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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납치된 아들 찾아 헤매던 아버지는 결국 삶을 내려놨다[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납치된 아들 찾아 헤매던 아버지는 결국 삶을 내려놨다[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형제원이 앗아간 아버지...그리움 속 30년 모진 삶만 이어져 “아버지에게 가야해요.” 1984년 당시 8살 소년이었던 이경호(43)씨는 동네 길가에서 자신을 다짜고짜 끌고가려는 군인 아저씨에게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그는 이씨를 경찰들 손에 넘겼고, “아버지에게 보내준다”던 경찰들은 이씨를 형제원으로 보냈다. 이씨에게 형제원에서 보낸 3년의 세월은 지울 수 없는 악몽이다. 그곳의 어른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이씨 같은 어린 생도들이 살아남으려면 다른 어린 생도들을 짓밟아야 했다. 예컨데 기합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이불 속에 돌돌 말아 침대 밑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을 시켜 2층 침대에서 정확히 이불 속 아이 위로 뛰어내리게 했다. 머뭇거리면 그 아이도 이불 속 신세가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면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뛰어야 했다. 100명 중 선착순 1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식사 도중 매질을 당했다. 잔인한 폭력 속에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는 일은 이씨에게 다반사였다.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건 굶주림이었다. 이렇게 배를 곯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번은 매질을 각오하고 감자창고 창틈으로 철사를 찔러 넣었다. 그렇게 꺼낸 맛없는 생감자는 살기위해 입에 쑤셔넣었다. 이씨가 3년간 이런 지옥 같은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보육원으로 옮겨진 이씨에게 전해진 소식은 이씨를 무너져내리게 했다. 이씨를 찾아 헤매던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다시 품에 안지 못하고 삶을 비관해 세상을 떠났다. 3년 전 “아버지에게 가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모진 고통을 견딘 이씨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남은 가족인 어머니와 형도 행방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가족을 그리워하며, 이씨는 하루하루 모진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래는 이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이경호 진술내용: 제 기억으로 저는 어린시절 진해 용원에서 살았습니다. 8살쯤 아버지 사업을 이유로 부산으로 이사했습니다. 형이 한글과 숫자를 가르쳐 줬고 열심히 공부하면 놀게 해준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밖으로 나가 놀곤 했습니다. 그날은 1984년 7월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놀자는 마음으로 밖에 나가 놀았습니다. 한참을 놀다 보니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웬 군인 아저씨가 다가와서 “너 집에 안 들어가냐”고 물었습니다. 왠지 무서워서 “지금 아버지한테 갈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갔습니다. 한참을 도망가서는 ‘이제는 없겠지’하는 마음으로 집 가는 길에 그 군인 아저씨가 다시 다가와 “괜찮아 솔직히 말해봐”라고 말했습니다. 무섭기도 했고 멀리 와서 그런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서 우는 저를 군인 아저씨는 부산진 경찰서로 데려갔습니다. 당시 한 여자 경찰관이 다른 옷으로 갈아 입혀주고 씻겨 주며 “괜찮아 내일 집에 데려다 테니 안심하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놓았습니다. 경찰서에서 자고 일어나 다음날 아침에 버스를 탔습니다. 여러 명의 어른이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을 봤지만 처음 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어디론가 한참을 갔습니다. 도착하니 입구에 큰 철문이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 왼쪽 사무실로 들어가니 누군가 사는 곳과 나이, 이름 등을 물어봐서 대답했습니다. 한동안 함께 온 아저씨들과 같이 있다가 나의 또래 아이들이 있는 24소대에 배치됐습니다. 24소대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옷을 나눠 줬습니다. 옷에는 숫자가 있었습니다. 나눠준 고무신과 속옷에도 번호가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사람들은) 옷에 있는 숫자만 기억했습니다. 누군가 저를 부를 때면 숫자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대답하면서 ‘오늘은 몇 대를 맞을까?’ 항상 긴장하고 두려워했던 기억들이 가득합니다. 친구 담요 속에 둘둘 말아놓고 그 위로 뛰어내리게 해 하루하루 보내면서 저는 형제복지원 안에서 개금분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만화, 영화, 비디오 청취 등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체조를 하고 나면 소대에 들어와 ‘오늘은 누가 잘못해서 얼마나 맞을까?’, ‘어떤 기합을 받을까?’ 걱정했습니다. 단체 생활이라서 누군가 잘못하면 모두가 매를 맞고 기합받았습니다. 이런 생황이 매일 반복됐습니다.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울 수도 없었습니다. 울거나 아프다고 소리치면 더 맞았습니다. 어느새 저는 울지 않고 버티는 아이가 됐습니다. 다른 아이의 잘못으로 기합은 매일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지옥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기합은 땅에 머리를 박거나 물구나무를 서서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에 피가 쏠려 흔들거리거나 다리가 떨어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몽둥이로 온몸을 과격하게 때렸고, 다시 또 물구나무를 세우고 또 때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기합받다가 못 버티는 아이는 담요를 덮어놓고 다른 아이들에게 시켜 2층 침대에 올라가 담요 속 아이 위로 뛰어내리게 했습니다. 주로 조장이나 서무가 지시했는데 담요 위로 정확히 뛰어내리지 못한 경우는 그 아이도 똑같이 담요에 집어넣고 고문을 했습니다. 조장이나 서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양팔로 아이를 번쩍 들고 뒤로 던져버렸습니다. 던져진 아이는 팔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손목이 골절되거나 머리를 땅에 머리를 땅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찢어져 피를 많이 흘렸고 어지럽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때 상처는 군데군데 소위 말하는 땜빵으로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습니다. 한번은 귀를 맞았는데 그때 이후로 한쪽 귀가 좋지 않고 불편함을 느낍니다. 제 팔에는 조장의 폭행으로 난로에 데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아프고 당시 말도 못했던 기억에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형제원에서의 기억으로 분노조절 장애 증상이 생겨 세상살이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참을 수 없는 굶주림에...창고 틈으로 철사 찔러넣어 생감자 꺼내먹어 밥 먹을 때도 편히 먹은 적 없습니다. 100명의 아이와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조장이나 서무가 “선착순 10명”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모두가 밥을 먹다 말고 소대로 뛰어갑니다. 10명 안에 들면 열외하고 나머지 90명은 고문과도 같은 기합, 매질과 욕설을 당하는 일이 매일매일 반복됐습니다. 어린 저는 매일매일 당했습니다. 치가 떨리도록···.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플 때는 감자창고에 몰래 가서 창문 틈에 철사를 집어넣어 감자를 찔러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생감자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입니다. 당시 형제원 목욕탕 근처에는 물음표 표시가 있는 창고가 있었는데 당시 “어른들만 출입하는 곳인가?”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들어갈 때 걸어서 들어갔던 사람이 나올 때는 하얀 천으로 덮여 선도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들려서 나오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자식 찾아 헤매던 아버지는 결국 스스로 목숨 끊어 그렇게 지옥 같은 생활이 이어지던 중 1987년 4월 보육원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보육원 아버지에게 우리 친아버지가 나를 찾다가 못 찾아서 술만 드시다가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형의 행방은 지금도 모른 채 모진 삶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따라 만들어졌음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국가가 내 인생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억울한 목숨을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의 가해자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내 인생을 배상해 주십시오. 2021년 7월 1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경호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진천 입소 아프간인들 격리 끝나면 사회적응 교육

    진천 입소 아프간인들 격리 끝나면 사회적응 교육

    27일 충북 진천군 덕산읍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입소한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이 8주 정도 머물며 시설 안에서 어떤 생활을 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날 법무부 등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앞으로 2주간은 격리 조처돼 외부와 접촉이 제한된 상태로 지내야 한다. 보호자가 필요한 12세 이하 아동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는 가족과 함께 지내도록 3∼4인실을 배정했다. 구내식당 이용 대신 도시락이 제공된다. 격리기간 동안 하루 3회 체온측정을 하고, 입소 7일차에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격리종료 직전에도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정부는 다양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시설에는 통역인 1명이 상주한다. 식단은 입소자들의 종교를 고려해 마련된다. 영유아가 많은 점을 감안해 격리가 종료된 후에는 인재개발원 안에 임시보육시설이 운영될 예정이다. 경찰 1개 기동대와 법무부 직원 14명으로 구성된 안전요원들은 24시간 안전관리에 나선다. 인재개발원 외곽은 경찰이, 내부는 법무부 직원이 맡는다. 격리 기간 이후 6주간 더 머무는 동안 정부는 한국어, 문화, 법질서 등 사회적응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정부를 위해 활동한 만큼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며 “초기 정착에 필요한 생계비, 의료비 등도 마련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입소한 아프가니스탄인은 총 76가구 377명으로 남자 194명, 여자 183명이다. 미성년자가 231명으로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만 6세 이하도 110명이나 된다. 76가구 중 6인가구가 24세대로 가장 많다. 8인 가구도 6세대나 된다.
  • 영등포구 양평동 도시재생에 부동산매입방식 첫 적용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1가가 처음으로 부동산 매입사업 방식 도시재생 인정사업을 진행한다. 시는 도시재생위원회가 영등포구 양평동1가 도시재생 인정사업안을 가결했다고 27일 밝혔다. 부동산 매입사업 방식이란 서울주택도시공사와 주택도시기금이 출자한 민간투자 주식회사 ‘공간지원리츠’가 부동산을 매입한 뒤 건물을 짓는 것을 말한다. 건물에는 조합원 분양 30가구,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48가구 등 모두 78가구와 보육시설, 소상공인지원센터, 상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올해 착공해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인사] 경기 용인시

    ◇ 5급 승진▲ 처인구 삼가동장 허인순 ▲ 기흥구 신갈동장 이중한 ▲ 기흥구 동백1동장 김숙영 ▲ 수지구 풍덕천1동장 장정임 ▲ 수지구 풍덕천2동장 이길재 ▲수지구 신봉동장 서정규 ▲ 수지구 죽전3동장 김우정 ▲ 수지구 상현3동장 정선림 ▲ 기흥구 동백3동장 이정숙 ▲ 처인구 건축허가1과장 박영선 ▲ 기흥구 상갈동장 심건석 ▲ 기흥구 보라동장 정균영 ◇ 5급 전보▲ 재정국 재산관리과장 박길준 ▲ 복지여성국 노인복지과장 송명선 ▲ 복지여성국 아동보육과장 문명순 ▲ 일자리산업국 지역경제과장 임병완 ▲ 일자리산업국 동물보호과장 정찬승 ▲ 주택국 주택관리과장 이종환 ▲ 주택국 공공건축과장 전진만 ▲ 도서관사업소 동부도서관장 조양진 ▲ 환경위생사업소 기후에너지과장 최은용 ▲ 차량등록사업소장 송인영 ▲ 처인구 세무1과장 김석중 ▲ 처인구 세무2과장 이춘경 ▲ 처인구 사회복지과장 정기용 ▲ 처인구 환경위생과장 이택호 ▲ 처인구 도로과장 정회철 ▲ 처인구 건축허가2과장 이영기 ▲ 기흥구 자치행정과장 설정선 ▲ 기흥구 도시미관과장 장수근 ▲ 기흥구 도로과장 강창묵 ▲ 기흥구 건축허가2과장 조억제 ▲ 수지구 산업환경과장 장종찬 ▲ 수지구 교통과장 김규진 ▲ 수지구 도시미관과장 구자정 ◇ 직제개편▲ 시민안전관 최길용 ▲ 하수도사업소 하수행정과장 최재혁 ▲ 처인구 건설과장 장기섭 ▲ 처인구 역북동장 조문희 ▲ 기흥구 건설과장 정해수 ▲ 기흥구 건축허가1과장 김창호
  • 남해군 어린이집 신입생 입학준비금 지원

    남해군 어린이집 신입생 입학준비금 지원

    경남 남해군은 내년부터 어린이집 신입생에게 입학준비금을 지원한다고 25일 밝혔다.‘생애주기별 영유아 맞춤형 지원’ 시책의 하나로 어린이집에 입학하는 원아 보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등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남해군이 지원하는 어린이집 입학준비금은 원아가 어린이집에 처음 입학할 때 필요한 피복류(원복, 체육복, 가방, 모자, 수첩 등) 구입비로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부담금이다. 남해군은 ‘남해군 인구증대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입학준비금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도 마쳤다. 지원대상은 군내 어린이집에 입학하는 만2세에서 만5세까지 원아로 신청일 기준 부모 1인과 원아가 남해군에 주소를 두어야 한다. 지원금액은 경상남도 어린이집 보육료 및 필요경비 수납 한도액 가운데 입학준비금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보호자에게 개별 지급할 예정이다. 남해군은 내년 1~2월에 읍·면과 어린이집에서 신청 안내를 하고 3월부터 주소지 읍·면에서 접수를 한 뒤 군에서 지급을 할 계획이다. 장충남 남해군수는 “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들을 보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군민들에게 필요한 보육시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영등포 ‘공유어린이집’ 신선한 실험

    영등포 ‘공유어린이집’ 신선한 실험

    서울 영등포구가 국공립·가정 어린이집 간 공동협력을 통해 새 보육 운영 모델인 ‘서울형 공유어린이집’을 선보인다고 24일 밝혔다. 서울형 공유어린이집은 도보권에 있는 3~5개 어린이집을 하나로 묶어 공동 운영하는 보육 공동체로, 어린이집 간 상생 발전을 통해 보육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계획됐다. 영등포구는 문래동과 양평2동 권역을 올해 서울형 공유어린이집 시범사업 공동체로 선정,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다. 문래동 권역은 국공립 어린이집 3곳(목화마을, 문래동, 문래자이)과 가정 어린이집 1곳(행복드림), 양평2동 권역은 국공립 어린이집 3곳(늘해랑, 양평2동, 반디)과 가정 어린이집 1곳(한사랑)으로 총 8개 어린이집이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한다. 구는 우선 공동체 내 어린이집 간 정·현원 공유 및 원아 공동 모집을 통해 국공립에만 치우치는 입소 대기 문제를 해소하고 보육수급 불균형을 개선할 방침이다. 부모 설명회, 시설 견학, 특화 프로그램 진행 등 어린이집 간 격차 완화 및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도 함께 마련한다. 또한 비용 부담 문제로 가정 어린이집에서 개별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웠던 각종 프로그램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기획·운영하도록 돕는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공유어린이집을 통해 저출산과 원아 감소 등 환경 변화에 따른 어린이집 운영 부담은 덜고 보육서비스 질은 높일 것”이라며 “보육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속 확충하는 한편 국공립·가정(민간) 어린이집이 서로 협력·보완해 모든 어린이들이 균등하고 질 좋은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육 인프라를 구축해 가겠다”고 밝혔다.
  •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까바리 광대를 아시나요”…고아 소년은 반평생 수용소를 떠돌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수용시설 ‘뺑뺑이’ 끝엔 형제원…탈출해도 못 지운 폭행 그림자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양재영(54)씨는 지난 날을 생각하면 억울함이 사무친다. 보육시설을 전전한 7년, 형제복제원에서 지낸 5년, 교도소에 수감된 9년…. 그의 어린 시절엔 가족의 울타리도 배움의 기회도 없었다. 양씨는 6살 때 시장에서 발견됐다. 이름 석 자도 누가 지어줬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은 그를 곧장 대구 희망원으로 보냈다. 이후 시설을 돌고 돈 끝에 그가 닿은 곳은 형제원이었다. 형제원에선 매일 맞았지만, ‘까바리 광대’ 기합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기합을 받다 다쳐서 의무실에 가면 상처에 소독약을 적신 신문지를 박아넣는 ‘심 박기’ 처치를 했다. 더럽다고 때리면서도 씻을 물을 주지 않아,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 손발을 씻어야 했다. 탈출 계획을 짠 적도 있지만 시도조차 못 했다. 굶주린 친구가 빵 한 덩어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계획을 밀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혹행위는 더 심해졌다. “대운동장 끝 낭떠러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용자들도 여럿 있었다. 13살에 입소한 소년은 18살이 돼서야 그곳을 벗어났다. 공장으로 팔아넘겨진 뒤 가까스로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오랜 형제원 생활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양씨의 방황은 계속됐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다 교도소에서 20대를 보냈다. 신체적 후유증도 짙게 남았다. 폭행에 고름을 달고 살았던 귀는 지금도 잘 들리지 않는다. 쇠 파이프로 맞아 함몰된 두개골 탓인지 때때로 길을 걷다가도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 기억상실 증상을 겪는다. 양씨는 법원의 판결로 고통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다린다. 아래는 양씨의 진술서 전문. 진술서는 양씨가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다.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양재영 진술내용: 저는 1973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미아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5~6살로 추정하는데 제 이름 양재영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장통에서 울고 있던 저는 근처 비산 파출소로 보내졌고 경찰은 저의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곧바로 대구 화원에 있는 희망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희망원에는 유아 시설이 없어 부산 마리아 수녀원으로 보내졌고 여덟 살쯤 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후 부산 소년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열 살쯤 되어서는 서울아동보호소로 보내졌고 79년에 다시 대구 희망원으로 보내졌다가 80년에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뒤 85년 4월경, 서울 고척동 라이터 제조공장인 S물산으로 보내지기 전까지 5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형제복지원은 돈을 받고 사람을 공장에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곪은 상처엔 ‘심 박기’…오줌 받아 손발 씻어 형제복지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먹는 것도 부실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맞아야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다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운동장에서 원상폭격(머리박기)은 너무 흔한 일상이어서 머리를 박은 채 졸기도 했습니다. 원상폭격을 심하게 시킬 때는 얼굴을 땅바닥에 박게 했습니다. 얼굴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발로 차여서 얼굴이 다 긁히기도 했습니다. ‘까바리 광대’라는 기합은 케첩 깡통을 땅에 세워두고 다리를 잡아 머리를 아래로 가게 해서 손을 놓아버립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히로시마’는 2층 침대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받는 벌인데, 히로시마를 타다가 발등에 심한 상처가 났고 바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서 덧났습니다. 상처가 곪아서 발이 열 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형제원에서는 죽을 만큼 맞아야 외부 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곪은 상처로 병원은 꿈도 못 꾸지요. 신문을 가늘고 길게 말아서 소독약을 묻힌 뒤 퉁퉁 곪은 상처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심 박는다’고 합니다. 의무실이란 곳에서 그런 처치를 해줍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내무사열을 하는데 청소가 안 되어 있거나 손톱, 발톱에 때가 있으면 기합을 받습니다. 씻어야 하는데 물을 언제나 쓸 수는 없었고 따뜻한 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저는 발보다 작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는데 고무신에 덮이지 못하는 발등은 늘 봉긋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그때 작은 고무신 때문에 발이 자라지 못한 것인지 지금 제 발은 몸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탈출 계획은 ‘빵 하나’에 수포로…죽어나간 사람도 여럿 같은 방에 있던 친구 열 명과 함께 탈출을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빵 하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를 고발해 버려서 중대장실과 원장실에 끌려가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고자질하면 같은 방에서 지내던 친구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줄 알면서도 빵 하나에 친구를 넘길 만큼 우리는 굶주려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해보지도 못했지만 도모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실에 끌려갔을 때 정신봉이라고 하는 빨갛게 칠해진 나무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그러다 정신봉이 부러지자 쇠 파이프로 맞았는데 그때 머리를 맞는 바람에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입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귀도 너무 많이 맞아서 피가 엄청 났고 형제원에 있는 내내 고름으로 고생했고 지금도 한쪽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늘 귀에 고름을 달고 살아서 ‘귀꼴레’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중대장실에서 맞고 다음은 원장실에 끌려가 목검으로 맞았습니다. 박인근(형제복지원 원장) 목검에 맞으면 기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 원장실에 끌려가서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탈출을 도모했던 우리 열 명은 그 뒤 몇 달간 밧줄에 엮어서 화장실 갈 때도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제식훈련을 받을 때도 기합을 받을 때도 다 같이 해야만 했습니다. 대운동장 끝은 낭떠러지였는데 그리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형제원은 찬송가 교육, 군가교육을 심하게 시켰는데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육헌장 등을 외우는 일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만약 외우지 못하면 기합 받고 무지하게 두드려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졸다가 맞은 적도 많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안 맞은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실수하면 120명이 전부 빠따를 맞습니다. 크리스마스 특사 때 원장이 줄 서 있는 원생들을 숫자로 끊어서 다른 수용시설로 보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형제원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할 줄 알았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습니다. 뛰어내린 사람의 머리가 땅에 부딪혀 두개골이 깨어지는 소리는 끔찍할 만큼 컸습니다. 죽는 사람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악대 선생한테 맞아 의무과로 갔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장 팔려갔다 ‘탈출’했지만…한 때 조폭 생활로 교도소 수감 85년 공장으로 팔려 갔을 때 저는 더 갇혀 있고 싶지 않아 공장을 뛰쳐나왔습니다. 공장 탈의실에 걸려 있던 작업복 주머니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훔쳐 나와 무조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으니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거라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면회를 왔었습니다. 다른 말은 없고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꿈결에 어찌나 울었는지 같은 방 사람들이 자고있는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 꿈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등 텔레비전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습니다. 그러나 끝내 부모님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힘든 시절을 보내다 조직폭력배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1살에서 30살, 참 아까운 시절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수용시설을 전전하며 크는 동안 윤리, 도덕, 올바른 가치관, 이런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랑보다는 폭력을 늘 당하며 살다 보니 사람들과 갈등을 대화로 푸는 것도 어렵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뒤 갈 데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폭행 후유증으로 병든 몸…“합리적 판결로 보상받길” 그렇게 저는 반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무속인이 저에게 엉뚱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참 고맙게도 2010년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더 이상 교도소에 가지 않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지금은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고있는 집이 잘못되어 몇 개월 뒤에는 이사를 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써주는 데가 별로 없습니다. 물류센터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기초수급자였는데 체격이 건장하다며 기초수급자에서도 잘렸습니다. 형제원에서 맞아 고름으로 고생한 귀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어 기압이 낮아지는 높은 작업 현장에서 일하기는 힘듭니다. 두개골 함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어지는 일이 자주 있어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기억이 끊어집니다.순간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오면 저는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물어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형제원에서 기합 받을 때 허리뼈를 맞아서 다친 뒤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 수가 없으니 몸을 쓰는 거친 일은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형제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면 억울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부디 합리적인 판결로 저의 아픈 기억, 배우지 못한 시간을 만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성동, 전국 최초로 민관 복지자원 정보공유시스템 구축

    성동, 전국 최초로 민관 복지자원 정보공유시스템 구축

    ‘민관의 모든 복지 서비스를 한 곳에 모았습니다.’ 서울 성동구가 전국 처음으로 공공·민간기관의 복지 업무 담당자들이 지역의 모든 서비스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복지자원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고 18일 밝혔다. 시스템은 구 복지 관련부서와 보건소, 동 주민센터, 민간 사회복지시설 등 지역의 111개 기관에서 제공하는 733건의 복지자원 정보를 통합했다. 일자리, 주거, 보육 및 교육 등 9개 영역으로 나눠 각 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 통합검색 기능으로 기관별 세부 지원 내용과 복지서비스 담당자, 연락처를 찾을 수 있다. 기관의 위치와 정보를 시각화한 복지지도(W-map)도 제공된다. 강웅식 성수종합사회복지관 팀장은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대상자의 수요에 따라 맞춤서비스 연계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구와 복지관 등 공공기관과 요양원, 아동센터 등 민간기관에서 복지 서비스가 별도로 관리됐다. 이에 해당 기관의 업무 담당자들은 지역 내 복지 서비스 현황을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중복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빠뜨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구는 민관 복지자원 정보공유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복지자원관리시스템을 통해 민관의 긴밀한 협력으로 적극적으로 자원을 발굴하고 정보를 공유하겠다”면서 “보다 많은 수혜자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모텔서 2개월 딸 던져 뇌출혈…친부에 징역 5년 6개월 구형

    모텔서 2개월 딸 던져 뇌출혈…친부에 징역 5년 6개월 구형

    모텔에서 생후 2개월 딸을 탁자에 던져 뇌출혈로 중태에 빠뜨린 20대 친부에게 검찰이 징역 5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인천지법 형사12부(김상우 부장판사) 심리로 1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 중상해 등 혐의로 기소한 A(27)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구형했다. 또 아동학대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의 아동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요청했다. A씨는 지난 4월 인천시 부평구 한 모텔 객실에서 생후 2개월인 딸 B양 몸을 강하게 흔든 뒤 탁자에 집어 던져 머리 등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또 모텔 객실에 쓰레기를 쌓아두고, 먹다 남은 음식물이 썩을 때까지 둬 B양과 생후 18개월인 첫째 아들을 방임한 혐의도 받았다. 당시 그는 딸이 잠을 자지 않고 울면서 보채고, 첫째 아들까지 일어나 함께 울자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는 인정하지만, 방임 등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이날 A씨의 변호인은 “혼자서 아이들을 양육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을 참작해달라”면서 “국가와 사회가 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던 점, 과거 전과가 없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 하겠다”고 했다. 당일 모텔 객실에 없었던 A씨의 아내 C(22)씨는 사기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다가 사건 발생 엿새 전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 상태였다. 올해 4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 여름부터 부평구 일대 모텔 여러 곳을 전전한 이들 부부는 긴급생계지원을 받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올해 2월 한 모텔에서 B양을 출산했다. 사건 직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B양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아들은 인천의 한 보육시설로 옮겨졌다. A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 달 9일 오후 2시 열릴 예정이다.
  • 계명대, 소상공인 온라인 특성화 대학 운영기관 선정

    계명대, 소상공인 온라인 특성화 대학 운영기관 선정

    계명대가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주관하는 2021년 소상공인 온라인 특성화 대학 운영기관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소상공인의 온라인 진출 및 BM(비즈니스 모델)전환 등의 체계적 교육을 통해 신규사업(시장) 발굴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계명대는 ‘소상공인 온라인 진출의 모든 것 - ALL-SET 과정’을 통해 소상공인의 국내·외 이커머스 진출(네이버, 카카오, 알리바바 등)과 유통·물류의 디지털화, 크라우드펀딩을 위한 교육 및 실습 프로그램 등을 제시하며, 높은 평가를 받아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대구·경북 소상공인의 온라인 사업 경험은 각각 4.8%, 5.5%에 머물고 있어 전국 주요 지자체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계명대학교 창업지원단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번 사업을 통해 온라인 진출 및 전환을 통한 지역 소상공인의 경쟁력 확보의 목적으로 소상공인 40명, 예비창업자(재학생) 10명 총 50명의 교육생을 모집하여 특화된 교육 및 실습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소상공인 온라인 진출의 모든 것 - ALL-SET 과정’은 정규 교육과정과 비정규과정으로 진행된다. 소상공인의 온라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규 교육과정으로는 ‘이커머스 진출 교육(국내·외)’, ‘온라인 마케팅 교육(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및 블로그)’, ‘전문가 멘토링’을 지원한다. 비정규과정으로는 ‘BM피보팅(신사업발굴)’,‘크라우드펀딩(우수 소상공인 아이템 투자 유치)’, ‘사용성센터 이용’, ‘창업보육지원(7년 미만 소상공인 대상 보육 지원)’ 등 계명대가 보유한 역량을 교육에 참여한 소상공인에게 무상으로 지원한다. 또한, 사업에 참가한 모든 소상공인에게 온라인 진출을 위한 지원금(1인 48만원)이 지급되며, 우수 수료자에게는 총 300만원의 포상금도 지급될 예정이다. 계명대학교 소상공인 온라인 특성화 대학 교육은 2021년 9월부터 12월까지이며(약 15회 / 주 1회)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에서 진행된다. 교육과정 신청은 8월 19일(목) ~ 9월 5일(일)까지 계명대학교 창업지원단 홈페이지 (www.kubic.co.kr)에서 진행된다. 계명대학교 창업지원단 김창완 단장은 “지금까지 쌓아온 이비즈니스 교육과 창업 지원 역량및 인프라를 집중하여 소상공인들이 이비즈니스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본 사업을 통해 비대면 시장으로의 변화에 지역의 소상공인들이 효과적으로 적응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백신 안 맞으면 군 휴가 안보내준다고?

    백신 안 맞으면 군 휴가 안보내준다고?

    ‘회사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강요하거나 접종확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합니다.’, ‘군내 일부 지휘관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으면 휴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합니다.’, ‘회사가 기업백신 우선 접종 대상에 해당돼 보건소에 등록한 잔여백신 대기자 명단을 취소하려 하는데 전화연결이 안됩니다.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는 없나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민원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관련 사례들이다. 권익위는 백신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이처럼 접종을 둘러싼 다양한 내용들에 대한 문의가 다수 발생함에 따라 민원예보 2단계인 주의경보를 발령한 상태다. 권익위는 16일 “8월 들어 하루 평균 236건의 코로나19 백신 관련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면서 “접종 후 다양한 증상에 대한 궁금증, 예약방법, 접종일정, 접종대상 누락에 대한 이의제기, 접종기준에 대한 내용들이 많다”고 밝혔다. 민원예보는 특정 시기에 국민 관심이 증대함에 따라 민원이 급증하거나 민원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피해나 불편,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 기관의 적극 대응을 유도하는 조치다. 실제 권익위가 8월 첫주의 온라인 여론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와 관련한 주요 키워드가 상위를 차지했다. 델타 변이, 국민지원금, 백신 사전예약, 모더나, 4차 유행, 수도권 4단계 등이 온라인에서 많이 언급된 10개 키워드에 포함됐다. 앞서 권익위는 지난해 2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 구제 대책, 어린이 보육, 유흥업장 행정조치나 모임 제한 요구 등과 관련한 민원이 다수 발생해 민원예보 3단계(심각)를 발령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음식점의 방역수칙 위반 신고, 요양보호사의 비대면 실습교육 요청, 거리두기 지침 관련 등의 내용이 주로 접수됐다.
  • 대구시, 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 위해 총력

    대구시, 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 위해 총력

    대구시는 대구혁신도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적극 지원한다. 그동안 대구 혁신도시는 정주 인구수 증가, 공동주택 100% 공급, 대구의 신성장 산업 핵심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는 첨단복합단지와 R&D 특구 조성, 지역인재채용, 지방세 증가 등 외형적 성과를 넘어, 앞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정주환경 개선을 위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분야별 정주여건 개선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혁신도시 분야별 정주여건 개선 사업을 살펴보면 교통개선 분야에서는 5개 사업에 1조 1022억원을 투입해 ▲ 도시철도 1호선 안심~하양 복선전철사업(3,512억원) ▲ 도시철도 3호선 혁신도시 연장사업(6,952억원) ▲ 율하교 동편네거리 입체화 사업(400억원) ▲ 안심하이패스IC 설치사업(100억원) ▲ 혁신도시 공영주차장 조성(58억원, 180면)사업을 추진 중이다. 연내 준공예정인 공영주차장은 혁신도시 내 부족한 주차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체육시설 분야에서는 6개 사업에 1586억원을 투입해 ▲ 대구혁신도시 복합혁신센터 건립(282억원) ▲ 국립청소년 진로직업 체험수련원 건립(537억원) ▲ 제2수목원 조성(287억원) ▲ 제2빙상장 건립(150억원) ▲ 신지에코아일랜드(10억원) ▲ 스포츠 콤플렉스 조성사업(320억원)을 추진 중이며, 이전공공기관 임직원 및 주민들이 혁신도시 내에서 다양한 문화·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는 우수한 여가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보육시설 분야에서는 2개 사업 136억원을 투입해 ▲ 어린이특화생활SOC 건립(90억원) ▲ 중소기업형 공동직장어린이집 건립(46억원)을 추진 중이며, 젊은 세대의 비율이 높은 혁신도시에 맞춤형 특화된 보육시설 건립으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밖에 공공시설로 동부소방서 이전 및 소방학교 건립(572억원), 공공기관 연계 협력사업, 민간에서는 종합병원, 오피스텔 문화집회시설 건립, 롯데물류센터 건축 등 다양한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김정기 대구시 기획조정실장은 “혁신도시의 성공은 이전공공기관과 지역주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정주여건 개선이 해답이 될 것”이라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추진상황을 수시 점검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말했다
  • [사설] 저출산 대책, 부처 간 긴밀 협력으로 재점검해야

    인구가 적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출산장려금이 해당 지자체의 지속적인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지난 13일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인구구조 변화 등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역 인구 유입을 위한 우호적 환경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380조원을 썼다. 하지만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0년 0.84명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돈은 많이 쓰지만 효율적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다. 지난해 전국 합계출산율은 0.84명이지만 서울은 0.64명이다. 청년층이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모이고, 과도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비혼·만혼 등을 선택하면서 출산을 기피한 결과다. 청년층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지역 인구 불균형에 따른 지역 소멸 위기로 이어져 30년 후 229개 시군구 중에 157개(69%)가 초고령화(전체 인구 중 노인 20% 이상)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는 2009~2019년 신혼부부를 위해 연평균 1만 7000호가량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지만 실제 계약은 8700만호에 그쳤다. 주거 면적이 36㎡(약 11평)로 좁고, 신혼부부의 생활 지역을 고려하지 않는 등 공급자 중심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보육 환경을 개선해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저출산 대책도 필요하나 이는 단편적인 접근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은 그동안 진행해 온 저출산 관련 대책의 전면 재점검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저출산은 수도권 쏠림 현상, 사교육 중심의 교육시장,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 생애 전반과 관련돼 있다. 정부는 감사원의 지적처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범정부 차원의 협력을 통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 아버지 폭력 피해 도망다니다 성폭행 난무하는 ‘지옥원’으로...40년간 말 못한 한[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아버지 폭력 피해 도망다니다 성폭행 난무하는 ‘지옥원’으로...40년간 말 못한 한[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폭력·눈칫밥 도망 연속의 유년시절...종착지는 형제복지원 아버지의 손찌검을 피해, 작은집 눈칫밥을 피해, 보육원 선배들의 기합을 피해···. 박배용(59·가명)씨의 유년시절은 도망의 연속이었다. 친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작은어머니댁으로 도망쳤지만 그곳에서도 박씨는 불청객이었다. 10살짜리 꼬마도 자신이 먹고 있는 게 눈칫밥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박씨는 그 집을 나와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다 결국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당시 불과 13살이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도 박씨는 축구부 선배들에게 매질을 당했다. 결국 한밤 중 보육원 지붕을 가로질러 극적으로 탈출했고, 무작정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부산역에서 마주친 경찰은 다짜고짜 박씨를 탑차에 태워 형제복지원에 넘겼다. 어린 나이 폭력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1976년 박씨가 도달한 곳은 가장 끔찍한 ‘지옥원’이었다. 이른바 ‘칼각도’로 경례를 하지 못하면 죽도록 맞았다. 식사는 ‘쓰레기 된장국’이라고 할 정도로 형편없이 나왔고, 이마저도 시간제한이 있어 제대로 씹지 못하고 삼켰다. 가장 견디기 괴로운 것은 당시 소대장이 일삼은 성폭행이었다. 소리를 내면 죽여버리겠다는 소대장의 협박에 박씨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살아남을 길은 탈출뿐이었다. 형제복지원에 잡혀간 지 3년쯤 지난 1979년, 박씨는 다른 4명의 원생과 화장실 옆 흙벽에 몰래 물을 묻혀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내 탈출구를 만들었다. 탈출구를 빠져나온 박씨는 죽기 살기로 부산역까지 뛰어 기차에 탑승했다. 그렇기 지옥원을 탈출했다. 그 후 4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박씨는 자신이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혼자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기억은 박씨가 평생을 피해 다녔던 폭행의 굴레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나 가족에게 손찌검을 했고, 결국 아내와 헤어졌다. 박씨는 현재 술과 정신과 약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을 탈출하고서 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다는 박씨는 진술서를 쓰기위해 과거의 아픔을 다시 들여봤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 지금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가.“ 박씨는 국가에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아래는 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 등은 다듬어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박배용 진술내용: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작은 집에서 생활하던 중 어린 맘에 작은어머니의 눈칫밥을 먹는 것이 싫어 국민학교 3학년 때 가출했습니다.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하다 남대문 근처에서 서울 소년의집에 잡혀 들어갔을 때가 13-14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의집에서 5학년으로 편입되어 축구부에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소년의집 축구부에서 선배의 기합과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밤에 지붕 위로 올라가 탈출했을 때가 14~15살이었을 겁니다. 다시 잡혀가면 또 맞을 것 같아서 친구와 멀리 떠나자고 간 곳이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얼마간 생활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부산역에 갔습니다. 그런데 부산역에서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경찰이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기에 서울 소년의집으로 보내질까봐 “서울 ○○동 작은집에 살았고 ○○국민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 이름과 작은아버지 연락처를 분명히 말하고 “작은집에 살다가 작은어머니의 눈칫밥이 싫어 잠시 가출했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파출소 순경이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기 서울 가는 기차를 태워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탑차 같은 것이 오더니 건장한 어른 2~3명이 저를 차에 태웠습니다. 큰 철문을 지나 끌려간 곳에 이미 다른 곳에서 끌려온 수많은 사람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연병장에서 줄을 서있다가 그곳이 형제복지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가 1976-1977년일 겁니다. (소년의집에 제 기록이 1975-1976년도의 도망자 명단에 있습니다.) 형제원 입소하자마자 몽둥이질···성폭행도 난무한 ‘지옥원’ 형제복지원에 들어가자마자 “앉아 일어서”를 시키더니, 바로 몽둥이로 때리고 군대식으로 기합을 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날 하루는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최고로 고통스러운 날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모두 압수한 뒤 머리도 박박 밀습니다. 10소대인지 11소대인지 부정확하지만 아동소대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동소대에 배치되었는데 남자로서 너무나 수치스럽고 더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 소대장은 어느날 밤 제게와 “자그마한 키에 서울 말씨를 쓰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면서 옆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겁을 잔뜩 먹어서 반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은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반항하거나 조용히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구강성교와 성폭행은 계속됐습니다. 이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침묵하고 버티며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말이 복지원이지 내가 겪은 최악의 지옥원이였습니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도 많았는데 한 명이 잘못하면 단체 기합을 받았습니다. 일명 ‘나룻배’, ‘오토바이’, ‘한강철교’, ‘풍차돌리기’ 등의 기합을 받았는데 ‘원산폭격’(바닥에 머리 박고 열중쉬어 자세)이 코 골며 잠잘 수 있는 제일 편한 기합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하는데, 처음에는 칼경례를 못해 죽도록 맞았습니다. 밥은 쓰레기 된장국에 생선(쥐고기)을 넣고 끓인 형편없는 음식이 나왔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죽지 않으려면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그나마 많이만 주면 고맙다고 먹어야 했습니다. 밥도 시간 내로 먹어야 하기에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삼켜야만 했어요. 그래서인지 현재 60살이지만 사회에서도 밥을 씹지 않고 그냥 오물오물 삼킵니다. 이것도 트라우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도 하고 갑상선암과 림프절암에도 걸려서 매일 약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탈출 성공했지만 폭력이 폭력을 낳아... 아내와 이혼, 극단적 생각도형제복지원을 탈출한 뒤 배운 것이 없으니 공장과 중국집 배달을 하다 한식 주방 기술을 배웠습니다. 나이 서른 살에 가정을 이뤄 아들 한 명, 딸 한 명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에서 ’빨리빨리‘만 배워서인 분노조절장애가 생겨 시시때때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났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 아내와 10년만에 합의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전아내에게 갔고, 딸은 한부모 가족 수급자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살다가, 나이를 먹고 직장 근처로 나갔습니다. 혼자 생활하며 매일 술에 찌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 병원에 갔는데 현재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며 원장님이 약을 지어주셨습니다. 이 약에 수면유도제가 들었는지 약을 먹으면 사람이 착 가라앉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시 형제복지원 얘기로 돌아가자면 당시 소대장이 친구와 형, 동생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호랑이, 드라큘라, 뺑코, 미사일, 깜상, 이노키, 찐따1, 찐따2, 땅콩, 서울내기···. 전 서울 출신이라 ’서울내기 다마내기‘로 불렸던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 살길은 오직 탈출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당시 원생 4명이 1979년쯤 화장실 옆 흙 벽돌에 몰래 물을 적셔서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낸 뒤 날을 잡아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형제복지원 뒷산은 험하고 풀숲이 깊어서 사람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고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잡혀가면 맞아 죽는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부산역까지 갔습니다. 역 앞에 파출소가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고발해야 했겠지만, 경찰이 우리를 잡아서 형제복지원에 보냈기 때문에 역 뒤로 몰래 들어갔습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임승차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자식에게도 말 못한 아픈 기억···원통한 한 누가 풀어주나 그리고 나서는 한 20년 동안 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네요. 지은 죄가 아무 것도 없는데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것을 저 자신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에 편견이 심해서 육십 평생을 지인들과 자식들에게도 말 못할 아픈 사연으로 여기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과연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설사 중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도 나올 날이 정해져 있는데, 형제복지원은 죽어서 뒷산에 묻히거나 운 좋게 집에 연락이 닿아 귀가하는 게 아니면 탈출만이 살길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무부 훈령 410호인지 뭔지 국민을 위한 법도 아닌 법을 만들어 무고한 시민을 불법 감금시키고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무임금에 폭력을 행사하는 법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부랑인도 인권이 있습니다. 집과 부모님, 친척이 있는 사람조차 옷을 허름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에 폭행, 중노동, 기합, 성폭행 등 수없이 많은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를 당했습니다. 신고도 못 하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희망도 없이 살아야 했던 원생 중에는 맞아서 사망한 사람도 513명(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만)이나 있지요. 대한민국 법조인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역지사지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내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형제복지원 같은 곳에서 인권 유린에 성폭행에, 매일 맞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곳에서 기약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요? 보통 다녔던 학교에 연락만 해도 다들 고향에 갈 수 있었을텐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돈으로 보였을 것이며 노예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1987년에 사건화되었을 때, 박인근 원장을 붙잡아 놓고도 검찰 수사에 외압을 가한 당시 부산시장, 검찰총장 등에게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공개 사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형제복지원에서 맞아 죽은 513명 원생들의 원통한 한을 어느 누가 풀어줄 건가요? 그 당시 정부에 협조해 부랑인이라고 형제복지원에 신고한 부산 시민들도 원망스럽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죄 없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붙잡아 가서, 폭행과 기합, 성폭행, 심지어 공식 집계로만 513명의 죽음, 그 이상으로 많은 불법 감금과 노동 착취가 일어났습니다. 수백억, 수천억을 번 박인근 원장은 그 돈으로 호주에 골프장을 2개나 운영합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는 국가가 어떻게든 환수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있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과 보상을 해야만 합니다. 매일 맞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바위틈에 초콜렛과 같은 흙을 파먹고 살아남았습니다. 자유를 찾아 끝없이 노력해 탈출에 성공하는 영화 ‘빠삐용’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식으로 탈출했는데’ 싶어 제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도 한때는 있었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힘들었네요. 이런 고통을 그 당시 정치인, 검찰총장, 경찰공무원 및 부산시청 공무원들은 알기나 할까요? 현재까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지요. 요즘 들어 옛일을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죽고 싶은데 더욱 가슴이 아프고 죽고 싶네요. 유년 시절의 아픔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외국 트라우마 치유 학자의 말이 있습니다. 어느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줄 건가요? 민주주의가 뭔가요? 공산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대한민국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씨줄날줄] 조선학교 무상화와 교육 인권/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조선학교 무상화와 교육 인권/황성기 논설위원

    일본의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시작된 것은 2010년 4월이다. 2009년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의 공약 중 하나가 고교 무상교육이었다. 민주당은 과반수를 이룬 중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듬해 무상교육에 들어갔다. 당시 제1야당 자민당은 반대했으나 집권 민주당이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어설픈 수습으로 국민의 실망을 산 민주당은 2012년 12월 총선에서 참패한다. 1198일 만에 정권을 탈환한 아베 신조 자민당 정권은 집권하자 2013년 2월 법을 고쳐 예외 없이 적용하던 무상화(취학지원금)에서 조선총련 계열의 조선학교만 제외시켰다. 아베 정권은 “일본인 납치 문제도 있고 북한이나 조선총련과의 밀접한 관계가 의심되며 취학지원금이 수업료로 쓰이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꼬투리를 잡았다. 일본의 재일 조선인(국적이 한국이 아닌 조선) 차별은 고교뿐만이 아니었다. 유아·보육원도 조선총련 계열이면 무상화에서 제외했으며 조선대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로 코로나 긴급지원금을 주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도 조선학교로 가던 보조금을 끊었다. 오사카를 비롯해 도쿄, 나고야,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 5곳에서 무상화 제외 취소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하지만 오사카 1심 법원만 청구를 받아들였을 뿐 오사카 2심법원과 다른 지방법원은 1심부터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국가 결정은 재량의 일탈이 아니다”라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5곳의 최종심이 끝난 게 지난 7월 29일. 2심까지 조선학교 패소로 끝난 히로시마 소송의 상고심에서 최고재판소는 구체적인 판단을 적시하지 않은 채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조선학교로 가는 취학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어 지급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일본 사법부의 판단은 퇴행적인 일본 자민당 정권과 일체화된 결과다. 고교 무상화는 경제력에 관계없이 배움을 보장하는 장치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18년 조선학교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요청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은 일본이다. 일본이 1979년 비준한 유엔 국제인권규약 중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규약 13조에는 ‘교육을 통해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강화한다’는 규정이 있다. 조선학교 건을 본다면 규약을 비준한 일본이 교육 인권의 실천을 명한 규약을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를 대북 제재쯤으로 여기는 일본이라 해결 가능성도 낮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부조리한 차별인 점을 생각하면 일본 지도층의 인권 의식이 진화하지 않고 76년 전 패전 당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동아쏘시오홀딩스·상주시 협약… 취약계층 청소년 여성용품 후원

    동아쏘시오홀딩스·상주시 협약… 취약계층 청소년 여성용품 후원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난 11일 경북 상주시와 취약계층 여성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후원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순면커버 생리대 ‘템포 내추럴 순면패드’ 3600팩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원하고, 모금회는 이를 상주시 상주보육원과 24개 읍면동에 있는 다문화센터 여성 청소년들에게 전달한다.
  • 오후 돌봄·통학버스 늘렸지만 … 코로나19에 막힌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오후 돌봄·통학버스 늘렸지만 … 코로나19에 막힌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정부가 유치원 공공성 강화의 일환으로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올해 4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국공립유치원은 늘었지만 가정보육이 늘면서 원아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 12일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부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국공립 유치원을 총 2352학급 늘렸다. 2018년 501학급, 2019년 966학급, 2020년 885학급이 신설됐다. 이를 통해 전체 유치원 유아의 국공립 유치원 입학 가능 비율을 2018년 32%에서 2019년 36%, 2020년 39%로 끌어올렸다. 교육부는 올해 500학급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으로, 당초 목표인 2021년 40%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늘어난 학급 수 만큼 원아를 충원하지 못해 실제 취원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25.5%였던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019년 28.5%로 목표였던 29%에 미치지 못했으며 지난해에는 29.8%에 그쳐 목표인 34%를 크게 밑돌았다. 교육부는 국공립유치원의 규모를 늘림과 동시에 서비스 개선도 추진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국공립유치원의 오후 돌봄인 방과후 과정 학급은 2017년 6323학급에서 올해 1만 489학급으로 1.65배 이상 늘었다. 또 통학권역이 넓은 농어촌 및 단설유치원을 중심으로 통학버스를 늘려, 2019년 3063대였던 통학버스가 올해 3378대로 소폭 증가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실제 입학가능 비율에 비해 9.2%포인트나 낮다. 이는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교육부는 ‘2020 전략목표 성과분석 보고서’에서 “유아가 입학한 뒤 기관을 옮기는 것을 선호하지 않으며, 코로나19로 가정 양육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은주 의원은 “입학가능 비율과 실제 취원율 간의 간극은 2018년 6.3%포인트, 2019년 7.6%포인트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는 코로나19 외에 다른 원인도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역시 “지난해 국공립유치원을 800여 학급 늘렸으나 취원율을 높이는 데 있어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장은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이라고 분석했다. 박 팀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취원율 하락은 국공립과 사립을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다”면서 “신도시 지역은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이 높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아이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지방자치단체별로 격차가 상당하다.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국공립유치원을 대거 설립한 세종시는 지난해 취원율이 97.3%에 달한 반면 대전(19.7%), 부산(20.2%), 대구(21.4%) 등은 20% 안팎에 그친다. 이미 사립유치원이 대부분인 지역으로 국공립유치원을 새로 늘릴 여력이 많지 않다. 평균적인 취원율이 낮더라도 국공립유치원 확충 정책은 지속돼야 한다는 게 박 팀장의 주장이다. 박 팀장은 “국공립유치원 비중이 40%를 달성하더라도 주요 국가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면서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 책무의 차원에서 국공립유치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체 학령 인구의 감소 추세 속에 공·사립의 상생을 추구하고 어린이집까지 포괄한 큰 틀의 밑그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동아쏘시오홀딩스, 상주시 취약계층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 3600팩 전달

    동아쏘시오홀딩스, 상주시 취약계층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 3600팩 전달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난 11일 경북 상주시와 취약계층 여성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후원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순면커버 생리대 ‘템포 내추럴 순면패드’ 3600팩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원하고, 모금회는 이를 상주시 상주보육원과 24개 읍면동에 있는 다문화센터 여성 청소년들에게 전달한다.
  • 권수정 서울시의원, ‘서울시노동센터 여성센터장 간담회’ 참석

    권수정 서울시의원, ‘서울시노동센터 여성센터장 간담회’ 참석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권수정 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은 10일 서울시노동센터 여성센터장들과 ‘노동안전, 건강한 일터’를 주제로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서울시노동센터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 찾기와 권익 향상을 위해 서울시에서 설립ㆍ운영하는 기관으로, 특별히 노동인권 및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여성 센터장들이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협업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권수정 의원과 함께 박미영 구로센터장, 강화연 은평센터장, 정숙희 도심권센터장, 정경화 서울노동권익센터 전문위원, 홍윤경 영등포센터장이 참석했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서울시 노동안전보건사업의 실효성 확보 정책 제안에 대해 논의하며, 서울시 노동안전보건사업과 노동자종합지원센터 간 연계 추진 방안으로 마을노무사 연계를 통한 노동안전보건의 실질화,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사업과 연계 지원, 실효성 및 효과성 제고를 위한 서울시 노사정위원회 설치 및 운영을 제안했다. 또한, 현재 실시되고 있는 서울지역 봉제 노동자 임금 실태조사 현황을 공유하며,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환경 조성을 위해 가사ㆍ보육ㆍ배달ㆍ플랫폼 노동자의 현황 및 권익구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권수정 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돌봄이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며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권 의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노동 현장의 빈틈에 대하여 실질적인 대응과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노동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오늘 제안을 서울시에서도 계속해서 함께 고민하고 적용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 서울시, 경력단절여성 ‘장롱 면허’ 되살린다… 공공기관 인턴십에 취업까지 지원

    서울시, 경력단절여성 ‘장롱 면허’ 되살린다… 공공기관 인턴십에 취업까지 지원

    서울시가 전문 자격증을 가진 경력단절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울 우먼업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이번 프로그램은 간호사, 사회복지사, 직업상담사, 사서 등 자격증을 가진 여성들이 지역 종합병원, 어린이집, 여성발전센터 등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민간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9년 재임 당시에도 ‘장롱 면허 되살리기’라는 이름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에는 전문 자격증을 가진 여성들을 위한 취업상담·교육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는 서울에 거주하는 경력단절 여성 62명을 선정해 자격증별로 전문 직업교육과 공공기관 현장실습을 진행할 계획이다. 참여를 원하는 여성은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 홈페이지(www.seoulwomanup.or.kr)에서 오는 13일부터 22일까지 원서를 접수하면 된다. 혼인,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 간호사·사회복지사·직업상담사·평생교육사·주거복지사·학예사·사서·보육교사·전산 등 9종류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충분한 역량을 갖춘 경력단절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재취업을 위해서는 복귀를 위한 재교육과 현장 경험 기회가 필요하다”며 “제1기 서울 우먼업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훈련부터 관련 분야 일자리 경험과 사후 취업 연계까지 전 과정을 통합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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