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신춘문예/ 심사평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 수는 9편이었는데,그 중4편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쩌다 한 번쯤 써 본 듯한 조야한공작품들로 질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수준을 보였다.그래서우선 심사하기에는 편했지만,예심에서 탈락한 수백 편의 응모작들의 작품 수준이 그보다도 더 못했으리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물론,이러한 현상은 요즈음 거의 모든 문예 현상모집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그렇지만,대학의 문예창작과가 대거 늘어나고,문화센터를 비롯한 많은 사설 단체들에 문예창작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등,십년전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게 일어나고 있는 문예 창작의붐을 생각하면,그 성과가 너무 빈약한 것에 실망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응모자들을 성별로 따져 보자면,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이것은 문학 창작의 붐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고,남자들은 여자세에 밀려 여성화 되고 있음을 뜻한다.물론 여성적 가치의 문학화·예술화는 여자뿐만 아니라,남자에게도 바람직하다.남자는 누구나 그 내면에 여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특히 일상 속의 감성적 디테일을 즐겨 다루게 되는데,문제는 작품에 형상화된 감성들이 천박하고 값싸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이번에 응모한 작품들도 대부분 그러한 수준이어서안타깝다.예컨대 감성이 병든 젊은이들이 연출해내는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적잖은데,너무 손쉬운 처리도 문제이지만,우선 그러한 소재의 선택 자체가 진부하고 도식적이다.소비향락 문화 속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저 젊은 군상 속에 그처럼 병든 자들이 있다면,무엇 때문인지 정당한해명을 위한 이성의 작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좀 과격한 이분법으로 말해서,감성과 일상의 미시 서사가 여성적인 것이라면,이성과 역사의 거시 서사는 남성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어느 한 쪽 문학만 존재하는 이러한 불구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남성적 가치들에 토대를문학이 한시 바삐 복권되어야 하겠다.
최종 후보로 오른 네 작품은 ‘쇼윈도’,‘달력’,‘여름나기’,‘강물의 대화’였다.‘쇼윈도’는 요즘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인 피어싱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다분히 엽기적이긴 하나 내용이 부실했고,치매를 앓고 있는 노파와 손녀가 한 방에 기거하며 겪는 갈등 관계를 그린 ‘달력’은 거칠어서 오히려 싱싱하고 구수한 입담이 좋았으나,이야기를 하다 만 것처럼 끝마무리가 무성의했고,‘여름나기’는 문체의 지적인 시도 자체는 격려할만 하나,지나친 언어 유희가 큰흠이었다.당선작으로 선정된 ‘강물의 대화’도 약점이 있긴 했지만,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무엇보다 자료를 별로 가공하지 않고 집어넣은 듯한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모태 귀환이라는 새롭지 않은 주제를 남한강의 뱃길따라 흘러 온 옛 서정과 성공적으로 어우러지게 하여 잔잔한 우수를 자아내게 하는 시적 역량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김원일·현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