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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전대협 대화 무산/“신변보장 미비” 학생대표 16명 불참

    ◎대교협,“대화 기회 마련 계속 노력”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박영식연세대총장)가 18일 상오 10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별관3층에서 갖기로 했던 「대학발전을 위한 교수와 학생과의 대화」는 「전대협」소속 각 대학 총학생회 간부 대부분이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대학교육협 대학발전연구위원회(위원장 김희집 고려대총장)소속 전국 26개 대학총장및 교무·학생처장등 보직교수 26명은 이날 63빌딩 별관3층 엘리제룸에서 학생들을 기다렸으나 경상대 자연대학생회장 박재원군(26·물리학과 4년)등 6명만 나오고 나머지 학생대표 16명은 준비부족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김희집위원장은 학생들의 불참에 대해 『불참통보가 늦어져 유감스럽지만 학생쪽의 사과가 있었고 교수와 학생과의 대화는 늘 필요하므로 앞으로 「전대협」대표나 비운동권 학생의 구분없이 다양한 형식의 대화기회를 자주 만들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나오지 않은 학생대표 16명은 같은 시간 연세대에 모여 『참석자의 신변및 발언내용에 대한 보장이 어렵고 참가준비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히는 편지를 전남대 총학생회 인권복지위원장 이신군(25·심리학과 3년)등 대표2명을 통해 주최측에 전달했다.
  • 18일 첫 대좌 총장­운동권학생 모임/사제대화로 정례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박영식연세대총장)가 오는 18일 운동권학생들과 갖기로 한 교수와 학생과의 대화가 원만히 이뤄질 전망이다. 대학교육협의회 대학발전연구위원회(위원장 김희집고려대총장)의 이돈희부위원장(서울대 교육학과 교수)과 김형근간사는 15일 하오 2시쯤 서울대 이교수의 연구실에서 「전대협」의장권한대행 이철상군(23·서울대총학생회장)등 학생대표 3명과 만나 18일의 대화에 「전대협」이 적극 참가하는 것을 비롯,앞으로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갖기로 합의했다. 대학교육협과 「전대협」은 이에따라 오는 18일 서울여의도 63빌딩에서 한국대학의 발전방향과 대학체제 전반,학생자치활동과 학생운동의 방향이라는 2가지 주제아래 전국 30개대학의 총장및 교무·학생처장 등 보직교수들과 총학생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수와 학생과의 대화를 갖게 된다. 협의회는 학원정상화를 위해서는 학생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지난달 30일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이번 행사에의 협조를 요청했으나 「전대협」은 11월말 공청회를 따로요구해 행사개최가 불투명했었다. 이교수는 『「전대협」측이 이번 행사에 성의있게 임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히고 『이번 모임을 상견례로 생각,앞으로도 계속해 모임을 갖는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 대학가 농성 크게 줄었다/올 42개대 64건

    ◎작년의 절반이하로 감소/「총리폭행」이후 자숙분위기 확산 총·학장실이나 학과사무실 등을 점거하는 대학가의 장기농성사태가 올 들어 부쩍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학내문제와 관련,집단농성이 벌어졌거나 진행중인 대학은 42개대학 64건으로 이 가운데 58건은 이미 해소됐고 나머지 6개대학 6건만 농성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배이상 줄어든 것으로 지난 6월 정원식국무총리폭행사건을 계기로 시위및 농성이 수그러들고 학칙개정등을 통해 대학가에 면학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집단농성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등록금인상반대가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복지시설확충 8건 ▲학과신설요구 6건 ▲특정교수배척및 재단보직자퇴진 각각 5건 ▲교원임용고시반대 4건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교육부는 14일 전국 54개대학의 학생과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학생들이 건전한 통일논의를 하도록 지도하고 지속적인 면학분위기를 유지하는데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 한씨 시신 서울대병원 이송/경찰­유족·학생 합의

    ◎빠르면 오늘 부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서울대 대학원생 한국원씨(27)의 시신이 19일 상오 0시50분쯤 관악성심병원에서 앰블런스편으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한씨의 시신을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는 문제는 18일 하오 8시30분부터 서울대 김상주부총장등 보직교수와 유족대표·학생측등이 부검을 전제로 논의,합의했다. 이에따라 한씨의 사체부검은 이날중으로 이뤄질것으로 보인다. 이에앞서 서울지검 강력부 추호경검사는 한씨의 사체를 부검하는데 필요한 압수수색영장을 서울민사지법 윤재윤판사로부터 발부받았다. 그러나 유가족측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 양길승씨의 부검참여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어 부검참여자 선정에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영안실 주변엔 학생 2백여명이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채 철야 농성을 벌였다.
  • 성대 전 총장등 3명 구속/검찰

    ◎1백2명에 62억 받고 부정입학 시켜 성균관대학교 입시부정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1부(이명재부장검사)는 10일이 학교 김용훈전총장(64)과 한동일 전 교무처장(57) 정한규 전 기획실장(51)등 3명을 업무방해혐의로 구속수감했다. 이는 김 전총장등이 교직원 자녀 등은 물론 일반수험생들로부터도 돈을 받고 부정입학시킨 사실이 확인된데 따른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당초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던 이완하 전 부총장(65)은 수원캠퍼스 부총장을 맡아 부정입학사실을 잘 몰랐다는 사실이 확인 돼 무혐의 처분하고 박영석교무과장은 위의 지시에 따라 사무처리만 했었던 것으로 드러나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또 거액의 돈이 오간 입시부정에 재단이 개입됐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봉명그룹 이승무부회장(46)과 서구창사무국장을 전날밤부터 불러 조사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해 이날 집으로 돌려보냈다. 검찰은 한 전교무처장 등 보직간부들이 지난해 12월부터 기부금 입학을 추진,김 전총장의 최종결정을 받아 학교관련자 자녀 52명과 모두 62억원의기부금을 낸 일반학생 50명 등 모두 1백2명의 성적순위를 조작해 부정입학시켰다고 밝혔다.
  • 성대 전 총장등 내주초 소환/검찰,「입시 부정」 수사 착수

    ◎관련자 5명 출국 금지/50여명 부정 입학 사례 확인/교육부,전 교무처장등 3명 해임 요청 서울지검 특수1부(이명재부장검사)는 6일 성균관대학교의 91학년도 입시부정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이는 교육부가 이날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온데 따른 것이다. 검찰은 이날 성균관대의 김용훈전총장과 이완하전부총장,한동일전교무처장,박영석교무과장,정한령전기획실장등 사건 당시 학교보직자 5명에 대해 출국을 금지시켜주도록 법무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교육부의 감사결과를 통해 올해 입학자 가운데 일부 학생의 시험점수가 불합격자보다 낮은 경우등 입시부정혐의점이 있음을 확인하고 부정합격자의 명단과 기부금의 액수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오는 9일부터 김전총장등 관련자들을 소환,본격적인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한편 이번 입시부정진정사건을 감사해온 교육부는 지난 2일부터 5일까지의 집중감사 결과 ▲성적이 상위자보다 월등히 낮은 학생의 합격 ▲교직원 직계자녀의 대다수인 48명의 합격 ▲지원학과가 아닌 다른 학과 2명 부정합격등 입시부정사례를 적발,이를 서울지검에 통보했다. 교육부는 또 이번 사건과 관련,김용훈전총장을 해임하고 한동일전교무처장과 박영석교무과장을 파면하도록 재단측에 요청했다. 교육부의 허종갑감사관은 이날 『대학측이 합격자사정대장등 주요입시관련자료를 분실했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아 부정입학한 전체 인원과 명단,미등록자의 결원보충에 따른 추가합격자 결정방법및 금품수수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교직원자녀 48명 가운데 일부는 감사과정에서 부정입학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외대,학보 발행 중단/학생들의 사설 집필 강행에 제재

    ◎「대학정상화방안」 첫 적용 한국외국어대는 6일 지난2일자로 발행될 예정이었던 「외대학보」제271호의 제작을 중단시켰다. 이강혁총장과 보직교수등 20명으로 구성된 「외대학보운영위원회」는 학생들이 이번 학기부터 학생과 교수 7명이 격주로 번갈아가며 사설을 집필하기로한 합의를 어기고 지난 270호의 사설을 학생들이 쓴데이어 앞으로도 계속 학생들만의 사설집필을 요구하자 이같은 조치를 내렸다. 외국어대가 학보발행을 중지시킨 것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3일 마련한 19개항의 대학정상화방안 가운데 『학보·교지발행은 지도교수 중심의 사전심사를 거치게 한다』는 조항에 따른 첫 제재조치이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8·끝

    ◎“철군 반대” 인터뷰로 워싱턴 “발칵”/이틀뒤 배시사령관,“본국 소환” 통보/카터,경위 설명 불구 끝내 해직 명령/“한국내 전술핵 제거땐 위험” 하원 군사소위 증언서 강조 배시사령관의 민간인 특별고문인 짐 하우스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해(77년) 5월18일 수요일 이었다.그는 1946년이래 한미 양국군의 고문역으로 서울에서 근무해온 베테랑 한국통이었다.그가 주한미군 철군관계를 취재하러온 워싱턴포스트 도쿄특파원 존 사르와 함께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르는 도쿄의 한국 망명 좌익인사들과 친하며 스나이더대사가 그에게는 어떠한 브리핑도 하지말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들은바 있어 그를 만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그러나 하우스만은 유엔사령부가 이미 존 번부사령관의 인터뷰를 허가했으며 나에게는 2사단의 역할에 관한 간단한 질문 몇가지만을 하게될 것이라며 만날 것을 간청했다. ○한국군 장성 견해 어필 결국 「20분간만」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그는 좀 야위었지만 저돌적으로 보이는 30대의 젊은이였다.몇가지 질문을 받는동안 그가 군사문제에는 별지식이 없음을 알게 됐다.마지막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찬반견해를 물었다.『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전쟁도발의 충동을 받게될 것이라는 한국군 장성들의 견해를 순수한 군사적 견지에서 동의한다』면서『그러나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수행해나갈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다음날인 19일 밤10시쯤 배시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조지 브라운합참의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실린 존 사르의 기사 때문에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르에게 크게 문제될만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또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된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커터 게획 도전” 보도 자정이 막 지나서 배시사령관으로부터 또한차례 전화가 왔다.가능한한 빠른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경위설명을 하라는 본국 정부의 소환령을 전했다.한국전쟁때 맥아더사령관이 트루만대통령에 의해 소환된 이래 대통령이 해외주둔 장성을 소환한 일은 두번째였다. 문제의 워싱턴포스트지 복사본을 구한 것은 다음날 새벽 6시였다.「위험한 결정­주한미군장성들,카터 철군계획 신랄한 비판」이라는 제목의 1면박스로 내가 카터대통령의 미군철군계획을 「실책」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돼 있었다.또 철군이 전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한국군장성들의 견해가 내 견해로 나타나 있었으며 『많은 군관계자들이 카터의 철군 구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용도 있었다.더욱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대통령 발표 정책에 대해 일선 장군들이 공공연히 이견을 나타내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정책수행 직전에 나타나고 있다』는 인용구였다. 다음날 도쿄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탄 짐 하우스만을 만났다.딸인듯한 젊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던 그가 내옆에 와서 앉자 그 여자도 함께와 뒷자리에 앉았다.우리는 사르의 보도내용들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얼마후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을때 그녀가 옆에 앉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몇가지 질문에 답하다보니 그녀는 하우스만의 딸이 아니었다.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그녀는 어깨에서 테이프 리코더가 든 백을 내려놓으며 『멜린다 닉스,CBS기자에요』라고 답했다.나중에 온 하우스만은 그녀가 사르의 부인이라고 보충설명을 해줬다. 그녀는 「특종」을 하기 위해 도쿄에서 내렸고 나는 극성스러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브라운 합참의장에게 제출할 경위서를 작성했다.워싱턴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이 철군계획은 이미 지난 5월5일께 최종결정됐으며 유엔사에는 이에앞서 4월말 버나드 로저스육참총장이 방한했을때 이미 통보한 것으로 돼있었다. 해럴드 브라운국방장관과 카터대통령을 만난 것은 5월21일 대통령집무실에서 였다.카터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들어왔다.『싱글로브장군,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익숙해 있소.8년동안의 해군생활에서도 그랬고 조지아주지사를 맡으면서도 그랬소』 대통령은 또 철군에 대해 합참의장과 국방장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합참은 철군의 3개방안을 분석하라는 지시만 받았지 철군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지시받은 것은 아니었다.합참은 결국 가장 지연된 방안을 건의하면서 그것이 미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브라운장관이 그 대목을 삭제했었다.나는 장관을 쳐다봤다.그는 창밖의 로즈 가든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또 『장군의 직속상관인 배시대장의 우려도 결정전에 충분히 참고를 했소』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배시와 상의하겠다고한 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이어서 그는 『당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않아 국방장관에게 해직을 명령했소』라고 말했다. 나는 존 사르기자와 인터뷰한 경위를 설명했다.철군계획이 확정된 사실을 모르고 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으나 일단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수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해직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다.누군가가 대통령이 나를 군법회의에 회부시키든가 아니면 강등시키려했다고 한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싱글로브소장 참모장직 해임」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장관의 말을 인용,1면 톱으로 보도했다. 25일에는 하원군사소위원회에서 증언이 있었다.방청석은 초만원이었다.나는 질의에 앞선 진술에서 ▲결코 민간의 군통치원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헌법을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신문을 이용 군통수권자에게 도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등을 강조했다.여러가지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 지상군과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이다.만일 우리가 이들 지상의 수단들을 제거해버린다면 우리의 억지력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은 오전 오후 7시간동안 진행됐고 마지막에 스트래튼위원장은 북한군의 군사적 우위와 명백한 침략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카터대통령의 고집스런 주한미군철수결정은 의회의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미 지원사령부로영전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역시 1면 머리기사로 「카터의 대한정책 정면 비난」이라고 스트래튼위원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백악관은 즉시 반격에 나서 브라운국방은 내셔날 프레스클럽에서 로저스육참총장이 이미 나에게 결정사실을 통보했었으며 주한미군 지휘관들도 철군에 동의했다는등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나에게는 주한미군정책에 관하여 일체 함구령이 떨어져 있었다. 27일 로저스총장이 새보직을 통보했다.조지아주 맥퍼슨에 있는 미육군지원사령부 참모장이었다.참모부인원만도 2천여명에 달하는 미육군의 12개사령부중 가장 큰부대로의 영전이었다. 결국 카터대통령은 철군정책과 관련 대외적인 대통령의 권위를 확인했고 나의 영전조치로 군내부의 불만을 무마한 셈이었다. 다음해 4월27일 나는 조지아공대 ROTC생도들을 대상으로한 연설에서 카터대통령의 중성자탄 생산연기및 파나마운하정책에 대해 내견해를 밝혔다.소련의 상응조치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중성자탄 생산의 일방중단은 군사적으로 어리석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파나마운하의 관할권 이양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같은 견해가 또 AP통신을 타고 보도됐다. 다음날 나는 국방성으로 소환됐을때 알렉산더 육군장관과 로저스 육참총장에게 사의를 밝혔다.35년간의 군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마침내 위험한 임무는 끝난 것이다.
  • 고신대 입시부정 시인/전 이사장·의료원장/검찰,출국금지 요청

    ◎수련의 복귀거부… 해임사태 우려 【부산=김세기기자】 고신대 입시 부정사건을 수사중인 부산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윤석정·주임검사 양인석)는 14일 상하오에 걸쳐 당시 재단 이사장인 서완선씨(70)와의료원장 박영훈씨(60)를 소환,조사를 벌인 끝에 이들이 대체로 혐의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법무부에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을 했다. 검찰은 또 당시 의학부장 이승도 교수,학생처장 이재우 교수 등 보직교수 4명에 대해서도 14일 하오부터 추가로 소환,▲입시부정 관련범위 ▲입시부정 방법 ▲조성된 자금의 용도등에 관해 조사를 펴는 한편 이들에 대해서도 출국금지를 요청키로 했다. 검찰은 서 전이사장과 박의료원장은 이날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일단 귀가시켰다가 관련 보직교수등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다음주초 구속등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키로 했다. ○박원장 퇴진 재촉구 【부산】 의료원장 퇴진등을 요구하며 장기출근거부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부산 서구 암남동 고신의료원 소속 수련·전공의들이 보사부의 병원복귀통고시한인 14일복귀를 거부하기로 최종 결정한뒤 부산을 빠져나가 시외에서 집단합숙에 들어감으로써 수련의 대량 해임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수련·전공의 1백여명은 이날 하오 3시 학교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박의료원이 퇴진하지 않는 한 병원에 복귀하지 않는다」는 지난 12일 총회 결의사항을 재확인하고 출근거부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이날 하오 병원을 출발,양산 해운자연농원으로 떠났다. 이에따라 고신의료원측은 당분간 이들이 병원에 복귀치 않을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 미 국무부 한국과장/찰스 카트만 임명

    【워싱턴 연합】 스펜서 리처드슨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이번주 전보되며 후임에는 주한미대사관 정치담당 공사를 지내고 로버트 키미트 국무부 정치담당차관의 보좌관으로 있는 찰스 카트만씨가 새로 임명된 것으로 7일 알려 졌다. 카트만 신임 한국과장은 이달중으로 부임하며 리처드슨 전과장은 다른 보직을 위해 어학훈련과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 “끝없는 유혈”… 혼미속의 크로아공

    ◎“분리 독립선언 40일”… 유고사태 점검/세르비아의 “영토 야심” 걸림돌 작용/“민족분규 치유 난망”… EC 중재역에 한계 지난 6월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이 일방적으로 유고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한지 40일이 지났다.그러나 슬로베니아공화국이 EC의 평화중재안을 받아들여 사실상 독립을 승인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한 것과는 달리 크로아티아공화국은 점점 더 깊은 내전의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유고연방간부회는 3일 지난달 29일의 휴전제안을 일부수정한 새 휴전안을 지킬 것을 지시했지만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공화국이 이같은 지시를 받아들일지는 매우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크로아티아공화국출신으로 연방간부회 의장을 맡고 있는 스티페 메시치가 유일하게 새 휴전안에 반대표를 던진데서 알수 있듯이 지금 크로아티아공화국은 연방간부회의 휴전명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크로아티아인들은 슬로베니아의 독립은 허용되면서 왜 크로아티아의 독립은 안되느냐는 반발을 보이고 있는데다 세르비아계 주민들과의 민족분규에서 크로아티아가 일방적으로 당해 왔다고 느끼고 있으며 연방간부회가 지시하고 있는 휴전명령이 민족분규를 해결할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시급한 불만을 끄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공화국이 국경초소의 관할권및 관세징수를 둘러싸고 연방군탱크가 출동,내전 일보직전에까지 이르는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른 시일내에 사실상의 독립승인이란 큰 성과를 얻어낸데 비해 크로아티아공화국은 타결의 기미를 전혀 찾지 못한채 유혈분규가 점점더 악화만 되고 있는 것은 유고내 최대공화국인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의 독립선언을 계기로 크로아티아의 일부영토를 자국내에 합병시키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세르비아 역시 유고의 현 연방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는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사실상 승인하는 내용의 EC중재 평화안을 세르비아가 선뜻 받아들인 것만 보아도 쉽게짐작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크로아티아에 대해선 결코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결국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독립을 대가로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크로아티아공화국내의 영토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강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볼수 없다.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의 독립선언을 둘러싼 분규가 장기화할 경우 이의 수습을 위해 어떤 형식으로든 크로아티아공화국내 세르비아계 주민거주지역 문제가 협상대상으로 제기될 것이란 계산을하고 있는 것같다.이제까지의 경과를 볼때 세르비아는 분규의 장기화및 악화라는 측면에선 분명히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일 내려진 새 휴전 명령의 준수여부를 감시할 위원회의 위원장에 친세르비아 입장을 보이고 있는 몬테네그로의 브랑코 코스티치를 임명함으로써 크로아티아의 반발을 부른 것도 그같은 세르비아의 의도가 먹혀들고 있는 한 과정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계산처럼 크로아티아가 쉽게 자국내 영토를 양보하는 일은 없을것이다.슬로베니아가 국경초소의 관할및 관세징수라는 비교적 협상이 용이한 경제문제를 둘러싸고 분쟁을 빚은 것과는 달리 크로아티아공화국은 영토라는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좀처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슬로베니아에서의 내전위기를 무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EC가 크로아티아공화국에선 별로 큰 몫을 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EC는 크로아티아에서의 유혈분규가 악화되자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간에 먼저 휴전이 성립되지 않는한 슬로베니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평화감시활동을 계속할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현재로선 크로아티아에서의 유혈분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크로아티아공화국내 세르비아계 주민거주지역에 대한 세르비아공화국의 욕심을 잠재울수 있다면 유고위기의 해결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이를 위해선 세르비아공화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중적인 압력이 필요할 것이다.
  • 경찰청/민생치안분야 조직 강화/수뇌부 26명 이동의 언저리

    ◎「중립화」고려,위원회에 민간 기용/인사관행 중시… 간부후보출신 중용 29일 김원환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수뇌부 26명의 인사가 오는 8월1일자로 단행됨에 따라 새로 발족하는 경찰청과 지방경찰청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인사는 경찰사상 최대규모로 예상되는 경찰청발족인사의 첫 발령이며 곧이어 경무관급이하 후속인사가 뒤따를 것임은 물론이다. 이번 인사는 사상최대규모이면서도 그 내용은 서열을 중시하는 과거의 관행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우선 신임 경찰청장에 김원환서울시경국장이 승진 임용된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며 으레 서울시경국장이 치안본부장으로 기용되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경찰서열 3위인 허진원해경대장이 퇴임 한것 또한 과거의 관행을 따른 셈이다. 이번 인사에서 상당한 주목거리였던 경찰위원회에는 허정훈전사법연수원장을 위원장으로,경남도경 국장등을 역임한 강두현단국대학교수가 상임위원으로 발탁됐으며 그밖에 학계·언론계 인사들이 골고루 기용돼 「국민의경찰행정 참여」가 간접적으로나마 충족되도록 배려된 셈이다. 경찰청의 발족과 경찰위원회의 신설은 정부수립후 치안국·치안본부 등 내무부장관의 보조기관에 머물러 오던 경찰의 위상을 한층 높일 것에 틀림없다.조직상 외청으로 독립한다는 것만해도 커다란 변화라 할수 있다.다만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경찰의 보다 폭넓은 중립화와 실질적인 독립을 바라는 경찰내부의 희망을 충족시키기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어서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찰인사는 앞으로 1년 남짓한 기간에 3차례의 선거가 예정돼 있는 등 치안수요가 적지 않을 것을 고려해 경찰조직이 크게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인사권자의 희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간부후보생 14·15·16기및 고시출신이 경찰조직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김청장이 지난 60년 경찰역사상 단 한차례있었던 학사경사출신이고 이인섭신임서울지방경찰청장이 간부후보생 13기일뿐 김효은 신임경찰청차장,박노영대구지방경찰청장,구본우서울지방경찰청차장,여관구청와대치안비서관,안윤희경기지방경찰청장,최재삼충남지방경찰청장(유임),정진규강원지방경찰청장 등이 간부후보생 14기출신이다. 간부후보생 15기로는 유상식경찰청정보국장,박수영경남지방경찰청장이 포진하게 됐으며,재직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16기 출신 이강년부산시경국장이 해양경찰청장으로 승진했다. 이밖에 박일용신임부산지방경찰청장,김화남경찰청 경비국장등 행정고시 출신들도 주요 보직에 발탁됐다. 이번 인사로 치안본부의 정보·대공·외사분야 6개 부가 정보국과 보안국으로 통합된 반면 방범 형사 교통등 민생치안 분야는 현재의 부가 그대로 국으로 확대 개편되므로 경찰청의 차원에서는 일단 민생치안분야에 역점을 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신망두텁고 업무추진력 탁월/서울대총장 내정 김종운씨(얼굴)

    30여년동안 한결같이 서울대에 몸담고 있으면서 기획실장·교무처장·부총장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학내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실무형」. 서울대의 첫 직선총장이 되는 그는 탁월한 업무추진능력과 함께 평소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대인관계로 교수들뿐 아니라 교직원·학생들로부터도 두터운 신망과 존경을 받고있다. 이때문에 총장선거가 있기전부터 유력한 「총장감」으로 물망에 올랐었다. 현대미국소설이 전공인 그는 같은과 후배인 김동진여사(51)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실질 생활보장,양질의 전투력 확보”/하사관 처우개선의 배경

    ◎전역 막게 봉급 현실화… 국영기업의 90%선 인상/“계급 다단계화”… 하사 2년 복무땐 전원 중사 진급 국방부가 22일 마련한 하사관처우개선책은 육·해·공군·해병대의 근간인 하사관들이 낮은 봉급,근무여건의 열악,군내외의 낮은 인식 등으로 전역원을 내는 장기하사관들이 늘어나 이를 방지,양질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제6공화국이 들어선 88년부터 각 군에서는 하사관들의 전역희망률이 높아져 정상적인 군부대운영과 각군 특성에 맞는 고유전력 유지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해군과 공군의 경우 하사관들은 대부분 고된 함상근무와 야근을 자주해야 하는 무장·정비·통신·레이다기지 등에서 근무하는 기술하사관들로 전역 희망률은 50%가 넘고 있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부대장들은 말하고 있다. 하사관의 현인원은 65만 군전체병력의 12∼13%선인 8만여명 수준이다. 이중 지난해에 약11%가 전역했으며 올해에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국방부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공군의 일선부대에서는 일부기술하사관들이 민간항공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집단으로 전역원을 제출했다가 당국의 불허조치에 불복,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공군기술하사관들은 군대생활을 계속할 경우 비상대기,일직근무,잦은야근 등으로 근무가 힘든데다 봉급수준은 민간회사의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고 또 잦은 인사명령으로 전국의 기지를 돌아다녀야해 자녀교육이나 주택마련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전역원을 내는 경우가 많다. 현재 4계급제도로 되어 있는 하사관의 계급은 하사 1호봉이 20만4천7백원,중사 1호봉은 24만5천2백원,이등상사 1호봉은 30만9천1백원,일등상사 1호봉은 45만7천4백원 등으로 도시근로자 생계비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일등상사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진급을 하는 경우에도 15년이 걸리며 주택을 마련하는 경우는 20∼30%밖에 되지 않는다. 국방부는 이번 개선책에서 일등상사위에 특무상사제도를 신설,5계급제도로 만들고 비무장지대와 함정근무·항공정비직종의 특수수당을 대폭 늘려 현 국영기업체의 70%수준인 보수를 90%로 향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하사 40세,중사 45세,이등상사 50세,일등상사 53세 등의 연령정년을 4∼6년씩 연장하고 하사 2년만에 전원이 중사로 진급할 수 있도록 진급관리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20%에 이르고 있는 주택보급률을 95년까지 60%로 향상시키기 위해 1만3천6백50가구의 관사를 건설하고 군인공제회의 주택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주택자금을 융자·알선하며 주택청약우대제도를 관계기관과 협의해 마련키로 했다. 또 과거에는 장교들에게만 실시하던 일반대학 위탁교육을 하사관들에게도 시행하며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만 지급하던 자녀학비보조를 대학까지 확대,실질적인 봉급인상효과를 갖도록 했다. 국방부는 또 「만년사병」이라는 하사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장교수준의 계급장 및 정복을 마련하고 계급대신 보직에다 「님」자를 붙이는 등 호칭을 개선키로 했다.또 주임상사의 활동비를 대폭 늘리고 지휘관과 같은 크기의 집무실을 마련해 주는 한편 국립묘지에 하사관묘역 신설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처우개선책만으로는 하사관전역률을 낮출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경제의 발전과 국제화·개방화·민주화에 따른 사회의 전문기술인력에 대한 수요증가로 기술하사관들의 전역률은 해마다 늘어날 전망이다. 안보적 상황이 우리와 다른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하사관들에게는 각종 혜택과 정책적인 배려를 해줌으로써 우수인력들이 투철한 사명감과 왕성한 사기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볼때 우리도 이제는 하사관들에게 일방적인 애국심만으로 근무를 해달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시점에 온 것이다.
  • 서울대 직선총장 득표전 치열/예비후보 5명중 누가 뽑힐까

    ◎최종후보 2자리 놓고 표밭 일구기/김영국부총장·김종운·조순씨 물망 서울대 첫 직선총장은 누가 될까. 개교 45년만에 처음으로 전체교수들의 직접투표로 조완규총장의 후임인 19대 서울대총장후보로 김영국부총장(61·정치학)등 5명으로 9일 압축됨에 따라 신임총장후보에 대한 학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총장선정위원회는 이날 하오 교수회관에서 44명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7명의 총장예비후보중 오는 16일에 치러지는 투표대상이 될 5명의 총장후보를 확정했다. 이에따라 그동안 학맥과 개인적 연고등을 통해 보이지 않게 진행되어온 각 후보들의 「득표전」도 수면위로 부상,선거열기는 보다 뜨거워질 전망이다. 후보선정위는 당초 지난 5일 김부총장등 현직교수 8명과 학교밖인사인 조순전부총리(62·전경제학교수)등 모두 9명의 총장예비후보를 선정했으나 자연대 분자생물학과 하두봉교수(60)는 현 조총장과 같은 학과라는 이유로,법대 공법학과 이수성교수(52)는 『선배(배재식교수 법대 공법학과)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이날 후보사태를 공식선언했다. 후보들의 경력이 대체로 비슷한 점을 감안할 경우 서울대의 숙원사업인 「장기발전계획」을 차질없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데 필수적인 대외교섭력을 갖춘 후보가 일단은 유리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이때문에 김영국현부총장이 우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학계의 원로인 김부총장은 학·관·정계등에 직계제자들이 폭 넓게 포진하고 있는데다 각계의 영향력있는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외교」능력이 다른 후보보다 앞선다는 평을 받고있다. 인문대교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종운교수(62·영문과)는 보수성이 강한 서울대 풍토에서 대표적인 비관료적 원로교수로 꼽히고 있으며 교수뿐 아니라 교직원·학생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또 이번 후보선정과정에서 최대 이변으로 여겨지고 있는 조순전부총리는 2년여동안 학교를 떠나 있었다는 약점에도 불구,경제학과교수들의 적극적인 추대로 후보로 나서게 됐으며 서울대 소장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알려졌다. 또한 의대 이광호교수(60)도 의대및 치의대교수의 수가 전체교수 1천3백여명가운데 4분의 1이나 되는 3백여명 이상이 돼 역시 최종 후보로 뽑힐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의대학장을 지낸 이교수는 전남 순천고를 졸업한뒤 64년부터 서울대에 몸담고 있으며 스케일이 크고 합리적인 인물로 평이 나 있다. 또 전용원공대교수(60·자원공학)는 전교수협의회 회장으로 인간관계가 좋다는 평이나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보직경험이 없다는 점이 약점이 되고 있다. 한편 직선총장의 첫관문을 통과한 이들 후보들은 오는 11일과 12일 이틀간 서울대 관악·연건·수원등 3개 캠퍼스를 돌며 교수간담회를 가진 뒤 지지를 호소,치열한 득표전을 벌이게 된다.
  • 유고군,슬로베니아서 철수/EC 중재

    ◎두 공화국의 독립유예등 3개항 합의/연방간부회의 의장에 메시치 선출/크로아티아공선 총격전 계속 【베오그라드·자그레브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유고슬라비아 연방간부회의는 1일 스티페 메시치 전 크로아티아공화국 총리를 연방간부회의 의장(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유고사태는 내전확대 일보직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스티페 메시치 신임 연방간부회의의장은 의장 피선직후 슬로베니아공에 휴전을 호소하는 한편 연방군에 대해 군사개입 중단을 명령했다. 그는 「헌법상 대통령」자격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연방군에 대해 지난 28일 EC의 중재에 따라 합의한 휴전사항 준수를 명령했다. 이같은 사태진전은 유고사태 해결을 위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을 방문한 유럽공동체(EC)사절단이 1일 유고 연방정부 및 2개 공화국 대표들과 회동,▲2개 공화국의 독립 3개월 유예▲연방간부회의의장(대통령)선출▲슬로베니아공화국으로부터의 연방군 철수 등 3개항에 합의,이를 문서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지아니 데 미켈리스 이탈리아 외무,자크 푸스 룩셈부르크 외무,한스 반 데어 브뢰크 네덜란드 외무장관 등 EC대표로 나선 3국 외무장관들은 지난30일 밤부터 1일 새벽까지 유고연방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대표들과 마라톤회담을 갖고 이같은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이같은 사태진전에도 불구,1일 새벽 크로아티아공화국 북동부의 한 세르비아인 마을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베오그라드TV가 보도했다.
  • 당시 중대장 이대용씨의 회고:「내가 겪은 6·25」 하

    ◎혹한속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 돌파/평양서 재편성… 「인해전술」과 싸우며 남하/51년 7월 대대장으로… 금성·금화서 공방전/저격능선 「고지쟁탈」 전투중 미 유학 명령 1950년 10월28일 하오 6시45분.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벌써 어둠이 깔렸다. 제7연대 제1중대는 5대의 트럭에 분승,주둔지인 압록강변을 떠나 초산읍으로 철수했다. 다음날인 29일 새벽 5시쯤 제1대대 수색대를 태운 군용차 한 대가 초산읍에서 다시 남쪽을 향하여 떠났다. 제1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북한공산군의 출몰이 염려되는 구용동 남쪽 고개를 수색·점령·확보하기 위해 먼저 떠난 것이다. 그날 아침 6시30분쯤 제7연대 제1대대는 군용트럭을 타고 초산읍을 출발,남쪽으로 내려가 고장에서 연대본부와 합류했다. 이때 중공군은 고장 남쪽에 있는 풍장 일대에서 아군이 남하하는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이들 중공군을 일제히 공격,돌파작전을 개시했다. 우리 공군 전폭기들이 중공군 진지를 강타하면서 제7연대의 돌파작전을 근접지원해주었다. 중공군은 남으로 좀 밀려나는 듯했으나 그들의 두꺼운 포위망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달이 없는 어두운 밤이 됐다. 지형은 폭이 50∼1백50m 가량 되는 좁은 계곡이 길게 남북으로 놓여 있고 계곡 양쪽의 산줄기들은 가파르고 높았다. 이날 밤 12시 정각,중공군은 야간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야간전투는 혀를 찰 만큼 아주 능숙했다. 얼마 안가서 제7연대의 전방부대가 무너지고,전방에서 흩어진 연대병력은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도로를 따라 북쪽을 향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후방으로 멀리 떨어져서 재편성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방에서는 이미 다른 중공군 부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숨 돌릴 새없이 달려들었다. 재차 흩어져서 다시 더 먼 후방으로 달려가 보아도 그곳에서도 전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 제7연대는 중공군 제40군예하 1개 사단과의 첫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다. 중공군은 우선 병력면에서도 우리 제7연대의 약 3배나 됐다. 군용트럭 수백 대와 사단포병 야포 6문,대전차포,기타보급품을 버린 채 제7연대는 낭림산맥의 지맥인 유령산맥 깊은 산중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들어갔다. 중공군은 이 분산병력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악착같이 우리 부대를 추격하며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중공군과의 싸움에 들어가기 전 필자의 지휘하에 있던 병력은 제1중대원 약 1백60명,배속된 중기관총반원 약 10명,귀순 동화된 북한공산군 포로 남녀 약 25명,간호학생 2명,한국청년단원 약 10명 등 모두 2백명이 넘었으며 이 중 여자 등 비무장인원을 제외한 전투가능 인원은 약 1백85명 정도였다. 필자는 이 전투가능병력 중에서 약 60명을 잃은 채 잔여인원을 이끌고 유령산맥으로 들어갔다. 높은 산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곳은 벌써 깊은 겨울이어서 뜯어 먹을 풀조차 없었다. 중공군을 만나면 싸우기도 하고 피해 달아나기도 하면서 남으로 남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포위망을 계속해서 뚫어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중공군뿐이고 아군은 도대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중공군과 만나 교전이 이루어질때마다 아군의 병력은 자꾸 줄어만 들었다.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는 데서 우리 제7연대의 인명피해는 엄청났다. 당시 제7연대에는 8명의 영관급 장교가 있었는데 이 중 6명의 손실이 있었다.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제1대대 부대대장 조현묵 소령,연대정보주임 김재강 소령 등 4명은 포로가 됐고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은 전사했으며 연대작전주임 조윤재 소령은 무참히 학살당했다. 포위망을 뚫고 용케도 살아나온 사람은 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김용배 중령은 그후 전사했다. 더욱이 장병들의 손실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내가 덕천지방 동쪽 송정리에서 대동강을 건너 남중리의 적군과 최후의 교전을 갖고 포위망을 뚫은 뒤 제6사단 사령부에 도착,사단장 장도영 준장에게 신고를 한 것은 그해 11월9일 오후 3시경이었다. 나는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나와 사단장에게 첫번째로 신고식을 갖는 장교가 된 것이다. 군악이 울려 퍼졌다. 군인 20명을 3렬 횡대로 하여 세워놓고 마지막에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2명을 세웠다. 중대장인 나는 3렬횡대의 6보 앞 중앙에 섰다. 나는 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경례! 바로! 제7연대 제1중대장,이대용 대위는 적포위망을 돌파하고 사병 20명,민간인 간호학생 2명을 지휘하여 1950년 11월9일 사단사령부에 도착했기에 이에 삼가 신고합니다. 경례! 바로!』 사단장의 위로와 격려사가 있었다. 군예대 여자 가수가 나의 목에 하늘색 머플러를 걸어주었다. 사단사령부에서 할당해주는 민중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박태숙·정정훈양에게 하사관 1명을 딸려 서울로 떠나 보냈다. 깨끗이 보호하고 온 처녀들이 도중에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든든한 하사관을 경호원으로 배정,서울까지 가게 한 것이다. 11월22일까지 제7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김용배 중령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고 후방에서 신병들과 육군종합학교 출신 신임 소위들이 보충돼 제7연대는 11월25일 재편성을 했다. 병력숫자로는 제7연대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셈이었다. 재편성이 끝나기가 바쁘게 제7연대는 덕천 남쪽 북창으로 이동하여 중공군과 대결하게 됐다. 북창과 가창 사이에 있는 미럭고개에서 큰 접전이 벌어졌으나 신병들인 아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견뎌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공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우리 제7연대는 평양 상원 서흥 시변리 삭녕 전곡을 거쳐 다시 38선에 배치되었다. 북한공산군이 남침한 1950년도 저물어 갔다. 그해 12월31일 밤이었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린 제7연대 제1중대는 동두천 의정부를 거쳐 서울 북방 창동에 배치되었다. 해를 넘겨 1951년 1월6일 경기도 광주를 거쳐 백암리로 가는 도중에 나는 제1대대 부대대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대대장 대리로 제1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듯이 불어댔다. 1·4후퇴라고 일컬어지는 설상의 피란민대열이 남으로 남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중공군도 각종 보급품들이 달리고 장티푸스까지 만연하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다. 중공군은 양지리 북쪽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제7연대는 그동안 중공군과 싸우면서도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엔 대단한 적군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도 별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불패의 군대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약 2개월간 제1대대를 지휘하고 나서 대대장이 새로 부임함에 따라 부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용문산지구 전투,춘천지구 전투,구만리지구 전투,풍산리지구 전투,백암리지구 전투를 끝으로 나는 그해 7월9일 제7연대를 떠나 제2사단 제32연대 제1대대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해 10월27일에는 제32연대 제3대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금화지구 파조봉­이실골 전투,금성지구 전투를 하면서 제32연대 제3대대는 금성 바로 앞산인 424고지까지 1개 소대를 진출시켰다. 여기서 중공군과 매일같이 폭격전과 수색전으로 투덕거리며 한겨울을 보냈다. 미군과 교대하고 금화 쪽으로 빠져나왔다. 제32연대는 제3대대는 금화 동북방에 있는 저격능선에 배치됐고 한국군에도 임시계급제도가 도입되어 일선 보병대대장들에게는 1952년 3월부터 모두 육군중령 계급이 부여됐다. 저격능선은 지형상 항상 긴장상태에서 적과 공방임무를 수행해야 했달. 그러던 중 나는 미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2년여의 전진을 씻고 부산항에서 미국행 군용수송선을 탄 것이 1952년 9월2일이다. 이때의 군복은 카키색 군복이고 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6·25가 일어났을 때,내가 춘천도서관으로 가던 때의 군복도 카키색 군복,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카키색 군복으로 맞이한 나의 6·25는 카키색 군복으로 막을 내렸다.
  • 부산대교수회,총장후보 선출/학교측선 인정 거부

    【부산=장일찬 기자】 총장선출방법 및 시기를 놓고 대학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부산대교수회(회장 하일민 교수)는 22일 하오 2시쯤 교내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31년만에 총장 후보선거를 실시,5명의 출마자 가운데 장혁표 교수(58·교육학과)와 박준용 교수(55·정외과) 등 2명을 총장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서주실 부산대 총장은 지난 21일 「교수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교수회의의 총장 후보직선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따라서 교수회의가 일방적으로 선출한 총장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이번에 선출된 두 후보에 대한 승인을 거부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 ROTC 출신 첫 중장 진급/정부,장성급 인사

    정부는 13일 육군 장성급 정기인사를 단행,박세환(ROTC 1기),이택형(육사 19기),배일성 소장(육사 19기) 등 소장 3명을 중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차기준 준장(육사 21) 등 11명의 준장을 소장으로,배영복 대령(ROTC 3기) 등 대령 4명을 준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단장 2명과 사단장 6명 등 일선 지휘관과 참모들에 대한 보직인사는 곧 단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인사의 특징은 ROTC 1기가 임관 30년 만에 최초로 중장에 진급한 것과 야전경험과 전문지식이 풍부한 인사가 발탁된 것이라고 말했다.
  • 「대책회의」간부 영장집행 길 열려/정평위의 강씨 「출두권유」 안팎

    ◎“국법 거스를 권한 교회엔 없다” 인식/15일 이후 경찰투입 가능성 높아져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소집을 지시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 문제를 논의한 끝에 강씨에게 빠른 시일 안에 검찰에 자진출두하도록 권유하고 나선 것은 강씨가 은신해 있는 명동성당에 곧 공권력이 투입될 가능성이 큰 것을 시사하고 있다. 강씨는 「정평위」의 결정에도 불구,광역의회의원선거가 끝나는 오는 20일까지는 성당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으며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 이수호씨와 「전민련」 공동의장 한상렬씨 등 「대책회의」 간부 3명은 15일까지 성당에서 철수하겠다던 방침을 번복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 동안 공권력의 투입에 반대해오던 성당측은 「정평위」의 결정이 내려진 뒤 『이미 구속영장이 나와 있는 사람의 신변은 책임질 수 없으며 공권력의 투입을 계속 거부해 국가의 법질서를 거스를 권한이 교회에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는 성당측이 공권력의 투입을 묵인할 수도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풀이돼 성당측의 큰 반발없이 경찰이 구속영장을 집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할 수 있다. 서울대교수 신부와 평신도들로 구성된 「정평위」는 김 추기경이 교구청 보직신부들로부터 강씨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난 뒤 지난 11일 소집됐다. 「정평위」는 이 모임에서 소위원회를 구성,강씨에게 자수를 권유하고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도록 촉구하며 변호인단을 구성한다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12일 김 추기경의 재가를 받았다. 성당측은 그 동안 강씨 문제와 관련,『교회의 품 안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종교적 입장을 내세워 공권력의 투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정당한 법집행을 위한 공권력에 맞서 종교적 권위만을 내세울 경우 도리어 종교에 대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 등을 우려한 현실 판단에 따라 절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제와 신도의 대부분이 『실정법을 위반해 구속영장이 발부되거나 지명수배된 사람들을 교회가 무한정 비호할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같은 결정을 뒷받침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성당측의 요청에 따라 15일까지 공권력의 투입을 유보하기로 했던 경찰은 강씨와 「대책회의」측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15일 이후 성당에 경찰을 들여보내 강씨 등을 검거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말부터 성당측에 경찰투입을 묵인해주도록 요청할 때마다 무술경관 2백여 명만으로도 큰 충돌없이 이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아직도 성당 안 문화관에는 강씨 등 50여 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어 이들이 경찰에 격렬하게 저항할 경우 성당측이 가장 우려하는 불상사가 빚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같은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면 가톨릭의 종교적 양심에 흠집이 생기고 나아가 가톨릭과 정부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성당측은 강씨와 「대책회의」 관계자를 15일까지 최대한 설득,스스로 걸어나가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성당측은 이와 관련,『강씨에 대해서는 검찰에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촉구하고 이를감시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강씨 등이 자진출두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명분」을 준 셈이다. 한편 경찰은 지난 89년 7월 「교원노조」 사태가 한창일 때 사복형사 20여 명을 명동성당 안 가톨릭회관에 들여보내 「교원노조」 위원장직무대리 이부영씨를 연행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 뒤 문규현 신부의 방북사건과 관련,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던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남국현 신부 등 3명이 스스로 명동성당 밖으로 걸어나와 연행됐으며 경찰도 굳이 성당 안까지 들어가지 않아 「성역」이 지켜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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