은 그 동안 1천8백여 건을 정비했고 안기부·보안사(현 기무사) 등 과거 인권억압기관으로 불리던 기관들은 기구정비와 함께 그 운영을 크게 쇄신했다. 또한 과거 반정부 재야인사들이 제도권정당에 대거 흡수돼 야당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현 정권을 반대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탄압을 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크게 보아 자유화단계는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화단계는 민주주의방식에 의한 경쟁시대가 열리는 것으로 이 중 첫 단계인 민주화개시는 여야합의에 의한 6공헌법의 발효,민주화의 제도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언론자유,사법권의 보장으로 이미 이뤄진 상태이다. 「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인 민주화의 실현은 공정한 선거관리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선거,결사·집회의 자유,지방자치의 실시가 되는 단계이다. 민주화의 세 번째 단계인 민주화의 공고화는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 정착되는 것을 뜻한다. 6·29선언 4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의 「권위주의→민주화전환단계」는 과연 어디쯤 와 있겠는가를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민주화의 실현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김학준 대통령정책조사보좌관은 이에 대해 『우리의 민주화 위상은 「민주화의 실현」으로부터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이는 대국민 민주화의 약속인 6·29선언이 사실상 모두 실천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6·29선언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앞으로 남은 과제는 민주화의 공고화 즉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정치문화개선의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는 정치풍토의 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풍토쇄신은 노 대통령 자신만의 의지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유권자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6·29선언의 완성은 우리 국민 모두의 과제라고도 생각된다. 좀더 현실적인 과제는 앞으로 남은 지자제단체장선거,14대 총선,차기대통령선거 등의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일정을 마무리짓게 되면 우리의 민주화는 「실현」단계에서 「정착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며 「6·29선언」도 명실상부하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 구동독 치하 투옥인사 복권작업 활발/베를린=이기백(특파원코너)

    ◎군재등서 “유죄”… 15만명 억울한 옥살이/정부 명예회복 추진… 6만명 복권신청/연내 법개정… 보상금 인상 구동독 치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었던 인사들에 대한 복권작업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소련 군사재판 또는 구동독 정권에 의해 부당하게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은 15만여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2만7천여 명이 소련 군재에 의해 투옥됐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현재 복권신청중인 사람은 6만여 명. 독일정부는 올해 안에 이들에 대한 복권절차를 단순화해 명예회복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형편없이 낮은 보상금을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킨켈 법무장관은 독일 분단의 희생자인 이들에 대한 복권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통일 후 구동독지역 법원들이 겪고 있는 법관 부족사태 때문』이라고 밝히고 『구서독의 각주들은 법관들을 구동독지역으로 파견,이들의 복권수속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정부는 구동독 판사들이 이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만큼 복권업무에서 구동독 판사들을 배제시키고 구서독 판사들을 참여시켜 결정을 내리도록 했으나 구동독지역 법원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판사가 적어 복권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독일통일조약은 「정치적인 동기로 형을 선고받거나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투옥된 희생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통일 후 지체없이 법적 제도를 마련,소정의 절차를 밟아 복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복권과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보상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통일조약 체결 직후 치러진 자유선거에 의해 구성된 구동독 의회는 복권법을 제정,형법에 의한 복권규정·연합군 점령시 투옥자에 대한 복권규정·부당한 법집행에 따라 전과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복권규정 등을 마련했다. 이 복권규정에 따르면 1945년부터 55년 사이에 소련 군재에 의해 형을 선고받은 독일인들은 복권대상에서 제외토록 되어 있다. 이는 소련 군사재판에 의해 결정된 판결을 독일 법정에서 다시 다룰 경우 소련의 주권이 손상당할 소지가 있다는 모스크바측의 주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소련군이 동독을 통치했던 45년부터 50년까지 소련군에 의해 검거돼 소련 수용소에서 옥살이를 했거나 사망한 사람과 후에 재판도 받지 않고 석방된 사람들은 복권대상에서 제외되게 됐다. 45년 소련군은 동독 진주와 함께 비밀경찰을 동원,나치군대에 복무했던 군인들과 정치인,12세 이상의 독일인 가운데 소위 위험인물들을 가려내 나치가 사용했던 전쟁포로수용소와 집단수용소에 감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죽었으며 이들 가운데는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구동독 정부가 들어선 1년 후인 50년 소련군의 수용소는 폐쇄되고 생존자들은 재판도 받지 않은 채 석방되었다. 점령군의 지위에서 소련군은 독일인들에 대한 재판권을 55년까지 행사했으며 군재에 의해 대지주·기업가·공무원·각종 자영업자들이 유죄판결을 받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당했다. 소련측의 집계에 따르면 45년부터 50년까지 이들 수용소에 억류되었던 독일인들은 모두 12만2천6백7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4만5천2백62명이 석방되고 1만4천2백2명이 동독정부에 인계되었으며 1만2천7백70명이 소련으로 이송되었다. 또 4만2천8백89명이 수용소 생활중 사망했으며 7백56명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구동독이 마련한 복권법에서는 복권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앞으로 구조방법을 놓고 격론이 일 것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소련군이 수용소를 폐쇄하면서 50년 켐닛츠시 지방법원에 인계해 발트하임수용소에서 재판을 받은 3천5백여 명은 독일법정에서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복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발트하임 법정」으로 알려진 판결과정에서 피고인 한명당 재판시간은 불과 몇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같은 속성판결에서 수백명이 10∼25년의 징역형을,32명이 사형을 선고받아 이 중 26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같은 이유로 같은 무렵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복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복권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형평성을 잃고 있어 킨켈 법무장관은 올해 안에 복권법의 불합리한 점을 개정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분단의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방법과 함께 이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액수와 보상방법 등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복권법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복권된 사람들에게 형기가 2년 미만일 때는 한달에 80마르크(3만3천6백원)씩,2년 이상인 때는 한달에 2백70마르크(11만3천4백원)씩 환산해 보상하도록 되어 있어 2년 복역자의 경우 1천9백20마르크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독일정부는 복권법을 개정,보상금 액수를 현재보다 4∼5배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편 복권대상자 보상의 경우 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구 동독지역에서 살아온 사람과 구 서독으로 넘어와 생활한 사람들을 구별해야 한다고 킨켈 법무장관이 최근 시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킨켈 장관의 주장에 따르면 출소 후 서독으로 넘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과 계속 구 동독에 머물러 있으면서 억압을 받아왔던 사람과는 엄연히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 동독의 과도의회가 마련한 보상법이 획일성을 띠고 있는반면 킨켈 장관의 주장은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상방법을 놓고 사회주의적인 방법과 민주주의적인 방법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 같아 그 결과가 주목된다.
  • 중국/겉으론 평온 안으론 진통/오늘 「천안문사태」 2주년

    ◎국제고립 벗기·내부통제 강화 골몰/일부 대학선 반 등소평 전단 나돌아 중국당국은 2년 전 6월4일 북경 천안문광장의 민주개혁 요구 시위를 총칼로 진압했던 「6·4사건」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적잖이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6월이 다가오면 미국측에서 인권문제를 내세워 최혜국대우의 철폐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도 「6·4사건」의 유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사건발발 2주년을 맞는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당시 시위군중 1천5백여 명(중국 당국 주장 2백여 명)을 무차별 사살,세계를 경악케 했던 「충격파」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6·4사건」을 애도하는 해외거주 화교의 시위군중 규모도 1주년이던 지난해에 홍콩 10만명,마카오 1천명,샌프란시스코 3천명이던 것이 올해엔 2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2일 각각 1만명,1백50명,1백명 등으로 열기가 크게 식었다는 게 홍콩 언론들의 분석이다. 반체제 물리학자 방려지 등 해외망명중인 민주인사들의 활동도 점차 활기를 잃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그 동안 중국에 가해졌던 서방국가들과 세계은행(IBRD) 등의 경제제재도 대부분 풀린 상태이다. 어느 나라건 비슷하겠지만 특히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민중의 항거와 권력자의 탄압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천안문광장 곳곳을 피로 물들이고 마감한 「6·4사건」도 역사상의 수많았던 민·관 투쟁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는 또 새로운 항거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6·4사건」과 관련,중국 당국은 시위군중을 반혁명 폭란분자로 매도하고 국민들의 슬픔을 달래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처방은 「안정」을 확실히하기 위해 정치적 규제를 강화하는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중국 당국의 국가지도노선은 『경제는 개방개혁 등으로 자유화하되 정치는 콘트롤을 강화해야…』한다는 최고실권자 등소평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특히 현재의 중국 지도층은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에서 받은 배움을 통해 국민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 지도층이 동구·소련의 민주화의 혼란을 통해 절실하게느낀 점은 공산당이란 어떤 희생이나 비용지출이 따르더라도 그 지도력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중국 지도층은 마르크스 레닌과 모택동 사상 견지,프롤레타리아 전제 등의 4원칙론을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6·4사건」 이후 북경 상해 남경 등 주요도시 대학생들에 대해 1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중국 지도층은 현재 동구와 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정치적 어려움이 사회주의를 외면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로 지적하고 있으며 천안문 시위의 무력진압을 정당화하는 호재로 한껏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 당국은 또 그 동안 「6·4사건」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구사,적잖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지적된다. 그들의 우방인 북한과 대치상태에 있는 한국과 무역대표부를 상호 개설했고 이스라엘 남아공 등 과거 적대시했던 국가들과의 관계도 호전시켰다. 미·일 등 선진국 지도자들과의 정치적 유대도 심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은 「6·4사건」의 장을 닫아버리기 위해 지난 연말 사건관련 인사 7백15명에 대한 재판을 모두 끝냈고 해외망명인사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정부 비방만 않는다면 처벌 없이 귀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엔 천안문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시킨 조자양 전 당 총서기와 그의 추종세력 가운데 호계립(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 심복 3명을 복권시켜 정치사회의 안정을 과시하는 제스처도 취했다. 지난해 「6·4사건」 1주년을 맞았을 땐 약 1주일 동안 폐쇄했던 천안문광장도 올해엔 평양시처럼 개방했다. 또 북경대학교 등 일부 대학에서 「천안문사건을 잊지말자」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전단이 뿌려지고 등소평의 이름과 발음이 같은 소병(작은 병)이 내팽개쳐져 깨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대규모 시위의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중국 국민들에게 남겨준 상처는 너무 깊어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조자양 측근 3명 복권/호계립·예행문·염명복등 요직 중용

    【북경 AP AFP 연합】 지난 89년 6월 천안문사태에 대한 문책으로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해임되었던 조자양의 측근 3명이 최근 국무원의 차관급 직책을 받아 복권됐다고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1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조가 당총서기로 있을 때 정치국의 이념담당 상무위원이었던 그의 최근 측근 호계립을 기계전자 공업부 부부장,중앙위원회 서기였던 예행문을 국가계획위원회 부주임,통일전선공작부 부장이었던 염명복을 내정부 부부장에 각각 임명했다고 전했으나 조 자신의 복권여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통신은 그러나 호 등 3인이 지난 89년 당했던 정치적 숙청사실 및 이들의 복권이유 등은 밝히지 않았는데 홍콩언론들은 막후에서 아직도 중국 최고의 실권을 행사중인 올해 86세의 등소평이 중국의 권력구조내에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들의 복권을 원했다고 보도했다. 현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은 조자양이 반대했던 천안문의 군투입을 「잘못된 것」으로 인정치 않는 한 조의 복권은 단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보안사범」 곧 사면조치/당정/대상자 2백50여명으로 확정

    정부와 민자당은 22일 하오 당정회의를 열어 국가보안법 개정에 따른 국가보안사범의 사면폭을 논의,1백여 명을 석방하고 1백50여 명에 대해서는 사면·복권·감형·기소유예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날 회의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취지를 살려 관련자들의 사면폭을 대폭 확대키로 했으나 임수경양과 문규현 신부의 경우 이번 조치에서 제외시킨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서경원 전 평민당 의원의 밀입북사건과 관련,불고지 혐의로 기소된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문동환·김원기·이철용 의원에 대해서는 공소를 취하키로 했으며 김 총재의 경우는 외환관리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도 공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정부는 23일 하오 국무회의에서 사면안을 의결,노태우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을 빌려 특별사면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측에서 이종남 법무장관·정해창 청와대비서실장·손주환 정무비서관,당측에서는 김윤환 총장·나웅배 정책위 의장·김종호 총무와 김동영 정무1장관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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