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아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해사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무용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187
  • 이승윤 경제팀의 컬러와 과제

    ◎“성장속 형평추구”… 「경제항로」 방향선회/수출ㆍ투자 활성화 대책 적극 추진할듯/정책자금 확대ㆍ대기업규제 완화 예상/물가안정ㆍ부동산 투기 봉쇄 여부가 성패의 변수 대폭적인 개각과 함께 이승윤경제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자당출신인 이의원의 부총리기용은 개혁무드의 퇴조와 함께 정책기조가 성장쪽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당정을 포함한 현재의 여권내부에서 대표적인 성장론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하는 이승윤경제팀의 성격은 신임 이부총리의 개인적 성향이라는 측면과 3ㆍ17개각이 갖는 의미가 포괄적으로 파악돼야 할 것 같다. 이번 개각은 과거와는 달리 경제운용 기조를 둘러싼 당정간의 정책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기에 이뤄졌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책기조의 대전환 즉 전임 조순팀은 경기부양책의 사용문제와 관련,안정기조를 해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반면,신임 이부총리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으로 맞서왔다. 조부총리는 재임기간중 계층간의 불형평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나 이부총리는 성급한 개혁이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려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따라서 이부총리의 기용은 「안정론」과 「성장론」으로 대비되는 정책논쟁이 「성장론」의 채택으로 일단락됐음을 의미하고 있다. 경제기획원ㆍ재무ㆍ상공ㆍ농림수산ㆍ동자부 등 주요 경제부처와 청와대경제수석이 한꺼번에 교체된 것도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기에도 정책의 계속성 유지라는 차원에서 일부 핵심경제부처의 장관들이 유임됐던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책기조의 전면적인 수정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이승윤경제팀 안에는 이부총리 자신을 비롯,강보성농수산,이희일동자 등 3명의 현역의원들이 금배지를 단 채 입각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양상이다. 이는 앞으로의 경제정책 결정과정에 거대여당이 된 민자당의 입김이 강화될 것임을 말해준다. 조순경제팀은 자신들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할만한 믿음직한 정치세력을 갖지 못했으며 이것이 개혁정책이 주춤거린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에 비한다면 이승윤경제팀은 매우 유리한 정치적 환경에서 출범하는 셈이다. 새 경제팀은 성장정책을 지지해줄 매우 강력하고 확고한 정치적 후견인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입김 강화될 듯 이승윤경제팀이 내걸 경제정책의 방향이 「안정ㆍ개혁」에서 「성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그의 평소지론인 성장론이 입각후 어떤 내용의 성장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부총리는 이에 대해 「물에 빠진 자식을 건지는 심정」으로 수출ㆍ투자 활성화를 통한 성장촉진에 최우선적으로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표현의 강도로 보아 단기간 안에 경기부양효과를 가시화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감지할 수 있다. 경제기획원은 이부총리의 기용이 확실시된 금주초부터 그의 성장지향적인 성향에 맞추어 경기부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을 중심으로 한 보고자료를 준비해두고 있다. 이 보고자료에는 금리인하,각종 정책자금 확대,세계잉여금등 재정부문 지원확대,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완화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상당부분이 투자와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희갑수석에서 김종인수석으로의 청와대경제수석의 교체도 부총리경질과 마찬가지로 개혁정책의 퇴조및 성장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김수석은 70년대 이부총리와 함께 서강대에서 교수생활을 한 적이 있어 서강학파 출신의 성장론자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소 경제안정이 위협당하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이부총리의 성장정책 추진에 좋은 팀웍을 이룰 수 있는 인물로 보인다. 김수석은 성장론자이기는 하지만 재정의 사회개발및 복지기능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부총리와 구분지어 복지론자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김수석은 실제로 5공화국에서 민정당내의 정책파트를 맡아 최저임금제ㆍ의료보험제ㆍ국민연금제등 복지관련 시책을 입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새로운 경제팀을 이끌어갈 이부총리­김수석라인은 성장추구에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면서 복지시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성장이나 복지 모두 금융정책면에서는 팽창ㆍ확대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안정기조는 심대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복지정책 지속 추진 경제기획원 관계자들은 현재의 안정기조를 유지해 나가려면 금융과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해 나갈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새 경제팀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물가ㆍ부동산투기 등 경제안정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새 경제팀의 성장정책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측면에서 정영의재무장관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임 이규성장관에 비해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 유형이라기 보다는 유연한 성향의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어 그에게 긴축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박필수상공장관은 지난 70년대에 상공부 상역차관보로서 3공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개혁무드의 퇴조와 함께 출범한 새 경제팀은 당장 장기불황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소생시켜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정책수단은 제한돼 있고 경제의 밑바탕에 깔린 성장잠재력은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단기간에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기는 심히 어려운 일이다. ○성장책 구체화 관심 특히 새 경제팀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금융실명제 추진에 관한 문제이다. 이부총리가 민정당정책위의장 시절부터 실명제의 실시연기론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그의 입각이 결정되자마자 실명제는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명제의 실시 를 연기할 경우 민자당과 노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미칠 어떤 영향을 감안한다면 쉽게 실시연기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금융실명제가 예정대로 오는 91년 1월부터 시행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현저히 완화될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새 경제팀이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는 금융실명제 문제를 어떻게 결론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 외언내언

    공산주의요 민주주의요 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잘 살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방법이란 잘못되었음이 판명될 경우 빨리 고치거나 바꿀수록 좋은 법. 공산주의가 좋다고 제일 먼저 채택하고 남에게 강요까지 한 소련이 뒤늦게 깨닫고 서둘러 고치고 바꾸는 일에 정신이 없는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도 소련의 강요와 지원으로 공산주의를 시작한 중국과 북한 쿠바 등이 유독 그 방법을 결사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소련개혁의 최대 장애요인은 공산주의로 덕을 보아온 노멘클라투라라는 이름의 붉은 귀족들이라고 한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그들의 저항이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소련의 붉은 귀족들은 붕괴되고 있는데 북한의 붉은 귀족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작년 가을 한국을 다녀간 소련망명 전북한군부참모총장 이상조씨는 일본 종합잡지 문예춘추(4월호)와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의 북한은 정부도 당도 군대도 모두 김일성의 사설기관이다. 군과경찰을 포함해서 당과 정부기관의 중요직책은 모두 김일선친척ㆍ친지ㆍ심복들이 맡고 있는 거국적 족벌체제로 일종의 「운명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물결의 흐름은 개화 이전엔 중국대륙을 통해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으나 개화 후엔 일본열도를 통해 한반도를 거쳐 중국으로 향했다. 소련ㆍ동유럽의 개혁물결이 몽고에 와서 머물고 있는 사이 일본에서 새 물결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소련ㆍ동유럽물결에 고무된 조총련내의 개혁파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전조총련 중앙조직부 부부장 하수도씨등 조총련계 인사 30여명이 「김일성 독재타도 조국통일촉진 조선인궐기대회」를 오는 5월 중에 개최한다는 것. ◆지난 11일의 준비모임에서 하씨는 『지난 40년간 김일성이 추구해온 것은 민족의 통일도,북한인민의 행복도 아닌 김일성 왕조의 확립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계 한인에 번진 첫 불길로 일본 전역의 조총련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조총련을 태우기 시작한 이같은 불길이 평양으로,북한 전역으로 번질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 「체육복권」 빠르면 하반기 첫선/액면 가격 5백원엔 원칙적 합의

    ◎세부사항 협의… 외은서 판매 대행 빠르면 올 하반기에 체육복권이 선보일 전망이다. 체육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체육기금 조성을 위해 조만간 체육복권을 발행키로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복권금액ㆍ판매방법등 세부사항에 대해 협의중에 있다. 새로 선보일 체육복권은 지난해 3월 국민체육진흥법의 개정에 따라 발행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복권판매는 한국외환은행이 맡게 된다. 아직 체육부장관의 인가가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발행방침과 복권 액면금액(5백원)등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승인이 나더라도 3∼4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초기에는 경기장 등에서 제한적으로 팔다가 판매추이를 보아가며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체육복권이 발행되더라도 초기에는 주택복권과 같이 전국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프로야구나 축구경기장 등에서 판매하고 구입즉시 개봉하면 당첨여부를 알수있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대통령 고르비의 과제 특별기고/이기택(연대교수ㆍ국제정치학)

    ◎“「경제개혁」 속도가 소앞날 좌우”/대서방협력위한 합법적 기반 일단확보/러시아 농노체제 탈피,근대화추진해야/“연방 공중분해”위험도사린 민족문제에도 능동대응 필요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새로운 개정헌법 제127조에 따라 「소련국가」의 「소연방대통령」에 올랐다. 고르바초프가 권력구조를 바꾸고 재편성하는 과정을 보면 과연 능숙한 정치곡예 또는 예술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도을 보는 듯하다. 그는 우선 일당독재의 핵심인 공산당과 고르바초프개혁에 저항하고 보수파가 웅거하고 있는 정치국을 격파하였다. 소련헌법6조가 보장하던 공산당의 권력핵인 「지도적 역할」,즉 일당독재권력을 대통령에게 이동시켰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은 이미 미국의 대통령의 권한과 미국의회의 권한,그리고 프랑스의 비상 대권을 합친것에 버금간다. 그는 소련의 권력적 상징과 실질상의 권력자가 되었다. 이번 권력구조개편은 서방측의 소련접근에 가장 큰 장애였던 고르바초프의 실각의 불안을 일단씻고 고르바초프가 서방과의 협력을 할수 있는 권력적인「적법성」의 기반을 확고히 과시하게됐다는 점이 그 핵심이다. 고르바초프의 최대의 적은 서방이 아니었다. 그의 적은 소련내의 공산당통치의 타성에 젖은 특권계급이라는 보수파였으며 스탈린36년과 브레즈네프20년의 통치에서 인간성을 잃고 공산통치의 최면에 걸려있는 소련인민대중이었다. 또하나의 적은 소련의 돌이킬수 없게 보이는 경제적 낙후인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인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내외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고르바초프권력은 이제 소련연방을 공중분해시킬 위험성이 있는 민족문제와 고르바초프이래 도리어 후퇴한 소련인민의 생활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하는 경제개혁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이미 소련의 중앙아시아의 소련회교도 민족문제나 코카서스 민족문제,나아가서 발트3국문제등은 소연방분해의 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유는 소연방의 민족문제가 이미 국내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로 확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때에 중앙아시아회교도에 속하는 소련군부대를 일차 투입하였으나 이들은 싸움할 생각은 않고 코란성경책을 사가지고 고향갈 생각만 하였기에 2주만에 그지역의 종족이 아닌 타타르족으로 신속히 교체하였던 것이 그 예였다. 국경을 트고 종족적으로 통합하려는 소연방문제는 지금은 국제적인 영역으로 확산돼 가는 소연방의 위기인 것이다. 소련이 민족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리투아니아에 서 보듯이 공산당과 정치국의 붕괴로 권력적인 연방이탈을 막을 권력적인 수단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상대권을 갖고 연방이탈을 막을 합법적인 수단을 갖게된 것이다. 대통령이 된 고르바초프는 이제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헌법127조2항)을 갖고 있는 이상 연방이탈을 대내차원에서 억지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에 완강한 저항세력이었던 특권계급을 억압하고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력이 생겼음은 말할필요도 없다. 보수파의 집결체이었던 공산당에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기때문이다. 인민이 말을 안들을 때에는 특히 민족문제등에서 의견의 차이가 심각할때에는 최고회의의 개선(헌법127조2항16)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최고회의를 해산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권력재편성도 민족문제와 함께 본격적인 주문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인 소련의 경제재편성에 있는 것이다. 이미 고르바초프는 이를 위한 소유권법과 토지기본법을 지난 6일 통과시켰다. 소유권법은 거의 자본주의체제의 사유재산제도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소련내의 외국인의 소유도 인정(소유권법 제4조1항)하고 있기까지 하다. 토지기본법에서는 종신점유물로 상속(토지기본법 제5조)도 허용하고 있다. 1917년볼셰비키혁명이래 가장혁명적인 고르바초프의 권력재편성을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라는 전통적 국가회복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직면하는 러시아적 문제의 핵심은 차르때나 볼셰비키소비에트시대나 지금이나 러시아의 농노체제로부터 어떻게 근대화를 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의 기반은 소련의 군부에 의해서 전복될수 없다. 그 까닭은 단순히 고르바초프의 동생이 군의 핵심간부로서 KGB와 군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이제 소련의 군부가 미국의 우주방위계획(SDI)을 따라잡기 위해 군사적이며 경제적 경쟁을 다시 한번 할 경우 소련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점과 그렇게 될 경우 소련의 군사력은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완전히 3등 군사국가로 전락할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권력과 체제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데 고르바초프의 권력장악이 이번과 같이 문제없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근대화라는 측면에서는 이번과 같은 권력 기반의 강화와 준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거의 희망이 없다. 오늘의 소련경제 어디를 보아도 희망적인 돌파구는 없다. 소련탄광노동자에게 몸을 씻을 비누가 없으며 시장에서 돌연 그 많은 부탄가스가 사라지는 것이 소련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서방 즉 미국 서유럽 일본등에 기대를 절대적으로 걸고 있는이유이며 이번 소련의 근본적인 권력 재편성도 실제에 있어서 서방에 대한 권력적인 대응이라는 점에서 최종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이 권력적인 합법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는 서방에 대한 과시이기도 하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대중노선 강화… 당­인민 결속 도모/중국 6중전회 무얼 남겼나

    ◎경제긴축 완화… 개방정책 추진 재확인/개혁파 등용 전인대서 공개,「강성」탈피 지난 9일 북경에서 개막된 중국 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6차전체회의(6중전회)가 대중노선강화를 골자로 한 7개항의 성명서를 내놓고 12일 막을 내렸다. 중국관영 신화사통신은 이번 회의의 주요의제가 당과 인민의 결속을 다짐하는 것이었으며 강택민총서기등 당고위 간부들은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주의국가 건설과 마르크스 사상교육의 강화를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또 이번 6중전회는 국가경제발전이 최우선의 정책과제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신화사 발표내용은 비록 크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나 북경당국이 소련ㆍ동구국가들의 민주개혁이 주는 충격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경제 여건을 개선,국민들이 보다 잘 살수 있게 하고 「6ㆍ4천안문 사건」으로 실추된 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치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 명백한 반증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현 중국지도층은 과거 모택동주의로 복귀,민중속에서 살고 그들의 환심을 얻도록 부패를 척결하고 봉사정신을 발휘해야만 존립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또 같은 맥락에서 볼때 중국당국은 과거 10년동안 경제개방ㆍ개혁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생활을 개선시켜야만 그들로 부터 지지를 받을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천안문 사건이후 그동안 있었던 주요회의 때마다 조자양 전당총서기와 그가 시도했다는 자산계급 자유화에 대해 맹렬한 비난이 가해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 회의에서는 오히려 지난 78년 제11기 3중전회이후 추진해온 개방ㆍ개혁이 옳은 방향이었음을 확인,주목을 끌고있따. 이는 중국의 현실이 경제개방ㆍ개혁을 주도했던 조전당총서기를 더 이상 가혹하게 몰아 붙일 수 없도록 능동적인 경제정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국민들은 이미 지난 10년동안 개방된 문호를 통해 바깥세상을 어느정도 살필 수 있었고 따라서 경제발전과 삶의 질적향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번 6중전회에서 어떤 구체적인 경제개혁 시책이 결의된 것은 아니다. 다만 7개 성명 내용가운데 「모든 정책은 민주적ㆍ과학적으로 결정하고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집행한다」라고 기본방향만 제시했을 뿐이다. 관측통들은 중국당국이 이번 회의에서 기본방향을 밝히는데 그치고 오는 20일 개막될 전국 인민대표대회(전인대)때 이붕총리의 정부업무 보고를 통해 경제긴축의 완화등 성장을 부추기는 시책내용을 설명하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정치체제의 개혁은 당초 예상됐던 대로 언급되지 않았고 소련ㆍ동구개혁에 대한 논평도 일체 회피했다. 이는 동료사회주의 국가의 민주개혁에 관한 이념논쟁이 자칫 중국국민들에게 공산당 일당전제에 대한 회의와 반발심을 더욱 깊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볼수 있다. 이번에 채택된 7개항 성명이 ▲정책수립 민주화ㆍ인민이익 최우선 ▲당간부ㆍ지도급 인사의 민중접촉 강화 ▲사회주의 민주건설 ▲당내 부정부패 척결 ▲청렴한 당풍확립 ▲기층조직에 대한 봉사 ▲미르크스 사상학습으로 된것만 보아도 중국특유의 사회주의를 강조하는데온 힘을 기울였음을 알수있다. 한편 이번 회의에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요직인사는 공표되지 않고 있으나 국가계획위원회 주임 추가화(저우지아화),광동성장 엽선평(예쉔핑),상해시장 주용기(주룽지)등 3명이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승격,부총리직 등을 맡게 될 것이란 소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일부 관측통은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 등소평이 이들 3명의 요직기용을 주장했지만 강경보수세력의 반대가 워낙 거세 관철되지 않은 것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추등 3명이 개방지향인데 반해 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실각하게 될 도의림부총리등은 중앙통제를 주장하는 강경파의 핵심소장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만큼 어느정도 인사개편의 윤곽이 잡혔더라도 오는 20일 개막되는 전인대에서나 공개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또 지난해 천안문광장 민주화 요구 시위가 4월중순 온건개혁파 호요방전당총서기 장례식을 계기로 발생한 점을 고려,그 이전에 강경파 인사들을 중도파 또는 개혁파로 대체시켜 대내외적인강성 이미지를 순화시킬 가능성이 적잖은 것으로 예측된다 【홍콩=우홍제특파원】
  • 조 부총리,청와대 면담서 무슨얘기 했을까

    ◎「개각뒤의 경제운용 방향」진언 한듯/부총리의 적극 요청따라 6일만에「독대」/“하고 싶은 말 모두 했다” 내용엔 일체 함구 대폭적인 개각임박설이 나도는 가운데 조순부총리가 13일 상오 갑작스레 청와대를 방문,노태우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약 1시간가량 단독면담을 가져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번 개각은 조부총리 자신을 포함한 경제각료 전원교체를 통해 침체된 경제의 분위기 쇄신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개각을 통해 개혁과 안정기조라는 기존 경제정책에 일대 수정이 가해지려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그의 청와대 면담 내용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부총리는 청와대 면담 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과천청사의 집무실로 돌아온 뒤에도 이날의 면담 내용에 관심을 보인 기자들의 면담요청을 사양했다. 그러나 청와대면담 직후 그는 경제기획원 관계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말씀 드렸다』고 말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개각과 관련한 향후 경제운용의 방향설정 문제에 대해 매우 허심탄회한진언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조부총리는 재임기간 동안 평균 보름에 1번 꼴로 청와대 정례면담을 가져 왔다. 정례면담 일정은 보통 청와대일정을 감안해 최소한 3∼4일 전에 청와대측이 결정해 기획원에 통보되며 면담 자리에는 문희갑경제수석이 배석해온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13일의 청와대면담은 그의 가장 가까운 측근도 당일에야 겨우 알았을 만큼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또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조부총리가 지난 7일 이미 한차례의 청와대면담을 통해 경제현황 전반에 관한 보고를 마친 상황에서 조부총리 쪽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해 6일만에 다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난 7일의 청와대면담이 부총리로서의 마지막 공식보고였다면 이날의 청와대면담은 경제현안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비공식 면담인 셈이다. 조부총리는 민자당 출범이후 여당내 일각에서 나타난 개혁의 유보 움직임과 성장우선주의로의 경제정책기조 변화기미에 대해 지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 기획원 관계자들은 조부총리가 이날의 청와대 면담에서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1인당 GNP 1만달러시대의 선진경제에 결코 도달할수 없으며 따라서 당장 충격이 따르더라도 현재의 경제적 불균형ㆍ불공정을 시정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점을 노대통령에게 충분히 설명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그가 경제팀 개각의 내용에 대해 끼어들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우회적인 방법으로 경제팀의 새진용 구성에 이러한 개혁의지가 담겨져야 한다는 진언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획원의 한 핵심간부는 곧 있을 개각의 의미에 대해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매우 첨예하게 대립된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가질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책논쟁의 내용에 대해 조부총리­이규성재무라인으로 이어지는 안정론자와 한승수상공­문청와대 수석및 민자당 정책관계자 라인으로 구성되는 성장론자들간의 경기논쟁과,조부총리­문수석 라인의 개혁추진론과 민자당 정책팀및 업계의 개혁유보요구 사이의 개혁논쟁으로 분석했다. 그는 개각을 통해 경제정책이 수정될 가능성이 농후한상황에서 조부총리가 청와대 면담을 통해 노대통령에게 『인물은 바뀌더라도 정책이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마지막 진언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인구 3백70만중 리투아니아인 80%/오늘의 리투아니아

    ◎단결력 강해 발트3국 독립운동 선도 탈소 독립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이웃 강대국인 독일ㆍ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중세에는 독일의 정복에 저항,폴란드와 연맹하여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4세기에는 현재 백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상당히 장악,통일된 군주국을 형성시켜 나갔으며 14세기에는 중세유럽의 대표적 제국의 하나로까지 성장했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1796년 러시아에 의해 대부분 점령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으며 제1차세계대전중인 1915년 9월부터 전쟁말기까지 독일의 발굽아래 지냈다. 독일군이 철수한뒤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포,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39년 8월23일 히틀러­스탈린의 독소밀약으로 다음해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소연방으로 합병되는 등 끝없는 약소국의 한을 안고 살아왔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은 3백70만 국민가운데 리투아니아인들이 80%를 차지,소연방내의 다른공화국보다 응집력이 강해 단결이잘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내에서 소수집단인 러시아(9%),폴란드(8%),백러시아(2%)인들은 공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마찰 또한 빚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스탈린치하에서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41년 지식인 3만명을 포함,4만5천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된것을 비롯,49년까지 모두 30여만명이 반당분자라는 누명으로 조국을 떠났다. 소련내 리투아니아인들은 3백40만명 정도로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세기말부터 리투아니아인들의 해외이주가 본격화되어 미국과 유럽등지에 약 2백만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조국의 반소ㆍ민족주의운동을 돕고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동질성을 높여주는 또다른 요인은 언어와 종교로,88년 10월 리투아니아의회는 리투아니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톨릭을 신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영토는 6만5천㎢로 한국의 충정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약간 작다. 주산업은 조선ㆍ화학ㆍ제지ㆍ전자ㆍ직물 등이며 감자ㆍ사탕무ㆍ육류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 「정면돌파」의 신호… 정국 난기류/국군조직법 전격통과 의미와 파장

    ◎여론부담 적은 사안부터 처리/투쟁 명분 제공… 타협은 기대난/보안법등 절충 어려운 법안은 연기 가능성 이번 임시국회에서 여야간 3대 쟁점의 하나였던 국군조직법개정안(수정안)이 12일 국방위에서 여권에 의해 「일방통과」됨으로써 거여소야정국에서의 첫대결 양상이 나타났다. 육ㆍ해ㆍ공 3군의 작전지휘체계를 통합,국방참모총장의 단일지휘아래 두도록한 국군조직법개정안은 여야간 그 정치적,법적 해석을 두고 극명한 견해차를 드러내왔었다. 더욱이 이같은 미묘한 사안의 법안이 일방통과됨으로써 그 시각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날 국군조직법개정안의 처리는 그 법안의 내용보다 처리양태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일방통과가 앞으로 국회운영을 비롯한 여야관계의 새 구도 정립의 일환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 광주관계입법,지자제법 등 여야간 정치적 절충이 어려운 쟁점에 대해 상임위나 총무회담을 통해서 1차적으로 타협을 시도해본 뒤 여의치 않을 경우 「표대결」을 강행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번에 국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국군조직법개정안이 여권의 입장에서는 광주관련법이나 지자제선거법ㆍ국가보안법 등 다른 쟁점에 비해 「여론의 부담」이 적은 사안이라는 점도 「강행통과」의 배경설명이 될 수 있다. 다시말해 지금까지 상임위를 통해서 이번의 군구조개편안이 문민통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평민측 반대논리를 충분히 반박했기 때문에 최소한 대국민 이미지손상이라는 역기능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바탕에 깐 시각이다. 이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여권은 남은 회기동안 국가보안법ㆍ지자제법 등 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에 대해서는 표대결을 통한 처리강행보다는 4월 또는 5월임시국회로 이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번 군구조개편안을 둘러싼 야당측의 반대논리는 크게 보아 ▲군의 정치개입가능성 증대로 인한 문민통치의 저해가능성 ▲육군우위에 의한 3군의 균형발전저해 ▲위헌시비등 3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평민당측이 3당통합이후의 정국구도와 관련해 가장목소리를 높여 주장한 대목은 국방참모총장 1인에게 군령권을 집중시킴으로써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이 증대된다는 점이었다. 이에대해 국방부측에서는 국군조직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이나 국방장관의 군정ㆍ군령통할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법등 문민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야당측의 주장은 「기우」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여당측도 5ㆍ16이나 5ㆍ17도 국방참모총장제와 다른 현행의 「자문형 합참의장제」하에 발발했기 때문에 야당측의 논거는 크게 설득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문민통제와 관련,야당측은 이 제도가 장차 내각책임제나 2원집정부제로의 정계개편에 대한 포석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당초 실시시기를 오는 7월1일로 잡았던 것은 현 이종구육군참모총장의 2년임기가 오는 6월30일로 끝난다는 점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제2의 정계개편에 대비한 「위인설관」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었다. 이에대해 국방부측은 『창설시기를 금년7월1일로 산정한 것은 늦어도 90년2월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준비한 창설에 소요되는 기간을 6개월로 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그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 실시시기를 10월1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측이 12일 통과된 수정안에서 실시시기를 오는 10월1일로 명시한 것도 이같은 의혹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또 이같은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국방부측은 평민당측의 의구심을 덜어주기 위해 수방사와 특전사의 작전지휘권을 현행대로 육군참모총장에게 부여하는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명문화하는 양보안을 소위에서 야당측에 제시했고 이 규정은 「합의통과」가 결렬됐음에도 유효할 전망이다. 평민당은 정부측의 국군조직법개정안이 군정(인사권) 군령(작전통제권) 이원주의로 일원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헌법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우선 헌법84조에 「합참의장」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할 군요직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국방부측은 국무위원심의 사항에 들어있는 「합참의장」은 고위직 공무원을 단순히 예시한데 불과해 명칭변경은 위헌이 아니라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들어 반박했다. 그러나 재야일각이나 평민당측의 「열거주의」에 따른 해석과 정부측의 「예시주의」에 따른 법리논쟁은 쉽게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미묘한 문제라는 점에는 국방부측도 내심 수긍하고 있다. 아무튼 국군조직법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은 차치하고 여권은 「합의통과」가 아닌 「기습통과」를 감행함으로써 지자제선거법ㆍ국가보안법ㆍ광주관계법 등 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법안처리를 둘러싸고 야당과의 타협보다는 극한 저항에 직면케 될 「부담」을 안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거여야소 구도하에서 수적으로 절대 약세인 평민당은 이번의 여권의 「일방통행」을 1천만인서명운동등 「장외투쟁」에 대비한 명분쌓기와 지자제선거법등 다른 쟁점에서 여권의 양보를 얻어내는 지렛대등 양면으로 활용할 듯하다.
  • 실업교육 “끝없는 도전이어야 한다”/김종철 덕성여대대우교수(세평)

    최근 문교부는 실업계고교 지원자의 전원 수용시책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실업교육 진흥책을 발표하였다. 95년까지 일반계고교의 일부를 실업계로 개편하여 6만명을 수용하고 실업계고교의 신설및 학급증설을 통해서 6만명을 받으며 도합 12만명에게 실업계고교 교육의 기회를 확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실업계고교 지원자 전원이 수용되는 셈이 될 것이다. ○문교정책의 최대 난제 또한 실업계고교의 실험ㆍ실습 등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을 비롯하여 도합 2천3백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업계고교 교육의 확충과 개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몇가지 중요한 관련 시책도 제시되고 있다. 즉,일반계고교에서의 비진학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과정을 대폭 확대 강화하고 농어촌지역의 공고에도 직업교육과정을 신설 운영하며 전문대학을 95년까지 22 개교 신설하고 그 수업연한도 다양화하는 등의 시책을 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실업교육의 진흥은 교육정책의 주요 현안과제의 하나였으며 문교당국이 일련의 시책을 추진하고자 한 정책의지를 구체화하고 계획과 시책을 마련하였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업교육의 진흥은 지난 40여년간 문교부가 내세운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교육정책의 과제중 하나였음을 되새겨 보면서 이번만은 좀더 알찬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동시에 우리는 실업교육의 진흥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절실히 인식하여야 하겠다. 28대에 걸친 역대 문교부장관이 한두 분의 예외는 있었을망정 거의 빠짐없이 실업교육의 진흥을 강조해 왔다. 그것은 도의교육의 강화와 더불어 중점 문교시책 내지 장학방침의 하나였고 표현은 달라도 계속 추구해온 정책목표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0여년 동안 계속해서 미결의 과제로 남게 된 셈이다. 도의교육의 진흥이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고 어느 의미에서는 항구적인 과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실업교육의 진흥은 계속적인 정책의 과제로 인식되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역사적 현실로 보거나 미래사회의 필요로 미루어볼 때,실업교육ㆍ과학기술교육의 진흥은 절실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교육이오늘과 내일의 삶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실업ㆍ산업등이 중요한 일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농ㆍ공ㆍ상ㆍ수산ㆍ해양ㆍ가정 등 실업교육진흥의 당위성과 중요성은 제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점 간과해선 안돼 따라서 문교부가 일련의 실업교육 진흥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뜻을 높이 평가하며 그 성공적 시행이 실업교육의 발전에 기여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실업교육의 진흥이 제시된 계획과 시책만으로 성취될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점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안이한 접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실업교육의 진흥은 시설의 확충과 학생정원의 증대등 외곽적인 시책만으로써 성취될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하다. 문교부의 계획이 외곽적인 것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보다 종합적인 대응과 지속적인 정책적 관심이 필요할 것이며 시설과 기회의 확충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점이 개재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되고,관련된 여러 문제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아니될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부문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내실화의 여러 조건,예컨대 커리큘럼,교과서와 보조교육재료,교사 등에 관련된 조건을 정비하고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하나도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어려운 점은 실업교육의 진흥이 교육외적인 요인,특히 취업과 임금구조등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감히 대응하기조차 어려운 인문숭상의 가치관과 일반계학교에 대한 상대적 선호,따라서 실업계학교는 성적이 나쁘거나 가난한 학생이 가는 곳이라는 막연하고 불합리한 편견 같은 것이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 아직도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튼 실업교육의 진흥은 만만치 않은 과제요 도전이며 그 문을 넓히고 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극히 한정된 기본조건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문교당국자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다같이 인식할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전제로 하여 몇가지 방향으로의 노력이 동시에 그리고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기회의 확대와 시설의 확충등 시책은 반드시 내실화를 위한 다른 시책과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실업교육의 기회확대는 취업과의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물론 여러 부문별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할 것이다. 1970년대에 일부 농고를 일반고교와 공업고교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을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동 아래 임금구조의 개편을 꾸준히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적 편견을 버려야 끝으로 실업교육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국민적ㆍ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유인구조의 개편과 가치관의 내면화등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며,실업계학교에 보다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업교육의 진흥은 값있는 도전이며 영속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외언내언

    달릴 수도 없고 세울 곳도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퀴즈를 낸다면 아마 제일 먼저 대답할 사람은 서울시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답,서울의 자동차에 연관하여 못내 답할 수 없는 퀴즈도 가능하다. 예컨대 지금 이곳이 길인가 주차장인가. 재미없는 퀴즈지만 심각한 퀴즈이다. ◆이정도 퀴즈에서 끝날 일도 아니다. 서울의 차량이 1백만대를 넘고 나니까 이제 드디어 주택가주차장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종일 러시아워가 문제가 아니라 온밤중 주차난이 문제인 것이다. 서울시가 우선 표본조사라는 접근을 해보았다. 22개구별로 1개동씩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결과가 또 대책을 세우기에 너무나 열악하다. 차고 보유율은 34%. 11%는 4m이하 도로에,31%는 8m이하 도로에,그리고 14%는 8m이상 대로에 밤새도록 턱없이 세워져 있다. ◆게다가 차고가 있는 차량마저 30%는 그저 길가에 세우고 있다. 물론 타고 나가는 자신만을 위해서는 편할 터이다. 이 역시 대안은 찾기가 어렵다. 서울시의 의견은 4m이하 주차금지,6m도로 질서있게 주차,그리고 밤샘주차장소를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까를 상상한다는 일은 해야할 일이지만 하기가 싫다. 너무 막막하기 때문이다. ◆낮 사영주차장에서 밤 공영주차장으로 왔다갔다 하는 자동차사용이란 어떤 효용이 있는 것인가가 아마도 새 퀴즈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차고증명」이 있는 사람에게만 차량소유를 인정하자는 안도 나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차고 없이도 차를 살 수 있었던 기득권자와의 불평등문제를 유발한다. 승용차 10부제운행도 검토되고 있다. 하기는 해보아야겠지. 그러나 이 10분의 1은 대낮이고 밤이고 또 어디에 있을건지. ◆뿐만이 아니다. 10부제운영도 실은 새로 늘어날 차량수로 따지면 불과 4개월 효력밖엔 갖지 못한다. 그 다음엔 5부제,2ㆍ5부제로 갈 것인지. 그러니 남아 있는 카드는 질서의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언제 이 질서의식은 성숙할 것인지. 이것이 마지막 퀴즈가 될 것이다.
  • 김일성의 “은퇴설”주변/황석현 북한부장(데스크메모)

    지난 40여년동안 북한을 이끌어온 노령의 김일성이 50세를 눈앞에 둔 혈기방장한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곧 권력을 넘겨줄 것이란 관측들이 올들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 시기」 큰 시각차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김일성이 오는 4월15일 그의 78세 생일직후 헌법상의 국가원수직을 김정일에게 물려줄것이며 또 이사실을 이미 중국정부에 통보했다는 일본교도통신의 보도이다. 이 보도에 앞서 지난 2월23일에는 북한의 중앙통신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예정보다 6개월 앞당겨 오는 4월22일 실시할것이라고 발표했고 외신들은 이발표를 근거로 김일성이 대의원선거 직후 권력일선에서 일단 물러날 것이란 관측을 쏘아 올렸다. 김일성도 언젠가는 은퇴할 것이고 또 그동안 권력승계에 대비한 준비작업을 진행해온것도 사실이지만 그시기가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보도들은 각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은퇴시기에 대한 전문학자들의 견해는 서로 엇갈리고 있다. 대체로 외국학자들은 김일성의 은퇴가 임박했다는 쪽에 서있고 대부분의 국내학자들은 적어도 92년까지는 그가 장악하고 있는 4개의 최고위직(당총비서ㆍ국가주석ㆍ군사위원회위원장ㆍ서기국총서기)중 하나도 그의 아들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란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국내학자들이 「적어도 92년까지」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92년은 김일성이 80세가 되는 해이고 이 해에 노동당전당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노동당전당대회는 당초 오는 10월께 열릴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의 내부사정 때문에 92년으로 연기될 것이 확실해졌고 국내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이때까지는 북한의 권력체제에 아무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건강이 유지되는한 김일성은 종신군주로 남을 것」이란 완고한(?)시각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92년설」에 손을 들고 싶다. 그러나 「4월임박설」「92년설」「종신군주설」모두가 나름대로의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어 어느쪽이 가장 정확한 관측인가는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김일성의 은퇴시기가 아니라 그의 은퇴가 갖는 의미이다. 설사 김일성이 오는 4월15일 그의 생일을 전후해서 그의 아들에게 한두개의 최고위직을 넘겨준다고 해서 북한체제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령 그가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직을 물려준다고 해도 수렴청정으로 계속 권력을 장악할 것이란 것은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은퇴후 「작은 등소평」이 될 것이란 비유도 있지만 등소평보다는 훨씬 막강한 권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고 김정일은 아버지의 꼭두각시 노릇밖에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은퇴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김일성의 나이나 건강을 고려한다면 그의 은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김일성의 사후에 대비한 게산된 수순이기 때문이다. 지금 북녘땅에서는 김정일의 위상을 김일성과 비슷한 수준에 올려놓고 대대적인 우상화놀음을 펼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로 격상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의 우상화를 위한 각종 시설물이 곳곳에 새로 생겨났고 지난 연초에는 군지휘관들이한곳에 모여 「김정일에 대한 충성모임」을 갖기도 했다. 군복무경험이 전혀없는 따라서 군부와는 소원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를 상대로 군지휘관들이 충성모임을 가졌다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은퇴=체제변화”는 오산 이밖의 우상화 놀음으로는 「김정일화」「백두산 밀영」「구호나무」등이 있다. 이중 구호나무는 일제시대 항일 투쟁을 하던 김일성의 부하들이 그를 흠모하다못해 그의 위업을 기리는 갖가지 글자들을 나무마다 새겨 놓았다는 것인데 2∼3년전부터는 느닷없이 김정일을 대상으로한 글귀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백두산에 조선의 광명성이 솟았다」이다. 광명성이란 바로 김정일을 지칭한 것으로 그가 태어나자마자 김일성의 후계자될것을 예언한 셈인데 우리의 사고로는 어리둥절 할수밖에 없지만 북한의 체제아래서는 있을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북한이 왜 이처럼 극성스럽게 김정일우상화 놀음을 펼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의 일반주민들에게 있어 김일성은 일본식민통치와 미제국주의를 물리친 인물로 존경받고 있으며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김일성 신화」가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까지는 연결되지 않고 있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80년대초 김일성의 후계자로 떠오른 김정일이 북한주민들에게 아직까지도 친숙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김일성의 고민이 있다. 그의 아들을 자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또 신비화시켜 그와 맞먹는 카리스마를 부여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의 노력이 성공적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김정일의 인물됨됨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성격이 급해서 흥분을 잘하는가하면 대단히 솔직한 일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참된 모습은 알길이 없다. 어쨌든 대부분의 북한전문가들은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이 당분간은 권력을 장악하겠지만 얼마못가 실각되고 그후에는 집단지도체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일성 사후」가 관심사 따라서 김일성의 은퇴가 언제쯤 될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후 북한체제가 어떻게 될것인가에있다. 신중한 자세로 보다 멀리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김일성이 살아 있는한 그의 은퇴는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일하는 주부를 위한 「복지」(사설)

    근면한 한국인 이민세대들 중에는 아이들끼리만을 보호자없이 집에 두고 외출했다가 고발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린이를 함부로 한 죄에 해당하는 이런 고발은 거의가 이웃집에 의해서 행해졌다. 특히 아이들만을 집에 놔두고 밖에서 잠그고 부모가 외출한 뒤에 일어난 소동일 경우가 많았다. 잠재워놓고 나가면서 『깨어나 울기밖에 더하랴. 우는 걸로는 죽지는 않으니까,혼자 위험한 밖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국에서 죄가 된다. 수십만리 이역땅으로 이민을 가는 것 자체가 자녀의 장래를 위함임일 뿐인 한국인 부모로서는 『내자식을,나보다 더 위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고 어처구니없어 하는 일이지만 어떻든 그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지하실에 세들어 살던 맞벌이 부부가 이이들만을 안에 놔두고 밖으로 문을 잠근채 일을 나갔다가 안에서 불이 나자 아이들이 못빠져나와 질식사한 사고가 9일 서울에서 생겼다. 이런 사고는 이제 드물지 않게되었다. 이민간 동포들이 그랬듯이 이 부모들도 자식의 장래를 위해 최근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부부다. 애들 어릴때 부지런히 벌어서 방 한칸이라도 늘려보려던 부지런하고 자애깊은 젊은 부모였겠지만,끔찍한 비극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도 이제는 어린이를 방치하는 일이 죄가되도록 법을 마련할때가 된 것같다. 자식 다스리는 일이야 부모가 어련히 알아서 할 터인데 우리나라처럼 가족친애가 이기주의의 주범이기까지 한 나라에서 그런 법이 무엇때문에 필요한가라고 반대하는 이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마련하자면 몇가지 전제되는 일이 있다. 탁아소 시설을 늘려야 하고 특히 영세민층을 상대로 무료내지는 싼 탁아시설의 보급이 사회복지차원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부모들에게 어린이의 보호의무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국가사회가 최저의 해당 복지시설은 갖춰야 하는 것이다. 우선 순위로 보아 탁아소문제는 복지의 최우선정책이어야 한다. 주부의 일손은 산업체에서는 나날이 요긴해가는 인력이고,가정에서의 주부의 역할은 날로 확대되어 간다. 「일하는 엄마」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가서 전업주부보다 밖으로 나가는 주부가 조만간 더 많아질지도 모를 시대에 이르러 있다. 그런 변화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대단히 미비하고 절대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그나마 영세한 가정의 주부들은 자기가 번것을 다 갖다 바쳐야 탁아소에 어린이를 맡길 수 있는 형편인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영세민촌의 경우 어린이를 하루에 방치해두는 시간이 9시간쯤되는 것이 보통이고 10시간 11시간 둬두고 다니는 엄마들도 많다. 방치된 어린이는 사고등 단시간에 일어나는 위험에서도 무방비하고,성장발달기에 적절한 지능발달의 기회와도 소외당하게 된다. 2세국민의 교육을 위해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을 부를 수 있다. 먼저 제도를 마련하여 타율로라도 부모가 어린이를 방치하지 못하게 하고 그 제도의 효과적인 실시를 위해서는 탁아시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 이 일이다.
  • 환율 사실상 7백원대 진입/전신환 매도율/1불 700원80전 고시

    ◎시장환율도 곧 돌파 예상/어제 6백98원10전 기록 환율이 사실상 7백원대에 진입했다. 9일 시중은행과 지방은행ㆍ외국은행 국내지점 등 외국환취급 은행들은 대고객 매매에 기준이 되는 전신환매도율을 달러당 7백원80전으로 고시했다. 전신환매도율이 7백원을 넘기는 88년11월이후 1년4개월만에 처음이다. 전신환매도율은 국내업자가 외국에 물건을 팔고 대금으로 받은 환어음을 은행에서 원화로 바꿀때 적용되는 환율이다. 또 이날 외국환은행들간에 적용되는 환율이 달러당 6백98원10전으로 고시된 가운데 외환시장에서의 달러시세가 고시환율보다 다소 높게 형성돼 조만간 은행간 거래환율도 7백원대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외환전문가들은 최근의 원화절하 추세에 대해 이달초 시장평균 환율제로 환율제도가 바뀐뒤 환율의 가격기능이 제고된데다 환율이 당분간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월초에 집중되는 수입대금결제와 국제수지적자에 따른 달러화에 대한 수요증가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밝혔다. 원화가치는 지난 85년9월 선진5개국 재무장관회담 직후인 10월25일 달러당 8백93원40전(집중기준율)을 기록,사실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진뒤 계속 절상추세를 보여 86년 3.4%,87년 8.7%,88년 15.8%의 절상률을 나타냈었다. 원화절상추세는 89년초까지 이어지다 4월부터 절하로 돌아서 그동안 소폭절하추세를 보여왔다. 특히 환율제도가 바뀐후 원화절하 추세가 더욱 두드러져 지난 2일 소폭 절상된 것을 제외하고 연일 절하돼 왔다. 외환관계자들은 외환시장의 수급상황으로 보아 환율 7백원대에서 거래가 활발해 질 것으로 보여 절하추세가 이어지다 조정을 거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3당통합 반대 논거의 해부/한승조 고려대교수(세평)

    갑작스러운 3당 통합으로 많은 국민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어떤 여론조사에 의하면 찬성자가 46%,반대자가 28%,좀더 두고 보겠다 또는 무의견이 26%로 나타났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와 태도가 너무나 강경하고 앞으로 반대 연합전선이 펴짐으로써 정국을 불안스럽게 만들 것 같다. 여기서 3당 통합을 부정적으로 보는 논거를 재검토하여 그 시비를 가려보기로 한다. 첫째,정통야당으로 자처해 오던 민주당이 집권여당과 통합한 것이 정치적 변절이고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논리이다.○“비민주” 비난 근거 희박 또 한편 집권여당을 해체하여 여지껏 여권을 헐뜯고 괴롭혀오던 야당과 통합한 것을 5공세력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건국후 여당은 국가안보ㆍ경제성장ㆍ정치안정을 강조한 데 비하여 야당은 언론자유ㆍ인권수호ㆍ경제적 배분과 민주화를 위해 싸워 왔다. 그런데 노태우정부는 야당이 싸워오던 정책노선을 빼앗아 버린 셈이다. 뿐만 아니라 5공과 단절하기 위해 민정당자체를 해체해 버렸다. 그러니 김영삼총재와 그 당은 투쟁목표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김영삼총재는 87년 대권장악의 호기를 김대중총재의 분당으로 놓쳐 버렸다. 그후 평민당과 부분적으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5공 청산까지는 평민당과도 공동보조를 맞췄지만 앞으로는 경쟁과 대립이 버거워질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민주당 노선과 대동소이한 중도보수의 입장에 서있는 노태우정부에 대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하느니 차라리 민정당과의 합당을 선택하였다. 혁신세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행위가 변절 또는 배신으로 비춰질 수가 있다. 그러나 중도보수의 입장에서 볼때 변절이나 배신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둘째,3당 통합이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이 아니라 몇 사람들의 밀실합의로 결정되었다는 비난이다. 3당 통합은 3당의 지도자들간의 합의로 이루어졌다. 그 합의와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당원은 탈당하면 된다. 만일 반대나 탈당의 자유마저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 합당은 비민주적인 처사로서 비난받아도 마땅하다. 그러나 당원들이 자의로 지도자의 결정을 따랐다면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은 근거가 희박하다. 셋째,3당 통합은 평민당을 배제함으로써 지역감정과 대립을 격화시켰다는 비난이다. 만일 노태우대통령이 김대중총재에게 민정ㆍ평민의 연합을 권유했는데 김총재가 이를 사양하였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애초부터 호남지역을 고의적으로 배제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또 민자당도 호남지역을 배제함이 얼마나 불리한가를 알기 때문에 호남인사를 영입하고 그 지역의 지지를 얻고자 힘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지역대립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한편 3당 통합은 평민당을 유일야당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한 면도 있다. 넷째,3당 통합은 진보적 혁신정당을 억압하고 민중세력을 압살하기 위한 보수대연합의 기도라는 주장이 현재 존재하지도 않은 혁신세력을 과장하여 보수구도를 내세움으로써 과거 이승만정권이나 박정희정권과 같이 보수우익 독재정권을 구축하려는 음모가 아니냐는 것이다. 3당 통합이 보수대연합의 발상에서 나온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의 면면을 살펴볼 때 서민의 감정과 이익을 짓밟고 혁신정당의 출현을 봉쇄할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보수대연합은 과격좌경세력에 대처하는 연합이지 반진보 반민중 연합은 아닐 것이다. ○포용ㆍ양보의 미덕 발휘 또 현재 극히 미미한 세력밖에 안되는 혁신세력에 대비하는 보수구도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현재 재야 민중세력은 제도권안에서는 분명히 미미하다. 그러나 비제도권안에서도 미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비제도권의 세력이 제도권을 무너뜨리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것도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더구나 그 운동에 북의 힘이 가세될 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고의로 외면하여 보혁구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 현실을 보다 깊이 직시해 볼 필요가 있다. 다섯째,3당 통합은 노태우정권만 강화했으며 그에 흡수된 야당 특히 김영삼세력은 정치생명을 잃고 자멸할 것이라는 비판이다.여기서 노태우대통령의 입장과 전야당출신 정치인들의 입장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 오늘의 상황에서 노태우정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이 노태우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면 그에게 임기중 소신껏 통치할 수 있는 힘도 주었어야 했다. 과거의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노태우대통령은 아무일도 못하고 2년을 허송세월했다. 그런데 나머지 3년마저 허송세월하는 경우 한국의 경제는 파탄되고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불안만 계속될 것이다. 그러다 국민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국위와 대외신용마저 땅에 떨어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번 3당 통합은 단순히 노태우대통령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게도 해로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전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원들도 여기서 크게 기여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3당이 통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안에 민정당계가 다수이고 민주ㆍ공화계가 소수이므로 전야당계 세력이 소외될 우려도 없지않다. 또 오랫동안 야당생활을 하던 정치인들의 체질이 여당체질로 바뀌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3당 통합이 오랫동안 유지되려면 전민정계의 정치인들이 전야당계 사람들을 적극 포용하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여섯째,민자당은 내부의 파벌싸움으로 붕괴 또는 약화되고 평민당과 반대ㆍ재야세력의 저항이 격화됨으로써 정국이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 위험은 기우가 아니라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민자당 지도층의 정치력과 대국민 영도력이 요망된다. 보수대연합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재야세력과 제일야당의 위치에서 군소정당의 지위로 밀려난 평민당의 반대투쟁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대한 민자당의 대응이 어떨 것인지 두고 구경할 수밖에 없다. ○정치문화 성숙 계기로 3당 통합에 의해서 한국정치는 4당 분열과 대립의 상태로부터 다시 우세정당제도로 되돌아갔다. 일본을 포함하여 아시아제국에는 여당이 정기집권하고 군소야당이 별로 힘을 못쓰는 우세정당제도 또는 지배정당제도가 훨씬 더 많다. 구미형의 양당제도나 유럽식 다당연합제도가 아무리 바람직스럽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를 뒷받침할 국내외 여건이나 국민의 정치문화가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세정당제도하에서 정치적ㆍ경제적 안정이 이루어지고 남북통일로의 접근이 이루어져야만 구미식 복수정당제도가 이 나라에도 꽃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 종합병원 비리와 눈가림 행정(사설)

    사립대학의 부속병원도 포함된 종합병원의 비리가 터져 나왔다. 우선 비리의 종류가 무궁무진한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약의 제조업체로부터는 공장도 값으로 사들이고 고시가격과 비슷한 값으로 사들인 것처럼 장부를 꾸며 부당이익을 취했다. 또 특정 제약회사로부터 의약품을 구입하고는 그 보상처럼 장학금이나 기부금을 거둬들인 혐의도 받고 있다. 그렇게 거둔 기부금을 병원 운영과 관계없는 학교 시설비로 사용해 오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시중에서는 개당 7백20원 밖에 하지 않는 약을 재포장하여 병원제조약인 것처럼 속여 4천5백원까지 받은 경우도 있다. 또 중독성이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항생물질제제는 병원 조제실서의 제조가 허용되지 않는 데도 이런 의약품들을 만들어 환자에게 비싼 값을 물려 투여하고 더러는 밖으로 유출시킨 병원도 있다. 어떤 종합병원에서는 우황청심원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런 비리들은,그 규모나 체제로 보아 어제 오늘 시작되었거나 어쩌다가 한두번 자행한 일과성의 것이 아닌듯해 보인다. 말하자면 오랜 관행으로 뿌리가 내려진,알려진 비밀이었던 것 같다. 개인이 사리를 챙기기 위한 비리가 아니므로 어찌보면 정당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 명분때문에 오랫동안 거리낌없이 거듭되어온 비리가 한꺼번에 노정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이런 조직비리는 종합병원같은 책임있는 공기관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우선 「기부금」이든 「장학금」이든 그것이 「거래」와 부수된 것이라면 곤란하다. 그 흥정의 조건때문에 품질위주의 채택이 제한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차액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제약회사와 병원이 공모하여 소비자를 골탕먹이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종합병원에 대한 선호와 신뢰가 거의 신앙에 가까울 만큼 강력한 것이 우리 사회다. 그 믿음을 담보삼아 제약회사와 병원이 나눠먹기를 한 셈이다. 병원을 상대로 하는 소비자란 환자들이고 그 보호자들이다. 절약이나 자제로 소비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아니며,품질을 선택할 권한도 거의 주어져 있지 않다. 물론 거부권도 행사할 수 없게 마련이다.병원의 선처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부자인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다. 우리의 종합병원들의 거의는 설립 당초와는 달리 의료보험제도를 중간에 실시하게 됨에 따라 경영에 적잖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대학부속병원의 경우 본교의 재정지원을 분담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곳도 적잖다. 그런 사정 때문에 갖가지 편법을 생각해 낸 것이 오늘과 같은 비리로 나타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사회구조의 변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해야지 음성적 편법으로 언제까지 지속되기는 어렵다. 종합병원이 마치 부정의 복마전처럼 비치는 오늘과 같은 사태는 사회병리를 가중시키는 데 직접 역할을 한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보사당국의 책임도 매우 크다. 서로서로 눈감아 주면서 편법과 비리가 상존하게 한 「관행」은 우리 사회에 낫기 어려운 불신을 한가지 더 얹어 주고 말았다. 근본적으로 종합병원이 떼돈을 버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같다.
  • 3계파 원외지구당 쟁탈전 치열/민자 조직책 인선 어떻게 마무리될까

    ◎“차점자 우선”ㆍ“쿼타제 배분” 맞서/기준 결정돼도 지역안배등 진통 예상/1차 원내 1백50곳 86­39­25곳씩 차지 민자당이 6일 당 조직강화특위를 가동,현역 지역구의원을 중심으로 1차 1백50개 지역구 조직책을 발표하는등 조직책 인선에 나섰다. 그러나 현역 지역구의원 중 8명은 이날 조직책 인선이 보류됐으며 나머지 66개 원외지역구 조직책 인선문제가 남아 있어 조직책 인선을 둘러싼 민정ㆍ민주ㆍ공화 3계파간의 지분 늘리기 다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조직강화특위의 심사대상이 된 지역구는 2백24개 전체지역구 중 현역 지역구의원 지역 1백58개와 전국구의원이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4개 지역 등 모두 1백62개 지역구. 이들 가운데 1백50명의 조직책이 확정됨으로써 12개 지역구 조직책 인선이 보류된 셈이다. 민자당 지도부는 조직책 인선을 시작하면서 신당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인사는 현역의원일지라도 조직책에서 제외될 수 있음을 밝혀왔다. 이에 따라 1차 조직책 인선에서 8명의 현역 지역구의원의 조직책 임명이 보류됐다고 볼 수 있으나 재판계류중인 이학봉ㆍ박재규ㆍ홍희표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무소속 영입,전국구의원과의 경합지역으로 보류된 것이므로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든 경우이다. 따라서 앞으로 조직책 인선과정에서 이ㆍ박ㆍ홍의원등 3명을 완전 탈락시킬 것인지 여부가 주목된다. 또 지역구와 전국구가 경합,인선이 보류된 도봉갑의 신오철(공화계) 양경자의원(민정계),안동의 오경의(민주계) 김길홍의원(민정계),울산중의 김태호(민정계) 김운환의원(민주계)간의 지역구 쟁탈전도 볼 만하다. 그러나 김종필최고위원과 부여지구당을 놓고 경합했던 전국구의 조남욱의원(민정계)은 미리 지역구 포기의사를 밝혀 이날 김최고위원의 조직책 선정이 확정됐다. 이날 민주ㆍ공화계측은 현역 지역구의원의 조직책 임명을 원외배분이 끝난 뒤 하자고 요구했으나 민정계측의 우선발표 주장이 관철됐으며 1백50개 조직책 중 ▲민정계 86명 ▲민주계 39명 ▲공화계 25명씩 차지했다. ○…3계파가 한 지역이라도 더 차지하려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66개 원외지역은 크게 보아 서울의 평민당의원 지역 17곳등 20개 지역,호남 전역 37개 지역,부산 5개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민정계측은 원외지역구 조직책 인선에 있어 ▲희망하는 전국구의원 ▲13대 차점자 등의 원칙을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에 ▲지역신망 및 당선 가능성 ▲당 기여도 ▲여성 및 영입인사 배려 등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민주ㆍ공화계측은 ▲당대당 통합원칙에 따른 쿼타제 배분 ▲민주화 기여도 등이 참작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원외조직책 인선의 경우 3계파간 인선기준 또는 인선비가 결정된다해도 각 계파 내부 혹은 지역별 안배를 둘러싸고 또 한차례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ㆍ공화계는 호남지역을 양보하는 대신 서울의 20개 지역구 조직책에 보다 많은 몫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민주계측은 부산지역의 5개 원외의 차점자가 대부분 민정계임에도 불구,「전통적 연고」를 내세워 이들을 모두 자신에게 할애토록 요구하고 있다. 민자당 지도부는 4월 전당대회 전 2백여 조직책 인선을 마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나인선작업의 순항여부는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조직책 1차발표 1백50명 명단 민자당 조직강화특위가 확정발표한 1백50개 지역구 조직책 명단은 다음과 같다(민정계=정,민주계=주,공화계=화). ◇서울 △종로=이종찬(정) △용산=서정화(정) △성동병=박용만(주) △동대문을=김영구(정) △노원갑=백남치(주) △노원을=김용채(화) △은평갑=오유방(정) △은평을=김재광(주) △서대문갑=강성모(정) △마포을=강신옥(주) △강서을=남재희(정) △구로갑=김기배(정) △구로을=유기수(화) △영등포을=나웅배(정) △강남갑=황병태(주) △강남을=이태섭(정) △송파갑=김우석(주) △강동갑=김동규(주) △강동을=김중위(정) △동작갑=서청원(주) △서초을=김덕룡(주) ◇부산 △서=김영삼(주) △부산진갑=정재문(주) △부산진을=김정수(주) △동래갑=박관용(주) △동래을=최형우(주) △남갑=허재홍(주) △남을=정상구(주) △북갑=문정수(주) △북을=신상우(주) △금정=김진재(정) ◇대구 △중=유수호(정) △동=박준규(정) △서을=최운지(정) △남=이정무(정) △북=김용태(정) △수성=이치호(정) △달서=김한규(정) ◇인천 △중ㆍ동=서정화(정) △남갑=심정구(정) △남을=이강희(정) △남동=강우혁(정) △북갑=정정훈(주) △북을=이승윤(정) △서=조영장(정) ◇대전 △동을=윤성한(화) △중=김홍만(화) △서=박충순(화) ◇경기 △수원갑=김인영(정) △수원을=이병희(화) △성남갑=이대엽(화) △의정부=김문원(화) △안양갑=이인제(주) △안양을=신하철(주) △부천중=임무웅(정) △부천남=최기선(주) △광명=김병룡(화) △송탄ㆍ평택=권달수(정) △동두천ㆍ양주=이덕호(정) △안산ㆍ옹진=장경우(정) △과천ㆍ시흥ㆍ의왕ㆍ군포=황철수(정) △구리=전용원(정) △미금ㆍ남양주=이성호(정) △여주=정동성(정) △평택=이자헌(정) △오산ㆍ화성=박지원(정) △파주=최무룡(화) △고양=이택석(화) △하남ㆍ광주=유기준(주) △연천ㆍ포천=이한동(정) △가평ㆍ양평=김영선(정) △이천=이영문(정) △용인=이웅희(정) △안성=이해구(정) △김포ㆍ강화=정해남(정) ◇강원 △춘천=한승수(정) △원주=함종한(정) △강릉=최각규(화) △태백=유승규(주) △명주ㆍ양양=김문기(정) △삼척=김일동(주) △홍천=이응선(정) △춘성ㆍ양구ㆍ인제=이민섭(정) △횡성ㆍ원주〓박수(주) △영월ㆍ평창=심명보(정) △정선=박우병(정) △속초ㆍ고성=최정식(주) △철원ㆍ화천=김재순(정) ◇충북 △청주갑=정종택(정) △청주을=오용운(화) △충주ㆍ중원=이종근(화) △제천=이춘구(정) △청원=신경식(정) △보은ㆍ옥천ㆍ영동=박준병(정) △괴산=김종호(정) △제천ㆍ단양=안영기(정) ◇충남 △천안=정일영(화) △공주=윤재기(화) △대천ㆍ보령=김용환(화) △온양ㆍ아산=황명수(주) △대덕ㆍ연기=이인구(화) △논산=김제태(화) △부여=김종필(화) △서천=이긍규(정) △청양ㆍ홍성=조부영(화) △예산=박병선(화) △서산ㆍ태안=박태권(주) △당진=김현욱(정) △천원=김종식(화) ◇경북 △포항=이진우(정) △경주시=김일윤(정) △김천ㆍ금릉=박정수(정) △구미=박재홍(정) △영주ㆍ영풍=김진영(정) △영천시ㆍ영천=정동윤(정) △상주=김근수(정) △점촌ㆍ문경=신영국(주) △달성ㆍ고령=구자춘(화) △군위ㆍ선산=김윤환(정) △의성=정창화(정) △안동=유돈우(정) △청송ㆍ영덕=황병우(정) △영양ㆍ봉화=오한구(정) △영일ㆍ울릉=이상득(정) △경주=황윤기(정) △경산ㆍ청도=이재연(화) △성주ㆍ칠곡=장영철(정) △예천=유학성(정) △울진=김중권(정) ◇경남 △창원=황낙주(주) △울산남=심완구(주) △마산갑=백찬기(주) △마산을=강삼재(주) △진주=조만후(주) △충무ㆍ통영ㆍ고성=정순덕(정) △삼천포ㆍ사천=황성균(정) △진양=안병규(정) △의령ㆍ함안=정동호(정) △창녕=신재기(정) △밀양=신상식(정) △양산=김동주(주) △울주=박진구(정) △장승포ㆍ거제=김봉조(주) △남해ㆍ하동=박희태(정) △산청ㆍ함양=노인환(정) △거창=김동영(주) △합천=권해옥(정) ◇제주 △제주시=고세진(정) △북제주=이기빈(정) △서귀포ㆍ남제주=강보성(주)
  • 「정호용 출마」에 거여 “진퇴양난”

    ◎민자 탈당과 대구서갑 보궐선거 전망/반반승산에 후보내기 떨떠름/일단 포기 종용… 소외그룹 향배가 변수/결과따라 범여권 새 세력 형성 가능성 정호용 전 의원의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범여권의 공기가 냉랭해졌다. 정 전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포기하지 않고,민자당도 후보를 낸다면 선거구의 특성상 이 싸움은 집권여당과 정 전의원과의 한판승부 성격을 갖게 된다. 시기적으로도 민자당 출범후 처음 치르는 선거여서 범여권의 제도권 세력과 정계개편 과정에서 소외된 이른바 여권내 「재야」 세력간의 대리전 성격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 정 전의원은 2일 대구 기자회견에서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탈당이유 설명에서 『탈당은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 점이나 이날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의 계산된 행보에 비추어 무소속 출마는 번의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진다. 대구 서갑 보궐선거의 열도를 결정하게 될 민자당의 대응은 『어떻게 해서라도 무소속 출마를 포기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를 포기시키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민자당으로서는 커다란 상처를 안을 수 밖에 없다는 데 여권의 고민이 있다. 민자당이 정 전의원의 무소속 출마를 포기시키지 못할 경우 택할 수 있는 대안은 ①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 ②무명인사를 형식적으로 내는 방법 ③유력인사를 상대로 내세워 정의원을 정치권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 등 세가지를 들 수 있다. ①ㆍ②안은 정 전의원과 야합했다는 비난을 들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③안을 선택하더라도 여권내의 혈전으로 패배시에 민자당에 엄청난 타격이 돌아오고 설혹 이긴다 해도 노태우 대통령과 정 전의원간의 특수관계로 인해 노대통령의 이미지가 나빠질 게 불을 보듯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다. 민자당이 거론하고 있는 유력공천자들의 대부분이 「정 전의원 불출마」를 출마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은 이번 선거전의 성격과 민자당의 난처한 입장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유력 공천 후보자들중 대구시장을 지내 지명도가 높은 이상희 전내무장관과 이상연 보훈처장은 정 전의원이 출마한다면 같이 싸움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우현 치안본부장도 거론되고 있으나 경북고 후배여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만섭 전국민당총재나 유성환 전의원(민주계) 등도 정 전의원의 불출마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 차점을 한 백승홍씨가 민자당 공천이 없다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명도면에서 한결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 전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민자당 후보와의 싸움은 백중세 또는 정 전의원이 우세하리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정 전의원측은 이미 선거사무장ㆍ지도장ㆍ청년조직 등의 점검을 끝내고 홍보전략 등에 대한 세부작업에 들어갔다. 대구시민과 지역구민의 명예회복을 내세워 동정표를 획득해 지난 선거 득표수인 5만2천표를 얻겠다는 생각이나 민자당이 지명도 높은 인사를 내세울 경우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선거전의 양상은 민자당이어떤 수준의 후보를 내느냐와 어느정도 총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물론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변수는 정 전의원과 집권여당과 맞서는 셈이되는 선거전을 유권자들이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느냐와 대구ㆍ경북지역 의원들의 동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 현지의 여론은 『노대통령이 나오지 말라면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과 『노대통령이 이번에는 정호용 전 의원한테 신세를 갚을 차례』라는 상반된 주장으로 나뉘어 있다. 선거막판에 어느 흐름이 대구를 휘어잡느냐에 따라 선거결과는 큰 표차로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정 전의원이 출마를 강행할 경우 대구ㆍ경북 의원들중 상당수는 그를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민자당 내에서는 점치고 있다. 특히 서명파 의원들은 지역구 사정 등을 고려해 그를 못본체 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권익현 전민정당대표위원을 포함한 5공그룹 등 여권내 소외세력도 정 전의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백담사측의 향배도 주목되고 있다. 소외그룹이 정 전의원 지원에 연합전선을 형성한다면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를 계기로 이들이 정치세력화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범여권이 두조각으로 갈라질 가능성도 선거전의 양상에 따라서는 배제할 수 없는 셈이어서 그만큼 여권내 분위기는 미묘하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의 경우를 정 전의원의 무소속 출마와 대비해 볼 수 있다. 78년 12월 10대 총선에서 범여권이면서도 소외그룹에 속하던 이 전부장은 당시 공화당의 반대속에 울산ㆍ울주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9만7천여표를 얻음으로써 공화당 후보를 7만표차로 눌러 이긴 바 있다. 총선뒤 잠시 무소속으로 있던 이 전부장은 그 후 공화당에 입당했으나 80년 김종필 당시 총재를 공격,제명권유처분을 받았었다. 민자당이 정 전의원의 출마를 포기시키지 못할 경우 강력한 후보를 내세워 혈전을 벌이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약한 후보를 내세워 싸움의 파장을 줄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후보를 내세웠을 때 여권이 입을 이미지 손상 보다는 「야합」의 비난이 오히려 수용하기 편하다는 의견이 민자당내 민정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싸움이 전면전으로 확대됨으로 해서 신여권이 뿌리도 내리기전에 분열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 전의원이 광주책임과 관련해 공직사퇴를 하기까지의 과정에 작용했던 「권력의 힘」을 고려하면 정 전의원의 출마가능성은 아직 50%의 수준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정호용씨 「재출마의 변」/민자 공천 어려워 탈당… 국민의 심판 받겠다/「충고」 있었지만 「불출마 압력」 받은적 없어 대구 서갑 보궐선거에 사실상의 무소속 재출마를 선언한 정호용씨는 그동안의 심적 고민으로 무척 야윈 얼굴이었으나 2일 민자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탓인지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정씨는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의원직 사퇴가 「정치적 희생」이었다고 밝히는 한편,보궐선거의 재출마가 자신의 명예회복은 물론 대구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탈당후 무소속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민자당에서 공천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당계를 낸이유는. 『그동안의 상황으로 보아 민자당의 공천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당에 남아 있음으로 해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공천권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의미 외에도 나 자신이 무소속 출마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다』 ­대구 서갑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뜻을 굳혔는가. 『딱 부러지게 선언하는 것은 이제 질색이다. 보궐선거 공고후 후보자로 등록하는 것이 재출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민자당의 공천은 어렵다고 생각했나. 『여러가지 상황으로 어렵다고 본다. 민자당 내에도 여러사람들의 입장이 있지 않겠느냐』 ­출마하지 말라는 제의나 압력은 없었나. 『아는 분들로부터 「개인 의견」으로 충고받은 적은 있으나 출마하지 말라는 압력같은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탈당하게 된 동기는. 『지난연말 공직사퇴 때 탈당하려고 했다. 과거를 마무리 짓는다는 차원에서 가능한한 조용히 후유증 없이 마무리되길 원했다. 당시 지역구 당원들이 흥분상태에 있었고 탈당계를 냄으로써 그 사람들을 격분시키지 않기 위해 보류해 왔던 것 뿐이다. 입후보등록을 함으로써 나의 거취가 법적효력이 있는 것이지만 탈당한 것으로 내마음을 읽어달라』 ­재출마 한다면 어떤 명분으로 임할 것인가. 『나를 뽑아준 유권자나 대구시민에게 늘 죄송스럽게 생각했다. 지지자들의 뜻을 끝까지 받들지 못하고 정치적 사정에 의해 도중에 의원직을 사퇴하게 돼 송구스러웠다. 그래서 내 기분으로는 항상 이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왔고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퇴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나의 사퇴로 인해 유권자와 대구시민의 명예에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이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자존심에 대한 상처를 아물게 했으면 한다. 물론 나 자신의 명예회복도 포함된다』 ­무소속 출마가 노대통령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도전할 이유도 의사도 없다. 다만 유권자에게 못다한 빚을 갚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 뿐이다』 ­일단 사퇴했으면 그만이지 또 무슨 재출마냐는 시각도있는데. 『나의 사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희생이었다. 과거청산 마무리를 위해 나의 희생은 불가피했지만 나는 현재 공민권이 제한돼 있는 것도 아니고 또 3김씨 모두 사퇴후 나의 행동에 제한을 가한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국민에게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까지나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겠는가 묻고 싶다』 ­14대 총선출마를 고려한 적은 없는가. 『국회의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명예회복의 차원에서 볼 때 보궐선거가 아닌 14대 출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지금 나서는 것이다』 ­선거시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에 대한 예상이나 걱정은. 『선거법 자체가 무소속에 불리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6공이니까 과거에 비해선 나아질 것이다. 주민의식도 높고 언론도 있지 않는가. 지나친 제약이 있을 경우 법에 의해 고발할 생각이다』 ­의원직 사퇴 때처럼 출마결심이 또 바뀌지는 않겠는가. 『후보등록을 해야 출마가 공식선언 되는 것이지만 여러분 생각처럼 「마침내 불출마하는」 경우는 또 없을 것이다』 ­당선 된다면 민자당에 재입당 할 것인가. 『당선될는 지도 모르는데 당선후 얘기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 아닌가』 ­민자당이 공천자를 내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 봤나. 『그런 경우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다른 정당에 입당할 생각은. 『나는 어차피 야당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필요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정당에서 들어오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의원도 아니고 정당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 KBS,「변칙수당」 뒷수습 진통/이사회서 논란끝에 「해임제청」결정

    ◎노조측,“퇴진은 자율권 포기” 큰 반발 KBS의 수당변칙지출사건은 2일 밤 이사회가 사장ㆍ감사ㆍ부사장의 사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로써 부사장은 자동면직되고 사장과 감사는 각각 임면권자인 대통령과 공보처장관에게 해임을 제청하게 된다. 이번의 사표처리건은 지난달 28일 제210회 정기이사회와 이날 소집된 임시이사회에서 이사들간에 각각 5시간씩의 토의과정을 거쳤던 사실만 보아도 그 진통이 심각했었음을 읽을 수 있다. 또한 표결결과가 서영훈사장의 경우 찬성 7표 반대 5표였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몸살이 중병에 가까웠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이번의 진통은 지난달 26일 KBS가 지난해말에 직원들에게 지출한 인건비가 변칙지출이라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결과로 발표되면서 비롯됐다. 감사원의 발표는 KBS가 법정수당지급에서 절차상 공문서를 위조하는등 잘못을 저질렀고 노동쟁의기금조성 과정에서도 노동조합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발표가 있은 후 서영훈사장을 비롯한 KBS경연진 10명은 사표를 제출했고 지난달 28일에 열린 정기이사회는 사표제출건을 정식안건으로 상정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장시간에 걸쳐 토의를 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2일 임시회의를 열어 다시 논의하기로 한 뒤 산회했었다. 이같은 사태의 진전이 있자 KBS노조는 『감사원의 감사와 그에 따른 일련의 조치는 KBS를 음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경영진의 사퇴불가론을 폈다. 그러나 서사장은 두 차례의 이사회에 출석,물의를 빚은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 계속 사표를 수리해 주도록 요청했고 자신이 임면하는 본부장 등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사표를 반려시켰다. 여하튼 이번 사태는 이것으로 표면상 일단 마무리 되었으나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노조측에서는 『이사회의 이같은 결정은 자율권 포기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계속 투쟁할 태세를 갖추고 있어 앞으로 큰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기업인 KBS가 노사협의를 통했어도 시간외 근무수당을 일괄산정해 지급한 것과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은 직원에게도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수당을지급한 부분만은 어쨌든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KBS 전사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보다 좋은 방송,국민의 방송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 서사장의 말은 대다수 시청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 동서독「기본조약」체결로 교역 급진전/독일이“경제통일”바라보기까지

    ◎동독기업에 차관… 결제대금 청산 늦춰주기도/“국내상품 거래” 간주,양독 마르크화 가치 같게 얼마전 본에서 열렸던 동서독 정상회담을 마친 뒤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기자들에게 회심의 한마디를 남겼다. 『마침내 통일은 가능한 것으로 되었다』고. 경제 및 통화단일화에 동서독이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어 냈으며 이의 추진을 위한 공동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이날 정상회담 결과는 콜 총리의 표현대로 양독 통일의 가능성 확인과 함께 통일작업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동서독의 통일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50년대 초부터 시작된 물자교류는 72년 동서독 기본조약체결로 인한 양독관계 정상화 뒤부터 더욱 활발해졌으며 8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펼쳐져 왔다. 즉 서독은 대동독차관을 확대하고 은행이 동독기업에 돈을 빌려주면 정부가 지불보증을 서주었다. 그리하여 83년에는 10억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했고 그 다음 해에는 9억5천만마르크를 주었다. 정부차관 이외에 초과인출권(SWING) 형식을 빌려 해마다 8억5천만마르크 규모로 무역결제대금의 청산을 늦춰주고 있다. 양독간에 펼쳐져온 경제관계는 흔히 경제협력이라 표현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독의 동독지원이다. 차관공여는 젖혀두고라도 교역부분을 살펴봐도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서독은 동독의 물건을 되도록 많이 팔아주기 위해 서독 수입상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준다. 동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원유를 수출하고 동독에서 석유가공품을 수입한다. 소비재를 수입함으로써 동독의 생산활동을 돕자는 뜻이 담겨 있다. 또 동독의 농산물이 EC회원국 등 유럽의 다른나라도 팔릴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물품대금이다. 서로 물건을 사고 팔아도 수출입상들이 물건값을 직접 주고받는 게 아니라 양쪽의 중앙은행이 청산결제방식으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서독은 동독의 마르크화 가치를 서독마르크화와 똑같이 쳐준다. 양쪽 화폐의 환율의 실세는 많을 경우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비싸게 사주고 싸게 판다는 얘기다. 손해보는 장사가 분명하지만 서독은 대동독교역을 일반적인 수출ㆍ수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내상품거래로 간주하며 그 목적이 동독을 돕자는데 있기 때문에 이같은 교역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양독간의 교역규모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에는 1백50억마르크를 넘는 것으로 어림되고 있다. 교역으로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동독시민이 서독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서독정부는 동독정부에 한사람당 30마르크씩을 지불했다. 또 정치범을 석방하는 대가로 몸값을 지불하기도 했다. 지난 63년 이래 지금까지 2만2천3백여명의 정치범이 서독의 몸값지불로 석방됐으며 이로 인해 동독은 그동안 30억마르크라는 적지않은 돈을 챙겼다. 이같은 서독의 갖가지 경제지원으로 동독은 그나마 동구권에서는 가장 형편이 나은 나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음을 부인키 어렵다. 통독문제의 대두는 동서냉전시대의 종막 등 국제적 여건의 변화가 촉매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작업이 오늘과 같이 급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와 같은 서독의 통일을 향한 장거리 포석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남들이 보아 전혀 통독이 불가능하게만 여겨지던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반쪽」인 동독을 도움으로써 양쪽 시민들에게 민족의 단일성과 공통성을 일깨우고 정부간에 믿음성을 키워온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통화통합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며 경제통합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는 이제 순서와 절차의 문제로 귀착될 뿐이다. 분단의 상황과 배경은 다르다 해도 동서독이 지금까지 통일을 향해 걸어온 발걸음,그리고 그들의 지혜를 우리는 찬찬히 돼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 “니카라과 충격” 쿠바 고립심화/좌익정권 붕괴로 카스트로 곤경에

    ◎소 원조 대폭 줄고 주민ㆍ관리들의 불만 고조/「차모로 승리」계기,국민투표 요구 가능성도 니카라과의 좌익 산디니스타 정권의 선거패배는 이 지역 유일의 공산정권 유지자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중미문제 전문가들은 니카라과 선거의 또 한명의 큰 패자를 카스트로로 간주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니카라과를 쿠바혁명이 낳은 어린애로 보아왔다』 아메리칸 대학의 행정학 교수 윌리엄 레오그란데는 이렇게 말하면서 『카스트로와 소련 동구간의 관계가 자꾸 멀어지고 있는 시기에 나온 이번 선거결과는 카스트로를 더욱 고립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대한 어느 마르크시스트 지도자 보다도 강력히 반대해 온 카스트로가 「위험한」 자유선거를 실시할리는 없겠지만 쿠바의 운명이 계속 내리막 길을 걸을 경우 군부에 의해 쫓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쿠바의 일부 관리들은 쿠바혁명의 방향,가중되는 외채와 경화 부족,부패등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니카라과에서 국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바꾸는 것을 보고 카스트로의 통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하며,또 그의 통치방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에 대한 쿠바 국민들의 인식이 확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미주담당차관보를 지낸 엘리오트 아브람스는 『차모로의 승리가 쿠바내의 반대세력을 고무시킬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난해 칠레에서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통치를 거부했던 것과 유사한 국민투표의 실시 요구가 쿠바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했다. 그러나 카스트로의 통치에 공개적인 도전이 있더라도 카스트로는 군의 충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원 외교위의 스티븐 솔라즈 의원은 말했다. 소련은 카스트로에게 주고 있는 연 60억 달러의 원조에 대해 대폭 삭감을 고려중이다. 소련은 이미 쿠바에 대한 잉여 원유의 선적을 중단했다. 그동안 쿠바는 이 원유를 재수출,매년 수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었다. 국내에서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카스트로에게 변화를 조성하도록 압력을 가할지 모른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라틴 아메리카담당 실무자로 일했던 토머스 앤더스는 『소련의 대쿠바 수출품 선적이 갑자기 줄어들었다』고 밝히면서 『고르바초프가 쿠바의 경제를 죄는 쪽으로 가는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쿠바 국민들은 소련의 이같은 선적 감소로 벌써부터 고통을 받고있다. 작년말 소련의 밀이 도착하지 않아 아바나의 빵 값은 30%가 올랐고 지방에선 하루 배급량이 감소됐다. 카스트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결과로 이같은 문제가 생겼다면서 소요 파업 생산중단등 때문에 소련의 「배달」은 더 이상 믿을만한게 못된다고 불평하고 있다. 쿠바의 과일은 썩게 내버려두거나 국내 소비에 돌려지고 있다. 과일을 주고 들여왔던 상품의 선적이 동독 폴란드 소련 등에서 끊겼기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지난 1월29일 쿠바 근로인민의회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의 고수를 선언하면서 『우리는 꿈에서라도 개혁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국제정치학자 진 커크패트릭 여사는 27일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카스트로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을것』이라고 꼬집었다.
위로