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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런 이를 하얗게 ‘치아미백술’ 인기

    ◎미백용 젤 바른 비닐 틀/2∼3주일동안 잘때 착용/법랑질 착색물질 표백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는 미인의 필수요건중 하나. 굳이 이런 조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치아는 외모나 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말할때나 웃을때마다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 얼굴중 상대방의 눈에 가장 잘 띄는 부위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 누렇고 검게 변색된 치아를 희게 하는 치아미백술이 도입돼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깨끗한 치아는 신선한 인상으로 한결 젊어 보이는 효과를 주므로 미혼여성은 물론이고 최근엔 중년여성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치아변색 원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치아 법랑질에 수없이 분포해있는 아주 미세한 틈사이로 음식물이나 담배연기 등 착색물질이 침투해서 생긴다. 주 원인은 커피나 콜라 홍차 초콜릿 등에 의한 착색이나 흡연에 따른 경우가 가장 많다. 또 예전에 소아과에서 사용됐던 테트라사이클린 계통의 항생제 복용에 의한 경우도 종종 발견되는데 색깔이 전체적으로 회색을 띠거나 띠 모양으로 변색된 치아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밖에 나이가 들어 변색되는 노인성이나 유전적 원인,불소과잉 섭취로 치아 색깔이 누렇게 변하기도 한다. 치아미백 원리는 쉽게 말해 이의 법랑질과 상아질에 착색된 색깔을 표백하는 방법으로 깍아내거나 붙이는 일반적인 치과진료와는 전혀 다른 약물치료의 일종이다. 즉,빗자루로 마루를 쓸때 마루틈 사이까지 깨끗이 청소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칫솔질이나 스케일링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약을 발라 착색된 물질을 제거하는 메카니즘이다. 방법은 얇은 비닐 소재로 치아에 정확히 맞도록 틀을 제작한뒤 여기에 미백용 젤을 살짝 발라 치아에 끼는 것이다. 그러면 젤의 성분인 카바마이드 페록사이드가 분해되면서 산소를 방출하고 이 산소가 법랑질과 상아질 안으로 들어가서 착색된 물질을 표백하는,의외로 간단한 원리다. 치료 기간이나 과정도 복잡하지 않다. 치료기간은 보통 2∼3주일이면 하얀 이를 회복할 수 있다. 치료과정은 치과에서 틀을 만들어 주면 집에서 잘때만 착용하되 1주일에 한번꼴로 진찰하면 돼 번거롭지 않다. 치료가 끝나면 평균 2∼3년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그러나 미백치료를 받은 뒤 6개월에 한차례씩 하루나 이틀밤만 이 장치를 끼면 희고 밝은 치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미국 조지아의대에서 최근 실시한 임상결과에 따르면 이같은 미백술로 노인성이나 유전적,음식물에 의해 변색된 경우 전체의 97%가 만족한 성과를 얻었고 항생제 복용에 따른 변색에선 75%가 미백에 성공한 것으로 집계됐다. 치아미백술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0여년전이지만 아직은 몇몇 대학병원과 개인 치과에서만 시술하고 있는 초보단계다. 그러나 미국에선 치아미백에 들이는 비용이 어마어마한 규모다. 치아미백을 위한 지출비용이 96년 한해동안 4억달러(한화 약 5,600억원)에 이를만큼 보편화된 치과 보존술의 하나다. ◇도움말=최동훈치과 최동훈 원장,연세대 치과대학병원 보존과 노병덕 교수
  • 햇볕론 서설(金三雄 칼럼)

    북녘바람과 태양이 누가 더 센가로 말싸움을 벌였다. 그래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쪽을 승자로 하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바람 차례가 먼저였다. 그러나 그 심한 돌풍은 나그네로 하여금 옷을 조여 입게 만들 뿐이었다. 더욱 세게 불자 추위로 몸이 단 나그네는 가외로 외투까지 걸쳤다. 마침내 바람은 싫증이 나서 차례를 태양에게로 돌렸다. 처음에 그저 따뜻한 정도로만 햇볕을 주어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다. 이어서 아주 뜨겁게 열을 내어 더위를 이기지 못한 나그네는 옷을 벗었고,근처의 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다. (유종호 옮김.‘이솝전집’) 요즘 시정의 화두는 단연 ‘햇볕론’이다.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언론도 동시적으로 나타난‘소떼방북’과 북한잠수정침투사건,정부의 대응과 관련하여 햇볕론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햇볕정책이 철의 장막 제거 金大中 대통령은 이같은 한반도의 구조적 모순현상에 30일 “우리의 대북정책은 확고한 안보태세위에 대북3원칙 즉 무력도발 불용,흡수통일반대,협력교류정책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잠수정사건 때문에 대북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추운바람(강경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유화정책)이라는 이솝우화가 金大中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야당시절인 96년 10월 베이징에서 미국과 일본의 북한정책에 대해 괄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미국이 햇볕정책으로 소련을 붕괴시킨 것은 손자병법에도 없는 승리다. 중국과 베트남의 개방도 미국의 정책적 성공이다. 북한도 金日成때 이미 개방정책을 세웠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소프트랜딩 정책도 성공할 것이다. 중국 베트남에서 성공했는데 북한에서 못하겠는가. 우리는 안보태세를 갖추면서 북한의 온건 개방세력을 강화하고 강경세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펴야한다.” 햇볕정책의 기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 3단계 통일론의 첫 단계 방법론이라 하겠다.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과도단계에서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햇볕론인 셈이다. 미국의 대공산권 정책기조는 포용정책이었다. 개방과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의‘햇볕’으로 철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미국은 총 한방 쏘지 않고 소련과 동구를 붕괴시켰으며 중국의 죽의 장막도 거두었다. 반면에 강풍정책을 편 쿠바 베트남 북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金대통령은 이와 같은 국제정치의 흐름을 간파하고 이른바 ‘햇볕론’을 제시한 것이다. ○오슬로 연설에서 처음 제시 金대통령은 아태평화재단이사장으로 통일문제를 연구하면서 대학강연 등을 통해 햇볕론을 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94년 2월 1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 국제평화연구협회 주최 세미나 연설에서 였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는 북한내 온건주의자의 위치를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과거 공산주의자와의 대처 경험에서 교훈­이 교훈은 이솝우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을 배워야 한다. 햇볕론에 의해 서방은 결국 구소련연방과 동유럽 공산제국의 몰락으로 종결된 동방과의 보편적관계 경제협력 문화교류를 추진했다”고 처음으로 햇볕론을 제시했다. 金대통령의 햇볕론은 지금 북한잠수정침투사건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 강경세력이 햇볕정책을 방해하기 위해 계획된 도발일 수도 있다. 또 내부적으로 보수세력과 야당은 북한의 군사도발에 합당한 대응은 않고 자기도취적인 햇볕론만 반복한다고 비판한다. 분단을 고착화하는 작용을 할 소지도 있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렇지만 구정권처럼 냉온탕을 넘나드는 식의 대북정책으로는 민족문제의 해결이 어렵다. 외국투자가들의 발길도 돌리게 된다. 동독도 망하기 직전까지 서독에 간첩을 보냈다. 햇볕정책은 일방적 유화책이 아니라 북한의 이중성에 대비하면서 남북간의 평화 화해 협력시대를 여는 기조가 돼야 한다.
  • ‘한국사 이야기’ 1차분 4권/한길사­이이화씨 기획

    ◎우리 민족의 뿌리는? 北國 발해는?/객관적 시각의 한국通史/매년 4권씩 총 24권 발간/2003년까지 완간 계획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낸 재야 사학자 이이화씨(61)가 5,000년 우리 역사를 24권의 책에 담는 방대한 통사 저술의 첫 결실로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1차분을 내놓았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삼국의 세력다툼과 중국과의 전쟁’‘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등 네 권. 모두 우리 역사의 시원과 틀이 형성되어 가는 고대사 부분에 해당한다. 지난 94년 한길사측과 이씨가 10년 프로그램으로 공동기획한 ‘한국사 이야기’는 우리 역사 전체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일반 독자 대상의 대중 역사서다. 앞으로 매년 네 권씩 펴내 2003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한국사 이야기’는 80년대 이후 우리 역사학계에서 보편화된 민중사 중심의 서술방식과 최근의 새로운 역사서술 기풍인 생활사·문화사 중심의 서술 방식을 택한다. 또 문화인류학이나 고고학의 성과 등 역사학 이외의 주변 학문 성과도 최대한 반영,종합적인 역사 시각을 갖도록 했다. 이를 위해 이씨는 프랑스 아날 학파의 연구 성과를 비롯 몽고메리의 ‘전쟁사’,푹스의 ‘풍속의 역사’등 많은 2차 자료들을 활용했다. 그동안 한국사 서술은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으로 이뤄진 측면이 없지 않았다. ‘900여회에 걸친 외침(外侵)을 물리쳤다’거나 ‘거대 중국인 수나라와 당나라를 멸망하게 했다’는 등 ‘우리’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해석해 온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우리 역사를 동아시아의 보편사라는 틀 속에서 객관적으로 살핀다. 이씨가 이 책들에서 특히 힘을 기울인 것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서술에서 가장 취약했던 발해 역사를 복원하고 한국 고대사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은 우리 역사 무대를 한반도 주변으로만 국한시키는 등 지정학적인 오류를 낳았다. ‘남국 신라와 북극 발해’라는 제목은 이러한 학문적 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씨는 ‘통일신라’보다는 ‘후기 신라’나 ‘남국 신라’가 역사용어로더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나올 책들은 고려시대(5권∼8권),조선전기(9권∼12권),조선중기(13권∼16권),근대(17권∼20권),일제시기(21권∼24권) 등을 다룰 예정. 지난 4년간 사회활동을 모두 끊고 전라북도 장수의 연화분교와 김제 월명암 등지에서 ‘한국사 이야기’ 저술에만 몰두해온 이씨는 현재 고려시대사를 쓰고 있다.
  • 골다공증/40대 이후 정기검진 필수

    ◎여성 발병률 남성의 6배/작은 충격에도 쉽게 골절/호르몬 요법·칼슘섭취 효과 젊었을땐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작은 충격에도 골절상을 잘 입는다.뼈가 약해진다는 말로 표현됐던 현상들로 바로 골다공증에 따른 증상이다. 최근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던 이희호 여사도 근본원인은 골다공증에 의한 부상으로 드러나 중년이상의 여성들에게 골다공증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해 주고 있다. 50세이상 여성은 두 사람중 한 사람,또 60세 이상에선 네 사람중 한 사람꼴로 골다공증에 의한 척추압박골절을 겪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여성에겐 그만큼 발병 위험도가 높은 성인병인 셈이다. 대한골다공증협의회 주관으로 25∼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릴 제1회 ‘세계 골다공증 심포지엄’을 계기로 골다공증의 증상과 예방,치료법을 알아본다.(도움말=성균관대의대 삼성제일병원 내과 한인권 교수,아주대의대병원가정의학과 이득주 교수) ▷증상◁ 골다공증은 골량이 정상인보다 낮아지는 골격계 질환으로 폐경기를 전후한 여성에게 잘 생긴다.말 그대로 ‘구멍이 많은 뼈’란 뜻으로 골다공증이있는 사람은 뼈 조직이 가늘어지고 구멍이 많아져 작은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발병률이 남자의 6배 정도로 높아 일반적으로 부인병으로 여긴다.여성은 35세를 정점으로 골밀도가 매년 1%씩 감소하기 시작,폐경을 전후해 급속히 떨어져 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이는 골손실을 막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폐경기 이후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골다공증에 걸려도 어느 시기까지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등이나 허리에 둔한 통증과 피로감이 올 수 있다.그러나 증상이 심하다고 금방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골절을 입고나서야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이 주로 생기는 부위는 대퇴부 척추 손목 등.대퇴 골절의 경우 환자중 5∼20%가 1년안에 사망하고 50%는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골다공증 위험군은 △가족중 골다공증 환자가 있거나 폐경이 일찍 된 여성(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8.8세) △키가 작고 마른 사람 △앉아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많이 복용했거나 술,담배,커피를 많이 한 사람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 등.발병 위험률이 높기 때문에 예방과 조기 검사가 필수적이다.따라서 적어도 40대 이후가 되면 정기적인 검진과 여러가지 예방법을 통해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예방◁ 약해진 골절을 대신할만한 치료법이 없으므로 예방이 중요하다.충분한 칼슘섭취와 운동이 가장 바람직하다.폐경 전후 여성의 하루 칼슘 섭취량은 1,000㎎.우유나 치즈 요구르트 달걀 멸치 등을 많이 먹도록 한다. 그러나 칼슘 섭취만으론 해결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운동도 맨손체조나 수영,요가보다는 등산이나 조깅,자전거 타기,에어로빅 등을 하루에 30분이상 1주일에 3일이상 지속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진단과 치료◁ 진단 방법으로는 손목뼈에다 하는 골밀도 측정방법과 컴퓨터촬영법 등이 있다. 치료에는 여성호르몬 대체요법이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폐경후 5년 이내에 적절한 호르몬 치료를 하면 80% 이상의 척추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이미 골다공증이 진행된 경우라도 칼시토닌이나 에스트로겐으로 치료하면 어느 정도 골밀도를 높일 수 있어 증상호전에 도움이 된다. 여성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이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에스트로겐과 프로제스테론을 함께 복용하면 자궁내막암의 경우 발생률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 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 주제 발표/尹正錫 중앙대 교수

    ◎가상공간 정보 비밀보장 안된다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白光一)는 12∼13일 외교안보연구원 국제회의실에서 ‘정보통신혁명과 국제정치’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尹正錫 교수(중앙대)의 제2분과 주제발표문 ‘가상공간에서의 국가정보’를 요약 소개한다. ▷공개자료와 정보분석자의 기능◁ 국가정보는 전시(戰時)에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비밀스럽게 수집 분석한 첩보를 일컫는다.냉전시기에는 전쟁의 조기경보,주변 안보환경의 효율적 탐지 등 군사나 국가전략,또는 정치적 요소를 수집하고 분석·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탈냉전기에는 군사전략 정보 외에 경제안보등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의 정보수집에도 치중하게 된다.과학기술,자원공급,마약·조직범죄·테러리즘,환경보호 등과 관련한 정보가 중요시되고 있다. 전문적인 정보분석요원은 최종 정보보고서가 다음의 생산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첫째는 정보 수요자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소요분석,둘째는 정보 수집의 관리,셋째는 정보의 근거 확인,마지막으로정보의 분석적 종합과 제시 등이다. 최근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수집된 국가정보가 어느 정도까지 공개되어야 하는가이다.정보조직 사회는 단순히 공개자료를 모으는데 치중해서는 안된다.그러나 과거와 같이 정보조직 사회가 무작정하고 많은 돈을 들여서 몇몇 정보 수요자의 소비를 위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게 정치권과 의회의 일반적 의견이다. 더 설명해야 할 것은 ‘비밀로 구분된 정보’와 ‘공개자료 정보’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공개자료는 비밀자료의 기능을 절대로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정보분석자와 소비자의 상황에 대한 빠른 적응을 위하여 기본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정보자료를 분석하는 사람들은 주로 인쇄된 공식 출판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그러나 최근에는 기업체나 시민단체,또는 여러 정치적 단체들이 발행하는 인쇄물도 수없이 많다.더욱이 전자우편을 쓰게 되면서부터 공개자료의 소통광장으로 가상공간(Cyberspace)이 생기게 되었다.이 가상공간에서는 전자우편(E­Mail)을 할 수도,도서관을 만들거나 자기 집을 지어 정보를 소장할 수도,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도 있다.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자료는 일단 공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가상공간과 인터넷◁ 인터넷은 학술적 동기에서 출발,이제는 상업적 필요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그 특징은 세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인터넷은 아직 미국이 지배하고 있다.주요 온라인 서비스도 AOL(아메리칸 온라인)이나 컴퓨서브와 같은 미국회사가 세계적인 회원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인터넷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94년경 이었는데 상업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이듬해부터였다.그러나 이 서비스에 의해서 받아들이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제한적이다.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실무자가 무슨 내용의 프로그램과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따라서 사용자는 이같은 숨겨진 한계를 알아 스스로 정보를 찾는 길을 개척해야 한다. 셋째로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쓰고 있는 경우 거의가 연구하는 학자라는 점이다.인터넷이 편리한 통신수단이지만 아직 세계적인 보편화보다는 미국에서만 개인들이나 기관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인터넷을 사용하는데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그 네트 속에 있는 자료의 신빙성,그리고 비밀보장이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가장 많이 사용하는 E­Mail편지가 전자공간에 영원히 남아 언제인가는 누군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金大中 대통령의 訪美 성과(사설)

    金大中 대통령의 방미외교는 양국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공고히 하는 실질적인 정상외교로 평가된다.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병행추진한다는 국민정부의 국정철학을 미국 지도층 인사들과 미국민들에게 확신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향후 경제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金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민주주의는 미국민이 제1의 정치적 가치철학으로 여기고 있고 시장경제원리 역시 자본주의의 근간이자 이들의 보편적인 경제질서이다.특히 金대통령은 ‘아사아를 대표하는 민주적 지도자’라는 개인적 지명도가 방미외교 성과를 높이는 결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통령의 이번 방미의 1차적인 과제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적극적인 경제협력과 지원,특히 미국기업의 투자유치이다.金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외교에서뿐 아니라 미국 경제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역설,이를 이해시킴으로써 앞으로 경제협력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탄력성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金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에 한·미 투자협정을 체결키로 합의한 것은 이번 정상외교의 가장 큰 성과이다.투자협정 체결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외국인의 투자유치가 절실한 한국에 있어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다.투자협정 체결은 앞으로 미국기업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생산기술을 접목시키는 산업간 전략적 제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미국 연방정부기관인 해외투자공사(OPIC)가 지난 91년 이래 중단한 대한(對韓)투자보증사업을 재개키로 약속한 것은 방미 경제외교의 실질적인 성과로 평가된다.이 조치는 미국기업의 한국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투자유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이 미국정부에 한국의 대북(對北)정책에 대한 원칙적인 방향을 확실히 제시,그동안 혼선을 빚어온 안보외교에 공조체제를 구축한 것도 이번 방미외교의 성과이다.과거 정부때 지나친 명분 우선의안보외교가 양국 상호간의 불신을 초래,북한만이 실리를 추구토록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양국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공조의 기본틀에 합의한것은 실리추구의 외교로 특기할 만하다.한·미 양국은 이번 정상간 합의와 한·미투자포럼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실무차원에서의 협력을 한층더 강화해 나가기 바란다.
  • 서구벽화­한국화 접목/한기창展

    ‘프레스코’라는 서구의 벽화 조형방식을 한국화에 접목시킨 전시.1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갤러리 21(766­6511)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한기창의 개인전이다. 이번 작품전은 주로 인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그러나 특정 인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대상을 통해 작가의 조형적 발언을 시도하고 있다.‘탈 전통재료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반적인 조형원칙은 다분히 전통적이다. 요즘 한국화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동양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특수성과 보편성같은 다양한 내용이 혼재돼 있다.그러나 한씨는 작품전에서 한국화가 가지는 수묵의 발묵효과를 최대한 이용,깊이 있는 독특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 金 대통령 訪美­金 대통령·클린턴 공동회견 모두발언

    ◎金 대통령 공동회견 모두발언 우리는 긴밀한 한·미관계가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안보동맹 관계 위에 서 있음을 강조했습니다.특히 4자회담과 남북대화를 상호 보완적으로 병행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견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기로 했습니다. 또한 남북관계 진전과 미북관계 개선이 조화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이와 관련해 나는 미국이 남북한간 교류·협력·증진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두 정상은 대북경수로 사업이 한반도를 포함한 전세계적인 핵확산 방지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안정과 평화정착에 기여하고 있음을 평가했으며,상호 긴밀히 협조,이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또 클린턴 대통령에게 우리의 외환위기시 미국이 적기에 지원을 하여준데 성의를 표했으며,우리가 금융안정을 위해 취한 개혁정책과 그 성과를 설명하고 지속적인 개혁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이러한 노력을 제도화하기 위해 양국간 투자협정 체결원칙에 합의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개혁 조치 등 금융위기 해소에 미국은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클린턴 공동회견 모두발언 본인은 金大中 대통령께서 한국 경제를 개혁하고,IMF 프로그램을 이행하시는 노력에 우리의 강력한 지지를 재확인했습니다.미국은 한국의 개혁 노력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본인은 적절한 조건하에서 필요하다면 양자 금융지원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의 양자간 투자협정 논의를 포함하여 한국의 시장을 보다 완전하게 개방하고,한국을 세계 경제에 통합시키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우리는 공고한 안보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金대통령의 대북 화해노력에 대한 지지를 전달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金대통령의 조치에 더 호응해 나오기를 희망하며,4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기를 바랍니다.나는 유엔사와 북한군이 DMZ(비무장지대)의 정전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한 장군급회담을 갖기로 어제 처음으로 합의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본인은 94년 북한 핵동결 합의의 일부로서 북한에 제공되는 중유의 재원문제를 해결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언급했습니다.우리는 식량과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입니다.한국 국민은 아시아의 자유 주창자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면서 민주 열망의 보편화를 시현했습니다.
  • 金 대통령 訪美­고어 초청 오찬 답사 요지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도,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대열에 언제나 선두에 서있는 고어 부통령의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여러분은 최근 아시아 여러 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에 대해 잘 아실 것입니다.나는 그 위기의 원인이 민주주의의 희생위에 이룩한 경제성장이 한계에 이른데 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없습니다. 투명하고 능률적인 시장경제가 없는 곳에 세계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쟁력은 나오지 않습니다.경쟁에서 지는 곳에 외환위기와 국가 경제의 파탄이 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보편화되도록 미국이 능동적 역할을 수행 한다면,우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한국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모범적인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결심이 서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우리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해서 발전시킴으로써,아시아에서 진정한 성공의 모범이되고자 합니다.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으로 한국이 빠른 시일안에 미국경제의 강력한 파트너로서 복귀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白凡 재조명:2­2(정직한 역사 되찾기)

    ◎백범 사상/“민족만이 영원할 뿐”/열린 민족주의 바탕 인류의 평화 역설/문화의 힘 드높은 ‘아름다운 나라’ 소망 백범이 바라는 한국의 미래는 아름다운 문화국가였다.그는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높은 문화의 힘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의 힘과 가치를 강조했다.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사랑의 문화평화의 문화로 우리와 인류전체를 잘 살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범사상은 이러한 문화주의와 민족주의 자유주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백범연구가들은 분석한다.그의 사상은 ‘백범일지’ 끝부분에 있는 ‘나의 소원’에 잘 나타나 있다.동학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을 두루 포용했다.그의 종교·사상은 민족애로 수렴됐다.백범일지에서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민족만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백범은 독립운동과 해방후 민족통일 노력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독립운동 과정에서의 민족주의는 저항 민족주의였다.그러나 저항 민족주의는 식민통치라는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난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민족과 민족관계,국가와 국가관계는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그는 “민족주의의 최대 과업은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 건설이다.피압박 국가의 독립이 궁극적으로 세계평화의 기본적인 전제다”라고 말했다.백범의 민족주의는 이 때문에 유럽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다르다.자유의 존중과 독재의 배격을 강력히 내세운 민주적 성격을 담고 있다.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열린 민족주의다.백범의 민족주의를 종족관념 또는 저항 민족주의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백범 민족주의의 원류는 열린 민족주의다. 백범은 보편성을 갖는 민족주의와 함께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했다.그는 백범일지에서 “나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다”라고 표현했다.백범이 말하는 자유는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야 한다’는 주권재민 사상과 연계된다.“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을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렸다.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온다”고 백범일지는 강조하고 있다.자유 아님의 대표적 예는 계급독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독재로 보았다.소련식 공산당을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는 극단적인 독재정치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는 독재를 막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범의 민족주의·자유주의·문화주의는 각각 별개의 사상이 아니다.큰 틀속에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백범 사상의 이상은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모든 나라의 자주독립과 문화의 힘을 통한 인류의 평화라 할 수 있다.그 이상을 실현하는 열쇠는 자유의 보장이다. 세계는 그의 이상대로 문화의 힘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백범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中國 피난처·臨政청사 복원 金九 선생이 일본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어있던 중국의 자싱(嘉興)은 우리에겐 잊혀진 도시였다.그가 일본의 눈을 피해 숨어 있었듯이 자싱은 우리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망각의 도시가 아니다.金九 선생이 숨어있던 집이 유적으로 복원되며 우리곁으로 돌아왔다. 백범은 1932년 李奉昌·尹奉吉 의사의 의거이후 일본경찰의 추적이 집요해지자 상하이(上海)에서 서남쪽으로 80㎞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자싱으로 피해왔다.그는 자싱에서 추풍청(저보성)씨가 마련해준 집에서 은신했다.그곳은 추씨의 수양아들 별채였다.백범은 일본 정탐꾼이 자싱까지 오자 하이옌(海鹽)으로 피신했다. 중국정부는 96년 백범이 약 2년간 숨어있던 두 곳을 복원해 유적지로 지정·관리하기 시작했다.자싱에 있는 백범 유적지는 메이완 거리에 있다.2층 건물 현관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 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한자로 쓴 녹색간판이 붙어 있다.백범이 당시 접견실로 썼던 1층 벽에는 백범과 그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추씨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2층에는 침대와 옷장 등이있다. 하이옌에 있는 피난처는 주쟈루이씨 집안의 별장이었다.주쟈루이씨는 백범을 하이옌으로 피신시킨 추씨의 장남 펑장(鳳章)의 부인이다.펑장씨는 자신의 부인을 백범의 부인으로 위장시켰다.대나무숲 속에 단장돼 있는 유적지에는 백범의 흉상과 함께 ‘김구 피난처’라는 한자 간판이 있다.전시실에는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추풍청,주쟈루이 등의 경력과 활약상을 담은 각종 사진과 자료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金九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해외독립운동 구심점이었던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도 93년 복원됐다.청사는 26년부터 7년동안 사용했던 3층 연립주택이다.삼성물산 등의 지원으로 61년만에 복원된 청사는 1층 회의실·접견실·부엌,2층 국무령 집무실과 직원사무실,3층 요인숙소 및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회의실과 집무실에는 당시 사용했던 책상·의자 등 집기와 비품이 갖춰져있다.3층 전시실엔는 尹奉吉 의사의 의거장면 등 독립운동관계 사료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임시정부는 32년 李奉昌·尹奉吉 의사의 의거후 일제의 탄압과 추적공세가 강화되자 상하이를 떠나 유랑하다 40년 충칭(重慶)에 정착했다.임시정부는 충칭에서 광복을 맞았다.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충칭의 청사도 95년 복원됐다.중국은 백범이 경계한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그의 독립운동과 민족사랑을 높이 평가,그의 발자취를 복원했다. ◎국민의 힘으로 기념관을/과거 집권층 왜곡­평가절하 탓/애국혼 깃들일 곳 없이 반세기/26일 종합계획 발표… 내년 기공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다.그러나 사후 반세기나 지났지만 그의 국내 발자취는 여전히 망각의 역사속에 묻혀 있다.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후 머물렀던 경교장(京橋莊)은 병원의 일부로 사용되고 기념관도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의 鮮于鎭 상무이사는 “기념관 건립과 발자취 복원이 제대로 안되는 것은 그의 위업을 왜곡하고 평가절하했던 집권층과 잘못된 사회풍토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협회는 그러나 기념관 건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金泳三 전 대통령 집권때인 96년 8월14일에는 발기인대회도 열렸다.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金九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金泳三 전 대통령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 담당 비서관까지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기념사업협회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이후 기념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金대통령은 金九 선생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어 기념관 건립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鮮于이사는 말했다. 그러나 건립기금과 장소선정 등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鮮于이사는 “국민성금과 정부지원으로 기금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러나 IMF시대의 경제난 때문에 성금 모금운동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장소도 문제다.金九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을 선정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기념사업협회측은 말한다.기념사업협회는 金九 선생 서거 49주년인 6월26일에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며 서거 50주년인 내년에 기공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기념관은 총건평 1,200평의 지상 3층 건물로 구상되고 있다.1층은 유물 전시실,2층은 자료실·도서실·사무실,3층은 국제회의장·소회의실·영사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념관 건립은 金九 선생의 사상이나 업적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민족교육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실현돼야 한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그들은 범국민운동을 펼치고 정부도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金九 선생의 애국혼이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성과 속/M.엘리아데 지음(화제의 책)

    ◎대립적 개념 틀로 종교 재해석 루마니아 태생의 미국 종교학자 엘리아데(1907∼1986)의 대표적 저서.유럽문명의 우월성을 벗겨내고 제3세계의 문화적 뿌리와 보편성을 일깨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엘리아데는 이 책에서 성(聖)과 속(俗)이라는 대립적인 개념 틀로 종교를 새롭게 해석한다. 성을 형이상학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재로 보게 되면 그것은 불변성을 지닐수밖에 없다.그러나 막스 베버와 마찬가지로 엘리아데는 성이란 영원불변한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그에 따르면 성이 속이 될 수 있고 속이 성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마치 복상(服喪)기간이 끝나면 성별(聖別)의식을 거쳐 더러움을 씻고 깨끗해져 새로운 힘을 얻는 것과 같다. 성의 기원과 관련,엘리아데는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는 견해를 편다.성은 이미 이 세계 자체에 드러나 있는 것으로,이렇게 외화(外化)한 성은 곧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엘리아데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히에로파니(hierophany) 즉 성현(聖顯)이란 말까지 만들어냈다.엘리아데가 성과 속의 잣대를 통해 파헤치려했던 것은 결국 속의 세계에서 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은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종교적 인간이든 비종교적 인간이든 같다는 점이다. 엘리아데는 문학소년이었으며 ‘이사벨과 악마의 물’이란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그의 문학적 문장이 신화의 신비에 쉽게 다가서게 해준다. 이은봉 옮김 한길사 1만2,000원.
  • 국민의 정부 출범 100일­특별대담:Ⅱ

    ◎정계개편 민주화 세력 규합 바람직/구조조정 1년내내 마무리해야 성공 가능/남북한 경제·사회교류 대승적 접근 꾀할때 ○국민에게 직접 정책호소/민중주의로 연결될 우려 ▲崔교수=당장 이번 지방선거 후 선거를 의식한 민중주의(Populism)적 유혹,또는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을 물리치고 모든 분야에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2000년이후 선거 준비 기간을 빼고 나면 앞으로 6개월,1년안에 이 정부의 구조조정 능력이 발휘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정체된다.우리 사회는 망하기엔 너무 크지만,취약요소가 너무 많아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고통이 이어진다.현 정부는 민중주의를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국민과의 대화’가 그 예다.엘리트보다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중주의로 연결될 우려도 없지 않다. ▲韓교수=지방자치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지방자치의 지역적 편중성을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한편 지방자치를 통해 각 지역주민들을 생산적인 정치의 장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그래서 중앙정치의 전횡시대가 아니고 지방시대의 다양성을 끌어내야 할텐데 이에 역행하는 현상도 눈에 띈다.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쟁점이 있지만 기초단체는 기본정보의 소통자체가 어렵다.정치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 때문에 지방자치가 착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崔교수=앞으로 정계개편은 권력 투쟁의 과정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위해서 해야 한다.여야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구조조정을 위해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다. 정계개편이 경제회생과 직접 연관돼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야당과 노동계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정치가 불안하면 외국인의 눈에는 정국 불안으로 비쳐진다.당연한 결과로 외국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타협도 좋지만,현 정부의 단호한 의지로 여야 정쟁과 노사분쟁을 진정시키는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한다.지방선거에서 여권에 대한 지지가 확인될 경우 지나친 민주주의 절차에 집착하기 보다 강력한 의지와 경영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반면 지방선거에서 여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다면 정계개편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집권후 다수당 개혁 방해/정치지형 다시 설계해야 ▲韓교수=현 정부에게는 밀월기간이 없었다.“집권 그날부터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한나라당이 개혁을 방해했다”는 집권당의 항변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나는 시점으로 밀월기간은 사실상 끝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국민들은 이제 훨씬 더 냉정한 눈으로 현 집권세력을 평가할것이다.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개혁작업이 민주주의의 큰 틀을 파괴시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정계개편이라는 것도 충분히 정당성을 얻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이것이 앞으로 金大中 정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정계개편의 필요성은 다들 인식하고 있는데,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대중이 요구한다고 해서 칼을 잘못 빼들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반드시 개혁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이 클 것이다.이번 지자제선거 결과를 놓고 우리나라 정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치중립·인권중시 원칙/안기부 개혁 긍정적 평가 ▲崔교수=정계개편은 원리원칙대로 말하면 정치노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그리고 개혁방향에 대한 합의대로 이뤄져야 한다.지금 여야간에는 정치 이념 등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본다. ▲韓교수=정계개편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중요한 점은 과거 행동의 투명성과 가치지향의 유사성이다.이것이 없는 무차별 영입은 정치적 불안정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과거 민주화를 추진했던 세력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일 것이다.그래야만 명분도 있고 국민들이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 ▲崔교수=검찰 경찰 안기부 등 권력기관은 중립성을 견지해야 한다.특히 새 정부 출범후 안기부의 개혁은 상당한 신뢰를 주고 있다.안기부의 인권중시 발언은 그대로 실천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역사적으로 남을 발언이다.권력기관도 정당이나 정권차원이 아니라 구국의 차원에서 뚜렷한 원칙,즉 정치적 중립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韓교수=金대통령이 안기부를 방문해 “정치중립을 지키고,대통령 개인에게 봉사하는 기구가 되지 말고 국민에게 봉사하며 인권을 존중하라”고 말했다.그러나 우리나라 수사기구들은 아직도 가혹수사 등 과거 잔재를 많이 갖고 있다.이런 기구들이 앞으로 인권을 보장하는 기구로 변신한다면 굉장히 중요한 발전이 될 것이다.이를 위해 안기부가 수사기관의 인권 침해요소를 모니터링해서 유관기관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崔교수=새 정부 출범이후의 인사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개혁·구조조정과 역사적 방향이 맞는 전국의 각 계층에서 주도세력을 골고루 찾는 것이 인사 탕평책이다.깊은 역사적 통찰을 해야 하는데 출신 시·도 지역을 안배하는 것은 치졸하다.역사적 방향에 반하는 사람은 유능해도 유보해야 한다. 관료중에는 반개혁적 인사들,개발주도의 타성에 익숙한 사람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이 현 정권에 등용된 경우가 많다.그런 사람 가운데 우연하게도 호남인이 적지 않다.이 점이 인사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계층별 지역별로 선택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현 정부의 목표를 분명히 내세워도 단기적으로 호남인이 많이 등용될 것이다.개혁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을 충분히 홍보해야 하다. ○노사정 협력하는 것처럼 남북도 공동체의식 필요 ▲韓교수=남북관계를 보는 눈도 국내문제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한편에서 구조조정,노사정 협력을 하는 것처럼,북한을 상대로 상호주의(시장모델)의 원칙을 지키면서 또한 공동체적 공존 모랄을 적용해야 한다.이해타산만이 아니라 서로 보살피고 양보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그동안 냉전시대 논리에 의해 공동체적 공존의 논리가 많이 침식돼왔다.이는 정부 관료들사이에서도 그렇다. 특히 경제지원과 사회문화 교류에서의 대승적인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앞으로 학문 예술 종교 미디어 부문에서는 활발한 교류가 예상된다.정보가 교류하기 시작하면 남북한 동질성이 살아날 것이다. ▲崔교수=대통령이 취임직후 무력도발 불용,흡수통일 배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이것이 확인된 이상 남북기본합의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여기에 실용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정부차원에서는 상호주의를 해야 하지만 상호주의에 얽매여 남북관계 진전에 걸림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평소 민족과 미래를 위해 ‘큰 계산’을 해야 한다.민간수준에서는 너무 주고 받는식이 되면 안된다.다만 국민들의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주의 원칙을 표방하는 가운데서도 특히 (미국의)남한 빼돌리기 등을 견제하는 상호주의가 필요하다.경수로건설에도 많은 비용이 들지만 큰 계산에서 보면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계산된 양보인 것이다.사실 상호주의의 경우 (북한으로부터) 받을 것이 별로 없어 동시에 주고 받기식의 협상에너무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韓교수=세계화의 촘촘한 그물망에 살고 있는 요즘,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보느냐에 못지 않게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한 시대다.바깥에서 볼때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IMF 위기 극복이지만 金大中 정부의 출범과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떻게 나타나며 金大中 정부가 여기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도 깊은 관심을 끄는 문제다.앞으로 외교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우리나라 인권정책의 위상을 새롭게 짜 국제무대에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위상을 확보한다면,국제교류는 물론 경제통상협력에서도 굉장히 유리할 것이다. 지난 94년 당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수상과 金大中 국민회의 총재가 벌였던 논쟁이 외국에서는 큰 관심을 끌었다.우리는 이제 아시아의 문화와 민주주의 및 인권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글로벌한 시각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미국서 현 정권 큰 신뢰/對美·日 관계 새 틀 짜야 ▲崔교수=현 정권은 한미,한일 관계의 큰 틀을 짤 수 있는 자격이 있다.미국의 신뢰가 크다.오는 6일부터 시작되는 金대통령의 방미로 한미 외교는 큰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의 대북전략인 연착륙과 金대통령의 통일정책에도 모순이 없다.하지만 미국과의 외교에서는 남북 당사자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한일문제는 다소 까다롭다.큰 틀에서 보면 우리에게 도덕적 우월성이 있다.냉전 이후 한일관계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외교통상부는 실무에서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주고 받는 협상을 해야 한다.대통령이 전향적으로 밝힌 틀에 들떠 실리를 놓칠까봐 걱정이다.즉 헤프게 과거문제를 양보하고 문화개방을 해서는 안된다.문화개방은 곧 문화사업을 의미하므로 계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과 일본사이에는 합의가 있다.바로 역사인식의 공유다.그러나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과거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논의하되 과거 직시를 내팽개치면 안된다.따라서 일본과의 외교는 한쪽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주장하고 한쪽에서 실리외교를 주창하는 등 중용의 배합이 필요하다.
  • 국민들 개혁체감지수 낮다/각계 비판의 소리

    ◎공직개혁 어느새 흐지부지/일단 경제에 총력 기울여야 金大中 대통령의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불만은 “개혁의 성과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왜 金대통령이 개혁의 고삐를 더욱 당기지 않느냐”는 채찍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국정 전반의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실천하라는 요구다.개혁이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그러나 개혁 지연으로 불거지는 ‘불만의 화살’은 결국정부를 겨냥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이라는 金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증권회사에 근무하는 李모씨(36·인천시)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면서 “우선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그동안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룩했으니,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자는 얘기다. 세종로 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직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이라는 구호는 국민들에게 조금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그 뜻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쉽게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고(故)朴正熙 대통령 당시의 ‘잘 살아 보세’처럼 보다 단순하고 응축된 구호로 국민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공직사회의 개혁이 흐지부지 한 것도 불만과 비판의 대상이다.공무원 정년의 관련법규를 고쳐서라도 공무원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사정기관의 40대 관계자는 “공무원의 신분을 50세까지만 보장하고,이후는 1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또 경기도 고양시행신동의 한 주부(42)는 “65세인 교육공무원의 정년은 반드시 단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金대통령이 앞장 서 정치권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보편화 되어가는 것 같다.또 정부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공직자는 6·4 지방선거가 경제회생 과정의 걸림돌이 됐다고 평가하면서 “경제 회복을 위해 최소한 기초자치의회 선거는 당분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많은 국민들은 金대통령이 6·4 지방선거 때문에 ‘유보’했다고 믿는 국정전반의 개혁을 앞으로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 국민의 정부 출범 100일­특별대담: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 성과는 미흡/IMF 시련은 120년전의 開國 이은 ‘新開化’/현정부 적절한 초기대응… 換亂위기 일단모면 50년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金大中 대통령 정부는 지난 100일 동안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추진해왔다.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개혁작업의 근저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金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이 그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이와 함께 이틀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의 결과와 이에 맞물리는 정계개편 문제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현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 따라 그동안 교착상태를 면치 못하던 남북한관계도 서서히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그리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설정,경제위기 극복과 한미간의 협력 등 외교문제도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崔相龍 교수(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정치학)와 韓相震 교수(서울대, 사회학)의 대담을 통해 당면 국정운영 현안을 점검하고 개혁의 목표와 방향 등을 분석해 본다. □대담=韓相震 서울대 교수·사회학­崔想龍 고려대 교수·정치학 ▲崔相龍 교수=먼저 金大中 대통령 정부 의 100일을 평가해 보면 위기관리능력을 높이 살 만하다.세부적으로 봐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할 부분이 많다.하지만 모든 것이 체감적으로 좋아졌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개혁은 훌륭한 가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제 개혁 그 자체에 갈채를 보내지는 않는다.지난 정권이 5년동안 계속 떠든 것이 개혁이었다.마찬가지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내용을 보자.당장 개혁의 성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자칫 이런 기간이 길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침체와 (개혁의)하향화가 올수 있다. ○국민들 빠른 변화 요구/유화적 통치론 실망만 ▲韓相震 교수=金大中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정의 기본목표를 설정하는데 있어 내부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제2의 건국이냐,화합과 도약이냐 등의 문제였다.객관적인 우리의 상황은 제2의 건국같은 큰 개혁의지를 갖고 출범하는 것이 좋지만 개혁을 뒷받침해주는 정치 사회적 조건이 결여돼 있어 과대포장했을 경우 역풍을 자초한다고 보고,온건하게 화합과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으로 안다. 그러나 100일 시점에서 불가피하게 근본적으로 재건을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현 정부가 과거와 같은 강압적인 방식,위로부터 통치하는 모델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정상화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까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부에 대한 실망이 표출되기도 한다. ▲崔교수=金대통령은 취임직후 일성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밝혔다.아시아의 지도자 가운데 이같은 정책목표를 밝힌 경우는 드물다. 중국의 경우 시장경제는 받아들이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중국의 특수사정을 주장하고 있고,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아시아 민주주의’를 추구할뿐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하다. 金대통령은 이같은 아시아적 민주주의에 관해 부정적이란 점에서 돋보일 뿐아니라 일본과 함께 서구의 인권개념을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자다.이런 측면에서 특히 선진국에서 엄청나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무형 행정가 대거 포진/이론적 중추부 보완 해야 ▲韓교수=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은 역사의 순리라고 보지만 토론이 요구되는 쟁점이기도 하다.국정철학은 기본적으로 올바르지만 이것을 체계화시키는 노력을 출범이후 하지 않았다.현 정부의 취약점이다.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정부로서 많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IMF(국제통화기금)시대 경제문제에 덮혀 이것을 추스리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 또 현 정부의 중추세력이 실무형 행정가들로 구성돼 있고 이론적 중추부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국정의 기본방향과 목표를 체계화시켜 전체적으로 조정하고 제어해가는 지적인 수준이 기대했던 것보다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崔교수=동감이다.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상호보완하는 측면도 있지만 상호모순되는 측면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유의해야 한다.시장화는 불평등을 낳게 마련이고 민주화는 평등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측면이 사회불안을 가져온다고 우려하는 의식이 별로 없다.성공하면 코리안 모델이 될것이다. ▲韓교수=정부에 의해 추진된 재벌개혁이 좋은 보기다.재무구조의 투명성 확보,소액주주의 참여발언권 강화문제,1인 지배체제의 개혁 등은 구체적이고 이를 통해 그동안 재벌가족이 전권을 행사했던 경제구조를 투명하고 민주적 방식으로 고치려는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따로따로 발전해가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적 참여의 원리가 시장경제에 접목되고,경쟁과 효율의 원리가 민주주의에 접목되는 등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해가는 모델을 한국사회에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노사정 협의로 연관지어볼 수 있다.구조조정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즉 신자유주의 정책을 깔고 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공동체기반이 와해되기 쉽다.때문에 노사정협력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당사자간 합의에 의한 민주주의 모델을 시장경제에 합친 것이다. ○협소한 관료주의틀 빠져/노동자의 의혹·불신 초래 정부가 노사정이 합의한 90개항을 성실히 이행해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협소한 관료주의의 틀에 빠져 노동자의 의혹과 불신을 사고 있다. 사실 노사정 1차 협약 내용은 획기적 의미를 띤다.이는 1936년 살츠요바튼협약(스웨덴),1978년 몽클로와 협약(스페인)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귀중한 합의를 해놓고도 노사정 모두가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崔교수=현재의 개혁 방향은 근본적으로 옳다고 본다.120년전 개국 당시의 쇄국정책이 역사의 진행방향으로 보아 오류였다면 이번 IMF충격에 대한 金大中 정부의 대응방향은 기본적으로 옳다. 나는 이를 ‘신개화(新開化)’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싶다.그리고 여기에 역사적 선택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다만 개혁의 주체가 불분명한 점은 지적할 수 있다.개혁의 주체는 주도세력과 기반세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주도세력은 민주개혁 세력을 의미한다.민주화에 역행했거나 반개혁세력이 IMF시대의 국정을주도할 수는 없다.지난 정권하에서 민주화세력과 이른바 산업화세력이 끝내 융화되지 못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韓교수=‘신개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돼있다고 말한 崔교수의 시각이 흥미롭다.재벌 금융개혁을 포함해 노사정협력 등 중요한 골격은 이미 짜여 있다고 판단한다.문제는 효과적으로 국민지지를 동원하면서도 무리수를 쓰지 않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100일이후 金大中 정부의 과제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동안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근본적으로 국가가 주도하고 재벌이 중심에 선 독특한 발전방식으로 40년동안 중단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우리의 체질과 현재의 경제위기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한다.이제 불가피하게 많은 외국자본이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느냐에 대해 불안하다. 현 국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우리 의식수준은 아직까지도 자기중심주의,민족주의,혹은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클 것이다.대통령은 “국적에 관계없이 우리나라에 진출해 이윤을 내면 우리 기업”이라고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근본적인 처방과 준비가 필요하다. ○노사정 협약 성실히 이행/중산층 등 지지기반 확보 ▲崔교수=현 정부가 개혁에 있어 관료의 경험을 중시하는 정책에는 몇가지 점이 보완돼야 한다.우선 민주개혁노선에 걸림돌이 되는 관료가 개혁의 주체가 돼서는 안된다.관료가 민주개혁노선 실천에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확고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개발시대의 타성에 젖은 관료가 민주개혁의 이니셔티브를 취하기 어려우며 강력한 정치적 지도력하에 확실히 장악되지 않은 관료는 복지부동이나 조직적 저항을 일삼기 쉽다. 민주개혁의 지지기반은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중산층을 바탕으로 해야한다.아무리 어려운 경제라 하더라도 중산층까지 견딜 힘을 잃고 해체되어 버린다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아노미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지구상에서 90% 이상의 전폭적인 지지를 지속적으로 받는 정권은 없었다.민주개혁이란 이름아래 출발했던 金泳三 정권은 국민의 어떤 계층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했다. 특히 중산층의 이반은 가히 무서운 수준이었다.국민통합이 중요하고 노사정협약의 실천이 중요한 것은 중산층을 주축으로 한 우리 사회의 지지세력을 견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관료·지식인 협력 유도/개혁주체로 끌어내야 ▲韓교수=지금 상황은 개혁의 한 중심에 대통령이 있고 주변에 장관 등이 있어 개혁의 중추부를 이룬다.그러나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을 지원해 줄수 있는 사회세력이 협력해야 한다.구체적으로 말하면 현 정부에서 지지를 가장 얻기 어려운 집단중 하나가 결국 관료와 지식인이 될 것이다.관료는 장관이 통제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관료들의 사보타지 능력이 생각보다 크다.지난 40년간 지속적 성장기간동안 중앙부처 고위 관료들은 상당부분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었다고 본다.때문에 관료를 개혁의 주체로 만드는 데는 입체적인 구상이 필요하다.개혁은 위로부터 압력만이 아니라 옆으로부터 지원,밑으로부터의 요구도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지식인의 생명은 비판정신에 있다고 본다.그런데 중앙부처를 포함해 지식인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많은 자문위원회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이것은 지식인을 위해서도,관료를 위해서도,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자문위원회를 투명하게 만들어 지식인 사회의 자극과 요구를 관료사회에 투입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6·4 지방선거 D­6/TV토론방식 공방

    ◎여야 “앉느냐” “서느냐” 신경전/林 후보 불만 표시… 늦게 시작/서울 이어 공방 2라운드 진입 TV 토론 방식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2라운드로 접어든 느낌이다.27일 밤 MBC주관의 경기지사 토론이 빌미가 됐다.26일 밤 서울시장후보 토론에서 토론 절차의 공정성 시비로 촉발된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의 신경전이 이날 폭발된 양상이었다. 27일 토론에 앞선 신경전의 초점은 토론을 앉아서 할 것이냐,서서할 것이냐였다.孫鶴圭 한나라당후보가 서서 하기를 주장한 반면 林昌烈 국민회의후보는 앉아서 할 것을 고집했다.신경전속에 林후보가 늦게 나타나 토론이 15분이나 늦게 시작되는 해프닝을 빚었다.결국 토론은 선채로 진행됐다. 국민회의는 28일 즉각 한나라당을 공박했다.“한나라당이 TV 토론의 일정과 횟수에 대해 합의해 놓고도 시간대를 트집잡아 양보했더니 정해진 사회자를 두번이나 문제삼아 바꾸고 느닷없이 서서하는 토론을 고집해 혼란을 야기했다”고 주장 했다. 이에대해 한나라당은 “서서하는 토론은 선진국에서는 보편화 된 기법”이라고지적하고 “서서 하는 방식에 대해 양측 대리인이 서명까지 해놓고 딴소리를 하는 바람에 토론이 늦어졌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서서 하느냐,앉아서 하는냐의 문제는 양 진영의 선거 전략과 관계가 있어 신경전을 폈다는 분석이다.분위기를 고조 시키는 데는 서서 하는 것이 제격이라고 판단한 孫후보가 서서할 것을 주장했고 차분한 토론을 희망했던 林후보는 앉아서 하는 토론을 고집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신경전이 시청자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자 28일 밤 MBC 주관의 서울시장 후보 토론에는 양측이 앉아서 하기로 별다른 신경전 없이 합의했다.
  • “日 문화 개방 이르다” 崔長根씨 기고 반론/金箕洙

    ◎“아직은” 53년째… 이젠 당당해지자 金大中 대통령이 일본문화를 막지 않겠다 했을 때 나는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우선 입으로는 일본문화를 막아야 한다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앞장서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위선이 싫었고 다음으로는 막아야 한다는 이유가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론 “문제없다” 공감 대개들 언젠가는 개방이 불가피하겠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했다.벌써 53년째 듣는 이유였다.도대체 언제 그 “아직”의 끝이 올까.金대통령은 그 끝을 시사한 것이다. 그런데 5월21일 서울신문 15면에는 “일본문화 개방 서두르지 말자”는 崔長根 박사의 글이 실렸다.역시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그 이유에 아직도 설득력이 있을까. 崔박사는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이 적어도 문화적인 면에서는 별문제가 없다고 지적한다.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한다.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은 일본의 문화상품에 대한 개방을 뜻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존권과 관계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마지막으로,崔박사는 문화개방을 외교 카드로 써서 국익을 챙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댈 수 있는 이유가 이것뿐이라면 崔박사의 “아직”론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저질문화는 들어와 봤댔자 별문제가 없지만 “문화상품”이 들어오면 일본에 예속됨을 뜻한다니 무슨 말인가.문화상품은 문화와 같은 뜻이다.문화적 내용이 담긴 상품을 뜻하니까 어느 것이 들어오든 차이가 없다.그런데 왜 하나는 괜찮지만 다른 하나는 안 된다는 것인가. ○생존권론 설득력 없어 또 만약 일본문화의 유입이 우리 생존권을 위협할 정도라면서 그것을 외교상의 카드로 써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만약 문화개방이 외교관에게 노름꾼의 카드와 같은 것이라면 언제 써도 무방한 것이다.그런데 만약 외교관이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개방을 다른 국익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 써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세상에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어디있을까. ○문화상품 이미 보편화 “일본문화 개방 서두르지 말자”는 崔박사의 “아직”론은53년간 들어온 여느 “아직”론과 마찬가지로 개운치 않은 이유밖에 대지 못한 셈이다.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개운치 않은 이유밖에 댈 수가 없다면 이제 차라리 “아직”론을 버리는 것이 어떨까. 일본문화가 들어오면 그것에 매료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문화가 일본문화에 동화되는 것만은 아니다.崔박사도 이런 문화적인 면에서는 이의가 없다. ○문호 열고 경쟁력 갖춰야 중요한 점은 이런 문화적 개방의 비문화적인 면이다.그 비문화적인 면은 오늘날의 달라진 양국관계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일본은 한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이다.하루에도 수십 대의 비행기가 한일간에 무수한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일본의 “문화상품”은 저질이든 아니든 이미 한국사회의 곳곳에 들어와 있다.반대로 한국의 문화상품도 일본사회의 곳곳에 들어가 있다.일본문화를 막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현실을 현실로서 인정함을 뜻한다. 물론 개방하면 당분간은 일본문화상품이 한국문화상품보다 경쟁에서 우월할지도 모른다.그렇다고 그것을 막기만 한다면 언제 그것을 제압할 힘을 기를 수 있겠는가.이제는 문화의 문호도 활짝 열어야 한다.그리고 당당하게 겨뤄야 한다.중요한 것은 개방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 수도권 전원주택지 잘나간다/IMF후 헐값 매물들 인기

    ◎“2000년대 주거형태” 각광/귀농 수요층 가세로 활황/이천·가평·포천으로 몰려 IMF체제에 따른 부동산경기 침체에도 아랑곳 없이 경기도 이천 용인 포천 가평 등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전원주택단지 분양이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전원주택은 IMF 지원체제 이후 서울 근교 등에서 땅값이 30∼40% 떨어져 ‘헐값’ 매물이 쏟아지고 2000년대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각광을 받으면서 실수요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불경기에 실업자는 늘어나고 귀농(歸農)인구도 덩달아 증가하면서 서울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원도시로 주거지를 옮기는 사람들도 ‘전원주택 활황’을 부추기고 있다. 수도권의 전원주택지 중에서 특히 이천 용인 가평 포천 등지에 분양이 몰리는 것은 서울에서 가까워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고 대지조성 사업자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대지조성 사업자들은 전원 등 주택지에 토목 상·하수도 도로 전기 방범시설 등을 완비한 상태로 분양해 건축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소유권 이전 등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이천 지역에서 분양 재미를 본 업체는 대명주택개발(주)의 ‘포레스트빌’ 향록원건설(주)의 ‘녹원의 성’ 하우징그룹행인의 ‘드림 홈’ 등이다.대명 포레스트빌의 경우 평당 45만원으로 최근 분양에 들어간지 20일만에 31가구 중 11가구를 팔았다.녹원의 성은 지난해 말부터 분양을 시작해 현재 45가구 중 50%의 분양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평에는 아름다운 계곡이 많은 명지산 일대에 대단위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있다.이곳에서는 전원주택 전문개발업체인 신평개발이 4개의 단지를 조성중이다.신평개발은 이곳에 100가구를 분양할 계획이며 분양가는 평당 20만∼30만원선으로 책정,주변의 단지보다 30% 정도 낮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전원주택을 고를 때는 분양가와 교통,주변 여건 등을 세심히 고려하고 정착을 원하는 경우에는 2∼3년 정도의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다.특히 직접 집을 짓는다면 전문업체를 통하는 것이 편리하다.농가를 사들여 개조할 때도 비용문제를 꼼꼼히 따져야 낭패를 보지않는다.
  • 망월동 르포­5·18 光州민중항쟁 18주년

    ◎차분한 추모행렬 “恨 잊을수 있나요”/망월동에만 플래카드 걸려/금남로선 지하철공사 소음 광주는 조용했다.50년만의 정권교체,金大中 대통령의 집권후 첫 5·18을 맞은 광주의 모습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예상과 달랐다.망월동 묘역을 빼고는 5·18 관련 플래카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5·18 18주년을 앞두고 하루 수천명의 추모 인파가 줄을 잇는 망월동 신·구묘역.그곳에서 만난 郭성환씨(45·자영업).“그동안 5·18만 되면 광주가시끄러웠던 것은 과거 정권탓이지요.가장 큰 피해자인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했으니 시끄러울 이유가 있나요” 계엄군과 시민·학생 사이에 유혈공방이 벌어졌던 금남로,전남도청,전남대 교정도 5·18의 긴장된 느낌은 없었다.금남로에는 지하철공사가 한창이었다.전남대 등 광주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과 조선대 교수협의회는 5·18 기간중 폭력화할 수 있는 한총련 집회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18년전의 피맺힌 한이 어찌 쉽게 잊혀질까.전주에서 교회 신자들과 함께 처음 망월동 참배를 왔다는 金희선씨(여·43)는 묘비를 살피며 눈시울을 붉혔다.‘어머니,조국이 나를 부릅니다.민주 정의 자유를 위해 앞서 갑니다’,‘여보,당신은 천사였오,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애끓는 묘비명들에는 아직도 못다한 사연들이 절절이 배어있다.金씨는 “어린 생명까지 이토록 잔인하게 죽이다니…”라며 말을 잇지못했다. ‘5·18 연구소’ 朴秉基 상임연구원은 ‘광주의 차분함’은 ‘망각’이 아니라고 풀이했다.한 단계 승화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그는 “이제는 5·18이 지닌 보편적 가치,즉 민주주의·인류애를 실증적 연구를 통해 확산시키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18의 전국화’를 바라는 광주시민의 염원이 담긴 것이 바로 망월동 구묘역의 돌탑과 신묘역의 헌수탑.전국 각지의 참배객이 작은 돌 하나씩 들고와 쌓은 탑이 이제 1m 높이에 이르렀다.묘역 헌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명단도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5·18 묘역 입구 표지석은 광주시민들이 정부에 가진 바램을 대변한다.길이 6.8m,높이 4m,무게 33t의 화강암으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5·18 묘지’라고 씌여진 표지석의 왼쪽 부분은 비어있다.‘국립’이라는 명칭을 써넣기 위함이다.5·18기념행사위 李基洪 위원장은 “묘역의 국립묘지 승격,5·18정신의 교과서 수록,국가차원의 전국적 기념식 거행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올해 5·18 기념사업은 사상 처음으로 통합추진되고 있다.기념재단이 주축이 된 행사위원회를 만들었다.차분하고 내실있는 행사추진이 가능한 연유다. ◎곳곳에 남겨진 상흔/1천여명 부상·고무 후유증 시달려/金來香양 18년째 ‘휠체어 신세’… 올 대입 도전 “약사가 돼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5·18 당시 두차례 척추 관통상을 입고 휠체어에 18년째 몸을 의지하고 있는 金來香양(22)은 영문도 모른채 불구자로 운명지어체적 진실이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학속의 5·18/대하소설 봄날 “절규가 희망으로”/대부분 詩로 분노 표출… 제도 폭력 허위 고발 광주민주화항쟁은 여전히 진실규명이 미흡한채 세월과 함께 과거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문학속에서도 광주의비극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왔다.그러나 임철우씨의 장편소설 ‘봄날’에서 마침내 ‘광주의 진실’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어 한국인의 보편적 역사 흐름의 한 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봄날’은 왜곡된 정치형태 탓에 ‘광주정서’라는 감정적 모습으로 호도된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이다.임철우(한신대교수)씨는 당시 전남대 휴학생으로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대하소설 봄날이 지난 2월,5권으로 완성되기 전에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은 많이 발표됐다.상징과 은유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시는 정치적 금기의 상징이었던 광주를 다루는데 소설보다 자유로웠다.광주항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던 80년 6월 김준태의 장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발표됐다.그후 광주 비극에 분노하는 시가 쏟아져나왔다.광주의 5월을 다룬 첫 소설로는 윤정모씨의 단편 ‘밤길’이 85년 발표됐다.그 2년후 ‘80년 5월 광주항쟁 소설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어서는 땅’이 출간됐다.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못하고 역사적 진실을 우회하는 형식을 취하는 한계성을 드러냈다.판도라의 상자격이었던 광주 진상에 대한 통제 때문이었다.‘봄날’은 그러나 참담한 살육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광주항쟁 열흘동안의 처절하고 비극적인 모습을 장대한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시민들의 항쟁을 체계적으로 논리화하는 등장인물 윤상현은 현실에서 패배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한다.대학생으로 나오는 명기도 “인간과 삶을 향한 소망을 배워가리라” 다짐한다.그래서 이 소설은 ‘눈부시게 맑은,늦은 봄날의 아침’으로 끝난다.작가가 고발하고자 하는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이 사라지고 의식의 허위성이 제거된다면 광주의 5월은 찬란한 ‘봄날’로 빛날 것이다. ◎宋基淑 5·18 연구소장/“진실 밝히고 올바른 평가 내려야”/발포명령자 규명­군기록 보존 중요 광주문제라면 말도 꺼내기 힘들었던 5공시절부터 5·18이 제대로 평가받는데 앞장섰던 宋基淑 전남대 교수(5·18 연구소장)는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고,그 진실을 바탕으로 5·18을 정치사회적으로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라며 ‘5·18의 학문적 객관화’를 강조했다. ­5·18 18돌을 맞는 의미는. ▲지금까지는 정부주도의 배상논의가 주를 이뤘습니다.또 기념사업,망월동 묘역 단장도 기대만큼 이뤄졌다고 봅니다.5·18을 역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려면 관련 자료를 챙겨 정리하는게 중요합니다.진실의 핵심은 발포명령자를 가리는 것인데 아직 전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80년 당시 군기록중 소멸시킨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현재 있는 것이라도 솔직히 공개하고,군사비밀로 분류되어 있다면 존재만이라도 확인해 두었다가 10∼20년뒤라도 공개해야 할겁니다. ­5·18의 전국화,세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5·18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때문에 5·18을 4·19,제주 4·3항쟁 등 국내의 다른 민중항쟁뿐 아니라 중국의 천안문사태,대만의 고웅사태 등과 비교연구하는게 필요합니다.나아가 아르헨티나 칠레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 중남미국가들과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일부 남미국가들이 민중혁명에 실패,군사정권이 재등장하는 과정을 반추해보면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막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정부에 바라는 것은. ▲金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않으려는게 이곳(광주·전남)의 정서인것 같습니다.金泳三 전 대통령때는 큰 소리쳤었는데….(웃음)사회단체들에서는 5·18 묘역의 국립묘지 지정,5·18관련 교과서 내용 재정리를 요구하고 있고,앞으로 정부도 이것들을 추진하리라 생각합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이란 5·18 광주민중항쟁은 1979년 유신독재를 자행해온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초래된 권력공백기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꾀하려는 신군부세력을 거부하며 민주화를 요구,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광주시민들의 봉기를 가리킨다.현재 정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나 5·18단체들을 비롯한 다수 학자들은 시민·학생들의 자발적 미주화 투쟁을 부각시키는 뜻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록 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부장(반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전국팀=金守煥·崔治峰 기자
  • 5·18재단 광주민주화운동 재조명 심포지엄 기조 연설

    5·18민중항쟁 18돌을 앞두고 5·18기념재단(이사장 李基洪)은 한국사회학회(회장 文石南)와 공동으로 14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세계화시대의 인권과 사회운동­광주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심포지엄에서는 요한 갈퉁 노르웨이대 교수와 알랭 투렌 프랑스 사회과학원 교수가 각각 ‘인권,보편적인 것인가,아닌가’,‘세계화와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기조연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인권 보편적인 것인다/개인·집단권리 동시 인정해야/요한 갈퉁 노르웨이 교수 세가지 초점,즉 제3세계,인권,사회주의의 붕괴를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를 조망하고자 한다.1948년에 유엔이 창립되면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지만 제3세계 국가들에서 인권의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또 89년에 옛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이 국가들은 또다른 제3세계 국가군이 되었다. 인권은 개인의 권리다.그러나 인권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까닭에 오늘날 지구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세계화와 사유화(私有化)가 국가의 자율적 영역을 축소시키면서 인권에 일면으로는 긍정적,다른 면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인권이라는 개념은 서구 근대사회의 산물이다.인권과 민주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에 있어서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높여준다.그러나 오늘날의 세계화는 경제에 있어서 공공부분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개인의 인권과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개별 국민국가의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인권을 한 국가에 한정된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다.오늘날 세계에는 유엔과 같은 공식적인 기구뿐만 아니라 비정부기구(NGO)와 국제사면기구와 같은 비공식적이고 민간이 주도하는 세계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이 기구들은 인권을 국가 매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개인 중심의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에 대한 집단적 인권을 주장하고 있다. 두번째는개인이 한 국가에 소속되어 그 국가를 통해 인권과 복지를 보장받고 의무를 수행하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유럽연합(EU)처럼 세계시민 의식을 갖는 것이다.세계시민은 세계사회의 목표와 구성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고 결집하며 세계적 차원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하며 이를 지킬 의무를 지닌다.언젠가는 NGO가 다국적 기업에 대해 소비자 파업을 주도하고 세계시장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국가를 대체할른지도 모른다. 세계의 문화를 서구의 개인중심 문화와 비서구의 집단중심 문화로 구분한다면 개인중심 문화와 집단중심 문화의 갈등은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측면이다.개인들은 자기의 자유와 집단의 소속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인류에게는 개인 중심의 문화가 제공하는 자유도 필요하며 집단에의 소속감도 필요하다.해결책은 두가지 문화를 평화롭게 공존시키는 것이며 두 문화의 관용성을 늘리는 것이다.민주주의는 앞으로 토론과 투표뿐만 아니라 대화와 조화의 문화를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 또 인권은 개인의 권리뿐 아니라 집단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이렇게 하는 것이 다양한 문화와 집단의 관점에서 인권이 정의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세계화와 사회운동/세계 금융위기로 사회갈등 심화/알랭 투렌 佛 사회과학원 교수 현재 세계는 20세기초 힐퍼딩이 묘사한 금융자본의 시대와 유사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회운동의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세계화의 개념적 및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게 필요하다. 오늘날 정보화로 제3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다.그러나 정보기술이 사회조직을 바꾸지는 않으며 세계적으로 통일된 문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오늘날 무역보다 더 빨리 성장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세계 금융시장이다.최근 멕시코·아르헨티나·태국·인도네시아·한국의 금융위기는 이러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가 부재함을 반영하고 있다.금융자본의 막강한 위력은 정보산업의 발전과는 별로 무관한 현상이며 통제력이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은 신흥공업국(NICs)과 함께 선진국에도있다. 세계화의 급속한 확산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사회주의 국가 붕괴의 결과다.미국은 이제 정치·경제·군사뿐 아니라 문화 차원에서도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는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단위로 남아있다.첫째로 실업,사회보장과 같은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국민국가일 수 밖에 없고,둘째는 세계적 금융자본의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정부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현상이고 사실이라기보다는 과장된 이데올로기다.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 변동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로 일관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그러나 무역은 여전히 국민경제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서유럽의 경우 국가가 국민총생산의 절반을 세금과 복지제도를 통해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집단행동과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집단행동은 구분돼야 한다.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은 세계적 차원에서 조직되고 있으나 정치적 운동이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은 여전히 국민국가의 수준에서 조직된다.기존의 정당은 좌파건,우파건간에 다같이 중도로 수렴할 것이 예상되므로 극좌 및 극우집단은 기존의 정당체제 밖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앞으로의 사회운동이 개량적일까,혁명적일까는 정부가 경제발전에 국가정책의 중점을 둘 것인가,아니면 국내적 문제의 해결에 중점을 둘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세계화는 결국 세계경제 문제의 국내로의 전이를 가져와 국내에서의 사회갈등을 증폭시킨다.그 결과 집단간 갈등이 심화될 것이며 갈등의 해소가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될 것이다.결론적으로 시장경제가 주도하는 세계화가 세계의 사회변화에 있어 주된 요인은 아니다.세계화는 많은 혜택과 함께 사회문제도 야기한다.문제의 관건은 국민국가내에서 그 사회가 내적인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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