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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최악 홍수 피해…김정은, 수해현장 방문 외면 왜

    北 최악 홍수 피해…김정은, 수해현장 방문 외면 왜

    북한은 최근 관영매체를 통해 9월 초부터 시작된 장마로 함경북도 지역에 해방 이후 최악의 대홍수가 났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정작 김정은은 수해 현장 방문을 외면하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인 ‘내나라’는 지난 16일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인명피해가 수백명에 달한다”며 6만 89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또 총 2만 9800여동의 살림집이 피해를 입었으며 900여동의 생산 및 공공건물들이 파괴·손상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틈만 나면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띄우고 있는 북한의 선전·선동 매체들에서 김정은이 홍수 피해 현장을 현지지도했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조선중앙TV도 지난 17일 김정은이 피해 현장은 찾지 않은 채 복구작업용 굴착기만 보낸 것으로 보도하며 “유압식 굴착기 전달모임이 현지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앞서 김정은은 5차 핵실험 이후 첫 공개 일정으로 수해 현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두 곳을 현지지도했다. 그는 지난 13일(보도일 기준) 인민군 제810군부대 산하 1116호농장을 택했으며, 15일에는 새로 건설된 보건산소공장을 시찰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홍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지 않는 것과 관련, 참혹한 피해 현장을 지도자에게 드러냈다가 ‘심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간부들의 ‘보신적인 태도’와 피해 현장의 ‘민심 이반’에 따른 지도자의 신변 안전 우려 등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강성대국’, ‘지상낙원’ 등으로 자칭하는 북한의 특성상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안을 대면 보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집권 5년간 이른바 ‘불경죄’ 등의 이유로 숙청·처형된 북한 간부는 100여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일부는 제대로 된 법적 절차도 없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18일 “어느정도 피해 수습이 다 된 뒤 보고가 이뤄지고, 이후 현장 방문이 고려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경주 지진피해 신고 급증…부상 48명·재산피해 4000여건

    경주 지진피해 신고 급증…부상 48명·재산피해 4000여건

    지난 12일 경북 경주에서 두 차례 발생한 강진 피해 신고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8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번 지진으로 인한 도내 인명피해는 48명, 재산피해는 4400여건으로 집계됐다. 피해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4일 현재 인명피해가 29명, 재산피해가 466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인명피해는 2배로 늘었고 재산피해도 10배 늘었다. 지금까지 신고된 환자 48명 중 13명은 골절이나 열상으로 입원했고, 35명은 가벼운 찰과상으로 외래 치료를 받았다. 재산피해는 경북도내에서만 4438건 들어왔다. 경주 4086건, 포항 121건, 영천 74건, 경산 41건, 청도 115건, 칠곡 1건 이었다. 제일 잦은 신고는 기와 탈락으로 총 2166건이었다. 벽체 균열 신고가 1099건, 담장 파손 732건, 내장재 파손 26건, 유리 파손 8건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경주 황남동 한옥마을은 3317동 가운데 670동이 벽체 균열과 기와 탈락 등의 피해를 당했다. 자동차 등 주택 외 기타 재산 파손 신고도 407건이었다. 경주시는 지난 17일까지 한옥 기와 파손 등 사유 재산 피해액이 약 75억원, 문화재 등 공공시설 피해액이 32억 원 등 전체 피해액이 10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국민안전처는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경북도에 재난 특별교부세 27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구체적인 복구 계획 수립에 앞서 주택 파손 등 지진 피해 주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먼저 지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9일까지 피해 사전 조사를 한다. 한편,경주시는 체계적이고 신속한 복구를 위해 정부에 특별재난 지역 선포를 요구했다. 또 기반시설 조성 특별교부세 30억 원,한옥지구 기와 지붕 교체비용 70%를 정부에서 지원해 줄 것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풍에 남부지방 물 폭탄…낙동강 하류 홍수주의보

    태풍에 남부지방 물 폭탄…낙동강 하류 홍수주의보

    추석 연휴 막바지에 찾아온 태풍으로 남부지방 곳곳이 물 폭탄을 맞았다. 집중호우로 경남 낙동강 하류에는 홍수주의보가 발령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12일 역대 최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경북 경주에는 150.5mm의 폭우가 쏟아져 복구가 지연되고 있다. 18일 기상청에 따르면 제14호 태풍 ‘므란티’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은 물난리가 났다. 지난 16일부터 누적 강수량은 경남 남해 284mm,통영 209.2mm,진주 181.6mm,거제 178.5mm,경북 포항 166.9mm,전남 보성 176mm,고흥 184.1mm,여수 184.2mm다. 전날 발효한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는 모두 해제됐다. 지난 12일 진도 5.8의 지진이 난 경북 경주에도 150.5mm의 비가 내려 피해 복구 작업이 더뎌지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14호 태풍이 소멸하며 수증기가 유입돼 많은 비가 내렸다”며 “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진로에 따라 또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으니 저지대나 상습 침수지역은 비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알렸다. 낙동강 홍수통제소는 이날 오전 11시를 기해 낙동강 경남 밀양 삼랑진 일대에 홍수주의보를 내렸다. 삼랑진 지점은 수위가 5.0m(해발 기준 4.03m)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홍수주의보가 발령된다. 삼랑진 지점의 수위는 전날부터 낙동강 유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계속 상승했다. 낙동강 홍수통제소 측은 “오후 1시쯤 홍수주의보 수위에 육박하거나 수위를 넘길 것”이라며 “삼랑진 하류 지역 주민들은 수위 상승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유의해달라”고 말했다. 전남에서는 시간당 70mm가 넘는 집중호우로 계곡 야영객이 고립되고 농경지와 도로 침수가 잇따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진 이어 폭우’ 경주 2차 피해 우려…“여진도 이어지는데”

    ‘지진 이어 폭우’ 경주 2차 피해 우려…“여진도 이어지는데”

    지난 12일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던 경북 경주에서는 태풍에 따른 폭우로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관측 사상 가장 큰 지진이 일어난 경주에는 지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으로 인명 피해는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 13명, 찰과상이 35명에 이른다. 건물 균열 1081건, 지붕파손 2083건, 담 파손 708건 등 피해가 났다. 이에 따라 경주에서는 지진피해 복구가 한창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간당 10㎜의 장대비가 내린 17일에도 경주시청 공무원과 전문건설인협회 소속 회원 50여명이 황남동 등 피해 지역을 돌며 집 내부에 비가 새지 않는지 집중 점검하고 있다. 경주에서는 1000명이 넘는 공무원, 군인 등이 폭우에 대비해 지난 16일까지 지붕 기와 덮기 등 응급 복구를 했다. 그러나 지진 발생 5일이 지나도록 350차례 여진이 일어나 시민 불안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더구나 태풍으로 폭우가 내려 추가 피해가 나오는 게 아니냐고 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경주 황성동 김모(39·여)씨는 “강진이 난 뒤에도 계속 여진이 이어져 깜짝깜짝 놀란다”며 “태풍 영향으로 폭우까지 내리니 부서진 지붕이나 담이 허물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경주시 등은 경찰, 군, 봉사단체 등과 피해가 많은 외동읍, 내남면, 황남동, 월성동 등 300곳에서 무너진 흙더미를 치우고 집과 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그러나 큰비로 복구에 차질이 빚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호우주의보가 내린 경주에는 지난 16일 오전부터 17일 낮까지 100㎜가량 내렸고 오는 18일까지 80㎜ 안팎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기상청은 예보했다. 기상 당국 관계자는 “경주는 큰 지진이 발생한 진앙이라서 다른 곳보다 지반이 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금이 간 집이나 담 등 위험한 장소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주·전남에 호우특보…계곡 고립에 주택·도로 침수까지

    광주·전남에 호우특보…계곡 고립에 주택·도로 침수까지

    추석 연휴 주말인 17일 광주·전남지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져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날 9시 1분쯤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 계곡에 사람이 고립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119구조대가 구조에 나섰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는 사다리와 튜브 등을 사용해 30여분만에 계곡에 고립된 주민 2명을 구조했다.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호우 경보 등 호우특보가 내려진 광주·전남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으며 침수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 월곡동 우산시장과 영암군 삼호읍 상가에 침수 신고가 들어왔고 나주시 왕곡면 반남면의 한 주택도 침수돼 119구조대가 출동해 배수 작업을 벌였다. 도로 침수도 계속되고 있다. 강진군 성전면 풀치터널 앞 도로에 토사가 흘러내려 복구작업을 벌였다. 광주 하남산단 6,7,8번 도로도 침수돼 119 구조대가 출동해 배수 작업을 벌였다. 폭우로 여객선과 항공기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8시5분 제주를 출발해 8시50분 광주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티웨이항공 여객기가 1시간 가량 늦은 9시50분 도착했다. 여수와 연도, 백야도 등을 잇는 16개 항로 가운데 13개 항로가 악천후로 운항이 중단됐다. 청산도와 여서도, 덕우도와 황제도를 잇는 일부 항로도 통제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광주와 나주, 담양 등 전남 21개 시·군에 호우 경보가 내린 가운데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오전 10시 현재 강우량은 보성 157.5mm를 최고로 신안 압해도 157mm, 영광 140mm, 담양 134.5mm, 나주 132.5mm, 광주 120.9mm, 순천 105mm, 여수 40.9mm를 기록했다. 고흥은 오전 9~10시 1시간 동안 무려 95.5mm나 내리는 등 전남 동부권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80~150mm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보여 안전사고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경북도 수해 50~60년 사이 최악”…北, 주민들에 복구비용 부담도 강요

    “함경북도 수해 50~60년 사이 최악”…北, 주민들에 복구비용 부담도 강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최근 북한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가 50~60년 사이 최악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북한 당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7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북한 주재 OCHA는 16일 공개한 ‘2016년 함경북도 합동 실사’ 보고서에서 “(최근 발생한 홍수로) 함경북도 무산에서는 5만 가구 이상, 연사군과 회령시는 각각 1만~5만 가구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유엔 기구들과 국제적십자사, 북한 주재 유럽 비정부기구 관계자, 북한 당국자를 포함한 22명이 지난 6~9일 함경북도 수해 지역을 답사한 내용과 북한 당국에 대책을 촉구하는 권고 등을 담은 것이다. 보고서는 “이번 홍수 피해는 50∼60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현지 학교와 유치원, 보육원이 모두 파손됐다”면서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만강 수위가 높아진 것에 더해 다량의 물이 평야로 방출된 것이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당국에 “유관 부처가 피해 상황과 이재민 현황 파악을 시급히 마무리해야 한다”면서 수재민들의 성별과 나이, 장애 여부, 현재 상태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또 조속한 시일 안에 보건시설을 복구하고 응급 의약품을 분배해 전국 각지의 전문 의료인들을 피해 현장으로 파견하라고 제안했다. 한편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당국이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수해 복구를 위해 양강도 주민에게 한 가구당 중국 돈 50위안(한화 8400원)을 부담할 것을 강요했다고 일본 매체인 아시아프레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大阪)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대표는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 매년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대책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수해 복구에 대한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주민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북, 미국에 수해구호 요청하면서 중국은 안해

    북한이 사상 최악의 수해 피해때문에 미국에까지 구호를 요청하면서도 정작 ‘최대 우방’인 중국에는 구호를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16일 “북한이 중국 측에는 공식적인 수해 복구 지원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중국 중앙정부 역시 공식 요청이 없으면 지원에 나서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외신보도 등을 종합하면 북한은 함경북도에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 이후 국제구호단체는 물론 미국의 대북지원 단체들에까지 지원을 요청했다. 15일 미국의 워싱턴타임스에 따르면 북한 유엔대표부 권정근 참사는 미국의 대북 지원단체들에 이메일을 보내 최근 발생한 함북지역 수해현황을 설명하며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또 자신들과 가까운 아시아 9개국에도 공식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국은 제외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4일 몽골, 베트남 등 아시아 9개국 대사들을 초청한 모임에서 수해복구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며 공식 지원을 요청했으나 이 자리에 리진쥔(李進軍) 주북 중국대사는 초대받지 못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은 지난 14일 몽골,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인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이란, 파키스탄 등 아시아 9개국 대사 또는 대리대사를 불러 ‘정세 통보모임’을 개최했다. 통신은 초청 대상국에 대해 “조선(북한)과 오랜 친선협조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소개했다. 중국 언론들은 북한 외무성의 모임 개최 소식을 보도하면서 “평양의 긴밀한 동맹국인 중국이 이들 9개 나라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은 의외”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제5차 핵실험 이후 더욱 냉랭해진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중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결연한 반대” 입장을 표시하고 다음 날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가 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제재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주, 지진 뒤 태풍에 복구 총력 중

    경주, 지진 뒤 태풍에 복구 총력 중

    지난 12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5.8 강진이 발생한 데 이어 300차례 이상 여진이 계속된 경북 경주 지역은 추석 연휴에도 피해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다. 무엇보다 북상 중인 제16호 태풍 말라카스 영향으로 오는 17~18일 이틀간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추가 피해가 생길 수 있어서다. 경상북도, 경주시 공무원과 경찰, 군장병, 봉사단체 회원 등 1380여명의 복구인력들은 16일 한마음으로 복구에 나섰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심한 외동읍, 내남면, 황남동, 월성동 등 300곳에서 무너진 흙더미를 치우는 등 집과 지붕 수리, 담벼락 정비 등에 힘을 보탰다.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부서진 도로와 각종 시설물을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도 했다. 태풍의 간접 영향에 따른 비로 지붕이나 담벼락이 추가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 기와 정리와 천막 덮기 등 보수에 집중했다. 기와 기술자, 문화재 보수 전문가도 참여했다. 앞서 지난 14∼15일에도 복구인력들은 인력과 굴착기·덤프트럭을 동원해 피해가 많이 발생한 경주 한옥마을 등 주거지역과 오릉 담 기와 등 유적지 주변을 복구했다. 추석을 쇠기 위해 고향을 찾은 가족·친지들도 연휴 기간 무너진 담과 지붕 등을 고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런 복구 노력에도 피해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당장 지붕도 정리가 안되고 비가 오면 샐 것 같아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귀성객도 “고향 집에 와 보니 기와 들림, 벽 실금 등 드러나지 않은 피해가 많았다”며 북상 중인 태풍으로 인한 2차 피해를 걱정했다. 한편 경북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 13명, 찰과상 3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또 건물 균열 1081건, 지붕파손 2083건, 담 파손 708건 등의 피해가 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풍 므란티에 쑥대밭 된 대만…이번엔 말라카스?

    태풍 므란티에 쑥대밭 된 대만…이번엔 말라카스?

    대만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인 슈퍼태풍 ‘므란티’로 쑥대밭이 된 대만에 다시 16호 태풍 ‘말라카스’가 접근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대만 중앙기상국은 16일 오전 8시 30분(현지시간) 현재 태풍 말라카스가 초속 50m(시속 180㎞)의 강풍을 동반한 채 시속 22㎞의 속도로 대만을 향해 접근하고 있으며 17일께 대만 동북부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보했다. 말라카스는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강함’을 뜻한다. 대만 당국은 이에 따라 태풍 므란티가 대만을 빠져나가며 해제했던 해상과 육상의 태풍 경보를 각각 15일 오후 11시30분, 16일 오전 8시 30분 다시 발령했다. 대만 정부는 17일 군병력 3200여명과 각종 군 장비를 태풍 상륙 예상지역에 배치해 피해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당국은 아울러 므란티로 피해를 본 지역에도 군병력 3만 6000명을 동원, 복구작업에 나섰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린취안(林全) 행정원장도 중추절인 15일 므란티 피해 지역인 남부 가오슝(高雄), 핑둥(屛東) 지역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수재민들을 위로하면서 보상을 약속했다. 므란티는 태풍 최고등급인 17급의 강풍과 함께 대만 남부 핑둥현에 835.5㎜, 동부 타이둥(台東)현에 722㎜의 비를 뿌렸다. 대만 중앙재해대책센터는 15일 새벽 58세 어민 천(陳)모 씨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지 하루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는 등 사망 1명, 부상 62명의 인명피해를 남겼다고 전했다. 므란티로 99만6천859가구의 전기와 72만 2699가구의 수도공급이 끊겼고 통신시설의 피해로 2만1천159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또한 6488명이 집을 떠나 대피했다. 가오슝시 시즈완(西子灣)에 정박한 4척의 어선이 태풍 므란티에 넘어가 기름이 유출됐고 가오슝항에서 출항을 앞둔 선박의 컨테이너가 무너져 내렸으며 진먼(金門)도의 고적지 일부가 손실됐다. 한편 대만 중앙기상국은 제16호 태풍 말라카스가 20일께 일본 후쿠오카 쪽으로 진입하면서 바람이 점차 약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제주를 비롯한 한국 남부지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보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핵실험 여파...대북민간단체 北수해지원 사업도 ‘전면 중단’

    北 핵실험 여파...대북민간단체 北수해지원 사업도 ‘전면 중단’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이 최악의 수해를 겪는 북한에 복구지원사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5차 북한 핵실험에 부딪혀 추진이 어렵게 됐다. 국내 59개 대북지원 민간단체들로 구성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관계자는 16일 “지난 9일 오전 8시 긴급상임위원회를 개최해 대북 수해복구 지원사업을 결의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자마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원사업 추진 일정이 올스톱됐다”고 밝혔다. 북민협은 앞서 5일에는 긴급회의를 열어 수해복구 지원사업에 착수하기로 한 뒤 나흘 만에 상임위를 열어 지원을 결의한 상태였다. 이 관계자는 “의약품이든, 생필품이든 북한 이재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품목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면서 “언제든지 북한에 지원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준비에 착수했지만 언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북민협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정부의 승인이지만, 현재 북한의 대남 창구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팩스 교신이나 접촉 자체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한편,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성명을 통해 이번 홍수로 북한에서 133명이 사망했고, 395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구호를 받아야할 처지에 놓인 북한 주민은 14만명에 이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400여명 실종 “홍수로 138명 사망…임산부 11명 유산”

    북한 400여명 실종 “홍수로 138명 사망…임산부 11명 유산”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일어나 현재까지 138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실종됐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엔 평양 상주조정관실은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이 과거에도 홍수 피해를 보았지만,이번 홍수는 근래 들어 가장 심각하며 엄청난 손상을 입혔다”면서 현재까지 138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실종됐으며 가옥 2만채가 무너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앞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령시 외곽을 방문한 무라트 사힌 유니세프 평양사무소장은 “이번 홍수는 함경북도 주민들이 지난 60년간 경험한 것 중 최악”이라며 “함경북도의 당국자들도 이 정도 규모의 재난을 다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힌 소장은 이번 홍수로 한 동네에서 임산부 15명 가운데 11명이 유산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세계식량계획(WFP)도 함경북도와 양강도 주민 14만명에게 긴급 구호 식량을 지원했다. 북한의 대규모 홍수 피해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이 학생들에게까지 수해 복구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의 한 소식통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쌀 1kg씩 내라고 포치(지시)했다”며 “쌀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현금 5천원씩 내라고 학교에서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14일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 함경북도 지구를 휩쓴 태풍으로 인한 큰물(홍수) 피해는 해방 후 처음으로 되는 대재앙이었다”면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인명피해는 수백명에 달하며 6만8900여명이 한지에 나앉았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지진 대비책, 기본부터 따져 총점검 나서라

    경북 경주에서 그제 밤 규모 5.1과 규모 5.8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해 전국이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 7월 5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이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심어 줬다면 이번 지진은 지진에 따른 재앙과 공포가 어떤 수준인지를 짐작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근본적이고 상시적인 지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지진 발생 후 하루가 지난 어제까지만 해도 여진이 무려 220회 이상 발생하는 등 경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진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지진 발생 위치가 지표로부터 약 12㎞ 이상 떨어져 대재앙은 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경주 인근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돼 있어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어제 기준으로 20여명의 부상자와 280여건의 시설물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돼 지진의 규모에 비해서는 피해 규모가 적은 편이다. 규모 5.8 지진은 1978년 우리나라 기상청이 지진을 관측한 이후 가장 강력한 것으로 기록됐다. 기상청은 우리나라에서 규모 6.0 정도의 지진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비책은 너무나 허술하다. 우리나라도 내진 설계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건축물 중 90% 이상이 지진 발생 때 적절하게 저항하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형식적인 내진 설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발생할 경우 그 참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진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 앞바다 지진처럼 이번에도 지난 4월 일본 대지진 때 발생한 힘이 양산 활성단층대에 쌓인 것을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다. 올해 초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경주 일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지진은 기상청이 발표한 규모 0.9 이상 3.5 이하의 21회보다 10배나 많은 310회나 관측되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주를 비롯한 경북 남동부와 황해도 지역인 북서 지역에서 빈번한 지진 활동이 관측되고 있지만 이들 지역의 활성단층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렇다 할 기초자료도 없이 지진을 예측하거나 제대로 된 대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문가 육성을 비롯해 기본적인 지식 축적이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지진복구 대책도 총점검할 필요가 있다. 먼저 피해 복구와 함께 대형 건축물과 저수지, 댐을 포함한 모든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외형상 괜찮아도 피로 누적으로 손상된 시설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국민안전처는 재난문자 하나 보낸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진대피 훈련이나 요령을 평소에 해 두어야 한다.
  • 지진 피해현장 찾은 총리

    지진 피해현장 찾은 총리

    황교안(왼쪽 두 번째) 국무총리가 13일 경북 경주 황남동의 한옥마을을 방문, 지진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황 총리는 앞서 경주시청에 마련된 재난상황실에서 신속한 피해 복구를 지시했다. 경주 연합뉴스
  • 첨성대 北으로 2㎝ 기울어지고 다보탑 상층부 난간석 내려앉고

    첨성대 北으로 2㎝ 기울어지고 다보탑 상층부 난간석 내려앉고

    경북 경주에서 지난 12일 밤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경주를 비롯한 영남 지역 문화재들에서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문화재청이 13일 경주 일대 문화재 피해 상황을 점검한 결과 국가지정 13건, 시·도지정 10건 등 23건의 문화재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은 상층부 난간석이 내려앉고, 청도 운문사 서(西) 삼층석탑(보물 제678호)은 꼭대기 상륜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첨성대(국보 제31호)는 기존보다 북측으로 약 2㎝ 기울었고 상부 정자석 남동측 모서리가 약 5㎝ 더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석굴암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 분황사에선 모전석탑(국보 제30호)의 1층 벽돌에서 실금이, 약사여래입상이 있는 보광전의 지붕 용마루와 벽체에서 갈라짐 현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긴급보수비 23억원을 투입해 조속히 복구하고, 분야별 전문가들로 특별안전점검반을 구성해 문화재 안전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등과 합동으로 영남 지역 건조물 문화재 52건에 대해서도 오는 20~26일 피해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東 1.4㎝ 南 1.0㎝… 한반도 이동했다

    東 1.4㎝ 南 1.0㎝… 한반도 이동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경북 경주 지진 이후 한반도 좌표가 최대 동쪽으로 1.4㎝, 남쪽으로 1.0㎝ 이동하고 지각이 1.6㎝ 상승했다고 13일 밝혔다. 특히 진앙지와 인접한 경북 군위 지역은 동쪽으로 1.4㎝, 울산은 1.3㎝, 부산 기장군은 1.2㎝ 옮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평값과 수직값을 활용한 공간분석 결과 울산과 군위의 경우 지각이 1.8㎝ 상승했다. 국토부는 그러나 평균 위치변화가 약 2㎝로 평시 허용오차 범위(±5㎝) 안에 들어 국토의 위치변화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하지현 LX 책임연구원은 “지각 변형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국토 전역에 대한 지속적이고 세밀한 관찰과 분석이 필요하다”며 “이번 지진에 따른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정부는 이날 오전 부처별로 비상 대응체계를 점검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주 월성원전을 방문해 “24기의 국내 원전과 방폐장의 경우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안전에 한 치의 허점도 없도록 해 달라”며 “에너지와 산업 주요시설의 내진 설계와 안전관리체계 등 지진방재 대책을 재점검하고 보강 작업을 하라”고 당부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정보통신망 및 원자력 관련 시설 비상점검대책반’을 설치하고 상황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대책반은 이동통신 3사와 네이버와 카카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 시설 점검을 철저히 할 것을 요청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재난 방송에 대한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은 속보, 특보, 뉴스 보도 등을 통해 재난 상황을 알리도록 돼 있다.농림축산식품부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날 한국농어촌공사 전문안전점검반 22명을 경주 현장으로 급파해 총저수량이 100만t 이상인 저수지 18곳을 정밀 점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를 입은 지방자치단체와 국민안전처 등 소관 부처가 피해 조사를 하는데 이번 지진의 경우 전체 피해액이 30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고 지원 없이 지자체가 자체 편성한 재해 대책비를 활용해 재해 복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서울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재난에 감춰진 ‘경제 불평등의 민낯’

    재난에 감춰진 ‘경제 불평등의 민낯’

    재난 불평등/존 C 머터 지음/장상미 옮김/동녘/330쪽/1만 6800원 지진과 쓰나미, 홍수, 폭염 등 자연 재해는 겉으로 보기엔 민주적이다. 재해는 가난한 이들뿐 아니라 부자와 권력자들도 가리지 않고 덮친다. 빈곤은 계급에 의한 ‘차별적 현상’이지만, 재해는 사회 부조리와 상관없는 ‘무차별적인 자연 현상’(설령 인간의 탐욕과 경제 개발이 야기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일지라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재난 불평등’에서 지구물리학자인 저자는 재해가 단순한 자연현상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경제적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드러낸다. 저자가 포착한 지점은 재앙이 낳는 ‘불평등의 민낯’이다. 이 책은 왜 재난 사망자의 다수가 빈민층인지, 그리고 재난 발생 당시와 그 전후의 극복 과정에서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재난에 투영되고 답습되는 이유를 찾아 나간다. 2010년 1월 12일 오후 4시 53분. 북미 카리브해의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일상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규모 7.0의 첫 지진이 강타한 이후 몇 주일에 걸쳐 60차례 이상의 여진이 지속됐다. 이미 첫 번째 지진으로 약화된 구조물들이 연달아 무너져 내리며 20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를 냈다. 반면 같은 해 2월 규모 8.8의 칠레 지진은 525명의 사망자를 냈다. 지진 에너지는 칠레가 아이티보다 500배 정도 컸지만 인명 피해 규모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아이티는 전 세계에서 15번째로 부패한 나라다. 반면 칠레는 22번째로 깨끗한 국가로 꼽힌다. 아이티는 전 국민의 80%가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으며, 54%는 극빈층에 속한다. 이들은 아이티에서 ‘니그’로 불린다. 니그들은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슬럼가에 전기, 수도, 변기 시설조차 없는 조악한 시멘트 집에 산다. 반면 극소수의 부유층인 ‘블랑’이 거주하는 페티옹빌은 튼튼한 출입문과 높은 벽, 개인 수영장 등이 갖춰진 대저택들의 집합지다. 견고한 방호벽이 바리케이드처럼 둘러싸여 그들만의 부를 누린다. 자연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한 결과를 안긴다. 아이티 지진의 상당수 희생자는 가난과 부패에 찌들려 신음하는 니그들이었다. 저자는 “책임은 가난에 있다”며 “같은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난이더라도 다른 이에게는 그저 약간의 불편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지진에 대처하는 아이티 정부는 철저히 무능하고 무책임했으며, 존재 자체마저 불확실한 건축 규정은 참혹한 희생을 확대시켰다. 아이티의 지진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로 인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부패 살인’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저자에 따르면 재난은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만 자연적일 뿐 재난 이후의 상황은 정치·사회적 문제가 된다. 재난은 권력자들에겐 돈벌이가 된다. 자연재해는 부의 편중을 심화시킨다. 재난은 자본 소유자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자본이 부족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건물을 새로 짓고 도로를 복구하는 비용이 모두 자본의 이익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파괴한 뉴올리언스를 복구하는 수의계약을 맺은 업체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회장으로 재직했던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였다. 자연과학자인 저자가 자연 재해의 현상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에 은폐된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지목하며 또 다른 경제적 불평등 현상을 고발하는 사회과학적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옥수수 한 알로 세상을 구한, 옥수수에 미친 남자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옥수수 한 알로 세상을 구한, 옥수수에 미친 남자

    옥수수 한 알이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다. 1970년대 후반 개발도상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슈퍼 옥수수’를 개발해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퍼뜨렸다. 아프리카에서도 17년에 걸친 노력 끝에 현지 풍토와 기후에 맞는 슈퍼 옥수수를 탄생시켰다. 1998년부터 북한을 59차례 드나들며 굶주린 주민을 먹여 살릴 옥수수 생산 증대에 힘썼다. 지구촌 기아 해결에 헌신한 공로로 노벨상 후보에 5회나 추천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한국을 빛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45년 울산 출생 ▲신명초등학교, 경주 양남중, 울산농업고, 경북대 농학과, 고려대 농학 석사, 하와이대 농학 석·박사 ▲1977년 녹조근정 훈장, 1986년 국제농업연구대상, 1996년 일가상, 국회 과학기술연구회 1회 과학기술인상, 1998년 만해평화상, 2003년 미국 국제작물육종가상, 2011년 대한적십자사 적십자인도장 수상 등 ▲노벨 평화상·생리학·의학상 5회 추천, 브리태니커 ‘2000년 화제의 인물’, 2001년 일본 NHK ‘아시아의 인물’.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12일 포항역에 내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아이구, 이 더운 날에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땀에 젖은 헐렁한 셔츠, 흙투성이 등산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박사’의 차림새는 아니었다. 그는 금방 딴 것이라며 껍질을 벗겨 소매에 쓱쓱 닦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날옥수수는 처음이었다. 망설이다 한입 베어 무니 웬걸,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죠? 이게 과일보다 단 꿀옥수수라는 겁니다. 미국서 공부할 때 내 점심은 이 옥수수였어요. 날것 두세 자루로 배 채우고 밭에서 18시간씩 일했죠.” 옥수수에 미친 사내, 김순권(71)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학교는 뭐 할라 가노? 내 따라 댕기면서 농사랑 괴기잡이나 배아라. 어차피 장남이 집을 책임져야 안 되겠나.” 아버지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나를 혹독하게 부리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소똥을 퍼서 퇴비를 만들고 밭을 갈았다. 밤에는 배를 타고 나가 멸치를 잡았다. 일이 없으면 산에 올라 나무를 했다. 하루 세 짐은 채워야 끝났다. 똥통을 지고 보리밭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생똥을 온몸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아버지와 함께 반듯하게 밭을 갈던 소는 내가 쟁기질을 이어받자마자 구불구불 갈지자로 걸었다. 아버지는 소 한 마리도 못 다루는 놈이 뭐가 되겠느냐며 지게 작대기로 사정없이 내리치셨다. -나는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4월 5일 경남 울주군 강동면 신명리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딸 여섯을 낳고서 얻은 아들이었다. 읍내에 가려면 서너 시간은 걸어야 했던 오지였다. 아버지는 여덟 마지기 땅에 논농사를 지으셨다. 멸치잡이 배 한 척도 있었다. 못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식구가 많아 늘 배를 곯았다. -인생의 고비에서 나는 세 번의 시험에 낙방했다. 머리가 좋지 않았지만 노력형이어서 반에서 3~4등은 했다. 은행원을 최고의 직업이라 여기고 명문인 부산상고에 도전했지만 입학시험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1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배웠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선행학습’이었다. 이듬해 울산농고에 들어갔다. 삽질, 김매기는 내가 일등이었다. 졸업할 때 실습상을 받았는데 부상이 삽이었다. 평생 옥수수밭에서 일할 운명은 그때 결정된 게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태풍이 고향 집을 덮쳤다. 아버지가 피해 복구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병원비를 대려고 논을 팔았다. 셋째 누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더 기울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은 무리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 농협 입사 시험을 쳤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낙방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데, 경북대 농과대학에 가면 장학금을 주고 졸업 후 독일 유학도 보내준다는 말을 듣게 됐다. -10대1의 경쟁을 뚫고 경북대 농대에 합격한 나는 공부벌레로 살았다. 강의를 듣거나 아르바이트하는 시간 외에 도서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가장 늦게 도서관 불을 끄고 나왔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한 여학생이 차를 마시자고 해 따라나갔다. “네? 법대생이 아니고 농대생이라고요?” 내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걸로 알았던 그녀의 표정이 확 굳었다. 예비 판검사와 연애 한 번 해보려 했는데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던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처럼 육종학자가 될 것인가.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농업경제학 교수가 될 것인가. 흙에서 뒹굴며 평생을 보내야 하는 육종학자와 세련된 매무새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중에서 후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서 두 달 하숙하며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았는데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화가 나서 담당 교수에게 따지러 갔다. 교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네는 생김새가 촌사람이어서 경제학은 안 맞는 것 같아. 충고하는데 그대로 육종학을 하시게나.” 세 번째 낙방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농촌진흥청에 들어갔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이 울리는 밤 11시 30분에 연구실을 나섰다. ‘제2의 우장춘’이 되겠다는 각오로 하루 18시간을 일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배움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미국 유학이 가고 싶었다. 가난한 공무원에겐 자비 유학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국비 장학생이 되어야 했다. 서울대 문턱보다 높다는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WC)의 미국 유학 장학생 17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하와이대에서 옥수수 육종학을 시작했다. 미국산 옥수수는 탐날 정도로 크고 질이 좋았다. 지속적인 품종 개량의 결과다. 옥수수 연구가 한국보다 50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옥수수를 잘만 개량하면 막대한 수확량을 올려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인 유학생들과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밤이 되면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잠들면 나는 혼자 연구실에 돌아가 2시간을 더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이 밥 먹고 하와이 날씨를 즐길 때 나는 뙤약볕 아래 실습장에서 생옥수수로 끼니를 때우며 연구를 거듭했다. 다들 ‘옥수수에 미친 남자’(crazy corn man)라고 수군거렸다. -미국 교수들은 “옥수수 교배 올림픽이 있다면 김순권이 단연 금메달감”이라고 나를 치켜세웠다. 옥수수 교잡종을 만들려면 암수를 접붙여야 한다. 옥수숫대 위에 달린 수술에선 100만~200만개의 미세한 꽃가루가 떨어진다. 눈병이 생기기 쉬우니 자주 씻어내야 한다. 눈이 큰 미국인들은 이걸 불편해했는데, 나는 눈이 작아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3년 3개월 만에 석·박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 박사 과정 동안 20차례 옥수수를 재배하며 쓴 논문들을 세계농업학회지 등에 7차례 실었다. 단숨에 전 세계 옥수수 학계의 스타가 됐다. 미국의 파이어니어라는 종자회사가 농촌진흥청 월급의 20배였던 3000달러를 제의해 왔다. 하지만 나는 솔깃한 제의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옥수수를 우리 땅에 하루라도 빨리 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979년 강원 홍천, 평창, 영월의 시험 재배장에 ‘수원 19호’, ‘수원 20호’, ‘수원 21호’의 종자가 뿌려졌다. 얼마 후 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씨알 굵은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렸다.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암초가 등장했다. “미국과 국제기구가 자네가 개발한 ‘수원’ 시리즈는 한국 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네. 수고했지만 종자는 창고에 쌓아 두고 연구나 좀더 해 보게.” 농진청 선배의 말이었다. 옥수수 종자를 팔기 위한 미국의 로비가 뻔했다. “이 종자가 실패하면 10년 동안 감옥에 가 있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농가에 당초 계획의 절반인 8만t을 나눠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민들이 옥수수를 땅에 심으려 하지 않았다. “농사 망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격한 삿대질이 돌아왔다.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그해 강원도에는 바람이 심해 곳곳에서 흉작이 났는데 이게 좋은 기회가 됐다. 수원 19호는 전혀 넘어지지 않았고 전체 포기의 95%에 잘생긴 옥수수가 달렸다. 수원 품종을 심은 농민들은 수입이 전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누가 이 종자를 못 심게 했느냐며 관련자가 처벌까지 받았다. ‘미국이 55년에 걸쳐 만든 옥수수 교잡종을 5년 만에 이뤄냈다.’, ‘한국 옥수수 농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찬사가 이어졌다. 그때부터였다. 내 이름 앞에 ‘옥수수 박사’가 붙은 것은. -그즈음부터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에서 줄기차게 나에게 팩스를 보내왔다. 비영리 농업연구센터인 IITA는 나이지리아 이바단에 1000㏊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며 아프리카 기아 해결을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형 교잡형 옥수수를 개발한 나더러 5억명 아프리카 인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게 그들의 요청이었다. 1979년 8월 이바단에 도착했다. 2년 만에 옥수수 암이라고 부르는 위축 바이러스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하자 나이지리아 정부가 후원자로 나섰다. “5년간 250만 달러를 줄 테니 나이지리아에 맞는 옥수수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500개의 종자를 만들어 7개 지역 옥수수밭에서 시험 재배했다. 최종 배양된 종자는 기존 옥수수보다 수확량이 배가 많았다. 해마다 100t에 가까운 옥수수를 미국에서 수입했던 나이지리아는 생산량이 300만t 이상 늘어 옥수수 완전 자급을 이뤘다. 대통령이 내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17년 동안 나는 아홉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렸다. 위험한 고열에 시달린 게 여섯 번, 죽기 직전 위급한 상황이 세 번이었다. 고열에 혼수상태를 지속하다 3일 만에 정신을 차린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현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나는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명예추장에 두 번이나 추대됐다. 외국인 중에 명예추장이 된 사람은 통틀어 50명 정도밖에 없는데, 외국인으로 두 번이나 명예추장이 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사람이란 뜻의 ‘마이에군’, 아내는 황금의 어머니라는 뜻의 ‘예예니우라’로 불렸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50코보(약 50원)짜리 동전에 오동통한 옥수수 이삭을 새겨 넣었다. 내가 개발한 ‘오바슈퍼 1호’였다. -IITA의 책임연구원으로 귀한 인재 대접을 받았다. 높은 연봉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자리였다. 우리 연구팀이 1986년 농업부문 노벨상으로 불리는 벨기에 국제농업연구대상을 받은 뒤 몸값이 더 올라갔다. 그런데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다. 1994년 북한에 엄청난 수해가 닥쳤다. 어릴 적 배고픔을 겪어 본 나는 마음의 동요가 심했다. 북에 언니와 오빠를 둔 아내는 더욱 가슴 아파했다. -1995년 경북대에서 ‘외국 박사 모셔오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귀국과 동시에 북한 식량 문제를 도울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경북대 농대 소유의 1.7㏊(약 5000평) 규모 옥수수 농장에서 북한 토양에 적합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시험 재배하며 때를 기다렸다. 북한 당국은 공식 초청장을 5차례나 보내 나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1998년 1월 방북 승인이 떨어졌다. -북한 현지 사정은 심각했다. 비료가 부족하고 과학 영농이 안 돼 농작물이 병충해에 약했다. 북한 농업위원회 간부들은 슈퍼 강냉이를 개발해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과학적 주체농업’을 제안했다. 협동농장 간 경쟁을 붙여 평균보다 많이 수확한 농민에게 식량 배급을 더 주자고 했다. 농사 잘 지은 협동농장에는 트랙터를 상으로 줬다. 망가진 옥수수밭을 살리기 위해 콩과 돌려짓기를 하고 대홍단(옛 개마고원) 등 고산지에는 저온작물인 감자를 심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 평균 30% 이상 식량 증산이 이뤄졌다. 내가 개발한 수원 19호를 북한 농민은 ‘강냉이 19호’ 또는 ‘강 19호’로 불렀다. 첫 방북 이후 지금까지 59회를 북에 다녀왔다. 옥수수사업은 북의 기아 해결과 남북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2003년 이후에는 나의 방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중국, 몽골, 베트남, 라오스, 동티모르에 슈퍼 옥수수를 보급했다. -옥수수가 신기한 것은 종자 1개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옥수수 한 알을 심으면 1200개 알갱이가 붙은 옥수수가 나온다. 내가 직접 만진 옥수수는 하루 수천개, 46년이 지났으니 줄잡아 수십억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옥수수가 내 손을 거치게 될까. 앞으로도 계속 옥수수밭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포항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바다로 달린 대지, 절경을 빚고…바다가 낳은 습지, 생명을 품고

    바다로 달린 대지, 절경을 빚고…바다가 낳은 습지, 생명을 품고

    일본 북방의 섬 홋카이도를 렌터카로 자유롭게 돌아보는 한국인 여행객이 늘고 있다. 많은 이들의 ‘로망’이 현실로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비용항공사(LCC)가 취항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지 싶다. 여행경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항공료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됐으니 말이다. 홋카이도의 너른 들녘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려면 자동차가 제격이다. 오가는 여정 자체가 행복한 곳이어서 더 그렇다. 그렇게 홋카이도 동쪽부터 서쪽까지 훑었다. 10호 태풍 라이언록에 유린당한 탓에 간혹 도로가 끊기고, 여러 명소들이 출입 통제되거나, 아름다운 물빛을 잃기도 했지만 깊고 서정적인 특유의 풍경은 여전했다. 【신치토세공항→오타루】 ‘러브레터’ 도시 오타루… 운하·유리공예·초밥 ‘필수코스’ 신치토세공항을 나선다. 나무가, 실개천이 따라붙고 한없이 푸른 구릉과 자작나무 숲 같은 홋카이도의 전형적인 풍경들도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도로 노견을 따라 빨간 화살표를 꽂은 철제 기둥이 끝없이 세워져 있다. ‘여기까지가 길입니다’라고 알려 주는 일종의 표지판이다. 겨울에 눈이 많은 홋카이도에서 화살표는 운전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필수 설비다. 이 같은 이국적인 풍경들이 마치 고명처럼 여정 위에 얹힌다. 국도 위로 올라서면 슬슬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얇은 지갑을 걱정할 건 없다. 휴게소가 있으니 말이다. 일본은 휴게소에서 먹는 밥이 맛있다. 현지인들은 휴게소를 미치노에키(道の?)라 부른다. 도로의 역이란 뜻인데,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을 여기서도 판다. 소바나 라멘 등 간단한 먹거리도 어지간한 식당에 못지않게 싸고 맛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오타루다. 홋카이도 서쪽의 항구도시다. 2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삿포로보다 더 번성했다던 곳이다. 중장년층에겐 일본 영화 ‘러브레터’(1999)의 주무대로 기억될 법하다. 영화를 못 본 이라도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가 애절한 목소리로 외치던 대사 ‘오겐키데스카?’는 한번쯤 들어 봤을 터다. 오타루의 낭만을 상징하는 최고의 포인트는 오타루 운하다. 길이 1300m, 폭 40m의 물길을 따라 늘어선 옛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운하를 따라 난 도로에는 가스등이 늘어서 운치를 더하고 있다. 오타루는 오르골과 유리 공예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오타루 운하에서 수백m 떨어진 골목길에 오르골당, 유리 공예품점 등 볼거리들이 밀집돼 있다. 맛있는 스시(초밥)로도 정평이 나 있다. 미슐랭 별을 받았다는 이세스시와 쿠키젠, 마사스시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오타루 복판의 스시거리에 있어 찾기도 쉬운 편. 다만 값이 녹록하지 않은 데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어 일반 여행자로서는 심리적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곳들이다. 이른바 ‘가성비’ 높은 곳으로는 와라쿠가 꼽힌다. 이 집 역시 회전초밥 맛집으로 소문나 20분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예약이 필요 없고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오타루→샤코탄】 ‘원주민 아이누족 본거지’ 샤코탄… 망부석 ‘가무이미사키’ 절경 오타루를 지나 샤코탄으로 향한다. 홋카이도 서쪽 끝자락으로 오타루에서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홋카이도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본거지였다. 비록 5개월 만에 무너지긴 했지만 1869년 ‘에조 공화국’을 세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겨우 2만명 남짓 남아 있지만, 지금도 홋카이도 곳곳에 이들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샤코탄도 그중 하나다. 아이누어로 ‘여름의 마을’이란 뜻의 해안마을이다. 등위 매기기를 즐겨 하는 일본인들은 이를 ‘일본의 비경 100선’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샤코탄의 바다는 파랗다. 얼핏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 빛깔을 일본인들은 ‘샤코탄 블루’라고 부른다. 샤코탄에서도 서쪽을 향해 20분 남짓 더 가면 우리 동해 쪽으로 길게 뻗은 곶부리가 나온다. 샤코탄의 여러 절경 가운데 가장 이름 높은 ‘가무이미사키’다. ‘차렌카의 작은 길’이라는 절벽길을 따라 20분쯤 걸어가면 나온다. 붉은 절벽 위로 난 길엔 한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 전설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 주인공은 미나모토 요시쓰네. 다이라(平) 일족과 경쟁을 벌였던 미나모토(源) 일족 출신의 무사다. 당시 일본 본토에서 쫓겨난 미나모토 요시쓰네는 홋카이도 도카치 지방의 히다카란 곳에 몸을 숨겼고, 그가 의탁한 집의 딸이 차렌카였다. 이후는 누구나 짐작하는 그대로다. 미나모토 요시쓰네는 몸을 추스른 뒤 본토로 떠났고, 차렌카는 가무이미사키 끝자락에서 그를 부르다 바다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차렌카의 한이 서린 탓일까. 여성이 탄 배가 가무이미사키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난파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가무이미사키에는 여성이 출입할 수 없었다. ‘여인 금제의 땅 가무이미사키’란 팻말이 붙은 문이 산책로 초입에 세워져 있다. 지금도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이 문부터 출입을 통제한다. 가무이미사키 뒤편 언덕에도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곶부리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다. 인근의 시마무이 해안도 아름다운 물빛과 서정적인 풍경으로 인상적인 곳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빠짐없이 돌아보길 권한다. 【샤코탄→소운쿄】 3만년 시간을 새긴 협곡지대 소운쿄… 산꼭대기 주상절리 장관 이제 홋카이도의 내부로 들어갈 차례다. 비에이의 시라히게 폭포가 목적지다. 도카치다케에서 흘러내린 물이 거친 암석을 따라 떨어진다. 여러 가닥으로 나뉜 물줄기가 이름 그대로 ‘흰 수염’처럼 보인다. 폭포 아래로는 에메랄드빛 계류가 흘러간다. 폭우 뒤라 이제 겨우 제 빛깔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인근의 아오이케도 에메랄드빛 호수로 유명하지만, 출입이 통제된 탓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소운쿄는 이시카리강 위쪽에 형성된 협곡 지대다. 가래떡을 닮은 주상절리들이 산꼭대기마다 어김없이 펼쳐져 있다. 평지 아래, 혹은 강변 등에 주상절리 지대가 형성된 우리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주상절리들의 크기는 들쑥날쑥이다. 아들을 당대의 명필로 키워 낸 한석봉의 어머니였다면 훨씬 가지런하게 정돈해 뒀을 듯하다. 협곡의 길이는 24㎞쯤 된다. 약 3만년 전 다이세쓰산 중앙 화구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 분출물이 이시카리강 유역을 뒤덮었고, 200m 두께로 쌓였던 퇴적물에 균열이 생기면서 4각, 6각 단면의 주상절리가 형성됐다고 한다. 계곡에 들면 차창부터 열 일이다. 계곡 풍경이 싱그럽고 공기는 청량하다. 빽빽한 숲 너머로는 세찬 계곡수가 흐른다. 산을 깎아 소운쿄를 만든 주인공이다. 태풍이 지난 뒤여서 물빛은 ‘다방 커피’ 같은 흙탕물이었지만, 품은 에너지만큼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강렬해 보인다. 그 계곡을 10분 정도 달리면 두 개의 폭포와 만난다. 유성폭포와 은하폭포다. 선사시대 돌도끼를 닮은 ‘부동암’(不動岩)을 경계로 양쪽으로 나뉘어 쏟아져 내린다. 둘은 부부 폭포다. 유성폭포가 남편, 은하폭포가 부인이다. 안내판의 설명을 보지 않아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유성폭포는 호쾌하다. 거침없이 드러내고 압도적으로 쏟아져 내린다. 은하폭포는 섬세하다. 남편의 어깨 뒤에 숨어 수줍은 자태로 물줄기를 펼쳐 낸다. 온천마을 가운데쯤 로프웨이가 있다. 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의 제2봉인 구로다케 7부 능선까지 올라가는 로프웨이다. 먼저 로프웨이를 타고 5부 능선까지 오른 뒤 다시 리프트를 타고 7부 능선까지 간다. 산정의 전망대에 서면 소운쿄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예서 정상(1984m)에 오르려면 걸어서 1시간 반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소운쿄→구시로 습원】5000년 전 바다였던 구시로 습원, 동식물 2000종 보금자리로 방향을 틀어 구시로 습원으로 향한다. 원시 대자연의 모습을 여태 간직하고 있다는 곳. 너른 평원에서 눈을 씻고, 그 안에 깃든 원시 생명들과 가까이서 교감하는 행운도 기대할 수 있다. 소운쿄 협곡을 지나 남쪽으로 10분 남짓 달렸을까. 멀리서 공사장 인부가 요란하게 붉은 기를 흔들어 댄다. 10호 태풍 라이언록이 홋카이도를 할퀸 이후, 복구공사 중인 도로를 종종 지나쳤지만 이번엔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통행금지다. 교량이 무너져 오갈 수가 없단다. 도리 없다. 먼 거리를 돌아갈 수밖에. 구시로 습원은 홋카이도 동남부의 항구도시 구시로에서 내륙 쪽으로 펼쳐진 광대한 평원이다. 일본 최대의 습지로 수많은 호수와 하천들이 습지 생태계의 보물창고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1980년엔 습지 가운데 7863㏊가 국제 습지 보전조약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5000년 전의 구시로 습원은 바다였다. 그러다 물이 빠지고 해안선이 물러나면서 습지가 형성되기 시작해 3000년 전에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서식하는 동식물은 사슴과 두루미, 고니 등 무려 2000여종에 이른다. 습원 앞에 서면 눈과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이었던 거다. 너른 원지 자연과 마주한다는 것은. 구시로 습원은 우리 수원과 안양을 합친 것보다 넓다고 한다. 습원 주변에 전망대가 몇 곳 있다. 구시로 습원 전망대가 대표적이다. 구시로 습원을 조망할 수 있고, 습원의 발달과정 등도 엿볼 수 있다. 호소오카 전망대도 이름났다. 뱀처럼 흘러가는 구시로 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트레킹을 즐기는 이가 좋아할 만한 곳은 온네나이 비지터 센터다. 구시로 습원 전망대에서 5㎞쯤 떨어졌다. 온네나이에선 습원 일대를 직접 발로 돌아볼 수 있다. 자연 산책로는 세 개 코스로 구성됐다. 총 길이는 3.1㎞. 가장 긴 코스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책로에 목재 데크를 깔아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다른 전망대는 건너뛰더라도 온네나이는 꼭 가보길 권한다. 실제 습원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구시로 습원→삿포로】걸쭉한 국물·굵은 면 ‘삿포로 라면’… 양고기 구이 ‘칭기즈칸’ 별미 일본 식객들이 즐겨 찾는 홋카이도에서도 삿포로는 핵심지역에 속한다. ‘칭기즈칸’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화로에 채소와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1910년대 군대에서 양모를 얻기 위해 많은 양을 사육한 게 기원이라고 한다. ‘다루마’가 유명하다. 스스키노 지역에 지점이 여러 개 있다. 다만 어느 지점이든 길게 줄을 서 수십분은 족히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삿포로 특산의 미소 라멘은 걸쭉하고 기름기 많은 국물에 굵고 쫄깃한 면이 특징이다. 스스키노의 라면 거리 ‘라멘 요코초’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홋카이도는 게의 산지이기도 하다. 시내 곳곳에서 게를 맛볼 수 있는데, 지갑이 얇은 여행자에겐 난다(難陀)가 딱이다. 4000엔 정도를 내고 70분 동안 대게, 킹크랩 등의 해산물과 육류를 무제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다. 스스키노에 있다. 삿포로의 온천 몇 곳 덧붙이자. 가장 이름난 곳은 조잔케이다. 노천온천으로 유명하다. 삿포로 시내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다. 호헤이쿄는 조잔케이보다 규모는 작아도 한결 조용하다. 글 사진 오타루·구시로·삿포로(일본)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제주항공이 인천~삿포로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일본에서만 총 9개의 노선망을 갖춰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가장 많은 한·일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인천과 김포, 김해공항 등에서 자유여행객들을 위한 일본 온라인라운지(www.jejuair-japan-lounge.com)도 운영하고 있다. 현지 숙소와 렌터카, 1일 버스투어 등을 예약할 수 있고, 관광지 할인 등 정보도 제공한다. 가을여행 특가 이벤트도 진행한다. 6일~11월 30일 인천공항 탑승을 기준으로 삿포로 8만 8000원, 도쿄(나리타)와 오키나와 7만 8000원, 후쿠오카 5만 8000원 등이다. 유류 할증료 등이 모두 포함된 편도 항공권 기준이며, 예매는 26일까지 제주항공 홈페이지(www.jejuair.net)와 모바일 앱 등에서 할 수 있다. 탑승과 출국 수속을 할 수 있는 도심공항터미널도 서울역과 삼성동에서 운영하고 있다. -여정 중 하루는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www.snowtomamu.jp)에서 묵길 권한다. 이른바 ‘운카이(雲海) 테라스’를 보기 위해서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구름이 바다처럼 깔리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대체로 9월까지 이 같은 현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리조트 측의 설명이다. 운카이 테라스는 10월까지 오전 4~8시 운영된다. -구로다케 로프웨이(www.rinyu.co.jp)는 어른 왕복 1950엔이다. 리프트 요금 600엔은 별도다. -ETC카드는 반드시 신청하는 게 좋다. 우리의 고속도로 ‘하이패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정액을 내면 신청기간 내내 고속도로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렌터카의 경우 경차는 대략 하루 5000엔부터다. 한국어 내비게이션과 보험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주유비는 ‘레귤러’ 휘발유 기준으로 ℓ 당 120엔 안팎이다.
  • 北, 제재 맞서 전시성 사업하다 수해복구 차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자강력으로 맞서겠다던 북한이 무리한 대외용 보여주기식 사업에 나서면서 전시 예비물자까지 고갈됐으며 홍수 피해 복구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현지 소식통들을 인용해 7일 보도했다.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중앙의 지시에 따라 전시 예비물자로 보관하던 시멘트와 철강재가 국가건설 사업으로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면서 “전시에 쓸 시멘트와 철강재는 각 도 ‘50호 사업소’에 보관됐는데 올해 북한당국은 유엔의 제재에 맞선다며 평양과 지방에 숱한 건설판을 벌려(벌여) 놓고 사업소에 보관됐던 시멘트와 철강재를 꺼내 썼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유사시 병사들을 위한 예비물자로 인민군 후방총국과 각 군단사령부에 식량과 생필품, 연유를 보관하고 있다”면서 “민간인들을 위한 전시예비물자로는 ‘2호 창고’의 식량과 ‘4호 창고’의 생필품, 휘발유와 디젤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수해복구에 주민들과 주변 군인들이 모두 동원됐다”면서 “우선 산사태로 막힌 도로를 열어야 하는데 불도저나 굴삭기(굴착기) 같은 장비가 전혀 없어 순수 인력으로 돌과 흙을 치우고 있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수업 중 눈 마주쳤다고 뺨 때린 교사 벌금형

    수업 중에 눈이 마주쳤다며 학생의 뺨을 때린 교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 정윤현 판사는 6일 수업 중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학생을 때려 폭행 혐의로 기소된 전북 완주군 모 사립고 교사 A(49)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4월 29일 오후 1시 50분쯤 교실에서 수업하던 중 B(16)군과 눈이 마주치자 길이 60∼70㎝가량의 전선 보호덮개로 B군의 뺨을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B군이 항의하며 덮개를 빼앗으려고 하자 손바닥으로 B군의 뺨을 2차례 때리고 멱살을 잡아 흔든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B군의 목까지 조르려 했지만 “뺨을 한 차례만 때렸다”고 혐의 일부를 부인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목격자인 학생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판사는 “교육 목적이었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이 피해복구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학교 측은 사립학교법에 따라 A씨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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