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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래드클리프 “장애가 내 인생을 바꿨다” 고백

    래드클리프 “장애가 내 인생을 바꿨다” 고백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래드클리프가 어려서부터 통합운동장애(dyspraxia)를 앓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다.”고 지난 18일 보도했다. 통합 운동장애는 뇌의 운동조직손상이 원인이며 신발 끈을 묶기 어렵거나 글씨를 잘 못쓰는 등 보통사람보다 정상적인 학습과정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래드클리프는 인터뷰에서 “때때로 이놈의 단추가 왜 이렇게 안잠기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며 밝은 어조로 자신의 증세를 설명했다. 이어 “통합운동장애로 인해 성공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 연기 입문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지난 1999년 BBC 방송국의 TV 영화 ‘데이빗 코퍼필드’의 오디션을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한 래드클리프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대스타가 됐다. 그는 “장애가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해줬고 내 인생을 바꿨다.”며 자신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통합운동장애분야의 제일인자인 뉴욕의과대학의 데이빗 영거박사는 “그가 지금까지 장애사실을 숨겨 왔다는 점이야말로 그의 연기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줬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당초 오는 11월 개봉예정이던 영화 해리포터시리즈의 마지막편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내년 7월로 개봉 날짜를 연기했다. 사진=데일리 텔레그래프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Beijing 2008] 펠프스는 이래서 특별해

    [Beijing 2008] 펠프스는 이래서 특별해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3)를 숱한 선수, 라이벌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그저 큰 키와 커다란 손발뿐일까. 키라면 팀동료 피터 밴더케이(24)도 193㎝로 똑같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남자 접영 200m에서 펠프스와 야마모토 다카시(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스티브 패리(31·영국)가 13일(현지시간) BBC에 그 비밀을 귀띔했다. 패리에 따르면 펠프스는 굉장히 특이한 체형을 갖고 있다. 지구의 운명을 맡겨도 될 것 같은 떡 벌어진 어깨, 상대를 압도하는 상체, 그러나 밑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면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가 분위기를 확 깨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를 떠올리면 되겠다. 패리는 ‘다리 밑에서 그를 보면 결코 180㎝가 안돼 보이지만 상체만 바라보면 2m가 훨씬 넘어 보인다.’고 썼다. 불균형하다싶을 정도로 다리가 짧기 때문에 취미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나 프로들도 물 속에 들어가면 똑같이 마주치는 고민을 덜 수 있다고 패리는 강조했다. 긴 다리는 물 속에서 몸을 가라앉히는 요소가 되고 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양팔을 벌렸을 때의 길이가 체격조건상 196㎝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208㎝나 된다. 어깨를 비트는 각도가 보통사람보다 훨씬 커 펠프스는 훨씬 더 큰 활갯짓으로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 패리는 이어 ‘훈련을 끝내고 물 밖으로 나오는 펠프스를 보면 그가 아침으로 뭘 먹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라며 ‘의사라면 심각한 저체중이라고 진단 내릴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또 ‘그에겐 도대체 지방덩어리란 없는 것 같으며 체지방률이 4% 정도여서 모든 힘을 스피드로 전환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펠프스는 12일 자유형 200m 시상식 뒤 얼마 안돼 접영 200m 예선에 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패리는 펠프스의 혈중젖산 수치가 5.6밀리몰로 다른 선수들(평균 10밀리몰)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운동 뒤 근육에 쌓였던 젖산이 경기 도중 빠져나가야 다시 최고의 컨디션으로 다음 경기나 훈련을 준비할 수 있는데, 펠프스는 훨씬 더 피로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것. 펠프스는 당시 인터뷰에서 “아마도 10분 정도의 여유만 주어지면 충분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단지 신체의 회복능력뿐만 아니라 고도의 정신 집중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고 패리는 덧붙였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대한민국에서 ‘오해’와 ‘진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직업 하나를 꼽아보자. 힌트. 누가 뭐래도 그들은 ‘미술관의 꽃’이다. 어지간히 눈치없는 사람도 이쯤하면 무릎을 치겠다. 그들의 이름인 즉 큐레이터(curator)이다. 큐레이터가 전시장의 마스코트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까만 정장 차림으로 우아하게 눈인사를 보내오는 그들의 자태는 오가는 관람객들에겐 더러 ‘로망’으로 꽂힌다. 덮어놓고 환상부터 불러일으키는 주체란 대목에서 많은 이들에게 ‘미술’과 ‘큐레이터’는 동의어로 다가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해가 많다. 무엇보다 그들 세계의 실상은 화려한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 여차하면 (미술관)벽에 못질까지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밥먹듯 밤샘… 기획력 못지않게 체력도 갖춰야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씨. 지난 17일 ‘프랑스 디자인의 오늘’전을 개막하기까지 근 열흘동안 그는 거의 초주검 상태로 살았다. 전시가 개막되고서도 며칠동안은 연일 야근을 했으니 제시간에 끼니를 챙겨먹는 건 사치. 이번 전시를 오픈하기까지는 첫 기획에서부터 꼬박 1년이 걸렸다. 전시에 참여한 프랑스 대표 디자이너 4인을 섭외하고 그들의 어떤 작품을 들여와야 하는지 선정하는 등의 업무가 모두 그의 책임 아래 진행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전시가 임박하면 밥먹듯 밤샘작업을 해야 하고, 급할 땐 벽에 못도 박아야 한다는 말이 빈소리가 아니다.”는 그는 “큐레이터가 기획력 못지 않게 갖춰야 할 덕목이 체력”이라고 말했다. 소소하게 오프닝 손님맞이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까지 그의 몫일 때가 많다. 작품의 위치를 일일이 정하는 건 물론이고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전시장의 조명과 온도, 습도까지도 신경써야 한다. 말 그대로 1인 10역.“백조 가면을 쓴 ‘노가다’”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큐레이터란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는 물론,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인력을 일컫는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들은 ‘학예사’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바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반적인 오류. 작품판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업화랑에는 큐레이터가 없다.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작품 및 전시를 관리하는 이들은 엄밀히 ‘갤러리스트’라고 구분해서 불러야 맞다. 지금의 국내 상황에서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업무는 딱히 선을 긋기가 어려울 만큼 잡다하다. 전시의 전체 얼개를 잡는 기획업무는 기본. 도록 만들기, 작가 섭외, 작품 선정,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거는지 전시장 세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떠맡아야 한다. ●미술관에는 큐레이터만 산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이 갖고 있는 ‘중대한’ 편견. 미술관에 큐레이터 말고 또 다른 명함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미술이 소수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보통사람들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최근 몇년새 미술관 사람들의 업무영역도 발빠르게 다양화, 세분화하고 있는 추세”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전시장을 움직이는 손은 알고보면 여럿이다. 우선, 에듀케이터. 전시의 교육적 기능을 전담하는, 미술관의 빼놓을 수 없는 전문인력이다. 전시의 전체 컨셉트를 잡아 기획하는 일이 큐레이터 몫이라면,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몫은 에듀케이터에게 있다. 미술관을 움직이는 손은 또 있다. 관람객 편에서 보자면 누구보다 살뜰히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주는 현장가이드.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동행하며 작품정보를 자세히 들려주는 주인공은 큐레이터가 아닌, 이름하여 ‘미술품 전문해설사’다. 이들이 국내 미술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박선민 사무장은 “기존의 ‘도슨트’가 무보수 자원봉사 개념이어서 전문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립미술관들이 이들을 채용키로 했다.”면서 “일반 관람객들이 거부감없이 미술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칭 미술팬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자리이기도 하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사업의 하나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제도라는 사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으므로 은퇴 교사나 예술학을 전공한 미술애호가라면 미술관 채용정보를 꼬박꼬박 챙겨볼 필요가 있다. ●왜 ‘그녀’들만? 까만 정장이 유니폼? 그래도 물음표가 찍히는 몇가지. 미술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째서 열에 아홉은 여자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홍익대 예술학과,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대구 가톨릭대 예술학과 등 큐레이터의 주요 산실들에 남자 예술학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큐레이터 하면 떠오르는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가 또 까만 정장이다. 정장, 그것도 검은 색을 챙겨입어야 하는 규칙은 물론 없다.“전시를 ‘문화 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려면 근무자의 복장이 튀지 않아야 하는 데 암묵적 동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세상을 통째로 미술에 감염시켜라” ‘갤러리 앤 더 시티’ 도시를 통째로 ‘미술관 블랙홀’ 속으로 풍덩 빠뜨리는 게 일상의 목표인 사람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는 세상을 미술에 감염(?)시키는 즐거움으로 사는 여자 넷이 날마다 뭉친다.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인 황정인 수석 큐레이터와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품 전문해설사 조영은씨. 그리고 한살아래인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다. “전시 시작하기 보름 전쯤이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요. 전시 인쇄물을 만들고, 편집 디자인도 최종 점검하고, 또 디스플레이할 작품도 들여와야 하거든요.” 황 큐레이터가 홍익대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에 들어온 건 2003년.‘큐레이터 밥’을 먹은 지는 햇수로 5년째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양강의를 나갈 정도로 야무진 그는 “조금씩 변화하는 작가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는 즐거움, 잠재력 큰 무명작가들을 발굴해내는 재미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최고 매력”이라며 웃는다. 미술관의 자체 전시를 기획하는 그와 호흡을 맞추는 건 동갑내기인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우씨는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공동전시 기획을 맡는다. 이처럼 사비나미술관은 국·공립 못지 않게 체계적 인력을 구성하고 있는 곳으로 몇손가락 안에 든다. 지난해 11월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미술품 전문 해설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문해설사 1호가 된 조영은씨. 영국 버밍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디자인 역사를 더 공부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로 몇달 일하면서 일반 관람객들의 미술 궁금증을 현장에서 풀어주는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있었다.”는 그는 자원봉사 개념의 도슨트가 꾸준히 재교육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 내심 안타까웠다. 그런 차에 문제를 보완한 전문해설사를 뽑는다는 공고에 반색하며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현장의 그녀들 눈에 미술관으로 걸음한 관객들은 다 고울까. 솔직히 꼴불견도 있다. 국사 선생님이 되려 박물관 강좌를 듣다 미술관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미술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끌어내기 위해 영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시장을 그저 영어학원쯤으로 인식하는 젊은 엄마들은 보기 딱하다.”고 털어놓는다. 예술의 향취를 발견하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을 아이의 체험학습장 삼는 부모들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는 데 모두가 입을 모은다. 업무 영역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희망사항은 신기하게도 닮은꼴이다. 예산부족으로 지금의 미술관들이 엄두도 못내는 작업들을 10년쯤 뒤에는 꼭 해보는 거다.“지금으로선 큐레이터들에겐 전시 목록 말고는 남는 게 없어요. 땀흘려 기획한 전시를 국내용으로 그치지 않고 해외 교류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국내 작가들과 작품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연구소도 운영했으면 좋겠고….” 황 큐레이터의 욕심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건국 60주년] 국정철학으로 본 대한민국 약사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국정철학으로 내걸고 출범했다. 실용을 바탕에 깔고 200여개 국정과제를 수립했고, 향후 5년간 이 기조에 의해 과제들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거 정부들은 어떤 좌표를 내세워 국정을 운영했을까. 역대 정부들이 출범하면서 내세웠던 국정철학과 비전, 그에 따른 정책 추진과 간략한 평가는 곧 대한민국 정부 약사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초대 정부는 해방 이후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좌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어렵게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성공한 이승만은 ‘반공’ 및 ‘시장자유주의’를 내걸었고, 결과적으로 현대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행정부로의 권력집중, 그에 따른 독재와 장기집권은 부패로 이어졌고 결국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에 의해 수명을 다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를 국정좌표로 내세웠다.1963년 5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근대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박 대통령은 4회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해 고속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소득격차 심화, 지역개발의 불균형, 물가 폭등 등 부작용이 불거졌고, 특히 대통령 권한 극대화에 따라 정치와 경제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는 문제점을 도출했다. 전두환 정부도 경제정책면에서 ‘경제 제일주의’ 원칙을 세웠다. 다만 박정희 정권 때의 부작용을 의식한 탓인지 ‘복지’와 ‘안정’에도 초점을 맞추었으며, 실제 상당부분 국정운영에 반영했다. 그러나 군사쿠데타 주모자라는 태생적 한계에다 민주화운동 탄압, 장영자·이철희사건 등 권력형 부정사건의 빈번한 발생 등으로 ‘독재·부패정권’이란 오명을 얻었다.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권위주의 청산을 국정목표로 내세움으로써 5공과 같은 뿌리의 정권이라는 부담을 털어 내려고 한 것. 실제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행정부 견제기능이 활발해졌고,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도 향상됐다. 그러나 심각한 노사분규와 학원사태 등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수천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모금이 드러나면서 5공과 마찬가지로 ‘부패정권’이란 낙인을 면치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7공화국 대신 ‘문민정부’로 스스로를 지칭하고,‘개혁과 변화를 통한 신한국창조’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취임 초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재산등록제 도입, 하나회 해체 및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단죄 등 거침없는 개혁을 통해 90%라는 놀라운 국민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측근 비리와 한보사태 등이 이어지고,IMF구제금융 사태까지 닥치면서 초기 개혁작업은 상당부분 퇴색됐다. 김대중 정부는 50년 만에 처음 이뤄진 여야간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 주권재민 정치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국민의 정부’로 정부 성격을 규정했다. 이 시기에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고, 시민의 기본권도 상당히 신장됐다. 또 IMF사태 극복을 위해 경제문제에 국정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 성격을 진정한 국민·시민주권이라는 취지에서 ‘참여정부’로 규정했다. 노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인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는 참여정부의 5년 방향타였다.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에 방점을 두는 한편 동북아 번영·평화의 공동체 구현 등 ‘동북아시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부동산값 폭등과 경제 침체, 소득 불평등 등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바닥으로 치달은 상태에서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해외여행 시차 피로 줄이려면 굶어라

    ‘장거리 비행 전부터 16시간가량 굶으면 시차 피로(제트 래그)를 덜 수 있다.’ 일정시간 먹지 않을 경우 체내 제2의 생체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해 새로운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일광에 의해 조절되는 자연생체시계가 잠자고 깨고 먹는 주기를 조절하지만 16시간 정도 굶으면 제2의 생체시계 활동이 더 활발해진다는 주장이다. 로이터통신은 하버드 의대 클리포드 새퍼 박사가 이같은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고 22일(현지시간) 전했다. 미국에서 일본까지 비행기 여행을 할 경우 무려 11시간의 시차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몸의 생체시계는 매일 조금씩밖에 시간을 조절하지 못한다. 따라서 보통사람이 일본 시차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약 1주일이 걸린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제2 고난의 행군/ 구본영 논설위원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 평양이나 금강산 등 북한의 거리나 들판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구호다. 북측의 이른바 ‘혁명적 낙관주의’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수사이다. ‘혁명적 낙관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이 최종 승리할 것이라는 신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조어다. 여하한 곤경에서도 영도자를 믿고 견뎌내라고 북한주민들을 독려하는 메시지다. 한마디로 일제하나 한국전 당시 풍찬노숙하며 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혁명 1세들의 길을 따르라는 얘기다. 북측이 올 들어 혁명적 낙관주의를 고취하는 캠페인을 다시 시작한 인상이다.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얼마 전 1면 사설에서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는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을 새삼 강조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이 당면한 처지가 그만큼 엄혹함을 말해준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넷판 최신호(26일자)도 북한의 올해 식량난이 최근 사이클론 피해를 겪고 있는 미얀마와 마찬가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다.1995∼98년 ‘고난의 행군’ 당시 적게는 수십만명에서 많게는 300만명의 북한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작황이나 비축분 등 북측의 식량사정은 그 때보다는 낫다고 한다. 미국 정부도 엊그제 다음달부터 50만t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뉴스위크는 “(올해 북한주민의)아사는 거의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약속한 지원규모로는 북측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피할 없게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뉴스위크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은 쓰촨성 대지진으로 지원 여력이 없다. 일본도 자국민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규모 지원에 나서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이 기댈 곳은 결국 남쪽밖에 없는 셈이다. 북한 지도부가 혁명적 낙관주의라는 허장성세를 버리고 남측에 진솔하게 SOS를 보내야 할 이유다. 물론 동족인 우리도 인도적 지원에 조건을 다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하겠다. 가장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은 북한 지도층이 아니라 배급경제의 혜택에서 소외된 북한의 보통사람들일 터이기에….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보통사람 사소한 이야기 뽑아 엮으니 ‘역사’되다

    보통사람 사소한 이야기 뽑아 엮으니 ‘역사’되다

    “내가 돈을 내고 표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나를 힐끔 올려다본 판매원이 표를 잽싸게 가져가더니 극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더구나. 내가 흑인이라서 영화표 판매를 거부했던 거지. 나는 그날 밤 내내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다녔지.” 2005년 75세의 할아버지 샘 하몬은 12세의 손자 에즈라 오메이에게 젊은 시절 자신을 분노케 했던 일화를 들려줬다.2차 세계대전 당시 15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해 나라를 위해 싸웠던 그에게 군대는 흑인이라며 백인 장교의 하인 역할을 맡겼고, 미국 수도이자 민주주의의 심장 워싱턴은 극장 출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 나라가 나에게 다른 나라와 싸우라고 하면서 ‘너는 영화를 볼 만한 시민이 못 된다.’고 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美프로젝트 단체가 수집한 일반시민의 라이프 스토리 할아버지가 ‘인생에서 겪은 가장 슬픈 경험’을 담담하게 회고한 곳은 ‘스토리코어스’(StoryCorps)의 인터뷰 부스에서였다. 스토리코어스는 2003년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 채록해온 미국의 프로젝트 단체다. 뉴욕 그랜드센트럴역 등 시내 곳곳에 부스를 설치해 부스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했고, 수집한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방영했다. 원할 경우엔 직접 집이나 일터로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영웅 아닌 일반인에게 역사 찾아주는 직업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는 스토리코어스의 창립자인 데이브 아이세이가 지금까지 녹음한 1만여회의 인터뷰에서 32가지 이야기를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이야기, 자해가 습관화돼 칼로 손목을 그은 소녀,9·11테러로 약혼자를 잃은 남자 등 울고 웃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우리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스토리코어스의 작업은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찾아 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역사가들은 소수 선택된 영웅들의 이야기에만 역사의 위상을 부여했다. 스토리코어스는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여정 또한 역사로 바라본다. 거대 사건과 거대 담론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빛이 바랬던 개인의 역사가 들어주고 기록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 생기를 되찾는다.‘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가 지향하는 ‘역사의 개인화’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다.1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서울은 깊다/전우용 지음

    서울은 깊다/전우용 지음

    밥처럼, 공기처럼 익숙한 고유명사 서울. 왜 서울은 ‘서울’이었을까. 서울을 이루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의문을 품는 게 사치일 터이다. 분초를 쪼개 가며 스스로 경쟁의 울타리 속으로 몸을 던져야 아슬아슬 살아 남는 서울, 서울사람들이다. 우리가 먹고 숨쉬는 공간을 억지로라도 멀찍이 바라 보는 여유는 어떤가. 제목의 운치를 갈피갈피에 녹여 내면서도 서울이 품은 온갖 ‘정보’들을 쏟아 놓는 책이 ‘서울은 깊다’(전우용 지음, 돌베개 펴냄)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서울대 국사학과)한 뒤 ‘서울 정도 600년’을 맞아 세워진 서울학연구소에서 10년 넘게 서울사(史)를 연구해온 지은이는 현재 문화재 전문위원. 책은 서울을 작정하고 깊은 시선으로 돌아 봤다. 그동안 서가에 나온 건축, 근대사 같은 지엽적 시각에 머물지 않았다. 서울사와 도시이론을 두루 공부한 저자가 대도시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 큰 특장이다. 책은 들머리에서 서울의 어원부터 짚는다. 양주동의 해석처럼 ‘처용가’ 구절에 등장하는 ‘새벌’이 변했을 수도 있고, 이중환 ‘택리지’에 소개된 우스꽝스러운 속설이 진짜 어원일 수도 있다는 등의 여러 견해들을 보여 준다.‘택리지’에는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큰 눈이 녹지 않고 쌓인 곳만 따라가며 외성(外城)을 쌓았다 해서 ‘설(雪)울’이 됐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역사와 도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 시도 역사학, 인문학 등의 학제간 연구로 빚어진 풍성한 글 내용은 수월하고 흥미로운 책읽기를 보장해 준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이란 서민들에겐 팍팍한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사는 건 그 옛날 서울사람들에게도 삶의 목표였다. 한국인의 온돌 난방이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난방 연료와 취사 연료를 통합하는 방식인 온돌은 더운 날 중남부 지역민들에겐 큰 불편이었다. 여유있는 집에서는 여름철에 거처하는 ‘마루방’을 따로 놓았다. ●생태·주거 환경 등 깊고 흥미롭게 다뤄 서울의 사정은 또 달랐다. 서울주변의 산에서는 채석, 벌목이 엄격히 금지돼 있었던 것. 지맥 보호, 왕릉 후보지 및 왕의 사냥터 확보 등을 이유로 도성 주변 산에서 벌목을 금하는 지도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는 그래서 탄생했다. 조선시대 서울의 보통사람들에게 땔감은 결국 쌀과 비단으로 바꿔야 하는 귀한 물자였음이다. 책에 따르면, 행복한 삶을 은유하는 말에 “등 따습고 배부른”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중기까지 궁궐 나인들의 거처는 온돌이 아닌 마루방이어서 화로로 추위를 이겨냈으며, 학자들을 끔찍이도 아낀 세종이 성균관을 온돌로 바꿨다는 사실 등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그러나 얻는 만큼 잃는, 삶의 이치는 다르지 않았다. 조선후기 서울 개천을 막아 골머리를 썩게 했던 주범은 온돌방에 쓰인 땔감의 재. 도시민들의 욕망이 생활환경을 망치는 악순환을 엮었다는 경고도 건져 올린다. 서울의 구석구석, 책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종로의 역사는 그대로 서울의 통신교통수단의 변화와 궤를 같이 했다. 조선시대, 구한말,1960년대까지도 서울 최고 중심지였던 종로는 전차가 철거되면서 세를 잃어 갔다. 제 꾀에 스스로 넘어 간다는 ‘깍쟁이’, 기댈 곳 없는 무리란 뜻의 ‘무뢰배’,‘흥청망청’ 등이 서울과 어떤 사슬을 엮고 있는 단어들인지 엿보는 재미가 크다. 저자의 인문학적 식견이 빛을 발한다. 연산군에게 누이나 딸을 바치고 별감을 얻은 자들이 많았는데, 그때 바쳐진 미모의 젊은 여성들을 ‘흥청(興淸)’이라 불러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겼다는 것. 책의 의미는 먼 데 있지 않다. 역사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화상품으로 전락하고, 역사의 상품화가 곧 역사의 대중화로 오인되는 시대.“결코 상품화될 수 없는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美 대선 후보경선] 오바마 “난 보통사람”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엘리트 이미지 벗기에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 최대 승부처가 될 6일(이하 현지시간) 인디애나, 노스 캐롤라이나 예비선거전 승리를 위해 TV쇼에서 유머감각까지 내세우며 총력전에 나섰다. 오바마는 1일 NBC방송 ‘투데이쇼’ 인터뷰에서 “아내인 미셸과 나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존 매케인 상원의원보다 혜택을 훨씬 적게 받은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근 오바마는 ‘발언 악재’가 겹쳐 상승세가 뚜렷이 꺾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소도시 실직 노동자 계층이 총기, 종교에 매달려 위안을 삼는다.”는 지난달 6일 발언으로 힐러리, 매케인으로부터 엘리트주의자란 공격에 시달려 왔다.정신적 지주인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의 ‘갓 댐 아메리카’ 발언 논란도 지지율에 타격을 입히며 오바마 대세론을 위협해 왔다. 이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시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인디애나 슈퍼대의원 조 앤드루 등 4명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는 등 슈퍼대의원 확보 경쟁에서 힐러리를 거의 따라잡긴 했다. 그러나 오바마측은 하락하는 지지율에 잔뜩 긴장하는 기세다. 지지율 회복을 위해 오바마는 TV쇼에 출연해 유머감각을 과시하는 등 유권자 표심 다지기에 전력하고 있다. 그는 2일 방송된 데이비드 레터맨 진행의 CBS 심야 프로그램 ‘레이트쇼’에 출연했다.‘톱 텐 리스트’코너에서 ‘버락 오바마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이라는 주제로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오바마는 이 코너에서 “일리노이주 예비선거 때 실수로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을 찍었다.”“10월 이후 전혀 잠을 자지 않았다.” 등의 내용을 발표해 청중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열린세상] 미술품 거래 법체계 정비해야/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열린세상] 미술품 거래 법체계 정비해야/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개인 구매력이 증가하여 미술품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거래는 국내시장에 한정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서도 이루어진다. 그런데 골동품이나 미술품의 가격을 보면 보통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부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다. 이러한 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골동품·미술품의 가격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신기루처럼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다가 반토막 나기도 한다. 주관적으로 보면, 높은 가치를 인정할 수도 있고 전혀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골동품·미술품의 가격은 허황된 측면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골동품·미술품에서 허황된 것은 가격만이 아니라 진품이냐 가짜냐 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진품이냐 가짜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자 마음을 만족시키면 진위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건의 진위가 문제가 되는 까닭은 시장의 거래와 교환가치 때문이다. 골동품·미술품이 거래되고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라면 거래의 진정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진품이냐 가짜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우리사회에서도 골동품이나 미술품의 가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골동품의 경우에 감정집단에서 진품이라고 감정한 것도 가짜로 밝혀지는가 하면, 미술품의 경우 작가가 자기작품이 아니라고 부인하는데도 시장에서는 진품으로 결정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구매자만이 애꿎게 피해를 본다. 서화의 경우 추사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지만, 추사 작품으로 거래되는 것의 상당부분은 진품 여부에 의심을 받고 있다. 추사 글씨는 추사 당시에도 가짜가 많이 생산되었기에 현재 가짜를 만들지 않아도 옛날의 가짜가 진품으로 둔갑하여 많이 나돌아 다닐 수 있다. 문제는 골동품과 미술품의 진위 여부가 정확히 감정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감정전문가라는 사람의 경우도 무슨 근거로 전문가로 취급되는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골동품의 경우에 진위 판별은 실로 어렵지만, 서화나 유화의 경우에도 가짜를 만들기는 너무나 쉽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서화의 경우 작품을 들고 작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없으면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이는 미술품시장에 가짜가 판을 친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감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골동품과 미술품의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으면서도 이 시장이 가짜에 노출된 상황이 심각하다면 이제는 진품 여부를 판별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작품을 거래시장에 내놓는 경우에는 작품을 수록한 작품목록집을 만들게 하고, 이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게 하는 것도 그 하나의 방안이다. 그리고 골동품이나 이미 제작되어 거래되고 있는 미술품의 경우에는 그 진위를 감정할 공인된 감정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감정인의 자격을 객관화하고, 그 감정의 프로세스와 근거를 공개하여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같이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 감정인이라고 자처하거나,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거치지도 않고 진품이라고 감정하는 것은 구매자를 우롱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골동품이나 미술품의 가짜 시비가 사기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에서 이를 정확히 처리해야 하는데, 현재 골동품이나 미술품의 진위에 관련한 사건을 다룰 수사기관의 전문역량은 충분하지 않다. 미술품 시장의 규모를 고려하면, 이를 공정하게 다루고 처리할 이 분야의 전문 수사능력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골동품과 미술품의 거래를 법체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 10개월 아들 키가 1m…인도 ‘키다리 가족’

    인도에 사는 키다리 가족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미러뜨(Meerut)지역에 살고 있는 스베르타나 사인(Svetlana Singhㆍ사진 오른쪽)은 키가 218cm로, 197cm인 남편 산자이(Sanjay)와 함께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또 얼마 전 태어난 두 사람의 아들 카란(Karan) 또한 10개월 만에 키가 1m에 달해 이들은 ‘키다리 가족’이라 불린다. 아들 카란은 태어날 때부터 65cm의 신장으로 태어났다. 이는 두 살 아이의 평균 신장에 속할 만큼 큰 키다. 현재 10개월째인 카란의 키는 무려 96cm. 카란은 5살 아이가 입는 사이즈의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키와 몸집이 남다르다. 엄마 스베르타나는 “아이가 먹는 것도 자라는 것도 매우 남다르다.”면서 “아이가 한시도 배고파하지 않는 때가 없다. 요즘에는 하루에 20번 정도 식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란의 아버지 산자이는 “나의 아버지는 194cm, 장인어른은 2m에 달할 정도로 가족 모두 키가 크다. 아들도 보통사람들 보다는 훨씬 크게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너무 큰 키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버스나 자동차를 타면 내내 허리를 구부린 채 있어야 하고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이들 부부와 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산자이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바라볼 때마다 아들 카란은 해맑은 미소로 답한다.”며 “가끔 불편하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은 큰 키를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큰 키는 하늘이 준 선물이다. 아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며 “아들이 훗날 농구선수로 활약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알몸 초밥/황성기 논설위원

    10년 전 일본 청년 단체가 홋카이도에서 전국 대회를 끝내고 마련한 뒤풀이.16세 소녀 도우미의 알몸에 초밥을 올려 놓고 참석자들은 여흥을 즐겼다. 깜쪽같았던 이 일은 몇개월 뒤 주간지에 사진이 실려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관련자 4명이 체포됐다. 미성년자에게 ‘알몸 초밥’을 시킨 죄목인데 홋카이도의 청소년보호육성조례를 위반한 것이었다. 일본의 관능소설이나 성인물은 물론 심야 TV를 보면 종종 등장하는 게 뇨타이모리(女體盛り·알몸 초밥)이다. 젊은 여자의 알몸에 음식물을 놓고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속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온천지 여관에서 손님끌기로 시작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기원은 분명치 않다. 생선초밥이 에도(江戶) 시대 이후의 음식이란 점을 감안해도 그리 역사는 길지 않은 것 같다. 보통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고가라 경험자들은 술자리에서 안주 삼듯이 한다. 일본인 지인이 들려준 얘기. 세무 공무원이 모 회사의 연회에 초대 받아 갔더니 알몸 초밥 접대였다고 한다. 그 공무원 왈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즐겼다.” 먹는 사람은 그렇다 치지만 자신의 알몸이 초밥을 올려 놓는 그릇이 되는 여성의 입장은 괴롭기 짝이 없다. 혹독한 훈련을 받는데 반듯이 누워 알몸의 6곳에 달걀을 하나씩 올려놓고 몇시간을 달걀이 떨어지지 않도록 참아야 한다. 이런 훈련이 끝나 손님 앞에 나서기 전에는 초밥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다시 몇시간씩 몸을 씻는 고행까지 견뎌야 한다. 얼마 전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일식당에서 1인당 150달러짜리 알몸 초밥(body sushi)이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한 케이블방송이 여배우가 직접 젓가락으로 알몸 초밥을 시식하는 장면을 내보냈다.“대한민국 상위 1% 부자들의 생활을 알아본다.”는 취지라는데 알몸 초밥이 부자들의 애호물도 아니겠지만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송 선정주의의 극치에 지나지 않는다. 생선 초밥을 알몸에 올려놓으면 체온때문에 선도가 떨어져 맛이 없어진다. 게다가 알몸 초밥이란 게 야쿠자들이 즐기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식욕이 생겨날지 의문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사설] 재산은 상위 2%에 납세는 보통 사람

    어제 마감한 4·9총선 후보등록 결과는 엄정한 후보검증 필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첫날인 그제 등록한 후보만 보더라도 83.9%가 종합부동산세 납세 의무자였으나.57%는 국민 평균 납세액에 못 미치는 세금을 냈다. 부동산 기준으로 10명중 8명이 ‘대한민국 2%’에 들지만, 납세의무 이행은 보통사람 수준에도 들까 말까다. 대체로 재산이 많은데도 세금을 잘 안 내온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부터 18대 총선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후보들이 선관위에 신고한 내역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도덕성 흠결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첫날 등록자의 1인당 평균재산은 대기업 총수 출신인 정몽준 의원을 예외적 사례로 보고 제외하더라도 14억여원을 상회했다. 그런데도 세금 체납기록이 있는 후보가 8.7%에 이르렀다. 개중엔 군복무를 마치지 않고 전과기록까지 있는 불명예 ‘3관왕’도 몇명 끼어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모범 시민이 선량(選良)이 되어야 한다는 소박한 기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결과다. 재산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내는 후보들이 이번 총선의 주류라면 각당의 공천제도의 허점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등 주요 정당은 범죄 전과자들은 공천신청에서부터 아예 배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무소속이 아닌 공당 후보들 가운데도 전과 이력자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 전과 이력에다 이당 저당 기웃거린 철새 행보 논란을 뚫고 공천을 받았으나 돈뭉치 파문으로 낙마한 한나라당 김택기 후보가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은 공천 제도를 재정비해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에 깨끗하고 국가관이 뚜렷한 후보를 고르는 책임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눈을 부릅뜨고 온갖 잡동사니 후보들 가운데 쌀과 뉘를 가려야 한다.
  •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8) F. 루스벨트 전 美 대통령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8) F. 루스벨트 전 美 대통령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올해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발표, 시행한 지 75주년이 된다. 미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미국인들은 경제적 수렁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21세기의 루스벨트’를 고대하고 있다. 루스벨트가 제32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1933년 3월 미국의 경제상황은 최악이었다.1929년 10월24·29일 뉴욕증시의 폭락은 대공황의 신호탄이었다.1929∼1933년사이 실업률은 4%에서 25%로 급등했다. 산업생산은 35% 줄었다. 농산물가격도 60%나 급락, 농업의 근간이 흔들렸다.200만명이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로 문을 닫는 은행들이 속출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라며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1차 뉴딜(1933∼1934) 미국 역사가들은 뉴딜정책의 핵심을 ‘구호(relief), 회생(recovery), 개혁(reform)’으로 정리한다.‘100일 계획’은 1단계 구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루스벨트는 취임 닷새째인 3월9일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6월16일까지 100일 동안 15개의 긴급구제·경제개혁 법안을 마련했다. 학자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Brain Trust)’는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자유방임주의 대신 연방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그는 첫 조치로 부실은행을 정리했다. 취임 다음날인 5일 전국 은행들에 ‘휴업(bank holiday)’명령을 내렸다.9일 은행들을 재무부의 감독 아래 두고, 필요할 경우 연방은행에서 자금을 지원토록 한 긴급은행법이 통과됐다.12일 일요일 루스벨트는 유명한 ‘노변정담(fireside chats)’을 시작했다. 라디오 앞에 앉아 국민들에게 ‘은행권 위기’에 대해 설명하며 은행에 돈을 맡기라고 당부했다.3일 뒤 75%의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자 미국인들은 은행으로 몰려들었고 은행들은 빠르게 안정됐다. 연방예금보호공사(FDIC)를 설립,1인당 5000달러까지 보호해 주었다.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연방긴급구호청을 신설했다. 민간자원보호단(CCC)을 만들어 청년실업자 25만명을 고용, 전국 국립공원에 나무를 심고, 다리를 놓았다. 농가 소득을 끌어올리기 위해 농업조정국(AAA)을 만들었다. 균형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경제법이 1933년 3월14일 제정됐다. 균형예산을 달성하기 위해 참전군인 연금을 40% 삭감하고, 연방공무원 월급도 줄였다. 국방비도 대폭 삭감했다. 경제회생을 위해 공공사업청(PWA)을 신설,33억달러의 예산으로 다리·도로 등 공공시설에 투자했다.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도 그 일환이다. 댐을 건설해 홍수를 방지하고 전기를 공급하며 가장 가난하고 낙후한 테네시강 유역 일대와 남부를 현대화했다. 개혁은 경제공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장기적인 작업이다.1933년 전국산업부흥법(NIRA)의 제정으로 시동을 걸었다. 기업들에 제품가격 인상을 허용하는 대신 최저임금(시간당 20∼45센트)과 노동시간제한(주당 35∼45시간), 아동노동 금지 등을 다룬 협약을 체결토록 했다. 이 법은 노조를 활성화했다. 1933년 은행구조개혁 관련 법들이 통과됐고,1934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월가를 감독하게 됐다. ●2차 뉴딜(1935∼1936) 루스벨트는 193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상·하원 양원을 장악하자 본격적인 사회·경제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중요한 법안들이 이때 통과됐다. 역사학자들은 2차 뉴딜정책이 1차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친노동·반기업적이라고 평가한다. 공공사업진흥국(WPA)을 만들어 200만명에게 다리와 도로, 공항, 공원 건설 등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뉴딜정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인 사회보장법도 이때 통과됐다. 연금제도와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노인과 극빈자, 장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갖췄다. 노동관계법(이른바 와그너법)을 제정, 노조결정·단체협상·파업권을 인정했다. 뉴딜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1933년 25%였던 실업률은 1937년 10%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고,2차 대전이 발발한 뒤에야 한 자릿수로 내려갔다.1937년 경기침체에 다시 빠지자 루스벨트는 50억달러를 투입, 경기부양에 나섰다. 연방정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29년 3%에서 1937년 9%로 늘었다. 국가부채비율도 20%에서 40%로 높아졌다. ●엇갈리는 평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후한 점수를 주는 반면 경제학자들은 평가가 엇갈린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뉴딜정책으로 경제공황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연방정부의 개입과 각종 규제정책의 도입으로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 다른 경제학자들은 뉴딜정책 때문에 경제회복이 오히려 더뎌졌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루스벨트가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확립했고, 부의 공평한 분배에 노력했으며, 정치·경제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kmkim@seoul.co.kr ■리치 美상원 역사전문위원이 말하는 루스벨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도널드 리치 미국 상원 역사 전문위원은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것은 “확실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뛰어난 대의회 설득력과 강력한 정책 추진력, 탁월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구축으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과 뉴딜정책에 관한 책 ‘FDR 대통령’을 펴낸 루스벨트 대통령 전문가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열린 루스벨트 대통령 토론회에서 루스벨트가 성공한 이유와 지도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루스벨트가 가장 성공한 경제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역사상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인 대공황 때에 취임했다. 루스벨트는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대공황을 불러온 경제·사회적시스템을 개혁했다. 또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고, 최저임금을 보장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뉴딜정책과 같은 방대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루스벨트 개인의 능력도 출중했지만 주위에 강력한 지지자들과 뛰어난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루스벨트는 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도록 만드는 데 달인이었다.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결론을 도출해 내라고 다그쳤고, 결국 이들은 타협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루스벨트는 상당히 인간적인 면이 강했던 대통령이다. 특히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했다. 매주 일요일 대국민라디오 담화, 이른바 ‘노변정담’이 대표적이다. 국민들은 경제건 전쟁이건 루스벨트만 믿고 따르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현재 경제상황이 매우 나쁘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사람들은 루스벨트 같은 지도자를 열망하는데. -그는 보통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들의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애썼다. 부자들로부터 떼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 루스벨트는 매우 창조적인 인물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방안을 강구했다. 그는 뭔가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가 정책을 추진하다 실패하면 비판에 직면하는데 루스벨트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유럽인들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루스벨트식 실험’이라며 매우 관심있게 지켜봤다. 당시 유럽은 극좌·극우의 이념적 틀에 얽매어 있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이념적 차이를 뛰어넘어 절충을 모색했다. 변화를 시도하다 실패하면 이를 솔직하게 알리고 대안을 찾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안겨줬다. kmkim@seoul.co.kr
  • 승자독식 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승자독식 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1등이 아닌 모든 것은 ‘죄악’이 되어 물러앉는 무한경쟁시대.2등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도, 보여주려는 사람도 없다. 한번 꼽아보라. 기억하고 있는 은메달리스트가 몇이나 되는지. 수없이 이런 의문도 품었을 것이다. 왜 승리한 1등이 나머지 모두보다 더 많은 부(富)를 차지하는 세상일까.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이 완강한 현실의 아이러니에 대한 해답을 모색했다.‘승자독식 사회’(원제 The Winner-Take-All Society, 권영경·김양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극한으로 치닫는 ‘부익부 빈익빈’ 현실을 점검하고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우리 모두의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질문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 저술은 의미가 더 커진다.“스타는 왜 보통사람들이 일년, 혹은 수십년을 모아야 할 돈을 삽시간에 벌어들이는 걸까?”“돈이 돈을 버는 현실은 어디까지 가속화될 것인가?” 이런 의문을 품었던 보통사람들에게 왜곡된 채 속도를 붙여가는 경쟁사회의 실체를 짚어주는 데 초점을 모았다. ●상상초월하는 부와 권력의 쏠림 해부 우선 책은 승리한 1등이 나머지 모두를 독차지하는 현대 무한경쟁의 본질을 ‘승자독식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부와 권력의 쏠림현상이 문화ㆍ연예산업계, 투자금융산업계, 스포츠산업계 등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상상초월의 현실을 적시했다.1995년의 저술이지만 지금의 우리 상황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예컨대 1990년대 로맨스 소설가 대니얼 스틸은 작품 5권으로 6000만달러의 판권료를 받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티븐 킹이 4권으로 챙긴 판권료는 4000만달러.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가 패션쇼 무대를 두어번 왔다갔다 하고 받은 돈은 2만 5000달러. 미국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기업 이윤창출에 크게 기여한다는 이유로 일반 노동자의 평균 150배가 많은 연봉을 챙긴다. 이도 모자라 스타 CEO에겐 해마다 더 높은 몸값이 매겨짐은 말할 것도 없다. ●불균형 시스템에 감염된 현대인에 경고 무한경쟁사회가 승자를 대우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승자독식시장과 일반 노동시장은 가치 판단잣대가 엄연히 다르다.”고 책은 주장한다. 일반 노동시장이 ‘절대적’ 능력차를 따진다면, 승자독식시장은 ‘상대적’ 능력차에 따라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다. 승자독식 논리에 따른 부작용 사례들은 이미 사회 곳곳에 널렸다. 개인의 재능이나 사회적 효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1%의 가능성을 좇아 특정분야의 직업군으로 쏠리는 현상이 대표적이다.1%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과도한 투자 역시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스테로이드로 몸을 망쳐가는 운동선수들, 막대한 스카우트 비용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스포츠 명문대학들, 감당하기 어려운 광고비를 쓰는 기업에 점점 더 길어지는 노동시간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들…. 책에 따르면, 끝점을 향한 승자독식은 이미 100여년 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의 소득이 올라가는 대신 중간 정도의 재능을 지닌 이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영국 경제학자 마셜의 말로 일찍이 예견된 현상이었다. 99%가 함께 딴 열매를 선두 1%에게 몰아주는 불균형 사회시스템의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우리 모두가 무감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승자독식의 논리에 일상이 이미 완전감염됐기 때문”이라는 경고가 새삼 따갑다.1%가 되려 맹목적으로 휩쓸려 달리는 99%에게 책은, 다분히 관념적이긴 하되 “차라리 조금 덜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제언을 덧붙였다.1만 3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국민참여재판 제도 구하기/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열린세상] 국민참여재판 제도 구하기/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돈시겔 감독의 영화 ‘평결’은 배심원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판사나 변호사가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들이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달 12일 대구지법과 18일 청주지법에서 실시된 배심재판(정확히는 국민참여재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관이나 검사가 아니라 우리 시민들임을 공포하는 자리가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상식과 지혜만 가지고도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이 유죄이고 어떻게 처벌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또 평가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재판참여의 경험을 통해 법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민주사법의 해묵은 요청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 검찰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검찰은 두 재판에 대해 모두 항소하였다. 강도상해 혐의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대구지법의 경우에는 판결 이후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며, 정신지체 장애인의 살인 혐의에 징역 6년형을 선고한 충주지법의 경우에는 너무 가벼운 형이 선고되었다며 그 재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이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첫 단추부터 검찰이 부인하는 셈이 되어 버린다는 점에 있다. 물론 검찰의 입장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살인이라는 중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을 가하는 온정주의적 태도는 법의 엄정성과 통일성을 해친다. 판결 이후라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그 판결을 교정하는 것 또한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심재판 제도는 이런 법률적 당위론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진다. 배심재판은 미국 독립선언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나의 문제는 나와 나의 동료들이 만든 법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배심재판을 박탈한 영국 정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실제 배심재판의 핵심에는 자기지배와 민주주의의 요청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과 단절된 채 오로지 법률관료들이 자기들만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구성하는 ‘그들의 법’이 아니라, 설령 미진하거나 온정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우리들의 법에 따라 내린 판결이 바로 우리의 생활을 규율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그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검찰의 항소는 취하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은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정착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대구와 청주 두 재판의 미진함이나 미흡함을 비난하는 와중에 이제 갓 싹을 틔운 국민참여재판 자체를 무위로 돌릴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사실 온정주의나 심리·입증의 미진은 어느 나라의 배심재판이든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번 내려진 배심판결 자체를 항소로 이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배심재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항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법률전문가의 눈에 이런저런 흠결이 보인다 하더라도 보통사람들의, 보통의 법감정에 의한 재판이 법률관료들에 의한 완벽한 재판보다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언제나 재판의 대상으로만 자리매김되었던 우리 국민이 자신의 법으로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만들어가는 최초의 사건이다. 그것은 사법의 민주화를 향한 첫걸음이자, 우리 사법체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발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는 재판을 바로잡기 위한 검찰의 항소보다는 민주적 사법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검찰의 눈높이 조정이 더욱 절실해진다. 배심재판의 흠결을 비판하기 앞서 검찰은 보통사람들의 온정주의에 대해 법의 엄정성을 설득할 수 있는 변론 능력, 보통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된 공판관리 능력, 보통사람들의 법감정과 유효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비로소 우리 검찰은 민주사법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 英 해리왕자 아프간 최전선 정찰중

    英 해리왕자 아프간 최전선 정찰중

    “영국 해리 왕자님은 지금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정찰중.” 영국 찰스 윈저 왕세자의 둘째아들로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해리(23)윈저 왕자가 10주째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인 헬만드주에서 군복무 중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있다. BBC, 가디언,CNN 등 외신들은 지난 28일(현지시간)영국 국방부 관료의 말을 인용 이렇게 보도했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해리왕자는 10주 전인 지난해 12월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 배치됐다. 탈레반의 거점인 헬만드주는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 최고 지도자 등 탈레반 지도부의 은신처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토군의 집중 공습지 중의 하나다. 해리왕자는 이곳에서 아프간에 파견된 7800여명의 다른 영국 군인들처럼 정찰, 공습작전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리왕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최전선에서의 군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나흘 동안 사워를 못한 적도 있고 일주일 동안 옷을 빨아 입지 못한 적도 있다.”며 “보통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원했던 군복무를 마침내 하게 됐다.”며 “조국을 위해 동료 병사들과 작전에 참여하게 돼 너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이튼스쿨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리왕자는 원래 이라크 복무를 강력히 원했지만 군당국이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 위험이 높다고 보고 만류해 성사되지 못했다. 해리왕자의 아프간 배치사실이 언론에 노출됨에 따라 영국 국방부는 해리왕자가 탈레반의 공격목표가 될 것을 우려해 즉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영국군은 해리왕자가 최고 6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언론들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의 폭로 전문사이트인 드러지리포트가 이를 공개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해리왕자의 군복무는 영국 왕실의 전통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에 따른 것이다. 해리왕자의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는 2차세계대전 때 운전병으로 군복무했으며 삼촌인 앤드루왕자는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열린세상] 영어는 영어일 뿐/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영어는 영어일 뿐/김형태 변호사

    40년전 시인 신동엽은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을 부러워하는 산문시를 썼다. 그 고장에서는 광부들의 뒷주머니마다 하이데거며 러셀, 장자가 꽂혀 있다. 삼등열차 대합실 뙤약볕 아래 휴가 여행 떠나는 총리가 기차표 끊으려 서 있는데 역장은 그저 ‘기쁘시겠오.’ 인사 한마디 던지고 지나친단다. 40년 전 ‘그 고장’보다 지금의 우리가 더 잘산다. 하지만 시인의 꿈은 아직도 그저 영원한 꿈으로만 남아 있다. 대통령 자리에 앉지도 않았건만 당선자 말 한마디에 전봇대가 뽑히고 모든 아이들이 영어에 목을 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하는 유행가 가사는 정확히 이치를 알아본 거다. 좁은 땅덩어리에 가진 것은 사람뿐이니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부동산이 급등하자 은행에서 돈을 마구 빌렸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우리 주가지수도 덩달아 급락했다. 잘못은 미국이 했는데 그 손해는 내 주머니에서 충당된다. 그래도 여전히 세계화의 그림자는 못 보고 빛만 따라가는 이들이 많고도 많다. 총리가 휴가여행 가려고 뙤약볕 아래 줄서 있는 나라는 못 되더라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수천만 국민들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건 분명 아니지 싶다. 사람의 살림살이뿐 아니라 수억년 내려온 한강과 낙동강이며 백두대간 산줄기까지 바꾼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나라가 온통 영어 때문에 법석이다. 공용어로 삼자는 이까지 있다. 말과 글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선다. 그 말과 글을 쓰는 사회의 사고방식, 제도, 관습, 문화 그 자체다. 수천년 이어져 온 우리 문화에 서구의 유일신 사상은 없다. 놀라운 일을 겪으면 대개 ‘세상에 이럴 수가’나 ‘아이구 어머니’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영어 쓰는 이들은 ‘오 마이 갓’, 신을 찾는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도 ‘오 마이 갓’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간다. 도봉산 포대능선을 힘겹게 올라 건너편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야’하고 감탄하는데 옆의 젊은 처자는 ‘와우’하고 좋아한다. 일본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워 일본말만 쓰도록 강요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우리의 사고방식, 문화를 바꾸려 안달이다. 요즈음은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해서 새로운 정보가 너무 많고 어렵다. 보통사람들은 우리말과 글을 통해서 이해하고 내 것으로 삼기에도 벅차다. 서울대 영어강의에서조차 우리말 강의 때에 비해 20%도 못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교수로부터 들었다. 망치 찾다가 도둑 놓치는 격이다. 최첨단 과학계의 성과들은 한국에서도 거의 동시에 번역 출판된다. 일반인들이 우주 양자론이며 진화생물학, 뇌 과학을 알기 위해 영어원서를 뒤적일 필요는 없다. 영어가 실제로 필요한 이들은 국민들 중 극히 일부다. 학자, 연구자들과 외교, 무역 등 국제업무관련 종사자 정도다. 이 소수의 필요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을 영어에 목매게 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학교 영어수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다시 학원에서 과외를 받아야 하는 아이며 학부모들이 참 딱하다. 아이들을 외국에 조기유학 보내는 것도 영어 습득보다는 끝없는 경쟁위주 교육에 지친 것이 더 큰 이유 아닌가.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대학도 평준화되어 있고 청소년기 1년은 학교 안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래도 학업성취도며 대학 평가는 세계 1위다. 그곳에서는 광부가 러셀을 읽고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김형태 변호사
  • [주말탐방] 설 연휴 택배기사의 24시

    [주말탐방] 설 연휴 택배기사의 24시

    “나랑 한 달만 같이 다니면 20㎏은 빠질 겁니다.” 택배기사 김태민(36·CJ GLS)씨는 동행취재에 나선 기자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등산화를 신은 그가 보통사람보다 큰 보폭과 빠른 걸음으로 치고 나갈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파트 계단도 서너 개씩 뛰어올랐다. 헐레벌떡거리는 기자에게 그가 한마디했다.“요즘은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가장 바쁜 직종 중 하나인 택배기사의 하루를 밀착취재했다. ● 1월27일부터 2월13일까지 ‘설 특수´ 김씨를 만난 곳은 CJ GLS의 강서터미널. 김포공항 화물청사가 있는 곳이다.1차로 대전에서 모아진 전국의 택배 물건 중 서울 강서·마포·은평·서대문구와 경기 부천 등지에 갈 물건이 모인다. 지난 28일 오전 8시.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택배기사들의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돋아 있었다. 컨테이너 차량에 실린 물건을 내리는 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김씨도 ‘애마’인 1톤 화물차량에 강서구 내발산동으로 배달할 물건을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그는 “강서구에만 하루에 총 2500∼3000개의 물건이 배달된다.”고 말했다. 이를 22명의 택배기사가 나누어 배달한다. 바빴던 분류작업은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김씨가 오늘 배달할 물건은 70개. 홈쇼핑 반품물품 20개는 별도다. 그는 “그동안 밀리지 않고 배송을 한 덕분에 오늘은 (물건이) 적은 편”이라며 “특히 이번 주엔 바빠서 하루평균 150∼200개를 배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27일부터 2월13일까지가 설 특수”라고 덧붙였다. 이 기간 동안 CJ GLS의 택배물량도 지난해보다 16% 늘었다.18일 동안 이 회사 소속 2000여명이 494만 상자를 배달해야 한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란다. 오전 9시20분쯤 내발산동에 도착했다. 첫 배달지다. 배달할 택배물건도 가지각색이다. 한라봉, 배 등 과일, 분홍보자기에 싼 고등어 선물세트, 한우 선물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오늘은 유독 와인 선물세트가 많다.”고 했다. 은행이 우수 고객들에게 보내는 설 설문이란다. 똑같은 크기와 포장의 와인세트 8개가 배송차 한쪽에 실려 있었다. 설과 추석 중 언제가 더 배송물량이 많은지를 묻자, 그는 “추석 때”라고 답했다.“민족 최대 명절이라 그런 것 같다.”면서 “특히 제철 과일 등 선물 종류도 설보다 다양하다.”고 했다. 김씨는 배송차량을 몰고 내발산동 골목길을 샅샅이 훑었다. 그는 “택배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며 “주로 번지수로 집을 확인하지만 같은 집을 여러 번 가는 경우가 많아 이름만으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평소엔 홈쇼핑·인터넷쇼핑 물건 가장 많아 설 선물 외에 정과 사랑이 흠뻑 든 물건도 많았다. 경기 강화에서 서울 사는 자식에게 보낸 고구마 한 상자도 있었다. 사무실엔 문구류도 배달했다. 식료품은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또 배달 물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홈쇼핑·인터넷쇼핑 물건이었다. 그는 “평상시에 배달 물건의 70∼80%가 홈쇼핑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요즘은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한 집에 3일 연속으로 10개 가까운 홈쇼핑 물건을 배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덩치(부피)가 큰 물건. 그래서 부피가 작은 홈쇼핑 물건들을 선호한다. 무게는 둘째다. 김씨는 “택배기사끼리는 부피가 큰 짐을 ‘똥짐’이라고 부른다.”고 귀띔했다. 배달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그만큼 다른 물건을 싣지 못해서다. 택배기사 수입은 배달 물건 수에 비례한다. 김씨는 CJ GLS 소속이지만 사업면허증을 가진 엄연한 개인사업자다. 다른 택배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물건 하나를 배달하면 800원을 받는다.”면서 “60∼70개를 배달하면 5만원 정도를 버는데 여기에 점심값, 기름값을 빼면 실제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배달을 위해 길가에 주차했다가 ‘주차딱지’라도 떼이는 날에는 말 그대로 하루 공치는 셈이다. 그는 “한번은 발산역 사거리 부근에서 하루에, 그것도 5분 사이에 세 번이나 딱지를 떼인 적도 있다.”며 “몇 분 전에 발부한 주차딱지가 앞유리창에 있는데도 그 위에 또 붙여서 황당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후 2시까지 배달을 마친 김씨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1시간 남짓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4시부터는 오전에 다닌 코스를 다시 돌며 택배 물건들을 끌어모았다. 접수된 물건은 모두 60개. 설 연휴 전 마지막 택배물건 접수다. 오후 7시가 지나서야 일이 끝났다. 김씨는 “설 특수기간에는 담배 한 개비 맘 놓고 피울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서 “설 선물을 전달받은 분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피로를 가시게 한다.”고 따뜻한 인사말을 요청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진화하는 배송 서비스 해를 거듭할수록 설 선물 배송 물량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가운데 안전하고 품격 있는 배송을 위한 업계의 서비스 수준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집에 없을 때 아파트 경비원 등 외부인에게 선물 보낸 사람의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보안 배송시스템을 이번 설부터 적용하고 있다. 선물받는 사람이 직접 개봉하지 않으면 의뢰인의 개인정보를 볼 수 없도록 보안명함봉투를 따로 만들었다. 상품 전표에 선물을 받는 사람의 전화번호 끝 두 자리를 ‘XX’로 처리해 받는 이의 정보 노출도 막았다. GS홈쇼핑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을 위한 ‘도우미 특별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주문이 도우미 특별 배송으로 접수되면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지점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 제품 설치, 사용법 설명, 포장재 수거 서비스까지 해준다. 특1급 호텔들은 별도로 자체 특판팀을 가동하고 있다.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은 20만원짜리인 LA갈비 세트(2.5㎏)부터 150만원 상당의 모둠 와규 세트(8㎏)까지 모든 구매 상품을 호텔 직원이 직접 배송하고 있다. 배달 전날이나 당일 고객과 전화 연락을 통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은 기본. 배달직원은 인사법부터 접객 멘트까지 배달 교육을 받은 뒤 당일 만들어진 선물 세트만 배달해 제품의 신선도와 격을 유지한다고 호텔측은 설명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도 매니저 등 직원 30명이 호텔에서 구매하는 모든 설 선물에 대해 매일 서울과 경기 등 일부 지역에 한해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배달 사고 없는 빠른 직송 서비스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6일까지를 설 선물 특별 배송 기간으로 정하고 콜밴형 차량 8000대를 돌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도 고객이 빠른 배송을 원하면 별도의 배송비를 받고 오토바이 퀵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편 대한통운, 한진택배,CJ-GLS, 현대택배 등 대형 택배사들은 올해 설 특송기간(1월27일∼2월16일) 처리되는 물량이 지난해 같은 설 특송기간보다 16∼20%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택배 고객 ‘천태만상’ ‘각양각색.’ 택배기사들이 전하는 황당고객 유형은 다양했다.▲협박형 ▲오리발형 ▲안하무인형 ▲폭력형 등이 대표적이다. 택배기사들이 꼽은 황당고객 1순위는 협박형.“택배 물건이 없어졌다.”며 물건값으로 고액을 요구하는 고객들이다. 송장(送狀)에 기재된 물건 가격보다 훨씬 높은 배상금을 요구하기도 한다.A택배회사의 김모(36)씨는 자신이 경험한 협박형 고객에 대해 털어놨다.“택배물건이 분실됐다며 100만원을 물어내라고 해 물건을 찾고 보니까 플라스틱으로 된 1만원짜리 액세서리였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오리발형이다. 물건을 전달했는데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물건을 전달한 뒤 받은 사람의 이름이나 사인도 이런 오리발형 고객들 앞에선 무용지물이다.B택배회사 이모(39)씨는 “어떤 고객은 물건을 전달받고 직접 사인까지 했는데도 ‘받은 적도 없고 내 사인이 아니다.’라며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면서 “‘물건값을 물어내라.’고 해서 결국 내 돈으로 15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안하무인형도 적지 않다. 규정상 배달할 수 없는 무게(20㎏) 이상의 물건이나 산 가축 등을 보내 달라며 우기는 경우다. 이들은 “돈을 내는데 왜 배달을 안해 주느냐.”고 욕설을 퍼붓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다. 택배기사에게 발냄새가 난다며 거실 현관에도 못 올라오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배달한 과일, 쌀 등을 냉장고나 쌀독에 넣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또 쓰레기봉투를 건네며 나가면서 버려 달라는 고객도 있다. 신경질형·폭력형 고객도 택배기사들을 힘들게 한다. 오후 9시 이후에 물건을 배달하게 될 경우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침에 배달했다는 이유로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김모(45) 택배지사장은 “아침에 초인종을 눌렀더니 ‘왜 밤 새우고 들어와 자려고 하는데 아침부터 물건을 배달하냐.’며 욕설과 함께 멱살을 잡힌 적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25년째 한센인 돌보는 ‘소록도 천사’

    25년째 한센인 돌보는 ‘소록도 천사’

    “고단했던 삶을 놓는 순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너무나 평안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길에 가족도, 친척도 없는 그들을 지켜볼 때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센인들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의 천사 김명순(45) 간호조무사가 보통사람의 눈에는 태산보다 높게 보였다. 그는 2007년 ‘숨은 공무원’으로 뽑혀 최근 근정포장을 받았다. 병원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신청했으나 현장조사에서 감동받아 한 단계 올라갔다. 김씨는 남편과 초·중학생인 1남 2녀와 함께 소록도 관사에서 산다.1983년 시작해 25년째 한결같이 한센인들을 돌보는 삶을 잇고 있다. 그가 눈뜨면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암환자, 간경화 등 중증인 한센인 환자 50명을 찾아가 주사를 놔주고 욕창부위 고름을 닦아내고 소독한다. 식사보조, 대소변 받아내기, 목욕과 이발, 머리빗기, 손발톱 깎기, 세수, 바느질, 산책하기, 노래 부르기, 관절 운동까지…. 허리펼 시간이 없다. 김씨는 지금 10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족 관계를 맺고 며느리가 됐다. 아이들은 재롱을 부리고 말벗이 되는 손주가 됐다. 식사 때면 아이들은 “꼭지(박곡지) 할머니 나 안 보고 싶대.”라고 물어본다. 그는 아이들 손 잡고 할머니 생일날 노래를 불러준다. 설에는 세배하고 세뱃돈도 받는다. 김씨는 “임종 때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간호야, 애기 엄마야.’라고 부르면서 ‘너무 미안하다. 고마웠다.’며 눈물을 흘리신다.”라고 말했다. 그가 치르는 장례식만 1년에 50여차례다. “요즘 소록도에 오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한센병은 옮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 얼굴에 대고 비비고 안고 합니다. 이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워요.” 김씨는 “젊어서 대도시 다른 병원으로 갈까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살면 살수록 소록도가 좋다.”며 웃었다. 그의 선친도 소록도와 뭍을 잇던 나룻배 선장이었다. 소록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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