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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 어머니가 인정받는 날 왔네요”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독립운동 뒷바라지도 독립운동… 어머니가 인정받는 날 왔네요”

    “2010년 2월에 어머니(홍매영 여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8년이나 기다렸습니다. 그간 정권이 바뀌고 여성 독립운동가도 인정받는 세상이 왔네요. 평생의 큰 소원을 이뤘습니다.”차이석(임시정부 비서장) 선생과 홍매영 여사의 아들인 차영조(74)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남기신 한국독립당(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차이석 선생 등이 창립한 독립운동단체) 당원증으로는 독립유공자 인정이 안 된다고 수차례 들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번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드디어 인정받게 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명패도 추후 전달할 계획이다.홍 여사는 1942년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 사원으로 재직했고 이곳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지원한 공이 인정됐다. 평안북도 의주에 살던 홍 여사는 남편의 제안으로 임정으로 가기 위해 나무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중 남편이 중국 국경인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연행됐다. 홍 여사는 첫 중국행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5살·2살인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 시안의 광복군 진지에 도착했다. 차씨는 “어머니는 광복군으로서 훈련을 받았고 1942년 그곳에 들렀던 백범 김구 선생의 중매로 32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고 했었다고 어릴 때 어머니께 들었다”고 덧붙였다.1944년 차씨가 태어났고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됐지만 차이석 선생은 귀국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9월 9일에 숨을 거뒀다. 세 아이를 데리고 1946년 귀국한 홍 여사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서울 충무로 1가 한미호텔)에서 거주하며 노상에서 불법 담배 장사를 했다. 차씨는 “마약 단속하듯 단속반이 발로 차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오히려 취업 때 불이익을 받을까 광복군 경력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가족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충남 부여로 피난을 갔다. 차씨는 “형편이 힘드니 형과 누나는 고아원으로 갔고 김구 선생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차(車)씨가 아닌 신(申)씨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며 “6학년 때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고 학교를 관두고 아이스크림 행상이나 술집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홍 여사는 1979년 운명했고 부여의 작은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차씨는 “독립유공자가 됐으니 현충원으로 모시는 게 남은 일”이라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남편을 돕고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고, 남모르게 독립투사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워 준 여성도 합당한 예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사업자등록증 없어도 4대 보험 감면신청?…행안부 행정정보 공동이용 우수사례 발표

    사업자등록증 없어도 4대 보험 감면신청?…행안부 행정정보 공동이용 우수사례 발표

    강원 춘천에서 작은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김석호씨(가명·45세)는 최근 극심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옆 가게를 운영하는 박시룡씨(가명·43)가 지난 여름 강원도청에서 4대 사회보험료 사업주 부담액 전액을 지원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서류를 준비했다. 정부24 홈페이지에 접속한 김씨는 박씨가 알려준 것보다 제출 서류가 대폭 줄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담당 공무원은 “이번 3분기부터 본인 동의만 있으면 사업자등록증, 4대 보험료 납부확인서 등을 제출하지 않아도 사회보험료 지원 신청이 된다”고 설명했다.해당 사례는 경영난에 처한 영세소규모 사업장 4대 사회보험료 지원 신청 간소화하도록 한 강원도의 행정정보 공동이용 우수사례다. 행정안전부는 15일 강원도 사례를 포함한 2018년 행정정보 공동이용 우수사례 18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지난 10월부터 행정정보 공동이용을 하는 전 기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했다. 이번에 응모된 우수사례는 총 107건이다. 예비심사, 전문가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우수사례 18건을 선정했다. 이번 우수사례에는 강원도 사례 외에도 부산 시설공단의 유족들을 위한 장사시설 사용료 감면여부를 즉시 확인하는 서비스,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대상자 공공요금 감면을 원스톱으로 신청하는 서비스 등이 포함돼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번에 선정된 우수사례의 업무 추진기관 및 업무 담당자들에 대해 행정정보 공동이용업무의 공적심사 등을 거쳐 기관과 개인 표창을 수여하고, 우수사례가 각급기관에 확산될 수 있도록 각 사례를 상세히 기술해 모든 기관에 전파할 계획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日제국의 아나키스트”

    靑, 가네코 여사 라이브 방송 1920년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바탕으로 박열 의사와 일본에서 히로히토 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지 92년 만에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는 본지 기사<11월 13일자 9면>에 대해 13일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청와대는 이날 대국민 라이브 방송 ‘11:30 청와대입니다’에서 “가네코 여사는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여성”이라고 정의했다. 또 “가네코 여사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은 국적과 조건을 떠나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뜻깊은 것”이라며 “보훈처는 여성 독립운동가와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차세대에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네코 여사는 일본인이지만 박 의사의 아내이자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로 일본 재판정에서 사형을 받는 순간까지 의연하게 일본을 훈계했다. 특히 조선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재판정에 출두해 ‘박문자’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했다. 박 의사의 생가와 가네코 여사의 묘소가 자리한 경북 문경 시청에서도 본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경시청 관계자는 “기사를 계기로 가네코 여사의 이름을 알리는 사업을 조금이나마 더 깊이 고민하며 추진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가네코 여사는 옥중에서 1926년 23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일본은 이 의문사를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1973년에야 문경 팔령산에 묻혔고 2003년 12월 박열의사기념공원으로 이장됐다. 가네코 여사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서훈을 받지만 아직 후손(친족)은 찾지 못했다. 박 의사는 1990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열의 일본인 아내이자 동지…92년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받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박열의 일본인 아내이자 동지…92년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받다

    조선 충북에 살면서 ‘만세 운동’에 감격 일본에서 박열 詩 ‘개새끼’ 접한 뒤 동거 첫 공판 때 조선 옷 입고 “나는 박문자” 사형 선고받는 자리서도 “만세” 외쳐 보훈처 “후손 찾는 대로 서훈·명패 전달”1920년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바탕으로 박열 의사와 일본에서 히로히토 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지 92년 만에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일본인이지만 박 의사의 아내이자 독립운동을 함께 한 동지였던 그는 사형을 언도받는 순간까지 일본 재판정에서 의연하게 일본을 훈계했다.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2일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가네코 여사가 독립유공자 서훈(애국장)을 받게 됐다”며 “후손(친족)을 찾는 대로 서훈과 함께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네코 여사와 박 의사는 당시 조선과 일본에서 소위 뉴스메이커였다. 박 의사는 서울 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전신)에 다니던 18세 때 3·1운동의 전면에 나섰다가 같은 해 10월 현해탄을 건너 도쿄에 정착했고 신문배달,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가네코 여사는 방탕한 아버지가 호적에 올리지 않아 조선 충북 부강면에 살던 고모부의 양녀로 자랐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부강 지역의 만세운동을 보고 ‘감격의 눈물이 샘솟았다’고 기록했다. 같은 해 4월 일본의 외가로 돌아왔고 아나키즘을 접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 의사의 ‘개새끼’란 시를 우연히 보았고 친구를 통해 1922년 박 의사를 소개받았다. 같은 해 5월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고 ‘인간의 절대평등에 가장 큰 장애물은 일왕’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박 의사는 이 시기 흑도회에 가입하고 잡지 ‘흑도’를 발행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문자’(朴文子)라는 조선 이름을 썼다. 이들은 “어떤 고정된 주의가 없다”며 마르크스, 레닌조차 추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22년 8월 박 의사가 니가타현의 조선인 노동자 학살사건의 참혹한 현장을 접한 게 두 사람이 의열 투쟁에 나선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은 1923년 10월 일본 왕세자의 결혼식에서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 유입에 나섰지만 폭탄 투척 계획이 누설돼 체포됐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각각 20회 이상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1926년 2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첫 공개 공판에서 조선 예복과 사모관대를 입고 출두한 박 의사는 이름을 묻는 재판장에게 “나는 박열이다”라고 답했다. 또 가네코 여사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박문자”라고 말했다. 3월 26일 열린 최종 판결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박 의사는 “재판은 유치한 연극이다”라며 재판장을 질책했고 가네코 여사는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검찰은 사형 대신 무기징역으로 특별 감형했지만 가네코 여사는 옥중에서 은사장을 찢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 23세였던 가네코 여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그의 어머니에게 전해졌지만 의문사였다. 그해 박 의사와 가네코 여사가 재판소에서 다정하게 서로를 안은 채 앉아 있는 ‘괴사진’이 유포됐다. 다테마쓰 판사가 증거 확보를 위해 박 의사의 환심을 사려 찍은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 일본 야당은 사법권 문란으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등 후폭풍이 일었다. 이 내용은 2016년 영화 ‘박열’로 다뤄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단독]박열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92년만 독립유공자 인정

    [단독]박열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92년만 독립유공자 인정

    충북 보은에 살며 만세운동에 감격사형 선고 받는 자리서도 만세 외쳐1920년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바탕으로 박열 의사와 일본에서 히로히토 일왕 암살을 시도했던 가네코 후미코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지 92년 만에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일본인이지만 박 의사의 아내이자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였던 그는 사형을 언도받는 순간까지 일본 재판정에서 의연하게 일본을 훈계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2일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가네코 여사가 독립유공자 서훈(애국장)을 받게 됐다”며 “후손을 찾는 대로 서훈과 함께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네코 여사와 박 의사는 당시 조선과 일본에서 소위 뉴스메이커였다. 박 의사는 서울 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전신)에 다니던 18세 때 3·1운동의 전면에 나섰다가 같은 해 10월 현해탄을 건너 도쿄에 정착했고 신문배달,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가네코 여사는 방탕한 아버지가 호적에 올리지 않아 조선 충북 부강면에 살던 고모부의 양자로 자랐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부강 지역의 만세운동을 보고 ‘감격의 눈물이 샘솟았다’고 기록했다. 같은 해 4월 일본의 외가로 돌아왔고 아나키즘을 접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 의사의 ‘개새끼’란 시를 우연히 보았고 친구를 통해 1922년 박 의사를 소개받았다. 같은 해 5월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고 ‘인간의 절대평등에 가장 큰 장애물은 일왕’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박 의사는 이 시기 흑도회에 가입하고 잡지 ‘흑도’를 발행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문자’(朴文子)라는 조선 이름을 썼다. 이들은 “어떤 고정된 주의가 없다”며 마르크스, 레닌조차 추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22년 8월 박 의사가 니가타현의 조선인노동자학살사건의 참혹한 현장을 접한 게 두 사람이 의열 투쟁에 나선 전환점으로 평가된다.두 사람은 1923년 10월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에서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 유입에 나섰지만 폭탄투척계획이 누설돼 체포됐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각각 20회 이상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1926년 2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첫 공개 공판에서 조선 예복과 사모관대를 입고 출두한 박 의사는 이름을 묻는 재판장에게 “나는 박열이다”고 답했다. 또 가네코 여사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박문자”라고 말했다. 3월 26일 열린 최종 판결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박 의사는 “재판은 유치한 연극이다”며 재판장을 질책했고 가네코 여사는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검찰은 사형 대신 무기징역으로 특별 감형했지만 가네코 여사는 옥중에서 은사장을 찢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 23세였던 가네코 여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그의 어머니에게 전해졌지만 의문사였다. 그해 박 의사와 가네코 여사가 재판소에서 다정하게 서로를 안은 채 앉아 있는 ‘괴사진’이 유포됐다. 다테마쓰 판사가 증거확보를 위해 박 의사의 환심을 사려 찍은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 일본 야당은 사법권 문란으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등 후폭풍이 일었다. 이 내용은 2016년 영화 ‘박열’로 다뤄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11일 6·25 유엔참전용사 방한

    국가보훈처는 오는 11일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을 맞아 16개국 유엔참전용사와 유가족 등 110명을 초청한다고 7일 밝혔다. ‘턴 투워드 부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은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가 제안해 2008년부터 보훈처 주관 행사로 거행됐다. 2014년부터는 유엔참전국과 함께하는 국제추모행사로 발전했으며, 매년 11월 11일 11시에 1분 동안 전 세계에서 부산 유엔기념공원를 향해 추모 묵념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청행사는 ‘2018 한·태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태국 참전용사 유가족 초청 인원을 당초 계획한 4명에서 17명으로 크게 확대했다. 또 캐나다 방한단 중 한 명인 연아 마틴 상원의원은 1965년 서울에서 출생해 7세 때 캐나다로 이민한 후 2009년 한인 최초로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현재 캐나다·한국 의원친선협회 의장으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이들은 11일부터 5박 6일간 창덕궁 방문 등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체험한다.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은 1975년 민간단체 주관으로 시작한 뒤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기 시작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與 중범죄 저지른 국가유공자 복권 금지 법안 발의

    살인, 강간 등 흉악 범죄를 저지른 국가유공자가 자격을 박탈당해도 반성만 하면 자격을 되찾는다는 서울신문 보도(10월 11일자 1면 살인범도 반성만 하면 다시 국가유공자 되는 세상) 이후 이를 막기 위한 법안이 7일 발의됐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형법상 죄를 범해 금고 3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을 위반해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로 다시 복권할 수 없도록 했다. 현행법에는 국가보안법, 형법 등을 위반해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이 죄를 뉘우친 정도가 현저하다고 인정되면 국가보훈처장이 등록 신청을 받아 국가유공자로 재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이런 조항에 제한을 둔 것이다. 김 의원은 “국가유공자는 격에 맞도록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살인 및 강간,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저지른 죄인이 뉘우침 정도에 따라 다시 국가유공자로 복권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3·1운동 1주년 재현 16세 소녀가 내 어머니라니… 자부심 느껴”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3·1운동 1주년 재현 16세 소녀가 내 어머니라니… 자부심 느껴”

    소녀 6명, 배화여학교서 “독립 만세” 소 지사, 징역형 받고 1개월여간 옥고 98년 만에 유공자로… 후손에 서훈 전달 “늦게나마 위대한 분인 걸 알게 돼 기뻐”“몇 달 전에 조카가 전화를 해 할머니 이름이 신문에 났다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님이 한두 번 지나가는 말로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만세운동을 하다 왜놈에게 끌려갔었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였던 거죠.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이중래(80)씨는 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어머니 고(故) 소은명 지사에 대해 “하지만 평생을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소 지사는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안옥자, 안희경 지사 등과 함께 1920년 3월 1일 자신이 다니던 배화여학교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 3·1운동이 열린 지 1주년을 맞아 일제의 감시가 삼엄했지만 어린 여학생이 만세 운동을 결행한 것이다. 당시 신한민보에는 조선총독부는 미리 배화여학교를 포함한 선교회 부속학교에 엄중히 학생을 단속할 것을 경고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하지만 곳곳에서 만세재현운동이 있었다. 특히 당시 육군성의 사건 서류에는 ‘배화여학교와 진명여학교 학생들은 오전 8시 30분쯤부터 교내에서 만세를 부르고 서대문 감옥 태평동 출장소 수인(옥에 갇힌 사람) 약 200명은 0시 25분 및 오후 6시 15분쯤에 두 차례 만세를 불렀다’고 명시돼 있다. 소 지사는 당시 16살로 6명 중 가장 어렸다. 이후 그는 조선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쳐 치안을 방해한 혐의로 검사국에서 취조를 받았고 같은 해 4월 열린 재판에서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았다. 또 실제 1개월 5일간 옥고를 치렀다. 소 지사 등 6명은 국가보훈처가 올해 여성·학생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면서 지난 광복절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무려 98년 만이었다. 독립유공자 중 여성 비율이 2%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만세 운동은 더욱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정부는 2개월이 넘게 서훈(대통령 표창)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러다 소 지사의 후손이 언론 보도를 보고 보훈처에 연락했고 인천보훈지청은 지난달 30일 소 지사의 장녀인 이복래(83)씨에게 서훈(대통령 표창)을 전달했다. 이씨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만 했다. 보훈처는 곧 ‘독립운동가의 명패’도 전달할 계획이다. 가족에 따르면 소 지사는 한때 유치원 교사로 일했지만 6·25전쟁 때 남편과 사별하고 8남매를 돌봤다. 빵을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고 가족은 전했다. 아들 이씨는 “자식들도 흩어져 결국 어머니가 3명만 데리고 있게 됐고 누이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다. 힘든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 지사를 ‘온화하지만 중요할 땐 정말 냉철했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학교를 못 다니는 제게 알파벳을 가르쳐 줄 정도로 어머니는 당시 여성으로서 많이 배운 분이었다”며 “말수도 없이 늘 곧고 진중한 분이셨는데 뒤늦게나마 위대한 분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소 지사는 1986년 81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대한국인 재단 500명분 성금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유공자에게 명패를 전달하고자 진행 중인 성금 모금에 재단법인 대한국인에서 500명분(1500만원)을 기탁한다. 재단 설립자인 김병기(50) 이사는 5일 “서울신문의 기사(10월 29일자)를 보고 독립유공자를 예우하려는 취지가 좋아 긴급 이사회를 열어 참여를 결정하게 됐다”며 “경제 상황이나 국제 정세 등이 좋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3·1운동 100주년이 충분히 기념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재단 입장에선 조용히 뜻을 보태고 싶었을 뿐”이라고 쑥스러워했다. 대한국인 재단은 2016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보훈 선양을 위해 젊은 기업가, 교수들이 함께 만든 공익재단이다. 재단의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 남아 있는 ‘대한국인 안중근’을 모티브로 재단명과 상징을 만들었다. 안중근 도서관 건립, 해외 독립운동가 발굴, 독립운동가 후손의 발달장애 의료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성금 모금 운동은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를 계승한 서울신문과 대한광복회가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모금액 1159만 5100원 (5일 현재) ▲개인 이상우 외 170명 ▲단체 광주제일고, 대구 금오회 ■독립운동가의 명패 서울신문 ·광복회 성금 모금 ■ 송금(우리은행 1005-403-489363·예금주 광복회)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www.ohmycompany.com→ 광복회 배너 클릭) ■12월 31일까지
  • 李총리가 달아준 명패…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감격”

    李총리가 달아준 명패…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감격”

    광주학생운동 본받은 항일학생단체 조직 8개월간 옥고… “매일 맞으며 취조당해”광주학생독립운동 89주년인 지난 3일 국가유공자의 명패가 처음으로 광주 남구의 노동훈(91) 애국지사의 자택에 걸렸다. 이날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치러진 광주학생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용섭 광주시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노 지사의 자택을 찾아 현관문에 명패를 달았다. 노 지사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광주시가 여러모로 돌봐 줬는데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며 “자식과 손자들이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말로만 들었는데 국가가 직접 명패를 주는 것을 보니 새삼 존경스럽다’고 말해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노 지사는 광주학생운동 14년 후인 1943년 3월 광주사범학교 3학년 재학 중 무등독서회를 조직해 항일운동과 식민사관에 대항한 정통역사관 확립에 노력한 공로 등으로 1995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노 지사는 “일제는 광주학생운동의 역사를 지우려 했지만 선배님들의 의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었다”며 “우리도 선배님들의 활동을 본받고자 항일 학생조직을 꾸렸다”고 말했다. 1929년처럼 대대적인 항일 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직원을 늘리는 역할을 수행했던 노 지사는 1944년 12월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노 지사는 나주에서 50일간 수감됐다 광주로 이송돼 45년 해방 직전까지 갖은 고문을 받았다. 그는 “8개월 동안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거의 매일 두드려 맞으며 취조를 당했다”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다음날 출소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무등독서회 조직원은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행방이 묘연해졌다. 노 지사는 이후 서너 명과 연락이 닿았지만 현재는 그중에서도 1명만 남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노 지사는 자신이 뒤따르려 했던 광주학생운동의 기념일에 국가유공자 명패를 받아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는 “광주학생운동의 뜻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고자 앞으로도 국가 차원에서 광주학생운동 기념식을 열고 국무총리께서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좋겠다”며 소망을 내비쳤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감사원 “교육·국토·통일·해수부 자체 감사 뛰어나”

    감사원 “교육·국토·통일·해수부 자체 감사 뛰어나”

    감사원이 213개 기관의 자체 감사 활동을 평가한 결과를 공개했다. 중앙부처에서는 교육부와 국토교통부, 통일부, 해양수산부 감사관실이 최고등급을 받았다. 감사원은 이러한 내용을 포함해 ‘2018년 자체감사활동 실지심사 결과’를 2일 발표했다. 감사원은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공기업 등 총 213개 기관의 자체감사기구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살폈다. 지난해 이뤄진 감사활동과 성과를 27개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대부분 실적이 지난해보다 향상되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기관 현원 대비 감사 인력의 비율은 평균 1.11%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A등급을 받은 기관은 모두 37곳이다. 심사군별로 보면 △교육부·국토부·통일부·해수부 △국가보훈처·병무청·식품의약품안전처 △전라북도·충청남도 △경상북도교육청·대구광역시교육청·충청남도교육청 △부천시·안양시·용인시·포항시 등이다. 감사원은 이들 37개 기관 가운데 점수가 우수한 교육부 등 11곳과 전년 대비 점수가 크게 높아진 통일부·공무원연금공단 등 8개 기관의 자체감사기구에 감사원장 표창을 수여한다. 또 자체감사기구가 신청한 131건의 감사내용 가운데 8건을 ‘우수 자체감사’로 선정해 해당 감사담당자에게도 감사원장 표창을 수여한다. 대상으로는 경기도의 ‘노인요양시설 회계관리실태 특정감사’가 선정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적극 발굴·연구할 것”

    “서울 홍파동에 있는 홍난파의 생가는 등록문화재(제90호)로 지정돼 종로구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집 바로 옆에 있던 영국 출신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생가는 뉴타운 개발 때 철거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죠.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한국인의 집은 보존한 반면 한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외국인의 가옥은 정부조차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 예우에 대해 묻자 한미영 배설(베델)선생기념사업회 감사는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서울신문 창간 기획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보도를 계기로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과 연구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1일 밝혔다. 베델은 1904년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고취한 인물이다. 대통령 직속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회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외국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에 인색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 “서울신문 보도를 계기로 내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이들의 공로를 기리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보훈처를 비롯해 여러 정부 부처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독립유공자 관련 업무 등을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외국인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의를 기리는 학술대회와 포럼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보다 많은 외국인 유공자를 찾아내고 이들의 업적과 자료를 보전할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모두 69명이다. 이 중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에서 활약한 중국인을 뺀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36명 정도로 추정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李총리 “심신미약 감형, 사법정의에 맞는지 검토해야”

    李총리 “심신미약 감형, 사법정의에 맞는지 검토해야”

    “경찰 초동대처 부실했다는 여론 높아 사립유치원 비리 관련 정책 보완을” 대전 ‘3·8민주의거’ 국가 기념일 의결이낙연 국무총리는 30일 “검찰은 기소부터 구형까지 심신미약 여부를 조금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지 않는지 고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제64회 국무회의에서 최근 일어난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살인사건과 관련해 “법무부는 심신미약의 경우에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형량을 줄이도록 하는 현행 형법이 사법정의 구현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지 검토해 주기 바란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최근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초동대처가 부실했다거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등의 여론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사실상 마무리된 올해 국정감사에 대해 “사립유치원 비리와 고용 악화 등 여러 문제가 쟁점으로 다뤄졌다”면서 “각 부처는 잘못이 있었다면 조속히 시정하고, 합리적 대안은 적극 수용해 관련 정책을 보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기관 채용 비리 근절’과 관련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다음달 2일 ‘공공기관 채용 비리 근절 추진단’을 발족하자마자 중앙과 지방의 공공기관과 공직 유관단체를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는 예산안과 법안 심의도 언급했다. 그는 “일자리 대책과 재정분권처럼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에 정부의 추가대책이 나온 사안들은 국회와 협의해 내년 예산에 포함되도록 챙겨야 한다”며 일자리 대책과 재정분권 관련 예산안이 순조롭게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법률안 3건, 대통령령안 10건, 일반안건 3건 등을 포함한 총 16건의 안건이 심의 의결됐다. 정부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전 ‘3·8 민주의거’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기존 4월 13일에서 대한민국 국호와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한 날인 4월 11일로 변경하는 내용과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의 주관부처를 교육부에서 교육부·국가보훈처 공동으로 바꾸는 내용도 담겼다. 이와 함께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하는 내용의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 및 개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6일부터 내년 5월 6일까지 6개월간 휘발유와 경유 등에 부과되는 유류세 15%를 한시적으로 깎아준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후배들의 십시일반 모금… 들불 같던 선배들의 독립정신 잇는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후배들의 십시일반 모금… 들불 같던 선배들의 독립정신 잇는다

    포상자 212명 중 36명이 광주제일고 출신 이틀동안 50만 3250원 모아 광복회 전달 사회적협동조합도 후원금 200만원 보태 “광주고등학생 의회 알려 동참 호소할 것”29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 정문에 들어서자 왼쪽에 우뚝 솟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손님을 맞았다. 숲과 어우러진 공간 맞은쪽 학교 본관에선 학생들이 코앞에 닥친 수능 시험에 대비해 책장을 넘기느라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다. 벌써 내년이면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1929년 이맘때쯤 이곳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일제에 맞선 동맹휴학이나 독서회 활동 등으로 술렁였을 터다. 며칠 뒤 전국적 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신호탄이었다. 이젠 과거와 달리 평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치는 보통 고교 풍경이다. 이런 역사를 가슴에 안은 학교 후배들이 최근 ‘뜻깊은 일’을 펼치고 있다. 1920년대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한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는 운동에 나선 것이다. 항일운동 참여자 중 생존자는 거의 없는 만큼 그 후손을 찾아내 ‘독립운동 유공자 문패’를 달아 주는 일이다. 교장실에서 만난 학생회장 장민성(17·2년)군은 “최근 반별 대의원회의를 열어 ‘명패 달기’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뒤 지난 22~23일 전교생 800여명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50만 3250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교직원과 전교생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탰다. 부회장 조효인(17·2년)군은 “이런 운동의 취지 등을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과 곧 열리는 ‘광주 고등학생의회’에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겠다”고 덧붙였다.매점 등을 운영 중인 학교 사회적 협동조합도 200만원의 후원금을 내놨다. 조합의 학생 대표인 이승민(17·2년)군은 “이사회에서 후원 금액 등을 흔쾌히 받아들여 어렵지 않게 성금을 마련했다”며 웃었다. 실제로 광주학생운동 관련 독립운동 포상자 212명 가운데 이 학교 출신이 36명에 이른다. 자료 분실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빠진 사람을 합치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당시 좌익계로 분류돼 훈장 수여 또는 유공자 지정에서 제외된 사람을 발굴·포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이날 푼푼이 모은 성금을 ‘크라우드펀딩’을 주도하는 광복회에 전달했다. 문대식 광복회 광주전남유족회 고문은 “독립유공자가 작고하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현실에서 젊은 학생들이 유공자와 후손에게 자긍심을 심는 것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띤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광주제일고 학생 100여명은 지난 27일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펼쳐진 제89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만세재현 행사에 당당히 참여했다. 학생의 날인 오는 11월 3일에도 선배들의 항거 장소인 옛 전남도청 앞과 옛 광주역(광주동부소방서) 주변 등지에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부터 5개월에 걸쳐 열기를 뿜었다. 194개교 5만 4000여명이 참가했다. 구속 1642명, 퇴학 582명, 무기정학 2330명이나 될 만큼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항일 학생운동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승오 광주제일고 교장은 “선배들의 독립항일 정신이 오늘날 면면히 이어지는 게 자랑스럽다”며 “학생 자치회에서 이끄는 명패 달기 운동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 ‘독립운동가의 명패’ 전달합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인 서울신문과 대한광복회가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독립유공자에게 ‘독립운동가의 명패’를 제작, 전달하기 위해 성금을 모금합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성금으로 제작되는 이 명패는 전체 1만 5052명의 독립유공자 중 주소지가 파악된 7647가구에 내년 초부터 먼저 전달됩니다. 명패는 광복군으로 활동한 김우전·김국주 지사 등 42명뿐인 국내 생존 독립유공자와 7379명의 후손에게는 물론 의병장 최재형 선생의 후손(카자흐스탄), 대한매일신보 초대 사장인 어니스트 베델의 후손(영국) 등 해외에도 전달됩니다. 현재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광주일고,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여고 등 각급 학교, 대기업 등에서도 이 명패 운동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6월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명패 사업 추진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성금은 은행 계좌(우리은행 1005-403-489363·예금주 광복회)나 온라인 크라우드펀딩(www.ohmycompany.com→광복회 배너 클릭)으로 보내면 되며, 모금 기간은 오는 12월 31일까지입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정부 기념식으로 격상되는 광주학생운동

    3·1운동, 6·10 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운동으로 꼽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11월 3일)이 정부 기념식으로 격상된다. 보훈처 관계자는 29일 “그간 지방 교육청이 진행하던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을 격상해 정부가 주관토록 하는 안건을 30일 국무회의에 상정한다”며 “다음달 3일 열리는 89주년 기념식부터 국가행사로 커지게 된다”고 밝혔다. 국무회의에서 행정안전부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 올해부터 교육부와 보훈처가 해당 기념식을 공동 주관하게 된다. 광주학생운동은 그간 광주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지역 행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보훈처 업무보고에서 “광주학생운동이 동문회 주관행사로 전락해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또 올해 2월 민주운동 기념 오찬에서 “학생독립운동이 광주서중과 광주일고 안에서만 기념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는 행사 참석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기념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할지 관심이 쏠린다. 참석한다면 현직 대통령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1999년)에 이어 세 번째다. 광주학생운동은 약 5개월간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운동이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전남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 학생들과 광주중학교(일본인 학교) 학생들의 충돌이 도화선이 됐다. 11월 3일 명치절(일본 메이지유신 기념일)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어 전국 194개 학교의 5만 4000여명이 동맹휴교와 시위운동을 벌였다. 당시 학생 중에 절반이 넘는 규모였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11월 3일은 1953년 ‘학생의 날’로 지정됐고, 유신 직후인 1973년 3월 30일 정부가 각종 기념일을 통폐합하면서 국가기념일에서 폐지됐다. 이후 1984년 9월 국가기념일로 부활했으며, 2006년 학생독립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소방청, 대전현충원서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

    소방청, 대전현충원서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

    소방청은 지난 27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에서 ‘제15회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을 가졌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추모식은 소방청이 주최하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주관, 국가보훈처가 후원했다. 조종묵 소방청장과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순직소방공무원 유가족과 동료 등 370여명이 참석했다.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은 자신을 희생한 소방관들을 추모하고자 2004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이끌었지만 2016년부터는 소방청이 주최하고 있다. 현재 국립묘지에는 모두 127명의 소방공무원이 안치돼 있다. 이 가운데 대전현충원에 114명이 영면 중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포토뉴스] “소방관들의 고귀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포토뉴스] “소방관들의 고귀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27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에서 ‘제15회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이 열렸다고 28일 소방청이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서현직 소방공무원과 유가족 등 관계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조종묵(가운데) 소방청장이 순직 소방공무원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자 헌화를 하고 있다. 이번 추모식은 소방청이 주최하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주관, 국가보훈처가 후원했다. 조종묵 소방청장과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순직소방공무원 유가족과 동료 등 370여명이 참석했다. 소방청 제공 조종묵(가운데) 소방청장이 추모식에서 순직 소방관들에게 분향한 뒤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오른쪽은 행사진행요원)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은 자신을 희생한 소방관들을 추모하고자 2004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이끌었지만 2016년부터는 소방청이 주최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추모식에 참석한 소방공무원들이 경건한 자세로 행사를 경청하고 있다. 현재 국립묘지에는 모두 127명의 소방공무원이 안치돼 있다. 이 가운데 대전현충원에 114명이 영면 중이다. 소방청 제공조종묵 소방청장이 순직 소방공무원의 비석을 직접 닦고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순직 소방공무원은 총 16명으로 지난해에도 2명이 생을 마감했다. 소방청 제공 정리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소방청 “순직 소방관 고귀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방청 “순직 소방관 고귀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방청은 27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에서 ‘제15회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을 가졌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추모식은 소방청이 주최하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주관, 국가보훈처가 후원했다. 조종묵 소방청장과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순직소방공무원 유가족과 동료 등 370여명이 참석했다.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은 자신을 희생한 소방관들을 추모하고자 2004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이끌었지만 2016년부터는 소방청이 주최하고 있다. 현재 국립묘지에는 모두 127명의 소방공무원이 안치돼 있다. 이 가운데 대전현충원에 114명이 영면 중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안중근 의사 의거일에 불거진 ‘김재규 의사’ 논란...‘적폐 청산 주역’ vs ‘갈등 유발 소지’

    안중근 의사 의거일에 불거진 ‘김재규 의사’ 논란...‘적폐 청산 주역’ vs ‘갈등 유발 소지’

    “김재규 의사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만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9년이 되는 날인 26일, 인터넷 상에 “김재규 의사를 추모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와 논란이 예상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권총으로 살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의사’로 칭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를 놓고 보수·진보 세력 간 갈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맨 몸으로 저항해 자신의 지조를 나타낸 사람은 ‘열사’, 무력으로 항거한 사람을 ‘의사’로 정의한다. 1970년대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에서 독립운동사 편찬을 앞두고 항일 선열들의 공적을 조사하면서 처음 정해졌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 내린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안중근 당시 대한의군 참모중장은 무력으로 항거했기 때문에 의사로 불린다. 하지만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을 바꾸고자 자신의 몸을 불태운 전태일 ‘열사’처럼 의사, 열사라는 표현이 독립운동가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네티즌들은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도 ‘김재규 의사’로 불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폐 청산에 앞장 선 인물인만큼 역사적으로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도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는 “39년 전 오늘, 유신의 종지부를 찍은 고 김재규 의사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이 어김없이 올라왔다. 사형 집행 당일 그가 남긴 마지막 발언 중 일부인 ‘국민 여러분, 자유 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요. 저는 먼저 갑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언젠가 복권되고 국립현충원에 모시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라는 글도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26 사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 모두 10월 26일이란 점에서 이날을 ‘탕탕절’로 명명하고 탕수육 먹는 날로 기념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실제 일부 네티즌은 탕수육 먹은 사진을 ‘인증샷’이라며 올리기도 했다.이에 대해서는 불편하다는 시선도 없지 않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9주년을 맞아 고귀한 희생 정신을 기리는 날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표현(의사, 열사)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드러낼 수는 있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표현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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