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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공화 경선 D-6 주요 후보 분석 (2) 뉴트 깅리치

    “야외 식사 모임 때였어요. 그는 햄버거를 요리하면서 책을 읽었고 나와 대화도 했어요. 세 가지를 동시에 했다니까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조지아주에 살 때 이웃이었던 조앤 하월(76) 캐럴튼 제일침례교회 목사 부인이 깅리치에 대해 지난 14일 워싱턴포스트에 밝힌 일화다. 공화당 대선 레이스에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깅리치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받는 인물평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깅리치는 12살이 되기도 전에 두꺼운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을 독파했다고 그의 의붓아버지는 말했다. 깅리치가 첫 번째 부인과 결혼생활을 할 때 그의 집은 저녁에 온 가족이 책을 읽느라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막내딸 재키(45)는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는데, 속도가 아주 빨랐다.”고 회고했다. 엄청난 독서량으로 무장한 깅리치는 정치권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스프링클러처럼 뿜어내는 ‘아이디어 제조기’로 불린다. 예컨대 깅리치는 지난달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전자기파’(EMP) 공격은 강력한 전자파를 일으켜 일시에 모든 전자장비를 마비시키기 때문에 핵공격보다 미국의 안보에 더 위협적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의 주장을 분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롬니가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재급의 두뇌를 갖고 있다면, 깅리치는 정반대로 평범한 문제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기존 상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재형이라 할 수 있다. 깅리치 뇌의 절반은 각종 지식으로 가득 차 있고 나머지 절반은 폭탄이 장착돼 있다는 비유도 회자된다. 출생 직후 부모가 이혼하고, 이후 군인이었던 의붓아버지의 직업상 자주 이사를 다녔던 것이 깅리치의 ‘도전적 성향’에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는 명석한 두뇌 탓에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는지 몰라도 정치역정과 사생활에서 보통사람은 감히 걷기 힘든 길을 걸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의 발목을 잡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공약으로 40년 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정치적으로 급부상했지만, 이후 하원의장으로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정부폐쇄’라는 벼랑끝 승부를 벌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추락했다. 또 암 투병 중인 부인을 두고 불륜을 저질러 이혼을 했고,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공격을 주도하는 와중에 자신의 비서와 혼외정사를 벌였다. 깅리치가 만약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 덕에 굼뜨고 매너리즘에 빠진 미국은 분주한 변화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독단적 확신에 기반한 행보를 불사한다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시험이 될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뉴트 깅리치(68세) ●펜실베이니아주 출생 ●버지니아주 매클린 거주 ●제58대 하원의장 ●첫 부인과의 사이에 자녀 2명 ●캘리스터 비섹과 세 번째 결혼
  • [테마로 본 공직사회] (32) 공무원교육 변천사

    [테마로 본 공직사회] (32) 공무원교육 변천사

    교육은 백년대계다. 특히 나라의 살림을 맡게 될 공무원에 대한 교육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정부는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공무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 1949년 3월 국가공무원 교육훈련 기관의 시초인 ‘국립공무원훈련원’을 개원했다. 이후 훈련원은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재임 중인 1961년 지금의 이름인 중앙공무원교육원(중공교)으로 재탄생했으며, 60년 넘게 국가공무원 교육을 담당해오고 있다. 정권에 따른 공무원 교육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시대별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자연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행정이 감시와 통제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일반 행정업무 외에도 정책 소통과 갈등 조정 등 공무원에게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감시·통제서 소통 중심으로 변화 박제국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은 공무원 교육의 변화를 살펴보려면 더 큰 틀의 행정 환경 변화부터 살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행정 환경이 진화함에 따라 공무원이 수행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졌고, 이는 마치 골키퍼는 그대로인데 골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즉,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공무원의 역할이 변했고, 공무원 교육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중공교의 전신인 국립공무원훈련원 시절은 ‘공무원 능력발전’이라는 교육훈련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정실인사에 희생된 공무원이나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들의 대기소처럼 이용됐다. 중공교가 발간한 공무원 교육훈련역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훈련원은 이승만 정부 말기 인사행정이 문란해지면서 공무원 교육을 위한 인력 구성이 되지 않았고, 정책 입안자들도 공무원 교육훈련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제3~4공화국)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제5공화국) 집권기까지는 반공사상과 안보교육이 특히 강조됐다. 또 ‘경제 개발’이라는 당시 사회적 요구에 따라 ‘새마을운동’이 공무원 교육에 접목되기도 했다. ●반공·안보·경제개발 집중 교육 1981년 공직에 입문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도 1980년대 초반 참여했던 ‘새마을 정신교육 특별과정”의 기억이 생생하다. “야 이 XX들아 뒤에 줄 똑바로 안 서! 뒤에 떠드는 X들은 누구야!” 이 관계자는 “벌써 30여년 전이라 몇 년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새마을 관련 교육 중 군대처럼 행군 프로그램이 있었고 당시 전경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했던지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전경환 전 사무총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첫 직선제 대선을 통해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 출신이면서도 행정 전반에서는 전 정권과 차별화를 두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보통사람’을 기치로 내세우자 이는 곧 공무원 교육에도 반영됐다. 당시 신임관리자과정에는 ‘삶과 그 보람’, ‘나의 공직관’, ‘전환기 극복의 지혜’ 등의 과목이 신설됐고, 토의와 종합발표 주제를 ‘우리 시대의 보통사람들을 위하여’로 단일화했다. 신임관리자과정 등 주요 공무원 교육에서 기존의 반공·안보 교육은 완화됐고, 당시 국가 최대 이벤트인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만큼 ‘서울올림픽 등 국가시책에 대한 이해’와 ‘국민정신교육덕목 체질화’와 같은 정신 교육을 강화했다. ●개방·세계화 대응 방안 다각 모색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행정부 기능의 다양화 및 전문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에 따라 공무원 교육에도 많은 과정과 과목이 만들어졌다. 현 5급 승진자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초급관리자과정’에는 민간기업의 변화를 위한 전략 과목과 함께 개방화·세계화에 따른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 정보의 보호와 공개 및 행정절차 과목을 신설했다. 신임관리자과정에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이해와 우리 경제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WTO체제 출범과 한국경제에 관한 교과목을 설치했다. 또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반공 관점에서 탈피, 남북현안 문제와 통일정책의 이해와 같은 과목도 공무원에게 교육하기 시작했다. ●‘경제회복·남북교류 활성화’ 과목 신설 IMF 구제금융체제라는 최악의 금융난 속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의 공무원 교육은 ‘경제위기 극복’과 ‘남북 교류 활성화’로 요약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는 어려워진 교육행정 여건에 따라 교육훈련체계를 대폭 축소하고 ‘IMF의 조직·활동과 우리 경제의 대응’ 등 경제회복을 위한 교육 과목을 만들었다. 박동훈 행안부 대변인은 “국민의 정부에서는 경제 회복이 최우선 과제였다.”면서 “주요 국가 시책과 그에 따른 교육 내용 모두 경제에 집중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신임사무관 대상 첫 특강 공무원 교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 환경과 시스템, 내용에서 일대 변환을 맞이했다. 과천 교육관 신설뿐만 아니라 유비쿼터스 환경 도입 등 외형적 변화와 함께 ‘정부혁신’과 ‘지방분권’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과 함께하는 참여정부를 이끌 혁신적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참여·토론식 교육 체계’를 도입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위해 2005년 11월 중공교 교육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신임사무관을 대상으로 특강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다소 느슨해졌던 공직자 안보 교육을 강화했으며, 국정철학 특강 등을 통해 국가 정책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에는 중공교 개원 이래 첫 민간 출신인 윤은기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을 원장에 임명해 공무원 교육에 변화를 주고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대통령 하면 더 빨리 늙는다고? 평균 수명 일반인과 비슷하네”

    “대통령 하면 더 빨리 늙는다고? 평균 수명 일반인과 비슷하네”

    대통령이 임기 중 업무 스트레스로 보통사람보다 빨리 늙는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일리노이대 제이 오샨스키 교수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암살되지 않은 고인 34명을 대상으로 ‘가속 수명’(accelerated aging)을 감안한 평균 수명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가속 수명이란 일정기간에 비정상적으로 빨리 늙는다는 가정 하에 하루마다 이틀씩을 ‘추정 수명’(estimated age)에서 빼는 계산법으로, 4년 대통령 임기라면 수명이 8년 줄어드는 셈이다. 이런 계산에 따라 분석한 결과 고령으로 자연사한 34명의 대통령 가운데 23명이 동시대의 일반인보다 더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사망 당시 나이가 평균 78세로, 가속 수명을 감안한 일반인의 추정 수명(67세)보다 11세나 더 많았다. 나머지 11명은 평균 수명이 62.1세로, 가속 수명을 감안한 일반인 수명보다 5세 짧았다. 특히 가속 수명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들 대통령 34명의 평균 수명은 73.0세로, 일반인(73.3세)과 별 차이가 없었다. 특히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부터 마틴 밴 뷰런 제8대 대통령까지 전직 대통령 8명의 평균 수명은 79.8세로 당시 일반인 평균 수명인 40세의 2배에 달했다. 그는 “과거에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수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직 대통령 가운데 대졸 이하 학력자는 10명에 불과했고 모두가 부자였으며,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글에서 길어낸 정조의 복심

    조선조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에게는 대왕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조선 왕중 세종대왕과 더불어 유일하게 ‘대왕’의 우러름을 받는 정조, 그는 흔히 개혁군주로 평가받는다. 옳지 않은 악습과 폐단의 척결에 과감했던 진보주의자였고 측근은 물론 정적까지를 모두 내 편으로 흡인할 줄 아는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가족·지인의 아픔과 상실에 비탄의 눈물을 숨기지 않는 보통사람의 면모도 사료 곳곳에서 묻어난다. 조선 최고의 개혁군주 정조대왕, 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군주 정조대왕과 인간 정조를 조명하고 재평가하려는 사계와 문화예술계의 바람은 새로운 게 아니다. 요즘 흔한 정조 바로보기의 움직임은 물론 많은 사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본인이 직접 쓴 글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정조는 어떨까.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정조의 생각’(글항아리 펴냄)은 바로 정조의 글들에 담긴 정조의 탄생과 인생을 조망한 역작이다. ‘한국 최고의 정조 연구가’라는 별명답게 정조를 샅샅이 훑어낸 내면 연구서의 성격이 강하다. 책은 김 교수가 지난 20여년간 접하고 읽어온 정조의 대표 글 마흔일곱 편을 번역해 해설로 풀어내는 양식. 뛰어난 학자요 노회한 정치가, 실존의 고뇌에 싸여 번민하고 부대꼈던 인간 정조의 내면이 정갈한 글로 펼쳐진다. 정적의 견제와 탄압 속에 살다가 왕위에 오른 정조는 태생적으로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인물로 평가된다. 김 교수가 발굴해 소개한 정조와 채제공의 긴밀한 관계에 얽힌 이야기는 그런 ‘정치인 정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정조를 독살한 것으로 알려졌던 심환지가 정작 정조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측근 신하였음을 풀어낸 대목도 흥미롭다.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의 행적을 드러내기에 힘썼고 온갖 위협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배지에서 숨진 절친한 아우의 시신을 수습했던’ 정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행궁 수원화성의 축조는 그가 가진 실용 정신의 정화다.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의 발로이자 복권의 상징인 수원화성. 그 행궁을 세운 건 정치적 회심과 부자 간의 정 말고도 명분에 앞서는 실용의 정신이었음을 책은 보여준다. “정조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모습이 보인다.”는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의 시를 외우고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1만 55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자수성가 부자/곽태헌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의 CEO를 지냈지만 오너가 아닌 월급쟁이였다. 이 대통령이 고(故) 정주영 그룹 명예회장을 대신해 청와대에서 열린 재벌 회장 모임에 대타로 참석하자 모 그룹 회장이 “당신이 왜 여기에 왔느냐.”고 핀잔했던 것으로 재계에는 알려져 있다. 그 재벌 회장은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보복을 당할까 좌불안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피해를 본 것은 아직까지는 없다. 모 그룹 회장이 이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한 것은 재벌의 힘, 재벌의 폐쇄성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실상 재벌 오너들의 모임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하는 S그룹 회장도 재벌 모임에서는 약간 소외돼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것도 재벌의 폐쇄성, 그들만의 리그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많고 계열사도 많으면 보통 재벌 회장으로 불리지만 처음에는 맨손으로 일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집단을 일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수성가한 부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20년 전쯤 정 명예회장이 정계에 발을 들여놓자 노태우 정부는 현대그룹을 겨냥해 세무조사 등 온갖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계열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한해 순이익은 삼성그룹 전체의 순이익과 비슷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등 잘나가는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는 즐비했다. 반면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정도가 그나마 의미 있는 순이익을 내는 정도였다. 재벌닷컴이 1813개 상장사와 1만 4289개 비상장사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배당금·부동산 등 등기자산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흔히 억만장자(billionaire)의 기준으로 삼는 1조원 이상의 부자는 25명이었다. 이중 대(代)물림에 의존하지 않은 자수성가형 부자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비롯해 6명. 박 회장의 재산은 2조 4683억원으로 6위였다. 부모의 능력이나 부모의 대물림에 의존하지 않은 자수성가형의 부자가 많아야 열린 사회이고 희망이 있는 사회다.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존 재벌들의 폐쇄성을 경고하는 의미에서도 앞으로 제2, 제3의 박현주가 많이 나와야 한다. 신흥부자들은 돈도 제대로, 멋있게 써서 기존 재벌과는 또 다른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미국의 가을] 분노의 들불… 미국식 자본주의 틀 흔들까

    “몇살인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어디에 사나.” “플로리다 잭슨빌에 산다. 지난 주말 친구 2명이랑 16시간을 운전해서 뉴욕에 왔다.”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 건가.” “혁명을 해야 한다.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다. 탐욕스러운 부자들한테 중과세를 해야 한다.” 3일 오후(현지시간) 폭스뉴스 제휴 라디오의 사회자가 뉴욕 월가 시위대 중 이름을 ‘헤더’라고만 밝힌 한 여고생과 나눈 전화통화의 일부분이다. 지난달 17일부터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주요 7개국(G7) 반대’, ‘세계화 반대’와 같은 이전의 경제 관련 시위와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고교생까지 ‘혁명’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정도로 시위층이 넓고 시위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며 미국 내 다른 대도시뿐 아니라 캐나다 등 외국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다만 긴축재정 등에 반대하는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와 다른 점은 공격의 화살이 정권이 아니라 월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하는 민주당 정부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이번 시위의 표적은 월가의 금융재벌 등 부유층,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부자 증세에 반대하는 공화당이라고 할 수 있다. 월가 시위가 ‘아랍의 봄’처럼 ‘미국의 가을’을 이끌면서 혁명 수준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틀을 뒤흔들어 놓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부 역할 축소와 극단적인 자유시장 강조 등을 모토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가 오늘의 결과를 초래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국민의 보편적 정서가 자유를 중시하고 사회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듀크대 4학년에 재학 중인 한국계 학생 최모씨는 “뉴욕 시위 얘기를 하는 학생은 아직 주위에서 못 봤다.”면서 “지금은 시험기간이라 다들 공부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시위 지도부가 사실상 부재하고 목표가 일사불란하지 않은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시위 주최측에 해당하는 애드버스터스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번 시위의 목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 하여금 의회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을 종식할 위원회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전쟁 반대’나 ‘지구 온난화 해결’ 등이 시위 목표로 등장하는 실정이다. 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메이어(사회학) 교수는 “시위가 새로운 운동의 서막을 알릴 잠재력은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다양한 명분에 대한 일련의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곧 본격화될 여야 간 재정적자 감축 협상에서 공화당이 끝내 부자 증세에 반대한다면, 시위는 다른 국면으로 확대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경우 진보 대 보수의 대립으로 양상이 전환되면서 미국 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될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 정부가 월가 개혁에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시위대의 화살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향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 사회 변혁을 이끈 대표적 사례는 베트남전 반대운동이다. 1967년 4월 뉴욕에서 4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면서 반전운동이 본격적인 힘을 얻었다는 점, 영국 등 다른 나라로 반전운동이 번졌다는 점, 가수 밥 딜런 등 명사들이 반전운동에 동조하고 나섰다는 점 등이 지금까지의 월가 시위와 비슷한 단면이다. 50만명 이상의 징집 거부로까지 심화되면서 베트남전 철수라는 ‘결실’을 얻어낸 전철을 밟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1968년 세계를 휩쓸었던 사회적·정치적 변화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있은 지 43년. 2011년 10월 미국과 유럽, 남미, 중동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보통사람들의 분노의 끝이 어디일지 주목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21)경조사비

    [테마로 본 공직사회] (21)경조사비

    5만원, 3만원.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뜀박질하는 현실에서 보통사람들에게 이 액수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수치들의 상징성은 공직사회에서만큼은 각별하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에게 이 액수 규정은 내심 고마운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사정도 답답한데, 한도액을 엄격히 묶어주니 다행스러울 따름”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간간이 다른 얘기도 들린다. “요즘 어디 5만원, 3만원으로 제대로 인사치레를 할 수가 있느냐?”는 조심스러운 의견들이다. 이 단위는 공직사회의 반부패, 청렴성을 대변하는 제도적 장치다. 5만원은 경조사 때 주고받을 수 있는 경조금품의 한도이고, 3만원은 직무관련자에게 받아도 되는 선물, 향응의 통상적 관례 범위다. 공무원 행동강령 제17조에는 공무원이 경조사를 통지하고 경조금(품)을 주고받는 데 대한 규정이 들어 있다. 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관련자나 직무관련 공무원에게 경조사를 알려서는 안 된다. 다만 예외가 있다. 친족이나 현재 또는 과거에 근무했던 기관의 소속 직원에게는 통지해도 된다. 따라서 거의 모든 정부기관들은 직원들의 경조사를 내부통신망으로 알리는 게 원칙으로 통한다. 이때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 액수가 5만원이다. 단 이를 기준선으로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소속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경조금품 상한규모를 정하게 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관계자는 “5만원은 행동강령에서 제시한 적성선인데도 거의 대부분 정부기관들이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면서 “기관장 재량에 맡겨진 만큼 일부 공직유관단체들에서는 주사급 이하는 3만원, 사무관급 이상은 5만원으로 액수 규정이 나눠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행동강령’ 예외 규정 몰라 불편 호소 이 액수 규정이 나온 것은 공무원 행동강령이 제정·시행된 2003년부터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일반 사회에서는 아주 각별한 관계자의 경조사에 달랑 5만원짜리 봉투를 전하면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10여년 가까이 적응되다 보니 이제는 받든 주든 솔직히 그 액수가 속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가 공직사회의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행정안전부의 한 사무관은 “개인적으로 꼭 특별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액수가 민망할 때가 더러 있다.”면서 “받는 사람이 공무원 행동강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면, 구구하게 설명을 해줄 수도 없고 두고두고 찜찜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강령의 예외규정을 정확히 몰라 불편을 호소하는 공무원들도 의외로 많다. 권익위에는 현실에 맞게 경조금 상한선을 올리는 편이 낫다는 민원이 적잖이 접수되는 건 그래서다. 권익위 관계자는 “예외규정을 모르는 이들은 절친한 친구 등에게 받는 경조금도 5만원 한도액을 꼭 지켜야만 하느냐는 문의를 자주 해온다.”고 말했다. 행동강령에는 공무원이 소속된 종교 및 친목단체에서 제공되는 경조금품은 기준금액을 초과해도 되는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직무관련자가 아닌 친구는 이 범주에 포함돼 5만원 이상을 받아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기관의 분위기에 따라 경조사에 대한 고지 절차에도 차이가 있다. 감사원, 권익위 등 감찰기관을 포함한 몇몇 곳에서는 간부들의 경조사는 아예 고지되지 않는 게 암묵적 관행이다. 감사원의 경우 한 감사위원의 딸 결혼식을 며칠 앞둔 지난달 29일 관련 사실을 아는 내부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내부 직원은 “일반 직원들의 경조사는 고지되지만 지금까지 간부들의 경조사, 특히 그들 자녀의 혼사에 축의금을 내본 기억은 거의 없다.”면서 “특별히 그들에게만 금지규정을 두는 게 아닌데도 간부급이 되면 그런 관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봉투 한 장으로 간단히 오가는 경조금품과는 달리 공직사회에서 선물(향응) 주고받기는 생각보다 더 까다롭고 번거롭다. ●위반 사례 2003년 이후 62건 불과 행동강령 제14조에는 공무원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 부동산, 선물 또는 향응을 기본적으로는 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통상적 관례의 범위(3만원)에서 제공되는 음식물이나 편의는 받을 수 있다. “승진 등 인사가 있으면 외부 지인들에게서 3만원이 넘는 난화분을 선물해도 괜찮느냐는 확인전화가 미리 걸려온다.”는 한 공무원은 “직무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사실상 선물 액수 제한은 없지만, 이래저래 주변 눈치가 보여서 무조건 보내지 말라고만 얘기한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또 다른 공무원은 “공무 관련 외국인을 만나는 식사자리 등 3만원 규정을 상대 쪽에서 불편해하는 경우가 솔직히 많다.”면서도 “비현실적 규정이라는 내부 의견도 있지만, 그 규범에 맞추려 의식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유지되는 만큼 3만원이라는 계도액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년에 한두 차례 각 기관들은 자체적으로 경조사나 선물 관련 행동강령 위반여부를 정기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경조사의 경우는 자체 적발 사례가 거의 없다. 권익위에 접수된 경조사 통지 및 경조금품 위반 사례는 지난해의 경우 단 9건. 행동강령이 시행된 2003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다 합해도 62건에 불과하다. 중앙부처의 한 감사담당자는 “고지 과정이 합당했는지 정도를 점검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자진신고하지 않는 이상 위반사례를 찾아내서 징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5만원, 3만원의 금액 기준은 공무원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단속하게 하는 선언적 의미가 사실상 더 큰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제자 폭행 동영상’ 인천 女교사 징역형

    지난 5월 학생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돼 논란을 일으켰던 인천의 한 여교사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5단독 엄상문 판사는 28일 집합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학생 2명을 때려 다치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인천 모 중학교 교사 이모(43)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직 처리되는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아 교직을 상실하게 됐다. 엄 판사는 “피고인의 폭행은 단순히 뺨을 때린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이 봐도 과한 정도”라며 “벌금형을 선고하면 피고인이 교직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어린 학생을 상대로 심한 폭력을 행사한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람과 뒹굴고 노는 5m 초대형 악어 ‘화제’

    몸무게가 400kg 넘게 나가는 대형 악어와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는 남자가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중미 코스타리카에 시키레스라는 곳에 살고 있는 길베르토 쉐덴(54)이 바로 그 주인공. 이름보다 치토라는 별명으로 불러주는 게 편하다는 그는 시골에서 평생을 보낸 평범한 남자다. 보통사람인 치토지만 그에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다. 바로 악어 ‘포초’다. 포초는 이름이 있을 리 없는 악어에게 치토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포초는 평범한 악어가 아니다. 공포를 자아낼 정도로 엄청나게 덩치를 가진 자이언트 악어다. 포초의 몸길이는 장장 5m, 무게는 445kg나 나간다. 입에는 날카로운 필살무기 이빨이 70개나 촘촘히 박혀 있다. 둘은 매일 호수에서 엉켜 뒹굴며 논다. 누가 봐도 보통 절친한 사이가 아니다. 치토가 지시를 하면 악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까지 한다. 발을 달라면 발을 내밀고, 머리와 꼬리를 치켜들라고 하면 묘기까지 부린다. 치토의 몸 위에서 뒹굴며 애교를 피는 건 기본이다. 둘의 우정은 벌써 20년째다. 치토는 34살 때 악어 포초를 처음 만났다. 파리스미나라는 강에서 보트를 타던 치토가 총에 맞고 시름하는 포초를 발견했다. 포초는 한 농장에 들어가 가축을 훔쳐먹으려다 농장주가 쏜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매던 상태였다. 치토는 가죽이 욕심 나 악어를 보트에 실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악어는 질긴 생명력을 보였다.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는 악어를 보면서 치토는 마음을 바꿨다. “치료를 해주자” 그래서 건강을 회복한 악어는 치토의 농장에 있는 호수에서 새롭게 삶의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면서 둘은 최고의 친구가 됐다. 끈끈한 우정으로 얽힌 둘은 이제 멋진 콤비플레이어로 주말에는 돈까지 번다. “인간과 악어가 친구라더라”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 매년 1월 1일에는 치토가 포초의 입에 머리와 손을 집어넣는 특별공연을 한다. 인간과 친해진 악어는 코스타리카 당국의 특별보호 대상이다. 수의사 등이 수시로 포초의 건강을 체크한다. 포초의 나이는 현재 약 50살. 몸이 건강해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사설] ‘김장훈法’ 기부문화 확산 계기로 삼아야

    한나라당이 기부천사들의 노후를 보장해 주는 명예기부자법, 일명 ‘김장훈법(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만든다고 한다. 30억원 이상 기부한 사람이 나이 예순이 넘었는데 재산이 1억원도 채 안 되거나 소득이 없어 생계가 어려울 때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주고 병원진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가슴을 찡하게 했던 김밥할머니 정심화씨나 가수 김장훈씨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전 재산을 내놓거나 월세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렇게 노후가 걱정됐다면 허튼 데 한푼 안 쓰고 평생 모은 돈을 남 좋은 일 시키기 위해 굳이 내놓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김씨도 10년간 100억원이란 거액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놓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유명 연예인이라 해서 항상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노후와 말년에 대한 불안한 마음은 다른 사람과 다를리 없다. 보통사람 같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얘기다. 이기(利己)가 아닌 이타심(利他心) 없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런 기부천사들에 대해 여당이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불행한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발상은 만시지탄이지만 지극히 마땅하고 환영할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상생이니 공생이니 하면서 기업의 기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정몽구·정몽준 등 현대가(家)에서 사재 출연이 잇따르고 있고, 다른 재벌기업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개인 기부문화는 아직 미흡한 게 현실이다. 물론 돈 많은 재벌 총수나 기업의 기부와 일반인의 기부를 같이 놓고 볼 수는 없다. “나 먹기도 바쁜 판에 무슨 기부냐.”는 말도 결코 틀린 말만은 아니라고 본다. 기부 자체가 왠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김장훈법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죽을 쑨 18대 국회가 한 가지 일은 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명예로운 기부자를 보호하는 것은 나눔의 사회,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장훈법은 ‘좋은 법’이자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법이다. 법 제정에 앞서 현재 남모르는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기부자는 없는지 찾아보고 배려할 일이다.
  • [저자와 차 한 잔] “충무공이 수재? 무과 6년 공부하고도 첫 낙방”

    [저자와 차 한 잔] “충무공이 수재? 무과 6년 공부하고도 첫 낙방”

    충무공 이순신. 그를 모르는 한국인도 있을까? 교과서에서부터 위인전, 소설, 영화, 드라마까지 늘 곁에 있었던 이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그 물음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가 있다.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펴냄)를 낸 박종평 골든에이지 대표. 그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으로 찾아 들어가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삶의 속살을 끄집어내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박 대표는 ‘새로운 이순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같은 관련 자료는 물론 시와 편지의 행간까지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런 작업 끝에 장군을 넘어서서 한 시대를 경영했던 CEO 이순신을 찾아냈다. ●상관에게 대들다 파직당하기도 그는 이순신 장군에게 다가서게 된 동기를 ‘궁금증’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궁금한 게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도 그가 위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당위성만 말하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거꾸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난중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알려졌던 이순신과 다른 이순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가 새로 발견한 이순신은 처음부터 큰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 ‘별 볼일 없는’ 청년에 가까웠다. “문과를 준비하다 스물두 살 때 무과 공부로 바꿨는데 스물여덟에 본 첫 과거에서 낙방했습니다. 본질은 6년이나 공부해서 낙방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지요.” 이순신의 별 볼일 없는 행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과거에 낙방한 뒤 방황하다가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급제 뒤에도 문제는 늘 그를 따라다닙니다. 상관에게 대들다가 파직당하기도 하고…. 변방을 떠돌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보통사람 이순신’이 어떻게 ‘영웅 이순신’이 되었을까. 그 변화를 이끈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박 대표는 시간의 힘과 자기성찰, 그리고 올곧은 성품에서 답을 찾는다. “부러지고 깨지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관찰했습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저돌적이고 강직한 성격을 에너지로 바꿔놓았던 것이지요. 중요한 건 이순신 장군이 근본적으로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시련을 넘어 완성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겁니다.” 박 대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깊이 파고든 것은, 굴곡 많았던 자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방송사에서 일하다 학문에 목이 말라 사표를 냈더니 IMF가 터졌고, 공부를 포기한 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찾아 출판사를 차리고…. 그러던 중 가장 힘든 시기에 난중일기 완역판을 만나면서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 “도전하고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차에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독한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 이 사람도 그렇게 살았구나.’ 하는 동질성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낙관주의자이자 홍보맨 그가 찾아낸 이순신은 지독한 낙관주의자이면서 관찰과 설득의 달인이자 브랜드 홍보에 능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무엇보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대로 산 사람’이었다. 죽음조차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시련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결국 세상을 바꾼 사람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리더십이 실종된 이 시대에 배워야 할 게 많은 삶이었습니다.”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옐로우 몬스터즈 “아침형 몸빵밴드 진짜 빡센 괴물 될 겁니다”

    옐로우 몬스터즈 “아침형 몸빵밴드 진짜 빡센 괴물 될 겁니다”

    2010년 4월 16일. 서울 홍익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잔뼈가 굵은 3명의 사내가 서교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델리스파이스의 최재혁(36·드럼), 마이앤트메리의 한진영(35·베이스), 검엑스의 이용원(31·기타 겸 보컬). 모두 1995년 홍대 라이브클럽 ‘드럭’에서 데뷔해 각자 ‘일가’를 이뤘다. 하지만 소속 밴드의 휴식기간이 길어지면서 음악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이용원이 먼저 한진영을 낚았고, 한진영은 최재혁을 불러냈다. ●밴드하려면 소주잔 전에 연주부터 부딪쳐야 다짜고짜 ‘일합’을 겨뤘다. 이용원이 만든 ‘디스트럭션’을 합주한 것. 한진영은 “밴드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기 전에 연주부터 해봐야 한다. 미심쩍은 부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딱 한 곡을 맞춰보고는 깔끔하게 술 마시러 갔다.”고 설명했다. 맏형 최재혁은 “그 순간 뼈대가 탄탄한 철골 구조물을 본 느낌이었다. 안에 무엇을 채우든, 어떤 색을 칠하든 그건 나중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한국 펑크록 역사에 ‘괴물’(몬스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내친 김에 올드레코드라는 회사도 차렸다. 이용원이 대표이사, 다른 두 멤버는 이사를 맡았다. “눈치 안 보고 ‘빡세게’ 해보고 싶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최근 2집 앨범 ‘라이엇’(RIOT·폭동)을 발표한 옐로우 몬스터즈를 지난 27일 서울 태평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일본의 펑크록 페스티벌 ‘빅피스펑카풀릭 2011’ 무대에 한국 밴드로는 유일하게 출연한 직후였다. ●아침형? 음악인도 9 to 5에 준하는 일 해야 막내 이용원이 올드레코드 대표이사인 까닭을 물었다. 이용원은 “집을 담보 잡히고 돈을 끌어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역할분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용원은 팀 결성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작업을 할 때에도 강렬한 기타 리프(반복되는 악구)와 귀에 달라붙는 멜로디, 코드 등 큰 뼈대를 설계한다. 최재혁이 딱 맞는 비트를 넣어 곡에 숨을 불어넣으면, 멤버 중 가장 입담이 좋은 한진영은 편곡을 한다. 한진영은 “용원이가 뼈대를 세우면 우리가 미장질한다.”며 웃었다. 마이앤트메리나 델리스파이스는 옐로우 몬스터즈에 비하면 말랑말랑한 색깔을 지닌 팀. 하지만 펑크에 대한 열정은 가슴 깊은 곳에 있었다. 한진영은 “음악을 시작한 곳이 모두 펑크클럽”이라면서 “이전 소속팀의 다른 멤버들은 모던하고 팝스러운 느낌을 좋아했는데 재혁이 형이나 나는 ‘빡센’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의붓아버지(모던록)와 자랐는데 알고 보니 친아버지는 펑크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밴드들이 야행성인 것과 달리 옐로우 몬스터즈는 ‘아침형’이다. 공연이 없는 날 하루 8시간쯤 연습한다. 팀 결성 이후 단 한 주도 공연을 거른 적이 없다. 심할 때는 하루에만 4곳에서 공연을 했다. 지난해 200회 공연을 소화했으니 아이돌 못지않은 살인적인 일정이다. 최재혁은 “밴드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 최고의 라이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영은 “1집 때 하루 3~4시간씩밖에 안 잤더니 2집은 오히려 쉽게 갔다. 많은 밴드가 앨범을 너무 띄엄띄엄 낸다. 3~4개월 활동하고 2년을 쉰다. 이해가 안 간다. 한 달에 한 곡씩만 써도 1년에 12곡”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음악을 학력으로 하다니… 이용원도 “보통사람들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런 밴드들이 많아져야 록 음악계가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력으로 음악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로 음악하는 밴드들이 늘었다. 그러니 기획사들은 서울대 출신을 찾아 홍보수단으로 삼는다. 우리 같은 ‘몸빵’(몸으로 버티는) 밴드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고 뼈 있는 말을 했다. 옐로우 몬스터즈는 10월부터 일본 활동에 나선다. 일본 음반사 2~3곳과 최종협상 단계에 있다. 일본 진출을 결정한 까닭은 펑크록 마니아층이 워낙 두껍기 때문. 크라잉넛, 갤럭시익스프레스와 함께 지방 클럽을 도는 ‘다이너마이트 투어’로 내수를 살리는 한편, 해외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한진영은 “1집 땐 알에서 깨어난 꼬마 괴물이었다면 지금은 완성된 괴물로 자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용원 역시 “10년이 훌쩍 넘도록 음악을 했지만, 지금이 한창이다. (조건들을) 재고 따지고 할 때가 아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오는 19일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2집 발매 기념공연을 갖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이상덕 개인전 8월 11일 경기 파주시 헤이리 갤러리이레. 무의식의 세계, 이중인격, 다중주체 같은 주제를 보통사람들의 초상과 신화적인 캐릭터를 겹쳐내는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 전시. (031)941-4115.
  • [신재생에너지 ‘명암’] 원자력이 대안이다

    [신재생에너지 ‘명암’] 원자력이 대안이다

    “원자력은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라고 하는 풍력이나 태양광 등은 국내 환경에는 맞지 않아요. 원자력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더 안전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제3의 에너지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원자력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한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풍력·태양광 등 설치·가동 쉽지 않아 그가 신재생에너지라고 불리는 풍력과 태양광을 에너지 대안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풍력을 만들 바람개비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철은 차치하자. 수시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잡으려면 지능형 기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고장이 잘 나고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태양광은 어떤가. 대규모 평지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땅도 많지 않고, 확보했더라도 장마철이나 밤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게 문제이다. 최근 독일과 일본이 발표한 ‘원전 비중 감축’에 대해 서 교수는 “독일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독일은 당장 내일 모든 원전 문을 닫아도 석유, 석탄, 가스를 모두 주변국에서 바로 수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니죠.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자원을 가지고 올 수나 있을까요.” ●원전 6중 방호벽 건설… 안전 강화 그렇다면 이대로 원전을 늘려야 하는 건가. “환경문제가 전혀 없고 안전한 대안 에너지를 찾아내면 원전을 줄여야겠죠. 그때까지는 원자력이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당연히 사고나 천재지변 등에도 끄떡없는 원전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야겠죠.” 현재 원자로도 피복관, 철제통, 피복제 등 5중 방호벽으로 감싸고 있어 안전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기에 더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앞으로 건설할 원자로는 6중으로 지을 예정이다. 최악의 단점으로 꼽히는 방사선과 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도 의견은 명확하다. 그는 “방사능은 일상 생활에도 접하는 것으로, 심하면 치명적이지만 항상 나쁘고 두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브라질 고산지대의 어느 민족은 보통사람보다 방사선을 10배 이상 받는데 유전자 이상이 없다. 방사선에 사람이 적응을 한다는 것이다. 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도 “폐연료봉에 많이 있는 플루토늄으로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1972년에 체결한 ‘한·미 원자력 협정’에 발목이 잡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014년에 이를 개정해 플루토늄을 활용할 길이 열리면 또 다른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북한은 한국 발전상 보면서도 왜 그렇게 군사력 증강하는지…”

    “북한은 한국 발전상 보면서도 왜 그렇게 군사력 증강하는지…”

    “토크쇼의 형식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매체가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對話)이기 때문이지요. 로봇 토크쇼나 전자 토크쇼 같은 것은 앞으로도 안 나올 것 같은데요.” ‘토크쇼의 제왕’ 래리 킹(77)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과 ‘대화’를 강조했다. 25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1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디지털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라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연결을 시도하라.”고 주문했다. ●“넬슨 만델라에게 가장 큰 영감” 1957년부터 53년간 방송인으로 활동한 그는 25년 동안 진행했던 CNN 시사대담 ‘래리 킹 라이브’에서 지난해 12월 하차했다. 그가 인터뷰한 유명인사들은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블라디미르 푸틴 등 각국 정치인부터 경제인,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5만여명에 이른다. “무수한 사람들 중에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입니다. 특히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 25년간 감옥에 수감되는 고난을 겪었지만, 백인 사회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하는 대신 평화를 택한 사람이지요. 제가 남아공에 가서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종교지도자보다도 더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말 자기 프로그램을 그만둔 뒤의 소회에 대해서는 “끔찍하다. 내가 이렇게 그리워할 줄 몰랐다.”면서 웃었다.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만뒀는데, 최근 오사마 빈라덴이 죽고 일본에서 비극적인 사태도 벌어지고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하야하는 등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정말 방송을 다시 하고 싶어지더군요.” 그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방송을 통해 수많은 인간적 연결을 해왔기 때문”이라면서 “위성을 통해 연설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한국을 직접 찾아온 것은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을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한국인 중 단 한 명을 인터뷰하게 된다면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북한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암시했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사악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싶어요. 북한 지도자들은 왜 그렇게 군사력을 증강하는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상을 보면서도 무슨 생각으로 현재의 방식대로 통치하는지가 무척 궁금하군요.” ●“고엽제는 어디서든 정당화될 수 없어” 그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연결이라고 강조했다. “남북은 한 핏줄로 이어져 있잖습니까. 북한이 먼저 남한에 연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남한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화학물질 매몰에 대해서는 “화학물질은 물론 미군이 곳곳에 심어 놓은 지뢰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엽제는 언제 어느 곳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열린세상]주행한담으로 세상읽기/문명재 연세대 언더우드 행정학 특훈교수

    [열린세상]주행한담으로 세상읽기/문명재 연세대 언더우드 행정학 특훈교수

    나는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들과 주행한담을 즐기는 편이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세간의 화젯거리에 대해 귀동냥을 하거나 보통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기도 한다. 직업 특성상 소통 연결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택시기사는 나에게 세상 흐름을 보여주는 귀한 통신원인 셈이다. 때로는 단순한 여론조사로는 알기 어려운 서민들의 한숨과 소박한 삶의 진동을 에둘러 전해주기도 한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언어로 담아내는 그들의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아탑에 머물러 있는 내가 느끼는 게 많다. 최근에 한 택시기사와 주행한담을 했다. 그분은 택시기사가 막장인생을 산다며 자조적인 말로 입을 열었다. 몸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수입은 오히려 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택시운전으로 자녀를 대학에 거뜬히 보낸 이야기는 전설이 된 지 이미 오래다. 택시기사는 하루에 평균 11만~12만원의 사납금을 회사에 내야 한다. 신차를 운전할 경우에는 2000~3000원의 추가 부담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오전반 기사들은 사납금을 채우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결국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졸음을 쫓아가며 새벽까지 운전대를 잡는다. 지친 몸을 감수하면서도 종일반인 소위 ‘일차운전’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버는 한달 수입은 얼추 150만원. 개인택시의 수입은 그보다 좀 더 나은 편이지만 대부분 기사들의 수입은 우리나라 평균 소득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에는 높은 유가 때문에 벌이가 더 힘들어졌다. 회사가 하루 25ℓ의 가스밖에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기사는 통상 1만~3만원 넘는 추가 유료까지 부담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직업에 비해 택시기사의 이직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매주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 잠실교육장에 수백명이 몰리지만 6개월도 채 넘기지 못하고 택시운전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영광을 채 누리기 전에 양극화의 상처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택시기사들 중에도 양극화를 피부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손님은 줄어들고 기름 값은 오르는데 회사는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자기 잇속만 챙기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 기사들의 생각이다. 모든 추가 비용이나 고통을 기사에게만 일방적으로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택시비가 인상되어 추가 수입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기보다는 사납금을 올려 회사가 고스란히 가져가기 일쑤다. 교통사고가 나서 자체 정비소에서 차를 수리하더라도 부품 값은 월급에서 차감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유사나 주유소가 제공한 경품용 선물을 그대로 명절선물로 포장해 건네는 회사에 따뜻한 애정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소 일방적이고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통 분담과 이익 분배의 불공평한 방정식에 대한 택시기사의 볼멘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계열회사들이 재벌2세가 경영하는 비상장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땅 짚고 헤엄치듯이 돈을 버는 속 터질 이야기를 들으면서 10시간 이상을 운전해 사납금을 빠듯하게 버는 기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더디게 봄은 왔지만 아직도 봄기운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많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형편에 애틋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들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증폭되어 전달되지만 작은 소리는 허공에 맴돌다 사라질 때가 많은 탓이다. 택시기사의 염원인 월급제를 검토하려고 했던 어떤 시장은 복잡하고 거대한 경제생태계 앞에서 좌절을 느꼈다고 한다. 택시를 직접 운전하며 민심을 읽고자 했던 도지사도 현실 정치의 한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하여 대기업에 협조를 구했던 정부도 재계의 미지근한 반응에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다. 그래도 이 세상은 가냘픈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대안을 찾으려는 위대한 용기를 자양분으로 삼아 발전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듯이 일그러진 세상이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주행한담을 기대할 수 있을까?
  • [나와 통일] (3) 양영희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나와 통일] (3) 양영희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나는 재일교포 2세다. 오사카에 살고 있고 어릴 때 조총련계 북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1971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오빠 셋을 북한으로 보냈다. 그때는 북한이 지상낙원인줄 알았으니 아들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오빠네 가족들을 만나러 평양에 갈 때마다 가족들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굿바이, 평양’은 1995년부터 13년 동안 평양을 오가면서 찍은 영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통일이 돼서 남북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한국, 일본,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 체제의 안정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문제를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는 것은 북한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평양에 있는 오빠네 가족들은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생필품과 먹을거리, 엔화가 없으면 생활이 거의 어렵다. 북한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진짜 목소리도 없다. 나는 평양에 갈 때마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나오는 장군님 찬양공연을 본다. 13년간 내용은 똑같다. 나는 평양에 있는 동안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 나는 영화 개봉 때문에 한국을 여러번 갔다 왔다. 이어진 땅에서 같은 한국말을 하고 같은 김씨, 박씨가 살고 있는데 남한 사람은 푸짐하게 먹고 북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서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한반도의 절반, 너희들 그냥 참고 살아.”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통일은 잔인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분단된 지 워낙 시간이 많이 흘러 과격한 방법으로 통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되어야 한다. 통일이 어렵다면 이메일이나 전화, 편지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선택권이 없이 북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관심은 무책임이나 다름없다. 일본 사람들은 남북의 통일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북한은 무섭다거나 밉다는 거부감이 강하다. 간혹 독일 통일 얘기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 한국이 10년은 고생하겠지. 북한은 동독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니까 더 힘들지 않겠어?”라고 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그냥 놔둘 순 없다. 일본에서도 북한에 간 사람이 많다. 1959년 북송사업을 시작으로 9만명 이상을 보냈다. 당시 자이니치(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것은 일본도, 남한도 아닌 북한이었다. 나의 오빠들이 북한에 갔을 때 나는 여섯살이었다. 당시에 부두에서 만경봉호를 탄 오빠들을 배웅하면서 손을 흔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빠들을 보낸 기억이 개인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나는 시대적인 흐름을 목격한 목격자가 됐다.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목격자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2006년 ‘디어, 평양’이라는 영화를 개봉한 이후 나는 북한에서 입국 금지조치를 당했다. 북한 정부는 나에게 사죄문을 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식적으로 낙인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죄문 얘기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제도나 권력자에 대한 혐오감이 그 땅에서 사는 보통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나라가 싫다고 해서 사람까지 미워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요즘 이집트, 리비아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북한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모른다. 북한사회가 좀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만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폭력적인 방법은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만 안 되면 좋겠다. ●약력 ▲47세 ▲도쿄 조선대학교 ▲뉴욕 뉴스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미디어연구과 석사 ▲‘디어 평양’(2006)으로 선댄스국제영화제 다큐 월드시네마 심사위원 특별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 등 수상
  • 명품에 대한 욕망 허영을 스캔하다

    명품에 대한 욕망 허영을 스캔하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년)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명품 판타지’(김윤성·류미연 지음, 레디앙미디어 펴냄)는 가제를 ‘샤넬 스타일’로 했을 만큼 샤넬을 통해 ‘럭셔리라 쓰고 명품이라 불리는’ 패션 산업의 진실을 알려 준다. 저자 김윤성은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했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종대 기후변화센터의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류미연은 대학에서 섬유디자인을 배웠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으며 책에 삽화를 그려 넣었다. ●럭셔리 대명사 샤넬 출발은 여성해방 프랑스 남부 시골에서 장터를 전전하며 행상을 하는 아버지의 둘째 딸로 태어난 샤넬은 수녀원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기숙학교를 졸업한 샤넬은 봉제원의 점원, 클럽의 무명 가수로 일했다. 가수 시절 에티엔 발장이란 기마대 장교를 알게 되어 그의 정부로 몇 년을 보낸다. 여성들에게 자유를 안겨준 패션을 만들었지만 샤넬에게도 남자에게 기대 산 시절이 있었던 것. 하지만 다른 정부와 샤넬이 달랐던 것은 남자의 돈으로 보석, 예쁜 옷, 화려한 파티를 즐긴 것이 아니라 자기 가게를 열어 달라고 한 점이었다. 서른한 살에 샤넬은 발장과 그의 친구가 마련해 준 돈으로 파리 캉봉 가에 모자 가게를 연다. 10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는 샤넬의 트위드 투피스와 500만원을 너끈하게 넘기는 샤넬 가방은 일하는 여성을 고려한, 모더니즘에서 시작한 패션이었다. 특히 샤넬 가방은 매년 가격을 올리지만 오히려 한국 여성들은 결혼 예물로 샤넬 가방만은 꼭 받아야겠다며 목을 맨다. ●보통사람들 사치품 쓰며 계층차이 두려는 심리 저자는 이런 현상을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소득 수준이 보통인 ‘보통 사람’들에게 사치품 또는 명품이 잘 팔리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위에 있는 계층을 흉내 내며 그 안에 속하기를 바라고, 자신이 속한 계층 안에서는 차이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이란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은 ‘노동자 계급’이란 의식이 약하고 ‘나는 중산층’이란 심리적 기준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한계급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금세 유행이 되고, 그 유행을 따라가야 무리에서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멋진 옷과 멋진 생활이란 환상을 주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패션이야말로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판타스타다. 자본주의 세계의 승자는 환상을 만드는 판타스타 쪽이다. 판타스타의 수동형인 판타스티는 번번이 ‘마케팅’이란 판타지 전략 앞에서 힘들게 번 돈을 쉽게 내줬다. 이 게임의 규칙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는 없을까?”라고 묻는다. 명품 소비를 무작정 ‘된장녀의 된장질’로 몰아가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욕망하는 명품의 세계를 꼼꼼히 뜯어 보고 제대로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다. 내 지갑을 열게 하려고 남들이 짜놓은 전략에 걸려들기보다는 전략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경쟁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높아지기 때문이다. ●환상의 허울 두른 패션하우스는 허세의 공장 샤넬의 투피스는 사회에 진출한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일하는 여성을 위한 정장’이었고, 체인을 달아 두 손을 해방시킨 가방에는 퀼팅(누비 박음질) 처리를 해 웬만한 흠은 티가 나지 않도록 했다. 코르셋과 무거운 페티코트를 입던 여성들에게 짧은 머리와 직선적인 옷의 중성적 스타일을 제안한 것도 샤넬이었다. 그럼 다음 시대의 패션을 이끌어 갈 샤넬은 누가 될 것인가. 샤넬이 ‘여성해방’의 정신을 구현했다면 앞으로 패션이 제시해야 할 철학은 ‘생태’와 ‘자연해방’의 정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사치품이 명품이라 불리는 순간, 게임의 규칙은 정해진다고 강조한다. 이제 명품이란 단어는 버리고, 사치품이란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면 차라리 원래 이름인 럭셔리란 단어를 쓰자고 제안한다. 패션 브랜드나 스타 디자이너는 신이 아니라 환상이란 허울을 두른 인간이란 걸 기억하자고 말이다. 그 환상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꿔 부르면 허세를 만들어 파는 사람쯤이 되겠다. 1만 7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의문의 돈 2500만원이 내 통장에…당신 선택은?

    의문의 돈 2500만원이 내 통장에…당신 선택은?

    어느 날 통장에 출처를 알 수 없는 2500만원이 입금됐다면, 당신의 선택은? 중국 충칭시에 사는 장빈(32)씨는 지난 1월 황당한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장씨 명의로 된 통장으로 15만 3800위안, 우리 돈으로 2500만원에 가까운 돈이 입금됐다는 내용이었다. 은행에서 확인한 결과 자신에게 돈을 보낸 사람의 이름은 리쥔란 이었지만 장씨와 전혀 친분이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이름 외에는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통장에 입금된 것을 알았을 때 흔들릴 법도 하지만, 장씨는 엉뚱한 곳에 돈을 넣고 마음 졸이고 있을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그는 곧장 충칭 지역TV에 사연을 알리고 광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방송국 측과 정확한 입금액수와 위치 등의 정보가 일치하는 사람에게만 장씨의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상의했다. 그로부터 4일 뒤, 장씨는 돈을 잘못 입금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여성은 “거래처에 보내야 할 거액을 잘 못 보냈는데도 이를 모르고 있다가, 거래처의 연락을 받고 알게 됐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찰나에 친구가 TV의 광고를 보고 알려줘 돈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큰돈에 유혹될 법도 한데 먼저 나서서 주인을 찾아준 장씨에게 매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보통사람이라면 돈을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지 법률변호사는 “돈을 잘못 입금해 찾을 수 없는 경우 일정 기간 내에 은행과 협의해 일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있지만, 그 절차가 복잡해 해결이 어렵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재스민의 ‘재’자도 못 나오게…” 인터넷 검열 전쟁

    중국에서 ‘재스민 행동’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검열당국과 네티즌은 각각 관련 정보를 차단하고 확산시키며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공산당기 게양의식을 정례화하는 등 ‘애당의식’ 고취를 통해 ‘재스민’을 싹부터 자르겠다는 태세다. 중국과 우호적으로 양안 관계를 풀어 나가던 타이완의 마잉주 총통은 야당인 민진당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재스민 행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야말로 방패와 창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만리방화벽’으로 유명한 중국의 강력한 인터넷 통제를 뚫고 새로운 선동 글을 올리는 데 성공하는 등 ‘게릴라전’ 양상까지 보인다. 네티즌 ‘보통사람’은 22일 홍콩의 한 사설포럼 사이트 게시판에 “매주 일요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재스민 행동’에 나서자.”는 글을 게재했다. 또 다른 네티즌 ‘무명씨’는 중국판 트위터인 마이크로블로그에 “매월 세 번째 일요일을 ‘분노의 날’로 정해 오후 2시에 결집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이 글들은 곧바로 삭제되거나 글이 게재된 사이트 접속이 차단됐다. 이들 외에도 ‘재스민 행동’의 내용이나 20일 전개된 상황을 묻는 글들이 바이두(百度) 등 검색 사이트에 속속 올라오고 있지만 당국의 차단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은 창과 방패의 대결 검열 당국은 재스민의 중국 명인 ‘모리화’(茉莉花)는 물론 ‘모×리×’ 등 ‘모리화’와 관련될 수 있는 단어 조합에 대해서도 금칙어 설정을 하는 등 통제를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이틀간 차단됐던 타이완 연합보 사이트 등은 이날부터 정상적으로 접속되는 등 사이트에 대한 직접 통제는 다소 완화됐다. 중국 정부는 애국·애당 교육 강화를 통해 ‘재스민’ 향기를 원천봉쇄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각급 학교 개학일인 21일 베이징시의 초등학교에서는 공산당 조직인 소년선봉대 주도로 공산당기 게양 의식이 일제히 열렸다. 국기 게양에 이은 공산당기 게양 의식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베이징시위원회와 시교육위원회 지시로 열렸으며 앞으로 매월 첫 번째 월요일 정기적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초등학교에서 공산당기 게양 의식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공청단 관계자는 “당기 게양 의식을 통해 공산당에 대한 ‘붉은 삼각건’(소년선봉대가 목에 매는 붉은 스카프)의 응집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완 총통 “中 민주주의 개혁해야” 한편 타이완의 마잉주 총통이 중국에서의 이번 ‘재스민 행동’을 주목하며 자유·인권·민주주의 보장 등을 촉구해 양안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타이완 총통부는 21일 성명에서 “중국 대륙 민중이 인터넷을 통해 시작한 재스민 운동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면서 “대륙이 번영과 발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와 법치에 목표를 둔 정치개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발걸음을 가속화하고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20일 시위 당시 체포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외교부는 주관 부문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마 대변인은 “중국이 사회주의의 길을 가면서 사회정치적 안정을 지키고 사회조화를 이루는 것은 인민의 공통된 바람으로 어떤 사람도 어떤 세력도 동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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