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완책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유예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의안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사기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자랑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49
  • 증권주 신용거래 허용/증시부양책 발표/9일부터 시행

    ◎31개 법인 「기관투자가」에 추가/3개투신에 혼합펀드 3억불 설정 재무부는 증시부양을 위해 증권주에 대한 신용융자를 허용하고 기관투자가를 대폭 확대하며 혼합투자 펀드(매칭펀드)를 새로 설정하는 등 증권시장육성 대책을 마련,증권관리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9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2일 재무부는 주식시장 1부소속 업종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신용융자를 금지해 왔던 증권주에 대해 이를 허용,투자자들이 주식매입자금의 60%를 증권사로부터 융자를 받아 자기자금 40%만으로 증권주를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투자과열을 막기위해 25개증권사가 지난 2월말 기준으로 일반주식 매입에 융자해준 신용잔액 2조3천9백17억원 이내로 증권주 신용한도를 설정하는 한편 증권사 모든 점포에 대해 자사 주식에 대한 신용융자를 금지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예를들어 A증권사의 경우 A증권 주식을 사겠다는 고객에 대해서는 신용융자를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재무부는 이와함께 증시의 매입기반 확충을 위해 공무원 연금기금 석유사업기금 등 24개 민간기금과 대한교원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7개 공제단체 등 31개 법인을 세제상 법인세면제 혜택을 받는 기관투자가로 신규 지정키로 했다. 이에따라 이미 법인세면제 혜택을 받고 있는 군인연금기금 등 33개 정부관리 기금까지 포함,기관투자가 법인수가 5백7개로 늘어나게 된다. 아울러 기관투자가의 지나친 수익위주 자금운용행태를 시정해 나가기로 하고 이날 진임 재무부차관이 민간기금과 공제회 등의 주무부처 관계자들을 소집,기관투자가들이 장기 안정적인 주식투자에 눈을 돌리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또 내ㆍ외국인에게 수익증권을 발행ㆍ판매하여 조성된 투자자금으로 국내외증권에 동시에 투자하도록 하는 혼합투자 펀드를 설정,국내증시안정화를 위해 해외수요 확충을 꾀하기로 했다. 신설될 혼합펀드는 한국 대한 국민 등 투신3사에 사당 1억달러 규모로 설정(총 3억달러)된 후 운용상황에 따라 추가 설정할 예정이다. 이 펀드의 국내외 판매비율은 50대50으로 정해졌다. 이에따라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이 매칭펀드에 투자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무부는 또 3개 투신사가 지난해말 증시부양을 위해 사들인 2조7천6백여억원 어치의 주식은 시장에 매물로 내놓지 않고 투신사 자체의 신탁상품으로 편입시키거나 금융기관ㆍ기금 등 기관 투자가가 매입,보유토록 할 방침이다. 이는 이같은 대량의 물량이 시장에 쏟아질 경우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 전문직 공무원 신설 추진/외국어ㆍ인사 등 대상

    정부는 직업공무원제 보완책의 하나로 전문화하는 행정요원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반직과 계급및 보수체계를 달리하는 계열별 전문직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1일 총무처에 따르면 현재 공무원의 순환보직제로 일반 행정공무원은 양산되고 있으나 특수분야 전문직 공무원이 육성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외국어교육ㆍ인사ㆍ조직 등 한정된 분야에 전문직을 신설,보직및 교육훈련을 시켜 전문직 공무원을 양성시켜 나갈 방침이다. 총무처는 이를 위해 공무원 임용령등 관련법령을 고쳐 금년중 시행원칙을 세우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총무처 관계자는 이와 관련,『이 경우 해당 전문직으로 분류된 공무원은 비슷한 경력의 일반직보다 보수면에서 우대받고 해외연수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 우수인력이 전문직을 택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계열별 전문직의 구성 비율은 분야별 업무성격을 고려,결정하되 우선 소수희망자에 대해 이를 적용,실시해본 뒤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농산물 개방대책위 첫 회의… 각계의 소리

    ◎“농가보상비 수입부담금서 확보”/“농산물 관세율 인상등 제도개선부터”/“국산 농산물 애용 범국민적 캠페인 시급”/“농어촌구조 조정… 신뢰받는 농정 이루게” 정부는 21일 농림수산부대회의실에서 농수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농어가피해등 갖가지 문제점을 점검하고 실질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기위해 농수산물 수입개방보완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첫회의를 가졌다. 이 위원회는 농림수산부장관을 위원장으로하고 정부,학계,연구기관,농ㆍ수ㆍ축협과 농산물유통공사는 물론 비제도권을 포함한 농수산업 관련단체,소비자단체장등 모두 23명으로 구성됐다. 특별위원회아래 대체작목개발반ㆍ수요개발반ㆍ수출입제도개선반ㆍ축산반ㆍ예시계획반등 7개 실무위원회를 두고 각 분야별로 대응방안을 수립하게된다. 또 각시ㆍ도 농림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방위원회를 구성,중앙의 특별위원회와 긴밀한 협조아래 지역별특성에 맞는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농어민의 의견을 적극수렴할 방침이다. 특별위원회 첫회의에서 오간 내용을 간추린다. ▲김병화국제농업개발원장=특별위원회 위원이 대부분 농수산분야와 관련된 대표ㆍ전문가로만 구성돼있어 대책마련 등에 한계가 있다. 정부측에서 실질적인 지원수단을 갖고 있는 경제기획원ㆍ상공부ㆍ재무부의 관계자를 호함시키는 등 보다 광범위하게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외국의 교포들을 활용하면 농수산물 수출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영일 서울대교수=수입개방에 대비한 보완대책은 농어촌 구조개선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구조개선등 종합적인 시책을 맡을 총괄반을 두고 관계부처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방안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장섭 전국농어민기술자협회부회장=농정의 신뢰성이 낮으므로 이의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특별위원회에 농어민 의견을 보다 광범위하게 수렴할 수 있도록 재야권단체 대표를 대거 참여시키는 것도 방안의 하나이다. ▲신성순 중앙일보논설위원=7개 실무작업반중 외국사례조사반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 보다는 해외자료를 축적ㆍ관리할 수 있도록 상설기구로 두어야 한다. 수입개방에 대응하기위해 장기적인안목에서 수출입제도 개선을 포함한 농지제도등 전반적인 제도개선작업이 필요하다. ▲장동섭 전남대교수=수입개방압력은 미국과의 관계라고 볼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ㆍ농민ㆍ소비자가 단합해야 한다. 특히 국산농산물 애용운동을 범국민적 차원에서 벌일 필요가 있다. ▲고광출 서울대교수=농정은 공개적으로 시행해야한다.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해서도 피해 당사자인 농민에게 충분히 이해를 시켜야 하며 이를 통한 농민의식의 구조변화가 필요하다. 또 농산물 수입개방에 적극 대응하고 우리농산물의 수출을 촉진시키기위해 해외에 근무하는 농무관을 대폭 늘려야 한다. ▲강춘성 전국농어민단체협의회장=특별위원회에 재야농민단체인 농민연맹이 참여해야하며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도 농민을 살려야한다는 뜻에서 동참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수입부담금중 농산물 수입으로 조성되는 부담금은 농민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이경해 농어민후계자협회회장=특별위원회가 제기능을 하려면 인적자원의 활용및 재원확보가 중요하다. 재원을 위해서 공산품의 수출에 부과금 제도를 도입,농민에게 지원을 해야한다. 이같은 조치가 농민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김식 농림수산부장관=국제화ㆍ개방화의 물결속에 「수입개방을 해야한다」「해서는 안된다」하는 원론적인 논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GATT BOP(국제수지) 협의에서 인정된 수입개방유예기간 8년을 어떻게 농어촌ㆍ농어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느냐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난해 발표한 수입자유화 예시계획처럼 정부만의 연구ㆍ결정으로 농정이 불신받는 일이 없도록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들을 포함한 각계의 의견을 반영,수입개방 보완대책뿐 아니라 농어촌의 중ㆍ장기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
  • 종토세,최고세율 선별 적용/당정 개정안/투기성 지역만 5%로

    ◎은행ㆍ호텔ㆍ병원은 2%… 별도 종합과세 정부와 민자당은 21일 현행 5%인 종합토지세 최고세율을 비투기성 토지와 병원ㆍ은행ㆍ호텔 등 서비스산업의 경우에는 2%로 인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마련,이를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정부와 민자당은 이날 상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강영훈국무총리와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 대행을 비롯한 고위당정인사들이 참석한 당정회의를 갖고 지방세법 개정방향을 논의,골프장 등 고급위락시설ㆍ2백평이상의 개인보유택지ㆍ부재지주농지ㆍ기타 나대지 등 투기성 토지에 대해서는 현행 0.2∼5%의 종합토지세율을 적용하되 나머지 비투기성 토지에 대해서는 0.3∼2%로 세율을 인하키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현행 10단계인 세율구조를 비투기성 토지에 대해서는 9단계로 조정,실제 부과세액이 낮아지도록 했다. 당정은 은행ㆍ호텔ㆍ병원ㆍ보험회사 등 3차 서비스산업에 대해서도 과다한 세금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세율을 0.2∼5%에서 0.3∼2%로 낮추고 별도 종합과세키로 했다. 민자당의 김용환정책위의장은 이날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개정된 현행 법안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과다토지보유자를 규제한다는 당초 입법취지에서 벗어나 1가구1주택을 소유한 서민층에게도 상당한 세부담 증가를 가져다 줄 수 있다』면서 『이같은 인식에 따라 보완책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윤 정책소위 위원은 『서비스산업등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을 경우 그 궁극적 부담자는 일반 서민이 된다』면서 『특히 과세표준율 현실화ㆍ지가상승ㆍ토지누진세 등 3가지 현상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걷잡을 수 없는 조세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당정이 종합토지세제를 보완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측에서 조순부총리와 김태호내무ㆍ이규성재무ㆍ권영각건설ㆍ박철언정무1장관,문희갑청와대경제수석 및 이연택행정수석비서관 등이,당측에서 박준병사무총장ㆍ김용환정책위의장ㆍ김동영총무와 이승윤ㆍ김동규의원 등이 참석했다.
  • 공모주청약제도 개선 시급/청약율 높아 무배정자 늘어

    ◎증권사 청약증거금 이자수입만 “짭짤” 올들어 증시수급안정을 위해 기업공개 규모가 대폭 축소되면서 공모주의 청약비율이 크게 높아져 공모에 응했다가 단 1주도 배정받지 못하는 청약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액청약자들은 주식도 배정받지 못하면서 청약증거금으로 맡긴 자금에 대해 약 보름동안 단 한푼의 이자도 받지 못하는등 손해를 보고 있으며 주간사인 증권사들만 청약증거금으로 짭짤한 이자수입을 올리고 있는등 공모주 청약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3,14일 이틀간 공모주청약을 받은 신강제지의 경우 농ㆍ수ㆍ축협 접수분을 제외하고도 청약비율이 무려 2백50대1에 달해 어림잡아 3백만주(공모가액 2백40만원) 이상을 신청해야 겨우 1주의 주식을 배정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신강제지의 경우에는 공모금액이 워낙 적어 1인당 청약한도가 6백주에 불과,최고한도까지 신청해도 겨우 2∼3주를 배정받을 수 있는 형편이어서 증권거래소를 통해 매매체결도 안되는 10주 미만의 단주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등 공모주청약제도 자체가 사실상 유명무실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처럼 청약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소액청약자들은 대부분 주식배정에서 제외되면서도 공모금액의 20%에 해당하는 청약증거금을 되돌려 받기까지 약 보름동안 이자수입만 손해보는등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청약비율과 함께 크게 늘어난 청약증거금을 증권금융㈜이나 은행등 타금융기관에 예치,이자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총공모금액 2백16억원의 이번 4개사 청약에 몰린 증거금만도 3천3백80억원 규모에 달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따라 청약금액 규모에 따라 획일적으로 배정토록 되어 있는 현재의 공모주 배분방식을 수정,소액청약자들에게 보다 많은 주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주식을 배정받지 못한 청약자들에게는 청약증거금에 대해 최소한의 이자수입을 보전해 주는 등의 제도적인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안정기조속 성장 추구/당정 경제팀 첫 회동 안팎

    ◎“경제개혁 지속적 추진”의견 접근/기본정책 「표류위기」서 방향잡아 안정과 성장 사이에서 방황해온 당ㆍ정간의 경제정책 논쟁은 「안정기조 위에 성장」을 추구한다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12일의 경제당정협의회 결과는 「안정과 성장의 조화」와 「경제개혁의 차질없는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과 성장이라는 상호 대립적인 정책목표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이날의 합의사항처럼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날 회의 결과를 발표했던 조순부총리와 이승윤의원은 이구동성으로 안정과 성장을 양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합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안정과 성장 사이의 정책논쟁을 덮어 두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당정이 모두 절감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더이상 당정이 마찰을 계속할 경우 「안정ㆍ개혁론자」인 조부총리가 이끄는 정부의 경제팀과 이승윤ㆍ김용환의원 등 「성장론자」가 중심이 된 당의 경제팀간에 공존이 불가능해져 어느 한쪽이 물러나야 하는 사태로 갈 수밖에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정의 기조위에서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조부총리의 지론인 「안정적 성장론」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안정기조 정책에 당이 동의해 준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이는 그동안 당이 정부쪽에 요구해온 성장위주 정책으로의 전환요구를 일단 후퇴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순부총리의 입각이후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는 1인당 GNP의 증대라는 총량지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산업평화 정착에 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기업과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각 경제주체의 체질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기초공사가 부실한 상태에서는 기껏해봐야,2,3층 건물을 올리는 데 그치지만 50층 정도의 고층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기획원측은 이를 「성장잠재력 배양정책」이라고 표현해 왔다. 과거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심화됐던 경제적 불균형과 불형평을 시정하지 않고는 성장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없다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이다. 정부의 「성장잠재력 배양정책」은 따라서 근로자ㆍ농민ㆍ도시빈민 등 소외계층에 대해 보다 많은 자원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민자당쪽은 정부의 「성장잠재력 배양정책」이 비생산적인 분야에 자원 배분을 집중시키고 정부재정의 이전적 지출을 팽창시킴으로써 기업등 생산적인 부문에 대한 자금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을 가해 왔다. 민자당은 이같은 비판을 토대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같은 정책전환에 강력히 반대해 장애물로 인식돼온 조부총리등 경제팀의 조기개각을 청와대쪽에 진언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조부총리의 사의표명 파문은 민자당 일각에서 나온 「금융실명제 연기발언」등과 맞물려 민자당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에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조부총리의 사의표명 파동을 전후해서 민자당의 성장위주 정책노선은 「안정과 성장의 조화」라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지난 9일 민자당의 통합추진위 전체회의는 『신당의 경제정책방향이 성장일변도라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면서 『안정없이는 성장도 있을 수 없다는 기조하에 경제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당의 기본입장』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12일의 경제당정회의가 「성장과 안정의 조화」라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에 관한 인식을 접근시킴으로써 일단 당정간의 불협화음은 일단락됐다. 토지공개념 확대도입이나 금융실명제등도 부작용을 보완하는 선에서 계속 추진키로 의견을 모음으로써 민자당의 출범으로 한때 표류하는 기미를 보였던 정부의 정책기조는 본래의 모습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당정간의 이같은 공감대가 계속 지속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성장과 안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어떻게 정책수단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로 남아 있다. ◎조 부총리ㆍ이승윤 의원,기자와 일문일답/“정부의 경제진단ㆍ처방에 당서 동의했다/기업투자ㆍ수출촉진위해 최대지원 할터” 조순부총리와 민자당 이승윤의원은 당정협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당이 우리경제의 현실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으며 논의내용에 있어서도 만족스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조부총리와 이의원이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의 내용이다. ­오늘 당정간에 합의된 내용이 너무 추상적인 느낌인데. ▲조부총리=상견례를 겸한 자리였던 만큼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경제정책 전반의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 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과 정부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현상과 문제점,그리고 그 처방에 있어서 충분히 논의했고 내용에 있어서도 당이 정부의 인식에 동의했다. ▲이의원=최근 성장ㆍ안정ㆍ복지 등의 문제가 가치선택적인 것인 양 보도돼 유감이다. 경제성장이나 경제안정은 쉽게 양분될 수도,양분돼서도 안되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위기국면에 있다면 국민적 인식을 바탕으로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한도내에서 새로운 사고로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제도 등 「개혁정책」의 실시가 연기되거나 내용이 변경될 가능성은 없는가. ▲조부총리=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 확대도입 실시는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에 대해서는 당도 동의했다. 다만 역기능과 부작용이 초래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해 나가도록 했다. ­수출증진과 첨단산업 육성 등 기업의 투자의욕고취 방안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가 오갔는가. ▲조부총리=우리 경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산업생산기술의 문제다. 정부는 기술개발ㆍ첨단산업육성을 위해 법안까지 제정하는등 상당한 연구와 투자를 하고 있다. 수출과 기업투자촉진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기로 당정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경기부양책에 대한 이견은 없었나. ▲조부총리=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안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당도 동의했다. ­수출ㆍ투자를 늘리기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으로는 어떤 내용이 논의됐나. ▲조부총리=지금 국민의 경제활동이나 기업의 관심이 대체로 비생산적인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크다. 이를 생산쪽으로 돌리는데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생산적 투자를 부추겨 수출촉진의 효과를 가져오도록 선별적 정책대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이의원=신당합당후 정책기조가 정치국면에서 경제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안정적 성장」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마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별설비자금의 확대등 여러가지 단기적인 경제활성화 대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도록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당정이 의견접근을 보았다. ­원화절하ㆍ금리인하및 물가등에 대해서는. ▲이의원=우리 경제에 환율ㆍ통화ㆍ금리 등이 변수가 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것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정부의 운용방안이 옳은 것으로 본다. 이보다는 기업의 투자의욕과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살리기 위한 분위기조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합의내용 가운데 정부가 취하는 정책수단에 있어 심대한 제한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조부총리=과거 정부가 모든 정책수단을 전횡적으로 행사했던 것과 달리 경제부문에 있어서 자율화 추세등으로 민간에 의존해야 될 부분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정부도 과거보다 정책의 선택폭이 줄어들었고 정책효과 역시 감소됐기 때문이다. ◎당정대좌 90여분 이모저모/동의ㆍ합의ㆍ일치 나열 “당정갈등 없다”강조/당,투자촉진등 경기부양책 필요성 개진 ○…12일 하오 서울 대한상의 클럽에서 민자당출범이후 처음 열린 경제관련 당정회의에서는 현재의 우리 경제에 대한 당정간 인식이 「완전히」일치한다는 합의문을 도출해 냄으로써 그동안 안정과 성장을 둘러싸고 일었던 당정간 불협화를 일소. 이날 회의는 당초부터 신당 창당에 즈음한 새 경제정책 기조설정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당정간 갈등이 없음을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과시용」의 성격을 짙게 띤듯 했으며 합의문에도 「동의」「합의」「인식일치」등 화합을 강조하는 용어가 다수 포함. 그러나 발표내용이 안정ㆍ복지ㆍ개혁과 성장ㆍ번영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약간은 「모호한」것이어서 이를 둘러싼 정책논쟁이 1백% 해소됐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 ○…이날 회의는 이승윤의원과조순부총리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김인호경제기획원차관보가 경제현황및 정책기조방향을 보고한 뒤 참석자들이 각자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1시간30여분동안 진행.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모두 『당정간 경제정책에 대한 이견이 없음이 확인됐다』고 밝혔고 그동안 갈등의 주역처럼 비쳤던 조부총리와 이승윤의원 등도 『매우 만족스런 모임』이라고 평가. 이의원은 특히 『최근 성장ㆍ안정,성장ㆍ복지간 가치선택의 필연성이 있는 양 보도되어 유감스러웠다』면서 『성장ㆍ안정은 양분법적으로 논의될 수도 없고 논의된 적도 없다』고 당정갈등을 강력 부인. 이의원은 그러나 『오늘의 한국경제를 위기국면이라고 많은 국민이 생각하며 신당합당이 위기국면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고 전제,『기술발전,단기적 수출및 투자촉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완곡하게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피력. 이에 대해 조부총리는 『일반적 경기부양책 조치는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라고 못박았고 이의원도 『환율ㆍ통화량ㆍ금리 등의 조절은 경기상승뿐 아니라 물가자극의 이중성이 있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동조. ○…민자당측이 다른 참석자들도 다수가 내심 상당 정도의 경기부양책 채택등 성장우위론을 선호하는 눈치이지만 신당 출범 직후부터의 「당정 불협화음」「복지정책 수정」이란 구설수에 휩싸일 것을 꺼려 구체적 언급은 자제. 이승윤ㆍ나웅배ㆍ김동규ㆍ황병태ㆍ김용환ㆍ이희일의원 등 경제대책 특위위원 6명은 모두 『성장과 분배문제를 이분화,이중에서 마치 택일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면서 『따라서 오늘 회의는 당정간의 경제정책에 관한 입장조정이나 정책방향을 둘러싼 이견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고 경제현황에 대한 현실감각을 교환한 자리』라고 설명.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민정ㆍ공화계와 민주계간에 「미묘한」입장차이가 표출되었으며 민정ㆍ공화계 의원들이 「성장을 통한 복지달성」을 강조한 반면 민주계는 「토지공개념ㆍ금융실명제 등 개혁조치의 차질없는 시행」을 각각 주장했다는 후문. 특히 황병태의원(민주)은 「기술혁신」「작은 정부」등을 주장해 합의문에 이들 내용이 삽입.
  • 정계개편과 경제안정(사설)

    정계개편은 위기적 상황의 우리 경제를 선순환으로 반전시키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주류적인 관측인 것 같다. 여소야대의 4당구조에 따른 당략차원의 소모적 대결이 우리 경제의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이것은 상당한 논거를 갖고 있다. 경제는 물의 흐름에 비유되며 체질적으로 충격을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최근의 정국불안과 노사분규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때 분명히 악재이며 앞으로 더이상 악화되면 경제가 파국을 면치 못하리라는 견해가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정국안정의 전제인 여대야소의 정계개편이 합의됨으로써 경제 역시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우리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리더십 결여에 의하여 경제가 표류하는 현상이 제거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특히 야당의 반대로 인하여 법과 제도의 제정 또는 개편이 지연됨으로써 경제정책이 때를 놓치는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관료들이 지나치게 야당을 의식하여 정책개발을 기피하는 대신 무사주의에젖는 사례도 줄게 될 것이다. 야대의식의 불식은 정책개발에 활력을 불어 넣고 국회개회 기간동안 많은 공무원의 국회 대기로 행정공백이 생기는 부작용도 없어질 것이다. 증시에서의 주가폭등은 정계개편이 우리 경제에 호재임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재뒤에는 악재가 있듯이 정계의 대변혁이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소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보수의 대연합은 첫째로 정경유착에 대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유착관계는 한편으로 가진자와 못가진 자로 구별되는 대립적 개념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보수와 혁신의 정치구도가 확연하게 그려지면 그려질수록 이념적 갈등과 마찰이 격화될 소지가 있고 이는 경제안정을 또다시 흔들어 놓을 우려가 있다. 둘째로는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대연합은 경제계의 발언권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요즘 기득권층으로 표현되는 재계의 대정치권 발언강화는 우리 경제의 현안과제인 형평한 배분실현과 공정한 부의 축적을 위한 제도개혁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 등의 정책추진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당료의 입각으로 경제정책수립에서 당의 입김이 강화될 듯하다. 그렇게 되면 선거를 의식한 정치지향적 경제정책이 수립 또는 추진될 우려가 있다. 과거에도 선거때의 통화증발과 공약남발이 안정을 해친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논리의 우위는 결국 인플레를 유발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발전추진세력의 변화이다. 관료 엘리트 중심으로부터 당료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6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과정에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한 경제관료의 약화는 성장견인기능의 약화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통합정당의 주역들은 신당의 강령을 통해서 경제정책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선명하게 밝히는 동시에 제도적 보완책과 운영의 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노사간 관행정립이 시급하다(사설)

    우리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는 산업평화의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형성되어져 있다. 지난 3년 동안의 격심한 노사분규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도출해낸 국민적 합의를 이젠 어떠한 방법으로 착근시켜 나가느냐가 우리의 현안과제이다. 정부가 발표한 산업평화 조기정착과 임금안정대책은 이같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단호한 정책의지를 표명함과 동시에 노사간의 규범과 관행정착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은 과거 노사분규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 선별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하던 방법에서 탈피하여 사용자지도대책ㆍ급진노동세력대책ㆍ악성노사분규대책ㆍ분규업체지원대책ㆍ근로자주거안정대책 등 체계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전례없이 강경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계급투쟁과 노동해방운동으로 보는 일부 노동세력이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강경선회가 불가피해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또 악성분규와 기간산업분규에 대하여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정부방침은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강경선회로만 볼 수도 없다. 다만 노사문제는 경제적 이슈뿐이 아니고 권력적 이슈와 인간적 이슈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어느 쪽은 보호하고 어느 쪽은 탄압한다는 인상을 받을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이번 대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공정한 중재자 또는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보다 충실해야 할 것이다. 국민경제제도연구원의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국민들의 86.7%가 노사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으나 공권력 개입은 현재보다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43%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은 노사문제에 지나친 정부개입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사간의 문제는 이해당사자가 대화와 타협 그리고 양보를 통하여 스스로 해결하는 길 이외에 최상의 방법은 없다. 현재 우리는 원만한 해결을 위한 제도와 관행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격심한 진통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정부정책 못지않게 노사가 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하여 새로운 관행과 규범을 창출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노사는 정부가 발표한 무노동ㆍ무임금원칙과 경영ㆍ인사권의 배제 등 여러가지 문제에 있어 대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스스로의 세부적인 관행을 모색할 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외견상으로 무노동ㆍ무임금을 관철시킨 것과 같이 처리하고 내부적으로는 복지비나 체력단련비로 지급하는 편법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노사합의에 의하여 첫해의 무노동에 대하여는 임금의 몇 %를 지급하고 그 다음해는 비율을 더욱 낮추었다가 최종연도에 제로(영)가 되게 하는 자율적 방법이 소망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올해 기필코 산업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가 제도와 관행 그리고 규범을 하나씩 착실히 착근시켜 나가야만 한다. 사용자가 기득권의 일부를 양보하고 근로자는 피해의식에 의한 과격행동을 버릴 때 그 착근은 빨라질 것이다.
  • 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증언 속기록

    ◎“강경진압ㆍ과격시위가 광주사태 도화선”/합수부 설치 보안사령관 취임 직후 계획/정 총장,「김재규 관련조서」 4차례 고쳐/광주특위 ▷6ㆍ29선언◁ 어느 시대,어느 정치사회를 막론하고 이면사는 있기 마련이지만 그때 그때 속속들이 알려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6ㆍ29선언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동안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또 지금 어떻게 추진되어 정치발전과 국가이익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그 경위나 배경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는 일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이면의 얘기들은 현실정치에 민감한 영향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훗날 회고록 등을 통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소상히 밝힐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국민 여러분의 양해를 간곡히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간첩조작사건등◁ 선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은 무한책임을 지게 마련입니다. 실무진에 의해 이뤄진 일인 경우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임대통령으로서 답변할 수있는 부분을 총괄적으로 얘기한 것입니다. 간첩조작사건 등은 실무진들이 조작했는지 않았는지 제가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또 물리적으로 답변준비시간이 짧아서 거기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가 없으므로 답변하지 못한 점을 양해바랍니다. ▷10ㆍ26에서 12ㆍ12까지◁ 1979년 국내 정국은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반발로 정치ㆍ사회적으로 매우 어수선하고 경제도 여러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 박 대통령시해사건으로 18년간이나 지속되어온 절대권력이 일시에 무너져 국가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공백상태와 행정체제의 마비는 국민들의 충격과 정치ㆍ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시해사건이 권력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지절러졌다는 점에서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사건 직후 정부는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여 10월27일 0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예상되는 북한의 군사적 책동에 대비하여 전군이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상계엄선포와 동시에 계엄지역내에서의 수사업무를 일원화하고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구 계엄법 제11조와 비상계엄업무의 구체적인 시행지침인 「육군계엄시행계획」과 계엄공고 제5호에 따라 계엄사령관 직속하에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를 설치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합수부설치 배경◁ 본인은 1979년 3월 국군 보안사령관이 된 뒤 을지연습을 실시해본 결과 전쟁 발발시의 보안사령부의 역할 및 임무수행과 관련,여러가지 미비점이 발견되어 보완책의 강구를 각급 참모에게 지시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시 전국계엄상황하에서는 정부의 모든 조직이 실제상 군의 통제하에 들어오게 되는 바,이러한 상황을 가정하여 각급 정보수사기관을 조정 통제해야 할 비상계획수립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비상계획의 일부로서 합수부안이 평소에 마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0ㆍ26사건 직후 실시된 계엄은 지역계엄이었으므로 정부조직은 군의 통제하에 있지는 않았으나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시해범으로 체포되고 주요 간부들도 조사를 받게 되어 중앙정보부의 기능은 거의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이 보안사령관 취임 직후 준비했던 합수부계획이 비상계엄선포와 함께 계엄사령관을 경유하여 국방장관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합동수사본부는 기존의 수사기관과 전혀 별개의 새로운 기구로 구성한 것이 아니고,당시에 군과 검찰 그리고 경찰로 나누어져 있던 수사업무를 조정 통제하여 계엄하에서 수사기능과 활동의 효율적인 운영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전례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962 당시 김재춘방첩부대장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어 공화당 사전조직 및 4대 의혹사건 등 중요한 사건들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김재규 체포 경위◁ 대통령시해사건 발생 직후 국방부에 국무위원 및 군수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시 청와대비서실장이며 사건현장을 목격한 김계원씨가 먼저 노재현국방장관과 정승화참모총장에게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노 국방장관은 곧 저를불러서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하며 정승화총장을 만나 세부사항에 대한 지침을 받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정 총장실에 가보니 정승화총장은 본인에게 『김재규를 보안사 안가에 보호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나는 당시 헌병감 김진기장군과 협의하여 김 장군으로 하여금 김재규를 국방장관실로부터 참모총장실로 유인해 나오도록 하여 그곳에서 보안사수사관을 시켜 김재규를 체포토록 하여 보안사 안가로 이송,보호 조치케 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10월26일 24시경이었습니다. 얼마 후 안가의 수사관들로부터 김재규가 틀림없는 범인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안가에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김재규를 보안사 수사분실로 이송하여 수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가 27일 새벽 02시30분경이었습니다. 그 당시 김재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재규의 진술에 의하면 『정승화는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시킨 사람이다. 당시 국방장관은 3군사령관을 참모총장으로 밀고 있었으나 내가 1군사령관인 정 장군을박 대통령께 강력히 추천해서 총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 김재규 자신의 지시에 따라 정승화총장을 범행장소에서 36m 떨어져 있는 궁정동 안가에 대기시켰다는 것입니다. 김재규의 계획은 박 대통령을 암살하고 비상계엄을 선포케 한 다음 군사혁명으로 유도해 정 총장을 비롯해 군고위층을 조종하여 정권을 탈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김재규의 진술에 의거하여 수사관들은 정승화총장이 김재규의 공범 내지 방조범 아니면 배후의 인물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10월27일 11시께 본인에게 정 총장을 연행 수사해야겠다는 건의를 해왔습니다. 만일 이 시기를 놓치면 증거를 인멸시켜 버릴 우려가 있고,수사 진행을 방해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버릴 염려마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수사관들로서는 정승화에 대해 많은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사통제ㆍ조정 필요◁ 어째서 하필이면 육군참모총장이 할일없이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하는 현장 근처에 두시간 가량이나 머물러 있었느냐는 것이고,근접한 위치에서 수십발의 총성이 들려왔는데도 대통령이 근처에 있는 줄 알면서 당장 진상을 알아보려고 안한 것은 30여년 군에 복무하여 군의 최고직위까지 오른 사람의 습성으로 보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고 피묻은 셔츠바람에 맨발로 달려온 김재규를 목격했으면서도 경위도 알아보기도 전에 같은 자동차를 탔다는 것,김재규는 여섯발을 장전한 권총으로 다섯발을 쏘고 한발이 남은 권총을 허리춤에 꽂고 있었으니 김재규의 몸에서 화약냄새가 났을 것임에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고,차 안에서 김재규가 수행원의 상의와 구두를 빌려 입고 신고하는 동작이 있었는데도 그냥 넘겨버렸고,육군본부에 도착하고서도 별다른 조치없이 김재규가 하자는 대로 군 이동을 한 것 등으로 하여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수사관들의 의견이었고 당시 저 자신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처음엔 수사관들의 건의에 구두승인을 내렸다가 나라의 전반적 정세에 생각이 미쳐 그 승인을 일단 보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분간은 계엄령의 질서하에 국내 치안확립이 시급한 일이었고,북한 남침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인데,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지 일곱시간밖에 안된 정 총장을 연행하는 사태가 생기면 혼란을 더욱 격화시키게 될지 모른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도피의 우려도 희박하고 증거인멸을 한다 해도 그 범위는 뻔할 것이니 정세가 안정된 후에 수사를 전개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도 있어 그대로 수사관을 타일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외신보도와 국내언론을 통해 시해사건에 정 총장이 관련되지 않았는가 하는 설이 나돌게 되자 정 총장은 자신이 스스로 조사를 받겠다고 간청했습니다. 그 자청에 따라 10월29일부터 11월1일까지 4일간 합수부 조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실에 출두하여 매일 두시간 정도 정 총장을 참고인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수산관들은 계엄사령관으로서의 직위를 이용하여 위압감을 조성함으로써 순리적인 조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고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다 정 총장은 수사관들이 작성한 조서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하여 전후 4차례에 걸쳐 수정시키기도 했습니다.심지어 그는 조서를 총장실로 가져오라고 해서 자신이 조서내용을 직접 고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정승화총장의 10ㆍ26시해사건관련 의혹이 짙어만 갔습니다. 많은 억측이 유언비어가 되어 항간에 범람했습니다. ▷10ㆍ26,쿠데타로 판단◁ 이런 상황에서 저는 수사의 총책임자로서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합수본부장으로서 대통령시해사건이야말로 중대한 사건인 만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신념하에 정확한 전모를 신명을 걸고 밝혀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남은 작업은 정 총장의 혐의를 조사하여 그 의혹을 말끔히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이에 대한 흑백이 가려지지 않는다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물론 군 자체의 기강이 흔들리는 동시 마침내는 군이 분열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11월께 본인은 모든 상황을 노 국방장관에게 보고하고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건의하였더니 「좀 더 두고보자」고 했고 그후 최 대통령에게 건의드렸더니 『국방장관과 상의하라』고 말씀하셔 본인으로서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정 총장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며 계엄사령관으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군내부에 강력한 지지세력을 구축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를 조사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모한 노릇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어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으며 그야말로 구국적인 소신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평상시 본인은 미국의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이 영원한 미궁에 빠져버린 것을 미국의 수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본인이 운명적으로 시해사건수사의 최고책임자가 되었을 때에 저 개인의 신상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기필코 이 사건의 전모를 국민 앞에 밝히고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본인은 김재규의 수사과정에서의 진술이 미국이 개입되었다는 통설,군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육군참모총장이 범행현장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 등을 취합해서 쿠데타가 아니면 쿠데타에 준하는 사건이라고 당시로서는 판단할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정 총장 자신의 말대로 오비이락격으로 그가 시해 현장 근처에 있었던 것이라면 그건 그분의 불운이라면 불운일 것입니다. 불운이라 해서 수사의 객관성과 냉정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용의자를 제외하고 수사를 마무리지었다간 의혹은 의혹대로 영원히 남을 것이며 그 결과는 결국 수사책임자의 직무태만이란 원성으로 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직무태만이란 비난이 겁나서가 아니라 정 총장에 대한 완벽한 조사가 국민의 의혹을 해소시키는 동시,정 총장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한 조치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본인은 정 총장을 수사할 적기를 포착하기 위해 정국의 추이를 주시하는 한편 군부내의 여론을 수집하였습니다. 11월 중순경부터 중진 장성들과 접촉을 계속하였는데 그 가운데 정 총장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장군도 끼여있었습니다. 당시 황영시 1군단장,차규헌수도군단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노태우9사단장 등을 한분한분 찾아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런데그분들은 하나같이 10ㆍ26사태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선 어떤 고위층도 예외일 수 없으며 빨리 흑백을 가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육군 최고책임자의 관련혐의는 군의 단결과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하루속히 결판을 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본인의 신념과 군전체의 총화가 일치된 것으로 느끼고,12월 초순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내각이 새로 발족한 후 김재규재판과의 관련으로 보아 정 총장에 대한 수사를 연기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12월12일 임무를 결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12월12일로 날짜를 잡은 것은 그날이 토요일이어서 휴일 동안 수사를 하고 조용히 마무리지을 작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본인은 총리공관으로 최규하대통령을 찾아뵙고 정승화총장을 연행하여 조사하겠다고 보고를 드린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혐의만으로도 정총장이 계엄사령관과 참모총장직에 부당하다는 것을 설명드리고 정 총장을 조사한 결과 그가 계엄사령관 및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그 공백을 대통령께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시해사건에 대한 수사권은 대통령의 사전결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합수부장의 포괄적인 고유권한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본인은 합수부 수사요원을 총장공관으로 보내 정 총장에게 수사에 협조하도록 전한 후 모셔오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정 총장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강제연행을 하게 되었고 정 총장이 총장공관을 경비하고 있던 헌병에게 발포명령을 내림으로써 수사요원이 희생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불상사가 야기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본인은 그날 밤 18시30분 경복궁에 있는 30단으로 평소 정 총장과 가까운 관계인 군의 중진 장성들과 그밖의 몇몇 장성들을 초청해 놓고 있었습니다. 정 총장이 시해사건과 고의이건 아니건 관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군내부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뜻으로 군 지휘계통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리도록 허심탄회하게 건의토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사결과 예편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30단에 모인 장성들이 총장공관에까지 따라가서 조용히 예편하도록 권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신중을 기한 것은 정 총장이 일단 예편하기로 결심하였다가 혹시 울컥하는 감정으로 군을 동원하여 보안사를 공격하고 수사요원을 체포하여 하극상 사건으로 몰아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전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소를 보안사가 아닌 30단으로 정한 것은 본인이 정 총장의 감시하에 있다는 정보보고에 따라 보안 유지를 위해 저의 사무실이 아닌 바로 인접한 30단의 단장실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상했던 대로 연행과 관련된 무력충돌 직후 전군에 비상이 발령되면서 수도권의 병력을 장악하고 있던 정 총장 측근의 수경사령관과 특전사령관 등이 탱크를 포함한 중무장부대를 동원하여 청와대 지역을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합수부는 수사기관으로서 전투병력이 없는 상태이고 부대간에 충돌이 발생하면 국가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될 것이므로 주요부대 지휘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자제를 당부하는 등 충돌을 피하도록 적극 설득했습니다. 그런데도 정 총장측근에서 계속 위협을 가해왔기 때문에 안보상 필요한 조치를 취한 가운데 제한된 규모의 예비병력을 동원하여 사태를 수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이것은 긴급대응의 조치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회일각에서 또는 미국측에서 이 사태를 계획적인 거사가 아니었느냐 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이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태는 돌발적이었습니다. 당시 30단에 모였던 장성들이 병력을 출동시킬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또한 본인에게 대한 전보발령설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있는 모양이지만,본인은 그 당시에는 일체 그와 같은 일은 들안 바가 없습니다. 본인은 명예를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2ㆍ12사태는 시해사건의 수사도중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전에 준비된 병력출동 계획도 없는 쿠데타가 어디 있겠으며 만약 쿠데타였다면 왜 본인이 그 직후 바로 권력을장악하지 않았겠습니까? 본인은 그 당시로서는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과거 고 박대통령으로부터 정치입문 권유를 몇차례 받은 바 있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군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12ㆍ12사태는 당시 시해사건에 대한 최고 수사책임자인 본인이 주도한 것이며 따라서 그로 인해 야기된 사건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광주사태 발생◁ 광주사태는 10ㆍ26 이후 지속된 극심한 사회혼란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지극히 불행한 사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태발생 당시 정보의 총체적 책임자로서 초기 단계에는 쌍방간에 경미한 충돌이 있었으며 상황이 점차 악화되어 계엄사령부에서 무력진압을 계획중이라는 정보보고를 들은 바 있었으나 이처럼 엄청난 비극으로 확대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읍니다. ▷광주참극 상상 못해◁ 당시 광주 일대는 중앙정보부 보안사 경찰 등의 정보기관들이 모두 시외곽으로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정보책임자였던 본인도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하였고 현지 주둔부대인 광주계엄분소에서 계엄사에 보내는 보고를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었던 극히 혼미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정보부재의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보안사에서는 서울에 있던 광주출신의 한 장교가 자진해서 현지에 잠입,단편적 정보를 계엄사를 통해 보내오기도 하고 또 당시 보안사의 간부를 현지로 실정 파악을 위해 파견하기도 하였으나 여러가지로 정확한 상황판단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제한된 정보에 기초하여 본인은 무력진압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겠으며,시민을 상대로 한 사태수습을 군 작전개념으로 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정보책임자로서의 의견을 계엄사의 지휘관들에게 전달한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인명피해를 낸 이 비극적 사태의 원인에 대하여 본인은 무어라 한두마디로 단정지어 말씀드리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당시 계엄하에서 광주사태 이전에 서울 등지에서도 각종의 시위가 있었으나 평온을 되찾은 반면 유독 광주에서만 그러한 비극이 발생했던 이유는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다만 본인은 당시의 정보책임자로서 이 사태가 초동 진압단계에 있어서의 계엄군의 강경진압과 일부 출처를 알 수 없는 악의에 찬 유언비어에 자극받은 일부 시민들의 과격시위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군부대 파견ㆍ작전◁ 당시 광주사태와 관련된 계엄업무는 전국적인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계엄사령관이 주재하는 계엄관계관 일일회의에서 보고되고 논의되어 추진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앙정보부장서리인 본인은 그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군지휘계통상의 간섭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본인은 군의 배치이동 등 작전문제에 대해 관여한 사실이 없으며 당시의 계엄사령관 이희성장군은 그분의 강직한 개인적 성품으로 보아도 지휘선상에 있지 않은 본인이 군작전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 본인이 파악한 바로는 공수부대는 5ㆍ18계엄확대조치의 일환으로서 광주뿐만 아니라 서울 대전 전주 지역에도 파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전북 익산군 금마면에주둔하고 있던 제7공수여단병력을 광주 전주 대전에 각각 3백여명 규모의 일개 대대씩 파견하였고 서울지역 8개 대학에도 6개 여단병력 9천6백여명을 배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엄군의 증강은 광주지역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광주지역에 특별한 상황을 예상하여 투입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현지 지휘관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를 파견 배속했느냐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군지휘의 이해부족에서 제기된 의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당시 지휘체제가 이원화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으로 압니다만 이 또한 일반적 군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떠한 부대라 하더라도 일단 타부대에 작전 배속이되면 그 배속을 받은 지휘관은 즉각적으로 그 부대를 장악해서 지휘할 책임이 있으며 그 이후의 모든 작전상 승패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당시의 현지 지휘관이 군 경력상 특수부대에 대한 지휘경험이 전무하여 원활한 작전수행에는 차질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해가 갑니다만 배속된 부대가 현지 지휘관의 지휘통제에 불응했다는 주장은 군문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본인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위권행사문제◁ 자위권의 행사문제는 초기에는 군인 복무규율에 따라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행사된 것으로 판단이 되며 현지상황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5월22일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령부의 작전지침이 지휘계통을 통해 하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위권의 발동은 최악의 상황에서만 현지 지휘관의 사태판단에 따라 제한적으로 발동할 수 있는 것이며 당시 위급한 상황에 처한 현지 지휘관들이 자위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나 상급사령부나 계엄사령부 등의 군 고위층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