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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훈처장 金有培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8일 공석중인 국가보훈처장(차관급)에 김유배(金有培) 전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을 임명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에는 최정일(崔禎鎰) 외교통상부 조약국장이 임명됐다.경남 사천 출신으로 49세인 최 비서관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주미대사관 참사관,북미국 심의관을 역임했다. 양승현기자
  • 청와대수석 교체 안팎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7일 3명의 수석비서관을 교체한 것은 국정개혁 2기를 맞아 내각에 이어 청와대 비서실 체제를 새롭게 정비하겠다는 포석으로 여겨진다. 특히 유임이 예상되던 외교안보수석의 교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4강 외교의 중요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이제는 외교전문가를 발탁해야 한다는 주변의 건의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김하중(金夏中) 외교안보수석은 김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속에 그동안중국 등 국제관계에 대한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실제 그의 기용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한과 미·중이 참여하는4자회담 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또 김유배(金有培)전 복지노동수석의 교체는 노동계 파업,의료계 폐업 사태에 대한 김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단초이다.조기해결의지가 함축되어 있다.새로 임명된 최규학(崔圭鶴) 복지노동수석은오랫동안 총리실 행정조정관으로 근무,조정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약계의 의견도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이다.조규향(曺圭香)전 교육문화수석 교체 역시 개인적 하자보다는 비서실 분위기 쇄신의 측면이 강하다.‘최장수 수석’이라는 점이 주된 교체이유로,교육현장 경험과 출신지 등에 있어 성격이 비슷한 정순택(鄭淳택)부산시교육감이 낙점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김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강원 출신 외교안보수석 후임에 강원 출신을,경남 출신 교육문화수석 후임에 같은 경남 출신을,목포 출신 복지노동수석 후임에 역시 목포 출신을 임명하는 등 지역을 배려했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집권 초기와 마찬가지로 국민화합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주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프로필. △ 김하중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내 대표적인 중국통.올해 특2급으로 승진했다.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현안이 생기면 끝까지 해결하는 스타일.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97년 황장엽(黃長燁)씨 망명사건 때 장관특보로 중국옷을 입고 다니며 망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일화가 있다.부인 배영민(裵英敏·49)씨와 2남1녀. ▲강원 원주(53) ▲서울대 중문과 ▲외시 7회 ▲동북아 2과장 ▲의전담당관 ▲주중대사관 공사 ▲아태국장. ■정순택 교육문화수석. 평교사에서 출발해 평생을 교육에 몸 바친 부산교육계의 산 증인.민선 1기 부산시 교육감을 지낸데 이어 지난해 3월 단독으로 입후보해재선됐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학자 스타일로,디자인고·자동차고·골프고등 전문분야 고교 탄생에 앞장섰다.부인 홍영혜(洪英惠·52)씨와 1남1녀. ▲경남 하동(59) ▲동아대 ▲한독여자실업고 교사·교감·교장,부산해사고 교장 ▲부산시 부교육감,교육감. ■최규학 복지노동수석. 지난 67년 특채로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73년부터 지난해 국가보훈처장으로 발탁될 때까지 26년 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총리실의 터줏대감. 지난 92년 남북 고위급회담 때 수석대표 보좌역 및 정치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부인 박영희(朴英熙·60)씨와 2남2녀. ▲전남 목포(63) ▲목포고,고려대 ▲총리실 1,3행정조정관,총괄조정관 ▲국가보훈처장. 양승현 기자
  • 청와대 수석 비서관 3명 교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7일 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 후임에김하중(金夏中)대통령의전비서관,조규향(曺圭香)교육문화수석 후임에정순택(鄭淳택)부산시 교육감을 임명하는 등 청와대 수석 비서관 3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또 김유배(金有培)복지노동수석 후임에는 최규학(崔圭鶴)국가보훈처장을 임명했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국정2기를 맞아 국정전반의 개혁을 차질없이 마무리하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을 충실히 보필할 수 있는 인물들로 기용했다”면서 “변화된 환경 속에서 국정개혁을 차질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현장경험과 전문 능력을 갖춘 분들을임명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에 교체된 수석들은 관련 분야에서 중용될 것”이라고덧붙였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기고] 국치일 90년, 다시서는 민족정기

    올해는 새천년답게 국민의 가슴에 깊이 자리잡는 일들이 많았다.특히,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뒤 이어지기 시작한 그 감동의 시간들,남북이산가족들이 뜨겁게 상봉하며 울던 장면이나 애써 흐르는눈물을 참는 일반 국민들도 많았다.이념과 체제는 달리하지만 아직도우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확인의 시간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과함께 통일을 향한 우리국민의 염원이 무르익어 이제 50년 분단사를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비운의 역사를 잉태한 한·일합방 국치일과 망국의한을 안고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을 생각함에아직도 지지부진한 한·일관계를 반세기 넘게 끌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 사실이다. 1990년 5월 아키히토(明仁) 일본천황의 사과문 발표가 있다 하여 한때 국민 모두 큰 기대를 가졌으나 “한국국민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함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치 못한다”는 애매한 말로 문구(文句)에 대한 시비만을 낳았을 뿐 국민들가슴에 맺힌 한의 골은 채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야기시켰고 1998년 1월23일 구 한·일어업협정의 일방적인 통보와 일본학생들의 왜곡된역사교육 등으로 우리민족을 자극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해 왔다. 우리는 IMF경제환란 이후 ‘기본이 바로 선 나라’,‘제2의 건국’등 새로운 한국 만들기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의 근본목표는 단순한 경제회복이 아니며 아직도 개운한 해결을 보지 못한 한일 관계처럼 왜곡되고 비뚫어진 역사를 재정립하고5,000년 역사를 면면이 이어 온 민족정기를 다시금 되살려 국가와 민족이 항구적인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다지는데있다.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로 대변되는 일본도 한 ·일축구에서패배의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신력에서 졌다”고 할 만큼 정신적이 기초를 중시하는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천년 동안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하고 가르쳐온 자긍심이 있다.90년 전 잠시 그 가치를 잃고 뼈아픈 35년의 고초를 겪어야 했으나 유구한 역사를 통해 볼 때 일본이 그 벽을 허물기엔 역부족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찬란한 문화를 일궈낸 선조의 우수한 정신을 본받고 선열들이 보여준 민족정기를 국민 하나하나의 가슴에 담아 어두웠던 지난 20세기의 양국관계를 정리하고 21세기 새로운 한·일관계를구축하여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무대에 길이 빛날 한민족의 역사를 창달하여 후손 대대로 튼튼한 국가를 이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성한 의무이며 일제시대를 포함한 숱한 국난사를 극복하며 우리민족을 단일민족국가로지켜준 선조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21세기는 무한경쟁의 시대이며 치열한 힘의 논리가 전개되는 시대일것이다. 먹느냐 먹히느냐는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우리를 지켜줄 절대적인 힘은 바로 우리민족을 자랑스런 한민족으로 뭉쳐주고 개혁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 찬란한 민족정기임을 깨달아 국치일 90년,10년이지나면 100년의 한 세기를 채우게 되는 불운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천년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다시 서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영웅 청주보훈지청장
  • [기고] 제2광복 ‘통일시대’

    새천년 원년에 맞은 제55주년 광복절은 벅찬 기쁨과 무한한 감격을느끼게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이었지만 지난날과는 다르게 올해 광복절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위대한 역사를 열어 나가는 역사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선열들께서는 일제에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 통일조국을 이룩하기 위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먼 이국 땅에서까지 풍찬노숙하며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을 민족의 제단에 바치셨다. 나라가 어려울 때 보여주었던 그분들의 희생적인 발자취를 알고 드높은 기개와 독립정신을 배우는 게 오늘을 사는 우리 후손들의 몫이요,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열들의 음덕과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55년 동안 분단의 긴 터널을 지내오다 비로소 지난 6월 성공적인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냉전의 잔재를 떨쳐버리고 민족사의 물줄기를 신뢰와 화합으로 돌려놓는 새로은 이정표를 열고 있다. 훈풍의 새 역사를 창조하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있다.8월을 기점으로 해서 민족의 화합과 협력기반 구축을 위한 많은 행사들이 줄을 서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절에는 15년간 중단됐던 남북이산가족 방문단이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밟고 헤어졌던 가족과 재회의 감격을 누렸다.이번 방문단은비록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한 시범적 차원이지만 머지않아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희망적인 회담도진행 중이다. 6·25 전쟁때 끊어진 경의선을 다시 연결하는 것처럼 반세기 동안단절됐던 문화·예술·체육 등 사회 각 분야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평화통일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통일이 온 것처럼 환상에 빠지거나 감성적으로만 치우쳐서는 안될 것이다.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북한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된 시각을 견지하는 게 필요하다. 앞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동·서독 정상이 만난 후2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통일이 됐다. 독일의 경우 동족간의 극한적 대립도 없었음에도 오랜 세월이 걸렸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더불어 굳건한 안보와 주변국가와의 공조가 평화통일을 이루어내기위한 필수적 전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0년 전 우리는 냉전의 회오리 속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겪었다.이같은 불행의 재발을 막고 남북이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튼튼한 국가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통일의 첫걸음은 민족정기의 발양에서 시작돼야 한다.우리는 세계사를 통해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민족의 정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훈을 보아 왔다.물질문명이 중요시되고 정보화가 급속화되면서 우리는부끄럽게도 국가의 기틀인 정신문화를 소홀히 했고 선열들의 애국심을 제대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대아를 위한 희생보다는 이기주의에,국민통합보다는 분열과갈등에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먼 훗날 우리 후손들도 지금의 시대에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야겠다. 위국충정의 선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런 평화·안정·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순국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독립정신을 되새겨보고그분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공헌과 희생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남북의 화해와 공존공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하나된 조국 ‘제2의 광복’을 기필코 성취해 21세기 세계로 웅비하는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열어 나가자. 양동영 서울지방보훈청장
  • 광복55돌 독립유공자 157명에 훈·포장

    국가보훈처는 11일 광복 55돌을 맞아 조선혁명당을 결성,항일투쟁을 벌인이호원(李浩源·1891∼1978)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는 등 훈·포장 대상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5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독립장 2명 ▲계몽소설 ‘상록수’의저자 심훈(沈熏·본명 沈大燮·1901∼1936) 선생 등 건국훈장 애국장 57명▲재미독립운동가 김용중(金龍中·1898∼1975) 선생 등 건국훈장 애족장 43명▲건국포장 16명 ▲대통령표창 39명 등이다. 포상식은 오는 15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다. 애국지사중 생존자는 박찬규(朴贊圭·72·애족장) 선생 등 5명(애족장 3명,대통령표창 2명)이다.여성으로서는 근우회 등에 가입,독립운동을 편 박원희(朴元熙·여·1898∼1928.애족장) 선생이 대상자에 올랐다. 특히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인 김병조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략’(1920)에 기초해 북한지역 3.1운동 순국자 27명이 포상자명단에 새로 포함됐다.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 의병장 이성화(李成化·1882∼1910) 선생은 전북 고부등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펼친 공로가 인정됐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조소앙 선생의 사위로 1926년 중국으로 망명,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으로 활동한 최문용(1905∼1979.애족장) 선생과 임창열(林昌烈) 경기도지사의 조부로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한 임기반(林基磐·1867∼1932·애국장) 선생에게도 포장이 수여된다. 이로써 정부수립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8,855명이며이 가운데 ▲대한민국장이 30명 ▲대통령장 92명 ▲독립장 774명 ▲애국장 2,895명 ▲애족장 3,634명 ▲건국포장 363명 ▲대통령표창 1,067명 등이다. ■건국훈장 독립장(2명) 이성화 이호원 □건국훈장 애국장(57명) 강신경 고두일 김수성 김순영 김영국 김용담 김의홍 김인성 김찬두 김효운 김희국 맹달섭 박래준 박인찬 박치율 박홍지 방윤격 백신한 백의경 손몽상 송연근 송영광 송학묵 신제원 심대섭 심칠석 안상의 오병호 유심택 유진흥 유희선 윤낙구 음성국 이남기 이범진 이복근 이석중 이성덕 이성용 이중백 임기반 임도돌 임봉구 임영화 임일권 장봉규 장봉주 정낙중 조기섭 조민찬 최문용 최석철 최성세 최재유 최훈세 허 전 황순팔 ■건국훈장 애족장(43명) 강용운 곽덕산 곽병도 김명도 김문준 김병형 김용길 김용중 김형태 김홍이 김희중 남병우 남상순 박기석 박원희 박찬규 박천흥 박학순 방인철 방학연 부덕환 서상룡 손영술 심용철 안치서 이경응 이광우 이무선 이병선 이정의 장옥만 전원숙 정소수 정주영 주유만 최덕정 최윤창 최재소 최치환 피용학 홍진근 황정연 황태갑 □건국포장(16명) 강기수 고홍석 김광언 김시추 김영철 김지수 김후식 박태규 박태근 염택눌 윤삼업 이병화 이승정 장상흠 장석구 장용호 ■대통령표창(39명) 권중윤 권창수 김금영 김성수 김위창 김흥용 김희수 남병희 박봉래 박수봉 박유성 박창선 배영직 서정규 손석봉 송기주 승병일 신영경 오놀보 오주선 유재현 윤태완 이면우 이문천 이수봉 이수열 이회식 임병률 임창원 장호명 정경순 정상용 정인행 정학균 조재학 최규철 홍철수 황윤실 황재옥. 노주석기자 joo@kdail y.com
  • 美洲활동 독립운동가 朴容萬선생 저술 ‘아메리카 혁명’ 발굴

    항일 독립운동가 박용만(朴容萬)선생이 일제 강점기 초기에 하와이 호놀룰루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펴면서 직접 저술했던 한글판 ‘아메리카 혁명’원본이 발굴됐다. 또 호놀룰루에 국어학교를 설립하고 그 교재로 펴냈던 국어 교과서 첫째권과 둘째권도 함께 발굴됐다. [호놀룰루(하와이)김삼웅 주필 오승남 지사장] ‘됴션말 독본’과 ‘됴션말 교과셔’로 되어 있는 이들 원본들은 한일합방직후 하와이 중심의 해외 독립운동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보훈처·광복회 관계자와 함께 미주지역 항일 독립운동 사적에 대한현장조사 활동을 펴면서 중국의 베이징과 함께 선생의 독립활동 주 무대였던호놀룰루에서 현지 연구가로 부터 원본을 입수했다. 무력투쟁 독립론을 실천했던 선생이 해외 동포들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위해 저술했던 ‘아메리카 혁명’은 288쪽 분량으로 16장에 걸쳐 미국의 독립전쟁 과정의 전반부를 분석하고 있다. ‘학교에 가자!학교에 가자!’를 시작으로 80쪽의 36단원으로 되어 있는 ‘됴선말 독본’은 주변의 얘기나 구전되던 노랫말을 문장화해 민족혼이 물씬물씬 배어나도록 했다. 87쪽짜리의 ‘됴션말 교과셔’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시킨 40여개의 우화로 짜여 있다.하나 하나가 한민족 고유의 가치관과 정서를 일깨워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강원도 철원 출신의 선생은 일본 유학생활을 한 민족의 선각자로 보안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렀고 25살때인 1905년 석방되자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kimsu@
  • ‘상록수’ 작가 심훈 건국훈장 받는다

    농촌계몽 소설 ‘상록수’와 항일저항시 ‘그 날이 오면’의 작가 심훈(沈熏·본명 沈大燮·1901∼1936)이 이번 8·15 광복절에 항일운동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는다. 보훈처가 공개한 공적심사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19년 3·1의거에 참가했다가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3개월간옥고를 치른 것으로 나와 있다.이 정도의 항일운동 경력이라면 그는 대통령표창에 해당된다.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포상은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으로다소 파격적이다.이에 대해 보훈처 당국은 “수형기간은 짧지만 선생의 초지일관한 항일문학 활동을 감안,훈격을 상향조정했다”고 밝혔다. 1901년 서울 노량진 흑석동에서 출생한 그는 18세때 경성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 3·1의거에 참가했으며 출옥후 중국으로 유학,만주 지강(之江)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을 썼다.귀국후 그는 동아·조선·조선중앙일보 및 경성방송국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하는 등문필활동에 종사했다.1934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소설 공모에 ‘상록수’를 심훈이라는 필명으로 응모,당선돼 크게 평가받았다.그의 대표작‘불사조’ ‘상록수’ ‘그 날이 오면’(시) 등은 모두 철두철미한 항일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연재 도중 일제 경찰로부터 곳곳에 가위질을 당하거나 시집 출간이 좌절되기도 했다.특히 1936년 8월9일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10일자 조선중앙일보 호외 뒷면에 ‘오,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 항일시를 쓰기도 했다.그는 1936년 9월16일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지난 93년 충남 당진군은 그의 옛집 필경사(筆耕舍) 옆에 유물전시관을 건립했으며 96년 8월 문화체육부(현 문화관광부)는 그를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그의 항일문학 활동을 기린 바 있다.유족으로는 장남 재건(在健·67)씨가 북한에 거주하고 있으며 차남 재광(在光·66)씨와 3남은 미국에 거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현기자 jwh59@
  • 애국지사 李光雨씨 건국훈장 받는다

    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 부족으로 건국훈장 포상이 보류돼온 한애국지사가 자신을 체포,조사한 일제 경찰의 증언으로 뒤늦게 훈장을 받게됐다.애국지사 이광우(李光雨·75·부산시 동구 좌천동)씨의 경우다.독립운동 당시 동료들의 증언으로 포상을 받은 사례는 더러 있었으나 일경 출신자의 증언이 증거자료로 인정돼 건국훈장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대한매일1월17일자 참조). 이씨는 1942년 5월 부산에서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친우회’를 결성,모두네 차례에 걸쳐 ‘불온전단’을 살포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부산지법에서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1년,장기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아 출옥했다. 이같은 항일운동 경력을 토대로 이씨는 89년 정부에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을 했으나 관련자료 부족으로 심사보류 조치를 받았다.이씨는 자신의 항일운동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관련자료 수집을 위해 정부기록보존소와 자신이 복역한 김천교도소를 뒤졌으나 모두 허사였다. 이에 이씨는 경찰청에 자신의 전과조회를한 결과 자신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수형한 사실을 확인,이를 근거자료로 주장했으나 보훈당국은 “수형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내용(죄명)을 알 수 없어 근거자료로는 부적합하다”는 입장이었다.이씨는 사건 당시 자신을 검거한 일경이 해방후 반민특위에 검거됐을 때 자신이 증인으로 출두한 사실 등을 관련자료로 제출했으나 이 역시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 이씨의 항일투쟁 공적을 입증한 것은 관련자료가 아니라 자신을 체포했던 일경의 ‘증언’이었다.1943년 3월 당시 경남경찰국 고등과 외사계 주임으로 근무했던 하판락(河判洛·88·부산 거주)씨는 올해 1월 본지와 단독인터뷰에서 “부하인 김소복(金小福)과 함께 ‘친우회 불온전단사건’ 관련,주동자 이광우씨를 검거,조사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본지 보도후 보훈당국은 “당사자의 증언이라 자료가치가 충분하다”면서이씨의 공적심사 의향을 밝혔고 이씨는 최근 공훈심사위원회의 공적심사에서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 서훈자로 최종 확정됐다. 보훈처 공훈심사과 오기택 과장은 “대한매일의 보도가 이씨의 공적 사실확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이씨는 광복 55주년인 오는 8·15 광복절에 건국훈장을 받게 된다. 정운현기자 jwh59@
  • “차관인사 남의 잔치”초연한 총리실

    8·7 개각에 따른 후속인사에 관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국무총리실은 ‘남의 집 잔치’로 여기는 분위기다.차관급 인사폭도 장관급에 버금갈 것이라는 전망에도 총리실 ‘고참 1급’들의 영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기때문이다. 고참들로는 우선 김병호(金炳浩)총괄,맹정주(孟廷柱)경제,유정석(柳正錫)심사평가,정강정(鄭剛正)규제개혁 조정관 등이 꼽힌다.김 조정관은 1급만 6년6개월째다.행시 10회인 맹 조정관은 4년4개월,유 조정관도 3년5개월째.부처에서 1급 연한을 보통 2년으로 여기는 점을 감안하면 고참 중의 고참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총무처,경제기획원,관세청 등 출신지가 있지만 가뜩이나 승진 대기자가 줄서있는 ‘친정’에서 쉽사리 받아주겠느냐는 게 총리실 직원들의 생각이다.더구나 경쟁이 치열한 주요 부처로의 복귀는 더더욱 어려울것이라는 전망이다. 승진전례도 많지 않다.지난 93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5명뿐이다.그나마 대통령경제수석을 하고 있는 이기호(李起浩),공정거래위원장을 했던 표세진(表世振) 전 조정관 등은 승진 직전 잠시 거쳐간 정도로 여겨진다. 현 국가보훈처장인 최규학(崔圭鶴),과학기술부 한정길(韓錠吉)차관 정도가대표적 승진사례로 꼽힌다. 총리실 직원들은 이런 ‘인사 적체’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처간 업무조정이라는 총리실 본연의 업무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1급 조정관들이 부처 2급 국장들과 업무조정을 하는데,2∼3년이 지나부처 국장들이 먼저 차관이 되는 일이 잦다보니 심지어는 부처 국장들이 조정관을 얕보는 경향까지 생겨난다는 얘기다. 또 부처 국장급인 심의관 단계부터 부처간 인사 환류(還流)가 원활치 않아 부처 우수 인력들이 총리실 파견을 기피,인력 확충에도 차질이 빚어진다고 한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적극적인 부처 업무 조정이 가능하려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운기자 jj@
  • 만주 독립군 전투지역 첫 확인

    국가보훈처는 8일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독립군 42명이 전사한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꾸마닝(古馬嶺) 전투지역 등 4곳의 사적지를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꾸마닝 전투지역은 1925년 3월 16일 독립군 최석순(崔碩淳) 참의장 등 42명이 일본경찰과 전투를 벌이다가 전원 전사한 곳으로,만주 독립군 역사상 최대 참변지로 기록돼 있다.현재 이 곳은 콩밭으로 변했고,당시 독립군 숙소는 터만 남아 있다고 보훈처는밝혔다. 보훈처는 또 1924년 5월 19일 참의부 소속 독립군이 사이토(齊藤實)총독을저격한 평안북도 위원군 마시탄(馬嘶灘)지역도 확인했으며,이 지역은 지린성지안시 압록강 맞은편 언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1917년 1월 이동휘(李東輝)선생이 지린성 훈춘(琿春)현에 설립한한인사립학교인 북일(北一)학교터도 이번 실태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보훈처는 또 만주판 제암리로 불리는 지린성 룽징(龍井)시 장암동 유적지도 확인했으며,당시 한인촌 기독교 마을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던 교회는 과수원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국내 처음으로 올해 6∼7월말 박환(朴桓) 수원대 교수,유병호(劉秉虎) 옌볜(延邊)대학 교수 등 한·중 학자들로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사적지실태조사단’을 구성,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조사를 실시한 바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실태조사를 토대로 만주지역의 항일유적지에 표지석 설치를 검토중이며,국내외 항일유적·사적지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현충시설물 설치 및 관리에 관한 규정’을 연내에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운현기자 jwh59@
  • 환경파괴 현장 자전거 탐사

    경기도내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들이 자전거 환경탐사에 나섰다. 도 전역을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면서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물질 배출로 파괴된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위해 경기도와 도내 18개 환경·사회단체들이 마련한 행사다. 100여명으로 구성된 환경탐사대는 7일 오후 수원시 장안동 광교저수지에서발대식을 갖고 4박5일간의 환경대탐사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광교산에서 발원,수원도심을 관통하는 수원천변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면서 파괴된 자연환경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수원천은 지난 70년대부터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면서 중상류에 누런색의 유기물 덩어리가 생겼고 하류지역은 바닥 전체가 시커멓게 오염된 진흙로 덮이는 등 죽음의 하천으로 변했다.이처럼 오염됐던 수원천이 수원시의 하천살리기사업과 환경보호단체,시민들의 노력으로 물고기가 떼지어 놀 정도로 맑아졌다. 이 결과 수원보훈지청 앞 분수대와 권선구 매교동 문화맨션 앞 수원천에서는 어린학생들의 물놀이가 한창이고,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는 밤이면 주민들은 수원천 둔치로 나와 더위를 시키는 등 휴식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환경탐사 대원들은 이날 수원천 복개구간부터는 1번 국도를 따라 달렸다.수원지역의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환경사업소를 거쳐 한신대학교 앞 황구지천에 이르렀을 때는 생활하수 등으로 인한 하천의 오염이 심각해 대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평택호로 흐르는 황구지천의 오염상태는 하류쪽보다 상류쪽이 더 심했다. 탐사에 나선 이주송군(16·용인 태성중 3년)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린생활하수나 쓰레기 등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며 “집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세제사용 줄이기 등 환경운동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후 5시쯤 오산천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저녁식사 후 오산시민회관에서 ‘평택호 물줄기 살리기’를 주제로 녹색자치경기연대와 오산환경시민모임 등 수원·오산·안산·평택지역 5개 환경단체 회원들과 토론회도 가졌다. 탐사대는 8일에는 대부도와시화호를 둘러보고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희망을 주는 시화호 만들기’란 주제로 안산·시흥·화성지역 환경단체들과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이어 9일에는 난개발 몸살을 앓고 있는 수지읍과 구성면 등 용인지역을 탐사하고 10일에는 광릉숲을 찾아 자연생태 탐사활동을 벌인다. 탐사 마지막날인 11일에는 오후 3시 임진각에 모여 임창열(林昌烈) 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새천년 통일시대를 맞이하는 경기도민의 ‘새천년 경기환경선언문’을 선포할 계획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염태영(廉泰英)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의 자전거 환경탐사는 단순한 극기훈련이 아니라 새천년 푸른 경기를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일(李政日) 경기도환경국장은 “환경탐사를 바탕으로 현실감있는 정책을 세우고 환경 현안에 대한 지역 환경단체의 생각을 적극 수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소방 행정/ 실태·개선 방향

    소방행정의 문제점 제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특히 소방직 공무원들의 근무여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소방행정이 국민들의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데도 개선이 잘되지 않는 점은 무엇일까.실태와 개선 방향등을 점검한다. [실태] 소방파출소에 근무하는 소방공무원들은 24시간 2교대로 일한다.참고로 서울시내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은 3교대다.이는 전적으로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방인력은 2만2,746명으로,소방인력 기준에 관한 규칙상 기준인력의 73.7%에 불과하다.실제로 소방파출소의 평균 근무 인원은 15명이다.그러나 전일 근무자를 제외하면 실제 근무자는 7명에 불과하다.출동때 최소 기준인원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출동시 최소 인원은 펌프차에 4명,구급차 6명,구조차 11∼15명이 있어야 한다. 소방공무원들의 1인당 담당 인구는 2,082명.일본의 841명,미국의 208명,영국의 942명과 비교하면 얼마나 열악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소방공무원들은 항상 화재 등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지난 한해동안 20명이 순직하고 250명이 부상을 입었다.공무원수 대비,사망과 부상자수가 경찰보다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그런데도 소방공무원은 연금혜택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군인이나 경찰은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중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전역이나 퇴직을 한 사람에게 연금혜택을 주고 있으나 소방공무원은 교육훈련을 받다가 사망해도 연금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연금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소방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국가보훈처 등에서 반대,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문제점] 소방인력의 부족현상은 구조적인 문제다.공무원 총 정원제에 묶여인원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게돼 있다.소방공무원들은 경찰직 처럼 별도 정원으로 관리해주길 바라고 있으나 행정 당국의 난색으로 해결이 안되고있는 실정이다. 소방관서에 공중보건의를 배치하지 못하게 돼 있는 현실도 문제중의 하나다.각종 응급 사고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들이 119구조대인데도 병역법 등에 묶여 공중보건의를 두지 못하고 있다. [대책] 정부는 이러한 소방당국의 현실을인정,다각적인 대책을 수립중에 있다.우선 소방교육기관을 중점 육성,소방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중앙소방학교’를 소방대학으로 승격,이론과 실습을 연계하는 교육기관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또 행정자치부 직속으로 국립소방과학연구소를 설립,연구기능 기반을 조성할 예정이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공중보건의 배치는 국방부와 협의,병역법을 개정키로 했다. 이밖에 소방 종합 정보통신망을 구축,대형 재난 대응체제에 보다 신속하게대처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특히 119 지령체제를 전산화,현장활동 지원 정보 제공뿐 아니라 유관기관과의 즉시 협조 체제도 갖추게 된다. 그러나 화재나 재난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신속한 대처보다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지도가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예방대책이 소방행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성추기자 sch8@. *국내외서 죽음 무릅쓴 활약. 인원 부족,열악한 근무환경 등에도 불구하고 119구조대는 국내외를 가리지않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 95년 930여명이 부상을 당하고 4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로불렸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슴 속에 분노와 허탈을 남겼지만 119구조대의활약상은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119구조대는 사고 후 17일이 지나도록 희망을 잃지않고 구조활동을 펼쳐 많은 생명을 구해냈다.이때 ‘돌아온 사자’,‘해결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 98년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계속된 지리산과 경기북부 지역에서는 계곡,가옥에 고립된 1만323명을 구해냈다.이밖에도 성수대교 붕괴사고,대구 지하철 도시가스 폭발사고 등 각종 재난현장에서 활약,재해·재난 현장에는 119구조대가 있고,119가 있는 곳에는 ‘안전’이 있다는 의식을 심어줬다. 국외에서도 119구조대의 활약은 눈부시다.지난 97년 8월 괌 KAL기 추락사고현장이나 9월 캄보디아 포첸통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베트남 민항기 추락사고,지난해 8월 터키 대지진 현장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해냈다. 또 지난해 9월대만 남투현 대지진 현장에서는 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6살 꼬마아이를 구조해 전세계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최여경기자 kid@. *美 소방업무 조례로 규정. 대부분의 소방 선진국은 인원이나 조직 등에서 철저한 관리체계를 갖추고있다. 미국의 소방업무는 연방정부법에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지자체인 주(州)의조례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각 주에는 다양한 형태의 소방행정체제를 유지하고,시(City)정부와 카운티(County)정부를 중심으로 분권화돼 있다. 주 정부의 소방국은 소방법령의 제정과 폐지,소방행정의 조정과 통제 등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또 소방교육과 훈련기관 설치 및 운영,소방공무원의보수,근무조건 등을 결정한다.시와 카운티 소방관서는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화재진압 구조 구급 등의 소방업무 수행한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연방재난관리청 밑의 연방소방국(USFA)은 각각 재난의 예방과 대응, 정책기능의 조정과 화재 예방등 넓은 의미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일본의 소방체계는 국토 여건상 소방업무 외 지진 태풍 활화산 원자력 등의방재를 담당하고 있다. 시·정·촌(市町村) 등 기초자치단체 중심의 소방행정체제가 확립돼 있으나최근 들어 점차 광역화하는 추세다. 중앙 소방청은 자치성 산하에 소방청을두고 있고,자치성 소방청에는 소방연구소 소방대학교 소방심의회가 있다.도·도·부·현(道都府縣)에는 소방청과 소방국 소방방재과 등이 있다. 영국의소방행정은 County Region(우리나라의 도 정도)에서 주로 관장하고 있다. 이곳에는 상근직원만 근무하는 소방본부 및 소방서가 설치돼 화재진압 및 재난사고에 대비하고 있고,읍·면에는 상근직원을 중심으로 비상근 직원이 보조하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 [기고] “채찍보다 일할여건 조성을”. 사회의 안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요구 수준에 부응하는 양적·질적인 측면의 조건을 갖춘 인적자원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재해 사례를 보더라도 재해·재난의 피해는 그 사회의 안전역량과 일치하는 확률적 함수 관계를 갖는다. 그 관리체제나 관리역량을 증강시키면 자연히 사고가 줄게 되어 있으나 그에 반해 본질은 그대로 둔 채,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식의 으름장으로는절대로 그 확률을 줄일 수 없다.말하자면,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미국은 정규 소방직이 27만 5,000명이며 잘 훈련된 의용 소방대원 8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일본은 16만 명의 정규 소방직과 96만 명의 의용 소방대원을 보유하고 있다.우리나라에는 정규 소방관 2만 3,000명과 여건이 제대로갖추어지지 않은 8만 4,000명의 의용 소방대원이 있다.단순히 수적으로 비교해도 우리의 소방은 선진국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훈련의 여건이나,장비 등의 수준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교육 시설이 부족해서 신임 소방관을 우선 현장업무에 투입하고 순서가 돌아오면 직무교육을 받게하는 이른 바 ‘선배치 후교육’의 경우가 허다하다. 119의 구급이송 환자 수는 최근 5년 간 33만 명에서 95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또한 화재나 자연 재해 건수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와 같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사고이후의 특별 점검은 물론 안전업무의 요구가 폭증하였다.이러한 가운데 그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나마의 인력도줄여야 했다. 각종 참사를 겪으면서 소방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나 호감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구급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안전이나 환자 이송 등의 업무는어려울 때 가까이 있는 공무원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고, 만능해결사의 모습은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미국,영국,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직업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직종으로 소방관을 꼽는다.소방관을 뜻하는 ‘Fireman’또는 ‘Firewoman’을 통칭해서 ‘Fire fighter’라 한다.시민들의 신망과 애정은 그들에게 용기,사명감, 비리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자부심의 원천이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방의 업무가 단순히 불을 끄는 ‘불돌이’가아니다.‘불’은 시급을 요하는 재난의 대표명사 일 뿐,소방은 ‘안전을 통해서 안심 할 수 있는 세상’ 의 지킴이이다.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전통적인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그들의 업무수행방식은 사회 시스템을 바탕으로,그리고 성능 지향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첨단화되고 있다.소방관련 법규와 기준은모든 제품과 시설의 국제 경쟁력을 좌우한다. 아직도 우리 소방 조직의 처지가 어떤 지에 대해서는 이따금 매스컴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들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마땅히 엄정한 공적 관리와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그러나 채찍보다 먼저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적인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하는 것도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도리이다. 尹 明 悟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행자부, 과학기술훈장 신설

    행정자치부는 2일 과학기술훈장을 신설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훈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고 밝혔다. 과학분야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의 사기를 진작키위해 새로 제정하는 과학기술훈장은 ‘창조장’,‘혁신장’,‘웅비장’,‘진보장’,‘도약장’등 5개종류로 내년 4월 과학의 날에 첫 수상자가 탄생한다. 과학기술훈장이 신설되면 정부 수여훈장은 무궁화(대통령)·근정(공무원)·건국·보훈·수교(외교관)·산업·새마을·문화·체육 훈장 등에 이어 12개로 늘어난다. 홍성추기자
  • 8월의 독립운동가 홍범식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경술국치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의열투쟁을 확산시킨일완(一玩) 홍범식(洪範植·1871∼1910) 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충북 괴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1888년 진사시에 합격,1902년 관직에 들어선 이후 혜민원 참서관을 거쳐 지방관으로 나가 1907년 태인군수,1909년 금산군수로 재직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특히 태인군수 재직시 일제로부터 군민을 보호하는 한편,황무지 개척과 관개 수리사업을 펼쳐 민생을 안정시켰다.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정미7조약에 이어,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조약이 공포되자 선생은 “사방 백리의 땅을 지키는 몸이면서도 힘이 없어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니 죽는 것만 못하다”며 목매 자결했다. 선생은 순국전 아들들에게 보낸 유서를 통해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하며,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노주석기자 joo@
  • 국세청 1차 개방직 내부인사 충원

    국세청이 1차로 공모한 본청 납세지원국장을 비롯한 개방형 직위 3자리에는모두 내부인사로 충원될 전망이다. 국세청은 2차로 감사관 등 개방형 직위 2자리도 공모하기로 했다. 지난 18일 마감된 개방형 직위에 이용진(李庸鎭) 대전지방국세청장(행정고시 10회)은 본청 납세지원국장을,박길호(朴吉浩) 서울지방국세청 납세국장(행시 15회)은 중부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을 지원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또 진병건(陳炳建) 전 서초세무서장(행시 19회)은 서울지방청 납세지원국장을 지원했다.국세청 출신만 개방형 자리에 단독으로 지원한 셈이다. 외부인사도 한명 개방직에 지원했지만 세무사 등의 자격증이 없어 응시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중앙인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개방형 직위임용이 확정되지만 외부출신 응모가 없기 때문에 국세청이 처음으로 모집한개방형 3자리는 모두 내부인사로 충원될 전망이다. 국세청은 2차로 감사관과 국세공무원교육원장도 개방형으로 공모키로 했다. 다음달 9일까지 접수를 받는다.이렇게되면 국세청은 개방형 직위 5자리를 모두 공모형식으로 선임하게된다.기상청과 국가보훈처에 이어 세번째로 할당된개방형 직위를 모두 충원하는 셈이다. 다음달중에는 개방형 임용과 함께 국세청 국장급의 대대적인 승진 및 연쇄적인 전보인사도 이뤄진다.현재 국세청에는 차장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이 공석이다.또 이용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납세지원국장으로 자리를 옮기는데다 현직 핵심국장이 황수웅(黃秀雄) 전 국세청차장의 후임으로 승진될예정이라 대폭적인 자리바꿈은 불가피하다.안정남(安正男) 청장은 차장이 공석이 된지 1개월이 지났지만 장고(長考)중이다. 곽태헌기자 tiger@
  • 31개 공공기관 예산 불이익 조치

    아직도 적지않은 공공기관이 퇴직금 지급률 누진제를 고수하는 있는 것으로나타났다. 기획예산처는 24일 “퇴직금 제도를 고치지 않은 국립공원관리공단·자원재생공사 등 31개 기관에 대해 인건비 등 예산상의 강력한 불이익 조치를 취하고 신규사업도 원칙적으로 불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98년 12월공기업,정부출연·보조·위탁기관 등 215개 공공기관에 대해 퇴직금 지급률을 누진제에서 단수제로 변경하도록 하는 퇴직금 제도 개선방안을 수립,추진해 왔다.누진제 실시로 임직원들이 거액의 퇴직금을 챙기는 ‘퇴직금 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7월 현재 86%인 184개 기관은 누진제를 폐지했으나 31개 기관은 여전히 누진제를 고수하며 막대한 퇴직금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퇴직금 지급률을 단수제를 적용했을 경우 최종 월급의 근속연수만큼 퇴직금을 받게 되지만 누진제로 계산하면 많게는 2∼3배로 늘어난다. 퇴직금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기관은 한국수출보험공사 등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이 11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개 공기업과 43개 정부 출연기관은 개선을 완료했다. 미개선 기관들은 “퇴직금 지급방법은 법령의 근거가 아닌 노·사협의 사항이고 노조에서 반대하고 있어 고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민간기업도 퇴직금 지급률에서 단수제를 채택하고 있어 노사 양측의 묵인에 의한 ‘실속 챙기기’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기획예산처 신강순(申康淳)행정개혁단장은 “이미 퇴직금제도를 바꾼 다른공공기관과 형평성의 문제도 고려해 인건비·경상비·사업비 등 예산상의 모든 부분에서 불이익 조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퇴직금제도를 개선하지 않은 기관은 다음과 같다. ■산업연구원·한국여성개발원·건설기술연구원·한국국제협력단·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민족문화추진협의회·원자력병원·독립기념관·영화진흥위원회·대한체육회·한국체육산업개발·한국수출보험공사·산업단지공단·중소기업진흥공단·대한상사중재원·한국신발피혁연구소·한국견직연구원·한국표준협회·자동차부품연구원·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무역정보통신·국민연금관리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립공원관리공단·자원재생공사·고속철도건설공단·부산교통공단·보훈복지공단박록삼기자 youngtan@
  • 이승만 초대대통령 35주기 추도식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李承晩) 박사의 35주기 추도식이 19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열린다.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회장 兪虎濬)주관으로 열리는 추도식에는 최규학(崔圭鶴) 국가보훈처장을 비롯,각계인사와 독립운동관련 단체장,광복회원,유족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추도식은 이 박사의 독립 및 건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예배형식으로 진행된다.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이 박사는 배재학당을 졸업한 뒤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1940년 임시정부구미위원장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노주석기자 joo@
  • 구국의 뜻 되새기자/ 해외 항일유적 현황·실태

    중국 상해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필수 방문코스 가운데 하나는 홍구공원이다.이는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있은 천장절 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주중 일본공사와 일본군 수뇌 수명을 폭살시킨 윤봉길 의사의 애국혼을느껴보고자 함이리라.윤의사 의거는 단순히 일제의 고관 수 명을 살상한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당시 임시정부에 대해 미온적이던 장개석 정부의 마음을 돌려놓아 물심 양면의 지원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항일세력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러시아·미국 등지에본거지를 잡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이들이 활동근거지로 삼은 항일유적지는생생한 ‘민족혼의 현장’이라고 할수 있다.낯선 이국땅에서 접한 선열의 이 름이나 묘소,항일전적지는 후대들에게 애국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정부차원에서 이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수십권의 항일운동 관련 홍보책자보다 선열의 얼이 서린 ‘흔적’ 하나가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항일세력들은 국내·외에서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하였다.이들은 1919년 전 민족이 궐기한 ‘3·1의거’와 같은 비 폭력 투쟁은 물론 안중근·윤봉길 의사로 상징되는 의열투쟁,그리고 청산리·봉오동전투와 같은 대규모 무력항쟁도 전개했다.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항일투쟁은 곳곳에 그 애국혼의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그 가운데 임시정부 청사 등 일부는 정부의 복원·보존 노력으로 상태가 양호한 것도 있으나 아직도 많은 유적들이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최근 보훈처가 전문가들의 조언과 자체 현장조사를 통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해외독립운동 관련사적(시설물 포함)은 모두 317개소로 파악됐다.이들중 244개소는 중국지역에 소재하고 있으며,흔히 ‘만주’로 불리는 동북3성일대에 163개소가 밀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 36,일본 4,카자흐스탄 4,대만 2곳 등 총46개소이며,그밖에 미주지역 24개소(미국 22,멕시코 2),유럽지역 3개소(프랑스 1,네덜란드 2)등이다. 중국내 항일전적지는 동북3성 가운데 하나인 길림성에집중돼 있으며 그 가운데서는 용정(龍井)일대가 단연 으뜸이다.90년대 들어 중국관광이 늘어나면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정이다.이곳은 우리귀에 낯익은 가곡 ‘선구자’의 고향으로 비암산,일송정을 비롯해 민족시인윤동주의 생가와 묘소가 있어 더욱 한국인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이밖에도인근 교외에 위치한 ‘3·13반일의사릉’을 비롯해 서전서숙·명동촌교회와‘봉오동전투’ 전적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인근 화룡현에는 3·1의거 이듬해인 1920년 10월 독립군이 일본군 3,000여명을 궤멸시킨 ‘청산리전투’ 현장과 대종교 3종사의 묘소가 남아 있다.흑룡강성 하얼빈에는 안중근의사의 의거현장을 비롯,경박호·사도하자 전투지가 남아있고,영안(寧安)에는 김좌진장군의 묘소와 김 장군이 운영했던 정미소,그리고 신민부 군정파본부,고려공산당 북만지부 건물 등이 남아있다.또요령성 봉천에는 편강렬의사의 전투현장,신빈현에는 양세봉장군 순국지·서로군정서 본부,단동에는 이륭양행(怡隆洋行)건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이륭양행은 당시 영국식민지인 아일랜드출신 무역상 윌쇼가 경영하던 건물로 임시정부는 그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교통국을 두고 국내와 연락거점으로 활용했었다.집안현,장백현 일대에는 독립군의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돼 10여년을 머문 상해에는 임정 청사를 비롯해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사 터,윤봉길의사의 의거현장인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애국지사 다수가 묻혀 있는 만국공묘(외국인 묘지),인성학교 등이 남아있다.북경에는 단재 신채호,우당 이회영 선생이 활동했던 흔적과 신한혁명단본부 자리가 남아있고,1932년 윤의사의거후 피난길에 오른 임시정부가 머물다간 진강,가흥,기강,장사,항주 등지에도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를 비롯해 임정청사 이전지가 더러 남아있다.강소성 남경에는 의열단원들의 합숙지이자 민족혁명단의 본부였던 호가화원이 있다.서안에는 OSS훈련지와 광복군 2지대주둔지가,임정 마지막 정착지인 중경에는 임정 청사를 비롯해 광복군사령부본부건물(현 미원식당 건물) 등이 남아있다.국토 전역에 걸쳐서 항일투사들의 피와 혼이 서려있는 중국은 ‘항일전적지의 진열장’이라고 할만하다. 중국 다음은 러시아로 모두 36개소의 항일독립 유적지가 있다.일제 당시 연해주로 불린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최초의 한인거주지를 비롯해 신한촌,해조신문사 터 등이 남아있고,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가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은 커리마을이 있다.하바로프스크에는 한인사회당 창당지와 지금은시민휴식공원으로 변한 독립군 전투지,그리고 1937년에 사망한 한인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또 리르쿠츠크에는 고려공산당 창당대회지(현 레닌거리 23번지 인민의 집)와 이범윤 유배지 등이 남아있다.89년 소련붕괴후 러시아에서 분리된 카자흐스탄에는 ‘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옛집과 동상,묘소(크질오르다시 공원묘지)가 있으며,계봉우 선생의 묘소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는 한인 이민들이 처음 정착한 하와이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뉴욕 등에 민족세력들의 활동무대가 남아있다.하와이에는 당시 한인들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한인기독교회·한인기독학원을 비롯해 조선국민단 사관학교,하와이국민회관 등이 남아있다.샌프란시스코에는 전명운·장인환 두 의사가 친일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현장인 페어부두,스티븐스가 투숙했던 페어호텔이 90년이 넘는 세월속에서도 여전히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이곳엔 대한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의 발간지(페리스트리트 232)도 여전히 남아있다.로스앤젤레스에는 애국지사이자 대표적 재미한인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가(남가주대 구내소재)와 흥사단중앙회관이 남아있다.이밖에도 캘리포니아 클로세트 윌로스에는 계원 노백린 장군의 한국비행단 설립지가,네브래스카주에는 박용만의 한인소년병학교 설립지(현 헤이스팅스 네브래스터니 농장)가 남아있다.구미위원회 관련 유적은 뉴욕에 있다. 그밖에 프랑스 파리에는 평화회의 대표관과 임시정부 파리통신국,네덜란드에는 ‘헤이그밀사’ 가운데 한사람인 이준 열사의 묘역과 데용호텔이 항일관련 유적지로 기록할 만하다.일본에는 2·8독립선언의 현장인 도쿄기독교청년회관과 김지섭·이봉창의사의 의거현장인 도쿄 궁성의 앵전문과 이중교 일대,즉 일본의 최심장부가 바로 항일유적지인 셈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1)안중근의사 의거현장 하얼빈역

    90여년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병탄되자 수많은 의사 열사들이 국내외에서 피끓는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다.때로는 일제의 합방원흉들에게 단신으로폭탄을 던졌고 때론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며 독립의지를 해외만방에떨쳤다.대한매일은 이같은 애국선열의 고귀한 희생과 드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연말까지 매주 1회씩 미·소·중·일 등 4개국에 흩어져 있는 항일유적지를 탐방한다. 중국에서는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의거현장을 비롯한 24곳을돌아보고 임정요인 및 독립군이 걸은 가시밭길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또 옛소련에서는 하바로프스크 독립군 전적지 등 5곳을 살펴본다.미국에서는 전명운의사의 친일미국인 스티븐스 저격현장인 샌프란시스코 등 5곳을,일본에서는 저항시인 윤동주 등이 숨진 후쿠오카형무소 등을 찾아본다.대한매일은 현장의 모습과 관련문서,생존자 증언 등을 통해 민족의 제단에 몸바친 애국선열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새롭게 정리한다. 중국의 동북3성(省) 가운데 가장 위쪽에 위치한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省都) 하얼빈.하얼빈은 우리 항일운동사에서 상징적인 의열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현장으로 우리에겐 낯익은 곳이다.일제당시 이곳은 만주와 러시아일대 한인들의 독립운동 거점으로 숱한 항일 애국지사들의피와 땀이 서린 곳이다.이곳은 또 아직도 일제의 가혹한 통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내 곳곳에는 일제때 세워진 러시아풍의 관공서 건물들이 여전히 옛 영화를 자랑하듯 버티고 서 있다.안 의사 의거로부터 90년이 지났지만 안 의사의의거관련 유적 역시 고스란히 남아 그 날의 의거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 시내 외곽에는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았던 일본 관동군 예하 731부대의 잔흔이참혹했던 과거사를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하얼빈은 근대 동북아시아의 영욕의 역사를 간직한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재팀이 ‘역사의 현장’인 하얼빈을 찾은 것은 지난 7월 8일 오후 1시.취재팀은 안 의사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이토가 91년전 이곳을 향해 출발한 열차의 출발점이자 만주국의 옛 수도였던 창춘(長春)을 출발,세시간 반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취재팀을 맞은 것은 30도를 오르내리는 하얼빈의 무더위였다.열차는 3번 플랫폼에 정차했다.승객들을 따라 지하통로를 지나 취재팀이 나온 곳은 1번 플랫폼이었다.바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현장 근처였다. 관련자료에 의하면 안 의사는 출구쪽의 역사(驛舍)와 인접한 1번 플랫폼에서 이토를 처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의거현장에는 이곳이 안 의사의 의거현장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의거현장을 정확하게 알고있는 역무원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취재팀은 전문가의 고증을 받기로했다.숙소로 돌아와 이 지역 독립운동사의 권위자인 헤이룽장성 당사(黨史)연구소 김우종소장(71)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김 소장은 “1번 플랫폼 지하통로 옆,즉 2등 대합실 출구 앞”이라며 “당시 일제가 이토의 흉상을 세웠으나 8·15후 소련군이 철거했다”고 증언했다.현재 그 자리에는 작은 화단이조성돼 있다.구내에서 안 의사의 의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은 철마가 잠시 쉬었다 가는 1번 플랫폼 뿐이었다. 하얼빈 시내에는 안 의사 관련 유적이 이밖에도 몇 군데 더 있다.보존상태는 대부분 양호한 것으로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우선 안 의사 의거와 인연을 맺고 있는 역으로 하얼빈역에서 15㎞ 떨어진 채가구역이 있다.이 역은 안의사의 동지인 우덕순 의사가 이토가 탄 기차가 이곳에 정차할 것에 대비,이토를 기다렸던 곳이다.하얼빈역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채가구역은 러시아풍의 단층 건물 옛 모습을 그대로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안 의사가 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돼 러시아 군헌(軍憲)에게 처음 신문을 받은 곳은 동청(東淸)철로국 공안국 건물이었다.하얼빈 역에서 500m 가량 떨어진 대로변에서 위치한 이 건물은 2층 건물로 현재는 하얼빈 철로국 공안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한편 안 의사가 이곳에서 간이신문을 마치고 이송된 곳은 하얼빈주재 일본영사관이었다.안 의사가 체포된 후 두 손이 뒤로 묶인채 쇠사슬을 두르고 찍은 사진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 일본영사관 지하감방에서 일제 관헌으로부터 가혹한 신문을 당한 항일투사가운데 남자현(南慈賢) 의사가 있다.1872년 경북 영양 출신인 남 의사는 남편이 의병전투에서 전사하자 1919년 만주로 망명,서로군정서에서 항일운동을 하였다.1925년 국내로 들어와 동지들과 사이토 총독 암살계획이 미수에 그치자 만주로 다시 돌아가 재만(在滿)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에 참여하였다.1931년 김동삼(金東三) 선생이 하얼빈에서 체포되자 온갖 탈출노력을 시도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후 만주주재 일본대사를 처단하기 위해 걸인 노파차림으로 무기를 운반하다가 하얼빈시내 정양가(正陽街)에서 일경에 체포돼 이곳 영사관 지하감방으로 옮겨져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남 의사는 감옥에서 6개월동안 단식투쟁끝에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1933년 8월 22일 이곳 이국땅 하얼빈에서 순국했다.남 의사의 유해는 하얼빈 시내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그후 문화공원으로 불려온 이곳은 현재 하얼빈 유락원(遊樂園)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취재팀이 방문한 현장은 각종 놀이기구와수영장 등이 들어선 놀이공원으로 바뀌어 있어 어디에서도 남 의사의 흔적은찾을수 없었다. 보훈처의 해외 항일유적지 조사 답사팀과 함께 하얼빈을 찾은 박환 수원대교수(사학과)는 “해외 항일유적지 조사는 선열들의 업적을 현창하는 일 가운데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사업”이라며 “그동안 현지 촌로들의 증언에만의존하는 학술차원의 조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현지 연구자로 답사팀에합류한 유병호교수(옌볜대학 민족연구소)는 “93년 엔벤대학에서 조선사 공개강좌를 개설했을 당시 단군을 아는 조선족 학생이 5∼6명에 불과한 것을보고 놀랐다”며 “한중우호 차원에서라도 항일독립투쟁사를 제대로 교육할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하얼빈은 안 의사의 의거관련 유적은 물론 시내 외곽에는 일본 관동군예하 731부대의 구지(舊址)가 아직도 남아 있다.시내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평방구(平房區)에는 지난 95년 해방 50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이 건립한 ‘731부대 죄증(罪證)진열관’이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진열관 앞 100m 지점,즉 731부대 북쪽 끝에는 당시 731부대에서 필요한 전기·에너지 등을 공급한 ‘동력반(動力班)’의 대형 굴뚝이 철거되다만채 흉한 모습으로 잡초 속에 방치돼 있었다.이 앞쪽에 위치한 부대 터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현재 철거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이곳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중국 당국에서 이곳을 역사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민가를철거중이라고 했다. 한편 그동안 731부대의 흔적은 동력반의 굴뚝 정도만 상징적으로 남아있고나머지는 대개 철거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취재과정에서 아직도 상당수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지역 출신의 한 주민은 취재팀에게 “한국인과 중국인은 모두 같은 피해자”라며 “731부대의 지하통로가 하얼빈 시내까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증언했다. 하얼빈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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