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안법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환수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운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기상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연기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13
  • 국보법 위반자들의 귀국(사설)

    지난 91년 당국의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한 뒤 베를린에 머물러온 朴聖熙씨(28·당시 경희대4년)와 成墉乘씨(29·당시 건국대4년) 등 해외체류 국가보안법 위반자 5명이 지난 7일 김포공항을 통해 자진 귀국,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해외에 체류중인 이른바 ‘반체제인사’들에 대해 ‘반성’을 전제로 귀국을 허용하기로 밝힌 바 있다.과거 역대 독재정권 시절에 빚어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다.현재 해외에는 朴正熙·全斗煥·盧泰愚 군사 정권 시절 유학 등 목적으로 출국했다가 독재정권의 폭압에 신음하는 조국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거나,통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국보법 등 실정법을 위반해서 20년 또는 30년 넘게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들중 일부가 비록 실정법을 위반하긴 했으나 그들이 현지에서 벌인 조국의 민주화운동은 실로 힘겨운 것이었다.현지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연대해서 언론과 교회,그밖의 요로에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의 반민주적 탄압상을 알리는가 하면,국내 민주화운동을 돕기 위해 대대적인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고,양심수 석방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역대 독재정권 시절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나, 국제적 압력 덕으로 석방된 양심수들은 일정부분 그들에게 신세를 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엄연히 실정법을 위반한 것도 사실인만큼,새 정부는 그들이 과거 행적에 대해 ‘반성’하는 것을 전제로 귀국을 허용한 것이다.그것은 그들의 ‘불행한 과거’자체가 모두 건국 50년 넘게 통일된 민주국가를 건설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희생자들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이번에 자진 귀국한 사람들은 공안당국에서 과거 행적에 대해 조사를 받은 다음 사법처리될 것인데,새 정부 화합조처의 근본취지와 이들이 자진 귀국한 사실 등이 감안되었으면 한다. 해외체류 국보법 위반자들이 정부의 관용조처에 호응해서 자진 귀국함으로써 국민들이 50년만에 들어선 진정한 민주정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한총련이 딴죽을 걸고 나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한총련 소속 학생 2명이8·15통일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7일 평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국민들은 반국가 불법단체로 규정된 한총련에 대해 준열하게 꾸짖지 않을 수 없다.온 나라가 유례없는 대수재를 만나 고통을 겪고 있는 마당에,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문젯거리를 새롭게 들고나와 어쩌자는 것인가.더구나 각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총망라된 민간통일운동조직인 ‘민화협’이 결성된 시점이 아닌가.한총련의 분별있는 행동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민주열사 열전:1­2/張俊河 선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체제 맞서 ‘불굴의 투쟁’/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 항일운동/해방후 ‘사상계’ 창간 반독재투쟁 선도/朴正熙정권 끝내 부정… 의문의 추락사 “오늘의 헌법(유신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이에 우리 국민은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1973년 12월23일 상오 10시 서울 YMCA회관 회의실.통일당 張俊河 최고위원이 준비된 성명서를 읽어내려가는 순간 수십명의 보도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咸錫憲·白樂濬·金壽煥·白基玩·桂勳梯·兪鎭午씨 등 각계 지도급 인사 3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순간이었던 것이다.이 일로 張俊河 선생은 白基玩씨와 더불어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다. 일제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張俊河 선생.그는 정부수립 이후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골짜기에서 불귀의 객이 될때까지 반독재 투쟁의 선두에 있었다.5·16쿠데타 때까지는 월간잡지 ‘사상계’를 무기로,그 이후에는 직접 몸을 던져 독재와 싸웠다.金俊燁 사회과학원 이사장(78)은 張俊河 선생을 ‘애국자·혁명가·인격자이며 권모술수와 배금주의를 배척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고 그의 죽음을 서러워했다. ‘사상계’를 빼놓고는 그의 반독재투쟁사를 말하기 어렵다.그의 손아래 동서로 사상계에서 편집부장을 지낸 劉庚煥씨(61·전 문화일보 논설실장)는 “張俊河 선생은 자신이 발행하던 사상계에 신앙에 가까운 애착을 보였다”고 했다.사상계는 자유당 독재가 강화되자 오히려 반독재 정론지로써의 위력을 십분 발휘했다.59년 2월호에는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란 제목으로 언론사상 초유의 ‘백지 권두언’을 냈다.58년 12월 자유당 정권이 야당의원들을 끌어내고 국가보안법을 개악시켜 통과시킨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쿠데타 이후에도 張俊河 선생은 61년 7월호에 실린 咸錫憲 선생의 ‘5·16을 어떻게 볼까’란 제목의 글로 중앙정보부장 앞에 불려가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빨리 민정이양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또 각종 집회연설을 통해 朴正熙 대통령에게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밀수왕초’,‘매혈자’등으로 몰아부치고 국가원수모독죄 등으로 구속된다.이러한 투쟁은 69년 3선개헌 반대투쟁과 반유신 개헌 백만인 청원운동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의 반독재투쟁에 대해 白基玩 통일문제연구소장(65)은 “단순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분단체제로 몰아가려는 반통일세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했다.劉庚煥씨는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면서 반공주의자였다.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에 총부리를 들이댔던 朴正熙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또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쿠데타는 후세에 좋지 않다는 신념으로 朴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회고했다. 張俊河 선생의 일생을 지배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가 광복군 대위 시절 쓴 다음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내 영혼 저 노을처럼 번지리/겨레의 가슴마다 피빛으로/내 영혼 영원히 헤엄치리/조국의 역사 속에 피빛으로.◎張俊河와 朴正熙/광복군대위­일본군중위 출신부터 달라/남로당관련 등 박정희 약점 과감히 들춰 5·16 쿠데타 이후 張俊河 선생이 숨질 때까지 ‘張俊河는 朴正熙의 천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그만큼 앞뒤 안가리고 朴대통령에게 모멸감을 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1966년 삼성계열의 한국비료가 대량의 사카린을 밀수한 사건이 발생하자 재벌밀수규탄대회에 초청된 그는 朴대통령에게 ‘밀수왕초’란 이름을 선물했고,3개월간 옥고를 겪는다.67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해 4월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朴대통령에게 ‘매혈자’란 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베트남전 참전을 두고 한 말이었다.이로 인해 국가원수모독죄로 3개월간 옥살이를 하게 되나 오히려 6월 총선에서 옥중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또 “朴正熙는 과거 남로당 조직책으로 조직원 동료를 팔아 목숨을 부지한 사람”,“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로 광복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인물” 등 朴대통령의 최대 약점들을 과감하게 들추어냈다. 張俊河 선생의 이런 행태에 대해 평전 ‘재야의 빛 장준하’를 썼던 朴敬洙씨(68)는 “張俊河 선생의 朴正熙관은 애초부터 멸시와 경멸이었던 것 같다. 상대가 일본군 중위일때 그는 우국충정의 광복군 대위였다는 자부심을 항상 갖고 있었고,朴正熙의 갖은 폭력을 겪으면서도 분노에 앞서 그 인격 자체를 대단치 않게 본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헌을 위한 백만인 청원운동으로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던 張俊河 선생은 출감하자 75년 1월 朴대통령에게 ‘박정희씨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격적으로 공표하고 민주헌정의 회복을 촉구한다. ◎유족들의 생활/결벽중에 가까운 청빈으로 가족들 큰 고통/문상객도 자기먹을 쌀 가져올 정도로 궁핍 “월급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17살때 시집왔다는 張俊河 선생의 미망인 金熙淑 여사(71)의 말이다.사상계 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張俊河 선생이 생을 마감했을 때 남은 것은 20만원짜리 월세방과 쌀 한 됫박뿐이었다고 전해진다.한 문상객이 미망인의 손을 붙들고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거냐”며울자 망연자실해 있던 金여사는 “언제 저 양반이 생활비 가져온 적 있나요”라고 남의 얘기 하듯 했다고 한다. 白基玩씨는 “문상올 사람들에게 자기 먹을 쌀을 가져오라고 연락을 했었다”며 “당시 부의금에 약간의 돈을 보태 전셋집을 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이렇게 지나칠 만큼의 청빈에 대한 그의 결벽증은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수 밖에 없었다.사상계에 대한 탄압으로 항상 빚에 쪼들렸던 것도 이유가 됐다. 3남2녀중 장·차남인 호권·호성씨는 대학 문턱도 못 밟아봤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세 아들중 호준씨는 아버지의 모교인 한신대를 나와 목사로 있다.딸들은 이대를 졸업했으며 미국과 제주도에 각각 살고 있다. ◎비극의 수수께끼/추락사한 유해 겨드랑이 피멍자국/17m 벼랑에서 떨어진 안경은 말짱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張俊河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풀·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 張俊河 선생이 숨져 누워있던약사봉 골짜기의 이 표석문의 ‘멋 훗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당시 검찰의 ‘추락사’발표는 실로 의혹투성이였다.그때 徐燉洋 의정부지청 당직검사는,張俊河 선생은 벼랑에서 떨어져 귀밑 부분이 함몰돼 뇌진탕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그는 등산 도중 일행과 떨어져 金龍煥씨(중학강사)와 같이 하산하는 도중 경사가 급해 소나무를 잡고 발을 딛는 순간 나무가 휘어지면서 미끄러져 떨어졌다는 것이다. 徐검사는 사고 다음날 새벽 1시경 현장에 도착,캄캄한 상태에서 현장조사를 마쳤다.그리고 그날 낮 金龍煥씨를 검찰로 불러 조사기록을 작성했을 뿐이었다.이때문에 당시 ‘재야대통령’이라고 불리던 張선생의 사인을 서둘러 추락사로 발표한 의혹을 샀다. “집에 도착한 고인의 유해를 보니 겨드랑이 밑 양쪽 팔에 피멍이 있었어요. 엉덩이와 팔 두군데 주사기로 찔린 듯한 자국도 있었고요.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사체가 너무 깨끗했습니다.순간 양쪽 팔을 붙들린 채 끌려갔다고 직감했지요” 서울 상봉동 셋집에서 장례 대소사를 떠맡았던 劉庚煥씨의 증언이다.또 金龍煥씨가 말한 하산코스가 등산장비 없이는 도저히 내려오기 어려운 벼랑이어서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코스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張俊河 선생이 갖고 있던 커피보온병과 끼고 있던 안경이 17m 높이의 벼랑에서 돌밭으로 떨어져 말짱했다는 불가사의한 의혹 등도 나왔다. 劉庚煥씨는 또“소나무가 휘어진 자국이라며 金龍煥이 말한 부분에 동그랗게 껍질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칼로 벗겨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張俊河 선생 연보 ▲1918 평북 의주에서 아버지 張錫仁 목사와 어머니 金京文 여사의 4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1932년 평양 숭실중 입학 ▲1940년 일본신학교 입학 ▲1944년 1월 金熙淑 여사와 결혼,20일 후 학도병으로 입대 ▲1944년 7월 일본군 탈출,중국군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의 광복군에 편입 ▲1945년 11월 金九 선생과 함께 입국,비서로 활동 ▲1948년 한신대 졸업 ▲1953년 월간 ‘사상계’ 발행 ▲1962년 막사이사이 언론문학부문 상 수상 ▲1971년 일본군 탈출과 광복군 시절을 담은 저서 ‘돌베개’ 출간 ▲1972년 7·4 공동성명 지지 ▲1973년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수많은 의혹을 남긴채 숨짐
  • 한총련 前 의장 검거

    서울경찰청은 3일 3기 한총련의장을 지낸 鄭泰興씨(27·전 고려대총학생회장)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연행,조사중이다. 鄭씨는 지난 95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밀입북을 배후조종한 혐의 등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다 지난 2일 하오 4시30분쯤 서울 중랑구 면목6동의 은신처 부근에서 잠복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 反독재 희생자 331명 명예회복 범국민운동/‘열사 범추위’ 결성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희생된 민족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汎)재야기구가 출범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 회 등 40여개 재야 및 시민단체들은 3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약칭 열사 범추위)를 결성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민주화와 분단극복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운명한 331명의 열사 및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의 길을 열기 위해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열사 범추위는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국가보안법과 노동관계법 등의 개폐,범국민적 차원의 열사 추모 및 기념행사 추진 등을 주요사업으로 정했다. 범추위 상임대표에는 전국연합 李昌馥 상임의장,文정현 신부,기독교서회대표 金상근 목사,李海東 목사,원불교 金玄 종무원장,실천불가승가회 공동대표 청화 스님 등이 위촉됐다. 이날 결성식에는 고 全泰壹씨의 어머니 李少仙 여사,고 李韓烈군의 어머니 裴恩深씨,고 朴鍾哲군의 아버지 朴正基씨 등 유가족을 포함,50여명이 참석했다.
  • 대법 “한총련은 이적단체”/姜渭遠 의장 징역 5년 확정

    대법원 형사1부(주심 李林洙 대법관)는 30일 제5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 姜渭遠 피고인(25·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총련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노선과 활동을 찬양·고무하고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이적단체”라면서 “姜피고인은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각종 이적활동을 한 만큼 원심대로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姜피고인은 지난 해 4월 전남대에서 열린 한총련 대의원 대회에서 제5기 한총련 의장으로 선출된 뒤 같은 해 6월 한양대에서 5기 한총련 출범식을 주도하면서 도심 폭력시위를 주도하는 등 각종 이적 활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 金昌鉉 울산 동구청장 구속/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부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2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金昌鉉 울산 동구청장(36)과 영남위원회 총책 朴경순씨(40·늘푸른 서점 주인)등 15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金구청장과 朴씨 등은 지난 92년 조선노동당 산하 한국민족민주전선을 최고 지도기관으로 하는‘영남위원회(일명 동창회)를 조직한 뒤 부산·경남지역 노동계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조선노동당 창건을 축하하는 문건 등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5·끝(정직한 역사 되찾기)

    ◎거듭나야할 법조/“권력이익이 우선” 탈법 방조/악법운용에 직간접 연관 고문 등 양심수주장 외면/최근에 검은돈에도 연루 ‘최후의 인권보루’ 요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을 순진하게 잘 지키는 사람만 손해본다” 우리사회에 그동안 유행돼온 법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말들이다.이는 법이 결코 대다수 국민들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인식의 결과이다. 이런 법치문화의 위기는 법을 악용하고 조작한 독재권력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법조인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많은 악법과 법 운용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법부와 검찰은 왜곡된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의 법조로 거듭나고 있는 것일까.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그 역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를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는 상태입니다. 특히 1987년 이래 폭발적으로 분출해온 온 국민의 민주화열기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 오늘날 사법부가 직면한 위기의 원천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88년 6월15일 서울지역의 판사 59명이 발표한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란 성명서 내용의 일부다. 이 성명사태는 전국 법원으로 확산됐고,마침내 金容喆 대법원장의 퇴임과 李一珪 대법원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와 움직임은 없었다.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내고 고문 주장에 얼굴을 돌렸던 부당한 재판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도,사죄 한마디도 없었다. 수색영장 남발,고문주장 사건의 증거 인용 등 탈법적인 수사활동을 조장·방조하는 일이 이어졌다.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된 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검사들은 업무의 특성상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준사법관으로서 법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성역없는 법 적용을 통해 추상같은 검찰권을 세워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검찰은 그동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88년 金淇春 검찰총장의 취임사는 국민들이 검찰의 변신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국민에 준법을 선도하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검찰부터 수사상의 적법절차를 엄히 지키고…,우리 검찰권이 중립성과 독립성이 존중되어야하는 국가공권력임을 잠시라도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임사로 끝났다. 사법부와 검찰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아직도 씻겨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올들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법조인들의 돈과 관련된 비리사건들은 우리 법과 법조인의 왜곡됨이 그 한계에 다다른 느낌마져 주고 있다. 법치주의는 국민들이 법을 집행하고 결정하는 법조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수백만달러의 연봉이 보장된 변호사를 포기하고,수십만달러를 받는 봉급장이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미국 국민들이 있고,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결정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법조인들이 깊이 되새겨보아야할 점이다. ◎시국사건판결 50년명암/권력에 맞선 소신 판사 줄줄이 해임/반공법사범 석방하자 뇌물사건 엮어 보복/대법원장이 “현실을 직시하라” 훈시하기도 격동의 반세기 속에서 많은 판사들이 권력의 편에 섰다. 굴욕을 거부하고 용기있게 권력에 맞선 법조인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굴욕을 감수하면 살아남고,이에 맞서면 옷을 벗어야 했다. 정의의 실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법조계의 반세기도 이같이 굴절된 어두운 역사로 얼룩져 있다. 1958년 7월 서울지법 유병진(재판장)·이병용·배기호 판사는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 진보당위원장에게 국가보안법 일부 위반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정적제거를 위해 사건을 조작한 이승만정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같은 달 조용순 대법원장은 사법감독관회의를 열어 “법관이라 하여 국가목적을 위한 숭고한 정신을 망각하고 주관적인 견해만을 고집한다면 국가이념에 배치됨이 이보다 심함이 없을 것”이라고 훈시했다. 사법부의 수장 스스로 정치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어 서울고법 김용진(재판장)·최보현·조규대 판사는 항소심에서 조봉암에 사형을 선고했고,다음해 2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7월 사형이 집행됐다.1심 재판장이었던 유병진판사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법관 연임이 거부됐다. 판사가 권력에 맞서 소신판결을 내리면 즉각 권력의 반격이 뒤따랐다. 대법원은 71년 국가재정 형편을 이유로 군인과 군속이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대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 판결에 참여한 대법원판사 9명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2년후 모두 의원면직됐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신민당사에 들어간 서울대생들과 월간 ‘다리’지 사건에 연관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임중빈씨 등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보복을 불러,반공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판사들이 제주도에 출장가면서 항공료 등 9만3,000원의 뇌물을 받았다며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 기각과 재청구,재기각 사태가 벌어졌고,급기야 전체 법관의 3분의 1인 153명이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 유신시대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때이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독재정권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들의 저항권 자체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민복기 대법원장은 75년 법원장회의에서 “현실을 직시하라.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이고 사법부의 권위를 앙양시키는 길인가를 생각하라”고 훈시했다. 이때 판사들은 대다수의 긴급조치 위반자들에게 징역 1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다. ◎朴禹東 변호사 인터뷰/“법조인들 나약해 법치주의 위협받아”/통치권자 사면권도 남용되면 곤란/오판위험 줄이게 피고·원고 모두 연구를 “법조 50년에 대한 평가요? 법조인치고 우리 법과 법조인이 제역량을 해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朴禹東 변호사(64)의 우리 법조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인색하다. 그 자신 33년간 판사생활을 했고 지금도 재야법조인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의 비판은 사정이 없다. 법치가 외면받고 위협받아온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법조인들의 나약함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에 과감히 맞서 싸운 법조인이 많았다면 독재정권이 오래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고만 있어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요. 법치주의가 서려면 지금이라도 법조인들이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대법관,법원행정처장 등에 임명될 때 마다 ‘학구파’,‘선비형’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朴변호사. 그는 후배 판사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몇 안되는 법조인 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은 판사시절을 돌이켜보며 “왜 좀더 깊이 검토하지 못했을까.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만큼,원고와 피고 양쪽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했던 것일까”라고 반문해보곤 한다. 그리고 항상 후배들에게 “50%가 아닌 100%의 연구와 검토를 양쪽 모두에게 쏟으라고 주문한다고. 그래야만 오판의 위험을 막을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가 일부 판사와 변호사들의 비리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것에 대해 朴변호사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99.9%의 판사는 깨끗하고,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한다. 변호사들의 수임 관련 비리도 대한변협의 적극적인 자체정화 노력으로 점차 자취를 감출 것으로 내다 봤다.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새내기 변호사들은 수임이 어려워 비리의 유혹을 받기 쉬운 만큼 개업보다는 법인에 취업하기를 권했다. 사법개혁 차원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양산하는 것에 대해 그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법조인 수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과 사법시험 체제에서 합격자만 늘리는 것은 법조인의 질을 떨어뜨릴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전에 외국의 로스쿨 같은 폭넓은 시각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해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 朴변호사는 법치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통치권자의 사면권 남용도 지양돼야 한다고 본다.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이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대법원에서 확정받고,해도 넘기기 전에 풀려나는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했겠느냐고 했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고유권한적·자의적 사면권 행사’라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집기획팀 ▲李昌淳 팀장 ▲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4­1/보안법 문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보안법 상처의 흔적들/시행 50년… 멍든 인권 곳곳에/曺奉岩 등 수많은 政敵에 간첩죄 적용/사회 전반에 올가미… 한해 수백명 구속 영화 ‘레드 헌트’는 제주 4·3항쟁때 양민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9월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와 한달 뒤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검찰은 이 영화 상영과 관련,인권영화제를 주최한 인권사랑방 대표 서준식씨를 지난해 11월 구속했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였다. 그러나 부산영화제(조직위원장 문정수 부산시장) 상영과 관련해서는 구속된 사람이 없었다. 같은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도 보안법 적용은 이렇게 다르다. 검찰은 당시 “서씨는 비전향 사상범으로 고의성 여부가 문제된다”고 밝혔다.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법적용이 다를 수 있다는 논리다. 국제사면위원회를 비롯한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석방노력으로 서씨는 얼마전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과 시비는 끊이질 않았다. 보안법과 관련,서준식씨의 경우처럼 세인의 주목속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용히 처리되는 사건이 훨씬 많았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50주년을 맞지만 보안법 역사의 뒷면에는 대한민국 인권의 상처투성이 흔적들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안법을 비켜갈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진보적인 정치인,지식인,학생,노동자 등이 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죽기도 하고 감옥에도 갔다. 진보적 정치운동과 관련, 보안법에 의한 최대의 피해사례로는 조봉암과 진보당사건 및 2차 인민혁명당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을 들 수 있다. 1958년 1월11일 밤 경찰은 조봉암 위원장 등 진보당 간부 10여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야당 당수 조봉암은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다음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심 재판장인 유병진 판사는 이승만 정권의 간첩조작에 저항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유병진 판사는 우익세력들에 의해 용공판사로 몰렸고 2년후 법복을 벗어야 했다. 2차 인혁당사건은 1974년 전국적인 반(反)박정희 투쟁을 준비하던 민청학련을 용공으로 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던 배후조직을 조작한 사례로 비판받고 있다. 10년전 1차 인혁당 사건에서 이미 경미한 혐의로 판명됐던 인혁당이 10년 뒤 재건되어 정부전복을 꾀했다는 것. 그러나 2차 인혁당 사건은 1차 때보다 더 증거가 없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75년 대법원에서 상고는 기각됐고,24시간도 못되어 8명이 처형됐다. 보안법과 관련,현대언론사에서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꼽히는 것은 1961년의 ‘민족일보’ 사건이다. 진보적 혁신 언론을 표방한 민족일보는 용공언론으로 몰려 조용수 발행인의 사형집행과 함께 폐간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소장에 용공으로 단정돼 예시된 것들은 ‘통일에의 전진을 위하여’‘남북교역 시기는 성숙하였다’ 등의 제목하에 실린 기사들이다. 보안법 위반 사건 가운데 한가닥의 온정도,최소한의 법적 기본권과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게 바로 간첩사건이다. 공안기관은 월·납북자의 친·인척,정보사법 전과자,조총련의 연고가족,납북 귀환어부 등의 신상 정보를 모두 입력해 놓고 있다. 이러한 신상 정보는 언제라도 ‘간첩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자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조작 의혹이 적지않았다. 78년 귀국중 간첩혐의로 체포돼 20년째 갇혀 있는 조상록씨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소조항/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노동·학생단체 등 민주화 운동 조직 파괴/찬양·고무죄­개념 모호해 자의적 해석 가능… 남용 심각/불고지죄­‘침묵의 자유’ 침해… 반인륜적 행위 강요 치안유지법,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국방보안법,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불온문서임시취체법…. 일제가 군사파시즘의 길을 걸으면서 국내외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했던 대표적인 법률들이다. 이중 치안유지법은 일본 및 식민지의 사회주의자와 반체제주의자,독립운동가 등을 처벌한 대표적 악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은 탄생(1948년 12월1일) 과정부터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빼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형법의 특별법인 이 법이 형법 제정(1953년 9월18일)보다도 빨리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시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해 이 법이 얼마나필요했던가를 잘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제2장의 제3∼10조가 범죄로 규정되는 행위들과 처벌을 정하고 있는 핵심적인 조항들이다. 이중에서도 제3조·7조·10조가 가장 독소적이고 남용될 소지가 많다고 비판받는 조항들이다. 제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가입권유 등에 대한 처벌로 제7조 3항의 이적단체 구성·가입죄와 함께 민주화운동 조직을 파괴하는 주요한 조항으로 지목돼 왔다. 형벌도 반국가단체 수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혹하다. 그러나 막상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반정부적 노동·학생운동 조직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운동조직인 전민학련과 민청학련,기독교 청소년들의 신앙공동체인 한울회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제7조는 반공법 제4조를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찬양·고무 및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이적표현물 제작·반포·판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남용돼온 조항으로 일반 형법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보안법의 ‘상징’과도 같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그 문언상 위헌이나 한정적 해석하에 합헌”이라는 한정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먼저 찬양·고무·동조라는 개념이 너무 애매모호해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집을 철거하려는 당국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했다가 구속되고(1978년), “북한이 남한보다 중공업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했다가 이 조항에 걸려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1976년). 10조는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불고지죄 조항이다. 모든 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불고지를 처벌하다가,91년 개정때 3조·4조·5조의 죄에 한해 성립하도록 범위를 축소했다. 또 친족관계일 때는 죄를 감경(減輕)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에도 불구하고 불고지죄는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직업윤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반사회적인 행태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수년전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에서 한겨레신문 윤재걸 기자가 인터뷰중 알게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구속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동식 간첩사건과 관련,불고지죄 혐의로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씨는 “설사 보안법 위반자라는 것을 알아도 친구나 친척을 당국에 신고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라며 불고지죄의 반인륜성을 비판했다. ◎北 형법은 가혹한 反인권적 악법/유추해석 인정·중벌위주 형벌체계 적용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북한의 반국가사범에 대한 가혹한 형법체계다. 보안법보다 훨씬 가혹한 법조항들이 북한내 통일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만을 폐지하면 ‘남쪽만의 무장해제’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북한 형법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기본 원칙인 법치주의 원리를 무시한 가장 비민주적인 악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북한 형법은 유추해석을 인정해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제10조에 “형사법에 동일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이 없을 때는 종류와 위험성으로 보아 가장 비슷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에 따라 형벌을 정한다”고 돼 있어,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범죄인으로 규정,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소시효에 대한 명문규정도 없다. 제42조는 “반국가범죄와 고의적 살인죄에 대해서는 기간에 관계없이 형사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로 규정,범인은 죽을 때까지 형사소추를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방하거나 그들에게 저항하는 행위는 반국가범죄(제44∼55조)로 규정,사형이나 전재산 몰수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또한 은닉범,불신고범,방임범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반국가범죄의 경우 이를 예외없이 적용하고 있다. 형벌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는 제21조에는 반국가범죄의 경우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돼 있어 우리법의 “○○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는 형식에 비해 중벌위주의 형벌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한없는 형량을 선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반인권적 형벌체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앰네스티와 보안법/“국제인권기준에 맞게 개정해야”/매년 인권보고서 통해 개폐 촉구 “양심수를 양산해온 국가보안법은 국제인권법에 크게 미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국제인권기준에맞도록 개정돼야 합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로스 대니얼스 집행위원은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떤 사상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테러단체를 조직하거나 폭력혁명을 공개적으로 추구하지 않은 이상 구속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앰네스티의 인권보고서를 통해 “보안법 위반으로 매년 체포되는 수백명 중 상당수가 폭력이 아닌 단지 ‘고무찬양’과 ‘이적행위’ 등으로 구속됐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보안법 개폐를 주장해왔다. 또한 주요 보안법 위반 사건마다 항의성명과 함께 피해자 석방을 촉구했다. 지난 96년에는 보안법 개정과 안기부의 권한 남용 방지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편지를 우리나라 정당 대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 高永復 교수 간첩방조죄 무죄/회합통신죄만 징역 2년 선고/항소심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李昌求 부장판사)는 23일 36년간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된 서울대 명예교수 高永復 피고인(70)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만을 인정,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高피고인의 경우 단지 은신처만 제공한데다 정범에 해당하는 남파간첩 金낙효도 적극적인 간첩행위에 착수했다고 볼 수 없다”며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간첩방조죄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北 한민전 산하조직 결성 파업주도/金昌鉉 울산동구청장 체포

    ◎민노총 간부 19명도 영장 부산지방경찰청은 23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교육선전국장 方석주씨(35)와 금속산업연맹 울산본부 정책부장 金명호씨(31) 등 19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 단체결성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92년 북한 노동당 소속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산하조직으로 영남위원회를 결성,지난 96년 3월20일 부산노동자회 창립 보고대회를 주도하고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하는 내용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갑니다’라는 문건을 제작,반포한 혐의다. 또 지난해 5월1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박창수 열사 정신계승 및 제107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에 참석,반국가 단체 표현물인 ‘97 노동절이야기’를 배포하는 등 불법파업과 노사분규를 주도해 온 혐의도 받고 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4­2/보안법 문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朴相千 법무장관 보안법관련 특별인터뷰/“용공조작·인권유린 영원히 추방”/“김 대통령 철학은 ‘법이 존중되는 세상’ 보안법 확대 해석·악용 절대 용납못해 국민의 정부선 억울한 희생자 없을것 미전향 장기수 준법서약은 꼭 필요” “국민의 정부 이전에는 ‘rule by law’였지,‘rule of law’는 없었습니다” 朴相千 법무장관은 22일 서울신문과의 특별회견에서 이같은 명쾌한 법치논리를 폈다. ‘rule by law’는 법을 수단으로 사람이 지배하는 형태로 결국 ‘독재주의’라는 것이다.‘rule of law(법의 지배)’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가져오며,그 토대 위에 시장경제를 이룩하자는 게 金大中 대통령의 기본철학이라는 설명이었다. 국가보안법 문제에 있어서도 같은 논리였다. 법을 확대 해석하거나 악용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朴장관과의 특별회견 내용이다. ○검찰 공안부 대대적 개편 ­사회 일각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전부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부 보안법 조항들이 인권유린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야당때부터 한결같이 주장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합심협력을 받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보안법 개폐논쟁을 벌여 국민간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국가보안법의 확대해석을 금지토록 하고 남용하지 말도록 지난 3월 이미 지시를 내렸습니다. 검찰 공안부도 대대적으로 개편,그런 시비가 있었던 사람들을 바꿨습니다. 과거 공안을 하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나 능력면에서 인정받는 검사들로 대폭 교체했습니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을 더욱 신중히 적용해 용공조작,인권 침해 시비가 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남용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개폐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부에서는 ‘신공안개념’ 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아태평화재단 등 일부 개혁적 인사들이 보안법의 대체입법을 주장하기도 하던데요. ▲아직은 개인견해라고 봐야 합니다. 정부의 공식 견해는 아닙니다. 정부는 실업자를 없애고 경제를 살리는데 우선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안법 개폐로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닙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새정부는 보안법을 고친 것과 마찬가지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간의 일대 갈등을 야기하면서 개폐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국가보안법은 남북분단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개폐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과 미전향 장기수를 특사로 석방하기에 앞서 준법서약서를 쓰도록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는데요. ▲사상전향제는 일제때부터 시작돼 60여년 된 제도입니다.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도 위반됩니다. 그래서 이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 도입한 준법서약제는 인간의 내면적 양심,이념을 국가권력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고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실정법에 맞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헌법상 당연한 의무입니다. 때문에 준법서약이 헌법이나 인권에 저촉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이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징역 10년을 받은 사람을 5년만 복역하고 석방하는 특혜를 부여하려 할 때 석방후 범죄행위를 할지를 법무부는 챙겨야 합니다. 더 나가서 범법행위를 할 사람을 사면한다는 것은 행형을 맡은 법무부로서는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방 이후의 범법행위에 대한 예측을 하지않을 수 없고 그때 참고자료로 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야 일부에서는 준법서약 없이 사면을 하도록 요구하는데 석방후 범법행위를 하지않겠다는 약속을 거부하는 사람을 형기 이전에 미리 내보내는 것은 법무부로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분들이 법무부장관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말로 쓴 준법서약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개폐논쟁 국민갈등 유발 ­8·15특사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확실한 규모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공안사범은 준법서약을받아봐야 확정될 것입니다. 일반 사범은 가급적 많이 하려고 계획중입니다. ­새 정부가 약속한 인권위원회 설치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법무부에서는 인권법을 제정하려 합니다. 인권법에는 인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구체적 규정,그것이 발생했을 때 구제조치,이런 일을 전담할 ‘국민인권위’ 구성 등의 내용을 담을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아니고 특수법인 형태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정부의 보조를 받는 단체가 되는 거지요.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창립하려고 합니다. 국민인권위에 인권침해 사실을 신고하면 위원회에서 조사하고 고발도 하는 등 적극 구제에도 나서게 되며 죄가 있으면 형법에 따라 처벌받게 됩니다. ○‘국민인권위’ 구성 계획 ­집시법과 보안감찰법,노동법 등에 아직도 이른바 독소조항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신공안 개념에 입각,지난 시절에 안보를 지킨다는 구실아래 행해진 위헌적 제도와 인권에 반하는 관행 등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정리가 되면고칠 것입니다. 인권법 제정과 국민인권위 설치는 한국이 인권국가로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변호사법 개정 등 법조부조리 개혁도 강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장관 인기가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러나 집시법은 이제 신고제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일부 노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집시법·노동법 등에서 합법적으로 시위·파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불법파업을 합니다. IMF위기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은 불가피합니다. 노동계가 합법적 방법을 통해 자기주장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면서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동자들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국가보안법 어떻게 될까/여야 “폐지·개정은 시기상조” 의견일치

    ◎운용의 묘 살리고 독소조항만 손질 주장/여권일각 개정·대체입법 목소리도 국가보안법의 일부 조항들이 과거 정권에서 인권침해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데 대부분의 정치권 인사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여야 정당 모두 법개정 혹은 폐지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운용의 묘’를 기하면 된다는 것이다. 본격적 보안법 개폐논의는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리라 전망된다. 국민회의 고위 정책관계자는 “남북관계 현상황을 고려하여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키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운용하고 법을 보완해나가겠다는 게 여권의 기본입장”이라고 설명했다. 金大中 대통령도 지난 3월 한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가혹한 형법을 갖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철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정치권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법폐지,대체입법,형법흡수,개정 등 4가지다. 보안법 개폐요구에 대한 여권의 대응방안은 두 갈래다. 첫째는 법해석이나 적용에 있어 남용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국민회의 정책관계자는 “법 7조 찬양고무죄,법 10조 불고지죄 등 포괄적,추상적 조항이 아직 있는게 사실”이라면서 “검찰기소 과정에서는 물론 법원의 판단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해 억울한 희생자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보안법 제19조 규정에 헌재 위헌결정이 남으로써 이미 법시행을 헌재 결정에 따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19조는 보안법 위반사범에 대해 일반 형사피의자보다 20일간 더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92년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 혐의자에 대해서도 구속기간 연장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둘째,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나 북한이 상호주의 차원에서 호응이 없다면 당분간 보안법의 폐지나 대체입법은 고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을 두고 이른바 독소조항으로 지적되는 부분을 손질해 나갈 계획이다. 보안법 폐지 및 대체입법이 안된다는 것은 공동정권의 한 축인 자민련이 지난해말 대선 합동공약으로 요구한 사항이기도 하다. 물론 여권 안에서 개혁적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아태평화재단 洪翼杓 책임연구위원은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신정권의 과제’라는 논문에서 “냉전시대의 양분법적 사고의 유산인 국가보안법은 대내외적인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여 개정되거나 보다 민주적인 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조항을 인권을 우선시하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조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잠수정 침투 등 무모한 도발을 중지하고 남북화해에 진정한 자세를 보일 때 洪위원과 같은 보안법 대체입법 주장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민주질서보호법’이나 ‘국가안전보장법’등으로 명칭을 바꾸고 일부 독소조항을 정리하는 방안이 여권 일각에서 계속 검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시점에서 보안법을 손댈 생각이 없다”는 것이 기본 당론이다. 諸廷坵 제1정책실장은 “북한이 최근 보안법 철폐를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개정 필요성이 있더라도 당장은 고치지 않는 게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훨씬 흉측한 법들을 가지고 있는북한의 태도변화가 있고 난 뒤 보안법 개정 문제를 거론하는 게 순서”라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연혁 ●1948.12.1 ­국헌을 위해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는 등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각종의 행위를 처벌하려는 것.(6개 조항) ●1949.12.19 ­형사절차 규정을 신설하고 기타 미비점을 보완,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에서 사형으로,3심제가 단심제로 됨. ●1949.4.8 ­사형에 대해서는 상고가 가능하게 함. ●1958.12.26 ­기존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전문 3장 40조 부칙 2조로 구성된 새 국가보안법 제정. 기존의 반국가단데 등 외에 국가기밀탐지,정보수첩,편의제공,언론조항 등이 새로이 규정됨. ●1980.12.31 ­반고법을 폐지하고 국가보안법에 통합,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내외의 결사 및 집단도 반국가단체의 범주에 포함시킴. 많은 부분에서 형량이 상향조정됨 ●1991.5.31 ­반국가단체의 범위를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로한정. 잠입 탈출 찬양 고무 등의 행위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이라는 단서를 붙임
  • 파업현장서 계급투쟁 선동/‘진보민청’ 의장 등 6명 구속

    경찰청 보안국은 22일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파업 현장과 각종 불법시위에 참가,노동자 계급투쟁을 선동해 온 ‘진보민중청년연합’(진보민청) 의장 金鳳泰씨(37) 등 핵심간부 6명을 국가보안법위반(이적단체 구성·가입 등) 혐의로 구속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2(정직한 역사 되찾기)

    ◎잘못된 법 적용/간첩누명 복역수 가족 비탄의 나날/새법 재정 재구금… 가정 풍비박산/정권안보차원 범죄 날조 처형/김 대통령 한때 사형선고 받아/고문조작으로 10여년째 구금도/심장병·신경질환 등 후유증 심각 비가 오는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한 남자가 푸른 수의를 입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 앉아 있다.그는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사내에게 연신 무죄를 호소한다.그러나 전기스위치가 올려지고,그의 코에 물주전자의 물이 거듭 부어진다.그는 눈동자가 풀어진 채 옆의 사내가 불러주는 대로 횡설수설 따라 읊는다. “북한의 우순학이 제 처입니다”“저는 30년간 북한의 공작원이었습니다”. 탑골공원을 무대로 지난 9일(목요일)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건장한 사내는 고문기술자 李根安이고 초췌한 남자는 16년째 간첩죄로 복역중인 咸珠明씨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갖는다.이날 집회의 주제는 ‘고문조작 간첩사건 피해자의 석방’.이 자리에는 군사정권 아래서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복역하고있는 14명의 가족들과 민가협 회원 등 50여명이 참가해 새정부의 조속한 석방조치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법과 동일시되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악법 논란’은 지난 50년간 끊일 날이 없었다.대부분이 아는 것과 틀리게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적이 없다.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전하고자 한 것은 ‘법에 대한 사전 합의와 동의의 중요성’이었다. 지난 61년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유신시절의 비상국무회의,80년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은 국회가 아닌 비정통적인 대의기구들이다.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서 이런 기구가 쏟아낸 법률들이 사전동의나 합의의 절차를 충실히 거쳤다고 하기는 어렵다.또한 본인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는,고문에 의한 조작 논란이 많았던 사건들도 정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71년 통일사회당 위원장 金哲씨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북괴를 북한으로 불러야한다’는 발언을 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당시 혐의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인데 이조항은 국가보안법 7조에 그대로 편입됐다.그러나 남북한 동시가입은 수년후에 이뤄졌고,지금 북한을 공식적으로 북괴라고 호칭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돼왔다는 논란 속에 숱한 인권침해와 위헌시비를 일으켰다. 이종·최남규·김중종씨 등은 50∼60년대 남파돼 체포된 뒤 10여년간 복역을 마쳤으나,75년 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재구금됐다가 89년 이 법의 폐지로 다시 석방된 이들이다.출소후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새 법이 제정돼 느닷없이 다시 갇히는 사람들의 황당함은 어떤 것일까. 정권안보차원에서의 범죄의 날조·조작은 법 자체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 李承晩 정권은 야당당수였던 曺奉岩 진보당위원장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고,金大中 대통령도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가지 받았었다. 고문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수십년째 갇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함주명·이장형씨 처럼 고문기술자 李根安으로부터 취조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함씨는 남파된 뒤 즉시 자수했으나 30년후 재구금되어 20년형을 선고받고 16년째 복역중이다. 이씨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14년째 구금돼 있는 상태다. 함씨의 누나 함주옥씨(73)는 “너무 억울하다.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하루빨리 재심절차가 있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74년 일본 유학때 조총련계 인사를 접촉한 것이 빌미가 돼 23년간 복역하다가 올 3월 특사때 나온 유정식씨. 南奎先 민가협 총무는 “현재 유씨는 심장병과 신경질환 등 극심한 고문후유증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함께 나온 재일동포 손유형씨도 후두암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다가 현재 일본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고 전했다. ◎張俊河·白基玩씨 악법철폐 앞장/학생들 민주화투쟁 전위대 역할… 3·4·9차개헌 견인/80년대 후반 민가협 등 수백개 민주단체서 주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1974년 1월에 발표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이렇게 시작된다.朴正熙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긴급조치를 발동했다.정권유지를 위한 강경책이었다.과거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과 법을 고치고 그를 정권유지에 이용했다.그러나 온갖 탄압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법과 헌법에 대한 저항과 투쟁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긴급조치가 발표되자 張俊河·白基玩씨 등은 ‘반유신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였다.그러나 서명운동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두 사람은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당시 판결은 구형과 판결이 일치하는 이른바 ‘정찰제 판결’로,이후 많은 공안사건의 판결 기준이 됐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그들은 민주화운동과 악법철폐운동에 앞장섰다. 일부 판·검사들의 ‘정의 투쟁’도 있었다.지난 64년 1차 인민혁명당사건에서 이용춘·장원찬·김병리검사는 중앙정보부에서 넘어온 공안사건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지난 96년 유원석 판사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충렬·허인회씨에게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공안사건에서도 ‘증거재판주의’원칙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지난해 2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을 벗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의 타락에 맞서 싸운 주체는 학생들이었다.그들은 왜곡된 헌법과 법을 바로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지난 60년 이루어진 3·4차 개헌과 87년 민주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개헌도 사실 학생들이 이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은 법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제도권에 몸담은 기성세대들이 하기 어려웠던 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전위대’ 역할도 담당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역할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 수백여개에 달하는 민주시민단체와 비영리전문단체들이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인권운동사랑방 등이 대표적 단체.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운동과 악법철폐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으며,매주 목요일 주제를 정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민변 또한 지난10여년 동안 文益煥 목사 방북사건,姜基勳씨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진상조사 및 변론을 맡았고,국가보안법 개정·폐지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지를 통해 법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 공론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간첩 불고지혐의 무죄판결 받은 咸雲炅씨/“명예실추·정신적 피해 상상 초월 보안법 자의적 적용 빨리 고쳐야”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실추된 명예와 정신적·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습니까.”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咸雲炅씨(34).“재판중에는 모든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돼야 하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당하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咸씨는 지난 95년 ‘남파간첩 김동식 사건’과 관련해 불고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지난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남북분단 상황에서 일단 간첩사건에 관련돼 체포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생활에는 족쇄가 채워집니다.그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지요.” 지난 96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咸씨는 “선거를 불과 몇개월 앞두고 이 간첩사건에 관련돼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그것은 선거에 치명타를 가했다.”고 말했다. 咸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일부 언론사와 국방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고 피해보상도 요구할 방침이다.언론사에는 재판중인 사건임에도 자신을 완전히 범죄자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한 책임을,국방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 등을 사병들의 정신교육 자료에 사용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수년전보다는 많이 완화돼 과거의 ‘막걸리 보안법’수준은 벗어났다는 점은 인정했다.그러나 여전히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친척까지도 신고해야하는 불고지죄는 반인륜적이라고 비판했다.유교적 윤리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친척과 친구를 신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이적단체 찬양고무죄나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죄 등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제의 조항이라고 했다.그는 “새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자의적 해석에 의해 보안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수사기관에 시정을 촉구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보안법 위반 사범도 준법각서 대상 포함/朴智元 대변인 밝혀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3일 미전향 장기수의 사면조건으로 사상전향서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준법각서를 받기로 한 방침과 관련,“준법각서는 대한민국국법을 지키겠다는 것이므로 국가보안법위반 사범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朴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일부에선 준법각서를 폭력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뜻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으나 사면후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용공 언동을 하면 안된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 ‘동아대 자주대오’ 5명 항소심서 간첩혐의 무죄/부산고법 선고

    ‘동아대 자주대오 간첩단사건’관련 피고인 5명이 항소심에서 간첩죄 부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朴鏞洙 부장판사)는 2일 이번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裵윤주피고인(28·여)에 대해서는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池은주(28·여),嚴주영(23·동아대 무역과 4년),徐봉만(27·동아대 경영과 4년),都경훈 피고인(25·前 동아대 총학생회장)등 4명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이적단체 가입 및 이적표현물소지 혐의)만 적용,징역 10월∼2년 6월에 집행유예 2년∼4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검찰조서 내용이 경찰의 자백를 근거로 한 것으로 객관성이 없고 피고들이 일관되게 혐의사실을 부인,증거로 삼을 수 없을뿐아니라 조선노동당에 가입해 간첩활동을 한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 파업현장서 勞­學 투쟁 선동/‘안민청’ 조직원 9명 구속

    ◎노동자 대상 사상학습도 경찰청 보안국은 1일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파업현장과 각종 불법시위에 참가,노동자 계급투쟁을 선동해온 ‘안양민주화운동 청년연합’(약칭:안민청)의 핵심 조직원인 金鍾博씨(38) 등 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洪모씨(26·여)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金씨 등은 88년 3월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 J교회에서 ‘안민청’을 결성한 뒤 기관지 ‘안양두꺼비’ 등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전·선동해온 혐의다. 이들은 매년 민중학교를 개설,노조간부와 학생 노동자들에게 ‘변증법적 유물론’ ‘혁명사’ ‘조직론’ 등을 가르치며 사상학습을 시켰다. 경찰은 이들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에서 ‘안민청 사냥1호’ 등 809종 1020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 양심수 사면 길 열었다/8·15사면 특징

    ◎준법서약제 도입 혜택범위 넓혀/사상처음 선거사범도 대상 포함 1일 법무부가 金大中 대통령에게 건의한 ‘8·15 사면 기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양심수’에 대한 사면의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또 사면사상 처음으로 선거사범을 포함시켰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미전향 장기수·국가보안법 사범 등 양심수에 대한 사면은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등이 한국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요구해온 단골 메뉴였다. 이번에 도입한 준법서약제는 전향제도와는 달리 헌법 19조에 규정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취지를 살려 사상·양심의 자유를 한층 끌어올린 제도라는 게 법무부측의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쓰고 검사를 통해 신뢰성 여부를 검증받으면 가석방·사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정부 당국도 이들의 신념을 존중,최소한의 요구를 한 셈이다. 때문에 사상과 신념을 바꾸라는 전향제도와는 실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향제도의 폐지와 준법서약제의도입은 공안사범에 대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밝혔다.이어 ”金 대통령이 ‘행동과 언어로 대한민국을 부인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공안사범을 선처할 수 있다’는 지침을 가시화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따라서 사노맹사건의‘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朴노해씨와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白태웅씨 등을 비롯해 민가협이 주장하는 650명의 양심수 가운데 상당수가 8·15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8·15 사면 기준에는 전례가 없었던 선거사범도 들어있다.3·13 대사면 당시 정치권에서 ‘표적수사’등을 이유로 선거사범에 대한 사면을 요구했으나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자칫 공명선거 풍토를 해치고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에도 배치된다고 판단해 사면대상에서 제외했었다. 법무부는 앞으로 1년6개월 동안 선거가 없어 사면된 선거사범이 정치를 다시 한다하더라도 유권자가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 양심수 등 8·15 大赦免/공안사범 사상전향제 폐지/朴 법무

    ◎朴노해·白泰雄씨­權魯甲·洪仁吉 전 의원 포함 오는 8·15 광복절에는 건국 50주년을 맞아 공안사범과 선거사범,한보사건 등 대형 비리사건 연루사범 등이 대거 사면된다. 특히 金和男 전 의원과 李麟求·辛卿植·邊雄田 의원 등 선거사범이 사상 처음으로 사면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한보사건으로 각각 징역 6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權魯甲·洪仁吉 전 의원과 申光湜·禹贊穆·李喆洙씨 등 전직 은행장 3명도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전향 장기수·남파간첩·국가보안법 사범 등 공안사범에 대한 전향(轉向)제도가 폐지되고 ‘준법(遵法)서약제’가 도입됨에 따라 사면 대상에 朴노해·白태웅씨를 비롯,상당수의 공안사범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1일 하오 金大中 대통령에게 ‘국정과제 추진실적 및 계획’을 보고하면서 이같은 내용의 8·15사면 기준을 건의했다. 이에 따르면 미전향장기수 등 공안사범은 ‘사회주의 또는 공사주의 사상을 버렸다’는 전향서를 제출해야 가석방·사면 등의 혜택을 받았으나 앞으로는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상과는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내면 사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민가협 등 재야단체들은 미전향 장기수 17명을 포함,650여명의 ‘양심수’가 수감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등 중요 공안사범 외에도 폭력시위 혐의로 사법처리된 대학생들도 사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특히 이번 8·15사면 대상에 선거사범을 비롯,한보사건 등 3·13 대사면에서 제외된 정치·경제계의 주요 인사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