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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노동당 가입서약 친북활동 지령받아”

    북한 공작원을 해외에서 접촉하거나 당국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한 혐의로 민노당 전 중앙위원 등이 구속됐다. 또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이들을 포섭하려한 미국시민권자도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국정원은 26일 미국 시민권자로 1989년과 98년,99년 3차례에 걸쳐 북한을 드나든 것으로 알려진 장민호(44)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장씨와 교류하고 지난 3월2일부터 사흘간 중국 베이징을 방문, 이 기간 중에 북한 공작원을 만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정훈(43)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과 재야인사 손정목(42)씨도 구속됐다. 이날 체포돼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최기영(41)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과 40대 이모씨를 포함하면 이번 사건과 관련, 사정기관에 적발된 인물은 모두 5명이다. 성균관대 국문과 81학번인 장씨는 1982년 도미했으며 행적에 관해서는 명문대 입학설과 미 해병대 입대설이 엇갈린다. 장씨는 1980년대 후반 한국에 돌아와 IT업계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장씨는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서약을 하고 남한 내 재야인사들을 포섭해 친북활동을 꾀하도록 지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자신의 혐의를 일부 시인하고, 영장 실질심사도 포기했다. 국정원은 장씨의 거처에서 모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사 등 6명의 이름이 담긴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와 손씨는 실질심사에서 중국에서 북 공작원을 만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이씨가 공작원을 만난 현장사진 등을 법정에서 내놓았다. 이씨는 “공작원으로 지목된 이들은 우연히 만난 조선족으로 중국에 영어학원을 설립할 수 있을지 3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는 또 장씨에 대해 “2000년에 지인 소개로 만나 사업상 아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사학과 82학번인 이씨는 이 학교 총학생회 삼민투위원장 출신으로 1985년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호주와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영어학습서를 내 유명세를 얻고 2000년부터 온·오프라인 영어강의 회사 S사를 운영해왔다. 장씨의 서울 Y고 후배인 손씨는 장씨가 대표이사로 있던 에니메이션과 게임제작업체 N사에서 이사직을 맡았다. 연세대 행정학과 82학번으로 지금은 서울 대학로에서 음식점을 운영한다. 한편 전날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대책을 마련하던 최 사무부총장마저 체포되자 민노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민노당은 성명을 통해 “최근 남북관계와 북·미간 대결이 첨예화하면서 사회 보수화와 안보정국을 이어가려는 극우세력의 기도가 대대적인 조작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정원에서 그려놓은 표에 민노당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타 정당 명망가 이름이 올라 있다는 이야기는 시대를 뒤로 돌려 보려는 국정원의 ‘중앙정보부적 열망’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관련자 3명이 구속되면서 당 일부에서는 자체 진상조사위원회 등을 구성해야 되는 게 아닌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홍희경 박경호기자 saloo@seoul.co.kr
  • 민노당 관계자 北공작원 접촉

    북한 공작원을 해외에서 접촉하고 당국의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관계자 및 재야 인사들이 공안당국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송찬엽)는 25일 지난 3월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 이정훈(44)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회합 통신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씨와 함께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재야인사 두 명도 같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재야인사 중 한 명은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북한으로 몰래 들어가 잠입탈출혐의가 추가됐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씨를 비롯한 세 명은 지난 3월 중국으로 출국해 현지에서 공작활동을 벌이던 북한인과 만나 밀담을 나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씨 등의 중국과 북한에서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산하 투쟁조직 중 하나인 고려대 삼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이씨는 1985년 5월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씨는 통발어선 선원으로 일하던 1999년 5월 독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동료 선원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감금한 채 월북을 시도해 국보법 잠입탈출 등의 혐의로 구속돼 2000년 3월 징역 3년이 확정됐다. 한편 민노당은 이날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이씨를 체포하면서 공작원을 접촉했다고 했을 뿐 어떤 구체적인 정황도 제시하지 않았다. 북미간 첨예한 대결 국면과 남북 간 경색 국면이 조성되자 벌어진 이번 사건은 신공안 분위기를 만들어 반북·반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국정원의 음모”라고 주장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北核, 한나라 대선경쟁에도 ‘파장’

    북한 핵실험이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쟁구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 성공을 공식 발표한 지난 9일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세간의 통념과는 달라 눈길을 끄는 셈이다. 안보 위기 상황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으로 안보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이미지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전 대표보다 경제분야에서 강세를 보여온 이명박 전 시장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 전 시장은 연일 북핵 문제와 관련해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고, 박 전 대표는 경제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전 시장은 20일 광주·전남 경영자총연합회 초청강연에서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동안 우리는 여론의 핵분열을 겪고 있다.”면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우리 사회는 또 한번 분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형제가 싸워도 강도가 칼을 들고 집에 들어오면 힘을 모아 싸우는 법”이라며 “국가 위기상황에서 단합해야 할 정치권이 이 문제를 놓고 대립하며 국민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우리 정부가 취하는 조치도 국민을 실망케 하고 있다.”며 여권의 대응방식을 강력 비판했다. 이에 비해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20일 한국질서경제학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하는 등 경제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또 “정치와 외교가 잘 안되고, 사회가 불안한데 경제만 잘 될 리 없다.”며 “국민들이 서로 화합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국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6·17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9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전 시장은 31.2%, 박 전 대표는 24.5%, 손학규 전 지사는 6.3%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앞서 리서치&리서치가 지난 12일 제주를 제외한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에 대해서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 48.5%, 박 전 대표 35.8%, 손 전 지사 8.0% 등의 순이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각각 20∼25%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오차범위 내 선두다툼을 벌였으나 최근 지지율 추이는 이 전 시장이 급상승세를 보이는데 반해 박 전 대표는 강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국민들은 북한 핵실험이 안보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문제와도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핵우산 포기 주장 누가 했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을 겸직하고 있는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이 19일 국회 국방위 NSC 국정감사에서 여야의 집중 타깃이 됐다. 야당측은 정부가 지난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핵우산 조항 삭제’를 추진한 사실을 집중적으로 캐물었고, 여당측은 송 실장이 18일 한 포럼에 참석, 북 핵실험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지난해 SCM에서 ‘핵우산 제공’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던 장본인이 누구냐고 추궁했다. 그는 “외교부나 국방부 실무자들의 의견을 제쳐두고 청와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하는데, 혹자는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한다.”고 몰아붙였다. 같은 당 황진하 의원은 서면 자료를 통해 “NSC가 미국의 핵우산 조항 삭제를 추진한 것은 북한 변화를 유도한다는 구실로 북방한계선(NLL) 재검토, 국가보안법 철폐, 전시작통권 단독행사를 주장하는 것과 같이 대책 없고 경솔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북 핵실험에 대해 정부가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질타도 있었다. 국민중심당 이인제 의원은 “지난해 2월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했을 때 블러핑(허세부리기)으로 판단하지 않았느냐. 북핵이 일종의 암덩어리인데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은 “야당의 내각총사퇴 주장엔 송 실장도 포함돼 있다. 책임지고 물러날 의사가 없느냐.”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송 실장이 18일 ‘21세기 동북아미래포럼’에 참석해 발언한 내용을 비판했다. 안영근 의원은 “발언록을 보면 ‘유엔에 운명을 맡기면 자기운명을 포기하는 것’이란 답변이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책임자가 1시간30분 동안 발언하면 오해·곡해될 수 있는 내용이 충분히 나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근식 의원은 “오해성 발언은 절대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박찬석 의원은 “꼭 해야 될 말만 하고 아껴야 한다.”고 ‘충고’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4) 호남 첫 자립교회 목포 양동교회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4) 호남 첫 자립교회 목포 양동교회

    멀리 유달산이 바라보이는 전남 목포의 구시가지인 양동 127 언덕배기에 오똑하니 서있는 석조건물 양동교회(담임 목사 정기대·등록문화재 제114호).1910년 신자들이 유달산의 돌을 옮겨다 세운 호남지역 최초의 자립교회다. 개항기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 전진기지로 부각된 목포에서도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한 호남의 중심적인 신앙유산. 지금은 목포 신시가지가 번성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도 자연스레 옮겨갔지만 100여년간 원래 자리에서 옛 모습을 잃지 않은 채 복음을 전해온 양동교회의 신앙적 자부심은 여전하다. 개항기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목포에 기독교 신앙의 씨앗을 뿌린 것도 역시 선교사였다.‘양동교회 100년사’ 등 기록에 따르면 1893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 소속 선교사 몇몇이 호남지역 선교기지를 낙점하기 위해 군산 무안반도 등지를 오가며 전도활동을 한 것이 이 지역 개신교 전파의 시초다. 남장로회 선교부는 당시 들불처럼 번진 동학혁명의 기세에 잠시 활동을 멈췄지만 세상이 안정되면서 전남 나주를 선교기지로 만들기 위해 배유지·하위렴 목사를 파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주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세력이 강했던 곳. 당연히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닥쳤고 선교사들이 나주 신앙터 건립을 위해 사들였던 부지를 팔아치우고 옮겨온 곳이 바로 목포다. 당시 목포에는 이미 바깥에서 들어온 신자들이 퍼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활동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897년 지금의 양동교회 자리인 만복동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양동교회의 시작이다.1년 만에 신자가 30여명이나 생겨났으며 1906년에는 당회를 구성하면서 신자가 200여명으로 늘었다. 신앙의 씨앗을 뿌린 배유지 선교사는 1905년 광주로 떠나 양동교회의 건립은 보지 못했다. 지금의 양동교회 건물을 세운 것은 1909년 당회장으로 청빙된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신학교 졸업생 윤명식 목사. 조선인 목사가 담임 목사를 맡은 것은 당시 한국 전체에서 네번째, 호남지방에선 처음이었다. 윤 목사는 당시 돈 7000원을 들여 그 이듬해 마침내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106평 규모의 교회를 세워놓았다. 신앙의 씨앗은 미국인 선교사가 뿌렸지만 교회는 한국인 목사와 신자들이 직접 올려세운 호남지역 최초의 자립교회인 것이다. 교회 본당 건물의 주춧돌과 외벽 석재들은 모두 교인들이 유달산에서 직접 날라다 썼다고 한다. 교회에 들어서면 정면 오른쪽에 ‘이곳은 목포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맨 처음 터’라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1986년 처음으로 목포지역 교회가 모두 모인 가운데 드린 부활절 연합예배후 선교100주년 기념으로 세운 선교기념비다. 함석 지붕을 인 교회 본당은 원래 사방의 크기가 똑같은 정방형으로 세워졌으나 1982년 교회 정문 앞에 있던 종각을 헐고 본당 정면에 종탑을 들이는 바람에 앞쪽 공간이 조금 늘어나 125평의 규모가 되었다. 종탑 머릿돌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성경(이사야 56장)구절이 새겨져 있다. 본당 출입문도 원래는 양측에 두 개, 정면에 두 개가 있었는데 종탑을 세우면서 지금은 세 개만 남아있다. 네 개의 문을 만든 것은 남녀 신자들이 각각 다른 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이 출입문의 위쪽 부분이 모두 태극 문양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등나무 넝쿨이 태극 문양을 가리는 바람에 일제 경찰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신자들은 귀띔한다. 당시 교회를 세운 목사와 신자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는 신자는 300명 정도. 양동에서 대를 이어 사는 고령층 교인들이 많지만 신앙처를 바꾸지 않은 채 오래도록 적을 두고 있는 인근 지역의 신자도 상당수에 이른다. 신자 수와 교세를 감안할 때 목포 지역 350개 교회 가운데 차지하는 위상은 20위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양동교회 제21대 담임 정기대(44) 목사는 “초기와 달리 양동교회의 역할이 분산됐지만 목포 주민들과 교인들 사이에선 한국인 목사를 담임으로 모신 호남 최초의 자립교회이자 신앙 중심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목포의 3·1운동… 그 중심에 선 교인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 목포에서도 20일과 4월 8·9일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가운데 4월8일의 이른바 ‘4·8 만세운동’은 목포의 3·1운동으로 불리며, 이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양동교회가 있었다. 당시 청년·시민들의 시위 움직임에 호흡을 맞춰 3월1일 이전부터 별도의 만세시위운동을 준비해온 기독교인들은 바로 양동교회의 주요 신자들. 장로였던 곽우영을 비롯해 집사 서기견·서화일, 정명여학교(양동교회가 세운 미션스쿨) 한문교사였던 강석봉이 그들이다. 당시 매일신보 등 기사에 따르면 정명여학교 학생들을 동원한 기독교인들은 이날 새벽부터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집집마다 돌린 뒤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워 시가지에서 일제히 시위를 시작했다. 시가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뒤덮였고 시위에서 체포된 80여명이 경찰서에 끌려가 심한 구타와 고문을 겪었다. 특히 양동교회 집사 서기견은 시위 현장에서 일경의 칼에 맞은 상처와 혹독한 고문 탓에 출감 직후 사망했다. 검거된 시위자 중 40명이 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1∼3년의 징역을 언도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일 오후 1시15분쯤에 목포 창평정 근처에서 별안간 4명의 야소교학교 여생도가 몰려나오며 손에 한국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것을 경관이 잡아 본서로 인치하였는데….”(4월11일자 매일신보)/“8일밤에 야소교 경영의 여학교 졸업생 약 40명이 운동을 개시하였으나 관헌이 출장하여 제지하고 주모자를 잡았다더라.”(4월12일자)/“목포는 지난 8일 이래로 불온한 형세가 되어 각 상점은 오전 중에 철시하고 그 이튿날 9일에도 오전중 폐점하였는데, 양일간에 관헌의 활동으로 선동자 20여명을 포박하고 일변 군대가 오는 등….”(4월14일자) 특히 20일자 기사는 “금월 8일 이래로 소요사건에 관계된 남궁혁·김영주·곽우영·서화일·배치문…외 32명은 경찰서 취조를 마치고 17일에 검사국으로 넘어왔는데, 당일은 조선인 군중이 약 1000명이나 재판소에 모여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검사국 취조를 마치고 감옥으로 넘어갈 때에는 울음소리가 자자하며 일시 목불인견의 비극을 이루었더라….”라고 기록해 당시 시위사건과 관련한 목포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양동교회에 가해진 일제의 탄압과 그로 인한 교인·가족들의 희생과 고난도 당연히 비례했다.
  • [열린세상]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언론윤리의 핵심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이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취재보도 수칙이다. 그러나 사실을 보도하는 이 세상 어느 기자도 특정 사건에 대하여 “이것이 사실이다.” 하고 단정해 말할 수 없다. 기자가 한정된 시간에 사실의 모든 면을 총체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자는 사실이라는 코끼리 앞에서 늘 장님 신세가 된다. 무엇이 사실인가? 이에 관하여 명답을 내놓은 기자가 워터게이트 취재로 필명을 얻은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다. 그는 재판정에서 판사가 한 탐사보도 내용에 대해 사실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그 기사가 “사실에 관한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이라고 답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기자가 확보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쓴 기사는 사실로 간주해야 한다. 사실이란 안팎으로 상충하는 요인을 아우르고 있다. 내적으로는 사실 자체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외적으로는 그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기자는 이런 내외적 요소를 최대한 배려하여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우드워드 기자의 기준을 따르자면, 그렇게 할 때 기자는 사실에 관한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시청취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보도해야 하는 취재보도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뜨거운 정치 쟁점이 된 적이 있다. 보안법은 기본권을 제약할 개연성을 안고 있다. 그 가능성을 거증하는 예는 우리 현대사에 수두룩하게 많다. 보안법이 폐기된다면 국기를 흔드는 일이 발생할 개연성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각론으로 들어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배려한 절충점을 찾아내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폐기론이나 고수론의 한편에 서서 반대편을 보수 골통이라거나 좌파 용공으로 딱지 붙이기(name calling)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편향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FTA 문제나 전시작전권 문제 역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두 문제가 다 총론적으로는 긍정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매우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총론이 아니라 각론으로 들어가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여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공론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총론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서 다른 편에 대해 극언을 불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초기에 언론이 정파성에 충실함으로써 고정 독자를 확보하던 정론지시대가 있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을 남긴 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자기 친구더러 자기 정파에 충직한 신문을 만들도록 권해 조그만 신문이 경영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정론지가 판을 쳤다. 이런 정파상업주의 하에서 사실은 왜곡될 대로 왜곡되었다. 우리 언론은 지금 선진국에서는 이미 박물관에 처박힌 그 정파상업주의로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있다.“이제는 은폐의 종말이 왔다. 일방적인 해석의 종말이 왔다. 이 기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할까 불리할까 생각하며 기사를 쓰는 시대의 종말이 왔다.” 뉴욕 트리뷴의 화이트 리드(White Reid)가 한 이 말을 우리 기자가 외칠 때 비로소 우리 저널리즘도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 “풀뿌리형 시민운동 아쉽다”

    “공공 정책에서만 통한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초라한 성적표다.1990년대 민주화의 진전과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민중운동’을 대체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활화산처럼 터져나온 것이 시민운동이다. 그러나 조사결과 아직은 제대로 터를 잡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당연하다는 말도 들린다.‘시민사회론’ 자체가 서구의 경험에 불과한 것일 뿐, 한국에서는 아직 신기루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소장 주성수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가 펴낸 ‘한국시민사회지표’에 따른 것. 제3섹터연구소는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의 의뢰로 지난 3년간 구조·환경·가치·영향 등 네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을 국제적 관점에서 비교·분석했다. 국내 100여개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인력·재정 상황은 물론 설문조사까지 벌였다. 시민사회가 움직일 수 있는 ‘환경’에 대한 평가는 편차가 심했다. 잘 갖춰진 정보통신 인프라와 낮은 문맹률은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집시법·국가보안법, 세법과 기부금품모집규제법 등 법률·제도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시민사회의 ‘구조’도 ‘높은 조직화’ 외에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자발적인 참가자와 기부자 모두 드물었다. 이에 따라 ‘영향’면에서는 공공정책에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생활과 밀착된 서비스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전투적 시민운동’,‘명망가 중심’이라는 비판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시민사회의 ‘가치’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빈곤타파 같은 기초적인 이슈를 떠나 양성평등과 환경보호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좋은 점수를 끌어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정원, 민노당 光州당직자 조사

    국가정보원 광주지부는 2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前) 민주노동당 광주지역 당직자 A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전날 오전 9시쯤 광주 서구 풍암동 아파트에서 체포됐으며, 집 안에서 북한 원전이 수록된 CD와 북한 서적 등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밖에도 광주·전남 청년단체협의회(남청)와 민족민주청년회 등 여러 지역 사회단체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5월 평택 미군기지 시위에 개입한 혐의로 수원지검 평택지청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추적을 받아왔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서울광장] ‘태백산맥’에서 ‘서울1945’까지/황진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태백산맥’에서 ‘서울1945’까지/황진선 논설위원

    어느 날,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국방송(KBS)의 주말 드라마 ‘서울 1945’가 화제가 됐다. 그런데 잠자코 얘기를 듣던 한 선배가 “그런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어?”하고 물었다. 정말 그랬다.‘서울 1945’는 막말을 하자면 ‘빨갱이’들이 주인공이다. 안방극장에서 그동안 좌익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었는가. 소설 ‘태백산맥’이 떠올랐다. 태백산맥 1부(3권)의 초쇄 일자는 1986년 10월이다. 그 무렵, 초년 기자였던 필자는 서울시내 한 경찰서의 기자실에서 A신문의 기자에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상상이 안돼”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 태백산맥을 구해 읽었다. 그런데 과연 그랬다. 좌익인 염상진, 하대치, 정하섭 등도 그들 나름의 좋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다가 스러져간 영혼들이었다.‘빨갱이’에 대한 그런 시선은 그 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작가 조정래 선생이 20년 가까이 이적 표현물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2005년 4월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래도 태백산맥에서는 중도민족주의자인 김범우가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좌익 염상진은 김범우에 비해서는 비중이 떨어졌다. 그런데 ‘서울 1945’에서는 처음부터 광산노동자의 아들인 최운혁(류수영 분)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을 돕고 한국전쟁에서는 인민군 장교로 활동한다. 자유주의자인 이동우(김호진 분)는 이승만을 돕고 국군 장교로 활약하지만 극중 비중이 떨어진다. 단순화하면 태백산맥에서는 중도 민족주의자가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서울 1945’에서는 ‘빨갱이’가 남자 주인공인 것이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서울 1945’는 순항하고 있다. 제작진은 “좌든 우든, 자신이 믿는 이상에 따라 그 시대를 헤쳐나간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은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기 종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004년의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2005년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보훈대상자 인정도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봐야 한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가 지난해 펴낸 ‘한국현대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대목이 있다. 선구회라는 단체에서 해방 후 첫 여론조사를 했는데,‘최고의 인기 지도자’ 중 대통령 후보로는 이승만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인 지도자’와 ‘생존 인물 중 최고의 혁명가’에는 각각 여운형이 1위, 이승만이 2위였다. 김일성과 김규식은 김구·박헌영에 이어 각각 5,6위를 차지했다. 그런 조사에 놀라는 것은 그동안 냉전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전혀 그런 사실을 접해보지도,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운형, 김일성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하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동구권의 붕괴로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다. 우리는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 때문에 왜곡됐던 현대사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되돌아보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과 화해, 통합과 통일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北 직파 간첩 1명 검거

    참여정부 들어 처음으로 북한이 직접 남파한 이른파 ‘직파간첩’이 공안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간첩은 1996∼1997년 수 차례 태국인 행세를 하며 국내에 잠입해 군 레이더기지, 미군부대, 원전 등 이른바 ‘전시 타격목표’를 촬영한 데 이어 최근 필리핀 국적으로 위장해 다시 잠입하다 덜미를 잡혔다.21일 국회 정보위 등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필리핀 국적으로 위장해 지난달 27일 국내에 들어온 남파간첩 정경학(48)을 붙잡아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간첩, 금품수수, 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구속하고 지난 18일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국정원은 그가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달 31일 시내 호텔에서 그를 검거하고 필리핀 여권과 공작금 미화 3188달러, 음어 CD, 신분 위장용 증명서 등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 현지 수사기관은 그의 필리핀 탈락주 주거지에서 카메라와 보고 및 지령 송수신용 컴퓨터, 단파라디오 등을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결과 정경학은 노동당 35호실 소속 공작원으로,1995년 12월 태국에서 현지인으로 국적을 세탁한 뒤 1996년 3월부터 1998년 1월 사이에 3차례 국내에 잠입했으며 이 가운데 1996년 3월과 1997년 6월에 ‘전시 정밀타격을 위한 좌표확인’ 목적 등으로 주요시설을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촬영한 곳은 울진 원전, 천안 성거산 공군 레이더기지, 용산 미8군부대, 국방부·합참청사 등이다. 청와대 촬영도 1996년 3월 두 차례 시도했으나 경비가 삼엄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에는 지난 6월 ‘남조선 장기침투 여건 조성’ 지령과 함께 공작금 1만 달러를 받고 국내 장기 침투 여건을 탐색하기 위해 ‘켈톤’ 명의의 필리핀 여권을 갖고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에 잠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에서 활동할 때 ‘정 선생’으로 불린 그는 1993년 7월부터 동남아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방글라데시, 태국, 중국, 필리핀 사람으로 4차례 국적을 세탁해 오면서 정영학, 정철, 모하메드, 마놋세림, 켈톤 등의 가명을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함남 함주 출신의 그는 1976년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2학년을 중퇴한 뒤 인민군 총정치국 적공국(敵工局)의 사병, 공작원 등을 거쳐 1991년부터 대외정보조사부(현재 35호실) 공작원으로 선발됐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교육을 받고 1993년 7월부터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활동해 왔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남한 책 북녘서도 나온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남한의 책이 북한에서도 정식 출간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장기수 출신 통일운동가 최선웅(64)씨는 14일 베이징 시내 한 호텔에서 북한의 국가출판국 관계자 등 북측 인사 3명과 만나 자신의 작품 4권에 대한 출판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국제관례 따라 인세 지불 최씨에 따르면 북측과 두 차례에 걸친 접촉을 통해 계약내용에 합의, 중국측 대리인을 통해 계약서에 서명했다. 정식 출판 계약은 조만간 평양에서 체결되며, 책은 이로부터 2개월 뒤에 출간돼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북측의 평양출판사는 매권당 초판 5000부씩 찍고 인세는 국제관례(판매가격의 3%)에 따라 저자에게 지불하기로 했다. 북한에서 출판될 최씨의 작품은 2003년 남한의 ‘책 만드는 공장’에서 출간한 자전 소설 ‘해 뜨면 돌아가리라’와 단편소설과 수필 등을 묶은 ‘통일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평론집 ‘천기를 움직이는 사람들’ 등이다. 새로 엮은 시집 ‘우주 바깥에서 좁쌀만한 지구를 보다’도 포함됐다. 북한측은 앞서 2003년부터 2차례에 걸쳐 평양민족출판사를 통해 최씨에게 팩시밀리 전문을 보내 최씨의 저서 3권의 출간 의사를 전해왔으나 남한 당국의 불허로 미뤄져 오다 지난해 광복절을 기해 통일부가 전격 승인하면서 출판계약이 추진됐다.●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1년 복역 최씨는 1967년 일본을 통해 북한을 방문해 7개월간 머물면서 사회민주주의청년연합 활동을 한 혐의로 10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소 이후에도 특별사동의 장기수들에 대한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책을 쓰려다 발각돼 1986년 재수감된 뒤 1996년 출소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1년을 복역했다.jj@seoul.co.kr
  • [씨줄날줄] 혁명열사릉/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역대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길은 늘 조심스러웠다. 호찌민 묘소 방문과 관련된 의전 때문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방문했으나 호찌민 묘소를 들르지 않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걸음 나아가 묘소 입구에서 헌화했다. 금기가 깨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2004년. 노 대통령은 헌화에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신이 안치된 2층까지 들러 묵념했다. 금기의 영역이 한발 한발 풀려 나간 것이다.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길은 화제였다. 올브라이트는 첫 공식일정으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 교전 당사국이고 수만명의 군인을 남쪽에 배치해 놓고 있는 관계를 생각하면 올브라이트의 걸음은 파격이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도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직 남쪽에선 파격이 때로 ‘죄’가 된다. 지난 5월 평양을 방문한 노동계 일부 관계자들이 혁명열사릉을 참배했다.3개월의 뜸을 들인 끝에 통일부는 이들에게 1개월간 방북 금지라는 행정제재를 내렸다.‘성지’방문으로 처벌받는 것은 처음이다. 참배자들에게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의 발동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혁명열사릉은 금수산기념궁전, 애국열사릉과 함께 북한의 3대 ‘성지’이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이들의 행위를 경솔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쉽게 예상되는 일이다. 한데 궁금하다. 금강산 관광객을 빼고 한해 8만명이 방북하는데 다 조사해서 처벌할 수 있을까. 통일부 관계자는 일일이 확인할 만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며, 방북자가 성지에 갔다고 보고서를 제출한 예는 아직 없단다. 실효성이 꽝인 셈이다. 방북 1개월 금지 정도로 의미있는 제재가 되는지, 참배가 국가안보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위협하는지도 궁금하다. 연간 8만명의 교류시대에 ‘성지’방문은 죄를 물을 만한 파격도, 북한체제에 대한 충성 맹세도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존중이거나 한발씩 다가가면 허물어지고 말 우리 마음 속의 금기일 뿐이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北열사릉 참관’ 남북관계 쟁점될듯

    참관지 문제가 남북관계에서 핫 이슈로 떠오를 것 같다. 국내 노동단체 방북단 일부가 북한의 혁명열사릉을 참관한 사실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방문을 제한하고 있는 북측 참관지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혁명열사릉, 신미리 애국 열사릉 등 세곳이다. 북측은 지난달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쌀·비료 지원과 함께 제시한 네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가 참관지 자유방문일 정도로 참관지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8·15 행사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했고, 올해 광주 6·15 행사때는 국립 6·15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상호 참관하자는 무언의 요구였던 셈이다. 이번 혁명열사릉 참배의 첫번째 논란은 통일부의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점이다. 당국자는 “통일부 직원이 현장에서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방북 목적 이외의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주도적으로 참배한 4명에 대해 1개월 방북금지 조치를 취하고 남북협력기금 지원 규모를 축소한 정도의 조치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일고 있다. 둘째로는 혁명열사릉 참배자에 대한 사법처리다. 국가정보원은 혁명열사릉을 참배하고,4명은 헌화한 점을 놓고 국가보안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가 애국열사릉 방명록에 서명한 일이나, 강정구 당시 동국대 교수가 2001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의 생가를 방문한 일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단순한 참관에 국보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혁명열사릉 참관에 제재를 가한 것은 현재의 남북 교류 수준에 걸맞지 않은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檢 “국정원 자체조사 지켜볼 것”

    국내 노동단체 방북단이 북한 혁명열사릉을 참관한 데 대해 검찰은 일단 국가정보원의 자체 조사를 지켜 보고 관련자 처벌 여부 등을 정하겠다고 4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안창호 2차장검사는 “국정원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는 그 다음에 판단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혁명열사릉 참관이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이다. 북한의 국립묘지격인 혁명열사릉은 체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일종의 성지로 우리 사회에서 방문 자체가 금기시돼 온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노동계 인사들의 참관이 수동적인 것인지 능동적인 것인지, 북한을 찬양할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앞서 1998년 검찰이 ‘김일성 주석의 영생을 빈다.’는 내용으로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을 쓴 문규현 신부를 찬양·고무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무죄가 선고된 적이 있다. 반면 2001년 만경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라고 쓴 혐의로 기소된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됐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미사일’ 꺼내자 회담테이블 접어

    ●남북관계 어디로 가나 ‘혹시나’ 하던 장관급 회담은 ‘역시나’로 끝났다. 남북은 미사일 발사사태와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의견을 하나도 진전시키지 못한 채 장관급 회담을 서둘러 끝내야 했다. 남북은 회담에서 서로 다른 얘기만 늘어놓는 동상이몽을 보여줬다. 남측은 미사일사태 해결과 6자회담 복귀를 강조했으나, 북측은 당초 예상했던 대로 회담을 정치선전의 장으로 활용했다. 미사일·6자회담에 대해서는 무시전략을 펴면서 북측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의 정치공세와 쌀 50만t 지원을 요구했다. 나아가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도 도모해 준다는 터무니없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사상을 거론했다. 특히 남북은 헤어지면서 상호 비방하는 감정싸움을 드러내 남북관계 전망은 앞으로 상당히 어두워졌다. 북측은 오후 2시30분 종결회의를 하면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성명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은 결코 군사회담이나 6자회담이 아니라면서 남측이 한정했던 미사일·6자회담이란 의제에 불만을 표시했다. 성명은 나아가 “6·15 공동선언의 이념을 저버리고 동족을 적대시하며 비이성적인 태도로 이번 회담을 무산시킨 남측의 처사를 엄정하게 계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측은 이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장관급 회담은 하지 않으니 못한 회담이 된 셈이다. ●최소 기대치에도 못미친 회담 정부는 당초에 회담의 최고 기대치는 6자회담 복귀 선언, 최소 기대치를 차기 회담 일정 합의로 세웠다. 남북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게 장관급 회담을 하게 된 이유였지만 차기 일정합의도 못하는 등 최소 기대치도 거두지 못했다. 북측은 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리의 언급에 “군부가 하는 일인데….”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애초부터 미사일·6자회담 문제를 다루기에는 부적절한 회담이었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 내의 논란 끝에 개최된 장관급 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관계장관 회의에서 반기문 외교·윤광웅 국방 장관의 회담 불가론을 뒤로 하고 회담을 밀어붙인 이종석 장관은 취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실제로 미사일발사를 단호하게 따지겠다던 이 장관은 실제 회담에서는 축구장 반칙 정도에 빚대는 우회적인 언급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장관급회담에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던 미국에도 회담의 결과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도 북한 설득에 힘겨운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의욕만 앞세워 회담을 밀어붙이다가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부산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北6자복귀 외교노력 무산

    北6자복귀 외교노력 무산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 사흘째인 13일 남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태·6자회담 복귀에 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회담을 당초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마쳤다. 북 대표단은 이날 오후 김해공항을 출발해 평양으로 돌아갔다. 회담이 조기에 종결된 것은 남북 대화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남북은 차기 장관급 회담 일정을 포함한 공동보도문을 내지 못했으며, 회담에서 양측의 이견이 하나도 좁혀지지 않은 상태로 사실상 결렬됐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는 앞으로 상당기간 경색국면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측은 이날 수석대표 접촉을 갖자고 제의해 회담을 조기에 종결짓자고 제의했다. 북측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강조하면서 쌀 50만t 지원을 거듭 강하게 요구했으나, 우리는 미사일 상황이 타개되기 전에는 논의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북측은 평양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성명을 내고 “북남상급(장관급)회담은 결코 군사회담이 아니며 6자회담은 더욱 아니다.”며 우리측이 미사일 문제를 의제로 제기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회담 조기종결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다. 특히 “남측은 회담을 무산시키고 북남관계에 예측할 수 없는 파국적 후과(결과)가 발생하게 만든 데 대해 민족 앞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북측이 사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 장관은 미사일 발사 사태의 심각성과 6자회담에 조속하게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지도부에 그대로 전달하라고 북측에 강조했다. 장관급 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을 채택하지 못한 것은 2001년 11월 제6차 회담에 이어 두 번째다. 부산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설] 北 미사일이 南 안전 지켜준다니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제 장관급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이 보인 후안무치한 자세는 또 한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억지궤변이나 늘어놓는 상대와 내일까지 회담을 계속해야 하는지조차 의문이다. 동해 앞바다로 쏴 올린 미사일은 제쳐둔 채 선군정치나 선전하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쌀을 지원해 달라고 하는 그 뻔뻔함은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어제 첫 전체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은 성지 참관제한 철폐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했다. 곁들여 쌀 50만t과 원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틈만 나면 내놓는 단골메뉴고 염치 없는 손벌리기다. 북측 주장만 보면 미사일은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리의 엄중한 항의에 북측은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이 밝힌 대로 이해하라.”고 일축했다. 미사일 발사와 6자회담 중단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긴 발언을 말한다. 더는 할 말도, 들을 말도 없다는 투다. 그러면서 북측은 자신들의 선군(先軍)이 남측 안전을 도모해주고 있으며, 남측의 많은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군정치가 뭔가. 그들 표현을 빌리면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나가는 정치방식’이다. 군을 앞세워 안보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자는 국정지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기반이자, 군비 확충의 근거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핵심요소다. 그런데도 남측이 자신들의 무력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식의 언어도단의 망발을 늘어놓은 것이다. 남북장관급회담 하나로 미사일 사태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북측은 자신들의 도발적 행위로 주변국 모두가 어려움에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풀기 위한 성실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강경대응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남측 정부의 노력을 헤아려야 한다. 남은 기간이라도 북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당부한다.
  • 北 “先軍이 南안정 도모” 궤변

    北 “先軍이 南안정 도모” 궤변

    남북 장관급회담 이틀째인 12일 우리측은 북측에 6자회담 복귀와 미사일 사태 해결을 강력하게 촉구했으나 북측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측은 대신 내년부터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요구하는 ‘엉뚱한’ 정치공세를 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날 누리마루 아태경제협력체(APEC) 하우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대응은 더욱 엄중해질 것”이라면서 지체없는 6자회담 복귀를 강하게 촉구했다고 남측 대변인인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실장이 전했다. 이 장관은 “현재의 상황이 추가로 악화돼서는 안 된다.”고 추가 미사일 발사 자제를 촉구했다. 북측은 이에 대해 미사일 발사는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한 훈련이라고 주장했던 외무성 대변인 담화대로 이해해 달라면서 6자회담 복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는 “정세 변화의 영향을 받지 말고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해 정세를 위협하는 제반 요인을 제거하자.”면서 공동선언 7돌이 되는 내년부터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완전히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정도 도모해 준다.”는 엉뚱한 논리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이념인 이른바 선군정치를 들고 나와 파문을 예고했다. 부산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탐사보도] 총학생회장 145명 어제와 오늘 들여다보니

    [탐사보도] 총학생회장 145명 어제와 오늘 들여다보니

    1989년 6월30일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4학년 임수경씨가 서울을 출발, 도쿄·베를린을 거쳐 북한 평양에 도착했다.‘통일의 꽃’으로 불리게 될 임씨를 방북시킨 주역은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임종석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도 전대협 출신들 사이에 ‘꺼지지 않는 불멸의 위훈’으로 일컬어진다. 그때의 임종석은 어느덧 16·17대 재선 의원이 됐다. 독재정권에 항거한 학생운동이 우리 사회 민주와 진보의 초석이 됐다는 데 물음표를 달 사람은 없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총·부총학생회장들은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서울지역 8개 대학 역대 총·부총학생회장 145명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봤다. ●4명중 1명꼴로 정치에 투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41명·28.3%)을 제외하면 정치권에 투신한 사람이 29명(20.0%)으로 가장 많았다. 김영춘·송영길·이인영·우상호·오영식·이기우·임종석(이상 열린우리당)·고진화(한나라당)씨 등 8명이 국회의원이었다. 이들이 정당의 ‘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우상호 의원이 열린우리당 대변인,88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김범진씨가 한나라당 부대변인이다.94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박용진씨는 민주노동당 대변인이다. 청와대와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7명으로 파악됐다. 신분상으로는 공무원이지만 사실상 정치인이라고 볼 때 정치인은 4명 중 1명꼴인 24.8%(36명)으로 늘어난다. 청와대 전·현 직원 중 김병규·김만수·권오중·오승록씨가 연세대, 여택수씨가 고려대, 강병원씨가 서울대 출신이다. ●젊은 세대들은 민노당과 시민단체 최소 30대 후반인 전대협 세대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다수 포함된 반면 비교적 젊은 한총련·외환위기(IMF 관리체제) 이후 세대는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자유주의연대·열린사회시민연합·진보교육연구소·민주언론시민연합·여성민우회·서울희망나눔센터 등)에 많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9명이었다. 서울대 출신 6명, 성균관대·연세대·한양대 출신 각 1명씩이다.8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정우씨는 사법·행정·외무 등 ‘고시 3관왕’으로 유명하다. 13명은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얼마 전 부도가 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휴대전화 제조업체 VK모바일의 사장은 91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철상씨다. 인터넷게임 개발업체 네오플 대표도 200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허민씨다. 카메라폰 플래시를 만드는 하이프롬의 김종식(한양대) 대표는 91년 전대협 5기 의장이었다.10명은 유학 중이거나 대학원 등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변리사·치과의사·한의사·소설가·영화제작PD 등 전문직도 있었다. 10명 중 7명은 ‘별’을 달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징역 1년·집행유예 2년형이 41.4%로 가장 많았고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2년 6월이 8.1%,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이 6.1%였다. 징역 2년 이상의 실형도 8.1%였다.
  • “유전무죄, 법관으로서 죄송”

    “유전무죄, 법관으로서 죄송”

    국회는 28일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대법관에 제청된 전수안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도덕성과 자질 등을 검증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전 후보자가 지난해 10월 참여연대가 펴내는 ‘사법감시’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을 촉구’한 점 등에 대해 질의가 집중됐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 등은 후보자가 기고문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 등을 비판한 데 대해 ‘그것이 존재한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전 후보자는 “그것이 완전 허구라고 말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선 법관으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로비 공화국’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전 후보자는 “명백히 국가 기본질서에 위험이 현존하는 경우에 한정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위헌이 아니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그 정도라면 (국회)의원들이 본래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본다.”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후보자는 ‘전체 법관의 17%인 여성 법관의 양형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다.’는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의 질의에 대해선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절반은 남성이니 법관 절반은 여성인 상태에서 나온 판결이 공정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전 후보자는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과 관련,“병역의무를 대체하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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