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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방 중 부친상’ 공군 1호기 기장, 아버지 유언에 끝까지 임무 완수

    ‘순방 중 부친상’ 공군 1호기 기장, 아버지 유언에 끝까지 임무 완수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16~23일)을 함께 한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KAF 001)의 박익 기장이 지난 19일 부친상을 당하고도 아버지의 유언으로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 사실이 23일 뒤늦게 알려졌다. 박 기장의 아버지인 고 박영철 씨는 월남전 참전용사로 보훈대상자이며, 전북 임실의 국립임실호국원에 영면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공군 1호기가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조종실을 직접 찾아 박 기장을 위로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좁은 곳에서 고생이 정말 많으셨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위로했고, 박 기장은 “공무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답했다. 지난 16일 출국한 문 대통령은 18일까지 투르크메니스탄, 21일까지 우즈베키스탄, 23일까지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문 대통령은 양자 회담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는데 의견을 모은 한편, 향후 한반도 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한국 입장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고통 없는 곳서 영면하길… 김홍일 前의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고통 없는 곳서 영면하길… 김홍일 前의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보훈처 5·18민주묘지 이장 여부 심의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유해가 23일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 묘역)에 안장됐다. 이날 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 치러진 안장식은 김 전 의원의 유가족과 5·18단체, 여야 정치인, 광주시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안장식은 이날 오후 3시쯤부터 추도 예배, 참배 등의 순으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김 전 의원이 안장된 5·18 구 묘역은 그의 아버지인 김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김 전 대통령이 1987년 9월 8일, 군사정권 방해 탓으로 어언 16년 만에 광주를 방문해 5·18 당시 희생된 영령을 찾아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신군부에 의해 5·18 주동자로 내몰렸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고초 끝에 미국 망명을 마치고 1985년 2월 귀국한 지 2년 7개월 만이었다. 김 전 의원은 아버지와 정치적 부침을 함께 겪으면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해 왔으며, 오랜 기간 고문 후유증을 앓아 오다 지난 20일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 전 의원이 이날 묻힌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5·18 당시 141기의 희생자가 가매장됐다가 인근에 조성된 국립5·18민주묘지로 옮겨졌다. 이들이 묻혔던 묘지는 이장 이후에도 가묘 상태로 광주시가 관리 중이다. 이후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농민 백남기씨 등 49명의 유해가 이곳에 묻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김 전 의원이 ‘5·18 유공자’이지만 알선 수재 혐의로 실형을 받은 만큼 조만간 심의위원회를 열고 국립 5·18민주묘지 이장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공군 1호기 기장, 순방중 부친상 당하고도 임무 완수

    공군 1호기 기장, 순방중 부친상 당하고도 임무 완수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16~23일)을 함께 한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KAF 001)의 박익 기장이 지난 19일 부친상을 당하고도 아버지의 유언으로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 사실이 23일 뒤늦게 알려졌다. 박 기장의 아버지인 고 박영철 씨는 월남전 참전용사로 보훈대상자이며, 전북 임실의 국립임실호국원에 영면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공군 1호기가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조종실을 직접 찾아 박 기장을 위로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좁은 곳에서 고생이 정말 많으셨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고, 박 기장은 “공무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도착 직후 참모진으로부터 주요 현안을 보고받고 국정운영 방향을 점검할 예정이다. 특히 출국에 앞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고, 북미가 여전히 구체적 비핵화 방식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핵화 대화 재개 방안 등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출국한 문 대통령은 18일까지 투르크메니스탄, 21일까지 우즈베키스탄, 23일까지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문 대통령은 양자 회담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는데 의견을 모은 한편, 향후 한반도 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한국 입장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심재철 “21살 청년의 자필진술서 민주인사 77명을 겨눈 칼이 되었다”

    심재철 “21살 청년의 자필진술서 민주인사 77명을 겨눈 칼이 되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TV에 출연해 1980년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1980년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심 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형사부(부장 김소영)는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심 의원은 징역형을 선고받은지 39년만이다.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지난 1980년 4월 학내 시위를 벌이다 숨진 고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하면서 비상계엄 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 구호를 외친 혐의 등으로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심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에서 유 이사장이 지난 20일 KBS 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당시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글과 함께 판결문 증거요지를 참조로 덧붙였다. 심 의원은 “1980년 (유 이사장이)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중 3명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며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됐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자신의 재판에 핵심 증거물로 제출돼 유죄 선고 증거로 채택됐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이러한 진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을 쓴 적이 있다…(중략)…안 맞으려고.어떻게든 늘여야 하잖아,분량을’이라고 하는 등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며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며 “자신의 왜곡 발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심재철 의원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4월 20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KBS-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서울의 봄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왜곡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TV에서 “누구를 붙잡는데 필요한 정보 이런 것은 노출 안시키고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걸로” 진술했다고 합리화 했지만 1980년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그의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 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되었고, 그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되었다. 유시민은 군검찰에 임의진술 형식으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불기소로 풀려났지만 검찰관이 작성한 그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핵심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 본 의원이 체포되기 3주 전인 1980년 6월 11일과 12일자로 최종 정리된 유시민의 합수부 제출 자필 진술서(001168-001257쪽)에는 77명의 이름이 구체적인 행동과 함께 적시되었다. 곧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지역 학생회장단 22명, 총장 등 서울대 보직교수 6명, 서울대 학생운동권 40명의 행적, 민청협(신군부가 김대중 산하단체로 기소함) 회장 이해찬 등 복학생 8명, 해직언론인 1명의 이름이 혐의내용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되었고 결국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칼로 겨눠지게 되었다. 유시민의 진술서는 1980년 2월부터 5월까지 서울대 핵심 운동권의 동향, ‘김대중과 관계한다는 이해찬’을 중심으로 한 복학생들의 시위 교사 정황, 서울시 22개 학생회장단, 사북탄광 실태조사, 외부 해직기자들과의 연대까지 일지처럼 상세하게 9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자백 진술서에 77명의 이름과 행적을 적시함으로써 계엄당국은 사태 처음부터 서울대 등 당시 학원 상황과 학원관련 외부 움직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되었다. 이처럼 상세한 진술서에 대해 유시민은 방송에서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 쓴 적이 있어요. 편지지처럼 줄 쭉쭉 그어져있는 진술서 있죠. 거기에 볼펜으로 100장을 쓴 적이 있어요. 안 맞을려고. 어떻게든 늘여야 되잖아 분량을”이라고 등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상세한 진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가급적 숨기려했던 다른 관련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되었다. 수사당국이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이를 알 리 없는 피체(被逮)자들은 하나라도 숨기려 했다가 곧바로 폭력의 세례 앞에 발가벗겨져야 했다. 실제 그의 진술서에는 ‘4월 11일 시국성토대회를 한다고 마이크를 접수하려던 복학생이 민청협회장이자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001180쪽), 복학생들이 5월 2일부터는 교내시위를 벌이면서 비상계엄문제를 이슈화하라고 지시했고(001196쪽), 사북사태보고서는 복학생 황광우가 조사반으로 현지에 다녀왔으며(001249쪽)’ 등을 비롯해,‘5월 14일 심재철이 광화문으로 가두시위 할 것을 결정 발표하고 저는(유시민은) 목이 쉬어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 틈에 섞여 있었으며(001230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천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고(001232쪽)’등의 내용이 상술되었다. 검찰과 경찰에겐 상세 지도나 다름없는 유시민의 진술서는 본 의원을 기소할 때도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물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검찰 증거목록 정수 1582~1583), 유시민이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등 피의사건에 관하여 임의로 진술하겠다’고 작성한 8월 12일자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본 의원의 유죄선고 증거로 채택되었고(정수 1354~1364), 검찰의 공소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도 유시민의 진술은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 1980년 서울역 시위대 해산 과정도 유시민의 행동이 미화되는 소재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이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 시위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자신이 진술서에서 언급한 사실과 다르게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적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왜곡 미화했다. 유시민은 TV에서 “버스위에 올라가서 해산하면 안된다고 얘기를 하래요. 그래서 내가 올라가서 그 얘기를 했어요”라며 자신이 해산이 아닌 진군을 주장한 것처럼 했다는데 이것은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실제 유시민은 진술서에서 5월 15일 서울역으로 진출하기 직전인 낮 12시 교내시위 때 ‘강경론(교외진출 주장)과 온건론(당분간 교내투쟁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은 ‘중립을 지켰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후 학생회장단의 서울역 해산 결정이 내려지자 자신은 안도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그랬던 유시민이 학생들에게 ‘해산불가’를 선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서울역 광장에 마이크 시설이라고는 이수성 서울대 학생처장의 주선으로 확보한 마이크로버스 한 대에 달린 소형 확성기 뿐으로 당시 마이크를 쥔 사람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본 의원뿐이었다. 그 마이크로 버스 안에서 서울지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해산과 진군 여부를 결정했던 것이다. 유시민 역시 진술서에 “심재철은 다음 단계의 행동은 오늘(5월 15일) 저녁 22:00시 고대에서 총학생회장단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발표할 때 발판으로 이용된 것은 서울대학교의 마이크로버스였으며 이 마이크로버스에 방송기재를 싣고 갔습니다.”(001235쪽)라고 썼다. 역사는 예능이 아니다. 1980년 서울의 봄에서 39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역사적 진실은 은폐되지 않는다. 본 의원은 1997년 5.18광주민주화유공자보상위원회 결정으로 유공자 무상의료보험증이 발급되었지만 곧바로 반납했고 보훈처에 유공자 등록도 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화투쟁은 학생의 당연한 행동이었기에 국가에 공을 세웠다고 대우해달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 의원은 유시민이 이해찬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있던 1988년의 국회5·18민주화운동청문회 때는 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1995년 전두환내란음모사건 고발인 진술서를 작성할 때 비로소 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16년 총선 때는 유시민이 본 의원의 지역구에까지 와서 정의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의원을 허위사실로 비방하고 유투브로 낙선운동을 했을 때도 침묵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마저 거짓을 역사적 사실로 왜곡하는 모습을 보고 진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유시민 위원장이 TV연예프로그램을 통해 80년 상황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역사는 후세에 전하는 현 시대의 기록이다. 개인적인 유불리 잣대로 진실을 거짓으로 왜곡하고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는 것은 역사 앞에 누를 범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입장이 각광을 받는다고 당시 있었던 사실 자체가 달라질 수는 없다. 21살 재기 넘치는 청년의 90쪽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고 이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24인 피의자가 된 진실을 감추고 자신의 문재(文才)를 확인하는 집필 계기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유시민씨는 자신의 왜곡발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39년 전 자신의 자백 진술서가 검찰이 본 의원을 기소한 핵심 증거였고 자신의 검찰관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로 운동권 선후배들이 고통당하게 된 신군부의 촘촘한 포획망이 되었음을 유시민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19. 4. 22. 국회의원 심 재 철   <참조>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된 유시민   공소사실이 100% 유죄로 인용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2심 판결문의 증거의 요지로 유시민의 이름이 판시되었다.  증거의 요지 (중략) 검찰관 작성의 한**, 김**, 홍**, 함**, 강**, 김**, 채**, 조**, 조**, 박**, 최**, 금**, 이**, 유시민, 박**, 이**, 조**, 이**에 대한 각 진술조서 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 기재부분.(중략) 등을 종합하면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 김대중, 문**, 이**, 조**, 설*, 서** 및 김**에 대한 판시 각 전과 외 점은 위 피고인들의 이 법정에서의 각 해당판시 전과에 부합하는 진술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이건 판시 사실은 증명이 충분하다. (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   2. 검찰참고인진술조서를 작성하고 불기소로 풀려난 유시민 유시민은 980년 8월 12일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피의사건에 대해 검찰관 참고인자격으로 수도군단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에 임의로 진술한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후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본 의원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유일하게 김대중씨나 김대중씨 측근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법정 진술을 한 적이 없었으며 이는 공판조서에서도 확인된다. 본인이 수배 중 계엄사 합수부에서 발표한 중간수사결과에서 언급된 백만원 수수는 김대중씨 최측근의 허위자백(김xx씨 검찰 참고인 진술조서)(김xx씨 합수부 진술조서)임이 확인되어 공소사실에 빠졌지만, 유시민은 추가로 김대중씨가 본인에게 20만원을 교부했다는 검찰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불기소로 풀려났다. 유시민: 저는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19:00경 청원중국음식점에 가기위하여 먼저 출발하였기 때문에 잘 모르겠으나 나중에 들으니 김대중이 함석헌과 함께 참석하여 조위금 20만원을 심재철에 교부하고 조사를 하였으며 학생들이 이 ‘김대중만세’등의 구호를 외치며 상당히 과열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유시민 검찰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1980.8.12)) 1980년 4월 11일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서 본인이 김대중씨에게 받은 조위금 20만원 자기앞 수표는 다음날 학생회 총무가 은행에 입금후 인출해 농대학생회를 통해 김상진열사 유족에게 전달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본인과 김대중씨의 공판조서에도 명백히 명시되어 있다. 본인은 공판중 추도식에서 ‘김상진열사 어머니가 소개되었다’ ‘장례금으로 수령했다고’ 진술했고 김대중씨 역시 ‘유족이 있어서 20만원을 조의금으로’ 줬다고 법정 진술을 한다.(심재철 1심 6차 공판조서 001601-1602쪽)(김대중 1심 14차 공판조서 002364~002365쪽)   3. 서울역 시위 해산과 진군에 대한 유시민 진술의 허구성 유시민의 진술서에는 유시민은 진군을 주장하는 학생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본인이 중립이었고 교문밖 시위를 주장하는 강경파와 복학생들에게 휘말리지 않으려 노력한 온건파 중립이었다고 기술했다. 저는(유시민은)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틈에 섞여있었고(001230쪽)21:30분이 다가오자 초조해졌고 학생들을 해산시킬일이 걱정되었던참에 경찰저지선에서 지휘하시는 분이 서울대 정문에 오시던분이어서 제가 손을 흔들며 달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22:00까지 해산시킬테니까 페퍼포그를 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리자 응낙해주셨고 저는 정확히 22:05에 학생들을 해산시켰습니다.(001232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천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습니다.(001232쪽) 학생처장 이수성교수는 저에게 ‘자꾸 강경파에게 밀리지 말고 소신껏 학생들의 피를 흘리지말고 활동하라’고 말하였습니다.(001238쪽) 5월 17일 복학생 김병곤이 저를 찾아와 가두시위를 말해 저는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니고 심재철에게 이야기해 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001240쪽)   4. 5월 17일 수배중인 본 의원의 행선지를 합수부에 밝힌 유시민 5월 17일 18시 25분경 이대 쪽에서 익명의 학생이 총학생회장단 검거소식을 알리고 19시 10분경에 학생활동위원장이 전화해 자신은 이대에서 도망쳐왔는데 심재철의 검거소식은 알 수 없다고 말하고(001243쪽), 19:30분경 심재철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와 노량진에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001244쪽)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홍일 前의원 별세, 역대 대통령 자녀 중 처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지난 20일 별세는 역대 대통령의 자녀 가운데 첫 별세라 할 수 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리 여사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근령·지만씨 등 2녀 1남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재국·재용·재만·효선씨 등 3남 1녀가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딸 소영씨와 아들 재헌씨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혜영·혜경·은철·현철·혜숙씨 등 3녀 2남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별세한 김 전 의원 외에도 홍업·홍걸씨 등의 자녀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가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주연·승연·수연·시형씨 등 3녀 1남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녀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준용·다혜씨 등 1남 1녀가 있다. 김 전 의원의 별세가 역대 대통령 자녀 중 첫 별세인 만큼 장지와 장례 절차 등도 첫 사례가 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은 서거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만 자녀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김 전 의원의 유가족은 22일 김 전 의원을 광주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묘역)에 임시안장한 뒤 5·18국립묘지 이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초 5·18국립묘지에 안장하려 했지만 알선수재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으로 인해 국가보훈처의 내부 심의를 먼저 거쳐야 한다는 변수를 만난 데 따른 결정이다. 한편 김 전 의원의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엔 이틀째 조문이 이어졌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홍업·홍걸씨에게 “어머니(이희호 여사)가 편찮으시다고 들었다. 문병을 받을 상황인가”라고 물었고, 홍업씨는 “감염 우려가 있어 우리도 잠깐 뵙고 있다. 눈 뜨는 것도 상당히 힘들어하신다”고 답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김 전 의원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찡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거의 식물인간처럼 일생을 살았다”고 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너무 고통스럽게 살다 가셨다”고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故김홍일, 5·18 국립묘지에 바로 못 간 이유

    故김홍일, 5·18 국립묘지에 바로 못 간 이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고 김홍일 전 의원이 광주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묘역)에 임시 안장된다. 당초 김 전 의원의 유가족은 김 전 의원을 5·18 국립묘지에 이장하려고 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 때문에 국가보훈처의 내부 심의를 먼저 거쳐야 한다는 의견에 따른 결정이다. 김 전 의원 측은 22일 “유가족들이 협의한 결과 김 전 의원을 5·18 구 묘역에 안장키로 했다”면서 “향후 소정의 절차를 밟아 5·18 국립묘지로 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광주시청이 오늘 회의를 해서 (5·18 구묘역에) 안장을 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면서 “앞으로 보훈처 등 관계당국과 (국립묘지 이장)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3일 오전 6시 함세웅 신부 주관 장례미사와 오전 7시 발인식에 이어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광주 5·18 구묘역으로 바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고문을 당하고 3차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 관련자로 인정을 받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이 2006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1억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만큼 보훈처는 내부 심의 후 안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김 전 의원 유가족 측은 대안으로 5·18 구묘역 임시안장을 한 뒤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방안을 타진해왔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고문 없는 세상으로…‘DJ 장남’ 김홍일 前의원 별세

    고문 없는 세상으로…‘DJ 장남’ 김홍일 前의원 별세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71)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일 별세했다. 각계에선 모진 고문에 따른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 살다 간 김 전 의원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김 전 의원은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 고문 후유증으로 목과 허리 등을 다쳤고 파킨슨병까지 얻었다. 김 전 의원은 15·16대 총선에선 전남 목포에서, 17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당선돼 3선 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돼 인사청탁 대가를 받은 혐의로 2006년 의원직을 상실했다. 장례는 4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3일 오전 5시 함세웅 신부가 집전하는 장례미사를 봉헌한 뒤 오전 7시 치러진다. 유족 측은 장지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로 정했지만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국가보훈처 안장대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이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기 때문에 국립묘지 배제 대상”이라며 “다만 알선수재나 생활범죄 등은 구제가 가능하다는 예외규정이 있어 심의를 거쳐 발인 전까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문 대통령, 역대 최초로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식 주관

    문 대통령, 역대 최초로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식 주관

    카자흐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국외 현지에서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식을 직접 주관했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봉환된 유해의 주인공은 독립운동가 계봉우·황운정 지사 부부다. 정부는 이들 지사에게 1995년과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군악대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가운데 계봉우 지사께 건국훈장 독립장을, 황운정 지사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헌정했다. 이들 지사와 배우자 김야간·장해금 여사의 유해 총 4위는 오는 22일 오전 6시45분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영접한 가운데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되게 된다.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계봉우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된다. 문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네 분을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며,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라며 “정부 출범 직후부터 네 분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유가족,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의해 왔고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애국지사를 고국에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가족과 고려인 동포들께 자긍심의 뿌리이며, 기댈 수 있는 언덕일 텐데 어려운 결정을 한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를 드리고, 성심성의를 다해 도와준 카자흐스탄 정부에도 감사하다”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신 독립유공자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현재 국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는 총 152위다. 지금까지 9개국 총 141위의 독립유공자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문 대통령, 역대 대통령 최초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주관

    문 대통령, 역대 대통령 최초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주관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국외에 묻힌 독립유공자 유해를 봉환하는 행사를 주관한다. 카자흐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수도 누르술탄의 국제공항에서 현지에 안장돼 있던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 봉환식을 주관한다. 계봉우 지사는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뒤에도 민족교육을 위해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해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황운정 지사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1919년 함경북도 종성과 온성 일대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무장부대 일원으로 선전공작을 통해 대원을 모집하고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가해 정부로부터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번 유해봉환은 2017년부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청와대는 이번 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을 계기로 대통령 주관 행사로 유해 봉환식을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독립유공자를 청와대로 초청한 행사에서 “해외 독립유공자 유해 봉송 의전을 격상하고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정부는 계봉우·황운정 지사뿐만 아니라 이들의 배우자까지 모두 4위의 유해를 유가족과 함께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이용해 고국으로 봉환하기로 했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보훈처는 2017년 7월 임정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봉환하기로 하고 두 유공자의 유족에 봉환 의사 등을 타진했다. 유족 측이 봉환에 동의하자 보훈처는 지난달 현지 공관 주관으로 유공자의 묘소에 있던 유해를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운구해 화장했다. 봉환식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협조와 지원을 받아 공군 2호기 앞에서 유해 운구, 국민의례, 헌화, 건국훈장 헌정, 대통령 추모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대통령 내외와 독립유공자의 유가족,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카자흐스탄 군악대의 장송곡에 맞춰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가 유해를 운구해 우리 군의 전통의장대에 인계하며 봉환식이 시작된다. 군은 전통의장대를 비롯해 의장대와 군악대 75명을 카자흐스탄으로 파견했다. 군악대는 가곡 ‘님이 오시는지’를 연주해 고국으로 귀향하는 두 애국지사의 넋을 기린다. 문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독립운동자를 최고 수준으로 예우하겠다는 뜻과 함께 두 독립유공자 유해 송환을 위해 힘써 준 카자흐스탄 측에 사의를 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봉환하면 국내로 봉환된 독립유공자 유해는 총 141위가 된다. 현재 국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유해는 152위다. 이중 카자흐스탄에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홍범도 장군 등 3위의 독립유공자 묘소가 남았다. 유해는 22일 오전 피우진 보훈처장이 영접한 가운데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유가족 의사에 따라 계봉우 지사 부부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가짜 유공자’ 현충원에 버젓이… 전수조사 통해 역사 바로 세워야

    ‘가짜 유공자’ 현충원에 버젓이… 전수조사 통해 역사 바로 세워야

    “제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사실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독립유공자에 이름을 올렸던 김정필 선생의 증손자 김종갑(77)씨는 2015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 김영진 감사에게 오랜 세월 숨겨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는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를 두고 광복회와 시민단체 간 공방이 이어지던 때였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김정필 선생은 75세이던 1920년 만주 봉오동 전투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살해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김씨는 증조부가 만주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하지 않았고, 사망한 시기도 1920년이 아닌 1925년이었다고 반박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던 김정필 선생은 결국 2017년 8월 허위 공적으로 서훈이 취소됐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스스로 양심고백을 한 최초의 사례다.김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의 공훈을 가로채 나라로부터 혜택을 받아내고자 1968년쯤 당숙이 거짓 서훈 신청을 했던 것”이라며 “사실이 아닌 것을 묻어두는 것이야말로 죄악이고 선대를 욕보이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유공자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가짜 유공자’ 논쟁을 없애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72)씨는 20년간 현충원에 안장된 가짜 독립유공자를 추적해 지난해 4명에 대해 서훈 취소를 이끌어냈다. 이들 역시 김정필 선생 사례와 마찬가지로 유족이 다른 사람의 공적을 교묘히 도용해 서훈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가짜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족들이 이장을 거부하고 대통령과 보훈처를 상대로 “서훈 취소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탓이다. 김세걸씨는 “아버지를 찾아갈 때마다 가짜 유공자의 묘를 보면 분노를 느낀다”면서 “더이상 정부는 나 같은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직접 나서서 서훈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짜 유공자’ 둘러싸고 여전한 갈등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독립유공자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가짜 유공자’를 솎아내는 일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학계와 시민사회는 입을 모은다. 실제로 보훈처가 내놓은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 현황’을 보면 최근 10년간 서훈이 취소된 ‘가짜 독립유공자’는 39명이나 된다. 2005년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은 반민족행위자 1006명을 토대로 2011년 허위 공적자 19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고, 2017년에도 동일인 중복 서훈 등 가짜 유공자 15명을 가려냈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1891~1955)는 지난해 2월 서훈이 박탈됐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과거 자료가 워낙 부실하다 보니 같은 공적으로 이중 포상이 이뤄진다거나 흠결이 있는 분들까지도 잘못 서훈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2013년 김천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가 불과 4년 만에 철회했다. 이 실장은 “이미 유공자 명단에 있던 진천보 선생과 이름이 유사해 혼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가짜 유공자 논란이 끊기지 않자 서훈자 1만 5180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밝혔다. 이 가운데 1976년 이전 초기 서훈자 가운데 우선 검증 대상 587명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오는 7월 발표한다. 우선 검증 대상 587명은 1949~1976년에 문교부와 총무처가 서훈한 독립유공자 가운데 1990년 재검증에서 빠졌던 이들이다. 1990년 이전에는 건국훈장이 3등급(중장, 복장, 단장)이었다가 이후 5등급(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으로 확대됐다. 당시 보훈처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유공자 가운데 4, 5등급(애국장, 애족장)에 해당하는 인물을 선정하고자 재분류 작업을 진행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교수와 법률가 등 11명으로 구성된 독립유공자 검증위원회와 실무 작업을 도울 석사 이상 전공자 10명을 선발했다”면서 “2023년까지 유공자 전수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간 유공자 전수조사를 강하게 주장해온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은 “이번이야말로 역사를 바로세우고 보훈처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국회 법안처리 늦어져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겨우 시행이 됐다. 하지만 친일 행적 인물들의 현충원 안장 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고도 국립묘지에 묻히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서울현충원에만 37명의 친일 인사가 안장돼 있다. 이 가운데 국가기관(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으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인물도 7명이나 된다. 이들은 친일 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됐음에도 현충원에서 독립유공자들과 함께 있다. 7명 가운데 한 사람인 이종찬(1916~1983)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942년 2월 일본군 최고 영예인 금치훈장을 받을 정도로 일제에 협력했지만, 해방 이후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것은 이종찬이 유일하다. 2015년 9월 안장된 김홍준(1915~1946)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동북항일연군, 팔로군 등 항일무장세력을 소탕하는 데 가담했지만 역시 해방 뒤 국방경비대총사령부 근무 경력이 인정돼 안장 자격을 취득했다. 이 밖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 28명을 더하면 그 수는 65명으로 늘어난다. 대전현충원에 있는 친일 인사 가운데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인 김창룡(1920~1956)은 김구(1876~1949) 암살의 배후 노릇을 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그의 묘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1859~1939) 여사가 묻힌 곳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국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된 자는 국립묘지 안장을 할 수 없게 하는 법안(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현충원 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법안(권칠승 민주당 의원안) 등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어느 것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 인사들은 광복 뒤 무공훈장을 받는 등 공로가 인정돼 안장 자격을 취득한 만큼 이장에 반대하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가 인정한 반민족행위자, 공보다 과가 큰 인물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역사 청산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 가운데 생존자는 2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국가유공자다. 향후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데스크 시각] 임시정부의 ‘뜨거운 감자’ 된 이승만/류지영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임시정부의 ‘뜨거운 감자’ 된 이승만/류지영 정책뉴스부 차장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 뜨겁게 떠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이승만(1875~1965)이다. 사회주의 운동가 서훈 논란을 가져온 김원봉(1898~1958)과 함께 이념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교보그룹과 함께 서울 광화문 일대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정부서울청사 외벽에는 여운형(1886~1947)과 남자현(1872~1933), 김구(1876~1949) 등 독립운동가 10명의 스텐실 초상이 가로 100m, 세로 17m 크기의 현수막에 실렸다. 교보생명 건물에는 이회영(1867~1932)을 뺀 9명의 전신 초상이 게재됐다. 그러자 일부 언론이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임정의 정통성을 부정한 여운형은 그림에 넣으면서 임정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뺀 것은 일종의 ‘관제 왕따’라는 지적이다. 반대로 GS리테일은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승만 도시락’을 출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GS25가 판매 중인 도시락에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스티커를 붙이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승만을 소개한 것이 화근이었다. 일부 소비자들은 “GS리테일이 독립운동가로 이승만을 선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분노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대교를 폭파해 수많은 피난민이 목숨을 잃었고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을 통해 독재에 나선 인물을 기념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기념사업추진위원회나 GS리테일 모두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이들 모두 의도적으로 이승만을 빼거나 넣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 그림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레오다브가 2013년부터 작업한 ‘독립운동 의·열사 연작’에서 고른 것인데, 애초 레오다브 그림엔 이승만이 없었다. 이승만 도시락 역시 국가보훈처가 추천한 독립운동가를 선정한 것일 뿐 GS 측에서 자체적으로 고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만약 지금과 정반대로 정부가 광화문광장에 이승만 그림을 걸었거나 GS25가 자사 도시락에서 이승만 스티커를 뺐다면 언론과 시민의 반응이 어땠을까. 그래도 이를 문제삼았을 공산이 크다. 이승만은 넣어도 문제이고, 빼도 문제인 그야말로 ‘문제적 인물’이다. 기자는 지난해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100년’ 기획 시리즈 취재를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살폈다. 이승만은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항일 활동에 나섰다는 이가 미국에서 자신의 국적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속여 왔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극우 성향 ‘뉴라이트’와 보수매체들이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다 보니 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더욱 커진 측면도 분명히 있다. 이승만은 공과가 분명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3·1운동과 임정 100주년은 3·1운동의 결과물인 대한민국과 그 모체인 임정을 기념하는 것이지 특정인을 치켜세우거나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임정 역사에서 이승만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임정 100주년에서 이승만이 소외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과거엔 의도적인 편 가르기로 피아를 구별했다.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국민 통합’을 실현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superryu@seoul.co.kr
  • [부고]

    ●유영조(한국세무사회 감사)씨 부친상 15일 중앙보훈병원, 17일 오전 7시 (02)2225-1004 ●김성도(전민일보 이사) 성민(청동출판사 대표)씨 부친상 15일 전북 삼봉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9시 (063)213-4444 ●이영호(전 국회의원)씨 부친상 15일 전남 완도 대성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61)554-4456 ●이대부(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부의장)씨 별세 동수(성균관대 의대 명예교수)씨 부친상 전호경(성균관대 의대 교수)씨 장인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3410-6914 ●김연갑(흥진건설 대표이사)씨 별세 민직(아토드 대표) 병직(흥진건설 업무부 과장)씨 부친상 15일 천안하늘공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6시 (041)621-8017
  • [부고] 유영조(한국세무사회 감사)씨 부친상

    △유치준씨 별세, 유영성·유영조(한국세무사회 감사)·유영미·유영숙씨 부친상, 이인숙·김창일씨 시부상, 선종찬·정준성씨 장인상 = 15일 오전 6시15분께,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3층 6호실, 17일 오전 7시. 02-2225-1004
  • 화성시, ‘4.15 100주년 화성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희생자 추모제’ 개최

    화성시, ‘4.15 100주년 화성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희생자 추모제’ 개최

    “3.1운동을 미래 지향적인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 경기 화성시는 15일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서 ‘4.15 100주년 화성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희생자 추모제’를 개최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국가유공자와 보훈단체, 세계평화연대 도시 대표단을 비롯해 서청원·이원욱·권칠승·송옥주·안민석 국회의원, 염태영 수원시장, 곽상욱 오산시장, 나치만 경기남부보훈지청장과 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해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주민들을 추모했다. 제암·고주리 사건은 항일 독립운동 사상 가장 잔혹한 일제의 보복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다. 100년전 화성지역 주민 2500여명은 대규모 만세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화수리 경찰관 주재소를 공격해 일본 순사 가와바타를 처단했다. 이 일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군대를 투입해 제암리 마을 주민 23명을 교회에 가둔 채 총살했고 독립운동가 김흥렬과 그 일가족 6명을 처참히 학살하는 등 제암·고주리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평온한 농촌 마을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화성 3·1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며 “그 어떤 무자비한 탄압도 내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열망을 꺾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전 세계에 3·1독립운동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은 평화와 인류애를 존중하는 세계인의 공분을 자아내 국내외 독립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덧붙였다.서철모 화성시장은 개회사를 통해 “3.1운동을 미래 지향적인 역사로, 일제의 잔악한 탄압에 굴하지 않은 치열한 민중사이자 진취적인 민족사로 재조명해야 한다”면서 “이날을 기점으로 평화와 번영의 100년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민족 수난사에만 머물러 새로운 미래 100년의 준비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면서 “3·1운동을 미래지향적인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화성시는 전날인 14일 신텍스에서 세계평화연대 도시 대표단과 국내 석학들이 자리한 가운데 ‘4.15 100주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화성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의 역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보수단체, 이해찬·설훈·민병두 5·18유공자 취소 청원

    보수단체, 이해찬·설훈·민병두 5·18유공자 취소 청원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국가보훈처에 이해찬·설훈·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5·18 유공자 등록 취소를 청원했다. 5·18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자유연대와 공익지킴이센터,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등은 15일 오후 국가보훈처 서울지청에 이들 세 의원의 5·18 유공자 등록 취소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 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환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다. 이들 단체는 세 의원이 1980년 5·18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5·18과 직접적 유관자가 아니기 때문에 5·18 보상법상 기타지원금 지급 대상자가 아니라고 청원서에서 주장했다. 세 의원의 유공자 등록 취소와 지원금 환수도 촉구했다. 앞서 이들 단체는 지난 3월 세 의원을 5·18 유공자법 위반 등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바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구로, 국가·독립유공자 명패 부착 추진

    구로, 국가·독립유공자 명패 부착 추진

    서울 구로구가 국가·독립유공자 명패 부착 사업을 추진한다고 14일 밝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 분위기를 조성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이성 구청장은 지난 10일 이용기 서울남부보훈지청장과 함께 독립유공자 고 최종화(1896~1919) 선생의 손자인 최용희 광복회 구로구지회장의 자택을 방문해 올해 첫 독립유공자 명패 부착을 진행했다. 최종화 선생은 3·1운동 당시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복역 중 순국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 구청장은 이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대의 노력에 큰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구로구는 이날 방문을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명패 부착 사업을 잇는다. 명패 부착 사업은 국가보훈처와 함께 2021년까지 해마다 진행된다. 올해는 관내 국가유공자 1421명과 독립유공자 유족 68명, 민주유공자 7명 등 모두 1496명이 대상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독립운동가 잠든 효창공원, 일상 속 추모공간 재탄생

    독립운동가 잠든 효창공원, 일상 속 추모공간 재탄생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이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과 같은 일상 속의 기념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백범 김구 선생,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 독립운동가 7인이 잠들어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이곳을 서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추모공원(조감도)으로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일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효창독립 100년 공원 구상안’을 발표했다. 구상안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4년까지 노후시설 단장과 운동장 재정비, 지하주차장 설치 등 주민편의시설을 늘려 참배객 위주에서 시민의 일상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를 위해 1000억원가량의 사업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우선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 주변 연못을 개보수해 엄숙함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높여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더한다. 철거가 검토됐던 공원 내 효창운동장도 국내 최초의 국제축구경기장이란 의미를 되살려 보존한다. 축구장 아래 1만 5000명의 ‘뭇별’(독립운동가) 기념공간도 들어선다.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공원으로 공간적 범위도 확대한다. 식민지 역사박물관을 비롯해 내년 4월 개관하는 ‘이봉창의사 기념관’, 같은 해 6월 준공 예정인 ‘손기정 체육공원’, 경의선숲길, 숙명여대 등 주변시설과 유기적으로 연결할 방침이다. 특히 용산구의 ‘효창 100년길 조성사업’과 연계해 담장이 사라져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국가보훈처, 문화재청, 용산구, 독립운동 단체, 축구협회, 시민 등 100여명이 참여하는 ‘효창독립 100년포럼’을 만들고 토론회, 심포지엄, 주민참여프로그램 등을 거쳐 구상안을 확정해 2021년 착공한다. 효창공원은 16만 924㎡(약 4만 8680평)에 달하며 조선 정조의 큰아들 문효세자의 묘역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일제가 묘역을 경기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기고 골프장과 유원지를 지었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했다.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기 위한 가묘도 있다. 연간 방문객은 약 33만명으로 어린이대공원 934만명, 보라매공원 835만명, 현충원 223만명 등에 크게 못 미친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학계 “독립운동 서훈, 이념 아닌 1945년 광복 기준으로 평가해야”

    학계 “독립운동 서훈, 이념 아닌 1945년 광복 기준으로 평가해야”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인 인물이 있다. 약산 김원봉(1898~1958)이다. 학계에서는 ‘재평가와 복권이 이뤄져야 할 독립운동가 1순위’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을 복권할 수 없다’, ‘김일성도 반일투쟁을 했다는데 그에게도 훈장을 줘야 하느냐’며 극단적 거부 반응을 보인다.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은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 항일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이들을 평가하는 지금 우리는 분단의 결과물인 ‘이념’을 잣대로 들이댄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늘 배제돼 온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김원봉, 항일투쟁 업적에도 월북해 논란 “공산당 활동을 하고 월북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겠다고 한다. ‘뼛속까지 빨갱이’였던 이를 서훈하겠다는 이 정부가 원하는 게 무엇이겠나.” 지난달 26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 가능성을 언급하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보인 반응이다. 피 처장은 ‘김원봉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인가’라는 정태옥 한국당 의원의 질문에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이어 “지금 기준으로는 (서훈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가 (북한과)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북한 정권에 기여했다고 해서 (서훈 수여를) 검토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북한과 6·25전쟁을 치렀지만 그런 부분은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한국당은 피 처장의 발언을 문제삼아 해임결의안을 추진 중이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꾸려 조선총독·일본군·친일파 등을 암살하고,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 기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영화 ‘암살’, ‘밀정’ 등에서 의열단장으로 등장한 인물이다. 일제는 김원봉을 “재외 반일 조선인의 거두”라고 표현하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그는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해방 뒤 월북 행적 때문이다. 1947년 김원봉은 극우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자 남조선노동당 지도자 박헌영(1900~1955)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검찰총장)에 임명됐고 노동상(노동부 장관)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1958년 숙청될 때까지 북한에서 최고위직으로 활동했다. 사회주의자인 이동휘(1873~1935)와 한위건(1896~1937), 김두봉(1889~?)도 업적에 비해 저평가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분단 특수성 이유 사회주의자 대부분 저평가 한위건은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학생대표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내무위원과 함경도 의원을 지냈다. 1920년 일본 유학 당시 독립군 자금 모집 사건에 연루돼 검거됐고 이듬해 조선유학생회 주최로 만세 시위 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1930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독립운동사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2005년 좌파 독립운동가에 대해 재평가가 이뤄져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장규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 초기 학생 조직을 만드는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휘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 군무총장, 국무총리를 지냈다. 1907년 강화도 전등사에서 의병을 일으키려다 체포됐고, 안창호(1878~1938) 등과 신민회를 조직해 항일운동 전면에 나섰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신민회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나 1913년 시베리아·북간도 지역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한 무관 양성에 앞장섰고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조직했다. 박한용 전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이동휘는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으로 일제에 맞서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며 “그의 활동에 비해 우리 교과서에서도 언급이 적다보니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을 진행한 한글학자 김두봉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40년대 중국 옌안의 조선독립동맹 주석을 맡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이후 북한에서 조선신민당을 조직했고 북한 정권에서 최고인민회 상임위원장과 김일성대 초대 총장을 지냈다. 그는 김원봉과 마찬가지로 1958년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고 중노동을 하다가 1960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옥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김구나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잘 모른다.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사회주의계열 인물들이 독립운동사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분단 상황 때문에 제대로 부각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주의 택한 것은 독립운동 위한 한 방법” 사회주의자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제에 맞섰지만 지금도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김원봉과 김두봉은 현행법에선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다. 단순히 사회주의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은 한반도를 소위 ‘붉은 국가’로 만들고자 치밀한 계획을 갖고 항일투쟁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이들이 사회주의를 택한 것은 조국 독립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공산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동휘조차도 “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라고 고백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일제 침략 시기에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사회주의 사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제국주의 폭압에 맞서는 대안 이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사회주의자였던 것에는 이런 사정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연안파는 6·25전쟁 뒤 김일성이 중심인 빨치산파에 의해 북한 지도부에서 완전히 축출돼 남북한 양측에서 ‘잊힌 존재’가 됐다. 연안파는 중국 옌안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해방 뒤 입북한 조선의용대 출신 세력을 뜻한다. 조선의용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진영에서 치열하게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웠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조직이다. 일부는 임정과 손잡고 한국광복군에 참여했고 나머지는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꿔 중국 건국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해방 뒤 남쪽에선 좌파로 몰려 박해당했고, 북쪽에선 김일성 독재에 반대하다가 사라졌다. 우리부터라도 ‘비운의 독립군’으로 불리는 이들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광복 이전 독립운동 했다면 유공자로 봐야” 역사학계에서는 1948년 이후 남북을 가른 이념이 아니라 1945년 8월 광복 당시 행위를 기준으로 역사적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지난 1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로 활동한 보훈혁신위원회가 “1945년 8월 15일 이전 독립운동을 했다면 독립유공자로 봐야 한다”는 권고도 같은 맥락이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후대에 만들어진 이념이라는 기준보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맞춰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념이나 사상에 관계없이 1945년을 기준으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에 합당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목숨 바쳐 독립운동 했는데… “시대적 재심 통해 명예회복을”

    목숨 바쳐 독립운동 했는데… “시대적 재심 통해 명예회복을”

    ‘임시정부 정신적 지주’ 이동녕 1등급 상향 촉구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서훈 상향 서명 운동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을 맞았지만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되찾으려 했다는 이유로 일제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유공 서훈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재심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시대적 재심을 통해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을 제대로 예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1등급 서훈(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총 30명이다. 이 중 27명에 대한 서훈은 1976년 이전에 이뤄졌다. 친일 청산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념 논쟁이 한창일 때 서훈이 추서되다 보니 일부 독립운동가는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천안시의회는 지난달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고, 임시의정원 초대의장·국무총리·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녕 선생에 대한 서훈을 1등급으로 상향해 달라는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940년 임시정부 주석을 지내다 과로로 사망한 석오는 1962년 2등급(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시의회는 “당시 정부가 임시정부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을 맡았던 고헌 박상진 의사는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이후 40여년이 지난 1963년 독립유공자 3등급(독립장) 서훈을 받았다. 대한광복회 부사령을 지낸 김좌진 장군이 1등급인 것과 비교해도 2단계나 낮다. 고헌의 고향인 울산에서는 지난해부터 서훈 상향을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고헌의 증손자 박중훈(65)씨는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서훈 한 등급 더 받으려고 독립운동을 했겠나”라면서 “그동안 서훈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이 먼저 나서주니 힘이 된다”며 “이왕이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무장투쟁단체 ‘의열단’을 이끌었던 약산 김원봉의 외조카 김태영(62)씨는 “약산은 공산당원도 아니었고 해방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쫓기듯 북한으로 건너갔다”면서 “역사도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뼛속까지 북한 공산주의자’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하는 것은 진보 인사를 대표하는 상징성과 남북 평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서훈 반대 세력에 굽신거리면서까지 받아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서훈 재심사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현행 상훈법에는 서훈 변경 규정조차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도 매 회기마다 서훈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상훈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찬반 논란 속에 흐지부지됐다. 지난 2월 독립유공자 3등급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 정부가 최고 등급인 1등급으로 ‘추가 서훈’을 결정했지만, 기존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재심사는 아니었다. 3·1운동으로 인한 애국정신 함양 등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별도 포상을 한 셈이다. 정부가 추가 서훈의 길을 터놓기는 했지만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성남시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 5년…위안부 피해 할머니 기려

    성남시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 5년…위안부 피해 할머니 기려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의 소녀상을 세워주신 성남시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남시청 광장 평화의 소녀상 건립 5주년 행사가 10일 오후 2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1)와 은수미 시장, 박문석 시의회의장, 보훈단체장,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묵념, 살풀이춤, ‘소녀와 꽃’ 헌정 공연, 헌화 순으로 진행, 아픈 역사 속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렸다. 이용수 할머니는 “내가 역사의 산증인이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28년째 진상규명과 공식사과, 그리고 법적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주인인 학생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시장은 “이용수 할머니께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하는데 너희들에게 넘겨주고 갈까봐 걱정스럽고 미안하다고 하셨다”며 “이러한 참혹한 이야기를 듣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성남시청 광장 평화의 소녀상은 2014년 4월 15일 설치돼 일본의 인권 침해와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슬픈 듯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형상의 단발머리 소녀상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장 큰 피해자로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 회복에 관한 메시지를 강한 울림으로 전한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이다. 219명이 세상을 떠났고, 21명만 생존해 있다. 시는 오는 8월 성남시청 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속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 연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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