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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전라좌수영의 맏형이자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어영담은 왜수군과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되어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6월 5일 사천·당포 ·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 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 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곁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이름을 첫번째로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 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이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반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형제복지원 출신 캐나다 입양녀 “친부모와 이창근 아는 분 연락 주세요”

    형제복지원 출신 캐나다 입양녀 “친부모와 이창근 아는 분 연락 주세요”

    제가 갖고 있는 사진 중에 가장 어릴 적 사진이 네 살 때 사진입니다.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가 없는 것이 머리카락을 밀어버렸고, 눈은 아래만 쳐다보고 있거든요. 당시 한국의 거리를 헤매던 아이들이 보내지던 최악의 장소였던 부산 형제복지원에 입소할 때 사진이거든요. 네, 저는 주 레이(례) 매티슨란 이름의 캐나다 입양녀입니다. 지난달 31일 서울의 AP 통신 기자와 화상회의 줌(Zoom)으로 인터뷰했는데 친부모님이나 일가 친척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편지나 사진 보고 알릴 것이 있는 분들은 알려주세요. 앞의 사진은 1970년대와 80년대 수천명을 수용해 노예처럼 중노동을 시키고 구타와 성폭행 등을 일삼아 500명 넘는 아이들이 죽어나간 그곳에 입소할 때 촬영한 흑백 사진인데 마치 용의자들이 유치장에서 찍는 머그샷 같은 분위기의 흑백사진입니다. 1982년 11월 길을 잃은 저를 경찰이 이곳에 보냈다고 복지원 서류에 기재돼 있습니다. 며칠 동안 제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고요. 전 그 시절 사진을 보며 마치 다른 아이를 보는 것처럼 말했답니다. “그애는 너무 겁먹고 트라우마에 빠져 있네요.” 복지원이 있었던 곳이 주례동이어서 제 황주례라고 기재돼 있었어요. 그나마 전 운이 좋았어요. 하도 수용해야 할 아동이 많아서였는지 1983년 8월에 다른 21명과 함께 경기도 안양의 고아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에요. 가난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1960년대 고아들을 해외 입양시키는 일을 일종의 국가 사업처럼 여겨 전 해외 입양의 기회를 얻게 됐답니다. 생일도 지어내고 입양에 유리하게 서류를 꾸며 가능한 한 많은 고아를 해외로 내보내는 데 몰두해 있었어요. 해서 전 1984년 11월 캐나다 양부모에게 맡겨졌어요. 어른이 돼서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터널의 앞쪽만 바라보고” 지냈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다 홍콩에 정착, 접객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몇달 뿌리를 찾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친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뵙고 싶고, 돌아가셨다면 다른 친척들이라고 찾으려고요. 2019년 AP는 형제복지원이 입양 사업에까지 손을 뻗었다는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전 입양 서류에 기재된 이름을 썼어요. 사생활 보호 때문에요.하지만 이번에는 제 이름을 모두 공개하기로 했어요. 아울러 이창근이란 이름의 친척을 찾고 있다는 것도 공개합니다. 이창근의 남동생이 1986년 벨기에의 한 가정에 입양됐는데 지난해 10월 DNA 검사를 통해 저의 피붙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았어요. 세상에나, 제 진짜 이름도 모르고 생일이나 태어난 곳도 모르는데 이창근과 피붙이일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답니다. 제 생각에 뿌리를 알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입양아들을 빼놓고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을 겁니다. 보통사람들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일일텐데. 나처럼 생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아주 흥분되는 일이지요. 이창근과 그의 남동생이 있던 안양의 또다른 고아원 서류에는 형제가 1982년 8월 길에서 발견돼 입소한 것으로 나온대요. 제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기 몇 개월 전이에요. 남동생은 벨기에로 입양됐고, 이창근은 입양됐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대요. 전 이창근이 계속 한국에 남아 살고 있어 친부모 얘기를 알 수 있길 바라요. 제겐 의문이 계속 따라다녀요. 부모님은 잃어버린 아들들을 찾는 데 집중하느라 부산 친척 집에 절 맡겨놓았다가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형제복지원의 많은 아이들처럼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것일까? 한 가정이 네 살부터 여섯 살까지 세 아이를 모두 그냥 버렸다는 게 믿겨지나요? 한편 AP가 정보 공개 요청 등으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아이들 가운데 19명이 해외 입양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도했어요. 하지만 간접적인 증거까지 포함하면 51명 이상인 것으로 보인대요. 전 AP가 이 내용을 보도한 2016년에야 제가 있던 곳이 형제복지원이란 사실을 알았어요. 그리고 그곳 사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제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답니다. 제가 입양됐던 1984년에만 7924명이 해외 입양됐어요. 지난 60년 동안 20만명 가량이 서구의 새로운 가정의 품에 안겼죠. 입양되기 쉽게 하려고 버려졌다고 기재하고 친척과의 연락 수단도 없애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답니다. 전 이미 수백명의 형제복지원 아이들을 인터뷰한 진실과화해위원회에 나가 입양아 최초로 증언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제 친부모님이나 이창근을 아는 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릴게요.
  • 국립심포니 ‘K클래식’ 산실로…창작곡 쿼터제 등 실시

    국립심포니 ‘K클래식’ 산실로…창작곡 쿼터제 등 실시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한국 클래식 음악 생태계를 치열하게 고민해온 악단의 발자취를 살펴 초심을 지켜나가겠습니다. 국내 클래식계에는 성장의 동반자로서 우리의 역할과 성격을 확고히 다질 것입니다.”(최정숙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이사) 지난 3월부터 ‘코리안심포니’ 대신 ‘국립’이라는 명칭을 쓰게 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새로운 청사진을 발표했다. 최정숙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는 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궁화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가대표 연주기관으로 K클래식의 산실 역할을 일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우선 ‘작곡’을 중심으로 국제무대의 전략적 확대를 꾀한다. 단기적으로는 연간 3곡 이상 한국 작곡가의 창작곡을 발표하는 ‘한국 창작곡 쿼터제’를 도입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외 국립예술단체와의 공동 위촉으로 세계적 위상의 작곡가와 협력하고, 국제 음악단체와의 공동사업으로 ‘K-클래식 국제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예술 역량 혁신 방안도 밝혔다. 오케스트라 앙상블 능력 강화를 위해 드보르자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코플런드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등 파트별 파워업 프로그램을 정기공연에 선보인다. 음반 발매를 통한 연주기량 향상도 모색한다. 한국 예술의 풍성함을 알리고 잊혀진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기획 앨범을 구상 중이다. 또 프랑스, 독일, 현대음악 등 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의 주요 레퍼토리로 꾸려진 ‘DR’s Pick‘ 시리즈도 시작한다. 문학,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의 융·복합도 시도할 예정이다. 3년간 단원의 정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정원은 100명이지만 현재 단원은 74명이다. 연 100회 이상을 연주하는 데 비해 적은 인원으로 피로도가 높다고 전했다. 단원의 상시 평가 제도를 도입해 연주력을 향상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 대표는 “연주의 질적 향상을 위해 피로도를 낮추고 공연과 연습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번 달에 5명을 충원했고, 2차 오디션도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긴 어렵지만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충원할 예정”이라며 “연주자들 개개인의 역량 강화가 국립심포니 전체 역량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단원 상시 평가제도도 도입한다”고 설명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첫 부지휘자로는 지난해 열린 제1회 KSO국제지휘콩쿠르 우승자인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이 발탁됐다. 임기는 1년이다. 첫 상주 작곡가로는 신인 작곡가 발굴 프로젝트 ‘작곡가 아틀리에’ 1기 출신인 전예은(37)을 선정했다. 그가 만든 ‘장난감 교향곡’은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 지휘로 11월 3일 공연에서 초연된다.
  • 평양 80층 아파트 입주에 탈북자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평양 80층 아파트 입주에 탈북자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북한에서는요,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펜트하우스에 살아요, 왜냐하면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수압이 낮아 물을 쓸 수도 없고요.” 평양 송화거리에 들어선 80층 아파트가 지난 11일 완공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찾아 건설 부문의 성과를 안팎에 과시했고 지난 14일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초고층 펜트하우스에 입주하는 이들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데 북한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과 일부 북한 주민들은 엘리베이터와 전력, 상수원 문제 탓에 이런 초고층 주거시설 입주를 많은 이들이 마다해 극빈층만 거주한다고 증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6일 밝혔다. 2017년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정시우(31)씨가 대표적인 예. 평양에 있을 때 13층 건물의 3층에 거주했는데 엘리베이터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고 했다. 40층 건물의 28층에 살던 친구는 작동하지 않아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80층 고급 아파트가 완공됐다고 하자 정씨는 김 위원장 등 지도부가 그저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대학생인 그는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건설 기술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과시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주택이 할당될 뿐 매매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거래가 점점 일반 관행이 되고 있다며 김 위원장 집권 기간 민간 시장을 확산시켜 이득을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김 위원장은 건설 기술의 개량과 함께 새로운 아파트를 수 만채 짓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북한 경제는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국경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연재해도 겹친 데다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때문에 국제 제재가 부과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일리 NK의 이상용 편집국장은 보통사람들에게 아파트는 들어가 살 만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소식통의 발언을 전했다. 창문 틀과 수도 꼭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최근 완공된 고급 주택들은 가구와 식기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그는 초고층 아파트를 신축하는 일이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며 북한은 지속적으로 전기와 수도 공급을 늘리는 한편 건축의 질에 대한 걱정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평양에서 살 때 대다수 엘리베이터가 오전 6~8시와 오후 6~8시, 하루 두 차례 출퇴근으로 가장 붐비는 시간만 작동했다고 돌아봤다. 낮은 수압 때문에 위층 주민들이 지상에서 물을 최고층까지 가져다가 마시거나 특별한 펌프 기계들을 장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북한 정부가 기획해 마련된 국제 미디어 투어 도중에 들른 47층의 양각도 국제호텔에도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로이터 기자는 털어놓았다. 당시에도 북측 직원들이 머무르던 여러 층에서 전기가 끊겨 어려움을 겪었다. 두 북한 관리들은 김 위원장이 최근 개장한 건설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와 관련해 초고층 아파트의 위층을 할당받는 이는 극소수임을 인정했다. 물론 주된 이유는 엘리베이터 탓이었다. “누구도 한 시간 동안 등반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사설]조국 딸 잇따른 입학취소에 민주당까지 불복, 볼썽사납다

    [사설]조국 딸 잇따른 입학취소에 민주당까지 불복, 볼썽사납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에 대해 부산대와 고려대가 잇달아 입학취소를 내리자 더불어민주당이 뒤늦게 비판에 나섰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비대위회의에서 조씨의 입학취소 처분과 관련,“조민씨에게 적용된 관점에서 보면 김건희씨는 당장 구속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씨 의혹과 관련해 “수사기관과 국민대 등이 계속 직무를 유기하면 ‘김로조불’이 된다. 김건희가 하면 로맨스이고 조민이 하면 불륜이냐”고 비난했다. 민주당 비대위가 조씨 문제를 언급한 것은 처음인데, 김건희씨 의혹과 조민씨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고려대 입시에 사용한 조민씨의 7대 스펙은 모두 허위임이 지난 1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그로 인해 정경심씨는 실형을 받았고 조 전 장관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일반인이라면 대법원 판결이 나기도 전에 입학취소가 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은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딸의 부산대와 고려대 입학 취소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제 만족하시냐”고 물었다. 그는 “이 수사 덕분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일약 대권주자로 자리잡았다. 가족전체의 도륙을 도모하는 기획과 그에 따른 대단한 정치적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아무 잘못이 없는데 검찰 수사로 누명을 썼다는 듯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건 잘못이다. 입시비리는 자기들이 다 저질렀는데 남탓만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보통사람이라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일이다. 이런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건 비뚤어진 특권의식 때문이다. 공정하지 못한 입시비리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언행이다.  민주당이 조 전 장관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선 것도 볼썽 사납다. 김건희씨 공정수사를 얼마든지 촉구할 수는 있댜. 하지만 법적 판단이 끝난 조민씨 문제와는 본질이 다르다. 이 두 사안을 한데 뭉뚱그려 같은 잣대로 비난을 퍼붓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사법부 판단까지 무시한다면 책임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왜 선거에 졌는지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조 전 장관도 딸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자업자득이다. 분하고 억울하다는 식의 궤변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아빠 찬스’를 쓸 수 없었던 수많은 국민들에게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게 도리다. 반성과 사과를 못하겠다면 적어도 남탓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 빚투·영끌로 늘어난 빚… 가구당 1억 164만원, 월급의 20배 수준

    빚투·영끌로 늘어난 빚… 가구당 1억 164만원, 월급의 20배 수준

    코로나19 확산 이후 ‘빚투’와 ‘영끌’이 늘면서 직장인·자영업자 등 경제활동가구의 평균 부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임금근로자를 중심으로 소득이 소폭 증가했지만 빚이 더 큰 폭으로 늘면서 평균 부채는 월평균 소득의 20배에 달했다. 신한은행이 5일 발간한 ‘2022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활동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 164만원으로 조사됐다. 2017년부터 매년 발간돼 온 이 보고서는 지난해 9∼10월 20∼64세 경제활동자 1만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빚이 있는 가구의 비율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52.8%에서 2020년 62.5%로 급증했고, 지난해 66.7%까지 높아졌다. 빚을 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521만원이다. 2020년 빚의 규모는 소득의 17배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소득은 3%, 빚은 16.1% 증가하면서 감당해야 할 빚의 크기가 더 커졌다. 특히 최근 1년 새 주택을 구입한 20~30대는 매달 평균 80만원을 빚을 갚는 데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조사 대상가구 중 최근 1년 사이 주택을 구입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로, 1년 전인 2020년(6.2%)보다 많았다. 구입한 주택 유형은 아파트가 84.1%로 가장 많았고, 주택 구입자 중 20대(6.4%)와 30대(34.7%) 비중이 40%를 넘었다. 20~30대가 구입한 주택은 평균 가격이 3억 6446만원으로 전년보다 3352만원 비싸졌다.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은 2020년 1억 1765만원에서 지난해 1억 6720만원으로 4955만원 증가했다. 지난해 집을 살 때 대출을 이용한 비율도 10명 중 9명꼴로 1년 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앞으로 17년 동안 갚아야 집을 살 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 집 마련뿐 아니라 생활자금 등 각종 이유로 빚이 증가하면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빚을 갚는 데 쓰는 돈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 부채 상환액은 45만원으로 소득의 9.1%를 차지했다. 또 2020년 109만원이었던 월평균 저축·투자액이 지난해 103만원으로 줄면서 예비자금은 86만원에서 103만원으로 증가했는데, 40~60대는 늘어난 예비자금을 주로 빚을 갚는 데 썼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저소득·고소득 가구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 격차도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93만원으로, 전년보다 15만원 증가했다. 다만 소득 회복은 상위 40% 가구에서만 이뤄졌고, 나머지 가구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저소득층은 덜 벌고 고소득층은 더 벌면서 상위 20% 가구(948만원)와 하위 20% 가구(181만원)의 소득격차는 5배가 넘었다. 또 지난해 상위 20% 가구의 평균 자산은 10억 3510만원으로 전년보다 1억 2586만원 증가했지만, 하위 20% 가구는 1억 2254만원으로 1913만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 경제활동가구 평균 빚은 월급의 20배…“집 산 2030 빚 갚는데 17년”

    경제활동가구 평균 빚은 월급의 20배…“집 산 2030 빚 갚는데 17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 늘면서 직장인·자영업자 등 경제활동가구의 평균 부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임금근로자 중심으로 소득이 소폭 증가했지만, 빚이 더 큰 폭으로 늘면서 평균 부채는 월평균 소득의 20배에 달했다. 신한은행이 5일 발간한 ‘2022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활동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 164만원으로 조사됐다. 2017년부터 매년 발간되는 이 보고서는 지난해 9∼10월 20∼64세 경제활동자 1만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빚이 있는 가구의 비율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52.8%에서 2020년 62.5%로 급증했고, 지난해 66.7%까지 높아졌다. 빚을 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521만원으로 조사됐다. 1년 전만 해도 부채 규모는 소득의 17배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소득은 3%, 부채는 16.1% 증가하면서 감당해야 할 빚의 크기는 커졌다.특히 최근 1년 새 주택을 구입한 20~30대는 매달 평균 80만원을 빚을 갚는데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20~30대 가운데 최근 1년 새 주택을 구입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7.2%로, 1년 전(6.2%)보다 많았다. 구입한 주택 유형은 아파트가 84.1%로 가장 많았고, 구입 가격은 평균 3억 6446만원으로 1년 전보다 3352만원 비싸졌다. 이에 따라 주택을 구입하면서 받은 대출액도 1년 전 1억 1765만원에서 지난해 1억 6720만원으로 4955만원 증가했다. 집을 살 때 대출을 이용한 비율도 10명 중 9명꼴로 1년 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전만 해도 집을 살 때 대출을 이용한 비율은 75.1%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을 구매한 20~30대는 앞으로 17년동안 갚아야 집을 살 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 다만 영끌한 20~30대의 선택은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구입 당시 가격은 평균 3억 6446만원이었지만, 조사 당시 기준으로 이들이 구입한 주택 가격은 평균 5억 651만원까지 치솟았다. 내 집 마련뿐 아니라 생활자금 등 각종 이유로 빚이 증가하면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빚을 갚는 데 쓰는 돈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체 가구의 월평균 부채 상환액은 45만원으로 전체 소득의 9.1%를 차지했다. 또 1년 전 109만원이었던 월평균 저축·투자액이 지난해 103만원으로 줄면서 예비자금은 86만원에서 103만원으로 증가했는데, 40~60대는 늘어난 예비자금을 주로 빚을 갚는 데 썼다.
  • “괴물보다 식물 대통령 택하겠다” 이낙연 측근 정운현, 尹 지지 선언

    “괴물보다 식물 대통령 택하겠다” 이낙연 측근 정운현, 尹 지지 선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측근 인사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21일 “예측 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정 전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윤 후보로부터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당혹스러웠지만, 결국은 수락했다. 차악(次惡)을 선택한 셈”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윤 후보가) 국정 경험이 부족하고 무식하다는 지적도 있고, 또 ‘검찰 공화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면서도 “그러나 대통령이 만물박사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리더로서의 자질 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겨냥해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후보, 보통사람의 도덕성만도 못한 후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보가 아무리 좋은 공약을 쏟아낸들 그 약속은 믿을 수 없다”며 “진보 진영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이 ‘전과4범·패륜·대장동·거짓말’로 상징되는, 즉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정 전 실장의 행보에 민주당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위원장이 (정 전 실장을) 말리려고 3번 전화했다가 안 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 위원장 비서실장인 이병훈 의원은 페이스북에 “안타깝고 실망스럽다”면서도 “정 전 실장은 (이낙연 경선캠프 해단식 후) 이 위원장을 대변하거나 활동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이낙연 측근 정운현 尹 지지에 수면 위로 올라온 ‘순천 유세’

    이낙연 측근 정운현 尹 지지에 수면 위로 올라온 ‘순천 유세’

    국민의힘 “선구적 선택” 환영더불어민주당 “후배 보기 부끄러운줄 알라” 주장“순천 유세 계기로 정 전 실장, 마음 정했다” 분석도이낙연측 정 전 실장과 ‘선긋기’국민의힘은 2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한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게 “선구적 선택”이라며 환영했다. 정 전 실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측근 인사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캠프 공보단장으로 활동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8년 전 정운현 선생님과 우연한 기회에 찍었던 방송이 기억난다”며 “그 때도 선생님께 언젠가 보수정당도 전라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얻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제 그 틀이 마련되는 것 같다”고 했다. 윤기찬 선대본부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운현 전 이낙연 경선 캠프 공보단장의 윤 후보 지지 선언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진영이 아닌 후보의 자질과 국민을 선택한 정 전 실장의 선구적 선택을 환영하며 국민의힘과 윤 후보는 국민의 통합과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실망스럽다”, “후배들 (보기) 부끄러운줄 알라”는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 전 단장 지지선언을 두고 “전날 이 위원장에서 전달받아 어제 알았다”며 “이 위원장이 세 번이나 전화해서 (윤 후보 지지 선언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자리 때문에 가는 건 어쩔 수없다”며 “우리 쪽에서 별로 비중있는 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위원장은 정 전 단장이 자신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어 지지 선언 파장을 고려, 만류했던 것으로 읽힌다. 이 위원장 비서실장인 이병훈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 전 실장의 행보가 안타깝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이낙연 경선 캠프는 경선이 끝난 후 해단식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정 전 실장은 그 이후에 이낙연 위원장을 대변하거나 활동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또 “사전에 논의한 바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드린다”고 강조했다.이 의원은 이날 언론 통화에서 “지난 18일 순천 유세에서 이 총괄선대위원장이 이 후보 지지 발언을 하는데 이 후보가 온다고 갑자기 음악을 틀어버린 사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무자의 실수인데 해당 영상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퍼지며 이 총괄선대위원장 지지자들의 반발이 커졌다”며 “정 전 실장은 이 사건을 빌미로 결단을 내린 뒤 지난 19일 이 총괄선대위원장에게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정운현씨 잘 가시오”라며 “많이 배고프셨나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정 전 실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윤 후보를 향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제 저는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며 “윤 후보를 도우려고 한다. 최근 양쪽(이 후보·윤 후보)을 다 잘 아는 지인의 주선으로 윤 후보를 만났다. 윤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혹스러웠지만 결국은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후보, 보통사람의 도덕성만도 못한 후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보가 아무리 좋은 공약을 쏟아낸들 그 약속은 믿을 수 없다. 덜 익은 사과는 익혀서 먹을 수 있지만 썩은 사과는 먹을 수 없다”며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더러는 (제 결정을) 비난하실 것”이라면서도 “이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듯이 제게는 윤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타인 선택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나 역시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 “괴물보다 식물” 택한 정운현에 이낙연측 ‘당혹’

    “괴물보다 식물” 택한 정운현에 이낙연측 ‘당혹’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측근 정운현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尹 지지 의사” 표명이낙연측 “개인 일탈” 선긋기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측근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2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국무총리 재임 시절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낙연 당시 후보 캠프 공보단장을 맡아 직무를 수행했다. 정 전 실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20대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입장과 소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제 저는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며 “윤 후보를 도우려고 한다. 최근 양쪽(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 후보)을 다 잘 아는 지인의 주선으로 윤 후보를 만났다. 윤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혹스러웠지만 결국은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당내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캠프의 공보단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이 전 대표의 경쟁자였던 이재명 후보에 대한 강도높은 공개 비판도 했다. 그가 이 총괄선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만큼 그의 ‘윤석열 지지 선언’은 당내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실장은 “도덕성과 개혁성을 겸비한 진보 진영의 명망가들이 ‘전과 4범-패륜-대장동-거짓말’로 상징되는, 즉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분들이 ‘이재명 지지는 선(善), 윤석열 지지는 악(惡)’이라고 강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천박한 진영논리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후보, 보통사람의 도덕성만도 못한 후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보가 아무리 좋은 공약을 쏟아낸들 그 약속은 믿을 수 없다. 덜 익은 사과는 익혀서 먹을 수 있지만 썩은 사과는 먹을 수 없다”며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고 강변했다. 또한 “더러는 (제 결정을) 비난하실 것”이라면서도 “이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듯이 제게는 윤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타인 선택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나 역시 그들의 (이 후보 지지) 선택을 비난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 전 실장은 또한 “케케묵은 진영논리, 어줍잖은 진보 인사 허세는 과감히 떨치겠다”며 “오해, 비난, 미움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뒤돌아보지 않고 범처럼 대차게 나아가겠다”고도 했다. 정 전 실장의 지지 선언을 두고 ‘돌발’ 행동이란 시선도 있다. 이 때문에 이 총괄선대위원장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정 전 실장에 대한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 총괄선대위원장 측 관계자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언론 통화에서 “지난 18일 순천 유세에서 이 총괄선대위원장이 이 후보 지지 발언을 하는데 이 후보가 온다고 갑자기 음악을 틀어버린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무자의 실수인데 해당 영상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퍼지며 이 총괄선대위원장 지지자들의 (이재명 후보측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며 “정 전 실장은 이 사건을 빌미로 (윤 후보 지지에 대한) 결단을 내린 뒤 지난 19일 이 총괄선대위원장에게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내막을 전했다. 이 의원은 “이 총괄선대위원장은 ‘그러면 되겠느냐’며 아주 간곡히 만류했는데 (정 전 실장이) 요지부동이었다”며 “정 전 실장 개인의 일탈”이라고 표현했다.
  • 이낙연 전 측근 정운현 “괴물 대통령보다 식물 대통령” 尹 지지

    이낙연 전 측근 정운현 “괴물 대통령보다 식물 대통령” 尹 지지

    이낙연 국무총리 재임시절 비서실장“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는 후보 못 믿는다”“케케묵은 진영 논리, 어줍잖은 진보 인사 허세 버려”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2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정 전 단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국무총리 재임 시절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낙연 당시 후보 캠프 공보단장을 맡아 직무를 수행했다. 정 전 실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20대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입장과 소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제 저는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며 “윤 후보를 도우려고 한다. 최근 양쪽(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 후보)을 다 잘 아는 지인의 주선으로 윤 후보를 만났다. 윤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혹스러웠지만 결국은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실장은 앞서 치러졌던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대해선 “‘사사오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를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며 “이후 (이낙연 후보) 캠프는 해산했고 저는 본래의 제 자리로 돌아왔다. 제가 도우려 했던 사람은 이낙연 후보였고 거기까지가 제 소임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간 진보 진영에서 활동해왔던 사람으로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서도 “이번에는 그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후보의 삶과 행태도 동의하기 어렵거니와 더불어민주당도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알았던 그 민주당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다만 ‘정치 신인’ 윤 후보에 대한 비판도 수용한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정 전 실장은 “윤 후보를 두고도 말이 많다”며 “국정경험이 부족하고 무식하다는 지적도 있고, 또 ‘검찰공화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저는 대통령이 만물박사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정직성, 투철한 공인의식, 리더로서의 자질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후보를 겨냥해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후보, 보통사람의 도덕성만도 못한 후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보가 아무리 좋은 공약을 쏟아낸들 그 약속은 믿을 수 없다”며 “덜 익은 사과는 익혀서 먹을 수 있지만 썩은 사과는 먹을 수 없다.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고 일갈했다. 정 전 실장은 이어 “도덕성과 개혁성을 겸비한 진보 진영의 명망가들이 ‘전과 4범-패륜-대장동-거짓말’로 상징되는, 즉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분들이 ‘이재명 지지는 선(善), 윤석열 지지는 악(惡)’이라고 강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천박한 진영논리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일침했다. 그러면서 “더러는 (제 결정을) 비난하실 것”이라면서도 “이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듯이 제게는 윤석열을 지지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타인 선택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나 역시 그들의 (이 후보 지지) 선택을 비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들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말한다”며 “이번 대선은 돌발변수가 많아 매우 유동적이다. 저는 윤 후보가 당선되도록 미력이나마 보태겠다. 보수성향 윤 후보에게 진보적 가치를 많이 충전하겠다. 쓴소리를 많이 하려 한다”고 적었다. 정 전 실장은 “케케묵은 진영논리, 어줍잖은 진보 인사 허세는 과감히 떨치겠다”며 “오해, 비난, 미움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뒤돌아보지 않고 범처럼 대차게 나아가겠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 해리포터 20주년 다큐에 왜 JK 롤링은 자료화면으로만 나올까

    해리포터 20주년 다큐에 왜 JK 롤링은 자료화면으로만 나올까

    루퍼트 그린트의 말에 따르면 “가족”이 뭉쳤는데 딱 한 사람이 빠졌다. 소설 원작자인 JK 롤링이 자료화면으로만 등장하지, 직접 얼굴 을 내밀거나 인터뷰를 통해 감회를 밝히지도 않는다.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 출간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HBO 채널에서 새해 첫날(이하 현지시간) 내보내는 특집 프로그램 ‘리턴 투 호그와트’에 대니얼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그린트 등 주요 배우들이 모두 얼굴을 내미는데 정작 원작자 롤링은 자료화면으로만 나오는 데 대해 아쉬워하는 리뷰들이 적지 않다고 영국 BBC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자신의 언급 때문에 여론을 대립하게 만든 것에 부담을 느껴 원작자를 아예 배제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역배우 출신들 외에 로비 콜트레인, 헬레나 본햄 카터, 제이슨 이작스, 개리 올드맨, 랄프 파인스 등이 감회를 털어놓는데 콜트레인 같은 배우 몇몇이 롤링 얘기를 하긴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2019년에 녹화된 인터뷰 영상으로만 등장한다. 일간 더타임스는 “사카린맛으로 달큰한 재회의 순간에 진짜 중요한 뭔가가 빠졌다”고 롤링의 부재를 묘사했다. 텔레그래프는 별점 둘을 매기며 “정작 그녀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JK 롤링은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물론 프로그램 작가들이나 영화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 HBO 채널 모두 롤링이 빠진 이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더타임스의 캐롤 미드글레이 기자는 별점 넷을 매기고도 “이건 마치 어린 왕실 가족들이 유명인들이 가득한 버킹엄 궁전에서 무릎을 맞대 앉아 있으면서 여왕님을 초대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텔레그래프의 에드 파워는 롤링이 “2019년에 찍은 한줌도 안되는 자료화면 속에서 톡 튀어나온다”면서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지 과소평가됐다. 머글(muggle, 소설에 나오는 단어로 보통사람을 가리킨다)들이라도 롤링이 다큐에 등장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그녀의 트랜스젠더 견해가 이 시리즈 스타들에 의해서도 공개적으로 일축됐음을 의미한다고 결론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이번 특집이 “차라리 사카린 맛에 물리게 하고, 카메라 렌즈에는 바셀린이 묻혀져 존 루이스 백화점의 성탄시즌 광고처럼 모호했다”고 비평했다. 그는 나아가 이 다큐가 “궁극적으로 놓친 것은 해리와 많은 독자들이 어떻게 그에게 꽂히게 됐는지에 대한 순수한 통찰이었는데 솔직히 말해, J K 롤링만이 그런 종류의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일간 메트로의 사브리나 바처럼 기분좋아지는 리뷰를 남긴 이도 있었다. 그녀는 “몇몇 주목할 얼굴들이 빠지긴 했지만 많은 배우들이 아마도 몇 년 만에 처음일지 모르게 재회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듯해졌다”고 적었다.롤링은 지난해 6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통해 ‘여성’이란 말 대신 ‘월경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미국 미디어 플랫폼 ‘데벡스(Devex)’의 한 칼럼을 비판하며 “성별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에서 여성의 살아있는 현실은 지워진다. 난 트랜스젠더를 알고 사랑하지만, 성에 대한 개념을 지우는 것은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을 의미 있게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해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일련의 블로그 글을 통해 트랜스 이슈가 성착취의 생존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며 한쪽 성별 공간만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이 일로 그녀가 살해 협박, 조롱과 야유에 시달린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그녀에 반해 래드클리프를 비롯한 삼총사들은 모두 원작자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파인즈 만이 영화 출연진 가운데 롤링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다. 어느덧 래드클리프는 서른두 살이 됐다. 첫 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서점가에 깔린 것이 2001년 11월이었다. 모두 여덟 편이 제작돼 전 세계에서 78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주 이번 특집 다큐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국내 케이블 채널 OCN은 1월 7일 밤 9시에 방영한다.
  • 故노태우 전 대통령, 9일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

    故노태우 전 대통령, 9일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오는 9일 경기 파주 통일동산에서 영면에 든다. 2일 유족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안장식을 9일 오후 2시 파주시 통일동산 지구 내 동화경모공원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49재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파주 검단사에서 진행된다. 유족 측은 “아버지께서 잠들기를 원하셨던 곳, 아버지께서 재임 시 실향민을 위해 조성했던 곳, 북녘과 임진강이 바라보이는 통일동산 내 동화경모공원으로 유해를 모시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분단된 남북이 하나 되고 화합하는 날을 기원하시며 고인께서 편히 쉬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남북이 하나 되고 화합하는 날 기원하시리라 믿는다” 앞서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달 26일 아버지께서 작고하신 지 한 달, 그리고 나흘의 시간이 흘렀다”며 “그동안 어디에 모시는 게 좋을 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면서 평소의 아버지답게 국가와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길을 택하려고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주시와 파주시민의 뜻에 따라 아버지를 통일동산에 위치한 동화경모공원에 모시려고 한다”며 “안장일은 최대한 준비가 되는 대로 곧 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곳에서 보통사람을 표방하던 고인께서 실향민과 함께 분단된 남북이 하나가 되고 화합하는 날을 기원하시리라 믿는다”며 “조언과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파주시장님과 파주시 관계자, 시민단체,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국가장을 엄수해 주신 정부와 장례위원회에도 다시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동화경모공원은 이북 도민의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통일동산 내에 조성된 묘역 및 납골당 시설이다. 파주시도 유족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고인이 파주에 임시 안장 된지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파주시는 국가장례위원회 및 유족분들과 고인의 묘역 조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다”며 “고인이 영면하실 동화경모공원은 자유로와 임진강을 마주하고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라고 밝혔다. 이어 “파주시는 안장절차에 최대한 협조하고 이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 수도 파주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 노태우 전 대통령 장지, 파주 동화경모공원 결정

    노태우 전 대통령 장지, 파주 동화경모공원 결정

    지난달 26일 별세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장지가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지구 내 동화경모공원으로 결정됐다. 아들 노재헌 변호사와 최종환 파주시장은 29일 노 전 대통령 장지를 이같이 결정했다고 각각 밝혔다. 노 변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난달 26일 아버지께서 작고하신 지 한 달, 그리고 나흘의 시간이 흘렀다”면서 “그동안 어디에 모시는 게 좋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는 “남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신 유지를 받들고, 국가와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길을 택하려고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변호사는 “안장일은 최대한 준비가 되는 대로 곧 정해질 것”이라며 “이곳에서 ‘보통사람’을 표방하던 고인께서 실향민들과 함께 분단된 남북이 하나 되고 화합하는 날을 기원하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는 또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파주시 관계자, 국가장을 엄수해 주신 정부와 장례위원회에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최 시장도 이날 낸 입장문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장지를 통일동산 지구 내 동화경모 공원이라고 확인했다. 최 시장은 “고인이 영면하실 곳은 자유로와 임진강을 마주하고 있으며,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로써 이북5도민과 파주시민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라 그 의미가 한층 더 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화경모공원은 이북 도민의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1995년 통일동산 지구 내 조성됐다. 유족들은 고인의 생전 남북 평화통일 의지를 담아 파주 통일동산을 장지 희망지로 여러 차례 거론했다. 노 전 대통령이 최종 안장될 곳은 동화경모공원내 맨 위쪽 전망휴게실 옆 부지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한강과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이 육안으로 보인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각하·전하·폐하의 호칭/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각하·전하·폐하의 호칭/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지금 대통령 후보들 간의 경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동안 대통령을 각하라 칭하기도 했다. 각하와 버금가는 호칭 중 전하, 폐하가 있다. 셋의 공통점은 최고 존엄의 자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그럼 이들 호칭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다름 아닌 궁궐의 전각 명칭에서 비롯됐다. 궁궐의 전각은 그곳에 거처하는 주인과 용도에 따라 서열과 이름을 8등급으로 나눠 건물 이름 끝에 전(殿)ㆍ당(堂)ㆍ합(閤)ㆍ각(閣)ㆍ재(齋)ㆍ헌(軒)ㆍ루(樓)ㆍ정(亭) 자 등을 붙여 불렀다. 근정전이니 대조전이니 인정전처럼 전 자가 들어가는 건물은 왕과 왕비의 공적, 사적 공간이다. 당은 임금 아들의 공간이고, 합과 각은 전과 당의 부속건물이다. 재는 왕실 가족의 생활공간이고, 헌은 별당과 같은 휴식공간을 이른다. 루는 2층짜리, 정은 단층짜리 휴식공간을 말한다.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서 황제는 폐하, 왕은 전하, 세자는 저하, 대신을 각하, 장신(將臣)을 휘하 또는 막하(幕下), 선비는 좌하(座下)라고 했다. 실학자 성호 이익도 ‘성호사설’에서 “천자는 폐하, 왕은 전하, 대부(4품 이상)는 대하(臺下) 혹은 절하(節下)ㆍ합하(閤下)라 했다. 이는 뜰 위에 전이 있고, 전 안에 각이 있으며, 합 안에 좌가 있는데, 지극히 존중한 상대를 직접 부를 수 없기 때문에 그 앞에 있는 좌우 집사를 세워 부르도록 한 것이다. 상대의 지위를 상징하는 글자와 우러러본다는 하(下)가 결합한 것이다. 이처럼 건물 주인의 신분과 직위에 따라 부르는 호칭을 달리해 부른 것은 주체까지 가지 못하고 그 아래에서 엎드려 아뢰거나 뵙는다는 뜻이다. 특히 황제를 폐하라 칭한 것은, 폐는 섬돌 ‘폐’ 자로, 궁전의 섬돌 층계 아래라는 뜻이다. 천자는 지극히 높은 상대로 감히 직접 부를 수가 없기 때문에 섬돌 밑에 선 집사나 호위병을 불러 고한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그 거리는 점점 멀어져 뜰까지 내려온다. 왕도 폐하의 호칭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높기 때문에 ‘전’ 아래에 있는 자를 불러 고한다는 뜻으로 전하라 한 것이다. 왕을 알현할 때 반드시 내시나 상궁을 통해 고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은 ‘전’보다 한 단계 낮은 ‘각’에서 집무를 본다 하여 각하라 한 것이다. 그리고 장군은 장막 아래 있다 하여 ‘휘하’ 또는 ‘막하’라 불렀으며, 허물없이 막역한 동년배는 족하(足下)라 불렀다. 족하란 발이 직접 자리에 닿고 신체 부위 중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친한 동년배를 이른다. 한때 대통령을 지칭했던 ‘각하’는 왕을 칭하는 ‘전하’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고려 때의 각하는 문하시중과 평장사, 중추원 재상 및 6부 상서를 부르는 존칭으로 쓰였고, 조선시대는 정승과 판서와 같은 대신들을 가리키던 호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총리, 장관과 군의 장군들을 각하라 불렀고, 대통령 호칭을 처음 쓴 것은 1881년이다. 각하를 대통령(Mr. President)과 같은 국가원수 의미로 쓰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이다. 각하의 의미를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붙이도록 해 고관들에게 붙이던 각하 호칭은 사라졌다. 이후 보통사람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위적이라 해 각하란 호칭을 쓰지 말도록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각하라는 표현을 금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는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님’으로 부르게 됐다. 각하 대신 대통령에 님 자를 붙인 호칭은 왠지 어색하다. 마치 존칭인 전하나 폐하라는 2인칭에 님 자를 붙여 전하님, 폐하님이라 칭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각하라는 대통령의 호칭은 곧 대통령을 장관급으로 격하시키는 꼴이다. 판서나 장관급에 붙이던 각하의 호칭을 두고 권위적이다 위압적이라 한 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 칠레 사상 첫 트랜스젠더 의원 탄생…96년생 학생운동가

    칠레 사상 첫 트랜스젠더 의원 탄생…96년생 학생운동가

    남미 칠레에서 사상 첫 트랜스젠더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학생운동가 겸 활동가로 활동해온 에밀리아 스치넬데르(25)가 21일(현지시간)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당선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스치넬데르는 "오랜 페미니스트 투쟁 끝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면서 "겸손하고 영예롭게 역사상 첫 트랜스젠더 의원직을 수행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날 칠레는 대통령 1차 선거와 국회의원을 부분 교체하는 중간선거를 동시에 치렀다. 하원은 155명 의원 전원, 상원은 50명 의원 중 27명이 새롭게 선출됐다. 1996년생으로 학생운동 리더로 활동해온 스치넬데르는 '보통사람들당' 공천을 받아 진보 성향의 선거연합 '광범위한 전선'의 후보로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10선거구에서 하원후보로 출마했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SNS를 통해 소감을 밝힌 스치넬데르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날이었다"면서 "한편으론 증오가 커졌지만 또 한편으론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대통령 1차 선거에서 극우파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걸 두곤 증오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당선에 대해선 희망이라는 표현으로 심경을 피력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랜스젠더 스치넬데르의 당선에 칠레 성소수자(LGBT) 사회는 환호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동성애해방운동'은 성명을 내고 "성소수자들이 탁월한 능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의회에 입성하게 됐다"고 축하인사를 전했다. 이번 선거에서 칠레는 성소수자 당선자 세 명을 냈다. 트랜스젠더 스치넬데르 외에도 공개적으로 자신을 양성애자라고 밝힌 마르셀라 리켈메 알리아가,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카밀라 무산테 물레르가 당선을 확정지었다. 세 사람은 내년 3월 공식 취임해 의정활동을 시작한다. 동성애해방운동의 대변인 다니엘라 안드라데는 "공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성적 취향이 불신의 이유나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이제 구시대적 편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칠레에서 사상 첫 성소수자 의원이 배출된 건 지난 2013년이었다. 커밍아웃한 게이 클라우디오 아리아가다 후보가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게 사상 첫 사례였다. 동성애해방운동은 "남자에서 여자로, 1명에서 3명으로 (당선자가) 바뀌고 늘어난 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 “로봇 패대기나 치지말라”...진중권, 이재명 ‘두둔’ 이승환에 한마디

    “로봇 패대기나 치지말라”...진중권, 이재명 ‘두둔’ 이승환에 한마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로봇 학대 논란’을 옹호한 가수 이승환을 향해 “사람들 보는 앞에서 패대기만 치지 말라”고 비꼬았다. 3일 진 전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승환 주장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밥을 주든 안 주든 알아서 하시되, 사람들 보는 앞에서 패대기만 치지 마시라”며 “꼭 하셔야겠다면 혼자 계실 때 하시라”고 지적했다. 이승환 “전기개 11년 밥 안 줘, 죄책감 없다” 앞서 이승환은 지난 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11년 동안 백돌이 밥(전기) 안 줬음. 죄책감, 측은함 1도 없이 로봇의 허기짐에 감정이입 못하는 난 #사이코패스?”라며 ‘#로봇학대’ ‘#끝판왕’ 등의 해시태그를 붙여 이 후보를 두둔했다.이재명 “자세복귀능력 있대서 넘어뜨린 것” 이는 이재명 후보가 지난달 28일 ‘사족보행 로봇’을 살펴보던 중, 테스트하기 위해 로봇 몸통을 거세게 밀어 넘어뜨린 장면을 보고 일부 네티즌이 ‘로봇학대’ 논란을 제기한 것에 대한 발언이다. 해당 영상이 논란이 되자 이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임무 수행 중 외부충격을 견디고, 넘어진 후 자세를 복원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로봇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넘어뜨린) 로봇은 넘어져도 자세복귀능력이 있다고 해서 추격테스트에 이어 전도테스트로 넘어뜨려 본 결과 덤블링으로 훌륭하게 원자세복귀를 했다. 칭찬받을 성능이었고 칭찬드렸다”고 덧붙였다. 이어 “로봇 테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야 그럴 수 있겠다”면서도 일부 편집된 장면을 보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스테이크 먹었더니 ‘식당에서 칼 휘둘렀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가 테스트에 나섰던 로봇은 잠시 뒤 다시 작동을 재개했다. 이 후보의 대변인을 맡은 박찬대 의원도 해당 논란에 대해 “(로봇이) 어떤 험한 환경에서도 사실은 복원 능력이 되게 중요하다는 사전 설명을 들었다”며 “(이 후보가) 그 말을 믿고 아이처럼 정말 확 넘어 넘어뜨렸던 것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서…”라고 두둔했다. 또 “오히려 그 연세에 그 정도 호기심과 적극성을 가진 것을 좋게 보면 좋게 볼 수 있는데 단순하게 그냥 로봇을 넘어뜨렸다는 것만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너무 단견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진중권 “기본적으로 감정이입 능력의 문제” 이에 진 전 교수는 “기본적으로 감정이입 능력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보스턴다이내믹스에서 로봇 개를 발로 차는 영상을 공개했을 때, 커다란 항의와 분노의 물결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며 “개발자들이야 로봇을 혹독한 조건에 몰아넣고 가혹하게 학대하는 실험을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살아있는 개와 똑같이 행동하는 존재가 학대당하는 모습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인들은 대부분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한 감정이입의 능력이 거의 본능처럼 몸에 코딩되어 있다”며 “이재명 후보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그 역시 자기들처럼 감정이입의 능력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는 당연한 기대가 갑자기 깨진 데에 대한 당혹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로봇을 생명처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소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문 대통령은 보통사람들과 이 능력을 공유하고 있었다”며 “문재인과 이재명이라는 두 인성의 차이는 바로 이 감정이입의 능력에 있다. 죽은 사물까지도 생명으로 여겨 그 안으로 감정을 투사하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동물 학대자들처럼) 살아있는 생명까지도 사물로 보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 [노태우 별세] 한국 정치 뒤흔든 ‘6·29 선언’과 ‘3당 합당’

    [노태우 별세] 한국 정치 뒤흔든 ‘6·29 선언’과 ‘3당 합당’

    거센 국민 저항에 무릎 꿇고 6·29 선언대통령 직선제 개헌, 언론기본법 폐지김영삼·김대중 단일화 무산에 노태우 당선‘3당 합당’으로 민자당 출범…다음 총선서 과반 실패26일 별세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과 6공화국 성립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여줬다. 대통령 7년 단임 막바지로 치닫던 전두환 5공 정권은 체육관에서 ‘거수기’ 투표로 뽑던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주장했다가, 거센 국민의 저항 앞에 무릎을 꿇고 쿠데타 2인자이자 육사 11기 동기이던 노 전 대통령을 통해 1987년 6월 이른바 6·29 선언을 내놓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뒤 1981년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으로 대통령에 뽑혔다. 7년 임기를 마감하는 가운데 1987년 당시 신군부가 주도하는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지명했다. 그러나 그해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 아래 직선제 개헌을 앞세워 들불처럼 일었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결국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고자 1987년 6월 29일 발표한 6·29 선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 복권 및 시국 관련 사범 석방 ▲언론기본법 폐지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등이 골자였다.한국 대통령중심제의 근본을 뒤집어놓은 6·29 선언으로 그해 10월 ‘대통령 직선·5년 단임’의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공포되어 5공이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12월 16일 대통령선거에서 야권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끝내 무산되면서 민정당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이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 결과 1988년 제6공화국으로 불리는 민정당 노태우 정권이 출범했다. 그해 치러진 13대 총선(1988년 4월 26일)의 결과는 여소야대였다. 여소야대 구도를 등에 업은 야권을 중심으로 5공 정치권력형 비리를 조사하기 위한 ‘5공비리특위’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위한 ‘5·18 광주특위’가 13대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중심의 민정당과 야당이던 김영삼 중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중심의 신민주공화당 등 3개 정당이 이른바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하면서 국회는 여대야소로 급변했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소수 야당으로 고립됐다. 민자당은 노 전 대통령이 총재를, 김영삼·김종필·박태준 등 3인이 대표위원을 맡으며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된 가운데, 공천과 당직 문제를 둘러싼 끊임없는 계파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결국 민자당은 그다음 14대 총선(1992년 3월 24일)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또 3당 합당은 지역주의를 심화하고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앞서 대선 후보시절인 1987년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 직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몸을 낮춰 당선됐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에는 계엄 상황에 대비해 반 정부 인사목록을 만들어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로 하여금 사찰하게 하고, 유사시 전원 검거한다는 ‘청명계획’을 세웠다. 이후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이 밝혀져 역풍을 맞았다. 또 재임 시절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해 1500여명의 교사를 무더기로 파면·해임해 학생 운동권의 시위를 촉발하기로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비민주적 행보는 군인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과 맞물려 노태우정권이 군부독재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근거가 됐다.
  •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육사에서 전두환과 운명적 조우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씨와 모친 김태향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가 결혼한지 8년 만에 태어나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이 일제시대 면서기로 일한 덕에 여유있는 생활을 누렸지만, 노 전 대통령이 7살 되던 해 부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았다.  대구공업중학교(대구공고) 항공과에 입학한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투병 생활을 거치며 의사의 꿈을 갖게 되고, 경북중학교 4학년(학제 개편 이후 경북고 1학년)으로 편입한다. 편입한 해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았지만 5학년부터는 상위권을 유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6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지원해 군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헌병학교 9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헌병으로 근무한 1년 동안 2등 중사(현재의 상병)까지 진급한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다. 이곳에서 그는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쓰면서 단순한 육사 동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게 된다. 육사 졸업 4년 뒤 육사 동기인 김복동의 동생 김옥숙과 결혼한다. 월남 파병을 다녀오고 제9공수여단장, 제9보병사단장 등 요직을 거쳤다. 참모총장 수석보좌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보직을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는 등 그의 뒤를 따랐다. 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2·12 쿠데타’로 이어진다.   ●12·12 쿠데타와 5·18  노 전 대통령이 속한 육사 11기가 중심이 된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 성장했다. 국가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등 수도권 지역에서 세력을 성장하던 하나회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때 전 전 대통령과 함께 핵심 세력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에서 29연대, 30연대를 강제로 출동시키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라는 죄목으로 체포해 청와대를 포위하고 국방부부터 차례대로 장악했다. 이 사건으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사실상 ‘친구’에서 ‘군신’으로 바뀌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은 다음해 5월 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 본격적인 정치 무대에 뛰어든다.  ‘12·12 쿠데타’는 노태우 정권까지 정당화 됐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 과거 청산 움직임과 함께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서게 됐다. 1997년 재판부는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7과 5·18은 내란 또는 내란목적 살인행위였다”고 판결했다.   ●5공화국의 2인자  노 전 대통령은 늘 두번째였다. 정치군인의 길을 걸었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육사 동기들의 반감을 다스리는 것을 비롯해 전 전 대통령 주변에서 도움을 줬다. 5공화국에서 주요 요직을 맡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2인자일 뿐이었다.  1980년 8월 27일 전 전 대통령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군 보안사령관직을 1년간 맡다가 이듬해 7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군에서 예편한 직후 외교안보 담당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됐고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에는 남북 고위회담 수석대표를 맡았고 이어 초대 체육부장관과 제41대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5공화국의 가장 큰 역점 사업이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1985년에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육사 동기인 권익현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을 거쳐 총재를 지냈다.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전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1인자가 될 기회를 잡는다.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인 ‘6·29선언’을 발표한다. 이에 강성 군부세력과 구별되는 온건 군부세력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의 득표율로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된다.   ●6공화국과 북방정책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앞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민족자존, 민주화합, 균형발전, 통일번영을 4대 국정기조로 내걸었지만 정권의 탄생 배경과 인적구성으로 볼 때 이러한 정책들을 실천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따랐다. ‘6공화국’이 아닌 ‘5.5공화국’이란 평가도 나왔다.  1988년 4월,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노태우 정부의 순탄찮은 운명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다. 재야인사들에 대한 복권과 해금을 단행하지만, 평민·민주·공화 야3당이 청문회를 통해 5공화국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핵심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과오를 사과하고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노태우 정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된 것은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현대중공업 파업 등을 통해 형성된 공안정국을 통해서다. 1990년에는 대통령 선언 형식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동시에 ‘1노 3김’의 분할체제를 청산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민정·민주·공화 3당은 1990년 1월 22일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합당을 선언한다. 1992년 14대 총선으로 민자·민주·국민의 3당구조가 출현하기까지 의회는 214석의 거대여당이 주도하는 사실상의 일방적 독주체제가 2년 남짓 이어진다.  노태우 정부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절차적 측면의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신장된 시기였다. 5공에 비해 입법·사법부의 자율성이 강화됐고 30년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됐다. 노동·시민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가 활성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호황’이란 우호적 대외환경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남북관계도 진전이 있었다. 그 시작은 1988년 발표된 7·7선언이었다. 6공화국 대외정책의 핵심인 ‘북방정책’의 기본지침이었던 선언을 바탕으로 중국·소련 등 사회주의권과 관개개선이 이뤄진다. 경제력과 군사·외교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권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북한과도 대화창구도 복원,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12월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비자금 투옥과 그 이후  1992년 대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에 성공적으로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10월 27일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4500억여원의 비자금 조성해 13·14대 총선자금, 부동산 위장 매입, 민정·민자당 지원 등에 사용하고 잔금 1940억원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구속기소된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의 개인비리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합작해 정치와 경제를 밀실에서 주무른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30대 재벌총수 대부분이 관련돼 재판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돼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고 1997년말 국민의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면·복권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전두환 대통령과 달리 외부활동을 삼간채 자택에 칩거하며 사실상의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10년 넘게 권부의 1·2인자 자리를 지켰던 그로선 치욕적이고 불우한 말년이었다.
  • 경기도의회 웹드라마 ‘정·이·로·운 의원생활’ 크랭크인…11월 공개

    경기도의회 웹드라마 ‘정·이·로·운 의원생활’ 크랭크인…11월 공개

    경기도의회(의장 장현국) 웹드라마 ‘정·이·로·운 의원생활’이 오는 15일 촬영을 시작한다. ‘정·이·로·운 의원생활’은 경기도의회를 배경으로 초등학교 동창생인 4명의 친구들이 각자의 삶을 살다 이후 모두 도의원이 되어 다시 만나 벌이는 이야기로 본캐는 ‘보통사람’, 부캐는 ‘도의원’인 젊은 남녀 4명의 희로애락을 담은 웹드라마다. 배우 강희(정대진 역), 유혜인(이다홍 역), 정준환(노오지 역), 임휘진(운정국 역)이 캐스팅됐다. 또 감초 역할의 조연으로는 경기도의회 홍보대사인 배우 이원하와 이가현이 함께한다. 장현국 경기도의회 의장은 “평소 경기도의회나 도의원 및 의정활동에 대해 잘 모르는 20~30대 청년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준비한 사업”이라며 “도의원이자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젊은 도의원들의 모습을 통해 도민들에게 도의회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웹드라마는 오는 11월 5일 경기도의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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