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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장애인고용 기피 여전/의무비율 준수업체 13% 뿐

    ◎“차라리 벌금 내겠다”… 올들어 2백억/「촉진법」 시행 2년째… 성과 미흡 지난해부터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제정,시행되고 있으나 업체와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이행노력 부족과 장애인들의 준비 미흡등으로 인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27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말까지 장애인을 1.6%까지 의무적으로 고용토록 돼있는 3백인 이상 사업체 2천2백20개중 12.9%인 2백87개소만 고용의무를 이행하고 있고 대다수인 1천9백33개소(87.1%)는 기준고용률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신 이같은 고용기준 미달 업체들은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는 부담금으로 대체 납부하려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현재 장애인 고용의무 대상업체가 고용기준에 미달해 부담한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2백12억원이나 돼 대부분의 사업주들이 장애인 고용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장애인 고용촉진법은 기준고용률 미달 사업체는 미고용 장애인 1인당 월 12만원씩의 고용부담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기관도 장애인 채용을 기피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월현재 중앙행정기관의 장애인 고용은 의무 고용인원 1천5백91명중 3백66명만 고용돼 1천2백25명이 미달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장애인 고용 주무부서인 노동부의 경우 고용 의무인원 49명중 20명만을 채용해 빈축을 사고있고 정무장관실과 비상기획위 국가보훈처등은 단 한명도 채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이에대해 『일본의 경우도 30년이 경과한 후에 장애인 고용률 80%선을 지키고 있는 점을 볼때 장애인 고용은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사업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장애인 스스로가 취업에 대비한 적극적인 준비를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안중근의사 의거 83돌 기념식

    안중근의사 의거83주년 기념식이 26일 상오10시 서울 남산 안의사기념관에서 안의사 승모회(이사장 윤치영)주최로 민경배보훈처장과 안응모전내무장관등 1백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윤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고 우리민족의 기개를 떨쳤던 안의사의 거룩한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민족의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우리 후손들도 이같은 안의사의 정신을 본받아 조국통일과 번영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엽제 333명 전공상 인정/군의료시설 이용하게 특별법 추진

    ◎국방부·보훈처 국방부는 22일 고엽제피해와 관련,국방부및 각군본부에 전공상심의를 신청한 월남전 참전자는 지난 19일 현재 모두 1천8백78명이며 심의가 끝난 1천33명 가운데 전공상으로 확인된 3백33명의 명단을 국가보훈처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최세창국방장관은 『현재 국가보훈처에서는 고엽제 후유증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제정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보훈처가 추진중인 특별법이 제정될 경우 피해자신체검사등을 위해 군의관및 진료시설을 지원할계획』이라고 밝혔다.
  • 고엽제 피해보상 입법 추진/민자당/치료대책 등 정부에 건의키로

    민자당은 29일 파월장병 고엽제피해자 보상대책과 관련,「고엽제환자치료및 보훈과 관련된 특별입법」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민자당의 김영삼총재는 이날 상오 황인성정책위의장에게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파월장병 고엽제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토록 하라』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훈할 수 있는 입법및 지원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민자당은 관련법을 의원입법으로 성안,정부측에 건의할 방침이다.
  • 실업교 실험·실습실 기준 장관이 고시(국무회의:17일)

    ◎향군회관리 국방부서 보훈처로 변경 제35회 국무회의는 정원식국무총리가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차 북한을 방문중이어서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주재로 약1시간동안 진행됐다. 의결안건도 비교적 적어 대통령영안 3건과 법률안 2건등 5건이 처리됐다. ◎…최세창국방부장관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중 개정안을 상정,의결토록해 재향군인회의 관리·감독을 국방부장관에서 국가보훈처장으로 변경. ◎…최부총리는 재향군인회법개정에 뒤이어 상정된 보훈기금법중 개정법률안을 의결시켜 재향군인회의 사업을 지원하기위한 보훈기금의 재원과 지출과목을 새로 결정. 이에따라 사업지원을 위해 기부된 성금이나 재산을 보훈기금의 재원으로 할수 있게 됐고 재향군인회사업비를 보훈기금의 지출과목으로 새로 결정. ◎…조완규교육부장관은 「학교시설·설비기준령중개정안」을 상정하면서 『학교용대지와 체육장을 구분해 기준면적을 적용해오던 것을 학생수를 기준으로 교지의 기준면적을 산정해 교지확보와 이용효율성을 높이려고 한다』고 설명. 조장관은 또 『학교에 반드시 컴퓨터실을 두도록 했으며 교원의 근무환경개선을 위해 학교에 회의실및 교원연구실을 두도록 권장시설로 정했다』고 개정안을 설명. 개정안에서는 이밖에 실업계학교의 실험·실습실의 기준을 일률적인 규정에서 탈피,실업학교의 교육여건에 맞게 교육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도록 규정함에 따라 앞으로 실업전공에 맞는 실험설비를 갖출수 있도록 했다. ◎…조교육부장관은 또 「특수학교시설·설비기준령안」을 상정,여러 규정에 분산되거나 다른 규정을 준용해오던 특수학교의 시설·설비기준을 마련. 이 안의 의결로 특수학교는 교실당 50㎡이상의 면적을 확보하고 안전·방음·환기·채광·소방·배수 및 통학편의 등에 지장이 없는 입지를 갖추도록 규정이 마련됐다. ▷의결안건◁ ◇학교시설·설비기준령(개) ◇특수학교시설·설비기준령(안) ◇경륜·경정법시행령(안)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개) ◇보훈기금법(개)
  • 모든 학교에 컴퓨터교실 설치/각의 의결

    ◎교사연구실·회의실도 신설권장/특수학교 통학버스운행·기숙사건립 의무화 정부는 17일 최각규부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보훈기금법 개정안을 의결,재향군인회가 출자한 회사가 재향군인회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한 성금이나 재산을 보훈기금재원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재향군인회사업비를 보훈기금의 지출과목으로 새로이 정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국가유공자에 지급되는 보상금이 많아짐에 따라 이들에게 지급되던 생활지원자금을 없애고 이미 조성된 지원자금은 대부지원자금에 통합하도록 했다. 국무회의는 또 재향군인회의 효율적 관리와 감독을 위해 주무관청을 국방부장관에서 국가보훈처장으로 바꾸고 현재 정관에만 규정돼있는 재향군인회 사업에 관한 규정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내용의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각의는 이와함께 학교시설·설비기준령 개정안을 의결,각급학교에 학습시설로 컴퓨터실을 두도록하고 교원의 근무환경개선을 위한 권장시설로 회의실및 교원연구실을 설치하도록 했다. 각의는 이밖에 특수학교의 특성에 따라 각각 필요한 시설을 두도록하고 학생들의 취학편의를 위해 기숙사를 두거나 통학버스를 운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수학교시설·기준설비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 “주민을 더 편하게” 간소화행정 정착

    ◎민원업무 새바람운동 1백일 성과/담당자 찾기쉽게 좌석도표 게시/민원전산망 늘려 2백92종 단추하나로/자동응답전화기 설치,24시간 열차안내/“주민 가려운곳 어디냐” 모니터요원 위촉 정부 각 부처내에서 지난5월부터 불기 시작한 「민원행정새바람」운동이 자리 잡으면서 공직사회에 큰 변화가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지난해 10월부터 민원행정쇄신의 기치를 들고 대민행정의 효율화·민주화를 추구해온 정부는 그동안 5백49개 법률과 1천4백38개의 대통령령을 제정,개정하는 한편 모두 82건의 복합민원과 3천3백91건의 민원사무간소화작업도 이루었다.이에 부응해 공직사회에서 일어난 「민원행정새바람」운동은 이제 1백일을 넘기면서 일시적 「계절풍」이 아닌 「상시풍」으로 자리잡아 곳곳에서 흐뭇한 개선사례를 남겼다.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은 이같은 사례를 모아 「민원행정새바람 100일」이란 책자를 펴냈다.이에 소개된 사례를 간추려 본다. ▷사례1◁ 대민업무 창구에서 일선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이 친근감을 갖게 하기 위해 애쓴 흔적으로 남은 사례들이다. 강원도청의 경우 행정편의의 좌석배치를 과감히 탈피,민원실직원의 자리를 창구쪽으로 배치해 쉽게 담당자를 찾을수 있도록 했다.서울 성북구청과 영등포구청은 아예 게시판에 담당 직원의 좌석표를 붙이고 업무분장표도 내걸어 민원인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했다. 영등포구청은 매월10일을 「인사의 날」로 정해 간부직원이 아침8시 현관에서 주민들에게 일일이 안내하며 큰 인사를 해주기도 한다. 군포우체국은 바쁜 업무 가운데서도 1만원·10만원 단위로 동전을 준비,잔돈 교환을 쉽게 해주며,창구에 「기다리는 동안 사탕드세요」를 써붙이고 어린이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총무처와 국가보훈처는 청사앞에 민원인 전용주차장을 만들고 중상이자 이상 보철용차량을 위해 별도 주차장을 마련했다. ▷사례2◁ 낡고 비능률적인 관행과 제도를 과감히 떨쳐버린 사례들이다. 동력자원부·해운항만청은 간단한 민원을 오가는 불편없이 FAX로 처리해주기 시작했고 국세청은 사업자등록증명원등 5종의 민원을 컴퓨터로 발급해주는 편의를 제공. 인천서구청도 PC를 설치,구청·동사무소에서 처리하는 2백92종의 민원을 단추하나로 처리해주며 외무부도 컴퓨터로 신원조회를 경찰청과 연결,여권발급을 위한 신원조회기간을 5∼10일에서 3시간으로 단축시켰다. 부평역의 경우는 자동응답전화기를 설치,통화적체를 해소해 24시간 열차안내를 시작했고 국세청 역시 국번+3200을 누르면 세무상식 304항목을 설명해준다. 대전·충남·충북·전북시·군·구청 민원실등은 자동응답전화로 민원을 접수,해당민원을 민원인에게 회신 또는 제증명서를 발급해주어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보건사회부와 건설부는 가장 많은 인·허가 업무를 관장하면서 불필요한 절차나 비능률적인 인·허가규제 등을 과감히 정리,수십가지의 복잡한 업무를 알기쉽게 능률적으로 고쳐 시행중이다. 김포세관의 경우는 해외여행자 입국시 휴대품검사생략대상자,간이및 발췌검사 대상자를 확대조정,1인당 검사시간을 3분에서 2분으로 줄였다. 법무부는 민원서식을 대폭 개선,날인제도폐지가 40건,본적·성별·연령난 삭제 65건,출입국관리개선 3건등으로 민원인의 편의를 높였다. 부천시청은 매일 아침7∼8시반,하오6∼9시 사이 전직공무원을 부천·역곡전철역에 배치,각종 민원을 접수및 교부해주는 출장근무를 활발히 진행,바쁜 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사례3◁ 공무원들의 의식과 발상을 바꿔 주민우위의식을 가꾸는 경우이다. 광주세무서는 과·오납으로 발생한 국세 환급금을 찾아가지 않는 납세자를 직원들을 동원,일일이 주소지를 확인,통지해줘 큰 호평을 얻고 있으며 농어촌진흥공사는 사업지구내 주민 일부를 모니터요원으로 위촉,주민불만사항을 수시 파악하고 신속히 대처해오고 있다. ▷사례4◁ 이같은 대민행정쇄신운동은 사고의 전환을 통해 이뤄진 변화를 확산시키고 정착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만큼 이를 교육하고 사례를 발표하는 공무원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서울시청과 각구청·중랑경찰서등은 처리사례를 연극으로 극화,공연하는가 하면 민·관이 모인 토론회·설명회등을 정례화,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정홍교서기관은 『국민의 입장에서 아직 미흡한점이 있지만 계속해서 대민행정의 기본틀이 국민편의위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 책이 그에 일익을 담당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신규식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예관(예관) 신규식선생이 선정됐다.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규식선생이 한·중수교 시점에서 재조명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선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로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을 접목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력배양·민중계몽운동·경제적 자립기반 확충등 총체적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기 때문이다.신규식선생의 43세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상해 임정수립 주역… 중국승인 얻어내/한·일 합방 직후 망명… 12년간 항일운동 매진/신해혁명 참여… 손문정부와 연계투쟁 길터/22년 임정분열에 통분,병석에서 25일간 단식… 43세로 생 마감 신규식선생이 남긴 명저 「한국혼」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망국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 글에 담긴 선생의 철학은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소신찬 행동으로 이어진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사이 망국의 한을 온몸과 마음 바쳐 투쟁으로 승화시킨 신규식선생의 웅변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우리의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라 할지라도,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충북 문의서 출생 신규식선생은 1880년 1월13일 충북 문의군(현재 청원군)에서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신용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채호 신백우와 함께 「산동삼재」라고 불렸다. 17세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관립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덕을 쌓게 되었다.신동으로 불리며 한학등 구학문에 능통하고 문학에도 탁월한 자질을 지녔지만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국력배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을사년 순국기도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육군참위로서 지방군대와 연계,대일항전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장지연은 황성신문에 피를 토하듯 「시일야 방성대곡」을 썼다.민영환 조병세 홍만식등은 자결했다. 민심이 가마솥 끓듯 펄펄 끓을 때였다.청년장교 신규식은 계동·가회동·운니동등의 솟을대문들을 골라 몽둥이로 후려치며 미친듯 소리 질렀다. 『을사오적들은 나오너라!』 신규식은 호랑이라도 잡을 듯 거리를 쏘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운니동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한낱 미약한 존재였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사흘을 문걸어 잠그고 굶었다.그리고 결론을 내렸다.민영환등의 순국은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 투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거름의 역할을 하는 것­내한몸 거름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을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한국혼」 참조·26살 신규식의 이같은 생각은 그러나 후일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음을 할 수 있고,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쟁적 신념으로 바뀐다) 신규식은 독약을 마셨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그러나 약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애꾸가 되었다.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었다. 『애꾸,그렇다.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어찌 나 한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우리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예)자,볼 관(관)자­예관으로 자호를 삼아 끝까지 사용했다. 문동학원·덕남사숙의 설립 또는 지원,중동학교장 취임,공업전습소생들을 중심으로한 「공업연구회」조직,월간 「공업계」창간,윤치성 민대식등 퇴역장교를 규합한 황성광업주식회사 설립·운영,민족종교인 대종교에의 입교,분원자기공장의 설립과 고려자기 재현운동…등등이 선생의 무서운 행동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1910년 「보호」라는 양의 탈을 쓰고있던 일제는 본색을 드러냈다.경술국치가 그것이다.우리나라는 통째로 그들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선생은 다시한번 자결을 생각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1911년 상해로 망명,운명할 때까지 12년여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당시세계정세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이라는 두가지 운동노선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혁명가적 열정과 선각자적 혜안을 함께 갖춘 선생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송교인 진기미 손문등과 교류하며 중국신해혁명에 외국인으로 참여하여 나중 중국국민당정부와의 항일연계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11년 여름 어느날 선생은 손문과 함께 자리를 했다. 『예관선생이 우리 동맹회를 도와주시니 참으로 장한 일이십니다』 『바로 중국혁명운동이 한국독립에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양국 사이는 순치(순치)의 관계였습니다만 중국은 우리를 속국시한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혁명이념으로 볼 때 과거 우리에게 진 묵은 빚을 청산해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듣던대로 훌륭한 논객이요.애국자이십니다』 선생과 손문의 혁명적 동지애는 변함없이 지속됐다.이 우정을 바탕으로 선생은 손문의 도움을 얻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을 적성에 따라 교육시켰다. ○3·1운동을 점화 둘째는 3·1독립운동과 상해임정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선생은 1917년 조소앙 박용만등 13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핀란드 폴란드등 당시 피압박민족의 독립을 열거하며 이는 좋은 징조이므로 우리나라도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의 조직필요성을 역설했다.또 국내와 일본등에 동지들을 밀파,2·8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다. 1919년 3·1운동이 터졌고 상해에서 선생은 프랑스 조계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정부수립을 추진했다.(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인 오세창은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하고 있으며 당시 일경비밀정보도 『…이 소요를 유발시킨 데에는 상해거주 불령선인들의 선동에 크게 힘입었다』고 쓰고 있다) 상해임정도 수립되었고 5월에는 손문등 중국광동정부로부터 국가승인도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부수립후 고질적 파벌의식과 지방색·출세욕 등이 뒤엉켜 1921년4월 이후 임정은 혼란에 빠져들었다.선생은 병원에 누워 의정원 회의참석을 거부했다.4월10일 소위 「재미파」이승만이 내각수반이 되었다. 이듬해까지 병석에 누운 선생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국인들이 단합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면서 25일동안이나 불식·불언·불약을 고집했다. 이튿날인 1922년9월25일.선생은 마지막 남은 숨을 호흡단절법으로 끊고 이승을 버렸다. 『정부…정부…』 희미한 소리가 숨을 거두는 그의 목에서 새어나왔다.단식 25일만에 처음 나온 말은 선생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그 말은 7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남아있을 유언이 아닐는지…. ◎독립운동에 외교적으로 크게 공헌/역사적 평가/신승하 고려대교수·동양사 예관 신규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알려져있는 것보다 숨겨져있는 공이 많은 분이다.특히 중국에서 한국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고 또한 중국정부나 중국인들로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분이다.그런데 불행하게도 1922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분이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때부터 구국자강을 위하여 실업과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아래 학교를 세우고 또한 우리나라에선 제일 먼저 실업전문잡지인 「공업계」를 발간하였다.그러나 나라를 잃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중국혁명당 인사들과 접촉하고 동맹회에 가입하였다.그리고 중국이 잘되어야만 우리나라도 잘될수 있다는 생각아래 그들과 함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이후 중국 혁명당인들과의 교류가 더욱 밀접하게 될 수 있었다. 그는 인재의 양성이 절실하다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으며 또한 중국인의 무관학교는 물론 일반 학교에도 입학을 주선하고 심지어 외국유학까지 보냈다.그리고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 선전하기 위하여 진단이란 잡지를 상해에서 발간하였다. 1921년에 손문이 광주에서 광동호법정부를 수립하자 한국임시정부 의정원은 그를 전권사절로 파견하였다.그리하여 한국임시정부가 호법정부의 승인을 받고 중국의 각 군사학교에서 한국학생의 수용을 허가받아 이후 황포군관학교 광동대학 등에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입학되었으며 이들은 독립운동의 기간이 되었다. 따라서 신규식의 평가는 단순한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 앞서 독립운동을 위한 또 이를 전개하는 과정가운데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음을 높게 사야 할 것이다.
  • 장애자올림픽에 성원을/노주석 생활부기자(오늘의 눈)

    어린딸이 힘겹게 미는 휠체어에 실려 경기장으로 들어선 장애자어머니.관중들은 모녀에게 눈물어린 박수를 보냈다.지난 88년 서울장애자올림픽에서 성화를 봉송한 조현희씨와 보람이(당시7살)가 펼친 이 휴먼드라마의 한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장애자올림픽이 서울에 이어 이번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오는 9월3일 개막된다.우리나라에서도 65명의 장애인선수들을 파견키로했다.이에따라 서울 성동구 구의동 정립회관등 3곳에서 현재 합숙훈련을 받느라 땀을 쏟는다.그러나 이들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소외감을 선듯 씻어버리지 못하고있다. 선수들의 훈련이나 합숙과정은 한마디로 눈물겹다.우선 선수들이 많지도 않은데 이들을 한군데로 모을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그래서 정립회관과 보훈병원,한국체육대학등에 몇명씩 뿔뿔이 흩어져 더부살이를 하고있다.훈련장소 또한 마땅치않아 정립회관건물옥상에 텐트를 쳤다.그리고 야외훈련장을 찾느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보는이들로 하여금 연민의 감회를 자아내게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동안 태릉선수촌의 최신시설을 그냥 놀려둔 것은 물론이다.그럼에도 이들 장애인선수가 들어갈 공간을 찾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최고의 시설을 갖춘 태릉선수촌에서 불편없이 훈련에만 열중한 하계올림픽출전 정상인 선수들이 이들에게는 무척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장애자올림픽은 4년에 한번씩 하계올림픽과 맞물려 열린다.올림픽이 힘과 기를 겨루는 젊음의 축제라면 장애자올림픽은 전세계 장애인들이 재활의지를 다지는 한마당이다.모두가 스포츠를 통한 지구촌의 대제전이라는 동일명제에도 불구하고 정상인과 장애인 스포츠축제사이에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가로놓인다.선수단에 배정된 예산 가운데 문화비의 경우 1백60만원,후생비는 고작 1백만원이라는 사실도 그한예로 지적되지 않을수 없다. 우리나라는 4년전에 이미 전세계 61개국의 선수와 임원 4천2백명을 불러다 장애자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른 경험을 갖고있다.그러나 이번대회는 정상인선수들의 바르셀로나올림픽 열기와 우리선수들이 차지한 영광의 그늘에 가려진듯 싶다.다행히 장애자올림픽을 이해하는 분들과 단체,기관 몇몇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보긴 했으나 아직 뜨겁지는 못하다.그들이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에 국민 모두가 격려의 박수와 삶의 용기를 불어넣을수 있는 성원을 보내자.
  • 창군·6.25참전자에 연금/중사이상 하사관·장교 대상

    ◎내년부터/월 최고27만원… 3만여명 혜택/보훈처,관련법안 정기국회 상정 국군창설 참여자와 6·25전쟁 참전자들에게 내년부터 참전연금이 지급된다. 국가보훈처는 19일 그동안 예산부족으로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던 창군참여자및 한국전쟁 참전자들에 예우를 해주는 방안의 하나로 매달 특별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창군및 6·25 참전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법제처 심의등을 거쳐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보훈처가 특별입법 형식으로 마련,지난 11일 입법예고한 이 법률안에 따르면 48년8월15일 이후 군에 복무한 사람 가운데 여순반란사건 진압작전과 한국전쟁 등에 1년이상 참가하고 3년이상 복무한 중사(당시계급 이등상사)이상의 하사관과 장교로 전역한 군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참전연금을 지급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지급될 참전연금은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는 기본연금액 이내에서 전역시의 계급과 복무기간을 고려해 지급토록 되어 있다. 이 경우 참전연금은 최저 월8만원에서최고 27만원까지 지급된다. 보훈처는 이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각시도 보훈청별로 등록을 받되 연금은 참전기록 확인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 대상자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보훈처는 『현재 전국에 있는 창군 참여자및 한국전쟁 참전 생존자는 50여만명으로 이 가운데 참전연금 지급혜택을 받게 될 대상자는 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하고 『 연금지급에 따른 소요예산은 연간 3백70억∼4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 연·기금 3∼5년마다 감사/주기1년서 연장

    ◎여유분 증시투자 촉진/재무부,연내 6천억 주식 추가매입 지시 각종 연금과 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실적에 대한 정부의 감사주기가 현행 1년에서 3∼5년으로 늘어난다.이는 연·기금이 보유한 여유자금을 단기적인 실적에 관계없이 마음놓고 주식투자에 활용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기금에 대한 정부의 감사가 1년단위로 돼 있어 주식에 투자한 여유자금의 운용실적이 나쁠 경우 담당자들이 문책을 당하기 때문에 이익이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주식투자를 하지 않았고 더더구나 장기간의 주식보유는 아예 하려들지 않았다.선진국의 경우 이들 연·기금이 맡고 있는 유력한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해온 셈이다. 재무부 당국자는 15일 국민연금 등 74개 연금과 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실적 평가를 위한 정부감사를 현1년 단위에서 3∼5년으로 그 주기를 늘리기로 감사원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특히 여유자금의 운용규모가 큰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기금·문학예술진흥기금·보훈기금·교원공제회 등 7개 연·기금에 대해서는 여유자금 6조7천억원의 10%까지를 연말까지 추가로 주식을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 전몰군경유자녀회 보훈혜택 요구 시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자녀회」(회장 조인성)회원 1천여명은 13일 상오9시쯤 여의도 보훈회관 앞에 모여 「전국 6·25 전몰군경 합동장례식」을 갖고 보훈정책의 개선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장애자 올림픽/새달 3일 팡파르… 94국 5천명 참가

    ◎바르셀로나서 육상등 15종목 열전 12일/한국선수단 65명 출전… 금19개 10위 목표 92바르셀로나올림픽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데 이어 패럴림픽이라고도 불리는 장애자올림픽의 성화가 다시 불타오른다. 이번으로 9회째를 맞는 장애자올림픽은 9월3일부터 14일까지 12일간 바르셀로나시에서 열린다.94개국에서 5천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할 이번 장애자올림픽의 경기종목은 15개 정식종목에 5백55개의 세부종목.지난번 서울대회(정식16개,세부7백32개)때보다는 다소 축소됐다.정식종목수가 하계올림픽의 24개보다 적으면서도 세부종목수가 훨씬 많은 것은(올림픽 2백57개) 각 종목이 척수장애 뇌성마비 시각장애 절단장애등 장애의 종류와 정도의 차이에따라 참가자격이 세밀하게 구분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상등 11개종목에 65명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다.이번대회에서 우리선수단은 육상4,역도와 탁구에서 각3개씩등 10개종목에서 19개의 금메달로 10위를 겨냥하고 있다.현재 참가선수들은 한국보훈병원과 정립회관,국군체육부대등에서 6월20일부터 피땀나는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이번 장애자올림픽은 사상최대규모로 치를 예정이다.자칫 올림픽의 열기에 가려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쉬울수 있기때문에 스페인올림픽준비위원회는 장애자올림픽 홍보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이에따라 스페인올림픽준비위원회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진행됐던 메인스타디움을 비롯한 각종 경기장과 선수촌을 그대로 활용키로 했다. 장애자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항상 즐겁고 친절한 소녀 「페트라」로 결정됐다.「페트라」는 변덕스럽고 고집스러운 구석은 있지만 영리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많은 스페인 소녀.바르셀로나올림픽 「코비」를 디자인했던 스페인의 미술가 마스칼이 도안한 것으로 단순하지만 현대적인 모습이다.대회휘장(엠블럼)은 호세 마리아 트리아스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빨강,파랑,노랑의 삼색으로 형상화했다. 이번대회의 또다른 특징은 선수,운영요원,관중들을 흡연공해로부터 구출하기위해 「흡연금지대회」로 선포하고 선수숙소와 전경기구역등에서 철저한 규제가 실시되는 점이다.그리고 신체가 불편한 참가선수들의 특성상 주최측은 의료시설운영에도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24시간 응급진료를 벌이고 전문과목별로 12시간씩 문을 여는 선수촌 종합병원이 개설된다.그리고 스페인 정형전문가연맹이 보장구수리소를 각경기장마다 설치운영한다.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의 신창현체육진흥부장은 『자체 선수촌과 경기장이 없어 경기장은 군부대체육시설을 빌려 썼으나 숙소를 못구해 애를 먹었다』고 고충을털어놓았다.그런 가운데서도 한마디 불평없이 묵묵히 연습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않았다.
  • 재향군인회 자녀 봉사활동(단신패트롤)

    ◇재향군인회 회원의 대학생자녀 1백70여명이 여름방학을 이용,10일부터 닷새동안 서울 일원에서 환경정화운동·질서지키기 캠페인등 봉사활동을 펴고있다. 이들은 또 보훈병원 봉사조를 별도로 편성,12∼13일 이틀간 중환자실 뒷바라지와 거즈 접기·청소·행정업무지원을 한다.
  • 장애인 올림픽 출전선수 격려/정 총리

    정원식국무총리는 10일 『황영조선수가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우리민족의 역량을 과시,자신감과 자긍심을 심어준 쾌거였다』고 치하했다. 정총리는 이날 정립회관과 보훈병원·국군체육부대를 방문,장애인올림픽출전선수들을 격려하면서 『황선수의 쾌거를 오는 9월3일부터 열리는 장애인올림픽에서도 그대로 재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총리는 이어 『선수여러분들이 좋은 성적의 훌륭한 경기를 보여 1백만 장애인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드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일선생

    ◎독립군 양성… 청산리전투 대승 이끌어/31세에 만주로 망명… 한인자녀들 가르쳐/항일투쟁단체 규합,대한군정서 총재로/「김좌진전투부대」의 최고지도자… 흑하사변으로 동지 잃자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포 서일선생이 선정됐다.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서일선생은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청산리전투의 실질적 주도자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교육자·종교인·언론이기도한 선생은 1921년 소위 흑하사변으로 동지들을 잃자 자결로 민족에 사죄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백포의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청산리전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서일선생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일제를 깨부술 수 있는 것은 힘뿐이라고 믿었던 젊은 혁명가,그 힘은 강고한 정신력과 무장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한 지휘관이 서일선생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교단에서 백묵가루를 마시던 약골의 선비 서일을 무장독립운동가로 변신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는 41세의 짧은 생애 강운데 나중 10년을 백두산과 만주벌판을 누볐다.그 마지막 10년동안 흘린 피와 땀과 사자후가 희미하게 역사에 남아 있다. 혁명가 서일선생에 대한 흔치않은 증언과 색깔 바랜 기록들이 아쉽긴 하지만 그의 이름은 청산리전투와 함께 우리 역사에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고향과 가족을 등진채 산악과 벌판에서 풍손로숙한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저승에서도 서일선생을 떠받들고 있을 것이다. 선생은 1881년(고종18년)2월26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김희동 농가에서 태어났다.호는 백포. ○월북 경원서 출생 처음 이름은 기학이라 했지만 나중에 일로 바꿨다(대종교·보훈처 기록).18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신학문에 뜻을 두고 경성에 있던 성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이로부터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나중 그의 행적을 미루어 보아 식민지 젊은이들의 의와 기를 살리는데 앞장섰으리라생각될 뿐이다. 그러나 그의 20대는 날이 갈수록 어두운 색깔로 채색되어갔다.혈기왕성했던 스물다섯에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겪었고 서른에는 망국의 경술국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와 망명지 만주등에는 사립학교 설립이 급증했다.이는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선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선생역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음에 틀림없다.그러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망명후 선생이 교육에 정신(대종교)과 힘(무장투쟁)을 융합시킨 사실이 그 증거이다. 31세때(1911년)선생은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의 어려움과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통분해하며 당시 지사들이 많이 망명해있던 동만주 왕청현으로 떠났다.만주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 10년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승점이 설립한 대종교계통의 명동학교(왕청 덕원리소재)에서 물밀듯 이주해오는 한인자녀들을 가르치며 조국독립의 강한 의지를 불붙여 주었다(이 명동학교를 서일선생이 설립했다는 설도 있지만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이듬해 10월 선생은 대종교에 귀의한다.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실행하는 대종교 정신은 벌판을 누비던 독립군들에게 막강한 정신력을 주게된다.선생이 단순한 무장독립운동가가 아닌 교육자·종교인·언론인으로도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만강을 넘어 망명해오는 열혈청년들이 줄을 이을 때 서일선생은 북간도 일대에서 대일항전을 노리는 의병들과 규합,중광단을 조직했다.단장에 취임한 그는 무력항쟁의 기틀을 잡기위한 체제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대종교의 이념계승에도 몰두했다. ○대종교에 귀의 그는 대종교 입교후 포교에도 나서 3년동안 동만주 북만주 연해주 함경도 일대에서 10여만의 교우를 얻어 「도력이 큰 도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서일선생은 교우들중 젊은 청년들은 독립군으로 편입시키고 일반교우에게는 군량 조달등 다른 직무를 부여했다. 독립군에 편성된 청년들의 강고한 정신무장을 위해 한배검에 귀의케한 탓으로 후일 그가 총재로 지휘한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의 장병은 거의가 대종교인이었다.선생은 교도들을 중심으로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는데 신도 1만5천명을 모아놓고 「독립군 양성기금으로 1인1원씩 거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종교를 독립운동의 기지로 삼았음이 틀림없다.이 사이 선생은 「오대종지강연」「도해」「신화강의」「진이도설」「삼문일답」「회삼경」등 경전도 저술했다. 당시 선생은 중광단등을 통해 대일무장투쟁을 추구했으나 재정문제등 조직적 체제가 구축되지 않아 실질적 군사투쟁은 전개하지 못했다.이에 선생은 수많은 독립군및 운동단체 결집을 위해 1918년 김좌진 김동삼 신팔균 손일민 신채호등 39인 연서로 「무오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와함께 강도 높은 전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일민보」「신국보」등 신문을 발간,『일제와의 항쟁은 혈전을 벌이는 피의 전투 밖에 없다』는 논조를 내세웠다. 이듬해 1919년7월부터 청산리전투가 전개된 1920년10월까지 선생은 중광단을 확대·개편한 대한정의단→대한군정부→북로군정서등 독립군단을 이끌었다.정규병력 1천5백여명을 청산리전투주역인 사관으로 양성하고 러시아·체코군으로부터 3만여정의 무기도 확보했다. 이처럼 군정서가 힘을 갖추기 시작하자 일제는 상당히 겁을 먹고 주목했는데,그들은 「북간도지방의 항일단체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제정규군 3천3백여명이 사살 당하는 청산리전투를 짐승처럼 예감하고 있었다. ○일군 3천명 사살 『…군정서는 서대파구에 근거를 두고 서일이 통솔한 단체로서 대부분 단군교도(대종교)이다.…그들 행동은 극히 흉포하여 부단히 선내지에 대한 무력침습을 양언하고 있다.…총재는 서일,부총재 현천묵,사령관 김좌진,부사령관 김성,참모장 나중소등이다.…일단 유사시에는 명령일하 동원소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산리전투후 여러개의 독립군단들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영 밀산으로 이동한다.여기에서 북로군정서(서일)·대한독립단(홍범도)등 10개 부대는 전만주 3천5백 병력을 통합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고,선생이 총재로 추대되었다.부대편성을 마친 독립군단은 이듬해 정월 우수리강을 건너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소련영토 안에 일본에 대적하는 독립군을 육성하면 양국간 우호관계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일공사 요시자와의 위협에 소련은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소위 「흑하사변」이라는 참변이 발발해 독립군은 힘을 잃었다.여기에 토비들의 습격까지 겹쳤다. 수많은 동포와 청년독립군들이 희생을 당했다.비분강개한 선생은 8월28일 마을 뒷산 산림 속에서 대종교의 폐기법으로 자결순국했다.41세 독립운동가가 남긴 유언은 처절하다.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차리라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역사적 평가/독립운동가·교육가로 큰 발자취/신재홍 국사편편찬위 부장 백포 서일선생은 그가 민족운동사에서 차지 하고 있는 위상에 비하여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일찍이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몸소 이를 실천한 교육자이며 또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한 대종교의 간부일뿐아니라 만주에서 일제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군 지도자였다. 그의 학력은 함북 경성군에 위치한 성일학교 사범과를 나온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민족혼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음을 인식하여 향리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1910년 일제가 주권을 강탈하자 북만주로 망명하여 그곳에 명동 동일 학성 동신 동화 양성학교를 설립하여 구국인재 양성에 헌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강인한 민족혼의 배양에 있다고 확신하였고 이를 위하여는 국조단군을 숭상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깨우치는데 있다 하여 민족종교인 대종교에 귀의 하였다.대종교의 포교가 바로 민주운동이요 독립운동임을 믿어 교리연구과 포교에도 힘써 많은 저술을 남긴 민족종교의 지도자였다. 선생의 활동에서 특기할 것은 무엇보다 무장항일운동에 있었다.선생은 일제를 우리 국토에서 구축하고 주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로지 일제와의 혈전에 있다하여 무장항일운동 단체인 중광단 대한정의단을 조직,활동하였고 1919년에는 여러 무장단체를규합하여 북로군정서를 설립하였다.이 단체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대종교 신자가 중심이 된 단체로서 재만 독립군중 최강의 부대였다.따라서 1920년 이 부대가 이룩한 청산리전투의 위업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인식하여야 한다.이것은 선생이 배양한 투철한 민족혼과 강인한 항일의식이 그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민족교육가이며 민족종교가로서 또한 무장항일운동의 지도자로 선생이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수가 있다.
  • 경제 행정규제 완화 논의(당정회의·16일)

    정부와 민자당은 16일 상오 여의도 민자당사에서 당정회의를 갖고 경제기획원이 마련한 「경제행정규제완화종합대책」을 확정하고 향후 행정규제완화추진일정을 협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측에서 최각규부총리를 비롯,10개 경제부처 장·차관이,당측에서 황인성정책위의장및 제1·2·3정조실장등 정책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행정간소화는 「작고강한정부」와 부합”/“농지거래 자유화”건의에 “세밀검토 보고” ○역대당정중 가장 내실 ◎…황정책위의장은 이날 회의 인사말에서 『행정규제완화추진이야말로 이제까지 당정이 해온 일중 가장 내실있고 실질적인 것』이라면서 『이는 작고 강한 정부를 강조하는 김영삼대통령후보의 뜻과도 일치하는 활동』이라고 평가. 최부총리는 『이번에 마련한 경제분야 행정규제완화방안의 특색은 위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대책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 의견이 수렴된 성과』라며 계속적 행정규제완화추진을 강조. ○정기국회서 법률개정 ◎…이어 한갑수경제기획원차관이 경제행정규제완화대책의 추진배경및 그 개선방향내용 설명에 나서 『총 64개의 경제행정규제완화 개선과제중 법률개정사항 4건은 당정협의를 거쳐 정기국회에서 개정을 추진하고 시행령개정사항 23건,규칙·고시 26건,관행및 기타 11건은 원칙적으로 9월까지 개정을 완료하겠다』고 보고. ○일선기관 홍보 촉구 ◎…서상목 제2정조실장은 당측에서 추진하고 있는 18개 분야 1백86건의 행정규제완화사항을 설명한뒤 중앙정부차원에서 제도개선이 이뤄지더라도 일선기관에서 이를 잘 알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관련 공무원에 대한 교육·홍보의 병행을 촉구. 서실장은 8월부터 두달동안 농지제도·환경영향평가제도·수도권정비계획등 각 과제별로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가진 뒤 10월까지는 전반적 행정규제완화에 관한 획기적 방안마련을 약속. ○「의무고용」 완화도 검토 ◎…이날 회의 참석자중 권해옥·황윤기의원은 『농지거래의 대폭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백남치제3정조실장,김중위의원,함종한정책위부의장 등은 『행정규제완화도 좋지만 영양사·보건관리자의 의무고용기준을 완화하거나 보훈대상자 고용의무율 인하는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 이에 황정책위의장은 『농지거래문제는 민감한 사항이니 농림수산부가 세밀히 검토해 추후 보고토록 하는게 좋겠다』고 밝히고 『보훈대상자문제는 경제기획원안대로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재검토해 신중히 결정하자』고 보훈대상자 의무고용문제는 재고할 뜻을 피력. ◎경제행정규제 완화 주요내용/식품제조업 한번 허가로 유사품목 제조/세관검사 대상품목 30개서 25개로 축소 ▷법정의무고용◁ ▲현재 4만8천개 기업을 대상으로 대기·수질·소음등 분야별로 각각 유자격관리인을 채용토록 되어 있던 것을 규모가 작은 4∼5종 사업장에 대해 겸임을 허용,1만4천개 기업이 혜택을 보도록 함 ▲보건관리자의 채용의무기준을 50인이상 사업장에서 2백인이상으로 조정 ▲영양사·조리사채용의무 대상업체를 급식인원 50인이상에서 1백50인으로 상향조정. ▲기계·기구·설비의 설치·이전·변경시 유해 위험방지계획서를 현행 착공 60일전에서 20일전까지만제출하면 되도록 하고 제출서류도 계획서에 한정 ▲대기·수질·소음분야의 배출시설 설치허가를 통합하여 받을수 있도록 함 ▲신고만으로 변경할수 있는 폐수배출시설변경규모를 현행 20%에서 50%까지 확대 ▲방지시설의 시공자격기준을 완화해 현재 20%증설시까지 자가시공할 수있던 것을 30%까지 확대. ▷공장설립절차◁ ▲시·군내 입지지정승인 협의절차와 용도지역 변경승인에 관한 시·도 협의절차의 동시처리 ▲농업용 저수지 수계 상류 10㎞이내에 공장설립을 인정치않던 것을 5㎞로 줄이고 폐수배출시설이 아닌 경우 2㎞까지도 허용 ▲농업진흥지역밖의 농지전용허가범위를 4백50평에서 3천평으로 확대 ▲농지편입비율(70%)의 탄력적 운영 ▲수도권내 개발유도권역및 개발유보권역내에서의 공장 신·증축 허용범위확대 ▲소규모 폐수처리시설에 관한 건축규제완화 ▲녹지·환경시설에 대한 이중규제완화. ▷금융차입 수출입 생산 판매절차◁ ▲산업은행의 1년이내 단기운용자금대출시 자금수지표작성을 생략하고 추정손익계산서 작성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단축 ▲담보대출의 경우 등기이사 전원에 대해 개인근보증을 요구하는 관행 개선 ▲1만달러미만 소액수출에 대한 수출승인면제 ▲세관검사 대상품목을 30개에서 25개로 축소하고 검사비율도 5∼10%에서 3%이내로 감축 ▲식품제조업체가 한번의 허가로 유사품목을 제조하는 것을 가능토록 함.
  • 6공들어 군부지 매각 35건/국방부 발표

    ◎15건 경매… 20건은 공공단체와 수의계약 국방부는 14일 6공들어 도심에서 교외로 이전한 군부대는 모두 35개 부대였으며 부지매각방식은 공개경쟁입찰이 15건,수의계약이 20건이었다고 밝혔다. 이해종국방부시설국장은 이날 수의계약으로 부대땅을 매입한 주체는 서울·부산시등 지방자치단체와 보훈복지공단·토개공·군인공제회등 국가공공단체이고,부산시 개금동 모공병부대부지와 경기도 의정부시 모교육대부지 등은 공매방식으로 럭키개발과 (주)유일 등에 매각됐다고 말했다. 이국장은 또 지난 66년 군용시설교외이전 특별회계법이 제정된 후 모두 1백34개 군부대가 교외로 이전됐으며,6공들어서는 88년 6개,89년 10개,90년 8개,91년 9개,올들어 2개부대가 교외이전및 매각이 완료됐다고 말했다. 이국장은 현재 교외이전을 추진중인 군부대는 34개라고 밝혔다.
  • 병원 구내식당 종업원 12명/집단 LP가스 중독 판명/부산

    【부산=김정한기자】 병원식당에서 일하는 여자종업원 12명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집단으로 LP가스에 중독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부산 북구 주례동 부산보훈병원 구내식당종업원인 김호순씨(39)등 종업원 12명이 지난달 16일 갑자기 심한 두통과 고열,피부가 벗겨지는 증세를 일으켜 부산 동아대부속병원과 부산시립병원의 진단결과 LP가스중독으로 판명됐다. 동아대 부속병원은 이들 환자는 대부분 1∼8년 동안 부산보훈병원 식당종업원으로 일해오다 지난달 1일 새로 이전한 부산 북구 주례동 신축건물의 식당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방일을 하다 새어나온 LP가스에 급성으로 중독된것같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택시기사 2명이 LP가스중독으로 직업병판정을 받은 적이 있으나 집단으로 중독증세를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6·25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참전·전후세대 좌담

    ◎“통일의지 가다듬는 「역사의 거울」삼아야”/「상잔의 비극」 잊으면 제2불행 초래/“젊은층 북한 몰라… 통일 접근 신중히”/깨어있는 젊은이 많아야 한반도 앞날 밝아 6·25동란 42돌을 맞았다.전쟁이 일어난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고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장년이 되어 사회각분야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직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생생한데 젊은 세대에게는 6·25가 한낱 역사속의 「사건」으로만 여겨져 가고 있다.인공기가 내걸리고 북한의 상투적인 구호가 그대로 외쳐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6·25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며 또 무엇을 배울것인가.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후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6·25의 참뜻을 되새겨본다. ▷참석자◁ ▲배명오씨(63·전 국방대학원 교수) ▲김용승씨(53·월간 「한사랑」 주필) ▲박현정양(21·동덕여대 의상학과 3년) ▲배명오교수=전쟁의 비참한 날들이 아직 생생하고 6·25의 상처가 다 아물었다 할 수 없는데 벌써 42년이 흘러갔습니다.저는 서울대 3학년 재학중 6·25가나 바로 육군종합학교에 입학했다가 참전했습니다.숱한 격전을 치르며 살아남은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해마다 6월만 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6·25가 역사 속으로 묻혀가며 잊혀지는게 섭섭하고 우리 국민의 80%나 되는 전후세대들이 북한을 너무 모르는게 안타깝고 국민들의 성급한 통일욕구가 불만스럽기 때문입니다. ▲김용승주필=저는 국민학교 6학년때 전쟁을 맞았습니다.지긋지긋했던 피란살이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전후세대가 들으면 「또 고리타분한 이야기하는구나」하며 외면할지 모르지만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자』는 것을 강조합니다.누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개인이 잘 되려면 웃어른을 잘 모셔야 되듯 나라도 공세운 유공자들을 위해야 잘되는 것입니다.이 말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로부터 대접받자는 뜻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축구만 잘해도 국가가 예우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참전세대는 어림잡아 1백59여만명 되는데 이 가운데 47만명이 생존해 있습니다.특히 전쟁부상자 1백10명은 보훈병원에서 40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이들의 영예를 선양해 줄 때 국민적 구심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박현정양=저는 솔직히 이런 자리가 어색해요.부끄러운 말씀이지만 6·25에 대한 인식도 매우 적었습니다. 과연 6·25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저는 당혹스럽습니다.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이데올로기의 홍수에 혼돈을 느끼고 있습니다.난롯불에 직접 손을 덴 사람과 그저 막연히 「아,뜨겁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국민학교때에는 학교에서 「상기하자,6·25」라며 표어를 만들고 포스터를 그리기만 했을 뿐입니다.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선 그런 막연한 개념들을 자연히 잊어버렸습니다. ▲배교수=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위치,항상 그 영향을 받게 돼있습니다.우리가 한반도에서 생존하는 한 현재는 물론 2000년 이후에도 전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이 때문에 우리는 6·25전쟁을 망각해선 안됩니다. 서울을 보십시오.「세계적 대도시」라고들 합니다만 그게 자랑거리가 안됩니다.많은 안보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너무 밀집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자본주의의 좋은 점보다도 취약한 요소들이 도처에 많습니다. 안보·국방은 더욱 투철히 해두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주필=통계에서 보면 우리민족이 9백여차례나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여기에서 우리는 더이상 전쟁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설명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또 과거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인도속담은 우리에게 던지는 경구입니다.우리민족의 역사의식은 유감스럽게도 매우 약합니다.전쟁이 끝난지 불과 39년입니다.그런데 현재 우리국민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 평화의 집앞에는 이런 비문이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무서운 경구입니다.평화를 지키는 힘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국민의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박양=두분께서 저희 젊은 세대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자본주의의 영향탓인지 물질만능에 젖어 정신적인 것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이들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요.각자 개인들이 작은 일부터 질서를 지키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교수=좋은 말입니다.민족혼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많다고 봅니다.박수갈채를 보낼만한 훌륭한 젊은이들도 많아 한편으로는 마음든든합니다. 그들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우리민족의 통일에 대한 미래는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국민들을 공연히 들뜨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최근 우리의 통일정책은 너무 양보하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과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주필=통일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높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높은 교육열을 잘만 활용하면 통일문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최근 우리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각계에서 번지고 있는 데 이것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면 민족통일문제와 접목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양=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25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배우고 익혀서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것 찾기,우리 물건쓰기운동도 한창인데 이럴때 애국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시키면서 국민의 정신력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6·25가 우리에게 건전한 의식을 갖게 해주는 역사적 거울로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봐요. ▲배교수=통일문제와 관련해 최근 우리 체제만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유감스럽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론을 제기하고픈 생각이에요.우리의 현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대한민국 주도하에 이뤄져야 하며 체제와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둬야 할 것입니다.▲김주필=우리에게 있어서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점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순화시키는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배교수=젊은이들은 남북고위급 회담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들의 미소와 유연한 자세를 보았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온화한 미소뒤에는 지난 5월22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 침투한 북한 무장침투조의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박양=동족상잔의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보며 경제성장과 함께 정신적 가치관의 확립이야 말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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